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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원주교회 이지해 자매)

    [성도간증]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원주교회 이지해 자매)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 원주교회 이지해 자매 간증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원주교회 이지해입니다.

    오늘 간증은 제가 30년 전, 그리고 20년 전 겪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약 30년 전 이야기 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저는 같은 반 친구의 생일잔치 초대로 그 친구 집에 방문했습니다.
    그 친구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한국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몇 년 공부를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는 미국에서 가져온 처음보는 신기하고 재밌는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친구들이 호기심에 물건을 하나 둘씩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어떤 남자 친구가 골프채를 들고 장난을 쳤습니다.
    그 당시에는 골프가 대중화 되지 않았기에 골프채가 신기한 물건으로 보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둘러싸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골프채가 긴 물체라서 그 친구에게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거리 계산을 잘못 한건지 그 친구가 휘두르는 골프채에 그만 왼쪽 눈을 맞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에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리였는데 왜 내가 골프채에 맞았지..” 이런 궁금증이 남아있습니다.

    맞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별이 보였고 눈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어린마음에 “난 이제 앞을 볼 수 없겠구나..”
    그 짧은 순간에 절망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 길로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다행이 왼쪽 눈썹을 맞아 5~7바늘 정도 꿰맸고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어릴 때라 상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집에 누워 있을 때 골프채를 휘두른 그 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저희 집으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과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신체 모든 기관이 다 소중하지만 눈은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이라는 속담이 존재할 정도로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 입니다.
    만약 그 골프채가 단 몇 mm 아래로 내려왔다면 저는 소중한 왼쪽 눈을 잃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안경이 눈을 보호해 주었을 수도 있지만 반면에 만약 안경이 크게 고장났다면
    안경 다리의 뾰족한 쇠 부분이 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고 또 렌즈가 쪼개졌다면 눈을 찔러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셔서 제 소중한 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두 번째는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당시 전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여 서울에 가서 다시 수험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노량진에서 학원 수업을 듣고 나오던 중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내용은 공무원 시험을 한번 보는게 어떻겠냐는 전화였습니다.
    대학 진학에만 신경을 써서 직업에 대한 고민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공무원 시험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당시 비싼 학원비로 아버지께 마음의 짐이 있었던 저는 흔쾌히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인근 서점에 가서 공무원 시험 문제지를 찾아보니 국어, 영어는 그나마 평소에 공부를 해서 익숙했지만
    특히 행정학이라는 과목이 낯설고 생소했습니다. 사실 국어, 영어 같은 과목도 익숙하기만 하지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또한 당시 수능공부를 하던 중이라 공무원 시험을 특별히 준비할 수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험 날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텐데 굳이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도 하지 못했고 그 시험을 보러 춘천까지 가야해서 솔직히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원서 낸 돈도 아깝고 왠지 모르게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시험을 보고 왔습니다.
    그 이후 까맣게 잊고 노량진에서 다시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핸드폰으로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는 예나 지금이나 잘 받지 않는데 그날 따라
    “혹시 학원에서 뭐가 잘못 되었다고 전화를 했나” 이런 생각이 들어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실 평소에는 학원에서 전화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날따라 어떤 끌림이 생겨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행정안전부 000 인데요.. 이지해씨 맞으시죠?”
    왠 남자분이 전화를 걸었는데 평소 듣도 보도 못한 행정안전부라고 해서 이게 무슨 일인가 매우 의아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필기시험에 합격했는데 추가로 제출할 서류를 안냈기에 의아하여 그 궁금증에 전화를 거셨다고 하셨습니다.

    평소엔 이런 전화를 안 하는데 제 나이가 어려서 특이해 보여 관심이 생겼고 추가 서류 제출 마감일이 내일로 다가왔는데도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혹시 다른 시험에 붙어서 서류를 안내는 건가? 이런 호기심이 생겨 전화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답변은 “제가 합격 했다구요? 전 당연히 떨어진 줄 알고 합격확인을 안했습니다.” 였습니다.
    그 당시 제 개인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나오기 전이라 인터넷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번거로워 확인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분도 매우 황당해 하시고 저도 당혹스러워 전화를 사이에 두고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추가 서류를 작성하여 아버지와 함께 행정안전부에 가서 서류를 제출 했습니다.
    주님께서 행정안전부 직원분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저에게 전화를 걸게 하셨고
    또 평소 모르는 번호 전화를 받지도 않는 저의 마음에 변화를 주셔서 전화를 받게 하신 일은 참으로 은혜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저에게 생각지도 못한 길을 주시고 또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시험에 무사히 합격하게 하셔서 지금까지 직장에서 20년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정말 큰 행운이고 큰 축복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나아갈 길을 모를 때 길잡이가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인데
    그 길잡이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창조주라니.. 그 얼마나 놀랍고 행복한 일인가요..
    주님께서 제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 동안 다시 무수히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다양한 선택의 길이 제 앞에 놓일 겁니다.
    그때마다 제가 잊고 있었던 하나님을 체험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그리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꿋꿋이 주님께서 주신 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구절이지만 시편 23편 1절~4절 말씀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간증을 준비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주님의 은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저를 선택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 [성도간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조영민 집사

    [성도간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조영민 집사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6: 1-5)

    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과거의 삶을 돌아보면 저는 아주 연약하고 서글픈 유소년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마냥 유쾌하고 재미있게 뛰어놀기보다는 늘 어딘가 아파하면서 하루하루를 쓸쓸히 지낸 것만 현재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갑자기 몸이 아팠는데 어떤 분이 저를 업어서 동네 입구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저는 길거리에 누워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십대 중반에 들면서는 항상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십대 후반이 되자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저의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러다가, 매일매일 적지 않은 육신의 고통을 겪으며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아신 제  큰고모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고모님이 우리 집을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어떤 분을 특별히 대동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당시 청주교회를 시무하시던 허충진 목자님이십니다. 그날 목자님은 저를 앞에 앉혀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에 그분은 뜻밖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네, 우리 집으로 가세!” 그 말씀에 저와 부모님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언가 강력한 힘에 붙잡힌 것처럼 그날 곧장 목자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이후 여러 날을 청주교회 목자님 사택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지냈습니다. 당시 청주교회는 일반 주택의 방 두 개가 전부인 아주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그중 작은 방은 목자님 내외와 두 딸이 거처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방은 예배 날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목자님 아들 삼형제와 제가 거주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2)

      그 무렵 목자님 가족은 매일 아침, 당시 저로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방언 기도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언젠가부터는 저도 그 방언 기도를 그들과 똑같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바로 목자님께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저들과 함께 여러 날 기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나 보다!’라고 막연히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목자님께 그런 사실을 고백했더니 목자님은 그때 제가 성령을 받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새 신자로 바뀐 제가 우리 참교회에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목자님께서 저에게 이런 권고를 하셨습니다. “대전교회에서 영은회가 있으니 자네, 대전으로 가서 세례를 받고 오게나.” 사실 그때 저는 세례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은 체계적인 세례 교육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목자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단순한 마음만 갖고서 어떤 준비도 없이 대전교회로 갔습니다. 그 시절엔 대전교회에 차량도 없었습니다. 교회 앞의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일반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 주위 사방에 뿌연 먼지가 하늘 높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수용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유등천까지의 길을 반은 버스를 타고 반은 걸어가서 세례를 받고 왔습니다.

    3. 요추 3, 4번 수술을 받다.

     그렇게 신앙행활을 하던 중 총회 사무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는 총회가 서울 녹번교회(현 서부교회)와 함께 있었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총회로 가서 사무원으로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저는 먼저 부모님과 상의한 후 총회 사무원으로 일하겠다고 결심하고 상경했습니다.  총회에서 공식 채용되어 사무원으로 일한 지 2~3개월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극심해서 걷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청주로 내려왔고 시내에 있는 어느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미 저의 병이 많이 진행되어 심각한 상태이므로 당장 입원하여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자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목자님은 저에게 다른 병원에도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다른 병원으로 가서 또 검사하니 동일한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제 저로선 더 지체하면 몸 상태가 더 위험해지는 게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청주 어느 병원에 입원하여 요추 3, 4번을 하나로 묶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는 약 한 달간 약물과 주사 치료가 있었습니다. 무릎에서 명치까지 석고로 깁스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로 적어도 6개월은 지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저는 퇴원하게 되었고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의 입원실을 벗어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니 무엇보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몸으로 매일 24시간 누워서 6개월을 지낸다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일이 도래하여 그 거대한 깁스를 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저의 몸이 깁스한 상태로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쳐 누워만 있다 보니 이제는 옆으로 눕는 것이나 일어서는 것조차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저를 둘러싼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너무나도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조금씩 적응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여섯 달이나 누워만 있었기에 발바닥에서 굳은살이 다 풀어져 버렸습니다. 마치 갓난아기의 발처럼 매우 연약한 발이 되어서, 간신히 일어선다 해도 발바닥 통증이 극심해 잠시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두께가 약 5cm인 스펀지 매트를 방바닥에 깔았습니다. 그 매트에 발을 얹으니 겨우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의 중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손으로 벽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벽을 따라 방에서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니 저의 몸이 그처럼 쇠약해지고 기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6~7년간은 그야말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몸은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어 갔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보시고 제 몸을 굳세게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4. 주 안에서 결혼,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이 주심

      그러다가 제 나이 28세가 되었을 때 별안간 저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 부모님의 부탁을 받은 목자님께서 저의 결혼을 주선하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받은 결혼관은 결혼도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해야 하고 그래야 진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하여, 신앙 안에서 주시는 목자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난생처음 맞선을 보게 되었고 다른 건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날 맞선 상대인 바로 그 사람, 지금의 아내와의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즈음 저로서는 사실, 결혼과 관련하여 무엇을 주장하고 무슨 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처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결혼할 만한 여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습니다. 일단 저를 무조건 결혼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집 안의 논이라도 팔아서 저에게 가게라도 하나 장만해 주면 그럭저럭 먹고는 살지 않을까 해서 제 결혼을 추진하셨다고 합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힘입어 저는 1984년 6월 3일 청주교회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 후 2~3개월 무렵이 되자 아내가 첫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소식에 부모님은 물론 온 교회 성도님들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결혼하고서 이듬해 4월 29일, 사랑하는 첫딸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귀한 선물로 믿고 처음에는 딸의 이름을 ‘은혜’로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청주교회에 이미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가 있기에 <인혜>로 지었습니다. 이제 어엿이 부모가 된 저로선 하나님이 맡기신 소중한 딸이므로 잘 키워야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가장(家長)의 책임도 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겐 변변한 직업이 없었습니다. 새 식구가 늘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제 마음엔 무척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저는 여러 날 고민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무심코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뉴스 하나가 저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충청북도에서 지방 공무원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며칠 후에 저는 아내에게 “도청에서 공무원을 뽑는다고 한대.”라며, 지나가는 말 하듯이 그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반색하면서 그 시험에 자기가 한번 응시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동네 여러 집을 찾아다니면서 고등학생들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일에 어머니도 선뜻 동참하여 그 시험 관련 책들을 빌려다 주셨습니다. 아내는 그 책들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시험 치르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자전거에 태워서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시험을 다 치른 후엔 또 자전거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집으로 오는 중에 사뭇 기대하는 마음으로 도청 게시판을 훑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기 게시된 합격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이 아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내는 공무원 연수원에서 일정 기간 소양교육을 받았고 86년 3월 1일 옥천군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전과 달리 제 가족이 평소처럼 청주교회를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옥천에서 청주로 가려면 직행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해도 편도로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럼, 당시 저희로서는 토요일 안식일 예배 참석도 상당히 힘들어질 뿐 아니라 밤 예배 참석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맙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대전교회 쪽 교통편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전교회는 예배가 끝난 후까지도 시내버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족 모두 소속 교회를 대전교회로 변경하기로 하고 그때부터 대전교회로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또 하나의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딸과 23개월 차이 나는 둘째 딸입니다. 차녀(次女)의 이름은 원래 첫딸의 이름으로 하려고 생각했던 <은혜>로 지었습니다. 저의 딸들과 관련하여 지금도 제가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옥천에서 살던 시절 두 아이 모두 질병으로 인해 병원을 찾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가정이 대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지가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5. 아버지를 전도함

     제 가족이 옥천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자연히 청주 본가와 분가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거리가 상당히 멀어지자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종종 기회가 닿는 대로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버지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것을 권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도 저희와 함께 교회에 다니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줄곧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나 잘 다녀라!”그러던 어느 날, 제가 큰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다음 안식일부터는 청주로 올 테니 아버지, 저랑 함께 교회 갈 준비하고 계세요!” 하지만 교회에 대한 아버지의 거부감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나는 교회에 가지 않으련다!” 그래도 제가 물러서지 않고 다음 주에 청주로 꼭 오겠다고 말하면서 그 주 안식일에 청주 본가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새 아버지가 단정히 옷을 차려입고 교회 갈 준비를 다 마치고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일정 기간 저는 아버지 전도를 위해 안식일마다 아버지와 함께 청주교회로 출석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세례를 받으셨고 그로부터 얼마 후엔 성령까지 받으셨습니다. 오랫동안 세상 백성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신 것입니다. 이전에 저는 아버지 구원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예상보다 매우 순조롭게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6. 아내의 뇌종양 수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아내의 걸음걸이가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 보이는데 평소와 다르게 비틀거리며 걷는 것입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병원에 가서 정밀 진찰해 보자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 말에 대해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기는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 동구청 인사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의 배우자이자 보호자인 저를 부른 것입니다. 그 인사담당 공무원은 저에게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든지 아니면 사직(辭職)하라고 통보했습니다. 느닷없이 던져진 그 말에 저희 부부는 상당히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갈 것을 말하니까 한의원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한의원 3층에 일반 내과 의원에 가서 상담 후 CT 촬영을 해보았습니다. 머리에 직경 5~6cm 정도의 종양이 있는 게 발견되었습니다. 무척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게 과연 확실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저는 다시 그 CT 촬영 자료를 제가 다니던 병원에 제출하여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자료를 본 병원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그 말에 저는 ‘아내가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초조한 마음에 곧바로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병세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저에게 형수님이 다음날 서울대병원에 가서 외래 진료를 받을 예정이니, 그 전에 속히 아내의 그 CT 촬영 자료를 보내달라고 당부했고 보내 드렸습니다.급기야 아내는 구청에 병가를 내었고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1주간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병원의 권고를 따라 6개월에 한 번씩 세 차례나 머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저희 부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디 무사히 수술받게 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치료해 주세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예정된 첫 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내의 이마 위를 10cm 이상 절개하고서 시행한, 12시간이 넘게 걸린 대수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귀 뒤쪽으로 10cm 이상 머리를 절개하고 받은 수술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일반 수술과는 다른 감마나이프 시술, 즉 방사선 치료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내가 병원 수술과 치료를 잘 받았고 뇌종양은 성공적으로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시술에서 방사선 노출량이 많아 그런지 아내의 체력이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함께하심으로 그 모든 어려운 치료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임 때까지 성실하게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찬양합니다. 뜻밖의 위중한 병으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그렇게 큰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데 사실 그 시기는 큰 딸 인혜가 고등학생, 작은 딸 은혜는 중학생이어서 부모의 보살핌과 뒷바라지가 한창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두 아이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오로지 엄마의 수술 성공과 무사 회복만을 기도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밥해 먹고 학교를 잘 다녀 주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딸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손길로 저희 아이들을 붙드시고 인도해 주신 것 또한 대단히 감사합니다.

    7. 두 딸의 국공립학교 교사 임용

     두 딸 모두 하나님의 은총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교회 생활은 물론 학교생활도 충실히 하면서 학업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매년 경쟁률이 너무나 높아서 요즘도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국공립학교 교원 임용시험에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하여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면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안에서 본인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이 지면을 빌어 부모로서 새삼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8. 큰딸의 결혼과 손녀 출생

     어느 날 큰딸 인혜가 부모인 저희 부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교회 신도가 아닌 같은 대학교 선배라는 겁니다. 미리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희 부부는 신앙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믿음 안에서 짝을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가르치고 인도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 결혼 문제가 저희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와 아내는 잠시 놀라고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고 큰 딸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최소한 그가 우리 교회를 다녀야 한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인혜 역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가진 아이였기에 부모의 말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그 청년이 우리 교회 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 후 매주 안식일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교회에서 서로 반갑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저와 아내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인혜와 그 청년이 정식으로 함께 저희 부부를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자기들, 이제 결혼하고 싶으니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했고 결혼과 관련한 모든 일을 본인들에게 맡겨서 결혼하게 했습니다.

     이윽고 큰딸에게서 손녀가 태어났고 저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랑스러운 손녀를 돌보는 일은 그전엔 전혀 알 수 없었던 크나큰 기쁨과 즐거움을 저에게 듬뿍 안겨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점점 자라서 한참 동안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 같더니 지금은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또 올해 초에 있었던 아동부 영은회에서 귀한 성령까지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손녀는 여태껏 말썽을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도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 주면 순순히 잘 받아들입니다. 정말 착하고 총명한 아이입니다.

    9.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신다.

     저는 평소에 나름대로 교회 일에 봉사하는 가운데 틈틈이 사회봉사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의 외출 이동 봉사를 했는데 매월 한 차례, 그들의 외출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는 대전 오류동 모 교회의 부목사 ㅇㅇㅇ씨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저에게 한 가지 사업을 제의했습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대전지소를 설립하자는 겁니다. 저는 그 사업 동기가 선하다고 생각하여 선뜻 동의하고 그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도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돈으로 그 사업체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비품 중에 가구나 컴퓨터는 폐기물에 가까운 것들을 기부받아 사무실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주변 많은 사람에게 매월 5천 원 ~ 1만 원의 금액을 기부받으며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대전 동구청으로부터 장애인 바우처 일을 제안받고 그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거기에서 나오는 잉여금이 있기에 최소한의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해졌습니다. 후에는 직원도 2사람을 모집 채용하여 외견상으로도 사업이 점차 자리를 잡은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모집을 한 직원들은 다른 단체의 직원들과 비슷하게 월급을 주면서도 저와 그 사람은 급여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저희는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편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해 3명의 장애인을 직원으로 등록하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매월 3명분에 해당하는 180만원씩의 장애인고용지원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 돈을 저를 비롯한 직원의 월급으로 지출하고 그 돈을 다시 익명의 이름으로 입금하면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됩니다. 그날 그 사람과 저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퇴근했습니다. 귀가 길에 대전역 앞 횡단보도를 지날 때였습니다. 마침 교통신호는 횡단 신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멀리서 한 차량이 오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당장 그 횡단보도를 건너도 될 것 같아서 힘껏 패달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그 차량은 바뀐 신호인데도 불구하고 그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서 그냥 냅다 달렸습니다. 저는 그 차에 치여 도로 위에 쓰러졌고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119구급차에 의해 제가 성모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저는 그 교통사고의 발생 경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무지 사고가 날 상황이 아닌데 대체 왜 내가 그런 사고를 당했을까?’ 믿음 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땐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었습니다. 누워도, 앉아도, 일어서도, 머리가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환자로 계속 입원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1달이 지날 무렵, 하나님은 저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아~ 그날 내가 이방인과 함께 협잡하고 편법으로 세상일을 하려고 꾀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이었구나.’ 저는 자책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연락하여 그 직장에서 퇴사하였습니다. 그 직장 일과 관련하여 제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무실에 잉여금이 생기니까 정상적인 회의도 없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서 개인적으로 공금을 착복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도 경찰서에서 3번이나 출석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결국 공금 횡령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 엮여 곤혹을 당했을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구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생긴 어지럼증은 그 후 3~4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어지럼증 떄문에 등산용 스틱을 양손에 잡고 걸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 증세의 치유를 위해 계속 회개하며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 어지럼증이 점차 나아지더니 현재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혀 어지럼증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일을 돌아볼 때마다 저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귀한 깨우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상 사람과 짝하여 세상 죄악의 길로 흘러가 헛된 삶을 살기보다는 그 노력으로 차라리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를 큰 사랑과 큰 권능으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 116:12-14)

     지금까지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너무나도 크고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저같이 보잘것없는 세상 죄인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저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육신에 힘겨운 병도 주셔서 한동안 고생하게 하셨지만, 그로 인해 결국은 물과 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착하고 충성된 일군으로 겸손하게 봉사하라고 저에게 귀한 ‘집사(執事)’ 직분까지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부족하나마 저의 가정이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교회 안에서, 성령과 진리 안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요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 읽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예전의 예배 말씀도 시간을 내어 다시 듣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에게도 그 보배로운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최대의 소망은 저의 가정이 모두 하나님의 집, 교회를 떠나지 않고 이 참 신앙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나라에 꼭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성령과 진리로 저희를 굳게 붙드시고 저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전*헌 형제)

    [성도간증]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전*헌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처음 간증을 권유받았을 때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던 것 같은데

    주제가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라는 알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엄청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나의 생명인데 가장 어린 대학부에서 간증하려니 처음에는 이게 맞을까도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있음을 믿고 담대히 해보겠습니다.

    저는 제 짧은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낀 순간을 간증하겠습니다.

    이 시간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간증으로 제가 아닌 하나님이 나타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성경구절 읽겠습니다.

    “내가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1. 간증에 대한 배경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목자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우리 수원교회 아동부처럼 교회는 저의 놀이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육도 조금은 많이 강하게 받았습니다.

    7살부터 매일 성경을 읽었고 초등학생 때 성경 통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신앙적인 아이구나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심방이나 외출로 성경 읽기를 우리 삼 형제에게 맡길 때면

    저희는 일부러 빠르게 읽거나 안 읽었는데 읽었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제가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던 이유는 가정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에게 가정은 신앙 안에서 큰 울타리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이런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모든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바로 제가 가정을 떠나 남자고등학교 기숙사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목자님 가정은 당시에 3년마다 교회를 옮겨야 해서

    제가 중학교는 안양에서 보냈는데 고등학교를 안양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목자님이 이동하신 지역으로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기숙사로 가서 이런 복잡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처음 저는 기숙사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맨날 집에서 사모님의 스파르타 훈련을 받아온 저였기에

    ‘자유 시작’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 환상은 1주일도 안 돼서 깨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빨래나 청소를 다 해야 했고,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학교에 처음 입학 했을 때는

    후배가 선배를 보면 무조건 인사해야 하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밤에 기숙사에서 얼차려를 주는 등의 악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부분은 적응하면 알아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사 한 번 더 하면 되고 빨래나 청소는 처음에 너무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보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 고등학교에서 처음 맞이한 안식일 문제

     

    하지만 정말 문제는 신앙 문제였습니다.

    기숙사 학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다녔던 학교는

    1학년들이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개학하기 첫 주 전에 신입생 캠프를 하였습니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내내 토, 일요일까지 진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상 학생은 전원이었고 열외나 그런 것도 하나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심란해졌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살면서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나머지

    바로 부모님께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진정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개학 전 안식일은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는 대부분 친해지길 바라는 프로그램으로 재밌는 레크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친구들은 좋다고 웃고 깔깔대는데

    저는 이걸 즐겨도 되나 시험이 들면서 혼자 심각해진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안식일을 보내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저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상황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여기서 정신 못 차렸다간 내 신앙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1.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

     

    저는 개학이 되고 바로 안식일을 지킬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 외출은 토요일 오후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전 예배는 못 드려도 학생부 예배는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저는 반드시 오전에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방책을 더 찾았습니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1학년 부장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도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 다 한목소리로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학년 부장 선생님은 교장, 교감 다음의 서열이었고

    학교에서 가장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신 걸로 유명하셨습니다.

    근데 저는 이제 첫 주를 맞이하는 새내기였기에 그런 데이터 없이

    진명이와 다짜고짜 찾아가서 우리 안식일 믿는데 종교활동으로

    토요일 오전에 외출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NO!” 였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혼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교회를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설득보다는

    일방적인 요구를 했는데 부장 선생님으로서는 이제 막 새내기가

    원칙을 어기고 가야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정말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 그렇게 혼나고 돌아오는 길

    저희는 정말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부장 선생님께 다시 가서 부탁드렸습니다.

    근데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요? 그래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날마다 찾아갔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다가오고 이번에도 안식일을 못 드릴 것 같은 생각에 좌절과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금요일도 어김없이 야간 자습을 하고 11시쯤 끝나는데

    10시쯤 부장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반 포기 상태였고

    혼내시려고 그러나 생각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부장 선생님은 저에게 흰 종이 하나를 저에게 딱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3년 외출증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리 사감 선생님께도 말씀드렸고 이거 있으면 토요일에 아침부터

    외출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외출증을 받았을 때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자신이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토요일 아침을

    그것도 첫 주부터 매주 외출하는 학생은 너희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학교생활을 지켜본다고 하셨습니다.

    약간 경고의 메세지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받으시고 함께하신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부장 선생님이 너그러우신 분이시냐? 아닙니다.

    깐깐한 것으로는 제일가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신용이 좋은 학생이었냐? 아닙니다.

    1주일 된 학생인 데다 첫 주부터 체계의 불만을 가지고 따지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하셔서 안식일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감실에도 이어집니다.

    토요일 오전에 가는 외박자는 무조건 보호자가 와야 밖으로 보내줍니다.

    저도 오전에 외출을 가야 하기에 보호자가 와야 나갈 수 있는 규정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안산에 계시고 천안교회와는 차 타고 20분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분이 바로 이남찬 목자님이셨습니다.

    목자님은 당시 저의 학생부 교사셨습니다.

    당시 학교 규정에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고

    전화번호를 외워 인터폰을 사용해야 했기에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이남찬 목자님의 번호를 받아 연락을 드렸습니다.

    당시 시간은 11시가 넘었고, 전화를 못 받으면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바로 받아주셨고 안식일 8시 30분에 와서 저희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이후에는 규정이 좀 풀렸는데 코로나 이후에 다시 강화되면서

    천안교회 형제, 자매님이 저희를 데려다주시는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매번 신세를 지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난 때에 청주에서 저의 친척이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모부와 이모가 저희를 계속 픽업해 주시면서

    고등학생 기간에 정말 순조롭게 안식일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준비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학교생활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저는 고등학생이 돼서 화요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와이파이는 안 터지고 데이터도 없고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컴퓨터실에는

    과제나 대회 준비 외에는 어떠한 사용도 금하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행동을 하면 정말 좋으신 선생님은 한번 경고를 주시고 다음 뺏어 가시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은 바로 기기를 뺏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압수당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말씀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매일 아침이나 못하면 저녁에 했고, 기도는 오후 자습 끝나고 밥 먹기 전 10분 기도에 힘썼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태블릿이 생겨서

    가족 밴드에 읽은 말씀을 3대지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기도할 때는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잠그고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남고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남고에다 기숙사라면 어떤 작은 독특한 거리가 생기면 바로 놀리고 비꼬는 특징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남고에서 그런 독특한 사람은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신앙적인 부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컨셉이냐?,

    성경 읽는 시간에 문제를 풀었으면 한 등급은 올렸겠다는 등 여러 말로 비꼬았고,

    아멘의 뜻을 모르는 친구들이 그건 어디서 들어왔는지

    말끝마다 아멘 거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아야지,

    아무것도 아니다 하였는데 이게 쌓이니까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하며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어김없이 놀렸습니다. 역시 기도를 한다고 상황이 갑자기 역전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인내할 힘을 주셨습니다.

    짜증 나고 지겨웠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인내하다 보니

    친구들도 애는 진짜다 이러면서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함께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하지 말자,

    안 하는 것이 편하지 않냐고 생각도 했지만 도우심을 느끼며 그 생각을 뿌리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친구들에게 인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친구들이 천안교회에도 몇 번 방문도 하였습니다.

     

     

    1. 결론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고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혹은, 환경을 통해, 능력을 주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릴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심을 느끼게 하시기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근데 저는 이것을 쉽게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갔는데 간증을 준비하면서 조력자에 대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해주는

    저와 수원교회 성도님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립니다.

  •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할렐루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형제자매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교회에서 온 Mercedes Lai, 세디스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2개 학기 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올해 6월, 저는 뉴캐슬 교회의 자매 4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대만에서 열리는 IYF에 참석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금요일 밤 예배는 강남교회에서, 안식일은 동부교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처음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성도님들을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도 계속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부터 매주 RE(종교교육) 수업을 들었고, 매년 열리는 전국 학생 영은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16년, 처음 참석했던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에든버러 교회였고, 뉴캐슬 학생들이 모두 금식을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뉴캐슬 형제자매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저와 두 형제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을 때, 저는 너무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들이 함께 울며 기뻐해주던 따뜻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신앙 여정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때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그때가 제 신앙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환경 속에서 제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였던 저는 세상도 교회도 잘 알지 못한 순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때, 집중도 안 되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으로 느껴지면서 제 믿음은 약해져 갔습니다. 2022년에는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단부터 임종까지, 저는 제 자신과도 멀어졌고 정작 하나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시기 이후, 저는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마음속엔 설명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구름’처럼 남아 믿음을 막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교회 성도들과도 멀어졌고, 여러 감정이 겹쳐져 신앙은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힘들어졌고, 의무감 때문에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제 부족한 믿음을 보고 혹시 누가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도 저는 ‘가야 하니까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온 이후에는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찾고, 흐려진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전처럼 불안함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요. 그래도 동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교회가 제 신앙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지내다가, 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교회에 오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과 통역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도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고, 뉴캐슬 교회와 달리 동부교회에 또래 청년이 적다 보니 처음엔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성도님들의 친절과 사랑을 감사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어렵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또 기도 가운데서도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들리는 방언기도의 익숙한 소리는 제 마음에 큰 평안을 줍니다.

    동부교회에서 가장 감사한 기억 중 하나는 성도님들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매주 직접 준비해 주시는 따뜻한 한국 가정식을 먹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기회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봄 학기에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봄 학기가 되면 다시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 간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려진 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길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세디스 드림

    세디스 자매가 6월에 친구들과 동부교회 방문하여 청년부와 찍은 사진.  앞줄 맨 오른쪽에서 네번째 자매가 세디스 자매입니다. 

  • [성도 간증] 성령이 임하시니 (정준모 형제)

    [성도 간증] 성령이 임하시니 (정준모 형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저의 신앙 간증을 많은 분들께 전하게 용기를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말 주변 없고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제가 여러분 앞에 간증을 하게 됨은 제가 받은 큰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함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간증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크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 1995년 8월 여름, 처음 참예수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19세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참예수교회는 집을 오가며 보아왔던 교회라 크게 부담 없이, 누구의 인도 없이 그냥 지나가다 들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의 저의 삶은 기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라고 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신 부모님 밑에 자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만은 절대 다니지 말라는 부모님의 당부를 들으면서 성장해 왔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기독교 재단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많이 염려하셨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자주 저에게 하셨습니다.

    그러데 이상하게도 저는 고등학교 때 받은 영향으로 고3이 되자 무엇인가 의지를 하고 싶은 감정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고3 여름방학, 독서실에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참예수교회를 들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 성격이 그리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혼자 교회를 가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참예수교회는 어릴 적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던 교회이고 당시 그리 좋은 이미지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요일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배가 없는 날이라서 예배가 있는 날을 안내 받고 약간의 실망감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 화요일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첫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당시 제 짧은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날이었습니다. 예배를 참석하기 전 당시 담임 목자님이셨던 우현도 목자님께서 성령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막연하게만 생각했었습니다. 또 고등학교가 기독교 재단이라 1주일에 한번 성경 수업이 있었고 추수감사절, 부활절 등 기독교 행사를 여러 번 경험했던 터라 그와 비슷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성령 기도라는 것을 접했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그 순간 굉장한 공포심을 느꼈었습니다. 기도 소리가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제 몸을 휘감는 듯한 압도적인 느낌 또한 받았습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면 무엇인가 무서운 존재들이 예배당을 날아다닐 것만 같아 눈을 뜰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저의 첫 기도가 기도가 빨리 끝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참 감사한 것은 굉장한 공포심과 충격이었던 방언 기도 소리가 오히려 정말 하나님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강한 호기심이 생겼고 나도 한번 느껴 보고 싶다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대해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귀신이라는 존재도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얘기 정도로 생각 했었고 남들이 하는 귀신 얘기도 별 무서워하지 않았었습니다.

    처음 충동적으로 교회에 오게 된 것도 단순히 고3이라는 힘든 상황에 조금 위로 받고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당시의 힘든 상황에 대한 도피처로 생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에서 교회를 나왔기에 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방언 기도가 정말 신기하게 다가왔었습니다. 혼자서 일부러 흉내를 내봐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비슷한 또래의 모태신앙들에게 물어 보니 자신들은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었던 소리기에 놀라운 현상이라기 보다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첫 예배 이후 며칠 동안 심적으로 많은 혼동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해 보아도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관해 목자님을 비롯한 여러 성도님께 적극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조그마한 포켓 성경책을 몰래 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고3이라는 당면한 상황보다 성령이라는 충격적인 것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첫 예배 시 보고 들었던 성령, 충격적인 방언기도가 성경에 정확히 나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절~4절 말씀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리고 저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성령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회에 들러 혼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회를 처음으로 방문하고 난 이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에 대한 강한 갈구함을 느끼고 구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교회를 오가며 기도할 때 데리고 왔던 친구가 요셉 목자님 입니다.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반이었지만 교회를 다니기 전까지는 그리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를 가자고 했을 때 순순히 따라 왔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요셉 목자님은 교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단지 제가 가자고 하니까 그냥 놀러 오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몇 번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다 흥미가 떨어졌는지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 달이 지나고 1995년 9월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빨리 받을 수 있는다는 얘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매일 밤마다 성령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과연 다른 성도분들처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 정말 나도 방언을 하게 될까? 혹, 방언 소리가 의도적으로 내는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순간 순간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나도 정말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1995년 10월 21일 밤 드디어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대만에서 모장로님이 초청 강사로 오셔서 영은회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영은회를 간절히 기다렸었습니다. 영은회에서 성령을 많이 받는 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고 그날을 목표로 열심히 기도를 해왔었기 때문입니다.

    영은회 2일째 날부터 기도할 때 약한 떨림이 오기 시작했었습니다. 성령 받게 된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 가 없습니다. 할렐루야를 힘껏 외칠 때 할렐루야가 변하여 저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순식간에 터져 나오고 진동으로 제 몸은 강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도를 하면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직감적을 느꼈고 너무도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서 이제는 티끌만한 의심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굉장히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에도 몸의 진동이 가시지 않고 가늘게 떨고 있었고 두 손을 모으기만 해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성도 분들은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제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성령을 받았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성령을 받게 된 이후 저는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감과 무엇보다 이 세상의 정말 값진 비밀을 제가 알고 있다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세상이 정말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세상적인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졌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들이 제 앞에 너무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로 다가왔었습니다.
    이런 감정과 동시에 이런 값진 비밀 혼자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성령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친구인 요셉 목자님께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못 미더워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교회에 가서 직접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요셉 목자님은 놀러 삼아 오던 교회도 나오지 않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밤이 되어 저희 둘은 예배당에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란 듯이 힘껏 방언 기도를 했습니다. 옆에서 요셉 목자님도 눈을 감고 기도를 했었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의기양양하게 저는 친구를 쳐다 보았습니다. 저의 희미한 기억으로 당황한 눈빛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할렐루야만 외치고 기도하던 제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나중에 요셉 목자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로 제가 처음 성령기도를 접했을 때 느꼈던 공포심과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친구는 변했습니다. 얼마 전 나의 모습과 비슷하게 매일 밤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주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저는 바로 그 뒤에서 기도하며 성령 받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 또 한번 강한 확신을 했습니다.

    요셉 목자님이 성령을 받게 되자 저는 정말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비밀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하고 싶고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같은 반 친구들을 교회로 많이 데리고 왔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존재감 없던 제가 예수에 미친놈으로 수근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다른 친구들은 방언 기도를 보고 들었을 때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이건 정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오직 하나님이 존재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친구들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 친구는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미친 거 아니냐고” 그 때 저는 성령에 대한 굉장한 확신이 있었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방언 기도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당시 요셉 목자님도 지켜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됨)
    그 당시에는 부끄럽거나, 친구들의 반응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전함에 있어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인도로 교회에 왔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방언 기도를 그리 특별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참예수교회를 몰라서, 방언기도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적극적으로 전하고 인도하면 모두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고 충동적으로 참예수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요셉 목자님을 교회로 인도하게 되었고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동안 저는 많은 신앙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 결혼도 하게 되었고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선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핍박을 받았지만 제 자녀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저와 같이 교회를 나오고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참 감사 드립니다.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과 함께하시고 천국에서 모두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족한 저의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님들과 간증을 나눌 수 있어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은 80년 전 1946년 6월 4일(음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고 저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태어난 함경북도 온성군은 백두산 물줄기가 두만강으로 흐르는 북한과 중국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와 중국이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저는 엄마 등에 업혀 중국 연변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45년 정도를 살다가 1995년 7월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고 과연 내가 굶어 죽지 않고 80살까지 살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감격스럽고 오직 감사할 분입니다.

    강산이 8번 변한 80년 동안의 이 세상에서 삶의 길은 험하고 고난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자녀로 택하셔서 세례와 성령을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저를 이끌어 주셔서 여러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이렇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살 때는 살면서 겪는 여러 우여곡절과 고난이 내 운명이고 팔자라는 비신앙적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은 후 부터는 북한, 중국, 한국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이 인도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고 싶어 가고, 오고 싶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행복한 가정과 교회를 주신 것이 무척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들어와서 참 하나님을 믿은 16년의 시간 동안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그동안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무척 행복하고 이 또한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감사하게 느끼며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 버렸기에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저 나쁜 짓을 안 하고 토요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에 정성껏 참여하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이 이 땅의 장막은 이제 곧 무너질 때가 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집인 하나님의 집에 갈 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는 노력을 하면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숨이 더 찼는데 나이 들어 세월이 가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20년 동안 다닌 병원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니 그러면 검사를 해 보자고 하셨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니 심장에 흰색 선이 보인다고 말을 하며 잘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큰 긴장이 되면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큰 문제없이 살아오다가 갑자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고 하면 딸이 얼마나 놀라겠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또 되었지만 어차피 혼자는 병원에 갈 수 없으니 고민 끝에 딸인 연*자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원에 함께 가자며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식욕도 사라지고 그저 걱정만 앞섰습니다. 대학 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라는 열흘의 시간 동안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고 잠도 안 오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가지 검사를 제안함과 동시에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큰 금액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하니 80이 넘은 늙은 나이에 수술을 하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에 대한 염려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자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딸은 경제적인 것을 고려하지 말고 제일 마음이 편한 대로 결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딸은 수술에 대해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뒤로 몇 번 병원을 간 끝에 결국 의사선생님에게 수술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을 거면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 검사를 갈 때마다 특별한 징후가 없어서 석 달에 병원에 가던 것도 두 차례 정도 갔다가 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크게 아픈 것 없이 멀쩡합니다. 그 사이에 저와 제 딸은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은 때로는 기도 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그것이 곧 잘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를 만나서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지 않아도 나랑 한 식구들이 내면 된 거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딸이 십일조는 꼭 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좋은 것만 달라고 하지 말고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내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주셔서 깨닫게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특히 제 건강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제게 준 생명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삶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지키며, 장막이 무너지고 주님과 함께하는 새 집을 얻을 때까지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은혜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저를 끝까지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장정*자매 가족 사진(왼쪽에서 두 번째 장정*자매) 

  • [성도간증] 병상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원주교회 김싱글 자매)

    병상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 원주교회 김싱글 자매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원주교회 김싱글입니다.

    2017년 1월 3일, 신우신염으로 입원했었고 퇴원 후에 했었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입원 전에 고열이 있어서 감기에 걸린 줄 알고 개인병원에 갔습니다. 혈압이 너무 낮았고 고열 때문에 기운이 너무 없었습니다.
    혈액, 소변, X-Ray등 기본검사를 했고, 원장님이 양쪽 옆구리를 두드리는데 제가 통증 호소를 하니
    콩팥에 염증인 것 같다. 얼른 입원 준비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신우신염 소견서를 주셨습니다.

    세브란스기독병원 신장내과에 갔지만 입원실이 없었습니다.
    입원실이 나오게 되면 연락해준다는 얘길 듣고 집으로 갔습니다.
    혹시, 밤중에 열이 나면 응급실로 오라고 하셨으나, 그날 밤 집에서는 열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다음날 연락이 와서 오후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입원한 첫날 고열과 오한이 밤 10시 경에 있었어요.
    집에서도 열이 있었지만 오한은 없었고, 입원한 첫날 오한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오한 때문에 추워서 이불 하나를 더 달라고 해서 덮었지만 그럼에도 추웠어요.
    이불 두 개를 뒤집어 쓰고 엎드려 한참을 떨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한이 멈췄어요.
    오한이 올 때 긴 시간 동안 움츠리고 힘을 줘서 그런지 몸살처럼 근육통이 약간 있었어요.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웠습니다.
    이게 마지막 고열이었어요. 미열로 약간의 두통이 있었고, 잠들지 못했어요.

    누운 상태에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입원할 때 교회에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새해 초부터 교회 분들을 병원으로 오시게 하는게 죄송해서 치료하고 조용히 퇴원하려고 했습니다.

    교회, 부모님, 언니들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고 남편에게 말했었습니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자님에게 기도 부탁을 드려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누워 있었어요.

    그 때 갑자기 눈앞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처럼요. 극장의 스크린은 한 장면이잖아요.
    하나의 장면이 아니고, 바둑판처럼 작은 네모들이 큰 직사각형 안에 채워져 있었어요.

    작은 네모 한 칸 한 칸마다 다른 장면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장면들이 재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너무 빠르다보니 정신이 없을 정도였어요.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이상한 상황에 얼굴, 팔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장면이 주마등처럼 막 지나가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마지막 밤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무서웠어요.
    혹시 저 장면들이 내 일생인가? 그래서 사람이 있는 장면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따라가며 주시했는데… 저는 아니었고 모르는 얼굴이었어요.

    각 각 네모 속에 그림이 동영상인지 사진인지, 빠르다 보니 구별하기 어려웠어요.
    퇴원 후에, 간증하기 위해 썼었던 작은 노트를 다행히 보관하고 있어서 이번 간증을 준비할 때 읽어봤어요.
    그때도 다 기억할 수 없어서.. 기억에 남은 장면을 썼더라구요.

    자연과 사람들이 보였고, 컬러화면과 흑백화면이 보였어요.
    산과 하늘, 나무, 넓은 벌판에 노랗게 익은 벼. 밝은 노란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네모마다 컬러, 흑백, 자연, 사람의 모습이 섞여있었어요.

    흑백화면에 남녀노소가 함께 있는 장면이 보였고
    또, 한 사람만 있는 장면도 있었는데 빠르다 보니 일 하는 모습인지 그냥 있는 모습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어요.
    정신없이 빠른 화면을 보고 있는데, 큰 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가 텔레비전을 켜놨나..해서 커튼을 제치고 둘러보니 텔레비전은 꺼져 있고, 커튼 밖은 조용했습니다.

    환자가 8명 쯤 있는 입원실인데 커튼이 다 펼쳐져 있어서 환자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양쪽 귀 가까이에 마이크를 대고 부르는 것처럼 아주 크게 들렸어요.
    어리둥절한 상황에 양쪽 귀를 세게 막아봤어요.

    귀를 막아도 노랫소리는 똑같이 크게 들렸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감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우리말인 줄 알고, 무슨 가사인지 들어보려고 집중했는데 알아 듣지를 못했어요.
    우리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말이 아니면 외국어인가? 들어봤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외국어를 들으면 영어인지 불어인지 짐작을 하잖아요.
    근데 외국어도 아닌 것 같고..

    확실히 어떤 곡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들어보니 멜로디는 찬송가처럼 들렸어요.
    불러봤거나 들어봤던 찬송가는 아니었습니다. 약간 빠른 곡이었어요.
    노랫소리가 크고 웅장하게 들려서 처음에는 합창처럼 들렸었는데 합창은 아니었고
    만약, 사람이 부른다고 한다면.. 두 세 명 정도가 부르는 것 같았어요.

    눈을 감고 찬송 소리를 듣는 중에 주님을 찬송하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며
    온전히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해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하시고, 항상 지켜주신다는 주님을 생각하니 울음이 터졌어요.
    베개에 깔아 놨던 수건으로 눈물 콧물을 닦았습니다.

    침대에서 무릎을 꿇고 낮은 소리로 방언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을 기도를 하고나니, 피곤해져서 누웠어요.
    기도를 멈추고 나니 찬송 소리와 눈 앞에 펼쳐있던 영상이 사라졌습니다.

    베개 왼쪽에 넣어 둔 핸드폰을 보니 시간이 새벽 4시 30분이었어요.
    입원하기 전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깊은 잠을 못 잤어요.
    간호사가 혈압과 체온을 재러 올 때까지 단잠을 잤습니다.

    수요일 점심 쯤에 목자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제가 입원을 했고,
    기도 부탁을 드렸더니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 내일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인 목요일 목자님, 장로님, 집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셨어요.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일에서 길어지면 14일 정도 입원하는데

    저는 콩팥 양쪽이 다 염증이었는데 4박5일 입원하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주셔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설 명절에 시댁가서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에 들은 얘긴데, 들리는 찬송 소리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부른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람의 생각이 아닌 말씀을 먼저 생각하고 또,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병상에서 깨달았습니다.
    부족한 저를 깨닫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 읽고 마치겠습니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 ]

    생의 마지막까지 가야하는 믿음의 길이기에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겠습니다.

    부족한 자녀를 언제나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

    (부산교회 전도집회에서 함께 나눈 간증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섭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이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현주 자매: 저희 부부는 말이 서툴고 부끄러움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큰 은혜를 나누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지섭 형제: 저는 모태신앙으로 유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이것이 제게 가장 큰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과 이전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제 신앙은 많이 미성숙했던 것 같습니다. 안식일에 교회 가는 것은 즐거웠고, 친구들, 형, 누나,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는 이유가 제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교회의 분위기와 사람들, 그리고 부모님의 권유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현주 자매: 저는 어릴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을 다녔습니다. 성당에 꾸준히 나가긴 했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진정으로 인정하거나 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말이 되면 부모님께서 성당에 보내셔서 익숙해진 활동을 하듯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당에 가는 것이 어릴 때부터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수능을 치르고 성인이 된 후에는 자연스럽게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고, 이후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지섭 형제: 저희 부부는 대학 시절부터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신앙 안에서 결혼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주 자매와 성격이 잘 맞았고, 이쁘고 착한 여자친구가 좋았기 때문에 교제하며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직장을 구했을 때는 빨리 돈을 모아 결혼하고 제 삶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세상의 목표에만 집중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신앙생활은 점점 무너졌습니다. 예배, 기도, 말씀에서 멀어졌고, 오직 돈을 모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십일조도 너무 아깝게 느껴져 더 이상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였던 현주 자매의 권유로 결혼을 위해 모아두었던 돈의 일부를 코인에 투자했습니다. 그때 당시 코인 붐이었는데요, 여기저기서 코인으로 돈을 쉽게 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채굴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막연한 기대감에 투자를 했습니다.

     

    현주 자매: 당시 저는 면세점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언제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지섭 형제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오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는데, 몇 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안정적인 투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투자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며 사기나 위험 요소가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했습니다. 고민 끝에 결국 투자를 결심했고, 이를 통해 결혼 자금을 더 모으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로 지섭 형제에게도 함께 해보자고 권유했습니다. 투자 후 한 달이면 코인 채굴이 시작되어 수익이 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섭 형제: 그런데 놀랍게도, 그동안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던 것이 제가 첫 수익이 나기로 한 그날 새벽에 90% 이상 폭락해 버렸습니다. 정말 너무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희 삶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매일 싸우기 시작했고, 서로에게 원망과 막말을 하며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현주 자매: 저는 직장을 잃은 상태였고, 지섭 형제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모아둔 돈 전부와 추가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라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었습니다. 지섭 형제는 제가 제 재산의 일부만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지섭 형제와 만날 때마다 심하게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지섭 형제가 잘못된 투자에 대해 인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황이 괜찮아질 거라며 현실을 부정했고, 만약 이를 인정하게 되면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제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섭 형제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는 아무에게도 제 어려움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드 빚 상환 날짜는 다가오고, 직장도 없고 의지할 곳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지섭 형제: 그 이후 어느 날, 현주 자매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디데이가 설정 되어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현주 자매는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계속 물었습니다.

     

    현주 자매: 제가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 그냥 죽으려고 마음먹고 주변 정리를 하나씩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섭 형제가 뭔가 눈치를 챘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한 두 번은 그냥 다음에 알려줄게 하면 넘어갔는데 유난히 마지막에는 더욱 집요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지섭 형제가 충격 받을까 봐 말할까 말까 한참을 고심하고 실토했습니다. 죽어버리려고 했다고. 근데 그 말을 지섭 형제에게 한 그 찰나의 순간 느꼈습니다. 아, 나 죽진 않겠다, 살았다. 이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지섭 형제: 항상 힘든 내색 하지 않던 현주 자매였기에 저는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알게된 것은 자신이 모아둔 모든 돈과 심지어 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최대한도로 받아 투자했습니다. 돈만 쫓으며 살아왔는데 그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일은 현주 자매의 멘탈적인 문제였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적으로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십일조조차 내지 않았던 제게는 기도하는 것도 양심에 찔려 선뜻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세상적인 방법으로 현주 자매를 위로하려고 힐링 강연, 책, 긍정적인 영상들을 보내며 이겨내길 바랐습니다.

    또한, 남은 저의 모든 돈들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돈을 벌어 상황을 만회하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는 주식 시장이 상승세여서 어느 정도 수익을 보았지만, 이 노력들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저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안식일 오전 예배에 일찍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기억 나시나요? 코로나 시기때 예배당 인원제한이 있어 소예배당, 식당방 나눠서 예배드렸었습니다. 저는 주로 늦게 예배에 참석했지만, 그날은 대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찬양 시간, 말씀 시간 내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마스크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날 기도시간에 저는 하나님 앞에 회개기도를 드리며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마음속 깊은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왜 이제야 왔느냐”고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앙생활을 점점 회복해 나갔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현주 자매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전도를 해야 한다니 막막하였습니다. 저 또한 신앙 생활이 무너진 상태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교회 한 번 같이 가볼래?”라고 물었더니, 현주 자매는 제 신앙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왜 그러냐며 거절 하였습니다.

     

    현주 자매: 어느 날 갑자기 지섭 형제가 교회를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며 그냥 계속 울고만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좀 평안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도 교회 한번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말했고 저는 바로 인상을 찌푸리면서 싫다고 거절했습니다.

     

    지섭 형제: 사실 현주 자매는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하기에 만들어졌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존중은 한다고 말하였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는가?”부터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도 결혼 후 종교 강요는 절대 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설득하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화가 점점 안 통해 결국 싸우게 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현주자매가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며칠 후, 놀랍게도 현주 자매가 먼저 “이번 주에 교회 한 번 가볼까?”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얼떨떨하였습니다.

     

    현주 자매: 대학교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지섭 형제가 본인도 모태신앙이고 교회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모태신앙이었기에, 그가 특별히 신앙이 깊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한 번은 지섭 형제가 저를 영은회에 데려갔는데, 방언 기도를 처음 보고 너무 무서워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후, 지섭 형제는 우리 교회는 대부분 믿음 안에서 결혼한다고 이야기했고, 저와의 연애가 눈치가 보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섭 형제가 교회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저는 정말 싫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저에게 교회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혼해도 나를 교회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차라리 성당에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믿고 존재를 인정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일부로 특정 주제를 선택해서 본 것도 아닌데 보는 간증들마다 저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지금 다니는 회사에 취업하게 됐는데 저에게 처음 다가와 준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도 모태신앙 기독교인이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착하고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봐왔던 성당 사람이나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 선배는 제가 겪었던 종교적 갈등을 들어주며 자신의 간증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주었고, 이 경험들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회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사라졌고, 결국 지섭 형제에게 교회를 한 번 가보겠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지섭 형제: 곧, 현주 자매는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점차 하나님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례와 성령, 그리고 참예수교회의 교회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저는 설득하기 위해 제 지식과 여러 예를 들며 이야기했지만, 현주 자매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현주 자매가 하나님을 알고, 진정한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세요.”

     

    현주 자매: 처음에 지섭 형제를 따라서 교회에 나갔을 때, 설교 주제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제가 지섭 형제와 나눴던 언쟁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은 “지섭 형제가 제가 온다고 목자님께 미리 말해서 저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섭 형제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자기도 이 상황이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의심을 쉽게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가끔씩 교회에 나갔는데, 갈 때마다 설교의 주제가 제가 그때 품고 있었던 의문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하나님에 대해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제가 확실하게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시고 들려주세요. 저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직접 느끼지 않으면 믿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천주교인이었지만, 부모님과는 하나님에 대해 깊이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이 되신 후 처음 성당에 나가셨고,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따라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하나님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던 그 시기에 아버지께서 정말 뜬금없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주야, 너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야.”

    제가 무슨 말씀이신지 여쭈어보니, 아버지께서 삼대독자였기 때문에 아들을 낳기 위해 마흔의 나이에 저를 가지셨는데, 셋째도 딸이라는 사실에 낙태를 고민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당에서 낙태는 살인이라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들으셨고, 병원 앞까지 갔다가 결국 마음을 돌려 돌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살리신 거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수많은 시기 중에 바로 그 타이밍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저에게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지섭 형제: 얼마 후 거제교회에서 대학 사청부가 엠티를 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현주 자매에게 함께 가서 놀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설득했고, 현주 자매는 주저하다가 결국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기도회 시간이 왔을 때, 저는 하나님께 제가 현주 자매를 설득하려고 하면 논쟁만 길어지고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현주 자매의 마음을 열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직후, 목자님께서 저와 현주 자매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왜냐면 제 기도가 끝나고 난 바로 다음 상황이었거든요. 목자님께서 현주 자매와 함께 구도자 교육을 받기를 권유하셨고, 제가 설득했을 때는 응하지 않았던 현주 자매가 목자님의 권유에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 현주 자매는 저에게 “나는 교육은 듣지만 세례는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주 자매: 구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지섭 형제와 논쟁이었던 부분들이나 의문들이 거의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례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지섭 형제: 저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정말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제 힘으로는 현주 자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계속 구했습니다. 구도자 교육을 받을수록 현주 자매가 궁금해 했던 부분들이 해소되었고, 점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며 저희 부부에게 가장 큰 고민은 신혼집이었습니다. 이전에 잘못된 투자로 많은 돈을 잃었던 저희에게 전세집은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렴한 월세로 시작하리라 다짐하고 구하는 중이었습니다.

     

    현주 자매: 친정에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얘기하던 중 큰언니가 저에게 “아는 사람이 신혼부부인데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나라에서 지원 받아서 돈 안내고 산다더라.. 너희도 한번 알아봐라” 라고 알려줬고 저는 그런 지원은 아무나 받을 수도 없고 조건이 엄청 까다로울거다 하고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습니다. 근데 바로 그 다음날 저랑 개인적으로 연락은 거의 안하는 친구 한 명이 뜬금없이 카톡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부산 시에서 신혼부부 전세 대출 이자를 지원해주는게 있는데 너희 부부가 생각났다며 들어가서 한번 보라고 링크를 보내줬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어제 언니가 얘기했던 그 지원 같은데 조건들이 생각보다 까다로웠지만 저희가 조건은 다 맞는 상태였고 신청자 중 무작위 추첨식이여서 운으로 뽑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당첨이 되어 저희는 전세2년을 돈 내는 것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언니 말을 귓등으로 들으니 하나님께서 친구를 통해 링크를 아예 보내주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절히 바라던 아파트 청약까지 당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투자에서 모은 돈을 잃었기 때문에 결혼이 다가와가도 자금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게 큰언니가 결혼축의금으로 3천만원을 미리 줄 테니 필요한 거에 보태 써라며 결혼 몇 달 전 3천을 미리 받았고 그 돈과 이후 지섭 형제와 조금 회복하며 모은 돈을 보태서 청약계약금, 전세보증금 등을 해결하면서 무사히 결혼준비를 마치고 결혼식까지 잘 치를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큰언니는 제가 투자로 돈을 잃었고 이런 일들을 겪은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전세보증금도 전세대출이 일반신혼부부대출은 80%까지 나오지만 저희가 당첨된 대출은 90%까지 받을 수 있어서 저희가 가진 돈으로 정말 딱 맞게 보증금을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 비용에 더 보태보려고 시작했던 투자로 마이너스가 되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결혼할 때 쯤 하나님께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계획했던 것보다 더 채워주셨습니다.

     

    지섭 형제: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우리는 깊이 느꼈습니다. 현주 자매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결국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끔 성도님들이 현주 자매를 전도한 저를 칭찬하시지만, 사실 저는 현주 자매를 설득하려다 싸우고 답답함에 눈물로 기도한 것 외에는 한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돌같이 굳어 있던 현주 자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풀어주셨고, 이전 고통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위 사람들, 인터넷 매체, 직장 생활의 모든 순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여 현주 자매의 마음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만을 좇던 저희 부부를 하나님께서 깨우치게 해주셨고,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만약 이전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려웠던 모든 날들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모든 것은 그분의 섭리 아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현주 자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때에 제 주변의 모든 환경을 바꾸셨습니다. 의심 많고 고집스러운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저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는 지섭 형제의 신앙을 회복시키시고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앞날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섭 형제에게 하나님은 없다며 부정하던 그 순간이 강하게 떠오르면서 죄송함에 눈물의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결정하고 다와갈 때 쯤에는 하루빨리 세례를 받아서 죄들을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예비하신 길로 인도해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어떤 큰 시련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 또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가운데 있음인 것을 믿고 어떻게 인도해주실지 기대합니다.

    이제 저희는 세상의 것만을 좇던 삶에서 벗어나,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아 그 신앙이 전승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희 가정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직장 문제로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세상 일로 인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지섭 형제: 마지막으로, 어려움 중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 찬양의 가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달픈 삶에 은혜도 무뎌지고

    곧 사라질 것에 내 맘 두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놓치며 살았네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며

    날 붙드신 주 예수를 보네

    사망 가운데 놓여진 나의 삶을

    날 건지신 그 이름 예수

    나의 한숨을 바꾸셨네

    주를 향한 노래로 소망의 노래로

    나의 눈물을 거두신 주

    예수 이름 안에 살게 하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을 얻고, 그분의 이름 안에서 끝까지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이상으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 [성도간증] 대학부 영은회 다녀와서

    [성도간증] 대학부 영은회 다녀와서

    *영은회 소감발표 

    [김현영 자매님]

    할렐루야!  3박 4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화요일 예배도 드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 주제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였고 거룩이라는 키워드로 제사와 성막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그동안의 예배 자세를 되돌아보았습니다.  평소 저는 예배와 하나님의 일이 세상 그 어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예배 시간을 귀히 사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 많고 실수 투성이인 저의 모습들이 더 드러나는것 같아서 회개의 기도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레위기를 그냥 읽기만 했을 때는 제사와 절기가 복잡하고 되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라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들으니까 절기와 제사들이 모두 하나님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거였더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항상 계실 수 있도록,  삶 속에서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민준 형제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학부 영은회 소감 발표하겠습니다. 교재를 이렇게 들고 나왔는데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라는 주제로 영은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이 레위기 20장 26절인데 레위기하면 항상 가지고 있던 인식은 성경 공부를 할 때마다 제일 기피하고 싶었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복잡하게 많은 구절들이 있고 한 법을 읽는 것 같은 어려움이 들어서 기피하게 됐던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느낀 것은  참 많지만  짧게  3가지로 간추려 보았습니다.

    첫 번째, 예배는 하나님이 사람한테 주신 너무나도 귀한 은혜다라는 것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잖아요. 만약 이 제사가 없었다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도 모른 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됐을 거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배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고 아찔하더라구요. 그래서 예배라는 방식을 주신것이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졌고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속성을 받아서 비로소 거룩해질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거룩함을 가지고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람은 거룩이라는 걸 원래 가질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오늘 저녁예배 주제와 겹치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라는 것입니다. 영은회를 갔을 때 이제부터 다시 영성 관리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 읽기를 다시 시작을 했는데 그때 읽은 말씀이 시편 144편 이었거든요.  1절에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이런 구절이 있는데, 확실히 하나님께서 저의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라는 것을 공감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잖아요. 많은 악들과 싸워야 되는데 계속 싸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고 두려움에 떨게 되는데 영은회를 통해 하나님과 계속 가까이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치유시켜 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돼서 감사했습니다.

    세 번째, 우리 모두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라는 한 가지의 목적만 생각하고 임해서 그런지, 어떤 날은 달갑지 않게 다가올 때도 있었는데, 예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은혜라는 걸 깨닫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써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또 말세에는 성전 밖마당에 있는 자들은 모두 세상에게 짓밟히게 된다라는 말씀도 기억나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신 은혜라는것!  제사장이라는 이 직분을 성막과 제사를 완성을 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완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리해보면 영은회나 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메시지는 네 주변에 하나님을 같이 섬기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라는 것,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여러 직간접적인 기적들을 통해서 보여주셨는데 이번 영은회때 주신 가르침은 사뭇 다르더라구요. 네가 앞으로 이런 일들을 해야 된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점점 나아가야 된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받기만 할 게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일을 해야 되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고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하은 자매님]

    할렐루야! 사실 저는 올해 2월에 대학교를 졸업을 해서 대학부 영은회 가는 게 조금 부끄러웠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그런 마음으로 갔는데 제가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저의 담당 아이들을 그날 일을 못하게 되면 다른 선생님이 대신 제 담당 아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써줘야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가 영은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원장님이 다른 선생님께 주시지 않고 바로 학원에 오지 않게 해서 제가 따로 신경을 써야 되지 않고 온전히 영은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것도 하나님께 참 감사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우리 민준이랑 현영이가 강의 내용을 너무 잘 발표해 주어서 저는 좀 더 짧게 말씀드리자면 레위기는 항상 창세기나  민수기처럼 앞에 있기 때문에 성경통독을 매 해 새해 시작하면 쉽게 읽히는데 그만큼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양질의 강의를 통해서 이건 이런 뜻이다. 이건 이런 상징을 갖고 있다라는 걸 배우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육체적으론 피로할지라도 정신은 말똥말똥하게 열심히 노트를 받아 적었던 것 같아요. 옆에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도 너무 열심히 강의에 타자를 치고 펜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더 자극도 됐던 것 같고, 또 영적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잃지 않아야 된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사실 성인이 된 이후 제 신앙은 저의 몫인데 이전까지 부모님 땜에 손에 밀려 교회를 왔다지만은 이제는 제 몫으로 제가 스스로 내 신앙을 갈고 닦아서 꼭 그 천국에 가야 되는구나.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게 중요하구나를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성령이나 세례는 중요하게 많이 언급이 되는데 예배는 좀 소홀하게 제가 생각했던 부분도 있던 것 같아요. 특히 예배때 항상 제가 늦죠.  어떻게 보면 예배는 목자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설교를 하시니까…… 그런데 예배는 내가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정말 잘못 생각했었네 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하다”라는 말은 구별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제가 살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거룩하고 구별된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참예수교회 대학부로서 사람들에게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양원 형제님]

    최하은 자매님처럼 저도 나이 때문에 마지막 대학부 영은회가 될 것 같은데, 이번 주제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라는 주제를 보고 과연 내가 다른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번제는 가장 흠이 없고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저에게 가장 귀한 것! 시간, 공간 그리고 질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활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도간증] 김학송 형제

    [성도간증] 김학송 형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12~15)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주님의 은혜 나누겠습니다. 저는 임실군 삼계의 ‘김씨 가문’의 종손이자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저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대대로 제사를 지내며 유교 사상을 지키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7살 때 숙부님의 손을 잡고 처음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으며, 부모님께서는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막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세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세례를 받으면 죄를 씻기게 된다고 하여 그 당시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를 깨끗이 씻고 싶어 ‘세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한 저녁에 교회에서 갑자기 몸이 춥고 열이 나기 시작하여 ‘세례’를 받으러 갈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밤이라 무서움을 참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로도 오래 아팠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에 가서 제가 아프게 된 것이라며 숙부님을 나무라시며 교회에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안식일 예배만 참석했으며, 10살 때 서울로 이사 가게 되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회기동 교회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의 성도”라고 늘 마음에 새기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세례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지 20년 후, 27살 때 세례와 성령을 같이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왜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하셨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저를 단련시키고 세례를 받게 한 후 ‘악속의 성령’을 같이 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계신지도 깨달았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 적령기에 참예수교회 안에서 믿음의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상황은 조부모님, 부모님, 6남매의 장남에 형편이 좋지 못했지만, 주님께 기도했고, 감사하게도 현재 저의 아내인 청주교회 신현순 자매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소중한 두 딸을 보내주셔서 믿음의 가정을 이뤘습니다. 결혼 후 20년 넘게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리느라 부족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편히 쉴 수 있는 집 한 채도 마련하며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저와 함께 한 사랑하는 신현순 자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또한 모든 것이 주님의 큰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서울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기상청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거의 다 아는 문제여서 바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저의 어려운 상황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상청 입사 후 기상청의 꽃이라 불리는 기상예보관 업무를 맡았습니다. 일을 할 때 마치 주님께서 예보를 잘 맞추도록 지시해 주신 것처럼 눈, 비 예보를 하면 눈, 비가 내려서 ‘탁월 예보관’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포기했던 대학진학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 대학원에 들어가서 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님의 보살핌 덕분에 기술서기관(4급) 예보 과장으로 41년의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퇴직 후, 학교에서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중 2024년 9월에 ‘소세포 폐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의정갈등)임에도 수술날짜도 빠르게 잡혀 서울에서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은혜로운 것은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담임 목자님, 대전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합심 기도 덕분에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 X-Ray, CT 촬영만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간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저와 늘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의 큰 사랑을 다시 깨달았으며, 현재는 교회에서 ‘샤론 성가대’ 의 베이스를 맡아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기쁘게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저의 사정을 모두 아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