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세례

  •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대방교회 성도님들(수세자)을 소개합니다.

    지난 10월 2일은  대방교회 가을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200일도 되지 않은 영유아(박*진 아기)부터 70대의 어르신(홍*유 형제님)까지 총 6명의 형제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얻고 성도로 거듭났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성도님들께 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주!

    세례식 날은 빗방울이 조금 오락가락 이는 날씨였습니다. 더군다나 쌀쌀한 날씨에 너무 춥지 않을까 세례식 장소까지 오는 내내 모두가 걱정과 염려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마음을 받아 주셨기에 다행히 세례식은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10월 2일 (일)  대방교회 하반기 세례식 / 106명 참석]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가을 세례식에는 무려 106명의 성도님들이 참석하셔서 죄사함을 얻는 형제님들을 축하하며, 성도된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아동부 아이들부터 최고어른 신도회까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 안에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022년 10월 2일 (일)  대방교회 하반기 세례식 / 수세자와 가족들]

    세례식 거행 전 단체 사진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얗고 예쁜 (목욕)가운을 입었답니다. 준비해 주신 임원분들의 손길의 섬세함이 참 감사합니다. 특이하게도 이번 수세자 6명 모두가 형제님이었답니다.

    홍*유(남 73세/장사열형제님께서 전도), 

    김*후(남 3세/김태현·김미희부부 둘째자녀),

    박*진(남 1세 ·박형욱·김은미 부부 자녀),

    김*준(남 6세 ·정다운 자매 첫째자녀),

    김*준(남 4세 ·정다운 자매 둘째자녀),

    김*준(남 3세 ·정다운 자매 셋째자녀)

     

    [수세자 : 홍*유형제님 / 장*열형제님께서 전도]

    홍*유 형제님을 전도하신 장*열 형제님은(좌측사진 : 홍*유형제/장*열형제) 홍*유형제님의 성품에 반해 꼭 전도를 하고 싶으셨답니다. 한동네 이웃이었던 두분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만난 계기로 인연을 키우셨다고 합니다. 장*열 형제님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신 후에도 홍*유형제님을 마음에 품고 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2019년쯤 교회에 나오시길 권유해 드렸지만, 코로나로 인해 나오기를 미루셨던 홍경유형제님께서는 2022년부터는 교회에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감사주! 

    두 분은 목자님과 세례와 참예수교회 기본신앙을 7회에 거쳐 공부 하셨고, 두 분 모두 한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배우셨습니다. 홍*유형제님의 그 열의와 뜨거운 마음이 곧(성령) 수령까지 이어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수세자 : 박*진 / 박*욱·김*미 부부 자녀]

    박*욱형제(다니엘회)와 김*미자매(에스더회)는 올해 5월 초 서진이를 득남하게 되었습니다. *진이는 태어난 지 153일만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서진이는 대방교회에서 가장 어린 영유아랍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이쁨과 귀여움을 한 몸에 듬뿍 받는 서진입니다. *진이의 세례식을 축하하러 멀리 계신 친가(천안), 외가(청주, 신학원) 모든 식구가 새벽부터 총출동하셨습니다. 

    온 식구가 *진이가 죄사함을 받고 성도로 거듭남을 귀하고 귀히 여기심이 하나님 앞에 이미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계속해서 서진이가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로 성장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수세자 : 김*후 / 김*현·김*희 부부 둘째자녀]

    *후는 교회와 먼 거리로 이사간 후 태어났고, 곧이어 코로나 시기를 겪었습니다. 배 속에 있을 때 후로 태어나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후를 이렇게 귀한 시간으로 만날 수 있어서 에스더회 이모들은 그저 감동이었답니다. *후는 이제 벌써 혼자 앉아 세족례를 받을 정도로 의젓해졌습니다. 여러 여건상 이번 세례식에 참여하지 못할 상황에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는 *후의 세례식을 도우셨습니다. 아빠인 김*현 형제는 두 아이를 혼자 데려와 세례 교육을 받았고, 세족례도 받게 하였습니다. 되지 않을 것 같은 그 상황도 이겨내 주신, 가능하다는 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형편을 모두 아시는 주님을 깨닫습니다. *후와 *후 가정에 하나님을 향한 더욱 신실한 마음과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수세자 : 김*준(첫째), 김*준(둘째), 김*준(셋째) / 정*운 자매 자녀들]

    정*운 자매는 교회로 다시 돌아와 3형제를 방주에 태웠습니다. 정*운자매가 속한 신도회(에스더회)에서는 ‘믿음의 사람 노아’의 방주에 대한 설교말씀을 들었을 때, 정*운 자매가 3형제를 방주에 태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많이도 울었답니다. 함께 교제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3형제를 구원하는 그 역사 속에 신도회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 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습니다. *운 자매는 하나님을 등지며 지나온 시간에도 등불을 밝혀주셨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돌아오려 했을 때, 세 자녀 모두가 함께 주 앞에 나아올 수 있게 역사해 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3형제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점차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 가길 소망합니다.

     

    [축복송 : 신도회 에스더회와 다니엘회 / 기타반주자 사청부 최*준형제]

    막내 신도회(에스더회, 다니엘회)에서는 수세자 성도님들을 위한 축복송을 준비했습니다. 기타 반주는 사청부의 최*준 형제가 도왔습니다. 함께 축복을 준비하는 시간도, 이날 축복하는 시간도, 이 모든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였습니다. 

    이날 6명의 형제님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어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어 다시 살았듯. 앞으로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 [성도 소개] 박재*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박재*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박재*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박재희 자매님은 서부교회 명숙 자매님의 전도로 안양교회로 인도되셨습니다. 중국에서 10년간 계실 때 친분을 맺으셨고 이후에 두 분 모두 한국에 돌아오게 되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 박재* 자매님이 파킨슨병으로 힘들어 하시고 교회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숙 자매님은 사전에 안양교회 목자님과 연락을 한 후 이 분을 모시고 교회로 방문하셨습니다. 사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이 분을 전도하고 싶으셔서 당시 한국에서 중국 동북3성 선교 지원을 위해 전홍희 목자님과 지금의 안양교회 담임 목자님이신 장종규 목자님이 심방 오실 때도 함께 오셔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박재* 자매님은 올해 57세의 나이로 비교적 젊은 나이인 53세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고 우울증도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활발하신 성격이셨으나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이후로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어느 때 보다도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가 필요했던 자매님은 5월 5일 교회 첫 방문 때 기도하시며 많이 우셨고 우리 교회를 나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후로 친구 분인 명숙 자매님은 매주 안양교회로 오셔서 박자매님을 챙기셨고 안양교회 성도분들도 사랑으로 대하며 계속해서 이 분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박재* 자매님은 안식일 교회 가는 것이 기다려진다고 하시며 매주 안식일 예배와 기본신앙 성경공부를 빠짐없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8월 21일에는 안양 교회 많은 성도들의 축하속에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몸은 여전히 파킨슨 병으로 힘든 상태에 있지만 주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셔서 영육간에 강건함 주시기를 교회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박재희 자매님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던 주님께서 앞으로도 더욱 은혜 주실 것을 바라며 모든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글| 백현 자매

     

  • [성도 소개] 청주교회 세례 3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청주교회 세례 3형제를 소개합니다!

    2022년 5월 1일.
    청주교회에 새로운 세 명의 새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김성용, 김진범,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세 형제님 모두 한 가정의 멋지고 듬직한 가장이신데요, 정말 신기한 건 이 세 분 모두 배우자 분들과 자녀들이 먼저 세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거에요. 먼저 거듭난 가족들과 청주교회 성도님들의 사랑과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 세 분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세례를 받겠다 다짐하게 되었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과 동시에 청주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쁜 시간이지만, 이제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 형제님들이 걸어가는 신앙의 길에 분명 시험과 고난이 있겠지만, 이제 세 형제님들과 함께 해주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세 분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성령을 받고 더욱 믿음 안에서 굳건해져서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을 섬기길 소망합니다.

     

    글쓴이 : 박은우 형제

  •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례(침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성례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베풀며 세례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고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함을 믿는다.

    세례(침례)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중생(거듭남)합니다.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대속(대신 값을 치름)하려면 인간의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흠없이 창조하신 것처럼 아무 흠이 없는 존재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7)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5)

    세례는 이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20:22-23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22-23)

    세례는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적 올바른 세례는 무엇일까요?

    첫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마28:19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란 사실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 곧 예수. 아들의 이름, 곧 예수. 성령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0:48)

    둘째, 흐르는 물에서 전신이 물에 잠겨야 합니다.

    본래 세례는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였고, 세례의 문자적인 의미도 또한 ‘물에 잠기다’라는 헬라어 동사 ‘밥티조’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이디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을 때, ‘물에서 올라왔다’는 표현은 이런 침례가 시행된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6)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9)

    셋째,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죄인의 마땅한 태도이며 그분의 죽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하시는 장면에서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9:30). 세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성례라면 마땅히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을 본받는 형태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머리를 숙이고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30)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5)

  • 세례(침례)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중생(거듭남)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이후에 태어나는 후손들이 모두 ‘원죄’(죄를 짓는 그릇된 성향)를 가지고 태어나 일생동안 죄를 짓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 사망에 이르는 저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5:12-14)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인간이 이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생명으로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범죄함 때문에 사망이 찾아왔으므로 범죄의 대가를 치르고 죄사함을 받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대속(대신 값을 치름)하려면 인간의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 등 세상의 어떤 동물이라도, 또 아무리 많은 수 동물이라도 한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생명만이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흠없이 창조하신 것처럼 아무 흠이 없는 존재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새 차를 파손했으면 피해자에게 새 차로 교환해 주어야지 중고차로 대신 보상하겠다고 말한다면 피해자는 이 제안을 당연히 거절할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인간의 대속을 위해서 두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여느 인간과는 달리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원죄도 없고 아무런 흠결이 없는 인간입니다.

    (벧전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없고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는 없으시니라

     

    인간이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기 위해서 흠없는 생명을 대신 제물로 드려야 하는 상황은 마치 어떤 노인이 돈이 없어서 빵을 훔쳤는데 재판관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죄값을 치러야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벌금을 낼 수 있습니까? 그 돈이 있었다면 이미 빵을 훔치지 않고 사먹었겠지요. 그렇다면 절도죄로 체포되어 재판받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 딜레마에 빠진 것이 바로 인간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빠진 인간들을 위해 대신 죄값을 치르신 분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21:24-25)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흠없는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흠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 제물로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대속(대신 값을 치르고 구함)하신 분과 관계를 맺어야합니다. 그 관계란 십자가의 죽음의 효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개인에게 미치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받으신 것과 같은 세례(침례. 물에 잠기는 성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세례를 통해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다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 올바른 세례를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모순이요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2:41) 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믿음으로 순종하고 세례를 받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는 행위가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표현이며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는 자(세례 받는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을 가리켜 ‘칭의’(의롭다고 선언해 줌)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옷이 더럽혀진 사람이 새로운 ‘흰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처럼, 야곱이 형 ‘에서’의 옷을 입고 대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은 것처럼 세례를 받으면 자기 죄의 수치를 가릴 수 있고 하나님께 복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침례)는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와야 하는데 이것은 정확히 세례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처럼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대신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세례를 통해 그분과 연합하면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성례입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제4항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4항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례(침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성례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베풀며 세례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고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함을 믿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도록 보내신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명대로 물로 세례를 주는 자기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 항상 세례라는 단어가 붙어서 세례 요한, 즉 ‘세례자’(Baptist 세례주는 사람) 요한이라고 구별하여 호칭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세례는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기원했고 그분의 명령을 받은 세례 요한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침례)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중생(거듭남)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이후에 태어나는 후손들이 모두 ‘원죄’(죄를 짓는 그릇된 성향)를 가지고 태어나 일생동안 죄를 짓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 사망에 이르는 저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5:12-14)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인간이 이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생명으로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범죄함 때문에 사망이 찾아왔으므로 범죄의 대가를 치르고 죄사함을 받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대속(대신 값을 치름)하려면 인간의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 등 세상의 어떤 동물이라도, 또 아무리 많은 수 동물이라도 한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생명만이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흠없이 창조하신 것처럼 아무 흠이 없는 존재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새 차를 파손했으면 피해자에게 새 차로 교환해 주어야지 중고차로 대신 보상하겠다고 말한다면 피해자는 이 제안을 당연히 거절할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인간의 대속을 위해서 두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여느 인간과는 달리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원죄도 없고 아무런 흠결이 없는 인간입니다.

    (벧전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없고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는 없으시니라

     

    인간이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기 위해서 흠없는 생명을 대신 제물로 드려야 하는 상황은 마치 어떤 노인이 돈이 없어서 빵을 훔쳤는데 재판관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죄값을 치러야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벌금을 낼 수 있습니까? 그 돈이 있었다면 이미 빵을 훔치지 않고 사먹었겠지요. 그렇다면 절도죄로 체포되어 재판받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 딜레마에 빠진 것이 바로 인간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빠진 인간들을 위해 대신 죄값을 치르신 분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21:24-25)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흠없는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흠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 제물로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대속(대신 값을 치르고 구함)하신 분과 관계를 맺어야합니다. 그 관계란 십자가의 죽음의 효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개인에게 미치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받으신 것과 같은 세례(침례. 물에 잠기는 성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세례를 통해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다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 올바른 세례를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모순이요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2:41) 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믿음으로 순종하고 세례를 받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는 행위가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표현이며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는 자(세례 받는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을 가리켜 ‘칭의’(의롭다고 선언해 줌)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옷이 더럽혀진 사람이 새로운 ‘흰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처럼, 야곱이 형 ‘에서’의 옷을 입고 대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은 것처럼 세례를 받으면 자기 죄의 수치를 가릴 수 있고 하나님께 복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침례)는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와야 하는데 이것은 정확히 세례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처럼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대신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세례를 통해 그분과 연합하면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성례입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세례는 이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 20:22-23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22-23)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윽고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야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주님이 위임하신 죄사함의 권세를 행했습니다. 성령은 교회가 사죄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면허증입니다. 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는 면허증을 취득한 사람이어야 하듯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는 바로 약속의 성령(성령의 내주)을 받은 자라야 자격이 주어집니다. 만약 ‘물세례’를 베풀되 전신이 잠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며, 고개를 숙이는 바른 형태로 시행한다 할지라도 만약 성령의 내주가 없는 사람이 베푼다면 그 세례는 사죄의 효력이 없습니다. 이는 먼허증이 없는데 운전을 한다면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자이듯이 성령세례로 거듭나지 않은 자가 세례를 베푼다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또 성령이 계신 교회의 파송을 받은 자가 베풀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려주신 보혜사 성령이 있어야 하고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로부터 파송된 자가 베푼 세례에 사죄의 효력이 있습니다.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 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세례는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형식과 내용은 모두 중요합니다. 형식없이 내용이 보존될 수 없고 내용없는 형식은 공허할 뿐입니다. 올바른 형식에 올바른 내용이 보존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의 과정과 형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적 올바른 세례는

     

    첫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회는 세례의 방법과 대상에 대해 논쟁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일반 개신교는 마 28:19에 근거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시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행전의 내용과 조화되지 않습니다. 즉 행 2:38, 8:16, 10:48, 19:5의 내용에는 모두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모순된 것일까요? 한쪽의 기록은 선택하고 다른 쪽의 기록은 버려야 할까요? 우리는 성경이 모순되지 않고 조화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마 28:19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란 사실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 곧 예수. 아들의 이름, 곧 예수. 성령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둘째, 흐르는 물에서 전신이 물에 잠겨야 합니다.

    본래 세례는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였고, 세례의 문자적인 의미도 또한 ‘물에 잠기다’라는 헬라어 동사 ‘밥티조’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이디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을 때, ‘물에서 올라왔다’는 표현은 이런 침례가 시행된 사실을 반증합니다.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세례의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성례라는 사실을 근거로 볼 때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의 형식은 롬 6:3~5에 기록하고 있는 세례의 정의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부활입니다. 이와 같은 죽음과 부활의 의미는 세례를 받은 이후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의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바울 사도는 세례받은 자는 자신을 죽었다가 산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자로 여길지어다

     

    세례받은 성도는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배는 세례의 연장입니다. 예배란 죄 있는 성도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사함받으며 그 결과로 주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소유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만약 예배의 은혜가 그렇다면 이는 죽고 다시 사는 세례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의미의 세례를 받은 자는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날마다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고백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세례의 정의와 의미로 볼 때 세례는 반드시 물에 완전히 잠기는 형태여야 합니다.

    (3: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셋째,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세례는 뒤로 눕는 모양이 아니라 앞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양으로 받아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죄인의 마땅한 태도이며 그분의 죽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하시는 장면에서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19:30).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을 자세히 묘사한 것은 그 죽음과 연합한 세례의 구체적인 동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세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성례라면 마땅히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을 본받는 형태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머리를 숙이고 받는 것입니다.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세례는 반드시 물속에서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세례는 반드시 물속에서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세례는 헬라어로 ‘침수(浸水)한다’는 동사 ‘밥티조’(baptiz)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밥티스마’(βἀπτισμα)라고 합니다. 이를 영어로는 ‘뱁티즘’(baptis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례의 어휘적 뜻에 따르면 ‘세례’보다는 ‘침례’가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신약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세례’는 ‘침수’로 시행되었음을 간접적인 증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들이 많음이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3:23)

    물에서 올라가실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6)

    물에서 올라갈새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9)

    와 같은 표현은 침례를 행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기독교 역사 자료를 제시한 여러 문헌들을 살펴보면 초대 교회에서 시행한 세례는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는 물속에서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는 예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3-5)

    . 세례를 통해서 물속에 잠기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세례의 예식이 이와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3:21). 그렇기 때문에 세례는 본래의 성경의 모습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물에서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중요한 의식(儀式). 육체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의식인데, 새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세례를 뜻하는 그리스어 밥티스마(βπτσμ)는 ‘침수(浸水)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의 세례는 몸통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浸禮)예식이었기 때문이다.’

    두산세계대백과

     

    “헬라어 원어의 뜻은 ‘침수’. 초대 교회에서부터 시행된 그리스도인의 입교 의식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2:41)

    . 그러나 세례의 발단은 구약 시대의 할례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17:10,11)와 결례(레 11장 이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세례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례의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물을 붓거나 떨어뜨리는 경우를 세례라고 하고 물에 잠기는 것을 침례라고 부른다. 침례가 본래의 의식이나 세례도 초대 교회부터 시작되었다. 중세까지는 주로 침례가 시행되다가 종교 개혁 이후에는 세례가 보편화되었다. (하략)”

    기독교사전. 기독교문사

     

    이러한 세례(침례)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1:33)

    . 또한 이처럼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의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리새인들과의 대화 가운데서도 간접적으로 인정하신 것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무슨 권세로 가르치느냐는 물음에 예수께서는 오히려 반문하시기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인지 사람으로부터인가?’를 물으셨고. 누구든 이 물음에 하늘로부터라고 대답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눅20:4)

    .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느냐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이해했습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눅7:29-30). 이와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볼 때 세례는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참예수교회는 왜 세례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깁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서 6장에서 언급했듯이 기독교 세례의 정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 사건처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천 년 전 공생애의 세 번째 유월절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예루살렘 영문 밖 골고다 언덕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듭나는 사건도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십자가와 연합하는 역사적 사건이어야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3-5)

    너희가 세례(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2: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3:10-12)

    성경은 세례가 단순히 형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죄 씻음(Washing sins)

    사도들은 세례가 죄를 씻는 효과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22:16)

    2) 칭의(稱義)또는 의롭다 칭함(Justification)

    사도들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다’고 여긴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6:6-7)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11)

    3) 중생(Regeneration)

    예수님과 사도들은 세례를 통해 사람이 거듭 태어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4) 구원(Salvation)

    예수님과 사도들은 세례를 통해 인간이 구원에 이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16: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