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세족례

  • [교회 행사] 안양교회 세례식

    [교회 행사] 안양교회 세례식

    지난 9월 22일 일요일, 안양예술공원 계곡에서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비가 온 뒤라 물도 충분했고 날씨도 맑고 화창했습니다. 작년에 세례자가 없었던 터라 올해 세례식이 더욱 설레고 감사했습니다. 어린 아기부터 고령의 모친까지 총 7명의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오랫동안 안양교회가 전도를 위해 힘쓰고 기도한 덕분에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70여 명의 성도님이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사람들도 없고 주변에 나무들이 둘러싸여 세례식을 하기엔 더할 나 위 없이 좋았습니다.

    세례식이 순조롭게 진행되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고령의 조갑순 모친께서 물속에 완전히 잠기지 못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무서워하셔서 그러시나 했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잠겨지질 않았습니다. 모친께서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물속에 오래 계셔서 춥고 힘들어하셨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고령이어서 이번에 세례를 받지 못하면 혹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온 성도가 간절히 성령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할렐루야! 기도 후, 모친께서 드디어 물에 완전히 잠겨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성도들의 합심 기도에 사단도 더 이상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김명숙 자매님께서 세례 후 허리가 낫는 은혜도 받으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교회에 돌아와 발을 씻는 세족례를 거행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따라 세족례를 거행했습니다. 이어서 성도님들의 사랑이 담긴 축하 찬양과 축하 메시지가 있었고 맛있는 다과가 함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례식을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귀한 영혼을 보시고 하늘에서도 큰 기쁨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거듭난 새 영혼들이 더욱 하나님을 깨닫고 주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세례식 영상(Youtube 클릭)

     

    글| 백현 자매

  •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 (대방교회 김*성 모친)

     

     김*자 내 동생은 적잖이 15년은 나를 아주 귀찮게 굴었을 거랍니다. 끈질기게 자신이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니자고, 세례를 받으라고 쫒아다니더란 말입니다. 그런 동생에게 지지 않고 나는 약을 올렸습니다. 참예수교회에 가겠다 했다, 안 가겠다 했다. 생선 굽듯 마음을 숱하게 뒤 짚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늙은이가 얼마나 얄밉고 약이 올랐을까 싶은데. 실상은 나이 많은 언니가 세례도 (죄사함) 받지 못하고 떠날까 싶어 어지간히 애간장이 탔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마음 바꾸기 끝에 참예수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 때였습니다. 2023년 봄. 미국에 사는 조카가(동생의 딸. 김*냥 자매)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내용은 끈질긴 내 동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참예수교회에서 같이 믿음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했습니다. 조카의 권유에는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골수분자인 또 다른 동생마저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큰언니가 *자언니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나가시면 되겠네요!” 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권면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선언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참예수교회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 내가 그 참예수교회에 다니려면 너희 동네로 이사부터 가야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85세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무려 3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턱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카는 미국에서 나올 때 부터 가족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더랍니다.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했다 합니다. 조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니, 내 마음이 그리 보드랍게 녹아 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강력한 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른 세례를 받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기 무섭게 어느날 동생은 교회 목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자님이 오셔서 세례에 관하여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찬송도 부르고, 안수 기도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모두 가고 나서 목자님이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통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적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찾아 주셨던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 거니?” 동생은 여기저기 말씀 구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는 권사 노릇을 수십 년을 하고서도 그 말씀 하나도 못 찾아요?” 네.. 사실 나는 분당의 큰 장로교회를 30년이나 다닌 권사였습니다. 네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동생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니, 읽을수록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불렀던 찬송가가 뭐였니? 자녀들과 여행 중이었던 동생은 자녀들을 시켜서 그 찬송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목자님이 안수를 하고 가신 그날 밤부터 내가 아주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지금까지도 평안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2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서 매일 밤 시커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찾아왔습니다. 매일 밤 그렇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 했지요. 그 고통을 듣고서 전에 다니던 큰 교회의 부목사들이 와서 조언을 해주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날 목자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부터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거예요! 2년간 매일 밤이 무서웠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도통 신기한 이 교회를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를 이기는 교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는 마귀의 권세와 이적을 주신 하나님

     이사 날짜를 잡고서는 하루하루 이사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꾸 방해가 생겼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 세례를 먼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받는 날 급작스럽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세례받는 것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랬다간 내 동생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교회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면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지 뭐에요. 동생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또 바꾸지는 않을까 걱정 하면서 말이죠. 동생이 나를 보고서는 방긋 했습니다. 세례 터로 출발하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교회 안에 들어가 얼마나 신이 나게 깔깔거렸는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경험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평생 수족냉증이 너무도 심해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고 살아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에 세례를 받고 나서 수족냉증이 그렇게 좋아졌지 뭐에요. 수면양말 벗어 버렸습니다. 발가락에만 시림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는 수면양말 없이도 살겠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신어야겠지만요. 아주 신기해요 아주!

     사실 저는 파킨슨병을 15년 앓아 왔습니다. 2년 전 돌아가신 남편도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은 통증이 아주 극심한 병이랍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엉덩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마구 베는 것 같은 말도 못할 통증이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통증 주사는 총 7대를 맞는데 그 통증 주사도 아주 고역스러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를 정도에요. 세례를 받고서 얼마 후 병원에 통증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례 병원으로 갔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앞에 가서 번쩍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나 엉덩이가 안 아파요! 어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요!” 오랫동안 내 병과를 지켜보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아 그러면 주사를 맞으실 필요가 없지요!” 했습니다. 

     그날 병원까지 가서는 주사를 안 맞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 신기해지는 거지 뭐에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도 다 겪어 본다며 이 신기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직 제 말을 못 믿는 눈치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있을 텐데. 믿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족냉증이 아니라 굽은 허리를 펴주셨다면 우리 애들이 단번에 믿었을 건데 아쉽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고 얼마 후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세족례, 성찬례에도 참예 했습니다. 예식이 참 길었습니다. 자꾸 일어서고 앉고 늙은이라 힘이 들었지만,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성령도 빨리 통과(수령)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직 통과(수령)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라서 영은회를 마치고 동생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또다시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아주 힘이 세진 나는 동생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 뿐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동생의 목에 상처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우리교회 김권사가 그러는데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래!” 정말이지 마귀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목자님이 또 오셔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렁찬 고함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평안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 세족례)

    무슨 근심 있을까

     이사 날짜를 잡고 이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니, 교회 가는 날까지 이 잠깐은 왜 이렇게 길고 시간이 안 가는지요. 시간은 느렸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정된 날짜에(23년 11월)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교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첫 안식일 출석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급히 와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안식일 교회로 오는 길에 또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나가야 하는데 도통 교회 가는 길이 이렇게도 열리지를 않으니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폐가 많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휴 폐렴이면 어떻고, 더 안 좋으면 어떻겠어요. 늙은 나이에 나를 불러 주셨는데 무엇이 근심입니까. 일단 퇴원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서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지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쁩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말씀 듣는 것도 기쁨이요, 안수기도도 기쁨이에요. 그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큰 병원에서 결과를 들었지요. 결과는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분명 많이 좋지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평안키만 합니다. 할렐루야!

     

    늙은 종의 마지막 사명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거동도 힘들고, 병도 든 늙은이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의 식구들을 여기 참예수교회 참 진리 안으로 이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이 늙은 종을 불러주신 이유는 남은 가족을 인도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셨을 것 아닙니까? 내가 우리 8남매의 첫째에요. 남매 중에 5번째로 참예수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이제 남은 3명은 내가 끌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천주교 골수분자라서요.

     우리 아들은 세례식 그날이 무슨 영화에(아바타) 나오는 종족 의식 같았다고, 신비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다른 동생은 내가 세례를 받고 올라오는 순간에 아주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침은 “할렐루야!”였어요.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실 섭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세가 늦은 나이 80세에 민족의 수장이 되었다는데, 나도 늦은 나이 85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수장으로써 형제들과 자녀들을 이곳 참예수교회 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성령 충만함과 사명을 다할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늙은 종으로서 남은 생에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갈렵니다.

    (출애굽기 3장 11-12절)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간증의 당사자인 김*성 모친과 동생 김*자 모친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족례는 주님과 상관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는 성례이며 세례(침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족례를 일차 행하며 신자들 상호간의 세족례는 필요시에 시행할 수 있음을 믿는다.

    교회가 담고 있는 교리에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완전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 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세례, 성찬례, 세족례입니다. 그 가운데 세족례는 발을 씻기는 성례로 십자가 사건 직전 유월절 만찬에서 주님이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본회에서는 이를 하나의 성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족례가 하나의 성례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우리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구원으로 인도할 귀중한 교훈들은 무엇일까요?

    1) 세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만듭니다.

    세족례가 교회에서 하나의 성례로 성립되는 근거 중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중에 나타난 ‘상관’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은 천국의 기업, 천국의 몫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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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족례에는 사랑,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이 있습니다.

    세족례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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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insert page=’belief-6-3′ display=’link’]

  • 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의미에서 반드시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의 성직자로부터 한 차례 세족례를 받아야 하고 또 성도 상호간에 갈등과 불화의 경우 상호 합의가 이루어진 가운데 세족례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족례를 통해서 불화와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먼저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때로는 세족례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화하고 분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세족례를 성례로 주신 주님께 오히려 매우 송구스러운 일이며 세족례 시행하여 화목을 시도한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족례를 시행하는 것보다 세족례의 정신을 더 높여서 평소 타인과 불화하지 않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도 상호간에 세족례를 시행하는 것은 대화와 이해로도 해결되지 않고 상호간의 관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상호 발을 씻겨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옳습니다.

  • 제6항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6항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족례는 주님과 상관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는 성례이며 세례(침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족례를 일차 행하며 신자들 상호간의 세족례는 필요시에 시행할 수 있음을 믿는다.

    교회가 담고 있는 교리에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완전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 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세례, 성찬례, 세족례입니다. 그 가운데 세족례는 발을 씻기는 성례로 십자가 사건 직전 유월절 만찬에서 주님이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본회에서는 이를 하나의 성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족례가 하나의 성례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우리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구원으로 인도할 귀중한 교훈들은 무엇일까요?

     

    1)세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만듭니다.

    세족례가 교회에서 하나의 성례로 성립되는 근거 중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중에 나타난 ‘상관’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서 ‘상관’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메로스’(μέρος)로써 ‘부분’ ‘조각’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상관을 맺는다’는 뜻은 예수께서 주시는 ‘몫을 받는다’ 또는 ‘분깃을 받는다’는 상속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은 천국의 기업, 천국의 몫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이렇게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태도가 정반대로 돌변합니다. 조금 전까지 ‘절대로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거절하더니 이제는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태도가 바뀐 이유가 예수님의 말씀이 구원과 관련된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3:10-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또 다른 근거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거절에 대해 답변하시는 내용 가운데 들어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서 ‘목욕하는 것’은 무엇이며 ‘발씻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석가들은 ‘목욕하는 것’이란 ‘물세례’를 가리킨다고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발 씻는 것’은 분명 ‘세족’을 가리킵니다. 주목할 점은 목욕하는 것이 발씻는 것과 병행하여 서술된 점입니다. 그런데 병렬 관계는 곧 성례와 성례의 관계여야 그러한 서술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물세례가 하나의 성례인 것처럼 세족례도 하나의 성례라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세 번째 근거는 요 13:15에서 예수님이 ‘내가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 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긴 행위가 제자들도 장차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고 밝히십니다.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것처럼 제자들은 장래에 발씻기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근거로 최후 만찬이 있던 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행하신 사건은 일회적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교회가 마땅히 성례로 수용해야 하는 것임을 반영합니다. 본회에서는 예수님이 세우신대로 세족례를 성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교훈은 무엇일까요?

     

    2)세족례에는 사랑,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이 있습니다.

    세족례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오늘날 나는 그 교훈을 발견하고 세족례를 받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그 뜻을 깊이 새기고 이웃들에게 주님을 닮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러면 구체적으로 세족례를 통해 실천해야 하는 주님을 닮은 신앙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성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족례를 행하실 무렵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섬김의 왕이 되시고자 하셨지만 제자들은 주님이 로마 제국의 지배로부터 유대 민족을 독립시켜줄 정치적인 임금으로 즉위할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를 따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 곁에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에 모아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매우 가슴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배웠지만 예수님의 정신과 모범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 주님이 세 번이나 십자가 수난에 대해서 예언했건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주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들의 요청에 대해 분노를 발했습니다. 분노를 느낀다는 것은 그들도 똑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서로 반목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는 어리석고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둘째, 생활 속에서 자신의 성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땅에 발을 디디고 생활하므로 신체 가운데 가장 쉽게 오염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발입니다. 그래서 매일 씻고 관리하지 않으면 위생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성도가 완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삶 속에서 세속의 여러 가지 부정하고 불결한 것들에 유혹받을 수 있고 부정한 생각을 하고 불결한 행동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근원적으로 범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자신을 영적으로 깨끗하게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일 자신의 발을 닦고 관리하듯이 성도는 매일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혹시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깨닫거나 범죄한 사실이 있다면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성결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을 때 우리의 영혼은 점점 하나님을 닮은 아름다운 형상의 성도로 점점 변화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족례는 이미 물세례는 받았으나 불완전한 성도가 어떻게 성결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셋째, 겸손하게 낮아져서 봉사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유대 사회에서 외출했던 어떤 사람이 귀가하면 그 발을 닦아주는 일은 그 가정의 종 가운데 가장 비천한 종이 담당하는 몫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만찬을 가지실 무렵 ‘누가 높으냐’하는 문제로 서로 반목하는 분위기 속에 있던 제자들은 결코 동료들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먼저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주’와 ‘선생’이신 예수님이 자신들의 발을 씻기려고 하실 때 제자들은 얼마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런 행위가 반목하는 분위기의 제자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을지 가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신분이 높은 자가 낮은 자의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훈의 가르침대로 그분 자신이 세족례를 통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이처럼 세족례 안에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내가 남보다 낮아져 겸손히 봉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넷째, 용납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열 두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이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패륜의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스승을 팔려는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마음을 품은 유다를 돌이키시려고 간접적으로 수차례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스승을 팔려는 악한 생각을 품었던 가룟 유다를 겨냥한 말씀입니다. 또 만찬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도 역시 가룟 유다를 겨냥한 지적입니다. 가룟 유다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아고 계셨지? 아! 내가 죄를 지었구나! 스승님께 용서를 구하자’라고 깨닫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은 최후로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가룟 유다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겨냥하여 수차례 돌이키도록 수차례 말씀하시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그런 제자의 발을 씻기셨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평소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교훈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가르침대로 유다의 발을 씻기시는 행동을 통해서 원수의 죄를 용서하시는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세족례를 통해서 그 안에 담긴 주님의 용서와 관용의 정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와의 관계 속에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로 성도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해소될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세족례를 통해 주님의 정신을 되새기며 서로 화해와 용서를 도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3)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의미에서 반드시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의 성직자로부터 한 차례 세족례를 받아야 하고 또 성도 상호간에 갈등과 불화의 경우 상호 합의가 이루어진 가운데 세족례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족례를 통해서 불화와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먼저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때로는 세족례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화하고 분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세족례를 성례로 주신 주님께 오히려 매우 송구스러운 일이며 세족례 시행하여 화목을 시도한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족례를 시행하는 것보다 세족례의 정신을 더 높여서 평소 타인과 불화하지 않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도 상호간에 세족례를 시행하는 것은 대화와 이해로도 해결되지 않고 상호간의 관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상호 발을 씻겨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