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거제교회

  • [복음 메세지] 우리를 이루자

    [복음 메세지] 우리를 이루자

    2024.5.24 안식일 오전 임성열 목자님 설교

    ㄴ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설교영상으로 이동됩니다.

     

    ?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우리”라는 연합이 되기를 원하실까 ?

     

    1. “우리”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시 133:1) “우리”로써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아름다움은 “우리”에 있다.

     

         2. “우리”는 강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연약하기에 우리로써 강해질 수 있다.

    (시133:2) “선하다” = 함께함으로써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힘이 된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의 이런 하나되려고 하는 마음을 흩으려고 한다. 흩어지면 약해지니까.

    신앙이라는 것이 혼자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고, 혼자 있는 아담이 좋지 않게 보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만드셨고, 혼자 있는 아담이 보기 좋지 않다 여기셔서 하와라는 짝을 만들어주셨다.

    즉, “신앙은 결코 혼자할 수 없는 것이다.”

     

         3. “우리”에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시 133:3) 하나님께서 교회에 복을 명하셨고, 교회는 곳 우리이기에,

    “우리에게는 행복(=영생)이 있다.”

  • [복음 메세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복음 메세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23.10.28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ㄴ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설교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죄와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죄와 싸우게 될까? 타락의 가능성이 있을까?

     

    죄 =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것.

     

    실질적으로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피조물은 반드시 그 명령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닌, 감히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천국에 가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있다.”

    그렇다면 거기에서도 죄를 지어 재타락할 수 있는 걸까? “전혀 없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 관계 (화목하냐, 불화하냐)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그곳(집, 교회, 학교 등)이 천국이 됨.

    (출 19:22) 하나님과 불화하면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돌격을 당하게 됨. (진노를 받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진노를 받아야 했던 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됨.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됨)

     

    단순히 성경 통독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진 않음. 어떠한 계기를 통해 더 고차원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 (ex. 욥)

     

    ?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부르신 걸까 ?

     

    1. 우리를 단순히 적당히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부르심.
    2.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지 않으면 말세의 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함.
      -> 나중에는 성막만 무사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소와 지성소만 무사함. 그곳을 제외한 나머지도 밟히게 됨.

     

    즉,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결국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음.

     

    ? 어떻게 하면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

     

    관계의 종류

    1. 원수 같은 아들
    2. 종 같은 아들
    3. 친구 같은 아들 (요 15:15)
    4. 신부 같은 아들 (계 21:2) = 교회의 마지막, 완전한 모습. = 하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된 상태.

     

     

    <웬수 같은 아들>

     

    (눅 15:11) 아비에게는 2명의 웬수 같은 아들이 있었으나, 둘째는 재산을 미리 상속받고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여도 방탕하게 쾌락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음.

     

    세상을 사랑해 세상으로 향했다. = (요일 2:15-16)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다.

    => 웬수 같은 아들.

     

    둘째는 집 나간 웬수라면, 첫째는 집 안의 웬수였다.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첫째는 헤아리지 못함.

    첫째가 웬수인 이유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고 은혜임에도,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함. (아버지와의 관계가 깊지 못함)

  • [교회소식] 8.15 거제교회 세례식

    [교회소식] 8.15 거제교회 세례식

    지난 8월 15일, 거제교회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장소는 늘 그랬듯이 거제 옥화마을 바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수세자는 김도연 자매님, 아들 윤채민, 그리고 지광자 자매님의 모친인 김계순 모친이었습니다.

     

     

    셋 모두 무사히 세례식을 마치고, 세족례까지 마치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세 사람의 신앙 생활을 응원해주시고,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 [복음메세지] 존귀한 자의 기도

    [복음메세지] 존귀한 자의 기도

    2023.9.16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ㄴ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설교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존귀하다: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하다.

    세상에서의 존귀함은 자존감, 학벌, 직업, 명예 등으로 귀하다는 것을 나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존귀한 자.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고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기 때문.

     

    존귀함“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게에서 비롯되어 나에게 덧입혀지는 것.

    존귀함 무겁게 여기다. 영광.

     

    (삼상 2:30) “존중히” = 무겁게 여기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무겁게 여기신다는 것.

    => 즉, 존귀함은 세상물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 시인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영광이 됨.

     

    ***

     

    없으면 더 불편한, 덜 불편한 손가락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더 존귀함을 받는 사람이 있다. (ex.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모세, 요셉, 바울…)

     

    ?특별히 존귀함을 받는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상 4:10)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심. -> 하나님께서 야베를 더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

    야베스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바로 들어주심.

     

    ?야베스는 어떻게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쌓았고, 야베스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을까?

    (대상 4:9) 야베스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야베스를 낳음 -> 그 고통과 결핍 속에 야베스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함.

    우리의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도 좋지만, 이 고통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면 그 고통도 복이 됨.

    (대상 4:10) 야베스는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

     -“복에 복” -> 히브리어의 문법. 필연적 강조.

     -“지경을 넓히다” -> 자신의 물질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확장.

     -“환난” -> 악한 일.

     -“근심” -> 수고 (대상 4:9) = 고통이 없게 해달라. or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게 해달라.

    => 이 기도들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즉시 허락된 기도.

  • [교회행사] 학생부 친구초청예배

    [교회행사] 학생부 친구초청예배

    지난 6월 3일, 거제교회에서 학생부 친구초청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친구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새친구들이 한 명도 오지 못했지만, 학생부 친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풍선을 달고 꾸미며, 여러가지를 준비하였고, 목자님의 좋은 말씀도 함께 듣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뚜껑 컬링, 입으로 하는 축구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준비해주신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먹으며 즐거운 교제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 [교회행사] 아동부 말씀있데이!

    [교회행사] 아동부 말씀있데이!

    지난 6월 10일, 거제교회에서 말씀 있데이(Day)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동부들은 3개의 조로 나뉘어 각 장소에 도착해, 미션을 클리어하고 총 3개의 도장을 받아오면 되는, 천로역정과 아주 비슷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찬양 이어부르기, 조각난 말씀 이어붙이기, 문제 맞히기 총 3개의 미션을 수행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옆에 선생님들이 함께하며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기도 하셨고, 날이 너무 더워 맛있는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조가 3개의 도장을 가져왔고, 아동부 모두가 1등을 했다는 의미로 모두에게 초콜릿 금메달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시상은 목자님께서 직접 해주셨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2023.4.22.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나는 죽으나] 창 50:24-26

     

    https://youtube.com/live/LIbgx5QpR5M?feature=share

     

    종교인은 사후세계도 준비하지만, 막상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서 하늘에 있는 금고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창 5) 하나님께서 데려가 하늘로 승천한 에녹을 제외하곤 사람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죽음은 비통하고 애통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기쁜 일이기도 하다.

     

    (창 5:1-2) 이 구절은 의미 없이 쓴 구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을 한 번 더 작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아들을 낳음)

    =>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간다는 생명의 족보인 것이다.

     

    *이 생명의 족보에서의 죽음: 모든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돌아간 것.

    하지만, 창6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이 육체가 되어버려 낳는 걸로 하나님의 형상을 계승할 수 없게 됐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한 사람”을 선택해 하나님의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게 하심.

    그 첫 번째 사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래서, 아브라함이 후처를 두고 많은 자식을 낳아도 ‘아브라함의 자식’은 이삭 1명

     

    (창 25:8) 열조: 백성, 국가. /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이어받은 조상에게로 돌아감.

    (창 35:9) 이삭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감.

    => 하나님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고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감.

     

    (창 50:25)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

    요셉의 이런 죽음에 대한 평온함과 소망은, 야곱에게서 전승된 것. (창 40:21)

    (수 23:14) “온 세상이 가는 길”: ‘나는 죽으나’의 일꾼 ver.

    (왕상 2:1-2) “온 세상이 가는 길” -> 하나님이 모든 일을 완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

     

    여호수아: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정복해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있도록 한 사람.

    다윗: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완성한 사람. (나일강 ~ 유프라테스강)

     

    이 여호수아와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 뜻을 완수한 사람들.

  • [성도간증]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관택 형제)

    [성도간증]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관택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하기 앞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부족한 능력을 가졌지만 합격을 하게 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라는 사람을 스스로 돌아보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은 ‘제가 신학에 합격하게 된 것은 정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간증은 저를 신학 지원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 인생에 정말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었지만 오늘 간증은 이 신학 지원과 관련된 것 혹은 그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것들 위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원래 신학 지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믿음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실 신학 지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굉장히 억압받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신앙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은 공감하실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일예배와 안식일에 교회를 빠지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자라다 보니까 교회에서만큼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보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께서 저를 보시면 밝게 웃으시면서 ‘관택이는 나중에 목자님이 돼야겠구나!’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제 마음의 중심을 알기 때문에, 나름 신앙에 대한 열심을 가진 이후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인식이 ‘저 사람은 신학을 하려고 하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거야’라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신학은 안해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참 신기한 점은 저는 신학을 절대 지원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신학 지원을 준비하면서 제 삶을 돌아본 결과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제 삶을 신학 지원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제 삶의 어떤 부분을 돌아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사건은 제가 5살에서 6살 시절 대방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안식일 오전 말씀을 마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한창 탱탱볼을 가지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이제 옆에 계셨던 어머니를 졸라서 아직 예배가 안 끝났는데 나가서 놀고 싶다고 옆에서 자꾸 찡얼대니까 어머니가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교회 앞 도로에서 탱탱볼을 던지며 놀다가 이 탱탱볼을 쫓아 도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트럭에 치여 날아가 머리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차에 치인 제 모습을 보시고 제가 바보가 될 거라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10일 정도 입원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씀드리면 부모님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예배 시간 엄수와 예배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가르치게 되셨다는 점과 다른 한 가지는 제가 무사히 낫게 되면 꼭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 이후로 제가 자라는 환경이 신앙 안에서 바른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다음은 시간이 조금 지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령을 받았던 일입니다. 성령을 받은 기억은 모두가 특별하지만 저에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장흥진 목자님이 거제교회 목자님으로 부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특별 기도회를 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은 날도 기도회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을 때 몸에 번개를 맞은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기도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막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온몸이 떨리는 진동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만하게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두번째는 제가 성령을 받을 당시 눈을 감은 상태에서 딱 한 장면만 계속 반복해서 보였는데 저희 어머니가 얼굴 볼살이 살짝 패인 상태로 피골이 상접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그런 얼굴로 굉장히 힘든데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그 장면이 계속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겪는 일(아버지의 교통사고)을 그때 미리 알려주신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중, 고등학생 시절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진로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라따뚜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한 생쥐가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는 영화인데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와 요리사의 꿈을 이루는 생쥐를 보며 저도 요리사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잘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큰 기대를 가지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요 절대 안 된다 반대를 하셨습니다. 이유는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한 번쯤은 고민하실 줄 알았는데 바로 단칼에 거절을 당하니까 정말 섭섭했습니다. 이때부터 학교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공부를 해야 될 의욕도 없어졌고 막바지에는 학생부 영은회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신앙생활에도 공부에도 그렇다고 무언가 다른 진로를 찾는 것에도 의욕이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는데 똑바로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면 진짜 심했을 때는 하룻 밤 사이에도 몇 번씩 눌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자야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심했는데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오랜 기간 동안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요셉 목사님이 부임하셨을 때 상담을 받고 제가 겪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 신앙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함께 기도한 성도님들과 눈을 감은 상태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세계라는 게 정말로 있구나라는 것을 이 시기에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도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찾고 요리에 대한 진로는 취미로 놓고, 제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위눌림에 대한 내용은 뒷 내용에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이과에 가야 취업이 잘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요셉 목자님과의 상담을 따라서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공학과 입학 이후 전공을 듣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수업만 듣고 시험기간에 살짝 몰아서 공부하면 반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까지는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공부머리가 있고 공부를 제대로 하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역학과 대학수학 쪽의 과목들은 자신감이 완전히 꺾일 정도로 성적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제 마음의 교만함을 꺾어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저에게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신학을 지원하면 무조건 붙을 것이고 꼼짝없이 목자님을 해야 되는데 목자님은 하기 싫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때 공부해도 제 마음대로 안되는 대학 시절을 통해 겸손한 마음을 가르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 중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8년 5월 14일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실려가실 때 한 번 저희 옆을 지나갔는데 얼굴이 너무 퉁퉁 부어있어서 가족 모두가 못 알아봤습니다. 이후 나중에 한 번 더 지나갈 때 그때 보고 아버지인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수술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버지의 몰골을 봤는데요 얼굴에 멍이 없는 곳이 없고 머리가 사람 머리가 이렇게 부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크게 부어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후부터 보호자 대기실에서 보낸 3일은 저한테 괴로움으로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국어 문학 작품을 보면 가슴이 메인다라는 표현을 보며 이게 무슨 느낌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때 무슨 느낌인지 알았습니다. 가슴속 한가운데가 걸레처럼 짜이는 듯한 느낌이 나고 뭔가 항상 걸려 있는 것처럼 물을 마셔도 밥을 먹어도 잘 안 넘어갑니다. 눈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진짜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곳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칸에 들어가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엔 뭘 구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요 이 기간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똑같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무런 근거도 그냥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냥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때 저는 즉시 알았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이 분명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제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전역 이후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계획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의 생활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을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어가는 모습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고 진심으로 제가 아플 수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나와 사람들을 보시는 마음과 시선에 대해 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쓰임이 신학이라면 신학 지원을 해야겠다고 이때 결심했습니다.

     

    장종규 목자님께서 저에게 2020년도에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님이 신학 권유를 해주시기 이전에 신학 권유를 처음으로 해주셨던 분이 어머니였기 때문에 먼저 신학 지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고 어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관택아, 너는 눈치가 없고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좀 하고 신학 지원을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이번 19기가 아니라 다음이나 그 다음 지원을 목표로 우선 대학을 먼저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뒤 신학을 지원하기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넘어가는 중에 아버지가 퇴원을 해서 집에 오셨습니다. 사고 직후와 비교하면 많이 회복되었지만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전부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이기에 휴학을 하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간병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결과 휴학 기간 동안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1년 9월부터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책임감과 의지를 굳게 가진 덕분인지 성적이 빠르게 만들어지면서 이대로 유지하면 6월 지방직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1년 12월에서 22년 1월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아버지가 결석 때문에 잠깐 입원한 응급실에서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전체적으로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맞는 건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종규 목자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님은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막힌다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가 제가 19기에 바로 신학 지원을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 부드럽게 돌려서 말씀하시던 목자님이 바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니까 당시 저는 그 말씀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신학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와 한 약속이 생각나 한번 어머니의 뒤로 숨었습니다.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하고 신학 지원 하길 원하셔서 저 혼자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말씀드렸더니 목자님이 바로 어머니께 연락하셔서 저와 함께 부르신 뒤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자님이 아주 강력하게 어머니까지 설득하시고 나서 저는 꼼짝없이 이제 신학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은 없었습니다. 꼭 지금 신학 지원을 해야 될까 정말 지금 신학 지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맞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저에게 신학 지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해 주셨습니다. 신학 지원을 확정짓고 나서부터 학생때부터 눌리던 가위에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가위 때문에 잠자리가 굉장히 예민해서 보통 눈을 감고 잠들 때까지 최소 30분은 정신이 깨어 있는 채로 누워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심 이후로는 누웠다 하면 잠들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기도 생활을 하면서 가위에 눌리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주기적으로 가위는 눌렸었는데 이 이후로는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을 푹 자기 시작한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다 22년 10월 아버지가 누워 계시기 때문에 법적인 처리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하는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라는 제도를 신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원에 저를 후견인으로 인정해 아버지의 법적인 의사 표현을 제가 대신하도록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는데 후견인이 되면 주기적으로 법원에 가서 당사자의 재산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보고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서류를 제출하기 전날이랑 제출하고 온 날 이틀 연속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그래서 그때 알았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가위에 눌리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왜 가위에 눌렸을지를 생각해본 결과 그때 제가 한창 신학지원서를 작성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래도 저를 후견인으로 신청해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으니 후견인을 바꾸는게 좋겠다 말씀드렸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가위에 눌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바램이었던 사회생활도 좋은 기회를 얻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지원을 위해 신앙과정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신앙적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조차 없게끔 여러 가지 체험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학 지원하는 데 있어서 얽매이지 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지원하도록 두시지 않고 지금 지원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알려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알고 나니까 도저히 신학 지원에 대한 제 뜻이 어떤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지금 저를 둘러싼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저는 신학 지원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버지가 집에 여전히 누워 계시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경제적인 것보다 아버지를 돌보는 간병 일이 굉장히 힘들고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학 지원을 한 이유는 제 인생을 하나님께서 올해 신학 지원으로 이끌어주신 것처럼 저희 가정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아직도 가끔씩 의심이 마음에 쌓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때면 기도할 때도 믿음 없는 기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 신학 못합니다. 꼭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제가 정말 하나님만 믿고 신학을 지원 했으니까 책임져주세요’ 라고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하셔서 신학 지원의 길로 인도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제 눈앞의 현실은 막막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간증을 읽는 성도님들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 [기관소개] 거제교회 대학사청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거제교회 대학사청부를 소개합니다

    거제교회 대학사청부를 소개합니다 🙂

     

     

    거제교회 대학사청부는 남자 4명, 여자 4명 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윤희원, 공관택, 박정인, 공나현, 지수빈, 박지영, 지유빈, 김탁연 입니다.

     

    대학사청부는 주로 아동부 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대학사청부는 교회학교와 일정을 같이 하며, 특별한 것은 교회학교가 끝난 후, 따로 모여 신도회 시간을 가집니다. 보통 신도회 시간은 오후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대학사청부는 아동부, 학생부 사역을 하기 때문에 교회학교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신도회 시간을 가져 묵상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때로는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밖에 다같이 나가 교류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대학사청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 말씀에 대해 더 깊이 배우는 시간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 성경공부는 목자님의 일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뀝니다. 아예 쉬는 날도 있고, 때로는 토요일 신도회가 끝난 후 저녁 시간에 하기도 합니다.

     

    대학사청부는 교회에서 아주 다양한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아동부/학생부 돌봄, 교회 방송 사역, 교회 성가대 지휘 / 반주 / 찬양, 교회 정리 등등.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하며 거제교회의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거제교회의 청년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 [복음메세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복음메세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2023.1.21.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막 11:12-26

     

    https://youtu.be/8kg_Z7rI1jM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한 일은 크게 2가지이다.

    1. 무화과 나무 저주
    2. 성전 정화

    해당 본문의 내용은 무화과 나무 – 성전 정화 – 무화과 나무로 진행되는 샌드위치 구조이다. 우리는 흔히 이 내용들이 각각의 교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무화과 나무 내용에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이다.”

    성전 정화 내용에서는 “하나님의 집에는 사적인 이익이 들어와서는 안된다.”

    두 번째 무화과 나무 내용에서는 “기도할 때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는 교훈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내용들은 전부 하나의 큰 교훈도 갖고 있다.

     

    바로, “새로운 시대를 알려주는 예수님의 교훈”이다.

     

    세상에서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B.C (Before Christ) / A.D (Anno Domini)로 나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시대이다.

    교회에서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구약/ 신약으로 나눈다. 이것은 약속, 즉, 은혜의 시대라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제사의 시대에서 은혜의 시대로 바뀔  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본문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화과”라는 열매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 나무는 1년에 5번 정도 열매를 맺으며, 때에 따라 열래는 무화과의 종류도 다르다. 마치 우리가 먹는 사과의 종류도 다양하듯 (풋사과, 홍옥 등) 무화과도 수확하는 시기에 따라 이름과 맛이 전부 다르다.

    본문에서 첫 번째 무화과 내용 때,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찾으시던 시기는 (그 당시 기준) 3~4월 경으로, 그 당시 무화과는 파게(Phage)라고 불렸다. 이 파게는 겨울이 끝나고 맺는 첫 열매이기에 맛과 크기 등으로 봤을 때 상품성이 떨어졌다. 그러면 이 열매를 따야 더 건강한 열매가 나오겠지만, 이 열매를 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놓았다.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밀 이삭과 밭의 모퉁이를 수확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서 이 파게를 찾으셨다.

    (막 11:13) 이 말씀에서 말하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라는 말씀은, 파게 이후에 나오는 맛있는 열매인, 테에나(Thaena)의 때가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파게가 열려있어야 할 때에 이 파게를 찾으셨지만, 나무에는 파게가 없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를 저주하신 것이다.

     

    이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테에나도 아닌, 작고 상품성도 떨어지는 파게를 원하셨지만, 그 파게마저도 없었다는 것이다.

    (막 11:13) 파게가 열리는 시기에 파게를 얻지 못하셔서 그 시대를 저주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다음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내용으로, 성전 정화 때에는 보통 이렇게 성전에서 온갖 장사를 하거나 악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그 장사꾼과 사는 사람을 꾸짖는 게 아니라 윗사람들을 꾸짖어야 할 텐데 왜 예수님께서는 장사꾼들과 사는 사람들을 꾸짖으신걸까?

    심지어 이 장사는 제사를 잘 드리기 위해 했던 열심이었다. 이 당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전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였고, 그 때는 자동차도 없었기 때문에 몇날 몇일을 걸어서 왔는데, 그 기간 동안 데려오던 제물이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하게 제사를 드리고자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방법이 하나님의 성전을 망친 것이다. (요 2:1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를 청산하고 성전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막 11:17) 하나님의 성전은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만민” 이 기도하는 집이었다. 이 말씀은 (사 56:6-7)에도 나온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에 휩싸여 자신들이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상을 엎으신 것.

     

    그리고 마지막 두 번째 무화과 내용에서, 

    파게를 얻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기도로 하나님께 직접 갈 수 있게 됐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참고. 요 4:21-23)

     

    (요 14:12)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십자가를 지신 일이고,

    우리가 할 더 큰 일은 말세의 하나님의 교회를 완성시켜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