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news_db

  • [교회행사]7.23~24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가 열렸어요!

    [교회행사]7.23~24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가 열렸어요!

    할렐루야, 2022년 여름 성경학교를 주관하여 주시고 무사히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7월23일~24일, 1박 2일간 대방교회와 동부교회 연합 여름성경학교가 열렸습니다.  두 교회가 연합하여 성경 인물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새 친구를 초대하여 전도 훈련의 기회로도 삼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학교 주제는 “하나님이 세례 요한을 부르셨어요(요 1:6)” 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요 1:6)”

    대주제를 두고 ‘3가지 소주제’를 세분화하여 아동부와 좀 더 깊은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소주제로는

    1.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어요 !
    2. 회개의 세례를 전하며 예수님을 드러냈어요!
    3.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어요!   라는 3가지였습니다.  

    총 25명의 아동부가 참석하였고, 이 중 3명의 친구는 코로나로 현장에서 함께 하진 못하였지만, 온라인(ZOOM)으로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온라인 참여이지만 이렇게 단체 사진도 함께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주)

    특별히, 이번 성경학교는 처음으로 ‘성찬례’를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성직자분들과 성도님들께서 합심하여 성찬례를 준비하여 주심으로 특별히 아동부만을 위한 성찬례가 순조로이 진행되었습니다. 성찬 떡과 포도주와 성찬 도구와 안수기도를 위해서 멀리서도 달려와 주셨습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성찬례를 더욱 거룩하고 경건케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아동부의 눈높이에서 성찬례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쉬운 말씀에 아동부의 집중도는 더욱 높아졌고, 성찬례 참여 빈도가 낮은 저학년 친구들에게 소중한 성찬례의 기회가 한 번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찬양의 기쁨은 유아반부터 고학년을 막론하고 가장 기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모여 찬양 드릴 수 있음이 아동부에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찬양의 열기는 기도회의 열기로도 이어졌습니다. 기도시간이 힘들 법도 한 아동부이지만 성령을 구하는 아동부의 기도는 진지하고 또 열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기도회 시간에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감사주! 하나님이 이 시간 우리와 함께해 주심을 아동부는 또 느끼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했을 것입니다.  (수령자 : 대방교회 / 4학년 김*율)  

    (주제 찬양 : 누구일까?누구일까?, 그분 따라가려네, 따라 따라, 주의 길을 따라갑니다, 주님 말씀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치를 수 없었던, 1박 2일의 짧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의 주제 찬양과 같이 우리 아동부 친구들의 1박  2일의 여정이 모두의 삶 속에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 [성도간증]임마누엘 나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김*주자매)

    [성도간증]임마누엘 나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김*주자매)

    임마누엘 나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잃은양이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서서히 교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가끔 교회에 나갔습니다. 지금에 와서 감사한 것은 그런데도 믿음 안에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신앙에 열의도 갈급함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안식일 대예배만 간신히 드리고 빠져나가기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 어쩌다 사청부 분반인 성경공부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즈음부터 저의 새로운 신앙생활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음을 깨달아 갔습니다. 또 내가 무릎 꿇고 회개하며 진심으로 주님 앞에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우리 부부의 신앙도 서서히 회복되어 갔습니다. (믿음 안에서의 결혼을 예비해 주셨음에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신앙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바짝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했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주시길 구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너무 죄스러웠고 하나님 뜻대로만 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계속 이어가던 중 2017년 겨울의 일입니다. 저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 첫째가 7살, 둘째가 5살, 막내는 1살이었습니다. 남편은 3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에 근무 중이었습니다. 첫째가 그 당시 유행하던 신종플루에 걸렸고, 이틀 뒤 둘째가 연이어 확진, 다음날은 막내가 확진되었습니다. 세 자녀 모두가 39도를 오르락내리락하였고 증상이 덜하고 더하고를 반복했습니다. 남편은 그날 야간근무로 집에 없었고 홀로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저녁을 먹이고 저녁 7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저에게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 뼈 마디마디 찾아왔습니다. 저 역시 신종플루에 걸렸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녁 9시가 되어 가까스로 아이들을 재우고 열을 재보니 37.9도였고 몸이 너무 아파서 저도 얼른 누워 자고 싶었습니다. 잠이 막 들려는 찰나에 갑자기 첫째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기침이 심한지 온몸이 들썩들썩하고 계속되는 기침에 아이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기침하는 아이도 걱정이고 남은 두 아이가 깰까 봐 걱정되어 첫째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저도 너무 힘들고 이 아이가 이렇게 기침하면 오늘 아이들과 저는 잠을 못 잡니다. 아이 아빠도 없어서 응급실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제발 이 아이의 기침을 멎게 해주세요.”

    얼마나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아이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누워서 잠을 자려는데 잠이 들 즈음 이번에는 둘째가 갑자기 기침을 시작했습니다. 둘째 역시 숨을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기침에 숨이 넘어갈 듯했습니다. 저는 다시 일어나 둘째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둘째의 기침이 멎고 고요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놓고도 아이들이 기침을 그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신기하고 “진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건가?”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고 잠이 들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이번에는 셋째가 같은 기침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셋째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기침이 멎고 방안이 고요해졌습니다. 그 고요함이 왜인지 알 수 없게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내 기도를 들어 주시는구나.” 나는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와 같은 죄인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대놓고 구하는 기도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내 몸이 힘들고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돼서야 나도 모르게 그런 기도를 한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해놓고도 기도의 응답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한참을 울며 기도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영사기를 돌리는 것처럼 화면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에서 나와 남편은 우리 아이 셋을 키우면서 아이 하나를 입양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예뻐서 우리는 그 아이를 자녀 삼기로 마음먹고 우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놀고 행복해할 때 그 아이는 조용히 내 눈치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고 내가 큰소리라도 내면 혼자 구석에서 자기가 뭐 잘못한 것은 없는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엇을 요구하거나 조르는 것도 없었고 주는 것에 만족하며 긴장하며 지냈습니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너도 그냥 내 자식인데.. 다른 아이들처럼 내 자식으로 키우려고 내가 데려온 것인데.. 그렇게 애쓰지 않고 내 자녀로서의 삶을 누려도 되는데.. ”가슴아파 하던 그때 그 아이가 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나에게 구하고 매달렸듯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래도 된다.”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면 이렇게까지 직접 보여주시고 체험하게 하시는지 그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나니 그렇게나 아팠던 몸이 개운해지고 열도 뚝 떨어졌습니다. 다음날 신종플루 검사 결과가 양성이었지만 아무런 증상도 없이 회복되었고, 그날 밤 이후 아이들도 별 증상이 없이 회복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년간 마음속에만 담아둔 경험이었지만 이날의 경험으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자녀로서 누리는 참 평안과 기쁨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도소개] 정*운자매와 3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정*운자매와 3형제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입을 환영합니다!

    정*운 자매는 올해 7월 동부교회에서 대방교회로 전입하였습니다. 씩씩하고 활발할 3형제와 함께 전입하게 되었습니다.

    삼 형제의 첫째(김*준. 6살/중앙)는 가장 활발하고 공룡과 곤충을 아주 좋아합니다.

    둘째(김*준. 4살/우측)는 셋 중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셋 중에 가장 차분한 성격이랍니다.

    셋째(김*준. 3살/좌측)는 키가 커서 오해를 받지만, 알고 보면 아직 3살이고 기저귀도 떼기 전이랍니다.

    정*운 자매는 어린 시절 어머니(동부교회)를 따라 아주 가끔 참예수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10번 중 1번 정도, 몇 년에 한 번 정도 출석을 했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몇 년 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시기가 찾아왔을 때 참예수교회에 나왔었던 시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 발로 나아왔던 그때 정*운 자매는 세례와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연년생으로 셋째를 출산하게 되었고 경기도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교회 출석이 어려웠습니다. 최근 다시 이사하게 되면서 대방교회로 네 식구가 전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정*운 자매는 여신도회 중 막내 신도회인 ‘에스더회’ 소속으로 자매님들과 함께 교제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연약한 믿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안식일은 소중하고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삼 형제는 아동부의 막내 반인 ‘사랑반’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아직 삼 형제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엄마인 정*운 자매는 우리 삼 형제가 오랜시간 헤매지 않고 하나님을 빨리 만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정*운 자매와 삼 형제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 [기관소개-아동부] 대방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아동부] 대방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1:22-23)』

     

    할렐루야!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020년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라는 불청객으로 우리의 예배가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는 답답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아셨기에 예배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와중에도 유튜브 등을 통하여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예비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세상으로 독립할 아이들이 신앙을 곧고 올바르게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앞서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아이들과 예배를 계속해서 드릴 수 있을지 막막했었고 예배가 예배답지 않고 TV 시청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예배도 기쁘게 받아 주실까? 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거라는 믿음으로 아동부 예배를 한주도 쉬지 않았습니다. 종교시설 인원 제한 등의 제한이 시작되면서 바로 각 가정에서 유튜브를 통해 예배드릴 수 있게 온라인예배로 전환하였고, 분반예배 또한 줌(ZOOM)으로 진행하여 아이들과의 소통을 지속하였습니다.

    [사진1. 대방교회 아동부 전체와 교사]

    [사진1. 대방교회 아동부 전체와 교사]

     

    코로나 정부 방역 지침이 조금 완화되었을 때는 최소인원이 현장 예배를 드리며 온라인예배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일에 교회사역을 맡은 담당자(부모)의 자녀들이 현장에 나와 대면 예배에 참석하였고 이를 유튜브로 연결하여 현장과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분반예배 또한 2년 동안 꾸준히 온라인 줌(ZOOM)을 병행하여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같은 반 아이들의 소속감을 잃지 않게 노력하였습니다. 매주 함께 나눴던 간식도 코로나로 인해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프티콘 선물로 대체하는 등 코로나 시기에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온라인 줌(ZOOM)을 통해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현장의 예배를 잊지 않고 기억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는 아이들이 교회로 모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게 되었고 방역 지침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점점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동부 예배가 한주도 쉬지 않고 상황에 맞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와 가정에서 힘쓰는 모습들은 아이들이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2. 열매반(6,5학년) / 믿음반(4학년)]

    [사진2. 열매반(6,5학년) / 믿음반(4학년)]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식 무릎을 굻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6:10)』

     

    현재 아동부는 교회와 성도님들의 배려로 안식일 오전 예배를 대예배당 맨 앞자리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게 된 모습은 달라졌지만 코로나가 있기 전으로 돌아간 듯 돌아와 있습니다. 현재는 아동부의 저녁 예배 출석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새벽 축구 모임에도 아동부의 1/3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축구가 끝나고 난 후에는 교회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사진3. 소망반(1,3학년) / 사랑반(유치,유아반)]

    [사진3. 소망반(1,3학년) / 사랑반(유치,유아반)]

     

    코로나로 예배를 드리기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동부는 아직 어리지만, 하나님께서 어린 마음에도 예배의 갈급함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코로나는 예배와 신앙을 위협하였지만, 아동부는 믿음 안에서 그만큼 성장하였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위기는 우리에게 또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동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여 또 극복하리라고 믿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복음메시지] 분노 (마5:21-26)

    [말씀제목] 분노 (마5:21-26)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받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살인하면 그 결과는 사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살인하면 그 사람이 자기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엄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제자들과 청중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 하실 때, 그들은 이것이 엄중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는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하나님 앞에 살인한 일이 없으니, 하나님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의롭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의 참 뜻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주신 당사자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계명의 참 뜻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 마음은 무엇인가요? 이 계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어떤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시는가요?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이란, 사람을 죽인 자가 받는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노하면 살인자가 받는 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욕설하는 자는 공회의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모독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즉 살인자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분노’에는 ‘뒤모스(θυμός​​​)’와 ‘오르게(ὀργή​​​)’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뒤모스’란, 금방 붙었다 사그라드는 불입니다. 즉,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분노입니다. 욱하다가도 금방 사그라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분노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분노는 ‘오르게’입니다.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닙니다.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분과 죄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품는 것입니다. ‘오르게’는 ‘뒤모스’와는 달리,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지속적인 분노를 가지고 악의를 가지고 남을 해치려 하는 미움을 품는 것이 ‘오르게’입니다. 분노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까지입니다. 새로운 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분노를 품고 버리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즉, 분을 내어도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뒤모스와 같은 분노를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분노를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가인이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죄의 소원은 그에게 있으나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죄가 되도록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악의적인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까닭은, 살인이 노하고 미워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에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 중 분노의 창고가 있습니다. 그 창고에 두고두고 분노를 쌓아갑니다. 이 분노를 쌓아 증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것이 증오로 바뀐 후에는 말이 변합니다. 험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눈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말이 좋게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죄입니다. 분노의 창고에 분노가 쌓이면, 상대가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폭발하게 됩니다. 남편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작은 일에도, 분노를 쌓아 증오를 품게 된 아내는 폭발하게 되는 것입이다. 이러한 분노의 마음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근거가 됩니다.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미련한 놈’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똥멍청이’, ‘바보같은 놈’, ‘골빈 놈’, ‘머리 빈 깡통’ 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쌓여 증오를 품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입니다. 분노를 쌓는 사람을 살인자로 규정하시는 말씀 앞에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우리가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러한 분노를 품은 사람이 살인자입니다.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80%의 부부가 마음 속의 분노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툰다면, 마음 속에 가만히 숨겨놓은 분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80%가 적중합니다. 문제의 뿌리가 그 분노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말씀과 같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면, 우리는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을 몇 번씩 죽이고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 분노는 남뿐 아니라 자기도 죽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분노하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서로 분노를 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예배 전에 그 감정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그 감정을 먼저 처리하고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노를 놔둬서는 안됩니다.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 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스스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해석을 듣기 전에는, 우리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비추어보니, 살인자는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자기는 남보다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의로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담긴 계명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뻔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영적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계명을 바르게 이해하면, 계명은 살고 우리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분노가 가득 찼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노 창고 안에 있는 상처 분노, 시기 분노, 실망 분노, 좌절 분노, 자존심 상처 분노, 애정결핍 분노 등을 확인하여 창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분노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많이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이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야 합니다.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께서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덧입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뒤에 숨어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옷입고 그 옷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죄로 얼룩진 옷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앞에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회개하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날 때는 화도 내고, 용서 받기도 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능력이 없으니, 이런 삶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예수님만 믿자, 예수님의 능력만 믿자, 그리고 하루에 열 두 번이라도 형제를 미워해도 어쩔 수 없으니 개의치 말자,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면 된다’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요구가 있으십니다. 주 안에서 살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주 앞에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작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를 잃으면, 우리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가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반드시 이루려 하는 목표를 놓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품을 때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해주셨는데, 왜 나는 분노 가운데서 살아가는지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넷째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몰랐던 구약 시대 사람들은, 형제에 대한 분노를 느껴도 처리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도우미입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는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내 곁에서 내 연약한 것을 돕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까닭은, 내 속의 연약한 점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즉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시고, 과거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작은 예수로 살 수 있다고,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하여 분노를 가질지라도 그 분노가 쌓이지 않도록,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이 있으므로 성령에 의지해야만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지하여 매일 기도하면,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용서하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잘 관리해서 죄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분노가 창고에 쌓이게 되면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천국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내 믿음이 깨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분노의 창고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고 성령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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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