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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할렐루야! 주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8일의 결과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혼자 온 제게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랜 침묵 후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가족은 안 오셨습니까?” “네” “혼자 사세요?” “아니요” 그리고 보험은 들었냐고까지도 물었습니다. “내가 본인이니 나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어려운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전립선암 4기 말기입니다.” 생존율은 고작 30프 이내로 희박 하다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바쁜 스케줄로 환자 한 명당 배정된 시간이 몇 분 되지 않지만 일어나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에게 줄 약은 없나요?” “없습니다.” “진통제라도 없나요?”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일어나기를 주저하는 제게 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위해 잠시 나가 있으라 했습니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 하염없이 대기 했습니다. 두 시간 쯤 지나 의사 선생님께서 옆방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그렇게 심하더라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집에가서 그냥 죽으라는 말입니까?” 의사 선생님은 눈을 감으셨습니다. 한참 후 최선을 다해 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검사를 정밀히 더 해 보자 했습니다. 검사는 한 달여 지속되었고, 그때부터 제게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0월 말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사우나를 즐겼습니다. 저는 아무 아픈 곳이 없던 사람이었고 건강하게 잘만 지내 왔었죠. 그런데 아무 전조 증상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우나를 즐기던 중 엄청난 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놀란 나머지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보라 했습니다. 11월부터 한 달여 동안 암 검사만 받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정말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파도 간절히 기도가 잘 안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11월 말이 되면서부터는 기도를 전혀 못 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교회에 와서 앉기만 하면 전혀 이유를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눈물을 전혀 참을 수도 없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다 들어오기도 수 없이 해 봤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통증도 시작되었습니다. 앉아 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확신이 들었습니다. 올해 12월 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처럼 이 확신의 이유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70년 내 삶에 하나님 앞에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전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목표가 뚜렷해졌습니다. 매일 딱 한 가지를 위해 잠자는 시간마저도 매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런 기도를 드리기도 너무 염치없지만, 제 육신의 삶이 다하기 전에 깨끗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나 수명 연장을 위한 기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죄사함과 회개의 기도만이 전부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던 그때부터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죄를 사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단 한 가지 목표는 바로 죄사함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말이 다 되었는데도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보여주실 일이 있으셨을까요? 놀랍게도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2024년 1월 초. 또 놀랍게도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2024년 1월 18일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실에는 비슷한 환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2기나 3기 환자들의 수술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이내 수술이 끝난다고들 하였습니다. 회진을 오신 의사 선생님께 수술 시간을 물으니 3시간 정도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좀 더 심하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정확히 아침 7시 30분 수술실로 들려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수술이 끝이 났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무려 5시간이나 걸려 수술이 끝난 것이지요. 생각보다 큰 수술이었고 아주 많은 범위에서 암 덩어리를 제거해 냈습니다. 

     

     수술 중이었습니다. 마취 상태였을 때였지요. 눈을 뜬 것처럼 눈이 부시게 환하고, 제 앞에는 아름다운 초원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술 하기 전 저의 일과는 기도와 성경 읽기의 반복이었습니다. 집에는 성경을 읽을 때 사용하는 작은 책상이 있는데 환상 속 초원에서 그 작은 책상이 보였습니다. 평상시처럼 초원 위에 작은 책상을 두었고, 책상 위에는 성경책을 펼쳐두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집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 옆에는 흰옷을 입으신 분이 함께 성경을 읽어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에서는 아주 강한 빛이 쏟아져 올라왔습니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 성경책의 글자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 적이 아닌 영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었지요. 흰옷을 입은 분과 함께 한참 성경을 읽었습니다. 기억으로는 누가복음 5장에서 8장까지를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8장 마지막 말씀을 읽을 때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00은 죄사함이 되었느니라”, “00은 죄사함이 되느니라”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캄캄해졌습니다. 실려 갔던 침대가 흔들렸습니다. 회복실에서 저를 마구 흔들어 깨웠습니다. “환자분 이름이 뭐에요?, 여기가 어디에요?” 다급한 소리와 정신없는 불빛과 주렁주렁 매달린 주삿바늘과 계속해서 잠들지 못하게 막는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혼미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 선생님께 “나한테 왜 이렇습니까?” 물었습니다. 수술 시간이 너무 길어서 출혈이 너무 심했다고 했습니다. 집중관리 중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교대하신 간호사 선생님께 내 상태가 어느 정도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혈액이 2리터 이상 출혈이 있었고, 혈압과 맥박이 불규칙하다고 메모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수술 중 보았던 환상이 떠올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때 그 순간은 분명 듣고 기억했던 “OO”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8장을 얼마나 읽어봤겠습니까. 수십번도 더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그 단어를 알지 못하겠어요. 하나님께서 비밀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신 것 같아요. 마치 남은 시간의 숙제 같습니다. 다시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그 답을 찾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답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 숙제 말이에요.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

     

     저희 부부의 생활은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형식의 신앙에서 진심의 신앙으로, 삶의 우선순위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구별됨 등 퇴원 후 많은 것이 저절로 변화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의 삶을 직접적으로 많이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퇴원 후 또 한 번의 수술이 있었고 통증이 있기도 하고 아직 환자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통증이 있고 몸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도 가족들도 요양병원에서의 몸조리를 권유했습니다. 끝내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었으면 그때 죽었을 거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당신들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으니 나를 살렸지! 당신들 기술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봤기 때문이에요. 주님께서 주신 그 환상을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켜 주셨던 그 손길과 기도의 응답과 권능을 보았잖아요! 이 정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뭐가 되겠어요. 사실 아파도 아프다고 못했습니다. 이런 성미를 잘 알아서인지 아내가 참 잘 챙겨주어요. 지극정성으로 건강식도 챙겨주어서 서서히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회복하여 다시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음도 기쁨입니다. 

     

     참. 쉽지는 않은데 고백해 볼까요? 말만 참예수교인이었어요. 모태신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성인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잘 안 나왔어요. 어쩌다 한 번씩이나 나왔을 거에요. 70년 살아오면서 큰 죄인이었어요. 70년 인생의 삶 이것까지 다 말하기는 참 부끄럽네요. 그냥 큰 죄인이었어요. 곧 죽게 된다니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죄스럽고 염치가 없었어요.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염치가 없던지요. 매를 맞은 것도 인정해요. 사실 한번 맞은 것도 아니에요. 한번 맞아서 안 되니 더 세게 때리셨을 거에요. 70년 살았더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자녀들도 성장했고 말이에요.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고 살아왔기에 죄사함의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이유 모를 눈물도 죄사함의 두려움과 죄사함의 유일한 권능자 앞에 간구였지 않겠습니까. 

     

    사실 간증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끄럽고 말주변도 부족하고 자랑거리도 아니라서요. 제가 하나님 앞에 남은 인생동안 무엇이라도 바치고 싶은데 나이가 들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용기 내 고백(간증)하는 것이 혹시나 저와 같은 처지의 성도님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미약하지만 용기 냈습니다. 남은 생에 하나님 앞에 무엇이라도 바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내가 어떻게 염치없이,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럼에도 함께 해 주신 저의 하나님을 이번에는 여러분이 경험해 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믿고 기도 해 봅시다!” 임마누엘! 

  • [교회행사] 대방교회 2023년 송년예배입니다.

    [교회행사] 대방교회 2023년 송년예배입니다.

     2023년 대방교회 송년 예배에 함께 하실까요? 

     2023년 12월 30일 송년 예배에는 세분이 처음 방문을 해 주셨습니다. 세분께 우리의 송년 예배는 어때 보였을까요? 예수님을 닮은 사랑이 가득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확신으로 평안해 보였을까요? 그분들의 얼굴에서 새어 나오던 미소와 사랑을 바라보던 눈빛에서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던 사랑을요. 

     목자님께서는 마지막 폐회사에서 큰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고 할머니부터 최고 어린이까지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소외된 사람도 지루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은 형제·자매님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마음에 품고 함께 하길 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 형제·자매님들을 위해 우리는 더욱 합심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꼭 다시 함께 할 수 있기를 더욱 소망합니다.

     2023년 송년 예배의 뜨거운 감동은 이 글로 전해 드릴게요!

     

     이*재 장로님과 한 해를 되돌아보며 감사함과 은혜로 송년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은 코로나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며 교회 행사와 만남도 활발히 재개되고 있습니다. 함께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교제할 수 있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순간들입니다. 올해는 더욱 특별했던 대방교회입니다. 최초로 신도회가 분설되어 1개의 신도회가 추가 되었지요. 신설된 드보라회의 찬양부터 만나 보실까요?

     드보라회는 드보라 다웠습니다. 보라색 조끼를 맞춰 입은 드보라회가 등장했습니다. 누가 봐도 드보라회 신도임을 알 수 있었지요. 각자 정들었던 신도회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인 드보라회입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이렇게 화합 되었고 마음에 깊은 기도 제목도 함께 나누고 있답니다. 

     (드보라회 찬양 ‘하나님의 약속’) 

     

     드보라회 못지않은 율동 찬양을 선보인 한나회도 감동스러웠습니다. 한나회는 빨간색 옷을 맞춰 입고 나오셨지요. 드보라회보다 조금더 열정적이었습니다. 찬양 PPT도 손수 만들어 오셨답니다. 한나회의 많은 자매님은 수년 전 누군가의 교사로 사역을하셨었습니다. 그때 한나회 자매님들의 제자들이 지금은 또 누군가의 교사로서 섬김을 다하고 있지요. 한나회   자매님들과 같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교사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한나회 자매님들의 율동 솜씨는 전혀 녹슬지 않으셨네요. 아동부 찬양 인도는 한나회가 맡아주셔도 되겠습니다. 

    (한나회 찬양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손을 높이 들고’)

     

     찬양 잘 하기로 소문난 다니엘회는 역시나 감동이었습니다. 이건 비밀이지만요. 한 사람 한 사람은 완벽함에 조금씩 부족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함께 모이면 못해 내는 게 없는 천하무적 다니엘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비밀이지만 말씀드려 봅니다. 그간의 다니엘회 특송도 참 감동스러웠지만 오늘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조금 더 채워진 성도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났습니다. 다니엘회의 찬양곡은 다니엘회의 신앙과 하나님만을 의지해 가는 삶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었습니다. “주님 나를 부르시니 두려움 없이 배에서 나아 가리라. 주님 나를 보고 계시니 의심치 않고 바다를 걸어 가리라. 주님 여기 계시기에”   

    (다니엘회 찬양 ‘물위를 걷는 자’)

     아빠가 찬양하는 모습에 반한 *연이의 ’손머리 위 하트♡’ 어떠세요?

     

     바나바회와 유니게회는 연합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양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 있네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겠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저희 배 부를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받겠네.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천국이 저희 것이라. 내게도 주소서 내가 복을 받기 원하네. 오 내 주여 주소서 아멘.” 온유하게 화평케 찬양해 주신 바나바회와 유니게회는 한해 더욱 성숙해진 신앙 같습니다. 아쉽게도 사진이 왜 한 장 뿐인지 의문입니다. 

    (바나바회, 유니게회 찬양 ‘심령이 가난한 자’)

     

     아동부는 멋진 찬양을 준비했어요. ‘주의 택한 그릇’이란 찬양을 영상으로 제작했지요. 영상은 신앙의 향기편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교회나 아동부 찬양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없지요? 대방교회 역시 아동부의 찬양은 들어도 또 들어도 감동과 은혜가 최고 일등입니다. 아동부는 어쩜 이리 온 힘을 다해 전심으로 찬양드리는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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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부 찬양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가라 가라 세상을 향해’)

     

     바울회도 단독 찬양을 하셨지요. 반주자도 없이 무반주로 연습하셨을 텐데도 파트를 나눠 부르셨답니다. 바울회 찬양은 꾸밈도 없고 기교도 없지만 묵직하고 담대함이 느껴집니다. 지금껏 참신앙을 지켜오시며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지요. 바울회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아 살아오신 삶을 찬양합니다. 그 담담한 고백이 우리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바울회 찬양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학생부는 성극을 준비했습니다. 수년만의 성극이었지요. 허* 형제는 중학교 이후 사청부가 되어서 다시 성극에 도전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수 있겠죠? 성극을 통해 학생부는 수없이 쏟아지는 세상의 자극에 서서히 그리고 흠뻑 젖어 들어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멀어지는 세대를 자각했습니다. 나의 지난 시간과 지금의 내 모습을 충분히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예수교회의 위기를 직시하고 진리의 말씀을 사수하는 우리 교회학교 청년들을 기도로 응원해 주세요. 그나저나 교회학교(학생부, 대학부, 사청부) 친구들도 아동부 못지않게 (나름) 귀여우시죠? 

     

    (교회학교 성극 ‘참예수 교회 위기를 직시하라’)

    (교회학교 찬양 ‘우리는 주의 교회’)

     

     마지막 연합찬양은 안나회와 마리아회 그리고 에스더회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여성 신도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에스더회가 함께 해 주었기에 용기 내 나올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안나회와 마리아회 어르신들은 항상 삶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계시죠. 그 삶을 멀찍이 뒤 쫒아갑니다. 멀게만 그려진 당신들의 예배하는 삶을 저희도 따라갑니다. 당신들께서 뚜벅뚜벅 걸어가신 길이기에 저희의 길잡이가 되어 이끌어 가고 계시지요. 어르신들의 신앙 여정과 예배의 삶을 축복합니다. 내년에도 또 함께 삶으로 찬양 드려요. 사랑합니다. 

    (안나회,마리아회,에스더회 연합찬양 ‘할수있다 하신이는’)

    (여성합창 ‘주의 은혜라’)

     

     함께라서 행복했고 함께라서 힘이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와 사랑으로 교제하는 모습이 몹시 보기 좋아하셨을 거라 믿어집니다. 방문해 주신 분들의 마음에도 분명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모습이 담겼을 것입니다. 내년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성도소개](2023.10.8)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2023.10.8)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입어 성도로 새로 거듭난 형제·자매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늘 세례식은(2023.10.8)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85세 모친과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들이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지요. 군대 동기처럼 서로가 세례 동기라고 부른답니다.  

    (2023년 10월 8일 대방교회 가을 세례식)

     최고령 수세자 마리아회 김*성 모친은 김*자 자매님의 끈질긴 구애 끝에 드디어 죄사함을 받게 되셨지요. 언니인 김*성 모친을 전도하며 세례를 받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간증을 통해서 더 상세히 전해 드릴게요! 김*성 모친의 특별한 간증도 기대해 주세요. 세례식에 처음 참석한 가족들은 쌀쌀한 날씨에 혹시 건강에 문제라도 생기진 않을까 마음에 염려가 많았습니다. 김수성 모친은 평생 수면 양말을 신어야 할 정도로 수족냉증이 심하였지만 차가운 물에 흠뻑 빠졌다 나왔어도 막상 나오니 아주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가족들도 세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하고 거룩하게 지켜보셨답니다. 

    (세례식. 김*성 모친)

     

     한나회의 꽃 김*덕 자매님을 위해서는 한나회 자매님들이 모두 참석해 주셨습니다. 김*덕 자매님을 인도해 주신 친구 박*희 자매님은 손주들 세례식 때와 같이 기뻐하셨지요. 기도하는 한나회는 김인덕 자매님을 마음에 품고 열심과 전심으로 기도 하셨습니다. 한나회의 기도는 끊김이 없습니다. 한나회는 기도 중에 만나고 기도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김*덕 자매님을 위한 한나회 자매님들의 기도가 쌓여 오늘 세례식까지 이어졌습니다. 기도하는 한나회의 김*덕 자매님은 얼마 후 가을 영은회에서 성령도 받으셨답니다. 할렐루야!  

    (세례식. 김인덕 자매님)

     다니엘회의 송*훈 형제님은 이번 세례식에 꼭 세례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는 매일 늦은 밤까지 교회를 찾아와 세례 교육을 마쳤답니다. 송*훈 형제님은 누구의 전도에 의해 세례를 받게 되신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가장 교회다운 교회이고 자녀에게 권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송*훈 형제를 위해서도 다니엘회의 많은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함께 했습니다. 남편이, 아빠가 세례받는 모습을 지켜보았죠. 하나님의 은혜가 온 가족에게 더욱 충만히 임하길 소망합니다. 

     

    (세례식. 송*훈 형제님)

     6개월 된 매* 형제와 죠*핀 자매의 자녀 아이*슨 아기와 이*언 형제와 나*현 자매 자녀인 이* 아기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아이*슨의 세례식을 위해서 영국에 거주하시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오셔서 새롭게 거듭나는 아이*슨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설 아기를 위해서도 왕할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참석하여 축복해 주셨지요. 새롭게 거듭난 두 아이들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시지요? 두 아이는 태어난 날로 인해 친구가 되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 주님 안에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식. 아이*슨 자매)

    (세례식. 이* 자매)

     

    우리는 이날도 버스를 대여했습니다. 100명에 가까운 성도들이 거룩하고 은혜로운 세례식에 참석하여 수세자 분들을 축복했습니다. 세상 사는 동안 이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며 기쁨이 넘쳐나는 날이 또 있을까요? 그렇기에 모든 신도회와 교회학교 아동부까지 자발적으로 은혜의 자리에 참예했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태어난 날이니 이보다 더 큰 축하 거리가 있을까 싶습니다. 세상에서는 생일만 해도 소중한 날인데 말이죠.

    “(요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거듭난 

    김*성 모친! 김*덕 자매님! 송*훈 형제님! 아이*슨 자매님! 이* 자매님! 

    대방교회 모든 성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다섯 분을 축복합니다. 광야길에 등불 되시는 예수님께서 밤과 낮으로 그 삶을 동행 하시며,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의 인도하심이 영원하길 소망 합니다. 임마누엘!

  •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 (대방교회 김*성 모친)

     

     김*자 내 동생은 적잖이 15년은 나를 아주 귀찮게 굴었을 거랍니다. 끈질기게 자신이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니자고, 세례를 받으라고 쫒아다니더란 말입니다. 그런 동생에게 지지 않고 나는 약을 올렸습니다. 참예수교회에 가겠다 했다, 안 가겠다 했다. 생선 굽듯 마음을 숱하게 뒤 짚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늙은이가 얼마나 얄밉고 약이 올랐을까 싶은데. 실상은 나이 많은 언니가 세례도 (죄사함) 받지 못하고 떠날까 싶어 어지간히 애간장이 탔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마음 바꾸기 끝에 참예수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 때였습니다. 2023년 봄. 미국에 사는 조카가(동생의 딸. 김*냥 자매)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내용은 끈질긴 내 동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참예수교회에서 같이 믿음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했습니다. 조카의 권유에는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골수분자인 또 다른 동생마저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큰언니가 *자언니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나가시면 되겠네요!” 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권면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선언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참예수교회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 내가 그 참예수교회에 다니려면 너희 동네로 이사부터 가야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85세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무려 3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턱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카는 미국에서 나올 때 부터 가족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더랍니다.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했다 합니다. 조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니, 내 마음이 그리 보드랍게 녹아 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강력한 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른 세례를 받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기 무섭게 어느날 동생은 교회 목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자님이 오셔서 세례에 관하여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찬송도 부르고, 안수 기도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모두 가고 나서 목자님이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통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적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찾아 주셨던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 거니?” 동생은 여기저기 말씀 구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는 권사 노릇을 수십 년을 하고서도 그 말씀 하나도 못 찾아요?” 네.. 사실 나는 분당의 큰 장로교회를 30년이나 다닌 권사였습니다. 네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동생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니, 읽을수록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불렀던 찬송가가 뭐였니? 자녀들과 여행 중이었던 동생은 자녀들을 시켜서 그 찬송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목자님이 안수를 하고 가신 그날 밤부터 내가 아주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지금까지도 평안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2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서 매일 밤 시커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찾아왔습니다. 매일 밤 그렇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 했지요. 그 고통을 듣고서 전에 다니던 큰 교회의 부목사들이 와서 조언을 해주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날 목자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부터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거예요! 2년간 매일 밤이 무서웠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도통 신기한 이 교회를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를 이기는 교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는 마귀의 권세와 이적을 주신 하나님

     이사 날짜를 잡고서는 하루하루 이사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꾸 방해가 생겼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 세례를 먼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받는 날 급작스럽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세례받는 것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랬다간 내 동생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교회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면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지 뭐에요. 동생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또 바꾸지는 않을까 걱정 하면서 말이죠. 동생이 나를 보고서는 방긋 했습니다. 세례 터로 출발하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교회 안에 들어가 얼마나 신이 나게 깔깔거렸는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경험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평생 수족냉증이 너무도 심해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고 살아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에 세례를 받고 나서 수족냉증이 그렇게 좋아졌지 뭐에요. 수면양말 벗어 버렸습니다. 발가락에만 시림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는 수면양말 없이도 살겠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신어야겠지만요. 아주 신기해요 아주!

     사실 저는 파킨슨병을 15년 앓아 왔습니다. 2년 전 돌아가신 남편도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은 통증이 아주 극심한 병이랍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엉덩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마구 베는 것 같은 말도 못할 통증이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통증 주사는 총 7대를 맞는데 그 통증 주사도 아주 고역스러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를 정도에요. 세례를 받고서 얼마 후 병원에 통증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례 병원으로 갔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앞에 가서 번쩍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나 엉덩이가 안 아파요! 어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요!” 오랫동안 내 병과를 지켜보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아 그러면 주사를 맞으실 필요가 없지요!” 했습니다. 

     그날 병원까지 가서는 주사를 안 맞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 신기해지는 거지 뭐에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도 다 겪어 본다며 이 신기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직 제 말을 못 믿는 눈치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있을 텐데. 믿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족냉증이 아니라 굽은 허리를 펴주셨다면 우리 애들이 단번에 믿었을 건데 아쉽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고 얼마 후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세족례, 성찬례에도 참예 했습니다. 예식이 참 길었습니다. 자꾸 일어서고 앉고 늙은이라 힘이 들었지만,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성령도 빨리 통과(수령)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직 통과(수령)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라서 영은회를 마치고 동생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또다시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아주 힘이 세진 나는 동생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 뿐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동생의 목에 상처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우리교회 김권사가 그러는데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래!” 정말이지 마귀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목자님이 또 오셔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렁찬 고함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평안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 세족례)

    무슨 근심 있을까

     이사 날짜를 잡고 이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니, 교회 가는 날까지 이 잠깐은 왜 이렇게 길고 시간이 안 가는지요. 시간은 느렸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정된 날짜에(23년 11월)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교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첫 안식일 출석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급히 와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안식일 교회로 오는 길에 또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나가야 하는데 도통 교회 가는 길이 이렇게도 열리지를 않으니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폐가 많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휴 폐렴이면 어떻고, 더 안 좋으면 어떻겠어요. 늙은 나이에 나를 불러 주셨는데 무엇이 근심입니까. 일단 퇴원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서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지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쁩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말씀 듣는 것도 기쁨이요, 안수기도도 기쁨이에요. 그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큰 병원에서 결과를 들었지요. 결과는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분명 많이 좋지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평안키만 합니다. 할렐루야!

     

    늙은 종의 마지막 사명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거동도 힘들고, 병도 든 늙은이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의 식구들을 여기 참예수교회 참 진리 안으로 이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이 늙은 종을 불러주신 이유는 남은 가족을 인도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셨을 것 아닙니까? 내가 우리 8남매의 첫째에요. 남매 중에 5번째로 참예수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이제 남은 3명은 내가 끌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천주교 골수분자라서요.

     우리 아들은 세례식 그날이 무슨 영화에(아바타) 나오는 종족 의식 같았다고, 신비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다른 동생은 내가 세례를 받고 올라오는 순간에 아주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침은 “할렐루야!”였어요.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실 섭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세가 늦은 나이 80세에 민족의 수장이 되었다는데, 나도 늦은 나이 85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수장으로써 형제들과 자녀들을 이곳 참예수교회 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성령 충만함과 사명을 다할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늙은 종으로서 남은 생에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갈렵니다.

    (출애굽기 3장 11-12절)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간증의 당사자인 김*성 모친과 동생 김*자 모친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 [복음메시지]내일의 희망을가졌나요?(예례미야 32:3~15)

    [복음메시지]내일의 희망을가졌나요?(예례미야 32:3~15)

    [말씀제목]  내일의 희망을 가졌나요? (렘 32:3~15)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4년 3월 2일

     

    (3)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취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 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운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4)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5) 너희가 갈대아 인과 싸울지라도 승리치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가로되 네가 어찌 이같이 예언하였느뇨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땅에 있다는 것은, 부족함이 많고 흠결투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서 소망을 찾으시고, 즐거움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을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격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나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자살을 생각하게 되지만, 같은 사람이 소망을 가지면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언제든지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소망이 있다면 무인도에서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운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흙탕물 가운데서도 연꽃은 피웁니다. 우리도 연꽃 같은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본문은 희망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렘 32:1)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년 곧 느부갓네살의 제십팔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시드기야의 제 십 년에 하나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포위당한 지 오래되었을 때 이런 멸망의 예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예언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었지요.

    (렘 32: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렘 32: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렘 32:8) 여호와의 말씀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하나멜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땅을 팔았습니다. 

     

    (렘 32:9~15) (9)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본문은 소망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소망의 교훈

     1.소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멜은 ‘너를 위하여’ 밭을 사라고 했지만, 정말 그는 예레미야를 위해서 파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멸망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멜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밭을 샀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첫째로, 하나멜을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속은 것이 아니었지요. 살기가 어려워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 살 궁리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어렵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백성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어려워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고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까지 돌아봐 주실 것입니다. 내 것을 힘써 나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나만 잘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 외면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멜의 삶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렘 32:8)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희망을 잃지 않은 이유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멸망할 나라의 땅을 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해받을 각오를 하고 그 땅을 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레미야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을 보시고 하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큰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3. 내일에 대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렘 32: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내일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왜 예레미야는 명령에 순종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땅 매매를 명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겠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회복해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절망할 거라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어려운 순간에 희망을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에 보약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멀리 있을 때 아름다운 것과도 같지요. 축복도 오랜 고통의 시간 후에 오는 축복이 내게 더 축복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눈앞의 축복만 진짜 축복은 아닙니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시련이 있어야 튼튼한 뿌리가 형성됩니다. 시련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에 어려움과 고통이 온다고 삶을 포기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꿈이 미완성이기에 자신을 독려하게 됩니다. 꿈을 다 이룬 후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무기력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희망이 중요합니다. 희망을 품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아름답고, 그의 삶이 더 힘찬 것입니다. 희망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는 것이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참된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쇠똥구리는 은하수를 보고 길을 찾아갑니다. 땅에서 똥을 굴려도 그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의 근원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연이 연줄에 매여있을 때가 행복하겠습니까, 연줄이 끊어져 하늘로 날아갈 때가 행복하겠습니까? 연줄이 끊어지면 연이 날지 못합니다. 바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여있는 것을 속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연결된 끈이 있어야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여있지 않으면 사람도 땅에 처박히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연줄을 끊어버리면 그 연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바로 땅에 곤두박질치게 될 것입니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소망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소망을 노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복음메시지]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1:12-17)

    [복음메시지]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1:12-17)

    [말씀제목]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3년 10월 7일

     

    (딤전 1:12-17)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교회를 세우는 데 진리만큼 중요한 일이 일꾼을 바로세우는 것입니다. 직분 자들이 바로서지 못해 성업에 틈이 생기면, 교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일군들이 성업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자기에게 이런 직분을 맡겨주셨는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들은 바울과 같은 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후에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을 삼으려고 이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본이 되어야 하고 본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직분을 맡은 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큰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맡겨주십니다. 사람들은 달란트의 양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가 그 맡은 것으로 얼마나 충성했는지, 순종했는지에 있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또한, 맡은 자들에게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맡은 자라는 인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맡기실까요?

     

     첫째로, 물질을 맡기십니다. 

    (시 50 : 1-23절) [1] [아삽의 시]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것을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것 인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물질은 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다가 때가 되면 놓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018년에 주윤발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 했습니다. 그 액수가 8,100억이었습니다. 기부하면서 주윤발은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분은 한 달 용돈을 11만원 썼다고 합니다. 자가용을 가지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습녔습니다.  ‘내가 물질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물질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께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달란트는 금전의 명칭입니다. 금전 중 가장 상위의 용어가 달란트입니다. 또, 이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달란트는 각 사람의 재능대로 주십니다. 기억할 것은,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가장 많은 달란트를 받아 가장 많은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주인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칭찬의 내용이 똑같습니다. 즉, 다섯 달란트이든 두 달란트이든 주인에게는 ‘작은 일’인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가 차이있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 25:24-25)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자기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시고 그것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용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재능이 얼마이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은사를 맡겨주셨습니다.

    ​(고전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 이 은사들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왜 주셨을까요?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를 주신 이유는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는 교회를 위해서 잘 사용할 때 빛이 납니다.

     

     넷째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직분은 맡겨진 것입니다. 구약에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직분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직분, 성가대 직분, 회막에서 봉사를 하는 직분 등입니다.

    (민 8:9-22) [9]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10]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 [11]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 [12]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를 안수케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13]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14]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15]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16]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20]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레위인에게 대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레위인에게 행하였으되 곧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21] 레위인이 이에 죄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그 옷을 빨매 아론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그가 또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정결케 한 [22] 후에 레위인이 회막에 들어가서 아론과 그 아들들의 앞에서 봉사하니라 여호와께서 레위인의 일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좇아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아론의 직분을 위해 주셨습니다. 회막 일은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일인데,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많은 봉사자들을 세워 맡겨주신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엡 4:11-12)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습니다. 이 ‘목사’는 사실 ‘목자’라는 단어입니다. ‘포이멘’은 신약 성경에 10차례 나오는데, 다른 모든 곳에서는 전부 ‘목자’로 번역됩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구절만 ‘목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여러 직분을 맡겨주셨고, 초대교회에도 여러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늦은 비 성령으로 세우신 참예수교회에도 그런 직분이 있습니다. 목자, 장로, 집사, 임원 등이 해당 됩니다. 이 직분은 모두 맡겨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맡겨진 직분에 순종하여 유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목자, 장로, 집사 직분을 받을 자들의 자격에 대해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목자의 자격입니다.

    (딤전 3:1-7)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이 ‘감독’은 ‘돌아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이것은 양떼를 돌보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목자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양떼를 돌보는 사람에게 쓰이는 용어가 감독입니다. 돌본다는 것은, 양떼를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양떼를 돌아보는 책임이 맡겨진 사람이 감독입니다. 목자, 장로가 이에 해당됩니다.

    (딛 1:5-9)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 감독에게 강조되는 것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방받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고집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폭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민 12:1-3)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모세는 성질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감독에게는 이런 면이 있어야 합니다. 또,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파로이노스’인데, ‘포도주를 곁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장로, 감독은 술을 곁에 둬서는 안 됩니다.

    (레 10:9)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 더러운 이를 탐해서도 안 됩니다. 왜 이것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이 생기면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나 하나 새길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직분자는 세상 명예나 권세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 맡겨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가 올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직분자가 성업을 감당할 때, 틈이 생기면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이 없어야 합니다. 기도 시간에 좀 더 간절히 기도하고, 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툼이 있을 때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딤전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

     ‘이와 같이’란, 장로, 목자, 집사, 직분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단정하다(셈노스)는 것은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뒤에서 말을 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이런 틈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한, 절제해야 한다. 교회를 위해 절제하며 맡은 바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직분은 성도를 세우고, 수고와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완전하게 세워가도록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자신이 온전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온전케 되도록 봉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인가요?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가요? 교회를 부끄럽게 하거나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교회를 연약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직분자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줄 아는 충성된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께서도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셨습니다. 직분자는 핍박과 환난이 있어도, 인생에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때마다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본받아 묵묵히 참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딤전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이것은 직분을 감당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충성하다보면, 자신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은 아버지 앞에 설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 자, 믿음에 담력을 얻은 자가 되어 예수 안에 있는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여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가?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날 참교회가 사도 시대의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늦은 비 성령의 함께 하심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교회 내의 성직자가 마땅히 이 일에 솔선수범하여, 전체 신도가 모두 열심히 주님을 섬기길 원할 때, 이로써 교회도 성장할 힘을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된 나(우리 교회)의 성업의 틈을 되새겨 보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를 의지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예배영상 링크

     

  • [교회행사] 교회를 세우는 힘! (2023년 대방교회 전성도 체육 한마당 & 바자회)

    [교회행사] 교회를 세우는 힘! (2023년 대방교회 전성도 체육 한마당 & 바자회)

    교회를 세우는 힘! (2023년 대방교회 전성도 체육 한마당 & 바자회)

     

    지난 8월 27일. 성도 간 화합과 주 안에서 함께함의 기쁨을 목적으로 대방교회의 전성도 체육 한마당과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개회사에서 목자님은 특별히 히브리어 찬양을 먼저 부르셨지요. 

    “쉬르 하마알로트 레다비드 힌네 마 토브 우마 나임 쉐베트 아힘 감 야하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찬양은 ‘시편 133편 1~3절’의 내용으로 ‘형제 사랑과 영생의 복’을 찬양하는 곡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흐뭇하게 보시는 것이 형제들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어찌 그리 선하고,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마음을 살필 수 있지요. 2018년 이후 5년 만의 체육 한마당인데 오늘은 평소 교회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는 다른 은혜를 주시는 날이니, 머리 쓰지 말고 몸을 쓰고, 온 마음 다해 행복의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거하자고 우리 모두에게 권면하셨습니다.

     

    [개회식과 준비 운동]

     

    코로나를 겪으면서 체육 한마당을 포함한 많은 행사의 참여 기회가 부족했기에 성도님들의 표정에는 더욱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간단한 몸풀기 체조로 전성도 체육 한마당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날 게임은 애드벌룬 게임, 돼지몰이, 애드벌룬 배구, O·X 퀴즈, 피구, 족구, 바구니 농구, 장막 줄다리기 총 8가지 종목이 준비되었습니다. 체육관은 모두의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협동심을 발휘하며 소통과 기회의 장이 되었습니다. 체육 한마당을 위해 사전에 구성된 4개의 팀은 모든 연령과 성별이 균등하게 배치되었습니다. 게임별 참여 인원과 기준도 정해 두었기 때문에 누구나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지요. 덕분에 팀 안에서는 아동부의 유아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든 세대가 한 팀으로 만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모든 세대가 한 공간에서 교제를 나누기란 쉽지 않기에 더욱이 소중한 시간이었답니다. 4개의 팀은 두 팔을 들어 환호하며 각자의 팀을 응원했습니다.   

     

    화합되었던, 환호가 넘쳤던 그 순간을 함께 맛보실까요?

     

    [애드벌룬 게임]

     

     

    [피구게임. 오늘은 희*의 날 ^^]

     

    [피구왕. 김*명 집사님]

    이날의 MVP는 만장일치로 ‘피구왕’ 김*명 집사님이셨습니다. 끝까지 홀로 살아남으셨지요. 젊은 세대인 대학부, 사청부, 에스더 등을 다 제치고 한나회에서 피구왕이 나올 줄은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노장이라는 표현은 죄송스럽지만, 노장의 활약과 노장의 품격을 보여 주셨지요.

     

    [차세대 피구왕. 정*정 자매님]

     

     

    [돼지몰이 게임. 방해꾼과 단속반]

     

     

    한쪽에서는 바자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습니다.

    아동부 아이들은 달리기 시합에 나온 것이 아니라, 바자회 시작 알림에 맞춰 물품을 사러 오려는 것이지요. 바자회는 에스더 신도회에서 준비 해 주셨습니다. 기부받은 물품을 각각 분류하여 옷, 패션잡화, 생활용품, 주방 및 가전, 아동용품으로 나눠 판매 담당자들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정산 캐셔도 준비되었지요.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에스더회 소감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 

     

      

    [피구왕의 쇼핑]

    [바자회]

     

     

    [O.X 퀴즈]

     

     

    [남신도회. 족구]

     

     

    그리고 최고의 에피소드 장막 줄다리기! 줄다리기 줄이 끊어진 바람에 해맑게 웃던 자매님들은 팔뚝과 엉덩이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답니다. 

     

        

    [줄다리기. 표정으로 벌써 이겨버린 예진 자매]

    [줄다리기. 대한민국 군인티 아직 못 벗은 승희 형제]

     

     

    [신발 던지기 대회]

     

     

     

    [애드벌룬 배구. 날아올라 멀리 천안까지 가버린 *일 형제]

     

    마지막 경기인 이어달리기! 사실 없던 종목이지만 수많은 경기에도 아쉬움이 남은 현장 사정에 맞춰 이어달리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누나와 레이스를 뛴 남동생은 맨발에 이를 악물고 뛰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실은 지고 있는 팀을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고 합니다. 또 처음 이어달리기에 나선 아이를 위해 같이 뛰어준 아빠도 있었지요. 그리고 처음과 끝을 함께 달려준 아들과 아빠도 있었습니다. *준이가 시작을 그리고 이날 삼 형제를 찾아온 아빠가 마지막을 달려 주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 모든 성도에게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경기. 이어 달리기]

     

    폐회사에서 목자님은 놀랍도록 멋지게 준비해 주신 손길들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가장 어린 담이(설이)로부터 안나회와 바울회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 감동하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삼 형제(*준, *준, *준)의 아버지가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가장 기쁜 사람은 삼 형제의 엄마인 정다운 자매(에스더회)였을 테지요? 

    삼 형제의 아빠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이날 삼 형제가 민폐나 끼치고 있지 않나 싶어 방문하였습니다. 평소에도 이 부부는 삼 형제가 민폐가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답니다. 그렇지만 이날 방문을 통해서 삼 형제인 아이들에게 주시는 성도들의 진짜 사랑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삼단 분리되는 삼 형제를 한곳에 모으려 애쓰는 아빠와 달리, 삼 형제는 각자 친구들과 교사들과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를 막론하고 어울렸습니다. 굳이 붙잡아 둘 필요가 없었다지요? 단체 사진을 보셔요. 각각 편한 대로 아무 곳에서나 자연스레 사진을 찍고 있는 삼 형제를요. 후담으로는 삼 형제의 아빠는 다소 거친 삼 형제가 조금 평온해진 것은 교회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단체 사진. 2023년 전성도 체육 한마당 & 바자회]

     

    [학생부와 교사들과. 특별한 고3]

     

    [단체사진. 대학부]

     

     [단체사진. 사청부와 이설]

     

    끝으로 목자님께서는 폐회사 중 줄다리기 줄이 끊어진 일과 관련해서 대방교회의 괴력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힘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힘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힘이 되어야 하는데 금번 체육 한마당에 참여하는 모든 얼굴들이 한마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고, 대방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데 그 힘이 쓰일 것을 확신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마음속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힘을 하나, 둘 보태어 든든한 대방교회를 세워 갈 것입니다. 

     

    형제와 연합하여 화합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신앙의 향기] 2023년 참북연 찬양한마당 (대방교회 아동부 고*아)

    [신앙의 향기] 2023년 참북연 찬양한마당 (대방교회 아동부 고*아)

    2023년 9월 3일 참북연 찬양 한마당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위에 높으시도다. (시 113편)”

     

    (그림일기.  대방교회 아동부 고*아 어린이  “엄마·아빠의 찬양 발표회”) 

     

    북부 연합의 모든 교회가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찬양을 돌렸습니다. 

    성도의 찬양과 기도 중에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 찬양함이 선하며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니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내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 하리로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허락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이곳에서 찬송하기까지 각자의 교회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웃고 땀 흘리며, 목소리 높여 연습하는 모든 과정을 주님께서 기쁘게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이 시간이 노래 실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높이고 서로의 찬양에 귀 기울이며 마음으로 하나 되고, 입술로 부르는 찬송의 가사 같이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찬양이 생명의 씨앗 되어 온 땅의 호흡 있는 모든 자들이 주님을 기쁘게 찬양 하는 날이 속히 오길 소망합니다. 시종을 주관 하시고 모든 찬양과 영광을 홀로 받으옵소서.

     

     

  • [성도간증]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성도간증]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안수를 받기 위해 걸어 나가는 길. 저의 발걸음마다 눈물이 터졌습니다.  뜨겁고 묵직한 것이 복받쳐 오르며 모든 성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흐느껴 울게 했습니다. 고작 몇 걸음이지만 거북이 엉금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오는 제 모습에 많은 자매들이 “얼마나 아프면..” 했습니다. 너무나 쉬웠던 이 예배의 자리에 간절함으로 다시 서게 해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사건 

    지난 3월이었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 평소와 같이 일요일에 출근하였습니다. 저는 일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바쁜 일상 중에 운동도 챙겨야 하기에 일요일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일과 운동까지 해결하곤 했습니다. 안양천을 따라 구로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가 아주 갑작스럽게 저의 자전거 앞에 가로질러 끼어들었습니다. 힘을 다해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저의 자전거는 앞으로 쏠려 엎어지고 말았고, 제 머리는 바로 땅에 받아 버렸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날 쓰고 나갔던 고글에는 피가 맺혔었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무사하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급히 응급차를 불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함은 다시 막연함으로 

    일요일의 응급실은 혼잡하고 대기 시간도 길었습니다. 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맞고 호흡은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걷기가 힘이 들었지만, CT 촬영 후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퇴원 조치를 하였습니다.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근육이 놀라서 그럴 것이라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란 생각과 달리 새벽에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침만을 기다리다 인근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전문의는 엑스레이에서 등뼈에 뼈가 뭉개져 있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여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심각했다면 곧장 하반신 마비가 되었을 텐데. 아주 다행인 줄알라고 했습니다. 큰 대학병원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 작은 병원에서 발견해 준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함과는 달리 의사 선생님과 대화는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인 대화 유형이었고, 저의 질문과 의견 등에 냉담하셨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3개월간 침대에 누워서 통나무와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생활이라 실감 되지 않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뭐든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MRI 촬영 후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수술의 필요가 있지만, 수술하기에는 위험하고 본인은 할 수도 없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고민 끝에 전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약 없이 긴 시간

    수술과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가까운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이동했지만, 응급실 대기만 12시간 이상 되어 입원이 불가했습니다. 다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또 이동했습니다. 응급실에서 MRI를 확인한 전문의는 환자분은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는 수술할 전문의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막연함 속에서 그토록 듣고 싶던 똑 부러지는 표현이었습니다. 명확한 의견만으로도 저희 부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천 받은 한 척추 수술 전문병원으로 또다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동한 병원에서도 MRI 상태를 보고서 의사들끼리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 줬습니다. 아침에 나섰던 길인데 시간은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엠블런스(구급차)를 타고 이동한 지라 어지럽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행히 이 병원에서는 입원 수속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병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운동복 차림의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서둘러 수술을 해야겠다고 하셨고, 간호사 선생님께 곧장 스케줄을 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응급수술로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휘파람 불며 할 수 있는 수술은 아니지만 못할 수술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 졸여온 저에게 의사 선생님의 표현은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

    수술은 아주 이른 아침에 잡혔습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수술 후에 대한 설렘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히 주님께서 잘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저는 비닐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잠시 후 우주복을 입은 간호사가 와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리셨어요!”  황당하게도 나 홀로 코로나 전용 병실에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렸던 거 아세요? 우리 병원이 피해가 막심합니다.”  코로나 신속 항원 결과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수술 들어간 후 아내에게 맡겨 둔 휴대전화로 코로나 정밀검사 결과 문자가 왔습니다. 김희준 양성. 수술 후 병원은 난리가 났습니다. 병원 장비들도 못 쓰게 되었답니다. 법적으로 코로나 환자는 수술할 수 없으니 만약 수술을 조금이라도 늦췄거나 양성 문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다면, 이날 수술은 못 하게 되었을 테고 골든타임(적기)을 놓쳤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천운을 타고났다며 말씀하셨습니다. 천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에 설레는 하루하루 였습니다. 고통 중에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은 정말 빨랐습니다. 수술한 지 불과 2주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

    퇴원 후 안식일이 되어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느낄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는 다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순간에 벅찬 감정과 하염없이 흐느껴졌던 마음은 아직도 무어라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흐느낌 속에는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성도들의 그 온기와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하염없이 이곳, 저곳 병원을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수술실에 있던 시간에도, 모든 성도님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의 위로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냈던 주님 안의 형제·자매의 사랑을 아주 충만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벅차게 제 온 마음으로 가득가득 안겨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사랑이 가득한 성도님들이 모인 거룩한 성전이라는 마음 또한 생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렇게 흐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아닌 섭리 

    병원 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 가운데 지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 고난을 잘 이겨내고 나면 결국 우리가 깨달을 것을 깨닫게 되며, 바로 세울 것은 바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안일하였습니다. 보기에 평범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켰고 봉사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지 않았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다른 마음을 찬찬히 보게 되었습니다. 일 욕심이 많은 저에게 신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안식일을 지킬 때도 많았습니다. 안식일 예배 때도 머릿속으로는 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고, 안식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안식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고 당일도 호렙산 연습이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하루였습니다. 일이 중심이었던 삶. 저에게는 일이라는 우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라며 합리화하며, 정당화 시키며 일이 중심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선순위라는 작은 그 것에 제 신앙을 갉아먹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바로 외식하는 자구나” 함을 뼈가 저리게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깨우칠 기회가 없었겠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가 빠져 들고 있었구나! 하나님은 이 것을 깨우치기 위해 기회의 시련을 주셨구나. 그 안에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주셨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 하신다는 것을 정말 등뼈가 아프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의 소중함, 안식일의 소중함, 신앙생활의 소중함, 교회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망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와 걱정 많으셨던 부모님 앞에 죄송스럽지만 “이 사고가 나길 잘됐다”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에 경건히 임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번 사고는 워낙 크게 맞은 지라 깨달음과 변화됨이 오래 갈 것이라 기대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 흐트러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술 후 등에 박힌 핀은 이제 평생 박힌 채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평생 간직할 이 등에 꽂힌 핀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증표라 생각합니다. 소망이 흐트러지는 매 순간 그때의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등에 박힌 핀을 증거 삼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고는 나에게 재앙이 아닌 참 평안을 얻게 하였고, 참된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기회를 주시고 참 소망 안에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서 29장 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