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청주교회

  • [기관 소개 – 사회청년부]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 사회청년부]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해가는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청년부는 대학생 3명과 군인 1명, 그리고 사회초년생 7명의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인 우리 청년부들은 신앙적으로는 신앙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이고 처음 교사 사역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성인이 되어 정신적 및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되며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세상의 가치와 신앙적 가치 사이에서 많은 줄다리기를 하게 됩니다. 신앙적으로 고민할 일들이 많아지고 심지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 청주교회 청년부는 하나의 신앙 공동체로 형성하여 이런 시기에 처한 청년들이 서로의 신앙 고민, 갈등 등을 공감해주고 답을 찾으며 신앙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청주교회 청년부의 1년 행사와 청년부의 안식일 일정을 소개합니다.

    매해 2월 말 또는 3월 초에 학생부에서 대학부로 올라오는 신입생들을 위해 신입생 환영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입생들이 청년부에 잘 적응하고 구성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행사이며 신입생들이 신앙의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조언해주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매해 다양한 활동을 계획 중이며 작년은 놀이동산을 다녀왔고 올해는 바비큐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4월쯤 청주교회 청년부는 북부지역 참예수교회를 선정하여 교류활동을 계획하였습니다. 올해 처음 시작되는 행사이며, 청주교회 청년부들이 북부지역 교회에 방문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며 북부지역 참예수교회 청년부들과 교류가 적었기에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참예수교회 청년부는 하나의 참예수교회 교인이기에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이러한 교류활동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6월쯤 충청지역 참예수교회 청년부들과 함께 찬양기도회를 하고 교류활동을 진행할 계획이 있습니다. 북부교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찬양기도회를 통해 청년들이 신앙의 힘을 얻고 은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획하게 되었고 4개 교회(청주, 천안, 장항서부, 대전)가 연합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올해는 청주교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함께 연합하는 행사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여름방학에는 물놀이! 더운 여름에 물놀이를 하지 않을 수 없죠!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행사입니다. 비록 말씀을 듣고 찬양하는 행사는 아니지만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기에 매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월에는 남부지역 교회를 방문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부지역 교회 청년들과는 남부 행사들을 하며 많은 신앙적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남부지역 교회들은 거리가 멀기에 방문하기에는 힘들었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청주교회 청년부는 남부에 위치한 참예수교회를 모두 방문해볼 계획에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안식일 저녁 형제반들은 학생부와 여호수아 신도회와 함께 풋살 모임을 가집니다. 신앙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풋살 활동을 통해 전도의 기회를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풋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청주교회 청년부 안식일 일정은 아래와 같아요~

    10:30 – 12:00 오전 예배
    12:00 – 12:30 점심 식사
    12:30 – 13:30 티타임
    13:30 – 14:30 신도회 모임(찬양, 말씀 및 신앙 이야기 나눔)
    14:30 – 17:00 교회교육 교사 사역 및 봉사 사역
    17:30 -18:00 저녁식사
    18:00 – 18:30 계단청소
    19:00 – 21:00 성경공부(GBS)

    청년부 신도회 모임 시간은 다 같이 찬양을 부르며 시작하며 오전 예배말씀을 기반하여 서로의 신앙적인 고민과 반성, 결심 등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기도를 합니다. 청년부 신도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신앙적인 고민을 나누고 공감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주교회 청년부들의 대부분이 아동부와 학생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청년부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 시절 교사로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교회학교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식사 후 목자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말씀의 양식을 섭취하고 꾸준히 신앙 성장에 힘쓰고 있습니다.

     

    글작성 : 장지훈 형제

  • [복음 메세지] 극단의 결과를 가져온 불의의 고리들(삿 20:1-23)

    [말씀 제목] 극단의 결과를 가져온 불의의 고리들(삿 20:1-23)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1월 21일(토) 안식일 예배

    1787년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쓴 ‘로마 제국의 몰락’이라는 책에는 로마 제국 멸망의 이유에 대해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멸망의 이유 첫째, 이혼의 급속한 증가로 가정이 파괴된 점, 둘째, 사람들이 스포츠와 매춘 등 쾌락주의에 빠져든 점. 셋째, 세금은 점점 높아진 반면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공짜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는 포퓰리즘에 집중한 점. 넷째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지나치게 군비를 확장한 점. 다섯째 종교의 순수성이 무너져 시민들이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지 못한 점 등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의 각각의 원인을 보면 대체 이런 정도 이유로 멸망까지 할 수 있나 싶게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원인들이 합해지고 증폭되니까 예상치 못한 심각한 결과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도 그렇다. 여러 계층의 작은 부정, 부패가 합해져 예기치 못한 심각한 결과에 도달했다. 학자들의 그릇된 경제 이론, 금융기관에서 남발한 부실 채권, 신용평가 기관의 부정직한 평가, 일반 대중들의 탐욕이 한 데 어울어지니까 금융 위기라는 암덩어리로 발병했던 것이다. 개인의 건강도 그렇다. 누구나 한 가지 요소로 건강을 잃지는 않는다. 수면 시간 부족, 영양 섭취의 불균형,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 건강을 해치는 음주와 흡연, 이런 모든 악습관이 합해져 종합되니까 암같은 심각한 질병이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다. 영육 간의 독소는 작은 씨앗이 자랄 때 제거해 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 10:1)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활하느냐가 나 혼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모임,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 의미는 나 한사람의 신앙과 믿음이 내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한 분의 성도가 자리를 비우면 허전하다. 그분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 든든하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임을 증거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건 교회 안에서건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어떤 의식과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어떤 의식과 신앙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오늘은 레위인의 첩 사건이 불씨가 되어 베냐민 지파의 멸절하게 된 사건을 살펴보고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레위인의 첩이 베냐민 지파 기브아에 속한 비류들에게 욕보임을 당하고 죽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피해자인 레위인은 마치 짐승의 제물을 각 뜨는 것처럼 여인의 시신을 12조각으로 쪼개어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보낸다. 이스라엘 12지파는 그것을 받고는 이 엽기적인 사건에 대해 경악한다. 그리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모든 지파가 미스바에 모이게 된다. 그렇게 모여든 지파들 가운데 칼을 빼들고 전쟁하는 정병이 사십 만이나 되었다. 이 모인 규모로 봐서 이것이 이스라엘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레위인은 그렇게 모인 백성의 장로들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레위인의 설명을 들은 장로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이런 일을 행한 자들을 처벌하겠으니 범죄자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베냐민 지파는 이 요구에 대해 불응한다. 결국 이스라엘 전체 지파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동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난 결과는 어찌되었는가? 베냐민 지파의 장정이 거의 몰살하게 되는 상황에 가서야 전쟁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끝에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참고. 삿 17:6, 삿 18:1 삿 19:1

    동족끼리 칼을 겨누고 베냐민 지파가 멸절당하기까지 죽이고 죽임당한 이 불행한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성경은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그 원인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이다.

    그런데 근본 원인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이 불행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불의의 고리들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하나만 끊어져도 이런 자리에 도달하지 않았을 텐데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다 보니 오늘의 극단적 결과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 고리 중에 첫 번째, 만약 레위인이 첩을 취하지 않았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정욕에 끌려 첩을 취하는 악행이 불씨가 되었다. 또 레위인이 음행한 첩을 데려오겠다고 자기 자리를 떠나 장기간 타지에 체류하는 불성실함이 없었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베냐민 지파가 순순히 기브아 비류들을 이스라엘 족속들 앞에 순순히 내놓았으면 이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베냐민 자손들이 기브아 비류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징벌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을까?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여러 계층의 부정직과 불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니까 나중에 전쟁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로마시대 멸망의 이유가 그러했고 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현상이 그렇고 개인이 암이란 질병이 발병하는 과정이 그러한 것처럼 이 악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사건과 극단적 결과의 이면에는 이렇게 작은 불의, 부정의 요소들이 합해지고 연결되다 보니 최악의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은 작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남을 탓하기 전에 너의 흠을 고치라.

    (삿 20:5-6)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이 레위인의 말을 보라.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고 말했다. 레위기에 보면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이나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레 21:7, 14). 레위인은 제사장이 임명되는 지파이다. 그런데 레위인이 행음한 첩을 데리고 살려는 그 시도에 대해서 스스로 뉘우치는 모습이 없다. 만약 레위인이 그런 불행을 당했을 때 먼저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았다면 ‘내가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망령된 사건을 만나게 하셨구나!’라고 뉘우치고 회개했을 것이다. 그런데 회개가 없다. 그리고 오히려 베냐민 지파의 비류들만 고발하고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왕으로 모신 존재이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멈춰서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의 마음 속에는 양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 양심이 살아있을 때 자기 합리화라는 우물에 빠지지 않고 남을 탓하는 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보훈에서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또 바울 사도는 디모데 전서에서 ‘남의 죄에 간섭하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이 레위인의 우물안 빠진 모습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을 수 있다. 부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딤전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둘째, 인정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 판단해야 한다.

    (삿 20:13-14)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오늘 본문에 베냐민 지파의 이상한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지역의 불량배들을 내놓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나서서 죄악을 저지른 불량배들을 징벌하고 공동체의 악을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연합군과 전쟁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추정하건대 아마도 베냐민 지파 중 유력한 집안의 자제들이 그 불량배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투명한 사회일수록 옳고 그름의 기준보다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관계가 그 사회를 지배한다. 그래서 그런 사회는 배경이 있고 연줄이 있으면 안될 일도 되고 반대로 배경도 없고 연줄도 없으면 될 일도 안된다. 사실은 위험한 사회의 공의가 실종된 사회이다. 베냐민 지파의 행동을 보아 그 시대도 그러했던 것 같다. 공의의 기준으로 판결하고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인정과 관계에 의해서 감싸고 죄악을 묵인했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도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오늘날 나나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런 부패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어떤 신앙의 길을 가야 할까? 성도 개인이 범죄할 때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상실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상실임을 알아야 한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공동체가 상처받을 수 있고 그 상처는 또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순서가 왔을 때 그 고리를 끊어낼 결심이 필요하다.

    때로는 공동체에서 고리를 끊어낼 때 깊은 고민이 있다. 관용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관용에는 항상 악을 용납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과 부담이 있다. 만약 무조건의 관용이 이루어져 무제한 악이 용납되면 공동체의 악으로 확대될 때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관용이란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관용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과 공의는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존립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전체 지파가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몸 의식, 한 공동체 의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공동체가 존립하려면 정직과 공의와 공평의 정신이 기초 되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질 때 공동체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 이스라엘 지파가 베냐민과 전쟁을 불사한 것이다.

    (고전 12:26-27)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셋째, 근시안이 아니라 원시안의 안목을 가져라.

    (삿 20: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삿 20:46-47) 『[46]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47] 베냐민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

    민 26:41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무렵 인구수는 45,600명이었다. 그런데 삿20장에서 베냐민 지파의 죽은 자가 50,100명이었고 남은 자가 고작 육백 명에 불과했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아오는 동안 인구가 오천 명이나 늘어나는 복을 받았다. 그런데 이 전쟁을 통해서 전부 죽고 육백 명만 남았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한탄하고 있다.

    (삿 21:2-3)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3]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베냐민 지파 뿐 만이 아니라 사실은 이스라엘의 연합군도 피해가 컸다.

    (삿 20:21,25)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결국 베냐민을 공격했던 이스라엘 지파 연합군도 무려 4만 명이 죽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거의 한 지파의 인구 규모와 같다. 하나님은 마치 광야에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서로 치게 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셨던 것처럼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고 불신의 길을 걸어간 죄과를 이렇게 징벌하셨던 것이다.

    애초에 레위인이 음행한 첩을 취한 잘못의 회개하고 물러섰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베냐민 지파가 자기 종족의 악을 근절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지파가 베냐민과 더욱 대화하려고 하고 원만히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이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때 수확할 불행의 열매를 분별하는 눈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열매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고스란히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어린 아이는 불장난의 위험성을 모른다. 눈앞에 불의 신기한 능력에만 몰입한다. 그러다가 큰 불이 난 후에야 불은 재미있고 유익한 것이지만 정말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이처럼 죄악은 마치 눈 앞에는 작은 불씨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확대되고 성장했을 때 엄청난 결과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분별해야 한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옛날에 어느 왕이 부정부패가 심한 신하들을 연회에 초대했다. 그들을 교훈하기 위해서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연회에 참석할 때 안주는 왕이 부담하니 술은 신하들이 준비해서 포도주 한 병씩을 꼭 가져오라는 것이다. 모든 신하들의 포도주를 한 항아리에 부어서 함께 연회를 즐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신하들이 포도주를 가져오면 내가 가져가는 포도주 한 병은 얼마나 되겠나! 난 포도주 대신 물을 담아 가야지.” 그리고 이윽고 연회가 열리는 날 왕과 신하들은 진수성찬으로 차려놓고 연회장 가운데 술항아리를 놓고 둘러 앉았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해서 가져온 포도주들을 항아리에 부으라고 했다. 그리고 항아리에서 포도주를 퍼다가 모든 신하들에게 따라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술잔 속에 담긴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었다. 나 하나쯤 하는 신하들의 생각이 모아져 술을 맹물로 만든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사기라는 성경을 통해 성도에게 교훈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을 마음 속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을 산다면 하나님 나라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죄악의 고리를 끊고 선한 영향력의 고리를 형성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자! 하나님이 천국의 문에서 맞아들이실 그 날까지 하나님을 마음속의 왕으로 모시고 경성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김예영 자매

  • [교회 행사] 아동부 달란트체험과 ‘하나의 밤’ 행사

    [교회 행사] 아동부 달란트체험과 ‘하나의 밤’ 행사

    청주교회 행사를 소개합니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2022년 모두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보내셨나요? 청주교회에서 2022년을 마무리하며 진행한 행사들을 통해 받은 은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아동부 ‘달란트 행사’입니다.

    기존에 진행했던 달란트 시장을 조금 색다르게 바꿔서 진행했습니다. 교사들이 여러가지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아동부 아이들이 1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모은 달란트를 내고 각각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행사였습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천국 골대에 공 넣기’, ‘나의 죄 풍선 터뜨리기’, ‘천국 가까이 병뚜껑 날리기’, ‘말씀 캘리그라피’, ‘소떡소떡과 달고나’ 등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에 참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교사들이 함께 기도하며 고민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랍니다. 이 시간을 통해 아동부 아이들이 2022년 한 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열심히 모아온 달란트로 체험도 하며 감사와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의 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루가 주어집니다. 그 하루가 끝나면 밤이 찾아오고 우리는 이 시간에 하루를 돌아봅니다. 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는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우리의 인생길에서 맞이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밤은’ 우리에게 하루 하루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난 1년을 함께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행사입니다. 이 행사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을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이번 청주교회 ‘하나의 밤’ 주제는 ‘감사’입니다. 각 신도회별로 ‘감사’를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는데 올해는 특별하게도 한 가정의 삼대가 함께 찬양을 준비했습니다.

    1. 이번 하나의 밤에서 가족발표를 하게 된 이유는?
    2. 예전부터 할아버지께서 가족들과 함께 삼대가 모여 찬양을 하고 싶어하셔서 기회를 보다가 이번 하나의 밤을 계기로 삼아 해보게 되었습니다.

     

    1.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2.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언니와 제가 ‘하나의 밤’에서 맡은 일이 많았기에 조금은 부담이 됐지만 할아버지께서 원하셨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또 준비하다보니 모든 가족이 함께 찬양드리는 시간이 굉장히 뜻 깊었습니다.

     

    1. 준비과정이 대략 어떻게 되었는지?
    2. 할아버지께서 연주하시는 악기가 알토 섹소폰이어서 저희가 연주하는 음과 달라 곡을 다시 변조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행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일을 하고 계시고 저희도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함께 연습하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하나님의 뜻에 맞게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1.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2. 교회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삼대의 가족들이 함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감사한 시간으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청주교회는 ‘하나의 밤’을 통해 한 해를 주 안에서 마무리하며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2022년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글쓴이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치유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_김지현 자매님

    [성도 간증] 치유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_김지현 자매님

    저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친구 손에 이끌려 참예수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식구 다섯명 모두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 받고 채 2년이 되지 않은 5학년 때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사이 다행히도 저와 아버지는 성령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라서 눈물 콧물 흘리며 성령을 받았어도 다음 기도 드릴 때 ‘성령 기도가 안나오면 어쩌지? 정말 성령 받은게 맞나?’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사를 가게 되면서 저희 식구들의 신앙생활은 중단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잠시 교회에 몇 번 출석했는데, 이렇게 교회에 다니는 둥 마는 둥 하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젠가 교회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목자님의 강권과 또 더 크신 주님의 은혜로 저와 아버지는 30년 만에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은혜들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9일 연세 드신 아버지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91세이신 아버지는 지병으로 많은 약을 드셨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어느 날 하루 종일 온몸에 통증이 계속되어 응급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고 많은 약들을 먹으며 고통 속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여 다행히 코로나는 잘 이겨내셨습니다. 그런데 보름 후쯤 혓바닥 전체가 흑색으로 변하여 또 응급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연이어 식욕이 줄더니, 구역질로 인해 음식은 전혀 드시질 못하게 되었고, 식사 대신 겨우겨우 드시던 약 마저도 구역질 때문에 완전히 거부하셨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여겨 나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니 마음이 정말 답답했고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입원해서 영양제로 버티며 온갖 검사를 다 해본 결과 ‘부신피질 호르몬’ 부족이라는 원인을 찾게 되었고, 성도님들이 함께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점차 식사를 하게 되어 보름 만에 퇴원을 하셨습니다.

    연이은 병세들로 인해 몸무게가 6k이상이 줄고, 많이 쇠잔해지셔서 후유 증상들이 나오곤 하지만, 그래도 잘 회복 중에 있습니다.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평안함을 느끼며 이런 평안함이 계속 유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하던 때여서 계속되는 고난의 상황들에 너무나 암담했었고,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두 해 전, 성령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해 심란해 하고 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목자님께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을 바라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더 늦기전에,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믿음 안으로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허락해 주시고 보호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힘들 때마다 같이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김수철 형제님과 김지현 자매님>

    글쓴이 : 김지현 자매

  • [성도 소개] 장지훈 형제를 소개합니다

    Q.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A.안녕하세요 저는 참예수교회 청주교회 장지훈 형제라고 합니다.

     

    Q.언제 처음 신앙생활을 했나요?

    A.부모님께서 참예수교회를 다니시고 믿음 안에서 결혼하셨기 때문에 저도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Q.청주 교회로 오게 된 계기는?

    A.2020년 결혼 후 청주시 오창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새로운 교회에 출석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머지않아 또 다른 곳으로 거주 지역을 옮길 계획도 있던 터라 청주교회에 오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1년 아버지께서 청주교회 가을 영은회 강사로 오셔서 저희 부부가 처음 청주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목자님의 권면과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성도님들 덕분에 잘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Q.현재 맡으신 사역은?

    A.청주교회 대학사청부 부장과 학생부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저의 대학 생활과 사회 초년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후배 형제 자매들이 신앙의 길을 잘 걸을 수 있게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Q.요즘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요?

    A.“믿음을 굳건하게, 성령을 충만하게”입니다.

    글쓴이 : 장지훈 형제

  • [기관 소개 – 학생부] 청주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주교회 학생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청주교회 학생부는 중등부와 고등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등부 7명 고등부 4명으로 총 11명이 있습니다.

     

    신앙과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청소년 시기.

    가정과 연계하여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아동부 시절을 지나, 학생부는 신앙에 대한 결단과 홀로서기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죠!

    참예수교회는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교제를 통해 서로 공감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건강한 신앙인으로 홀로설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지금부터 학생부들의 1년 살이와 매주 안식일 일정을 소개하겠습니다.

    겨울 방학이 되면 우리 학생들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비전드림’ 행사에 참여합니다. 학생부 1년 모든 행사와 일정을 공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목표를 세우며 한해의 문을 여는 행사입니다. 주로 다른 지역 교회에 방문하여 진행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잠시 다른 교회 방문을 멈추고 청주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전드림 후에는 남은 겨울방학 기간 동안 학생부들이 신앙 안에서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비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만나지 못할 때는 zoom으로 비전 공부방을 할 정도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답니다.

    겨울 방학에는 비전 공부방과 더불어 ‘바이블 스쿨’도 운영합니다. 다른 지역 학생부들과 연합하여 통독, 필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말씀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는 전도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올해는 8주에 걸쳐 진행된 친구 전도 주간에 이어서 ‘친구 초청 잔치’를 했습니다. 위 사진은 가장 최근에 진행된 친구 초청 잔치의 따끈 따끈한 사진입니다~^^

     

    이제부터는 안식일 일정을 살펴볼까요?

    학생부의 안식일 일정은 오전 예배부터 시작입니다. 어른들과 함께 오전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다 같이 식사를 하고 1시 30분부터는 학생부들이 주체가 되어 아동부들을 돌보는 ‘아동부 돌봄’ 시간이 있는데요.

    성도님들이 안식일 오후 신도회 예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학생부들의 따뜻한 섬김입니다.

    작은 힘이지만 이러한 섬김을 통해 서로 세워져 갈 수 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동부 돌봄 시간이 끝나면 학생부들이 모여 일주일간 묵상한 내용과 지난 주 분반 시간에 말씀을 듣고 결단했던 실천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더불어 자신이 품은 태신자를 위해서 기도하며 학생부 예배를 시작합니다.

    학생부 예배는 강의와 분반 활동을 연계하여 진행합니다.

    강의와 분반이 마치면 끝이냐고요? 찬양이 빠질 수 없죠! 저녁 시간에는 학생부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시간은 자체적으로 진행하거나 대학 사회 청년부들과 함께 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함께 모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 안에서 넘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학생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으로 청주교회 학생부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혹시 함께하고자 하는 행사가 있거나 함께 나누고 싶은 행사가 있다면 언제든지 놀러오세요~

    그리고 청주에 거주하시는 분들 중, 우리 아이를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세워가는 교회를 찾으신다면 언제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는 참예수교회 학생부로 오세요~~~

     

    글쓴이 : 이순우 자매, 박은우 형제

  • [복음 메세지] 비천한 자를 존귀한 자로 (삿11:1-11,29-40)

    [말씀 제목] 비천한 자를 존귀한 자로 (삿11:1-11,29-40)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2년 10월 8일(토) 안식일 예배

    인도라는 나라에는 ‘카스트 제도’라는 뿌리 깊은 신분 제도가 있다. 카스트 제도의 내용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을 네 계급으로 나누는데,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그것이다. 그런데 네 계급 외에 카스트 제도 안에도 못 들어가는 최하층민이 있다. 이 계층을 불가촉천민으로서 달리트라고 한다. 태생적으로 상호간의 신분 이동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1950년에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인도인의 문화 속에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런 신분 제도의 기원은 흰두교의 원시종교였던 브라만교에서 기원했다. 힌두교가 인도의 지배종교로 지속되는 한 인도 사회에 신분 계급 관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카스트 제도 같은 태생적 신분 제도는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도입한 결과 자본이 계급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유행어를 보면 시대의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는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의 표현들이 자본으로 사람을 분류하려는 씁쓸한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쓰면 안 된다. 세상의 가치와 관념에 휘둘리게 되면 우리는 속게 되기 때문이다. 천국의 가치와 기준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와 관념의 잣대로 나 자신을 평가하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나는 오늘날 나의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존재임을 발견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가치 기준에 휘둘려서 자신을 불행한 존재로 비하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은 비천한 신분의 사람 입다가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길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사사시대 길르앗이란 사람이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다. 그 낳은 아들의 이름은 입다였다. 그는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학대받았다. 결국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쫓겨났고, 쫓겨나면서 재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떨려 났다. 혈혈단신 돕이란 땅에 거하게 되었는데 어느덧 이곳저곳을 떠돌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랑민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렇게 태생부터 비천한 처지였던 입다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암몬 족속을 보내 괴로움 당하게 하셨고 그것은 전쟁까지 이르게 되었다. 암몬 족속이 쳐들어오는 위기상황에서 길르앗 장로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쫓아낸 입다를 찾아가게 된다. 입다에게 전쟁을 수행할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입다는 이스라엘을 인도할 지도자 신분까지 약속받고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되고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입다에 대한 이 이야기는 세상 속에서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비천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면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도대체 입다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비천함에서 존귀함에 이를 수 있었을까?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첫째, 신앙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삿 11:1-2) 『[1]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사람은 자기가 노력해서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개선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스스로 개선할 수 없는 영역 가운데 태생이란 것이 있다. 태생은 자기 선택이나 노력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입다는 태생이 비천했다. 그런데 그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배다른 형들로부터 쫓겨났고 자기 몫의 재산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사람이 건실한 인격체로 성장하려면 어렸을 때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입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서자라는 낙인과 더불어 가정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쫓겨나는 상처와 아픔을 경험했다. 본문을 보면 입다의 추방은 한 가정에서가 아니라 한 가문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입다에 대해서 성경은 ‘서자’라고 먼저 언급하지 않고 본문 1절 말씀처럼 ‘큰 용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큰 용사’란 ‘전쟁의 명수’ ‘싸움의 용사’ 즉 전쟁에 익숙한 자를 의미한다. 아마도 그에게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은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은사 외에 그의 마음 속에 존귀하게 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들어 있었다.

    (삿 11: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한 말에서 우리는 입다의 마음 속에 여호와 신앙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내가 그들과 싸워 이기면’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이시면’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전쟁의 승패가 내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 여호와 신앙이 발견된다.

    (삿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했다. 이는 입다가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는 믿음, 여호와 앞에 자기의 말을 다 고하는 사람, 그런 신앙이 있던 사람이 바로 입다였다. 이것이 입다가 비천한 신분에서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비천한 처지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존귀한 자가 되는 예를 많이 발견한다. 그 가운데 역대상에 야베스라는 인물이 있다.

    (대상 4:9)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역대상의 이 ‘야베스’란 이름은 ‘고통’이란 뜻이다. 그 어머니가 고통 중에 낳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태생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산모가 순탄하지 않은 탄생의 비화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야베스는 성장 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지경을 넓혀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입다에게도 야베스와 같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입다의 발목을 잡아 그의 인생을 넘어뜨리지 못했다. 그는 돕 땅에서 여러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여호와 신앙이다. 신앙에는 이처럼 상처를 극복케 하는 능력이 있다. 신앙을 가진 자는 세상이 자신을 쓰레기 취급해도 ‘너는 내 형상을 닮은 존귀한 자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서자’라고 손가락질해도 ‘너는 세례를 통해 하늘에서 태어난 내 아들이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깊은 상처와 쓰라린 아픔으로 얼룩진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고 존귀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람의 영혼을 고치는 명약이다. 과거에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더라도 입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으로 치유받고 존귀하게 되시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바란다.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둘째, 신앙에는 원수와 화목하게 되는 복이 있다.

    (삿 11: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입다가 길르앗 백성의 머리와 장관이 된 과정을 주목하자!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를 부르고 사사로 세운 것이 아니다. 삼손처럼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길르앗 족속 장로들이 직접 그에게 나아가 ‘장관’이 되어 달라. ‘머리’가 되어 달라는 부탁으로 사사로 발탁된다. 여기에 숨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입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천대하고 내쫓은 자들이 찾아와서 우두머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입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처럼 나를 힘들게 하고 모욕했던 사람에게 사과받고 화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입다가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분을 의뢰하는 신앙을 지켰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일종의 상급이었던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믿음의 조상 삼인이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원수와 화목케 되는 일을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나를 괴롭히던 자들이 나를 찾아와 화친의 악수를 청했던 것이다.

    (창 21: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 26:26-27)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창 33:10)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이처럼 성도님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원수 관계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미움을 거둘 수 없게 깨져버린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올바른 신앙의 길에 가다보면 미래의 언젠가 그가 찾아와 악수하고 화목케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삼인에게도, 그리고 오늘 본문의 입다에게 임했던 화평의 복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저와 성도님들의 것이 되기를 기원한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셋째, 신앙에는 좋은 성품을 가지는 복이 있다.

    (삿 11:27-28)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사람은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면 난폭하고 모난 성격이 되기 쉽다. 남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원망하거나, 부모나 태생을 원망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자기를 잃고 방황하는 인생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은사를 받은 사람도 방탕으로 치달아 인생을 망친다. 태생이나 자란 환경으로 볼 때 입다는 그럴 위험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암몬과 전쟁하기 전에 사신을 보내 담판을 짓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 좋은 성품의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암몬 족속과 즉시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먼저 협상을 통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이처럼 입다는 전쟁보다 협상을 원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신앙을 가졌기에 이런 성품의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화평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호와 신앙의 길을 간 입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상급이 있었다. 그 상급이란 하나님 닮은 아름다운 성품이다.

    (잠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입다와 같은 깊은 상처와 쓰라린 아픔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신가? 그렇다면 실망하지 말라. 사람도 환경도 원망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섭리로 주어진 것임을 믿자. 결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길에 정진하면 비천한 나도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좋은 성품을 가지고 존귀한 인생을 살게 하실 것이다. 부디 상처와 아픔으로 뒤범벅된 인생의 전쟁터에서 믿음으로 치유받고 승리하시는 입다와 같은 믿음의 ‘큰 용사’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박은우 형제

    https://youtu.be/7LdzDnn3EzU

  • [교회행사] 사랑이 넘치는 신도회 행사

    할렐루야~

    청주교회는 [마리아, 갈렙, 한나, 여호수아, 에스더, 루디아, 대학사청부] 이렇게 7개의 신도회가 있습니다.

    올해 많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신도회별로 가졌던 뜻 깊은 시간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리아신도회]

    언제나 꽃과 같이 활기찬 모습으로 모든 성도 분들에게 본이 되어주시는 마리아 신도회. 올 봄에도 꽃을 구경하러 가셨지만, 꽃은 이 분들의 배경만 될 뿐이었죠. 하나님이 주신 시간 속에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며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지 보여주시는 마리아회 감사합니다!

    [갈렙신도회]

    갈렙신도회는 얼마 전 첫 1박2일 신앙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청주, 안동, 남원교회의 장년 남신도회와 연합하여 진행한 행사였습니다. 성도 분 중에는 그동안 다른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어 이번 행사가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이기 어려웠던 시간으로 성도와 교회 간에 교제가 없던 중 이처럼 단비같은 소식과 행사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나신도회]

    한나 신도회는 주로 다과 모임을 가집니다. 소소한 모임 속에도 성도 간의 사랑을 느끼며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건강한 신도회의 기준이 됩니다.

    [루디아신도회]

    ‘위로와 권면의 성도 바나바’라면 청주에는 ‘루디아 신도회’가 있습니다. 전도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과 교제가 넘치는 루디아 신도회. 이번 심방을 통해서도 교제하며 신앙의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하는데요, 이 꽃이 더욱 많이 피어 그 향기가 넘쳐흘러 많은 열매를 맺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수아신도회]

    초복을 맞이하여 여호수아 신도회는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막국수와 수육은 맛도 맛이었지만 오랜만에 신도회 형제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는데요, 더욱 특별한 것은 이번 활동에 올 봄 세례를 함께 받으신 세 분의 형제님도 함께 하신 것입니다. 사도교회의 ‘매일 모이기를 힘쓰며 떡을 뗀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성도 서로의 사랑을 잘 보여주시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에스더신도회]

    아직 어린 자녀들이 있는 에스더신도회는 그동안 코로나로 갈 수 없었던 수련회를 1박 2일로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남편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보드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천안 교회 특별손님의 방문으로 더욱 풍성한 시간을 보냈다는데 주 안에서 이렇게 하나 되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사청부]

    하나님의 은혜로 최근 대학사청부의 모임이 활발해져 다양한 활동으로 함께 교제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이번 여름에는 계곡으로 갔습니다. 계획했던 당일 날씨 예보가 좋지 않아 연기를 하려 했으나 기도하며 차선책을 준비하던 중 하나님께서 좋은 날씨를 주셔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청주교회 백종원이신 김세한 목자님의 솜씨로 좋은 음식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청주교회가 이처럼 코로나 속에서도 교재와 행사들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려드립니다.

     

    글쓴이 : 박은우 형제

  • [기관 소개 – 아동부] 청주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 아동부] 청주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라나는 청주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아동부에는 총 16명의 아이들이 있는데요. 우리 아동부 친구들은 안식일을 가장 좋아하는 날로 손꼽고 있답니다. 심지어 가장 어린 영아반의 아이도 “오늘 토요일이야?” 매일 아침 엄마에게 물어본다고 해요.^^

    왜 이렇게 안식일을 좋아하는지 궁금하시죠? 

    청주교회 아동부의 안식일을 소개합니다. 

    10:30 오전 예배 

    12:00 점심 식사 

    13:30 학생부와 함께하는 돌봄 시간 

    15:00 아동부 예배 

    16:00 분반 활동 

    17:00 저녁 식사 

      ~ 기악 찬양(고학년 위주) 

    하루가 빡빡한 것 같나요?  

    다른 하루와 별 다를 것 없는 안식일 같지만, 이 모든 시간을 우리 아동부는 모두 당연하고도 즐겁게 참여하고 있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시작합니다. 오전 예배는 어른만 참석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니요! 우리 아동부는 모두 오전 예배부터 참석해서 온전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을 어른들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나면 점심 식사가 기다리고 있어요. 봉사해주시는 성도님들께서 매주 맛있는 음식으로 아이들을 먹여주시는데요. 본인이 먹을 만큼 음식을 덜어가서 먹은 후 각자 먹은 그릇 정리까지 스스로 잘해요.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어른들이 신도회 활동을 하러 들어가세요. 그러면 학생부들이 함께 아동부 아이들을 돌보며 즐거운 활동을 해요. 함께 종이접기를 하거나 찰흙 놀이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아동부 예배 시간이 되었어요. 먼저 예배 전에 10분간 기도하는데요. 가끔 눈뜨고 장난치는 친구들도 있지만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즐겁게 찬양하고 귀 기울여 하나님 말씀을 들어요. 

    예배후에는 바로 분반활동 시간이 있어요. 배운 말씀을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나눠보는 시간이지요. 

    청주교회 아동부는 <기쁨반, 사랑반, 소망반, 믿음반> 총 4개의 분반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기쁨반은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정으로 출석을 못하는 친구까지 총4명이 있고요. 처음 시작할 땐 기어 다니던 친구도 있었는데 그새 많이 커서 옹알이로 대화를 주고 받아요. 분반 시간에 잠을 자거나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제 역할인 귀여움 담당은 모두 제대로 해내고 있답니다. 

    사랑반은 초1 친구들로 형제2, 자매2 총 4명의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랑반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개성파 친구들이에요.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답니다. 아직은 개구쟁이의 모습이 많이 있지만 조금씩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초2-3 친구들 3명이 모인 소망반입니다. 인원은 가장 적지만 가장 큰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지요. 때론 형님으로 때론 귀여운 동생 역할까지 다방면으로 활약 중인 친구들이에요. 형님 답게 매일 기도, 암송, 성경 읽기를 빼먹지 않으려 노력하는 멋진 친구들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큰 형님반 믿음반 이에요. 믿음반은 초4-5 친구들 5명이 함께 하고 있어요. 아동부의 형님으로서 든든히 예배당 뒷자리를 지키며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예배에 참여한답니다. 하지만 놀 때는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든든하고도 예쁜 아이들 이랍니다. 믿음반은 매주 분반 시간 마다 선생님께서 내주시는 퀴즈를 맞추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말씀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녁 시간을 이용해 아동부 친구들 중 고학년 위주로 기악 찬양 시간이 있습니다. 피아노, 플루트, 실로폰, 첼로, 바이올린으로 함께 찬양을 하는 시간이에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날로 실력이 향상하고 있습니다. 더욱 공교히 아름답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청주교회 아동부의 안식일 모습 잘 보셨나요?^^  

    바쁜 하루지만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왜 안식일을 기다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으로 연합하는 우리 아동부 친구들이 앞으로도 더욱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글쓴이 : 김수미 자매

    글편집 : 박은우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