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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행복한 가정의 비결(엡5:28~6:4)

    [말씀제목] 행복한 가정의 비결(엡5:28~6:4)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설교일] 2023년 5월 5일(토) 오전예배

     

    톨스토이는 사람이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정을 대체할 곳이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세운 신 천국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천국 같은 가정을 가꾸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는가 되돌아보자.

    우리의 수고는 가정에 필요한 것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은 교회와 가정 두 개 뿐이다.

    바울사도는 에베소교회에게 교회와 가정의 비밀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비밀인지 말해준다.

    신앙 생활이 구원과 관련 있다면 가정 생활은 행복과 관련 있다.

    구원의 행복을 바로 교회와 가정에 숨겨두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교회가 세워졌듯이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비뼈를 취하여 가정을 만드셨다.

    교회와 가정의 공통점은 희생과 헌신,죽음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수고와 헌신이 있을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가정은 이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경청하는 가정임을 잊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

     

    1.부부의 관계 (엡6:24-25)

    [엡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가정의 행복이다. 그 비결은 바로 긍휼의 눈이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봐 주신 것처럼 우리도 남편을, 아내를 긍휼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수치가 있더라도 사랑으로 허물을 감싸주고 긍휼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부부 사이의 첫걸음이다.

    남편의 수치나 아내의 부족함을 드러내지 말아라. 오직 서로 경외하고 사랑하라 .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헌신과 수고가 필요한 법이다.

    긍휼의 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실천해야 될 말 3가지가 있다.

    고미사

    ‘고’: 고마워요. ‘미’:미안해요. ‘사’:사랑해요.

    2.부모와 자녀의 관계(엡6:1~4)

    1)자녀는 부모를 공경,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

    철이 드는 순간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한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사랑 받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어느 자녀든지 부모를 공경. 존중.사랑하시길 축원 드린다.

    2)[엡 6: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소망을 품고, 희망을 품어 대해야 한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3.하나님과의 관계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교회가 거룩하길 원하는 것 같이 가정이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가정에 부모를 세운 것은 신앙을 잘 지켜서 다음 세대에 전승 하라는 것이 다.

    우리는 신앙의 가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세속적인 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

    세속과 교회 사이에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붙들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자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성령충만 할 때이다.

    늘 기도로 성령충만하기를 간구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

    성령이 충만해졌을때, 긍휼의 눈이 회복되어 부부-부모가 행복한 가정이 완성된다.

     

  • [기관소개]강남교회 사청부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참예수교회 강남교회 사청부장 황명진 형제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매일매일 어제보다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신앙을 가진 강남교회 사청부입니다.

    강남교회 사청부의 평균 출석 인원은 11명이며 대다수가 교회교육의 사명을 고  학생부, 아동부교사로서 교회의 미래를 위해 섬기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교회를 위해 일하느라 함께 하는 시간은 비록 적지만  어느 참예수교회 사청부와 비교해도 끈끈함은 절대 약하지 않음을 자신합니다.

    강남교회 사청부는 작년부터 잃은 양 되찾기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분기별로 잃은 양 편지 쓰기와 잃은 양별 연락 담당자를 두어 지속적으로 접촉하여 교회와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소정의 성과를 거두어 세  정도가 최근 1년간 교회에 출석하거나 외부 사청부 행사에서 함께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소망에 주께서 함께하시고 이와 같이 인도하셨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강남교회 사청부는 항상 교회를 마음의 중심에 두기 위해 대학부와 연합하여 매일 말씀묵상과 정시 기도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모두의 생활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서로 권면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매 주 소그룹 시간에 독서토론, 오전 예배 말씀에 대한 생각 교환 시간을 통해 영적 성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어떠한 곳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소명대로 살아가며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주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강남교회 사청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강남교회 사청부 안식일 활동 시간표

    시간 사청부 학생부 아동부
    14:00~14:30 학생부 말씀 아동부 예배
    14:30~15:30 사청부 소그룹 학생부 소그룹
    15:30~16:30 청년부기도, 찬양, 광고
    16:30~18:30 대학사청부 성경공부

     

    ● 강남교회 사청부 자체 활동

    – 月 1회 아트갤러리 방문

    – 年 2회 사청부 나들이 (잃은양 초청)

     

    작성자|참예수교회 강남교회 김정남

  • [기관소개] 천안교회 온유반을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천안교회 온유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천안교회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꽃과 같은 존재 온유반을 소개합니다.

    온유반은 성령의 열매중에서 ‘온유’를 신도회 이름으로 선정했고, 현재 14명의 예쁜 자매들이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온유반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30대부터 50대까지 자매들로, 현재 14명의 성도님들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Q. 온유반만의 영성관리 활동이 있다고 들었어요!

    온유반 모두가 성경 일독을 목표로 열심히 성경읽기와 기도하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온유반의 자랑거리는 매주 총회에서 제공하는 참예수교회 10대신앙의 영상을 듣고 밴드를 통해 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온유반 성도들이 매주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온유반의 활동은 주로 무엇이 있나요?

    온유반은 성도님들을 위해 안식일 점심과 저녁을 책임지고 봉사하고 있습니다. 매주 다양한 음식으로 성도님들에게 기쁨을 드리고 있습니다.

    야외활동으로는 교회에 잘 안 나오는 잃은양과 전도대상자를 초청해서, 두 달에 한 번씩 야외 활동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만남의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전도대상자들이 자연스럽게 성도들과 가까워지고, 교회에 관심을 갖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Q. 전도를 위한 특별한 활동이 있다고 들었어요!

    매주 오후 소그룹예배가 끝나면 개인 전도활동에 대해서 서로 공유도 하고, 어려운 점도 나누며 전도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영은회가 되면 전도대상자 초청선물로 복숭아잼이라든지, 피클을 만들어서 초청장과 같이 나눠 주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온유반이 예수님의 성품인 ‘온유함’을 닮아가 예수님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전할 수 있는 온유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관소개] 사청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사청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수원교회 사청부를 소개합니다.

    1. 사청부 구성

    사청부는 20대 후반 ~ 40대 초반의 연령대로,

    25여 명의 형제자매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외에 잃은양과 전도대상자가 20여 명이 있어 기도부탁드립니다.)

     

    1. 사청부의 안식일 일정

    10:30~12:00 오전 대예배

    12:00~13:30 점심식사 및 다과

    13:30~14:30 소그룹 활동 ( 형제 : 화평반 / 자매 : 온유반 )

    14:40~15:10 오후 기도회

    15:10~16:00 청소 혹은 장보기

    16:00~17:30 저녁 식사 준비

    17:30~19:00 저녁 식사 및 뒷정리

    19:00~ 교제 활동

     

    1. 사청부의 특별활동

    1) 심방 활동

    1~2개월 주기로, 10여개가 넘는 기혼가정에 방문 및 심방활동을 합니다.

    방문 가정을 위해 다같이 기도하고 다과를 통해 교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코로나로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기 위해 시작한

    이 활동인데요.

    장차 잃은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해 자연스런 만남의 자리가 되도록 기반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2) 언택트 기도회

    건강한 기도생활을 위해 서로 힘을내고자 시작한 활동입니다.

    매일 각자의 가능한 시간대(기상, 출근 전, 점심시간, 퇴근 후, 취침 전 등)에 기도한 이후

    단체톡방에 기도 인증 사진을 올리고 있습니다.

    서로 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고, 응원도 되기에 기도생활에 힘이 되고 있습니다.

    단체톡방엔 교회에 잘 나오지 못하는 형제자매들도 일부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기도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긍정적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3) 저녁 식사 준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청부에서 대학·중고등부 학생 및 교사들의 저녁식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교제에 목마른 사청부가 저녁까지 교회에 있어야 한다며 시작하게된

    저녁식사 였습니다. 이에 자연스럽게 청년반 예배가 끝난 후, 대학·중고등부 학생 및 교사들도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안식일 저녁까지 교회에 머무르며

    건전한 교제를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주마다 부부인 형제 자매들이 자발적으로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하며,

    모든 사청부들이 도와 식사를 준비합니다.

    학생부와 교사들은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며 모두가 함께하는

    안식일 저녁식사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4) 잃은양 관리

    잃은양과의 자연스런 연락과 접촉을 위해 경조사를 따로 챙기고 있습니다.

    생일 결혼 혹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소소한 선물과 함께 관심의 표현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담이 안돼는 선에서 최소한의 접촉을 유지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함께하기를 소망한다는 작은 관심의 표현을 통해

    그들이 신앙으로 돌아올 통로를 열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1. 향후 계획

    수원교회 사청부는 모든 활동이 전도활동으로 이어지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며 어려운 일은 함께하고자 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사청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 [복음 메세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복음 메세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말씀제목]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설교자] 이요셉 목자

    [설교일] 2023218() 안식일 오전 예배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꿀벌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꽃이 피는 봄입니다. 반대로 꿀벌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장마가 있는 여름입니다. 높은 습도와 병, 부족한 먹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 일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에 힘을 쓰다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 힘들까요?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심지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곤충의 세계에서도 스트레스 받으며 사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학업, 취업, 결혼, 경제적 문제 등과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병원에서도 병명이 없는, 이유가 없는 병이 많이 생겼습니다. 의사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격적으로 보았을 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심령의 근심은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음의 평안함은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평안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바울사도의 서신에서도 성도들을 축복하는 내용을 보면 예외 없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고 신앙 안에서도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평안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평안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에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예수님의 심적 상태가 평안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하다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임박함을 알고 계셨던 때였습니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의 육신적인 입장에서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큰 환란이 오고 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평안하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누리신 마음의 고요함이 우리의 평안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괴로운 것, 성가신 것이 없다면 평안할 텐데 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의 평안은 세상의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세상에도 평안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어떨까요? 첫째로 세상의 평안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에 나의 평안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내가 웃으려면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세상의 만족과 그것을 인해 찾아오는 평안이 그렇게 고급한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하나를 얻었다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골고루 갖추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얻었다고 하여 전부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안하려면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비교적 젊은 청년의 시대에는 골고루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있으면 될 줄 알고 그것을 위해서 쫓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려면 돈, 건강, 가족, 지식 등등 많은 것들이 고루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떤 하나만 얻었다고 하여 다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다 한들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셋째로 세상의 평안은 일시적이고 기쁨과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 타인과 나를 비교합니다.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나은 곳에 있다고 느끼고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이 이것입니다. 요즘은 sns을 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찍어서 올린 것을 볼 때에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고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고 내 인생이 저급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누리는 평안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님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걱정이 없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좋은 것이고 세상의 것은 다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평안을 주실까요? 본문에서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돈이나 건강을 직접적으로 주신다는 뜻일까요? 이것은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내가 맺는 신앙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평안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화목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안이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자라나며 자기의 욕심을 따라 행동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죄에 물들어 있고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는 마치 고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보호하심 없이 사는 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해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것이 없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께서 설립하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해졌습니다.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화목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집 안에 있기 때문에 평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속이 상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백성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하셨던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다 순종하셨고 말씀하신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임의대로 살아가면 마음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불안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은 비교적 형통하게 살아가나 그 삶속에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 풍랑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가 매우 고요하고 평안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평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출렁이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너그럽고 평안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럽고 평안하게 대하는 법입니다.

     

    평안에는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런 평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조건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나이가 들수록 많은 문제들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평안을 배워서 이것으로 믿음을 얻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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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남겨두심과 지키심(요 17:15)

    [복음메시지] 남겨두심과 지키심(요 17:15)

    [말씀제목]  남겨두심과 지키심(요 17:15)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3년 4월 21일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다른 것을 구하시지 않으셨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하셨다. 이 ‘보전함’은 주님께 중요한 문제였다. 

    (요 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보전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보호하다, 간수하다, 지키다’ 라는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전하게 잘 지키는 것이다. 변질되지 않도록, 상하지 않도록, 흠이 생기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이것을 기도하셨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그들을 지켜달라고 요청하셨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 정신 구조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며, 사고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미워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삶이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구하셨다. 어떤 악이 나타나더라도 우리가 거기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하시는가?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남겨달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보전해달라는 간구와 모순된 것이 아닌가?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저희를 데려가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째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하늘에 들림받지 않는 것인가? 왜 완벽해지지 않는 것인가? 왜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받게 하시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다.

     

    *우리를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

    1. 우리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도 데려가주시기를 간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세, 엘리야, 요나 같은 사람이다. 세 사람 모두 하나님께 데려가주시기를 구했다. 

    (욘 4: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욘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민 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는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데려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려가시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이 이땅에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누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으시다. 이땅에서 할 일이 있다. 제자들이 가버리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에서 어떤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예수님을 드러내야 함을 알려주신 것이다. 즉, 우리는 주님께서 이땅에 남겨주신 자들이다.

    2. 삶은 우리가 완전해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온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해져야 한다. 우리에게 점진적 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남겨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패와 고난으로 겸손하게 하신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언제든지 교만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느끼게 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인정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으로 만들고자 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발전 과정 중 일부이다.

    *교훈

    1. 우리를 세상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계획과 다르다. 자살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절대 이런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는 큰 허무함 속에 사로잡혔다. 자기의 삶이 부정당하는 일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래도 엘리야는 스스로 죽지 않았다. 하나님께 데려가주시기를 간구했다. 설령 자살 생각이 들 때에도, 스스로 생명을 거두어가는 선택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한다. 자살은 어떤 방식에서라도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이 좋다. 자살은 성도의 선택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자살뿐 아니라, 세상에서 떠나려는 모든 시도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자연인처럼 속세에서 떠나거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와 의미적으로 반대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 진리를 회피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견디는 것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자기를 지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은둔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 일을 하면서, 우리를 세상에 물들지 않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남겨두신 이유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이다. 우리가 세상 안에 있어도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게 우리를 지킬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세상에 물들지 않게 지켜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떠나려 해서는 안 된다.

    2.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절대 불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아도 시련 속에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이것을 허락하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를 그 상황에 넣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제자들도 그것을 위해 남기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내가 만나는 환경, 상황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불평해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상황을 만나게 하셨냐고 불평한다면,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상황 속에 나를 넣어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3.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겨두시는 이유는,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상황 속에서 불평하거나 불만을 품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살다가 무너지더라도, 우리 삶은 실패한 삶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만 한다. 감사하며 살아야만 한다.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이것을 세상에서 받은 가장 큰 특권처럼 기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예수님의 대변자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완수하라고 이 땅에 자신을 남겨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이다.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확신하신다. 우리를 보존하여 지키시는 아버지의 능력에 대해 확신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께 우리를 부족함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기를, 주님의 영광을 항상 드러내게 하시기를 기도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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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십자가 주변의 인물(6)-예수와 동행한 여인들(눅8:1-3, 마27:55-56, 막15:40-41)

    [말씀 제목] 십자가 주변의 인물(6)-예수와 동행한 여인들(눅8:1-3, 마27:55-56, 막15:40-41)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4월8일

    우리는 구약 성경 속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 가운데 가끔 여인들의 이름을 발견하곤 한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사사 시대를 이끌었던 여자 사사 드보라, 서원 기도를 통해 사무엘을 낳은 여인 한나,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한 모압 여인 룻, 민족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황후 에스더 등 믿음의 여인들이 있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신앙인들에게 잔잔한 교훈을 전달하는 소박한 믿음의 여인들도 있다. 엘리야 선지자를 접대한 사르밧 과부, 엘리사 선지자를 위해 섬세히 배려한 수넴 여인,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병이 낫게 만든 한 이름 없는 소녀 등 이렇게 성경에서는 믿음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이 발견된다.

    십자가 사건이 있었던 그 때 그 현장에도 여인들이 있었다. 오늘은 십자가 현장의 인물 가운데 주님을 따르고 섬겼고 동행했던 여인들의 족적을 살펴보고 그녀들의 신앙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사시는 기간 동안 그 분 곁에서 섬기는 여인들이 있었다. 누가는 당시 사회적 약자이지만 믿음의 주역인 여인들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그래서 마태나 마가와는 달리 여인들의 이름을 나열할 정도로 그 여인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

    (눅 8:1-3)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님의 곁에는 열 두 제자 뿐만 아니라 섬기는 여인들도 있었다. 그 여인들 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여인은 바로 일곱 귀신이 들렸다 나간 자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리고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라는 여인도 있다. 이외에도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우리는 마가복음 16장에서 또 다른 여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살로메라는 여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주변에는 상당히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고 있었다.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그러면 이 여인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모범을 교훈하고 있는가?

    첫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모범.  

    (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누가복음 8장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16장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첫 이름으로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신 사람이었다. 그녀는 본래 일곱 귀신이 들렸었고, 예수님이 그녀를 치료해 주셨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서 그녀는 주를 섬겼고 그 섬김은 주님이 죽으신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 외에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여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 일행을 섬기기 시작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바로 이 여인들의 봉사와 섬김의 이유는 주님께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고, 감사했고 봉사와 섬김의 열매로 나타냈던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관심을 두시는 열매이기도 하다.

    (눅 17:17-18)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언젠가 예수님이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유해 주었을 때 그 중 한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어준 사람은 여럿 있었다.이렇게 여러 사람이 은혜를 입었지만 지속적으로 주님 곁에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실천한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였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감사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혜 입으면 주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교회 중에 손님 접대로 섬김의 믿음을 실천하는 장로님 내외 분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남편인 장로님은 젊었을 때 아내가 대만 손님을 지극히 섬기는 모습을 못 마땅히 여겼다. 또 회당 건축할 때 거금의 헌금을 한 것을 알고 더욱 못마땅해 했다. 그런데 장로님 부부가 대만을 방문해서 귀빈 대접을 받고는 그들의 섬김에 매우 감동했다. 그 섬김의 모습에 감동해서 장로님도 사모님처럼 손님 접대에 섬김을 다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한국에 가면 모 장로님을 꼭 찾으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섬기는 일에는 돈, 체력, 시간이 소모된다. 모든 수고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감사와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오늘날 성도님들은 예수님이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이 어떻게 나타나고 계신지?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수행하는 여러 봉사의 모습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다. 형태는 어찌되었건 항상 주님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열매를 나타내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둘째, 주님의 십자가에 동행하는 모범.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님의 곁에서 가장 가까운 자로 자처했던 12 제자들은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모두 그분을 떠나갔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울며 골고다의 현장까지 동행한 여인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백성들의 주목을 받는 순간에도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한 일을 당하는 순간에도 이 여인들은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은 그 상황에서 여인들이 나타낸 슬픔의 표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눅 23:27-28)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수난의 길을 좇아간 자들은 남자들이 아닌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자 이동하신 길에도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한 여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모범을 전달하고 있는가? 일반적인 사람들은 밝고 기쁘고 행복한 일에는 동행하길 원한다. 그러나 어둡고 슬프고 불행한 일에는 동행하길 원하지 않는다. 마음이 슬퍼지고 어둡고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길은 바로 십자가와 동행하는 길이다. 그래서 성도가 슬픈 자들의 슬픔에 동참하고 아픈 자들의 아픔에 동참할 줄 알기를 원하신다. 이 여인들이 십자가와 동행한 모습은 바로 그런 믿음의 모범을 남기고 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디 주님의 기쁨과 희락 뿐만 아니라 주님의 슬픔과 아픔에도  동참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란다.

    (롬 12:15-16) 『[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셋째,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하는 모범. 

    (요 20:18-19)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최초로 모습을 나타낸 사람이 누구였는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었다. 주님이 주신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항상 주님을 따라다니며 섬겼던 여인, 그랬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가장 먼저 나타내셨고, 마리아는 그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했다.

    누군가 내게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그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서 눈앞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기리고 감사한다면 더 아름다운 일이다. 다윗 왕은 죽은 친구 요나단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그 아들 므비보셋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가?

    하나님은 이런 성품의 사람을 사랑하신다. 또 성도가 모두 그런 신앙을 나타내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십자가 사건은 이미 이천년 전 사건이고 내가 세례 받은 사건도 이미 수년 전 사건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항상 그 은혜의 감동 속에서 사는 것 이 또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감사에 합당한 믿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후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살게 된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에는 이름은 없고 그저 여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던 그 여자들 안에 주님을 섬기던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 강림을 준비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에도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의 현장에 있었던 여인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구원에 은혜에 대해 섬김의 삶으로 화답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바란다. 고통과 슬픔과 아픔의 처지에 있는 성도들과 동행해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은사와 형편대로 복음 전파의 사역에 참여하고 협력하고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란다. 십자가 현장까지 동행했던 그 여인들의 믿음의 길을 좇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BGpIMX0VsMs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 [복음메시지] 서로 사랑하라 (요 13:34-35)

    [복음메시지] 서로 사랑하라 (요 13:34-35)

    [말씀제목]  서로 사랑하라

    [설교자] 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3년 4월 14일 금요일 저녁 예배

     

    [본문말씀] 요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해야 할까요?

     

    1.  사랑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3.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라..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으로 우리의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까요?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

    1.  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랑

    (요 13:4-5)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이신, 선생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있습니다.

     

    2.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나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그만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3. 대상을 초월한 사랑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준 제자들 중에는 예수를 팔고자 마음 먹은 가룟유다도 있었습니다.

     

    (요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팔고자 한 가룟유다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사랑하신 것을 생각하며 그 또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핍박하고 십자가로 내몰은 사람들을 위해 원망이 아닌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그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더 큰 우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바라옵기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 나누기에 힘쓰는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복음메시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삼상 2:27-36)

    [복음메시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삼상 2:27-36)

    2023년 04월 18일 (화) 저녁예배

    [설교제목] :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본문말씀] : 사무엘상 227~36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사무엘상을 통해 알 수 있는 주제는 크게 2가지다.

    1.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세우시는가?

     하나님 나라 = 교회

    2.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어떻게 세우시는가?

     1) 왕 2) 제사장 3) 선지자

     

    (27) ‘하나님의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를 택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그러나 본문말씀의 3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거두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약속을 철회하셨는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30)

    그 이유는 엘리 가문에 문제가 있기에 축복의 약속을 받을만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의 보응을 치르시는 분이시다.

     

    ◈ 엘리 가문이 받게 될 죄값

    1. 늙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일꾼이 없을 것이다. (31)

    2. 가문의 사람들이 죄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33-34)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삼상 4:17-19)

    3. 구걸하다시피 제사장 직분을 이어갈 것이다. (36)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36)

    (삼상 4:20-21)

     

    ◈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베푸신 은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7-28)

    1.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27)

    2. 존귀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다. (27)

    3. 제사장의 분깃을 얻게 하셨다. (28)

     

    ◈ 엘리가문의 죄악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29)

    1.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2.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귀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은 행위다.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출 20:5)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 22:37)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다.

    (마 10:37)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이 아니다.

    3. 하나님께 드린 것을 빼앗았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꾼을 세우심으로 엘리 가문을 심판하신다. (35-36)

    그 새로운 인물이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상에 걸맞는 태도이다.

    (행 13:22) 다윗도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뜻에 합당했기 때문에 귀하게 쓰임받았다.

    (눅 1:38) 마리아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응답했다.

    (눅 5:5)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5) ‘나의 기름부음 받은 자’ : 마쉬아흐 = 메시아

    (히 6:20) 우리는 대제사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제사장으로 쓰임 받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나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자기 생각과 주장이 강해서는 안된다. 서로를 이해하며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가장 충실한 일꾼,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유튜브 예배링크

  • [복음메시지] 70인을 보내시다 (눅10:1~15)

    [복음메시지] 70인을 보내시다 (눅10:1~15)

    [말씀제목] 70인을 보내시다 (눅10:1~15)

    [설교자] 전홍희 목자

    [설교일] 2023년 4월 15일(토) 안식일 예배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10:1)

     

    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작품이죠.

    어느 겨울, 저는 길을 지나다가 미용실에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것을 보게 됐습니다.

    어떻게 겨울에 꽃이 활짝 피어있을 수 있었을까? 너무 궁금하여,

    미용실로 들어가 주인에게 그 비법을 물었습니다.

    미용실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내가 따뜻하기 때문에 겨울이 되어도 꽃이 필것이라 생각했다고 말이죠.

    그러나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이후 식물박사를 만나게 되어, 이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박사님이 식물의 놀라운 비밀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꽃이 피기 위해선, 밖에서 서리를 맞을 때 까지 기다려야 하며,

    서리를 맞은 이후에 실내로 들이면 꽃이 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꽃은 서시를 맞으면 본능적으로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시련이 있은 후에 꽃을 피울 수 있구나’ 라는 교훈을 얻게 됐죠.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갈때 힘들고 아픈일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선,

    이러한 시련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 가운데 우리는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은 이 세상의 어떠한 가치보다도 높고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결코 없습니다.

    이런 선한일에 앞장서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요?

    70인을 파송하시는 오늘의 본문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내가 복음전파 하려는 곳은, 주님께서 가실 길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복음전파는 나 혼자가 아닌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인데요.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 주와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도는 절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며, 주께서 하시는 일이며 단지 우리는 그 도구에 불과합니다.

    본문에서는 두 사람을 짝지어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이 서로 격려 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믿음의 동역자를 보내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일꾼이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의 동역자를 보내주시길 기도드려야 합니다.

    수많은 영혼들에겐, 수없이 많은 각자의 처지와 사연이 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설득력있게 전달되기에 적합한 다양한 동역자들이 필요한 것이죠.

    나 혼자서 모든것을 다 할 수 있다는것 보다,

    믿음의 동역자를 보내주시길 기도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쉬운일도 아니기 때문이죠.

     

    세 번째,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접하게 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어야만, 그 가운데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전하는 일은, 힘들고 두려운 상황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오히려, 세상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하고 상처 받을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선 뱀과 같이 지혜로우되,

    비둘기처럼 순결한 마음을 지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번째, 전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소개하고 계신데, 이를 믿고 행해야겠습니다.

    1) (눅10:4~8)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내가 세상적으로 필요한것을 찾고 준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해야할 일이 있을 때 믿음으로 곧장 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2) (눅10:4) 목적에 충실하라.

    *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

    당시 팔레스타인들의 특징은, 오랜만에 문안을 하면 30분씩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문안하다보면, 본래의 전도 목적을 잊게 될 것입니다.

    * 주는것을 먹고 마시라

    음식이나 대접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가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 많아져

    복음전파의 본 목적을 잊게 됩니다.

    * 옮기지 말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면 서로를 비교하게 된다. 대접받는 것이 중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로인해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돋보기가 한 곳에 집중했을 때 힘을 발하듯 목적에 집중해야 합니다.

    * 복음 전파할 때, 결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 복음을 전파한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전한다 해도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너무나 소중하며 세상의 어떤것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대사로 여기고 계십니다.

    때문에 주께선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믿음을 가지고, 전할 사람들에게 용기 있게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글 작성자 : 안희수 형제

    (유튜브 예배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