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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이*주 자매)

    [성도간증]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이*주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간증하고자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1)

    저는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참예수교회로 전도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충청남도에서 1남 4녀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생계로 바쁜 부모님이셨기에, 교회를 자주 나갔습니다.

    이유는 간식도 주고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중, 할머니가 참예수교회 성도였기에,

    허수진 목자님이 저희 집에 심방을 오시게 됐습니다.

    처음 들었던 방언기도 소리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장로교회를 다니는 언니들은 그때도, 지금까지도 참예수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소개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여기 계신 분은 참예수교회 성도님이셨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 공부를 시켜주시고, 참예수교회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거부감이 많았던 저는 점점 귀가 열리고, 진리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회를 나가게 됐고, 새벽 기도도 나가게 됐습니다.

    기도를 하던중 저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2001년 7월 세례를 받게 됐고, 그 이후 저의 모든 삶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과 행동이 바뀌게 되었고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고, 불교 신자인 시어머니와 크고작은 마찰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어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 기도제목은 제 가족들 모두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가 되기까지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제게 참예수교회 자매님을 보내주셔서, 참 진리를 알게 하시고 인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립니다. 아멘.

  • [성도간증] 부산교회 이재근형제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안녕하세요. 저는 참예수교회 부산교회에 다니고 있는 37살 이재근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불교 집안이시고 어릴 때부터 절도 자주 따라 다녔고 아침마다 모닝 콜로 관세음보살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교회를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고, 항상 저에게 가면 안된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이든 교회를 다닐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처음교회를 오게된 계기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닌 것은 고등학교때였습니다.  고등학교때 동아리 활동으로 악대부를 활동했었고 플룻을 불게되었습니다.
    너무 재밌었고 꿈이 생겨 계속 하고 싶었던 마음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반대를 강력하게 하셨고 매일 밤까지 연습하다보니 학교 매점에서 저녁을 사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매점 아줌마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매점 아줌마는 대한장로회 교회의 장로직은 맡고 계셨었고, 교회에 대구 교향악단의 플룻 선생님이 계시다고 저를 너무 안타까워 하셔서 말씀드려놓을테니 주말에 배우러 와라 라고 하셔서 주말마다 나가서 레슨을 받으면서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없어졌고, 졸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장항교회에 다니던 나소연 자매와 연이 닿으면서 만나게 되었고, 나소연 자매는 장항교회의 교무라는 직책을 맡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있었고 장항에 거주하고 있다보니 주말에만 만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고, 그마저도 주말에 교회 행사가 많으면 길게 1달정도도 얼굴을 못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항교회에서 거제교회로 사청부 MT를 온다고 놀러오라고 놀러가게 되었는데 다들 많이 챙겨주시고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이때 아마 마음이 열리게 된 계기였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장항을 가는 날이면 안식일에 나소연 자매랑 교회를 조금씩 가게되었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을 많이 놀라긴 했지만 성령을 받으면 알게 될거라고 주위에서 얘기를 많이했지만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니다보니 전부 비슷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이 신기했고, 호기심이 생겼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나소연 자매와 결혼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어쨌든 같이 다니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구도자 교육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 라고 하셔서 한번 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임성열 목자님께 구도자 교육을 받았고, 죄를 씻는 세례 부분도 듣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

     구도자 교육을 받다보니 하나님이 계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교육을 받았고 여러 간증들을 들으면서 아, 나도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어봐야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거리도 멀었고, 생업도 바빠서 주말에도 일하게 되는 날도 생기면서 구도자 교육을 중간에 못받았고, 결혼식 날짜는 점점 다가와서 세례교육부터 하고 믿음안에서 결혼을 해야된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세례 교육부터 시작했고, 12/3일 결혼식이었는데 급하게 세례 교육을 하고 11/25일 세례를 받자 하셔서 날짜를 잡았습니다.
    세례교육 기간중 교통사고가 나서 2주동안 입원도 하고 여러가지 악재기 겹쳐지면서 세례교육도 매주 못받게 되면서 급하게 교육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교육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세례 받은 후 소감

     11월 중 계속 따뜻한 날이어서 걱정 안했는데 세례 당일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한번에 끝내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침수를 하고 난 후에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죄사함을 얻고 새 인생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나서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난 언제 성령을 받고 방언 기도를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성령을 주실까? 였습니다.
    장항교회에서 부산교회로 출석하며 이요셉 목자님의 말씀을 매주 안식일에는 안수 기도도 나가서 받으면서 성령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저에게 성령을 주세요 라고 기도드렸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뭐가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간절하게 기도도 해 보았지만 안 주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인생을 돌아보면서 세례 받으면서 죄사함은 얻었지만 인생의 조금이라도 잘못한 부분을 회개드리기 시작하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봄 영은회가 시작되기전 이요셉 목자님이 안식일 때 성령을 간절히 구해보자 라고 해주셨고, 안식일때 정말 열심히 기도드렸습니다.
    기도 드리는 와중에 갑자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안수 기도를 받던 중 저도 모르게 방언 기도를 하게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정말 계시는구나’ 라고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령받은 이후 변화,다짐

     출근길이든 무슨 일이 있든 없든지 마음 속으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저와 우리 가정을 잘 지켜달라는 마음 속으로도 늘 기도를 드립니다. 저희를 지켜주시는 여러가지 일도 많았고 일하는 중에 크게 다칠 수도 있을만한 일에도 다 피해가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경쟁으로만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성령을 받고는 하나님의 가정안에서 평안히 살 수 있게 해주신거에 대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게되니 마음의 안정감이 생겼고 기도의 힘도 요즘은 많이 느끼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된 부분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끝으로 세례와 성령을 받으면 끝인 줄 알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공부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올바른 자녀가 되어야겠다고 많이 느낍니다.
    많은 배움 속에서 올바르게 성장하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 [성도간증] 내게도 이런날이-김경라 자매님

     2024 봄 영은회에는 하나님의 선물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선물인 성령을 받으신 분들이 네 분이나 탄생하여 강남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간증은 2024 봄 영은회에서 두번째로 성령을 받으신 신판용 형제님을 대신하여 신판용 형제님의 부인 김경라 자매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성령 받기까지의 여정을 나누어주심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그날의 감동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제 남편 신판용씨의 간증을 옆에서 지켜 본 제가 간증을 하겠습니다. 남편은 쓸 말이 없다고 하네요.

    2022년 12월 24인가? 부터 교회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별 탈없이 순하게 담배도 끊고 저와 잘 교회에 출석은 하고 있지만 세례식이 가까이 오자 절대 세례는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2023년 7월 2일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해 10월 쯤엔가 세례를 받아도 성령도 못 받고 1년이 되어가도 성령 받지 않으면 딱 1년 채우고 교회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했던 신판용씨가 또 우여곡절 끝에 교회 출석은 다행히 하고 있었습니다. 

    올 봄에 천안교회에 영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에 강남교회 영은회가 있었습니다. 전 친구와 약속이 돼 있어서 천안교회 영은회에 1박 2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에스더 집사와 남편인 소형제님, 그리고 허진숙 사모님, 박은진 목자님께서 신판용씨 꼭 오시라고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자고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천안교회를 와주었고 저녁 식사가 끝나니 집에 가자고 하네요. 어이 없었습니다. 여기 오자고 했던 건 성령 받기 위해서 였거든요. 그때 소형제님께서 어르고 달래고 힘써 주시면서 기도 시간에 함께 동행해서 앞에도 나가주시고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끝나고 박은진 목자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성령의 감동이 크다고? 그날 밤 그 교회에서 1박 하고 새벽 기도 시간에 꼭 성령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근데 아이처럼 집에만 가자고 하더라구요. 아쉽지만 그곳에 계신분들도 모두 아쉬워 하시더라구요.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얘기 하더라구요 성령을 받을 것만 같아서 기도 했다네요. 저는 꼭 강남교회에서 성령 받고 싶으니 오늘은 성령 주시지 말라고-.옆에서 듣던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성령 안 주면 교회도 그만 다니겠다고 하던 사람이 주시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넙죽 감사히 받아야지! 순수한 건지, 귀여운 건지, 웃기는 건지? 그 다음 주 강남교회 영은회에 목,토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안식일에 영은회 마지막날에 성령을 드디어 받았습니다. 제 남편과 사진을 일부러 찍어주신 조명양 목자님. 그 사진을 보면서 신판용씨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저희 목자님과 또 여러분들께서도 금식 기도까지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제 남편 성령 받기까지 기도해주신 아비가일 자매님들 감사드리며 에스더 집사님 부부, 허진숙 사모님과 박은진 목자님, 정미숙 친구님.

    주 예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합니다.

  •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하나님과 함께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모든 성도님께 인사드리며, 저는 영국에서 온 바네사 자매입니다. 제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 앞서, 목자님이 저에게 간증하면 어떻겠냐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올해 동부로 돌아온 지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의 많은 성도님들이 간증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하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8월까지 휴가를 온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휴가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님들을 통해 사랑과 헌신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늘 있으며 이번 간증을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정한 성경 구절은 시편 96장 8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시편 96장 8절)”

    지난 온라인 교사 세미나에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제가 신앙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경험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23살이고 작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라인으로 법을 가르치며 영국 대학교 입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참예수교회에서 왔으며 참예수 뉴캐슬 교회는 1976년도에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생긴 첫 참예수교회이며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총 9개의 참예수교회가 있고 이 사진은 40주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사실 모태신앙이 아닌데요, 이것은 저의 간증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목자님이 제게 주신 간증의 주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통해 제가 나눌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 학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은혜를 주셨는지 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사실 이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조부모님과 어머니 쪽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참예수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성도님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제 아버지도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저희는 아버지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더블린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참예수교회가 아닌 이방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고 어렸을 때 저는 교회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찬양하고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매주 교회에 다녔습니다.

    2004년 8월 저희 가족은 뉴캐슬 영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친인척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당시 중국식 포장 전문 식당에서 일하시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님 세대에겐 매우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땐 일요일마다 중국 구세군 교회를 다녔는데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회는 제가 18살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제 어머니의 여동생분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저를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이방교회에 나갔습니다.

    2005년 5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닥에 넘어지시게 됩니다. 이 낙상사고는 매우 심각했고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몇 달간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의 병원 방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의 혼수상태 기간동안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에게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가족분이 홍콩에서 영국으로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러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참예수교회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던 엄마와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많은 친척분의 도움으로 아빠의 상태를 교회에 알렸고 뉴캐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진실로 기적적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많은 기도 덕분에, 매우 기적적이게도, 아빠는 깨어나셨습니다.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 병원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빠가 혼수상태였던 때와 깨어나셨을 때 둘 다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오늘까지도 살아계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시길,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어났더라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아빠 같은 환자는 금방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점진적으로 호전되었고,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호사도 말하길 아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생활하십니다.

    이후 교회는 아빠를 전도했고 목자님이 성경의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는 믿게 되었고 저와 제 남동생과 함께 2009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참예수교회로 데려와 주신 것과 오늘날에도 저를 교회에 마련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나님은 저희가 있어야 할 곳에 두시며 이는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 교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믿음은 저의 것이 되었고 진리에 대해 배웠으며 그 진리를 통해 왜 18살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녀봤던 저는 우리교회가 얼마나성경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우리 교회의 진리가 얼마나  올바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간증의 두 번째 부분은 제 학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삶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09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 결심은 제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셨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저희가 안식일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공하기 위해 안식일 날 일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또한 케임브리지 기도소 성도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소는 작지만, 그들의 마음은 큽니다. 영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의 학업 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절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지 생각하면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돌봐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여름, 저의 첫 번째 법과 대학교 시험 기간 때, 손에 어떤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따끔거림, 마비, 그리고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증상을 무시했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제 손의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2월이 끝날 무렵 저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고 하루 종일 고통을 느꼈습니다. 접시를 들거나, 문을 열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제 손은 약해졌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작은 일들을 이행하기 어렵게 느껴졌고 저는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매우 바빴고 저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겐 희망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과 제 정신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로우시고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1월 많은 기도를 통해 제 마음엔 안식이 찾아왔고 의사의 조언을 통해 1년간 학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또는 건강을 다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기도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과 같고, 저는 이를 몹시 어려운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통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1년간의 휴식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2021년, 저는 제가 필요한지 몰랐던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손의 상태가 육체와 정신이 결합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두 개의 문제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2022년 1월 저는 대학교로 돌아갔고 손의 문제는 장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로 복귀하기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전처럼 공부할 수 없고 제 뇌가 손보다 빨리 움직였고 타자를 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2023년 저는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기대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것이라는 간증입니다. 그날은 정말 기쁜 날이었고 제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졸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저는 더 이상 매일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시편 96장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왼쪽 파란 옷 입은 분이 바네사 자매이고, 옆에서  최하은 자매님이 통역하는 모습이며,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 [성도소개] 손인섭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이번 2024 강남교회 세례식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들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 중 두번째로 세례를 받으시고 강남교회와 인연이 가장 오래되신 손인섭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1. 자기소개 
    * 나이 : 1960년생(만 63세)
    * 성명 : 손인섭
    * 교회 오게 된 동기 : 가족의 권유

    2. 교회의 첫 인상과 세례를 받기 까지의 마음의 변화
    * 모든 교회 성도께서 하나 같은 마음으로 함께 환영해 주시고, 반겨주심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꼈고, 이로 인한 마음으로 큰 거부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세례를 받기까지 마음의 동요 없이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한 세례를 받으므로 해서 강남교회의 한 일원으로 책임감과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3. 세례를 받은 후 달라진 점
    * 크게 달라진 점은 없으나 세례를 받았기에 조금 더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도 갖게 되고 사무실에서 근무 중에도, 또 출, 퇴근길이나 장거리 운전 중에도 늘 유튜브를 통해 찬송을 듣는 기회를 얻게 되고, 강남교회의 구성원 안에 녹아들어 진정한 참 성도가 되려는 변화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4. 강남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늘 따듯하게 맞이해 주시고 환영해 주심에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며 강남교회 구성원으로 누가 되지 않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손입섭 형제님의 신앙이 올바로 성장하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강남교회가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할렐루야 예수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희 가정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저희 가정이 부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가정은 2015년부터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2019년 말에 김해로 이사를 갔습니다. 2019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김해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지만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회사 바로 앞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다녀서 방법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출퇴근 경로가 부산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여서 출퇴근 시간이 왕복 최소 2시간에서 오래는 3시간까지 소요되었습니다. 첫 몇 달간은 신입의 자세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다녔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을 했고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부산교회 영은회 강사로 오신 목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김해로 이사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자님께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교회와 먼 곳 으로 이사 가는 것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조언해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살 때는 모든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교만한 마음으로 목자님의 조언을 흘려 들었고 잊은 채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김해에서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에서는 30년 이상 된 빌라에서 지내다가 김해에서는 신도시에 있는 신축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장 큰 문제였던 출퇴근 시간은 왕복 30분 이내로 줄어들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사랑이는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되어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해 안에서 한번 더 이사가 있었지만 크게 환경이 바뀌지도 않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와중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김해로 이사 오는 시기에 개인적으로 신앙에 큰 시험을 겪고 있었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치게 되면서 김해에 가서도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겠다는 저의 다짐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에 둘째 온유가 태어났고 종교시설 인원 수 제한으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 되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안식일에만 출석해도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예배자로서의 삶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온유가 어느 정도 크면서 다시 화요일 저녁, 안식일 저녁 예배도 참석하고자 노력은 하였으나 2년간의 공백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집이 거리가 멀다는 것은 예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곗거리였기에 이것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살던 집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와서 이사갈 곳을 알아보던 시기에 ‘내가 김해에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김해로 이사할 때, 그리고 김해 안에서 이사할 때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이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단 한번도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제가 처음에 계획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법대로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비켜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큰 탈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냥 감사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김해로 가지말라고 경고를 주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김해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지금보다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줘서 우리 가정의 신앙의 회복을 위해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기도하면서 이사 갈 곳을 찾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이사 가려고 알아봤던 곳은 부산이 아닌 양산에 있는 신도시였습니다. 교회에 가는 시간도 줄고 대중교통으로도 교회에 갈 수 있고, 시세도 기존에 살던 동네와 비슷하고, 신도시라서 생활여건도 기존에 살던 곳과 비슷 했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게 강하게 개입하셨습니다. 몇 개월째 하락세였던 양산 부동산 시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르기 시작했고 가격은 저의 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적인 문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를 찾아보게 되었고 양산보다 훨씬 더 교회와 가까운 부산에 괜찮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부산을 알아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가게 되면 제가 내려놓아야 할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산은 항상 후순위였습니다. 부산은 아무래도 김해보다 부동산 시세가 높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고, 주변 인프라도 신도시에 비해 좋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제가 김해로 이사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고통스러운 출퇴근을 다시 겪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부산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가락이 부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 했습니다.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던 부분들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살던 집보다 상태가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조건으로 구할 수 있었고, 이삿짐 센터를 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 같이 이사하는 장모님 집 구하는 과정, 첫째 사랑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은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이사를 마치고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모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방황하다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처럼 잘못된 선택을 깨닫고 돌아온 저희 가정에게 질책과 징계가 아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보다 신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축복된 일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의 간증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맹인 농아 봉사 서클 선배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신앙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하게 되면서 심근경색이 있으시던 아버지는 가슴 통증이 더욱 빈번해지고, 동생은 학비를 못 내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이었고, 저 또한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형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 19살의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혼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아주 벅찼습니다. 아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세상은 공평치 못할까,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까?” 이런 생각 속에서 그 당시 저는 의지할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창조론과 진화론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성 오거스틴의 <참회록> 등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저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석가모니나 공자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기독교가 진리이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으면서 선배님을 따라 안식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외롭고 고된 일상 속에 성경 말씀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고 요묘한 이 말씀’이란 찬송가 가사처럼 첫사랑의 소녀의 마음인 듯 성경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삶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있는 곳이면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디든지 쫓아가서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선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안식일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하며 온전히 안식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릎 아래의 치마를 입어야 하고 안식일 시작 전에는 목욕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약사고시가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도 철칙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의료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1992년 제 나이 23살에 교회 청년들과 함께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엔 중국과 수교가 안 된 상태라 포교를 하다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은 절박했고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기에 또 쓰러지실까 봐 항상 불안했고 엄마와 동생들 또한 제가 소녀 가장으로서 보살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저의 삶은 항상 억눌려 있었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안식일 교회에 몸 담았던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한 켠 공허함 속에 늦은 비 성령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연구 집회에 참석도 하고 산속에서 밤이 깊도록 두려움도 없이 간절히 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결국 성령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원 휴가 기간에 천연치료원에서 약학과 동기인 현*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라고 하면서 3~4일의 시간 동안,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이름 및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구절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너무도 기쁘고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현* 언니를 따라 어느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참예수교회 대방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성경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시42:1)의 말씀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대방교회 기도실에서 너덧 명의 성도분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고 몸에 진동이 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제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가슴 속에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임했던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감사합니다. 세례 후 3일째 되던 날,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참 교회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귀한 성령이 떠나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성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무의식 중에 찬송을 불렀는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저를 쫓아냈고, 전철에서도 “찬송 소리가 너무 크다” 고 친구가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제가 찬송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제가 성령 받기 전에는 고음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저음도 못 내는 음치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은 후에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고음이 저절로 올라가고 찬송가의 가사가 저의 간증이 되어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청껏 찬송하라”라고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희 딸 가*이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4주(9개월)무렵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시기에 태아의 정상 체중이 최소 2kg이 넘어야 하는데 아이는 1.5kg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미숙아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달포 후 정확히 40주를 채우고 2.7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부르짖은 저에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란 찬송가 구절처럼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이가 5개월 무렵, 하루종일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기저귀를 자주 갈았었는데 그날은 한 번도 기저귀가 젖어 있지 않아 응급 상황임을 깨닫고 목자님께 안수기도를 청하여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소변이 잘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이 6세 때,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차량은 심하게 부서져 폐차하였지만 가*이와 남편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에어백에 부딪혀 앞자리 조수석에 앉혀 있었고 차량 내부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차량의 운전자는 사고를 목격하고 하차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상의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질주해 오는 후속 차량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을 주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18년 전쯤에 친정 부모님이 저의 권유로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대 때부터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세례받기 며칠 전에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세례받는 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아 ‘세례를 미루어야 하나?’ 걱정하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중에도 “믿음으로 받겠다.” 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신 후 갑자기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세례 현장에서 간증을 하셨어요. “세례받고 나오니 모든 병이 나은 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라면서 기뻐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실 때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81세에 아버지는 링거를 맞던 중 갑작스레 팔다리 마비가 왔어요. 병원에 있었음에도 의사의 무지로 인해 빠른 조치를 못 함으로써 좌뇌경색이 심하게 와서 의식조차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교회 목자님께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셨고 합심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18), 저는 이제야 그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서울의 한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모셨고 직접 간병하면서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심방 오시는 목자님을 보시면 환호하면서 좋다는 표현을 하셨고, 한 살 아기가 되어서 소리 지르고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예배보고 기도할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놀랍게도 신나시며 따라 부르셨습니다. 말씀은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찬송가와 노래는 할 줄 아셨던 것이죠. ‘우리 아버지도 이제 구원받았구나’ 하는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뇌경색과 대장암을 3년간 앓으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엄마가 밤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건 쓴 사람 2명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 번을 깨웠는데, 엄마는 “왜요? 나는 졸려서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이제 천사들이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엄마에게 꿈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9년 6월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확신하시며, 장례식 이후로 광양교회에 출석하시며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엄마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은혜는 측량할 길 없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의 마음을 지속해서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저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약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 속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2018년도 처음 갔던 이스라엘 여행의 감동이 생각나, 가족들을 설득하여 2019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저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헤브론, 벧엘, 실로, 그리심산 국립공원, 갈릴리, 가버나움, 최북단 텔단을 거쳐 네게브 사막 지역인 브엘세바와 최남단 에일랏 및 텔아비브까지 2주간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아서 베들레헴 갈 때에 아랍인 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현재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텔단 지역의 풍부한 물과 키 큰 나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겠다” 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이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구약성경대로 양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년 3~4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 되심과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음을 저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부 지역과 네게브 사막은 렌터카로 이동하였는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지나는 저희를 길 잃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행 중에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성지마다 큰 은혜와 감동을 베풀어 주셨고,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확신 있게 깨달은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중략)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아멘,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할렐루야! 주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8일의 결과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혼자 온 제게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랜 침묵 후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가족은 안 오셨습니까?” “네” “혼자 사세요?” “아니요” 그리고 보험은 들었냐고까지도 물었습니다. “내가 본인이니 나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어려운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전립선암 4기 말기입니다.” 생존율은 고작 30프 이내로 희박 하다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바쁜 스케줄로 환자 한 명당 배정된 시간이 몇 분 되지 않지만 일어나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에게 줄 약은 없나요?” “없습니다.” “진통제라도 없나요?”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일어나기를 주저하는 제게 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위해 잠시 나가 있으라 했습니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 하염없이 대기 했습니다. 두 시간 쯤 지나 의사 선생님께서 옆방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그렇게 심하더라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집에가서 그냥 죽으라는 말입니까?” 의사 선생님은 눈을 감으셨습니다. 한참 후 최선을 다해 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검사를 정밀히 더 해 보자 했습니다. 검사는 한 달여 지속되었고, 그때부터 제게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0월 말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사우나를 즐겼습니다. 저는 아무 아픈 곳이 없던 사람이었고 건강하게 잘만 지내 왔었죠. 그런데 아무 전조 증상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우나를 즐기던 중 엄청난 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놀란 나머지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보라 했습니다. 11월부터 한 달여 동안 암 검사만 받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정말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파도 간절히 기도가 잘 안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11월 말이 되면서부터는 기도를 전혀 못 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교회에 와서 앉기만 하면 전혀 이유를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눈물을 전혀 참을 수도 없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다 들어오기도 수 없이 해 봤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통증도 시작되었습니다. 앉아 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확신이 들었습니다. 올해 12월 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처럼 이 확신의 이유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70년 내 삶에 하나님 앞에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전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목표가 뚜렷해졌습니다. 매일 딱 한 가지를 위해 잠자는 시간마저도 매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런 기도를 드리기도 너무 염치없지만, 제 육신의 삶이 다하기 전에 깨끗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나 수명 연장을 위한 기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죄사함과 회개의 기도만이 전부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던 그때부터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죄를 사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단 한 가지 목표는 바로 죄사함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말이 다 되었는데도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보여주실 일이 있으셨을까요? 놀랍게도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2024년 1월 초. 또 놀랍게도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2024년 1월 18일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실에는 비슷한 환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2기나 3기 환자들의 수술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이내 수술이 끝난다고들 하였습니다. 회진을 오신 의사 선생님께 수술 시간을 물으니 3시간 정도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좀 더 심하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정확히 아침 7시 30분 수술실로 들려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수술이 끝이 났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무려 5시간이나 걸려 수술이 끝난 것이지요. 생각보다 큰 수술이었고 아주 많은 범위에서 암 덩어리를 제거해 냈습니다. 

     

     수술 중이었습니다. 마취 상태였을 때였지요. 눈을 뜬 것처럼 눈이 부시게 환하고, 제 앞에는 아름다운 초원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술 하기 전 저의 일과는 기도와 성경 읽기의 반복이었습니다. 집에는 성경을 읽을 때 사용하는 작은 책상이 있는데 환상 속 초원에서 그 작은 책상이 보였습니다. 평상시처럼 초원 위에 작은 책상을 두었고, 책상 위에는 성경책을 펼쳐두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집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 옆에는 흰옷을 입으신 분이 함께 성경을 읽어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에서는 아주 강한 빛이 쏟아져 올라왔습니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 성경책의 글자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 적이 아닌 영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었지요. 흰옷을 입은 분과 함께 한참 성경을 읽었습니다. 기억으로는 누가복음 5장에서 8장까지를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8장 마지막 말씀을 읽을 때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00은 죄사함이 되었느니라”, “00은 죄사함이 되느니라”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캄캄해졌습니다. 실려 갔던 침대가 흔들렸습니다. 회복실에서 저를 마구 흔들어 깨웠습니다. “환자분 이름이 뭐에요?, 여기가 어디에요?” 다급한 소리와 정신없는 불빛과 주렁주렁 매달린 주삿바늘과 계속해서 잠들지 못하게 막는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혼미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 선생님께 “나한테 왜 이렇습니까?” 물었습니다. 수술 시간이 너무 길어서 출혈이 너무 심했다고 했습니다. 집중관리 중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교대하신 간호사 선생님께 내 상태가 어느 정도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혈액이 2리터 이상 출혈이 있었고, 혈압과 맥박이 불규칙하다고 메모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수술 중 보았던 환상이 떠올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때 그 순간은 분명 듣고 기억했던 “OO”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8장을 얼마나 읽어봤겠습니까. 수십번도 더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그 단어를 알지 못하겠어요. 하나님께서 비밀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신 것 같아요. 마치 남은 시간의 숙제 같습니다. 다시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그 답을 찾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답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 숙제 말이에요.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

     

     저희 부부의 생활은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형식의 신앙에서 진심의 신앙으로, 삶의 우선순위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구별됨 등 퇴원 후 많은 것이 저절로 변화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의 삶을 직접적으로 많이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퇴원 후 또 한 번의 수술이 있었고 통증이 있기도 하고 아직 환자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통증이 있고 몸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도 가족들도 요양병원에서의 몸조리를 권유했습니다. 끝내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었으면 그때 죽었을 거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당신들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으니 나를 살렸지! 당신들 기술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봤기 때문이에요. 주님께서 주신 그 환상을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켜 주셨던 그 손길과 기도의 응답과 권능을 보았잖아요! 이 정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뭐가 되겠어요. 사실 아파도 아프다고 못했습니다. 이런 성미를 잘 알아서인지 아내가 참 잘 챙겨주어요. 지극정성으로 건강식도 챙겨주어서 서서히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회복하여 다시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음도 기쁨입니다. 

     

     참. 쉽지는 않은데 고백해 볼까요? 말만 참예수교인이었어요. 모태신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성인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잘 안 나왔어요. 어쩌다 한 번씩이나 나왔을 거에요. 70년 살아오면서 큰 죄인이었어요. 70년 인생의 삶 이것까지 다 말하기는 참 부끄럽네요. 그냥 큰 죄인이었어요. 곧 죽게 된다니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죄스럽고 염치가 없었어요.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염치가 없던지요. 매를 맞은 것도 인정해요. 사실 한번 맞은 것도 아니에요. 한번 맞아서 안 되니 더 세게 때리셨을 거에요. 70년 살았더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자녀들도 성장했고 말이에요.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고 살아왔기에 죄사함의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이유 모를 눈물도 죄사함의 두려움과 죄사함의 유일한 권능자 앞에 간구였지 않겠습니까. 

     

    사실 간증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끄럽고 말주변도 부족하고 자랑거리도 아니라서요. 제가 하나님 앞에 남은 인생동안 무엇이라도 바치고 싶은데 나이가 들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용기 내 고백(간증)하는 것이 혹시나 저와 같은 처지의 성도님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미약하지만 용기 냈습니다. 남은 생에 하나님 앞에 무엇이라도 바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내가 어떻게 염치없이,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럼에도 함께 해 주신 저의 하나님을 이번에는 여러분이 경험해 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믿고 기도 해 봅시다!” 임마누엘! 

  •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2024. 4. 30. 화요일 밤 간증회(이명철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도님들께 안부인사

    할렐루야 동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제가 오늘 교회를 오며 헤아려보니, 오늘이 저희 부부가 동부교회로 전입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더라구요. 먼저 그간 저희가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많은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동부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간, 제가 드리는 간증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면_ 좋겠습니다.

    제가 동부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몇 가지 첫 인상이 있습니다. 우선 목자님 사모님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하시다는 것 외에, 젊은 청년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하는 순간에 있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목회자의 식구로 교회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세밀하게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꼬마 시절 동부교회에도 있었지만 그 이후 전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는데요, 그 때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 교회 전체적인 차원의 기도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주교회 2층 예배당 입구 옆 게시판에 아주 큼지막한 표_ 희망자에 한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하여도 표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요, 그 큰 기도표 맨 위에 ‘주님, 저 왔어요’ 라는 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이름 칸에 동그라미를 꾸준히 표시해야겠다는 동기 외에도, 다른 친구들은 다 성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살고 평일 예배까지 출석하는 제가 성령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겨울 영은회가 끝나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다시 사택으로 내려와 씻고 밥 먹고 학교를 가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등부 영은회가 보통 며칠이니까, 그것의 스무 배,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겠지.. 그런데 쉽게 안 주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두 달, 세 달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전주교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예배당이 매우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아침에 예배당에 올라가면 한 쪽 창에서 햇살이 빗금치듯이 들어오구요. 그 햇살에 비쳐 흩날리는 입자들이 반짝입니다. 바로 옆 산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오고.. 그 곳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팻말처럼, 주님 저 왔어요. 하면, 그래 왔니, 내 아들아. 비록 지금 당장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하며 그 고요한 햇살 속에서 저를 품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사랑를 느끼며 기도를 하다보니, 새벽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심 기대까지 되었고,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저의 매일을 깊이 동행해주신다는 느낌을 난생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초부터 시작한 기도는, 수개월 더 드린 끝에 그 해 가을,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진로를 인도해주시다

    기다리던 끝에 성령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제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현재 내가 학생이니, 주어진 현재의 활동,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주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던 학교 중 하나라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 안에 공부를 잘하시는 형들이 있어서 그 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우리 청년들처럼, 그 형들도 평일 예배, 안식일 예배를 온전히 다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갔나보다 하고 근처 독서실에 가보니, 벌써 거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입시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서울도 아닌 전주 일반인문고교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 그리고 공부를 하며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손해는 보게 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대방교회로 부임하시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학간 학교가 OO포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가 공부를 잘 못해서 똥포 고등학교로 불렸는데요, 심지어 첫 해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학을 권유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제게 무언가 가져다 주실 것이 있어서 제게 방해가 될까봐,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학교에 살짝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실 뒷 문에서 저 말고 다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도 있었는데, 참여한 학생이 저를 포함해 고등학교 1~3학년까지 전교에서 2명이었고, 끝까지 매일 꾸준히 참여한 학생은 저 1명이었습니다. 분명 저 말고도 각 가정이나 학원에서 성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거든요.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불안할 때, 힘이 들 때, 언제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고 찬양했습니다. 평일 예배도 참석하였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일독하는 게 먼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성경통독도 고3때 처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게 해주신 은혜에, 저 또한 전주에서 보았던 그 형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를 성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에 저를 지탱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주변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적성과 형편에 부합하는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학과도 정하잖아요. 당시 주변에서 세상적으로 유망한 이런 저런 학과들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도 가운데, 직업을 위해 학과를 택하기보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전공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두에 저희가 읽었던 잠언 말씀구절에 뒤이어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8:19)

    오늘날을,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그간 공부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정과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장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고 싶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처럼, 이 땅의 정금이나 천은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상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 싶었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나님 은혜, 불합격이면 무조건 내 부족함이라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며 현실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과정- 돌아보면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군(軍) 복무로 인도해주시다

    그런데 남자는 대학교를 진학해도, 또 군대라는 관문이 있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군대에서 여러 안전 사고 등 들리는 뉴스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무언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어떤 분이 군대를 가신다고 교회에서 환송회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또, 그리고 그 다음달에 또, 생각보다 자주 오시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대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받고 이후 임관하는, 학군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구요. 아, 이거라면 내가 군복무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보다 제가 그 때 더 체격이 왜소했고 체력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취업난에 더불어 학군장교 경쟁률도 상당하여 제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년시절,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던 제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신앙적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혼자 공원에 뛰어가 시험 종목들을 연습하는 준비를 1년여 정도 한 끝에 학군장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나 교통이 불편한 산지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과 달리, 오직 저만 인천교회에 대중교통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해주셨습니다. 장교도 밤을 새우는 평일 근무, 종일 근무하는 주말 근무를 서야하는데요, 군 간부들이 제일 기피하는 근무 요일 중 하나가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근무하고 이튿날 일요일을 쉬면 주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막 들어온 막내 초임 장교임에도, 일요일, 공휴일에 근무를 더 서는 대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전역할 때까지 토요일 근무를 제외시켜주시는 상관을 만나게 해주셔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안식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에 있어서 제가 가장 바라던,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인도해주시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이라도 공부하고자 했던 동기도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 생활을 더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군 전역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단기 신학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많은 목자님들, 신앙의 선배님들, 청년들을 통해 제 신앙이 더 발전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조금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앙과 제 전공에 힘을 써서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원이 휴직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휴직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비교적 완화되었고, 그것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제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젊은 남자 선생님을 보내는 것을 잘 추천하지 않지만, 그간 학교에서 근무한 태도와 실적을 고려하였을 때 한 해라도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믿고 먼저 추천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종 면접 심사 때도 면접관분들 중, 과거 교육청 주관 행사 때 저를 눈여겨 보셨던 장학사님이 계셨습니다. 인사 규정이 바뀐 후 제가 최초 지원자였음에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를 보내주시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적 인도하심 가운데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이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가는 길에 교회 형제, 성도님들께서 차를 함께 태워주셨는데, 참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교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저로 하여금 먼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과 가까워진 이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다 해도, 그리고 인접 뉴욕 교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을 해서 그간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하여도, 출석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과 임원들이 직접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제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저를 지켜보고 직접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교회 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와, 교회 생활관에 들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이미 한 명의 형제가 있지만, 교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여 제가 들어와 같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충분히 덕을 끼치며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학교 기숙사에 그대로 남아 지내는 것이 어떨까_ 하셨지만 저는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교회 임원분들께서 저를 인터뷰하시고, 그 간의 제 신앙생활의 태도와 왜 들어오려 하는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지 등의 대답 내용을 가지고 다시 직무임원회의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사랑과 신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각 나라와 교회 실정을 고려하여, 본교 목자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현재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처럼,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업에 힘쓰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기간을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분들을 통해 신앙의 여러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제가 홀몸에,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었고, 그것도 교회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전 총회와 같이 많은 교회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었고 현재는 미국 총회의 교육센터로 다시금 거듭나는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미국 청년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전반적인 미국 생활과 학업을 인도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덤 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하나님께 가장 바라고 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을 함께 구할 수 있도록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다

    그렇게 교회에 머물며 집중적인 신앙의 수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제 자신의 밑바닥이 더욱 적나라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세를 향해 가는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너무도 연약했고, 제 신앙을 홀로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간 목자님들께 배운대로, 제가 배우자에 관해 기도한 두어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와 함께 어디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신앙적 도전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에 비교해보았을 때 훌륭하신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예의상의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꼭 비교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무얼 바라기 전에, 제 자신부터가 제 기도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 성숙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 자매에게도 저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 현재 현실적 상태에 대해 기대게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한 명의 피조물이자 인간이었기에, 누가 되었든 결혼 전 제가 어떠한 약속을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상황적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제 부족한 신앙적·인품적 됨됨이 때문에, 배우자 기도로 정확히 10년이 채워지는 시점에 지금의 자매를 아내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그냥 평상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갈수록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저희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점점 더 체험하고 있음에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변함없이 인도해주시는 은혜

    앞서 저희가 불렀던 찬양 499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처럼, 미국의 예배당 새벽 아침에도 전주교회와 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햇살이 빗금치듯 들어옵니다. 흩날리는 입자들이 햇살에 빛나고, 바로 옆 창문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들어옵니다. 예배당 밖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안에서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20년 전 전주의 예배당에서 한 소년을 안아주시던 당신은, 먼 타국에서도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제 소망과 기도들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구할 때에, 제 앞의 현실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교회 앞 잔디밭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제 사비로 한 그루- 향기나는 작은 묘목을 심어드릴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심어드린 그 작은 나무는 올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 회기동 교회로 돌아와_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당신께서 간절히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었던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도님 여러분,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저희에게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금처럼 함께 화목하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겸손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멘.

    3월에 전입한 이명철 형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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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저는 동부교회 김동녀라고 합니다. (1936년생) 어릴때 경북 안동 풍산읍에 살았습니다. 문경새재 넘어오면 자그마한 풍북국민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였어요.

    어릴 적 학업에 대한 열망이 크다

     8살 입학식날 큰 외삼촌이 “동녀야, 학교 가서 나이와 성을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야 한다. 나이는 핫사이데스, 이름은 가네야마도우조라고 대답해라.”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가네야마도우조, 핫사이데스를 속으로 계속 되내었어요. 학교에 가서 외운대로 큰 소리로 대답을 잘 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종이도 없고 연필도 딱 한자루 있던걸 아껴 썼고 다 쓰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도 쓰고 1,2,3,4도 써보았어요. 그러던 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서 풍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종대왕 한글 1회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우리글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8살, 15살, 20살도 1학년이에요. 장가 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어요. 저는 1년을 공부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가 쉬웠어요. 선생님은 “얘는 수학을 잘하네.” 하시며 나중에 2학년은 건너뛰고 3학년으로 올려 주었어요.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1반, 중간은 2반, 공부 못하는 사람이 3반이었어요. 저에게 수학은 좀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너무 가난하고 먹을 거리가 없어서 한때는 굶고 한때는 나물밥 먹는 형편이라서 또다시 학교를 못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다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물가에 가서 모래에 쓰고 당시 종이 색깔이 신문보다 까맸어요. 종이에 가갸거겨고교를 쓰며…… 종이가 너널너덜 할때까지 썼어요. 점으로만 표시하는 아래아라는 글자도 있었어요. 공부를 중단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제 시대 1년, 세종대왕 한글 나오고 1년! 이렇게 2년은 완전히 다녔어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다

    아버지는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며 21살에 30리 되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보냈어요. 저희 외가쪽으로 연관이 되는 집안이었어요. 시집 식구가 16명이에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맏동서 가정, 시누이 2명, 시동생 3명, 저희 부부까지 7남매에요. 매일 분주히 일하고 베를 짜고 가족이 많다 보니 보리쌀을 가마솥에 거의 차게 넣어도 다 소비가 되었어요. 부자라 해도 쌀은 어른들만 좀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먹었지요. 일을 해야 하니 분가를 못한 채 10년을 살았어요. 어느날 가까운 곳에 빈 집이 나서 남편이 저와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분가를 했어요.  처음 분가하고 살림이 조금 어려워서 낮에는 시댁에 가서 일 해주고 쌀을 받아왔어요. 하루는 시댁가서 밤 10시쯤 설거지 끝내고 오니 남편이 없어요. 동네에 아는 집들을 찾아가 보았어요. 동네가 다 윤씨 일가에요. 점방 뒷집에 가보니 그 집에 사는 분이 남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돈을 대줄테니 나락을 사서 차에 실어서 정미소에 가서 찧어서 쌀로 팔면 괜찮을거 같다. 다 일가이니 잘 될거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은 나락 장사를 시작했고 1년을 하니까 너무 잘 되어 그 돈으로 땅을 3마지기를 샀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윤씨 일가다 보니 나락을 높게 달아도 몇 바가지씩 더 넣어주면서 “아지매하고 아재하고는 살아야 된다. 마당에 가마니를 쟁여두면 쥐도 먹고 닭도 먹으니까 축 나는거 보충해야 된다 ” 하며 나락을 많이 퍼넣어 줬어요. 나락이 많아서 길에 길게 쟁여뒀는데도 아무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은 8톤짜리 큰 차를 불러서 수십가마니를 실어 나르며 일을 하였어요. 나중에는 논 8마지기 네모 반듯한 걸 샀어요.

    서울에 올라오게 되다.

    시동생이 캐나다에 이민가려고 보유하고 있던 기름집을 처분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남편은 급하게 집안 어른에게 전화해서 논 8마지기를 팔고 시동생의 가게를 인수 받아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군대를 갔어요. 군대 간 뒤에 보니 찬송가랑 성경을 많이 사놓고 갔더라고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이제는 신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아들이 사놓은 찬송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그냥 읽었어요. 찬송가를 읽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나는 속으로 아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엄마가 안믿으면 아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할까 그런 마음도 들었어요. 얼른 하나님을 찾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가 싫었어요. 장사하면서 아무리 선한 사람도 물건을 팔 때 좋은거 좋다 나쁜거 나쁘다 그렇게 못하잖아요. 좋지 않아도 손님이 물건 좋아요? 하면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야 하고….거짓말하는 것이 싫더라고요. 장사 그만두면 얼른 하나님 집부터 찾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부교회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어디 있나 찾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장사하기 싫어요. 장사 좀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몇 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장을 뜯는다 하더라고요. 아주 신기했어요. “아 잘 되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장사 치울 생각하니, 속으로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한집 두집 시장 뜯는다고 가게를 나가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그런데 남편이 말을 안해요. 며칠 후  “누구는 나갔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기름가게 고추가게를 고물상에 주면 너무 쌀 것이고 어디 누가 새로 차리는 사람을 찾아보고 주면 돈을 더 받을 건데 한번 찾아보죠!” 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해요.

    시간이 흘러 다 나가고 3집 정도 남았어요. 마음이 타들어 갔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가야 겠네요.” 그때서야 남편은 입을 열었어요. 애들 용돈도 줘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가게를 그만 둘순 없고 남편의 복덕방으로 옮긴다는 거에요. 그리고 남편의 복덕방은 차고에다 우선 하겠다는 거에요. 저는 남편에게 복덕방은 상봉터미널 앞이고, 38-2 버스 종점인데 고추가게, 기름가게가 잘 되겠냐며 먼지가 많아 물건도 내놓지도 못할텐데 그만 이번 기회에 치우자고 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들은 신학을 마친 후 안동 참예수교회에 발령이 났어요.

    가게를 옮기다

    가게를 옮겨놓고 보니 고추 가마니가 한가득이에요. 38-2 종점이니 사람이 버스에서 꾸역꾸역 내려요. 그 당시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고추가게&기름가게가 생겼네? 여기 무슨 장사가 되나?” 하며 다들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나가요. 저는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서 문을 닫아 놓고(문은 유리에요) 돌아앉아서 고추 꽁다리만 땄어요.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내가 이럴때가 아니고 하나님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아, 여기 고추가게 잘 들어왔네! 기름가게 잘 들어왔네 하시며 “아줌마! 고추를 사고 싶은데 아주 좋은 것도 말고 아주 나쁜 것도 말고 좀 섞어서 20근씩 달아주세요.” 하며 큰 가게를 운영하는데 하루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도 많이 쓰니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은 대병으로 2개씩 쓴대요. 그 옆가게도 우리 물건을 써서 두 집이 단골이 되었어요. 조금 작게 하는 가게 4집도 단골이 되어 시장에서 장사할때보다 마진이 나아요. 아주 좋은 물건도 아니고 아주 나쁜 물건도 아니니, 장사하는 제 맘이 편하더라고요. 고추는 꽁다리만 따주면 가져갔어요.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다

    그러던중 시골 큰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골을 가야하니 단골집에 물건을 많이 갖다주고 내려 갔어요. 3일장을 치르고 친인척들 모두 다 돌아가고 저도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그냥 올라가면 내가 언제나 세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 윤목자가 안동교회 있으니 세례를 받고 가야겠다.’ 남편과 같이 가면 세례를 못 받게 할거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저는 오늘 서울 올라 가야해요.” 했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간다는 저의 말에 삼우제나 지내고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올라가야 돼요. 애들 밥도 해줘야 되고 장사도 해야 되고 올라가야 돼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밖에 안다니는데 밤 10시여서 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가방을 싸들고 지금까지 부모 말을 거역해 본적도 없고 거짓말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어머니 말이 귀에 안 들어 오고 가방 들고 달아나듯 나갔어요. 신작로로 차 타려고 나오니 금방 차가 왔고, 안동 삼거리에서 내려서 안동 참예수교회를 찾으려고 올라갔어요. 예전부터 안동교회는 꼭대기에 있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간판이 안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참예수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잖아요!” 하더라고요. 교회 간판이 아주 작아서 눈에 안보였어요. 마침 교회는 영은회를 하고 있었고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아들 윤목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반가워 놀라며 물었어요. 큰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내려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면 세례도 못받고 서울 올라갈거 같아서 혼자 교회로 왔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세례받고 가셔요.” 했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손자랑 같이 받았는데 그 손자가 윤석원 목자에요. 윤석원 목자 아기때 제가 같이 낙동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찌나 기쁜지 몰라요. 기차 창문 내다보니 산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웃는거 같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거 같아요.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차를 타고 오는데 왜 그렇게 좋은지 몰라요. 차를 타면 차멀미를 해서 차도 잘 못타는데 그날은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고 차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지나가며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거 같고 세상이 너무 달라보이고 이제는 서울 올라가서 하나님 집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가게일을 하면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기도도 할 줄도 모르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례를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밤에도 기도하고 찬송가도 매일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고 좋았더라 하신거구나!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넓은 땅에 사는 동물이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이 동물은 참 사납고 저 동물은 무섭게도 만드셨네!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까운 교회를 찾다

    안식일이 되었어요. 아침을 일찍 해먹고 단골집에 배달을 해주고 교회를 찾아나섰어요. 전농동 어디에 있다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17번을 타면 전농동 사거리에 간대요. 운전수 뒷자리에 탄후 어렵게 내렸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참예수교회 간판이 안 보여요.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었어요. 전농동 사거리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간 거지요. 간판이 크질 않았어요. 도착하니 아침 9시였는데 그 당시 허수진 목자님 가정이 시무할때였는데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시며 아침을 같이 드시자고 하셨는데 저는 먹고 왔다고 했어요. 교회를 처음 찾는거라서 일찍 나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교회오니 하나님 집을 찾은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다

    저는 가게일을 하면서 고추자루 뒤에서도 기도하고 기름솥 뒤에서도 기도했어요. 항상 기도했어요. 하루는 가게에서 고추 꽁다리 자르다가 기름솥 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며칠후에 교회에서 기도할때 안수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안수를 받았는데 성령을 받았어요. 세례받고 두 달만에 성령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안식일에 문닫고 교회 다니다

    가게 하면서 단골집에만 팔아도 시장에 있을때보다 마진이 나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거 같아요. 단골집에는 안식일 전날 물건을 대주고 안식일엔 문을 닫고 교회 예배하러 갔어요. 월 화 수 목 금은 계속 장사하고 토요일은 가게문 닫고 오전예배 드리고 칼국수 점심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어요. 성경을 몰랐을때는 찬송가를 많이 읽고 성경은 시편 1편 정도만 마음에 와 닿았었는데 지금은 성경 암송도 많이 하고 성경이 참 좋아요. 작년에 눈도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그때 잠깐 성경책을 못 읽어봤고 너무 부끄러워서 올해는 작정하고 읽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예레미야 51장 15절, 창세기 2장 3절, 요한복음 17장 11절, 빌립보서 2장 6절~8절, 요한복음 14장 26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요한복음 3장 17절, 히브리서 7장 3절, 갈라디아 4장 6절, 사도행전 4장 12절, 로마서 8장 16절 등 성경구절 다 좋아요. 찬송도 492장, 544장, 28장, 253장, 455장, 338장, 405장, 363장, 204장, 460장, 363장, 168장 등 모두 다 좋아요.

    소망이 생기다

    제가 이제는 이렇게 다 늙었는데 꿈이 있다면 육신이 죽어서 낙원에가고, 예수님 재림할때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의 안 믿는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내가 살았을 때 믿는 걸 봤으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라도 꼭 믿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날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은 믿지만 옛날에 믿지 않을 때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릴 때 학교다니며 숫자와 글씨를 알게 해주셔서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을수 있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집에 오면 늘 사랑이 있고 교회오면 너무나 좋아요. 요한일서 5장 20절 말씀처럼 지각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를 붙들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장 20절. 

    아래 사진은 김동녀 모친께서  찬양도 하시고 부군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