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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내일의 희망을가졌나요?(예례미야 32:3~15)

    [복음메시지]내일의 희망을가졌나요?(예례미야 32:3~15)

    [말씀제목]  내일의 희망을 가졌나요? (렘 32:3~15)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4년 3월 2일

     

    (3)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취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 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운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4)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5) 너희가 갈대아 인과 싸울지라도 승리치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가로되 네가 어찌 이같이 예언하였느뇨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땅에 있다는 것은, 부족함이 많고 흠결투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서 소망을 찾으시고, 즐거움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을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격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나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자살을 생각하게 되지만, 같은 사람이 소망을 가지면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언제든지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소망이 있다면 무인도에서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운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흙탕물 가운데서도 연꽃은 피웁니다. 우리도 연꽃 같은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본문은 희망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렘 32:1)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년 곧 느부갓네살의 제십팔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시드기야의 제 십 년에 하나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포위당한 지 오래되었을 때 이런 멸망의 예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예언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었지요.

    (렘 32: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렘 32: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렘 32:8)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하나멜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땅을 팔았습니다. 

     

    (렘 32:9~15) (9)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본문은 소망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소망의 교훈

     1.소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멜은 ‘너를 위하여’ 밭을 사라고 했지만, 정말 그는 예레미야를 위해서 파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멸망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멜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밭을 샀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첫째로, 하나멜을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속은 것이 아니었지요. 살기가 어려워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 살 궁리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어렵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어려워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고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까지 돌아봐 주실 것입니다. 내 것을 힘써 나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나만 잘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 외면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멜의 삶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렘 32:8)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희망을 잃지 않은 이유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멸망할 나라의 땅을 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해받을 각오를 하고 그 땅을 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레미야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을 보시고 하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큰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3. 내일에 대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렘 32: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내일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왜 예레미야는 명령에 순종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땅 매매를 명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겠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회복해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절망할 거라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어려운 순간에 희망을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에 보약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멀리 있을 때 아름다운 것과도 같지요. 축복도 오랜 고통의 시간 후에 오는 축복이 내게 더 축복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눈앞의 축복만 진짜 축복은 아닙니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시련이 있어야 튼튼한 뿌리가 형성됩니다. 시련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에 어려움과 고통이 온다고 삶을 포기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꿈이 미완성이기에 자신을 독려하게 됩니다. 꿈을 다 이룬 후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무기력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희망이 중요합니다. 희망을 품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아름답고, 그의 삶이 더 힘찬 것입니다. 희망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는 것이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참된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쇠똥구리는 은하수를 보고 길을 찾아갑니다. 땅에서 똥을 굴려도 그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의 근원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연이 연줄에 매여있을 때가 행복하겠습니까, 연줄이 끊어져 하늘로 날아갈 때가 행복하겠습니까? 연줄이 끊어지면 연이 날지 못합니다. 바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여있는 것을 속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연결된 끈이 있어야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여있지 않으면 사람도 땅에 처박히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연줄을 끊어버리면 그 연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바로 땅에 곤두박질치게 될 것입니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소망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소망을 노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복음 메세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마 18:21~35)

    [복음 메세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마 18:21~35)

     

    말씀 제목: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마18:21-35)
    설교자:이요셉 목자
    설교일:2024년 2월 17일 안식일 오전

    우리나라에는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목적이 있다. 이 기관에 처음 접수된 건이 10860건에 달할 정도로 많이 접수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금 당장에 할 일 이 아닌 지난 일에 매여 사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억울함에 있다. 사람의 마음에 억울함이 있으면 매사에 불화가 생기고 의견이 분열되고 또 발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에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신앙생활을 할 때 과거를 정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사실이 있다면 회개기도를 통해 정리 하여야하고 또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용서를 기억하여 용서를 할 줄 아는 참예수교회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용서란 무엇인가?
    [마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원문에서 용서는 풀어주다, 놓아 주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일에 대하여 잊고 놓아주라는 뜻이다. 용서를 하는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했을 때에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보며 우리도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야 한다.

    2.용서의 순서(마5:23~26)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죄의 빚을 한 호리(땡전 한 푼)까지 다 갚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가 사람에게 지은 죄는 그 사람에게 용서를 받는 것이 순서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할 지라도 용서를 받지 않는다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소용이 없다. 또한 진실한 사과가 있다면 진실한 용서가 뒤 따라야 한다. 믿음 안에서 사과 하는 것도 의무지만 용서 하는 것도 의무이다.

    3.용서해야 하는 이유(마18:23~34)
    [엡4:32] “서로가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본문에 비유에 따라 성도들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본받아 대가가 있는 것이 아닌 이유 없는 용서를 해야 한다.

    4.용서하지 않는 것의 결말 (마18:34~35)
    [시109:7]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기도를 하게 된다면 그 기도는 죄가 되며 그 죄로 인해 우리는 한번 예수님을 통해 용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재림의 심판에서는 용서를 받지 못해 지옥에 형벌을 받게 된다.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일한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방법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납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 [복음메시지]우리를 광야의 쓴물로 인도하시는 은혜 (출15:22~27)

    [복음메시지]우리를 광야의 쓴물로 인도하시는 은혜 (출15:22~27)

    ♣ 2024. 01. 20.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홍해를 건넌 것은 애굽의 손에서 구원받은 의미도 있고 세례를 통해 구원 받았음을 예표합니다. 홍해를 건너고  감사의 노래를 한후(15:1~21)광야길을 3일 행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물을 얻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물인데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시지를 못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받고 교회에서 축하해 주고, 찬양하고 기뻐하다가 3일이 됐는데  좋게 변한 게 없어요. 오히려 더 나빠지는 길로 가는 거죠. 삶이 더 팍팍하고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 거지요.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애굽 후 원망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이 이곳입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서 백성이 원망한 것이 한 달 후도 아니고 3일!  말하자면 세례받고 3일 만에도 원망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해 가신 결과입니다.  왜 이렇게 인도하셨을까요?  세상에서 살던 우리의 태도를 고치시고 치유하기 위해서 마라로 인도하십니다. 또다른 이유는 마라의 고통의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내면에 절망이 생길 때 심리학적으로 원망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민14:2~4)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악한 모습이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조용히 이스라엘 백성을 꽃길이 아닌, 쓴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가신것은  깊은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세례받고 거듭난 백성이 됐을 때 알아야 될 깊은 인생의 가치는 광야의 가치입니다.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고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왕이었어요. 내가 제일 잘 나갔어요.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멋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낮추시고 겸손한 사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기 위해서 나를 비우게 하기 위해서 쓴물로 조용히 인도해 가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누구며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체험하기 위해서 마라로 인도하십니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마라로 인도하지 않았으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을까요?  우리가 세례받고 구원받았으면서도  고통과 아픔이 없으면 기도할 줄 모릅니다. 아픔이 있는 성도들은 기도의 모습이 달라요. 눈물을 흘리고 간절해집니다.  우리를 기도하게 만든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직접 물을 주시지 아니하고  한 나무를 지시하셨어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뭔가를 지시할 거예요.  이 나무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보여요.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이 안 보여요.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훈련을 위해 마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한 나무는  성경 전체적으로 보면 십자가입니다.(벧전 2:24)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거예요.  우리가 고난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가 드디어 나의 십자가가  됩니다. 그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될 때 물은 단물로 변해질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고난 속에서 발견하십시오. 마라로 간 것은 고통, 고난이 아니고 영적으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했다고 돼 있어요.  하나님이 지시한 곳을 바라보는지를 시험하시겠다는 거예요.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지(들을청,  따를종)를 보는 것이  첫 번째 시험이에요.   두번째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 땅에서 의를 행하라는 거에요. 세번째는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내 모든 규례를 지키는지 본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을 순종 하는지를 보시는 것이  첫 번째 시험이자 최종의 시험이기도 해요.

    그렇게 순종하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 신기해요. 물이 써서 원망했는데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표현했어요.  하나님 나라의 질병은 바로 원망입니다.  원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하는 마음을 치유해 주시겠다는 말이 들어있는 거예요. 원망이 나올때에  치료받을 수 있는 비결이 하나님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여호와 라파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시험의 장소이자 치유하는 장소입니다.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그들이 치유가 되고 그들이 회복이 됐을 때 하나님의 보상은, 그들을 엘림에 이르게 합니다. 엘림에 이른 후 마라로 인도한 게 아니라 마라로 인도하시고 , 치유하신후  엘림으로 보내셨어요. 엘림에 먼저 갔으면 그들은 치유되지 않았을 거예요. 엘림에 이르니 거기 하나님께서  물샘 12와 종려 70주를 주셨어요. 광야에서 제일 또 필요한 게 물과 그늘이에요. 거기서 그들이 물 곁에 장막을 칩니다.

    오늘 본문 짧은 구절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2024년 우리가 삶의 꽃길은 아니더라도 나의 이러한 마라같이 쓴 인생 속에 하나님의 시험을 깨닫고 다 통과해서 엘림의 보상이 열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자리가 되는 2024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 (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메세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 안식일 (출 31:12-18)

    [복음메세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 안식일 (출 31:12-18)

     

    (사진을 누르면 유투브로 이동합니다.)

    [말씀제목]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 안식일 (출 31:12-18)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4년 2월 3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3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15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일하는 자를 반드시 줄일찌니라 16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18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요? 바로 성경 속에서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식일을 지킵니다. 도대체 이 증표 안에 어떤 뜻과 권한, 축복들이 담겨져 있을까요?

     

    1.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증표입니다.

    • (창 2:1-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 (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세계에 정복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계에 있는 것을 다스리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 (마 6:25-26)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풀을 먹이실 수 있는 이유는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은 본인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닌 그치는 날입니다. 6일동안 육신을 위해 했던 염려와 근심을 그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2.나를 구별하셨다는 증표입니다.

    •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및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세례와 성령을 받은 구별된 자녀입니다. 구원의 증표가 이미 우리에게 찍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안식일을 지키며 살아야합니다.

     

    3.하나님께서 누리셨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증표입니다.

    • (출 31: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먼저 제 칠일에 쉬어 평안을 누리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 동물과 달리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육신의 일을 쉴 때 영혼이 쉴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안식일에 일을 하는 목자님은 안식일을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안식일에 하고 있는 일은 영혼을 위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영혼을 채우는 일을 노력해야합니다.

    • (출 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일하는 자를 반드시 줄일찌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나의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온전히 지켜야합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을 위해 기도합시다!

  • [복음메시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마27:45-54)

    [복음메시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마27:45-54)

    [말씀 제목]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마27:45-54)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년 12월 16일 안식일 오전 

    예수님께서 제 삼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제 육시(정오)부터 제 구시(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에 임합니다. 가장 밝을 이 시간 어둠이 임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경에서 어둠이 임함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29)”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볼 수도 있지만, 구속사적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의 형벌을 받는 심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 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며 절규하시는데 바로 죄의 대가인 사망의 형벌을 온전히 받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대가인 사망, 즉 죽음은 무엇입니까? 육적인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 단절됩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단절은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생명과 은혜가 끊기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 중에 부르짖으나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죄의 형벌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그 은혜와 긍휼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80:3)”

    예수님의 모든 것은 성경의 말씀을 이루려 하신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고통과 간구이나 근본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나 응답받지 못함도(1-2절), 로마 군인들에게 겉옷을 나뉘고 속옷을 제비 뽑히는 모욕도(18절), 이후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됨도(22-24절)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한 형벌을 순히 받으심으로(레26:40)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십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반드시 징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

    예수님께서 마지막 운명하실 때 ‘영혼이 떠나시다(50절)’라고 함은 이제 그 영혼이 떠나 하나님께서 가심을 의미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16:28)”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눅23장에서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낙원에 가심을 말씀하십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며 운명하심도 이제 그 영혼이 아버지께 가심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죽은 후 몸은 비록 흙으로 돌아가나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영혼만이 진정한 ‘나’이며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여전히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는 죽어서도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어떠한 은혜와 긍휼도 없는 곳에 가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빨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곧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특별한 일들이 일어남을 보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분리, 단절의 상징이었던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게 됩니다. 이 휘장에는 그룹들이 수놓아져 있는데 이 들은 아담이 범죄 한 후 에덴동산을 지켰던 천사들이었습니다. 이 휘장이 찢어짐은 하나님과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에덴동산의 은혜가 회복되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는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게 됩니다. 바위처럼 단단한 죄의 권세를 부수어 이김으로 더 이상 죄에 대해 메이지 않음을,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가 일어남은 더 이상 사망에 메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죄에 대해 종노릇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며 이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너무도 놀라운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섬기는 저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2:14)”

     

    |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1편)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2편)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1:12-17)

    [복음메시지]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1:12-17)

    [말씀제목]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3년 10월 7일

     

    (딤전 1:12-17)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교회를 세우는 데 진리만큼 중요한 일이 일꾼을 바로세우는 것입니다. 직분 자들이 바로서지 못해 성업에 틈이 생기면, 교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일군들이 성업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자기에게 이런 직분을 맡겨주셨는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들은 바울과 같은 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후에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을 삼으려고 이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본이 되어야 하고 본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직분을 맡은 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큰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맡겨주십니다. 사람들은 달란트의 양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가 그 맡은 것으로 얼마나 충성했는지, 순종했는지에 있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또한, 맡은 자들에게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맡은 자라는 인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맡기실까요?

     

     첫째로, 물질을 맡기십니다. 

    (시 50 : 1-23절) [1] [아삽의 시]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것을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것 인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물질은 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다가 때가 되면 놓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018년에 주윤발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 했습니다. 그 액수가 8,100억이었습니다. 기부하면서 주윤발은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분은 한 달 용돈을 11만원 썼다고 합니다. 자가용을 가지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습녔습니다.  ‘내가 물질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물질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께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달란트는 금전의 명칭입니다. 금전 중 가장 상위의 용어가 달란트입니다. 또, 이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달란트는 각 사람의 재능대로 주십니다. 기억할 것은,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가장 많은 달란트를 받아 가장 많은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주인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칭찬의 내용이 똑같습니다. 즉, 다섯 달란트이든 두 달란트이든 주인에게는 ‘작은 일’인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가 차이있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 25:24-25)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자기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시고 그것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용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재능이 얼마이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은사를 맡겨주셨습니다.

    ​(고전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 이 은사들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왜 주셨을까요?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를 주신 이유는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는 교회를 위해서 잘 사용할 때 빛이 납니다.

     

     넷째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직분은 맡겨진 것입니다. 구약에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직분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직분, 성가대 직분, 회막에서 봉사를 하는 직분 등입니다.

    (민 8:9-22) [9]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10]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 [11]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 [12]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를 안수케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13]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14]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15]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16]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20]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레위인에게 대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레위인에게 행하였으되 곧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21] 레위인이 이에 죄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그 옷을 빨매 아론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그가 또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정결케 한 [22] 후에 레위인이 회막에 들어가서 아론과 그 아들들의 앞에서 봉사하니라 여호와께서 레위인의 일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좇아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아론의 직분을 위해 주셨습니다. 회막 일은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일인데,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많은 봉사자들을 세워 맡겨주신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엡 4:11-12)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습니다. 이 ‘목사’는 사실 ‘목자’라는 단어입니다. ‘포이멘’은 신약 성경에 10차례 나오는데, 다른 모든 곳에서는 전부 ‘목자’로 번역됩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구절만 ‘목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여러 직분을 맡겨주셨고, 초대교회에도 여러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늦은 비 성령으로 세우신 참예수교회에도 그런 직분이 있습니다. 목자, 장로, 집사, 임원 등이 해당 됩니다. 이 직분은 모두 맡겨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맡겨진 직분에 순종하여 유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목자, 장로, 집사 직분을 받을 자들의 자격에 대해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목자의 자격입니다.

    (딤전 3:1-7)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이 ‘감독’은 ‘돌아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이것은 양떼를 돌보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목자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양떼를 돌보는 사람에게 쓰이는 용어가 감독입니다. 돌본다는 것은, 양떼를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양떼를 돌아보는 책임이 맡겨진 사람이 감독입니다. 목자, 장로가 이에 해당됩니다.

    (딛 1:5-9)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 감독에게 강조되는 것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방받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고집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폭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민 12:1-3)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모세는 성질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감독에게는 이런 면이 있어야 합니다. 또,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파로이노스’인데, ‘포도주를 곁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장로, 감독은 술을 곁에 둬서는 안 됩니다.

    (레 10:9)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 더러운 이를 탐해서도 안 됩니다. 왜 이것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이 생기면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나 하나 새길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직분자는 세상 명예나 권세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 맡겨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가 올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직분자가 성업을 감당할 때, 틈이 생기면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이 없어야 합니다. 기도 시간에 좀 더 간절히 기도하고, 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툼이 있을 때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딤전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

     ‘이와 같이’란, 장로, 목자, 집사, 직분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단정하다(셈노스)는 것은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뒤에서 말을 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이런 틈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한, 절제해야 한다. 교회를 위해 절제하며 맡은 바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직분은 성도를 세우고, 수고와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완전하게 세워가도록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자신이 온전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온전케 되도록 봉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인가요?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가요? 교회를 부끄럽게 하거나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교회를 연약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직분자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줄 아는 충성된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께서도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셨습니다. 직분자는 핍박과 환난이 있어도, 인생에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때마다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본받아 묵묵히 참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딤전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이것은 직분을 감당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충성하다보면, 자신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은 아버지 앞에 설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 자, 믿음에 담력을 얻은 자가 되어 예수 안에 있는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여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가?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날 참교회가 사도 시대의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늦은 비 성령의 함께 하심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교회 내의 성직자가 마땅히 이 일에 솔선수범하여, 전체 신도가 모두 열심히 주님을 섬기길 원할 때, 이로써 교회도 성장할 힘을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된 나(우리 교회)의 성업의 틈을 되새겨 보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를 의지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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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 (수7:1-15)

    [복음메세지]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 (수7:1-15)

    [말씀제목]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 (수7:1-15)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3년 8월 12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1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나이다…

    12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여새를 몰아 여리고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5절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실망감과 자괴감에 빠져 아무 기력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승리 후에 패배하게 만드는 유혹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1. 교만과 자만심

    •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수6:27)
    • 자신들을 보며 두렵게 떨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보는 마음에 교만의 싹이 났습니다.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수7:2-3)

    -여리고성과 달리 하나님께 방법을 묻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 = 경험이 하나님보다 먼저가 된 모습

    -거룩과 순종에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2. 착각과 망상

    •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의 승패가 숫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수7:3)

    •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이길 것이라는 착각을 했고, 이긴 다음의 모습을 그리는 망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함으로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그 순종으로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3. 집착과 탐심

    • 집착과 탐심으로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에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수6:18-19)

    -하나님께서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전리품이 개인의 소유가 되었더라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가나안 정복에 대한 마음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 한 사람의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수7:1)

    -탐심과 탐욕은 나를 잠깐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더 큰 것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겨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을 잃어버리진 않았습니까? 우리가 돈과 명예를 작은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영원한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을 경계하고 무너뜨려봅시다!

  • [복음메세지]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33:29)

    [복음메세지]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33:29)

    [말씀제목]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3년 5월 6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가장 축복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집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날입니다.

    세상에 머물러 있는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귀한 날이 바로 세례를 받는 날입니다.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왜 행복자일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자라고 말해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나 같이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다는 것

    • 애굽은 나일강을 끼고 있는 나라여서 풍족한 양식이 나오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왕의 말에 복종하며 살아갔습니다. (육적–>풍족 / 영적–>황폐)

     

    •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됐습니다.

     

     

         2.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방패시오 나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 세례를 받음으로 얻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사 43:1-2)

     

    • 세례를 받고 나선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끝은 결국 우리가 승리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실 때가 옵니다. 그 때 똑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다른 결말을 맞이합니다.

    ex) <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2-23)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니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우리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주워졌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복음 메세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복음 메세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말씀제목]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설교자] 이요셉 목자

    [설교일] 2023218() 안식일 오전 예배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꿀벌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꽃이 피는 봄입니다. 반대로 꿀벌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장마가 있는 여름입니다. 높은 습도와 병, 부족한 먹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 일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에 힘을 쓰다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 힘들까요?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심지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곤충의 세계에서도 스트레스 받으며 사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학업, 취업, 결혼, 경제적 문제 등과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병원에서도 병명이 없는, 이유가 없는 병이 많이 생겼습니다. 의사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격적으로 보았을 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심령의 근심은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음의 평안함은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평안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바울사도의 서신에서도 성도들을 축복하는 내용을 보면 예외 없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고 신앙 안에서도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평안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평안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에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예수님의 심적 상태가 평안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하다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임박함을 알고 계셨던 때였습니다.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의 육신적인 입장에서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큰 환란이 오고 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평안하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누리신 마음의 고요함이 우리의 평안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괴로운 것, 성가신 것이 없다면 평안할 텐데 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의 평안은 세상의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세상에도 평안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어떨까요? 첫째로 세상의 평안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에 나의 평안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내가 웃으려면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세상의 만족과 그것을 인해 찾아오는 평안이 그렇게 고급한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하나를 얻었다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골고루 갖추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얻었다고 하여 전부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안하려면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비교적 젊은 청년의 시대에는 골고루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있으면 될 줄 알고 그것을 위해서 쫓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려면 돈, 건강, 가족, 지식 등등 많은 것들이 고루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떤 하나만 얻었다고 하여 다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다 한들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셋째로 세상의 평안은 일시적이고 기쁨과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 타인과 나를 비교합니다.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나은 곳에 있다고 느끼고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이 이것입니다. 요즘은 sns을 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찍어서 올린 것을 볼 때에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고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고 내 인생이 저급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누리는 평안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님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걱정이 없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좋은 것이고 세상의 것은 다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평안을 주실까요? 본문에서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돈이나 건강을 직접적으로 주신다는 뜻일까요? 이것은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내가 맺는 신앙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평안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화목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안이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자라나며 자기의 욕심을 따라 행동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죄에 물들어 있고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는 마치 고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보호하심 없이 사는 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해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것이 없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께서 설립하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해졌습니다.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화목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집 안에 있기 때문에 평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속이 상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백성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하셨던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다 순종하셨고 말씀하신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임의대로 살아가면 마음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불안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은 비교적 형통하게 살아가나 그 삶속에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 풍랑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가 매우 고요하고 평안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평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출렁이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너그럽고 평안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럽고 평안하게 대하는 법입니다.

     

    평안에는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런 평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조건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나이가 들수록 많은 문제들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평안을 배워서 이것으로 믿음을 얻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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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하나되어 하나님을 보는 교회 (히 12:14)

    [복음메세지] 하나되어 하나님을 보는 교회 (히 12:14)

    [말씀제목] 하나되어 하나님을 보는 교회 (히브리서 12장 14절)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3년 1월 14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새번역: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2023년도 전주교회 목표를 본문을 근거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화평함과 거룩함입니다.

    화평은 거룩을 기반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화평은 거룩의 열매로 나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할 수 밖에 없는 교회가 되어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 하나님을 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지 않을 때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 미래적인 의미: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통해 결산의 때가 온다. 나중에 하늘 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아야 한다.

      • 현재적인 의미: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동행하시며 역사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삶이 형통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교회, 가정, 직장 등 나의 인생 가운데 역사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2. 거룩한 삶을 쫓아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 것을 말합니다. 삶 속에서 부정함과 정한 것이 혼재되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거룩한 삶은 부정한 것을 떼어 씻어내고 피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수 5:2-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교회공동체가 힘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거룩입니다.

    (아간의 범죄로 패배한 아이성 전투, 나실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죽임 당한 삼손…)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함이 우리 가정 가운데 있습니까? 내가 사는 삶의 현장에 있습니까? 우리 교회 공동체에 있습니까?

     

    3. 거룩한 삶을 통해 화평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가장 큰 가치는 화평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합니다. 즉 거룩을 잃어버리는 순간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어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 행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기도해야 합니다.
      • 예배를 통해 기쁜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한다면 나의 삶을 거룩한 삶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 그리고 성도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룰 수 있는 2023년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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