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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새 교회가 아닌  참 교회였습니다.

    [성도간증] 새 교회가 아닌 참 교회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지난 2022년 9월 17일 수령 확인을 받고 9월 18일 중생의 세례를 경험한 새내기 성도 박재한 입니다. 참교회 문화가 익숙지 않습니다. 옛날교회 다니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널리 양해 바랍니다. 찬송하나 부르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종교적인 가정에서 출생하다

    저희 가정은 매우 종교적인 가정입니다. 특히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들이 그랬습니다. 조부모님은 왜정 때부터 믿은 천리교 신자입니다. 식민지 시대를 지나 한국의 천리교를 재건하신 분들입니다. 저희 조부모님들은 천리교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들입니다. 외조부모님들과 외가는 천주교 성당을 대구, 경북지역에 6개 정도를 자비로 지어서 헌납하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어릴적 천주교 신앙생활을 하다

    저를 포함하여 천주교 신앙이 4대째입니다. 저희 조카들에게는 5대째지요. 이런 종교적 배경속에서 자란 저는 어릴 때부터 종교에 대한 반감이나 거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종교적 문화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되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믿음 생활을 한다거나 종교 생활을 한다는 것이 거북하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연히 뭔가를 믿어야 되고 빌어야 되고, 저희 할머니는 맨날 새벽에 물 떠놓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것만 보고 살아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빌어야 된다, 사람은 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 아버님은 조부모님의 신앙이 아닌 처가의 신앙을 받아들이셔서 열심있는 천주교인이었어요. 지금은 명목상의 신자이지만요. 그 덕분에 저도 유년시절을 천주교 유아 영세를 받아서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개신교에 발을 디디다 

    그러던중 중학교때 ㅇㅇ교회가 장로회 통합측인데요. 노방전도단에 전도가 되어 처음으로 개신교에 발걸음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2의 평양이라 불리우던 ㅇㅇ교회의 분위기상 열심있는 기도생활을 하였고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일반교회의 방언을 경험해 봤고, 병고침의 은사가 나타났었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1992년도 휴거된다고 하던 다미선교회 아시죠? 휴거된다는 계시를 받은 소년중의 한명이 바로 저였습니다. 92년도에 휴거된다는 계시가 왔었거든요. 그래서 그걸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켰지요. 각종 은사들이 나타나고 목이 터져라 통성기도도 하고 간구하고 부르짖는 기도생활을 하였지만 늘 마음이 갈급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갈급함

    성경을 보면 볼수록 궁금증은 많아져만 갔고, 목사님의 설교나 교사님들의 답변은 저의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는 것이 덕목이고 미덕이란 답변뿐이었습니다. 그저 믿어라, 믿어야 된다! 믿어라, 그저 믿어….

    그랬는데 성경을 보니 마태복음 7장21~23절에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내 아버지의 뜻이 뭡니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어요. 그런데 목사님들이나 교사님들에게 물어보면 아무도 답변을 안해줬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찾아보기 시작하고 신령하다는 제단들을 다 다녀봤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가 80년도, 90년도 였는데 다미선교회, 김천의 용문산 기도원, 용문산 기도원에서도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금식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금식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밥먹듯이 철야하고 지금처럼 맑은 목 가져본 것이 얼마 안됩니다. 맨날 걸걸한 쇳소리였지요. 구원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통일교, 천부교 전도관,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승리제단, JMS, 증산도, 대순진리회, 불교, 천도교, 몰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신령하다! 하는 곳은 다 다녀봤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증은 계속 되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180독 했습니다, 지식으로 알고 싶어서 한게 아니라 봐도 모르니까요. 봐도 또 봐야하고 봐도 또 봐야하고 이것 뒤져봐야 하고 저것 뒤져봐야하고 성경을 난도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순복음교회는 계속 출석을 했습니다. 왜? 뜨겁게 기도는 해야 되니까요. 하나님께 빌어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말씀을 난도질하고 이것이 맞으면 저것이 틀리고 저것이 해결되면 이것이 다시 막히는 수도 없는 시행착오 가운데서, 한때는 예수님을 부정하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을 안믿었어요. 답도 없는 성경~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아직도 답이 없는 성경~ 목사님들이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는데 내가 믿어서 뭐하나, 이 생각이 들더라구요.

    침례교에 발을 디디다

    그러다가 칼빈주의 장로교회에서 개혁파 신앙을 따르는 침례교가 있어요. 침례교인데 칼빈주의를 따르는 침례교도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신학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조나단 에드워즈 이런 신학이 있어요. ㅇㅇ동에 ㅇㅇ ㅇㅇ침례교회에 다시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한구절은 맞고 한구절은 또 틀려요.

    안식교에 발을 디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헤매고 헤매고 또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계시록, 다니엘 잘 풀이한다고 해서 안식교 설교를 2년 동안 듣다보니, 아! 이 말씀이 맞는거 같구나~ 어릴 때 안식일교회 다니던 생각이 나서 그 교회로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지키고 계시록, 다니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가 가장 성경적이다! 가장 옳은 말씀이다! 마지막에 남은 교회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안식일 교회에 있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교회 입교전에(코로나 전) 본교회도 몇 번 온 적이 있었습니다.

    새 교회를 찾기 위한 여정

    이러한 신앙생활은 새 교회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새 교회는 세상의 속된 교회와는 다른 오묘하고 성경적으로 참으로 정확한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족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해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는데 새 것이 있겠습니까? 이게 맞으면 저게 틀리고 저게 맞으면 이게 틀리고, 다 끼워 맞추기 해놓은 것들이다 보니 맞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식교에서도 이건 맞지만 이건 또 아니고, 하! 그냥 눈감고 넘겨야 하나, 이젠 갈 때도 없는데……. 다 다녀봤고 전국에 있는 오만개 교회를 다 다닐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혼자 해결하고자 신학서적을 구해 가지고는… 제가 제 책장에 꽂힌 정독한 신학 서적이 890권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성경을 난도질을 하는 겁니다. 그 덕분에 20독을 더 했지요. 구절구절 찾아가며 관주를 찾아가며 옛날 제가 가진 성경이 관주 성경입니다. 아시지요? 빨간 색칠 되어 있고 세로로 된 성경! 그 관주 구절을 다 일일이 찾아가면서 이게 그 말씀인가? 저게 그 말씀인가 그렇게 찾았습니다. 근데 안 되더라구요.

    새 교회가 아닌 참 교회에 발을 디디다

    그러던 중에 올 봄 영은회가 있게 되고 김성동 총무님이 저한테 문자를 보내 주셨어요. 그 영은회를 시작으로 본 교회에서 구도자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배워왔던 여러 교리나 신학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세례를 결심하고 교회와 하나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오희도 목자님과의 대화중에 있었습니다. 시간상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겠지만 참예수교회는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참교회이며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주창 되어진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해석하는 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본인의 증거! 곧 당신께서 우리 미약한 인간에게 보여주신 그 증거와 말씀을 믿고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할때 만나주신 하나님

    이 깨달음이 온 계기는 바로 그 때 제가 읽기 시작한 창세기의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 21:8~20에 가죽부대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 하갈이 가죽부대에 물이 있을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어요. 내 안에 내 지식이 가득 할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가죽부대! 내 지식의 가죽부대에 물이 다 떨어졌을 때, 그것을 초개같이 버렸을 때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늦은 비 성령의 교회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결심케 되었고 그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주께서 선물로 성령을 부어주셔서 방언 말하게 되었음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앞으로의 포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아직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감히 여러분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 주님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분이시고 약속을 변개치 않는 분이십니다. 내 형편을 보지 말고 내 상황을 보지 말고 오직 주님의 약속 곧 성경 말씀만을 믿고 나아간다면 약속하신 모든 유업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 감히 확신하는 바입니다. 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직장생활이나 다른 여러 일정들… 안식일에 부득이 나오지 못한다, 바빠서 못온다, 토요일날 일이 많아서 못 온다고 하는데 다 거짓말입니다. 사실, 오고 싶으면 새벽기도라도 왔다 가지요! 왜 못 옵니까? 제가 앞으로는 잘하겠습니다.(웃음) 그거 얘기하려고 실토하는 겁니다.(웃음) 사실 그렇잖습니까? 뭐가 바빠서? 직장이 어때서? 내가 뭐가 어때서? 라고 얘기하는데 정 안되면 새벽기도라도 왔다 갈수 있어요. 정 안되면 금요일 저녁 예배라도 왔다갈수 있죠. 근데 다들 핑계 대기가 좋거든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목자님도  월급 줄거 아닌데 오라고도 못하고 속은 터지지요. (웃음) 하여튼 우리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참 교회 안에서 함께 교제하며 걸어가며 승리하여 주의 나라에서 함께 찬송하기를 기도합니다. 간증 들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 [성도소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시후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시후를 소개합니다

     

    올해 4월 3일, 김건욱 형제님과 나지윤 자매님의 자녀 ‘김시후’형제(당시 11개월)가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아주 맑은 날씨와 많은 성도님들의 축복 속에서 시후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세례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이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몸이 물에 잠기는 성례전(聖禮典)입니다. 위 말씀처럼 유아세례는 자녀가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 부모의 믿음과 책임이 중요한 만큼, 김건욱 형제님과 나지윤 자매님의 부모로서의 다짐이 새로웠을 거라 생각됩니다. 나지윤 자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Q. 세례를 행하기 전, 목자님께 세례 교육을 먼저 받는데요. ‘유아세례’에 대한 교육을 받고 깨닫게 된 것이 있나요?
    A. 교육을 받은 후 확실히 세례에 대한 마음가짐이 무거워졌던 것 같습니다. 교육 전에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는게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에서 유아세례는 부모의 믿음으로 주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부모가 ‘앞으로 아이를 그리스도인으로 잘 성장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듣고 벙쪘습니다. 정말 내가 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무섭기도 했고, 나중에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이, 엄마였습니다. 엄마도 제가 어릴때 하나님께 저를 하나님 안에서 키우겠다고 약조하시면서 세례를 받치셨겠구나. 그래서 내가 신앙안에서 결혼하고 또 아이를 세례를 받게 할 수 있는 거구나. 목자님께서 교육해주실 때 마무리로, 시후가 신앙안에서 잘 자라 결혼도 하고 또 그 자녀가 세례를 받게끔 할 수 있게 부모가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잘 도와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Q. 세례를 바친 후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A. 세례를 바치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교육을 받았을 때 느꼈던 무거운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복주신 이 가정, 기도로 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Q. 시후에게, 믿음의 선배로서 그리고 부모로서의 바람이 있나요?
    A. 시후 세례식 때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시러 오셨습니다. 그 분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부모가 되겠다고, 그렇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니 옆에서 도와달라고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시후가 ‘주님 안에서’라는 가치관을 꼭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바람은, 시후가 ‘주님 안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마음껏 하는 것이거든요. 그게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리고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로서 잘 모범을 보여서 시후가 ‘주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김건욱 형제님과 나지윤 자매님의 바람처럼, 시후가 언제나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드리는 믿음의 자녀로 자라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제7항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7항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성찬례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주와 연합하고 영생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성례임을 믿는다. 이 성례는 필요할 때마다 거행하며 반드시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으로 거행한다.

    성찬례는 구약 출애굽 시대에 시작된 유월절 절기에 유대인들이 가지는 특별한 식사가 신약 시대에 개혁되어 나타난 기독교의 성례입니다. 이 성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1)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해서 그 나라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열 개의 재앙 가운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재앙은 바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은 죽음을 당하는 끔직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는 그 재앙이 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재앙이 닥치기 전에 미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대로 실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백성들과는 달리 그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은 유대인들이 애굽을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애굽 사람에게는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임한 이 재앙을 기념하여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에는 무교병과 양고기와 같은 특별한 의미의 음식을 먹으며 기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구약 시대 장자 죽음의 재앙을 통해 시작된 유월절 절기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즉, 애굽과 같은 죄악 세상에서 사망의 노예처럼 매여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그 값으로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설립하신 새로운 유월절로서 성찬례를 시행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친히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 근거하여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찬례를 일컬어‘유월절 먹기를 원하였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성찬례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즉 신약 시대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새로운 유월절 식사입니다.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성찬례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 사이에서만 명령하시고 준행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세워진 초대교회는 그것을 하나의 성례로 받아들여서 시행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관련된 문헌에서도 발견되지만 성경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저술인 고린도 전서에서 예수께서 설립하신 성찬례의 정확한 절차와 그 의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에 참여한 인물이 아닙니다. 마지막 만찬에 참여하지 않은 그가 그 때의 대화와 성찬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고린도 교회를 포함한 초대 교회가 성찬례를 하나의 예전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2)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교파와 교단에 따라 그 교리에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천주교의 견해로 ‘화체설’(化體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즙을 축사하면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몸으로 변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일반 개신교의 견해로 ‘상징설’(象徵說)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 축사 기도를 하더라도 떡과 포도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예수교회의 ‘영화설’(靈化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성령을 받은 성도의 축사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피와 살로 ‘영적인 변화’(영화)가 일어난다고 믿는 견해입니다. 마치 세례받을 때 물이 실제 피로 변하지는 않지만 성령 받은 자가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 시행했을 때 ‘물’이 ‘피’로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듯이 성령 받은 자의 축사 기도를 통해 성찬례의 떡과 포도즙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딤전 4:4-5)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3)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생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성찬례에 참예할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세례를 받고 구원의 길을 시작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은 성찬례를 통해 거듭난 성도에게 부활과 영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찬례에 참예하는 성도는 이 예식에 참예함으로 장래에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참예해야 합니다.

    (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4)힘을 합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개인적 신앙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한 떡과 한 포도즙에 참예하는 것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한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육신의 피를 나눈 혈육의 가족 관계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적인 가족 관계도 있습니다. 육신의 가족은 죽음을 통해서 그 관계가 끝나지만 영적인 가족은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가족은 육신의 가족보다 더 중요하며 육신의 친족보다 더 친밀한 관계입니다. 성도는 성찬에 참예할 때 이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영적인 가족들과 함께 한 떡과 한 잔에 참예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인 가족으로 맺어진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5)성찬례는 성경적 절차와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세례라는 성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례도 그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성경적 절차와 방법대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 절차와 방법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해야만 그 성찬례에 담긴 온전한 정신과 영적인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 개의 누룩없는 떡을 사용합니다.

    떡은 축사하기 전에 한 개여야 합니다. 그리고 축사 이후에 작은 조각으로 찢어 나눕니다. 이 한 개의 떡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참교회의 성도들은 천국까지 항해하는 구원의 방주에 함께 올라탄 한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떡에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은 순결한 예수님의 몸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누룩을 멀리하듯이 생활 속에서 죄악과 부정함을 멀리하고 예수님처럼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할 것을 성찬에 참예하는 시간에 깊이 다짐해야 합니다.

    (고전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둘째, 한 병의 누룩 없는 포도즙을 사용합니다.

    한 병의 포도즙은 우리가 한 피를 나눈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효된 포도주가 아니라 누룩을 넣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은 역시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의 정결한 피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그 피에 참예함으로 예수님을 본받아 피흘리기까지 죄의 세력과 싸우며 세상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복음을 전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세례를 받은 자가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유월절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으로 귀화한 자만이 참예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약 시대의 새로운 유월절인 성찬례도 세례를 받고 거듭난 성도만이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아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지도 않은 자가 장차 부활할 미래를 위해서 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로 주님과 관계를 맺은 자,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후 성찬에 참예할 자격이 있습니다.

    (12:48)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넷째, 성찬거행의 회수는 제한이 없고 수시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 문헌이나 자료를 조사하면 초대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집회시마다 애찬과 병행하여 시행한 것으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시행의 회수나 시행할 때를 지정하신 일은 없으므로 각 교회가 처한 형편대로 스스로 정해서 거행하면 됩니다. 싱가폴에 있는 참예수교회의 경우 월 1 회 성찬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참예수교회 대만교회에서는 한국 교회처럼 영은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 때에 시행하고 있습니다.

  • 제4항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4항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례(침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성례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베풀며 세례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고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함을 믿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도록 보내신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명대로 물로 세례를 주는 자기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 항상 세례라는 단어가 붙어서 세례 요한, 즉 ‘세례자’(Baptist 세례주는 사람) 요한이라고 구별하여 호칭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세례는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기원했고 그분의 명령을 받은 세례 요한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침례)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중생(거듭남)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이후에 태어나는 후손들이 모두 ‘원죄’(죄를 짓는 그릇된 성향)를 가지고 태어나 일생동안 죄를 짓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 사망에 이르는 저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5:12-14)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인간이 이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생명으로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범죄함 때문에 사망이 찾아왔으므로 범죄의 대가를 치르고 죄사함을 받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대속(대신 값을 치름)하려면 인간의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 등 세상의 어떤 동물이라도, 또 아무리 많은 수 동물이라도 한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생명만이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흠없이 창조하신 것처럼 아무 흠이 없는 존재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새 차를 파손했으면 피해자에게 새 차로 교환해 주어야지 중고차로 대신 보상하겠다고 말한다면 피해자는 이 제안을 당연히 거절할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인간의 대속을 위해서 두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여느 인간과는 달리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원죄도 없고 아무런 흠결이 없는 인간입니다.

    (벧전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없고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는 없으시니라

     

    인간이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기 위해서 흠없는 생명을 대신 제물로 드려야 하는 상황은 마치 어떤 노인이 돈이 없어서 빵을 훔쳤는데 재판관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죄값을 치러야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벌금을 낼 수 있습니까? 그 돈이 있었다면 이미 빵을 훔치지 않고 사먹었겠지요. 그렇다면 절도죄로 체포되어 재판받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 딜레마에 빠진 것이 바로 인간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빠진 인간들을 위해 대신 죄값을 치르신 분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21:24-25)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흠없는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흠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 제물로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대속(대신 값을 치르고 구함)하신 분과 관계를 맺어야합니다. 그 관계란 십자가의 죽음의 효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개인에게 미치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받으신 것과 같은 세례(침례. 물에 잠기는 성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세례를 통해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다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 올바른 세례를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모순이요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2:41) 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믿음으로 순종하고 세례를 받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는 행위가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표현이며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로운 분으로 인정하는 자(세례 받는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을 가리켜 ‘칭의’(의롭다고 선언해 줌)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옷이 더럽혀진 사람이 새로운 ‘흰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처럼, 야곱이 형 ‘에서’의 옷을 입고 대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받은 것처럼 세례를 받으면 자기 죄의 수치를 가릴 수 있고 하나님께 복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침례)는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와야 하는데 이것은 정확히 세례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처럼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대신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세례를 통해 그분과 연합하면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성례입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세례는 이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 20:22-23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22-23)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윽고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야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주님이 위임하신 죄사함의 권세를 행했습니다. 성령은 교회가 사죄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면허증입니다. 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는 면허증을 취득한 사람이어야 하듯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는 바로 약속의 성령(성령의 내주)을 받은 자라야 자격이 주어집니다. 만약 ‘물세례’를 베풀되 전신이 잠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며, 고개를 숙이는 바른 형태로 시행한다 할지라도 만약 성령의 내주가 없는 사람이 베푼다면 그 세례는 사죄의 효력이 없습니다. 이는 먼허증이 없는데 운전을 한다면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자이듯이 성령세례로 거듭나지 않은 자가 세례를 베푼다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또 성령이 계신 교회의 파송을 받은 자가 베풀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려주신 보혜사 성령이 있어야 하고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로부터 파송된 자가 베푼 세례에 사죄의 효력이 있습니다.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 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세례는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형식과 내용은 모두 중요합니다. 형식없이 내용이 보존될 수 없고 내용없는 형식은 공허할 뿐입니다. 올바른 형식에 올바른 내용이 보존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의 과정과 형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적 올바른 세례는

     

    첫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회는 세례의 방법과 대상에 대해 논쟁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일반 개신교는 마 28:19에 근거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시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행전의 내용과 조화되지 않습니다. 즉 행 2:38, 8:16, 10:48, 19:5의 내용에는 모두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모순된 것일까요? 한쪽의 기록은 선택하고 다른 쪽의 기록은 버려야 할까요? 우리는 성경이 모순되지 않고 조화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마 28:19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란 사실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 곧 예수. 아들의 이름, 곧 예수. 성령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둘째, 흐르는 물에서 전신이 물에 잠겨야 합니다.

    본래 세례는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였고, 세례의 문자적인 의미도 또한 ‘물에 잠기다’라는 헬라어 동사 ‘밥티조’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이디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을 때, ‘물에서 올라왔다’는 표현은 이런 침례가 시행된 사실을 반증합니다.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세례의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성례라는 사실을 근거로 볼 때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의 형식은 롬 6:3~5에 기록하고 있는 세례의 정의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부활입니다. 이와 같은 죽음과 부활의 의미는 세례를 받은 이후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의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바울 사도는 세례받은 자는 자신을 죽었다가 산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자로 여길지어다

     

    세례받은 성도는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배는 세례의 연장입니다. 예배란 죄 있는 성도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사함받으며 그 결과로 주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소유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만약 예배의 은혜가 그렇다면 이는 죽고 다시 사는 세례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의미의 세례를 받은 자는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날마다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고백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세례의 정의와 의미로 볼 때 세례는 반드시 물에 완전히 잠기는 형태여야 합니다.

    (3: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셋째,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세례는 뒤로 눕는 모양이 아니라 앞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양으로 받아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죄인의 마땅한 태도이며 그분의 죽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하시는 장면에서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19:30).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을 자세히 묘사한 것은 그 죽음과 연합한 세례의 구체적인 동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세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성례라면 마땅히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을 본받는 형태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머리를 숙이고 받는 것입니다.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세례는 반드시 물속에서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세례는 반드시 물속에서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세례는 헬라어로 ‘침수(浸水)한다’는 동사 ‘밥티조’(baptiz)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밥티스마’(βἀπτισμα)라고 합니다. 이를 영어로는 ‘뱁티즘’(baptis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례의 어휘적 뜻에 따르면 ‘세례’보다는 ‘침례’가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신약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세례’는 ‘침수’로 시행되었음을 간접적인 증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들이 많음이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3:23)

    물에서 올라가실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6)

    물에서 올라갈새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9)

    와 같은 표현은 침례를 행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기독교 역사 자료를 제시한 여러 문헌들을 살펴보면 초대 교회에서 시행한 세례는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는 물속에서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는 예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3-5)

    . 세례를 통해서 물속에 잠기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세례의 예식이 이와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3:21). 그렇기 때문에 세례는 본래의 성경의 모습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물에서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중요한 의식(儀式). 육체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의식인데, 새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세례를 뜻하는 그리스어 밥티스마(βπτσμ)는 ‘침수(浸水)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의 세례는 몸통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浸禮)예식이었기 때문이다.’

    두산세계대백과

     

    “헬라어 원어의 뜻은 ‘침수’. 초대 교회에서부터 시행된 그리스도인의 입교 의식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2:41)

    . 그러나 세례의 발단은 구약 시대의 할례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17:10,11)와 결례(레 11장 이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세례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례의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물을 붓거나 떨어뜨리는 경우를 세례라고 하고 물에 잠기는 것을 침례라고 부른다. 침례가 본래의 의식이나 세례도 초대 교회부터 시작되었다. 중세까지는 주로 침례가 시행되다가 종교 개혁 이후에는 세례가 보편화되었다. (하략)”

    기독교사전. 기독교문사

     

    이러한 세례(침례)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1:33)

    . 또한 이처럼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의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리새인들과의 대화 가운데서도 간접적으로 인정하신 것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무슨 권세로 가르치느냐는 물음에 예수께서는 오히려 반문하시기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인지 사람으로부터인가?’를 물으셨고. 누구든 이 물음에 하늘로부터라고 대답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눅20:4)

    .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느냐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이해했습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눅7:29-30). 이와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볼 때 세례는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참예수교회는 왜 세례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깁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서 6장에서 언급했듯이 기독교 세례의 정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 사건처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천 년 전 공생애의 세 번째 유월절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예루살렘 영문 밖 골고다 언덕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듭나는 사건도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십자가와 연합하는 역사적 사건이어야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3-5)

    너희가 세례(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2: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3:10-12)

    성경은 세례가 단순히 형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죄 씻음(Washing sins)

    사도들은 세례가 죄를 씻는 효과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22:16)

    2) 칭의(稱義)또는 의롭다 칭함(Justification)

    사도들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다’고 여긴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6:6-7)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11)

    3) 중생(Regeneration)

    예수님과 사도들은 세례를 통해 사람이 거듭 태어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4) 구원(Salvation)

    예수님과 사도들은 세례를 통해 인간이 구원에 이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16: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3:21)

  •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동일한 질문을 이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했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물로 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21)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22:16)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갈 3:27)

    그리고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천국의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6-17)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거듭남(중생)은 천국에 들어가는 첫 걸음이자 필수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물과(물침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전까지의 삶의 모습을 버리고 성경 교훈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이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구원을 향해 걸어가는 삶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 성령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1) 진실한 믿음,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5-16)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14:21-2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5:32)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0:44-48)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2)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의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2-6)

    3) 성령을 받은 목회자, 장로, 집사에게 안수를 받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8:14-1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6)

    (민11:17-25)

    4)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눅11:5-13)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1: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1-4)

    5) 성령이 함께 하는 참교회에서 성령의 강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슥14:17)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24:49)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1:4-5)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4:26)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12:22)

  • 참예수교회는 다른 교회와 어떤 점이 다릅니까?

    참예수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믿습니다. 또한 신구약 성경 66권이 진리를 증거 하는 유일한 경전임을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참예수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공통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예수교회가 다른 교회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교회가 전하고 가르치던 구원의 진리를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거듭나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도들 역시 동일하게 거듭남의 진리를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본회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즉 성경적인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안식일을 준수합니다

    또한 본회는 안식일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아니라 창세 때 세우신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이며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2:3)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3:15-17)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사이의 표징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31:13)

    으로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 백성들이 준수해야 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부활 이후에도 사도들은 계속해서 안식일을 준수했으며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행16:13)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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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 역시도 그와 같은 이유로 안식일을 준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