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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참예수교회로 개종하다

    서도교회 고 장달순(영명: 장안나) 집사님이 저희 친정 작은 어머니에요. 저를 임신했을때까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제가 태어나서 몇 살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예수교회로 개종을 하셨어요. 제가 살던 곳이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라는 곳인데 작은 어머니 계실때 교회가 세워졌어요. 돌아가신 허야곱 장로님이  시댁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어머니랑 교회에서 심방 다니셨던 것이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제가 7세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도 아마 교회를 다니셨을 거에요.

    저의 친언니는 고 권묘남씨인데 어릴 때 저랑 같이 믿었어요. 교회 다니다 보니 제사라든지 그런 걸 몰랐어요. 항상 어머니가 교회 가시니까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녔고 엄마 옆에 앉아서 예배 드렸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

    그때는 영은회를 1년에 한 번씩 한게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전체 영은회였어요. 14살 영은회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 받고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았어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일찍 성령을 받아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그날 한꺼번에 다 받았어요. 세례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늦게 받았어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간 언니집에서 많이 지냈거든요. 형부가 군대 가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은회 참석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제 친구 황남옥 자매라고 지금 강남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그날 같이 세례를 받았어요. 성령도 같이 받고요.  세례를 주신 목자님은 누군지 생각이 안나요.

    교회 앞에 물이 있는데 세례받기가 좋았어요.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고 방언이 나오더라고요. 그당시 우리 또래들이 상당히 많았었어요. 지금 서도교회 이정을 장로님이 나보다 한 살 어려요. 같이 컸어요. 근데 저보다 성령을 미리 받았어요. 세례식 끝나고 교회로 와서 다 함께 또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그치지를 않았어요.  방언이 나오면서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구요.

    성령 받은 후 황남옥이라는 친구집이 노봉 교회에서 오리쯤 되는데 밤에 그 친구랑 산길을 둘이 손잡고 찬송 부르면서 가고 새벽에 또 기도하러 노봉 교회까지 오고 그랬어요. 어떤 찬송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랑 그렇게 찬송부르며 새벽기도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나요. 교회 다니면 성경도 순서대로 노래로 배우잖아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그걸 외워놓으니까 성경 찾기가 좀 쉬웠어요

    ♣작은어머니에 대한 추억

    제 기억으로는 노봉교회(서도교회 전신)에는 저희 작은어머니가 유필순 집사님과 사택에서 살고 우리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우리 집에 가마솥이 있으니까 교인들 밥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어요.

    저희 작은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우리 강아지 강아지!” 그랬어요. 제가 성령 받았을 때도 “아이고 내 강아지 성령 받았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자주 함께 잤어요. 교회 와서 자면 새벽에 작은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다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시며 “내 새끼 일어나! 일어나! 기도하자. 엄마랑 기도하자.” 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난 저는 작은 어머니처럼 기도를 오래 하진 못했어요. 작은어머니는 하루 2시간씩 아침에 일어나시면 성령으로 기도하셔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면 오늘 금요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토요일 오전 예배 끝날 때까지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때는 오전 예배만 드렸잖아요.

    금식 기도도 작은어머니 따라서 하게 되는 거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 오래 하시고 기도 시작하기 전에 “너는 조금만 하고 가서 자라.” 그러면 저는 “그래 나 조금만 하고 잘게!” 작은엄마는 보통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셔서 저를 깨워요. 교회에 괘종시계가 딩딩 치잖아요. 작은 어머니는 6시 될 때까지 기도하셔요. 그러고 기도 끝나면 “성경 읽자! 몇구절만 성경 읽자.” 그러면 또 같이 성경 읽고…

    저는 작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했어요. 작은 어머니가 자손이 없어요. 그래서 조카딸들한테 엄청 잘했어요. 저는 오빠 하나에 딸 다섯으로 6남매에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다 그렇게 예뻐했어요. 어딜 다녀 오시면 신발도 사다 주시고 옷도 사다 주시고 ….

    작은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작은엄마는 34세쯤 혼자 되셨대요. 과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신 분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쌍하지요. 시집 와서 남편 여의고 자식도 하나 없고 그렇게 혼자 사셨잖아요. 나중에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희오빠집에 와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영석이와 영근이가 오빠의 자녀들이에요. 제 조카들도 지금 교회를 안나오고 있어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하다

    15살 되던 11월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장동으로 이사했어요. 고 고정희 모친이 저희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에요. 옛날에는 차편도 불편하니까 마장동에서 철둑가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죠. 제가 저희 어머니 손잡고 모시고 다녔어요. 어머니가 앞을 잘 못보셨어요. 살다가 중간에 눈이 어두워지셨어요. 그런데 안식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못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마다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무렵 큰언니가 퇴계원으로 이사를 왔어요. 저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10년이에요. 저는 조카들을 돌봐주면서 언니 집에서 지냈어요. 조카들이 어리니까 언니도 저도 교회를 자주 못갔어요. 회기동 교회 정은진 목자님이 가끔 심방을 오셨어요. 그리고 교회를 한 번씩 갈때는 조카를 업고 다녔어요. 이강분 자매 동생 이명숙 조카를 포대기로 업고 갔어요. 어떨때는 오빠네 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토요일 날 명숙이를 업고 교회를 갔어요.

    믿음결혼을 하다

    시골에 형부가 계시는데 저에게 시골 가서 뭐 좀 배우라고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산지 얼마 안되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가서 작은집에 가서 지냈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총각때 객지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고 제대후 집으로 좀 와 있어서 전주교회를 다녔나봐요. 그때 작은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대구를 갔는데 대구 기차 역전에서 우리 집 아저씨를 알아 봤대요. 어려서 봤으니까 얼굴이 남아있으니 알아본 거예요. 그때 인연이 되어 저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믿음 결혼을 하게 된 거지요. 결혼식은 서도교회에서 했어요. 김디모데 목자님이 주례를 보셨어요. 그 당시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 생각 없었던거 같아요. 신혼 살림은 전주에서 시작했어요.

    시댁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마음 내려놓기

    남편의 어머니는 계모였고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었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 싸우는걸 보면 저는 자리를 피했어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동안 소화를 못시켰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 왔어요. 오빠네 집으로 와서 3개월 살았을 거예요. 방을 얻어서 나갈 때까지 교회를 못나갔어요. 항상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은 있었지만 결혼후 현실적인 생활이 신앙생활을 가로막았어요.

    저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고 늘 생활신조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교회를 다닐때도 ‘이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못 나가.’ 그런 마음이 전혀 없고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잘해야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해도 내가 안 들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되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하고 말다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배려를 해서 그런지,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왜 그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우리 집 아저씨와도 싸울 일이 있으면 말을 안했어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하고 그걸 속으로 다 삭히느라 그런지 소화가 어느 날부터 안 되고 밥을 먹으면 체해서 구토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속이 편해졌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신경 쓸일이 적어지니 괜찮아진거 같아요. 교회는 결혼하고 3년 정도 못나간거 같아요.

    자녀를 낳다

    제가 딸을 22살에 낳았는데 딸 낳기 전쯤 다시 교회를 나갔어요. 두 달된 딸을 세례를 바쳤어요. 제가 교회를 어려서 다녔던 믿음이 있어서인지 교회를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살았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딸을 정월 초에 낳았는데 낳은지 20일쯤 되어서 세례를 바쳤어요. 굉장히 작은 갓난아기 핏덩어리를 세례를 바쳤어요. 세례바치고 아기를 안고 물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둘째 용환이는 조금 커서 3살쯤 돼서 세례 받았어요. 셋째 정환이가 못 받았어요. 정환이를 29세에 낳았는데 그때 살기는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무슨일 때문인지 교회를 좀 못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으면 세례 바쳤을 거에요.

    큰딸 은순이가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워낙 불교가 심하니까 신앙생활을 못했어요.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 다녔을 거에요. 혜영 사모님이랑 잘 알아요. 같이 교회 다녔어요. 제가 집에서 조금씩 부업을 했는데 셋이 학교 다니니까, 직장을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못나간거 같아요.

    신앙을 회복하다

    몸은 못가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있었어요. 부천에 살았는데 양봉도 목자님이 거기까지 심방을 와주셨어요. 두내외분이 오셨어요. 그날 직장 쉬는 날 오셨더라고요. 심방 예배때 405장을 부르는데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이 찬양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되었어요. 교회를 갈 수가 없었는데 제 쉬는 날 심방 오시고 전화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 신앙이 점차 회복되어 간 거 같아요.

    목자님이 전화도 자주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작은어머니 밑에서 커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항상 ‘내가 교회를 가야지, 나 교회 안 나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살기 어렵고 입는것도 여의치 않아서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니가 교회를 더 잘 다니면서 교회 소식을 저한테 많이 전해줬어요. 언니는 저보다 열심히 더 다니셨어요.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

    저의 성격은 친정어머니 닮은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삭히고 참고 인내했던거 같아요. 어머니랑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는 옛날 얘기 같은 걸 잘해 주셨어요. 누가 집에 뭐 팔러 오면 어머니는우리 올케한테 “그 아지매~ 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여서 보내라. 내 집에 온 사람 그냥 보내는 거 아니다.” 하셨어요. 밥 꼭 챙겨주라 하고 시골에 살 때도 장사하러 오는 사람 있으면 우리 집에 다 재워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다 자고 갈 줄 알았어요.

    서도교회 나들이

    한 3년 전쯤에 동부교회에서 목자님과  한나반, 다니엘반이 서도교회, 남원교회, 전주교회로 나들이 간적 있었는데 한가지 후회되는게 있더라고요. 옛날 서도교회를 뜯었더라고요. (우리 작은어머니 당시 지은 노봉교회) 옛날에는 흙집이었잖아요. 그게 흙집인데 그걸 다 뜯었더라고요. 건물 지을때 상량 올린다고 그러잖아요. 가운데 나무에 교회 지은 년도가 아마 써 있었을텐데 나무 뜯은 걸 쌓아놨는데 상량을 보고 왔더라면 몇 년도에 지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더라고요. 그때는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후회되더라고요.

    나의 신앙생활

    예전에는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안 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교회 안가서 어떡하나? 다음에 교회가면 기도를 뭐라고 하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요즘은 몸이 아프니까 안수기도를 좀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안수기도 받으면 눈물이 너무 나와서 받을 수가 없어요.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나와요. 눈물 나오면 좀 힘드니까, 마음이 울컥하고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러는 거겠지! 믿음이 강하면 그러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제가 어릴 때 외운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구절이 항상 머릿속에 담아있어요. 어렸을 때는 한 4~5번만 외우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올해 내가 81살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그냥 많이 안 아프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아프면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저녁에 잘 때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제가 7개월을 교회를 못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유튜브로 예배는 드렸어요. 아들이 아이패드를 사주어서 저녁에는 유튜브로 예배하고 있답니다.

    큰딸 은순이

    제가 요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음이 제대로 안 걸어 지거든요. 예전에는 계단 80개는 손도 안 잡고 올라갔는데 지금 1개도 못 올라가요. 제가 딸과 함께 걷다가 딸에게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 이렇게 니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 그랬더니 딸이  “엄마 희망사항이지 뭐.” 하길래 “그렇게 말하지마! 그렇게 될른지 몰라. 그렇게 얘기해야지.” 했어요. 우리 딸도 참예수교회에서 학생때까지 신앙생활 했기때문에 항상 마음은 있더라고요. 참예수교회가 참 좋았는데…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큰아들 용환이

    가끔 용환이한테 “어떻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해야 교회로 올 건가?” 그렇게 얘길하면 “엄마는 참~ 내가 가게 되면 가는데 뭐 그렇게 말을 해.” 영은회가 돌아오는데 용환이가 이달 말일까지 엄청 바빠서 엄마집도 못온다고 하네요. 건강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교회 동욱형제와 같은 나이면서 생일도 똑같은데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가끔 애가 타서 아들에게 “나 살아있을 때 교회 가는것을 좀 볼 수 있을라나, 없을라나.” 하며 말을 붙이곤 하지요.

    작은아들 정환이

    작은 아들은 내 성격을 좀 닮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는 좀 뭐든지 다독이고 누르는 성격이거든요. 정환이한테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 “너는 내 말 듣냐? 내 말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러면 아들은 “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누구 말 듣고 컸어요? 엄마 말 듣고 여태 크고 장가 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했지. 엄마 말 잘 들었지. 어디다 써놓질 않아서 보여주질 못하겠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딸에게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형제를 잘 챙기고 형제 의좋게 살아라.” 라고 해서 그런지 의좋은 모습 보면 감사해요. 아이들 어릴때 맘대로 못 먹이고 항상 안쓰럽기도 했지만 야단치지 않고 기를 정도로 착했어요. 자녀들이 착하게 커줘서 사춘기라는 걸 모르고 컸어요. 부모 속을 안썩이고 말 잘 듣고 순순하게 잘 커준 자식들이 고마워요.  지금도  3남매가 의좋게 사는 모습이 감사해요.

    지금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 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부군 살아생전 함께 찍은 사진*아드님이 사 주신 아이패드로 성경도 보시고 유튜브 설교도 들으신다고 하심 *교회 활동 모습 / 해마다 성경 통독 하시고 사진 찍으신 모습 

  •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제 삶에 피난처 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험과 고난 속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어떻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는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서울 집에서 멀어서 회사 버스로 출퇴근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 13년 차였고, 누구나 그렇듯 저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회사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6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하루 시작이 6시에 집에서 나와 일을 하고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9시가 넘었고 야근도 종종 했는데 그럴 때는 자정을 넘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12시 넘어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일터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주변의 동료들도 주중에는 삶의 중심이 직장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사는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주하고 쉼 없는 삶에 지칠 때면 ‘남들도 이렇게 사는데….’ 이런 마음으로 근근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바쁜 삶이 당연한 직장 분위기에 휩싸여 잘못된 열심에 대해 스스로 채근하며 더 힘쓰고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면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예배드리고 맡은 사역을 했고, 성경 공부까지 참석하고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요일은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시간을 주로 썼고, 아주 가끔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니는 대방교회 저는 동부교회 아버지는 천주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족이 3명뿐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점점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삶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안식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주어진 교회 일도 하고 성경도 읽고 있으니 부족하지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습니다.

    회사는 점점 제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자 고민하고 달성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가진 역량이나 리더십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버텨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삶이 반복되는데 뭔가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믿는 자가 감당해야 할 사회생활이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삶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한동안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삶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더 힘들고 어려운 삶도 많고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불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삶에 대해 답답하고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길을 보여달라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때로는 원망이 되어 ‘하나님 이것이 당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가요?’ 하고 질문도 했지만, 그래도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생각나 낙심된 마음을 삭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파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거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고,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약 100미터 전, 건널목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빛이 비쳤고 저는 쓰러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운전자는 어두운 길, 저를 보지 못하고, 건널목에서 정지하지 않고 가다가 저는 차량에 치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차에 치여 의식을 잃었고 119구급차에 실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드문드문 기억이 있긴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오후 6시 30분이 넘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제 몸은 일부는 붕대로 싸여 있었고, 눈마저도 붕대에 감겨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 치여서 모든 갈비뼈가 골절되었고, 바닥에 쓰러질 때 몸의 왼쪽 부분으로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는 골절되었고, 왼쪽 광대뼈는 함몰됐고 얼굴의 찢어진 부분은 이미 응급 봉합 수술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병원에 누워있다니….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몸을 크게 다쳤음에도 정신은 온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뜻밖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교회는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소속 교회를 떠나 저를 알고 있는 성도님들은 제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성경 말씀을 적은 손 편지를 어머니 편에 전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심 어린 기도와 위로는 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친척에게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병문안을 와 주시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며 사람들과 멀어진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완고해진 마음과 메마른 정서를 하나님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사고로 인해 육체의 아픔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사고 전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 뜻밖의 사고는 저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안했고, 오히려 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를 허락하셨지만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생각과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고,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병실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어 주변이 많이 놀랐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평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골절된 어깨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던 저는 의연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소요되는 수술이었습니다. 저녁 10시에 회복실로 옮겨졌는데 전신마취에서 회복하는 것은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마취 가스를 호흡으로 빼야 하는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가 숨을 쉴 때마다 통증과 갈증이 심했지만, 물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십자가에 달려 홀로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생각났는데 이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겪는 육체의 아픔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몸이 아픈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깨 수술을 받고 2주에 후에는 함몰된 왼쪽 광대뼈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마취 후 깨어났을 때 고통이 커서 무서웠고, 체력도 떨어진 상태고 수술 위치가 시신경 옆이라, 잘못 신경을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를 친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약해진 것 같아서 수술을 앞두고 불안함에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께 잡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전신마취 회복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습니다.

    3주 동안 수술이 끝났지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병가와 휴직의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특별한 사유 없이 휴가를 줄 수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6개월의 병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피로했던 일과에서 사고를 통해 저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2차 병원으로 옮겨서 회복에 전념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하루에 수면 시간을 절제하며 살았는데 병원에서 충분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저는 성경도 읽고, 설교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고의 고통을 뛰어넘는 제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제 몸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깨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에 핑계를 대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을 알게 하시며 이 기간에 제 육체를 돌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육체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을 관리할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 저의 바쁜 직장 일과 주말에도 각자의 시간으로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간호를 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던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픈 딸을 돌봐 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를 챙기는 여유가 없는 시류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대화도 잘 못했는데, 이번 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위하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 주셨습니다. 사고를 통해 이렇게 저의 잘못된 삶의 흐름을 멈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넉넉해져서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 주어진 휴식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출애굽 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 시간이 흐르면 원하지 않지만, 다시 바쁜 일상에 매몰되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복직하는 것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아도 경쟁하며 빠르게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직장 분위기에 이전 생활이 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그동안 익숙했던 업무나 관계를 내려놓고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타 부서로 옮기는 것도 내가 해 온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내 능력을 알아봐 줘서 허용하는 그 부서의 승인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기에 그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몇 달 있는 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코로나 때 모두 느끼셨겠지만, 안식일 예배에 하나님 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사역의 기회가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지 내 상황을 고려해 보고 결정했으나, 하나님과 성도님께 사랑의 빚을 진 것을 저에게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회복하신 주님이 부족하면 채워주실 것이고, 도와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과 생각과 처지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어려움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교통사고를 겪는 것을 불행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셨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6개월을 쉬는 것까지 누렸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장 10절)

    제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은혜 (부산교회 최정연 집사님)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은혜 (부산교회 최정연 집사님)

    -24년 10월24일 가을특별전도집회시 간증하신 것을 글로 올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교회, 저 교회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로 인도해주셨어요.

    참예수교회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세례도 받지 않고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핍박이 심했지만 성령 충만으로 믿음의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왔는데 남편 역시 혼자 믿다보니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에 농사꺼리도 없고 해서 부산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전 재산이 부산에서 두 칸짜리 방을 구하기도 힘든 돈이었습니다. 주인에게 사정해서 언제까지 부족한 금액을 벌어서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오니 신앙생활하는데 핍박하는 사람이 없으니 교회를 자유로이 다닐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남편과 둘이 맞벌이를 하며 돈을 모아 조금 더 큰 집을 전세로 얻어 부산에 온 지 6년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3년 살았는데 집주인 부도가 나서 그 집이 은행으로 넘어 간다는 겁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전세금을 떼이지 않으려면 그 집을 사야 한다는 데 저희의 전 재산으론 살 수 없는 큰 가격이었습니다. 한번도 하나님께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죄송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가정을 살려 주시라고 제발 밖으로 나가지만 않게 해 달라고… 그러면서 형제들, 아는 분들께 돈 부탁을 했습니다. 웬일입니까,   그 큰 돈이 모아지고 그 집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밤이면 빚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희 집에 공장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공장을 살림 집으로 바꾸어 전세를 주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비워 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공장 쪽에서 운영이 잘 되지 않아 나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살기가 편해지니 기도가 부족했는지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정에 연단을 주셨습니다. 저희 남편이 위암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경과가 너무 좋지 않아서 계속 토하고 수술 자리는 터져서 다시 꿰메고 다른 사람은 2주면 퇴원하는데 저희 남편을 한 달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큰딸을 결혼시키려면 미국으로 가야 하는데 퇴원을 못하니 결혼식을 미뤄야 하나 걱정을 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미국에 딸을 혼자 둘 수가 없으니 잡은 날짜에 결혼식을 하게 해 달라고…’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회복이 빨리 된다고 퇴원을 할 수 있게 해 주면서 결혼 날짜가 좀 남이 있으니 음식 조심하고 다녀와도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일 없이 큰딸 결혼식을 잘하고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갑상선암에 걸렸는데 임파선으로 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무균실에서 3일 입원해서 두 번 치료하는데 입덧을 심하게 하는 것 같이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족의 믿음을 성장하게 하시려고 연단을 주실 때도 더 강하게, 고통스럽게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저희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리 부부를 더 건강하게 해 주시고 부족한 저희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큰 사위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께서 원로 목자님 가정이며 작은 사위는 어머니가 성직자인 믿음의 가정과 인연을 맺게 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두 사위의 믿음 생활하는 걸 보면 감동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사위를 둘이나 주시다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딸들이 믿음 좋은 남편을 만나서 믿음이 더 성장한 것 같습니다. 특히 큰딸은 낯선 미국 땅으로 결혼해 보내게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교회에 헌신하면서 사는 것을 보고 모든 축복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 주시는 것 같아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안에서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면 부족한 것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연단도 많이 더 아프게 주셨지만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고 사랑으로, 축복으로, 은혜로 더 많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항상 기도할 목적을 주십니다. 앞으로 지금까지 받은 은혜 생각하며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 뜻대로 남은 인생 살겠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더 많지만 더 하다 보면 자랑으로 잘못 들릴까봐 이만 마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받은 은혜 간증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삼서 1:2~4>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 [성도간증]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은혜 (원주교회 정영석 형제)

    [성도간증]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은혜 (원주교회 정영석 형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은혜 – 원주교회 정영석 형제 간증 (2024.11.2)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는 가끔 친구따라 타 교회를 몇 번 나갔던 기억만 있을 뿐 교회와 믿음생활은 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3월 퇴근해서 운동 겸 동네 운동장을 걷던 중 문득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를 한 번 다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동안은 가끔 부모님께서 교회 다니라는 말씀은 하셨지만, 당시 마흔 살이 넘은 저는 듣는 둥 마는 둥,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과 ‘어떻게 살면 참다운 인생을 살 것이며, 남들이 보기에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삶을 이끌어 줄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찾아 갈망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저를 선택하여 인도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참으로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부모님이 다니시는 참예수교회를 인터넷으로 찾아 보고 제가 거주하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천안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가깝다 해도 당시 근무지에서 1시간 거리였습니다.

    교회를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바로 그 주 안식일에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참예수교회 첫 방문임에도 성령 기도는 이상하지 않았고, 설교도 귀에 잘 들어왔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목자님과 성도님들께서 저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고, 제대로 된 진리와 신앙생활을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세상의 때가 많이 남아있던 저는 실수도 많았지만 성도님들께서 사랑으로 이해해 주시고, 바른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죄를 씻고 다시 태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씀에 많은 기도를 드리고 많은 설교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 기본신앙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삶의 목표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성령을 받았고, 그 달에 세례를 받으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축복해주셨고, 기뻐해주셨습니다.

    나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생각과 마음으로 너무나 벅차올랐습니다.

    믿음생활을 열심히 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성령과 세례을 받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고 생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으로 조심하며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생각에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고, 그리스도인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저를 닮은 딸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서 항상 감사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을 때 가슴의 따뜻함과 세례를 받았을 때 세상에 다시 태어났을 때의 느낌을 아직까지는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초심을 잊지 않고 신앙생활을 이어 나갈 것이며, 어떠한 어려운 역경이 오더라도 신앙생활을 놓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신앙생활은 저 혼자만이 아닌 주님의 성도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할 때 더 많은 신앙심과 믿음이 굳건해짐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교회 사역에 충실하며, 성도님들과 함께 믿음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 [성도간증] 대만방문 후기

    [성도간증] 대만방문 후기

    <대학부 강민준 형제>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리가 되길 소망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대만방문을 다녀와서 느꼈던 점에 대해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크게 4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부족한 신앙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
    2.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
    3. 표현할 수 없는 감사
    4.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한 행복

    1. 부족한 신앙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

    첫 번째 ‘부족한 신앙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대만방문단의 운영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세계 참예수교회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교회를 귀하게 여긴다.
    2) 또래인 신앙의 동역자들과 주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다.
    3) 대만 교회의 모범을 보며 주님의 뜻 안에서 세계 선교의 사명감을 가진다.

    이 3가지 중 그 어떤 것도 빠짐 없이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마치 누군가가 교육과정이라도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 날 그 날 경험한 것이 모두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들을 하루하루 풀어보겠습니다.

    1일차에는 사역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사전 모임 때 대만에 가서 교류할 찬양을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저는 찬양팀 사역을 맡아 악보 제작, 그리고 피아노 반주와 플룻 연주를 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준비하는 동안 지치고 피곤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2일차에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날 방문했던 까오숑 교회에는 5층에 역사관이 있었는데요.  이 역사관에 걸려있는 사진을  확대해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 당시의 까오숑 교회에는 약 천 명 정도의 신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인원이죠? 저는 그 얘기를 듣고나서 ‘한국 교회도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언젠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참예수교회에는 참 진리가 있고 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렇게 크게 성장한 교회를 통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제 신앙에 자신감이 붙게 되었습니다.

    3일차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만 교회 성도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떠우 교회를 떠날 때  교회 성도님들이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자그마치 약 2분이라는 시간동안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또 각각의 교회에서 준비해주신 식사와 간식들 사진을 모두 모아봤는데요.  모두 양이 엄청 많죠. 맛도 가게에서 먹은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맛이 없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아 취두부는 빼구요.  취두부는 제 입맛에 안 맞더라구요ㅎㅎ 가는 곳마다 성도님들이 저희를 기쁜 마음으로 대접하여 주시는 것을 보고, ‘교회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한국 교회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이 된다면, 과연 저렇게까지 열심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들더라구요. 그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아마 굉장히 어색해하면서 인사도 할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을 거다….” 그런 답변이 나오고 나니까 대만 교회 성도님들의 열정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구요, 그래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4일차에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느꼈습니다. 이 이야기는 좀 얘기가 길어서 나중에 따로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5일차에는 두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요. 첫 번째로 헌금의 중요성입니다.  이 날 방문했던 위엔린 교회는 성도님들의 사역과 헌금을 통해 크게 성장한 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서서 양팔을 벌리면 벽이 닿는 거리의 작은 크기인 건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성도의 수가 점점 늘어나서 더 큰 건물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팔천만 대만달러, 한화로 약 33억 정도의 큰 금액이 건축 비용으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님들의 건축헌금으로 무사히 건축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 헌금의 의미와 중요성을 어디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교회 같았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의미이다’. 위엔린 교회에서 들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반성을 하게 되더라구요. 십일조는 자꾸 잊어먹고, 헌금도 자주 하지 않는 동부 교회에서의 저의 모습들이 떠올라서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헌금에 담긴 헌신의 의미를 생각하며 빼먹지 말고 잘 내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섬기는 자의 영향력입니다.   “사람이 많은 교회일수록 섬기려는 자들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자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는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섬기려는 자가 다른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사역을 할 때 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드릴 때도, 찬양을 할 때도..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활동에서 그 영향력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 자신은 교회 안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에 대한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진정한 예배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목자님께 많이 들었는데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깨닿게 되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인 6일차에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느꼈습니다.  이 날 방문한 타오위엔 교회에는 약 70명 정도의 성도님들이 계셨는데, 그 중에 40명 이상이 구도자분들이셨다고 합니다. 대만도 저희와 같은 고령화 사회이고, 그 속에서 타오위엔 교회에서는 한 분이라도 더 늦지 않고 주님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믿고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 진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진리를 전하기 보다는 그저 다가올 핍박이 무서워서 제 신앙을 꽁꽁 싸매고 숨겨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핍박이 두렵고, 제 신앙을 밝혀야 하는 자리는 몸이 먼저 피하려고 반응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신앙을 마치 부끄러운 일인 것처럼 숨기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복음을 직접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숨기지는 말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작은 용기들을 내면서 바꾸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 하루하루 달랐던 제 경험들을 이야기 해봤습니다. 

    2.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

    두 번째는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번 일정 중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작은 기적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는데요.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학업적인 부분에서의 기적입니다. 저희 학교는 개강주에 강의OT와 작곡과 OT를 진행해서 모든 중요한 사항이 그 때 결정되고, 만약 거기에 참여를 하지 않으면 과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대만 방문 날짜가 이 개강주와… 요렇게! 완벽하게 겹쳐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몇몇 분들은 제가 이것 때문에 굉장히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을 옆에서 봤을 거에요. 하지만 대만 방문을 가기 직전과 또 대만에 있는 도중에 그것이 일정 부분 해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내에서 받을 뻔 했던 불이익들은 대만에 가기 바로 전 날에 해결 방법이 생겨서 모두 구제를 받을 수 있었고, 출결 부분에 있어서도 몇몇 강의들은 출석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부분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의 걱정이 없어지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던 중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들이 생각보다 딜레이가 많이 되어서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약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희가 원래 도착해야 했던 터미널이 아닌, 다른 여객 터미널로 잘못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버스 안에서 기도를 드렸는데요. 그러자 놀랍게도 가봤더니 줄에 사람이 한 명도 없고, 탑승 수속 중 그 어떤 것도 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진행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론 탑승까지 오히려 시간이 50분 정도 여유가 생겨서 면세점도 다녀오고,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하면서 탑승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또래 친구들에게서 나타난 기적입니다.  한 친구가 2일차에 방문한 백화점에서 휴대폰을 분실하였습니다. 해외에서, 그것도 단체 활동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굉장히 찾기 어렵다는 것은 여기 계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텐데요. 모두의 기도와 대만 교회 성도님들의 수고 덕분에 감사하게도 5일차 저녁에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러예 교회에서의 저녁 기도 시간 때 대만에 오기 전에 기간이 연기된 줄 알았던 대회 일정이 갑자기 다시 당겨졌다는 소식 때문에 내일 혼자서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할 수도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대만 시간으로 오전 12시 30분에 그 대회 일정이 어떻게 될지 확정이 된다는 말도 함께 덭붙혔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 시점은 저녁 기도를 끝마치고 난 뒤 대략 오후 11시 40분 쯤이었기 때문에 일정이 결정되기까지 1시간도 체 남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기도 시간 전에 개인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친구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래.. 가게 되더라도 거기에 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하면서 체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놀랍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정이 다시 연기가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뒤 너무나도 행복해서 그 친구와 숙소 복도에서 부둥켜안고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건 알지만,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세상을 움직여서 이런 기적을 일으키셨을까?’  이 질문은 다음 날 아침 기도 시간에 목자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해서 답해지게 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인지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3. 표현할 수 없는 감사

    세 번째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입니다.목자님께서 아침 기도 시간에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 3:3-4 ‬  이 구절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순종하고 니느웨로 가서 원래라면 다 돌아보는 데 3일이나 걸리는 성을 불과 하루만에 다 돌면서 하나님의 예언을 전파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목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이라고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하신다”.  이 말씀이 어제 그 친구의 일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렸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기도하는 내내 계속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나무와 산이 보였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감정이 벅차올라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아름답고 주님의 크신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방금 말한 그 창밖의 풍경입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사진이라서 제가 가장 아끼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4.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한 행복

    마지막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한 행복’입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실용음악 작곡 전공입니다. 따라서 음악을 들을 때 화성진행이나 멜로디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분석을 하게 되는데요, 이는 찬양을 부를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음과 악보 상의 음이 맞지 않거나, 박자가 다르거나 할 때 그것이 거슬려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만 방문단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6일차 아침 기도 시간에 한 찬양을 부르고 나서, 찬양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찬양은 바로 ‘감사 위에 감사’라는 찬양이었는데요. 앞에서 느꼈던 모든 은혜 덕분에 이 때 제 신앙이 굉장히 제가 생각해도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부분의 가사가 제 마음에 확 와닿더라구요.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기도들은 대부분 모두 간구였습니다. 그것이 회개든, 신앙적인 일이든, 세상적인 일이든 말이죠. 아마 감사가 중요한 것인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구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과 또 그것에 대한 정말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알게 되고 나서인지, 저 가사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저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계속 울먹이면서 찬양을 하다가 기도 때 감사를 최대한 표현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냈던 그런 기억이 있네요. 그 뒤로 찬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던 찬양들을 모두 검색해서 하나하나 가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나 좋은 가사들이 많은데도 나는 지금까지 그걸 알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어떤 허탈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찬양 제목을 들으면 그 찬양에 대한 화성진행 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찬양이 담고 있는 뜻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마음으로 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Thanks 感谢主 네, 깐셰주. 한국어로 감사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뜻이죠. 대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몸에 베어있고 또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이 시간 이후로 저를 포함한 모든 동부 교회 성도님들도 주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 간증을 열심히 준비하고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또 여기까지 잘 인도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만방문 일정 소개와 간증 마치겠습니다.

  • [성도 소개+간증]”에벤에셀”-박성숙 자매님

    2025년 1월, 새해가 밝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두 명의 자녀에게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 중 반가운 얼굴,  박성숙 자매님께서 귀한 간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박성숙 자매님은 엘레사벳 한정순 모친의 자녀로 오랜 시간 떠나계시다 다시 강남교회로 돌아오신 아비가일 소속 성도 입니다. 남편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 중이신 박성숙 자매님의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라는 고백, 시작합니다.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사무엘상 7:12

    부모님께서 믿음을 가지게 된 후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참예수교회를 다녔다.
    다행히 결혼하고도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남편의 지방 근무로 안식일 예배 참석이 힘들어지고 성장하지 않는 나의 믿음이 답답했다. 그때 강남교회 박은진 목자님께서 다른 교회로 가시게 되어 우리 가족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2007년 큰애 고등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였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 앞으로 매달 불교 관련 소책자가 와서 그걸 읽으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듯했다. 불교 공부를 하며 나는 누구인가, 삶이 무엇인가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방황은 막을 내린 듯했다. 옆집에 살던 성당 구역장 자매님을 만나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내가 경영하는 약국에 근무하셨던 약사님께서 신앙심이 깊은 천주교 신자이신 영향도 컸다. 허리 디스크로 통증이 심할 때 많이 도와주셔서 약국 엄마라 할 정도로 각별한 분이셨다. 성당에 다니는 동안 가톨릭 출판사에서 나오는 영성 서적을 탐독하며 믿음이 성장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종교 활동이 멈춘 시기에 나약한 인간인 내게 또다시 신앙의 시련이 왔다. 내게는 절대자이신 신의 존재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2024년 봄 어느 날, 교회 다닐 적 친하게 지냈던 동갑내기 루디아 자매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4월 20일 안식일, 거의 20년 만에 참예수교회에 다시 발을 들였다. 형제자매님들이 먼 타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 대하듯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었구나. 주님께서 그동안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시며 나를 먼 곳을 돌아 여기까지 인도하셨구나, 도우셨구나. 에벤에셀!

    오랫동안 엄마께서는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시며 80대가 되셨다. 엄마는 내적 외적으로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계셨다. 이 모든 게 홀로이고 절대자이신 주님과 함께 살아오신 결과였다.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 주님을 믿으며 서로 힘이 되는 동역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배 중 홍영석 목자님의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며 52세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체격도 비슷하고 말씀하실 때 한 쪽 입꼬리를 올리시는 게 많이 닮아서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자매님들에게 홍 목자님 나이를 물어보니 홍 목자님도 52세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제주교회 에스더 집사님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연락을 주셨다. 우리 부부는 6월 초 제주도 여행 계획이 잡혀 있어서 그때 만나자고 하였다. 제주 교회는 천안교회 박은진 목자님께서 한 달에 한 번 방문하여 예배를 드린다 하셨다. 목자님 일정이 갑자기 바뀌셔서 우리가 제주에 있을 때 오셔서 만날 수 있었다. 주님의 역사하심은 대단하다.
    박은진 목자님을 만나 뵙자 20년 전 목자님의 설교가 떠올랐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그물을 내리게 하자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던 물고기가 그물이 터지도록 잡혔다는 말씀이었다.
    그 얘기를 하자 목자님이 제주 오시기 전 날, 천안교회 안식일 예배 때 했던 설교 말씀이라 하셨다. 이럴 수가! 20년의 간극을 주님의 말씀으로 뛰어넘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는 특별하시기만 하다. 그때 기록했던 노트의 글을 찾아보았다.

    2006.12.30. 안식 예배, 송년 예배.
    제목 <헛수고의 밤을 지내셨나요?> 누가복음 5장 1절에서 9절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

    홍영석 목자님과 함께하는 10대 신앙반은 믿음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목자님은 성령을 받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내게 성령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목자님의 이끄심으로 나는 절실히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2025년 1월 11일 나는 안식일 예배 안수기도 중 성령을 받았다. 온몸이 뜨거워지며 위로, 위로 들려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방언 기도를 하며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해짐을 느꼈다. 성령을 받은 후 나의 믿음은 성령 충만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2월에 약국에서 시련을 겪으며 내가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주님뿐이었다. 나에게 주님의 담대함이 필요했다. 인간의 위로는 내 마음 깊이 닿지 않고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했다. 주님만이 나를 불안에 떨지 않게 하시고 두려움을 떨치게 하며 평안을 주시는 절대자이시다.
    사도행전 18장을 읽으며 그동안의 불안이 잠재워졌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음에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

    내 주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 [성도 간증] 끝까지 나를 붙드신 하나님 (홍*영 자매)

    [성도 간증] 끝까지 나를 붙드신 하나님 (홍*영 자매)

    끝까지 나를 붙드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제가 살아온 지난날을 한 번 다시 돌아봤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자칫 탈선했을 수도 있었던 순간, 큰 사고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순간, 큰 사건에 휘말릴 뻔했던 순간 등 많은 일들 속에서 늘 저를 지켜주시고 내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하셔서 결국은 바른길로 인도하시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사람을 보내셔서 때로는 상황에서 제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향한 의심과 첫 만남

    제가 참예수교회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려 보면 누가 순진한 우리 엄마를 꼬드겨서 이런 토요일에 예배한다는 이단 교회에 빠뜨린 건지 내가 가서 엄마를 빼내서 저들로부터 구해야겠다는 큰 사명감으로 호기롭게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난리 한 번 칠 작정으로 딱 갔는데 예배 전에 찬양을 부르는데 아는 곡도 있고 모르는 곡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곡 두 곡을 부르다 보니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냥 주르륵 흐느끼는 정도가 아니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주체 못 할 울음이 나서 결국 예배 끝나고 인사할 때까지 눈물이 그렇게 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울음이 나왔고 집에까지 가서도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그동안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구나.’ 나도 하나님 믿어야 하는데 생각이 들면서 그날 집에서 엄마한테 사람들이 좋아 보이고, 교회의 규모도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것 같아 사람으로 상처받을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으니 계속 교회에 다니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엄마는 저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시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펑펑 울고 왔는데 내가 거기를 창피해서 어떻게 다시 가냐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다른 교회 다닐 테니까 엄마만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첫째를 임신했을 무렵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지냈던 행복감 따뜻함 갖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안양에 다닐만한 교회가 없을까 계속 물색하는데 이 교회는 이래서 싫고 저 교회는 저래서 싫고 이러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데 마음 한편에는 하루라도 빨리 교회를 다녀야 할 것 같고 더 늦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신앙을 향한 갈망과 그럼에도 교회로 내딛지 않은 발걸음

    그러다가 제가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예수교회 안양교회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여기도 교회니까 같은 하나님인데 뭐 기도 방식이 좀 다를 뿐이고 성경, 찬송 다 똑같은데 뭐하면서 일단 한번 다녀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도 다니고 말씀 묵상과 기도로 첫째 아이의 태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왕절개 수술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무탈하게 첫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첫째를 낳고 육아하면서 잠을 못 자니까 교회, 말씀, 기도 이런 게 도무지 생각이 안 나고 틈만 나면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 가자는 엄마 말에도 지금 잘 시간이 없어서 살이 빠지고 머리도 빠지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금은 못 간다고 거절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도 가야 하는데 우리 첫째를 위해서라도 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 때는 교회에 가고, 또 그런 마음이 약해지면 다음에 가자며 핑계를 대고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회의 참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것을 사단이 당연히 가만두지 않아서 제가 교회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진리에 대해 갈급함은 크게 생기지 않았고 교회를 지금처럼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니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렸습니다.

    그렇게 또 참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고 저의 먹고사는 일에 더 집중하면서 안식일에 일하기 때문에 직업상 어쩔 수 없으니 이런 형편을 하나님도 아시고 이해하실 거로 생각하며 일단 내가 먹고살고 나서 하나님인지 이렇게 생각하며 교회를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세례를 앞둔 고민, 그리고 육체적 고난 속에서의 깨달음

    다른 또 말씀드리고 싶은 간증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소중한 생각 없이 교회를 드문드문 나오기를 반복하다가 저와 첫째 아이가 세례를 받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막상 세례식이 다가오자, 마음이 갈팡질팡하며 받지 말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없음을 알고 사단이 집요하게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전도 임원이 제가 세례식 전날 장염 때문에 계속 설사를 해서 세례를 못 받겠으니, 다음에 받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세례를 받기 싫어 댄 핑계였으니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례식에 갔고 그때는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많이 모이면 안 된다고 소수 인원만 참석해서 첫째랑 저랑 세례를 받았고 이제는 세례도 받았으니, 교회만 잘 다니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례를 받고서도 교회가 가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회 자매님들이 연락해 와도 잘 받지 않고 문자도 다 지나치고 엄마가 교회 가자고 하면 소리를 지르며 몸이 힘들어 죽겠는데 교회만 가자고 한다며 큰소리치며 급기야 대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이한테도 정리 정돈하라고 짜증을 내고 애꿎은 청소를 시키며 네 살짜리 그 어린아이에게도 이유 없이 화풀이했습니다. 한 번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많은 아이 중 첫째 아이가 장난감 갖고 놀고 나면 정리를 한다면서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 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난 날 밤에 엄청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지금 4살짜리 어린 딸한테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를 대며 엄청 짜증을 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너무 앞서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오면 제가 세례를 받을 무렵이 둘째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신 적으로 피곤하고 아프고 그러다 보니까 자꾸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 더욱 커졌습니다. 이렇게 힘들 거면 내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것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방금까지 신랑하고 실컷 웃으면서 떠들다가도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고 우울한 생각만 나면서 괴로운 마음만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둘째를 갖고는 말씀 한 구절 안 보고 하나님과 교회를 외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이 없고 딱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교회 한 자매님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고는 했습니다. 이것저것 잔뜩 먹을 거를 사 들고 찾아오면 예상치 못한 방문인데도 싫지 않고 내심 무척 반가웠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기쁘고 반가워서 왜 더 빨리 안 와 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교회를 가야 하고 연결되는 게 그렇게 싫어서 엄마한테 소리까지 질렀는데 교회에서 찾아온 그 자매님은 매우 반갑고 그 마음에 교회도 가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둘째가 원래 출산 예정일이 1월이었는데 담당 의사가 둘째 아이고 임신성 당뇨도 있고 하니 좀 빨리 출산 날짜를 잡자고 해서 12월 28일로 잡았는데 12월 초에 검진 날 갔더니 애가 2주 만에 너무 컸다고 했고 다음 주 또 검진 날이 되어 갔더니 이번에는 양수가 또 갑자기 너무 늘었다고 28일은 너무 늦어서 안 되겠다고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자고 그래서 22일 아침에 수술했는데 둘째가 거대아로 태어나고 자가 호흡이 없어서 중환자실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엄마는 당시 담임 목자이셨던 목자님께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도 마취에서 깨자마자 비몽사몽인 중에도 목자님께 전화해 달라고 해서 앞뒤의 설명도 없이 우리 아기가 숨을 안 쉰다고 하며 꼭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자님께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바로 성도님들께 연락해서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우리 안양교회 성도님들 기도 덕분에 우리 둘째가 살게 된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음날 바로 둘째의 호흡은 돌아왔으나 그래도 계속 둘째의 상태를 관찰해야 해서 중환자실에 더 있어야 했고 이후에도 황달이 또 빨리 와서 계속 중환자실에 더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만 조리원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때 진짜 마음껏 기도하고 말씀도 보고 설교 동영상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새벽에 깼는데 약간의 어떤 묘한 이끌림 같은 마음이 들어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눈이 많이 온 한겨울이었는데도 너무 상쾌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데 춥지도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성령의 체험과 신앙의 변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싶어졌고 기도하는데 할렐루야 소리가 자꾸 발음이 꼬여서 다른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면서 더 큰소리로 힘을 줘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 뒤로 계속 그랬는데 나중에 목자님께서 성령 받은 것 확인해 주셨는데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성령을 받았던 것 같은데 제가 인지를 못 해서 늦게 알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니까 목자님께서 영은회 때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하시면서 남은 영은회를 다 나오시라 했는데 그때는 신랑이 교회 가는 거를 싫어해서 눈치를 살피느라 가고 싶어도 결국 못 가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 후로는 교회에 가려고 본격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간혹 집안일을 핑계 대고 안 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안 가는 때면 왠지 불안한 생각과 마음이 들고 결국은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둘째의 세례와 또 한 번의 은혜, 그리고 감사

    그러다가 둘째가 세례는 좀 일찍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은 불현듯 들었는데 조금 더 커서 받으면 물에 대한 공포심도 더 생길 것 같고 남편의 반대도 여전히 신경도 쓰여서 둘째의 세례 날짜를 잡아놓고 또 갈팡질팡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앞둔 한 일주일 전부터 둘째가 갑자기 열이 났는데 처음 병원에서는 모세기관지염이라고 했는데 항생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고 하기를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약이 떨어져서 또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 의심된다고 큰 병원 가라고 했습니다. 마침 시간이 늦어서 중앙대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코로나 검사하고 대기하다가 진료를 받았는데 그때 둘째가 눈도 충혈이 있었는데 충혈 정도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걸 본 담당 의사가 가와사키병이 의심된다고 입원해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 어린아이한테 가와사키병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들으니 덜컥 겁도 나고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입원 절차 진행하는데 항생제 수액을 놓는 과정에서 혈관을 찾는다고 한바탕 난리 치고 정신 차리고 보니 시간이 상당히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기로 한 약속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세례를 못 받겠다고 전도 임원께 연락드렸더니 조금 있다가 목자님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습니다. 자매님 입원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세례를 받으려고 할 때는 사단의 방해가 크게 오기 때문에 입원하는 것을 잘 기도해 보시고 웬만하면 일요일에 세례를 받게 하자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확신에 찬 말투여서 바로 저도 순순히 알겠다고 신랑이랑 상의해 본다고 했더니 목자님께서 이거는 자매님께서 굳게 믿으셔야 하고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고 더 힘주어 말씀하셔서 저도 급기야는 “네 알겠습니다.”하고 덜컥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신랑한테 뭐라고 얘기하지? 하나님 나 어떻게요?’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신랑한테 전화했더니 신랑이 그사이 가와사키병에 대해 검색해 본 후였습니다. 눈이 충혈되는 증상과 고열 말고도 혀가 딸기 혀가 되어야 하는 등등 몇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야 진단하는 건데 이 두 가지 증상으로 진단하는 것은 성급한 거 아니냐고 입원하지 말고 오라고 먼저 얘기하였습니다. 부리나케 입원시키라고 한 사람이 바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마음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신랑과 통화하고 바로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지금 맞고 있는 주사까지만 맞고 집에 갈 테니 약을 처방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열이 또 오를 수 있다고 걱정하길래 그러면 그때 다시 오겠다고 하고 바로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안식일이라 교회에 가니 성도님들이 모두 둘째의 상태를 걱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믿음으로 이겨내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다행히 둘째가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고 잘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심 안심이 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식 당일 일어났는데 눈은 더 빨갛지만, 다행히 고열도 없고 컨디션도 좋아 보였습니다. 신랑한테는 세례받는다고 차마 말을 못 하고 삼막사로 교회에서 놀러 간다고 말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아픈 애를 데리고 나간다고 한 소리 하니까 다시 너무 걱정됐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식 장소로 가면서 속으로 제발 별일 없이 더 아프지만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와 첫째랑 세례받을 때와는 달리 이날은 많은 성도님들이 참석했고 물가로 내려가는데 든든한 느낌이 들며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례식 있으면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성도님의 축복 속에 둘째 아이가 무사히 세례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열도 안 나고 눈의 충혈도 서서히 없어졌습니다. 일주일 뒤에 폐렴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더니 상태가 다 괜찮다고 약만 일주일 더 먹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신앙의 동역자로 세워진 첫째 아이

    그때부터는 저는 본격적으로 참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자신의 품으로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시며 살 수 있게 다 계획해 주셨는데 제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며 외면했는데도 끝까지 저를 붙들어 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우 감사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직 신랑이 참 진리를 모르다 보니 저 혼자서 신앙생활을 헤쳐 나가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우리 첫째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신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북부 연합 찬양 한마당 때 동행이란 찬양을 배우고 연습하느라 매일 들으면서 자는데 첫째가 노래가 참 좋다며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감수성이 참 풍부하다며 그만 울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기도하고 잔다고 해서 같이 기도하는데 할렐루야로 기도하던 아이가 기도 소리가 이상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따라 하는 거냐며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그래도 성도님들에게 물었더니 아이들이 방언 소리를 따라 하면서 놀고 그런다고 해서 그래서 못 하게 하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그리고 첫 구역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날 목자님께서 기도 중에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고 구역예배도 안수기도 해주시나보다 기다리고 있는데 저한테는 안 오시고 다시 자리로 가시더니 기도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더니 예배가 끝나고 첫째가 기도를 언제부터 이렇게 했는지 웃으시면서 물으시는데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에이 설마 이렇게 어린데….’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참예수교회 최연소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시니 제가 성령을 받았을 때보다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신랑 몰래 힘들게 신앙생활을 이어 갔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또 붙여주시는 것 같아 무척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버티고 버티며 신앙의 길을 걷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하나님은 순간마다 저를 깨닫게 하시고 결국 하나님 품 안으로 인도하셨고 현재까지 많은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참예수교회 참 진리를 처음 저희 엄마에게 전해주신 김윤* 자매님께 감사드리며 또 우리 한나회 자매님들 저를 포기하지 않아서 또한 너무 감사합니다. 담임 목자님 또한 저와 제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으로 권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참예수교회 안양교회 성도님들 항상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은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 구원의 열매를 맺는 때까지 힘써 살아가기를 늘 소망하며 간증 마칩니다.

  • [성도 간증] 덤으로 사는 인생

    [성도 간증] 덤으로 사는 인생

    할렐루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라는 시편 23편 말씀을 묵상하며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과 나는 그 분의 양이다’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마음에 고백하는 것이며, 그 말씀이 참으로 나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덤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는 잠시 후 간증을 통하여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올해 68세로 부산교회 소속의 정홍규라고 합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소년 시절, 청년 시절과 장년을 보내고,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습니다. 무늬만 모태 신앙(?)이지 부끄럽지만 사실은 ‘못해 신앙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대학 졸업 후 대부분 아시는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부산을 떠나 타 지방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80년대 초는 주 6일제 근무로 토요일도 오후 5시까지 근무하던 시절로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그렇게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직장에서는 인정을 받아 비교적 빠른 승진을 하게 되었으나, 금융위기(IMF) 당시 예상치 못하게 구조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조기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직 후 적지 않은 나이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매우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이후 중국어 학습에 대한 갈증으로 중국의 천진, 북경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는데, 죽기 살기로 학습에 매진한 결과 중국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까지 4 가지 영역이 모두 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중국어가 가능해 통번역회사의 중국 지사장(본사는 미국 소재)을 역임하면서, 심양에 있는 요령대학에서 주 3회 6시간의 강의도 병행하였습니다. 이후 약 8년 간의 중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후에는 중국 출장과 여행 인솔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신앙 생활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길 즉 죽음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건강유지를 위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부산에 있는 금정산을 비롯해 대부분의 산을 등산하였습니다. 2023년 5월 중순 산행 중 갑작스런 다리의 통증으로 인해 조기 하산해 귀가하였습니다. 귀가 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산행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보행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8월 중순 경 평생 처음으로 병원에 열흘 입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소식을 듣고 이요셉목자님께서 권면의 말씀과 더불어 안수기도도 해 주셨습니다. 목자님께서 돌아가신 후 저의 1/2인 아내와 상의 후 9월 1일부터 새벽기도에 참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0241220일 안식일 저녁 집회 시 받은 감동을 요약합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십자가상의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예수님을 자기와 같은 강도 취급을 하고 비난하였으나,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인정해 받아들이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는 겸손히 자신의 죄를 자복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해 극적으로 그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너무 늦었다’고 실망하며 좌절하는 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십자가의 기적인 것입니다. (눅 23:31~43)

     

    이 말씀을 듣고 나니 약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 불현듯 생각납니다. 당시 친구들과 함께 중국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귀국해 인천항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로 귀가하던 중 고속도로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해 당시 승차한 5 명이 모두 사망에 이를뻔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비가 오는 날씨로 인해 차가 미끄러져 중앙분리대와 충돌해 540도 회전해 진행 방향과 반대로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가 오른편 가드레일과 충돌하게 되어 위에서 내려오는 화물 컨테이너차가 들이 박으면 저를 포함한 5 명의 생명을 보장할 수가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생명을 구해 주셨던 일로 그 때의 아찔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불과 10여 초의 차이로 모두 목슴을 보전하고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구해 주신 크나 큰 은혜를 입은 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전 기억이 차차 희미해지고 가끔 생각이 날 뿐이었습니다. 이후 하나님 은혜를 망각한 채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 보기는 하였으나, 바뀐 것은 없었으며 여전히 이전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생명을 살려주신 것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통열하게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상의 두 강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되돌아 보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작년 2023년 9월부터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철저하게 회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즉 참으로 변화된 모습이란 철저하게 돌이킴과 동시에 하나님 뜻에 합당한 생활이므로, 매일 기도와 말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저의 변화된 생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2024년 새해가 되면서 줌(ZOOM)을 이용해 저녁기도가 매일 저녁 9시에 시작되어 저희 가정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생활이 진행되어 가던 중 그래도 뭔가 기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전과 오후 별도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9월 23일부터 유튜브로 각지 교회의 동영상도 듣고 있습니다.

     

    지금의 하루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새벽 5시기상, 샤워 후 기도하고 교회에 가서 6시 새벽기도에 참석합니다.
    • 오전 9시~12시까지 찬양-기도-영상설교청취-기도-찬양으로 3 시간 소요
    • 오후 4시~7시까지 찬양-기도-영상설교청취-기도-찬양으로 3 시간 소요
    • 집회일인 화요일, 금요일 저녁 예배, 토요 안식일 예배에 참석
    • 저녁 8시 30분부터 찬양을 들은 후 9시부터 줌을 이용한 기도에 참여

    @ 참고로 영상설교는 전국 교회를 순회하면서 청취하며, 저도 이전에는 눈으로 성경을 읽었으나 소리 내어 읽어 보니 매우 은혜가 되었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릴 것은 12월 21일 오후 겨울옷을 사기위해 백화점에 갔습니다. 몇 군데 둘러 비교한 후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점퍼와 바지 1착을 구매하였습니다. 구매 후 귀가 시 심한 통증으로 인해 승용차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백화점에서 집까지 40여 분 걸리는 거리로 출발 후 5 분 정도 후 기도를 30여 분 하니 통증이 완화되어 무사히 귀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평소 매일 식사 후나 오후에는 통증으로 매우 괴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안에서 육신의 고통이 없다는 것은 매우 크고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께 감사와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끝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금부터 저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원하옵기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오나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여러 성도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원하며 저의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대만 대중의 신학원에서-

  • [성도간증]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원주교회 이지선 자매)

    [성도간증]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원주교회 이지선 자매)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 원주교회 이지선 자매 간증 (2024.11.2)

    할렐루야!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사실 저는 성도님들 앞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간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변화된 신앙을 아직 갖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크기 때문에 간증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 간증을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제 마음을 변화시키고 순종을 심어주시며,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성경구절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3:17~21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번에 나눌 저의 간증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된 간증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결혼 전까지 원주교회만 다니던 내향적인 성도였습니다. 교회 성도들 간의 교류도 좋아하지 않았고 폐쇄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학생 때 영은회를 가면 모르는 사람도 많고 모르는 찬양과 율동이 다반사였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사춘기 때는 그것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항상 영은회를 가기 싫었던 학생이었습니다. 영은회를 다녀오면 만족하고 은혜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매번 영은회 가기까지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영은회 가면 생각나는 감정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다니는 교회가 참예수교회가 맞나?”, “나랑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 맞나?”였습니다. 그만큼 동질감보다 이질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만 다닐 뿐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열망과 간구가 뜨겁게 차오르지 않았습니다. 타지로 멀리 직장을 다녔기에 오전 7시쯤 집에서 나와 저녁 8시 돼서야 돌아오는 피곤한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신앙에 집중할 수 없었고 좀처럼 믿음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교회활동 보다는 세상 친구들과 회사동료들과 더욱더 친밀히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30대가 되고 결혼 적령기가 올 때에도 믿음결혼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순종보다는 불순종의 모습을 더 보여드렸고, 그동안의 부모님의 신앙믿음만 의지하고 내 자신의 신앙적 독립을 이루지 않은 채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제 기도가 믿음이 많은 형제는 부담스러우니 믿음은 적어도 교회만큼은 안 빠지고 다닐 형제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성령 충만을 이루지 못한 어리석었던 기도를 했던 것 입니다. 수없이 많은 기도를 했지만 다른 기도는 안 들어 주셨는데 이 기도만큼은 들어 주신 것 같아 아직도 반성하며 살고 있는 중입니다.

    찰떡같이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남편인 정영석 형제를 보내주셨습니다. 2019년도 3월에 남편을 만나 그해 11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과 동시에 근 1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라도 영광으로 내려가면서 원주교회를 떠나게 됐습니다. 평생 원주에서만 살다가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고 원주교회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두렵던지 영광 내려가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영광에서 1시간 거리인 광주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많은 변화를 주셨습니다. 처음엔 광주교회에 낯선 분위기와 코로나로 인한 교회활동 축소로 적응하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지만, 걱정도 잠시, 광주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며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주실까? 매번 드는 생각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들은 한 가족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신앙도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영광에서 지내면서 믿음에 집중하며 충실할 수 있었고, Zoom으로 광주교회 성도님들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에는 성경공부와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귀중한 환경과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 임신을 하고 출산 시기에 맞춰 2년 만에 다시 원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시기를 맞춰주시고 원주교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남편도 원주교회로 오면서 믿음의 성장과 교회 사역에 충실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멀리까지 보내셨던 이유가 잠시 원주를 떠나 쉬면서 너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고 성도들과 교류하는 신앙을 가르쳐 주심으로 원주에 돌아가서도 교회에 헌신하라는 뜻이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끌어 주심에 항상 놀랍고 감사하며 순종으로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소그룹 예배를 통해 제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가 힘들었고, 기도도 예전같이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올해도 한 차례 믿음이 흔들렸었는데 어느 순간 삶의 우울감과 나이에 비례하는 믿음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나에 대한 연약함, 실망감, 교회 사역에 대한 부담감이 한번에 몰려왔습니다.

    설교말씀 중에 여호와만 섬길 것인가? 혹 여호와도 섬길 것인가? 란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적인 탐욕과 쾌락을 섬기고 있었고, 신앙적 변화를 꿈꾸지만 주님께 집중하지 못했기에 어떤 변화도 느낄 수 없었고, 그것이 매번 반복됨으로 저의 연약함에 지치고 실망함에 믿음의 나태함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기도할 때 두려움이 없었질 것인데 기도도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자님의 설교말씀으로 차츰 저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고, 소그룹 시간에 설교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서로 나눠볼 수 있음에 더 마음에 새겨지고 서로의 신앙을 교류하며, 성도님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경험과 위로를 받아 빨리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또 그동안 예배시간에 썼던 설교노트도 보면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저의 믿음을 앞으로는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행하는 믿음으로 변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모든 삶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께로 온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행복으로 채워질 것임을 믿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임을 잊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성령 안에서 평안, 희락이 충만된 삶을 되시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상으로 간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도간증] 서유니게 집사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전도부에서 간증을 권유받고 주님이 제게 주신 은혜를 세어보라는 말씀이구나 싶어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최초 간증은 중학교 수학여행입니다.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전주로 출발을 했는데 버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저는 역한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잘 모르겠다는데 저는 참을 수가 없어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버스를 세우고 보니 타이어 쪽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어 새로운 버스로 갈아타고 수학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노후 된 버스로 인한 사고들이 잦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수학여행 담을 나누는 중에 말씀드렸더니 박은도 목자님께서 제게 이것이 간증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저로 인해 반 친구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목자님 말씀이 생각나고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역사가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앙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연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제게는 제 삶의 여정 하나하나가 주님의 역사하심이고 보호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대전교회는 최근 총회훈련센터로 역할을 겸하게 되어 많은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영은회 참석을 위해 각지 교회에서 모인 젊은 형제자매들을 보면 생각나는 간증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대학부 영은회가 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대전교회에서 전국구 영은회 개최가 거의 없었던 시기였는데 대학부 영은회가 대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장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주최 측 장점도 있으니 기뻐야 했는데 제 마음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목포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목포교회에는 제 또래의 형제자매가 없었습니다. 2살 위에 언니·오빠들을 따라서 학생부 영은회에 몇 번 참석한 것이 전부라 교회 안에서 친하게 사귄 친구들도 없었는데 이사 온 대전교회에는 제 또래의 형제만 3명 있었습니다. 대학입학을 하고 대학 생활의 즐거움에 한창 빠져 있었던 시기였기 에 영은회를 위한 기도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전에서 하는 영은회에 빠질 수는 없어서 억지로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의지할만한 친구도 없는데 분반 시간은 믿음의 고백과 간증들이 넘치는 은혜로운 시간이긴 했지만, 사실 은혜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간은 남의 집에 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집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교회를 빠져나와 집에 가는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고 라디오 소리와 버스 소음만 생생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냥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치 커튼을 조금씩 열 듯이 중앙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희미하게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달리는 버스에서는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히 내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더니 차츰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내리고 보니 대전역을 한참 지나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서 안방에 계시던 부모님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펑펑 울었더니 부모님은 저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줄 아시고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하게 하셨습니다. 건강검진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당시 갑자기 보이지 않는 순간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고 두렵습니다. 영은회 때 집에 다녀오겠다는 행동이 이렇게나 잘못된 것일까, 하나님은 왜 이토록 강하게 직접적으로 역사하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지 못한 마음 상태에서 은혜가 넘치는 신앙의 간증들을 들었을 때 현재의 믿음의 상태에 대하여 회개의 시간이 필요한 거였는데, 저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은혜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위태한 상태였고 극약처방을 필요할 만큼 위험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시력을 잃는 경험을 하게 하신 시간이 아주 짧고 그러나 강렬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청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입니다. 청년기에 평생의 진로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동기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성숙한 신체만큼 정신적으로 발달하고 성장했다고 보기 힘든 20대에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인생의 큰 흐름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긍정적인 경험을 쌓기를 권합니다. 저는 영은회에서 도망쳐 오던 그 날 오후에 다시 교회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집에 가서는 이런저런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서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을 향한 빠른 발걸음을 저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먼저 알아보시고 붙들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간에 도망 나온 위태한 믿음이 어디까지 나빠졌을지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다시스로 도망하던 요나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에 빠져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경고해 주셨고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주안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교회에 친한 친구가 없다고 아쉬워했지만, 친자매처럼 가까운 신앙의 선·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아시고 살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부담스러웠던 믿음의 간증들이 지금은 너무나 은혜롭고 감사하며 저 또한 은혜 아래서 믿음의 간증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혹시 영은회나 교회의 행사가 부담스러운 생각이 드신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제안합니다. 저처럼 세상에서 손짓하는 유혹들에 귀와 눈이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고 주님이 채찍을 들기 전에 빨리 깨닫고 돌아오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주님 홀로 받으시길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이요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편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