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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할렐루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형제자매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교회에서 온 Mercedes Lai, 세디스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2개 학기 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올해 6월, 저는 뉴캐슬 교회의 자매 4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대만에서 열리는 IYF에 참석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금요일 밤 예배는 강남교회에서, 안식일은 동부교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처음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성도님들을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도 계속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부터 매주 RE(종교교육) 수업을 들었고, 매년 열리는 전국 학생 영은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16년, 처음 참석했던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에든버러 교회였고, 뉴캐슬 학생들이 모두 금식을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뉴캐슬 형제자매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저와 두 형제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을 때, 저는 너무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들이 함께 울며 기뻐해주던 따뜻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신앙 여정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때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그때가 제 신앙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환경 속에서 제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였던 저는 세상도 교회도 잘 알지 못한 순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때, 집중도 안 되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으로 느껴지면서 제 믿음은 약해져 갔습니다. 2022년에는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단부터 임종까지, 저는 제 자신과도 멀어졌고 정작 하나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시기 이후, 저는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마음속엔 설명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구름’처럼 남아 믿음을 막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교회 성도들과도 멀어졌고, 여러 감정이 겹쳐져 신앙은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힘들어졌고, 의무감 때문에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제 부족한 믿음을 보고 혹시 누가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도 저는 ‘가야 하니까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온 이후에는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찾고, 흐려진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전처럼 불안함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요. 그래도 동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교회가 제 신앙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지내다가, 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교회에 오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과 통역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도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고, 뉴캐슬 교회와 달리 동부교회에 또래 청년이 적다 보니 처음엔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성도님들의 친절과 사랑을 감사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어렵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또 기도 가운데서도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들리는 방언기도의 익숙한 소리는 제 마음에 큰 평안을 줍니다.

    동부교회에서 가장 감사한 기억 중 하나는 성도님들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매주 직접 준비해 주시는 따뜻한 한국 가정식을 먹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기회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봄 학기에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봄 학기가 되면 다시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 간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려진 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길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세디스 드림

    세디스 자매가 6월에 친구들과 동부교회 방문하여 청년부와 찍은 사진.  앞줄 맨 오른쪽에서 네번째 자매가 세디스 자매입니다. 

  • [성도간증]일본 신앙 여행을 마치고

    2025년 4월, 갈렙.바나바와 아비가일 연합은 목자님 포함 21명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7박8일의 일본 신앙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도 식지 않은 열정과 또 자라나야 할 신앙을 위해 계획된 이번 여행에 하나같이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라고 말씀하신 성도들을 대표하여 함께 다녀오신 이종숙 자매님께서 간증해 주셨습니다.

    일본 신앙여행을 마치고
    이종숙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일본 신앙여행에 아무런 일 없이 잘 다녀왔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일본 신앙여행 계획이 알려진 이후 시간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참예수교회라는 교회 안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성도들과 처음으로 신앙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반적인 여행보다 훨씬 설레고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와 아주 다를 것으로 생각한 일본의 참예수교회는 어떤지도 궁금했으며 처음으로 떠나는 신앙여행이어서 더욱 설렜는지도 모릅니다.

    일본 신앙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이 공항에 도착하여 밝은 웃음으로 인사 나누고 수화물을 위탁하고 나서 출국심사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일본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교적 작은 비행기라서 조금은 놀라긴 했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무사히 일본까지 데려다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일본에 도착하여 공항 로비로 나오자 곧 우리를 반기는 오사카 교회 성도님들이 나오셨습니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조이 아버님과 조이 형제님의 헌신은 가족보다 더 세심한 배려 속에서 일본 신앙여행 일행을 안내하고 도움 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 신앙여행의 첫 방문지인 오사카 교회에 도착하자 많은 성도님께서 줄지어 서서 꽃송이를 건네주시고 찬양을 부르면서 우리 일행을 열렬히 반겨주시는 모습도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신 모든 성도님이 바로 살아 있는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오사카 교회를 비롯하여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도 역시 우리 일행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맞이하여 주시어 큰 감동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우리나라보다 전도가 덜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교회도 작을 것으로 생각하고, 성도 수도 적을 것으로 생각한 일본의 참예수교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성도 수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오사카 교회,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 세 군데를 다녔지만 하나같이 교회도 크고 시설도 깔끔하니 훌륭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말이라 생각하면서 신앙여행에 함께한 것을 큰 축복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강남교회가 일본 교회보다 작아 보이고, 시설도 낙후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우리 강남교회도 일본의 교회보다 더 크고 시설이 좋은 교회로 발전되길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녀온 일본의 모든 교회에서 서로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참예수교회의 성도로써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따뜻한 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서로 찬양을 나누는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아래 참예수교회 안에서 서로가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이고 한 가족이라는 찬양이 왜 나왔는지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사카 교회에서는 숙식을 제공하여 주어 이틀 밤을 묵었는데 꼭 집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했습니다.
    음식 또한 너무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어서 신앙여행으로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을 잊었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까요?
    멀리에서 교회로 오시어 아침을 준비해 주신 오사카 교회 자매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본 신앙여행에서 체험한 오사카 교회,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는 하나같이 우리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환대해 주었고,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심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막바지 여행을 안내하고 신앙여행 일행을 살뜰히 챙겨주신 여행사 대표 겸 집사님께서도 우리가 불편한 점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면서 배려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아무 사고 없이 신앙여행을 마치게 됨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신앙여행에 함께 하며 통역과 진행에 헌신해 주신 목자님을 비롯하여 서로 배려하고, 도움이 되고자 했던 모든 형제자매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할렐루야 예수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희 가정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저희 가정이 부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가정은 2015년부터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2019년 말에 김해로 이사를 갔습니다. 2019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김해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지만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회사 바로 앞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다녀서 방법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출퇴근 경로가 부산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여서 출퇴근 시간이 왕복 최소 2시간에서 오래는 3시간까지 소요되었습니다. 첫 몇 달간은 신입의 자세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다녔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을 했고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부산교회 영은회 강사로 오신 목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김해로 이사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자님께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교회와 먼 곳 으로 이사 가는 것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조언해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살 때는 모든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교만한 마음으로 목자님의 조언을 흘려 들었고 잊은 채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김해에서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에서는 30년 이상 된 빌라에서 지내다가 김해에서는 신도시에 있는 신축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장 큰 문제였던 출퇴근 시간은 왕복 30분 이내로 줄어들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사랑이는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되어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해 안에서 한번 더 이사가 있었지만 크게 환경이 바뀌지도 않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와중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김해로 이사 오는 시기에 개인적으로 신앙에 큰 시험을 겪고 있었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치게 되면서 김해에 가서도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겠다는 저의 다짐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에 둘째 온유가 태어났고 종교시설 인원 수 제한으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 되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안식일에만 출석해도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예배자로서의 삶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온유가 어느 정도 크면서 다시 화요일 저녁, 안식일 저녁 예배도 참석하고자 노력은 하였으나 2년간의 공백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집이 거리가 멀다는 것은 예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곗거리였기에 이것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살던 집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와서 이사갈 곳을 알아보던 시기에 ‘내가 김해에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김해로 이사할 때, 그리고 김해 안에서 이사할 때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이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단 한번도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제가 처음에 계획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법대로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비켜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큰 탈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냥 감사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김해로 가지말라고 경고를 주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김해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지금보다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줘서 우리 가정의 신앙의 회복을 위해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기도하면서 이사 갈 곳을 찾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이사 가려고 알아봤던 곳은 부산이 아닌 양산에 있는 신도시였습니다. 교회에 가는 시간도 줄고 대중교통으로도 교회에 갈 수 있고, 시세도 기존에 살던 동네와 비슷하고, 신도시라서 생활여건도 기존에 살던 곳과 비슷 했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게 강하게 개입하셨습니다. 몇 개월째 하락세였던 양산 부동산 시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르기 시작했고 가격은 저의 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적인 문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를 찾아보게 되었고 양산보다 훨씬 더 교회와 가까운 부산에 괜찮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부산을 알아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가게 되면 제가 내려놓아야 할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산은 항상 후순위였습니다. 부산은 아무래도 김해보다 부동산 시세가 높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고, 주변 인프라도 신도시에 비해 좋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제가 김해로 이사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고통스러운 출퇴근을 다시 겪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부산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가락이 부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 했습니다.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던 부분들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살던 집보다 상태가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조건으로 구할 수 있었고, 이삿짐 센터를 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 같이 이사하는 장모님 집 구하는 과정, 첫째 사랑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은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이사를 마치고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모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방황하다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처럼 잘못된 선택을 깨닫고 돌아온 저희 가정에게 질책과 징계가 아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보다 신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축복된 일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의 간증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맹인 농아 봉사 서클 선배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신앙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하게 되면서 심근경색이 있으시던 아버지는 가슴 통증이 더욱 빈번해지고, 동생은 학비를 못 내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이었고, 저 또한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형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 19살의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혼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아주 벅찼습니다. 아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세상은 공평치 못할까,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까?” 이런 생각 속에서 그 당시 저는 의지할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창조론과 진화론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성 오거스틴의 <참회록> 등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저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석가모니나 공자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기독교가 진리이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으면서 선배님을 따라 안식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외롭고 고된 일상 속에 성경 말씀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고 요묘한 이 말씀’이란 찬송가 가사처럼 첫사랑의 소녀의 마음인 듯 성경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삶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있는 곳이면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디든지 쫓아가서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선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안식일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하며 온전히 안식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릎 아래의 치마를 입어야 하고 안식일 시작 전에는 목욕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약사고시가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도 철칙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의료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1992년 제 나이 23살에 교회 청년들과 함께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엔 중국과 수교가 안 된 상태라 포교를 하다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은 절박했고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기에 또 쓰러지실까 봐 항상 불안했고 엄마와 동생들 또한 제가 소녀 가장으로서 보살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저의 삶은 항상 억눌려 있었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안식일 교회에 몸 담았던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한 켠 공허함 속에 늦은 비 성령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연구 집회에 참석도 하고 산속에서 밤이 깊도록 두려움도 없이 간절히 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결국 성령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원 휴가 기간에 천연치료원에서 약학과 동기인 현*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라고 하면서 3~4일의 시간 동안,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이름 및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구절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너무도 기쁘고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현* 언니를 따라 어느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참예수교회 대방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성경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시42:1)의 말씀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대방교회 기도실에서 너덧 명의 성도분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고 몸에 진동이 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제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가슴 속에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임했던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감사합니다. 세례 후 3일째 되던 날,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참 교회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귀한 성령이 떠나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성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무의식 중에 찬송을 불렀는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저를 쫓아냈고, 전철에서도 “찬송 소리가 너무 크다” 고 친구가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제가 찬송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제가 성령 받기 전에는 고음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저음도 못 내는 음치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은 후에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고음이 저절로 올라가고 찬송가의 가사가 저의 간증이 되어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청껏 찬송하라”라고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희 딸 가*이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4주(9개월)무렵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시기에 태아의 정상 체중이 최소 2kg이 넘어야 하는데 아이는 1.5kg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미숙아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달포 후 정확히 40주를 채우고 2.7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부르짖은 저에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란 찬송가 구절처럼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이가 5개월 무렵, 하루종일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기저귀를 자주 갈았었는데 그날은 한 번도 기저귀가 젖어 있지 않아 응급 상황임을 깨닫고 목자님께 안수기도를 청하여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소변이 잘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이 6세 때,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차량은 심하게 부서져 폐차하였지만 가*이와 남편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에어백에 부딪혀 앞자리 조수석에 앉혀 있었고 차량 내부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차량의 운전자는 사고를 목격하고 하차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상의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질주해 오는 후속 차량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을 주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18년 전쯤에 친정 부모님이 저의 권유로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대 때부터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세례받기 며칠 전에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세례받는 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아 ‘세례를 미루어야 하나?’ 걱정하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중에도 “믿음으로 받겠다.” 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신 후 갑자기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세례 현장에서 간증을 하셨어요. “세례받고 나오니 모든 병이 나은 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라면서 기뻐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실 때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81세에 아버지는 링거를 맞던 중 갑작스레 팔다리 마비가 왔어요. 병원에 있었음에도 의사의 무지로 인해 빠른 조치를 못 함으로써 좌뇌경색이 심하게 와서 의식조차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교회 목자님께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셨고 합심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18), 저는 이제야 그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서울의 한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모셨고 직접 간병하면서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심방 오시는 목자님을 보시면 환호하면서 좋다는 표현을 하셨고, 한 살 아기가 되어서 소리 지르고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예배보고 기도할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놀랍게도 신나시며 따라 부르셨습니다. 말씀은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찬송가와 노래는 할 줄 아셨던 것이죠. ‘우리 아버지도 이제 구원받았구나’ 하는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뇌경색과 대장암을 3년간 앓으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엄마가 밤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건 쓴 사람 2명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 번을 깨웠는데, 엄마는 “왜요? 나는 졸려서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이제 천사들이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엄마에게 꿈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9년 6월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확신하시며, 장례식 이후로 광양교회에 출석하시며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엄마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은혜는 측량할 길 없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의 마음을 지속해서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저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약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 속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2018년도 처음 갔던 이스라엘 여행의 감동이 생각나, 가족들을 설득하여 2019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저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헤브론, 벧엘, 실로, 그리심산 국립공원, 갈릴리, 가버나움, 최북단 텔단을 거쳐 네게브 사막 지역인 브엘세바와 최남단 에일랏 및 텔아비브까지 2주간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아서 베들레헴 갈 때에 아랍인 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현재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텔단 지역의 풍부한 물과 키 큰 나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겠다” 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이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구약성경대로 양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년 3~4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 되심과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음을 저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부 지역과 네게브 사막은 렌터카로 이동하였는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지나는 저희를 길 잃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행 중에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성지마다 큰 은혜와 감동을 베풀어 주셨고,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확신 있게 깨달은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중략)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아멘, 할렐루야!

  • [성도간증]내게도 이런날이(아이가 성령을 받다)

    할렐루야! 저는 5학년,2학년 그리고 글을 쓰는 2023년 8월 현재 7개월 된 아이까지 삼 형제를 키우는 김정남자매 입니다. 둘째아이의 성령 받은 날의 감동과 기쁨을 나누고자 부족하지만 글을 남깁니다.

    2023년 8월,  아동부 여름성경학교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1박 2일 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행사를 위해 준비한 선생님들의 수고와 노력,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시는 많은 손길이 있음을 알기에 그 날도 식사봉사 라는 명목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제일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먼저 일하는 다른 자매들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주방에 들어가는 순간 “언니! 서진이가 성령 감동이 있대” 라는 말은 마치 남 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식사봉사가 중요했고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이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켠이 두근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전 날 저녁 어린 막내와의 씨름에 눈꺼풀이 저절로 감길 만큼 몸은 피곤했지만 자매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준비를 마쳤을 즈음 주방에 울려퍼진 “서진이 성령받았어요!”라는 한 아이의 소리에 다리가 속절 없이 풀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목자님 선언이 있을때까지는..되뇌이던 제가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멋쩍게 식당으로 올라오는 아이를 보자 기특했고 신기했고 성령 받은 아이보다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에 남은 식사봉사도 제대로 못 해 이 글을 빌어 함께한 자매들에게 미안한 마음 전합니다. 

    아이의 수령은 저희 부부에게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 부담도 따랐습니다. 아이가 더욱 주 안에서 바르고 지혜로운 청년이 될 수 있도록 양육의 책임이 더 크게 느껴지고 늘 먼저이던 첫째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같은 아동반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 몰라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다만 아이의 수령 소식에  저를 꼭 안아준 자매들을 기억하면 이렇게 마음 따뜻한 부모를 둔 자녀들이기에 서진이의 수령이 다른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영향으로 미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막내 핑계로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점점 멀어지던 저희 가정에 당근과 같은 성령을 주신 하나님 덕분에 다시금 신앙을 고쳐매는 중인 우서도가정, 이렇게 간증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늦은비 성령으로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아멘

  • [성도 간증]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수원교회 유*춘 집사)

    [성도 간증]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수원교회 유*춘 집사)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나의 첫 신앙 지인 남원교회는 성 춘향과 이 도령의 이야기가 있는 광한루 옆을 흐르는 요천을 가로지른 다리 건너 동부 노암동이었다.

    요천 옆 산에는 일제 강점기의 신사를 원불교에서 교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건물 앞 넓은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가끔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는 장로교회에 다니다 중3 때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남원교회에 발을 들였다.

    당시 허야곱 목자님이 계셨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학생들을 보듬어 주시고 신앙인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시려고 애쓰셨는데-

    영은 전도대회를 앞두고 새벽에 인근 산에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기도했던 일, 여름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일박하며 기도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특별한 놀 거리가 없는 우리 들은 학교에서 오면 교회로 모여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아동반 주보, 전도지 등을 등사기로 밀어 만들면서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순수한 마음이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다면 아마도 그때 형성되었기 때문이리라.

    몇 년 후 야곱 목자님 후임으로 오신 이 빌립 목자님은 청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가까이하는 분이셨다.

    70년대 말,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신앙모임 ‘밑거름’ 회가 조직되고 활동 중 하나로 교회당 이전이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현재의 남원교회는 성도 한 분이 부지를 헌납하고 모든 성도의 건축헌금과 기도와 땀으로 세워졌다.

    직장이나 학업으로 외지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휴일에 내려오면 인근 요천 냇가에서 교회 건축자재로 쓰일 돌들을 리어카로 실어 나르곤 했다.

    모래는 신기하게도 교회 건축 터에서 나와 충당되었다.

    1981년에 교회당에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랫동안 기다렸던 발령 소식을 받아 춘천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허*숙 자매와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꾸렸다.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예배에 참석할 수 없으니 안식일에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동부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춘천을 떠나 수원으로 올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은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목자님들, 성도님들이 심방을 오셨다.

    당시에는 교회에 차가 없어 청량리에서 기차를 이용해 오셨으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지금은 소천하신 오충도 목자님은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해 주셨고, 소천하신 한마리아 집사님은 항상 동행하는 수고를 하셨다.

    우리 가정은 춘천에도 집회소가 세워지기를 소원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수원으로 오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진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함께 해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셨다.

    되돌아보면 나의 발이 미끄러져 수렁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붙잡아 주셨다.

    하나님의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린다.

  • [성도 간증]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찾자.(수원교회 김*수 집사)

    [성도 간증]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찾자.(수원교회 김*수 집사)

    할렐루야!

    부족한 저에게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 은혜 감사드리며, 예수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시3:3)

    하나님은 나의 주관자시며 나의 삶에 동반자이기도 하시고 나를 지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오늘은 2014년 봄에 경험했던 일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고자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날도 평소처럼 8시 조금 이른 출근을 했습니다. 이 학교에 교장으로 온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입니다.

    교장실에 도착하여 잠시 묵상기도하고 앉아서 오늘은 무슨 행사들이 있나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원이 나가버렸지요.

    그리고는 화재경보기가 심하게 울렸어요. ‘학교 건물이 크고 많으니 또 어디서 뭐가 잘못 되었겠지’라 생각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사분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고 이상이 없다면서 화재경보기 관리기를 조작하여 경보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아서 전기 관리 업체에 연락하라 말하고 다시 교장실에 들어와서 업무를 보려는데, 일찍 출근한 영양사가 오더니 지하에서 이상한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을 했지요.

    그때 마음이 탁 내려 앉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지요. 지하로 달려갔습니다. 건물 지하에게 크게 두가지 설비가 되어있습니다.

    하나는 학교 전체 건물에 전원을 공급하는 거대한 전기실과 온수와 상수를 공급하는 관이 복잡하게 있는 곳인데, 크기가 각각 50평쯤 되지요. 내려가 보니 전기실에서 까아만 연기가 철문 사이로 마구 새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건물을 책임자가 나이기에 멍해졌습니다.

    맘속으로 ‘오! 하나님! 할렐루야’를 외치며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출근한 주무관에게 119에 연락하라 말하고 전기실 열쇠를 찾았지요.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못 찾게 하셨지요. 전기실에 강한 전류가 흐르고 불이 났다면 무엇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 하나님이 저를 막아 두신 거지요.

    소방대원들이 오기까지 그랬습니다. 강하고 급한 불자동차 싸이렌 소리가 들렸고 곧 화제 진압 대원들이 도착하여 상황 설명하고 대원들이 전기실 문을 열었습니다. 매케한 냄새가 꽉 차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나를 빨리 나가라 말했고, 입과 코를 막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하는 시간인데 소방차가 10대가 넘게 도착하고 싸이렌 소리가 나니 아이들이 어리둥절하여 선생님께 부탁해서 교실 출입을 막고 운동장에 대기 시켰습니다.

    전기실에 들어갔던 대원중 책임자가 나오더니 다행히 전기실 전체가 아닌 하나의 변압기에서 불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독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교장실에 들어와서 기도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기도했는데!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잠시 형식적으로 ‘두 손 잡고 묵상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화재 사건이 있은 뒤로는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출근하고 점심에 퇴근 전에 하루 3번씩 꼭 기도하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퇴직하기까지 약 7년간 아무 일없이 학교를 경영하고 마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경고가 없었다면 기도할 줄 몰랐을 것이고 더 큰 일이 나를 힘들게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출근하여 기도하고 나면 하루가 평안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생각하며 지나는 나날이 되었습니다.

    성도님들! 나의 직장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 생각은 교회에서만 해야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계시니 그분을 항상 찾아 나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속에 하나님이 계시니 언제나 찾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 참 하나님을 찾은 서순애 모매님

    참 하나님을 찾은 서순애 모매님

    발걸음을 인도하심

    저는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난 서순애입니다. 30여년동안 천안 구성동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참예수교회 천안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교회에 다니게된 동기와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신 것을 증거하고자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도록 이끄신 주님의 인도와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4살정도부터 부모님을 따라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님부터 가진 처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옮길줄은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던 중 집안에 큰 시련이 찾아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오귀은 사모님을 통해 참예수교회를 알게되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영은회를 한다기에 자리만 채워달라는 사모님의 권유로 당시 5살짜리 손자인 성찬이를 데리고 구경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참예수교회에 갔을 때 그곳 교인들의 따뜻한 인사와 관심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다짐하기를 참예수교회는 영은회 할때만 가고 절대로 교회는 옮길 수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끌렸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손자 성찬이가 갑자기 이제는 참예수교회가 아니면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교회를 가는데 성찬이가 기사님에게 참예수교회 쪽으로 가달라고 길까지 알려주며 소리질러 재촉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많이 복잡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 주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놀라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남

    성찬이 때문에 참예수교회를 계속다니면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적은 성도들의 찬양이지만 듣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마음의 감동이 밀려들어 스스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전에 성경말씀도 나름대로 많이 통독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참예수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을 받아주신다면 이곳에서 몸을 담고 열심히 헌신하며 살겠노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지 오래지않아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마음에 큰 성령의 감동과 뜨거움이 느껴지며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주님 속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경말씀대로 세례를 받고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심장 혈관이 막힘

    성령을 받고 약 1년이 되었을 2012년 10월말쯤이었습니다. 심장에 부정맥 증세가 있어서 순청향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심장 한 곳이 완전히 심하게 막혀서 급하게 시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12월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저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날짜를 미루어 왔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주님의 자녀, 살아도 주님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지 생각하며 주님께 맡기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안수기도를 받고나면 늘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계속적인 증상과 가족들의 독촉등으로 시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2013년 3월 27일 입원을 하여 다음날 시술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입원을 하니 저도 사람인지라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목자님이 저녁 시간에 병문안을 오셔서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해주실 때 온 몸이 사정없이 떨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끼며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수없는 벅찬 감격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남

    다음날 오후 1시에 수술에 들어가는데 간호사가 곁에 있던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이 시술은 위험하니 어머님께 잘 격려해주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저 두렵지 않아요. 저의 생명이 다 되었다면 어쩔수없겠지만 조금더 넉넉하게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하며 울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점검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시작되었습니다. 잠시동안 요란한 소리가 나고 마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담당 교수님이 급히 저를 깨웠습니다. “서순애 환자 눈을 떠보세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막혔던 혈관도 뚤렸고 예전보다 더 깨끗하고 강심장이 되었네요” 의사도 믿기지 않는듯 놀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고, 당신의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부모님께 잘 해드리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큰 기적을 체험함으로 제가 찾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섬세하게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저의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하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좋은 자녀로 남은 삶을 살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성찬이 뿐만아니라 제 며느리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날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아멘

    현재 며느님 이원선자매, 손자 성찬이와 보미, 모두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서순애 자매님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의 사랑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 나를 만져주신 하나님

    나를 만져주신 하나님

    간증자 Pastor Vuthy (현 미국 참예수교회 목자)

    나는 캄보디아에서 태어나 9살 때인 1981년에 미국에 왔다. 1975년에서 1979년까지 캄보디아에서는 대량학살이 있었다.

    약 6백만명의 사람들 중 350만명이 그 기간에 죽음을 당했다. 매일같이 사람들은 배고픔과 처형으로 인하여 죽어갔다. 심지어 나의 친척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

    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신은 대체 어떠한 존재이길래 사람을 창조해 놓고 그냥 이렇게 죽게끔 놔두는 것인가? 이런 신이 어떻게 좋은 신이라 할 수 있는가? 신의 눈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미국에 온 뒤 나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매일 밤 똑같은 악몽이었다. 다섯 악령들이 나를 잡아 둘은 나의 손을 묶고, 둘은 나의 다리를 묶고, 나머지 한 영은 나의 목을 졸랐다.

    나는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커 가면서 잠자는 것이 두려워 나는 두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다.

    이 시간 동안 난 너무나 두려웠고 외로웠다. 불교의 경전에는 이 세상이 온갖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쓰여 있었고 난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격동의 세월들

    난 진리를 갈망했고 삶에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다. 난 스스로에게 ” 인생은 분명 이보다 더 나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라고 물었다.

    대학에서 나는 춤추고 술 마시며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파티에 가 보았다. 그리고 ” 와! 정말 이런게 바로 행복이란 것이구나…! 맞지? ”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1학년과 2학년 때 데이트 하고 술 마시고 춤도 추며 시간을 보냈다. 파티에 가면 난 무대 위에 올라가 미친듯이 춤을 췄다. 사람들은 ” 버디 ! 버디 ! ” 라며 내 이름을 외쳐댔다.

    그러나 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난 ” 이것이 행복의 길은 아니다… ” 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대학 2학년때엔 성적이 너무 안 좋아 학교에서 거의 퇴학을 당할 뻔했다.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을 때 쯤인 대학 3학년 때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난 여전히 너무 외로웠다. 난 학교를 마치고 직업을 구하여 돈을 번다면 삶이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했어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진리를 찾아서

    이 때에도 난 계속해서 진리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잠깐동안 나는 내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던 크리스쳔 교회에 갔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고 그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그 교회를 떠났다.

    그 후 어머니는 나를 그리스 정교회에 데리고 가셨고 그 곳에서 나는 두번째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그리스어로 설교했기 때문에 난 항상 졸았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두번째 교회에서도 나온 뒤 난 자신에게 말했다. ” 잊어버리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난 그저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여직원 가운데 한 명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내 책상위에 있던 성경책을 발견하고는 함께 성경공부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성경공부에 참석하기로 했다. 성경공부가 끝날 때 쯤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방언 기도 하는 것을 보고 난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자매들 중 한 명은 분명히 날 위해서 기도했나보다. 왜냐면 다음날 성경공부에 가고 싶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성경 공부 모임에서 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다. 난 성경공부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예배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난 우리가 비록 기도소에 모이긴 했어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곳에 함께 하신다고 느꼈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매일밤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이 실제로 이해되어졌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지시다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나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버디야 일어나 기도해라” 그래서 난 ” 네 ” 라고 대답하고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다.

    난 “할렐루야” 라고 말했고 곧 어떤 힘이 나에게 들어와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가 느껴져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고 나는 그 기쁨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도시간에 하나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저질렀던 모든 죄악된 행위들을 깨닫게 해 주셨다.

    기도를 하는 도중 하나님은 다시 나의 마음을 움직여 말씀하셨다. “베드로전서를 펴 보아라” 난 성경에 베드로전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일어나서 불을 켰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을 펴 보았다.

    읽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3D 입체와 같이 살아서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말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아 나의 마음에 진정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영적 전투

    몇 일 뒤 나는 다시 악몽을 꿨다. 난 2~3년간 악몽을 꾸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다섯 영들 이었고 이번엔 더욱 강하게 나의 목을 졸랐다. 난 숨을 쉴 수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 라고 말했고 그들은 바로 떠나갔다.

    난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왜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밤에 악몽을 꾸는지를 물어봤다. 그들은 혹시 내가 집에 어떤 우상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나에겐 금으로 된 작은 부처의 머리모양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변기에 버리고 물까지 내렸다.

    다음날 밤 나는 또 다른 악몽을 꾸었다. 이번에는 단 하나의 영이었다. 한 크고 검은 영이 나의 목을 졸랐고 난 그 영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것 같아 정말로 무서웠다.

    그래도 난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 라고 외치며 오히려 그 영의 목을 졸랐다. 난 그 영을 침대에 엎어버렸고 그 영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온통 좀 먹었고 벌레들로 가득했다. 곧 그것이 사라졌다.

    나는 다시 교회의 한 자매에게 왜 아직도 내가 악몽을 꾸는지 물어보았다. 무엇 때문에 계속 악몽을 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뭔가 또 다른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매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집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난 집안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오래전에 내게 주셨던 또 하나의 부처 머리 우상을 찾게 되었다. 난 그것이 내 보석함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는 그것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아버지의 개종

    내가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난 후 나는 아버지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73세이다. 아버지는 캄보디아에서 젊은 시절부터 주술을 시행하셨다.

    그 때문에 예전부터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거나 칼로 찔러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난 어릴적엔 이것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실제로는 믿지는 않았다.

    1981년도에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왔을 때 우리는 굉장히 심한 핍박을 받았다. 우리 집은 두 번이나 불에 탔다. 두 번째 불이 났을 때는 아버지가 밖에 나가 방화범들과 싸우셨다. 그들 중 한명이 아버지를 야구방망이로 때리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손으로 그것을 잡아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 후 난 아버지가 실제로 주술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미국에 오신 뒤 처음으로 교회에 가셨을 때 아버지는 너무나 편찮으셔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 아버지가 시행하는 주술의 “정령”은 만일 아버지가 계속 교회에 나간다면 아버지를 죽일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1981년부터 1999년까지 아버지는 교회를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다.

    1999년 6월에 난 아버지와 낚시를 갔다. 그 때 나는 참예수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난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번이 아버지께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께 평생동안 무엇을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난 하나님을 만났어요. 아버지가 교회에 딱 다섯번만 나가보시길 원해요. 만일 다섯번 나오신 후에도 아무 느낌도 없으시다면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셔도 돼요.”

    아버지는 “그래 아들아 내가 너를 위하여 그렇게 하마” 라고 말씀하시며 동의하셨다. 그 날 밤 조카가 아버지 방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소리쳤다. “할머니 할아버지, 누가 날 죽이려고 해요 !! “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셨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 때 그것이 아버지의 정령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다음 날 그 사실을 내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버지께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하며 아버지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옛 것을 버리다

    그 다음주 금요일 성경 공부시간에 아버지 방에 있는 모든 불교용품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은 나에게 일단 기도하고 그것을 모두 다 치워 버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감히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그것을 다 치운단 말인가?

    아버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며 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 뿐이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 주 토요일에 아버지는 교회에 나오셨다.

    기도 후 난 아버지께 느낌이 어떻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춥고 몸이 떨린다고 했다. 난 그것은 좋은 반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아버지는 큰 부처 머리 형상의 목걸이에 목에 두르고 있었다.

    난 아버지께 말했다. ” 바로 그것이 문제에요. 그 목걸이를 갖다 버리셔야 해요… 만일 아버지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면, 아버지 방안에 있는 모든 다른 것들도 다 갖다 버리셔야 해요… “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버지는 목걸이와 그 외 모든 불교용품들을 다 제거하셨고 매일 밤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새로운 생명

    다음 안식일날 아버지는 교회에 나오셔서 무릎꿇고 다시 기도하셨다. 난 아버지에게 성령을 받으면 어떤 느낌인지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었다. 기도 후 아버지는 온 몸이 얼얼한 느낌이라고 하시며 그래도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난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런데 그 주, 아버지의 왼발이 굉장히 아프기 시작했고 심지어 걸을 수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교회로 가는 길에 아버지는 나에게 “만일 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께서 나의 발을 낫게 하시겠지… 기다려보자.” 라고 말씀하셨다. 난 “하나님 이제 아버지가 하나님께로 나아 오셨습니다” 라고 마음으로 말했다.

    아버지는 말씀하는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발을 꼭 치료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 이었다. 1주일간 아버지는 다리가 아프셨다. 어느날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 밤에 자다가다 깨어나 울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어 나셨을 때 아버지는 어떤 힘을 발에서부터 무릎까지 임하는 것을 느끼셨고 후에 아버지는 걸을 수 있게 되셨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야기 하셨고, 난 너무나 기뻤다.

    교회 형제 자매들도 아버지를 위하여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다음 안식일 교회에 가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아 나도 너의 믿음을 따르겠다. 난 이미 너의 엄마에게 너의 믿음과 너의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고 하셨다.

    난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따라 불교를 숭상하셨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까지도 안식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우리가 신실함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통하여 진실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영광과 찬송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출처: Manna 31호

  •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찾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찾다

    간증자 쉬궈위(許國鈺)자매님

    고등학교 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쉬궈위는 18살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해하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점에 이르게 된다. 어떤 책에 손을 대는 순간 ‘신’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고, 그 서점을 나오는 순간 우울증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그녀가 손을 댔던 책은 바로 성경이었다. 그 신을 찾기 위해 많은 교회에 다니고 성경공부를 했으나 그 어떤 교회도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했다. 결국 그중에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우울증이 재발하는 것을 느꼈고 프랑스에서 큰 상을 두 개나 탔음에도 우울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쉬궈위는 다시 무릎꿇고 주님의 인도를 구했고, 그 후 주님께서는 신비한 방식으로 그녀를 참 진리로 인도해주신다.

     

    Canadian Gambling La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