이번 년도에도 어김없이 천안교회는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즐겁게 김장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천안교회 식사는 걱정 없습니다! ^^

![[교회 행사] 천안교회 MICKS Fellowship](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11/TJC천안교회_사진_20251116_1-1-scaled-1.jpg)
할렐루야! 천안교회는 지난 11월 15-16일에 1박 2일로 대학사청부 MICKS Fellowship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MICKS Fellowship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시죠!? MICKS Fellowship이란 Malaysia, Indonesia, China, Korea, Sabah Fellowship(교제활동)을 합친 말로 천안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외국인 성도들과 함께 어우러져(MIX)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는 교제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천안교회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사바(동말레이시아), 중국,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성도님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대만, 일본, 영국 등 여러 나라 성도님들이 천안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기도 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천안교회에 외국 성도님들을 보내주셔서 서로가 많은 사랑을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이번 MICKS 교제활동에서는 레크레이션, 찬양기도회, 산책미션, 전통민속촌 관광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대학사청부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교제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함께 사진을 통해 행복했던 MICKS 교제활동을 보시죠!

![[성도 간증]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천안교회 소만수 형제)](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11/TJC천안교회-2023년-10월-15-3차-세례식-54648378237.jpg)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
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장생활 한 지역이 안산, 광주, 정읍, 천안이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참예수교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안산지역으로 취업했을 때부터 참예수교회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산에 계시던 고모님, 지금은 돌아가신 소감사 집사님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교회에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답만 하고 직장생활에 충실하면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른 지역 정읍으로 회사를 이직하면서 위의 형님인 전주교회의 소남기 형제(집사)님과 고모님의 권유로 제일 먼저 전주에 있는 참예수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형님은 저에게도 같이 신앙생활을 권면하셨고 또 부산의 고모님께서도 저에게 신앙생활을 계속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제가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은 계속 포기하지 않고 권면을 하셨고 제가 직장 관계로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마다 그 지역에 있는 참예수교회를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안산에 있을 때와 전라도에 있는 광주에 있을 때도 교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광주에 있을 때 마지못해 교회를 1번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천안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도 계속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 1번, 쌍용동 진주빌딩에 교회가 있을 때 2번 정도 흉내를 내듯이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권면을 하시니 인사차 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교회와는 많이 멀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3년 봄에 형님인 소남기 집사님이 천안에 영은전도대회가 있으니 한 번 같이 가보자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동안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형님이 하도 가자고 하니 인사차 한번 가보자고 해서 출석을 하였고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현 6학년) 막내딸 연서와 함께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왔을 때 좀 신기한 것은 연서가 너무 적응도 잘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에 머무는 동안에 스마트폰도 만지지 않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다음 주에도 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주에 출석했는데 여전히 연서는 너무 적응을 잘했고 저 또한 성도님들이 너무 마음을 평안하게 대해주시고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3번째 교회에 출석하면서 제 입으로 이번에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화평반분들과 대화하면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출석한 그 기간에 목자님께서는 안식일에 십계명을 설교해 주셨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둘째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왜 형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 안식일 예배 후에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아마도 목자님께서는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때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는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형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 때문에 형님을 많이 미워했었거든요. 그런데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후 분반 예배 시간에 그동안 형님을 미워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며 많이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번째 교회에 출석하는 날 안식일 오전 예배 때 갑자기 김반석 장로님과 김미영 자매님이 안수기도를 권하셨고 당황한 저는 제 마음이 좀 정리되면 그때 안수를 받겠다고 사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반석 장로님은 계속 안수를 권하셨고 할 수 없이 따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사실 성령이 무엇인지 왜 받아야 하는지 또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안수를 받은 것입니다. 그다음 주 안식일에 여전히 김반석 장로님은 안수를 권하셨고 이제는 저도 당연히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순히 따라 나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안수를 받은 지 3번째 되는 안식일에 안수기도를 받을 때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뜨거워지는 느낌과 더불어 몸에 진동이 오고 입에서는 제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이때 성령의 감동이 오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실을 목자님이 아시고 그날부터 구도자 교육을 하기로 했었는데 구도자 교육이 끝나고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몸에 진동이 오고 방언이 터졌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목자님께서는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2층 화평반실로 내려가니 모든 신도들이 기뻐하며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분반 예배가 끝난 후에는 성령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케이크를 준비해서 많은 신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자며 회당으로 내려가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온몸이 더욱 뜨거워졌고 성령의 감동으로 눈물도 나고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는 목자님께서 성령 받은 소감을 한마디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 제가 제대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받은 성령이 성령인지도 모르고 소감을 말할 때와 밴드 글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너무나도 일찍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렇게 성령을 받기 전부터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 아내는 본인뿐만 아니라 제가 교회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한 두 번 출석할 때는 그러려니 하며 자신처럼 이제 더 이상 교회를 안가겠지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가더니 이제는 매주 토요일이면 교회를 가는 저를 보고 매우 실망스러워했고 섭섭해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교회에 출석하는 문제로 갈등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한 달 이상 지속되었고 결국은 아내가 교회를 가지 말라고 완강하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서 2주간 교회를 못 가게 되었습니다.
2023년 8월 12일 안식일에 예배 참석은 못하고 마음이 속상해서 아이들 방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아내가 이야기 좀 하자며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너무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지만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단단해진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나가자며 가까운 저수지로 이동해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회를 못 나가는 기간 동안에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아내는 마음이 변했는지 연서는 데리고 가지 말고 당신 혼자만 나가라고 말을 했습니다. 연서를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이 아쉬웠지만 다시 교회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식일 전날 저녁에 아내가 갑자기 자기도 교회를 따라오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를 다니겠다는 것은 아니고 도대체 우리 남편이 그토록 교회에 빠진 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남편 없이 집에 있느니 차라리 남편과 함께 교회에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대신에 자신이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니 너무 자신을 환대할 필요도 없고 예배는 드릴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알라고도 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온다는 것을 교회에 미리 귀띔을 했었고 아내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도 신도들에게 설명을 했기 때문에 아내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모든 분들이 차분하면서도 반갑게 아내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내는 그동안에 몇 번의 교회 출석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열렸는지 놀랍게도 아내는 교회에 와서 순순히 예배에 참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예배에 참석하게 되자 곤란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연서가 안수기도를 받으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안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안수기도를 받게 했다며 매우 화가 나서 이제부터는 연서는 절대로 교회 데리고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교회를 따라올 때 오전만 있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오전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8월 27일 세례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사실은 아내와의 갈등으로 저는 세례식 이야기도 못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세례식 날짜는 다가오고 형님 내외분께서 천안에 온다고 하여 아내에게 세례식 날짜를 어렵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세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세례식 날이 되니 아내는 세례식도 따라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의 한 번밖에 없는 세례식 날이니만큼 가서 아빠를 축하해주자고 하면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세례받는 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기쁨도 컸지만 또 아내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와서 축하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고 그날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전주에서 형님 내외분께서 전날부터 오셔서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서 세례와 성령을 받고 천국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형님과 형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왜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그토록 빨리 성령을 주셨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갈등으로 교회 출석이 어려워졌을 때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어쩌면 교회 출석을 중단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성령의 선물을 일찍 허락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식이 끝나고 여전히 아내는 교회를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이 점점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제 아내에게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에 제 아내도 점점 마음이 열리게 된 것 같습니다. 더욱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전주 형수님께서는 제 아내의 마음을 다독여 주면서 믿음의 길로 잘 인도를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3자녀 모두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두 딸은 하나님께서 귀한 성령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내와 두 딸은 교회에 잘 출석하고 있고 신앙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희 아들 경완이만 아직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들 경완이에게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올해 저희 가정은 저희 자녀들의 믿음과 신앙 성장을 위해 교회 옆으로 이사까지 결심하게 되어 현재 대우타워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까워서 저희 가정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신 천안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만수 형제님 가정 & 소남기 집사님 가정>

<소만수 형제님 가정>
![[복음 메시지] 지혜로운 건축자 (고전 3:10-15)](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11/14호-복음메시지.png)
2025년 11월 22일 (토)
설교제목: 지혜로운 건축자
본문: 고전 3:10-15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세상에는 많은 집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이 땅의 집을 잘 짓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집 뿐만 아니라 하늘에도 하늘의 집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집이 아니라 하늘의 집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건축을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늘의 집을 지혜롭게 건축할 수 있을까요?
*지혜로운 건축의 비결
1. 좋은 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0)
건축에는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의 건축도 마찬가지로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마 13:20-21)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도 뿌리, 즉 기초가 없는 믿음의 사람들은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뿌리를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뿌리를 무엇으로 세워야 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의 뿌리, 즉 기초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마 7:24-25) 반석 위에 집을 지어놓으면 아무리 풍파가 몰아쳐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 7:24-25)
구원은 오직 믿음의 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믿음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아 믿음을 튼튼히 세워나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 좋은 믿음의 재료로 지어야 한다. (12-13)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2-13)
1) 금, 은, 보석 : 변하지 않는다.
2) 나무, 풀, 짚 : 변하고, 불에 취약하다.
불에 취약한 재료로 집을 지으면 곧잘 불에 타버리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지어야 할까요?
(약 3:13-18) 보석과 같은 위로부터 난 지혜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
이러한 좋은 믿음의 재료로 건축을 할 때 지혜로운 건축이 될 수 있습니다.
3. 공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14-15)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14-15)
‘공력’은 ‘수고’를 의미합니다.
집을 지을 때 정성을 다해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축한 믿음의 집을 시험하시고, 검사하십니다. (고후 5:10)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해주십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 1:3)
믿음의 공력은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공력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력을 다하는 것이 지혜롭게 하늘의 집을 짓는 방법입니다.
모든 성도님들께서 이 땅이 아닌 하늘을 소망하며, 하늘의 집을 지혜롭게 건축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신앙의 향기] 시원하고 즐거운 아동부 물총놀이!](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09/KakaoTalk_20250902_235103160_05.jpg)
할렐루야!
천안교회 아동부는 지난 8월 16일에 교회 옥상에서 신나는 물총놀이를 했습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물을 맞으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진을 통해 아동부들의 즐거운 물총 놀이 모습을 함께 보실까요!?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08/KakaoTalk_20250814_111711853.png)
천안교회 김명현 형제가 중3수련회를 갔다 오고 나서 작성한 소감문입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중3)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025 중3 수련회 소감하겠습니다. 나는 중3 수련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설렘보다 걱정이 더 컸다. 왜냐면 중3 수련회를 하는 기간과 방학식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업보다 교회 행사를 우선으로 하기로 다짐했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 후,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중3 수련회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도를 먼저 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수 있었던 것 같다.(감사주😄) 중3 수련회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기 전에 기도를 깜빡하고 갔는데, 모자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항상 기도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3수련회때 각자 맡을 역할을 제비뽑기 하고있을때, 우리조 조장님이 내가 안마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안마핑이 되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작은 것에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중3 수련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3번째 강의 시간 중 들은 말씀이다. (사실 레프팅을 하고 나서 듣는 강의라 많이 졸렸지만 말씀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뒤로 나가서 들었었다.) 어떤 말씀이었냐면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였다. 박필선 목자님은 그 당시 김천세무서의 계장으로 일하시다가 부산으로 과장 승진발령을 받았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원해서 희생과 헌신의 길을 택하셨고, 빨치산들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하시던 그 순간에도 전도하셨다. 그리고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순교를 택하셨다. 그래서 순례의 길을 걸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잘 다져진 등산로도 가기 힘든데, 이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빨치산들에게 끌려가시며 어떤 생각으로 올라가시고,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의 순교 덕분에 지금 참예수교회가 이렇게 흥왕하고, 발전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말씀은 홍여호수아라는 분이 7년(?)만에 어느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가 다른 교회로 바뀌어 있었고, “왜 진리를 버렸냐?”라고 물어보셨는데, 대답은 “우리가 버린게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버린거다”라고 했다고, 일꾼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일꾼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전도하기, 교회에 처음 오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혼자 있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등 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중3 수련회는 ‘성령과 함께 떠나는 TJC 역사 여행’ 이라는 주제로 참예수교회 역사를 알아가는 수련회였는데 사실 TJC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를 통해 왜 알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역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서 학업을 포기한게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나님을 우선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더더욱 타락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주고, 믿음의 동역자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수련회의 마지막 날에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앞에 나가서 소감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져서 당황했고, 정말 내가 맞나? 잘못 읽으신거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말했던 것 같다. 뭐라고 말했냐면 “또래중 1/3이 떨어져 나간다고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 또래는 떨어져 나가는 사람 없이 모두 진리 안에서 자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말씀 중에서 장바나바가 교만해지고, 자신이 참예수교회 창립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타락하여서 중화 참예수교회를 설립했다는 말씀, 박창환씨를 예를 들면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고, 믿음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과 또래 중 통계적으로 1/3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씀이 그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회 영상을 보는데 영상 마지막에 참예수교회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런 믿음의 선조의 모습을 닮아가며 믿음을 이어갈 증인이 되어 거룩한 주의 나라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정을 소화하는데 계속 ‘같이 걸어가기’라는 찬양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우리 10또래들이 계속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주 가신 그길로 다같이 함께 가는 모습이보이고 ‘주와 함께, 주의 뜻대로’라는 가사처럼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이 알려주신 그 길로 다니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일정에 언제나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우리 모두 이 참예수교회 안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가고, 지어져가는 10또래가 되자!!! 아멘.

![[교회 행사] 부산교회 청년반 천안 방문](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08/TJC천안교회-2025년-8월-부산교회-청년반-천안-방문-71087479828.jpg)
할렐루야! 지난 8월에 9일(토)부터 10일(일)까지 부산교회 청년부가 천안교회에 방문하였습니다. 찬양 교류와 즐거운 레크레이션, 재미있는 교제 활동 시간을 가지면서 맛있는 간식도 먹으며 천안교회 청년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함께 사진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복음메시지]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사 53:1-12)](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08/13호_복음메시지.png)
2025년 8월 2일 (토)
설교제목: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본문: 사 53:1-12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이사야 53장은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외모는 초라했고, 고난을 당할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할 때 잠잠했습니다. 그가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속건제물로 드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일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그는 바로 누구일까요?
(사 52:13) 바로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1)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오실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 7:14) (사 9:6) 이사야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42:2-4)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살 어르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10-11)
1. 예수님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3)
(눅 2:7)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또 아이를 죽이라는 헤롯왕의 칙령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애굽으로 피난가기도 했습니다.
(사 53:2-3) 또한 예수님은 아름다운 것도 없을뿐더러 모든 이들에게 멸시를 받기까지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죽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저 고난이었습니다.
(마 8:20) 그의 길을 따르는 길은 고난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기도 했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요 1:10-11)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나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4-6)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고난을 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우리는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또한 마치 양처럼 내 일만 생각하고 교회 걱정은 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삶은 존귀한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초라한 삶을 살아가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늘 생각하며 빚진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성도 간증]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5/05/KakaoTalk_20250512_103546566.jpg)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할렐루야!
저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09년 5월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특별한 체험이나 이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에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하고 가장 귀한 일이다 라고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를 나오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눌 간증은 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하셨는지와 성령 받는 것 그리고 이후에 저희 어머니와 가족의 전도됨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 이전의 모습 >
16년 전인 2009년, 제가 성령 받기 이전의 나이는 딱 40세였습니다. 신앙생활 이전의 삶의 중심, 마음의 중심은 회사일이었습니다. 제가 기계설계 쪽의 일을 하였는데 업무가 항상 늦게 끝났습니다. 그 당시 일이 끝나는 시간이 대부분 10시 정도가 보통이였고, 나를 진단하면 약간의 일 중독 상태였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 끝나고도 술을 좋아해 동료들과 함께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내는 것이 낙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 집을 사고, 언제 결혼하고 이런 내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들을 하며 사는 생활이었는데, 어찌보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고민과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많은 것에 욕심을 두고 어두움에 길을 잃고 헤매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종교에 대한 저의 생각은 신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바보같은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는 더 믿을 수 없고 교회 다니는 사람의 성품이 제가 느끼기에 특별히 더 나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한다” 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 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한심해 보였습니다. 나에게 교회 이야기는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고, 종교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이야기도 하지마! 딱 잘라 말했습니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과 세상의 많은 것에 욕심을 두고 살아가는 어리석고도 어두움 속에 헤매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르고 어두움 속에서 속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 헤매는 저를 빛 가운데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 어린시절 >
제가 태어난 곳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입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저수지 솔밭 언덕에 위치했고, 내부는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었고, 안동교회에 있는 풍금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부여 참예수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희 가족 부모님, 형, 누나들과 외가댁 식구들이 제가 학교 입학할 때까지 다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양손을 잡고 고스롬타면서 그리고 하얀 눈길을 걸으며 다녔던 기억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찬송이 ‘내게 강같은 평화’, ‘금과 은 나없어도’… 가 기억이 납니다.
< 믿음을 잃어버림 >
그러나 부여 참예수교회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없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 없어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와 우리 가정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부여 시골에서 정미소를 하였는데 교회가 없어지고 나서 몇 년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망하였습니다. 빚쟁이들이 계속 찾아왔고 결국 정미소를 팔고 1979년 10살 때 큰아버지가 계시는 서울로 이사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은 정말 힘든 생활을 하였습니다. 79년에 서울에 올라와서 오랜기간을 시장에서 닭장사를 2007년까지 28년간 계속 하셨습니다. 시장에서 닭장사 새벽에 시작하여 저녁이 아주 늦어야 끝이 났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또한 뜨문뜨문 할머니와 사촌들을 따라서 대방교회에 다니다가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차가 있지만 가족 모두 신앙을 잃게 되었고, 막내누나만 더 다니다 결국 모두 떠나게 되었습니다.
< 청년생활 >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없으니 잊는 것은 너무 쉬웠습니다. 오히려 커가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더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하게 될 수많은 이유가 생겼는데 그중에 살아가면서 만난 기독교인 대한 경험입니다. 대학교 때에 첫 아르바이트를 강남 버스터미널 앞 기독교 백화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사장님이 교회를 다니시며 장사를 하시는데 그곳에 직원들에게 심하게 화를 잘 내고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첫 직장 사장님이 기독교인이였는데 정말 거짓말을 잘하였습니다. 또 기독교를 싫어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얇은 성경 지식도 그 하나였습니다. 욥의 시험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시험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음으로 하나님을 정말 많이 비난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에게 행하고 시험할 수 있는가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많이 비난하였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교회의 목사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한 잘못을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교회를 더 많이 비난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하고는 담을 쌓고 정말 완전히 잊었고 제가 교회 다녔던 기억조차도 잊었습니다.
< 사회생활 >
대학졸업 후 군대를 갔다 제대한 후 사회생활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직장생활을 하였고, 주 6일 동안 일하고 저녁은 술 마시고, 간혹 시간 나면 주말에 낚시도 가고, 또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집을 살까? 서울과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9년 직장 때문에 천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천안에 와서 더 일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천안에 큰누나가 살았는데 같은 곳에 살았음에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일속에 또 세상 욕심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지냈지만 지금에서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타인에게 사랑을 혹은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또 받는 것도 싫어하는 아주 메마르고 건조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35:1) 광야과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
< 은혜의 시작 >
어머니(이순복 모매님)가 오랫동안 닭장사를 하셨는데 장사가 점점 더 계속 안 돼서 너무 힘들어하셨습니다. 생닭과 치킨을 팔았는데 한집 걸러 한집이 치킨집이 생기고 또 슈퍼나 마트에서 생닭을 파니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 몇 년 간 계속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채소가게는 정말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채소가게가 너무 잘되니 채소가게에서 확장을 하려고 권리금을 주고 팔으라고 하여 그렇지 않아도 유지가 안돼 그만두려해도 시장에 보증금이 거의 없이 월세를 내고 있어 이것 저것 정산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권리금을 준다니 바로 넘기고 26년간 하시던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이것 저것 정산하고 반지하라도 방도 얻고 생활을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청소 일을 시작하셨는데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유는 닭 장사는 하루종일 자정까지 매여 있어야 하는데 병원일은 새벽에 나가지만 일찍 끝나 본인의 시간이 최소한이라도 있고 또 장사할 때는 본전도 안되었는데 병원 일은 월급도 최저임금이지만 월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병원에 가니 매 아픈 사람 뿐인데 본인은 건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격주로 토요일에 쉬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장사를 그만두고 나서 수십 년간 못 나갔던 하나님께 나가야겠다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마침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때마침 대방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자님(오희도 목자님)이 교적부를 보고 잃은 양들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려는 딱 그때 연락이 와서 다음주부터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도 믿음생활을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님이 약 30년만인 2007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때는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뭐하시러 그런 곳에 다니실까? 시간 아깝게—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일이 은혜와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인도자와 만남 >
2008년 봄에 이종사촌 결혼식에 참석하여 친척을 만났는데 이종동생과 그 신랑을 만나 인사 했습니다. <김하늘(김참운) 집사, 김지용>. 천안에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종동생이 천안에 사는 것을 몰랐습니다. 천안에서 식사 한번 하기로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도로과 공무원이니 좋은 회사 땅도 알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얼마 뒤 사촌 동생인 참운 자매로부터 밥 한번 먹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장소가 이학돌솥밥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부 내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러 사람이 앉아 있어 엄청 당황했습니다. (홍영석 목자님, 김한길 목자님 내외… 등)
그리고 조금 뒤 아 예수쟁이들이구나! 을 알고 나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다음에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중 영은회였던것 같은데 참운 자매 어머님이(이모님) 천안에 왔는데 와봐라 하셔서 할 수 없이
나가 교회 다니라는 권면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래서 나갈 마음이 있었냐? 절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음도 없었지만 당시 전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두에 밝힌 것과 같이 하루를 일로 보냈습니다. 갈비탕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해 8월에 청주 천안 연합 래프팅을 가게 되었는데 왜 거기를 간다고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바쁘고 내가 낄자리가 아닌데 래프팅을 함께 갔다 오고 나서 저의 마음은 “이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회에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쁜 사람이고 교회에 다니려면 제가 그것에 매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래프팅 후 참운 자매의 강권도 있고, 래프팅 간 것도 있고 해서 몇 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의 참석하여 김한길 목자님 설교가 말씀이 때마침 저에게 맞는 말씀이었는지. 제 마음을 열어 주신 것인지.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내용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신앙생활, 교회, 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아주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생각해도 올무이고 저처럼 바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 신앙을 할 수 있는 결정적 변화 >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미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부동산 모기지에 투자한 은행들이 파산한 사건인데 그 사건이 있은 후 두달 만에 거짓말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국의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여 저희 회사에 모든 일이 끊겼습니다. 직원들은 휴직을 하고 저도 오전에 잠깐 나갔다가 오는 정도였습니다. 정말 바쁜 사람이었었는데 몇 개월을 직원들과 함께 놀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맞추어 참운 자매가 교회에 출석하라고 전화가 왔고, 예전에는 교회오라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일 때문에 못간다고 했는데 그 일후로는 핑계 거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배와 교회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11월에 대둔산도 다녀오고 저녁예배 안식일도 나와서 말씀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친밀감이 생겼고 그즈음 저와 같은 구도자인 서민선 형제님도 같이 활동하고 예배 참석도 하였습니다. 다음해 목자님이 바뀌어서 윤득도 목자님이 부임하셨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제가 계속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새로 부임하신 윤득도 목자님을 약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계속 다닌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것에 매인다고 족쇄가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윤득도 목자님이 부임하신 후 얼마 뒤에 서민선 형제님이 성령을 받으셨는데 저는 그때까지 성령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성령에 대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다만 성령 기도는 어렸을때부터 들었던 것이기에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때에는 “나는 왜 저런 기도가 안되지?” 하는 정도였습니다.
< 성령을 받음 >
그해 2009년 5월 30일 영은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2~3주 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마음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흘렀고, 기도하면 또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청주 영은회가 천안보다 1주일 전에 있었는데 거기서도 엄청 울었습니다. 이상하게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울게 되니 창피해서 기도할 때 휴지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청주 영은회에 가서도 많이 울었고, 천안 영은회가 시작되어서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안식일날에 어머님이 오셨는데
청주 이모님과 지금은 돌아가신 부산 감사 집사님이 오셔서 서로 반가워하며 기도하시는데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얼마나 슬프던지 ….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신 것인지 나를 위한 기도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슬펐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때가 처음 어머니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어머니랑 예배를 드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안식일날 제천으로 돌아가시고 안식일 마지막날 마음이 평온한데 너무 속이 울렁울렁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금식하게 되고 오후 예배 후 기도시간에 엄청 울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큰 기쁨과 눈물과 회개 등등 너무 감사하고 희한한 느낌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저를 바라보면 악하게 해꼬지는 안하지만 굉장히 메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 메마른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녀삼아 주시려 성령을 통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비를 내리어 촉촉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나서 굴곡은 있었지만 믿음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어머니의 이야기 >
그리고 저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2007년 대방교회에 다니시다가 아버지가 제천 조그만 여관을 사면서 제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여관은 허름했기에 주로 일하시는분들이 한달에 얼마주고 사용하는 달방으로 사용하는 숙소였습니다. 그곳에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해서 청주로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오전 예배드리고 오후에 오시곤 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제가 교회 나가고 나서 1년 정도 후부터 교회에 나가셨지만 잘 다니시지는 못하고 간간히 다니셨습니다. 10년 정도 그렇게 생활하셨는데 이제 힘이 많이 부치시고 해서 그곳을 팔려고 어머니와 생각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출이 크지 않아 여관을 내어놓아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장사도 점점 안되었습니다. 2년 정도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못 걸으신다는 연락을 받고 급한 마음에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못 걸으시니 큰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청소 빨래 아버지 돌보는 것 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한두달 후 아버지는 걸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정말 부모님이 여관일을 그만두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나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장사가 잘된다. 방이 다 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매매가 되어 천안으로 이사 오게 되어 천안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안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게 하셨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 와중에 천안에 살고 있는 큰누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 형제는 2남 3녀 중 제가 막내이고, 천안에는 제 큰누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큰누나는 많은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뼈에서 고름이 나오는 골수염을 앓아 다리를 절단하기 전까지 갔었고, 이후에도 나았던 다리가 또 재발 그리고 암으로 병원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마다 참운 자매와 제가 병문안 가서 위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였지만 그때마다 하는 말이 내 꼴을 봐라 내가 지금 교회 갈 때니? 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안와사가 와서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또 병문안을 가서 권면했습니다. “이제 교회 나와” 라고 했는데 또 말합니다. “야, 내꼴 봐라.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러면 제천여관 팔고 엄마가 내려오시면 그때나 다닐께!” 라고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내놓아 팔리지 않았기에 천안에 오신다는 생각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 팔렸을까요? 그 말을 한 다음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부모님이 제천을 정리하시고 천안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안에 오신 어머니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천안에 와서 잠깐 쉬다가 하신 일은 노인 일자리를 다니시게 되었는데요 일하신 후 얼마 뒤 거기서 함께 일하시는 어르신 3명을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조에 같이 일하는 2분이 있었는데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장로교, 한 분은 침례교에 다녔고,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였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교회 이야기를 하였고, 같이 일하시는 분에게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 받은 증거가 방언이라 이야기 하자 그렇게 말하니 한분이 “그럼 날날라 하는 교회여유?” 하며 질문하고 “그렇다” 하니 가보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한분은 가만히 있길래 “자네는 안가남” 하니 “저는 다녀유” 하니 어머님이 그럼 “구경도 못가남?” 하니 “구경이야 가쥬” 하면서 두 분이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 그 옆에 조에 있던 한 분도 호박죽 먹으러 오라 하는 말로 시작하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그 남편분까지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누나의 전도를 위해 기도를 하며 애를 썼습니다. 편지도 유언처럼 써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2년도에 교회 송년식사가 있었고 누나와 매형을 부르게 되었고 그 계기를 통해 매형과 큰누나 그리고 큰누나의 손자, 손녀들가 다음해 1월부터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고, 매형과 손자, 손녀들도 성령을 받고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전에 있는 이모님까지 전도되고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너무나 크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크신 은혜를 또다시 우리에게 주심을 알기에 어머니는 나머지 자녀들의 구원과 믿음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정에 주신 은혜와 주실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감사주!

<최병덕 형제 가족사진>
(뒷줄 우측에서 2번째가 최병덕 형제, 앞줄 가운데 계신 분이 이순복 모매(어머니), 그 오른쪽이 최귀미 자매(누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