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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_이경추 집사

    [성도 간증]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_이경추 집사

    할렐루야∼

    우리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친히 인도하심으로 지난 7월21일에 있었던 저희 어머니(최여임 자매님)의 세례식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하신 바에 따라, 매 순간 순간, 모든 상황들을 친히 이끌어 주셨죠. 세례식의 모든 과정이 마쳐지고 제가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소원이 실제가 됨을 알았을 때, 그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에, 그 넘치는 복에 겨워서 너무나 기쁘고 또 기뻤습니다. 정말 꿈만 같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역사하셨는지, 얼마나 세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속에서 이번 세례식이 진행 되었는지, 정말 놀라운 그 사실을 아주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간증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 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길 원합니다.

     

    환자 상태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세례를 받으시는 저희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인데요, 과거 저희 어머니께서 연중 한두 차례 정도 초청되어 교회를 나오시고 또, 교회에서 심방도 다녀가시고 하다가, 2019.04.02.일에 갑작스런 낙상 사고를 당하셔서 뇌 손상으로 인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몸의 마비와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깜박이며 5년 넘게 누워만 계셨습니다. 속칭 식물인간 이셨던 것이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콧줄을 통해서 액체로 된 식사를 하셨으며, 무엇보다도 뇌수술을 받으시고 처음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관 절개하여 목에 구멍을 뚫어 폐와 목구멍을 통해 숨을 쉬게 되어있는 상태이셨죠.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혹여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된다면, 폐 부종으로 매우 위험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번 세례식은 저희 어머니의 목숨을 걸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기관 절개 외에도 자가 호흡의 정도나 5년 동안 병상에서 굳어버린 몸과 전날 토하셨던 몸의 상태 등등 걸리는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 문제였습니다. 사실 세례식 날짜를 잡아 놓고도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신앙(세례)과 현실(어머니의 목숨)이라는 이 괴리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죠. 그만큼 이번 세례식은 하나님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성도의 합력

    제가 이번 세례의 과정을 통해서 느꼈던 2가지가 있는데요, 그 첫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다’ 입니다.

    ‘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6:15∼16)

     

    100년 넘게 무너진 채로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벽이 적대 세력의 위협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불과 52일이라는 짧은 공사기간 내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번 세례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일’입니다. 제가 이것을 명확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시고 주도 면밀 하신지 빠짐없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제가 이번 세례의 과정을 통해서 두 번째 느낀 것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하는 성도들의 하나 된 마음과 합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어머니의 세례를 받치겠다고 제가 마음으로 결정은 했지만 이후에도 순간순간의 난관과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여러 성도님들의 조언과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애써주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 일이 진행 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것을 이루어 가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죠. 온 성도가 이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 해주시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온갖 수고의 헌신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희망의 빛(성령)”

    2019년 4월 2일에 저희 어머니께서 뇌출혈 수술을 받으시고 이에 대한 가족들의 상심이 매우 컸으며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멀쩡하시던 분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제 마음의 상심이 너무나 컸으며 그저 침통하고 암담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4일 후인 4월 6일 안식일에 저희 아버지께서 지난 주에 이어 두 번째 교회를 나오셨는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로 인한 충격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께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제쳐 두고, 아무래도 좀 더 애착이 가는 어머니를 전도 대상자로 삼아, 어머니께서 1년에 몇 차례씩 교회에 나오셨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어머니보다도 교회를 전혀 나오시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먼저 선택하셨죠.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세례를 받지도 않으셨는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일로 제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희망의 빛을 보여주셨던 것이죠. ‘어떻게 생전 교회를 나오시지 않던 아버지께서 성령을 받으실 수 있을까?’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감사했지만 또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희망의 빛을 제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해 두었죠.

    ‘내게 보여주신 메시지 대로라면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비해서, 또 때로는 아버지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더 안타깝고 고된 삶을 사셨던 어머니께서, 혹여 세례를 받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분명 희망의 빛을 보여 주셨는데, 그렇게 된다는 것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이시지요.

     

    더더욱 그런 것은, 아버지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이후 어머니가 쓰러지심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더 신앙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이라도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쓰러진 어머니께서 혹여라도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오히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 성령과 세례를 받으셨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그 뜻은 과연 무엇일까? 혹여 어머니께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는 것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제게 보여주셨던 희망의 빛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이번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그 뜻대로, 제게 보여주신 희망의 메시지 대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죠. 주님의 크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기도

    어머니는 뇌수술 이후에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는 누워 계신 분들마다 말을 못해 눈만 깜박이시거나 콧줄로 식사를 하시는 분들, 기관 절개를 하신 분들, 어떤 분은 뇌가 반쪽이 없으셨고 또 어떤 분은 저희 어머니처럼 욕창이 있으셨는데 그런 와중에 저를 더욱 심란하게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 뵈러 면회를 갈 때마다 침대가 하나 둘 비워져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분씩 한 분씩 이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제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조급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제가 한 달 동안 저녁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럼에도 어머니께서는 큰 차도가 없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당장 눈앞에 어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낙담이 될 때도 있었지만 역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는 인내를 가지고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해야 하더라구요, 왜냐면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회복이 더뎌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이 때를 위해서 저희 어머니를 5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견디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심했던 욕창도 말끔히 낫게 해주셨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3년의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큰 어려움 없이 잘 보살펴 주셨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스스로의 긴장감도 떨어지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일상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5년 동안 제가 기도를 많이 했을까요? 기도는 턱없이 부족했죠. 그럼에도 기도에 대해 제가 느낀 바는 ‘하나님 앞에 그 선한 마음이 진실되고 절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신다’ 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의 힘이 약해지면서 제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래, 퇴근 길 운전하면서 울자, 그렇게 기도하자’ 그래서 퇴근 시 운전을 하면서 간혹 울 때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내가 이렇게 울겠구나’ 라고 할 정도로, 눈물 콧물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제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많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번만 이번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 너무나 불쌍합니다. 제발 저희 어머니 살려주세요. 이대로는 안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울면서 때로는 입으로 하나님께 정말 호소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당연히 많이 해야 하겠지만, 혹여, 기도가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그 기도가 진심 어린 절실한 기도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분명 보십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많이 기도하진 못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죠.

     

    저히 어머니께서 5년 동안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으셨는데요, 그것은 전도대상자의 신분이면서도 5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합심 기도 제목에 그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기도 제목에 올라오는 분들은 세례를 받은 성도분들이셨지만 저희 어머니는 성도가 아님에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특혜였고 이방인으로서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다 보니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던 것이죠. 오늘날 이 기적의 원인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때(하나님의 준비)

    제가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희망의 빛(아버지의 성령)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어머니 세례에 대한 하나님의 때가 언제일까?’ 를 늘 마음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매년 봄 교회 세례식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저의 관심사였고, 또, 매년 여름을 기다려 왔죠. 왜냐면,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를 볼 때, 물이 차가운 가을이나 겨울보다는, 봄이나 이왕이면 여름이 적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까?’ 그러던 터에 세례식 두 달 전인 5월 19일에 저희 작은 형이 이사를 해서 형 내외분과 함께 식사하는데 저희 형수님이 어머니의 세례에 대한 언급을 하신 것이었죠. 예전에 잠간 얘기를 했었지만 코로나 기간이 있었고 한참 동안 다시 제대로 말씀을 드리지 못했었는데, 형수님께서 먼저 언급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세례 때문에 마음 아프시죠. 받으신다면 서방님 마음이 한결 가벼울 텐데요.” 그 말에 비추어 볼 때 형수님의 마음은 이미 허락한 것이었죠. 문제는 형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지 않던 형수님의 이 말을 듣고,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일까?’를 또 생각하면서 그 날 이후 세례에 대한 마음으로 여름 날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6월이 지나고 이제 7월로 넘어가는데도 아무 기별이 없자, 제 마음은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때가 아닌가 보다’라고 잊혀 있었죠. 그러던 중에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의 위독에 대한 전화를 받은 형이,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제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세례식 전에 있었던 또 다른 특이사항이 있는데요, 그것은 교회가 저희 어머니를 거의 5년 만에 심방을 했다는 것이죠. 세례식 한 달 전인 6월 5일에, 그간 코로나도 있고 해서 5년 동안 못하다가 심방을 다녀간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 심방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가 잊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먼저 심방을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세례식 한 달 전에 심방을 해서 목자님께서 안수를 해주셨죠. 세례식 전에 특이사항이 또 있는데요, 몇 년 동안 어머니 요양을 도맡아 해주시던 담당 팀장을 세례식 한 달 전쯤에 하나님께서 바꾸셨습니다. 물론 기존 팀장님도 잘 하셨는데 사람마다 일에 대한 판단과 스타일이 다르죠.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저희 어머니께서 토하셨는데, 5년이 넘게 누워만 계시니 이제 장기의 기능이 다 되었는지 위에서 소화를 못하고 역으로 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오신 팀장님이 이것이 위독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을 한 것이죠. ‘어머니께서 위독할 수 있으니 가족분들께서 면회를 왔으면 좋겠다’라고 저희 형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날 저녁 5시에 형이 바로 면회를 했고, 저녁 7시에 제게 전화를 해서 내일 어머니 면회를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새로 오신 팀장님의 판단과 선제적 대응으로 인해서, 그날 저희 가족들의 마음은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 였습니다. 당장 오늘내일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정말 하나님의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아주 세밀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는데요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형이 면회를 하고 나서,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니 내일 면회를 가라고 제게 전화했습니다. 제가 퇴근하고 청주에 오면 저녁 7시가 넘는데 면회를 할 수 있을까요? 이미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아예 이틀을 쉴 수 있게 예비하셨습니다. 저의 근무지인 학교가 1년에 한 번씩 전기 검사로 인한 전기 사용 불가로 하루를 강제적으로 쉬게 합니다. 그래서 당초 7월 19일 금요일이 쉬는 날 이었죠. 그런데 쉬기 10일 전에 알았는데 방학 기간이고 해서 쉬는 김에 직원들 하루를 더 쉬라고 7월 18일까지 쉬게 했던 것이죠. 이미 이틀이 쉬는 날 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다음 날 어머니 면회를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면회 뿐만 아니라 세례식을 앞둔 이 이틀은 제게 아주 중요하게 사용된 날이었죠. 하나님께서 미리 이 날을 예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이틀 동안 요양원에 가서 외출에 대한 쉽지 않은 승인을 받고 또 집사님과 세례 장소 답사를 하고 휠체어를 빌리고, 구급차 예약을 하고 또 관련 성도님들과 통화하며 각종 물품을 사고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예비 해 놓으신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원만히 준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예비 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의 조언

    어머님의 세례식을 준비할때 많은 성도님들의 조언이 있었는데 한 자매님께서 해주신 조언의 말씀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였습니다. 이따가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세례 결정을 하고서 순간 순간의 난관과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말이 자꾸 생각 났습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사실 우리 신앙이 그런 것이죠. 신앙은 단순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입을 통해 제게 주시는 말씀이었던 것이죠.

     

    형의 승낙을 받아냄

    외출이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먼저 세례에 대한 형의 결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형이 승낙을 하면 내일 아침에 요양원에 가서 외출을 얘기하려 했는데. 형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현 건강 상태가 걱정이 된다며 고민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뇌 수술을 하시고 머리 뼈 조각을 붙이지 않은 상태여서, 머리 한쪽이 말랑말랑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물에 닿았을 때를 걱정하는 것이었죠. 제가 괜찮다고 설명을 했지만 형은 자꾸 어렵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순간 감정에 북받쳐서 형 앞에서 저도 모르게 울며 속 마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형∼ 제발, 제가 한이 맺혔습니다.” 

    동생이 울며 호소하자 형은 동생을 달래는 마음으로 승락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형 앞에서 울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까지도 주신 것 같습니다. 

     

    세례식 준비

    세례식을 위한 중요한 결정인 형의 허락과 요양원의 외출 승인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제 다음은 세례식 진행에 대한 실질적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오전에 박집사님과 함께 서둘러 청천으로 세례 장소 답사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휠체어를 빌리고 김ㅇㅇ 자매님과 통화하여 방수 밴드와 의료 물품을 챙겼습니다. 수세에 대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목자님과 박집사님과 함께 나누었죠. 어머니께서 5년 동안 몸이 굳어있는 현 상태에서 업고 세례를 받쳐야 할지, 아니면 휠체어에 태운 채 받쳐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들것으로 옮겨 받쳐야 할지, 그 어느 것 하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어떤 방법이더라도 여러 명이 동원되어 각자의 역할이 필요했고 어머니의 호흡과 날씨로 인한 감기 등의 건강 상태를 생각할 때, 최단 시간 내에 모든 것이 재빠르게 진행 되야만 했습니다.

     

    세례식 거행

    구급차가 도착하자 먼저 오신 분들이 다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움직이셨는데요, 결코 실수 없이 세례식을 무사히 마쳐야 했기 때문에 휠체어에 또 들것에 다른 분을 태워서 예행 연습도 해보고 혹여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물가 가까이로 가서 목 부분에 방수 테이핑을 했으며 무려 4명이 사각에서 들것을 들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데워서 나오자마자 간단히 목욕을 시켰습니다. 아침에 간간이 비가 조금 왔고 장마철이라 하늘은 먹구름이 여전하였으며, 세례식 전날 밤에는 비가 장대같이 쏟아진 상태에서 물이 차갑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청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먹구름으로 날씨가 오락가락했는데 구급차가 세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급변하여 쨍쨍 찌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서 물에 들어가니 차갑지 않았고, 약간의 시원함이 있는 최적의 물 온도의 상태였으며 물이 너무나 깨끗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눈에 보였습니다.

    극도의 긴장감

    이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요, 세례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는 성도님들의 마음속에는 다들 이 순간을 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죠.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혹여,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된다면, 폐 부종으로 매우 위험하게 될 수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었던 한 분이 있는데요, 누굴까요? 김ㅇㅇ 자매님께서 요양원에서부터 구급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저희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를 살폈죠. 호흡의 정도, 산소 포화도 측정, 석션 진행. 이제 가장 중요한, 정말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목자님의 선언과 함께 드디어 들것에 실린 어머니께서 물속에 잠기게 됩니다. 재빠르게 들어 올리자마자 모두가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물 밖으로 막 옮기려는 순간, 김ㅇㅇ 자매님께서 소리칩니다. “멈춰!”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다들 움찔한 상태로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자매님께서 급히 어머니의 목 방수 테이핑 부분을 떼어내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들어갔을까 노심초사, 긴장감으로 살핀 후 전혀 젖지 않고 아무 이상이 없자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됐어요, 물 안 들어갔어요.”

    세례 집례 전 가족사진인데요, 세례식이 기쁨의 날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세례 집례 전 가족사진을 찍을 때면 기쁨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얼굴에 긴장감이 보여지죠.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사실 웃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

    일을 계획 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 주겠다.’

    (렘33:2∼3)

     

    예레미야가 왕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유다의 회복에 대한 위대한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멸망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몸이 갇혀 있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죠.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저희 어머니, 최여임 자매님의 세례식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으로 불과 2∼3일 만에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애를 써봐도 근본적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라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시고, 온갖 수고의 헌신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모든 상황 순간 순간을 친히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제9항 구원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9항 구원에 대한 우리의 믿음

     

    구원은 본래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을 힘입어 성결을 이루도록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성경교훈의 실천에 힘쓴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신 초월적인 세계를 ‘위’로 표현합니다. 반면 인간이 거하는 현실 세계를 ‘아래’(땅)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이 ‘아래’에서 ‘위’로 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여느 종교와 기독교를 비교할 때 다른 종교는‘자력종교’(자기의 의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타력종교’(절대자의 섭리로 은혜로 구원을 얻는 종교)라고 일컫는 근거가 됩니다.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사망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은 질병, 장애, 소외, 가난 등 다양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그 가능성에 대해서 시험하신 기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내려주십니다. 과연 인간이 스스로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실험하신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있게 ‘다 지키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나중의 결론이었습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기능만 할 뿐 인간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무능했습니다. 비유컨대 율법은 엠.알.아이(MRI)라는 의료 장비와 같습니다. 이 장비는 인간의 몸을 단층 촬영하여 병의 환부나 암세포가 어디에 분포했는지 자세히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암세포를 죽이고 치료하는 기능은 전혀 없는 것과 같습니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에 계신 하나님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이 스스로 육신이 되셔서 아래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거합니다. 만약 율법을 지켜서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내려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이런 사실들에는 하나의 방향성이 발견됩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구원에 이르려는 시도는 ‘아래에서 위로’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위에서 아래로’ 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위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시도된 것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시도된 것들은 인간의 노력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인간은 그 과정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고 하나님이 모두 이루신 것들입니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은 인간이 관연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십자가 공로를 믿고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거듭나는 제도를 세우신 것도 하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인류 구원의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의지대로 계획하시고 성취하신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위에서 아래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면 이제 인간이 시도해야할 일은 단지 그분이 은혜로 내려주신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다 이루시고 인간의 공로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의 구원을 ‘은혜’라고 합니다. 또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은 우리 구원의 성격이 공로와 노력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구원은 인간의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은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 피흘려 주셨지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둘로 나뉘는 기준이 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길이 나뉩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하나님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절대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그 절대의지를 닮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는 양날의 검입니다. 이는 인간이 로봇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자율적 존재라는 축복의 의미도 있지만 혹시 잘못 선택할 경우 그것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저주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느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믿고 세례를 받을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불신하고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구원과 저주의 길을 가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유의지를 발휘한 인간 자신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구원에 대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7:29-30)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위의 두 구절은 믿고 세례를 받는 여부가 구원과 저주의 분기점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느냐 저버리느냐의 분기점이 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십자가 ‘은혜’를 부어주신데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아담은 자기의 자유의지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의 음성을 따르는 불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불신’으로 깨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믿음’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구원이란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인간이 ‘믿음’으로 반응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믿음이 있으면 마땅히 세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요, 천국까지의 구원의 경주로에서 그 출발선에 서는 것입니다.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3)하나님의 약속은 은혜로 주신 것이며 믿음은 약속에 대한 응답 입니다.

    ‘약속’이란 단어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는 주체이십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인간에게 속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는 주체입니다. 또 약속과 믿음의 선후 관계를 따지면 무엇이 먼저 있을까요? 먼저 약속이 있고 믿음이 나중에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존재해야 인간의 믿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런 약속도 주지 않으셨는데 인간의 믿음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믿음을 겨냥한 것이고 믿음은 약속에 구속됩니다. 이렇게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하나님은 ‘믿음’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류 시조 아담처럼 ‘불신’으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천년 전 예루살렘에 그리스도를 십자가 달리게 하심으로써 인류에게 임한 저주를 대신 감당하시는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어떤 불신의 핑계도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 희생의 은혜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해야 마땅합니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4)성도는 성령을 의지해 성결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이미’ 구원은 받았다고 선언하기도 하지만 ‘아직 아니’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이미 임했지만 천국은 앞으로 임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모순되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유컨대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를 때 한 나라가 승리해서 다른 나라가 항복하고 종전을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각 전투 지역에까지는 승전보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승전보가 전달되고 정전 통보가 전달되기까지 아직도 부분적으로 총알이 날아가고 포사격이 계속되듯이 우리의 구원도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완전한 상황 때문에 성도의 삶 속에 고난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성도는 삶 속에서 때때로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을 통해 죄의 세력에게 고통당합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아시고 하나님이 성도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그분께 위로받고 힘을 얻고 고난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무엇을 간구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우리 안에 부어주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도는 이렇게 자신 안에 부어진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육신의 소욕을 좇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순종하며 이 땅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고 죄의 유혹을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성도는 하나님 경외,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천국 백성인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최고의 법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도 크게 둘로 양분하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법이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 사랑에 대한 법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가장 큰 계명, 가장 상위의 법이 바로 이 법임을 천명하셨습니다.

    (22:37-39)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6)성도는 소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범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들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처럼 성도의 신앙 생활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사랑의 완성이며 사랑은 천국 백성이 갖추어야 하는 최고의 덕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3장에서 성도가 품어야 할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결같이 우리의 내적인 형상, 인격, 성품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계명을 인식하고 나의 내적 형상, 인격,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경주할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천국을 이루시고 비록 이 땅에 살더라도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마음 속에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천국에 대한 소망, 그리스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이렇게 신앙이란 탁자의 상판을 떠받치는 세 개의 견고한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성령은 어느 때나 받을 수 있습니다만, 믿을 때 그 믿음 자체가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믿고 세례까지 받았지만 성령은 아직 못 받은 일도 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8:12)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8:13)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행8:16)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1-6)

  • 성령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1) 진실한 믿음,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5-16)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14:21-2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5:32)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0:44-48)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2)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의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2-6)

    3) 성령을 받은 목회자, 장로, 집사에게 안수를 받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8:14-1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6)

    (민11:17-25)

    4)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눅11:5-13)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1: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1-4)

    5) 성령이 함께 하는 참교회에서 성령의 강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슥14:17)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24:49)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1:4-5)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4:26)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