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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말씀제목]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9월 6일 안식일 오전 예배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혼인 건수가 10년간 크게 줄었고,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논점들을 다뤄보겠습니다. 

    • 결혼의 성경적 기초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좋았으나, 아담 하나만 지었을 때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면 후일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이것은 ‘믿음에서 떠난 말’이자 ‘미혹케 하는 영의 가르침’이라고 단호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거룩함은 결혼을 안 하거나 특정 음식을 피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성경적 이유

    1.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말2:15) : 아담에게 배필을 만들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만드실 수 있지만 딱 한 명의 하와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일부일처제 결혼으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 안에서 맺어진 부부를 통해 경건한 자손을 잇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기 위함(벧전3:7) : 부부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동반자입니다. 한 겹 줄보다 두 겹 줄이 강하듯이 믿음의 가정은 천국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강력한 두 겹 줄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의 결혼을 통해 이 유업을 함께 받고, 부부가 함께하며 믿음의 자녀를 낳아 생명의 은혜를 이어갑니다.
    3.  음행에 빠지지 않기 위함(고전7:1-2) : 바울 사도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금욕으로만 거룩해진다는 주장과 여러 이성을 가까이 해도 된다는 의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을 통해 정욕을 다스리고 음행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기 위함(엡5:31-32) :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많이 비유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혼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가정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참된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함(시128:1-4) : 수고한 대로 먹고,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일시적 쾌락이 아닌 참된 사랑의 기쁨을 가정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5-6절처럼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예루살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원칙과 교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하나님의 주례사와 같은 이 말씀을 보면 결혼에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를 떠나(경제적·심리적 독립의 준비가 됨), 둘째 연합하여(사랑의 결합), 셋째 한 몸을 이룹니다(육체적 결합).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먼저 한 몸부터 이루고, 맞으면 연합하고, 나중에 결혼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7-9) 

    바울은 주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이었습니다. 독신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굳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못하고, 절제하지 못할 것 같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셨습니다. 태생적 고자나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자(바울처럼)만 독신이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마19:10-12)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중한 제도입니다. 만약 인간의 욕망 때문에 침소를 더럽히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제도를 통해서 서로를 위하는 돕는 배필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을 누리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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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11월 1일 안식일 오전 예배
    제목 :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본문 : 시 103:1~22

    설교자 : 이요셉 목자님

    ♦ 감사함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감사’라는 단어가 150번 정도 등장하는데 시편에서 제일 많이 나오며, 대략 80번 정도 사용된다. 다른 성경과 달리 시편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다.
    (시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편에서 감사가 제일 먼저 나오는 구절로 ‘음부에서는 감사할 수 없으니 살려주세요’라는 기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다면 음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롬 1:29~32을 보면 사람이 죽을 죄를 짓고 있으면서 이를 알고도 이를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는 데까지 타락한다. 롬 1:21을 보면 사람의 타락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마음이 어두워져 점점 변질되고 타락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 다윗은 감사하라고 자신에 명령합니다.

    시 103:1~2. 다윗은 자기를 향해서 명령하고 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왜 이렇게 명령하고 있을까? 사람은 매우 쉽게 잊어버리고, 자기 공로로 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교만하여 자기에게 영광을 돌린다. 큰 은혜를 받으면 오랫동안 기억할 것같은데 그렇지 않다. 큰 은혜를 받았다면 대부분 큰 고난을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 고난과 고통에 눌려있기 쉽지, 은혜에 대해 감사하기가 어렵다.

    ♦ 감사를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시 103:4~6. 다윗은 그 때 당했던 고통, 원망들을 쏟아내지 않고 은혜와 감사를 말하고 있다. 입에 담는 말이 정말 중요하다. 힘든 것들을 얘기하면, 결국 그 고통이 증폭되고 억눌려 있기 쉽다. 감사를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감사함이 고통에 억눌려있지 않을 수 있다.

    ♦ 구원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시 103:8~14. 다윗의 감사 내용으로 자신이 용서받은 것,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육신의 것으로만 감사한다면 우리는 그냥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부를 때 평안하게 하셨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롬 8:31~32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실 것이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 103:11, 13, 17)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무겁게 듣는 사람. 그래서 말도 행동도 조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좋은 일이 있지 않아도 감사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감사는 좋은 일에 대한 반응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좀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요 6: 11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음식이 매우 모자란 난감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축사(감사)하시고 음식을 나눠주셔서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단 6:10 다니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다니엘은 2번 감사하였는데 두번째 감사는 첫번째와 달리 아무 일도 없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보호하심에 믿음으로 미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
    단 2:23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꿈의 해몽을 알려주셨으니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이를 통해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도 다녀가시고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은혜를 받고 나서 감사했다. 이처럼 한 번 경험한 자는 좋은 것을 주실 줄 알고 믿음으로 감사한다. 이것이 믿는 자의 감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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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제목: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일시: 2025년 10월 26일 가을 영은회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찬례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행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의식이나 의례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방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찬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리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죄가 없음에도 유대인들의 고소로 아그립바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변호해야 했지만 이때에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미쳤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교회를 위한 것인데 이러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하게 붙드셨기 때문에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삶으로 흘러갔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끌어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겪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이사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며, 그분이 찔리시고 상함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래 죄로 인해 고난받고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결국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첫 사람 아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기에,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생겼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며, 죽음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역시 그와 똑같이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첫 번째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것도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첫 생명이 되셔서 우리도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내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죽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직접 창조된 존재이듯,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사람이 죄에 빠질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일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사건임을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이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의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영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삶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죽는 것입니까? 성경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합니다. 세례에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신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인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욕심과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이 것이기 때문에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와 멸망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를 살리셔서 옛 삶 즉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대로,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풍속을 좇는 삶이며, 이런 삶은 결국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며, 결국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그런 삶이 우리에게 유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가 되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우리가 가장 가치 있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우리는 구원만 받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가치 있고 도덕적 삶을 살아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르는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이전에는 죄 가운데 있어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놀라운 연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며,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도 바로 이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내 힘을 합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실제로 행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되셨던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즉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키고 더 깊어지도록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며, 성경이 말하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3~27)

    주님의 몸과 피를 분별하며 자신을 살피는 성도

    바울은 성찬이 주님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만큼 성찬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여 주님과 더욱 깊이 연합하게 되는 은혜의 자리임을 말합니다. 이 떡과 잔은 ‘너희를 위한 내 몸’,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예수님의 생명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는 효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찬을 받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을 받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고전11:27)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각각 자기를 살피라고 명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 거룩한 예식이기에, 성도는 그 의미를 분별하고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형식적인 성례가 아니라 매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담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게 되는 참으로 거룩한 성례라는 것입니다. 매번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이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 삶을 살기 위해 다시 결단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은 이 결단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더욱 힘쓰는 성도님이 되길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 링크

    글: 최재웅 형제

  • [복음메시지] 두려운 날에도 내가 주님을 신뢰하고

    [복음메시지] 두려운 날에도 내가 주님을 신뢰하고

    원제: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8월 29일, 이요셉 목자님)
    말씀: 시편 56:1~13

    ■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시작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0)
    두려움은 최초로 아담이 범죄한 이후 생긴 감정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상실, 죽음, 고난, 고통, 가난,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 등 두려운 상황들이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욕심과 두려움을 잘 다스려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신앙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다윗의 두려움과 신뢰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이겨낸 다윗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받던 상황에서 드린 기도문입니다.
    “네가 나가서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을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신 20:1)
    다윗은 바로 이 말씀처럼, 두려운 상황이 닥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떤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을까요? 어떤한 믿음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았던 것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다윗이 붙잡은 세 가지 믿음


     1. 하나님의 주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하찮아 보이는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이유 없이 땅에 떨어지게 하시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위로
    “그들이 악을 행한 까닭에 그들이 쫓겨나리이다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주께서 나의 유리함을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7~8)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자를 억압하는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자녀의 눈물과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3. 찬송의 힘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시 56:3-4)“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찬송은 무너진 마음을 붙잡아 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두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양심을 저버릴 때도 있지만, 반드시 회개함으로 다시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바른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11)

  •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제목: 히스기야의 기도(사 37:1~7)

    일시: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히스기야를 통해 본 기도의 참된 자세

    본문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아수르 군대가 남유다를 침공했고, 유다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을 앞둔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참된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의지하라(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가 성전으로 간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지니라.(5: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를 맞으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거의 성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라(1)

    히스기야가 성전에 가서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역대하 7장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듣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이 약속을 기억하고 성전에서 기도했고, 성전에 갈 수 없을 때는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통해 드리는 기도 역시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에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 교회를 향해 눈과 마음을 두시고,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비하게 기도하라.(1)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기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경건한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복종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뜻이나 내 주장,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라.(2)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도 기도 부탁을 합니다. 자신도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종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5: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사무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고, 히브리서 13장 말씀에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들이 결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도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눌 때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환난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3)

    히스기야가 기도하면서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37:3)

    이 말은 현재 상황을 인정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는 이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책벌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해산할 힘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이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어떤 위기든지, 어떤 절망이든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4)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하며 한 말 중에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며 분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한다면 두려워하지 말라.(6)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링크: 히스기야의 기도(사37:1~7)

     

    글| 최재웅 형제

  • [복음메시지]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1–11)

    [복음메시지]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1–11)

    [말씀제목]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 1–11)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5. 7.12 안식일 오전 예배

    1. 보증과 담보를 피하라 (1–5)

    지혜자는 남의 재산에 욕심을 품지 않고, 자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증을 서주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성경은 보증을 요구하는 그 자체가 욕심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는 행동(하이파이브)이 보증을 서겠다는 표시였습니다. 보증을 요구하는 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능력을 빌리고, 보증해 주는 사람은 체면이나 허세를 위해 무리하게 책임을 떠안는 경우도 많죠. 이로 인해 경제생활이 흔들리고 관계도 파괴됩니다.

    오늘날 신용카드, 카드깡 같은 보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가정의 사례처럼, 홈쇼핑으로 물건을 쌓아놓고 카드값이 남편의 월급을 초과해 이혼 위기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 이웃의 손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잠 6:3)

    지혜자는 보증을 서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자족하며 살고 자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경제의 지혜입니다.

    2.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히 일하라 (6–11)

    지혜자의 경제생활 두 번째 핵심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개미를 보라고 합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지만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여름 동안 양식을 예비합니다. 개미굴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뜨거운 쇳물을 개미굴에 부어 굳힌 뒤 꺼내어 엄청나게 정교한 구조를 확인했습니다. 양식 저장소, 번식 공간, 거주 공간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개미에게서 두 가지를 배우라고 합니다. ➀예비함, 즉 미리 준비하는 삶을 지혜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먼저 가르치는 것도 돈 쓰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것을 가르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개미는 ➁스스로 부지런합니다. 게으름은 가난을 부릅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 마음대로 자고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이 부지런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양 사회가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의 부지런함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내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 6:10~11)

    가난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강하게 우리 삶을 덮칩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살아야 합니다. 지혜자의 삶은 부지런함의 삶입니다.

    삶의 간증: 카드 없이 산 30년

    저도 대학교때 신용카드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데리고 나가면 제가 늘 카드를 긁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가 카드값을 보더니 저에게 조용히 “카드 좀 잠깐 주세요.” 하더니 잠시 뒤 가위로 싹둑싹둑  카드 잘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후로 카드 없이 살았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점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없는 대로, 형편껏 사는 삶이 훨씬 자유롭고 평안했습니다.

    이제는 허락받아 카드를 다시 갖게 되었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교훈을 넘어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경제 원칙을 가르칩니다.

    1. 보증을 피하고,

    2. 부지런히 일하며, 미리 준비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지혜자의 경제생활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키되, 평일에는 부지런하게 일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경제생활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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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복음메시지]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말씀제목]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37:1~14)

    [설교자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52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욥기 37장 1절에서 14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고난의 의미와 그 속에서 우리가 궁구해야 할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욥기의 주제를 ‘고난’이라 여기지만, 욥기의 진정한 주제는 고난 자체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가’ 이것이 욥기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욥기 1장을 보면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을 보호해주시고, 부유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욥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모든 것을 거두어가시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날 것이라 말합니다.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떤 이는 가족 때문에, 어떤 이는 습관처럼, 또 어떤 이는 삶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쳤을 때,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가, 욥기서는 그 신앙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자신의 잘못으로 받는 고난 :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로 겪는 어려움입니다.
    • 애매한 고난 : 욥의 경우처럼, 자신의 잘못 없음에도 당하는 고난입니다.
    • 자발적 고난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고난입니다.

    욥기는 두 번째, ‘애매한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몰랐지만,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바로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30년동안 목회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고난 없는 가정은 지구상에 단 한 가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게만 고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난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고난도 있고, 물질적인 고난도 있고, 영적이고 신앙적인 고난도 있습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는 동안 찾아온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 이 세 친구는 서로 주장과 변론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네 번째 인물 엘리후가 등장하여 앞선 친구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엘리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들으라 들으라’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 인생의 문제 앞에서 인간생각과 세상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민감한 영성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의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쇠사슬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힐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과 교만을 알게 하시고,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과 회복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요36:5~11)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14절 앞에서 엘리후는 눈, 비, 광풍, 얼음 등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기묘한 일들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난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벌을 위해서, 토지(축복)를 위해서,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 비를 내리시듯,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목적과 뜻을 두고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 땅에 알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중인 다른 성도를 쉽게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고난을 통해서 정금같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만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영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도님들이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 내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지, 왜 하나님을 믿는지 돌아보며,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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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복음메시지]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성경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바로 ‘무리’와 ‘제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 즉 ‘무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계속해서 그분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자신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지요 (요 6:26). 그분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지만, 결국 그 무리 중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제자’는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먼저 중심에 두고 나의 삶을 그분께 맞춰가는 것이죠. 때로는 불편함이 따를 수도 있지만, 그 믿음 안에 진정한 제자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는 생각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기 때문에 천국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 진짜 믿음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에는 몇 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1. 먼저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는 많은 증인들과 함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증인들은 디모데가 배운 말씀이 살아 있고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였습니다.

    2. 배움은 머리에만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를 전도하러 보내셨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경험하며 기뻐 돌아왔습니다 (눅 10:17).
    배운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배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죠.

    3. 충성된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그것을 귀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눅 16:10).
    작은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4. 생명력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세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8~9절 말씀처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강해지고, 그 생명이 흘러넘쳐 또 다른 제자를 세우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요?
    그저 무리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제자로 살아갈 것인지.
    오늘 하루,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 속에 예수님의 생명과 말씀이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

  • [복음메세지]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창2:7-8)

    [말씀제목]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 

    [본문말씀]창2:7-8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설교일] 2025. 05. 10. 토. 오전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장 7~8절)

    세계적으로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방법들이 개발 되고 시행 되지만 결론적으로 자연 파괴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 결국은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파괴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은 사회 생태계의 파괴입니다. 사회에 가장 기초가 되는 구성은 가정이고 국가는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펼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만 역부족 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너지고 국가는 무너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시작을 가정으로 시작하셨고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두 가지 기관이 바로 가정교회 인 것입니다.그만큼 가정과 교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른신앙입니다. 세상으로 한번 나간 자녀는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이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두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가 느껴지시나요?  가정과 교회에서 내 모습이 다르다면 나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1.가정이 파괴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15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가정을 파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의 역할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써 세상의 죄들이 가정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에 죄가 들어오면 가정은 병들어 가고 지옥이 됩니다. 창세기 2장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마귀가 공격 하였듯이 여전히 우리 가정을 공격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만을 가지고 고민할게 아니라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이유가 바로 가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2.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마귀의 특징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돈을 많이 벌고, 유산을 물려주고, 자녀가 돈은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 하게 합니다. 이는 잘못된 죄의 결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정이 행복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부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가 좋은 관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21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을 경외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할 수 없으며 세속적 가치관, 물질과 풍요로는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열쇠부부에게 있습니다.

    3. 이 가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집은 언제든지 나의 돈, 나의 명의로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주인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예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의 주인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6절)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우상이 없습니다. 야곱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또한 우리 가정에 숨겨져 있는 우상을 제거하여 내 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길 마다하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정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 [복음 메시지]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복음 메시지]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제목: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고전 2:10-16)

    일시: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령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가 비밀하다 말하며, 사람의 지혜나 이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깊고 감추어진 것으로 묘사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여기서 ‘보이셨다.’는 것은 드러내셨다, 곧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본래 우리에게 감추어진 채로 존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이시기에, 성령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에베소서 3장에서도 동일하게 증거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에베소서 3장 5절에서는 그 비밀이 “다른 세대에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나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 곧 이방인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며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이 복음의 신비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도 이 내용을 더욱 분명히 해 줍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1:26)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을 만세 전부터 감추어두셨으나, 이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이 복음을 전하며, 자신이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다른 성도들도 함께 깨달을 수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았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사람의 일반적인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즉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이성이나 연구, 철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성령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말씀과 교회를 통해 깨닫게 하신다

    또한 에베소서 3장 10절 말씀에 따르면, ‘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지셨도다”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셔서 치유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시편 73편에서 시편 기자는 악인이 형통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잃을 뻔한 사실을 ‘자신이 거의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실족하려고 했지만 실족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의 결국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실족할 뻔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때로는 세상의 불의를 보며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공의와 뜻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뜻을 알지 못하면 실족할 수 있으며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도 예수님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해하지 못해 넘어질 뻔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면 성령을 통해 주시는 말씀, 그리고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교회로 나가야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더 열심히 기도할 때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오직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마치 사람의 속 사정을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뜻도 성령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성경에 기록하셨지만, 이 말씀의 깊은 의미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참된 의도는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문자적 표현 즉 글의 표면적인 의미는 알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은 알 수가 없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중에는 성경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우리 참예수교회의 진리의 말씀과 구원에 관한 복음을 전하면 그런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 또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상식과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그 말씀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에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됐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독을 받아서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성령의 성령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이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혀주셔야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구원의 영광을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엡 1:17~18)

    이미 성령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바울은 더 깊은 지혜와 계시의 영, 그리고 마음의 눈을 밝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신앙에 대한 소중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말씀을 바로 분별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에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성령이 인도를 해 주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로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도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셔서 말씀을 전할 때도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은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생각이나 기준으로 해석하려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참예수교회는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해석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는데 일반 교회 같은 경우는 이렇게 하지 않다 보니까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후서 3장 10절 말씀에 주의 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한 주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주의 날’ 하면 일반교회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게 주일입니다. 계시록 1장 10절에도 ‘주의 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인 만큼 이것을 근거로 마지막 때에도 ‘주의 날’, 즉 주일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주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말씀을 푼 결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 對 신령한 자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미련하게 여기며 깨닫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 말씀에 십자가에 도를 미련하다고 여기는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혹은 성령 없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인 이방인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지만 육에 속한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면 점점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신령한 자는 육에 속한 자와 반대가 되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5)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삶이 됩니다. 결국, 이는 곧 성령 충만한 삶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

    고린도전서 2장 16절 마지막 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수도와 같은 삶,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에서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설교링크: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