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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행사]가을영은회

    할렐루야!  지난 10월27일부터 3일간  “건강한 신앙” 이라는 주제로  장종규 목자님(안양교회)을 모시고 가을 영은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도 어김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듣고 행하라➀  요나의 회개➁  나그네 같은 성도의 삶➂  귀한 향유를 부은 마리아➃  가룟유다의 배반➄  마지막 시대의 경고의 말씀➅  건강한 교회➆  세족례 & 성찬례➇  등 은혜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신앙을  바로 세우고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진유진&진리영 자매님이 세례 증서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 중 언니인 진유진 자매님이 성령을 안 받았었는데 이번 영은회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구도자 6명과 교회 출석이 잘 안 되었던 성도 7명이 참석하셨고, 타 교회 소속이시지만 잃은 양이셨던 자매님 한 분도 참석을 하셔서 귀한 영의 단비를 흠뻑 맞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많이 참석해 주셔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도 되었습니다.  청년들의 받은 바 은혜를 간증하는 간증회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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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그리스도의 심판대 (고후5:1-10)

    [복음메시지]그리스도의 심판대 (고후5:1-10)

    ♣ 2023. 11. 25.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 5:1)

    1절 말씀을 보면 두 개의 집이 나온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장막집은 임시 거하는 처소이다.(고후4:18) 내가 살았던 집도 나의 몸도 결국 무너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다.(요14:2) 하나님의 백성이 내집 마련의 꿈을 어떻게 이룰수 있는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다.  사람의 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짓는 것은 실수가 많고, 엉망으로 짓기도 한다. 그러나 영원하고 완전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 이 땅에 집이 없어도 소망을 가질수 있고  살아가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인생의 중요한 결론이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고후 5:2)

    우리는 땅에 있으면서 탄식한다.  부정적인 탄식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탄식이다. 또한  삶의 고단함과 정욕과 욕심으로 인해 나약한 자기의 모습을 보며 탄식한다.  하늘의 처소는  이 땅의 장막집이 무너져야 들어간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하늘의 영원한 처소를 이 땅에 살아갈때 덧입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덧입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은 두 구조가 있다. 하늘나라에 가서 거하는 처소도 있지만  이 땅에 살아갈 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영적으로 덧입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3)

    벗은 자들로 발견되는 시점은 죽었을 때이다. 하나님 믿지 않고 죽으면 마치 벗은자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영원한 처소를 사모하고 믿었던 자들은 영원한 처소가  덧입혀져 있다.

    우리는 이 장막에 살면서 무거운 인생의 짐에 눌려 지게를 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헬라적인 사고는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이원론적인 사고이다. 극단적으로는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기 때문에 육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육신을 갖고 있을때 무슨 일을 했는지에 따라 그것을 근거로 구원이 결정된다. 육과 영이 분리되어 있는것이 아니다.  육신의 행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것이다.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자 된자들은 영원한 처소를 덧입는 자가 된다. 세례받으면 주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었고 물에서 올라오는 순간 새생명 가운데 살게 된다.(롬6:4) 이 일을 하나님이 이루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5절) 성령을 받은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롬8:18~23) 성령은 영원한 삶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 수 있다.(6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본질임을 깨달을 때 담대해진다. 세례받고 올라올때 이미 내집 마련이 되었다.  우리는 주님과 살기 위해 빨리 떠나기를 바라지만(8절) 이 땅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9절)  고린도 성도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에 바빴다.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9~10)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이다.(10절) 벗어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의 수많은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심판대가 있음을 생각지 못해서이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서야 할 곳이 심판대이다. 그때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날마다 주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고 담대히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주안에서 날마다 행복한 신앙 생활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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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2023년 11월 18일 안식일 오전예배

    설교제목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본문말씀 : 1:27-30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합당” : ‘값에 알맞게 지불하고 사다’

    우리의 삶은 복음과 알맞은 값의 삶을 살아야 한다. (27)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주신 존재이다. (고전 6:20) (고전 7:23)

    “자기 피로 사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존재이다. (행 20:28)

    나는 주의 보혈에 감사하며 찬양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시 119:164)

     

    (27)“생활하라” = ‘시민답게 살다’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29) 나는 하늘의 시민권을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하였는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부스러기의 은혜와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 (마 15:27)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의 행실을 자랑할 것이 없다. (엡 2:8-10)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려면?

    1. 협력해야 한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7)

    교회 일은 혼자서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협력해야 한다.

    기독교는 경쟁의 종교가 아니다. 협력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빨리 가는 곳이 아닌 함께 가는 가는 곳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협력이다.

      1) 일심으로 :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2) 서서 : 적극적인 태도

      3) 한뜻으로 : 같은 방향

     

    2. 아무 일이든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8)

    “대적” : 안티케이마이 = ‘반대하다, 대적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적들이 있다한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눅 13:17) (마 10:28)

    (빌 4:13)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행 1:8)

    하나님 안에서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사 41:10)

     

    3.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한다. (29-3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9-30)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 16:24)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롬 8:17) 그리스도를 따라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길에 고난이 있어도 그 끝에는 영광과 축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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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세지]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삼상 17:32-50)

    [복음 메세지]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삼상 17:32-50)

    [말씀 제목]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 (삼상 17:32-50)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10월 28일

    1943년 세계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모 항공대가 매우 특별한 임무를 받게 된다. 그 임무는 ‘모느’라는 댐을 폭파해서 인근 계곡을 침수시키는 것이었어. 그러나 고작 18대에 불과한 비행기로 수행해야 할 작전은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작전은 구체적으로 비행기들이 시속 380km의 일정한 속도로 유지하다가 정확히 600m를 급강하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면 위 20m 높이를 유지하며 공중어뢰를 발사해 댐을 명중시키고 와야하는, 마치 서커스와도 같은 그런 작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전은 성공했고 그 결과 연합군은 전쟁에서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작전을 이끈 깁슨 중령은 훈장을 받는 날 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바로 철저한 훈련과 모험정신이었습니다. 저희는 준비 기간만 2개월이 걸렸고 2,000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연습하는데만 2,500개의 폭탄을 소모했습니다. 그리고 연습한대로 용감히 실전에 임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을 성취하려면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호랑이굴에 들어갈 용기가 있어도 호랑이를 잡을 능력이 없다면 역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역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이처럼 능력 없는 모험은 만용에 불과하고 반대로 모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으면 아무리 큰 능력도 무용지물이다. 공부도 사업도 세상사도 신앙의 길에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했다. 성도의 삶을 믿음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전쟁같은 긴급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재물을 모으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더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전쟁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른 차원의 전쟁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사느냐 죽느냐! 마귀의 지배를 받느냐 하나님의 지배를 받느냐! 성도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느냐 세속의 가치관에 정복당하느냐의 전쟁이 있다. 성도는 영혼의 눈을 뜨고 이런 전쟁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도님들은 이 세상 속의 불신자들처럼 밥먹고 사는데만 매달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전쟁이 있음을 알고 승리하기 위해서 땀흘리고 있는가? 만약 실상이 그러하다면 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기사를 통해 그가 면대한 영적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어느 날 블레셋의 군대와 이스라엘의 군대가 전쟁을 위해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쟁터에 매우 위협적인 적군이 나타났으니 바로 키가 3m나 되는 거인 골리앗이었다.

    (삼상 17:4-7) 『[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놋 오천 세겔의 갑옷의 무게 환산하면 57kg이다. 창날만 육백세겔의 무게는 7kg이다. 갑옷과 창날의 무게만 합산해서 64kg이니 평균적 성인 남자 몸무게에 이른다. 게다가 다리에 놋 각반을 찼고 머리에 놋투구까지 썼으니 그 위용이 가히 로보캅 수준이다. 이러한 골리앗의 모습을 본 이스라엘은 아마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감히 누가 나서서 맞설 엄두도 못내고 있을 때 붉은 얼굴의 미소년 다윗이 나타났다. 그리고 물매로 돌을 날려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재석이 강호동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것이다. 도대체 다윗의 승리 비결은 무엇이며 오늘날 성도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첫째,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아야 한다.

    (삼상 17:34-35)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전쟁 영웅 사울 왕도 골리앗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개 어린 소년이 나서서 그와 대결하겠노라고 요청한다. 그는 사울왕에게 연이어 이렇게 말한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골리앗을 상대하겠다는 이 미소년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로 과거에 곰과 사자와 대결해서 승리했던 경험들에서 나왔다. 다윗은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처럼 성도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평소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아나가야 한다. 여호수아를 보라. 그는 모세의 뒤를 이은 후계자가 되었고 가나안 정복의 과업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그 땅의 일곱 족속과 전쟁해서 몰아내고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어려운 과업을 완수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완수한 배경에는 그가 과거 작은 승리의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전에 이미 광야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실전 경험이 있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기도하고 있었고 칼을 들고 전쟁을 수행한 인물이 바로 여호수아였던 것이다.

    또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하체 장애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한다. 이것은 베드로가 어느 날 우연히 일으킨 기적이 아니다. 과거 승리의 경험들이 쌓인 결과였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믿음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의 작은 열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서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과거에는 믿음의 열매가 전혀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일꾼이 되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일은 없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성도가 더 큰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기도하게 된다. 희생의 경험이 있는 성도가 더 큰 희생의 자리에 헌신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회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 번째 조건 바로 현재의 작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둘째, 멸시를 감내하는 겸손한 인격이 있었다.

    (삼상 17:28) 『장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왔는데 그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을 나무라고 꾸짖는다. 다윗은 순수한 믿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왔는데 형은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오해하고 멸시했다. 다윗은 그 멸시의 말을 들었지만 엘리압 형과 다투지 않았다. 의기소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왕 앞에 섰을 때 이번에도 다윗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삼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큰 형 엘리압 뿐만 아니라 다윗은 사울왕에게도 멸시를 당한다. 이처럼 계속 멸시를 받았지만 다윗은 결코 분노의 감정을 품거나 다투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다윗에게는 골리앗을 상대하기 전에 이미 영적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멸시를 감내하는 겸손한 인격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는 이 내적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골리앗을 상대할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007 영화로 잘 알려진 숀코네리란 배우가 있다. 금세기 최고의 흥행작이란 불리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 역을 해달라고 의뢰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만하게도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데 아뿔사! 이 영화를 거절하는 바람에 무려 사천 억 달러의 수입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처럼 겸손이라는 인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임하는 복도 제 발로 차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만약 형 엘리압이 멸시의 말을 할 때 형과 싸우거나 사울왕의 말을 듣고 마음속에 자존심 상해서 토라져 떠나갔다면 아마 골리앗과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대상은 내부의 친형이나 사울왕이 아니라 블레셋의 골리앗임을 알았다.

    세상사에서 신앙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격이 받쳐준다는 사실이다. 인격의 결함이 있는 사람은 싸움의 대상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대상과 싸우다가 힘 다 빼고 정작 자기 사명을 그르친다. 그러나 멸시와 조롱을 인내할 인격이 있는 자는 힘써야할 것을 분별해서 승리의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사울왕은 그런 차원에서 실패한 인물이다. 왜 실패했는가? 자기가 상대할 적들은 블레셋이고 아말렉 족속인데 허구헛날 다윗 죽이려고 추격한다. 그렇게 다윗 추격하는데 있는 힘 다 빼고는 나중에 기습한 적군에 의해 전사하고 만다. 그래서 어찌보면 능력보다는 인격이 먼저다. 능력이 있으면 무엇하는가? 엉뚱한데서 기운 다 빼는데. 돈 있으면 뭐하는가? 돈 제대로 활용할 인격이 없는데.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를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승리를 보장할 바른 인격으로 무장하시는 성도가 되자.

    (잠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셋째, 적합한 무기를 선택하는 분별력이 있었다.

    (삼상 17:38-40)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로보캅 중무장을 한 골리앗을 상대로 다윗이 갖추고 나가려는 군장과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아마 사울왕은 골리앗만큼은 아니지만 이 작은 미소년에게 최소한의 군장과 무기는 건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울의 군장을 입어본 다윗은 말한다. 익숙하지 못하니 입고 가지 않겠단다. 그리고 다윗이 선택한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의 군장에는 갑옷도 투구도 검도 방패도 없었다. 오로지 막대기와 돌멩이와 물매였다. 이것이 다윗이 선택한 군장이었다. 사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가장 허술한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다윗은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 그는 평소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군장의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몸을 보호해주고 적을 공격하는 도구지만 무게가 문제가 된다. 너무 가벼우면 견고성이 떨어져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너무 무거우면 싸움을 하지 못한다. ,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저는 군대 있을 때 항상 고민한 것이 20kg의 완전군장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하느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군장을 아예 벗어버린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가장 적합한 무기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었다. 이것이 다윗의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지혜가 있는가? 남들이 입어 아름답다고 내가 그 옷 입어서 아름다울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내게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다. 그 가정이 이런 저런 것 소유해서 행복해 보인다고 나도 그것 소유하면 행복하겠지?”하고 착각하지 말라. 우리 가정에 맞는 행복의 조건은 따로 있다. 다른 교회에서 그 방법으로 교회가 발전한다고 우리 교회도 똑같이 하면 발전할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우리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길은 따로 있다. 나를 정확히 알고, 내 가정을 정확히 알고, 내 교회를 정확히 알 때 그에 어울리는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소위 균형감각! 내게 적합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인의 세 번째 열쇠이다. 다윗처럼 이것을 분별하시는 저와 성도가 되자.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넷째, 하나님 이름을 높이려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울왕이 골리앗을 이긴 자에게 내건 포상이 있었다. 포상의 내용은 만약 승리하면 왕의 사위라는 특별한 신분을 주고, 많은 재물을 주고, 세금 면제의 특혜를 주겠단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한 동기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골리앗을 상대한 동기는 포상의 내용이 아니라 가슴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 때문이었다.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할례 없는 이방인을 죽여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증거하려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영적 전쟁은 어떤 차원에서 하나님이 계시고 안계시고의 문제이다. 불신자들은 성도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우리 신앙을 저울질 한다. 나아가 우리의 형통과 불행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느냐 죽었느냐를 가름하려고 한다. 이것이 영적 전쟁이다. 그런 도전의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계신다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에스더라는 여인은 민족적인 멸절의 위기 앞에서 말한다. “내가 왕 앞에 나가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이렇게 믿음의 모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민족의 몰살 위기를 면하고 민족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붙들고 모험해야 한다. 모험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 하나님은 모험하는 자에게 승리도 주시기 때문이다.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이처럼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해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 승리의 경험을 통한 확신, 멸시함을 참는 인격, 내게 맞는 무기를 분별하는 안목,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님들은 오늘날 내 삶이 어떤 영적 전쟁의 상황에 있음을 발견하시고 있는가? 다윗과 같은 믿음과 인격과 담대함으로 마귀의 도전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이와 같이 축복이 항상 함께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3RrubN1vL80?si=Cw4dZPEe8vyA-MAF

  • [복음메시지]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3:15)

    [복음메시지]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3:15)

    2023년 08월 08일 (화) 저녁예배

    설교제목 :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본문말씀 : 디모데전서 3장 15절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신앙을 위해 보수할 것들이 있다. 진리, 신앙, 성업, 일꾼, 교육 등 …

    현세대는 종교적 다원주의로 인해 진리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서로의 진리를 모두 인정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천주교에서 석가의 탄신을 축하하고, 불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 TJC가 직면한 문제

    ① 비진리

    ② 교회의 세속화

    ③ 세상적인 성공주의

    참예수교회만 구원이 있는가 의심하는 성도들이 더러 있다. 의심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악의적인 의심은 진리를 거짓되게 만든다. 진리를 알수록 진리에 대한 확신만 커지게 된다.

     

    ※ 진리는 무엇인가?

    ① 하나님

    성경 안에서 진리는 ‘참’이다.

    참이신 하나님 = 진리 (시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시31:5)

    ② 예수 그리스도

    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1:9) (요14:6)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1:9)

    ③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거짓과 비진리에 미혹되지 않는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 진리의 속성

    ① <영원성>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시119:16) (요이1: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요이1:2)

    ② <절대성>  진리는 유일하다. (요14:6) (행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③ <구원>  진리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 (엡1:13) (살후2: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하나님의 구속 안에 있는 교회는 오직 하나이다. (엡1:23) (골1:18)

    에수 그리스도는 한분이시다. (요일5:20) (요10:30) (골2:2)

    (엡4:4-6) 구원을 얻는 교회는 오직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곧 교회이다. 우리가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리게 된다.

    흔들림 없이 믿음을 이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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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삼상 2:27-36)

    [복음메시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삼상 2:27-36)

    2023년 04월 18일 (화) 저녁예배

    [설교제목] :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본문말씀] : 사무엘상 227~36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사무엘상을 통해 알 수 있는 주제는 크게 2가지다.

    1.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세우시는가?

     하나님 나라 = 교회

    2.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어떻게 세우시는가?

     1) 왕 2) 제사장 3) 선지자

     

    (27) ‘하나님의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를 택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그러나 본문말씀의 3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거두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약속을 철회하셨는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30)

    그 이유는 엘리 가문에 문제가 있기에 축복의 약속을 받을만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의 보응을 치르시는 분이시다.

     

    ◈ 엘리 가문이 받게 될 죄값

    1. 늙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일꾼이 없을 것이다. (31)

    2. 가문의 사람들이 죄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33-34)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삼상 4:17-19)

    3. 구걸하다시피 제사장 직분을 이어갈 것이다. (36)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36)

    (삼상 4:20-21)

     

    ◈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베푸신 은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7-28)

    1.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27)

    2. 존귀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다. (27)

    3. 제사장의 분깃을 얻게 하셨다. (28)

     

    ◈ 엘리가문의 죄악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29)

    1.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2.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귀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은 행위다.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출 20:5)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 22:37)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다.

    (마 10:37)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이 아니다.

    3. 하나님께 드린 것을 빼앗았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꾼을 세우심으로 엘리 가문을 심판하신다. (35-36)

    그 새로운 인물이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상에 걸맞는 태도이다.

    (행 13:22) 다윗도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뜻에 합당했기 때문에 귀하게 쓰임받았다.

    (눅 1:38) 마리아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응답했다.

    (눅 5:5)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5) ‘나의 기름부음 받은 자’ : 마쉬아흐 = 메시아

    (히 6:20) 우리는 대제사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제사장으로 쓰임 받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나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자기 생각과 주장이 강해서는 안된다. 서로를 이해하며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가장 충실한 일꾼,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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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삼상 1:1~8)

    [복음메시지]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삼상 1:1~8)

    설교제목 :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본문 : 사무엘상 1장 1절~8절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성경은 일관된 주제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행1:3) 사무엘상의 주제는 하나님의 구속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알 필요가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사무엘 이전시대는 사사시대이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엘리의 뒤를 이은 제사장이기도 했다. 사무엘은 사사이기도 했으며,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였다. (1:3,2:12)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다.

    (1)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 = 사무엘의 아버지

    제사장은 오직 레위지파에서만 나와야 한다. (대상6:27-28) 사무엘의 혈통은 레위지파였으나 에브라임 성읍에 거주하던 것이었다. (민35:7) 레위지파에게 허락된 성읍에 거하던 것이다.

     

    1. 사무엘은 경건한 가정을 통해서 태어났다.

    (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제사장들이 불량하던 그때에 사무엘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세는 부모님의 믿음으로 태어나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쓰임받았다. (히11:23)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세례요한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었으며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다했다.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해 섭리를 이루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경건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2.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한나는 슬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을 나타냈다.

    (6) 대적 브닌나의 괴로움에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했다.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고난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

     

    3. 대적자로 인한 고통을 축복을 받는 기회로 바꾸었다.

    (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2) 아마 한나가 첫 번째 부인이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해 브닌나를 취했을 것이다.

    한나는 브닌나가 괴롭혀도 치고박고 싸우지 않았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때도 자식을 낳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소망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드렸다.

    혹시 내 주변에 브닌나와 같은 대적이 있다면 너무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적을 통해 간절한 믿음과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괴롭히는 대적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를 연단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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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2023. 2. 18일(토) 안식일오전(오희도 목자)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11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신7:1~11)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경에 224회 나오는데 신명기에만 207회 사용되었다.(한글성경 기준) 보통 하나님을 말할 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은 신명기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7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을 했을까? 모세 자신의 하나님은 아닌가?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한 3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땅에 아무도 못 들어가고, 모세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섬기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임을 강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결정적인 요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절에  “들이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여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모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세의 마음은 가나안에 너무 가고 싶으나 자신은 못 들어가지만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된 백성으로 살으라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은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있다. 후배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복 받는 백성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 내실 때에”(1절) 일곱족속을 누가 쫓아내시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쫓아지는 것이 아니다. “붙여 치게”(2절)하셨다. 정복 전쟁이라는 의미를 여호수아서에 가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가면 중요한 원어 두 가지가 “나탄과 헤렘” 이다. 붙여가 나탄이다. 치다가 헤렘이다. 예를 들면 다윗이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제가 저들을 치러 나갈까요?”  하나님은 나가라는 말 앞에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붙이신 전쟁은 이미 승리가 결정되었다. 나탄이 나오면 이미 결정난 전쟁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것이 바로 헤렘이다. 일곱족속을 네 손에 붙여주실때에 너희들은 헤렘해야 한다. 치는 것은 너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탄해주신 것을 너는 헤렘해야 한다.

    왜 헤렘(진멸)해야 하나?

     1. 죄의 관영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창15:13~16)과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면 헤렘하시려고 계획하셨다. 일곱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심판의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신다. 반면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는 바벨론이나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의 언약

    (창17:7~8) 언약이 성취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다.

     3. 신앙이란 우리가 세상에 있던 것을 내쫓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4. 영적 전쟁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진멸하는 것이다. 죄악(사단)과의 전쟁 원칙은 헤렘이다.

    가나안에 가서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들과 언약하지 말라. (2절) 언약을 해버리면 진멸하지 못한다.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나탄해 주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이 말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은 절대 이유 없이 죽이시지 않으신다. 여리고성을 진멸할 때 다 진멸하셨을까? 라합은 살려주셨다. 비록 그가 여리고성의 여자이지만 진짜 하나님임을 고백했다. 신뢰하고 믿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를 살려 주신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침해하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다. 철저히 죄악, 음란, 우상숭배, 거역하는 자들을 사탄과의 전쟁에서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3절)이다.

    만일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➀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고, ➁그로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➂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4절) 십계명의 첫계명부터 어기게 되는 것이 이방결혼이다. 우상숭배를 가장 쉽게 당하는 것도 이방결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진멸한다. 말씀을 어기면 너희가 헤렘이 되는데 이것이 진노, 저주의 헤렘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우상들을 좋아하지 말고 부수고 깨뜨리고 찍고 불사르라는 것이다.(5절) 쉽지 않다. 그러나 단순하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을 영적인 전쟁에서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수는 것으로 끝나야 되고 부수는 중에 있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래서 모세는 “너는!! “이라고 외친다.(6절) 이스라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너“라고 외친다. 모세의 피끓는 외침이다. 너희들의 정체성은 우상과 멀고 세상과 떨어져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한다. 이 외침은 모세가 가슴에서 피를 끓이며 그들이 정말로 깨닫게 하기 위해 해준 말씀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 “네가 섬겨야 할 하나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 한사람 한사람이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라야 될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이땅에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고 예수님이 외치신다. 왜 셰마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 해야 되느냐, 너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이다.

    성민이 되는 중요한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한다.(6절)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➀적어서 택하셨다.(7절) 적은 무리를 택하셨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27) ➁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다.(8절) 선택이 없는 구원은 없다. ➂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다.(8절) 성민의 두 번째 조건은 속량이다. 피흘림이 없으면 속량이 없다. 누군가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셔야 속량이 된다.(8절)

    9절은 너희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이 말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속량해 주신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신실은 믿음이라는 단어이다.(히.에무나, 헬.피스티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9절) 셋째,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헤렘된다.(10절) 넷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순종(믿음)을 말한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지켜 행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성민의 자격을 굳건히 가질수 있다.

    따라서 성민이 되는 조건은 선택과 속량, 이 두가지인데 한가지 더해서 성민의 세 번째 조건은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다.(헬.피스티스:믿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6:4~6)

    모세의 피끓는 외침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복된 영적인 성민들이 되자.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미 구원의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는 귀한 백성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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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일시 : 7월 16일 토요일 오전예배

    제목 :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본문 : 살전 5:9~11

     

    (살전 5:9~11)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어떤 일반교회 신도가 항상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로만 매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을 항상 징계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매를 들고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잘못 알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가 있습니다. 매를 드시는 하나님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고, 직접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한 성경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줄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장래에 소망을 줄려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 끝날 종말에 관한 내용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종말은 크고 두려운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심판은 또 두 종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막연히 두려운 대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노하심의 하나님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안식일에 성도들을 불러 모으신 것도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슨 근거로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을까요?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5~16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사도는 자신 스스로를 예수를 대적한 사람이요 믿는 사람을 훼방하고 핍박한 폭력자요 결국 스데반집사까지 죽게 한 죄인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한테 정작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잔멸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죄인중의 괴수인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을 보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으니 하나님은 징계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의 경험을 통해 자신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까요?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내가 구원을 얻은 이유는 내가 착해서도 아니요 내 노력도 아니요 내 공로도 아닙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안에는 반드시 십자가위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는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2000년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는 나를 향한 구원이 들어 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구속의 고마움을 알 때 믿음이 생기고 나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바로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살든지 죽든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으로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피차 권면하는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권면은 옆에서 위로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확신하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럼 어떻게 하면 위로하고 권면을 할까요? 바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피차 덕을 세우라는 것은 믿음의 집이 튼튼히 서갈 수 있도록 서로 돕고 협력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럴 때 종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살전4:9~10)형제 사라아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데살로니가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앞으로 더 힘쓰고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서로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살전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회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더욱 많이 힘쓰라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에서 기쁨이 샘솟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이 행복과 기쁨이 성도님들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님이 되시길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소망합니다.

     

  • [복음 메시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삿 4:1-22)

    [말씀 제목]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삿 4:1-2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구약 성경에서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하나는 사사의 생존하는 동안에는 천하가 태평하다가 사사가 죽으면 고통이 다시 찾아오는 악순환의 시대였다. 이것은 오늘날 홀로서기하지 못하고 타인 의존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연약한 성도들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끌어줄 사사가 있으면 태평하고 사사가 사라지면 평안이 사라지듯이 나를 이끌어 주는 성도가 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으면 점점 교회도 신앙도 멀어지는 그런 상태의 신앙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사시대의 백성들이건 오늘날 성도들이건 선민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나 교회의 신앙이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 상태에 있다면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어떤 기적을 경험하고 복의 열매를 수확하는지 오늘은 여자 사사인 드보라와 헤벨의 아내 야엘의 활약상을 통해서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면 약한 자도 승리할 수 있다.

    (삿 4:4-5)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성경을 보면 좋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 중에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승리의 역사가 한 여자 사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일종의 풍자이다. 여자 사사 드보라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면서 선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 중에 있더라도 다른 신을 버리고 나만 온전히 의지한다면 이렇게 연약한 여자일지라도 승리하게 해주는데 왜 나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일종의 질책이 담겨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바로 가나안 족속이 강하기 때문도 아니요, 군사와 무기가 열등하기 때문도 아니요, 다만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도 물질이 부족해서, 좋은 가정 출신이 아니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유약하지만 남자보다 강한 경우가 있다. 신앙 안에서 남자 같은 강건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유약한 여자라도 그를 높이 들어 쓰신다. 그리고 남자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게 하신다. 이런 측면에서 신앙의 세계는 하나님 앞에 남자나 여자나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영광을 얻게 된다.

    (삿 4:8-9)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드보라의 명령을 들은 바락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일만 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라니까 “드보라 당신이 함께 간다면 나도 가고 당신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말한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가 부모님이 함께 가면 학교 가고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떼 쓰는 모습과 같다.

    우리는 때로 바락처럼 하나님께 조건부 순종을 내걸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시면 순종하고 안 해주시면 순종하지 않겠다는 심산을 가진다. 순종의 정신이 사라지고 상거래의 정신이 남는다. 그런 삐딱한 믿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복이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복 주신다. 믿음으로 행하는만큼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드보라같이 대장부의 신앙을 나타내면 대장부의 상급을 주시고 바락같이 졸장부 신앙을 나타내면 영광에서 제외된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큰 승리를 경험한다.

    (삿 4:12-13)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철병거 900승을 소유한 야빈의 군대에 대행해서 싸운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소총부대가 탱크부대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실천했을 때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 같은 기적은 일어났다. 바락이 드보라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납달리와 스불론의 일만 명을 모아 가나안 족속과 전쟁하려고 다볼산에 올랐던 것이다. 비록 불완전했지만 바락이 그 말씀을 믿었으니까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런 정도의 믿음도 하나님은 칭찬해주신다. 그 믿음을 인정하신다는 증거는 히브리서 기자가 바락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략이 승리를 가져온다. 그래서 여인이 전하든, 어린이가 전하든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바락이 드보라의 말을 여자라고 무시했다면 이 기적은 없었다. 누가 전하든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줄 아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의 승리는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시작된다. 때로 번지점프하는 것처럼 무모해 보이지만 말씀이라는 동아줄을 믿고 뛰어내려야 한다. 실제 번지 점프에서는 때로 끊어지는 사고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에 의지해서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성도가 되자. 그러면 인생이 평안하고 기대치 않은 축복의 열매들로 가득할 것이다.

    (시 37:5-6)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졸장부 믿음이 아니라 대장부 믿음으로 무장할 때 내 삶의 장애물인 철병거가 사라지고 영광을 누리는 꽃마차에 올라타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승리하시고 천국의 영광에 참여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박은우 형제

     https://youtu.be/b6rzCKe8W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