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대방교회소식

  • [교회행사] 2023년 대방교회 아동부 소풍을 다녀왔어요!

    [교회행사] 2023년 대방교회 아동부 소풍을 다녀왔어요!

    지난 3월 26일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대방교회 아동부가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도 이제는 일상에서 감기처럼 적응이 되어가고, 봄을 알리는 날씨가 우리 아동부의 마음을 온종일 들썩이게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부모님들은 코끼리와 사자와 토끼 이야기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소풍날은 아동부(30명)와 교사(11명)와  학부모까지 모두 64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중에는 3명의 새친구도 함께했고, 새 친구 중에는 엄마·아빠까지 온 식구가 참석한 가정이 있었답니다. 우리 아동부가 오늘을 기억하여 하나님께로 친구를 초청하고 참예수교회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용기 내 주길 소망합니다.

    소풍날은 하나님께서 어찌나 귀하고 참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셨는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동물원의 이곳저곳 돌아다니기에 딱 알맞은 날씨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도착해 일정을 시작할 때는 미세먼지도 사라져 마치 좋은 공기였답니다. 우리 아동부가 이날 소풍과 날씨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 했을까요? 아무래도 아동부의 기도가 굉장히 간절했을 거라 생각되어요.  

    목자님께서는 이런 아동부의 마음을 참 잘 알고 계셨는지 넓은 공간에서 우리 아동부들이 자유롭게 맘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참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함으로 기도 하셨습니다. 또 우리 아동부를 맞이해 주었던 호랑이에게도 감사! 곰에게도 감사! 하셨지요. 

    그리고 귀한 사실도 알려주셨어요. 소풍은 사라질 ‘소’, 바람 ‘풍’의 조합을 이루는데 무엇이 사라질까요? 마음속의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 등이 사라지겠죠. 이렇게 밖에 나와서 모든 스트레스와 걱정, 근심을 바람에 날려 보내면 참 좋은데 우리는 매번 소풍을 나올 수는 없지요. 성령의 원어 ‘루아흐(xW; r)’에도 ‘바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와 근심과 걱정을 날려 보낼 수 있답니다. 우리 아동부가 이를 기억하고 성령을 구하고 성령에 의지해 기도해 보려 합니다. 

    아동부 소풍은 하나님 앞에 2가지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보며 형제, 자매와 교제의 기쁨을 나눈다. 

     둘째, 친구를 초대하여 전도의 기회를 가진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목적에 맞게 우리 아동부들은 그간의 긴장된 마음을 풀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맘껏 관찰하고 느꼈습니다. 얼굴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만끽하며 기쁘고 즐거워함이 보이시지요?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열매반 / 5-6학년)

     

    (소망반/ 1-2학년,  믿음반 / 4학년)

     

    (사랑반 / 6-7세)

    유아반(초등학교 미만)은 아동부와 교사와 학부모가 한 그룹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아빠들은 모든 아동부의 아빠가 되어 들고, 업고, 태우고 하였지요. 사랑반은 삼단분리는 기본이랍니다.

     

     

    (새싹반 / 4-5세)

    새싹반은 삼단분리를 떠나 함께 모을 수가 없었다지요? 가장 신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체력이 고갈되었을 법한 교사들의 피드백은 당연하고도 의외였습니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아동부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고, 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들의 손을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너무 긴장된 시간이었다는 겁니다. 이에 아동부장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잃어버리지 않으시려 찾으시는 마음이 오늘 교사들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라 교훈했습니다. 교사들은 오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하루의 여정을 마친 아동부장의 피드백은 감사!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순간을 예비해 주신 느낌이었습니다. 꼭 맞는 날씨를 허락해 주셨고, 전날 밤 갑작스럽게 합류 해준 대학부 청년들은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맡아 주었고, 그 덕분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던 집결 장소를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답니다. 선발과 후발대의 헌신도 감사했습니다. 미리 도착해서 집결 장소를 물색하여 맡아 두어 예배(목자님 말씀)도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해산 때에도 후발대로 남아 다 빠져나간 자리를 깨끗이 정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획자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하고 예비하지 못한 순간순간까지 모든 사람을 알맞게 예비해 주셨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은혜 속에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주! 

    너무 함께하고 싶었던 *현아! *수야! *아야! *율아! *호야! *채야! 

    다음 소풍 때는 모두 함께하자♥  

     

  • [기관소개] 대방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대방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주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대방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대방교회 대학부는 누구누구가 있나요?

    대방교회는 총 35명(남 21, 여 14)의 학생이 교사 이정언 형제와 대학부장 장*나 자매를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방교회 대학부는 수시로 인원수가 변경되어요. 국내 지방교회의 유학생들과 외국의 형제·자매들의 방문이 많은 도심교회의 특성이랍니다. 덕분에 대방교회 대학부는 정말 많은 지역과 국가의 형제·자매들과 교류하고 있답니다.

    거의 매달 환영회와 송별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습니다. 부족한 사역의 자리를 채워 주시는 각지의 형제·자매님들이 대학부 모두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분당. 백*한 형제 송별회/  대만. 진*혜 자매 송별회/  미국. 구*나 자매 송별회)

     

    올해 대학부 신입생은 ‘송*현, 유*상, 이*한’ 세명의 형제들 입니다. 신입생의 소감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율동과 찬양(나는 걸작품)도 시켰다죠? 짓궂기도 하지만 애정도 각별한 대학부입니다.  신입생과 대학부를 위한 선물을(5천원 미만)을 미리 준비하고 함께 나누기도 했답니다.

    (신입생 환영회. 대학부의 애정이 느껴지시나요? ^^)

     

    3월에는 엄*준 형제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아쉽지만, 대학부와 잠시 이별을 했답니다. 엄*준 형제의 군대 생활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도하며… 머리도 대학부가 직접 밀어주었답니다. 엄*준 형제의 건강하고 무탈한 군대 생활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 대방교회 대학부와 함께 잠시 활동했던 하*재 형제도 다시 호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발걸음과 그곳에서의 또 다른 시작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엄*준 형제, 하*재 형제 송별회)

     

    아쉬운 이별도 있지만 새로운 만남도 있답니다. 싱가폴에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나다니엘 형제, 분당교회의 백*영 자매가 생활관에 입소하여 대학부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대학부는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나요?

    교회교육은 총회 교육부와 동일한 비전과 운영목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전과 운영목표를 기준 하여 각부(아동부, 학생부, 대학부, 사청부)에서 한 해 목표를 설정하는데 대학부는 기준 목표를 그대로 수용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부는 안식일을 온전히 교회에서 보내고 있답니다. 오전 대예배를 시작으로 오후 교회교육 예배를 마치면 바로 대학부 분반이 시작됩니다. 일부 대학부는 오후 교회교육 예배시간에는 아동부 교사사역을, 오후 분반시간에는 학생부 교사사역을 하고 있답니다. 오후 분반시간에 저희가 배우는 말씀은 총회의 교육과정 중 ‘영혼의 양식 1권’입니다.

    따로 또 같이 활동 할 수밖에 없는 대학부이기에 이외의 활동에서는 아주 똘똘 뭉친답니다.

    이렇게 온전히 안식일을 보내고, 일요일은 김용준목자님과 성경공부 (매주 일요일 오전 10:30)를 한답니다. 목자님과는 ‘제자훈련용 성경공부시리즈 제5권 로마서’를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공부 후에는 점심식사도 함께하면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 놀 틈이 없는 대학부이지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야외분반 / 한강 벚꽃구경 나들이 / 소풍 / 최*진자매 세례식)

     

    대학부만의 특별한 활동이 있나요?

    대학부 모두 함께 참여하는 비전과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서로 신앙 동역자로서 항상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고 있답니다. 매일 영성관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유롭지만 함께 하므로 더욱더 열심을 내고 있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1. 대학부 비전과 기도 제목]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대학부”

     “믿음과 신앙의 성장을 이루는 대학부”

     “성령 충만한 대학부”

     그리고 미수령자를 위한 합심기도

     

    [2. 대학부 영성관리]

    1) 매일 기도하기

    매일 저녁 10시 온라인(ZOOM)에 접속

    대방교회 전성도와 함께 10분 동안 합심기도

    2) 매일 성경읽기

    매일 성경읽기표에 맞춰 성경통독.

    대방교회 성경통독 목표 100명! 에 동참

    온라인(네이버 밴드)에서 나누기

    (각자의 묵상내용/ 성경구절 등 자유롭게)

     

     

    (함께하는 성경통독 / 함께 나누는 말씀묵상)

     

    마지막으로 대학부 교사로서 대학부에 소망하는 점 있나요? (이*언 형제)

    저희 대학부가 참예수교회 정체성을 확립하여 참 그리스도인 상을 정립하길 바랍니다. 그에 따라 주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헌신자로 나서는 대학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시 110: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는 대방교회의 대학부를 만나봤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꾼들인 대학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말씀제목 : 성령의 사역 (요16:5-11)

    2023년 2월 14일 김용준 목자님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생각해보았다. 주님께서는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을 하는 것도,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것도 모두 무지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핍박 가운데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내적으로는 신앙의 혼돈이 있고, 외적으로는 핍박이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어려운 때에 어떻게 해야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리 말씀해주셨다. 또한, 우리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함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시다. 성령이 핍박을 이기기도 하고, 혼돈 가운데서 바른 신앙을 찾게 해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핍박 가운데서도 보혜사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고, 혼돈이 와도 내가 믿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내 안에 거하는 성령이 증거해주신다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간에 바른 신앙을 지킬 수 없다. 성령이 용기와 지혜를 주셔야만 우리가 일어날 수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이나 바울 서신에서도 그런 내용을 볼 수 있으나, 핵심적으로는 복음서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4절부터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

    첫째로, 기억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는가?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령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도와주신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억난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미 들었던 말과 보고 듣고 깨달았던 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미 듣고 본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셔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핍박을 견디게 하시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마치 농사와 같다. 종자를 심었다고 바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여건에서 일정한 때가 되어야 싹이 난다.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싹이 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졌다고 해서 말씀이 바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그때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그 비로 인해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말씀의 싹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듣고 배워두는 것이다. 듣고 배운 말씀이 없다면 생각나는 말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듣고 배워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말씀이 생각나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다.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들은 말씀, 깨달은 말씀, 배웠던 말씀을 적절한 상황에서 생각나게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주목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과 성령 강림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으시면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야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을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다. 이는 모두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이다.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마다 모두 성령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이 일이 일어났다. 또한, 성경의 중요한 일들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가야만 성령이 온다고 말씀하셨는가? 이 성령은 무엇인가? 이 성령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령이 아니라 약속의 성령이기 때문이다. 창조 시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고,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은 역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복음적 기능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이다. 그리고 이렇게 임하는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복음의 역사로 나타나는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임한다.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약속의 성령은 십자가 사건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에야 약속의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다. 주님께서 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이 약속의 성령의 유익이 무엇인가?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이 ‘책망하시리라’는 ‘엘렝크세이’로, ‘엘렝코’의 미래 시제이다. ‘엘렝코’는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바로잡다’, ‘꾸짖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책망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죄’와는 연결이 되나, ‘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연결이 부자연스러워보인다. 좀 더 자연스럽게 풀자면, ‘성령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밝히 드러내주고, 이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주는 일을 우리 안에서 해주신다’는 것이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정죄함을 받는 이유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을 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 알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거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규정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죄보다 심각한 죄라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설교가 사도행전 2장이다. 베드로가 죄를 지적했을 때,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의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하며 변화되었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의 방탕함이나 타락, 부패함 때문이 아니었다. 베드로가 지적한 것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었다.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베드로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그들에게 경고하고 깨닫게 하고 있다. 그 결과가 37절이다.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실제로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것은 로마 군병들이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했다. 로마 군병들이 찔러 죽였고,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예수님을 못박았다고 판정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고백하고 나를 책망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2000년 전의 사건이 오늘날 나를 위한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이 내게 역사하셔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둘째로, 의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이 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주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의를 사람들이 행하는 도덕적인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의의 기준에 따라, 예수님께서 사회 질서를 교란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성 모독죄를 저질러서 처형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일으켰다가 유대인과의 힘겨루기에서 실패한 지도자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올라가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무죄하시고 완전히 의로우신 분임을 증명한다. 죄 있는 자가 다시 살아 예수님께 올라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으시고 하나님께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증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죄의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전한 해답이라는 사실은 의에 대해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이다.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예수님의 희생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이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의로우심이 밝히 드러난 것이다.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셋째로, 성령께서는 심판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으시고 바로잡아주신다. 그러면 그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심판받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 가운데 죽으셨으나, 실제로 심판받은 것은 사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죄인을 위한 대속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사단을 심판하시는 일도 완성되었다고 선포하신 외침이었다. 사단은 죄와 사망, 두 가지 권세로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 승리하셨고, 부활하심을 통해 죽음에 승리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리는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던 사단에 대한 심판이었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성령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어떤 것을 증거하는가? 주님께서 가셔야만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증거하는가? 첫째로, 약속을 주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둘째로,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셨음을 증거한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셔서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심판 받았다고 생각하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셔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음을 통해 성령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증거한다.
    성령은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해주셔서,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핍박 중이든, 환난 중이든, 혼돈 가운데서도 성령을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흔들리지 않는다.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귀한 성령의 본질적 역사이다.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단비가 내리도록,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역사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해주신 말씀이다.

    (예배링크)

  • [신앙의향기] 나의 하나님

    [신앙의향기] 나의 하나님

    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대방교회 신도회 ‘한나회’와 함께하는 ‘신앙의 향기’ 글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의미인지 5글자로 말해봐요!

     

    여러분은 하나님은 나에게, 혹은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의미가 되시는지 고민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한나회와 함께 나의 하나님을 기억 해 보았습니다. 

     

    (사진. 멋진 가을날 ‘한나회’ 회식)

     

    *진 자매  하나님은‘나의 산소다’

    *현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영혼의 쉼터’

    *순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놀라운 은혜’

    *자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나의 피난처’

    *임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은혜의 감동’

    *란 자매   하나님은‘나의 즐거움’

    *명 자매   하나님은‘나의 구세주’

    *남 자매   하나님은‘나의 전부다’

    *주 자매   하나님은‘나의 요새다’

    *재 자매   나는 하나님을‘의지할뿐임’

    *경 자매   하나님은‘나의 인도자’

    *경 자매   하나님은‘나의 모든것’

    *묘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마음의 안식’

    *실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놀라운 사랑’

    *연 자매   하나님은‘나의 방패다’

    *숙 자매   나에게 하나님은‘친정엄마다’

    *영 자매   하나님은‘진리와 생명’

     

    한나회 자매님들 각자의 신앙과 삶이 새겨진 답변이지요?

    이날 기습방문으로 인해 함께 나누지 못한 자매님들의 답변도 기대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한번 생각해 보시죠. 5글자로 대답해 볼까요!

    나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은 나에게?

     

    (시3:3)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 [교회행사]2022년 3년만에김장을 했어요! 감사주

    [교회행사]2022년 3년만에김장을 했어요! 감사주

    샬롬!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11월 26일 저희 대방교회는 3년 만에 겨울 김장을 했답니다!

    많은 신도회에서 모두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신 덕에 200포기의 김장을 단 2시간에 끝마쳤답니다. 

     

    (사진1. 2022년 대방교회 겨울김장)

     

    (사진2. 2019년 대방교회 겨울김장)

     

    3년 전 2019년에는 마스크가 없이 이렇게 수시로 맛도 보며 맛있는 김장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김장을 마치고 얼마 후 코로나에 직면하면서 김장 김치를 함께 먹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전에 나아와 함께 예배드리는 것에 제약을 받았고 신도회가 함께 모여 교제하는 것도, 온 성도가 함께 찬양하는 것도, 함께 먹는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예배는 멈추지 않았고 종교활동을 향한 세상의 크고 작은 핍박이 있었지만, 우리의 신앙은 더욱 굳건하여졌음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저희가 항상 그리워했던 그 순간을 더욱 사모하는 마음으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성도님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과 교제와 식사까지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에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날의 김장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기쁜 날인지 글로는 다 담을 수가 없음이 아쉽습니다. 성도님들 모두의 얼굴에 그 기쁨이 넘쳐나지요? (감사주)

     

    (사진4.5.6.7. 즐겁고 맛있는 김장)

     

    3년 만에 대량 김장을 재개한 우리는 여러 에피소드를 낳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차례차례 착착 진두 하시던 성도님들도 순서를 뒤죽박죽 하셨고 우왕좌왕 어수선함 속에 “이거 넣었나?” 를 가장 많이 반복하셨다지요? 주방에서 퇴출당한 강판(채칼)도 있었습니다. 무려 3분의 성도님들이 그 강판에 작은 변을 당했다 합니다. 한바탕 놀라고 한숨 돌리고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춧가루가 떨어지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생겼었답니다. 바로 교회 근처에 사시는 성도님은 고춧가루를 가지러 집으로 곧장 뛰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모자란 고춧가루가 채워졌고 모든 성도님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맛도 채워졌답니다. 

    아쉽게도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강판에 무를 갈던 목자님 사진이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일손을 돕는 복장은 아니셨지요. 많은 분들께 허리 펴고 웃을 수 있는 잠시를 주셨으니 저녁 식사(수육)의 몫은 충분히 하신 듯합니다.  (누군가 사진이 있어 제보해 주신다면 다시 실어 보겠습니다.)  

    그 시각 주방에서는 수육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무려 200인분에 달하는 양이 준비되고 있었다는데 그 양이 31kg으로 돼지 한 마리라고 합니다. 전성도 모두가 함께 나누는 저녁 식사로 수육 파티가 준비되었습니다.

     

    (사진8.9.10.11.12. 수육파티 준비중)

     

    식당에서는 200포기의 김장 김치가 완성되어 갔고 주방에서는 200인분의 수육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화합과 선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날의 수육은 모두 완판이 되었습니다. 김장 김치와 어찌나 찰떡이던지 입안이 즐거웠고 전성도가 함께 하는 저녁 식사이기에 더욱이 꿀맛이었습니다.

     

    (사진13.14.15. 수육파티 저녁식사)

     

    이담(2살) 어린이도 웃음이 절로 나는 맛있는 수육입니다. 수육을 준비하신 성도님들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수육 완판의 사유는 사랑을 담뿍 넣은 탓! 이라고 밝혔습니다. 맛있게 드시는 성도님들의 얼굴에 그 사랑이 가득 담긴 것 모두 보이시지요?  

    3년만에 이 기쁨의 은혜를 다시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히10: 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성도간증] 이제야 고백하는 나의 하나님 (대방교회 최*혜자매)

    [성도간증] 이제야 고백하는 나의 하나님 (대방교회 최*혜자매)

    할렐루야!  이렇게 뒤늦게나마 하나님을 고백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리며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거제에서 태어났고 모태신앙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제가 교회에 다닌 것은 모태신앙에 따른 의무감뿐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저는 건강의 문제로 교회에서 많은 은혜를 입었기에 이 부분도 교회를 다니는 또 하나의 의무감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거나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 가면 그저 친구들이 있어 재미있어 가거나, 혹은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교회는 저에게 있어 매우 단순한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신앙에 대한 고민 한번 없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대전으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로 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매우 들뜨고 즐거웠습니다. 당연스럽게 교회는 마음에서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교회와는 멀어진 채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생활과 학업에 집중하는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석사과정 입학을 준비하였고 입학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연고가 없던 저는 대방교회에서 운영하는 (자매)생활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 입소하면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와 밀착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 다시 꾸준한 출석을 하게 되면서 그 당시에는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은 고등학교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미온적인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석사과정을 마치게 되었고, 학생 신분을 벗고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저는 또다시 박사과정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참고로 저는 심리치료학을 전공하였고, 직업 또한 인간의 마음을 돌보는 직업이었기에 항상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분야의 공부를 하다 보니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 갈등과 부딪힘이 있었고 늘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그에 영향은 컸고 충돌되는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려 애쓰기보다는 한쪽에 덮어 둔 채 학업에 더욱 비중을 싣고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박사과정을 하다 보니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교회를 다니는 모든 것들이 더더욱 뒷전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오더라도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늘 세상의 것에 저도 모르게 매몰되어 내가 지금 뭘 쫓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상에 쫓겨 지내던 와중에 학기가 지나고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 왔고, 이제 마지막으로 논문에 집중해 보자고 마음먹고 준비하던 찰나에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부터 정확하게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신체적 증상들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식욕도 사라지고 잠도 잘 잘 수가 없었습니다. 체중은 점점 줄어들었고 걷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며칠을 쉬어봐도, 병원 치료를 받아봐도, 약을 먹어봐도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애를 쓸수록 더욱 괴롭고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달팠습니다. 이처럼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알아차린 후 저는 모든 일과 공부를 중단하였습니다. 이때 정말 저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정말이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님 찾는 일 밖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생활이 정지되고 바닥을 치고서야, 그제야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쯤일 계기로 제가 지금껏 추구해 왔던 가치관, 신념, 그리고 지금의 이 고통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이 고통은 분명 하나님께서 제 몸을 통해 보내 주신 신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중요한 무언가를 알아차리라는 신호 말입니다. 저는 이 중요한 신호를 깨닫기 위해 힘써 기도하며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저의 신앙관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그동안  “몸은 교회와 하나님 앞에 간신히 나와 있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참 많이 멀어져 있었구나. 이제는 더 멀어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속을 등한시해 왔고 세상에서 자유분방함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구속하신 당신의 자녀를 끝끝내 이끌어 오시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며 진정으로 나아 오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고백하기 참 부끄럽지만. 저는 인제야 제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과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고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움은 중요치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 끝까지 나아가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기도로써 하나님을 부르짖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제 삶의 관계를 맺어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고 부족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하나님이 제 옆에 계심을 알게 되었고 늘 내 안에 계셨다는 것을 이제는 확신합니다. 제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이고 또한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지, 과거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갈지 다시금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게 서보겠습니다.

     

    시들어 가던 제 영혼에 사랑과 기회를 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 139: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대방교회 성도님들(수세자)을 소개합니다.

    지난 10월 2일은  대방교회 가을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200일도 되지 않은 영유아(박*진 아기)부터 70대의 어르신(홍*유 형제님)까지 총 6명의 형제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얻고 성도로 거듭났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성도님들께 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주!

    세례식 날은 빗방울이 조금 오락가락 이는 날씨였습니다. 더군다나 쌀쌀한 날씨에 너무 춥지 않을까 세례식 장소까지 오는 내내 모두가 걱정과 염려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마음을 받아 주셨기에 다행히 세례식은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10월 2일 (일)  대방교회 하반기 세례식 / 106명 참석]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가을 세례식에는 무려 106명의 성도님들이 참석하셔서 죄사함을 얻는 형제님들을 축하하며, 성도된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아동부 아이들부터 최고어른 신도회까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 안에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022년 10월 2일 (일)  대방교회 하반기 세례식 / 수세자와 가족들]

    세례식 거행 전 단체 사진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얗고 예쁜 (목욕)가운을 입었답니다. 준비해 주신 임원분들의 손길의 섬세함이 참 감사합니다. 특이하게도 이번 수세자 6명 모두가 형제님이었답니다.

    홍*유(남 73세/장사열형제님께서 전도), 

    김*후(남 3세/김태현·김미희부부 둘째자녀),

    박*진(남 1세 ·박형욱·김은미 부부 자녀),

    김*준(남 6세 ·정다운 자매 첫째자녀),

    김*준(남 4세 ·정다운 자매 둘째자녀),

    김*준(남 3세 ·정다운 자매 셋째자녀)

     

    [수세자 : 홍*유형제님 / 장*열형제님께서 전도]

    홍*유 형제님을 전도하신 장*열 형제님은(좌측사진 : 홍*유형제/장*열형제) 홍*유형제님의 성품에 반해 꼭 전도를 하고 싶으셨답니다. 한동네 이웃이었던 두분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만난 계기로 인연을 키우셨다고 합니다. 장*열 형제님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신 후에도 홍*유형제님을 마음에 품고 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2019년쯤 교회에 나오시길 권유해 드렸지만, 코로나로 인해 나오기를 미루셨던 홍경유형제님께서는 2022년부터는 교회에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감사주! 

    두 분은 목자님과 세례와 참예수교회 기본신앙을 7회에 거쳐 공부 하셨고, 두 분 모두 한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배우셨습니다. 홍*유형제님의 그 열의와 뜨거운 마음이 곧(성령) 수령까지 이어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수세자 : 박*진 / 박*욱·김*미 부부 자녀]

    박*욱형제(다니엘회)와 김*미자매(에스더회)는 올해 5월 초 서진이를 득남하게 되었습니다. *진이는 태어난 지 153일만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서진이는 대방교회에서 가장 어린 영유아랍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이쁨과 귀여움을 한 몸에 듬뿍 받는 서진입니다. *진이의 세례식을 축하하러 멀리 계신 친가(천안), 외가(청주, 신학원) 모든 식구가 새벽부터 총출동하셨습니다. 

    온 식구가 *진이가 죄사함을 받고 성도로 거듭남을 귀하고 귀히 여기심이 하나님 앞에 이미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계속해서 서진이가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로 성장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수세자 : 김*후 / 김*현·김*희 부부 둘째자녀]

    *후는 교회와 먼 거리로 이사간 후 태어났고, 곧이어 코로나 시기를 겪었습니다. 배 속에 있을 때 후로 태어나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후를 이렇게 귀한 시간으로 만날 수 있어서 에스더회 이모들은 그저 감동이었답니다. *후는 이제 벌써 혼자 앉아 세족례를 받을 정도로 의젓해졌습니다. 여러 여건상 이번 세례식에 참여하지 못할 상황에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는 *후의 세례식을 도우셨습니다. 아빠인 김*현 형제는 두 아이를 혼자 데려와 세례 교육을 받았고, 세족례도 받게 하였습니다. 되지 않을 것 같은 그 상황도 이겨내 주신, 가능하다는 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형편을 모두 아시는 주님을 깨닫습니다. *후와 *후 가정에 하나님을 향한 더욱 신실한 마음과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수세자 : 김*준(첫째), 김*준(둘째), 김*준(셋째) / 정*운 자매 자녀들]

    정*운 자매는 교회로 다시 돌아와 3형제를 방주에 태웠습니다. 정*운자매가 속한 신도회(에스더회)에서는 ‘믿음의 사람 노아’의 방주에 대한 설교말씀을 들었을 때, 정*운 자매가 3형제를 방주에 태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많이도 울었답니다. 함께 교제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3형제를 구원하는 그 역사 속에 신도회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 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습니다. *운 자매는 하나님을 등지며 지나온 시간에도 등불을 밝혀주셨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돌아오려 했을 때, 세 자녀 모두가 함께 주 앞에 나아올 수 있게 역사해 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3형제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점차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 가길 소망합니다.

     

    [축복송 : 신도회 에스더회와 다니엘회 / 기타반주자 사청부 최*준형제]

    막내 신도회(에스더회, 다니엘회)에서는 수세자 성도님들을 위한 축복송을 준비했습니다. 기타 반주는 사청부의 최*준 형제가 도왔습니다. 함께 축복을 준비하는 시간도, 이날 축복하는 시간도, 이 모든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였습니다. 

    이날 6명의 형제님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어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어 다시 살았듯. 앞으로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 [기관소개-학생부] 대방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학생부] 대방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샬롬! 주님의 이름으로 대방교회 학생부(중/고등부)를 소개합니다.

    우리 대방교회의 학생부 인원은 총 14명(중등부 4명, 고등부 10명)입니다. 학생부 교사는 학생부장(소*수)과 4명의 교사(중등부 박*일,엄*린 / 고등부 김*주,최*준)가 학생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평균 8명(중등부 3명, 고등부 5명)의 학생이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오전 대예배를 드리고 나서 점심식사를 마치면 함께 모여 교제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점심 먹고 사라지는 학생부의 행방이 궁금하셨지요? 매주 점심식사 후 학생부실에 모여 한주간의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간식시간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생부 예배는 안식일 오후 2시 20분부터 시작됩니다.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서 학생부 모두가 10분간 성령으로 합심하여 기도드린 후 예배를 시작합니다. 학생부 예배를 마치면 곧이어 분반예배(소그룹)를 드리고 있습니다. 총회의 교육과정을 따라 구약/ 신약/ 교리/ 영성/ 참예수교회사를 매주 한과씩 번갈아 가며 배우고 있습니다.  현재 ‘영혼의 양식 6권’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부는 매일 성경읽기를 온라인( ZOOM)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 11시에 온라인(ZOOM)으로 모여 한 구절씩 교독하면서 하루 1장 성경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나면 교사들이 읽은 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짧게 근황을 나누기도 합니다. 연초에 함께 시작했을 때와 다르게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을 많이들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교사 2명, 학생부  2명이 함께 성경읽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한 영성관리가 어려우니 성장기에는 더욱 당연하리라 생각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을 응원하며, 독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성경말씀은 역대하, 에스라서입니다. 학생부들이 읽고 나서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어렵더라도 성경말씀을 꾸준히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렵지만 계속해서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해 본 후 각자 느낀 점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더 많은 교회에서 온라인(ZOOM 등)을 활용해 보시길 권유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학생부의 영성관리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활동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올해 5월(28~29일 / 1박 2일)에는 서도교회 방문이 있었습니다. 학생부(중/고등부) 뿐만 아니라 대학부와 사청부가 연합하여 교회순례(서도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첫날은 안식일 예배를 마친 후 출발하여 저녁쯤 서도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사청부와 대학부와 학생부가 섞여서 조 편성이 되었고, 조별 바베큐로 저녁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함께 불도 피우고, 야채도 씻고, 고기도 굽고 하나님 안에 정말 행복하고 맛있는 식사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서도교회 본당에서 찬양기도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고요함 중에 우리가 함께 부르는 찬양은 더욱 선명하고 은혜로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셨을 테지요. 감사주!

     

     

    둘째 날은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지를 견학하였습니다.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지로 추정되는 곳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저희는 그곳을 찾아 말씀으로만 듣던 참에수교회 초기역사의 실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서도교회로 돌아와 초기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우리 학생부들도 믿음의 선배님들을 따라 순교자적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청년이여>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전도서 11장 9~10절)

  • [복음메시지] 축복을이어가는 믿음 (히11:20)

    [복음메시지] 축복을이어가는 믿음 (히11:20)

    [말씀 제목]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히 11:20)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10월 8일(토) 안식일 예배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이삭의 일생은 평범한 삶이었다. 특징적인 믿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삭에 대해서는 이 짧은 구절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삭은 믿음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삭의 일생 가운데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축복을 후손들에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을 통해서 배워야 할 믿음이 이것이다. 후손을 믿음으로 축복했던 믿음이다. 이삭의 특별한 믿음 세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이다

    이삭이 자녀들을 축복한 것이 믿음이었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축복을 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서도 축복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삭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기에 자녀들을 믿음으로 축복할 수 있었는가? 이삭은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녀에게 축복할 수 없다. 이삭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는가?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시다. 언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이다. 이삭은 자신의 죽음 직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말씀을 체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하나님의 축복의 말이 이삭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되고,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다. 즉, ‘씨’에 관한 말씀이다. 이는 이삭을 말한다. 이삭은 이 말씀을 알아들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그 말씀이 이삭에게 매우 강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게 된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복을 계승하였다.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복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자녀에게 축복한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아버지 이삭이 아들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무엇인가?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말씀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이삭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즉,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축복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자기 존재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에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복음을 위해 자신있게 살았던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도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삭과 같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자녀들에게 축복하며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믿음으로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후손을 축복하는 일은 특정한 사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복의 근원이고, 우리가 이것을 믿으며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이 이렇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싶은가? 자녀를 믿음으로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녀에게 전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권세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권세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권세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삭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다.

     

    둘째로,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 아래 자신의 뜻을 두는 순종의 믿음이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이삭은 자기 뜻을 하나님 뜻 밑으로 두었다. 이삭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결단의 믿음이 있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누구나 에서가 장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에서가 먼저 축복받아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과 에서’로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다. 리브가 뱃속의 아이가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지만 이삭은 둘째인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생각하지 않았다. 에서를 더 사랑했다.

    “(창 25:28)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특별히 사랑하여 복주기 원했다. 자기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에서를 사랑하고 축복하기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에서를 축복하려하는 것을 리브가가 알고 야곱을 변장시켜 대신 축복받도록 종용했다. 이삭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다. 진짜 에서가 돌아오자 이삭은 이렇게 말했다.

    “(창 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을 직역하면 큰 두려움으로 떨었다는 뜻이다. 이 ‘떤다’는 것은 ‘전율했다’는 의미이다. 이삭이 전율하며 떤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큰 뜻을 저버릴 뻔 했다는 것에 대한 전율이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을 수도 있다.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이다.

    살면서 내 뜻과 하나님 뜻이 충돌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만약 하나님 뜻과 내 뜻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내 인생에서 이어주신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는 믿음이었다. 이삭의 축복에는 이러한 믿음이 담겨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이삭이 바라보던 일은 어떤 것인가? 장차 오는 일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받은 땅의 축복이 있었고, 자손에 대한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이 축복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축복을 이어받았지만 이 축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잘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를 축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자녀를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삭이 믿음의 사람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첫 임지에서 교회 성장에 대한 꿈이 있었으나, 현실 속에서 만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러면 첫 소망을 다시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 우리 현실에도 불구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꿈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꿈은 현실 속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이기 때문이다.

    “(학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이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가?

    “(학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잘것없는 현실 앞에 있을지라도 이 꿈을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학 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꿈을 지금도 계속 가져야 한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계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 교회를 통해 이루실 약속이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약속에 근거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꿈을 꾸어야 한다. 이 소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소망의 근거는 내게 있는 것도,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이삭은 그 믿음이 있었다. 이삭에게 있는 최고의 믿음은 장차 올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삭은 자기 신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뜻 앞에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았으며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내 뜻을 돌이켜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축복의 통로로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이삭과 같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고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릍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 믿음 속에 그 축복을 담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유트브 예배링크

  • [신앙의향기] “예수님이 좋아요” _아동부 양*빈

    [신앙의향기] “예수님이 좋아요” _아동부 양*빈

    “예수님이 좋아요”  

    [창작 그림 : 아동부 양*빈(6살)]

     

    예수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말씀과 예배로 예수님을 알아요! 

    하늘에 계신(구름 위) 예수님과 구름 아래 뜬 해님을 그렸어요.

    우리는 예수님이 좋아요! (엄지척)  그리고 예수님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