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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2023년 11월 18일 안식일 오전예배

    설교제목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본문말씀 : 1:27-30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합당” : ‘값에 알맞게 지불하고 사다’

    우리의 삶은 복음과 알맞은 값의 삶을 살아야 한다. (27)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주신 존재이다. (고전 6:20) (고전 7:23)

    “자기 피로 사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존재이다. (행 20:28)

    나는 주의 보혈에 감사하며 찬양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시 119:164)

     

    (27)“생활하라” = ‘시민답게 살다’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29) 나는 하늘의 시민권을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하였는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부스러기의 은혜와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 (마 15:27)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의 행실을 자랑할 것이 없다. (엡 2:8-10)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려면?

    1. 협력해야 한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7)

    교회 일은 혼자서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협력해야 한다.

    기독교는 경쟁의 종교가 아니다. 협력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빨리 가는 곳이 아닌 함께 가는 가는 곳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협력이다.

      1) 일심으로 :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2) 서서 : 적극적인 태도

      3) 한뜻으로 : 같은 방향

     

    2. 아무 일이든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8)

    “대적” : 안티케이마이 = ‘반대하다, 대적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적들이 있다한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눅 13:17) (마 10:28)

    (빌 4:13)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행 1:8)

    하나님 안에서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사 41:10)

     

    3.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한다. (29-3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9-30)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 16:24)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롬 8:17) 그리스도를 따라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길에 고난이 있어도 그 끝에는 영광과 축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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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3:15)

    [복음메시지]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3:15)

    2023년 08월 08일 (화) 저녁예배

    설교제목 :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본문말씀 : 디모데전서 3장 15절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신앙을 위해 보수할 것들이 있다. 진리, 신앙, 성업, 일꾼, 교육 등 …

    현세대는 종교적 다원주의로 인해 진리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서로의 진리를 모두 인정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천주교에서 석가의 탄신을 축하하고, 불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 TJC가 직면한 문제

    ① 비진리

    ② 교회의 세속화

    ③ 세상적인 성공주의

    참예수교회만 구원이 있는가 의심하는 성도들이 더러 있다. 의심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악의적인 의심은 진리를 거짓되게 만든다. 진리를 알수록 진리에 대한 확신만 커지게 된다.

     

    ※ 진리는 무엇인가?

    ① 하나님

    성경 안에서 진리는 ‘참’이다.

    참이신 하나님 = 진리 (시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시31:5)

    ② 예수 그리스도

    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1:9) (요14:6)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1:9)

    ③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거짓과 비진리에 미혹되지 않는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 진리의 속성

    ① <영원성>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시119:16) (요이1: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요이1:2)

    ② <절대성>  진리는 유일하다. (요14:6) (행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③ <구원>  진리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 (엡1:13) (살후2: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하나님의 구속 안에 있는 교회는 오직 하나이다. (엡1:23) (골1:18)

    에수 그리스도는 한분이시다. (요일5:20) (요10:30) (골2:2)

    (엡4:4-6) 구원을 얻는 교회는 오직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곧 교회이다. 우리가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리게 된다.

    흔들림 없이 믿음을 이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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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 2023. 7. 22.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절)”  

    성경은 이상한  말을 하지요?  이해가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문맥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안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서 6:12의 답변으로, 죽음 이후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 6:12)

    신후의 일을 깨닫게 되면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훨씬 좋은 날임을 알게 됩니다.

    *신후(身後) : 죽음 이후.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또다른 시작입니다. 신후사를 알게 되면 태어난 날보다 죽는날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신후사(身後事) : 죽음 이후의 일.

    사람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신후사를 향해 갑니다. 죽음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 이후를 알면 출생한 날보다 하늘나라 가는 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압니다. 1절은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보배로운 기름)보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녹명된 아름다운 내 이름이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7:1)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2절) 장례식장에 가면 인생의 실존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은 한줌의 재로 변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신후사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도 결국 죽습니다. 산자는 이것에 유심해야 합니다.

    *유심(留心) : 마음에 담는것.

    성경은 죽음 자체를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무주의도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일(신후사)을 정확히 알아서, 신후사가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자가 지혜롭게 살게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죽음에 대해 유심한다면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이 귀해지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날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슬픔(3절)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천국을 생각한다면 슬픔속에서도 마음이 좋게 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3)

    성도의 죽음은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천국 환송식입니다. 육신의 이별이 슬프지만,  알고 보면 천국 보내드리는 환송예배입니다. 나중에 그 자리에 나도 누워있게 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마음을 둡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집에 있고, 그들의 목표도 잘먹고 잘사는 것에 있습니다.(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4)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습니다.(6절) 박자를 잘 맞게 탑니다. 전세계 문화의 코드는 웃음입니다. 재미주의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화되고 신후사의 일에 대해 유심하기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변해갑니다. 웃음이 나쁜 것은 아니나 신후사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왕년은 지나간 것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10절) 앞으로의 일이 훨신 더 좋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믿는 성도들에게는 신후사의 일이 훨씬 더 인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위에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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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삼상 2:27-36)

    [복음메시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삼상 2:27-36)

    2023년 04월 18일 (화) 저녁예배

    [설교제목] :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본문말씀] : 사무엘상 227~36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사무엘상을 통해 알 수 있는 주제는 크게 2가지다.

    1.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세우시는가?

     하나님 나라 = 교회

    2.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어떻게 세우시는가?

     1) 왕 2) 제사장 3) 선지자

     

    (27) ‘하나님의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를 택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그러나 본문말씀의 3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거두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약속을 철회하셨는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30)

    그 이유는 엘리 가문에 문제가 있기에 축복의 약속을 받을만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의 보응을 치르시는 분이시다.

     

    ◈ 엘리 가문이 받게 될 죄값

    1. 늙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일꾼이 없을 것이다. (31)

    2. 가문의 사람들이 죄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33-34)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삼상 4:17-19)

    3. 구걸하다시피 제사장 직분을 이어갈 것이다. (36)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36)

    (삼상 4:20-21)

     

    ◈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베푸신 은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7-28)

    1.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27)

    2. 존귀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다. (27)

    3. 제사장의 분깃을 얻게 하셨다. (28)

     

    ◈ 엘리가문의 죄악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29)

    1.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2.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귀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은 행위다.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출 20:5)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 22:37)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다.

    (마 10:37)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이 아니다.

    3. 하나님께 드린 것을 빼앗았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꾼을 세우심으로 엘리 가문을 심판하신다. (35-36)

    그 새로운 인물이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상에 걸맞는 태도이다.

    (행 13:22) 다윗도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뜻에 합당했기 때문에 귀하게 쓰임받았다.

    (눅 1:38) 마리아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응답했다.

    (눅 5:5)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5) ‘나의 기름부음 받은 자’ : 마쉬아흐 = 메시아

    (히 6:20) 우리는 대제사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제사장으로 쓰임 받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나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자기 생각과 주장이 강해서는 안된다. 서로를 이해하며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가장 충실한 일꾼,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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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네 뿔과 네 공장에 대한 환상 (슥1:18-21)

    [복음메시지] 네 뿔과 네 공장에 대한 환상 (슥1:18-21)

     

    [말씀제목] 네 뿔과 네 공장에 대한 환상 (슥1:18-21)

    [설교자] 장흥진 목자

    [설교일] 2023년 3월 21일(화) 저녁 예배               

     

    (18)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19)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 (20)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21)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슥1:18-21)

     

    본문 말씀의 네 뿔은 권력, 즉 힘을 가진 자들을 말하며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업을 헤치는 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 재건, 하나님 나라의 건설, 성전 재건을 방해세력들입니다. 네 공장이 뿔을 다루는 기술자들, 즉 방해 세력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뜻합니다.

    곧 ‘네 뿔과 네 공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헤친 뿔들, 즉 방해 세력을 제거해주시겠다는 심판의 약속입니다. 동족인 사마리아인을 포함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서 안일하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는 성업 방해 세력들에게 책임을 물어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마침내 성전 재건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 스스로의 ‘뿔’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뿔 사용법

     

    나에게 있는 뿔은 어떤 뿔일까요? 뿔은 선하게도, 악하게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악하게 사용된 뿔은, 자신의 죄악을 쉽게 잊어버린 채 안일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나로 인하여 눈물 흘린 누군가가 있는가,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잘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뿔을 사용해야 할까요?

     

    (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레 19:16-17)

     

    위 말씀처럼, 서로에게 비난과 미움의 뿔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생긴 미움과 원망은 끊임 없이 반복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이 악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미움과 비난의 뿔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미움의 뿔

    • 미움을 정리해야 합니다. 미움으로 인해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원수를 향한 심판 또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요일 2:9-11)
    • 미움이 처리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은사는 어두운 데 있고, 믿음의 길을 잃게 됩니다. 미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나의 믿음, 나의 신앙을 시들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2. 비난의 뿔

    • 서로를 향한 비난은 평안을 깨뜨리는 멸망의 뿔입니다. 거룩한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레 19:16)
    • 가정에서조차 비난이 아닌 은혜의 말을 나눠야 합니다. 옳고 그름은 분별하되, 성도와 교회에게 유익을 위한 분별이어야 합니다. 비난을 위한 판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전 10:32-33)

     

    성도의 힘, 곧 뿔은 선한 구원의 뿔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같은 믿음의 성도를 괴롭게 하지 않고 미움과 비난의 뿔을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뿔로 살기를 하나님 앞에 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길 소망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모든 성도들이 소유할 때, 하나님의 일이 힘을 얻고 많은 결실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허락하시는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네 뿔과 네 공장에 대한 환상’ 유튜브로 시청하기

  • [복음메시지]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삼상 1:1~8)

    [복음메시지]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삼상 1:1~8)

    설교제목 :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본문 : 사무엘상 1장 1절~8절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성경은 일관된 주제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행1:3) 사무엘상의 주제는 하나님의 구속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알 필요가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사무엘 이전시대는 사사시대이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엘리의 뒤를 이은 제사장이기도 했다. 사무엘은 사사이기도 했으며,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였다. (1:3,2:12)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다.

    (1)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 = 사무엘의 아버지

    제사장은 오직 레위지파에서만 나와야 한다. (대상6:27-28) 사무엘의 혈통은 레위지파였으나 에브라임 성읍에 거주하던 것이었다. (민35:7) 레위지파에게 허락된 성읍에 거하던 것이다.

     

    1. 사무엘은 경건한 가정을 통해서 태어났다.

    (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제사장들이 불량하던 그때에 사무엘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세는 부모님의 믿음으로 태어나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쓰임받았다. (히11:23)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세례요한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었으며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다했다.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해 섭리를 이루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경건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2.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한나는 슬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을 나타냈다.

    (6) 대적 브닌나의 괴로움에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했다.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고난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

     

    3. 대적자로 인한 고통을 축복을 받는 기회로 바꾸었다.

    (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2) 아마 한나가 첫 번째 부인이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해 브닌나를 취했을 것이다.

    한나는 브닌나가 괴롭혀도 치고박고 싸우지 않았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때도 자식을 낳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소망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드렸다.

    혹시 내 주변에 브닌나와 같은 대적이 있다면 너무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적을 통해 간절한 믿음과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괴롭히는 대적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를 연단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설교 유튜브 영상

  •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2023. 2. 18일(토) 안식일오전(오희도 목자)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11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신7:1~11)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경에 224회 나오는데 신명기에만 207회 사용되었다.(한글성경 기준) 보통 하나님을 말할 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은 신명기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7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을 했을까? 모세 자신의 하나님은 아닌가?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한 3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땅에 아무도 못 들어가고, 모세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섬기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임을 강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결정적인 요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절에  “들이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여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모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세의 마음은 가나안에 너무 가고 싶으나 자신은 못 들어가지만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된 백성으로 살으라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은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있다. 후배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복 받는 백성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 내실 때에”(1절) 일곱족속을 누가 쫓아내시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쫓아지는 것이 아니다. “붙여 치게”(2절)하셨다. 정복 전쟁이라는 의미를 여호수아서에 가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가면 중요한 원어 두 가지가 “나탄과 헤렘” 이다. 붙여가 나탄이다. 치다가 헤렘이다. 예를 들면 다윗이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제가 저들을 치러 나갈까요?”  하나님은 나가라는 말 앞에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붙이신 전쟁은 이미 승리가 결정되었다. 나탄이 나오면 이미 결정난 전쟁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것이 바로 헤렘이다. 일곱족속을 네 손에 붙여주실때에 너희들은 헤렘해야 한다. 치는 것은 너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탄해주신 것을 너는 헤렘해야 한다.

    왜 헤렘(진멸)해야 하나?

     1. 죄의 관영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창15:13~16)과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면 헤렘하시려고 계획하셨다. 일곱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심판의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신다. 반면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는 바벨론이나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의 언약

    (창17:7~8) 언약이 성취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다.

     3. 신앙이란 우리가 세상에 있던 것을 내쫓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4. 영적 전쟁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진멸하는 것이다. 죄악(사단)과의 전쟁 원칙은 헤렘이다.

    가나안에 가서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들과 언약하지 말라. (2절) 언약을 해버리면 진멸하지 못한다.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나탄해 주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이 말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은 절대 이유 없이 죽이시지 않으신다. 여리고성을 진멸할 때 다 진멸하셨을까? 라합은 살려주셨다. 비록 그가 여리고성의 여자이지만 진짜 하나님임을 고백했다. 신뢰하고 믿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를 살려 주신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침해하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다. 철저히 죄악, 음란, 우상숭배, 거역하는 자들을 사탄과의 전쟁에서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3절)이다.

    만일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➀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고, ➁그로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➂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4절) 십계명의 첫계명부터 어기게 되는 것이 이방결혼이다. 우상숭배를 가장 쉽게 당하는 것도 이방결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진멸한다. 말씀을 어기면 너희가 헤렘이 되는데 이것이 진노, 저주의 헤렘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우상들을 좋아하지 말고 부수고 깨뜨리고 찍고 불사르라는 것이다.(5절) 쉽지 않다. 그러나 단순하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을 영적인 전쟁에서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수는 것으로 끝나야 되고 부수는 중에 있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래서 모세는 “너는!! “이라고 외친다.(6절) 이스라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너“라고 외친다. 모세의 피끓는 외침이다. 너희들의 정체성은 우상과 멀고 세상과 떨어져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한다. 이 외침은 모세가 가슴에서 피를 끓이며 그들이 정말로 깨닫게 하기 위해 해준 말씀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 “네가 섬겨야 할 하나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 한사람 한사람이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라야 될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이땅에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고 예수님이 외치신다. 왜 셰마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 해야 되느냐, 너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이다.

    성민이 되는 중요한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한다.(6절)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➀적어서 택하셨다.(7절) 적은 무리를 택하셨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27) ➁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다.(8절) 선택이 없는 구원은 없다. ➂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다.(8절) 성민의 두 번째 조건은 속량이다. 피흘림이 없으면 속량이 없다. 누군가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셔야 속량이 된다.(8절)

    9절은 너희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이 말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속량해 주신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신실은 믿음이라는 단어이다.(히.에무나, 헬.피스티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9절) 셋째,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헤렘된다.(10절) 넷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순종(믿음)을 말한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지켜 행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성민의 자격을 굳건히 가질수 있다.

    따라서 성민이 되는 조건은 선택과 속량, 이 두가지인데 한가지 더해서 성민의 세 번째 조건은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다.(헬.피스티스:믿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6:4~6)

    모세의 피끓는 외침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복된 영적인 성민들이 되자.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미 구원의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는 귀한 백성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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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두 가지 기도(행4:29-31)

    [복음 메시지] 두 가지 기도(행4:29-31)

    예배일: 2023. 1. 14.(안식일)

    장    소: 참예수교회 안동교회

    제    목: 두 가지 기도(행4:29-31), (전도를 위한 기도에 관하여)

    인도자: 박누가 목자님

      사도행전 3장 1절에서 10절까지 읽어봅시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그 사람이 걷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들은 늘 기도하러 다니면서 그 앉은뱅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도들이  전도를 위한 기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전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했으며 전도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여주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에 관해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시작합니다.(행3:11~4:7) 그리고 이튿날 장로와 서기관들이 사도들에게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는 물음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행4:8)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수많은 백성들과 관원, 장로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수 있었던 권능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먼저 전도를 위해 우리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기 전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행2:4) 그리고 늘 성전에 다니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충만한 성령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또 성령의 충만을 받아 진리를 기탄없이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는 가까운 사람, 가까운 곳부터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늘 성전을 왕래하면서 앉은뱅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왕래지에서 누구를 보고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성령에 충만을 힘입어 진리에 확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를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방에 앉아 기도하고 말씀만 읽는다고 해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할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셨음을 기억합시다.(마4:23-25 / 눅4:42-44) 더불어 복음을 전하기 전 나부터 ‘빛과 소금’이 되어 말과 행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모든 전도를 위한 준비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전도를 위해 우리는 주의 이름이 있는 곳에 표적과 기사가 함께 하심을 믿고 전해야 합니다. 혹 전도대상자가 병 중에 있다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낫게 해주심을 믿고 모두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난 표적이 있다면 앉은뱅이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 백성들처럼 우리 성도 안의 믿음 역시 성장 시킬 것입니다.

    [막16:15-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은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제 다시 한 번 사도들의 기도를 상고해 봅시다.

    [행4:29-31]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우리는 전도를 위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고’,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이 두 가지 기도를 잊지 말고 항상 우리의 입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2023년 새해에도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충만으로 전도의 문이 열리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일시 : 7월 16일 토요일 오전예배

    제목 :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본문 : 살전 5:9~11

     

    (살전 5:9~11)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어떤 일반교회 신도가 항상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로만 매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을 항상 징계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매를 들고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잘못 알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가 있습니다. 매를 드시는 하나님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고, 직접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한 성경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줄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장래에 소망을 줄려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 끝날 종말에 관한 내용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종말은 크고 두려운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심판은 또 두 종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막연히 두려운 대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노하심의 하나님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안식일에 성도들을 불러 모으신 것도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슨 근거로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을까요?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5~16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사도는 자신 스스로를 예수를 대적한 사람이요 믿는 사람을 훼방하고 핍박한 폭력자요 결국 스데반집사까지 죽게 한 죄인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한테 정작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잔멸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죄인중의 괴수인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을 보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으니 하나님은 징계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의 경험을 통해 자신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까요?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내가 구원을 얻은 이유는 내가 착해서도 아니요 내 노력도 아니요 내 공로도 아닙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안에는 반드시 십자가위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는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2000년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는 나를 향한 구원이 들어 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구속의 고마움을 알 때 믿음이 생기고 나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바로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살든지 죽든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으로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피차 권면하는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권면은 옆에서 위로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확신하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럼 어떻게 하면 위로하고 권면을 할까요? 바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피차 덕을 세우라는 것은 믿음의 집이 튼튼히 서갈 수 있도록 서로 돕고 협력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럴 때 종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살전4:9~10)형제 사라아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데살로니가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앞으로 더 힘쓰고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서로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살전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회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더욱 많이 힘쓰라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에서 기쁨이 샘솟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이 행복과 기쁨이 성도님들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님이 되시길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소망합니다.

     

  • [복음 메시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복음 메시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https://youtu.be/LZtIydphJGw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2:1~17

     

     

    본문에서 다룬 사건 2가지

    중풍병자를 낫도록 하신 사건

    마태를 부르는 사건

     

    에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시게 되셨다.

    예수님의 소문은 이미 온 갈릴리에 퍼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러 왔다.

     

    (막2:2)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그곳에 4명의 사람이 중풍병자를 데려왔지만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다.

     

    (막2:4)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그들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왔다.

     

    예수님의 관심은 중풍병자의 병에 있지 않았고, 중풍병자의 죄에 있었다.

    (막2:5)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 문제를 지적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등 자선행사를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다.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막2: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2:17)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오심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고, 죄는 단절을 의미한다.

    죄가 들어오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끊겼다.

    단절 사망 죽음 이 모든 것은 죄에서 나왔다.

     

    중풍병을 앓은 병자를 보시고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시기 전에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다 하는 말을 먼저 한 것으로 예수님의 관심은 죄에 있다.

    성경은 세상에 의인은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두 부류의 죄인이 있다.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죄인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죄인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삶은

    내가 가진 죄와 싸우는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습관을 끊으려 노력해본 적 있을 것이다.

    끊어내기 어렵다.

     

    (마5: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성경에서의 애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

    죄의 삯을 당한 자들이 느끼는 감정

    죄와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상을 메고 나아온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낫도록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는 위로를 받는다.

     

    (눅5:27~28)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세리는 그 당시 동족에게 세금을 뜯어 로마에게 바치는 세리는 부유했다.)

    어떻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었을까?

     

    (마9: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마10: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눅19:1~10)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막2:14~15)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막2:17)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예수님을 만나 위로를 얻는 사람은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사는 자며,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은 내 삶의 죄와 싸우는 사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