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news_bd

  • [교회행사] 분당-마리아회 서도초기역사교육관 방문기

    [교회행사] 분당-마리아회 서도초기역사교육관 방문기

     

    샬롬~ 주님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 마리아반은  22년도 10월에 서도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새벽에는 이슬이 토양을 적실 정도로 쌀쌀하고, 코로나로 마스크가 일상이 된 불편한 시기였었지만 1박 2일 동안 미소는 우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일정은 서도 -> 남원 광한루 -> 삼계 -> 임실치즈마을 순으로 계획했습니다.  이렇게 계획한 이유는 마리아반 성도님들이 참예수교회 역사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서도교회를 방문하면 신앙의 유익과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질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박은진 목자님께서 서도에 오실 계획이 있으셔서 참예수교회 초기 역사에 대해 특별강의를 부탁드리니, 흔쾌히 승낙하셔서 더 은혜로왔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담긴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참교회에서 신앙을 정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너무 많았습니다. 시무하시는 천안에 최근 전도되신 자매님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간증 후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겁게 솟구쳐 올랐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녁 식사는 맛있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특별히 맞춰온 인절미까지 후식으로 풍족하게 즐겼습니다. 다들 집밥처럼 식사하며  사랑의 교제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남원 광한루의 야경을 끝으로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서도교회 포토존인 철길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 안개 속에서 재밌게 뛰어놀기도 했답니다~ㅎㅎㅎ. 하루 종일 놀 수는 없기에 근처에 그 유명한 혼불문학관을 관람한 후 삼계교회로 갔습니다.

     

    삼계교회 도착 후 김한나 집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짧은 예배를 마치고 삼계교회 지킴이신 집사님 내외분과 같이 사진을 찍고 교회 안내도 받고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임실치즈마을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을 방문해서 치즈피자를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와~~~ 진짜 최고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요리를 먹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보리밥이 더 맛있다고 했던가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나눔의 시간이었습니다.

     

                   

     

    빌 1:4-5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이제는 가야 할시간이었습니다ㅠㅠ. 너무 아쉬운 마음이 컸기에 올라오면서 천안을 잠깐 들렀을 때 김지영 집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아울러 천안 역사를 설명해 주시고 따끈한 호두과자를 듬뿍 안겨주셨습니다.

    그렇게 호두과자와 삼계엿으로 분당교회에서 함께 애찬을 했답니다~^^

     

    이번 여정은 마리아반에게 그리고 분당교회에 굉장히 의미가 깊었습니다. 태양이 지고 별이 하늘을 밝히는 세월을 사시는 마리아반 성도님들께 그 의미가 깊었다는 것입니다. 서도는 참교회의 참일꾼이셨던 박필선 목자님의 그 마지막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고, 삼계는 초기 시절 역사의 중심지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의 뜨거운 여정의 시작, 그리고 그 여정의 마지막 길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교회 역사의 현장을 방문했으니만큼 남은 생을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지혜자의 면모로 자리매김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초신자와 구도자분이 같이 가신건 안 비밀.ㅎㅎ 감사주!!)

     

  • [복음 메세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생ㅣ 롬 1:18-23

    [복음 메세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생ㅣ 롬 1:18-23

    [말씀 제목]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생 (롬 1:18-23)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 2023년 6월 17일(토) 특별집회 새벽예배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은 살면서 꼭 필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 있다. 그것은 병원에 가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의사에게 진찰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진단받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통증이 있고 문제가 생기면 가기 싫어도 병원을 찾아간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는 것은 중요하다.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 자리에 나온다고, 예배 자리에 나온다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진정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저 기도 자리에 나왔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내 삶을 하나님께 진단받는 것이다. 사람은 그게 싫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을 다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진단하셨을 때 뭐라도 나올 것 같은 찝찝함, 불안함을 다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전심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싫어한다. 아담이 범죄 후 하나님이 그를 찾으실 때 하나님은 그에게 물어보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은 지금 네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냐는 것이다. 네 영적 상태가, 네 존재가 지금 어떤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냐는 것이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소생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  그분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내 영혼은 살 수 없다. 지금 내가 끙끙 앓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들고 가지 않으면 그 누가 해결할 수 있겠는가?

    우리 문제의 답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있다.

    1900년도에 미국 초기에 자동차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 한 젊은 부자가 좋은 차를 구입했다. 한참을 가는데 차의 시동이 꺼졌다. 그는 차를 고치기 위해 큰 정비책을 꺼내놓고 구석구석 만져봤다. 해가 저물어 가고 새들이 퇴근할 때까지 차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을 멈춰서더니 노신사가 내려서 차를 봐주겠다는 것이다. 노신사는 차를 쓱 보더니 볼트 하나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부자에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시동이 걸리더라는 것이다. 부자가 너무 놀라 명함 한 장 받을 수 있냐고 해서 명함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헨리 포드”라고 적혀있었다. 자동차의 아버지라 불리며 바로 그 부자의 차를 만든 헨리 포드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아신다. 우리가 왜 힘든지, 왜 아픈지 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내 문제를 고치신다.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사람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여 빛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내 문제와 내 죄를 꽁꽁 감추고 자꾸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진단하실 때 뭐라고 진단하시냐면 “너는 죄인이다”라고 하신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진짜 속뜻은 “사랑하는 아들아 너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제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아갈 수 있다. 인생 속에서 내가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병이다. 교만의 병인 것이다. (암 5:4-6)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암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했는데 다시 돌아가서 인생의 답을 내가 계속해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 교만이 멸망한 이스라엘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인생의 답을 찾아 영혼이 소생되고, 삶이 생기가 회복되는 그런 은혜와 축복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도간증] 형제라 부르심을 받은 은혜 _최경자 자매님

     나의 어릴 적 시절이 문득 떠오를 때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내가 국민(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순박한 얼굴을 하고 감히 선생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도,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이 부끄러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혹여 시비가 붙으면 순박한 얼굴은 어디로 가고 사나운 표정과 험악한 말로 자기 본성을 나타내었다. 그 누구도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 더 험악하고 더 센 욕을 찾아 날리며 급기야는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번은 우리 동네 친구들과 다른 동네 친구들이 서로 집단 싸움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 생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싸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자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싸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뒹굴며 자라 몸집이 커지고 중학생이 되니 자연스럽게 더 이상 몸싸움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집에서 4km쯤 떨어져 있는 삼계면 소재지에 있는 곳이었다. 삼계에는 우리 동네엔 없는 점빵(소매점)도 두 개나 있고, 우체국도, 농협도, 교회도 두 개나 있는 곳이었다. 학교도 국민(초등)학교보다 크고 선생님도, 학생도 많은 곳이라 조그만 동네에서 올라온 나로서는 주눅이 들만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주눅이 들기는 커녕 ‘누군가 시비를 걸기만 걸어봐라 가만 안 놔둘테다’라는 마음으로 다녔던 것 같다. ‘무식이 용감하다’라는 말이 그 당시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당차고 무식한 나에게 친구들은 오락부장을 시켜주고 학교에서는 규율부장을 시켜주어 거침없는 학교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얼굴이 저절로 붉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쯤 되었을 때 체육시간에 운동장 귀퉁이에서 풀을 뽑던 친구들이 패가 갈리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무슨 다툼을 하는지 궁굼해 슬쩍 옆으로 다가가 엿들어 보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야말로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삼계에는 교회가 딱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삼계에 들어서는 초입에 참예수교회가, 하나는 삼계가 끝나는 지점에 장로교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패와 장로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패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하나님을 가지고 교회가 갈리어 다투는 것이 마치 내가 초등학생 때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려 보겠다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교회가 옳은지 각 교회를 한번씩 가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싸움을 말렸던 기억이 난다. 

     약속대로 친구들을 따라 참예수교회에 먼저 가게 되었는데 그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처음부터 ‘참예수교회’라는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고 좋았다. 지금도 이 이름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자랑스럽지만 말이다. 그러나 교회이름이 좋은 것과 반대로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예배시간 내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고, 모두 깨끗하고, 순수하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나만 더럽고, 추하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방언기도를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라 슬그머니 도망가야할지, 나도 따라서 흉내 내야할지 기도 시간 내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방언기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상한 의심이 바로 사라졌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후로 학교에서 맨날 만나던 교회 친구들이 이제는 달리 보였다. 같이 자란 동네 친구들보다 오히려 교회 친구들 앞에서의 행동이 왠지 더 조심스러웠다. 물론 참예수교회를 한번 발걸음 한 뒤로 ‘여기가 맞다’라는 뭔지 모를 막연한 느낌에 장로교회는 가볼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에 장로교회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삼계교회를 뭣도 모르고 다니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나는 참예수교회는 삼계에만 있다는 생각에 교회를 찾아서 다닐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오빠가 “삼계에서 네가 다니던 참예수교회가 여기 전주에도 있더라” 라고 얘기해주었다.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믿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빠가 집에서 가까우니 걸어가서 확인해 보라고 얘기했다. 오빠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정말 참예수교회가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당장에 교회에 들어가 보았다. 그 후로 전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어느 샌가 교회와 나와의 이질감이 사라지고, 나의 객기도 사라지면서 고등학교는 정말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다녔던 것 같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2:11-12)’

     교회에 들어오니 교회에서는 남자를 형제라, 여자를 자매라 칭하며 불러 주었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형제/자매라는 호칭이 어색 했던지 그냥 이름을 불러주거나 누나/언니/동생으로 불러 주는 것이 친근감 있고 좋았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부터는 형제라 칭함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맨 처음 참예수교회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나의 더럽고 누추한 느낌에 한없이 부끄러워 주눅 들어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추하기 그지없던 내가, 무식하기 그지없던 내가 어찌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는 그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을 형제라 불러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그러한 주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나 자신을 살피며 말씀에 비추어 살도록 힘써 싸울 것이다.  

  • [성도소개]김충석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김충석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김충석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한나 집사님을 통해 참예수교회에 대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타 교회에 방문 했을 때,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기보다는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참예수교회는 이와 달랐습니다. 참예수교회를 통해 교회의 성도들의 성품과 순수한 마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 꾸준히 나가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알게된 사람들과 다른 모습이었고 이를 계기로 참예수교회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목자님과 수요 점심 때, 이야기를 하면서 세례에 대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례를 하나의 종교적 의식으로 생각했으나, 목자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례가 구원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종교 및 철학 관련지식들에 관심이 많다 보니, 구원관에 대한 교회의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의 권유와 목자님의 말씀으로 기존의 인문학적 지식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믿음으로 채워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요 예배와 안식일 예배를 꾸준히 참석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채워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기관소개-학생부] 분당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학생부] 분당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

    주님의 은혜와 많은 성도님들의 사랑속에서 자라나는 분당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분당교회 학생부는 중학교 2학년 최선미, 고등학교 3학년 김시효 2명입니다.

    분당교회 특성상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청년부로 이루어져 오후 예배가 끝나면 분반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부터 강남분당 연합교회가 되면서 안식일 오후 일정은 강남교회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합으로 예배와 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학생부 자체에 집중할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부 안식일 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40-12:00 오전예배

    12:00-12:50 점심식사

    12:50-13:40 강남교회로 이동

    14:00-14:30 학생부 예배

    14:30-15:30 분반

    15:30-15:40 기도

    15:40-16:00 찬양

     

    분당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1 1사역활동에 선미는 설교자 담당을, 시효는 신발장 정리를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섬김의 자리에는 크고 작음이 없듯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을 주께서 기쁘게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분당교회 학생부 뿐만 아니라, 참예수교회의 학생들을 기억하시고 주님의 참된 제자로 자라가길 많은 기도와 사랑 부탁드립니다.

     

    글쓴이ㅣ정예슬

     

  • [복음 메세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요한복음 13:1-11)

    [복음 메세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요한복음 13:1-11)

    [말씀 제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섬김)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8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 말씀] 요한복음 13 : 1 – 11

     

    빌 2: 4 =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으면, 관심은 자기자신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는 곧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섬김을 받으려 하는 자세를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다면, 이와 같은 자세를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자세는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어떻게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요 13:1)

    유월절 전,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말미암아,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2) 섬김의 대상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요 13:2)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를 섬기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대상을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3) 세상과는 다른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요 13:4-5)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결심을 하고 낮은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섬기셨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종의 모습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종의 자세를 가진 자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요 12:26)

     

    어떤 목적으로 섬겨야 하나요?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입니다. 이는 성도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섬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을 섬기는 것은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 20 :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으뜸을 바라는 제자들 사이에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제자들에게 섬김의 메세지를 전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교회와 성도를 섬기고 나아가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 만큼 힘든 일이지만, 이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교회는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 유튜브 예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