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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믿음1] 믿음의 대상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믿음1] 믿음의 대상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은 누구인가?

    A.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기원전 8년에서 4년 사이에 유대(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골고다(‘해골의 장소’라는 뜻으로, 라틴어로는 Calvary)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한 번에 오백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보이셨습니다(고전 15:6).

    예수(Jesus)는 히브리어 ‘예슈아(Yashua)’의 그리스어 표기인 ‘예수(Yesu)’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Christ)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유래한 칭호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의 짧은 33년 동안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셨고,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으며, 눈먼 사람, 다리 저는 사람,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오병이어(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천 명을 먹이셨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건하고 권력 있는 엘리트층과 함께하지 않고, 억눌린 사람, 병든 사람, 죄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분도 우리와 같이 굶주림, 목마름, 피로, 유혹, 슬픔, 거부 등 인간이 겪는 동일한 필요와 시련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은 분명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셨지만, 그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품에 안으셨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연민을 보여주셨습니다. 고문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어머니가 보살핌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셨으며, 곁에 있던 죄수를 위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역사 속의 한 인물이나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 즉 자신을 통해서만 갈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그분은 빛이요, 문이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았다면, 곧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믿으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고, 치유하며, 심판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영들과 자연의 힘, 생명과 죽음을 모두 통제하십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요 8:5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셨던 창조주이시며, 모든 영혼이 마지막 날에 서게 될 심판자이기도 하십니다.

     

    B.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 여러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오심, 그분의 사명, 그리고 삶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이사야는 그분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사 9:6). 예수님의 삶은 다음과 같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하나씩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사 7:14, 기원전 약 700년), 아브라함의 씨(창 12:1-3)와 다윗의 집안(삼하 7:12ff)에서 베들레헴(미 5:2)에 태어나실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기타 아래와 같은 예언도 있었습니다.

    • 그분보다 앞서 한 사자가 올 것입니다(말 3:1, 4:5).
    • 친한 친구에게 은 삼십에 팔릴 것입니다(시 41:9; 슥 11:12).
    • 고발하는 자들 앞에서 침묵하실 것입니다(사 53:7).
    •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입니다(슥 12:10; 시 22:7).
    • 부활하시고(시 16:10), 하늘에 오르실 것입니다(시 68:18).

    2. 신적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과 이적은 당시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요 4:48)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약속된 메시아라는 증거였습니다(사 35:5-6). 믿게 된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요 3:2).

    3.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가리켜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9).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되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셔서 상처를 보여주시고 함께 음식을 드시며 자신이 정말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종교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4.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가면 돕는 분을 보내어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6:7). 성령의 부어주심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셨고 성령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명합니다(행 2:33).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심으로 인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들이 사도들처럼 방언을 말하는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행 2:4). 어떤 이들은 심지어 질병에서 치유되기도 합니다.

    5. 그분의 추종자들이 증언합니다.

    유대인들의 엄격한 유일신주의를 고려할 때, 인간인 예수님이 곧 주님이라는 “신화”를 그들이 쉽게 믿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처럼 매우 교육받은 유대인 지도자들조차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요 12:42).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그분의 추종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었습니다. 베드로는 당국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죽고 장사된 지 몇 달 만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을 두려움 없이 설교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렸던 바로 그 사람들 앞에서 설교했습니다. 심지어 당국도 그들의 담대함에 놀랐습니다(행 4:13).

    사도들은 위협당하고, 맞고, 투옥되고, 돌에 맞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극적인 변화와 엄청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된 끈기는 그들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위협하는 공회원들에게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행 5:29).

    6.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그분을 찾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중독이 극복되고, 질병이 치유되며, 삶이 변화됩니다. 이 모든 것은 살아계신 주님의 권능과 권위, 그리고 영원한 말씀을 증언합니다.

     

    C. 아버지, 아들, 성령은 같은 “인격”인가?

    하나님께 “인격(person)”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분의 하나님이시며 한 분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은 아버지의 영이시며 성령이십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성경은 아들이 아버지나 성령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골 1:19, 2:9). 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38, 14:10,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일시됩니다(사 9:6; 요 10:30, 14:9).

    주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자신을 성령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성령의 오심에 대해 언급하실 때, 주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올 것이다”(요 14:18)와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요 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예수의 영(행 16:7; 롬 8:9; 갈 4:6; 빌 1:19; 벧전 1:11)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성령은 아버지의 영(마 10:20), 하나님의 영(마 3:16; 롬 8:9, 8:13, 14; 고전 2:11, 3:16, 6:11, 12:3; 빌 3:3; 요일 4:13, 3:24) 또는 하나님의 성령(엡 4:30; 살전 4:8)이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십니다.

    • 예수님의 사역은 종종 아버지나 성령의 사역으로 귀속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신자들 안에 사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불립니다(롬 8:9-11).
    •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지만(갈 1:1),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 부활하셨습니다(요 2:19).
    • 예수님도 기도에 응답하시고(요 14:14), 아버지께서도 기도에 응답하십니다(요 15:16).
    • 성령께서 신자들을 위해 말씀하실 것이며(막 13:11), 이 성령은 아버지의 영(마 10:20)이며 예수님 자신입니다(눅 21:15).

     

    출처 :  참예수교회 연합총회 홈페이지
    https://tjc.org/the-complete-gospel/

  • [복음 메시지]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복음 메시지]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제목: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요12:27-33)

    일시: 2025년 2월 1일 안식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27)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마음이 민망하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고뇌하였지만, 이때 예수님은 많은 기도를 통해 시험을 이기고 결국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기도 생활의 필요성

    이처럼 사람이 정말로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깁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는데 성령을 받은 우리는 그럴 때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 역시도 아주 힘든 상황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원이라도 육신이 약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마음은 정말 원하는데 육신이 약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더라도 의지가 약해서 실행할 수 없게 되는 지경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몸이 너무 아프게 되면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도하고 치유와 회복을 구하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이어지는 시험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마음이 약하고 육신이 약해서 우리가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만, 이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계속 지게 되어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을 통한 기도의 중요성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27)’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우셔서 이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지금은 이거를 지금 감당하시며 순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기도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27절 말씀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신다는 뜻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마음과 힘이 약하여 있다가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기도하고 나면 힘이 생기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려는 생각이 생깁니다.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이고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본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한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이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모습대로 살아가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면 그 인생은 분명히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우리 인생은 우리를 스스로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주셔야 합니다. 내가 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내가 복을 쫓아가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로 복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고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솔로몬을 통해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삶의 결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그런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솔로몬이 구한 것이 주의 마음에 맞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솔로몬은 자신이 재판을 잘하여 백성을 잘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전에도 후에도 없을 만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도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구했고 행하려는 마음 또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이 소리가 우레가 울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했다. 여러 말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소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되었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31) 하고 말씀하시는 데 이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지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상의 심판이 일어나서 결국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세상의 왕인 마귀가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4~15)”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마귀를 없애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단을 가리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사망은 죄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대가인 사망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면하게 하려고, 즉 사람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이 관계를 끊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사단이 죄로 인한 죄의 삯인 사망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사단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이 되십니다. 이것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죄 사함의 은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죄에 대한 삯을 다 지불하게 되어 이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에서 다 벗어난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믿는 자들에게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 은혜를 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

    죄 사함, 즉 구속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풀어졌다는 뜻으로 죄에서 풀어졌다는 뜻입니다. 풀어졌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있던 자를 건져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삶

    그런데 우리는 이 죄 사함을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세례를 통해서 받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 구속받아서 죄와 사망의 권세인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이제 죄의 종노릇 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죄의 종노릇 하는 죄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죄에서 얽매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다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으니 예수님 안에 있어야 우리가 계속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너희가 만일 하나님께서 쫓겨나서 이방 나라 안에 거할 때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 있든지, 이스라엘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도저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내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이 은혜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애굽의 땅이 아닌 이스라엘의 땅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회개의 삶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모습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로 계속 돌아오는 삶을 사는 것인 우리가 해야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그분의 삶과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 힘쓰시는 우리가 모두 되길 바랍니다.

     

    설교 링크: 십자가로 인한  고뇌와 순종

     

    글| 최재웅 형제

  • [복음 메시지] 구원의 핵심진리, 안식일

    [복음 메시지] 구원의 핵심진리, 안식일

    제목: 구원의 핵심 진리, 안식일

    일시: 2024년 10월 25일 안식일 저녁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1. 안식일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안식일’은 무슨 날일까요? “안식”은 ‘자신이 하던 일을 끝내고 쉰다’라는 의미입니다. 안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성경은 창세기입니다.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내용뿐 아니라 창조하신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안식일의 기원이 사람의 명령이 아닌 창세 때의 하나님의 명령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을 기록하는데, 성경이 기록하는 안식일은 일곱째 날, 곧 토요일입니다. 정확히는 저녁부터 하루를 세는 성경의 기준으로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에 해당합니다.

     

    2.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

    성경은 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장의 내용은 십계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네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11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신5:12~15)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에서는 앞서 살펴본 출애굽기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과거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민이 되도록 하신 구원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합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동일한 두 말씀에서 각자 창조와 구원을 말하시는 것을 통해, 구원은 곧 창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애굽(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됨을 의미합니다. (사43:2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 백성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121:4).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키시니 하나님 백성보다 안전한 상태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양하길 바라십니다.

    셋째, 안식일을 지킴으로 영육 간에 복을 받습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영육 간에 주시는 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안식일을 지킬 때 만나와 메추리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특별히 병 고침의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할 때 성도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셔서 영의 양식을 채우십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님이 한 주 동안 힘들었다가 안식일에 말씀을 듣고 힘을 얻거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넷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 곧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곧 하나님의 날을 지키는 것이므로, 이를 하나님 백성인 증거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31:14).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거룩해야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거룩함을 잃어서 결국에는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즉 안식일은 거룩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날로 이를 지키면 구원에 이르게 되지만,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구원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안식일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이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누리게 되는 진정한 안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전 세상에 살 동안에 안식일을 통해 그 안식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일에는 성도가 같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면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하나님 안에서 해결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안식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고, 더욱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3. 안식일에 대한 오해

    그렇다면 왜 오늘날 많은 사람은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일요일, 즉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율법의 일부인 안식일을 지킬 필요도 없고, 도리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이 의미 있으므로 주일(일요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사실일까요?

    (갈3:15-17)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말씀은 율법을 주시기 430년 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나중에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안식일에 동일하게 적용해 보면, 안식일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주신 율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물론 율법 속에는 안식일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한 규례가 있고, 이러한 것은 율법에 속한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오늘날은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 그 자체는 율법의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직접 주신 다른 말씀들도 오늘날까지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안식일도 동일하게 오늘까지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라는 주장도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이 일요일 새벽에 갔더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사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했다고 하더라도 성경 전반에서 아주 중요한 안식일이 다른 날로 변경되는 것이라면 반드시 성경에 언급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했으므로 안식일을 대신해 일요일을 지킨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막7:6-8)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섬기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오늘날 성탄절, 부활절 등 성경에 없는 절기를 지키면서 성경에 있는 말씀은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람의 계명을 우선하는 교만함에 진노하십니다.

     

    마무리하며

    (사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을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위와 같은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이와 같이 안식일을 지키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안식일을 힘써 지킴으로 하나님 주신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오다은 자매

  • [복음메시지] 만선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 (눅 5:1-11)

    [복음메시지] 만선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 (눅 5:1-11)

    [말씀제목] 만선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 (눅 5:1-11)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17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1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삶이 풍요롭기 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어떻게 만선의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명령에 믿음을 가지고 순종해야됩니다. (4-5절)

    • 내가 살았던 방식이 아닌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아야합니다.

    –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 1. 밤새 물고기를 잡고 온 상태 2. 물고기를 잡아봤던 경험과 지식이 있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지식과 경험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6-7절)

    • 열심히 노력해도 가능하지 않는 일이 말씀에 의지했을 때 일어납니다.

    –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믿음의 수고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축복

    -예수님을 경험한 축복: 베드로는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이 보이고(5절 선생이여 -> 8절 주여) 자신이 보이고(“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꼈습니다.

    • 물고기를 좇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게 해주신 예수님을 좇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고 세상을 보는 믿음을 가집시다!

  • [복음메시지] 좋은 무화과, 극히 악한 무화과(렘24: 1~10)

    [복음메시지] 좋은 무화과, 극히 악한 무화과(렘24: 1~10)

     

    [말씀제목] 좋은 무화과, 극히 악한 무화과(렘24:1~10)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24일(토) 안식일 오전 예배

    예레미야서를 자세히 읽으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마지막 날의 모습, 그리고 그때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유다 왕 여호야긴이 재위에 있을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칩입하여 유다 왕, 방백들, 목공들과 철공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갔습니다. 이는 바벨론에 건물을 지을 사람들과 바벨론의 전쟁에 동원할 사람을 보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왕하 24:10~16)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

    그렇게 유다의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간 이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성전 앞의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여주십니다. 한 광주리에는 극히 좋은 무화과, 다른 광주리에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 극히 좋은 무화과도 있고, 극히 악한 무화과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마지막 날, 오늘날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좋은 무화과가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 모두가 좋은 무화과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갈대아인의 땅에 처참히 끌려간 유다 포로를 좋은 무화과 같이 보기에 좋게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좋은 무화과와 같은 백성들을 왜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일까요?

    (창15:6-7)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죄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상이 창궐한,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곳에서조차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는 결국 다시 그들을 갈대아 땅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정탐을 한 후,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다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자 다시 죄악의 땅으로 돌려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나오게 구원해 주셨지만,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악된 세상을 계속 좇는다면 우리 또한 죄의 근본인 지옥으로 갈 수 있습니다.

    (벧후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 사도는, 죄 가운데 구원받았으나 다시 죄악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들을 도로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돼지로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극히 악한 무화과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동부 교회 성도님들 또한 더러운 죄악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오늘 본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된 이들입니다. 이들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갈대아인의 땅에서 70년이라는 시간을 채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잘 돌보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과 같은 국무총리, 에스더와 같은 왕비, 느헤미야와 같은 비서실장을 세우셨듯,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성공하며 살 수 있도록 잘 돌보아주셨습니다. 비록 죗값을 치르게 하셨지만, 그들이 회개하여 좋은 무화과가 되면 그들을 잘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무화과 즉,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생각으로 예루살렘에 남은 자, 애굽 땅으로 도망간 자들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성전 그 자체만을 중시하여 자만에 빠진 자, 죄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하는 자들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를 멸절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 또한 우리 신앙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졌을까요. 나쁜 무화과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자들은 바벨론 군대에 3년 동안 포위당하며 혹독한 기근 가운데 죽게됩니다. 시드기야 왕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두 눈이 뽑혀 짐승같이 살아가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합니다. (왕하 25:1-7) 

    (렘52:31-34)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 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한편 유다 왕 여호야긴은 포로로 사로잡혀간지 37년만에 왕의 의복을 입고, 왕의 정수를 받으며 살게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유다 왕 여호야긴을 회복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왕하25:27-30)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지막까지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 또한 어떠한 상황이 와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 (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 메시지] 아름다운 소식 (사40:9-11)

    [복음 메시지] 아름다운 소식 (사40:9-11)

    제목: 아름다운 소식 (사40:9-11)

    일시: 2024년 8월 31일 안식일 오후 ‘열린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아름다운 소식이 있을 때 우리는 전하고 싶습니다. 이사야 40장에서 아름다운 소식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 왜 아름다운 소식일까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강한 자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 바벨론의 압제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바벨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시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40:15)

    이스라엘이 바벨론 압제 속에서 사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사단의 권세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단은 내 생각, 내 욕심대로 살게 함으로 평안도 없고 두려움과 불안의 삶을 살게 합니다.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에 다만 알지 못할 뿐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26:17-18)

    둘째로 하나님의 통치가 아름다운 소식인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목자같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40:11)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4-15)

    주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버려 사랑하셨습니다. 그 선하신 목자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니 우리는 가장 선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그 은혜를 경험하고 더 나아가 이 아름다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13-14)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곧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36:27)라는 말씀처럼 성령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살고 그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7장에는 문둥병자의 아름다운 소식이 나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성 밖으로 나와야 아름다운 소식을 접할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만의 견고한 성을 부수고 나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 자기만의 생각, 뜻, 사상, 감정, 경험 등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힘써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그 다스리심을 받는 복된 자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복음메시지]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말씀제목]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4년 4월 20일(토) 안식일 오전 예배

         온 가족 초청전도 집회를 맞이하여 성경에 나온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의 초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은 한 여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인간의 삶 가운데 많은 힘듦이 있지요. 경제적인 가난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기도 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마음과 정신까지 무너뜨리는 것은 몸의 병입니다. 몸의 병이 깊이 들었을 때 사람은 점점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경에 이 여인은 혈루증(만성자궁출혈)을 12년 동안 앓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당시에도 전염병이 많아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유출병을 앓으면 부정하다고 레위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염 때문에 유출병을 앓는 자는 공동체와 마을에서 떨어져서 살아야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여인은 치료를 위해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고칠 수 없어서 점점 병으로 시들어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겠지만, 이 여인에게는 ‘정말 만나야겠다.’라는 결단을 내리게 하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12년간의 만성유출병으로 부정하게 여겨져 온 여인이 공동체에 나타나게 된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 사이에 몰래 섞여서 온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여인으로서는 예수님을 만나거나 대화할 방법이 없으니,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겠다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것 또한 죽을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 고의로 남을 만지면 똑같은 병에 걸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목숨을 두 번 건 것이지요. 무리에 섞일 때 한 번, 예수님의 옷을 잡을 때에 또 한 번.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초청받으신 분들에게도 예수님을 붙잡겠다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다 잘 사는 것 같아도 저마다 아픔이 있습니다. 좌절이 있습니다. 절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 향하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혈루병이 나은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깨달았다는 것은 즉각 나았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즉각 깨달을 정도로 몸이 나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붙잡으시고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목숨을 걸고 내민 믿음의 손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고 하시고 건강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결심을 하고 예수님 뒤에 가서 옷을 붙잡은 것밖에 없지만, 12년 동안 고통의 병 속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건강한 몸으로, 구원받은 예수님의 딸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손을 내미는 작은 동작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놀랍게 변하는, 인생 가운데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는 귀한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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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고전 13장 4-7절)

    [복음메세지]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고전 13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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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제목]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고전 13:4-7)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4년 6월 15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와 잘못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그것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즉, 믿을만한 것이 있어서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니깐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선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믿어주는 사랑입니다.

    • (요일 4:10, 19)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예수님께서 사랑할만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을 길을 친히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까?

    • (롬 5:6, 8, 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의 형편이 죄인이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기를 지셨습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줄 때 제자들의 상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욕망이 가득한 오합지졸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믿어주는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2.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롬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미성숙한 모습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믿어주며 사랑할 줄 알아야합니다.

     

    믿어주는 사랑을 먼저 실천해봅시다!

  • [복음메시지]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복음메시지]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제목: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일시: 2024년 4월 13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물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시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려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사마리아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우회해서 갑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구약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이곳에 이방인들을 거주하게 됨으로 혈통적으로 섞이게 됩니다.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신의 동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꺼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시려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사복음서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영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즉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는 소외 받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받는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마리아 여자를 일부러 만나 복음을 전하려 하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 행로에서 곤하신 예수님을 살펴보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한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힘드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힘든 길을 기꺼이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들을 건져낼지라(겔34:11)”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목자가 자신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찾고 찾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때로는 양이 골짜기나 절벽 위, 혹은 아주 위험한 곳에 있을지라도 목자는 그 양을 찾기 위해서 기꺼이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애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공통적인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주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되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심으로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여 우물곁에 앉으신 모습은 또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능력을 내려놓으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8)”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아니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피곤을 느끼시며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서 계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케 하고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전8:9)”

    # 예수님이 전도하시다

    9절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심을 듣고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넸을 때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 이렇게 말한 것은 그녀를 전도하려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때 상대방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라(딤후4:5)”는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고난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후의 내용을 보게 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마리아 여자가 기뻐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선물, 성령을 말씀하시다

    그럼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 사도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본 시몬이 돈으로 이러한 권세를 사려하자 베드로 사도가 “내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행8:20)”라며 책망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선물도 바로 성령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좋은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생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생수는 살아있는 물, 곧 생명수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그런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6-8)”

    여기 말씀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즉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은혜를 받는 사람과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는 언제든지 물을 공급받아 더위가 올지라도 두렵지 않고 잎이 청청하며 가을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마치 더위가 오더라도 그 뿌리를 강변에 뻗쳐 물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은혜를 성령을 통해 주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 이러한 물과 같은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11-12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영적인 진리를 잘 못 알아듣습니다.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느냐”고 말하며 예수님에게 야곱보다 큰 자인가를 묻습니다. 니고데모 또한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거듭남의 진리를 말했을 때 “어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 물으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지극히 낮은 우리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듣고 깨달은 자들이 다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이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샘물 같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보다 더 분명하고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우물을 통해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이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샘이 되고 그 샘을 통해 끊임없이 생명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를 마시기 위해 먼저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이것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다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성령을 주셨고(행1:8)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게 될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요3:34). 그럼 예수님의 증인 된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믿는 자 안에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고 왜 끊임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안다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샘솟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은혜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의 작은 삶의 습관들이 결국은 우리 삶에 영향을 줍니다. 평상시에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내 마음대로 행하는 삶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우리 삶이 계속적인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있게 되고 성령의 충만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는 말씀처럼 내 안에는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내 마음과 뜻과 감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성령을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끊임없이 성령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힘쓰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성령이 샘솟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백현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