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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복음 메시지]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제목: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요12:27-33)

    일시: 2025년 2월 1일 안식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27)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마음이 민망하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고뇌하였지만, 이때 예수님은 많은 기도를 통해 시험을 이기고 결국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기도 생활의 필요성

    이처럼 사람이 정말로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깁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는데 성령을 받은 우리는 그럴 때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 역시도 아주 힘든 상황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원이라도 육신이 약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마음은 정말 원하는데 육신이 약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더라도 의지가 약해서 실행할 수 없게 되는 지경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몸이 너무 아프게 되면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도하고 치유와 회복을 구하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이어지는 시험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마음이 약하고 육신이 약해서 우리가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만, 이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계속 지게 되어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을 통한 기도의 중요성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27)’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우셔서 이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지금은 이거를 지금 감당하시며 순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기도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27절 말씀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신다는 뜻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마음과 힘이 약하여 있다가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기도하고 나면 힘이 생기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려는 생각이 생깁니다.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이고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본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한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이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모습대로 살아가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면 그 인생은 분명히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우리 인생은 우리를 스스로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주셔야 합니다. 내가 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내가 복을 쫓아가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로 복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고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솔로몬을 통해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삶의 결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그런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솔로몬이 구한 것이 주의 마음에 맞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솔로몬은 자신이 재판을 잘하여 백성을 잘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전에도 후에도 없을 만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도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구했고 행하려는 마음 또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이 소리가 우레가 울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했다. 여러 말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소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되었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31) 하고 말씀하시는 데 이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지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상의 심판이 일어나서 결국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세상의 왕인 마귀가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4~15)”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마귀를 없애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단을 가리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사망은 죄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대가인 사망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면하게 하려고, 즉 사람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이 관계를 끊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사단이 죄로 인한 죄의 삯인 사망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사단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이 되십니다. 이것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죄 사함의 은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죄에 대한 삯을 다 지불하게 되어 이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에서 다 벗어난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믿는 자들에게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 은혜를 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

    죄 사함, 즉 구속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풀어졌다는 뜻으로 죄에서 풀어졌다는 뜻입니다. 풀어졌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있던 자를 건져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삶

    그런데 우리는 이 죄 사함을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세례를 통해서 받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 구속받아서 죄와 사망의 권세인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이제 죄의 종노릇 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죄의 종노릇 하는 죄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죄에서 얽매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다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으니 예수님 안에 있어야 우리가 계속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너희가 만일 하나님께서 쫓겨나서 이방 나라 안에 거할 때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 있든지, 이스라엘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도저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내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이 은혜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애굽의 땅이 아닌 이스라엘의 땅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회개의 삶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모습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로 계속 돌아오는 삶을 사는 것인 우리가 해야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그분의 삶과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 힘쓰시는 우리가 모두 되길 바랍니다.

     

    설교 링크: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글| 최재웅 형제

  • [복음 메시지] 구원의 핵심진리, 안식일

    [복음 메시지] 구원의 핵심진리, 안식일

    제목: 구원의 핵심 진리, 안식일

    일시: 2024년 10월 25일 안식일 저녁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1. 안식일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안식일’은 무슨 날일까요? “안식”은 ‘자신이 하던 일을 끝내고 쉰다’라는 의미입니다. 안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성경은 창세기입니다.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내용뿐 아니라 창조하신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안식일의 기원이 사람의 명령이 아닌 창세 때의 하나님의 명령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을 기록하는데, 성경이 기록하는 안식일은 일곱째 날, 곧 토요일입니다. 정확히는 저녁부터 하루를 세는 성경의 기준으로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에 해당합니다.

     

    2.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

    성경은 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장의 내용은 십계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네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11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신5:12~15)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에서는 앞서 살펴본 출애굽기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과거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민이 되도록 하신 구원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합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동일한 두 말씀에서 각자 창조와 구원을 말하시는 것을 통해, 구원은 곧 창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애굽(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됨을 의미합니다. (사43:2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 백성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121:4).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키시니 하나님 백성보다 안전한 상태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양하길 바라십니다.

    셋째, 안식일을 지킴으로 영육 간에 복을 받습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영육 간에 주시는 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안식일을 지킬 때 만나와 메추리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특별히 병 고침의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할 때 성도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셔서 영의 양식을 채우십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님이 한 주 동안 힘들었다가 안식일에 말씀을 듣고 힘을 얻거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넷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 곧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곧 하나님의 날을 지키는 것이므로, 이를 하나님 백성인 증거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31:14).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거룩해야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거룩함을 잃어서 결국에는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즉 안식일은 거룩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날로 이를 지키면 구원에 이르게 되지만,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구원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안식일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이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누리게 되는 진정한 안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전 세상에 살 동안에 안식일을 통해 그 안식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일에는 성도가 같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면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하나님 안에서 해결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안식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고, 더욱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3. 안식일에 대한 오해

    그렇다면 왜 오늘날 많은 사람은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일요일, 즉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율법의 일부인 안식일을 지킬 필요도 없고, 도리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이 의미 있으므로 주일(일요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사실일까요?

    (갈3:15-17)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말씀은 율법을 주시기 430년 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나중에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안식일에 동일하게 적용해 보면, 안식일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주신 율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물론 율법 속에는 안식일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한 규례가 있고, 이러한 것은 율법에 속한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오늘날은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 그 자체는 율법의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직접 주신 다른 말씀들도 오늘날까지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안식일도 동일하게 오늘까지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라는 주장도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이 일요일 새벽에 갔더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사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했다고 하더라도 성경 전반에서 아주 중요한 안식일이 다른 날로 변경되는 것이라면 반드시 성경에 언급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했으므로 안식일을 대신해 일요일을 지킨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막7:6-8)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섬기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오늘날 성탄절, 부활절 등 성경에 없는 절기를 지키면서 성경에 있는 말씀은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람의 계명을 우선하는 교만함에 진노하십니다.

     

    마무리하며

    (사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을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위와 같은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이와 같이 안식일을 지키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안식일을 힘써 지킴으로 하나님 주신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오다은 자매

  • [복음 메시지] 아름다운 소식 (사40:9-11)

    [복음 메시지] 아름다운 소식 (사40:9-11)

    제목: 아름다운 소식 (사40:9-11)

    일시: 2024년 8월 31일 안식일 오후 ‘열린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아름다운 소식이 있을 때 우리는 전하고 싶습니다. 이사야 40장에서 아름다운 소식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 왜 아름다운 소식일까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강한 자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 바벨론의 압제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바벨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시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40:15)

    이스라엘이 바벨론 압제 속에서 사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사단의 권세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단은 내 생각, 내 욕심대로 살게 함으로 평안도 없고 두려움과 불안의 삶을 살게 합니다.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에 다만 알지 못할 뿐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26:17-18)

    둘째로 하나님의 통치가 아름다운 소식인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목자같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40:11)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4-15)

    주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버려 사랑하셨습니다. 그 선하신 목자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니 우리는 가장 선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그 은혜를 경험하고 더 나아가 이 아름다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13-14)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곧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36:27)라는 말씀처럼 성령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살고 그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7장에는 문둥병자의 아름다운 소식이 나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성 밖으로 나와야 아름다운 소식을 접할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만의 견고한 성을 부수고 나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 자기만의 생각, 뜻, 사상, 감정, 경험 등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힘써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그 다스리심을 받는 복된 자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복음메시지]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제목: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일시: 2024년 4월 13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물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시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려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사마리아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우회해서 갑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구약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이곳에 이방인들을 거주하게 됨으로 혈통적으로 섞이게 됩니다.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신의 동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꺼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시려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사복음서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영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즉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는 소외 받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받는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마리아 여자를 일부러 만나 복음을 전하려 하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 행로에서 곤하신 예수님을 살펴보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한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힘드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힘든 길을 기꺼이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들을 건져낼지라(겔34:11)”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목자가 자신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찾고 찾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때로는 양이 골짜기나 절벽 위, 혹은 아주 위험한 곳에 있을지라도 목자는 그 양을 찾기 위해서 기꺼이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애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공통적인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주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되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심으로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여 우물곁에 앉으신 모습은 또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능력을 내려놓으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8)”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아니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피곤을 느끼시며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서 계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케 하고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전8:9)”

    # 예수님이 전도하시다

    9절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심을 듣고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넸을 때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 이렇게 말한 것은 그녀를 전도하려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때 상대방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라(딤후4:5)”는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고난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후의 내용을 보게 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마리아 여자가 기뻐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선물, 성령을 말씀하시다

    그럼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 사도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본 시몬이 돈으로 이러한 권세를 사려하자 베드로 사도가 “내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행8:20)”라며 책망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선물도 바로 성령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좋은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생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생수는 살아있는 물, 곧 생명수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그런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6-8)”

    여기 말씀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즉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은혜를 받는 사람과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는 언제든지 물을 공급받아 더위가 올지라도 두렵지 않고 잎이 청청하며 가을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마치 더위가 오더라도 그 뿌리를 강변에 뻗쳐 물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은혜를 성령을 통해 주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 이러한 물과 같은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11-12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영적인 진리를 잘 못 알아듣습니다.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느냐”고 말하며 예수님에게 야곱보다 큰 자인가를 묻습니다. 니고데모 또한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거듭남의 진리를 말했을 때 “어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 물으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지극히 낮은 우리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듣고 깨달은 자들이 다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이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샘물 같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보다 더 분명하고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우물을 통해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이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샘이 되고 그 샘을 통해 끊임없이 생명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를 마시기 위해 먼저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이것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다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성령을 주셨고(행1:8)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게 될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요3:34). 그럼 예수님의 증인 된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믿는 자 안에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고 왜 끊임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안다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샘솟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은혜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의 작은 삶의 습관들이 결국은 우리 삶에 영향을 줍니다. 평상시에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내 마음대로 행하는 삶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우리 삶이 계속적인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있게 되고 성령의 충만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는 말씀처럼 내 안에는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내 마음과 뜻과 감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성령을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끊임없이 성령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힘쓰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성령이 샘솟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백현 자매

  • [교회행사]가을영은회

    할렐루야!  지난 10월27일부터 3일간  “건강한 신앙” 이라는 주제로  장종규 목자님(안양교회)을 모시고 가을 영은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도 어김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듣고 행하라➀  요나의 회개➁  나그네 같은 성도의 삶➂  귀한 향유를 부은 마리아➃  가룟유다의 배반➄  마지막 시대의 경고의 말씀➅  건강한 교회➆  세족례 & 성찬례➇  등 은혜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신앙을  바로 세우고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진유진&진리영 자매님이 세례 증서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 중 언니인 진유진 자매님이 성령을 안 받았었는데 이번 영은회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구도자 6명과 교회 출석이 잘 안 되었던 성도 7명이 참석하셨고, 타 교회 소속이시지만 잃은 양이셨던 자매님 한 분도 참석을 하셔서 귀한 영의 단비를 흠뻑 맞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많이 참석해 주셔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도 되었습니다.  청년들의 받은 바 은혜를 간증하는 간증회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영은회 설교 링크 바로가기) 

     

  •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수 1:1-9)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수 1:1-9)

    참예수교회 거제교회 화요일 저녁예배

    일시 : 2022. 02. 01.

    장소 :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다공2길 27

    설교자 : 장종규 목자

    제목 :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주제성구 : 수 1:1-9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의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본이 되는 교회(살후 1:3-5)

    본이 되는 교회(살후 1:3-5)

    참예수교회 거제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01. 29.

    장소 :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다공2길 27

    설교자 : 장종규 목자

    제목 : 본이 되는 교회

    주제성구 : 살후 1:3-5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 성전 건축의 방해(스 4:1-6)

    성전 건축의 방해(스 4:1-6)

    참예수교회 거제교회 안식일 저녁예배

    일시 : 2022. 01. 21.

    장소 :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다공2길 27

    설교자 : 장종규 목자

    제목 : 성전 건축의 방해

    주제성구 : 스 4:1-6

    [1]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 베드로 사도의 끝 인사 (벧전 5:12-14)

    베드로 사도의 끝 인사 (벧전 5:12-14)

    참예수교회 거제교회 화요일 저녁예배

    일시 : 2022. 01. 18.

    장소 :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다공2길 27

    설교자 : 장종규 목자

    제목 : 베드로 사도의 끝 인사

    주제성구 : 벧전 5:12-14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내가 왕이니라(2) (요 18:37-38)

    내가 왕이니라(2) (요 18:37-38)

    참예수교회 거제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01. 15.

    장소 :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다공2길 27

    설교자 : 장종규 목자

    제목 : 내가 왕이니라(2)

    주제성구 : 요 18:37-38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