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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조영민 집사

    [성도간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조영민 집사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6: 1-5)

    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과거의 삶을 돌아보면 저는 아주 연약하고 서글픈 유소년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마냥 유쾌하고 재미있게 뛰어놀기보다는 늘 어딘가 아파하면서 하루하루를 쓸쓸히 지낸 것만 현재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갑자기 몸이 아팠는데 어떤 분이 저를 업어서 동네 입구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저는 길거리에 누워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십대 중반에 들면서는 항상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십대 후반이 되자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저의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러다가, 매일매일 적지 않은 육신의 고통을 겪으며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아신 제  큰고모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고모님이 우리 집을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어떤 분을 특별히 대동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당시 청주교회를 시무하시던 허충진 목자님이십니다. 그날 목자님은 저를 앞에 앉혀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에 그분은 뜻밖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네, 우리 집으로 가세!” 그 말씀에 저와 부모님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언가 강력한 힘에 붙잡힌 것처럼 그날 곧장 목자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이후 여러 날을 청주교회 목자님 사택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지냈습니다. 당시 청주교회는 일반 주택의 방 두 개가 전부인 아주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그중 작은 방은 목자님 내외와 두 딸이 거처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방은 예배 날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목자님 아들 삼형제와 제가 거주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2)

      그 무렵 목자님 가족은 매일 아침, 당시 저로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방언 기도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언젠가부터는 저도 그 방언 기도를 그들과 똑같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바로 목자님께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저들과 함께 여러 날 기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나 보다!’라고 막연히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목자님께 그런 사실을 고백했더니 목자님은 그때 제가 성령을 받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새 신자로 바뀐 제가 우리 참교회에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목자님께서 저에게 이런 권고를 하셨습니다. “대전교회에서 영은회가 있으니 자네, 대전으로 가서 세례를 받고 오게나.” 사실 그때 저는 세례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은 체계적인 세례 교육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목자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단순한 마음만 갖고서 어떤 준비도 없이 대전교회로 갔습니다. 그 시절엔 대전교회에 차량도 없었습니다. 교회 앞의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일반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 주위 사방에 뿌연 먼지가 하늘 높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수용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유등천까지의 길을 반은 버스를 타고 반은 걸어가서 세례를 받고 왔습니다.

    3. 요추 3, 4번 수술을 받다.

     그렇게 신앙행활을 하던 중 총회 사무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는 총회가 서울 녹번교회(현 서부교회)와 함께 있었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총회로 가서 사무원으로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저는 먼저 부모님과 상의한 후 총회 사무원으로 일하겠다고 결심하고 상경했습니다.  총회에서 공식 채용되어 사무원으로 일한 지 2~3개월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극심해서 걷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청주로 내려왔고 시내에 있는 어느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미 저의 병이 많이 진행되어 심각한 상태이므로 당장 입원하여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자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목자님은 저에게 다른 병원에도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다른 병원으로 가서 또 검사하니 동일한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제 저로선 더 지체하면 몸 상태가 더 위험해지는 게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청주 어느 병원에 입원하여 요추 3, 4번을 하나로 묶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는 약 한 달간 약물과 주사 치료가 있었습니다. 무릎에서 명치까지 석고로 깁스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로 적어도 6개월은 지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저는 퇴원하게 되었고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의 입원실을 벗어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니 무엇보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몸으로 매일 24시간 누워서 6개월을 지낸다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일이 도래하여 그 거대한 깁스를 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저의 몸이 깁스한 상태로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쳐 누워만 있다 보니 이제는 옆으로 눕는 것이나 일어서는 것조차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저를 둘러싼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너무나도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조금씩 적응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여섯 달이나 누워만 있었기에 발바닥에서 굳은살이 다 풀어져 버렸습니다. 마치 갓난아기의 발처럼 매우 연약한 발이 되어서, 간신히 일어선다 해도 발바닥 통증이 극심해 잠시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두께가 약 5cm인 스펀지 매트를 방바닥에 깔았습니다. 그 매트에 발을 얹으니 겨우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의 중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손으로 벽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벽을 따라 방에서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니 저의 몸이 그처럼 쇠약해지고 기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6~7년간은 그야말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몸은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어 갔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보시고 제 몸을 굳세게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4. 주 안에서 결혼,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이 주심

      그러다가 제 나이 28세가 되었을 때 별안간 저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 부모님의 부탁을 받은 목자님께서 저의 결혼을 주선하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받은 결혼관은 결혼도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해야 하고 그래야 진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하여, 신앙 안에서 주시는 목자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난생처음 맞선을 보게 되었고 다른 건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날 맞선 상대인 바로 그 사람, 지금의 아내와의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즈음 저로서는 사실, 결혼과 관련하여 무엇을 주장하고 무슨 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처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결혼할 만한 여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습니다. 일단 저를 무조건 결혼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집 안의 논이라도 팔아서 저에게 가게라도 하나 장만해 주면 그럭저럭 먹고는 살지 않을까 해서 제 결혼을 추진하셨다고 합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힘입어 저는 1984년 6월 3일 청주교회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 후 2~3개월 무렵이 되자 아내가 첫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소식에 부모님은 물론 온 교회 성도님들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결혼하고서 이듬해 4월 29일, 사랑하는 첫딸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귀한 선물로 믿고 처음에는 딸의 이름을 ‘은혜’로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청주교회에 이미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가 있기에 <인혜>로 지었습니다. 이제 어엿이 부모가 된 저로선 하나님이 맡기신 소중한 딸이므로 잘 키워야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가장(家長)의 책임도 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겐 변변한 직업이 없었습니다. 새 식구가 늘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제 마음엔 무척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저는 여러 날 고민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무심코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뉴스 하나가 저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충청북도에서 지방 공무원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며칠 후에 저는 아내에게 “도청에서 공무원을 뽑는다고 한대.”라며, 지나가는 말 하듯이 그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반색하면서 그 시험에 자기가 한번 응시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동네 여러 집을 찾아다니면서 고등학생들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일에 어머니도 선뜻 동참하여 그 시험 관련 책들을 빌려다 주셨습니다. 아내는 그 책들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시험 치르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자전거에 태워서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시험을 다 치른 후엔 또 자전거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집으로 오는 중에 사뭇 기대하는 마음으로 도청 게시판을 훑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기 게시된 합격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이 아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내는 공무원 연수원에서 일정 기간 소양교육을 받았고 86년 3월 1일 옥천군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전과 달리 제 가족이 평소처럼 청주교회를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옥천에서 청주로 가려면 직행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해도 편도로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럼, 당시 저희로서는 토요일 안식일 예배 참석도 상당히 힘들어질 뿐 아니라 밤 예배 참석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맙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대전교회 쪽 교통편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전교회는 예배가 끝난 후까지도 시내버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족 모두 소속 교회를 대전교회로 변경하기로 하고 그때부터 대전교회로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또 하나의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딸과 23개월 차이 나는 둘째 딸입니다. 차녀(次女)의 이름은 원래 첫딸의 이름으로 하려고 생각했던 <은혜>로 지었습니다. 저의 딸들과 관련하여 지금도 제가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옥천에서 살던 시절 두 아이 모두 질병으로 인해 병원을 찾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가정이 대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지가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5. 아버지를 전도함

     제 가족이 옥천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자연히 청주 본가와 분가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거리가 상당히 멀어지자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종종 기회가 닿는 대로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버지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것을 권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도 저희와 함께 교회에 다니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줄곧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나 잘 다녀라!”그러던 어느 날, 제가 큰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다음 안식일부터는 청주로 올 테니 아버지, 저랑 함께 교회 갈 준비하고 계세요!” 하지만 교회에 대한 아버지의 거부감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나는 교회에 가지 않으련다!” 그래도 제가 물러서지 않고 다음 주에 청주로 꼭 오겠다고 말하면서 그 주 안식일에 청주 본가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새 아버지가 단정히 옷을 차려입고 교회 갈 준비를 다 마치고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일정 기간 저는 아버지 전도를 위해 안식일마다 아버지와 함께 청주교회로 출석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세례를 받으셨고 그로부터 얼마 후엔 성령까지 받으셨습니다. 오랫동안 세상 백성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신 것입니다. 이전에 저는 아버지 구원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예상보다 매우 순조롭게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6. 아내의 뇌종양 수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아내의 걸음걸이가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 보이는데 평소와 다르게 비틀거리며 걷는 것입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병원에 가서 정밀 진찰해 보자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 말에 대해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기는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 동구청 인사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의 배우자이자 보호자인 저를 부른 것입니다. 그 인사담당 공무원은 저에게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든지 아니면 사직(辭職)하라고 통보했습니다. 느닷없이 던져진 그 말에 저희 부부는 상당히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갈 것을 말하니까 한의원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한의원 3층에 일반 내과 의원에 가서 상담 후 CT 촬영을 해보았습니다. 머리에 직경 5~6cm 정도의 종양이 있는 게 발견되었습니다. 무척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게 과연 확실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저는 다시 그 CT 촬영 자료를 제가 다니던 병원에 제출하여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자료를 본 병원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그 말에 저는 ‘아내가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초조한 마음에 곧바로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병세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저에게 형수님이 다음날 서울대병원에 가서 외래 진료를 받을 예정이니, 그 전에 속히 아내의 그 CT 촬영 자료를 보내달라고 당부했고 보내 드렸습니다.급기야 아내는 구청에 병가를 내었고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1주간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병원의 권고를 따라 6개월에 한 번씩 세 차례나 머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저희 부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디 무사히 수술받게 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치료해 주세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예정된 첫 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내의 이마 위를 10cm 이상 절개하고서 시행한, 12시간이 넘게 걸린 대수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귀 뒤쪽으로 10cm 이상 머리를 절개하고 받은 수술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일반 수술과는 다른 감마나이프 시술, 즉 방사선 치료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내가 병원 수술과 치료를 잘 받았고 뇌종양은 성공적으로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시술에서 방사선 노출량이 많아 그런지 아내의 체력이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함께하심으로 그 모든 어려운 치료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임 때까지 성실하게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찬양합니다. 뜻밖의 위중한 병으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그렇게 큰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데 사실 그 시기는 큰 딸 인혜가 고등학생, 작은 딸 은혜는 중학생이어서 부모의 보살핌과 뒷바라지가 한창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두 아이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오로지 엄마의 수술 성공과 무사 회복만을 기도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밥해 먹고 학교를 잘 다녀 주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딸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손길로 저희 아이들을 붙드시고 인도해 주신 것 또한 대단히 감사합니다.

    7. 두 딸의 국공립학교 교사 임용

     두 딸 모두 하나님의 은총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교회 생활은 물론 학교생활도 충실히 하면서 학업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매년 경쟁률이 너무나 높아서 요즘도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국공립학교 교원 임용시험에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하여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면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안에서 본인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이 지면을 빌어 부모로서 새삼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8. 큰딸의 결혼과 손녀 출생

     어느 날 큰딸 인혜가 부모인 저희 부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교회 신도가 아닌 같은 대학교 선배라는 겁니다. 미리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희 부부는 신앙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믿음 안에서 짝을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가르치고 인도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 결혼 문제가 저희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와 아내는 잠시 놀라고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고 큰 딸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최소한 그가 우리 교회를 다녀야 한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인혜 역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가진 아이였기에 부모의 말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그 청년이 우리 교회 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 후 매주 안식일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교회에서 서로 반갑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저와 아내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인혜와 그 청년이 정식으로 함께 저희 부부를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자기들, 이제 결혼하고 싶으니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했고 결혼과 관련한 모든 일을 본인들에게 맡겨서 결혼하게 했습니다.

     이윽고 큰딸에게서 손녀가 태어났고 저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랑스러운 손녀를 돌보는 일은 그전엔 전혀 알 수 없었던 크나큰 기쁨과 즐거움을 저에게 듬뿍 안겨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점점 자라서 한참 동안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 같더니 지금은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또 올해 초에 있었던 아동부 영은회에서 귀한 성령까지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손녀는 여태껏 말썽을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도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 주면 순순히 잘 받아들입니다. 정말 착하고 총명한 아이입니다.

    9.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신다.

     저는 평소에 나름대로 교회 일에 봉사하는 가운데 틈틈이 사회봉사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의 외출 이동 봉사를 했는데 매월 한 차례, 그들의 외출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는 대전 오류동 모 교회의 부목사 ㅇㅇㅇ씨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저에게 한 가지 사업을 제의했습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대전지소를 설립하자는 겁니다. 저는 그 사업 동기가 선하다고 생각하여 선뜻 동의하고 그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도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돈으로 그 사업체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비품 중에 가구나 컴퓨터는 폐기물에 가까운 것들을 기부받아 사무실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주변 많은 사람에게 매월 5천 원 ~ 1만 원의 금액을 기부받으며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대전 동구청으로부터 장애인 바우처 일을 제안받고 그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거기에서 나오는 잉여금이 있기에 최소한의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해졌습니다. 후에는 직원도 2사람을 모집 채용하여 외견상으로도 사업이 점차 자리를 잡은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모집을 한 직원들은 다른 단체의 직원들과 비슷하게 월급을 주면서도 저와 그 사람은 급여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저희는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편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해 3명의 장애인을 직원으로 등록하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매월 3명분에 해당하는 180만원씩의 장애인고용지원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 돈을 저를 비롯한 직원의 월급으로 지출하고 그 돈을 다시 익명의 이름으로 입금하면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됩니다. 그날 그 사람과 저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퇴근했습니다. 귀가 길에 대전역 앞 횡단보도를 지날 때였습니다. 마침 교통신호는 횡단 신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멀리서 한 차량이 오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당장 그 횡단보도를 건너도 될 것 같아서 힘껏 패달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그 차량은 바뀐 신호인데도 불구하고 그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서 그냥 냅다 달렸습니다. 저는 그 차에 치여 도로 위에 쓰러졌고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119구급차에 의해 제가 성모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저는 그 교통사고의 발생 경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무지 사고가 날 상황이 아닌데 대체 왜 내가 그런 사고를 당했을까?’ 믿음 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땐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었습니다. 누워도, 앉아도, 일어서도, 머리가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환자로 계속 입원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1달이 지날 무렵, 하나님은 저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아~ 그날 내가 이방인과 함께 협잡하고 편법으로 세상일을 하려고 꾀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이었구나.’ 저는 자책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연락하여 그 직장에서 퇴사하였습니다. 그 직장 일과 관련하여 제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무실에 잉여금이 생기니까 정상적인 회의도 없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서 개인적으로 공금을 착복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도 경찰서에서 3번이나 출석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결국 공금 횡령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 엮여 곤혹을 당했을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구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생긴 어지럼증은 그 후 3~4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어지럼증 떄문에 등산용 스틱을 양손에 잡고 걸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 증세의 치유를 위해 계속 회개하며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 어지럼증이 점차 나아지더니 현재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혀 어지럼증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일을 돌아볼 때마다 저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귀한 깨우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상 사람과 짝하여 세상 죄악의 길로 흘러가 헛된 삶을 살기보다는 그 노력으로 차라리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를 큰 사랑과 큰 권능으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 116:12-14)

     지금까지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너무나도 크고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저같이 보잘것없는 세상 죄인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저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육신에 힘겨운 병도 주셔서 한동안 고생하게 하셨지만, 그로 인해 결국은 물과 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착하고 충성된 일군으로 겸손하게 봉사하라고 저에게 귀한 ‘집사(執事)’ 직분까지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부족하나마 저의 가정이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교회 안에서, 성령과 진리 안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요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 읽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예전의 예배 말씀도 시간을 내어 다시 듣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에게도 그 보배로운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최대의 소망은 저의 가정이 모두 하나님의 집, 교회를 떠나지 않고 이 참 신앙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나라에 꼭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성령과 진리로 저희를 굳게 붙드시고 저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전*헌 형제)

    [성도간증]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전*헌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처음 간증을 권유받았을 때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던 것 같은데

    주제가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라는 알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엄청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나의 생명인데 가장 어린 대학부에서 간증하려니 처음에는 이게 맞을까도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있음을 믿고 담대히 해보겠습니다.

    저는 제 짧은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낀 순간을 간증하겠습니다.

    이 시간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간증으로 제가 아닌 하나님이 나타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성경구절 읽겠습니다.

    “내가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1. 간증에 대한 배경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목자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우리 수원교회 아동부처럼 교회는 저의 놀이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육도 조금은 많이 강하게 받았습니다.

    7살부터 매일 성경을 읽었고 초등학생 때 성경 통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신앙적인 아이구나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심방이나 외출로 성경 읽기를 우리 삼 형제에게 맡길 때면

    저희는 일부러 빠르게 읽거나 안 읽었는데 읽었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제가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던 이유는 가정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에게 가정은 신앙 안에서 큰 울타리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이런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모든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바로 제가 가정을 떠나 남자고등학교 기숙사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목자님 가정은 당시에 3년마다 교회를 옮겨야 해서

    제가 중학교는 안양에서 보냈는데 고등학교를 안양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목자님이 이동하신 지역으로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기숙사로 가서 이런 복잡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처음 저는 기숙사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맨날 집에서 사모님의 스파르타 훈련을 받아온 저였기에

    ‘자유 시작’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 환상은 1주일도 안 돼서 깨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빨래나 청소를 다 해야 했고,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학교에 처음 입학 했을 때는

    후배가 선배를 보면 무조건 인사해야 하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밤에 기숙사에서 얼차려를 주는 등의 악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부분은 적응하면 알아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사 한 번 더 하면 되고 빨래나 청소는 처음에 너무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보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 고등학교에서 처음 맞이한 안식일 문제

     

    하지만 정말 문제는 신앙 문제였습니다.

    기숙사 학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다녔던 학교는

    1학년들이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개학하기 첫 주 전에 신입생 캠프를 하였습니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내내 토, 일요일까지 진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상 학생은 전원이었고 열외나 그런 것도 하나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심란해졌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살면서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나머지

    바로 부모님께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진정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개학 전 안식일은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는 대부분 친해지길 바라는 프로그램으로 재밌는 레크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친구들은 좋다고 웃고 깔깔대는데

    저는 이걸 즐겨도 되나 시험이 들면서 혼자 심각해진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안식일을 보내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저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상황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여기서 정신 못 차렸다간 내 신앙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1.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

     

    저는 개학이 되고 바로 안식일을 지킬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 외출은 토요일 오후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전 예배는 못 드려도 학생부 예배는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저는 반드시 오전에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방책을 더 찾았습니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1학년 부장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도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 다 한목소리로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학년 부장 선생님은 교장, 교감 다음의 서열이었고

    학교에서 가장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신 걸로 유명하셨습니다.

    근데 저는 이제 첫 주를 맞이하는 새내기였기에 그런 데이터 없이

    진명이와 다짜고짜 찾아가서 우리 안식일 믿는데 종교활동으로

    토요일 오전에 외출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NO!” 였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혼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교회를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설득보다는

    일방적인 요구를 했는데 부장 선생님으로서는 이제 막 새내기가

    원칙을 어기고 가야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정말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 그렇게 혼나고 돌아오는 길

    저희는 정말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부장 선생님께 다시 가서 부탁드렸습니다.

    근데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요? 그래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날마다 찾아갔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다가오고 이번에도 안식일을 못 드릴 것 같은 생각에 좌절과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금요일도 어김없이 야간 자습을 하고 11시쯤 끝나는데

    10시쯤 부장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반 포기 상태였고

    혼내시려고 그러나 생각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부장 선생님은 저에게 흰 종이 하나를 저에게 딱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3년 외출증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리 사감 선생님께도 말씀드렸고 이거 있으면 토요일에 아침부터

    외출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외출증을 받았을 때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자신이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토요일 아침을

    그것도 첫 주부터 매주 외출하는 학생은 너희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학교생활을 지켜본다고 하셨습니다.

    약간 경고의 메세지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받으시고 함께하신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부장 선생님이 너그러우신 분이시냐? 아닙니다.

    깐깐한 것으로는 제일가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신용이 좋은 학생이었냐? 아닙니다.

    1주일 된 학생인 데다 첫 주부터 체계의 불만을 가지고 따지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하셔서 안식일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감실에도 이어집니다.

    토요일 오전에 가는 외박자는 무조건 보호자가 와야 밖으로 보내줍니다.

    저도 오전에 외출을 가야 하기에 보호자가 와야 나갈 수 있는 규정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안산에 계시고 천안교회와는 차 타고 20분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분이 바로 이남찬 목자님이셨습니다.

    목자님은 당시 저의 학생부 교사셨습니다.

    당시 학교 규정에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고

    전화번호를 외워 인터폰을 사용해야 했기에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이남찬 목자님의 번호를 받아 연락을 드렸습니다.

    당시 시간은 11시가 넘었고, 전화를 못 받으면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바로 받아주셨고 안식일 8시 30분에 와서 저희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이후에는 규정이 좀 풀렸는데 코로나 이후에 다시 강화되면서

    천안교회 형제, 자매님이 저희를 데려다주시는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매번 신세를 지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난 때에 청주에서 저의 친척이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모부와 이모가 저희를 계속 픽업해 주시면서

    고등학생 기간에 정말 순조롭게 안식일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준비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학교생활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저는 고등학생이 돼서 화요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와이파이는 안 터지고 데이터도 없고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컴퓨터실에는

    과제나 대회 준비 외에는 어떠한 사용도 금하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행동을 하면 정말 좋으신 선생님은 한번 경고를 주시고 다음 뺏어 가시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은 바로 기기를 뺏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압수당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말씀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매일 아침이나 못하면 저녁에 했고, 기도는 오후 자습 끝나고 밥 먹기 전 10분 기도에 힘썼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태블릿이 생겨서

    가족 밴드에 읽은 말씀을 3대지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기도할 때는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잠그고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남고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남고에다 기숙사라면 어떤 작은 독특한 거리가 생기면 바로 놀리고 비꼬는 특징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남고에서 그런 독특한 사람은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신앙적인 부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컨셉이냐?,

    성경 읽는 시간에 문제를 풀었으면 한 등급은 올렸겠다는 등 여러 말로 비꼬았고,

    아멘의 뜻을 모르는 친구들이 그건 어디서 들어왔는지

    말끝마다 아멘 거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아야지,

    아무것도 아니다 하였는데 이게 쌓이니까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하며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어김없이 놀렸습니다. 역시 기도를 한다고 상황이 갑자기 역전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인내할 힘을 주셨습니다.

    짜증 나고 지겨웠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인내하다 보니

    친구들도 애는 진짜다 이러면서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함께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하지 말자,

    안 하는 것이 편하지 않냐고 생각도 했지만 도우심을 느끼며 그 생각을 뿌리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친구들에게 인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친구들이 천안교회에도 몇 번 방문도 하였습니다.

     

     

    1. 결론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고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혹은, 환경을 통해, 능력을 주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릴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심을 느끼게 하시기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근데 저는 이것을 쉽게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갔는데 간증을 준비하면서 조력자에 대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해주는

    저와 수원교회 성도님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립니다.

  •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님들과 간증을 나눌 수 있어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은 80년 전 1946년 6월 4일(음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고 저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태어난 함경북도 온성군은 백두산 물줄기가 두만강으로 흐르는 북한과 중국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와 중국이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저는 엄마 등에 업혀 중국 연변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45년 정도를 살다가 1995년 7월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고 과연 내가 굶어 죽지 않고 80살까지 살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감격스럽고 오직 감사할 분입니다.

    강산이 8번 변한 80년 동안의 이 세상에서 삶의 길은 험하고 고난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자녀로 택하셔서 세례와 성령을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저를 이끌어 주셔서 여러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이렇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살 때는 살면서 겪는 여러 우여곡절과 고난이 내 운명이고 팔자라는 비신앙적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은 후 부터는 북한, 중국, 한국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이 인도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고 싶어 가고, 오고 싶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행복한 가정과 교회를 주신 것이 무척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들어와서 참 하나님을 믿은 16년의 시간 동안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그동안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무척 행복하고 이 또한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감사하게 느끼며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 버렸기에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저 나쁜 짓을 안 하고 토요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에 정성껏 참여하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이 이 땅의 장막은 이제 곧 무너질 때가 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집인 하나님의 집에 갈 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는 노력을 하면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숨이 더 찼는데 나이 들어 세월이 가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20년 동안 다닌 병원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니 그러면 검사를 해 보자고 하셨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니 심장에 흰색 선이 보인다고 말을 하며 잘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큰 긴장이 되면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큰 문제없이 살아오다가 갑자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고 하면 딸이 얼마나 놀라겠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또 되었지만 어차피 혼자는 병원에 갈 수 없으니 고민 끝에 딸인 연*자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원에 함께 가자며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식욕도 사라지고 그저 걱정만 앞섰습니다. 대학 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라는 열흘의 시간 동안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고 잠도 안 오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가지 검사를 제안함과 동시에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큰 금액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하니 80이 넘은 늙은 나이에 수술을 하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에 대한 염려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자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딸은 경제적인 것을 고려하지 말고 제일 마음이 편한 대로 결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딸은 수술에 대해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뒤로 몇 번 병원을 간 끝에 결국 의사선생님에게 수술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을 거면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 검사를 갈 때마다 특별한 징후가 없어서 석 달에 병원에 가던 것도 두 차례 정도 갔다가 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크게 아픈 것 없이 멀쩡합니다. 그 사이에 저와 제 딸은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은 때로는 기도 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그것이 곧 잘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를 만나서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지 않아도 나랑 한 식구들이 내면 된 거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딸이 십일조는 꼭 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좋은 것만 달라고 하지 말고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내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주셔서 깨닫게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특히 제 건강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제게 준 생명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삶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지키며, 장막이 무너지고 주님과 함께하는 새 집을 얻을 때까지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은혜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저를 끝까지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장정*자매 가족 사진(왼쪽에서 두 번째 장정*자매) 

  • [성도 간증] 반석되어 주신 하나님 (수원교회 구*현 형제)

    [성도 간증] 반석되어 주신 하나님 (수원교회 구*현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하겠습니다.

    [시편 62:7-8]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으며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이사야 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오늘 제가 함께 나눌 간증의 제목은 ‘나의 반석이 되신 하나님’입니다.
    재작년에 제가 간증하면서 자가 가고 싶어했던 회사에 불합격했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이후 다시 준비해서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합격한 후에 지금까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두 가지 에피소드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1. 회사 합격을 도와주신 하나님
    저는 작년 11월부터 회사를 준비했고, 올해 3월부터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단기신학 일정이 겹쳐져있어서 면접 준비가 참 쉽지 않았었는데요.
    단기신학은 이번이 아니면 거의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면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주간 대부분 일정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단기신학 중에 쉬는 시간이나 밤마다 면접을 짬짬이 준비했지만,
    각 과목마다 보는 시험과 기도회 인도 준비까지 겹치면서 생각보다 제대로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뒤숭숭한채 시간이 후다닥 지나 면접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저에게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갈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난 겁니다.
    그 전날부터 출발하기 전까지 분명 아무 문제없이 잘 만되던 핸드폰이 터치가 아예 되질 않았습니다.
    제 핸드폰에는 지금껏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해놓은게 있었는데,
    사실 그것을 보고 생각정리를 하면서 가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전에 준비는 하긴 했어도 머리 속에 완벽하게 준비 해놓았다면
    더 맘이 편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혹시 이번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려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단 면접장으로 출발했고,
    가는 도중에 다행히 노트펜으로는 터치가 된다는 걸 알아서 지하철에서 잠간 동안은 볼 수는 있었지만,
    사용자체가 불편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집중도 안 되고 멘탈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면접 시간이 다가올수록 제 자신감은 더 떨어졋는데요.
    그래서 속으로 떨지만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 오전 동안 두번의 면접을 차례대로 보았는데요.
    그런데 진짜 놀랍게도,
    제 걱정과 달리 정작 면접에 들어가선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떨리지 않았습니다.
    원래 저 같은 경우 평소엔 긴장하면 말도 더듬고,
    몸이 경직되면서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오히려 차분하고 편안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하나님이 핸드폰을 고장나게 해주신 이유가 있었는데요.
    바로 제가 나름 열심히 준비한 예상질문들 중에서 자기소개 한개 말고는
    그 중에서 질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그런지
    면접관의 새로운 질문에 바로 즉석으로 답변을 잘할 수 있개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최종 합격하게되었습니다.

    저는 이 합격과정을 통해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2. 회사 배치와 생활을 도와주신 하나님
    면접 합격 후,
    저는 신입 교육 기간 동안 제가 근무하게될 곳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합격되어 기분이 좋았지만 직후에 또 다른 한가지의 걱정이 생겼습니다.
    바로 토요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곳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분명 신앙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기간 내내 **‘주말에 쉬는 업장으로 가게 해주세요’**라고 맘속으로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배치 결과는 저의 생각과 달리 현재 제가 근무하고있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로 배치되었고,
    거긴 365일 돌아가는 곳이라서 주말근무는 무조건해야하기 때문에 걱정은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다른 동기들은 제가 배치받은 곳을 보고 집에서 가깝고,
    시설이 좋아서 너무 부럽다고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였지만 저는 마냥 썩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배치를 받고 그 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그곳에서 배우고 적응하며 한달이지나고
    신입 입사 기념 첫 회식을 하게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곳 회사사람들은 다 술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술을 먹겠냐고하자
    그 자리에서 저는 술을 안 마신다고 하니까, 생각보다 다들 호의롭게 받아주셨고,
    왜 먹지 않냐라고 해서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이후 서로 교회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저에게
    “그럼 언제 교회 가냐”고 물어보기에 저는 “토요일에 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자리에에 조리사들의 근무 스케줄을 담당하는 선임분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분 근무 중에 제게 와서
    “너 교회다닌다고해서 토요일은 안 넣고 있다고 .”
    직접 말해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정말로 주말근무 편성할때
    저를 토요일은 단 한 번도 당직을 넣지 않으시고, 일요일로만 배정해주셨습니다.
    그분은 교회를 전혀 다녀본 사람도 아니고.
    단순히 저를 배려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사실 제가 신입이고 막 들어온 막내라서 교회를 다닌다하더도 저를 하찮게 보고
    다짜고짜 토요일로 당직을 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배려하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정말 매우 감사드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저를 위해 좋은 길로 예비해주신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식일은 물론,
    평일 예배도 꾸준히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마감근무인 주에는 평일예배를 참석 못하여 아쉽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충분히 은혜에 은혜를 더해주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하신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하는 일이 몸을 쓰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직업이다 보니 안전사고 위험도 많았지만,
    입사 후 6개월동안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의 회사합격과 생횔 속에서 하나님께서 든든한 반석이 되셔서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귀한 은혜를 이 자리에 나눌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이 간증을 통해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의 삶속에서 함께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실수 있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성도 간증]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성도 간증]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안양교회 김세*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 ‘나의 인생의 목자이시며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주제로 간증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시편 105:1~2)

    7년 만의 간증을 저는 기쁨 가득한 시간으로, 아무런 걱정 하나 없이 기도로만 준비했습니다. 한 달 동안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새롭게 느껴졌고, 지금 저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손가락질해도 감사하고, 모함을 해도, 짜증을 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루를 회개로 시작하고, 회개로 마무리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두려움 없이 은혜 가운데 거하며,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이 깊어진 건 불과 2년 전의 일입니다. 이제 저의 나이 오십이 되었지만, 저는 이제 두살 인 것 같습니다. 2년 전에도 저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미래를 걱정하며 마음이 무너질 듯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시는 목자로서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찬양의 기쁨과 얇은 믿음만 있었던 나의 신앙, 참예수교회에서 하나님께 충만한 순종

    저는 9살 때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과자를 준다는 친구의 초대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지만, 그곳에서 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은 어린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재미있는 TV 만화를 포기하고 매주 교회에 나가 말씀을 듣고 찬양을 배우는 것이 점점 기쁨이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찬양과 전도 활동에 많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고, 교회 활동에도 더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친구들과 교회에 나가 함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게는 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제게 용기와 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대학교 때는 유치부 교사와 주보 편집부로 사역하였는데, 어린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때로는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글쓰기, 시 작성과 그림을 잘 그리게 하신 달란트로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35살에 참예수교회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이 전의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말씀과 순종, 회개와 기도, 감사와 사랑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셨고, 섬김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 믿음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감사하며 힘을 다하여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통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깊은 고민과 두려움 속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저의 목자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늘 채워주시며, 안전한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이 제 삶 가운데 진짜 고백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여정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저는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하나님 품에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 매일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눈물로 성경을 붙잡고 있을 때, 마치 조용히 제 곁에 오셔서 말씀하시는 듯한 위로가 있었습니다.

    “내가 네 아픔을 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 음성은 제 영혼에 숨을 불어넣었고, 깊은 상실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하나님은 저를 붙들고 계셨고, 무너지지 않도록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옆의 가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생사의 경계에서 또 한 번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의사는 빠른 응급조치 덕분이라 했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합니다.

    쓰러진 3일 동안은 기억이 없었기에 병실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아픔을 제게 계속 주시나요?”

    그러자 응답하셨습니다.

    “너를 사랑하기에, 너를 쓰기 위해 내가 너를 단련하고 있다….”

    그때부터 제 시선은 고통에서 은혜로, 상처에서 사명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때 새 삶을 얻었습니다.

    지금 저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저의 목자이시고, 저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양입니다.

    감사와 순종, 그리고 전심전력

    이후로 저는 두려움이 올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광야 같았던 이전의 삶은 직장, 경제, 환경 문제 등으로 걱정과 불만이 반복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저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저는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며, 담대함과 지혜를 주시는 주님께 더욱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전심전력으로 믿고 순종하며,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

    나를 변화시키신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안전하고 평안하며, 은혜 가운데 거하는 기쁨이 넘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늘 부족하지만 항상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그 인도하심의 기쁨을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늘 사진 밖에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제 방식의 사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가정을 사랑과 평안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처럼, 저 역시 아빠로서 믿음과 순종을 함께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이사야 41:10)

    지금까지 저의 목자이시며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간증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멘.

     

    <잠잠한 동행 _ 감사의 기도>

     

    상처 많았던

    나의 시간과 모습들에 기도의 평안을 주심을

    늘 감사

     

    굴곡 많았던

    나의 원망과 눈물들에 섬김의 은혜를 주심을

    늘 감사

     

    유혹 많았던

    나의 육신과 거울에 힘을 다하는 순종을 주심을

    늘 감사

     

    기도와 섬김과 순종으로

    소박해도 아름다운 들꽃과 같은 향기를 주심을

    늘 감사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으로 꽃피운 작은 나의 새 생명에

    늘 감사

     

    잠잠하게 행하면

    나의 목마름에 아낌없이 다 보여주시고

    생명수 샘물로 한없이 은혜와 사랑 주시는 주님께

    늘 감사합니다.

  •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제 삶에 피난처 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험과 고난 속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어떻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는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서울 집에서 멀어서 회사 버스로 출퇴근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 13년 차였고, 누구나 그렇듯 저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회사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6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하루 시작이 6시에 집에서 나와 일을 하고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9시가 넘었고 야근도 종종 했는데 그럴 때는 자정을 넘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12시 넘어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일터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주변의 동료들도 주중에는 삶의 중심이 직장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사는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주하고 쉼 없는 삶에 지칠 때면 ‘남들도 이렇게 사는데….’ 이런 마음으로 근근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바쁜 삶이 당연한 직장 분위기에 휩싸여 잘못된 열심에 대해 스스로 채근하며 더 힘쓰고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면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예배드리고 맡은 사역을 했고, 성경 공부까지 참석하고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요일은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시간을 주로 썼고, 아주 가끔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니는 대방교회 저는 동부교회 아버지는 천주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족이 3명뿐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점점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삶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안식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주어진 교회 일도 하고 성경도 읽고 있으니 부족하지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습니다.

    회사는 점점 제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자 고민하고 달성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가진 역량이나 리더십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버텨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삶이 반복되는데 뭔가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믿는 자가 감당해야 할 사회생활이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삶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한동안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삶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더 힘들고 어려운 삶도 많고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불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삶에 대해 답답하고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길을 보여달라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때로는 원망이 되어 ‘하나님 이것이 당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가요?’ 하고 질문도 했지만, 그래도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생각나 낙심된 마음을 삭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파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거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고,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약 100미터 전, 건널목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빛이 비쳤고 저는 쓰러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운전자는 어두운 길, 저를 보지 못하고, 건널목에서 정지하지 않고 가다가 저는 차량에 치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차에 치여 의식을 잃었고 119구급차에 실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드문드문 기억이 있긴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오후 6시 30분이 넘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제 몸은 일부는 붕대로 싸여 있었고, 눈마저도 붕대에 감겨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 치여서 모든 갈비뼈가 골절되었고, 바닥에 쓰러질 때 몸의 왼쪽 부분으로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는 골절되었고, 왼쪽 광대뼈는 함몰됐고 얼굴의 찢어진 부분은 이미 응급 봉합 수술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병원에 누워있다니….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몸을 크게 다쳤음에도 정신은 온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뜻밖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교회는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소속 교회를 떠나 저를 알고 있는 성도님들은 제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성경 말씀을 적은 손 편지를 어머니 편에 전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심 어린 기도와 위로는 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친척에게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병문안을 와 주시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며 사람들과 멀어진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완고해진 마음과 메마른 정서를 하나님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사고로 인해 육체의 아픔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사고 전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 뜻밖의 사고는 저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안했고, 오히려 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를 허락하셨지만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생각과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고,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병실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어 주변이 많이 놀랐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평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골절된 어깨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던 저는 의연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소요되는 수술이었습니다. 저녁 10시에 회복실로 옮겨졌는데 전신마취에서 회복하는 것은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마취 가스를 호흡으로 빼야 하는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가 숨을 쉴 때마다 통증과 갈증이 심했지만, 물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십자가에 달려 홀로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생각났는데 이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겪는 육체의 아픔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몸이 아픈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깨 수술을 받고 2주에 후에는 함몰된 왼쪽 광대뼈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마취 후 깨어났을 때 고통이 커서 무서웠고, 체력도 떨어진 상태고 수술 위치가 시신경 옆이라, 잘못 신경을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를 친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약해진 것 같아서 수술을 앞두고 불안함에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께 잡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전신마취 회복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습니다.

    3주 동안 수술이 끝났지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병가와 휴직의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특별한 사유 없이 휴가를 줄 수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6개월의 병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피로했던 일과에서 사고를 통해 저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2차 병원으로 옮겨서 회복에 전념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하루에 수면 시간을 절제하며 살았는데 병원에서 충분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저는 성경도 읽고, 설교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고의 고통을 뛰어넘는 제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제 몸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깨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에 핑계를 대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을 알게 하시며 이 기간에 제 육체를 돌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육체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을 관리할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 저의 바쁜 직장 일과 주말에도 각자의 시간으로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간호를 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던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픈 딸을 돌봐 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를 챙기는 여유가 없는 시류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대화도 잘 못했는데, 이번 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위하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 주셨습니다. 사고를 통해 이렇게 저의 잘못된 삶의 흐름을 멈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넉넉해져서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 주어진 휴식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출애굽 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 시간이 흐르면 원하지 않지만, 다시 바쁜 일상에 매몰되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복직하는 것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아도 경쟁하며 빠르게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직장 분위기에 이전 생활이 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그동안 익숙했던 업무나 관계를 내려놓고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타 부서로 옮기는 것도 내가 해 온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내 능력을 알아봐 줘서 허용하는 그 부서의 승인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기에 그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몇 달 있는 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코로나 때 모두 느끼셨겠지만, 안식일 예배에 하나님 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사역의 기회가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지 내 상황을 고려해 보고 결정했으나, 하나님과 성도님께 사랑의 빚을 진 것을 저에게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회복하신 주님이 부족하면 채워주실 것이고, 도와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과 생각과 처지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어려움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교통사고를 겪는 것을 불행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셨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6개월을 쉬는 것까지 누렸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장 10절)

    제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간증] 서유니게 집사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전도부에서 간증을 권유받고 주님이 제게 주신 은혜를 세어보라는 말씀이구나 싶어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최초 간증은 중학교 수학여행입니다.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전주로 출발을 했는데 버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저는 역한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잘 모르겠다는데 저는 참을 수가 없어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버스를 세우고 보니 타이어 쪽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어 새로운 버스로 갈아타고 수학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노후 된 버스로 인한 사고들이 잦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수학여행 담을 나누는 중에 말씀드렸더니 박은도 목자님께서 제게 이것이 간증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저로 인해 반 친구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목자님 말씀이 생각나고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역사가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앙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연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제게는 제 삶의 여정 하나하나가 주님의 역사하심이고 보호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대전교회는 최근 총회훈련센터로 역할을 겸하게 되어 많은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영은회 참석을 위해 각지 교회에서 모인 젊은 형제자매들을 보면 생각나는 간증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대학부 영은회가 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대전교회에서 전국구 영은회 개최가 거의 없었던 시기였는데 대학부 영은회가 대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장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주최 측 장점도 있으니 기뻐야 했는데 제 마음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목포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목포교회에는 제 또래의 형제자매가 없었습니다. 2살 위에 언니·오빠들을 따라서 학생부 영은회에 몇 번 참석한 것이 전부라 교회 안에서 친하게 사귄 친구들도 없었는데 이사 온 대전교회에는 제 또래의 형제만 3명 있었습니다. 대학입학을 하고 대학 생활의 즐거움에 한창 빠져 있었던 시기였기 에 영은회를 위한 기도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전에서 하는 영은회에 빠질 수는 없어서 억지로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의지할만한 친구도 없는데 분반 시간은 믿음의 고백과 간증들이 넘치는 은혜로운 시간이긴 했지만, 사실 은혜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간은 남의 집에 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집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교회를 빠져나와 집에 가는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고 라디오 소리와 버스 소음만 생생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냥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치 커튼을 조금씩 열 듯이 중앙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희미하게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달리는 버스에서는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히 내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더니 차츰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내리고 보니 대전역을 한참 지나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서 안방에 계시던 부모님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펑펑 울었더니 부모님은 저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줄 아시고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하게 하셨습니다. 건강검진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당시 갑자기 보이지 않는 순간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고 두렵습니다. 영은회 때 집에 다녀오겠다는 행동이 이렇게나 잘못된 것일까, 하나님은 왜 이토록 강하게 직접적으로 역사하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지 못한 마음 상태에서 은혜가 넘치는 신앙의 간증들을 들었을 때 현재의 믿음의 상태에 대하여 회개의 시간이 필요한 거였는데, 저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은혜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위태한 상태였고 극약처방을 필요할 만큼 위험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시력을 잃는 경험을 하게 하신 시간이 아주 짧고 그러나 강렬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청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입니다. 청년기에 평생의 진로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동기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성숙한 신체만큼 정신적으로 발달하고 성장했다고 보기 힘든 20대에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인생의 큰 흐름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긍정적인 경험을 쌓기를 권합니다. 저는 영은회에서 도망쳐 오던 그 날 오후에 다시 교회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집에 가서는 이런저런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서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을 향한 빠른 발걸음을 저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먼저 알아보시고 붙들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간에 도망 나온 위태한 믿음이 어디까지 나빠졌을지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다시스로 도망하던 요나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에 빠져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경고해 주셨고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주안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교회에 친한 친구가 없다고 아쉬워했지만, 친자매처럼 가까운 신앙의 선·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아시고 살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부담스러웠던 믿음의 간증들이 지금은 너무나 은혜롭고 감사하며 저 또한 은혜 아래서 믿음의 간증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혹시 영은회나 교회의 행사가 부담스러운 생각이 드신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제안합니다. 저처럼 세상에서 손짓하는 유혹들에 귀와 눈이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고 주님이 채찍을 들기 전에 빨리 깨닫고 돌아오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주님 홀로 받으시길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이요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편16:1~2]

     

  • [성도 간증]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구보*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11”

     

    1.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해주신 하나님

    저는 초등학교 3학년 학기 초,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공부방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 맞은편에서

    공부방 차에서 하차를 했습니다. 횡단보도로 건너 자니 돌아가야 했기에 저는 겁 없이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도로는 차들이 빠르게 다니는 큰 도로였습니다. 도로 옆에 주차 되어있는 화물차 사이에서

    저는 겁 없이 도로로 뛰었습니다. 결국 빠르게 지나가던 트럭과 부딪혀 몸이 날아갔습니다.

    순간의 충격으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단 몇 초 만에 정신이 들었고, 약간의 골절 외에는 무사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주셨을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저를 사용하시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수원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더욱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대학 생활의 방황으로부터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저는 부끄럽게도 대학교 1학년 시절 방황을 하였습니다. 대학교 친구들은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자연스레 저에게도 여러번 권유하였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거절했지만, 신앙의 찔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갈등이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 늦게 까지 있게 된 날이 있었습니다.

    이 날도 술자리에 참석하게 됐고, 계속된 권유에 1잔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잔이 여러 잔이 됐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방황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2학기에 신앙의 찔림으로 다시 한 번 제 신앙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날 부로 회개하여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 친구들은 계속해서 술을 권했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친구들과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술만 먹지 않을뿐 전혀 교우관계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불의한 일에 있어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학생시절을 무사히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준비하면서 함께 나눌 찬양이 생각이 났는데 가사 묵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제 이름은 곽이안입니다. 2001년 대만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50세였고, 어머니는 38세, 첫째 언니는 11살,  둘째 언니는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셨고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아기들과 같이 여러 번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타다가 벼랑에 떨어지거나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들이 쌓여서 자라났습니다.

    간증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제일 중요한 게  공부, 진로 정하는 거죠.  저는 진로를 계획하면서 대중 매체와 관련된 전공과 외국어 관련된 전공,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때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대충 매체 산업 시장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도 높아서 겸사겸사 한국 유학을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신청하려면 고등학교 성적,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 다른 필수 조건 자격 요건들이 필요한데요.  고 3때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대만의 첫 번째 수능 시험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만은 수능 시험을 두 번 봐요. 입학은 9월이에요. 그래서 9월부터 1학기이고  2월부터는 2학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첫 번째 수능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사인을 받으러 저희 아버지한테 갔어요. 근데 저의 잘못이 뭐냐면 아버지한테 시험 포기 하겠다는 걸 미리 말씀 안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엄청 반대하셨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18살까지 살면서 저희 부모님 싸우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많이 놀랐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한국대학교  떨어지면 책임을 제가 지는 것을 조건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하나님께 제발 대학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잘 져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때가 2020년이였어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대만에서는  수능시험 두 번 본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두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3년 동안 배웠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2020년 7월에 두 번째 수능 시험을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만의 타이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합격했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고, 성균관대 입학을 했습니다. 합격했던 대만 예대는 혹시 몰라서 2년 동안 휴학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자퇴를 신청했어요.

    한국에 와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온라인 수업만 듣고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바램과 내 자신도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작년에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학교와 교회에  다니면서 알바도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어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른거 별로 없어요. 수업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잘 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수업은 많이 어려웠고 좋은 성적은 못 받은 것 같지만 학교생활은 잘  마쳤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을 무척 좋아하시고  알바하는 친구들은 한국 대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사장님이랑  알바하는 친구들이 수다도 떨고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도쿄 교회로 갔는데 사실 도쿄 교회는 도쿄 안에 없어요. 도쿄를 서울시로 비유하자면 도쿄 교회는 약간 외곽인 경기도 쪽이라고 보면 돼요.  제가 살던 곳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쿄 교회는 엄청 크지는 않아요. 성도님들 70프로는 대만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고 나머지 30프로는 일본 사람입니다. 안식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있고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은 매주 있지만 대학부 사청부 분반은 격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맡은 사역은 없었지만 아기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총회가 다른 지역에도 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목표가 있어요. 한가지 예로 들면  도쿄 교회 출석 성도들 중에서 오오야마라는 지역 근처에서 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꽤 많아요. 그 근처 성도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 같은 데에서  집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서 오오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물을 이미 확보하고 헌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느낀점은 일본에서  전도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신토라는 고여 중 종교가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신사들은 다 그들의 종교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나 참예수교의 전파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참예수교회의 원활한 전도와 새 교회 헌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도님들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생활은 제가 과거에도 여행한 적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건들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작년 7월 대만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 뉴스는 어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떨어져서 어떤 여자가  맞아서 죽었다는 뉴스였어요. 그 여자는 제 고등학교 친구에요.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날 알바하던 날이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 친구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나요. 멀리 있다보니 장례식도 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슬픈 마음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8월 달에 여름방학 때 잠깐 대만에 갔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열이 나서 더위를 먹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며칠 전에 친구랑 일본에서 불꽃 축제 갔었어요. 7월 말  더운 날에  친구랑 거의 10시간 동안 유카타를 입고 밖에서 다녔어요. 그것 때문에 더위를 먹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만에 가서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고  작은 의원에서 받았던  해열제를 먹어도 안 떨어져서 어머니가 큰 병원 데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니까 간 수치가 이상하게 높았어요. 보통 간 수치는 원래 40~50 이하가 정상인데 제가 그때 약 500~600 나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이 났던 거에요. 응급실로 가서 수액을 맞았고 감염성 단핵구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날은 수액 맞고 열이 떨어져서 입원은 안 했어요. 근데 뒤에 며칠 동안 계속 열나고 해열제 먹고 또 열나고 해열제 먹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 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모처럼 대만 가서 그리웠던  음식들을 못 먹었어요. 하루 종일 경구 영양식 한 캔씩 먹었어요.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저희 타이페이 교회 주보에 제 이름이 올라갔어요. 교회 성도님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1주일 지나서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 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할렐루야!

    아기였을때 가족사진

    최근 가족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안 자매)

    청년부 암송대회에서 우수상 받는 모습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나기전 공항에서 목자님 내외분과 생활관 청년부와 함께

    일본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일본 도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일본 알바했던 카페에서 특별활동 

     

    일본 오카야마


    일본 도쿄 메구로천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 [성도간증] 전주교회 이상규형제의 간증 – 출산

    [성도간증] 전주교회 이상규형제의 간증 – 출산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고 상급입니다. 아직도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 마음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성경 구절의 한 단어 한 단어가 뚜렷하게 보이고 이 짧은 구절을 또 읽고 더 마음에 새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배 속에서 학윤이가 점점 커가고 예정일이 지나는데 진통이 없어서 날짜를 정하고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3년 5월 2일 밤 9시, 예약한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습니다. 몇 가지 검사 후에 시내 자매는 진통실에 눕고 제가 그 옆 의자에 앉아 함께했습니다. 새벽 3시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5시에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딱 낳는 순간만 아픈 것이 아니라 배 속에서 아이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자궁이 수축하면서 진통을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8시에는 진통이 극대화 되었습니다. 출산의 고통이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옆에서 쉬지 않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서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무사히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믿음 생활을 해왔지만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지, 어떻게 기도하는 것인지, 나의 믿음에 대해서도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고통을 주실까’ 생각했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상황, 이 고통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참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통은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사람을 만드신, 이 고통을 주신 절대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고난은 아프지만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프다고 하신 것은 진짜 아프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후 1시 정도에 분만실에 들어갔습니다. 계속 기도하고 할렐루야를 계속 외치면서 모든 상황에서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신 것을 마음속에 되뇌었습니다. 오후 2시 46분에 학윤이가 태어났습니다. 주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3)

    자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사람이 자식을 낳지만 배 속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모릅니다. 초음파를 통해 볼 뿐입니다. 배 속에서 사람의 몸, 손, 눈 발가락, 몸 속 장기들 하나하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고 기능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을 들어보면 신기한 것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업으로, 상급으로 주셨다는 성경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성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했는데, 아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 감동이 되고 그 은혜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난지 60일정도 되어서 교회에 갔습니다. 학윤이가 빨리 이 소중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통해 생명의 길을 걷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성경책에서 믿음의 족보를 읽었는데 나도 이 믿음의 통로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학윤이가 이 축복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참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사랑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성도님들이 아기를 참 예뻐해 주십니다. 교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들을 봅니다. 교회는 정말 사랑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8-19)

    학윤이 이름은 한자로 ‘배울 학’ ‘물 깊고 넓을 윤’으로 에베소서 말씀처럼 깊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라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하나님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정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윤이가 건강하게 믿음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