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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복음메시지]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말씀제목] 시내산 이후, 첫 원망(11:1~9)

    [설교자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28일 안식일 오전 예배

    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출애굽 후에 시내산 아래에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나 광야 길을 걸은 지 3일 만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1장 1절에서는 그들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들으시고 진노하셨다고 나옵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후, 성막을 짓고 제사와 절기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불평과 불만이 터져나왔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을 떠나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몇 번이나 원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 출애굽기 15: 홍해를 건넌 후 3일 동안 마실 물을 찾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에 나무를 던지게 하여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22~27절).
    • 출애굽기 16: 배고픔을 호소하며 애굽에서 먹던 음식(고기, 빵 등)을 그리워하며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1~36절).
    • 출애굽기 17: 마실 물이 없어 또다시 불평하며 다툼을 벌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위를 치게하여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1~7절).

    이처럼 시내산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해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을 떠난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때마다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어느 때에는 원망을 참아주시고, 어느 때에는 진노하셨을까요? 그 시기는 시내산 도착 전과 후로 나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씀으로 훈련받기 전이므로(오늘날의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믿음의 훈련을 받은 후(초신자 외의 신도)에도 원망을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서 영적인 훈련을 받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굽(세상)을 그리워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고 원망했기 때문에 진노하시고 불로 진 끝을 사르셨습니다. 이는 큰 심판이 아닌 경고로 시내산을 나와서 처음 한 원망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깨우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중보기도를 하자 불이 꺼졌고, 그곳을 ‘다베라’(불에 탄 곳)라 불렀습니다.

    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그런데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나온 이방인들이 만나에 대해 불평을 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자손도 울며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4절을 보면 이 원망은 탐욕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10번째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라고 했습니다(출20:17). 탐낸다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고 이 탐심이 과해지기 전에 내 안에서 탐심이 힘을 못 쓰도록 해야합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2:15)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1~12)

     

    성경에서는 탐심이 아니라 자족하기를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출애굽 시키고, 홍해를 건너게 하고, 바로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렇게 탐욕은 받은 은혜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감사함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광야에 만나밖에 없다는 시각이 아니라, 원래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지낼 수 있도록 만나를 내려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면 탐욕이 되고 원망이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풍성한 마음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 한 해에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의 메시지]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복음의 메시지]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가 다가옴에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한 길을 가실 때 예수님을 따르는 세 사람이 등장 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 어디를 가시든지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7~58]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면서 늘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기적으로 치유해 주시니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 말씀을 듣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며,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꼭 따라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공격했고,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공격하는 자들 때문에 힘들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 때문에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걸림돌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주 힘든 길을 걸어가셨기에,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 9:59]

    이 사람은 예수님께 먼저 나아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실 때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받아,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야겠다’라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기다려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버려야 할 습관 중 하나가 바로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결단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는 것입니다. 머뭇거리는 사람은 늘 머뭇거립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본질은 세상과 역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육신적 욕망과 본성에 반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장벽을 넘어서면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머뭇거림은 습관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믿음으로 이를 극복하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 6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머뭇거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눅 9:60]

    여기서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즉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세속적인 일과 육신적인 삶을 좇다 보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머뭇거리지 말고 결단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생을 붙잡아야 합니다. 또한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은 세속적인 일에 지체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가장 긴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복음메시지]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26-38)

    [복음메시지]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26-38)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26-38)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1]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_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단순히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일을 받드는 것은 의무감에서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헌신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만이 자연스럽게 주님의 일을 향한 열정을 품게 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귀한 도구로 쓰임 받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삶을 다하여 주의 일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영원한 상급과 영광이 면류관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주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충성된 자로 여기시고 사용하기로 결정하시고 그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는 증거입니다.

     

     본문 말씀의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선택받았으며, 성령으로 임하실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귀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늘 함께하시며, 평생 동안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주의 일을 받드는 것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힘을 주시고 격려하며 위로하시며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존재로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신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은 사람이며 이것이 은혜입니다. 영화로운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쓰시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충성된 자로 여기시고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2] 쓰임받는 일꾼_ 주의 영광이 예비되어 있는 자

    * 좋은 소식을 전한 천사 가브리엘

     천사들은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영화로운 일꾼들입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일입니다. 주님의 일꾼들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마리아

     마리아는 주어진 사명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녀의 이러한 순종과 헌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습니다. 희생과 각오로 주의 일을 받들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는 그분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 성령 충만 받은 엘리사벳

     마리아가 태아를 임신한 후 엘리사벳에게 방문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의 인사를 듣자 엘리사벳은 성령 충만을 받았고, 그녀의 태중에 있던 세례 요한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엘리사벳에서 아기에게로 옮겨 가며, 엘리사벳은 곧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졌습니다. 인지할 능력이 없는 태아조차 성령의 임재 앞에서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주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며, 삶을 기쁨과 은혜로 깨닫게 하십니다.

     

    [2] (1) 성령 충만

    * 격려와 믿음의 확신

     아이와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눈이 밝아져 예수님과 마리아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믿음을 굳게 하며,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 믿음을 가지고 감당해 가시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사명을 귀히 여기며 함께 완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엘리사벳에게 임했던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 영적인 깊은 교제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 후 석 달간 함께 지냈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마치며

     가브리엘과 같이 외부인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사역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통한 주의 협력자가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 영상] https://www.youtube.com/live/bOEBg9OC-5U?si=02HtHA3x9GESAA7n

  • [복음메시지]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행1:12~26)

    [복음메시지]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행1:12~26)

    제목 :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본문 : 행1:12~26

    성경의 각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일꾼들을 사용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수의 시대엔 노아, 정복의 시대엔 여호수아 등.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요?

    지금은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며 약속의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이때 기도하기 위해 모인 숫자는 120명 이었습니다. 120명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3년 넘게 복음을 전하신 결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예루살렘의 평상시 인구는 약 5만명 정도 됐다고 합니다.
    또한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였을 땐 약 30만명 정도 됐다고 하죠.
    120명이라는 숫자는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작 할 때의 물리적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이때 제자들은 10일동안 오롯이 기도에 힘썼고, 그 결과 약속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기도에 힘써,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성결함을 지키며 준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설교의 한 부분은 가룟 유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제자였지만,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을 때, 비웃음 거리가 될 수도 있는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가룟 유다는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요12:6) 하나님의 돈 까지도 탐하는 가룟유다의 평소 행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세상의 가치를 더 사랑하셨던 가룟유다는 결국 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써 성결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를 쫓아 가는 삶을 계속해서 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의 잘못된 과거가 떠오를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의 죄를 자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딤후2:20~22)

    3. 일꾼을 세워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쫓아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치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입니다. 충성된 제자여도 어느순간 세상을 향해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분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변하여도,
    그 직분은 계속해서 누군가가 감당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성경에 따라 맛디아를 선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사바와 맛디아를 후보자로 올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택함을 구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때를 준비하며 이렇게 일꾼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이뤄집니다.

    <결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3가지의 모습으로 성령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성도들은 성령을 간구해야 겠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을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결을 지키며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도록 준비해야합니다.

     

    말씀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FMXqZF6dcg

  • [복음 메시지] 경배와 성화 (요 4:23~24, 롬 12:1)

    [복음 메시지] 경배와 성화 (요 4:23~24, 롬 12:1)

     

    [말씀제목] 경배(敬拜)와 성화(聖化)

    [본문말씀] 요 4:23~24, 롬 12:1

    [설교자] 장병용 목자님

    [설교일]  2024/11/9 (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위 두 구절은 신약성경시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루살렘 물질성전시대와는 달리 영적성전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 영적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진리와 성령의 충만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禮拜)를 드려야 합니다. 영적 지성소에서 예배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경배(敬拜)를,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로 성화(聖化)가 이루어져 갑니다.

    1. 경배의 대상
    하나님은 영이시고 거룩한 분으로(레19:2), 절대적인 거룩함 앞에서 우리가 영적 방법으로 경배하여야 합니다.

    2. 경배의 조건
    1) 경건(敬虔)과 경외(敬畏)
    경건은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 앞에 나아가기 전에 삼가 자신을 돌아보고 세속적인 것이 있나 없나를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경외는 절대적 거룩함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으로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세속화되지 않은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속에서 드리는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진실한 마음(Fact)과 온전한 마음(Full) (삼상 12:24, 수 24:14, 대하 19:9, 히10:22)
    나에게 있는 사실 그대로의 마음(진실한 마음)나의 심령에 존재하는 모든 것(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 앞에서 회개하여 깨끗함을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의미입니다.

    3) 진리 충만과 성령 충만
    진리와 성령 충만은 나에게 거룩함을 덧입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법을 나의 마음판에 새기는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렘 31:33~34, 겔 36:24~28).

    ⓵ 오순절 보편적 성령시대(요7:37~39, 행 1:4, 행2:1~4)에 있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자들은 진리와 성령 안에서 해야 합니다.
    세상의 누룩이 없는 순수한 진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⓶ 진리(말씀)의 충만
    무교절 1주일 동안 누룩없는 떡을 먹으라 함은 오늘날 평소에 항상 순수한 하나님 말씀(레마)을 상고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성소에 진설병이 있고 지성소에 만나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안식일에 영적인 성소에 들어올 때 우리 각자는 영적인 제사장이니, 회개기도로 거룩한 예복을 입고 누룩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여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⓷ 성령의 충만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엡6:18, 유1:20) 자기 덕을 세우는 것은 원문상 영적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고전 14:4~5).
    항상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덧입고 성령의 인도로 영적 성전(지성소)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 모습 그대로를 자백(회개기도)하고 성령 충만 속에 잠기면 하나님께서는 흠이 많은 내 모습에 거룩한 옷을 회복해 주시고 거룩한 영적 지성소로 인도하십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처럼 하나님 말씀인 레마는 하나님의 역사로 로고스가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육신 안에 말씀이 충만하게 됩니다.
    성소 안의 촛대(등대)처럼 나의 신앙 삶이 변화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완벽하게 닮아가는 성화에 다가가고 영적 지성소에서 보다 깊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3. 속죄(贖罪)와 성화(聖化)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까?’ 하고 죄를 의식하며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은 인본주의적 사고 때문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물침례를 예시(豫示)합니다. 할례로 선민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로워졌을까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번제단에 가져온 동물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렸고 거룩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물침례와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죄에서 자유로울까요? 거듭났으니 그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1) 은혜의 속죄법
    물침례의 죄사함으로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는 은혜를 받았으나 사탄이 뿌린 죄를 잉태하는 씨앗(죄성)으로 인해 거룩한 옷이 다시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한없이 연약하고 빈번히 넘어지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은혜의 속죄법을 만드셨습니다. 더러워진 옷을 입은 채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고전 3:16, 6:19~20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 하셨으니 성전을 더럽히면 안됩니다. 또한 엡 2:20~22을 보면 성령 안에서 내 안의 하나님의 성전이 완벽을 향해서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내 안에서 완벽하게 지어지도록 계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습관처럼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마음의 간절한 회개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노력만으로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계속적으로 유지할 때 그리스도의 피가 역사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을 깨닫게 되며,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나오고 거룩한 영적 지성소에 거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3) 믿음과 순종
    성경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경우를 찾아봅시다. 창세기에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지시한 그대로 순종을 하였고,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성막을 만들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비록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4) 죄성(罪性)과 불침례
    하나님은 사탄이 뿌린 우리의 죄성(罪性)을 해결하려고 사탄에게 우리를 보내십니다. 사탄은 죄의 유혹과 고난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신약시대의 불침례와 같습니다. 그 불 속을 온전히 잠겨 통과함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정금으로 만드십니다.

    5) 신성(神性)과 성전
    신성의 미성숙함을 완전한 성숙함으로 자라가게 하려고 성전을 예비하셨습니다. 매 안식일에 듣고 보았던 말씀(레마)을 준비하여 성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 시대 번제단에서 선민의 죄를 해결하듯이, 우리는 회개기도(영적 제사장의 사역)로 흠이 있는 거룩한 옷을 빨아야 합니다. 거룩한 옷을 유지하며 성령의 충만과 인도로 영적 지성소에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한 성화를 향하여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속죄(贖罪)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성화(聖化)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결어
    1) 안식일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기억합시다.
    2) 안식일에는 반드시 성전에 나와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예배드려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안식일에는 성전을 사모하고 나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충분한 기도시간을 확보하도록 하여 1주일 동안의 감사기도와 회개기도로 영적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거룩한 옷의 예비)를 합시다. 충분한 기도를 통해 성령이 함께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이 역사하게 됩니다.
    4) 세상의 지혜나 자랑은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이룰 수 있고, 그 가운데 사탄의 역사로 사람의 생각이 가미되어 하나님보다 사람을 자랑할 수 있게 되니 안식일에는 세상적인 것이나 자랑은 삼가해야 합니다.
    5) 1주일 동안 읽은 하나님 말씀(레마)이 내 마음에 새겨져 로고스화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경건함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믿음과 순종으로 내 안의 하나님의 성전이 튼튼한 반석 위에 지어져 가도록 성령 충만을 유지하도록 합시다.
    6)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성화)은 의와 평안과 희락이 이루어져 나의 삶이 형통함(토브)을 보여 주고 그러한 변화된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의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복음메시지]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1~14)

    [복음메시지]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1~14)

    [말씀제목]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1~14)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4년 9월 1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오늘 말씀의 내용은 에스겔이 하나님께 받은 9가지의 비유 중에 마지막 환상의 비유인 마른 뼈 골짜기 비유입니다.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하나님의 영(그 신)이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 가운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실제 에스겔의 몸은 바벨론에 있었지만, 환상 중에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 골짜기에는 심히 많은 뼈가 있었는데 아주 말랐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아주 마른 뼈는 사망을 상징하는 그림 언어입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망의 그늘에 오래 빠져있는 해골들을 말하는데, 이것은 영적인 사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시는 이 영적 환상을 통해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 죄를 지은 자들이 많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많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뼈들은 육신은 살아있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영적으로는 죽어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11절)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마른 뼈들을 살리겠다고 하시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명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뼈들이 소리가 나며 움직이더니 서로  결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에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을 모두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뼈는 누가 살린 것일까요? 말을 한 사람은 에스겔이지만,  ‘살리라’고 하신 이는 바로 주 여호와입니다(5절). 에스겔은 그저 대언한 것 뿐입니다.  때때로 치유나 이적기사가 일어날 때, 그것을 행한 사람의 능력으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자나 어떤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임을 아시고, 마른 뼈들을 살린 이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이치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능력이 있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세상에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위 구절들은 성령을 간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을 불어넣어서 살아나게 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성령을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는 회복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2-4)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무덤을 열고 백성들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지 않지만 부활에 대한 개념은 있습니다. 세 곳에 나와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이 대표적인 구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덤을 열어 백성들을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 즉 에덴의 회복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내 백성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마른 뼈’에 생기가 넣어져 무덤에서 나오니 그들이 ‘내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사망으로부터 부활까지 이르러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룰 줄’이 아니라 ‘이룬 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4절)

    그러면 이 환상과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적으로 보면 첫 번째로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70년 뒤에 풀려나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고 율법을 다시 세웠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2500년이나 지난 뒤에 다시 건국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이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말씀하셨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이스라엘이 회복된 결과를 보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 보면 성령을 받은 후에 초대교회가 생기고 성장하였지만, 중세시대에 들어서 종교에 정치가 개입되며 교회가 변질되었습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떠났습니다. 그런데 1917년에 다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 마른 뼈가 생기로 살아나듯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도시대 이후 죽어있던 교회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늦은비 성령)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을 통해서 무덤을 열어주심을 예표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나온 이후로 어떤 누구도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들에게 에덴의 회복을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13:14)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5)

    태어났을 때 이미 마른 뼈인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마른뼈들이 일어나듯이 사망의 무덤을 열고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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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 (눅24:13~35)

    [복음메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 (눅24:13~35)

    동행하시는 예수님

    제목 : 동행하시는 예수님

    성경 : 눅24:13~35

     

     믿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은 믿음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와 함께 걸어가셨고,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24:16)

    성경에선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앞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눈이 가리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13:13)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예수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이 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한 것일까요?

     

    1. 미련하여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라사대 미렪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5)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도 나와 있고,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부활하신 이후엔,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그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 보였던 것입니다.

     

    2. 더디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1:19)

    하나님의 말씀은 속히 듣고, 속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디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뵙기 위해선,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올바른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것에서 시작합니다.

     

    2) 예수님을 강권하여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을 강권하여 모셔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할 때엔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와 함께 거하시길 강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마치 많은 무리들 속에서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소리 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3) 예수님께서 축사의 떡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는 것은, 우리의 능력만으론 안 됩니다.

    예수님의 축복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겐 실로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성찬을 할 때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라”

    (눅24:31)

     

    예수님인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예수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했던 제자들은 그 즉시 다른 제자들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도착했을 땐,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님은 직접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는 참예수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전하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 [복음메시지]스스로 괴롭게 하라(레 16:29~31)

    [복음메시지]스스로 괴롭게 하라(레 16:29~31)

      우리 교회는 현재 가을 특별 전도 집회를 앞두고 한달간 릴레이 금식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풍성한 전도집회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주님 앞에서 합당하고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기도가 되기 위하여 오늘 말씀을 통해 금식기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레위기 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말씀은 대속죄일에 관한 것입니다. 대속죄일은 온 민족이 자기의 죄를 생각하는 날이며, 대속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때 온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매우 합당한 일입니다. 백성들은 가만히 있어도 자신의 죄가 사해지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용서를 구하고 죄 용서를 받으려면 마땅히 죄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죄에 대해 뉘우치는 마음과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해 괴로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죄 용서를 받는 자들의 당연한 태도 아닐까요?

     

    금식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 8:21)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스스로 괴롭게 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과 혼을 괴롭게 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스스로 겸비하여”라는 표현은 원문에서 “스스로 괴롭게 하여”로 해석됩니다. 금식은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일이 있고 간절한 일이 있기 때문에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다 함께 금식기도를 할 때에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역대하 2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이 말씀에는 금식 가운데 하나님의 큰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모든 민족이 한 마음으로 금식하였고,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역대하 20: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의 간절한 금식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던 이 내용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강건한 마음과 뜻을 깨닫는 지혜를 주십니다.

    (삼하 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다윗 왕은 인생에서 가장 큰 죄를 지었을 때 금식했습니다. 그는 충성된 종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가 그의 자녀에게 임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 다윗은 마음에 괴로움이 심하여 무려 7일을 금식했습니다. 하지만 금식 기도의 결과는 아이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금식 기도가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의 영성이 깊어지고 속 사람이 강건해졌습니다. 기도를 마쳤을 때 그의 속 사람이 매우 강건해져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식 기도의 열매입니다.

    금식의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왕상 21:27~29)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하였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아합 왕의 금식을 통해 금식의 바른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합의 겸비함을 기쁘게 보셨음을 나타냅니다.

     

    금식기도를 통해서,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는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행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신약 시대에도 여러 번의 금식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교회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됩니다. 바울 사도의 세계 전도 여행이 시작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닌, 금식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든 분들이 금식기도의 올바른 자세와 능력을 깨닫고 이 일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음이 더해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이현우 자매

    편집: 방태식 형제

  • [복음 메시지]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6:1~4)

    [복음 메시지]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6:1~4)

     

     

    [말씀제목] 이스라엘아 들으라!

    [본문말씀] 신 6:1~4

    [설교자] 장병용 목자님

    [설교일]  2024/07/20 (토)

     

    Ⅰ. 배경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6:4)

     신명기는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차례에 걸친 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법(율법)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내용입니다. 오늘 나눌 신명기 6장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Ⅱ. 내용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6:1)

    성경에 ‘명령과 규례와 법도’로 분류해서 기록했지만 쉽게 ‘하나님의 법(法)’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법이 담고 있는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법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담겨 있습니다(창18:19).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체를 말하는 것인데, 성경에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고 쓰여 있습니다(창1:27). 형상의 진정한 의미는 겉으로 나타나는 육체적 외적 모습이 아니고, 육체를 벗고 난 후의 영적인 모습, 즉 ‘영적 외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적 형상의 발현은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저의 이 모습(육체적 외적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발현된 것이지 실체(영적 외적 모습)는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부활을 설명한 예시에서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밭에 뿌리는 씨 즉 알갱이가 땅속에서 썩어 없어지고 생명체인 싹으로 나오는 그것을 실체(형체)라고 하였습니다. 내 육체가 죽은 후 신령한 몸(육체적 외적 모습을 벗고 난 후의 영적 외적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속사람에 따라 선한 부활도 있고 악한 부활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적 모습을 하나님을 닮아가는 선한 모습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은 이 ‘영적 내적 모습’ (히브리어로는 ‘데무트’)을 ‘모양’으로 번역하고 있고, 앞서 말씀드린 ‘영적 외적 모습’(히브리어로는 ‘쩨렘’)을 ‘형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창1:26; 5:3) (창5:1에서는 데무트인데 형상이라고 오역함.)

     

    의미

    히브리어

    한글 번역

    겉사람

    육체적 외적 모습

     

     

    속사람

    (부활체가 되면 드러남)

    영적 외적 모습

    쩨렘

    형상 (창1:26; 5:3)

    영적 내적 모습

    데무트

    모양 (창1:26; 5:3)

     

    ‘영적 내적 모습’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의 인격(personality)을 ‘지정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知,智)는 지식 및 지혜의 세계, 지적 요소, 즉 머리 부분에 해당됩니다. 정(情)은 정적 요소로 가슴 부분에 해당되고, 의(意)는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의지(意志)를 말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의(義)를 하나님의 지정의로 구체화하여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정의는 완벽하여 ‘완전한 지정의’ 또는 ‘성숙한 지정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 하와에게 넣어 준 지정의와는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인간에게 준 지정의는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만들었지만 완전 단계에 이르지 않은 ‘미성숙한 지정의’입니다. 이는 비록 미성숙한 지정의이기는 하나, 죄가 있거나 악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정의를 닮아 가도록 하신 겁니다. 즉, 인간의 순종과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고자 함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니 성경에서는 두려워 할 것(경외,敬畏)과 자기를 돌아 볼 것(경건,敬虔)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런데 미성숙한 지정의가 사탄의 영향(유혹)을 받아서 사탄의 씨앗이 인간에게 뿌려졌습니다. 그것이 ‘왜곡(歪曲)된 지정의’를 낳았습니다. 왜곡된 지정의는 ‘죄성(罪性)’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왜곡된 지정의는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스럽지 않은 삶으로 이끄는 ‘죄(罪)’를 잉태하게 합니다 (약1:15).

    하나님께서는 물침례와 성령침례를 하나님의 법 속에 담아 두고, 이것들을 축으로 하여 죄와 죄성을 해결하고, 의(義)를 성장시켜 하나님의 의를 인간 안에 풍성하게 담게 하십니다. 이 과정은 우리의 영적 내적 모습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단계입니다. 오염된 우리를 돕기 위해 하나님의 영(靈)이 오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읽고 자녀들에게도 꾸준히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이뤄가는 것이 ‘성화(聖化)’입니다. 완벽한 지정의 즉 성경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완전한 지(知,智)’-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 지혜에 대하여, 그리고 ‘완전한 정(情)’-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분노하시고 애통하심에 대하여, ‘완전한 의(意)’- 하나님이 언제 행동하시고 참으시는지에 대하여 잘 깨달아야 합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6:2)

     

    하나님께서는 2절 말씀을 왜 강조하셨을까요? 첫째는 나와 내 아들과 손자로 평생에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 위한 것, 둘째는 우리에게 명한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 셋째는 우리를 장수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수는 행복이 가득한 장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장수는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신 이유가 3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6:3)

     

    제일 중요한 것은 ‘복’입니다. 구약 성경에 복은 주로 3가지 단어로 쓰여 있습니다 (참조:시128편). ‘바라크’(축복)가 있고, ‘에쉐르’(행복)가 있습니다. 3절의 복은 ‘토브’입니다. 토브는 창세기 1장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의미입니다. (창1:10,12,18,21,31)

    정리해 보면 ‘바라크’(축복)란 내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지식, 총명, 재물 등 이지요. 그런데 그 축복이 항상 ‘에쉐르’(행복)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이 많아 행복한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재물이 많으므로 불행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에쉐르’(행복)를 느끼며 살고 나를 돌아 보았을 때 ‘내 인생이 참 좋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이 ‘토브’입니다.

    3절의 첫 부분에서 ‘삼가’라는 단어는 원문에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잘 보관하고 그 보관된 말씀을 따라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행복한 삶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고 아름다운 복을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행하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참 좋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통틀어 고찰해 보니 다음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참조:시122편). 첫째 ‘평안(平安)’의 삶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형통(亨通)’의 삶입니다. 즉 내 삶이 하나님 뜻에 맞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순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한 삶인 ‘평안과 형통’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명기에서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요약해 봅니다.

    첫째,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때마다 귀를 기울이고 듣고 그 말씀을 내 울타리 안에 간직해서 행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행할 때 한 번에 완벽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완벽하게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속죄법(贖罪法)을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속죄법을 만든 것은 우리가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는 사탄이 뿌린 씨앗, 즉 ‘왜곡된 지정의’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유혹을 받거나 약해지면 이 왜곡된 지정의가 작동하고 그것이 ‘죄’를 낳습니다. 우리의 신앙 삶은 이렇게 넘어지면서 일어나는 반복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이 이뤄져야 합니다.

    영광과 비슷한 용어가 ‘자랑’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칭찬도 자랑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장 31절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의 원문에 따른 정확한 번역은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하라’입니다(렘9:23,24). 영광은 나중에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영광의 면류관(월계관)입니다.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많을수록 많은 영광을 받을 것이고 적으면 조금 받겠지요!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세워주시고 현재의 모습을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지식, 재물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눌 때 나누는 그 손길이 하나님의 도(道)가 되고 하나님의 손이 되어 역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성령 안에서 의(義), 평안(平安), 희락(喜樂)입니다(롬14:17). 하나님께서는 기쁨이 충만되고 의가 충만된 그런 하나님 나라를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에서 이루어야 할 내용이고 천국에서 이루어질 내용입니다.

    이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자 굉장히 절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자체도 복이고,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그 복을 향유할 수 있음이 하나님의 뜻이고 창조의 목적임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온 힘을 다하여 행하여서 하나님의 의를 우리 속에 이루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 [복음 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22:47~53)

    [복음 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22:47~53)

    제목 : 이것까지 참으라

    본문 : 누가복음 22장 47 ~ 53 절

     

    세상에서 나의 신앙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 인간은, 그것을 잊고  마귀에게 미혹 당하곤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미혹합니다.

     

    누가복음 22장 49~50절 말씀을 보면,

    무장을 한 이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이에 한 제자는 예수님께 다급히 묻습니다.

    “주님! 우리가 검으로 저 사람을 칠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그 제자는 검으로 군사의 귀를 쳤습니다.

    당연히 그 제자는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악인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의 신앙을 해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눅22:51)

    너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잡으러 온 군인을 치료해주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장 52절)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힘과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행에 대하여 힘으로 보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마음에 미움이 가득해질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들입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는 인내할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일지라도

    그것까지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는 힘에서 우리는 신앙이 점점 더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감정이 악해지도록 미혹합니다.

    그리고 늘 우리 마음에 보복의 마음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린 참을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실천해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한 마음을 해결해주시고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17~21)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들은 마치 강도를 잡으러 오는것과 같이 온갖 무장을 하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강도인가요? 그들의 마음엔 악한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낮이 아닌 밤에 찾아왔습니다.

    악행은 음지 즉, 어두운 곳에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늘 밝은 곳에서 거하고자 해야 합니다. 선행을 행함으로 빛을 내시기 바랍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 13:8~10)

     

    성도 여러분!

    말세엔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상황들이 더 많아집니다. 우리는 인내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주님! 우리 성도들이 모든 상황에서 인내하고 참고 견딜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원합니다.

     

    말씀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J57uLYyl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