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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향기]♥인천교회 학생부들의 마음♥

    [신앙의 향기]♥인천교회 학생부들의 마음♥

    할렐루야!

    인천교회 학생부에서 활동자료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비록 그 수가 적으나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성실이 인천교회를 꽉 채웁니다. 교사에게 감동을 주는 학생부 친구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학생들의 믿음을  잘 성장시킬 수 있도록 교사에게도 지헤와 힘을 주시고 학생부들에게는 하나님의 셀 수 없는  축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게 하시고, 힘들고 부족한 부분이있다면 넘치도록 채워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임마누엘♥ 

  • [복음메시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복음메시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말씀제목]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31일(토) 안식일오전예배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오늘 말씀은 자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역사 이래로 사람들이 자유를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자유라는 것은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삶을 우리가 상상해 본다면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자유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은 참 자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참 자유가 필요하고 참 자유를 우리가 누려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자유’,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1.예수님 말씀에 거하여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라!

    31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성경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라는 것에 대하여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유대인들에게 바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도 참 제자가 아닐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거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거한다’는 ‘산다는 것’입니다. 즉 거주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 속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삶이 말씀을 따라가는 삶 이것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참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인정하신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라서 실제 살아가는 삶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고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을 보시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 있고 죽어 있는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만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은혜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믿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난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까’라고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제자 그리고 ‘살아있는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말씀에 거하여 진리를 알아라!

    본문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살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말씀에 진리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적용한다면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갈 때 누구를 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냥 표면적으로 아는 경우가 있고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잘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우리가 알아갈 때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말씀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갈 때 은혜와 평강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은혜와 평강이 더욱 더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을 우리가 알면 `아! 예수님이 참 좋으신 분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우리가 더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믿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따라갑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더욱 더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고 예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써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더욱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통한 은혜와 평강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말씀에 순종하는그런 삶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알고 이런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더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말씀을 다 따라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비록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하더라도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고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따라 살아 가는게 쉬워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에 따라 사는 그런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멍에라고 하는 건 뭐지요? 두 마리 소가 함께 뭔가 무거운 것을 지고 그걸 끌고 가는 것이 멍에지 않습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무거워 보여 저렇게 가게 되면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게 되면 그래서 말씀에 따라 행한 삶을 살게 되면 사실은 그렇게 무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실제로 그렇게 메다 보면 그렇게 무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멍에를 메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 봐야 어! 별로 어렵지 않네! 별로 무겁지 않네! 그리고 그런 것에서 뭔가 쉼을 그리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될 때 비로서 그 가운데서 마음의 쉼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이런 평안과 쉼은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진리’ 즉 예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바로 하나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거하고 따라가는 삶을 살 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을 우리가 진짜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믿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대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정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평안과 은혜를 주는 말씀인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정말로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해 봐야만 비로소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많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이 아무리 들어도 이 말씀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깨닫게 되고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말씀을 따라서, 더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2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이 말씀은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어떤 대학에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네 교명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굉장히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이 언제 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가운데 있을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혹은 그 말씀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어떤 자유를 말하는 걸까요?

     

    3.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이라!

    33절, 34절 입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니까 유대인들이 아니 우리가 누구에게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이렇게 말하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이 진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말씀이 진짜죠, 진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이 표현을 쓰신 것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성경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종이면 자유가 있습니까?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종이다’, ‘당신은 종입니다.’ ‘당신은 죄의 종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때 그것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 또는 바로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라고 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이런 자유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죄로부터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그래서 로마서 7장에 보게 되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내가 정말 이런 죄 가운데서 자유하다면, 내가 죄를 짓고 싶지 않다면 죄를 안 지어야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야지’라고 죄를 짓는게 아니라 내가 죄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의 종이고 죄에 대해서 자유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자유는 바로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는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이렇게 되는 이유가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악은 행하는 것, 내가 그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속에 거하는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기 해당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결국 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은 다시 말하면 노예입니다. 그럼 노예의 삶이 어떨까요? 실제 노예의 삶을 살아보진 않았지만 노예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노예의 삶 자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모든 삶이 다 죄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가 내가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매일 매일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는 모르다가 내가 이거 해야 되는데, 내가 선을 행해야 되는데 그렇게 할 때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원하는 어떤 선한 일, 하나님께서 보시기 기뻐하는 그런 일을 하려고 할 때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자유가 없이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는 그 죄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의 종의 모습입니다.

    그럼 그럴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괴롭지 않습니까? 평상시 우리가 어떤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정작 내가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고 내가 더 많은 선을 따라 행하는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유하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때 일까요? 내 말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즉 예수님께서 혹은 말씀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진리가 그 죄 가운데 살아가는 그 사람을 여기서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죄에서 벗어나 선하게 살아가려는 우리 믿는 사람들, 더 하나님의 그런 뜻을 따라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셨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따라서 오늘 우리들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어디도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잘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럼 분명히 이 말씀대로 여러분 삶 속에서 진리가 여러분들을 그 가운데서 자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4.  생명의 성령의 법을 너희 안에 기록하라!

    자 그러면 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왜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죄의 종이 되는 걸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죄에 지니까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은 진리가 죄를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혹은 하나님 말씀이죠, 그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 말씀을 보면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 자기 마음에 두었다고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둘 때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죄의 소욕, 즉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죄의 소욕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 칼, 검이라고 비유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말씀을 통해서 쪼개는 것입니다. 쪼개고 죽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기록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고, 죄의 소욕을 죽이고 결국은 죄를 이기게 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기 때문에 어떤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날 해방한다는 것은 이 성령이 죄의 힘, 죄의 권세로 부터 우리를 이기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지 않게 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이 어떤 삶이라는 것이냐 하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요한 8장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게될 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런 가운데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실질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럴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시게 되서 우리가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고 그럴 때 성령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에스겔 11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스겔 11장 17절에서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목요일 기도회 시간에 말씀드렸던 본문의 말씀인데요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올 때 18절 말씀을 보게되면 그들이 다시금 돌아와서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다 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다 제하여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우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고 우상을 섬기는 가운데 있을 때 결국은 그 우상숭배 때문에 이들이 나라가 망하게 되고,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 사로잡혀 가서 그곳에서 종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종과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그곳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하시는데 나오게 하겠다는 건 바로 종에서 나오게 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신을, 새 영을 그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영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거기서 나오게 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올 때 우상을 재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게 된 그들이 그곳에서 종으로, 노예의 삶을 살게 된 근본적 이유가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고 그 우상을 제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이 우상을 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스스로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힘이 너무나 크니까 상대적으로 그들은 너무나 힘이 약하다 보니까 그 우상숭배라고 하는 죄로부터 스스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영을 주셔서 그들을 그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8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성전으로 데리고 오십니다. 그리고 성전 뜰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에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담을 헐라고 하십니다. 담을 헐었더니 그 안에 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또 들어가서 보라고 말씀합니다. 들어가서 보니까 뭐가 보입니까? 각종 우상들이 즐비하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는 모습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표면적으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 삶 가운데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거기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은 그 죄 가운데서 나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사로잡혀 있던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 성도들도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지만 실제로 내 깊은 곳에서 내가 섬기는 건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상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우상이 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는데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계속해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나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명예든 혹은 내 자녀든, 좀 더 들어가서 보면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 근본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내 욕심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결국 내 욕심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씀드렸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지 않고 내 욕심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약속하신 것이냐면 바로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고 근본적으로 이 죄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영적인 우상숭배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자유하도록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 백성 되도록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이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죄로부터 그리고 큰 유혹의 권세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이 언제 우리를 도우시고 언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게 하라라는 말씀을 따라서 우리 하나님께 순종할 때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이 이 안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는 성도들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고, 순종하도록 힘쓰는 가운데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전 로마서 8장 1절, 2절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에 힘을 쓰면 힘을 쓸수록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말씀을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라 것입니다. 이걸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결국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이유입니다.

    요한 8장 35절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보시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죄의 종 되고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거기에 매이게 되서 우리 성도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정말 노력하셔야 됩니다. 죄와 싸워야 됩니다. 물론 내 힘으로 된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입어야 되죠.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게 집니다. 그러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면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5.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

    35절을 보시면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종이 주인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까? 잠깐 잠깐 들어올 수 있지만 말 그대 그냥 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그 집에 계속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말씀은 아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어야만 그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주인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 집이 그 아들의 집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종은 그 주인의 집이지 이 종의 집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걸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게 뭘까요? 우리가 종으로 살아가면 영원히 하나님 집에 거하지못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 아니라 아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되고 그런 아들이 영원히 하나님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으로 살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받았지만 여기에 만족하시면 안됩니다. 실제 우리 삶이 하나님 아들의 삶,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 아들의 삶,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실적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아들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럴 때 말씀처럼 영원히 하나님이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6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한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오 오셨으니까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이런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고 또한 부족하다 보니 완전히 죄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죄 의 종된 삶에서는 벗어나고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삶, 바로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말씀이 각자에게 큰 깨달음이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죄로부터 자유하는 진정한 은혜와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유튜브 예배링크]

  • [성도소개]우정 자매님 가족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우정 자매님 가족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산소 같은 가족이 있습니다. 싱그럽습니다.

     

    우정♥송석환 가정입니다. 우정 자매님이 결혼을 통해 송석환 형제님을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셨습니다.  백설공주 같은 첫째 율이가 있고 둘째 민이가 작년에 태어나서 네 식구가 되었습니다. 율이와 민이는 인천교회 너무나 소중한 아동부입니다. 

    우정 자매님은 올 해 아동부장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육아 휴직 후 3월에 직장에 복귀해서 직장생활하랴 어린 아이들 돌보랴 힘이 드실 상황입니다. 자매님은 아동부 교사나 교회에서 특별한 직무를 맡으신 경험이 없으셨기에 부담이 매우 컸을거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아동부장 봉사를 제안했을 때 인천교회 사정을 아시고 감사하게도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매주 안식일 아이들과 출석하고 계십니다. 준비된 일꾼이셨음을 실감합니다.

    인천교회 아동부 재적이 30명을 웃돌고 출석 수가 20명이 넘을 때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백설공주 보다 더 하얗고 예쁜 6살 율이와 언니를 꼭 닮은 2살 민이 두 아이가 인천교회 아동부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엄마인 우정 자매님과 아동반 선생님들 그리고 인천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희망이고 기쁨입니다.

    송석환 형제님 또한  함께 안식일 예배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하십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우정 자매님을 사랑하시고 자매님의 배우자로 택하셨기에 꼭 성령을 주실거라 믿습니다. 

    저희는 우정 자매님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정 자매님 가정을 통해 일하실 앞으로의 날을 기대합니다. 인천교회 일꾼이 부족하기에 하나님께서 우정 자매님 가정을 귀하게 쓰시고자 인천교회에 보내주셨음을 믿습니다.  두 부부가 주님 안에서 살아갈 때 더 사랑하게 하시고, 힘 주시고, 크신 축복을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두 아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할 수 있도록 믿음 주시고 그들이 가는 곳에 늘 함께 하시고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길 소망합니다. 두 부부를 하나님께서 꼭 만나 주시길,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간절히 구합니다.  임마누엘♥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 [성도간증]여기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요!

    [성도간증]여기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요!

    할렐루야!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함께 은혜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저를 선택하시고 참 진리 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저는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입니다. 참예수교회 모태신앙입니다. 아버지는 소천하신 삼계교회 한상욱 집사님이시고, 어머니는 현재 삼계교회에서 믿음을 이어 가고 계신 권정임 모친이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주 5일제가 아니었습니다. 토요일에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라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저는 차로 15분 정도 소요되는 삼계교회에 부모님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영은회 때 일요일 예배를 드려보는 정도로 참예수교회를 갔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의 믿음은 농사를 지어 1남 7녀의 줄줄이 이어지는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느라 삶에 찌들어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에 전념하시지 못해 자식들에게도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 주일교회가 생겨 일요일마다 그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도 가지 말라고 하시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인천에서 직장취업 후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저는 일요일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법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단원으로 봉사하면서 열심인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던 친언니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에게 같이 예배를 한번 드려보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언니를 신뢰하고 있던 터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심도 있게 성경을 공부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들려주는 세계 역사와 다니엘서 비교해석, 잘못된 주일성수, 성탄절의 진실 등 놀라운 성경의 비밀들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교리 안에서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출석하고 있던 인천의 한 장로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등록하여 한 달 남짓 다니며 교리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언니도 회기동에 있던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안상홍 하나님이 인간으로 다시 와야만 했던 이유와 성경에 기록된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의심이 생겼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발길을 우선 끊었는데 그렇다고 잘못된 주일교회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무렵 제가 장로교회에 다닐 때는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던 친정 아버지도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잠도 못 주무시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다  그 당시 인천교회 담임 목자님이셨던 양봉도 목자님께 전화를 하셔서 저를 좀 구해 달라고 부탁하셨었나 봅니다. 그 당시 인천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계셨고 지금은 대방교회에 계시는 유영무 형제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양봉도 목자님을 한번 만나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옳은 교리가 무엇인지, 성경대로 가르치고 지키는 교회가 어디인지 찾고 싶었던 저는 유영무 형제님의 제안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양봉도 목자님을 만나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다양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들을 양봉도 목자님께 들었습니다. 세례, 성령과 방언에 대한 진리, 성부성자성령의 세 하나님의 이름들이 아닌 예수그리스도 하나이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안식일의 중요성 등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삼계교회와 그 당시 방문했던 인천 간석동의 교회에서 저는  화려하지도 고급지지도 않은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옷차림도 한없이 소박하고 허름함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너무나도 빛나고 값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았던 참 진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과 외할머니께 들었던 새벽기도 소리와 들려 주신 말씀들 속에 녹아 있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셋 민족이 살고 있는 짧은 길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지 않으시고 40년 긴 광야 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진리의 거룩한 곳에 모태신앙으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쉽게 들어오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를 이곳 저곳 일반교회, 하나님의 교회를 떠돌고 돌아 돌아 어렵게 찾게 하셨고 어렵게 찾은 그것이 참 진리였음을 깨닫게 하시고 비로소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저를 향한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참 진리를 절대 떠나지도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 믿지 않던 남편을 만나 참 진리 안에 있으며 시어머님과 22살인 아들과 함께 인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서울에 있는 언니도 하나님의 교회를 나와 현재 강남교회에서 믿음 생활하고 있습니다. 소천하신 친정 아버지도 제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을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현재 삼계교회에 다니시는 친정 어머니도 저희 남편과 저를 매우 기쁘게 바라보십니다. 남편은 올 해 집사 안립을 받아서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안식일 봉사로 시골 친정 어머니를 거의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하시고 주님 일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인천교회에서 믿음 생활한 지도 이제 25년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너무나도 믿음이 연약했던 제가 그 동안 교회 임원,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어 하고, 최근 인천교회 성도수가 많이 감소해서 하나님 앞에 죄스럽고 낙심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열심히 진리를 찾았던 25살의 저 자신을 소환합니다. 어떻게 만난 귀한 곳인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저에서 살 소망을 준 이 곳, 그리고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그 감격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평생 멸망의 길에서 헛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던 저를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로 인도해 주심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참예수교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친정 아버지, 양봉도 목자님, 유영무 형제님, 김명애 자매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 있지만 저와 제 남편의 믿음이 연약할 때 우리 세 식구를 안식일 마다 차 태워 교회로 인도해 주셨던 김기환 형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꼭 돌아오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 [신앙의향기]♥인천교회 작은정원♥

    [신앙의향기]♥인천교회 작은정원♥

    할렐루야!

    올 봄 4월부터 6월까지 인천교회 작은 정원에 꽃이 만발했습니다. 여름이 되어 대부분 다 졌지만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꽃 옆 벤취에 앉아 인천교회에 대해 한 분이라도 궁금한 생각이 있으시길, 지나가시다가 꽃 보시고 교회 간판이라도 한번 보고 가시길 소망하며 꽃을 가꾸셨을거라 생각됩니다. 꽃 향기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담은 인천교회 향기가 인근 주변으로 널리 퍼져나가길 소망합니다.  임마누엘♥

     

    고린도후서 2:14-16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 [교회행사] 인천교회 경로행사!

    [교회행사] 인천교회 경로행사!

    할렐루야!

    6월 9일 일요일, 인천교회 바울회, 마리아회, 도르가회 연합 경로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을 방문하셨고 임금님 밥상에서 이천쌀로 지은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이진상회라는 카페에서 차 마시며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청년의 시절부터 교회에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사시고 어느 덧 세월이 흘러 이제는 많이 걷지 못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수고와 정성을 기억하시고 축복해 주실거라 믿습니다. 고단한 성도의 삶이지만 감사와 기쁨으로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살아오심에 존경의 마음을 갖습니다. 저희도 어르신들의 신앙을 본받고 다음 세대에 본이 되는 신앙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육간으로 강건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교회행사]교회학교 연합 소풍을 다녀왔어요!

    [교회행사]교회학교 연합 소풍을 다녀왔어요!

    할렐루야!

    인천교회 교회학교가 있습니다. 아동부와 학생청년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타 교회로 전출가셔서 인원수가 적습니다. 그럼에도 주님 은혜 아래 교사들과 학생들이 열심을 내서 교회학교를 성장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9일 일요일에 인천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아동부/학생청년부 연합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5월이었지만 물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태양이 뜨거웠습니다. 아직 돌이 안된  아기천사 막내 민이 부터 청년부 정준혁 형제까지 연령대가 넒은 교회학교 친구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아동부 총 4명, 학생청년부 4명 교사 7명 학부모 및 가족 2명, 그리고 안양교회 영은회를 마치시고 장종규 목자님과 백현 사모님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시원한 수박, 맛있는 삽겹살과 목살 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또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예수교회 인천교회라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으로 서로 교제하고 평안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이들은 짚라인도 타고 어른들은 해수욕장 인근 둘레길을 걸으셨습니다.

    가져간 음식이 너무 많아 저녁까지 배불리 먹고 장종규 목자님의 기도로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든 일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천교회에서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이렇게 함께 형제 자매로, 학생과 교사로 신앙 이어가길 소망합니다. 많이 약해진 교회학교를 위해 성도님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임마누엘♥

     

    시 133:1~3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 [성도간증]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성도간증]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유진 자매님은 미국 LA Glendale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인천교회 우정 자매님 친정 어머니이십니다. 우정 자매님의 아이들인 율이와 민이의 육아를 도와 주시기 위해 한국에 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우정 자매님 가족과 함께 인천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다. 미국 가시기 전에 인천교회와도 인연이 깊으셔서 많은 애정과 사랑을 주고 계십니다.  오실 때 마다 교회 이곳 저곳, 구석 구석  쓸고 닦고 하십니다. 교회 봉사에 거룩한 시샘을 내실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깊으심에 감동이 됩니다. 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듣고 싶어 간증을 요청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응해주셔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은혜 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TJC LA Glendale교회 이유진입니다. 처음으로 간증을 부탁 받고 기쁘면서도 부담이 되는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라는 모세의 고백처럼 제 나이도 신속히 날아 칠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수고는 상급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는 행운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27세가 되던 해 주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9:1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있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1)
    위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글자가 크게 확대되며 ′이 성경이 내가 찾던 진리다′ 라는 확신과 함께 예수님이 제 마음에 훅 들어오셨습니다. 10대 부터 풀리지 않던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있지 않고 제 마음에서 살아 움직이셨습니다. 제 마음과 의식에 쌓여 있던 모든 죄와 죄 의식, 열등 의식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로 제 마음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허물과 죄의 그 많던 옥쇄가 풀어지는 자유함,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모든 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열쇠까지 쥐는 행운을 가진 예수님의 신부, 친구, 종이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께서 함께 해주시는 행운 중의 행운을 얻는 기운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무언가 굴레가 벗어진 느낌, 화가 난 마귀가 저를 탁 치고 나감을 생활 곳곳에서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는 말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많던 죽음의 공포, 저의 죄와 허물을 해결해주시고,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는 시편50편15절 말씀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던 기억, 말씀 모두가 저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려움이 진행 중이지만 삶의 숙제를 해나가는 인생의 과정이지 결코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또한 움직이지도 않으시고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거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느낍니다. 다양한 자연을 바라볼 때 저도 그 중의 하나로 하모니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어느 풍진 세상의 귀퉁이에서 밝은 햇살 아래 하늘거리는 이름 없는 들풀처럼 하나님을 찬미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지음 받아 가는 존재 중의 하나로 택하여 주신 은혜에 무한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다같이 함께 손잡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함께 웃으며 기쁨의 교제를 나누는, 그 가운데 말씀이 이루어지는 천국의 삶을 소망합니다.  또한 작게는 제 마음에서 부터 출발하여 교회에서 교회로 이어져 세상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영원까지 생명의 보물이신 예수님을 꼭 껴안은 하나님의 전 참예수교회 일원으로 사명을 다하기를 다짐해봅니다. 예수님의 얘기를 다 기록하려면 바닷물이 다하고 종이가 다해도 부족하다는 말씀처럼 저에게도 지면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훨훨 날아 쓰고 또 쓰고 마르지 않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말씀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저희와 함께 하시기를 (고후13:13) 간구하며 감사로 간증의 제사를 올려드립니다.

  • [성도소개]인천교회 임미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인천교회 임미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임미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처음에 자매님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셨습니다.  당시 인천교회 담임 목자님이시고 두 분의 결혼에 큰 역할을 해주신 김세한 목자님의 통역으로 겨우 겨우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작년까지 아동부장을 하셨고 지금도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찬양인도 뿐만 아니라 ppt를 제작해서 설교도 하십니다. 한국에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셔서 한식 요리도 수준급이십니다. 인천교회 식사당번으로도 봉사하고 계십니다. 남편 되시는 김기웅 형제님은 교회 임원으로 봉사하시고 두 자녀인 김주은, 김효은 학생은 어린 나이임에도 예배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참예수교회 성도라는 귀한 인연을 하나님께서 맺어 주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한국에서 인천교회 성도로, 교사로, 찬양 인도자로 그리고 한국 며느리, 아내, 엄마의 역할을 너무나 성실하고 아름답게 잘 하고 계심을 봅니다. 임미향 자매님은 인천교회 보배이십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든지 덥든지 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안식일은 물론이고 밤 예배조차 빠진 적이 없습니다. 가족을 떠나 홀로 타국에서의 삶이 순간 순간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매님의 간절한 기도 모습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매님의 마음을 쏟아 놓고 계심이 느껴집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습은 인천교회 또래 학부모님들께 많은 귀감이 됩니다. 자매님이 인천교회 보배이신 또 하나의 이유는 대만이나 중국에서 참예수교회 성도가 방문하셨을 때 통역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런 자매님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실거라 믿습니다.  자매님 가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매님께 기도제목을 여쭈었더니 첫째는 큰 아이 주은이가 성령받기를 소망한다고 합니다. 주은이가 성령의 감동은 있는데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기억하시고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자매님의 기도를 꼭 들어주길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 [복음메시지]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요 4:46-54)

    [복음메시지]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요 4:46-54)

    [말씀제목]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요 4:46-54)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4년 6월 1일(토) 안식일오전예배

     

    『46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는 내용입니다.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을 고쳤다는 것은 ‘놀라운 이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 이적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표적’이라고 하는 뜻은 ‘싸인’이란 뜻입니다. ‘싸인’은 ‘어떤 증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메시야’라고 하는 증거가 바로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신다’라고 하는 것은 ‘이적을 행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바로 구원자 되신다’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증거 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신다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더 갖기를 원합니다.

     

    1. 심령의 낙이 없다고 생각할 때 빨리 하나님을 생각하라!

    46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다는 것은 그전에 45절을 말씀하게 되면 예루살렘에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예루살렘에 계셨다가 지금 갈릴리 가나라고 하는 곳에 이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가나를 가리켜 ‘예수님께서 전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행하신 내용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그런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던 것처럼 또 무엇인가 놀라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왕의 신하라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미리 암시하고 미리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기 왕의 신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의 말 그대로 왕의 신하인데 왕의 신하를 정확히 보면 왕에 속한 사람입니다. 왕의 신하는 여러 명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왕의 신하는 왕에 속한 사람입니다.

    (2:8)『…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을 최고의 법이라고 말씀합니다. ‘최고’라고 하는 단어는 ‘왕의 신하’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왕의 신하는 그냥 웬만한 신하가 아니라 굉장히 높은 관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 관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린 아들’이라는 것을 뒤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이 ‘병들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들어서 죽어가고 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왕의 신하는 고위 관리입니다. 그러면 돈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병들어서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왕의 신하는 어떤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평안과 마음의 즐거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다른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 이렇게 병들어서 죽어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왕의 신하는 결코 ‘마음의 즐거움이나 또한 평안이 없었다’라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걸 가리켜 ‘낙이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6:3)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것입니다. 옛날 고대 신은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굉장한 큰 복이라고 여겼습니다. 자녀를 100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장수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심령에 낙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낙태된 자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보다 ‘심령의 낙’, ‘제 마음의 평안과 마음의 즐거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마음의 즐거움과 평안이 없다면, 아무리 다른 걸 다 가졌다 하더래도 여기 말씀하는 것처럼 낙태된 자보다 내가 못 하다라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이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령의 낙’이라고 하는 것 ‘마음의 즐거움’‘마음의 평안함’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얻고 싶다고 해서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성경은 ‘마음의 낙’, ‘마음의 즐거움’, ‘마음의 평안함’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왕의 신하를 보시면 아들이 건강만 하면 심령의 낙을 누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무리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는 상황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낙이 없다고 생각할 때 내가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이 없고 그래서 정말로 소망이 없는 그런 삶을 느낀다고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심령의 낙’이라고 하는 것이 누구 손에서 나는 거라고 언급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령의 낙이 없다고 생각하실 때 빨리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러지 나는 평안도 즐거움도 없고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보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빨리 하나님을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2. 절망적인 상황이 처했을 때 주님께 의지하라!

    본문 47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왕인 신하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에 있던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나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왕의 신하는 그 당시 사회에서 굉장히 고위층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님께 갈 일이 있었을까요? 없었을 것입니다. 뭐가 아쉽겠습니까? 그런데 왕의 신하가 지금 예수님께 가서 간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자기 아들이 병들었고 죽어가고 있다 보니까 왕의 신하를 예수님께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왕의 신하 모습을 보면 구약시대 생각나는 한 인물이 연상됩니다. 혹시 생각나는 사람 있습니까? ‘나아만’입니다. 성경은 나아만을 가리켜 ‘아람왕의 군대 장관’이요. 그리고 그의 주인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큰 용사나 그는 ‘문둥병자였다’라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람 나라에서 아람 왕 그다음으로 가장 높은 그러한 지위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나아만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자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린 나아만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 나아만이 나중에 어디로 갔습니까? 이스라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왜? 찾아갔을까요? 자기가 문둥병에 걸렸으니까!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나아만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게 됩니까? 자기 집에 아내를 수종드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이 여종은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계집아이가 자기 주모에게 “우리 이스라엘에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에 가면 우리 주인이 낫게 될 거다”라는 말을 합니다.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얘기를 듣고 자기 왕에게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장관은 오늘날 국방부 장관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집 아주 비천한 작은 여자아이의 말을 귀담아듣습니다. 평소에는 그럴 상황이 없을 것입니다. 여자아이의 말을 귀담아듣고 자기가 섬기는 왕에게 직접 전달합니다. 결국 나중에 거기 가서 자신의 문둥병이 낫게 되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절망적인 상황들 특별히 몸의 질병들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로 그 사람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계기가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1:8-9)『…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아니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 허락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마음의 사형 선고를 받는 것 같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허락하신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상황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데 몸의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 여자를 가리켜 자신이 병을 고치려고 많은 의원에게 갔는데 오히려 더 고통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있는 것도 다 허비했고 아무 효용도 없고 도리어 더 상태가 중하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그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의 병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고침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처했을 때 특별히 어떤 몸의 질병이라고 하는 상황이 되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일단 주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우리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금 말했던 이 열두 해에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자도 예수의 소문을 듣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예수님께 나아가게 됐고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상황들로 인해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 심령의 낙이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들이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영혼들 에게는 바로 하나님 대신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을 알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내가 안다면 우린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서 의지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져라!

    본문 48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내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때 하셨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너희는’이란 왕의 신하를 포함한 당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가리키면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만 믿게 되고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책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16: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계속 표적을 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된다는 그런 표적을 계속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은 게 아닙니다. 계속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그걸 요구하더라는 것입니다. 소위 ‘표적 주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들 ‘표적을 통해서 그걸 보고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갖는 신앙’은 결국 예수님께서 원하는 신앙 즉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신앙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면 안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것을 보고 안 믿을 사람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렇게 믿었을 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놀랍고, 기쁘고 해서 믿고 무엇인가 그의 삶이 변화될 것 같이 보이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게 되면 다시 도로 원위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광야에서 이스라엘 모습을 보시면 40년 동안에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매일 같이 봅니다. 근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완악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놀라운 이적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갖는 믿음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을 추구하는 믿음은 예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신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무엇일까요?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 즉 뭔가를 보고 믿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믿는 것입니까? 말씀을 듣고 믿는 겁니다. 마태복음 8을 보게 되면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부장 자신의 종이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종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 내가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주여 내 집에 오시는 것을 내가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말씀으로만 족하다’라고 말합니다. 말씀으로만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이만한 믿음을 내가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그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믿음이 어떤 거라는 걸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주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아야만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믿는 겁니다. 이걸 원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우리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 주인께서는 이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대부분은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만 믿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말씀대로 행하고 순종하라!

    본문 49절 50절 말씀입니다.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신하가 예수님께 우리 집에 와달라고 간청합니다.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라! 내 아들이 살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신하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집에 가면 아들이 병 고침을 받을 거라는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내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했을 때 왕의 신하가 그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왕의 신하는 예수님과 함께 자기의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자기 아들의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혼자 간 것입니다. 왜요?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내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을 듣고 정말 그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갔습니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하는 그 말씀대로 간 것입니다. 믿으면 무엇으로 연결되는 것입니까? 믿으면 순종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가령 어떤 사람의 말을 정말 믿는다면 누군가와 어떤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정말 믿는다고 한다면, 그 말씀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정말 믿는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고 이것이 예수님께서 정말 바라시는 그런 믿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51절 말씀입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왕의 신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집 종들을 만납니다. 그는 그 종들을 통해서 ‘아들이 살았다’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된 것입니다. ‘가라 내 아들이 살았다’라는 그 말씀이 ‘그대로 됐다’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그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내가 믿고 있는가?’ 내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하나의 말씀을 정말 믿고 있구나’라는 것을 내가 알 수가 있습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왜 그런 것입니까? 못 믿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그런 삶 속에서 어떤 부분들은 그 말씀대로 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일은 분명합니다.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당연히 그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었을 때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가라 내 아들이 나았다. 이 말씀을 ‘왕의 신하가 믿으니까’ 그의 말씀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살전 2:13)『…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말씀이 믿는 자리에서 역사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 그대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내가 정말 그 말씀을 믿으면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다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말을 내뱉고 그 말을 도로 입속에 넣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내가 그 말씀대로 내가 했던 말을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입에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말씀대로 되려면 그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역사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믿지 않아서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깨끗하게 날 거라고 깨끗해질 거라고 우여곡절 있었지만 나아만은 그 말씀을 듣고 갔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씩 씻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말씀대로 아이의 살 같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온통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 그대로 역사 했다’라는 말씀으로 구약부터 신약까지 다 채워 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오늘날 마찬가지로 말씀을 믿었을 때 말씀대로 역사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5. 체험을 통해 믿음이 견고해지도록 순종에 힘쓰라!

    본문 51절 52절 말씀입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왕의 신하가 종들에게 물어봅니다. 아이가 언제 낫는지 그 시간이 보니까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말씀했던 바로 그때였다는 것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했던 시간하고 실제 아들이 나았던 시간하고 같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됐을 때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 놀라운 일을 왕의 신하가 알게 되었을 때 왕의 신하도 믿고 그 온 집도 다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때 그 일을 통해서 믿음을 갖게 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체험했을 때 그의 신앙 즉 믿음이 더 견고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던 그의 온 집은 이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면 사람들은 믿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믿음이 어떤 것입니까?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체험을 통한 믿음은 어떻습니까? 이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온전해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이유는 그런 일들을 통해서 더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는 이러한 믿음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과 믿음의 본질은 아니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제자들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와 제자들이 전하는 그 말씀이 정말 맞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통해 보여주심으로써 그 말씀을 더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두 가지가 같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게 되면 초대교회가 한편으로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고 그런 가운데서 복음을 전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참예수교회도 두 가지가 같이 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체험을 통한 믿음을 갖게 한 다음 현 상태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이적을 보고 기적을 보고 뭔가 하나를 믿지 않습니까? 이 상태에서 머무르는 신앙은 변질해 버립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바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해서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결국 그들이 믿었다는 건 무엇입니까? 믿음은 결국 영원의 구원을 받음이라 말씀합니다. 저와 그 어른들이 다 믿게 되었다고 한다는 것은 결국은 ‘그들이 다 이제 구원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집이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건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 한 개인만 믿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 그 온 집이 다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겁니다. (7:1)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노아에게 너와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를 만드신 것은 그를 구원시키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뿐 아니라 노아와 그의 온 집이 이 방주를 통해서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11:7)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 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은 내게 속한 온 집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의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나 혼자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나의 집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그 사람을 통해서 온 가족을 다 구원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성도들은 나와 내 집이 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항상 기도하고, 힘써야 된다라는 것을 또한 우리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6.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고 동행하라!

    본문 54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 된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8:16-17)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병자를 다 고쳐주셨는데 성경은 이 상황을 가리켜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신 거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사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었다는 것은 선지사 이사야를 통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에 관한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걸 통해서 그가 바로 메시아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는 이런 자고, 이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는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이 메시아 즉, 구원자는 병을 고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병으로부터 자유한 사람 있나요? 병으로부터 오늘 내가 건강했다고 하더라도 내일 병들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병은 육체의 병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병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살아가는 모든 사람 중에 이런 병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병을 고치시는 분이시기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모든 병을 다 고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경우가 있고 병을 고쳐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알겠는데 병을 고쳐주지 않은 것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메시아가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짊어지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때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우리의 병을 짊어지셔서 우리를 쉬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우리의 육체적인 병을 고쳐주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병을 다 고쳐주지 않으십니다. 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바울사도가 육체의 가시를 다 제거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습니다. 왜? 그가 받은 가시가 너무 많아 자고할까 싶어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바울이 누구입니까? 바울은 나의 연약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든 걸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유익을 위해서 때로 우리 병을 고쳐주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병을 고쳐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병을 고쳐주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과정을 위해서 때론 우리의 병을 허락하시고 우리 병을 고치지 않으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래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우리 쉼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걸 능히 감당케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마음의 평안과 우리 마음의 즐거움을 허락하셔서 비록 내가 질병 가운데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쉬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쉬는 겁니까?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예수님은 그 쉼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내 멍에를 매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멍에를 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처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두 마리 소가 같이 멍에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멍에를 매자라고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처럼 이렇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을 얻는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행한다는 게 뭡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진 짐도 있는데, 예수님의 멍에를 또 맨다! 더 무거워질 것 같은데, 사실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매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의 멍에를 맬 때, 인생에 짐을 지고 갈 때, 특히 내가 어떤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내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게 되면 예수님께서 내 멍에의 짐을 짊어주신다는 것입니다. (68:19)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 특별히 우리가 어떤 질병의 문제로 인해 내가 짐을 지고 있을 때, 고통받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짐을 대신 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쉬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멍에를 매게 될 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능히 그걸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가운데서 내가 마음이 평안하고 마음이 즐거울 수 있도록 놀라운 그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면서 점점 예수님과 같은 삶이 되도록,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러한 삶을 되도록, 더욱더 배우고 그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더 많이 져주시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의 짐이 다 해당하는 것으로 질병뿐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들 인생의 멍에들 짐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배우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병이 있을 때 예수님을 통해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병을 고쳐주셔서 쉬게 할 수도 있고, 내 육신의 병을 고치지 않으시지만 내 마음에 놀라운 예수그리스도의 평안을 허락하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는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실 수 있는 바로 ‘우리 구원자 되신다’라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구원자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실제 삶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셔서 비록 우리가 가는 이 과정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예수님을 통해 평안과 즐거움을 얻고 능히 우리가 걸어가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데까지 큰 은혜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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