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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제목: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일시: 2025년 10월 26일 가을 영은회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찬례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행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의식이나 의례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방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찬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리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죄가 없음에도 유대인들의 고소로 아그립바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변호해야 했지만 이때에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미쳤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교회를 위한 것인데 이러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하게 붙드셨기 때문에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삶으로 흘러갔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끌어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겪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이사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며, 그분이 찔리시고 상함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래 죄로 인해 고난받고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결국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첫 사람 아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기에,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생겼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며, 죽음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역시 그와 똑같이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첫 번째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것도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첫 생명이 되셔서 우리도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내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죽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직접 창조된 존재이듯,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사람이 죄에 빠질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일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사건임을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이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의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영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삶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죽는 것입니까? 성경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합니다. 세례에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신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인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욕심과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이 것이기 때문에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와 멸망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를 살리셔서 옛 삶 즉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대로,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풍속을 좇는 삶이며, 이런 삶은 결국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며, 결국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그런 삶이 우리에게 유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가 되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우리가 가장 가치 있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우리는 구원만 받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가치 있고 도덕적 삶을 살아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르는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이전에는 죄 가운데 있어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놀라운 연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며,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도 바로 이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내 힘을 합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실제로 행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되셨던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즉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키고 더 깊어지도록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며, 성경이 말하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3~27)

    주님의 몸과 피를 분별하며 자신을 살피는 성도

    바울은 성찬이 주님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만큼 성찬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여 주님과 더욱 깊이 연합하게 되는 은혜의 자리임을 말합니다. 이 떡과 잔은 ‘너희를 위한 내 몸’,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예수님의 생명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는 효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찬을 받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을 받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고전11:27)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각각 자기를 살피라고 명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 거룩한 예식이기에, 성도는 그 의미를 분별하고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형식적인 성례가 아니라 매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담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게 되는 참으로 거룩한 성례라는 것입니다. 매번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이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 삶을 살기 위해 다시 결단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은 이 결단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더욱 힘쓰는 성도님이 되길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 링크

    글: 최재웅 형제

  •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제목: 히스기야의 기도(사 37:1~7)

    일시: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히스기야를 통해 본 기도의 참된 자세

    본문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아수르 군대가 남유다를 침공했고, 유다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을 앞둔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참된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의지하라(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가 성전으로 간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지니라.(5: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를 맞으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거의 성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라(1)

    히스기야가 성전에 가서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역대하 7장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듣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이 약속을 기억하고 성전에서 기도했고, 성전에 갈 수 없을 때는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통해 드리는 기도 역시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에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 교회를 향해 눈과 마음을 두시고,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비하게 기도하라.(1)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기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경건한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복종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뜻이나 내 주장,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라.(2)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도 기도 부탁을 합니다. 자신도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종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5: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사무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고, 히브리서 13장 말씀에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들이 결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도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눌 때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환난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3)

    히스기야가 기도하면서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37:3)

    이 말은 현재 상황을 인정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는 이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책벌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해산할 힘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이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어떤 위기든지, 어떤 절망이든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4)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하며 한 말 중에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며 분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한다면 두려워하지 말라.(6)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링크: 히스기야의 기도(사37:1~7)

     

    글| 최재웅 형제

  • [복음 메시지]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복음 메시지]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제목: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고전 2:10-16)

    일시: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령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가 비밀하다 말하며, 사람의 지혜나 이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깊고 감추어진 것으로 묘사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여기서 ‘보이셨다.’는 것은 드러내셨다, 곧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본래 우리에게 감추어진 채로 존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이시기에, 성령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에베소서 3장에서도 동일하게 증거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에베소서 3장 5절에서는 그 비밀이 “다른 세대에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나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 곧 이방인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며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이 복음의 신비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도 이 내용을 더욱 분명히 해 줍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1:26)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을 만세 전부터 감추어두셨으나, 이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이 복음을 전하며, 자신이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다른 성도들도 함께 깨달을 수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았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사람의 일반적인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즉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이성이나 연구, 철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성령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말씀과 교회를 통해 깨닫게 하신다

    또한 에베소서 3장 10절 말씀에 따르면, ‘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지셨도다”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셔서 치유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시편 73편에서 시편 기자는 악인이 형통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잃을 뻔한 사실을 ‘자신이 거의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실족하려고 했지만 실족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의 결국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실족할 뻔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때로는 세상의 불의를 보며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공의와 뜻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뜻을 알지 못하면 실족할 수 있으며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도 예수님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해하지 못해 넘어질 뻔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면 성령을 통해 주시는 말씀, 그리고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교회로 나가야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더 열심히 기도할 때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오직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마치 사람의 속 사정을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뜻도 성령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성경에 기록하셨지만, 이 말씀의 깊은 의미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참된 의도는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문자적 표현 즉 글의 표면적인 의미는 알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은 알 수가 없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중에는 성경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우리 참예수교회의 진리의 말씀과 구원에 관한 복음을 전하면 그런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 또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상식과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그 말씀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에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됐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독을 받아서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성령의 성령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이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혀주셔야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구원의 영광을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엡 1:17~18)

    이미 성령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바울은 더 깊은 지혜와 계시의 영, 그리고 마음의 눈을 밝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신앙에 대한 소중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말씀을 바로 분별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에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성령이 인도를 해 주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로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도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셔서 말씀을 전할 때도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은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생각이나 기준으로 해석하려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참예수교회는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해석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는데 일반 교회 같은 경우는 이렇게 하지 않다 보니까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후서 3장 10절 말씀에 주의 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한 주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주의 날’ 하면 일반교회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게 주일입니다. 계시록 1장 10절에도 ‘주의 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인 만큼 이것을 근거로 마지막 때에도 ‘주의 날’, 즉 주일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주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말씀을 푼 결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 對 신령한 자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미련하게 여기며 깨닫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 말씀에 십자가에 도를 미련하다고 여기는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혹은 성령 없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인 이방인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지만 육에 속한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면 점점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신령한 자는 육에 속한 자와 반대가 되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5)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삶이 됩니다. 결국, 이는 곧 성령 충만한 삶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

    고린도전서 2장 16절 마지막 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수도와 같은 삶,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에서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설교링크: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