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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향기] 아동부가 하나님께 올리는 향기 – 암송한마당

    [신앙의 향기] 아동부가 하나님께 올리는 향기 – 암송한마당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말씀의 기쁨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열렸습니다. 바로 아동부 암송 한마당입니다. 이 행사는 남부지역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들이 그동안 정성껏 준비한 말씀 암송과 찬양을 함께 나누는 축제의 자리였습니다.

     

    아동부 암송 한마당은 단순히 암송을 잘하는 아이를 뽑는 행사가 아닙니다. 행사에서 제시된 말씀을 집에서, 교회에서 꾸준히 외우며 준비하고, 그 말씀을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믿음과 용기가 자라나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지만, 또박또박 말씀을 외우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각 교회가 준비한 찬양 발표는 행사의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손을 들고 찬양하며 웃고, 서로의 무대를 응원하는 모습 속에서 아이들은 ‘함께 믿음을 나누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경험했습니다. 소속된 교회는 달랐지만,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동부 암송 한마당을 통해 아이들은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입으로 고백하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하루가 아이들의 신앙 여정 속에 오래도록 남아, 말씀을 사랑하는 씨앗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준비하고 응원해 주신 모든 교사와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행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이들의 믿음이 밝게 자라나는 다음 만남을 소망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교회 행사] 아동부 포인트 행사

    [교회 행사] 아동부 포인트 행사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의 웃음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아동부에 아주 특별한 하루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동부 포인트 행사입니다.

    이 날은 아이들이 그동안 열심히 참여하며 모은 포인트를 직접 사용해 보고,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축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동부들이 모은 포인트는 성경 통독, 예배 출석, 바른 예배 태도, 말씀 암송 등 아이들의 일상적인 신앙 활동 속에서 하나씩 쌓여 왔습니다. 매주 말씀을 읽고, 예배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집중하려 애썼던 작은 실천들이 모여 포인트가 되었고, 그 결과가 이날 환한 미소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 이런 기쁜이 있구나”를 몸으로 느끼며 성취감을 경험했습니다.

      

    이번 포인트 행사에서는 특히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먹거리를 바라보며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설렘으로 가득했고, 계산대 앞에서는 스스로 모은 포인트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친구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웃는 모습, 서로의 선택을 응원해 주는 장면들은 행사장을 따뜻한 에너지로 채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 더 의미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포인트의 숫자보다 그 과정의 즐거움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말씀 외우는 게 재미있었어요”, “예배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라는 말 속에는 한 학기 동안 자라난 아이들의 믿음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동부 포인트 행사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함과 동시에, 신앙 생활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웃음 속에서 믿음을 키워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함께 응원해 주세요. 한 학기 동안 수고한 모든 아이들과 이를 함께 도와주신 교사, 부모님 그리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이 한 문장은 이 간증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입니다.

    이 글은 믿음 안에서의 결혼을 소망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렸던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기도와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결국 한 가정이 믿음 위에 세워지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변화는 빠르지 않았고, 고난은 반복되었지만 간증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함께하고 계셨다고.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여셨고, 결국 기도의 제목이었던 남편은 믿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무너짐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음을 돌아보며, 이 간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늦지 않으시며,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길 위에서

    끝까지 동행하시는 분이시라고.

     

    이 짧지만 깊은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삶에도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바라며, 간증을 소개합니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할수 있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증을 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간증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는 데 어느날 간증동영상을 보게 되고 그 간증을 보면서 아 그래 옛날에 우리 남편도 교회 가는것 보 다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때가 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생각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경추집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때 간증을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하든 제가 하든 상의해서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간증을 보게 하시고 그 간증을 통해 우리 남편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건 아닐까? 란 생각이 들면서 집사님께 간증을 해보겠다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준비하려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함께 나눠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남편을 전도하게 된 일은 예전에 청주교회 50주년 기념호에 있는데 또 얘기를 하는게 맞나? 고민도 되었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오랜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남편을 처음 알게 된 건 고3때입니다 당시 같은 학교였고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하루는 전교생이 강당에서 조회를 하는데 그날 저와 친구 한명이 당번이어서 교실을 지키고 있었고 한참을 교실에 있다가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강당에서 우르르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 수많은 사람중에 딱 한 사람 지금의 남편만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는데 자기랑 친하다며 이름과 몇 반인지 성격이 어떤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듣기만 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가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어떻게 그 사람만 보였을까? 그것도 무슨 아우라가 비췬것 처럼 그렇게 그 사람만 왜 보였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게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반의 대표로 제가 나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남편이 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저에게 친구하고 싶다며 편지를 보내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과인 남편과 문과인 제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저에게 사귀자고 했고 그 당시에 저는 신앙인이 누군가를 사귄다는 건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큰 죄라고 생각을 해서 거절을 했는데 그 일이 상처가 되었는지 그날 이후로 저와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잃었단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앙이 우선이었던 제게 그 일은 후회되지 않았고 대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라신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하실 거죠? 강당에서 나올 때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히 길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시 보게 될까?

    이 사람을 전도하라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시켰습니다. 이방 결혼은 절대 안 된다, 믿음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은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처음 만나는 날 반대를 하려고 맘먹고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렸는데 식당 문을 열고 둘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너무 닮아서 왠지 반대를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지…

    저희 엄마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나와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고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저에게는 이방 결혼은 정말 믿음 지키기 힘들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이사람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방 결혼을 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함께 갈 때 걱정도 많았습니다. 아직 결혼 전이어서 다른 성도님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거부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몰려올 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교회에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들 때문에 자꾸만 망설여지는데 어떡하죠?” 기도를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란 생각이 더 우선이 되었고 남편에게도 교회에 대한 방언에 대한얘기를 미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교회와 다르다. 우리 교회는 성경에 나온 그대로 행하는 교회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 방언 소리가 처음 듣는 사람은 놀랄 수도 있지만 이건 결코 이상한 게 아님을 얘기를 했고 또한 나는 교회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처음 교회 가게 된 남편은 많이 어색해하긴 했지만, 다행히 놀라거나 거부하지는 않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이 되면 자꾸만 친구들 만나러 가려하고 여행을 가는 등 핑계를 대며 때론 저도 교회를 갈 수 없는 상황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제 머릿속에 ‘신앙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을 해선 안 된다는“ 어느 목자님의 설교 말씀이 기억이 났고 나는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교회를 가야 한다. 라고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랑은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 후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는 서울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신앙이 연약했고 세상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신랑은 안식 일이 되면 교회를 가야 하는데 자꾸 핑계되며 안 가려 하고 세상 친구들 직장동료들과의 모임 등을 중시했고 이런 문제들로 자꾸만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인맥도 중요하고 그러려면 술자리만큼 친해지기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신랑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최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형제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오히려 더 사회에서 인정받는 다는 것을 어떡하면 알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주신 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남편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닌데 천국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아직 모르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신랑과 신앙의 문제로 부딪힐 때마다 이방 결혼은 이래서 힘들구나 뼈저리게 느꼈고 나중에 우리 자녀는 꼭 믿음의 가정과 결혼시켜야지 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또한, 아직 신앙이 연약한 남편을 위해 때론 금식기도도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가는 것부터 가 먼저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로 달래듯 저는 남편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안식일 예배 빠지지 않고 가면 사줄께~ 라고 달래서 교회를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교회 갔다 오는 길엔 꼭 이 말들을 했습니다. “ 당신이랑 이렇게 교회 갔다 오니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그리고 평소 집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장 17절 말씀에 의지하여 억지로라도 말씀을, 찬양을 듣게 하려고 청소할 때나 설거지할 때 말씀을 틀어놓거나 찬양을 틀어놓곤 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언젠가는 남편도 서서히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의 바람은 내 믿음이 흔들릴 때 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였습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에 살때 신랑은 세상에 더 많이 속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혼자 울기도 많이 하고 그때 하나님만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정말 그때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우울증이 심하게 오지 않았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은 흘러 둘째가 태어날 때쯤 제가 청주로 내려가자고 신랑을 졸랐습니다. 서울에서 저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남편은 매일 야근에 회식에 늦게 들어오고 혼자 만삭에 큰아이까지 보는게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남편은 세상에 더 빠져버리고 신앙은 멀어지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신앙도 흔들릴 것 같았습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청주에 직장도 없이 무작정 내려와 시댁 어른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을 지키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이때 또다시 왜 이방 결혼은 안 되는건지 왜 그렇게 믿음 안에서 결혼을 하라고 했는지 친정 부모님의 말이 많이 떠올라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내 십자가란 생각으로 정말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이라 저녁때면 일 마치고 오신 시댁 어른들과 신랑은 술자리를 즐겼는데 그 모습을 어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게 저는 참으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수 있는건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 어른들과 술을 마시던 신랑이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고 그날 이후로 ”앞으로 너는 술 마시지 마라“ 라고 하셨고 다시는 술자리를 갖더라고 신랑에겐 술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역시 멋진 우리 하나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아뢸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결혼하고도 십일조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신랑은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굳이 십일조를 해야하느냐, 이런 부분으로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일을 할 수 있었겠어? 당신이 벌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벌 수 있는거야. 그 전부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고 이렇게 감사하며 십 일조를 할 때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주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신랑은 탐탁치 않아 했지만, 청주에서 십일조의 기적을 여러 번 체험하면서 신랑의 마음은 바뀌게 됩니다. 청주로 이사 오고 신랑이 직장을 구하고 첫 월급은 수습이라서 너무나도 금액이 적었습니다. 너무 적은 금액을 십일조 내기 창피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많은 금액을 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 달 십일조 낸 금액만큼 월급이 올랐습니다. 창피하게 생각해서 더 내긴 했지만 이렇게 축복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두 번째 달은 감사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냈는데 신기하게 더 낸 만큼의 월급이 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신랑에게 얘기하면서 신랑도 신기해했고 그 후로는 십일조 하는 것에 더 이상 반감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삶에서 직접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청주로 이사하고 교회를 가는 데 그때 당시 교회는 용정동에 있었습니다. 신랑과 애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데 지금은 안 그래 보이지만 그때 당시 신랑은 낯을 많이 가렸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자마자 한 형제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 신랑이 낯을 많이 가리는데 옆에서 꼭 붙어서 좀 챙겨줄 수 있겠냐고,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형제님은 알겠다며 흔쾌히 대답을 하고 그때부터 밀착케어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하든 같이하자고 하고 어딜 가든 같이 가자고 하고 절대 혼자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절친?이 되었지만, 그 당시 그렇게 매사에 챙긴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힘든 일이겠지요.

    그리고 교회에서도 무슨 행사를 할때면 신랑이 좋아하는 요리경연대회라든가 탁구 등 모든 초점을 신랑에게 맞춰주는 배려와 성도님들의 사랑에 신랑도 서서히 세상 친구들 모임보다 교회 안에서의 활동들, 성도 간의 교제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청주로 내려와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신랑이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고 청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신랑도 성령을 받아서 더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된건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성장시키기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하셨구나 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때때로 제가 믿음 없는 말을 할 때면 신랑은 오히려 저를 깨우쳐 주는 동역자가 되어있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길 바랐던 저의 바람을 하나님께선 기억하시고 이뤄주셨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가게를 운영하다가 폐업하게 된 일, 우유 판촉 일을 하면서 비바람을 맞았던 일, 사기를 당해서 돈을 날렸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려합니다.

    신랑과 함께 죽 가게를 했었는데 병원 검진 손님들을 상대로 운영을 하다 보니 안식일 오전 예배 참석을 할 수 없었고 안식일을 못 지키는 것에 계속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꿈에서 우리 가게 앞 도로에 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모든 가게들이 무너지고 우리 가게도 무너지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너진 잔해 속에 작은 빛이 보이고 그 빛이 보호막처럼 신랑과 제가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꿈이 대체 무슨 꿈일까?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계속 그 꿈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않아 저희 가게는 병원 검진 손님들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병원에서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식당까지 운영을 하게 되고 더 이상 검진 손님을 우리 가게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함께 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어버리니 저희 가게는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게 권리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많은 피해를 입으며 정리를하게 되는데 그 당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담임 목자님께 기도 부탁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에 꾸었던 그 꿈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다 무너졌지만, 우리를 보호하던 그 빛이 생각 이 나면서 빛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거란 확신이 들면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참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안식일을 우리가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켜야겠단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직장을 구할 땐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지가 제일 일 순위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며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오거나 할때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고 내가 생각지 못하는 방법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완벽한 때에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을 하는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수많은 날들 속에 평안한 삶만 있었다면 과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고난을 통해 남편은 옛사람의 모습들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관들을 버릴 수 있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이 제일이란 생각을 갖게 했으므로 지금은 그 고난이 감사하단 생각이듭니다.

    내가 걸어온 길 길고도 짧은 길

    내 힘으로 걸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주님 나와 동행하심이라며

    때론 험한 길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때론 가시밭길에서 고난을 당하나

    주님 동행하시니 나는 두려움 없네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동행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 삶에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남편이 구원을 받았고 신앙이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자녀 또한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온전한 신앙의 집을 잘 세우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복음 메세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눅 12:32)

    [복음 메세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눅 12:32)

    [말씀 제목]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눅 12:3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11.22

    분당교회 즉 전 성남 기도소에 첫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인테리어 작업을 집사람과 직접했다. 전기톱을 빌려서 계단 하나 높이만한 단을 직접 제단했고 그 위에 붉은 색 융으로 덮었다. 벽면 페인트 칠을 하고 자모 예배실 창문 썬팅 작업도 했다. 그렇게 인테리어 작업을 마친 후 첫 안식일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왜냐하면 안식일 오전 예배에 참석할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 한분, 그리고 아기엄마 둘이었다. 게다가 정자동 할머니가 혼자 버스를 타고 40분이나 걸려서 하차한 후 교회까지 걸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갓난 아기를 막 출산한 두 자매도 아기를 안고 버스를 타고 교회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모든 형제들은 모두 직장에 매여 있었다. 그러니 참석자가 없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금요일 오후까지 예배 준비를 모두 마쳤고 안식일 오전이 밝았다. 그렇게 우리 내외, 할머니, 두 자매와 두 아기 그렇게 7명으로 전세 얻은 회당에서 안식일 오전 첫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예배 인원은 15명이 되었고 수세자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수세자는 박지영 문지혜 자매와 백소영 어린이 백하영 아기 최종민 아기 이렇게 다섯 사람이었다.

    그 과거를 회상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숫자에 관심이 많고 연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현재 눈에 보이는 것에 굴복하고 사는가? 아니면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당한 눈일까? 오늘은 제자들에게 주셨던 예수님의 말씀 중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라는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평가할 때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의견을 수용하고 소수의 의견은 버린다. 이렇게 다수의 의견에 의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한다.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 태어나 그것에 익숙한 우리는 그것에 매우 친숙하다. 그런데 이 성향은 종교를 선택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이 다니는 교회, 다수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사상을 따르려고 한다. 그러나 종교를 선택하고 진리를 분별하는 일에는 과연 그것이 합당한 기준인가? 그렇지 않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다수결의 맹점이 발견된다. 20세기까지 지구상의 절반의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현혹되어 공산주의 국가체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붕괴와 함께 그 사상은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렇게 다수의 사람들이 좇았지만 그것은 허상이고 합당치 않은 것이라는 점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또 중세 역사 속에 마녀사냥이 있었다. 유럽의 종교전쟁과 30년 전쟁, 그리고 페스트에 의한 팬데믹 기간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그 원인을 생각했다. 도대체 이 많은 재난과 재앙의 원인이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 원인이 마법사, 마녀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재난과 재앙이 임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미신적 결론에 도달한 결과는 암울했다. 죄없는 양민을 마법사나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했다. 소위 이것이 마녀사냥이다. 이 마녀사냥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와 기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매한 다수의 편견이 만들어낸 범죄의 역사였다.

    그런가하면 과학의 영역에도 다수결의 폐단이 있었다.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시대에 천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망원경으로 열심히 천체를 관찰하던 그는 태양과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자를 천동설, 후자를 지동설이라고 한다. 지금은 지동설이 당연한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지동설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된다. 지동설을 주장하고 죽을 것이냐 철회하고 살 것이냐의 기로에서 그는 지동설을 철회하고 목숨은 구했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물러나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현대에 와서는 천동설을 믿는 바보는 아무도 없다. 이처럼 과학적 진리의 분별에도 우매한 다수의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 속에 오히려 다수가 미신에 빠져 범죄하고 다수가 우매한 결론에 도달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별다르지 않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보시며 한탄하셨다. 그래서 부패한 인류를 물로 멸망시키고자 하셨다. 이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겨우 여덟 명이라’ 대단히 적은 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노아 홍수 시대에 절대 다수의 인류는 멸망하고 소수만 구원을 받은 성경의 역사가 있다.

    또 분열왕국 시대 아합 왕의 통치기에 이르러 유사한 사례를 발견한다. 당시 왕과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만 섬기는 신앙을 떠나 다른 이방 신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진다. 왕국이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그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신앙 회복을 위해 갈멜산에서 다수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한다.

    (왕상 18: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사백오십 인과 한 사람, 절대 다수와 절대소수가 대조되고 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울 선지자 사백오십에 아스다롯 숭배자 사백인을 합해 총 팔백 오십 인과 대결한다. 그 대결에서 승리하고 우상 숭배한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이처럼 세상의 인류 역사 속에서도 또 성경의 역사 속에서도 우매한 다수가 얼마나 악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다수가 아닌 소수의 분별과 선택이 진리인 경우를 본다. 그렇다고 소수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그렇지 않다. 다수가 진리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듯이 소수도 진리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초점은 수적인 규모가 진리와 거짓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진리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진리란 시대를 초월해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듯이 진리를 시대를 초월해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진리의 기준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은 구원과 멸망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따라서 거짓과 진리의 기준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종종 복음을 전할 때 이런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들이 전하는 세례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안식일에 대해서 모두 성경과 일치하는 진리인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기독교회와 교인들이 다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까?” 이 의문에는 두 개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라는 것을 안다. 반면 이미 익숙한 다수결의 원리가 기준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충돌할 때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저는 장로교회에서 본교회로 개종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이런 고민의 상황에 처한다면 어디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바울 사도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이다. 그에게도 마음 속에 그러한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 가운데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에서 바울은 한 가지 난제가 있었다. 그 난제로 고민했다. 그 고민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함받은 백성인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왜 그들은 그분을 거절했는가였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선민으로 택하셨는데 메시야를 거절했으니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는 것이 명확하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 속에 이런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 유대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헛된 것인가? 모두 거짓말인가?” 바울의 결론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럴 리 없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남은 자에서 답을 찾아냈다.

    (사 10:20-21)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남은 자란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자들, 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본토로 돌아온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바울 사도는 이사야서에 기록된 ‘남은 자’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마치 구약 시대에 그 남은 자가 있었듯이 사도시대에도 대부분의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지만 소수의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 소수의 유대인들이 바로 사도시대의 ‘남은 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오늘날에도 역시 유효하다. 엘리야 선지자 시대의 남은 자처럼, 바울 사도 시대의 남은 자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 복음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자들이 바로 이 시대의 남은 자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시대의 세례, 사도시대의 성령, 사도시대의 안식일이라는 진리를 붙들고 있는 우리가 오늘 이 시대의 남은 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은 바로 내가 이 시대에 남은 자라는 의식이 있는가?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참예수교회는 척박한 가나안 땅처럼 보인다. 소수이고 결핍되고 풍요롭지 않다. 그러나 살아계신 성령이 계시고, 진리의 말씀이 있고, 신도들의 순수한 삶의 모습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소유요 재산이다. 그 소유와 재산의 가치를 깨닫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물을 살랐을 뿐 아니라 칼로 그 우상숭배의 선지자들을 다 죽였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 선지자의 이런 비관과 절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왕상 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야의 눈에는 갈멜산의 승리 뒤에 세상에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합왕이 재를 뒤집어 쓰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도 않았다. 백성들이 우상을 다 불태우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왕후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엘리야는 이런 상황을 놓고 크게 실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만 남았으니 죽여달라고 했다. 극도의 비관과 절망을 토로한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은 엘리야의 눈에 발견되지 않는 칠천인의 존재를 말씀하셨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 시대의 이 사건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렇게 인용한다.

    (롬 11:3-5)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바울사도는 엘리야 시대에 겉으로는 엘리야 선지자 하나만 남은 것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이 칠천을 남기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 수가 많건 적건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바울 사도가 구약 역사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그렇다면 오늘날 참예수교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해석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세계 인구의 0.25%인 천 이백 만 밖에 안된다. 그러나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45%가 바로 그들이다. 미국 백대 부호 중에 20%가 유대인이다.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좌지우지하는 민족이 바로 이 소수의 유대민족이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육적인 이스라엘도 이러하나 영적인 이스라엘인 참예수교회도 육적인 눈으로 볼 때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지구상의 70억 인구 중에서 60여만 명은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비율이다. 절대 소수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인류사의 끝에 있는 남은 자들이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신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진리는 소수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없어지거나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은 자로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살아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 성도님들은 말세의 남은 자로 선택되었다. 엘리야 시대에 남은 자처럼, 사도 시대에 남은 자처럼, 하나님은 말세의 남은 자인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이 뜻을 이루실 것이다. 그 믿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세우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WxgvNVHMhKU?si=a0TpuieHnMB_2G-W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말씀제목]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9월 6일 안식일 오전 예배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혼인 건수가 10년간 크게 줄었고,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논점들을 다뤄보겠습니다. 

    • 결혼의 성경적 기초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좋았으나, 아담 하나만 지었을 때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면 후일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이것은 ‘믿음에서 떠난 말’이자 ‘미혹케 하는 영의 가르침’이라고 단호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거룩함은 결혼을 안 하거나 특정 음식을 피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성경적 이유

    1.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말2:15) : 아담에게 배필을 만들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만드실 수 있지만 딱 한 명의 하와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일부일처제 결혼으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 안에서 맺어진 부부를 통해 경건한 자손을 잇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기 위함(벧전3:7) : 부부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동반자입니다. 한 겹 줄보다 두 겹 줄이 강하듯이 믿음의 가정은 천국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강력한 두 겹 줄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의 결혼을 통해 이 유업을 함께 받고, 부부가 함께하며 믿음의 자녀를 낳아 생명의 은혜를 이어갑니다.
    3.  음행에 빠지지 않기 위함(고전7:1-2) : 바울 사도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금욕으로만 거룩해진다는 주장과 여러 이성을 가까이 해도 된다는 의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을 통해 정욕을 다스리고 음행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기 위함(엡5:31-32) :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많이 비유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혼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가정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참된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함(시128:1-4) : 수고한 대로 먹고,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일시적 쾌락이 아닌 참된 사랑의 기쁨을 가정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5-6절처럼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예루살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원칙과 교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하나님의 주례사와 같은 이 말씀을 보면 결혼에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를 떠나(경제적·심리적 독립의 준비가 됨), 둘째 연합하여(사랑의 결합), 셋째 한 몸을 이룹니다(육체적 결합).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먼저 한 몸부터 이루고, 맞으면 연합하고, 나중에 결혼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7-9) 

    바울은 주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이었습니다. 독신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굳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못하고, 절제하지 못할 것 같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셨습니다. 태생적 고자나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자(바울처럼)만 독신이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마19:10-12)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중한 제도입니다. 만약 인간의 욕망 때문에 침소를 더럽히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제도를 통해서 서로를 위하는 돕는 배필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을 누리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할렐루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형제자매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교회에서 온 Mercedes Lai, 세디스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2개 학기 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올해 6월, 저는 뉴캐슬 교회의 자매 4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대만에서 열리는 IYF에 참석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금요일 밤 예배는 강남교회에서, 안식일은 동부교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처음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성도님들을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도 계속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부터 매주 RE(종교교육) 수업을 들었고, 매년 열리는 전국 학생 영은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16년, 처음 참석했던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에든버러 교회였고, 뉴캐슬 학생들이 모두 금식을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뉴캐슬 형제자매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저와 두 형제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을 때, 저는 너무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들이 함께 울며 기뻐해주던 따뜻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신앙 여정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때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그때가 제 신앙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환경 속에서 제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였던 저는 세상도 교회도 잘 알지 못한 순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때, 집중도 안 되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으로 느껴지면서 제 믿음은 약해져 갔습니다. 2022년에는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단부터 임종까지, 저는 제 자신과도 멀어졌고 정작 하나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시기 이후, 저는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마음속엔 설명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구름’처럼 남아 믿음을 막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교회 성도들과도 멀어졌고, 여러 감정이 겹쳐져 신앙은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힘들어졌고, 의무감 때문에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제 부족한 믿음을 보고 혹시 누가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도 저는 ‘가야 하니까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온 이후에는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찾고, 흐려진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전처럼 불안함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요. 그래도 동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교회가 제 신앙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지내다가, 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교회에 오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과 통역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도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고, 뉴캐슬 교회와 달리 동부교회에 또래 청년이 적다 보니 처음엔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성도님들의 친절과 사랑을 감사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어렵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또 기도 가운데서도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들리는 방언기도의 익숙한 소리는 제 마음에 큰 평안을 줍니다.

    동부교회에서 가장 감사한 기억 중 하나는 성도님들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매주 직접 준비해 주시는 따뜻한 한국 가정식을 먹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기회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봄 학기에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봄 학기가 되면 다시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 간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려진 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길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세디스 드림

    세디스 자매가 6월에 친구들과 동부교회 방문하여 청년부와 찍은 사진.  앞줄 맨 오른쪽에서 네번째 자매가 세디스 자매입니다. 

  • [기관 소개] 안양교회 온라인 소식지  사역팀을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안양교회 온라인 소식지 <소금처럼> 사역팀을 소개합니다!

    <소금처럼>은 분기별로 발행되는 온라인 소식지로서, 이번 겨울호로 제14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말세에 참교회를 알리고 교회 간의 정보를 교류하며 신앙의 전승도구로 쓰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총회 주도로 각 교회 사역팀이 세워졌습니다. 복음 메시지를 중심으로 기관과 성도 소개, 간증, 교회 행사, 신앙의 향기 등 다양한 내용을 온라인 소식지 형태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안양교회 사역팀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매 호를 발행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기록자와 편집자 두 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두 명이 새롭게 충원되어 제법 규모를 갖춘 팀이 되었습니다. 기록자는 원고를 작성해 TJC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편집자는 ‘미리캔버스’를 활용해 디자인 편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획과 섭외, 홍보 등은 모든 팀원이 함께 협력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소식지 제작이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안양교회 성도님들께서 은혜로운 간증을 기꺼이 나눠 주시고, 때로는 저희의 부담스러운 요청에도 성심성의껏 응해 주시며 <소금처럼>을 응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소금처럼> 사역팀은 안양 교회의 귀한 복음과 은혜, 그리고 성도 간의 사랑 어린 교제의 모습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금처럼>이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우는 일에 작은 힘이 되고, 영혼 구원의 도구로 아름답게 쓰이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안양교회 <소금처럼>의 사역자들의 짧은 인터뷰를 담아 보았습니다.

    Q.〈소금처럼〉 창간부터 함께하신 백현 자매님(기록자), 이번 겨울호를 끝으로 사역을 마무리하시게 되었는데요. 그동안의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A. 네, 힘이 들기도 했지만 뿌듯함과 감사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동안 〈소금처럼〉을 통해 안양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담고 싶었는데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7) 말씀처럼요. <소금처럼>의 작은 노력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다른 성도에게는 작은 도전과 위로가, 또 구도자들에게는 하나님과 참교회를 알아가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멋진 편집은 물론 아이디어와 열정이 많은 다은 자매님(편집자), 소금처럼 제작에 참여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A.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조금 바꿔 말하면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더 잘 보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식지를 만들려면 교회의 여러 성도님들을 만나 글감을 모아야 하고, 애정을 담아 교회와 성도님들을 소개해야 하죠! 그래서 <소금처럼> 제작은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 자리이자, 동시에 사랑의 은혜를 받는 자리입니다. 덕분에 교회와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진 것이 가장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Q. 최근 합류한 성실한 능력자 소희 자매님(편집자), 성도님들께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소금처럼 팀에 합류한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저는 편집과 사진 촬영을 맡고 있는데요, 소식지를 제작하면서 안양교회를 비롯하여 참예수교회에 부어주시는 크신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소식지 제작이 어려워 발행하지 못하는 교회도 있지만 <소금처럼>을 통해 많은 교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교회와 다른 교회의 소식지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게 되고, 비록 다른 곳에 있으나 주 안에서 하나임을 느끼게 됩니다. 성도님들께서 소금처럼 소식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하나님을 전하는 통로로도 활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Q. 내년부터 함께 할 새로운 기대주, 준희 형제님(기록자), 벌써 지난 가을호부터 소금처럼 제작에 참여해 보셨는데 어떠셨나요?

    A. 지난 가을호 중에는 성령을 받은 학생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현재 학생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데,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과 받은 은혜를 질문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또한 성령을 주심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이 더 하나님을 향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소식을 나누는데 동참하는 은혜를 저에게 주심이 감사했습니다. 글을 작성하는 게 아직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긴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한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나가고 싶습니다. 동역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우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Q. 새해부터 <소금처럼>을 든든하게 이끌어 주실 재웅 형제님(기록자), 앞으로 소금처럼이 어떤 소식지가 되기를 바라실까요?

    A.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소금처럼>은 이 귀한 말씀을 따라, 우리 교회가 서로를 세우며 하나 되어 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소식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세상 가운데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나누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말씀 가운데 누리는 감격과 은혜,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쁨, 그리고 성도와 이웃을 향한 따뜻한 섬김과 봉사의 실천을 진솔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우리의 일상과 신앙의 열심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이 ‘소금처럼’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는 순종의 흔적이 우리 안에서는 서로를 격려하고 믿음을 더욱 세우는 힘이 되고, 밖으로는 복음의 향기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금처럼> 사역팀과 함께 

    글| 백현 자매

  • [성도 소개] 전도되어 세례, 성령을 받은 김*솔 아동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전도되어 세례, 성령을 받은 김*솔 아동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2025년 9월 세례를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김*솔 아동을 소개합니다!

    1.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석수 초등학교 2학년 2반 3번 김*솔입니다. 저는 ‘멍뭉이’라는 인형을 좋아하고 토끼랑 고양이를 좋아해요. 그리고 찬양도 좋아해서 매일매일 불러요.

    2.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나요?

    이전에 일반교회를 한 번 갔었는데 뭘 하는데인지는 몰랐어요. 그러다 7살(2023년) 겨울에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수현이가 친구초청예배에 초대했어요. 초대장을 받았으니까 나왔어요.

    <*솔이가 처음 교회에 온 날>

    3. 교회에 다니면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나요?

    8살에 말씀을 들으면서 세례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례랑 성령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 *솔이가 만난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아주 사랑이 많고 다정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는 찬양 중에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내 작은 가슴에 솟아나는 이 기쁨~ 감출 수 없어 나 찬양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놀라운 사랑~’할 때 예수님의 사랑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처음에 왔을 때 ‘주님의 사랑이 넘쳐넘쳐’라고 축복 찬양을 해줬을 때도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5. 성령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해주세요.

    작년 여름성경학교 때 처음에 성령 감동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받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어요. 그런데 목자님께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성령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성령을 주셨어요.

    <*솔이의 수령 축하>

    6. 성령을 받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교회에 오는 게 힘든 마음이 있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는 교회 오는 게 너무 좋아졌어요. 또 아동부 분반 예배를 드릴 때 졸리면 참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는데 이제는 졸려도 참고 예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졸지 않고 열심히 예배드리려고 해요. 그리고 이전에는 보통 2분 기도하고 집중하면 3분 기도했는데 이제는 10분도 기도할 수 있어요.

    7.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나요?

    지난주에도 친구에게 질투심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좋아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꼈는데, 하나님이 해주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8. 앞으로 *솔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녀로 자라고 싶나요?

    용기있는 자녀가 되고 싶어요. 지난번 영은회에서 발표 찬양을 할 때 연습을 많이 못 해서 자신감이 없어서 작게 찬양했는데, 다음에는 큰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싶어요.

    *솔이는 올해 5월에 성령을 받고, 9월에 세례를 받은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큰 목소리로 힘차게 찬양하고 아직은 어렵고 힘들 수 있는 예배와 기도에 힘을 쓰고 있는 *솔이를 무척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솔이가 아직은 어리지만 하나님과 사람들 보기에 사랑스럽게 자라나고 믿음이 든든히 설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많은 사랑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인터뷰 진행| 오다은 자매

  • [교회행사] 2025년 전남연합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교회행사] 2025년 전남연합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할렐루야~ 광주 교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025년 8월 2일 토요일부터 8월 3일 일요일까지 전남연합 아동부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어요”라는 주제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고, 아브라함이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나아갔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광주교회 4명, 광양교회 2명, 목포교회 3명의 아이들이 참석했고,

    광주교회 교사 8명, 목포교회 교사 7명이 섬겨주셨습니다.

     

    고학년은 순종반, 저학년은 약속반, 유치부는 믿음반으로 3개의 반으로 나누어서 진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즐겁게 찬양하고, 말씀 배우고, 기도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무사히 일정 치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에서도 특별한 일정은 천로역정 시간이었습니다.

    시작하는 방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는 과정을 듣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갈대아 우르 방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길을 걸어갔던 과정을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으로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의 기도 두 개의 방으로 아이들이 나누어져서 진행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방에서는 롯이 겪었던 고난을 겪고, 아브라함의 기도 방에서는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모리아 산 방에서 진실한 양을 다같이 찾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예배당에 함께 둘러앉아서 자신의 죄를 나뭇조각에 새겨 넣고 번제단에 쌓아보면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날에 폐회를 마치고 다같이 물놀이를 갔습니다! 여름성경학교 하는 시간동안 열심히 배웠던 친구들과 교사들이 함께 어울리며 정말 즐거운 물놀이를 했습니다.

    모든 과정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배운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계속 믿음 안에서 자라가면서 하나님께 언제라도 쓰임 받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 [기관소개] 동부교회 총무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동부교회 총무부를 소개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숨은 엔진!”  총무부는 마치 집안의 살림꾼처럼, 교회가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조용히, 꼼꼼히, 그리고 땀나게(!) 움직이는 부서입니다. 혹시 예배당이 늘 깨끗하고, 냉난방이 적절하고, 소모품이 떨어지지 않고, 주차가 편하셨던 적 있으신가요? 그건 바로 총무부의 은밀한(!) 활약 덕분입니다 😊

    총무부는 이런 일을 해요!

    🖇️ 행정팀 – “기록하고,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신도명부, 출석부, 교적 관리부터 회의록, 공문, 각종 대장, 도장까지!  모든 일은 질서 있게! 정확하게! 아름답게!  접대, 구제·경조사까지 챙기는 부서!  어려운 이웃에게도 잊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건넵니다 💝

    🔧 시설팀 – “보이지 않게, 그러나 정~말 많이 움직입니다!” 건물 점검, 청소, 정수기, 냉난방, 방송, 창고, 차량, 문단속… 대청소부터 화재보험까지, 교회 구석구석을 책임집니다. 혹시 깜빡 물건을 두고 가셨는데도 멀쩡히 돌아온 적 있으신가요? 네, 그것도 총무부의 문단속 덕분입니다😉

     한 해 이렇게 움직입니다!

    봄에는 대청소, 소방, 차량 점검!  여름에는 장마대비 점검, 냉방 점검, 차량 보험 갱신!  가을에는 영은회 준비, 교회 달력 주문! 겨울에는 난방 점검, 정화조 청소,  각종 문서, 신도명부 재정비, 비품현황, 업무 인수인계까지! 한마디로, 총무부는 사계절 내내 바쁩니다!

    👥 그럼, 총무부 임원 두분을 소개합니다!

    김동욱 형제님 – 행정관리팀 총책임자!

    이현복 형제님 – 시설관리팀 총책임자!

    ✨ 그리고 한 가지 더!

    혹시 아셨나요? 동부교회의 모든 성도님들도 총무부의 일원이라는 사실! 동부교회는 “1인 1사역”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특히 총무부 사역은 임원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광대한(?) 사역인데요.  아동부에서부터, 청년부,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전성도님들이 화장실, 예배당, 계단, 주방, 마당 청소와 분리수거, 시설 관리까지 정성껏 섬기고 계십니다. 그래서 동부교회 전체가 곧 총무부입니다! 👏👏

    💌 총무부의 마음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모든 성도들이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총무부는 늘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열정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총무부 임원들과 모든 봉사자분들께 한 번쯤 “고생 많으세요~!”  한마디 건네주신다면… 그 날 하루는 몸무게 많이 나가는 두 총무님들도 훨~훨~날아다닐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