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인도하심

  • 믿음으로 전진하자 축복이 임하다

    믿음으로 전진하자 축복이 임하다

    간증자 양점례

    남편은 결혼 전부터 교회에 다녔고 저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저는 많은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종가집 큰며느리로 시집을 와서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사는 어찌나 많은지 한 달에 2-3번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신앙적인 이유로 거기에 참석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시아버님과 자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침묵하고 시아버지는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교회에 가려고 하면 못 나가게 하면서 “혼자서만 교회 가실 겁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참았다가 그후에 나랑 같이 교회에 다니다 하늘 나라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생각해 주는 척 하면서 못 나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제가 집안 일을 하는 동안 성경책을 살짝 밖에 내놓고 기회를 봐서 몰래 교회에 갔습니다. 집에 있는 척 하다가는 모르는 사이에 나갔고, 새벽에도 자다가 깨어 보면 없었습니다. 새벽 기도하러 교회에 간 것입니다. 이렇게 둘이서 매일 숨바꼭질하다시피 했습니다.

    아들의 귓병이 나음

    그런데 시아버지가 워낙 강하게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한동안 남편이 교회를 못 나갔습니다. 이때 삼계교회 김디모데 목자님이 심방을 오셔서 예배를 보았는데 이것을 본 아버님이 “나 죽으러 간다”며 두루마기를 입고 나가셨습니다. 아무리 만류하고 붙들어도 소용이 없어서 저도 아버님 뒤를 따라 갔습니다. 홧술을 들고 오신 아버님은 남편에게 “식구들에게 돌아가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라”, “교회 안나가겠다고 해라” 하며 남편에게 요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녁 내내 강요를 해도 남편은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속상해서 아버님 앞에서 대신 무릎 꿇고 빌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고모님 댁에 제사를 지내고 오시는데 동네밖에 빨치산들이 사람을 산채로 묻었다는 개울가 근처에서 귀신을 만났다고 하시고, 그해 9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낙심을 해서 교회를 몇 년간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 해에 아들을 낳았는데, 백일부터 귀가 아프기 시작해서 네 살이 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귀에 고름이 흘러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잠을 못 잘 정도로 한쪽 귀가 아팠다가 괜찮아지면 또 다른 쪽 귀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모르던 때니까 점을 치러 다녔는데, 점쟁이들은 다 제 아들이 병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네 살이 되는 해에 남편이 “내가 교회도 못 나가 이래도 죄짓고 저래도 죄지으니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광수(큰아들) 데리고 나가세요. 만약 광수가 나으면 나도 나가고 안 나으면 나는 안나가겠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정월에 어떤 약을 가져다 귀에 발랐는데 그렇게도 낫지 않았던 아들의 귀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한번도 귓병을 앓은 적이 없습니다. 그전에도 온갖 약을 다 쓰고 백방으로 치료했는데도 낫지 않던 귀가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아이의 귓병이 나으면 저도 교회를 나간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남편의 의지가 너무 굳어서 제사 지내는 문제로 자꾸 다투고 충돌이 있기 때문에 ‘가정이 화목하려면 같은 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이 다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남편이 6대 종손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종손이기 때문에 친척들이 제사 지내라고 준 전답이 있었는데, 10월 시제만 지내면 나머지 수확은 모두 우리 집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때 그것을 내놓으면 생활을 못할 만큼 우리 집안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온 집안이 예수를 믿기로 하면서 닥쳐온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논둑 가에 있는 공간에 콩을 심었는데, 평소에 너마지기에서 3-4말 나오던 콩이 한 가마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벼농사도 그렇게 잘 될 수 없었고, 늦게 심은 채소도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 믿어서 저렇게 잘 된다”고 말하기도 했고, 이웃에서도 저희를 보고 “저 집안 예수 믿고 복 받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지켜 주심

    그리고 큰아들 광수가 자라면서 사고가 많이 났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장사를 하며 살아갈 때, 광수는 중학생이었는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친척들과 함께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가 와서 받았는데 두 사람은 병원으로 실려갈 정도로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광수는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내려왔는데도 하나도 안 다쳤습니다. 사람들이 사고 날 때는 괜찮은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지만 그후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광수에게 또 한번의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광수가 다리를 절길래 “너 왜 그러냐?”고 하니까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광수 괜찮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사정을 들어 봤더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었는데,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몸은 몸대로 공중에 떴다 내려왔답니다. 그런데도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주로 제가 믿음이 약해져 교회를 멀리할 때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여지없이 아들을 쳐서 제 마음을 바로 잡아 주셨던 것입니다.

     

  • 참 하나님을 찾은 우리집

    참 하나님을 찾은 우리집

    간증자 서순애 자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발걸음을 인도하심

    저는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난 서순애입니다. 30여년동안 천안 구성동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참예수교회 천안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교회에 다니게된 동기와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신 것을 증거하고자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도록 이끄신 주님의 인도와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4살정도부터 부모님을 따라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머님부터 가진 처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옮길줄은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던 중 집안에 큰 시련이 찾아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오귀은 사모님을 통해 참예수교회를 알게되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영은회를 한다기에 자리만 채워달라는 사모님의 권유로 당시 5살짜리 손자인 성찬이를 데리고 구경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참예수교회에 갔을 때 그곳 교인들의 따뜻한 인사와 관심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다짐하기를 참예수교회는 영은회 할때만 가고 절대로 교회는 옮길 수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끌렸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손자 성찬이가 갑자기 이제는 참예수교회가 아니면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교회를 가는데 성찬이가 기사님에게 참예수교회 쪽으로 가달라고 길까지 알려주며 소리질러 재촉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많이 복잡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 주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놀라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남

    성찬이 때문에 참예수교회를 계속다니면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적은 성도들의 찬양이지만 듣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마음의 감동이 밀려들어 스스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전에 성경말씀도 나름대로 많이 통독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참예수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을 받아주신다면 이곳에서 몸을 담고 열심히 헌신하며 살겠노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지 오래지않아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마음에 큰 성령의 감동과 뜨거움이 느껴지며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주님 속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경말씀대로 세례를 받고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심장 혈관이 막힘

    성령을 받고 약 1년이 되었을 2012년 10월말쯤이었습니다. 심장에 부정맥 증세가 있어서 순청향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심장 한 곳이 완전히 심하게 막혀서 급하게 시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12월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저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날짜를 미루어 왔습니다. 이제 나는 죽어도 주님의 자녀, 살아도 주님의 자녀이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지 생각하며 주님께 맡기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안수기도를 받고나면 늘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계속적인 증상과 가족들의 독촉등으로 시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2013년 3월 27일 입원을 하여 다음날 시술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입원을 하니 저도 사람인지라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목자님이 저녁 시간에 병문안을 오셔서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해주실 때 온 몸이 사정없이 떨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끼며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수없는 벅찬 감격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남

    다음날 오후 1시에 수술에 들어가는데 간호사가 곁에 있던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이 시술은 위험하니 어머님께 잘 격려해주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 저 두렵지 않아요. 저의 생명이 다 되었다면 어쩔수없겠지만 조금더 넉넉하게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하며 울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시 점검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시작되었습니다. 잠시동안 요란한 소리가 나고 마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담당 교수님이 급히 저를 깨웠습니다. “서순애 환자 눈을 떠보세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막혔던 혈관도 뚤렸고 예전보다 더 깨끗하고 강심장이 되었네요” 의사도 믿기지 않는듯 놀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고, 당신의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부모님께 잘 해드리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큰 기적을 체험함으로 제가 찾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섬세하게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저의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하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좋은 자녀로 남은 삶을 살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성찬이 뿐만아니라 제 며느리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날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아멘

  •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

    간증자 천안교회 차정운 자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할렐루야, 저를 이곳까지 인도하여 주신 나의 주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과정을 짧은 글이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되돌아보면 모든게 주님의 은혜요, 인도임을 생각해볼 때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가정에 닥친 큰 시련

    저는 1953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정은 조상 때부터 절실한 불교집안이었습니다. 남편 또한 불교에 심취하여 승려증까지 받고 오로지 부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줄로만 알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1996년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이 부도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법당에 가서 무릎에 피가나도록 삼천배의 절까지 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애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드린 모든 정성이 헛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엄청난 부도와 가정파탄이 발생하였고 가족들은 모두 헤어져야만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억울한 누명까지 받게 되어 법적처벌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죄없는 어린 두 아들마저 그때부터 고아 아닌 고아의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우수했던 자녀들이었지만 큰 시련으로 인하여 대학의 꿈마저 접어야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부모로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큰 추락사고를 당하여 심한 척추손상으로 하반신 장애가 되고 말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자 함

    정말 그때는 하늘도, 부처님도 다 소용없고 또한 세상 모든 것이 야속하여 날이 갈수록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습니다. 호전되지 않는 남편의 긴 투병생활을 간호하면서 결국 저의 몸과 마음조차 점점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이 생겨서 독한 약을 의존해야 했습니다. 또한 목과 허리에 협착증이 발생하였고, 퇴행성 관절 증세까지 나타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고통의 나날 속에서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남편께서 애절한 표정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수는 없으니 차라리 우리 가족 함께 죽음을 택하자고 말씀하시며 우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삶에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죽음이 행복한 길이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남편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죽을 방법으로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계속 모아 가며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예수교회를 찾음

    그러던 중에 참예수교회 오귀은 사모님을 요양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주시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저에게 전도를 해주시고 또한 간절히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인도로 인하여 정말 갈급했던 제 마음에 마지막 기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죽음을 선택하느니 하나님이 계심을 체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 회당에 들어가 당시 윤득도 목자님께 안수를 받던 순간 무엇인지 모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호흡이 막히는 것 같았고, 정신도 혼미하고, 감당하기 힘든 오열이 속에서부터 터져나오더군요. 그런 체험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심과 제 자신이 큰 죄인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후로부터 안식일마다 너무나 참기 힘든 오열을 쏟아내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이 죄인을 그래도 사랑으로 용서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도 결국은 버리지 않고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시더군요.

    현재 천안교회를 시무하시는 전홍희 목자님이 천안교회로 처음 부임해 오셔서 드리는 안식일 예배시간에 앞에 나가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불덩이가 들어와 가슴에서 터져나가는 것같고 나도 모르게 방언을 하며 충만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느껴짐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얻음

    지금은 10년을 넘게 먹었던 우울증 약도 끊었습니다. 몸도 많이 건강해져서 삶의 희망이생겼습니다. 남편도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머지않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두 손자도 함께 참예수교회에 다니며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간절하게 구하는 자에게는 꼭 기억하시고 결국 구원해 주심을 저는 체험했습니다. 주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의 삶은 없었을 것입니다. 죄많은 저에게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저에게 하나님을 알게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모든 천안교회 성도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