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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 (대방교회 김*성 모친)

     

     김*자 내 동생은 적잖이 15년은 나를 아주 귀찮게 굴었을 거랍니다. 끈질기게 자신이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니자고, 세례를 받으라고 쫒아다니더란 말입니다. 그런 동생에게 지지 않고 나는 약을 올렸습니다. 참예수교회에 가겠다 했다, 안 가겠다 했다. 생선 굽듯 마음을 숱하게 뒤 짚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늙은이가 얼마나 얄밉고 약이 올랐을까 싶은데. 실상은 나이 많은 언니가 세례도 (죄사함) 받지 못하고 떠날까 싶어 어지간히 애간장이 탔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마음 바꾸기 끝에 참예수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 때였습니다. 2023년 봄. 미국에 사는 조카가(동생의 딸. 김*냥 자매)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내용은 끈질긴 내 동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참예수교회에서 같이 믿음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했습니다. 조카의 권유에는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골수분자인 또 다른 동생마저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큰언니가 *자언니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나가시면 되겠네요!” 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권면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선언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참예수교회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 내가 그 참예수교회에 다니려면 너희 동네로 이사부터 가야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85세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무려 3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턱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카는 미국에서 나올 때 부터 가족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더랍니다.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했다 합니다. 조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니, 내 마음이 그리 보드랍게 녹아 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강력한 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른 세례를 받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기 무섭게 어느날 동생은 교회 목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자님이 오셔서 세례에 관하여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찬송도 부르고, 안수 기도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모두 가고 나서 목자님이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통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적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찾아 주셨던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 거니?” 동생은 여기저기 말씀 구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는 권사 노릇을 수십 년을 하고서도 그 말씀 하나도 못 찾아요?” 네.. 사실 나는 분당의 큰 장로교회를 30년이나 다닌 권사였습니다. 네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동생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니, 읽을수록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불렀던 찬송가가 뭐였니? 자녀들과 여행 중이었던 동생은 자녀들을 시켜서 그 찬송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목자님이 안수를 하고 가신 그날 밤부터 내가 아주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지금까지도 평안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2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서 매일 밤 시커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찾아왔습니다. 매일 밤 그렇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 했지요. 그 고통을 듣고서 전에 다니던 큰 교회의 부목사들이 와서 조언을 해주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날 목자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부터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거예요! 2년간 매일 밤이 무서웠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도통 신기한 이 교회를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를 이기는 교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는 마귀의 권세와 이적을 주신 하나님

     이사 날짜를 잡고서는 하루하루 이사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꾸 방해가 생겼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 세례를 먼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받는 날 급작스럽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세례받는 것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랬다간 내 동생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교회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면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지 뭐에요. 동생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또 바꾸지는 않을까 걱정 하면서 말이죠. 동생이 나를 보고서는 방긋 했습니다. 세례 터로 출발하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교회 안에 들어가 얼마나 신이 나게 깔깔거렸는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경험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평생 수족냉증이 너무도 심해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고 살아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에 세례를 받고 나서 수족냉증이 그렇게 좋아졌지 뭐에요. 수면양말 벗어 버렸습니다. 발가락에만 시림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는 수면양말 없이도 살겠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신어야겠지만요. 아주 신기해요 아주!

     사실 저는 파킨슨병을 15년 앓아 왔습니다. 2년 전 돌아가신 남편도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은 통증이 아주 극심한 병이랍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엉덩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마구 베는 것 같은 말도 못할 통증이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통증 주사는 총 7대를 맞는데 그 통증 주사도 아주 고역스러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를 정도에요. 세례를 받고서 얼마 후 병원에 통증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례 병원으로 갔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앞에 가서 번쩍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나 엉덩이가 안 아파요! 어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요!” 오랫동안 내 병과를 지켜보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아 그러면 주사를 맞으실 필요가 없지요!” 했습니다. 

     그날 병원까지 가서는 주사를 안 맞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 신기해지는 거지 뭐에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도 다 겪어 본다며 이 신기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직 제 말을 못 믿는 눈치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있을 텐데. 믿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족냉증이 아니라 굽은 허리를 펴주셨다면 우리 애들이 단번에 믿었을 건데 아쉽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고 얼마 후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세족례, 성찬례에도 참예 했습니다. 예식이 참 길었습니다. 자꾸 일어서고 앉고 늙은이라 힘이 들었지만,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성령도 빨리 통과(수령)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직 통과(수령)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라서 영은회를 마치고 동생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또다시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아주 힘이 세진 나는 동생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 뿐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동생의 목에 상처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우리교회 김권사가 그러는데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래!” 정말이지 마귀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목자님이 또 오셔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렁찬 고함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평안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 세족례)

    무슨 근심 있을까

     이사 날짜를 잡고 이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니, 교회 가는 날까지 이 잠깐은 왜 이렇게 길고 시간이 안 가는지요. 시간은 느렸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정된 날짜에(23년 11월)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교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첫 안식일 출석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급히 와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안식일 교회로 오는 길에 또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나가야 하는데 도통 교회 가는 길이 이렇게도 열리지를 않으니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폐가 많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휴 폐렴이면 어떻고, 더 안 좋으면 어떻겠어요. 늙은 나이에 나를 불러 주셨는데 무엇이 근심입니까. 일단 퇴원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서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지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쁩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말씀 듣는 것도 기쁨이요, 안수기도도 기쁨이에요. 그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큰 병원에서 결과를 들었지요. 결과는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분명 많이 좋지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평안키만 합니다. 할렐루야!

     

    늙은 종의 마지막 사명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거동도 힘들고, 병도 든 늙은이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의 식구들을 여기 참예수교회 참 진리 안으로 이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이 늙은 종을 불러주신 이유는 남은 가족을 인도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셨을 것 아닙니까? 내가 우리 8남매의 첫째에요. 남매 중에 5번째로 참예수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이제 남은 3명은 내가 끌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천주교 골수분자라서요.

     우리 아들은 세례식 그날이 무슨 영화에(아바타) 나오는 종족 의식 같았다고, 신비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다른 동생은 내가 세례를 받고 올라오는 순간에 아주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침은 “할렐루야!”였어요.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실 섭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세가 늦은 나이 80세에 민족의 수장이 되었다는데, 나도 늦은 나이 85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수장으로써 형제들과 자녀들을 이곳 참예수교회 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성령 충만함과 사명을 다할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늙은 종으로서 남은 생에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갈렵니다.

    (출애굽기 3장 11-12절)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간증의 당사자인 김*성 모친과 동생 김*자 모친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 [성도 간증] 하나님 품에 다시 돌아왔어요

    [성도 간증] 하나님 품에 다시 돌아왔어요

    # 세례를 받고 살게 되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처음에 외할머니가 데리고 오셔서 참예수교회를 접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저는 태어나자마자 하나님께 병고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둘째 언니가 100일동안 기침을 하는 백일해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언니가 백일해를 앓을 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감염이 되어서 생후 100일도 안 된 아이가 기침을 해서 먹지도 못하고, 원래도 작게 태어나서 다들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아랫목에 밀어두고 있었는데, 엄마가 생각하기에 아이가 죽더라도 천국은 가야 할 거라고 생각해서 세례를 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고 제가 죽을 줄 알았던 어른들 생각과는 달리 잘 자라서 신앙생활도 했습니다.

    # 병으로 인해 하나님께 돌아와 성령을 받다

      어렸을 때 신앙생활이야 언니들이랑 재밌게 신앙생활 하고, 맛있는 거 주니까 교회 가고 하면서 재밌게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생 때 광명으로 이사가면서 대방교회 전신인 신길동 교회로 갔는데, 그 때부터는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세례 받아서 산 몸이 왜 교회 안 가냐, 왜 말을 안 듣느냐 하면서 교회 안 가면 용돈도 없고 밥도 안 준다니까 어쩔 수 없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사회생활하기 전까지나 갔지, 사회생활하면서 경제력도 생기고 주관도 생기니까 내가 선택한 종교도 아니라면서 반항을 하고, 교회에 잘 안 갔습니다. 사회생활하니까 세상에 재밌는 게 너무 많고, 유혹거리도 많아서 평소에는 세상에서 재밌게 놀다가 가끔 힘들 때 교회에 들르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도 하고 살다가, 2008년에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전치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6개월 하고, 방사선 치료를 4개월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엄마가 이제 교회 가야지 않겠냐고 하셔서 알겠다고 하고 대방교회를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때는 정말 간절해서 기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때 목자님이 성령도 받자고 하시면서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시가 영은회 기간이라 저도 같이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성령을 간구했는데,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습니다. 그 때 ‘아, 이게 성령인가, 묘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감동이 있자, 기도 후에 목자님이 따로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더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실에 가서 혼자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확 나면서 환해지더라고요. 기도실 자체가 밝은 편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밝진 않았는데 기도를 하니까 빛이 나고 환해지면서 몸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진짜 말씀하신대로 혀가 말리면서 방언이 터졌습니다. ‘아, 이게 성령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너무 기쁘고 좋았습니다. 성령을 받으니까 왜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하는지 알겠고 그 뒤로는 꽤 열심히 대방교회를 나갔습니다. 치료 후에는 계속 6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다가, 2013년에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 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투병생활을 하다

      완치 판정 전, 2010년에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남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하남교회에 나가니까 그 때 당시 성도들끼리 친한 분위기가 아니었고, 또 저는 병원 일을 하니 토요일에도 일을 하다 오후 늦게나 가는데 그 때는 학생들만 남아 있고 하니까 교회가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다른 재미를 찾자’ 하면서 캠핑을  다니면서 놀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직장 사람들이 저를 계속 밀어내면서 왕따를 시켰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기도를 했어야 했는데, 기도를 안 하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아서 그런지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건강검진 시기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엑스레이상에 폐 부근에 동그란 뭐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폐암인 걸로 생각하고 수술해서 빼야겠다고 생각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틀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폐암이 아니라 유방암이 재발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5년을 항암을 했습니다. 온갖 항암 약을 쓰면서 5년간 치료를 받는데 별로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저는 원망을 했습니다. 왜 저한테만 이런 시련을 주냐고, 하나님이 정말 밉다고, 내가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지만 옆에 항상 있어준다고 했으면 날 돌봐주셔야 하시는 게 아니냐고, 그렇게 원망만 했습니다.

      투병하는 중간에 목자님이 병문안을 오셨는데, 목자님도 보기 싫었습니다. 엄마는 일어나라고 하는데 저는 약 기운 때문에 힘이 없어서 누워있으니까 목자님께서 손을 잡고 안수를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때 속으로는 안수해 주시는 것도 싫었고 빨리 좀 끝내고 가시기만 바랬습니다. 그 때 ‘내가 사탄이구나,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싫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기도하고 목자님이 가시니까 마음이 너무 편해서 이렇게 불편하게만 할 거면 왜 오시는 거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항암을 계속 하다가 별로 소용이 없으니까 병원에서 방사선이나 수술을 해보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할 수 있으면 수술을 하려고 했더니 폐를 자르는 수술은 겁이 나서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방사선 치료를 했는데, 처음에는 부담이 없더니 나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사선성 결핵이라는 후유증이 생겼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결핵이 하얗게 보이는데 결핵이 생기면 기침이 계속 나오고 물이 생겨서 찹니다. 그래서 물을 빼려고 입원했는데 그 때 명절이 오니까 급했는지 병원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약으로 어떻게든 붙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니까 제가 숨도 못 쉬고 할 정도였습니다.

    # 다시 하나님의 품에 돌아가다

      결핵으로 물이 찬 걸 빼려고 입원해 있는 동안 꿈을 꿨어요. 꿈에 파란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하늘도 보였습니다. 새소리도 나고 색깔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예쁘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어딘가로 열심히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쪽 건물에서 그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려고 했는데 누가 저를 잡고서 안 놓아줬습니다. 화장실에 밀어넣으면서 못하게 했는데 뿌리치고 나왔습니다. 나가봤더니 사람들이 손을 잡고 천국 같은 곳에서 요트도 타고 해변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서 못 놀았어요. 그리고 꿈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퇴원을 하고 목요일에 집에 갔는데,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교회를 가자하시며  교회 가서 안수를 받자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은 힘들고 피곤하다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낮에 뭔지 모를 답답한 기운이 속을 꽉 누르면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죽으면 안 된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간절함이 생겨서 엄마한테 기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옆에서 같이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엄청 나왔습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 사람이고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십시오.’ 라며 엄청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너무 울면서 기도를 하니까 엄마가 겁이 나셨던지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기저기로 전화를 하셨어요. 그래서 교회를 가야 한다는 걸 듣고 안양교회에 연락이 닿아서 교회를 가게 됐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누워만 있어도 힘들었는데 안양교회에 와서 유아실에 앉아 있는데도 별로 안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안수 기도를 받으러 나갔는데, 기도하면서 또 눈물이 한 바가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안수기도 받으러 갈 때는 부축을 받으면서 갔는데 끝나고는 좀 휘청거리기는 해도 혼자 걸어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갔는데 마음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후련한데 진작 교회에 올 걸, 왜 6년을 버티면서 하나님을 원망이나 했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음날 안식일에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이 사라졌나 했는데 아직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안수를 받는데 안수를 받을 때마다 확실히 몸이 날래졌습니다. 뒤에서 보시는 분들도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기운도 달라졌다고 같이 기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겠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정말 은혜롭습니다. 그리고 정말 몸이 달라집니다. 성령을 못 받으신 분이 있다면 간절하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면 성령을 반드시 주시고 저에게 주신 은혜를 꼭 주시리라 믿습니다. 

    <열린 예배시 간증하시는 자매님>

    < 정답! 한결 건강해지신 자매님>

    * 2023년 10월 23일 추계 영은회 겸 열린 예배시 최지숙 자매님이 간증한 내용을 편집하여 올립니다.

  • [성도간증]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성도간증]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안수를 받기 위해 걸어 나가는 길. 저의 발걸음마다 눈물이 터졌습니다.  뜨겁고 묵직한 것이 복받쳐 오르며 모든 성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흐느껴 울게 했습니다. 고작 몇 걸음이지만 거북이 엉금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오는 제 모습에 많은 자매들이 “얼마나 아프면..” 했습니다. 너무나 쉬웠던 이 예배의 자리에 간절함으로 다시 서게 해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사건 

    지난 3월이었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 평소와 같이 일요일에 출근하였습니다. 저는 일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바쁜 일상 중에 운동도 챙겨야 하기에 일요일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일과 운동까지 해결하곤 했습니다. 안양천을 따라 구로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가 아주 갑작스럽게 저의 자전거 앞에 가로질러 끼어들었습니다. 힘을 다해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저의 자전거는 앞으로 쏠려 엎어지고 말았고, 제 머리는 바로 땅에 받아 버렸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날 쓰고 나갔던 고글에는 피가 맺혔었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무사하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급히 응급차를 불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함은 다시 막연함으로 

    일요일의 응급실은 혼잡하고 대기 시간도 길었습니다. 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맞고 호흡은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걷기가 힘이 들었지만, CT 촬영 후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퇴원 조치를 하였습니다.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근육이 놀라서 그럴 것이라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란 생각과 달리 새벽에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침만을 기다리다 인근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전문의는 엑스레이에서 등뼈에 뼈가 뭉개져 있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여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심각했다면 곧장 하반신 마비가 되었을 텐데. 아주 다행인 줄알라고 했습니다. 큰 대학병원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 작은 병원에서 발견해 준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함과는 달리 의사 선생님과 대화는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인 대화 유형이었고, 저의 질문과 의견 등에 냉담하셨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3개월간 침대에 누워서 통나무와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생활이라 실감 되지 않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뭐든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MRI 촬영 후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수술의 필요가 있지만, 수술하기에는 위험하고 본인은 할 수도 없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고민 끝에 전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약 없이 긴 시간

    수술과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가까운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이동했지만, 응급실 대기만 12시간 이상 되어 입원이 불가했습니다. 다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또 이동했습니다. 응급실에서 MRI를 확인한 전문의는 환자분은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는 수술할 전문의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막연함 속에서 그토록 듣고 싶던 똑 부러지는 표현이었습니다. 명확한 의견만으로도 저희 부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천 받은 한 척추 수술 전문병원으로 또다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동한 병원에서도 MRI 상태를 보고서 의사들끼리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 줬습니다. 아침에 나섰던 길인데 시간은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엠블런스(구급차)를 타고 이동한 지라 어지럽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행히 이 병원에서는 입원 수속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병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운동복 차림의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서둘러 수술을 해야겠다고 하셨고, 간호사 선생님께 곧장 스케줄을 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응급수술로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휘파람 불며 할 수 있는 수술은 아니지만 못할 수술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 졸여온 저에게 의사 선생님의 표현은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

    수술은 아주 이른 아침에 잡혔습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수술 후에 대한 설렘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히 주님께서 잘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저는 비닐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잠시 후 우주복을 입은 간호사가 와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리셨어요!”  황당하게도 나 홀로 코로나 전용 병실에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렸던 거 아세요? 우리 병원이 피해가 막심합니다.”  코로나 신속 항원 결과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수술 들어간 후 아내에게 맡겨 둔 휴대전화로 코로나 정밀검사 결과 문자가 왔습니다. 김희준 양성. 수술 후 병원은 난리가 났습니다. 병원 장비들도 못 쓰게 되었답니다. 법적으로 코로나 환자는 수술할 수 없으니 만약 수술을 조금이라도 늦췄거나 양성 문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다면, 이날 수술은 못 하게 되었을 테고 골든타임(적기)을 놓쳤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천운을 타고났다며 말씀하셨습니다. 천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에 설레는 하루하루 였습니다. 고통 중에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은 정말 빨랐습니다. 수술한 지 불과 2주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

    퇴원 후 안식일이 되어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느낄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는 다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순간에 벅찬 감정과 하염없이 흐느껴졌던 마음은 아직도 무어라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흐느낌 속에는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성도들의 그 온기와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하염없이 이곳, 저곳 병원을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수술실에 있던 시간에도, 모든 성도님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의 위로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냈던 주님 안의 형제·자매의 사랑을 아주 충만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벅차게 제 온 마음으로 가득가득 안겨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사랑이 가득한 성도님들이 모인 거룩한 성전이라는 마음 또한 생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렇게 흐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아닌 섭리 

    병원 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 가운데 지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 고난을 잘 이겨내고 나면 결국 우리가 깨달을 것을 깨닫게 되며, 바로 세울 것은 바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안일하였습니다. 보기에 평범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켰고 봉사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지 않았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다른 마음을 찬찬히 보게 되었습니다. 일 욕심이 많은 저에게 신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안식일을 지킬 때도 많았습니다. 안식일 예배 때도 머릿속으로는 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고, 안식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안식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고 당일도 호렙산 연습이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하루였습니다. 일이 중심이었던 삶. 저에게는 일이라는 우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라며 합리화하며, 정당화 시키며 일이 중심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선순위라는 작은 그 것에 제 신앙을 갉아먹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바로 외식하는 자구나” 함을 뼈가 저리게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깨우칠 기회가 없었겠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가 빠져 들고 있었구나! 하나님은 이 것을 깨우치기 위해 기회의 시련을 주셨구나. 그 안에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주셨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 하신다는 것을 정말 등뼈가 아프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의 소중함, 안식일의 소중함, 신앙생활의 소중함, 교회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망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와 걱정 많으셨던 부모님 앞에 죄송스럽지만 “이 사고가 나길 잘됐다”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에 경건히 임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번 사고는 워낙 크게 맞은 지라 깨달음과 변화됨이 오래 갈 것이라 기대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 흐트러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술 후 등에 박힌 핀은 이제 평생 박힌 채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평생 간직할 이 등에 꽂힌 핀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증표라 생각합니다. 소망이 흐트러지는 매 순간 그때의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등에 박힌 핀을 증거 삼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고는 나에게 재앙이 아닌 참 평안을 얻게 하였고, 참된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기회를 주시고 참 소망 안에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서 29장 11절)

  • [성도 간증] 하나님의 도우심

    [성도 간증] 하나님의 도우심

    흠이 많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어 택하시고,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 핍박을 이기는 어머니의 신앙을 보며 자라다

    제 신앙을 이야기하려면 어머님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가난한 집에 시집을 오신 데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집안일과 바깥일을 모두 하시는 힘든 삶을 사셨습니다. 또 첫째 아들이 죽어서 낙심도 하셨습니다. 당시는 옛날이라 무속신앙이 많아서 엉뚱한 데에 빌기도 하고 푸닥거리도 하면서 아버지 나으시라고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오히려 병이 더 깊어졌습니다. 그때 허수진 목자님 어머니께서 할머니한테 하나님을 믿으면 못 고칠 질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당신이 믿으신 게 아니고 어머니한테 믿어 보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심을 하신 겁니다. 당시 교회는 걸어가기 힘든 먼 거리에 있었는데도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 낫기를 소망하며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 몸에 났던 진물이랑 종기가 좋아짐은 물론 말씀을 들으니 너무 좋아서 정신이 번쩍 나셨답니다. 그때 엄마는 이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면 자녀들이 잘 자라리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 못 다니게 하라고 했는지 엄마를 핍박하셨습니다. 매일 밤에 잠도 안자고 괴롭히는 겁니다. 저는 아버지가 엄마를 너무 핍박하니까 저러다 맞아 죽는 거 아닌지 늘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 머리맡에서 과감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신기한 거는 엄마가 기도하시면 아버지가 편하게 주무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은 아버지가 그렇게 핍박할 때는 언제고 너무 아프셔서 새벽에 엄마한테 기도를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해서 그날 밤 편안히 주무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어도 핍박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당시 애기인 공수(남동생)를 데리고 허수진 목자님 집으로 피난을 가신 겁니다. 엄마가 다른 건 아버지 뜻대로 해 주셨는데 신앙은 양보 안 하셨습니다. 그때 굳은 결심을 하셨는지 공수를 데리고 가서 며칠간 종적을 감추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아버지가 믿겠다고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 하나님을 떠나 살았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령을 받고, 세례는 취직하러 고향을 떠나기 전에 받고 이후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부터 신앙생활을 잘 못 했습니다. 중학교 때도 자취하면서 교회를 못 갔고 고등학교 때는 야간 학교에 다니다 보니까 시간이 안 맞아서 교회를 못 갔는데, 서울에 와서도 주 5일제가 아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의정부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세례, 성령 받고 교회 안 나가면 어떡하냐고 수원교회, 대방교회 영은회 소식을 말씀하시면서 한번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가 걱정을 너무 많이 하시니까 영은회나 한 번씩 가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결혼할 나이가 돼서 박은진 목자님 사모님이 중매를 하셨습니다. 처음엔 나이가 많아서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제 결혼관과 딱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신앙 생활하는데 핍박하지 않을 성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딱 맞는 배우자를 준비해 두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교회 다니는 거를 핍박하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면서 생활했습니다.

    # 결혼 생활 중 딸의 병 고침의 은혜를 받다

    결혼 전에 신앙생활을 잘 못했기 때문에 결혼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혼하고 아들 낳고, 딸을 낳았는데 어느 날 딸의 감기가 안 나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서 심장이 이상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낙심 되었고 그 상태로 집에 왔습니다. 집에 오니까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면서 두렵고 말만 들었던 심장병이 왜 우리 애한테 있지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도 싫고 엄마한테 얘기하면 밤잠을 안자고 걱정하실 것 같아서 말할 데도 없이 저만 힘들어 했습니다.

    때마침 대방교회에서 아픈 사람이 많아서 병 낫기를 구하는 특별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기도회에 가서 기도 부탁도 못 하고 끙끙 앓고 있다가 안수를 받으러 나갔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제일 힘든 걸 하나님께 다 풀어놨습니다. 엉엉 울면서 앞으로 신앙생활도 잘하려고 마음도 먹었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힘들게 하시냐고, 너무 힘들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뒤늦게 얻은 귀한 자식도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시면 줬는데 너는 수술하면 낫는 일인데 왜 이렇게 낙심을 하냐 하시면서 저를 야단치셨습니다. 기도가 시작할 때는 울면서 기도했는데 끝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래 수술하면 괜찮은데, 왜 내가 이렇게 막 낙심하고 큰일 난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었지’ 하며 안정이 됐습니다. 그 뒤로는 은지가 심장병이 고쳐진 것도 아닌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걱정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때 ‘이게 환란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위로를 주시는구나’라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했습니다.

    또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기도회 나가서 성경 공부를 했는데 내가 왜 구원을 받았고 어떻게 죄 사함을 받았는지도 잘 알지도 못하고 세례를 받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가라고 하니 교회만 나가고 하나님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왜 죄인인지를 시작으로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끝으로 쭉 공부하는데 마음에 깨달아지고 감사의 눈물이 펑펑 나왔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된 그때부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됐습니다.

    은지가 심장병이라고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오진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대방교회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청진기를 대보니까 슉슉 소리가 나서 심장병 맞는 것 같다고, 큰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의도 성모병원을 가서 검사받으니까 심방중격 결손증이라고, 좌심방 우심방 사이의 구멍으로 피가 슉슉 왔다 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심장 사이는 원래는 막혀서 나와야 하는데 안 막히고 나와서 피가 왔다 갔다 하니까 얘가 분유든 뭐든 잘 못 먹고 계속 감기가 낫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형편이 아파트 중도금을 내다가 마지막 한 번이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돈이 다 중도금으로 들어가고 나면 수술할 돈이 하나도 없는데 거의 다 된 아파트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딸은 수술하면 괜찮다니까 수술을 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새벽 기도를 갔습니다. 그때 대방교회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안 하면 애가 금방 죽냐고 물어보니까 금방 죽는 건 아닌데 애가 감기도 낫지 않고 힘들어하니까 수술을 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중도금 끝나는 대로 바로 수술을 하기로 하고 바로는 수술을 안 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이 일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시는 뜻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새벽 기도를 다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 날 은지가 교회에 갔다 왔는데 열이 펄펄 끓고 낫지 않았습니다. 해열제를 두세 번을 먹여도 열이 내리지를 않아서 겁이 났습니다. 죽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열로 인한 후유증이 걱정돼서 그날 새벽에 창준이랑 창준이 아빠 온 식구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애가 이렇게 아픈데 우리가 어떻게 이러고 있냐, 새벽 기도에 가자면서 셋이 걸어서 새벽 기도를 갔습니다. 새벽 기도하러 대방교회 첫 계단에 발을 올리는 데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애는 살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가서 기도하는데 은지가 빨리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제가 그동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제가 믿음이 없고 부족하다는 고백과 회개와 자복의 기도를 했습니다. 은지를 등에 업고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끝날 때쯤 보니 은지가 땀을 쭉 흘리는 걸 느꼈습니다. 근데 얘들이 땀을 흘리면 열이 내리는 걸 알고 있어서 애가 열이 내린 걸 직감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얼마 후에 입주했습니다.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먼저 은지 수술을 해줘야 해서 서울대병원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얘는 검사 결과가 이것 때문에 다시 병원에 올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스스로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라고 믿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순간 이건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음을 확신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이 차올랐습니다.

    # 받은 은혜를 간증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다

    집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크신 일을 행하셨는데 간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앞에 나가면 너무 떨려서 말 한마디도 못 하는데 내가 어떻게 간증을 하냐는 생각과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고 간증을 안 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막 싸웠습니다. 계속 간증을 안 하고 있으니까 3일을 잠을 못 잤습니다. 3일 잠을 못 자니까 너무 힘들어서 목자님한테 찾아갔습니다. 목자님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제가 간증을 안 하니까 3일 동안 잠을 못 자서 간증을 꼭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목자님이 금요 예배를 다 비워 놓으셔서 간증하려고 단에 섰는데 그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앞에 섰는데 떨리고 말도 안 나오고, 눈물이 계속 나오는데 그래도 잠을 못 자는 일이 또 발생할까 봐 간증은 꼭 하고 내려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겪은 일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간증을 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저는 제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교회에서 화장실 청소든 뭐라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 수원교회로 출석하게 되었는데, 찬양 인도를 해달라고 하셨는데 거절을 안 했습니다. 하나님 말 안 들으면 얼마나 큰일이 벌어질까 두렵기도 하고 저를 사용하시는 것이 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제가 조금씩 하나님께 나아가고 성장하는 걸 느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제 믿음을 세우시려고 그렇게 큰 고난을 주신 것 같습니다. 엄마가 항상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너 믿음 주시려고 그래, 그럴 때는 그 말이 귀에 안 들어오고 ‘엄마는 말끝마다 그 얘기네, 난 힘들어 죽겠는데 왜 이렇게 말씀하시지’ 했는데 이제서야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주시려고 힘든 일을 주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가서 기도합니다.

    일찌감치 큰일을 겪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 저를 믿음으로 살아가게 인도해 주신 거를 살면서 계속 느낍니다. 살면서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늘 평안하게 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일하다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어떨 때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일 것 같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오면 힘든 게 다 날아가서 집에 갈 때는 너무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방 떠서 갔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도와주심을 느끼게 됩니다.

    <딸 은지와 함께>

    # 시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하다

    저희 시어머님이 교회를 안 다니셨습니다. 교회에 전도하려고 어머님을 살펴보면 자식들이 다 잘 살고 부족한 게 없으셨습니다. 너무 착하신데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원교회 다닐 때 한 달에 한 번씩 기도회에서 어머님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기도 부탁을 하면서도 저희 집이 어머님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형님은 천주교를 믿으시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인도해 주실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저희 어머님이 쓰러지셨습니다. 그 때 어머님이 곧 죽을 것 같으셨는지 특히 더 사랑하시는 막내아들을 보고 싶다고 찾으신 겁니다. 그래서 창준이 아빠한테 가면서 어머님이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어머님을 전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얘기했습니다. 창준이 아빠가 어머니를 모셔가서 세례를 받게 하자고 했는데, 사실 저는 형님이 천주교를 믿으니까 반대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형님한테 어머님을 저희가 모셔 가서 세례 받게 해도 되냐고 하니까 너무 쉽게 그렇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안양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받을 때 얼마나 기적 같은 느낌이 드는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한 기도를 잊지 않고 들어주셨구나 하면서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심을 느꼈습니다.

    이후 어머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화장실에서 한 번 넘어지셔서 허리가 골절됐습니다. 그래서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하시고 곧 죽을 것처럼 계셨습니다. 그래서 전홍희 목자님이 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기도해 주셨는데 저희 어머님은 그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도 안 뜨셨습니다. 저도 어머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니까 어머니께 평안을 주시고 사시는 동안에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생각은 어머니가 오래 못 사시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요양병원에 가셔서 더 건강해지셨고, 또 연세가 지금 100세입니다. 당시 어머니 연세가 90세셨는데 10년이나 건강하게 더 사신 겁니다. 이걸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심을 느꼈습니다.

    제가 늘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는지 항상 느끼고 깨닫습니다. 남은 인생도 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복음의 나팔을 불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열매 맺는 삶이 합당한 삶이라는 목자님 말씀이 늘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나이가 50이 넘어가니까 더 열매 맺는 합당한 삶을 살게 해주시고 제 입으로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세례 받으신 어머니>

    *2023년 6월 열린예배,  김미경자매님의 간증을 편집하여 올립니다

  • [성도간증] 안산교회 하경은 집사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아신다는 말씀을 체험 하였음을 간증하려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약 20년 가까이 이명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명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에 비싼 돈을 주고 뜸을 구입해서 치료해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명 때문인지 점점 시간이 갈수록 작은 소리나 주파수가 높은 소리는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압력 밥솥의 칙칙거리는 추의 음을 듣지 못해 다른 가족에게 소리를 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했고.

    현관문 버튼 소리를 듣지 못해 같은 번호를 여러번 눌러 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 였고.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해 방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증상이 점점 심해 지면서 가장 불편 했던점은 상대방과의 대화가 어려워 지는 것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계속해서 되묻게 되고 이런 경우가 반복되면서 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치 알아 들은것 처럼 연기를 하고 혼자 이야기의 내용을 추측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상대방을 오해 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저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가지 생활의 불편함으로 인해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검진을 받아 보았지만 뽀족한 방법이 없다고만 하더군요.
    보청기를 사용할 정도는 아니니 그냥 지내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런 저의 문제를 어쩔 수 없는 노화의 일종이라고 받아들였지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적은 없었습니다.
    이미 차고 넘치도록 받은 은혜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새벽 기도를 교회에서 하지 않았는데 올해 부터 새벽 기도를 교회에서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아침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1월 20일. 그날도 아침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 오는 길이었습니다.
    1월 이였기 때문에 날씨는 추웠고 차 문은 창문까지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오기 위해 5분쯤 운전을 하고 오는데
    갑자기 왼쪽 귀 안으로 강한 바람이 휘~익 불어 들어 왔습니다.
    마치 바람이 왼쪽 귀로 들어 오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여지는 기분 이였어요.

    바람이 왼쪽 귀 속으로 들어 오자 마자 꽉 막혀 답답했던 머리 속이 시원해 지면서 잡자기 세상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고산 지대에 올라가면 기압 때문에 귀가 멍멍 하다가 침 한번 삼키면 뻥 뚤릴때 느낌처럼 귀 안, 그리고 머리가 시원해지고 맑아 졌습니다.

    차 안이라 이런 강한 바람이 갑자기 들어 올 곳이 없는데 너무 신기하고 놀랍고 이상 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전 하나님의 입김이 그순간 저의 귀를 치유해 주신거라 확신 합니다.

    이 일이 있은지 일년이 가까워 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명의 증상은 거의 없고 듣는 부분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 진거 같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 마가복음 5장 34절

    저는 이 여인만한 믿음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고 필요에 따라 다 주신다는 믿음은 조금 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장 26절

     

    성령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제게도 임하셨음을 많은 성도님들께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 [성도 간증] 아토피 치유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성도 간증] 아토피 치유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먼저 이렇게 주의 은혜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중1 가을부터 지금까지 약 2년 정도 아토피를 앓았습니다. 아토피는 식탐을 이기지 못해 먹은 많은 음식으로 인해 누적된 독소, 마음 관리를 잘 하지 못해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혼란 등 여러 원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려움과 진물 등과 같은 증상이 있었습니다. 약 2년 간 미흡한 대처로 인해 작았던 아토피는 계속 커져가 몸 전체로 번지게 되었고, 원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만큼 악화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게 되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없으며 밤에 잠에 들기가 힘에 겨웠으며 일상에서 제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모든 것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온 게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며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록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함께 계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잘 수 없어 힘들어했던 밤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증상 중 하나였던 가려움은 특히나 밤에 더욱 심해졌는데, 이미 상처 부분에는 곪을 대로 곪아 진물이 나왔으며, 손을 가까이 대면 세균 감염이 있어 더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히 손을 댈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긁지도 못하고 가려움만 느끼는 채로 누워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잠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을 감고 긁지 못하게 천으로 감싸둔 손을 배게 뒤에 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잘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면 새벽 즈음에 긁지 않으려고 감싸둔 손이 무색하게 무의식 속에서 감싸둔 손을 풀고 상처를 긁는 제 자신을 보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잠이 확 깨게 되는 나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한 번 깨고 나면 더더욱 잠은 오지 않았고 그럴 때면 저는 기도를 하고, 가만히 누워 시편을 읽어주는 영상을 들었습니다. 특히 시편 121편을 들을 때면 이 밤에도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깊이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121편)

    다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예민하여 작은 것에도 불안해하고 근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토피와 싸우던 중 힘든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힘든 일 그 자체에 대해서도, 그리고 계속 신경을 쓰면 악화될 것이 분명한 아토피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닥쳐온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고, 자연스레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나에게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나의 모든 상황을 얼마든지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며 기도할 때 마음에 평안이 있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감사하게도 힘들었던 상황 또한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후 크고 작은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돈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니느라 (고전 10:13)

    또한 이 병을 가지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중보기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가족끼리만 제 병을 나누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으로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상처 부위를 가리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교회 성도분들도 제가 가지고 있는 아토피를 아시고 기도해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확실한 소망은 가지진 못했습니다. 가족끼리 기도했을 때에는 확연한 변화가 없었기도 했으며 중보기도에 대한 체험도 없었기에 믿음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새벽 기도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지교회의 월, 목 기도회에 참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성도님들과 같이 기도하면서 치료 속도는 확연히 빨라졌습니다. 흐르던 진물을 말라갔고 곳곳에 나온 두드러기는 잠잠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당시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던 때였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저 너무 감사했고 성도님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어 주의 손길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7)”

    또한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으로 아토피가 크게 번지게 되며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학생으로서 꼭 필요한 수업조차 참여할 수 없게 되자 기도와 함께 시작한 치료는 해독으로 몸의 독소를 배출하고자 어떠한 음식도 먹지 않고 효소만 먹는 치료였습니다. 그러나 이 치료는 큰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며, 본래 제가 아토피를 앓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저의 식탐이었던 만큼 이 치료는 모두가 걱정하는 방식이었고 저 또한 아토피를 가지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식탐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기에 제가 이 치료를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해독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시작하였는데, 역시나 해독치료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지럼증이 계속 찾아왔으며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효소조차 입맛에 맞지 않아 계속 헛구역질이 나왔습니다. 이에 처음에는 그저 너무 힘들었고, 이럴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치료가 끝나고 일반식으로 먹을 때 치료 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채소나 과일 등 자연식이 맛있다고 느껴지게 되며, 본래 좋아하던 가공식품에 대한 갈망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 ‘해독’이라는 치료 방법을 알게 되며, 그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과 큰 부작용 없이 회복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고 난 지금, 거의 모든 상처가 가라앉게 되고 흉터와 작은 상처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도 잘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식탐을 가지고도 위와 같이 석 달 동안 가공식품만 끊을 뿐 아니라 어떨 때는 아예 음식을 먹지 않았던 기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더하여 겪고 있는 고통이 원망스러워질 때는 (벧전4:12~13), (고전10:13), (빌4:6~7)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여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모든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오직 주만 의지하여 참 평안을 누리며 주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기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치료 과정 중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제게 허락하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2-13)”

    <안양교회 오다* 자매>

  • [성도간증]임마누엘 나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김*주자매)

    [성도간증]임마누엘 나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김*주자매)

    임마누엘 나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잃은양이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서서히 교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가끔 교회에 나갔습니다. 지금에 와서 감사한 것은 그런데도 믿음 안에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신앙에 열의도 갈급함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안식일 대예배만 간신히 드리고 빠져나가기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 어쩌다 사청부 분반인 성경공부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즈음부터 저의 새로운 신앙생활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음을 깨달아 갔습니다. 또 내가 무릎 꿇고 회개하며 진심으로 주님 앞에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우리 부부의 신앙도 서서히 회복되어 갔습니다. (믿음 안에서의 결혼을 예비해 주셨음에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신앙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바짝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했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주시길 구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너무 죄스러웠고 하나님 뜻대로만 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계속 이어가던 중 2017년 겨울의 일입니다. 저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 첫째가 7살, 둘째가 5살, 막내는 1살이었습니다. 남편은 3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에 근무 중이었습니다. 첫째가 그 당시 유행하던 신종플루에 걸렸고, 이틀 뒤 둘째가 연이어 확진, 다음날은 막내가 확진되었습니다. 세 자녀 모두가 39도를 오르락내리락하였고 증상이 덜하고 더하고를 반복했습니다. 남편은 그날 야간근무로 집에 없었고 홀로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저녁을 먹이고 저녁 7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저에게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 뼈 마디마디 찾아왔습니다. 저 역시 신종플루에 걸렸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녁 9시가 되어 가까스로 아이들을 재우고 열을 재보니 37.9도였고 몸이 너무 아파서 저도 얼른 누워 자고 싶었습니다. 잠이 막 들려는 찰나에 갑자기 첫째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기침이 심한지 온몸이 들썩들썩하고 계속되는 기침에 아이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기침하는 아이도 걱정이고 남은 두 아이가 깰까 봐 걱정되어 첫째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저도 너무 힘들고 이 아이가 이렇게 기침하면 오늘 아이들과 저는 잠을 못 잡니다. 아이 아빠도 없어서 응급실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제발 이 아이의 기침을 멎게 해주세요.”

    얼마나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아이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누워서 잠을 자려는데 잠이 들 즈음 이번에는 둘째가 갑자기 기침을 시작했습니다. 둘째 역시 숨을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기침에 숨이 넘어갈 듯했습니다. 저는 다시 일어나 둘째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둘째의 기침이 멎고 고요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놓고도 아이들이 기침을 그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신기하고 “진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건가?”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고 잠이 들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이번에는 셋째가 같은 기침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셋째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기침이 멎고 방안이 고요해졌습니다. 그 고요함이 왜인지 알 수 없게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내 기도를 들어 주시는구나.” 나는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와 같은 죄인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대놓고 구하는 기도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내 몸이 힘들고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돼서야 나도 모르게 그런 기도를 한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해놓고도 기도의 응답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한참을 울며 기도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영사기를 돌리는 것처럼 화면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에서 나와 남편은 우리 아이 셋을 키우면서 아이 하나를 입양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예뻐서 우리는 그 아이를 자녀 삼기로 마음먹고 우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놀고 행복해할 때 그 아이는 조용히 내 눈치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고 내가 큰소리라도 내면 혼자 구석에서 자기가 뭐 잘못한 것은 없는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엇을 요구하거나 조르는 것도 없었고 주는 것에 만족하며 긴장하며 지냈습니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너도 그냥 내 자식인데.. 다른 아이들처럼 내 자식으로 키우려고 내가 데려온 것인데.. 그렇게 애쓰지 않고 내 자녀로서의 삶을 누려도 되는데.. ”가슴아파 하던 그때 그 아이가 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나에게 구하고 매달렸듯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래도 된다.”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면 이렇게까지 직접 보여주시고 체험하게 하시는지 그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나니 그렇게나 아팠던 몸이 개운해지고 열도 뚝 떨어졌습니다. 다음날 신종플루 검사 결과가 양성이었지만 아무런 증상도 없이 회복되었고, 그날 밤 이후 아이들도 별 증상이 없이 회복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년간 마음속에만 담아둔 경험이었지만 이날의 경험으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자녀로서 누리는 참 평안과 기쁨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 하나님을 찾은 서순애 모매님

    참 하나님을 찾은 서순애 모매님

    발걸음을 인도하심

    저는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난 서순애입니다. 30여년동안 천안 구성동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참예수교회 천안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교회에 다니게된 동기와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신 것을 증거하고자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도록 이끄신 주님의 인도와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4살정도부터 부모님을 따라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님부터 가진 처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옮길줄은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던 중 집안에 큰 시련이 찾아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오귀은 사모님을 통해 참예수교회를 알게되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영은회를 한다기에 자리만 채워달라는 사모님의 권유로 당시 5살짜리 손자인 성찬이를 데리고 구경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참예수교회에 갔을 때 그곳 교인들의 따뜻한 인사와 관심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다짐하기를 참예수교회는 영은회 할때만 가고 절대로 교회는 옮길 수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끌렸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손자 성찬이가 갑자기 이제는 참예수교회가 아니면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교회를 가는데 성찬이가 기사님에게 참예수교회 쪽으로 가달라고 길까지 알려주며 소리질러 재촉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많이 복잡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 주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놀라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남

    성찬이 때문에 참예수교회를 계속다니면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적은 성도들의 찬양이지만 듣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마음의 감동이 밀려들어 스스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전에 성경말씀도 나름대로 많이 통독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참예수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을 받아주신다면 이곳에서 몸을 담고 열심히 헌신하며 살겠노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지 오래지않아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마음에 큰 성령의 감동과 뜨거움이 느껴지며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주님 속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경말씀대로 세례를 받고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심장 혈관이 막힘

    성령을 받고 약 1년이 되었을 2012년 10월말쯤이었습니다. 심장에 부정맥 증세가 있어서 순청향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심장 한 곳이 완전히 심하게 막혀서 급하게 시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12월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저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날짜를 미루어 왔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주님의 자녀, 살아도 주님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지 생각하며 주님께 맡기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안수기도를 받고나면 늘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계속적인 증상과 가족들의 독촉등으로 시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2013년 3월 27일 입원을 하여 다음날 시술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입원을 하니 저도 사람인지라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목자님이 저녁 시간에 병문안을 오셔서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해주실 때 온 몸이 사정없이 떨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끼며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수없는 벅찬 감격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남

    다음날 오후 1시에 수술에 들어가는데 간호사가 곁에 있던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이 시술은 위험하니 어머님께 잘 격려해주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저 두렵지 않아요. 저의 생명이 다 되었다면 어쩔수없겠지만 조금더 넉넉하게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하며 울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점검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시작되었습니다. 잠시동안 요란한 소리가 나고 마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담당 교수님이 급히 저를 깨웠습니다. “서순애 환자 눈을 떠보세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막혔던 혈관도 뚤렸고 예전보다 더 깨끗하고 강심장이 되었네요” 의사도 믿기지 않는듯 놀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고, 당신의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부모님께 잘 해드리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큰 기적을 체험함으로 제가 찾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섬세하게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저의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하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좋은 자녀로 남은 삶을 살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성찬이 뿐만아니라 제 며느리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날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아멘

    현재 며느님 이원선자매, 손자 성찬이와 보미, 모두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서순애 자매님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의 사랑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 심한 알콜중독에서 치유되다(Healed from Excessive Alcoholism)

    심한 알콜중독에서 치유되다(Healed from Excessive Alcoholism)

    안효상 역

    약 7년전, 내가 하는 사업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술을 마셨고 도박을 즐겨 했다. 한번은 도시로 출장을 갔다. 한 친구가 나를 그의 집에 초대하였고 카드놀이를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도매 상품을 구매하는 일 대신 난 그와 함께 카드 놀이를 했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7일 낮 7일 밤 동안 그의 집에서 머무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이 때 우리는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 우리는 오로지 와인을 마시며 갈증을 풀었다.

    7일째 되던 날, 나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는 카드 놀이에 참가할 또 한 사람이 올 것이라며 날보고 더 있다 가라며 설득했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한 시간 가량 수영을 하러 밖에 나갔다. 수영을 하고 난 후 지치고 배가 고파 물에서 나와 새우를 와인에 담구어 먹었다.

    그런데 약 20분 후 먹었던 모든 것을 다 토해버렸다. 기다렸던 사람은 도착했고 우리는 다시 카드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약 두 판 정도가 진행된 후 난 너무 힘이없어 과일과 함께 와인을 몇 잔 더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졸음이 왔고 식은땀이 흘렀다. 털이불을 5개나 덥었는데도 몸이 벌벌벌 떨렸다.

    친구는 걱정이 되어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는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곧 영안실로 데리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회복이 되었지만 의사의 경고를 들으니 술을 마시는 것이 두려워졌다.

    하루는 결혼식에 참석해서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신부 아버지집에 도착할 때 쯤 쓰러졌다. 그리고 응급차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날 결혼식은 처제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결혼식에 가려고 했다. 도착했을 때 물 한잔을 마셨지만 몸이 다시 힘이 없어짐을 느꼈다.

    의사는 아내에게 내가 간경화가 너무 심하여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잘 하면 3년 정도 살 것이라고 했다. 이후 나는 알콜중독자 보호치료소에서 41일간 지내야했다.

    그곳에서 나온 뒤 약 4개월간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은 이웃과 사냥을 갔는데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술 중독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와인 6병을 단 2시간만에 마셔버렸다.

    밤에 나를 문 모기들이 내 피속에 있는 알콜에 취하여 기절한 것 까지도 보았다. 난 가정생활과 일도 게을리 하였고 오직 술을 위하여 살았다.

    결국 아내는 아무말도 없이 나를 떠났다. 매일 난 너무나 취해 있었고 나중엔 가족들이 모두 다 집을 나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만일 내가 이 집에서 갑자기 죽어도 아무도 내가 죽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불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집을 팔고 다른 도시로 사업을 하러 이사를 갔다.

    그러나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약 6개월 뒤엔 몸을 벌벌 떨지않고서는 단 몇 걸음도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그 도시에는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형제 한 명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의 상태를 보고서 함께 교회에 가자고 청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치유해주시기 바라며 … 참예수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가면서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 세례를 받기 약 4~5일 전 나는 성령을 받았다.

    내가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날은 1981년 11월 1일이었다. 그런데 세례식 전 한 친구가 와인을 마시자며 나를 유혹했다. 난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술 이라고 생각했다. 난 두 병의 술을 마셨지만 단 다섯 걸음을 걷기도 전 마신 모든 술을 다 토해버렸다. 얼굴이 온통 빨개졌고 사람들은 내 몸에서 술 냄새를 맡았다.

    그래도 하나님은 날 불쌍히 여기셨다. 내가 세례를 받던 날, 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도 난 나의 죄를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이후 나는 완전히 치유되었고 축복 받았다.

    지금 나의 삶은 안정되었다. 나는 교회 일에 열심인 사람이 되었다. 날 떠났던 아내도 돌아왔다. 아내는 나에게 참예수교회의 신학 교육 과정에 참가하라며 성경말씀 중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도 나에게 가르쳐주곤 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구해주시고 나에게 또 한 번의 삶의 기회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