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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_이경추 집사

    [성도 간증]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_이경추 집사

    할렐루야∼

    우리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친히 인도하심으로 지난 7월21일에 있었던 저희 어머니(최여임 자매님)의 세례식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하신 바에 따라, 매 순간 순간, 모든 상황들을 친히 이끌어 주셨죠. 세례식의 모든 과정이 마쳐지고 제가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소원이 실제가 됨을 알았을 때, 그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에, 그 넘치는 복에 겨워서 너무나 기쁘고 또 기뻤습니다. 정말 꿈만 같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역사하셨는지, 얼마나 세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속에서 이번 세례식이 진행 되었는지, 정말 놀라운 그 사실을 아주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간증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 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길 원합니다.

     

    환자 상태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세례를 받으시는 저희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인데요, 과거 저희 어머니께서 연중 한두 차례 정도 초청되어 교회를 나오시고 또, 교회에서 심방도 다녀가시고 하다가, 2019.04.02.일에 갑작스런 낙상 사고를 당하셔서 뇌 손상으로 인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몸의 마비와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깜박이며 5년 넘게 누워만 계셨습니다. 속칭 식물인간 이셨던 것이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콧줄을 통해서 액체로 된 식사를 하셨으며, 무엇보다도 뇌수술을 받으시고 처음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관 절개하여 목에 구멍을 뚫어 폐와 목구멍을 통해 숨을 쉬게 되어있는 상태이셨죠.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혹여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된다면, 폐 부종으로 매우 위험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번 세례식은 저희 어머니의 목숨을 걸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기관 절개 외에도 자가 호흡의 정도나 5년 동안 병상에서 굳어버린 몸과 전날 토하셨던 몸의 상태 등등 걸리는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 문제였습니다. 사실 세례식 날짜를 잡아 놓고도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신앙(세례)과 현실(어머니의 목숨)이라는 이 괴리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죠. 그만큼 이번 세례식은 하나님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성도의 합력

    제가 이번 세례의 과정을 통해서 느꼈던 2가지가 있는데요, 그 첫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다’ 입니다.

    ‘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6:15∼16)

     

    100년 넘게 무너진 채로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벽이 적대 세력의 위협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불과 52일이라는 짧은 공사기간 내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번 세례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일’입니다. 제가 이것을 명확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시고 주도 면밀 하신지 빠짐없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제가 이번 세례의 과정을 통해서 두 번째 느낀 것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하는 성도들의 하나 된 마음과 합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어머니의 세례를 받치겠다고 제가 마음으로 결정은 했지만 이후에도 순간순간의 난관과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여러 성도님들의 조언과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애써주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 일이 진행 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것을 이루어 가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죠. 온 성도가 이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 해주시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온갖 수고의 헌신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희망의 빛(성령)”

    2019년 4월 2일에 저희 어머니께서 뇌출혈 수술을 받으시고 이에 대한 가족들의 상심이 매우 컸으며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멀쩡하시던 분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제 마음의 상심이 너무나 컸으며 그저 침통하고 암담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4일 후인 4월 6일 안식일에 저희 아버지께서 지난 주에 이어 두 번째 교회를 나오셨는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로 인한 충격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께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제쳐 두고, 아무래도 좀 더 애착이 가는 어머니를 전도 대상자로 삼아, 어머니께서 1년에 몇 차례씩 교회에 나오셨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어머니보다도 교회를 전혀 나오시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먼저 선택하셨죠.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세례를 받지도 않으셨는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일로 제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희망의 빛을 보여주셨던 것이죠. ‘어떻게 생전 교회를 나오시지 않던 아버지께서 성령을 받으실 수 있을까?’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감사했지만 또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희망의 빛을 제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해 두었죠.

    ‘내게 보여주신 메시지 대로라면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비해서, 또 때로는 아버지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더 안타깝고 고된 삶을 사셨던 어머니께서, 혹여 세례를 받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분명 희망의 빛을 보여 주셨는데, 그렇게 된다는 것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이시지요.

     

    더더욱 그런 것은, 아버지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이후 어머니가 쓰러지심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더 신앙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이라도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쓰러진 어머니께서 혹여라도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오히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 성령과 세례를 받으셨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그 뜻은 과연 무엇일까? 혹여 어머니께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는 것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제게 보여주셨던 희망의 빛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이번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그 뜻대로, 제게 보여주신 희망의 메시지 대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죠. 주님의 크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기도

    어머니는 뇌수술 이후에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는 누워 계신 분들마다 말을 못해 눈만 깜박이시거나 콧줄로 식사를 하시는 분들, 기관 절개를 하신 분들, 어떤 분은 뇌가 반쪽이 없으셨고 또 어떤 분은 저희 어머니처럼 욕창이 있으셨는데 그런 와중에 저를 더욱 심란하게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 뵈러 면회를 갈 때마다 침대가 하나 둘 비워져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분씩 한 분씩 이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제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조급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제가 한 달 동안 저녁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럼에도 어머니께서는 큰 차도가 없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당장 눈앞에 어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낙담이 될 때도 있었지만 역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는 인내를 가지고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해야 하더라구요, 왜냐면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회복이 더뎌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이 때를 위해서 저희 어머니를 5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견디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심했던 욕창도 말끔히 낫게 해주셨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3년의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큰 어려움 없이 잘 보살펴 주셨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스스로의 긴장감도 떨어지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일상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5년 동안 제가 기도를 많이 했을까요? 기도는 턱없이 부족했죠. 그럼에도 기도에 대해 제가 느낀 바는 ‘하나님 앞에 그 선한 마음이 진실되고 절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신다’ 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의 힘이 약해지면서 제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래, 퇴근 길 운전하면서 울자, 그렇게 기도하자’ 그래서 퇴근 시 운전을 하면서 간혹 울 때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내가 이렇게 울겠구나’ 라고 할 정도로, 눈물 콧물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제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많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번만 이번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 너무나 불쌍합니다. 제발 저희 어머니 살려주세요. 이대로는 안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울면서 때로는 입으로 하나님께 정말 호소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당연히 많이 해야 하겠지만, 혹여, 기도가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그 기도가 진심 어린 절실한 기도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분명 보십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많이 기도하진 못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죠.

     

    저히 어머니께서 5년 동안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으셨는데요, 그것은 전도대상자의 신분이면서도 5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합심 기도 제목에 그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기도 제목에 올라오는 분들은 세례를 받은 성도분들이셨지만 저희 어머니는 성도가 아님에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특혜였고 이방인으로서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다 보니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던 것이죠. 오늘날 이 기적의 원인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때(하나님의 준비)

    제가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희망의 빛(아버지의 성령)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어머니 세례에 대한 하나님의 때가 언제일까?’ 를 늘 마음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매년 봄 교회 세례식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저의 관심사였고, 또, 매년 여름을 기다려 왔죠. 왜냐면,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를 볼 때, 물이 차가운 가을이나 겨울보다는, 봄이나 이왕이면 여름이 적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까?’ 그러던 터에 세례식 두 달 전인 5월 19일에 저희 작은 형이 이사를 해서 형 내외분과 함께 식사하는데 저희 형수님이 어머니의 세례에 대한 언급을 하신 것이었죠. 예전에 잠간 얘기를 했었지만 코로나 기간이 있었고 한참 동안 다시 제대로 말씀을 드리지 못했었는데, 형수님께서 먼저 언급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세례 때문에 마음 아프시죠. 받으신다면 서방님 마음이 한결 가벼울 텐데요.” 그 말에 비추어 볼 때 형수님의 마음은 이미 허락한 것이었죠. 문제는 형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지 않던 형수님의 이 말을 듣고,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일까?’를 또 생각하면서 그 날 이후 세례에 대한 마음으로 여름 날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6월이 지나고 이제 7월로 넘어가는데도 아무 기별이 없자, 제 마음은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때가 아닌가 보다’라고 잊혀 있었죠. 그러던 중에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의 위독에 대한 전화를 받은 형이,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제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세례식 전에 있었던 또 다른 특이사항이 있는데요, 그것은 교회가 저희 어머니를 거의 5년 만에 심방을 했다는 것이죠. 세례식 한 달 전인 6월 5일에, 그간 코로나도 있고 해서 5년 동안 못하다가 심방을 다녀간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 심방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가 잊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먼저 심방을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세례식 한 달 전에 심방을 해서 목자님께서 안수를 해주셨죠. 세례식 전에 특이사항이 또 있는데요, 몇 년 동안 어머니 요양을 도맡아 해주시던 담당 팀장을 세례식 한 달 전쯤에 하나님께서 바꾸셨습니다. 물론 기존 팀장님도 잘 하셨는데 사람마다 일에 대한 판단과 스타일이 다르죠.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저희 어머니께서 토하셨는데, 5년이 넘게 누워만 계시니 이제 장기의 기능이 다 되었는지 위에서 소화를 못하고 역으로 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오신 팀장님이 이것이 위독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을 한 것이죠. ‘어머니께서 위독할 수 있으니 가족분들께서 면회를 왔으면 좋겠다’라고 저희 형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날 저녁 5시에 형이 바로 면회를 했고, 저녁 7시에 제게 전화를 해서 내일 어머니 면회를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새로 오신 팀장님의 판단과 선제적 대응으로 인해서, 그날 저희 가족들의 마음은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 였습니다. 당장 오늘내일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정말 하나님의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아주 세밀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는데요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형이 면회를 하고 나서,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니 내일 면회를 가라고 제게 전화했습니다. 제가 퇴근하고 청주에 오면 저녁 7시가 넘는데 면회를 할 수 있을까요? 이미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아예 이틀을 쉴 수 있게 예비하셨습니다. 저의 근무지인 학교가 1년에 한 번씩 전기 검사로 인한 전기 사용 불가로 하루를 강제적으로 쉬게 합니다. 그래서 당초 7월 19일 금요일이 쉬는 날 이었죠. 그런데 쉬기 10일 전에 알았는데 방학 기간이고 해서 쉬는 김에 직원들 하루를 더 쉬라고 7월 18일까지 쉬게 했던 것이죠. 이미 이틀이 쉬는 날 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다음 날 어머니 면회를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면회 뿐만 아니라 세례식을 앞둔 이 이틀은 제게 아주 중요하게 사용된 날이었죠. 하나님께서 미리 이 날을 예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이틀 동안 요양원에 가서 외출에 대한 쉽지 않은 승인을 받고 또 집사님과 세례 장소 답사를 하고 휠체어를 빌리고, 구급차 예약을 하고 또 관련 성도님들과 통화하며 각종 물품을 사고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예비 해 놓으신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원만히 준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예비 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의 조언

    어머님의 세례식을 준비할때 많은 성도님들의 조언이 있었는데 한 자매님께서 해주신 조언의 말씀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였습니다. 이따가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세례 결정을 하고서 순간 순간의 난관과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말이 자꾸 생각 났습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사실 우리 신앙이 그런 것이죠. 신앙은 단순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입을 통해 제게 주시는 말씀이었던 것이죠.

     

    형의 승낙을 받아냄

    외출이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먼저 세례에 대한 형의 결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형이 승낙을 하면 내일 아침에 요양원에 가서 외출을 얘기하려 했는데. 형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현 건강 상태가 걱정이 된다며 고민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뇌 수술을 하시고 머리 뼈 조각을 붙이지 않은 상태여서, 머리 한쪽이 말랑말랑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물에 닿았을 때를 걱정하는 것이었죠. 제가 괜찮다고 설명을 했지만 형은 자꾸 어렵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순간 감정에 북받쳐서 형 앞에서 저도 모르게 울며 속 마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형∼ 제발, 제가 한이 맺혔습니다.” 

    동생이 울며 호소하자 형은 동생을 달래는 마음으로 승락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형 앞에서 울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까지도 주신 것 같습니다. 

     

    세례식 준비

    세례식을 위한 중요한 결정인 형의 허락과 요양원의 외출 승인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제 다음은 세례식 진행에 대한 실질적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오전에 박집사님과 함께 서둘러 청천으로 세례 장소 답사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휠체어를 빌리고 김ㅇㅇ 자매님과 통화하여 방수 밴드와 의료 물품을 챙겼습니다. 수세에 대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목자님과 박집사님과 함께 나누었죠. 어머니께서 5년 동안 몸이 굳어있는 현 상태에서 업고 세례를 받쳐야 할지, 아니면 휠체어에 태운 채 받쳐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들것으로 옮겨 받쳐야 할지, 그 어느 것 하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어떤 방법이더라도 여러 명이 동원되어 각자의 역할이 필요했고 어머니의 호흡과 날씨로 인한 감기 등의 건강 상태를 생각할 때, 최단 시간 내에 모든 것이 재빠르게 진행 되야만 했습니다.

     

    세례식 거행

    구급차가 도착하자 먼저 오신 분들이 다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움직이셨는데요, 결코 실수 없이 세례식을 무사히 마쳐야 했기 때문에 휠체어에 또 들것에 다른 분을 태워서 예행 연습도 해보고 혹여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물가 가까이로 가서 목 부분에 방수 테이핑을 했으며 무려 4명이 사각에서 들것을 들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데워서 나오자마자 간단히 목욕을 시켰습니다. 아침에 간간이 비가 조금 왔고 장마철이라 하늘은 먹구름이 여전하였으며, 세례식 전날 밤에는 비가 장대같이 쏟아진 상태에서 물이 차갑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청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먹구름으로 날씨가 오락가락했는데 구급차가 세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급변하여 쨍쨍 찌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서 물에 들어가니 차갑지 않았고, 약간의 시원함이 있는 최적의 물 온도의 상태였으며 물이 너무나 깨끗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눈에 보였습니다.

    극도의 긴장감

    이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요, 세례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는 성도님들의 마음속에는 다들 이 순간을 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죠.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혹여,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된다면, 폐 부종으로 매우 위험하게 될 수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었던 한 분이 있는데요, 누굴까요? 김ㅇㅇ 자매님께서 요양원에서부터 구급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저희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를 살폈죠. 호흡의 정도, 산소 포화도 측정, 석션 진행. 이제 가장 중요한, 정말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목자님의 선언과 함께 드디어 들것에 실린 어머니께서 물속에 잠기게 됩니다. 재빠르게 들어 올리자마자 모두가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물 밖으로 막 옮기려는 순간, 김ㅇㅇ 자매님께서 소리칩니다. “멈춰!”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다들 움찔한 상태로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자매님께서 급히 어머니의 목 방수 테이핑 부분을 떼어내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들어갔을까 노심초사, 긴장감으로 살핀 후 전혀 젖지 않고 아무 이상이 없자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됐어요, 물 안 들어갔어요.”

    세례 집례 전 가족사진인데요, 세례식이 기쁨의 날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세례 집례 전 가족사진을 찍을 때면 기쁨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얼굴에 긴장감이 보여지죠.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사실 웃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

    일을 계획 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 주겠다.’

    (렘33:2∼3)

     

    예레미야가 왕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유다의 회복에 대한 위대한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멸망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몸이 갇혀 있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죠.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저희 어머니, 최여임 자매님의 세례식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으로 불과 2∼3일 만에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애를 써봐도 근본적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라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시고, 온갖 수고의 헌신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모든 상황 순간 순간을 친히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교회 행사] 청주, 천안, 대전, 장항교회 남녀노소 모두의 축구!

    [교회 행사] 청주, 천안, 대전, 장항교회 남녀노소 모두의 축구!

    2024. 8.31 안식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하나 둘 청주 용정 죽구장으로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대전, 천안, 장항, 청주교회 형제님들이 모여 축구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 어린이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축구 경기를 펼쳤습니다.

    최연소 3살 유아부터 50대까지 모두가 축구로 하나되었던 그날의 기록을 나누고자 합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기관 소개] 매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나 신도회

    [기관 소개] 매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나 신도회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청주교회 한나 신도회를 소개하겠습니다.^^

     

    청주교회에는 총 4개의 여신도회가 있는데 높은 연령순으로 마리아회, 한나회, 루디아회, 에스더회가 있습니다.

    한나회는 56~64세의 자매들 11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녁 예배 출석 평균 7명, 안식일예배 출석은 평균 9명으로 안식일 오후 신도회 시간에는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와 깨달은 바를 나누고, 한 주 동안 특별히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운 간증도 나누는 복된 시간을 가집니다.

    연 2회 생일 축하 모임이 있는데 이날엔 근사한 곳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영육간에 더욱더 강건하기를 함께 축복합니다.

    안식일 식사 준비와 설거지 봉사, 안내 봉사 등에 동참하며 총회에서 지원요청을 받는 식사 봉사에도 젊은 자매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나 신도회는 매일 새벽기도회에도 40%정도의 참석율을 보이고, 매주 수요일에는 예배당 2층을 맡아 청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주 안식일 신도회 시간에는 <여신도회 연합 찬양예배>를 가지는데 어르신 마리아회부터 막내 에스더회까지 모두가 즐겁게 찬양을 나누면서 특별한 감동과 은혜의 시간을 누리고 있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절보다 더 큰 열심과 전심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후배 자매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애쓰면서, 한편으론 믿음의 선배이신 마리아 신도회 자매님들의 신앙을 본받아 후배 자매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나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가운데 교제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허락해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올리는 한나 신도회 소개였습니다.^^

     

    임마누엘~~♡

  • [성도 소개] 동반 입대하여 군 복무 중인 형제들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동반 입대하여 군 복무 중인 형제들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군대’에서 열심히 군 복무 중인 멋진 두 형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두 형제의 이름은 김진표, 이솔진 형제로 청주교회에서도 열심히 사역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들입니다. 함께 두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김진표-

    1. 소속된 부대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2. 저는 6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1. 소속된 부대에서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2. 장비를 통해 적의 활동을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1. 전역일은 언제인가요?
    2. 9월 10일입니다.

     

    1. 기도제목이 있다면?
    2. 교회와 단절되어 있는 것 같은 군대 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이솔진-

    1. 소속된 부대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2. 6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1. 소속된 부대에서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2. 자동소총수로 기관총 사수하고 있습니다.

     

    1. 전역일은 언제인가요?
    2. 9월 10일입니다,

     

    1. 기도제목이 있다면?
    2. 군대를 하나님 안에서 보낼 수 있도록

     

    보시는 것처럼 두 형제는 함께 군대에 들어가는 동반 입대를 했는데,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군대에 가자던 약속도 있지만, 둘이 함께 가능한 빠르게 교회 사역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감사하게도 휴가 날짜가 맞아 학생부와 청년부가 연합해 진행된 ‘신앙여행’에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군대는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의무로 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곳은 세상은 물론 신앙과도 단절되는 곳입니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고된 훈련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신앙을 지키기는 매우 어려운데요, 마치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던 고립된 광야 생활과 닮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고, 의지해야만 했던 것처럼, 군대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군대를 다녀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간증하는데 머지않아 우리 김진표, 이솔진 형제도 무사히 군대를 다녀와 그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로 지켜진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길 소망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복음 메세지]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복음 메세지]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말씀 제목]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7월 20일

    어떤 퇴임 목자님의 간증이다. 스무 살이 되어 직장을 구하고 생각했다. ‘이제 월급을 받고 집안도 안정될 테니 담배도 좀 피우고 술도 좀 배우고 노래도 좀 배워야겠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에 친근하신 할머니가 “아무개야! 이제는 교회 나가야지?” 권유하시더란다. 그래서 “예”라고 대답하고 그분을 좇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담배도 술도 유행가도 모두 끊고 교회 생활에 빠져든 것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어찌나 즐겁던지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총회로부터 권유 받아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의 일꾼으로 섬기다가 정년 퇴임하셨다. 과거를 돌아볼 때 동네 할머니의 한 마디. “아무개야! 이제는 교회 나가야지?” 그 한 마디의 말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간증을 듣노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은 말과 행동이었겠지만 그것이 세월이 흘러 먼 미래에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선한 길에도 악한 길에도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인생은 어쩌면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같다. 하나님이 울타리 쳐주신 정원에 씨를 뿌리고 물주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씨를 뿌리고 어떤 관리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꽃밭이 되기도 하고 쑥밭이 되기도 하고 텃밭이 되기도 한다. 성도는 내가 현재 내 말과 행동의 씨앗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그런 경성함에 대해서 교훈한다.

    (잠 14:1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우리는 인생의 정원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그리고 장래에 그것이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이 드고아 여인의 비유를 통해 압살롬의 귀환이 허락된 사건에서 그 관련된 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교훈을 받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압살롬은 맏형 암논을 살해하고 그술 땅으로 도망했다. 그런데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이 비록 범죄자였지만 다윗 왕은 압살롬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자식이 악하고 못나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 않는가? 또 다윗은 아마도 압살롬 모습 속에서 과거 범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향한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더 애틋했을 것이다. 그런데 군대 장관 요압이 그런 다윗의 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압살롬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할 계략을 꾸미게 된다. 요압은 드고아 출신의 한 여인의 입안에 비유를 넣어주고 다윗 왕 앞에 나가 말하게 한다. 드고아 여인은 마치 자신의 가정 문제를 왕께 호소하는 것처럼 가장해서 이런 비유를 베푼다. “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서로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율법대로라면 살인한 아들은 사형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저희 집안에 대가 끊기니 한 아들만이라도 살 수 있게 임금님이 특별 조치를 해주십시오”라는 간청이었다. 다윗 왕이 그 청을 들어주겠노라고 대답하니까 비로소 드고아 여인은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 “왕께서 사실은 그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지혜로운 다윗왕은 단번에 이 여인이 요압 장군의 사주로 나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에 다윗 왕은 압살롬 왕자를 귀환시키라고 수락하게 된다. 요압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그가 한 일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또 다윗왕은 여인의 비유 한 마디에 아무런 훈육의 과정 없이 압살롬을 귀환시킨 것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압살롬은 과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아무런 가책이나 반성 없이 그냥 지나친 것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성경에는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명확하게 이것이다 저것이다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독자가 성경 안에서 판단하도록 맡겨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말씀 안에서 자연스러운 답을 얻게 되고 ‘아 그 때 뿌려진 것이 좋은 씨였구나! 악한 씨였구나!’ 를 판단하게 된다. 과연 요압과 다윗과 압살롬이 자기 인생에서 뿌린 씨앗은 어떤 씨앗이었고 그로 인해 미래에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 인물을 통해 발견하는 교훈은 이렇다.

    첫째, 요압은 야망의 씨앗을 뿌려 상실의 열매를 맺었다.

    (삼하 14:1-2)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줄 알고 [2] 드고아에 보내어 거기서 슬기있는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이르되 청컨대 너는 상제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요압 장군은 드고아라는 곳에 있는 한 여인을 통해 압살롬의 귀환을 도모한다. 요압은 왜 압살롬 왕자가 귀환하는 일을 추진하고자 했는가? 왕을 향한 충성심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가? 요압과 관련된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요압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요압은 전쟁에서 아우 아사헬이 전사한 것을 이유로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죽였다(삼하 3:28-29). 다윗 왕의 입장과 명령보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앞섰다. 요압은 행동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로 인해 백성들은 혹시 다윗 왕이 사주해서 죽인 것 아닌가 하는 오해의 상황이 발생했다.

    또 요압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모반을 피해 도망갔다가 복직되었을 때 다윗은 압살롬을 생포하고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어명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주저 없이 압살롬을 죽였다.

    (삼하 18:14)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만약 요압이 다윗 왕을 생각하는 순수한 뜻만 있었다면 어명을 어기고 왜 압살롬을 죽이겠는가? 요압은 압살롬을 아끼는 마음도 없었고 왕명을 준수할 충성심에도 결함이 있었다.

    또 요압은 다윗의 사후 솔로몬을 세우고자 하는 다윗 왕의 뜻과 다르게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면 요압은 장차 왕이 바뀌더라도 군장이라는 자기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려는 욕망에 있었기 압살롬의 귀환을 추진한 것도 그 이유임을 추정하게 한다. 그 의도는 드고아 여인의 비유 안에서도 발견된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에서 죽은 아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산 아들이 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요점이다. 여기서 죽은 아들은 암논을 상징하고 살아야 할 아들은 압살롬을 상징한다. 요압이 이 비유를 통해 다윗 왕에게 전달하는 뜻은 하나님의 산업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즉 다윗의 왕통을 이어가려면 압살롬을 귀환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즉 요압은 압살롬을 왕통 계승자로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요압은 장래 왕 후보자의 은인이 되어 자기 입지를 굳게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심에 의해 행동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삼하 17:25)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미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압살롬은 나중에 모반의 과정에서 요압이 아닌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았다. 소위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이렇게 요압은 압살롬의 귀환에 직접적인 공로자였지만 그의 야망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솔로몬 왕 즉위 후 최후를 맞이한다.

    (왕상 2: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그래서 잠언 5:22에 말하기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인다’했다. 이처럼 요압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상실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오늘날 성도님들은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 인생의 정원에 삐뚤어진 욕망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중에 가시가 되어서 나를 찌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울타리 쳐주신 우리 인생의 정원을 가시밭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밭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 공의, 감사, 희락,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씨앗들로만 뿌리길 바란다. 머지않은 미래에 천국의 향기가 가득한 정원을 가꾸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둘째, 다윗은 방관의 씨앗을 뿌려 해악의 열매를 맺었다.

    (삼하 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나단 선지자의 비유와 비교할 수 있다. 나단 선지자의 비유는 다윗을 책망해서 그 양심과 신앙을 바로 잡았지만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판단을 혼미케 해서 공의를 보지 못하게 했다. 즉, 다윗의 부성애와 왕통 계승의 대의명분을 앞세워 압살롬을 귀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살인에 대한 책임과 처벌의 과정을 아주 조치 없이 덮어버리게 만들었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에는 현실과 다른 맹점이 숨어 있다. 비유 속 살인한 아들은 우발범이지만 현실의 압살롬은 치밀하게 계획 살인한 자였다. 또 그 아들마저 죽으면 집안의 대가 끊긴다고 했는데 현실의 압살롬은 독자는 아니었다. 압살롬 외에도 다른 왕자가 많다. 아도니야도 있고 솔로몬도 있다. 만약 압살롬이 왕위 계승자로 마땅치 않으면 다른 합당한 아들을 세우면 된다. 즉 압살롬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었다. 이처럼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다윗은 범죄한 압살롬을 아무런 조치 없이 귀환하게 명령한 행동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왕으로서 매우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잠 16: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왕통 계승이라는 대의 명분에 하나님의 공의를 등지는 선택을 한 다윗은 결국 제 발등을 찍게 된다. 귀환한 압살롬이 오래지 않아 왕이 되겠다고 모반을 일으킨다. 어제 형제를 죽이더니 오늘은 아버지를 죽이겠단다.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하는 패륜의 길을 걷는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주변에는 나단이 주는 비유가 있고 드고아 여인의 비유도 들려질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나를 아프게 할지라도 양심과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음성인가 아니면 꿀같이 달고 명분도 세워주는, 그러나 공의와 정의는 무너뜨리는 악한 음성인가? 부디 선한 것에 기울이고 악한 것은 귀를 막고 거절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겠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정원에 가시와 독초가 자리지 않고 향기롭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게 하는 비결임을 깨닫는 저와 성도가 되자.

    (욥 34:3-4) 『[3]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셋째, 압살롬은 분노의 씨앗을 뿌려 파멸의 열매를 맺었다.

    압살롬은 사람이 범죄 했을 때 적절한 징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은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했다.

    (삼하 14:25)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외모가 이렇게 출중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압살롬은 처음에는 그의 영혼의 정원에 ‘분노’의 씨앗이 심겼다.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이 뿌려졌다. 왕위에 대한 ‘욕망’이란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혐오’의 씨앗도 뿌려졌다. 이런저런 씨앗이 뿌려졌더니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까 영혼의 정원 안에 독초와 가시가 가득했다. 이처럼 형제를 죽인 그 행동이 잘 처리되지 않은 결과 이제는 아버지까지 죽이고 왕이 되려는 패륜아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암논을 죽인 책임을 지우고 잘 처리했다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압살롬은 외모는 훌륭했으나 그의 영혼은 분노와 욕망과 혐오의 감정으로 일그러진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괴물은 다윗 왕 측근의 모반 진압 작전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분노와 욕망과 혐오의 씨앗이 심겨진 그의 인생의 정원은 결국 독초와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 타인의 손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갈 6:8)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오늘날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또 나중에 언제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내다보는가? 인생의 정원에 뿌려지는 말의 씨앗, 행동의 씨앗, 생각의 씨앗을 잘 관리해야겠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사람의 음성은 걸러내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반대로 내가 뿌리는 말과 행동의 씨앗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롱펠로우 시인의 ‘화살과 노래’라는 시.

    내가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한순간에 저 너머로 사라진 그 화살을

    바라본들 볼 수 있을까?

    /내가 부른 노래는 어디로 울려 퍼졌을까?

    한순간에 저 머너로 울려 퍼진 그 노래를

    귀 기울인들 들을 수 있을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흘러 흐른 뒤에야

    나는 다시 보았네, 떡갈나무 밑동에

    그대로 박혀 있는 옛 모습 그 화살을

    /먼 뒷날 시간이 가고 가고 간 뒤에야

    나는 다시 들었네, 친구의 가슴에서

    그대로 울리고 있는 그 시절 그 노래를

     

    오늘 내가 쏜 화살이 타인의 가슴에 박힌다. 오늘 내가 부른 노래가 타인의 가슴에 남는다. 주님이 공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항상 지혜롭게 분별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신중히 선택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 [신앙 여행] 대만 교회 방문기_한 영 받은 형제 자매

    [신앙 여행] 대만 교회 방문기_한 영 받은 형제 자매

    할렐루야!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2024년 1월 21일~26일까지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대만 방문단은 5박 6일간 신앙여행 행사를 가졌습니다. 금번 방문단은 청주 25명, 천안 5명, 강남 1명, 제주 2명, 통역 1명 총 34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행 일정은 송산 공항으로 입국하여 대만 북부 지역의 교회로부터 고흥 공항으로 출국하여 대만의 남부 지역의 교회를 두루 종주하는 코스였습니다. 비록 우리와 대만 성도들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지만 깊은 우애와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 한 영을 받은 형제, 자매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귀한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1일차 : 담수교회>

    <2일차 : 타이베이 교회 – 남료 교회 – 영복 교회>

    <3일차 : 인애 교회 – 인애 양로원 – 대만 총회>

    <4일차 : 화단 교회 – 촉구 교회 – 낙야 교회>

    <5일차 : 남문 교회 – 오갑 교회 – 고웅 교회>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복음 메세지]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복음 메세지]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말씀 제목]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2월 3일

    2024년 대만 방문 기간 중 낙야 교회에 방문했을 때의 일. 지난 2017년에 수원교회 성도님들과 방문했었는데 그 때도 건축을 위해서 대지를 마련하고 모금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건물이 세워지지는 않았고 모금 중에 있었다. 속으로 ‘7백 평 넘는 땅에 건축이란 시골교회의 능력으로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담임 목자인 백목자가 연합 교류 집회를 가질 때 교회 소개 시간 중 조감도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낙야교회는 교회를 건축하려고 합니다. 방문단 여러분도 헌금하세요. 한국 돈도 받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간접적으로 조심스럽게 헌금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헌금 요청에 폭소를 터뜨렸다. 이윽고 청주교회를 소개하는 차례가 되었다.  “청주교회는 회당 수용이 93석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108명이 출석했습니다. 회당이 비좁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건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금해야 합니다. 대만 돈도 받습니다.” 우리는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전혀 모르는 남이 헌금하라는 말을 하면 매우 무례하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여겼을 텐데 주 안에서 한 몸, 한 형제 자매라는 의식 때문에 오히려 박장대소가 나왔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한 성령을 받은 가족이라는 의식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말하고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말 잘해서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잘못해서 생명이 위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들어야 할 말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듣지 않아야 하는 말을 들어서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잘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듣고 말하는 일은 마음 속에 인격이 결부된 일이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듣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이 한 순간에 변화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동안 신앙 안에서 성숙한 인격은 남의 말을 듣되 오해하지 않고 듣고 상대의 선의대로 듣는다. 반면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면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악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성숙한 인격은 말을 건네되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반면 성숙하지 않은 인격은 거칠게 말해서 좋은 말도 오해하게 만들고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말한다. 그래서 잘 듣고 잘 말하기 위해서 신앙의 좋은 인격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잠 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들으며 살고 있는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잘 듣고 잘 말해서 우리 속사람이 갖춘 인격을 나타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과 관련된 한 기사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윗이 동굴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에도 그의 겉 옷자락만 베고 살려준 기사를 살펴보았다. 사울왕은 눈물을 흘리며 다윗의 의로움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나 사실 완전히 회개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사울 왕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고 계속 방랑하는 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울왕이 완전히 변화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사울과 헤어지고 다시 길을 떠난 다윗 일행은 어느 날 갈멜이란 곳에 머물게 되었다. 갈멜은 아시다시피 열왕국 시대에 이르러 엘리야 선지자가 우상의 선지자들과 상대하게 될 바로 그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 나발이라는 이름의 목축인이 있었다. 그는 수천마리의 양과 염소를 치는 부자였다. 그 시대는 치안이 미흡한 지라 대규모 목축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이란 도적들이 나타나 가축들을 약탈하고 심지어 목동들까지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가운데 다윗과 그의 수하에 육백 명이 나발의 양떼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은 그의 재산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목축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양털을 깎는 시기는 농부에게 추수하는 시기와 같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목자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바로 양털 깍는 그 잔치의 시기에 일이다. 다윗은 나발에게 소년들을 보내어 축복하면서 잔치의 음식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나발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다윗을 향한 심한 모욕과 경멸의 말을 전한다. 이에 다윗은 분노하게 되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과 그 가족들을 몰살시키고자 출정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이란 여인이 다윗의 소년들에게 음식을 건네고 다윗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지혜로운 말로 다윗은 칼을 거두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세 인물을 주목해 볼 수 있다. 바로 나발과 아비가일과 다윗이다. 이 세 인물의 말하고 듣고 칼을 거두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신앙의 교훈을 받게 된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나발과 같은 우매한 말을 삼가라.

    (삼상 25:6)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다윗은 소년 열 명을 나발에게 보내면서 잔치의 음식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풍습으로나, 율법의 가르침으로나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6절에서처럼 다윗은 ‘너는 네 집도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는 축복의 말을 건넨다. 다윗이 매우 정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또 8절에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다윗이 나발에게 아들 뻘이란 뜻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를 낮춰 예의를 갖춘 표현이다. 이렇듯 정중한 인사와 겸손한 태도로 자선과 호의를 구했건만 나발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삼상 25:10-11)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율법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생각한다면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했다. 더욱이 곁에서 경비원처럼 양떼를 지켜준 노고를 생각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다윗에게 면박을 주는 말과 더불어 음식을 건네주기를 거절한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다윗이 무슨 조직 폭력의 보스같이 위협하고 강압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하면서 정치헌금 강요하듯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호의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발의 이러한 발언은 웃는 낮에 침뱉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윗을 모를 리 없었다.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명성이 높았고 왕의 사위가 된 자요, 사울 밑에서 천부장직을 수행한 인물이니 잘 아는 인물이다. 다윗이 분개한 이유는 음식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발이 ‘주인에게 반역하는 못된 종’이라고 모욕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발은 정치적으로 사울을 추종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떠나 사울의 편에서 다윗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사울을 반역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사울이 자신을 무고하게 죽이려고 하니까 생존을 위해서 왕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사실 나발은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의 입술을 놀렸던 것이다. 사람은 언제 가장 분노하는지 아는가? 자기의 진실이 거짓으로 오해받을 때가 가장 분노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결국 나발의 이 망언은 다윗의 노를 격동시켰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의 대부분은 잘못된 언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다. ‘말’이라는 단어는 ‘마음의 알갱이’라는 뜻이다. 즉 말은 마음에 쌓인 것을 밖으로 드러나는 도구라는 것이다. 마음에 좋은 감정, 좋은 생각, 좋은 뜻을 채우면 좋은 말이 나오고, 나쁜 감정, 나쁜 생각, 나쁜 뜻이 채워지면 나쁜 말이 나온다. 성숙한 인격이란 바로 이것을 잘 통제해서 때로는 삼가고 때로는 말하는 것을 잘 분별하는 사람이다.

    부디 나발과 같은 우매한 입술에서 벗어나는 성도님들이 되자.

    (잠 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둘째,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입술의 사람이 되라.

    다윗은 나발의 모욕에 참지 못하고 그와 그 일가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어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격노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한 여인이 있었는데 바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었다. 이 여인의 언행은 도대체 어떠했기에 다윗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는가?그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급하게 종들을 시켜 양식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모욕을 말을 건네받은 열 명의 소년들에게 양식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그녀의 일변은 무엇이었는가?(삼상 25:28-31) 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아비가일이 이야기한 내용의 핵심은 이것이다. “다윗 당신은 지금껏 악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이 생명 싸개에 싸서 보호하십니다. 당신은 장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무죄한 피를 흘리면 장래에 왕이 되었을 경우 괴로워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아비가일의 말을 통해 발견되는 그녀의 지혜는 이런 것이다. 그녀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현재의 상황을 잘 알았다. 또 다윗의 의로움, 정직함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다. 또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섬세히 보호하고 계신다는 영적인 혜안도 있었다. 게다가 다윗의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다윗이 칼로 살육하는 실수를 저지르면 그 일이 미래에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서 내다볼 줄 알았다. 아비가일은 이런 모든 미래사를 꿰뚫어 보고 다윗에게 그것들을 말했던 것이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 대화의 핵심을 벗어나서 헤매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문제점과 본질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울여도 깨닫는 지혜가 없으니 상황 전달이 안된다. 그래서 대화는 겉돌고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오해하게 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없게 된다. 대화에는 이해하려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감정에 이끌려 말하게 되고 무례하게 말하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아비가일을 보라. 다윗의 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상황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미래사도 읽어낼 줄 아니까 그런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그 말로 인해 치켜올린 다윗의 칼이 점점 내려졌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혀가 다윗의 뻣뻣한 감정을 꺾었던 것이다.

    (잠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오늘날 우리도 사랑과 배려가 녹아있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생명까지 살릴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그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배려해서 말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연습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셋째, 다윗과 같은 열린 귀를 가진 사람이 되라.

    다윗이 나발에 대해 분개한 모습은 사울을 대할 때와는 대조적이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다. 그런데 오늘은 나발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었다. 그래서 즉시 칼을 차고 벌떡 일어선다. 만약 다윗이 사울 왕과의 관계에서 잘 인내해 왔는데 나발이라는 인물을 죽인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다윗을 보건대 인간은 이처럼 연약한 존재이다. 만약 다윗이 분노의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아비가일의 말에 “하찮은 일개 여인이 누구 앞에서 감히 입을 놀리느냐?”고 듣기를 거절했다면 나발과 그 일가는 몰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었다.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의로움의 기초가 아니라 죄악의 기초 위에 세워지면 그 나라가 길지 못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다윗은 칼과 피로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뜻으로 나라를 세워야할 사명이 있었다. 그래서 온 백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기뻐하고 환영하는 가운데 등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발언에 호응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다윗의 인격을 발견한다. 아무리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도 이치에 맞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분노를 누그러 뜨리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다. 마음을 추스린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삼상 25:32-33)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다윗은 이 여인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이렇게 잘 말하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도 있었지만 그 말에 담긴 진실과 혜안을 분별하는 다윗의 귀가 있었기에 그는 분노의 감정으로 일가를 몰살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

    (잠 29: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강경화 장관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퍼스트 레이디.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도 3년 간 그분의 곁에서 보좌한 경력도 있었다. 그녀는 코비드 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체계를 외국에 홍보해서 국위선양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앵커들의 까다로운 질문에도 투명하고 정직하고 정확한 발언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 바로 유명하다. 독일의 앵커가 ‘한국은 봉쇄령으로 인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집요하고 까다로운 질문도 모두 잘 설명했다. 인텨뷰 내용에는 구구절절히 그녀의 겸손함이 한국 사람의 겸손함을 대변했다. 그래서 그분의 활약으로 한국의 명예가 매우 드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높은 위상은 단지 한류의 가수나 탤런트 때문 뿐만 아니라 이런 외교부 장관의 노고와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성도와의 관계에서 혹은 이 세상의 불신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으며 살고 있는가? 나발과 같이 우매한 말로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아비가일과 같이 지혜의 말로 죄의 싹은 잘라내고 의의 열매가 맺히게 만드는 길을 가시기 바란다. 다윗처럼 타인의 입술을 통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자. 이런 아름다운 인격, 이런 향기로운 입술을 가지는 참교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mtIwD-qjRZ0?si=HOvdPGM8-U9QzQX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