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news_ay

  • [성도 소개] 대학 새내기 오다*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대학 새내기 오다*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올해 대학 새내기이자 <소금처럼> 편집자로 봉사하게 된 오다*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맡겨진 일에 열정을 다하는 자매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Q1. 대학 입학을 축하하며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바라왔던 순간이 성인이 되는 거였는데,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대학생이 된 것이 감회가 새로운 것 같아요. 고등학생 시절에 비해 더 많은 자유와 동시에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니, 자유로부터 오는 설렘과 동시에 이제는 가볍지만은 않은, 그러니까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은 20살이 되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칭호지만, ‘어른’은 경험과 이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를 갖춰야 얻을 수 있는 칭호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기 위해 머리로만 알지 말고 더 많이 경험하고, 그로부터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목표를 세워봤습니다. 일단은 이게 목표인데, 이를 이루기 위한 계획은 너무 많아서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웃음)

    Q2. 지난 고3 겨울방학은 총회 행사가 줄지어 있었죠?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유익한 시간도 되었을 것 같은데, 어땠었나요?

    정말 많은 행사였죠. 참여한 행사명만 읊어보자면, 12월에 있던 대학부영은회, 1월 1일부터 시작한 단기신학, 고3수련회, 학생부 영은회 그리고 2월에 교사훈련학교가 있는데요. 이 행사가 끝이 나니 겨울이 다 지나 봄이 왔더군요.

    사실 각 행사의 주안점이 달라서 행사에 따라 소감도 전부 다른데, 공통된 소감과 제게 특별했던 행사의 소감만 조금 자세하게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공통된 소감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교회에서요. 또래들, 같은 신앙 안에 있는 믿음의 선배들 후배들과 교제를 하면서 하루 종일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육체의 피곤함이 아닌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소망이더라고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축복된 시간을 원래 죄인 되었던 제게 허락해주심에 감사했고 천국을 이 땅에 이루어 주심에 참 감사했습니다.

    이 외에 개인적으로 더 많은 것을 느꼈던 것은 단기신학과 고3 수련회였는데요. 단기신학에서는 내가 머리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진정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는 것,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3 수련회에서는 그 연장선상으로 삶의 현장에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반대되는 면모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덕분에 제 영성이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영석 목자님께서 진정한 은혜는 죄인임을 알게 하시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따르면 저는 이 두 행사에서 가장 값진 은혜를 얻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Q3.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고등학교 수험 생활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간 수시와 정시를 모두 준비하면서, 두 가지 내용을 꼭 믿으려고 했고 세 가지를 꼭 실천하려고 했는데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이것들을 소개해 볼게요.

    먼저 믿으려고 노력했던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내게 가장 선한 방향대로 일하신다는 거였어요. 많은 사람들은 과정에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못할 때 쓰린 속을 달래며 단지 어쩔 수 없지 하며 넘어가죠. 그러나 저는 신앙인이라면 체념적 태도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역사할지는 모르나 결국에는 내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역사할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나쁜 결과가 나오면 인간적인 마음에 서운했지만 그 때에는 먼저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있는지 점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기에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는 수용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객관적으로 점검해도 내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이 되면 기도하고 주님의 위로를 구하면서, 이 모든 일은 주께서 내게 가장 선한 방향대로 일하시는 과정 중에 있음을 믿으려고 했어요.

    두 번째로는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어요. 제 생각에 공부를 필사적으로 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그렇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필사적인 공부가 모호하다면 예를 들어 볼게요. 제 주변에는 끼니를 두 끼씩 굶거나 커피를 씹으며 밤을 새서 필사적으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요, 이 정도가 필사적인 공부가 되겠죠. 때로는 저 또한 막연한 불안함에 나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간절히 공부해야 하나 생각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쓰는 시간이 가끔은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단이 준 것이며, 내 정체성으로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학생보다 그리스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며 교회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대신에, 교회에 있지 않는 기간 동안에는 최대한 효율을 발휘해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지런히 하지 않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공부는 열심히, 부지런히 했지만 공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이것이 또 하나의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경계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의미예요.

    세 가지 실천 사항 중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거였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잠이 많아서 새벽 일어나 기도하기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책으로 아침에 등교 후 아침 자습시간에 조용한 공간을 물색하여 거기서 학생부 밴드에 올라오는 매일 양식을 읽고 묵상하고, 10분간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수험생활이라는 환경에서 말씀과 기도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유지되기는커녕 뒷걸음치기 십상이거든요. 따라서 필사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공부도 그 무엇도 아닌 말씀묵상과 기도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요. 고3은 수험기간이기도 하지만, 학생부 그리고 아동부 내에 수많은 동생들을 두게 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동생들의 기준이 보통 연장자에게 맞춰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3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보다 넓은 시야에서 생각했을 때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3을 시작할 때 고3이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예배 드려야 하고, 매일 말씀을 읽어야 하고, 매일 기도를 하며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줄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공동체를 생각하는 더 큰 책임감이 신앙생활에도 수험생활에도 동기가 되어 그 기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4. 네, 신앙적으로 잘 키우신 다은 자매님의 부모님들이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신앙적 영향을 받았을까요?

    저는 부모님의 삶과 살아가는 동안 내리신 믿음의 선택들,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면서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며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임을 느낄 수 있었어요.

    부모님께서는 결혼을 할 때도 외모나 경제력 등 다른 외적인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믿음 안에서의 중매결혼으로 결혼하셨어요.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그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우선하여 선택하셨고, 이사를 갈 때에도 교회와 가까울 것을 가장 큰 조건으로 삼아 이사를 결정하셨고요. 가정에서는 좋은 부모로서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훈육하시고 어렸을 적에는 온 가족이 모여 성경을 읽고, 좀 더 컸을 때에는 둘씩 성경을 읽었으며, 지금은 온 가족이 일요일에 가정예배를 드리며 가정이 작은 교회로 설 수 있도록 힘쓰셨어요. 그리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아낌없이 교사로, 임원으로, 성직자로 헌신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다 보니까 저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같은 삶을 살면 아쉬움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자연스레 성경과 기도는 매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선택의 우선은 하나님이 되어야 하며, 교회에서 때가 되면 그리고 맡기신다면 마땅히 크든 작든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이삭과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부모님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 된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5. 하나님께 받은 재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교회를 위해 어떤 봉사를 하고 싶나요?

    음, 과분하게도 이미 교회에서 받은 직분들이 있어서 그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먼저 피아노를 조금 칠 줄 알아서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는데 교사훈련학교에서 말씀하시기를 기초 실력을 길러서 반주를 하는 동시에 나도 예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아직 그 단계는 못 되어서 반주를 하면서 예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더 훈련을 하면서 앞으로도 쭉 반주자로 봉사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소금처럼> 편집자로서도 봉사하고 있는데요. 원래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교회에 디자인이 필요할 때마다 봉사하고 있었는데, 이를 좋게 보셔서 <소금처럼>을 정기적으로 디자인하는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소금처럼> 말고도 앞으로도 교회에서 종종 디자인 은사를 요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또 아동부 인턴교사로 봉사하고 있기도 해요. 아동부 친구들을 보면 아직 저렇게 어린데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조그만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말이 나올 때면 교사로서 책임감을 다지게 되더라고요. 또 이전에는 교사의 입장이 아니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교사 분들의 예배를 준비하는 노고와 역량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더 열심히 배우고 성장해서 내년에는 정식교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좋은 교사가 되는 게 올해 목표예요.

    그리고 영상 편집에 관심이 있어 요즘 독학으로 조금 공부하고 있는데 우연히 총회에서 영상 편집자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아직은 서툴지만 이후 영상편집 실력이 쓸 만하게 된다면 지교회에서든, 총회에서든 영상편집 관련해서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Q6. 끝으로 올해 <소금처럼> 편집자로서 교회에 봉사하게 되었는데요, 앞으로의 다짐 부탁드립니다.

    <소금처럼>을 편집하는 일 또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잖아요. <소금처럼>을 통해 당장 오늘 전도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일이 분명히,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안에 이루어짐을 믿거든요.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진리와 참예수교회를 알릴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고 고민하며, 이후 천국에서 주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수 있도록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앙적인 마인드는 물론 열정과 은사가 많은 다* 자매님의 앞으로의 모습이 참 기대되는데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이자 안양교회의 든든한 일꾼으로 잘 성장해 주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 [성도 간증]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구원

    [성도 간증]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구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27:1)”

    ◊ 안양 참예수교회로 전도

    저의 엄마는 30년 동안 잃은 양이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장로교회를 다니며 엄마는 교회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으시냐고 했을 때 엄마는 교회를 다니게 된다면 어릴 적 다니던 참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주변에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아무데나 가면 되지 왜 꼭 참예수교회를 고집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제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암에 걸리시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으셨습니다. 마침 외삼촌댁이 안양에 정착하시고 안양에 교회가 세워 지면서 엄마는 서울에서 2시간여를 전철을 타시고 안양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엄마는 믿음을 회복해 가시며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제가 곁에서 보기에도 신기하고 참예수교회에는 뭔가 있나 보다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경기도 시흥에 살며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가 다니고 계신 교회에 가보자고 계속 저를 권면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교회를 다니기는 하였으나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그저 일요일에만 문화생활처럼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으나 성경적 지식도 없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막연히 계시겠거니 생각만 했지 신앙생활이나 믿음에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과 어머니는 이왕 교회 다니려면 참 진리가 있는 곳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며 참예수교회에 나가자고 권면 하시고 안식일 마다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저는 그때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남편은 주말에 쉬는 직장이 아니어서 첫째 아이와 함께 몇 번 안양 참예수 교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 전 저는 참예수교회에만 진리가 있다는 말씀에 교회가 다 똑같지 무슨 여기에만 진리가 있겠는가 하며 속으로 반문하였고, 방언 기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기도시간에 기도하시는 성도 분들이 몹시도 낯설고 이상했습니다. 이야기 나눌 때는 모두 친절하시고 평범하신데 기도하는 모습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모르던 그때 저는 기도시간마다 무척 적응하기 어려웠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한동안 토요일에는 안양교회를 나가고, 일요일에는 일반교회에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교회를 두 군데에 걸쳐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참예수교회가 진리가 있는 교회라고 하는데 그럼 하나님께서 제가 참예수교회에 다니도록 인도해 보세요 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둘째딸을 출산하였습니다.

    뜻하지 않은 시련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는 딸이어서 너무 기뻤고 임신기간 동안 정상이라는 소견을 듣고 무사히 출산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얼굴이 어딘가 달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변의 반응도 그렇고 남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태어난 아기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원하였습니다. 그렇게 20여일이 지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남편에게 주변 반응과 아기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마음 단단히 먹고 지금부터 내 얘기를 잘 들으라 하면서 우리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기의 지능이 낮고 발달장애와 신체 합병증도 여러 가지 생길 수 있으며 오래 살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도 믿고 싶지 않아 큰 병원에 검사의뢰는 해놓았고 같이 가서 검사를 해보자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아픔이고 절망감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울 용기도 자신도 없었고 지금의 상황이 너무 무서워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며칠 후 유 바나바 목자님께서 저희 집에 심방을 오셨고 목자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으실 거라는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계획을 세우셨을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아기가 다운증후군이 아닌 그보다 증상이 덜한 모자이크증후군만이라도 되게 해 주세요” 라며 기도하였습니다. 아기를 볼 때 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가 자책하게 되고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온갖 안 좋은 내용들만 있어서 수십 번 마음이 무너지곤 하였습니다. 검사 결과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고 그해 가을은 정말 저와 남편에게는 너무나 아픈 계절이었습니다.

    광주에서의 신앙생활

    너무나 힘들어하는 저에게 남편은 환경도 바꾸고 아기가 자라면서 재활도 하고 병원 가야할 일도 종종 생길 수 있으니 광주로 이사를 가서 친구가 소개해 주는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직장을 다니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둘째를 낳고 3개월 후에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세례도 받지 않고 저희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안타까워하시며 광주에도 참예수교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고 당시 김한길 목자님께 저희 가정을 잘 부탁드린다고 통화도 하신 것으로 압니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힘든 상황에 원치 않는 지방으로의 이사는 마음의 부담이 컸고 저는 광주로 내려가는 내내 울며 이사를 했습니다.

    그날은 1월이라 눈도 많이 내렸고 날도 무척 추웠습니다. 그런데 광주교회에서 저희가 이사를 온다고 교회에 저녁준비를 해놓을 테니 와서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아기의 장애가 구경거리가 될까 굳어진 마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나 어머니는 그래도 감사하지 않냐 하시며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광주교회 목자님, 성도 분들과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낯선 지방에서 제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식일마다 남편 부재시 성도님들이 돌아가면서 저와 아이들을 데리러 와주셨고, 교회에 가면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 주셔서 교회에 가면 유일하게 제가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찬양의 가사들은 너무나 제게 위로가 되었고 말씀이 다 이해는 안 되지만 조금씩 조금씩 들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례와 성령을 받지 않은 제게 기도시간은 난처하기만 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으나 열심을 내지 못하는 신앙

    그러던 중 세례교육을 받고 성경대로 세례를 받아야 함을 알게 되었고 온 가족이 그해 10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간절하게 성령을 구해야 한다고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배웠으나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저는 간절히 성령을 구하지 않고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저는 셋째 딸을 임신하고 두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믿음은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예배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안식일에만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 하루 교회 가는 날도 남편과 갈 때마다 싸우게 되고 상한 마음으로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저는 셋째한비를 낳고 혼자 아이 셋을 돌보며 마음의 여유를 잃고 늘 바쁜 남편에게 자주 화를 내곤 하였습니다. 급기야 안식일 예배도 빠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니 삶이 휘청거리고 사단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민이를 잃은 슬픔과 절망

    한비가 11월에 태어나고 다음해 3월 어느 날 아민이가 열이 나고 감기 증상이 있어 급히 동네 소아과를 갔습니다. 아이를 안고 병원을 뛰어 가는데 제 품에서 밝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잘 웃는 아이를 보며 심하게 아픈 건 아닌가 보다 안심을 하였고 의사 선생님도 단순 열감기라고 하셨기에 3일 동안 해열제와 약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부터는 아이가 밥도 잘 안 먹고 밤에 잠도 못자고 귀 아래로 부은 모습도 보여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선 남편에게 좀 더 큰 소아과로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 병원에선 검사결과 염증수치가 높으니 우선 주사를 놓고 좀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하고 귀 아래 부은 것은 왜 그러냐고 묻자 의사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대학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목자님께 연락을 드리고 병원에 같이 가주시기를 부탁 드렸습니다. 소식을 듣고 성도 분들은 다함께 기도해 주셨고 저희 가정을 많이 챙겨 주시던 자매님도 병원에 함께 동행 해 주셨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불안하고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만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각종 검사를 하였고 아이는 지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검사를 하던 중 갑자기 아이가 호흡이 없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의사선생님께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에겐 급하게 산소호흡기가 씌워 졌고 저는 너무 흥분한 상태여서 병실 밖에 나가 있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아이 옆에서 계속 기도해 주셨고 저는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울면서 “하나님 아이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라며 기도하였습니다. 몇 분 후 목자님께서 중환자실에서 나오셨고 “진아 자매님, 아민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으니 들어가서 아민이에게 인사를 하셔야겠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자님 손을 잡고 “목자님 이건 아니잖아요, 저는 못 들어가겠어요!” 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않아 목 놓아 울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아이를 떠나보낼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도저히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인한 기쁨과 위로, 그리고 성장

    아이를 보내고 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친정인 안양으로 올라왔고 예배에 참석하여 기도시간에 간절한 마음으로 저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만져주시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제 입에서 방언 기도가 나왔고 마음이 평안해 지면서 성령이 내게도 임하셨구나 하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서는 “진아 자매님,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가장 낮은 마음일 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보고 싶어 울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커튼 틈 사이로 한줄기 강하고 밝은 빛이 방을 비추고 들어와 누워있는 저를 향하여 비춰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도 그 빛이 너무 강하여 눈이 부셨고 그대로 깊은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푹 자고 일어났고 전날 밤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여 주심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하늘을 향해 기도드렸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해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부교회에 영은회는 다 찾아다니며 말씀을 들었고 안수를 받을 때마다 물같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는 기쁨이 넘쳐 기도 중 일어나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교회가 바로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민이를 보내고 장례식장을 한해에 다섯 번이나 가게 되면서 죽음과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 구원의 기쁨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까?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해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라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친구초청 예배 때 지인들을 초대하고 그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의 도우심으로 저는 변화되어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 중 뼛속까지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것이 신비로웠습니다. 다시는 웃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저는 말씀과 기도생활을 통해 웃음을 되찾아 가면서 하나님의 일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요? 고난이 없이 평탄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겨 보세요. 하나님은 하나를 드리면 전부를 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저희 가정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꼭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다정한 모녀, 엄마와 함께 >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열린 예배에 간증하고 계신 김진* 자매님>

  • [기관 소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안양교회 대학사청부! 

    [기관 소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안양교회 대학사청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안양교회 대학사청부!” 

    Q: 대학사청부는 어떻게 구성 되어 있나요?

    A: 조직적으로는 대학사청부장과 총무가 있습니다. 성도 구성은 출석성도를 기준으로 자매 4명, 형제 6명이며 사회청년부와 대학부로 나뉘는데요, 현재 형제 2명은 군복무 중입니다. 한 명은 오는 8월에, 한 명은 오는 10월에 제대 예정인데, 대학사청부 모두 든든한 일꾼으로 다시 돌아올 그들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대학사청부를 위해 열심히 교사사역에 임해주시는 교사 두 분도 계십니다.

    Q: 대학사청부의 안식일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안식일 오전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한 뒤, 1시 반부터 오전 예배를 드린 내용을 바탕으로 분반활동을 한 시간 진행합니다. 그리고 2시 반에서 3시 반까지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예배가 있는데, 그 동안 아동부 교사와 학생부 교사를 맡은 대학부는 분반예배를 인도하거나 참여합니다. 3시 반에서 4 시 전까지는 아동학생부와 대학사청부가 같이하는 10분간 기도회가 있습니다. 이때 목자님께서 한 명 한 명에게 안수를 해 주십니다. 그리고 4시부터는 대학사청부와 학생부가 함께 찬양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4시 반에 공식적인 일정은 모두 끝나지만, 안양교회 형제들이 8시에서 10시정도 2시간 가량 축구를 합니다. 이 때문에 교회에 잔류하는 대학사청부 형제도 많습니다. 중간에 비는 시간에는 찬양과 교제의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대학사청부 분반 성경나눔>

    <찬양과 교제의 시간>

    < 축구를 통한 친목과 전도> 

    Q:  안양교회 대학사청부의 활동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들었는데, 대학사청부의 활동이 궁금하네요.

    A: 대학사청부에는 학생부와 대학사청부가 연합한 청년부 주체 행사가 많은데, 먼저 비정기적 활동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1월에는 총회행사가 거의 매주 있기 때문에 지교회에서 배치한 행사가 없고, 2월에는 신입생 축하월반식과 연간 4번 운영하는 친교활동 중 첫 번째 활동으로 성령충만을 주제로 한 청년부 요리경연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3월에는 청년부 성경캠프 연간 2번 운영하는 찬양기도회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활동 이외에도 청년부 수련회, 성경 골든벨, 대학사청부 MT, 수능응원행사, 해당자가 있을 때 실시하는 생일축하 행사 등이 있는데, 특히 올해는 생일에 청년부끼리 맞춘 TJC 후드 집업이 증정될 예정입니다! (웃음).

    정기적인 활동으로 주 5일 평일에 네이버 밴드를 통해 진행하는 매일양식 활동이 있습니다. 이와 연계하여 매일 묵상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매주 일요일 목자님과 성경공부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지난 2월에 열린 학생부 영은회 마지막 날을 기점으로 청년부 전체가 미디어 금식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학사청부 소수는 각자 한 명씩 잃은 양을 맡아서 연락하는 활동도 합니다. 평일에 연락을 취하고 안식일 참석을 권면한 후에 안식일에 경과를 나누고 기도 부탁을 하는 활동인데 2월 말부터 시작한 활동입니다.

    <요리경연대회>

    Q: 마지막으로, 안양교회 대학사청부의 자랑 및 앞으로의 다짐 부탁드립니다~

    A: 먼저 대학사청부는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안양교회에 요즘 유독 사랑을 받는 기계가 있는데, 바로 대학사청부가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마련한 커피 머신입니다. 대학사청부가 커피머신을 마련하자 다른 성도들도 덩달아 자신의 원두를 가져오거나 자비로 우유를 사서 비치하는 등 물건을 통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현대판 사도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그 마음 씀씀이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대학사청부는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참 아름답습니다. 대학사청부는 방송부라는 별명을 붙여도 될 정도로 방송사역에 봉사하는 인원수가 많은데요. 사실 실시간으로 설교방송 하는 동안에도 말씀구절을 띄우는 등 시시각각 목자님의 멘트에 귀를 기울여야하기 때문에 예배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으로 방송사역에 임해주는 대학사청부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선한 청지기 같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말씀과 기도로 든든히 서가는 대학사청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110:3)”

    <실시간 유튜브 설교방송 봉사>

    인터뷰 with 대학사청부 총무 오다은 자매

  • [복음 메시지] 가나안 여인의 간구(마15:21-28)

    [복음 메시지] 가나안 여인의 간구(마15:21-28)

    [말씀 제목] 가나안 여인의 간구 (마15:21-28)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년 2월 4일(토) 안식일 예배

    이방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은혜를 받습니다.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흉악한 귀신들려 고통 받는 딸을 고침 받기 위해 나아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고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됩니다. 바울은 살 소망이 끊기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음은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을 의뢰함이라 말씀하십니다(고후1:8-9).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날 것이고(잠8:17)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렘33:3). 그러나 가나안 여인이 주님께 나아와 소리 질러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여인의 간청에도, 제자들의 언급에도 꿈쩍도 않으시고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간절히 구함에도 응답하지 않으심은 우리의 죄 때문일 수 있습니다(사59:1-2). 또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려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애3:33). 그럼에도 어려운 시험을 주심은 이를 통해 결국 복을 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신8:16). 가나안 여인은 바로 예수님의 믿음의 시험을 잘 인내하여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6)”

    그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험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낙심하게 되면 믿음을 잃게 됩니다. 믿음의 기도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히11:1) 또한 역사하실 수 있기에(약5:15) 우리는 기도하되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외면에 가나안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구함으로 은혜 받게 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4)”

    둘째로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고 은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계속 거절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겸손의 말로 인하여 은혜를 받습니다(막7:29). 주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막7:28-29)”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의도적으로 낮추시어 순종을 시험하십니다. 낮추심으로 우리를 시험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지 여부를 보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십니다(신8:16). 믿음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끝까지 순종함으로 복을 받았던 것처럼 주님은 끝까지 겸손하게 순종한 가나안 여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시험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시험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게 순종한다면 분명 주님으로부터 약속된 복과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유튜브 예배링크(클릭!)

    글| 백현 자매

  • [송년 행사] 안양교회 송년예배 ‘작은 불꽃’

    [송년 행사] 안양교회 송년예배 ‘작은 불꽃’

    안양교회에서는 2022년 마지막 안식일에 ‘작은 불꽃’ 송년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이름은 초기 안양교회가 세워졌을 때 많이 불렀던 찬양 제목으로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녹이듯 주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불꽃’을 앞두고 먼저 초대장을 만들어 마음에 품었던 분들과 잃은 양들이 교회에 오실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행사 당일에 잃은 양 4명, 구도자 8명을 포함하여 12명의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전성도 함께 총 80명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계속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이 이어져 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관심이 필요하겠습니다.

    ‘작은 불꽃’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집니다. 먼저 1부에서는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양교회를 인도하셨는지 돌아보고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자님의 말씀 증거와 2022년 회고영상 시청, 각 신도회별 찬양발표가 있었습니다.

    <1부의 사회를 맡아주신 김정민, 김진아 자매님>

    <안양교회의 귀염둥이들인 아동부의 악기찬양>

    <안양교회의 든든한 기둥역할을 하고 계시는 여호수아회의 아카펠라 찬양>

    <안양교회의 맛있는 식사를 늘 담당해주시는 에스더회의 찬양>

    <마음만은 청춘으로 무장되신 사무엘반과 마리아회의 찬양>

    <안양교회의 허리역할을 하고 계시는 한나회의 메들리 찬양>

    <청년부의 “난 주의 편에 서리라” 성극>

    2부는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레크레이션을 통해 교회를 처음 오신 분들, 오랜만에 오신 분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29:5-6)”

    2022년 세상이라는 광야를 무탈하게 지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에도 우리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만 섬기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글| 노창준 형제

  • [신앙의 향기] 그림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신앙의 향기] 그림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열 두 제자가 탄 초승달 배가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갑니다. 밤 바다 위를 걸어가시는 예수님께서 빛을 밝히며 우리와 동행하시니 두려움 없습니다.  주의 길을 따라 사람을 살리는 어부이자, 세상을 밝히는 제자의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그림: 오다은 자매)

     

  • [교회 행사] 안양교회 김장행사!

    [교회 행사] 안양교회 김장행사!

    지난 11월 27일 안양교회는 일 년 양식을 준비하는 김장행사가 있었습니다. 올 해도 어김없이 김미경 애찬부장님의 오빠이신 전주교회 김상수 형제님으로부터 여우치의 질 좋은 고냉지 절임배추 70여 포기를 공급 받아 성공적인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은 양념 만드는 것이 제일 큰일인데 우리 부지런한 애찬부장님이 집에서 거의 준비를 해 오셔서 김장이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대용량의 갖은 양념을 넣고 골고루 섞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여호수아회의 허명회 형제님이 많이 애써 주셨습니다. (사진을 못 찍어 아쉬워요)

    오후 신도회와 교회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에스더회를 중심으로 여러 자매님들이 함께 배추 속을 넣기 시작해 2시간도 못 되어 김장이 끝났습니다.

     

    이번 김장의 하이라이트는 갓 담은 김치와 수육이 있는 저녁 식사였습니다. 김장이 빨리 끝나는 바람에 4시 반, 아주 이른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사무엘반의 통 큰 수육 지원과 고은숙 자매님의 뛰어난 요리솜씨로 안양교회 온 식구가 맛있고도 배부른 식사를 했습니다.

    뒷마무리는 교회학교 교사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던 한나회 자매님들이 맡아 주셨습니다. 김장하는 게 오히려 편했을 정도로 설거지가 장난 아니었는데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맛있게 담가진 김치와 언제나 정성 가득한 반찬들로 진수성찬이 될 안식일 점심이 기대가 됩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고 진행되고 성도 모두가 즐겁게 김장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글| 백현 자매

  • [성도 소개] 한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한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이번 안양교회 성도소개는 작년 가을 영은회 때 9년 만에 성령을 받으신 한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평소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기 좋아하시고 요양보호사 야간근무를 하시고도 예배 참석은 물론 새벽기도도 참석하시는 사랑과 열심이 있으신 자매님이십니다.

     

    Q1 참예수교회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평생어머니교육원 컴퓨터반의 짝꿍인 김윤선 자매님의 권유로 나오게 되었어요. 윤선 자매님이 옆에서 모르는 것을 친절히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길이나 버스에서 자주 마주치거나 보게 되더라고요. 한 번은 또 석수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자매님이 지하 식당에 내려가 식사를 하자고 했어요. 밥을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언제 관악역 근처에서 밥 한번 먹자고 하더라고요. 뷔페인데 너무너무 맛있다고 하면서요. 저는 무슨 식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양교회 안식일 점심을 말하는 것이었어요(웃음). 그 때 제가 약속한 날짜를 착각하고 한 주 먼저 연락을 해서 갑자기 오니까 윤선 자매님도 교회 학생들 가르치다가 갑자기 뛰어 나왔었죠(웃음).

    <전도하신 김윤* 자매님(좌측)과 함께>

     

    Q2 안양교회 오신 첫 인상은 어떠셨어요?

    저는 이사를 자주 다녀서 여러 교회를 이곳저곳 다녀 봤어요. 전도상, 노고상 등을 받을 정도로 열심도 있었죠. 일본에서 7년간 있다가 2013년 가을에 안양으로 이사를 와서 교회를 찾고 있던 중 참예수교회를 오게 된 거죠. 물론 처음에는 기도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고 이 교회는 아니올시다 했죠(웃음). 그런데 음식도 맛있고 성도님들도 모두 친절하고 사랑이 많았어요. 그 때 계셨던 바나바 목자님도 참 좋으셨어요. 말씀도 따뜻하게 해 주시고 구도자 공부도 해 주시고요. 그 때 배운 말씀 중 십일조에 관한 것이 가장 마음에 와 닿고 깨달아져서 그때부터 십일조를 시작했죠.

     

    Q3 세례는 언제 받으셨나요?

    다음 해 2014년 6월 15일에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를 받기로 하고 집에 갔는데 당시 꽤 큰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는 연락이 온 거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단의 유혹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은 이겨내고 세례 공부를 참석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죠. (자매님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매년 세례일에 교회에 떡을 내신답니다)

     

    Q4 9년 만에 성령을 받으셨는데 성령 받으신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어린 아이들까지 나 보다 다 먼저 성령을 받으니 샘도 나고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그 전까지는 그렇게 절실하게 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작년 가을 영은회 때 허성복 목자님 말씀이 참 은혜가 있었어요. 그 당시 저는 직장도 잃고 마음이 많이 가난하고 힘들 때였어요. 이번 영은회는 모든 예배를 빠짐없이 다 참석하리라 굳게 다짐을 하고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열심히 기도를 했어요. 집에서도 불 다 꺼 놓고 침대에 앉아서 계속 시계 맞춰 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랬어요. 집에서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는데 교회 기도시간에 방언이 터진 거예요.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를 전도한 윤선 자매님이 그렇게 원하는 성령을 하나님이 때가 돼서 주신 거라고 하며 끌어안고 막 우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막 같이 울었어요. 지금도 늦게 받아서 그런지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이제 안 놓쳐야지 하는 마음에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그 전에는 솔직히 새벽기도도 안 나왔고 예배도 어쩌다 한 번 그냥 나왔어요. 성령 받고 나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나 보다’ 하며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깨달았죠. 말하자면 한 단계 성장한 거죠. 성령 받고 바로 직장도 가까운 곳으로 얻게 해 주시는 은혜도 받았어요.

     

    Q5 따님이 전도된 이야기도 해 주세요.

    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 있는 엄마가 이상해 보이고 이단교회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삼촌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이상한 교회에 다닌다고 이르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엄마를 이 교회에서 빼내와야겠다 생각을 하고 온 거에요. 그런데 갑자기 찾아 온 딸이 예배를 드리는데 옆에서 보니까 눈물, 콧물 흘리며 펑펑 울고 난리가 난 거에요.(웃음)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울어보긴 처음이고 너무 창피했다고 하더라고요.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는 중에 그렇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네요. 그리고 딸은 이제 첫째 수현이 생기고 교회 나오기 시작해서 둘째 소영이 출산 후 큰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어요. 성령을 저 보다 빨리 받을까봐 내심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저 받고 다음에 받았어요(웃음). (홍*영 자매님을 비롯해 첫째 수현이, 둘째 소영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요)

    <홍*영 자매님과 두 딸>

     

    Q6 이번 영은회 때는 일본에 사시는 친구 분도 데려 오셔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제가 가정사로 힘든 일을 겪고 일본에 있는 동안 알게 된 친구에요.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주고받은 사이라 정말 각별한 사이고 20년 넘는 절친 이라 할 수 있어요. 이번에 제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친구가 일본에서 한국에 오게 되었고 마침 영은회가 있어서 함께 가자고 했죠. 친구도 교회를 다니고 제 부탁이면 언제나 흔쾌히 들어 주어서 교회를 오게 되었어요. 친구는 예배시간에 너무 좋아서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데요. 예배 후 목자님과 성경공부도 하고 안수도 받았어요. 친구는 일본에 있을 때 기도를 오성으로 하다가 한국에 오기 얼마 전부터 그냥 ‘할렐루야’라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대요. 그런데 이 교회 와서 목자님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 하시며 ‘할렐루야’라고 기도하라고 해서 신기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셨나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목자님께서 참예수교회 진리를 전하면서 일본에 있는 참예수교회에 꼭 한번 나가 보시라고 권면하셨고 친구도 그렇게 하려고 해요. 며칠 전 일본교회에 있는 한국 자매님과 연락이 이루어졌어요. (귀한 열매가 맺어지길 계속 기도해야겠어요)

    < 친구 임정*님(좌측)과 함께>

     

    Q7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람과 다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더 열심히 해야죠. 성경말씀도 더 많이 배우구요. 자녀들과 손녀딸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고 사위가 교회 나오는 것이 제 바램이에요. 가족 모두 신앙 생활하는 것이 제일 부럽고 이것이 저의 가장 큰 희망입니다.

  • [성도 간증]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 간증]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 이 간증은 2019년 8월 안양교회 열린 예배 시, 신정* 형제님이 하신 간증을 편집하여 올린 글입니다.

    믿음이 많이 부족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부족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간증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저희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어 이를 간증함으로 하나님께 회개의 기회를 삼고 앞으로 저의 신앙생활의 지표를 삼고자 간증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대전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짐>

    먼저 저의 신앙 과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저는 59살로 대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저희 집안은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조상님께 열심히 제사 드렸고, 어머니는 아침마다 부엌에 물그릇을 떠다 놓고 누군가에게 열심히 비는 것을 항상 보았습니다. 저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밖에서 노는 것 밖에 몰랐습니다. 야구를 좋아해서 맨날 친구들과 까맣게 그을려가며 놀러만 다녔어요. 미래에 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공부한 기억은 없고 매일 학교 갈 때 가방에 도시락만 바꿔 갔어요. 어린 나이도 아닌 열여섯 살까지 저는 하나님도 모르고 인생에 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는 영육 간에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중3 졸업할 때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공부도 안 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면 체격도 적고 힘도 없는 내 삶이 참 고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었습니다. 40년 전 인터넷도 없고 정보도 거의 얻을 수 없었던 시절에 저는 대전에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 학교별로 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대구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벌써 고교 평준화가 정착되어 일정 시험을 마치고 추첨으로 고등학교가 배정 되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은 되지만 그 당시 어린 저에게 미래에 잘 살려면 시험을 쳐서 대전고등학교를 가야 내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생각일 뿐 대전은 대구하고 거리도 멀고 일가친척도 없는 전혀 낯선 곳이었습니다. 가정 형편도 대전에서 학습시킬 형편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대전고등학교 갈 실력은 전혀 없는 상태였죠. 공부를 안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간다고 하니까 아버지도 반대요, 담임 선생님도 반대요,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통 때는 제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는데 그때 대전 유학에 대해서는 고집을 안 꺾었어요. 계속 보내달라고 졸랐고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전고등학교 입시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어요. 불 보듯 뻔하게 제 실력대로 불합격했습니다. 대전고등학교 1차 시험, 또 후기 고등학교도 시험도 봤는데 모두 떨어졌어요. 그 열 여섯살 어린 나이에 대구 친구들은 다 고등학교를 갔는데 저는 학교도 못가고 집에서 그냥 놀았습니다.

    <참예수교회를 가게 됨>

    그때 시험에 떨어지고 대전에서 대구에 있는 집에 가야되는데 차비가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입시철이라 추운 겨울이었어요. 대구는 가야 되고 대전은 이방도시고 대전역 광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걸인처럼 차비를 빌리려고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 쫓아가면서 집에 가야 되는데 차비 좀 도와주라 하니까 아무도 안주더라고요. 시험 치려고 차고 온 손목시계가 생각이 나서 대전역 근방에 전당포를 찾아가 차비와 바꾸려 했지만 또 거절당했어요. 추운 날 참 힘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대전에 시험 치러 와서 공부는 안하고 시내버스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참예수교회를 본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대학 다닐 때 방학에 대구에 있는 참예수교회에 데리고 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낯선 대전에서 참예수교회를 보니 굉장히 반가웠었거든요. 그 기억이 나면서 참예수교회에 가서 돈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때도 믿음이 생각나고 하나님 말씀이 생각 난 것이 아니라 그냥 돈을 빌리려고 갔습니다. 제가 길눈이 좋아 버스길 더듬어서 걸어갔어요. 그때 참예수교회는 보문산 밑에 있었어요. 차비를 얻으러 참예수교회를 찾아간 그때가 제 의지로 참예수교회를 간 첫 발걸음 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간 것도 아니고 단지 돈을 얻으러 간 거였지요. 그때 배영도 장로님이 담임목자로 계셨습니다. 새까맣고 여드름 투성이인 전혀 모르는 어린 청년이 돈이 없어 차비 얻으러 왔다고 하니까 사택 작은 방에 들어오라고 하시며 밥도 차려주시고 차비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대구에 도착했고 아버지께서 참 대책 없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무척 꾸중을 하셨습니다. 3, 4월까지 그냥 그렇게 집에서 놀아라 하시더니 자식이 그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지 대전에서 재수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대전고등학교에 입학 그리고 참예수교회에서의 신앙생활>

    말씀드렸지만 저는 집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제가 바뀌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공부가 재미있었고 참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대전 충남지역에서 중학생이면 가장 가고자 했던 대전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험과목이 되게 많았어요. 대전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마침 학교가 대전교회하고 무척 가까웠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하숙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돈 얻으러 갔던 학생이 이제 예배드리려 안식일에 학생 예배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그때 저는 인생의 많은 죄가 생각이 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구원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전에서 세례를 받고 바로 목자님 안수할 때 성령도 받았습니다. 그 후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과 동시에 대구에 있는 약학대학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약사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철없고 무모한 고집이 당시에는 고등학교 다 떨어지고 대전역 광장에서 집에 갈 차비를 얻으려고 구걸하는 참담한 모습이었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참된 참예수교회를 찾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만일 대구에 그냥 있었으면 저는 아직도 신앙생활을 안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으나 신앙에 소홀한 삶>

    저는 사실 어떻게 해서 저의 삶이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몰랐었을 사람이 대전이라는 곳에 오게 하셨고 또 세례, 성령을 받게 하셨고 죽은 영을 살려주셨습니다. 또 저 같이 세상을 헤쳐 갈 지혜와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고 육신적으로는 편안히 살았는데도 저는 교회를 위해서 영적인 형제자매님을 위해 충성된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제가 30대 초반까지는 약국을 운영했고, 50대 초반까지는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제 삶을 살기에 급급하여 교회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처리할 일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또 교회의 어려운 일이나 행사에도 마음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자녀들의 어린 시절 종교 교육도 소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부인을 주셨습니다. 착한 아들과 딸을 주셨고요. 그리고 착한 아들과 딸에게 분에 넘치는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이런 복을 받을 당시에는 얼마 동안 하나님께 감사하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세상일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건강했었는데 신경성 소화불량으로 한 2주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저에게 하나님 말씀이 전과 다르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또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교회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이라는 말씀과 영원한 ‘천국’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멀리 느껴지고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느끼며 하나님 은혜를 모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보통의 가정처럼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제 마음속은 기쁨이 없이 항상 공허했습니다.

    <아내의 암 진단, 그리고 신앙의 회복>

    이렇게 하나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세상일에만 집중하던 어리석은 저에게 2년 전 2017년 7월에 제 인생에 최대의 아픈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믿음이 없는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늘 간구하고, 어리석은 남편을 늘 이해하면서 어머니같이 사랑하며,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육한 저희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에게 아픔과 두려움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먼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누가 기도를 하지. 어리석은 이 자가 세상을 사는데 누가 위로하고 도와주고 지혜를 주지. 자녀들은 누구에게 안식을 얻지. 나는 누구하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받지.’

    참으로 제 인생에 처음으로 이처럼 아픔과 고통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이때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한 말과 행동이 아직도 제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눈물 한 방울 딱 흘리더니 소매에 눈물 닦고 그 이후에는 눈물을 흘린 흔적을 본 적이 아직까지 없습니다. 아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부모님에게나 가족에게나 친구들에게는 진짜 선한 진심을 대했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후회가 없으나,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과 하나님과 교회에 봉사하는 것에 소홀한 것이 후회된다며 시간이 주어지는 데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싶고, 아들, 딸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인생을 살아가도록 교육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 시간이 주어지는 데까지 아들, 딸의 구원을 위해 권면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갈 수 있는 곳은 주님의 몸 된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게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진짜 저는 많이 변했습니다. 제 마음 속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주 나쁜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와 목자님, 성도님들이 그냥 불편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교회에서 선포된 하나님 말씀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제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교회에 대한 불만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목자님들과 성도님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달아졌습니다. 또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이날이 축복임을 깨달으며 지금 살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제가 가지려고 해서 생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2년간 참 많은 변화가 저에게 있었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다짐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셔야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암 진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자 엄중한 꾸중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에 순종하여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크신 은혜의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벼이 여긴 저에게 주시는 엄중한 꾸중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가정은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말한 것 같이 아내는 하나님 말씀 듣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교회를 참으로 섬기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딸도 하나님 말씀과 안양교회 성도님들의 선한 본으로 믿음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안양교회 성도님들의 선한 믿음이 딸에게도 믿음의 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도 아직은 안식일 예배드리는 수준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로 성장할 것을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어린 청년 시절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던 저를 아무 연고 없는 대전으로 오게 하시고 고등학교 모두 떨어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저를 하나님의 참교회로 불러주는 계기가 되었고 참으로 부족한 저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주신 인생의 복과 자유함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오직 저의 교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삶을 살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아내의 아픔을 통해서 다시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의 개인과 가정에 주시는 어려움이 단순히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선한 구원의 말씀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양교회 여호수아 회원님들이 세상 살기 힘든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안양교회 아동부와 학생과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칠까 합니다. 할렐루야!

  • [기관 소개] 안양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안양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안양교회의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하고 있는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안양교회 학생부는 안양교회의 든든한 기둥과 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고 주의 길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학생부 현황

    안양교회 학생부는 현재 형제 6명, 자매 4명 모두 10명으로 중등부(베냐민반), 고등부(요셉반)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모든 학년에 골고루 편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교사는 총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학생부 예배

    학생부 예배는 올해 하반기부터 체제가 바뀌어 전체 설교가 아닌 각 반별로 분반예배를 교사들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다 더 세부적으로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부 찬양예배는 찬양인도부터 반주까지 모두 학생부에서 자체적으로 봉사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3. 교사교육

    올해부터는 목자님이 아닌 교사들이 예배를 진행하게 됨으로 인하여 교사교육이 신규로 생겼습니다. 매주 1회씩 진행되며 총회 커리큘럼대로 목자님께서 직접 인도해주심으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4. 학생부 영성관리

    안양교회 학생부는 학생부 밴드를 별도로 개설하여 하루에 1장씩 성경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댓글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다르게 정해진 기도제목에 대하여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월: 학생부 믿음성장, 화: 잃은 양, 수: 구도자, 목: 군복무중인 형제들, 금: 온전한 안식일)

    특히 올해부터는 월, 목요일에 기도회가 신설되어 수,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 대부분의 학생부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5. 학생부를 향한 성령의 역사

    올해 학생부에서는 3명의 학생이 성령을 받았습니다.(허인우, 허강우, 황동후) 이로써 현재 출석하고 있는 학생부는 전원 성령을 받았습니다. 현재도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해 성령을 받은 학생들이 특히 성령을 받은 이후로 많이 성숙해져서 교회의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6. 학생부 전도활동

    안양교회 학생부는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친구초청예배를 통해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올해는 5월에 1회 시행하였고 12월에 1회 진행할 예정입니다. 5월에 했을 때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초대장으로 전도를 하였는데 총 3명의 친구가 초대되었습니다.(김소희 친구 김선주, 장현민 친구 김진우, 오다미 친구 장현영)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친구들이 나올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7. 친해지길 바래! 학생부 친교활동

    안양교회는 올해 목자님 자녀 2명, 전입 온 학생 1명, 중1로 올라온 학생 1명이 올해 학생부에 새롭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모두가 골고루 친해질 수 있도록 안양교회 학생부에서는 연 4회, 분기마다 1회씩 친교활동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카페도 가기도 하면서 서로 어떤 친군지 알아가고 주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안했으면 어떡할 뻔했나 싶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글| 노창준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