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교회행사] 광주교회 아동부 친구초청잔치

    [교회행사] 광주교회 아동부 친구초청잔치

    할렐루야! 이번 겨울에 광주교회에서는 아동부 친구초청잔치를 진행했습니다. 이번에 교사 지원단 선생님들께서 와주셔서, 아동부와 교사들 모두 더 즐겁게 행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명의 새 친구가 친구초청잔치에 와주었습니다!
    함께 인사와 찬양을 하고, 환영하는 축복송과 꽃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후에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토대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활동을 통해 얻은 재료들로 컵 피자를 만들어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든든히 밥을 먹고 야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교사들이 한마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친구초청잔치의 시간을 다 같이 행복하게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초대에 응해준 전도 대상자 친구들과, 용기 내서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전해준 아동부 친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자라나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 [복음메시지]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 (에 4:1~17)

    [복음메시지]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 (에 4:1~17)

    [말씀제목이때를 위함이 아니냐

    [본문말씀] 에 4:1-17

    [설교자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5. 10. 04. 오전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은 바사 왕국, 곧 페르시아 왕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민족이 하만에게 엎드려야 했으나 모르드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화가 난 하만의 음모로 모르드개의 민족, 즉 유다 백성의 학살 명령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르드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 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인식하고 애통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성에 나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면한 위기를 분명히 인식하고 애통함으로 간절히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뜻, 도우심, 구원하심을 구한 것입니다. 또 온 나라에 있는 많은 동족이 함께 애통하며 금식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기도 제목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나요? 우리는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를 돌아보고 현재 교회가 당면한 위기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교회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때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모르드개에게는 설사 에스더가 침묵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에스더가 하나님의 백성을 외면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향해 분명히 말합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즉, 바로 이와 같은 위기의 때를 위해 하나님게서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교회의 성도로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신 것은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부르심 받았다는 소명 의식, 내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 구원의 일이 있다는 사명 의식, 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도 에스더처럼 주저되고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면 오늘 본문에서 모르드개가 외친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나!”라는 말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에 용기 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3.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헌신해야 합니다. (15~17)

     

    모르드개의 권면으로 에스더는 용기를 내어 유다 민족을 다 모아 나를 위해 금식해 줄 것을 명하고, 본인도 시녀와 함께 금식하겠다고 선포합니다. 에스더는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내게 맡겨진 사명을 외면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결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교회가 당면한 여러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때를 놓치지 말고, 내게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를 위해 일한다고 해서 곧바로 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헌신을 포기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그 자리에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과정을 통해 당신의 선한 계획을 완전히 이루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든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장 큰 복으로 화답하십니다.

     

    [요 12:24-2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지금 이때, 하나님의 나라 된 교회를 위해 힘써 기도하고 헌신하는 우리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신앙의 향기] 아동부가 하나님께 올리는 향기 – 암송한마당

    [신앙의 향기] 아동부가 하나님께 올리는 향기 – 암송한마당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말씀의 기쁨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열렸습니다. 바로 아동부 암송 한마당입니다. 이 행사는 남부지역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들이 그동안 정성껏 준비한 말씀 암송과 찬양을 함께 나누는 축제의 자리였습니다.

     

    아동부 암송 한마당은 단순히 암송을 잘하는 아이를 뽑는 행사가 아닙니다. 행사에서 제시된 말씀을 집에서, 교회에서 꾸준히 외우며 준비하고, 그 말씀을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믿음과 용기가 자라나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지만, 또박또박 말씀을 외우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각 교회가 준비한 찬양 발표는 행사의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손을 들고 찬양하며 웃고, 서로의 무대를 응원하는 모습 속에서 아이들은 ‘함께 믿음을 나누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경험했습니다. 소속된 교회는 달랐지만,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동부 암송 한마당을 통해 아이들은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입으로 고백하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하루가 아이들의 신앙 여정 속에 오래도록 남아, 말씀을 사랑하는 씨앗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준비하고 응원해 주신 모든 교사와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행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이들의 믿음이 밝게 자라나는 다음 만남을 소망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교회 행사] 아동부 포인트 행사

    [교회 행사] 아동부 포인트 행사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의 웃음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아동부에 아주 특별한 하루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동부 포인트 행사입니다.

    이 날은 아이들이 그동안 열심히 참여하며 모은 포인트를 직접 사용해 보고,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축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동부들이 모은 포인트는 성경 통독, 예배 출석, 바른 예배 태도, 말씀 암송 등 아이들의 일상적인 신앙 활동 속에서 하나씩 쌓여 왔습니다. 매주 말씀을 읽고, 예배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집중하려 애썼던 작은 실천들이 모여 포인트가 되었고, 그 결과가 이날 환한 미소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 이런 기쁜이 있구나”를 몸으로 느끼며 성취감을 경험했습니다.

      

    이번 포인트 행사에서는 특히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먹거리를 바라보며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설렘으로 가득했고, 계산대 앞에서는 스스로 모은 포인트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친구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웃는 모습, 서로의 선택을 응원해 주는 장면들은 행사장을 따뜻한 에너지로 채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 더 의미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포인트의 숫자보다 그 과정의 즐거움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말씀 외우는 게 재미있었어요”, “예배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라는 말 속에는 한 학기 동안 자라난 아이들의 믿음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동부 포인트 행사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함과 동시에, 신앙 생활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웃음 속에서 믿음을 키워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함께 응원해 주세요. 한 학기 동안 수고한 모든 아이들과 이를 함께 도와주신 교사, 부모님 그리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이 한 문장은 이 간증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입니다.

    이 글은 믿음 안에서의 결혼을 소망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렸던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기도와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결국 한 가정이 믿음 위에 세워지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변화는 빠르지 않았고, 고난은 반복되었지만 간증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함께하고 계셨다고.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여셨고, 결국 기도의 제목이었던 남편은 믿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무너짐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음을 돌아보며, 이 간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늦지 않으시며,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길 위에서

    끝까지 동행하시는 분이시라고.

     

    이 짧지만 깊은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삶에도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바라며, 간증을 소개합니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할수 있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증을 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간증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는 데 어느날 간증동영상을 보게 되고 그 간증을 보면서 아 그래 옛날에 우리 남편도 교회 가는것 보 다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때가 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생각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경추집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때 간증을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하든 제가 하든 상의해서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간증을 보게 하시고 그 간증을 통해 우리 남편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건 아닐까? 란 생각이 들면서 집사님께 간증을 해보겠다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준비하려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함께 나눠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남편을 전도하게 된 일은 예전에 청주교회 50주년 기념호에 있는데 또 얘기를 하는게 맞나? 고민도 되었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오랜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남편을 처음 알게 된 건 고3때입니다 당시 같은 학교였고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하루는 전교생이 강당에서 조회를 하는데 그날 저와 친구 한명이 당번이어서 교실을 지키고 있었고 한참을 교실에 있다가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강당에서 우르르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 수많은 사람중에 딱 한 사람 지금의 남편만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는데 자기랑 친하다며 이름과 몇 반인지 성격이 어떤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듣기만 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가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어떻게 그 사람만 보였을까? 그것도 무슨 아우라가 비췬것 처럼 그렇게 그 사람만 왜 보였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게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반의 대표로 제가 나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남편이 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저에게 친구하고 싶다며 편지를 보내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과인 남편과 문과인 제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저에게 사귀자고 했고 그 당시에 저는 신앙인이 누군가를 사귄다는 건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큰 죄라고 생각을 해서 거절을 했는데 그 일이 상처가 되었는지 그날 이후로 저와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잃었단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앙이 우선이었던 제게 그 일은 후회되지 않았고 대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라신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하실 거죠? 강당에서 나올 때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히 길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시 보게 될까?

    이 사람을 전도하라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시켰습니다. 이방 결혼은 절대 안 된다, 믿음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은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처음 만나는 날 반대를 하려고 맘먹고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렸는데 식당 문을 열고 둘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너무 닮아서 왠지 반대를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지…

    저희 엄마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나와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고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저에게는 이방 결혼은 정말 믿음 지키기 힘들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이사람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방 결혼을 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함께 갈 때 걱정도 많았습니다. 아직 결혼 전이어서 다른 성도님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거부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몰려올 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교회에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들 때문에 자꾸만 망설여지는데 어떡하죠?” 기도를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란 생각이 더 우선이 되었고 남편에게도 교회에 대한 방언에 대한얘기를 미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교회와 다르다. 우리 교회는 성경에 나온 그대로 행하는 교회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 방언 소리가 처음 듣는 사람은 놀랄 수도 있지만 이건 결코 이상한 게 아님을 얘기를 했고 또한 나는 교회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처음 교회 가게 된 남편은 많이 어색해하긴 했지만, 다행히 놀라거나 거부하지는 않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이 되면 자꾸만 친구들 만나러 가려하고 여행을 가는 등 핑계를 대며 때론 저도 교회를 갈 수 없는 상황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제 머릿속에 ‘신앙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을 해선 안 된다는“ 어느 목자님의 설교 말씀이 기억이 났고 나는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교회를 가야 한다. 라고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랑은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 후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는 서울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신앙이 연약했고 세상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신랑은 안식 일이 되면 교회를 가야 하는데 자꾸 핑계되며 안 가려 하고 세상 친구들 직장동료들과의 모임 등을 중시했고 이런 문제들로 자꾸만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인맥도 중요하고 그러려면 술자리만큼 친해지기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신랑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최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형제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오히려 더 사회에서 인정받는 다는 것을 어떡하면 알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주신 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남편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닌데 천국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아직 모르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신랑과 신앙의 문제로 부딪힐 때마다 이방 결혼은 이래서 힘들구나 뼈저리게 느꼈고 나중에 우리 자녀는 꼭 믿음의 가정과 결혼시켜야지 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또한, 아직 신앙이 연약한 남편을 위해 때론 금식기도도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가는 것부터 가 먼저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로 달래듯 저는 남편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안식일 예배 빠지지 않고 가면 사줄께~ 라고 달래서 교회를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교회 갔다 오는 길엔 꼭 이 말들을 했습니다. “ 당신이랑 이렇게 교회 갔다 오니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그리고 평소 집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장 17절 말씀에 의지하여 억지로라도 말씀을, 찬양을 듣게 하려고 청소할 때나 설거지할 때 말씀을 틀어놓거나 찬양을 틀어놓곤 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언젠가는 남편도 서서히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의 바람은 내 믿음이 흔들릴 때 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였습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에 살때 신랑은 세상에 더 많이 속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혼자 울기도 많이 하고 그때 하나님만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정말 그때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우울증이 심하게 오지 않았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은 흘러 둘째가 태어날 때쯤 제가 청주로 내려가자고 신랑을 졸랐습니다. 서울에서 저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남편은 매일 야근에 회식에 늦게 들어오고 혼자 만삭에 큰아이까지 보는게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남편은 세상에 더 빠져버리고 신앙은 멀어지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신앙도 흔들릴 것 같았습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청주에 직장도 없이 무작정 내려와 시댁 어른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을 지키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이때 또다시 왜 이방 결혼은 안 되는건지 왜 그렇게 믿음 안에서 결혼을 하라고 했는지 친정 부모님의 말이 많이 떠올라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내 십자가란 생각으로 정말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이라 저녁때면 일 마치고 오신 시댁 어른들과 신랑은 술자리를 즐겼는데 그 모습을 어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게 저는 참으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수 있는건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 어른들과 술을 마시던 신랑이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고 그날 이후로 ”앞으로 너는 술 마시지 마라“ 라고 하셨고 다시는 술자리를 갖더라고 신랑에겐 술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역시 멋진 우리 하나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아뢸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결혼하고도 십일조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신랑은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굳이 십일조를 해야하느냐, 이런 부분으로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일을 할 수 있었겠어? 당신이 벌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벌 수 있는거야. 그 전부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고 이렇게 감사하며 십 일조를 할 때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주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신랑은 탐탁치 않아 했지만, 청주에서 십일조의 기적을 여러 번 체험하면서 신랑의 마음은 바뀌게 됩니다. 청주로 이사 오고 신랑이 직장을 구하고 첫 월급은 수습이라서 너무나도 금액이 적었습니다. 너무 적은 금액을 십일조 내기 창피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많은 금액을 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 달 십일조 낸 금액만큼 월급이 올랐습니다. 창피하게 생각해서 더 내긴 했지만 이렇게 축복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두 번째 달은 감사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냈는데 신기하게 더 낸 만큼의 월급이 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신랑에게 얘기하면서 신랑도 신기해했고 그 후로는 십일조 하는 것에 더 이상 반감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삶에서 직접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청주로 이사하고 교회를 가는 데 그때 당시 교회는 용정동에 있었습니다. 신랑과 애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데 지금은 안 그래 보이지만 그때 당시 신랑은 낯을 많이 가렸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자마자 한 형제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 신랑이 낯을 많이 가리는데 옆에서 꼭 붙어서 좀 챙겨줄 수 있겠냐고,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형제님은 알겠다며 흔쾌히 대답을 하고 그때부터 밀착케어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하든 같이하자고 하고 어딜 가든 같이 가자고 하고 절대 혼자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절친?이 되었지만, 그 당시 그렇게 매사에 챙긴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힘든 일이겠지요.

    그리고 교회에서도 무슨 행사를 할때면 신랑이 좋아하는 요리경연대회라든가 탁구 등 모든 초점을 신랑에게 맞춰주는 배려와 성도님들의 사랑에 신랑도 서서히 세상 친구들 모임보다 교회 안에서의 활동들, 성도 간의 교제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청주로 내려와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신랑이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고 청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신랑도 성령을 받아서 더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된건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성장시키기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하셨구나 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때때로 제가 믿음 없는 말을 할 때면 신랑은 오히려 저를 깨우쳐 주는 동역자가 되어있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길 바랐던 저의 바람을 하나님께선 기억하시고 이뤄주셨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가게를 운영하다가 폐업하게 된 일, 우유 판촉 일을 하면서 비바람을 맞았던 일, 사기를 당해서 돈을 날렸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려합니다.

    신랑과 함께 죽 가게를 했었는데 병원 검진 손님들을 상대로 운영을 하다 보니 안식일 오전 예배 참석을 할 수 없었고 안식일을 못 지키는 것에 계속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꿈에서 우리 가게 앞 도로에 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모든 가게들이 무너지고 우리 가게도 무너지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너진 잔해 속에 작은 빛이 보이고 그 빛이 보호막처럼 신랑과 제가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꿈이 대체 무슨 꿈일까?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계속 그 꿈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않아 저희 가게는 병원 검진 손님들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병원에서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식당까지 운영을 하게 되고 더 이상 검진 손님을 우리 가게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함께 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어버리니 저희 가게는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게 권리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많은 피해를 입으며 정리를하게 되는데 그 당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담임 목자님께 기도 부탁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에 꾸었던 그 꿈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다 무너졌지만, 우리를 보호하던 그 빛이 생각 이 나면서 빛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거란 확신이 들면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참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안식일을 우리가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켜야겠단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직장을 구할 땐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지가 제일 일 순위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며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오거나 할때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고 내가 생각지 못하는 방법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완벽한 때에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을 하는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수많은 날들 속에 평안한 삶만 있었다면 과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고난을 통해 남편은 옛사람의 모습들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관들을 버릴 수 있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이 제일이란 생각을 갖게 했으므로 지금은 그 고난이 감사하단 생각이듭니다.

    내가 걸어온 길 길고도 짧은 길

    내 힘으로 걸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주님 나와 동행하심이라며

    때론 험한 길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때론 가시밭길에서 고난을 당하나

    주님 동행하시니 나는 두려움 없네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동행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 삶에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남편이 구원을 받았고 신앙이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자녀 또한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온전한 신앙의 집을 잘 세우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복음 메세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눅 12:32)

    [복음 메세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눅 12:32)

    [말씀 제목]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눅 12:3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11.22

    분당교회 즉 전 성남 기도소에 첫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인테리어 작업을 집사람과 직접했다. 전기톱을 빌려서 계단 하나 높이만한 단을 직접 제단했고 그 위에 붉은 색 융으로 덮었다. 벽면 페인트 칠을 하고 자모 예배실 창문 썬팅 작업도 했다. 그렇게 인테리어 작업을 마친 후 첫 안식일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왜냐하면 안식일 오전 예배에 참석할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 한분, 그리고 아기엄마 둘이었다. 게다가 정자동 할머니가 혼자 버스를 타고 40분이나 걸려서 하차한 후 교회까지 걸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갓난 아기를 막 출산한 두 자매도 아기를 안고 버스를 타고 교회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모든 형제들은 모두 직장에 매여 있었다. 그러니 참석자가 없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금요일 오후까지 예배 준비를 모두 마쳤고 안식일 오전이 밝았다. 그렇게 우리 내외, 할머니, 두 자매와 두 아기 그렇게 7명으로 전세 얻은 회당에서 안식일 오전 첫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예배 인원은 15명이 되었고 수세자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수세자는 박지영 문지혜 자매와 백소영 어린이 백하영 아기 최종민 아기 이렇게 다섯 사람이었다.

    그 과거를 회상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숫자에 관심이 많고 연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현재 눈에 보이는 것에 굴복하고 사는가? 아니면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당한 눈일까? 오늘은 제자들에게 주셨던 예수님의 말씀 중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라는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평가할 때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의견을 수용하고 소수의 의견은 버린다. 이렇게 다수의 의견에 의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한다.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 태어나 그것에 익숙한 우리는 그것에 매우 친숙하다. 그런데 이 성향은 종교를 선택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이 다니는 교회, 다수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사상을 따르려고 한다. 그러나 종교를 선택하고 진리를 분별하는 일에는 과연 그것이 합당한 기준인가? 그렇지 않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다수결의 맹점이 발견된다. 20세기까지 지구상의 절반의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현혹되어 공산주의 국가체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붕괴와 함께 그 사상은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렇게 다수의 사람들이 좇았지만 그것은 허상이고 합당치 않은 것이라는 점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또 중세 역사 속에 마녀사냥이 있었다. 유럽의 종교전쟁과 30년 전쟁, 그리고 페스트에 의한 팬데믹 기간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그 원인을 생각했다. 도대체 이 많은 재난과 재앙의 원인이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 원인이 마법사, 마녀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재난과 재앙이 임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미신적 결론에 도달한 결과는 암울했다. 죄없는 양민을 마법사나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했다. 소위 이것이 마녀사냥이다. 이 마녀사냥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와 기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매한 다수의 편견이 만들어낸 범죄의 역사였다.

    그런가하면 과학의 영역에도 다수결의 폐단이 있었다.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시대에 천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망원경으로 열심히 천체를 관찰하던 그는 태양과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자를 천동설, 후자를 지동설이라고 한다. 지금은 지동설이 당연한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지동설 때문에 종교 재판에 회부된다. 지동설을 주장하고 죽을 것이냐 철회하고 살 것이냐의 기로에서 그는 지동설을 철회하고 목숨은 구했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물러나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현대에 와서는 천동설을 믿는 바보는 아무도 없다. 이처럼 과학적 진리의 분별에도 우매한 다수의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 속에 오히려 다수가 미신에 빠져 범죄하고 다수가 우매한 결론에 도달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별다르지 않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보시며 한탄하셨다. 그래서 부패한 인류를 물로 멸망시키고자 하셨다. 이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겨우 여덟 명이라’ 대단히 적은 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노아 홍수 시대에 절대 다수의 인류는 멸망하고 소수만 구원을 받은 성경의 역사가 있다.

    또 분열왕국 시대 아합 왕의 통치기에 이르러 유사한 사례를 발견한다. 당시 왕과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만 섬기는 신앙을 떠나 다른 이방 신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진다. 왕국이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그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신앙 회복을 위해 갈멜산에서 다수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한다.

    (왕상 18: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사백오십 인과 한 사람, 절대 다수와 절대소수가 대조되고 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울 선지자 사백오십에 아스다롯 숭배자 사백인을 합해 총 팔백 오십 인과 대결한다. 그 대결에서 승리하고 우상 숭배한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이처럼 세상의 인류 역사 속에서도 또 성경의 역사 속에서도 우매한 다수가 얼마나 악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다수가 아닌 소수의 분별과 선택이 진리인 경우를 본다. 그렇다고 소수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그렇지 않다. 다수가 진리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듯이 소수도 진리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초점은 수적인 규모가 진리와 거짓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진리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진리란 시대를 초월해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듯이 진리를 시대를 초월해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진리의 기준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은 구원과 멸망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따라서 거짓과 진리의 기준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종종 복음을 전할 때 이런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들이 전하는 세례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안식일에 대해서 모두 성경과 일치하는 진리인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기독교회와 교인들이 다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까?” 이 의문에는 두 개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라는 것을 안다. 반면 이미 익숙한 다수결의 원리가 기준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충돌할 때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저는 장로교회에서 본교회로 개종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이런 고민의 상황에 처한다면 어디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바울 사도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이다. 그에게도 마음 속에 그러한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 가운데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에서 바울은 한 가지 난제가 있었다. 그 난제로 고민했다. 그 고민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함받은 백성인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왜 그들은 그분을 거절했는가였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선민으로 택하셨는데 메시야를 거절했으니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는 것이 명확하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 속에 이런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 유대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헛된 것인가? 모두 거짓말인가?” 바울의 결론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럴 리 없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남은 자에서 답을 찾아냈다.

    (사 10:20-21)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남은 자란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자들, 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본토로 돌아온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바울 사도는 이사야서에 기록된 ‘남은 자’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마치 구약 시대에 그 남은 자가 있었듯이 사도시대에도 대부분의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지만 소수의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 소수의 유대인들이 바로 사도시대의 ‘남은 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오늘날에도 역시 유효하다. 엘리야 선지자 시대의 남은 자처럼, 바울 사도 시대의 남은 자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 복음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자들이 바로 이 시대의 남은 자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시대의 세례, 사도시대의 성령, 사도시대의 안식일이라는 진리를 붙들고 있는 우리가 오늘 이 시대의 남은 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은 바로 내가 이 시대에 남은 자라는 의식이 있는가?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참예수교회는 척박한 가나안 땅처럼 보인다. 소수이고 결핍되고 풍요롭지 않다. 그러나 살아계신 성령이 계시고, 진리의 말씀이 있고, 신도들의 순수한 삶의 모습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소유요 재산이다. 그 소유와 재산의 가치를 깨닫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물을 살랐을 뿐 아니라 칼로 그 우상숭배의 선지자들을 다 죽였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 선지자의 이런 비관과 절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왕상 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야의 눈에는 갈멜산의 승리 뒤에 세상에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합왕이 재를 뒤집어 쓰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도 않았다. 백성들이 우상을 다 불태우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왕후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엘리야는 이런 상황을 놓고 크게 실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만 남았으니 죽여달라고 했다. 극도의 비관과 절망을 토로한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은 엘리야의 눈에 발견되지 않는 칠천인의 존재를 말씀하셨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 시대의 이 사건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렇게 인용한다.

    (롬 11:3-5)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바울사도는 엘리야 시대에 겉으로는 엘리야 선지자 하나만 남은 것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이 칠천을 남기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 수가 많건 적건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바울 사도가 구약 역사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그렇다면 오늘날 참예수교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해석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세계 인구의 0.25%인 천 이백 만 밖에 안된다. 그러나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45%가 바로 그들이다. 미국 백대 부호 중에 20%가 유대인이다.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좌지우지하는 민족이 바로 이 소수의 유대민족이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육적인 이스라엘도 이러하나 영적인 이스라엘인 참예수교회도 육적인 눈으로 볼 때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지구상의 70억 인구 중에서 60여만 명은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비율이다. 절대 소수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인류사의 끝에 있는 남은 자들이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신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진리는 소수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없어지거나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은 자로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살아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 성도님들은 말세의 남은 자로 선택되었다. 엘리야 시대에 남은 자처럼, 사도 시대에 남은 자처럼, 하나님은 말세의 남은 자인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이 뜻을 이루실 것이다. 그 믿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세우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WxgvNVHMhKU?si=a0TpuieHnMB_2G-W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성도간증]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전*헌 형제)

    [성도간증]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전*헌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처음 간증을 권유받았을 때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던 것 같은데

    주제가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라는 알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엄청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나의 생명인데 가장 어린 대학부에서 간증하려니 처음에는 이게 맞을까도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있음을 믿고 담대히 해보겠습니다.

    저는 제 짧은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낀 순간을 간증하겠습니다.

    이 시간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간증으로 제가 아닌 하나님이 나타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성경구절 읽겠습니다.

    “내가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1. 간증에 대한 배경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목자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우리 수원교회 아동부처럼 교회는 저의 놀이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육도 조금은 많이 강하게 받았습니다.

    7살부터 매일 성경을 읽었고 초등학생 때 성경 통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신앙적인 아이구나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심방이나 외출로 성경 읽기를 우리 삼 형제에게 맡길 때면

    저희는 일부러 빠르게 읽거나 안 읽었는데 읽었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제가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던 이유는 가정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에게 가정은 신앙 안에서 큰 울타리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이런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모든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바로 제가 가정을 떠나 남자고등학교 기숙사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목자님 가정은 당시에 3년마다 교회를 옮겨야 해서

    제가 중학교는 안양에서 보냈는데 고등학교를 안양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목자님이 이동하신 지역으로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기숙사로 가서 이런 복잡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처음 저는 기숙사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맨날 집에서 사모님의 스파르타 훈련을 받아온 저였기에

    ‘자유 시작’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 환상은 1주일도 안 돼서 깨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빨래나 청소를 다 해야 했고,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학교에 처음 입학 했을 때는

    후배가 선배를 보면 무조건 인사해야 하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밤에 기숙사에서 얼차려를 주는 등의 악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부분은 적응하면 알아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사 한 번 더 하면 되고 빨래나 청소는 처음에 너무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보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 고등학교에서 처음 맞이한 안식일 문제

     

    하지만 정말 문제는 신앙 문제였습니다.

    기숙사 학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다녔던 학교는

    1학년들이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개학하기 첫 주 전에 신입생 캠프를 하였습니다.

    근데 문제는 일주일 내내 토, 일요일까지 진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상 학생은 전원이었고 열외나 그런 것도 하나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심란해졌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살면서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나머지

    바로 부모님께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진정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개학 전 안식일은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는 대부분 친해지길 바라는 프로그램으로 재밌는 레크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친구들은 좋다고 웃고 깔깔대는데

    저는 이걸 즐겨도 되나 시험이 들면서 혼자 심각해진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안식일을 보내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저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상황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여기서 정신 못 차렸다간 내 신앙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1.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

     

    저는 개학이 되고 바로 안식일을 지킬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 외출은 토요일 오후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전 예배는 못 드려도 학생부 예배는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저는 반드시 오전에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방책을 더 찾았습니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1학년 부장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도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 다 한목소리로 1학년 부장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학년 부장 선생님은 교장, 교감 다음의 서열이었고

    학교에서 가장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신 걸로 유명하셨습니다.

    근데 저는 이제 첫 주를 맞이하는 새내기였기에 그런 데이터 없이

    진명이와 다짜고짜 찾아가서 우리 안식일 믿는데 종교활동으로

    토요일 오전에 외출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NO!” 였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혼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교회를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설득보다는

    일방적인 요구를 했는데 부장 선생님으로서는 이제 막 새내기가

    원칙을 어기고 가야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정말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 그렇게 혼나고 돌아오는 길

    저희는 정말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부장 선생님께 다시 가서 부탁드렸습니다.

    근데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요? 그래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날마다 찾아갔는데도 안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다가오고 이번에도 안식일을 못 드릴 것 같은 생각에 좌절과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금요일도 어김없이 야간 자습을 하고 11시쯤 끝나는데

    10시쯤 부장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반 포기 상태였고

    혼내시려고 그러나 생각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부장 선생님은 저에게 흰 종이 하나를 저에게 딱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3년 외출증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리 사감 선생님께도 말씀드렸고 이거 있으면 토요일에 아침부터

    외출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외출증을 받았을 때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자신이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토요일 아침을

    그것도 첫 주부터 매주 외출하는 학생은 너희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학교생활을 지켜본다고 하셨습니다.

    약간 경고의 메세지도 있었지만 저는 마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받으시고 함께하신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부장 선생님이 너그러우신 분이시냐? 아닙니다.

    깐깐한 것으로는 제일가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신용이 좋은 학생이었냐? 아닙니다.

    1주일 된 학생인 데다 첫 주부터 체계의 불만을 가지고 따지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하셔서 안식일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감실에도 이어집니다.

    토요일 오전에 가는 외박자는 무조건 보호자가 와야 밖으로 보내줍니다.

    저도 오전에 외출을 가야 하기에 보호자가 와야 나갈 수 있는 규정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안산에 계시고 천안교회와는 차 타고 20분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분이 바로 이남찬 목자님이셨습니다.

    목자님은 당시 저의 학생부 교사셨습니다.

    당시 학교 규정에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고

    전화번호를 외워 인터폰을 사용해야 했기에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이남찬 목자님의 번호를 받아 연락을 드렸습니다.

    당시 시간은 11시가 넘었고, 전화를 못 받으면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바로 받아주셨고 안식일 8시 30분에 와서 저희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이후에는 규정이 좀 풀렸는데 코로나 이후에 다시 강화되면서

    천안교회 형제, 자매님이 저희를 데려다주시는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매번 신세를 지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난 때에 청주에서 저의 친척이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모부와 이모가 저희를 계속 픽업해 주시면서

    고등학생 기간에 정말 순조롭게 안식일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준비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학교생활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저는 고등학생이 돼서 화요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와이파이는 안 터지고 데이터도 없고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컴퓨터실에는

    과제나 대회 준비 외에는 어떠한 사용도 금하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행동을 하면 정말 좋으신 선생님은 한번 경고를 주시고 다음 뺏어 가시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은 바로 기기를 뺏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압수당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말씀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매일 아침이나 못하면 저녁에 했고, 기도는 오후 자습 끝나고 밥 먹기 전 10분 기도에 힘썼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태블릿이 생겨서

    가족 밴드에 읽은 말씀을 3대지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기도할 때는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잠그고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남고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남고에다 기숙사라면 어떤 작은 독특한 거리가 생기면 바로 놀리고 비꼬는 특징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남고에서 그런 독특한 사람은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신앙적인 부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컨셉이냐?,

    성경 읽는 시간에 문제를 풀었으면 한 등급은 올렸겠다는 등 여러 말로 비꼬았고,

    아멘의 뜻을 모르는 친구들이 그건 어디서 들어왔는지

    말끝마다 아멘 거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아야지,

    아무것도 아니다 하였는데 이게 쌓이니까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하며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어김없이 놀렸습니다. 역시 기도를 한다고 상황이 갑자기 역전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인내할 힘을 주셨습니다.

    짜증 나고 지겨웠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인내하다 보니

    친구들도 애는 진짜다 이러면서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함께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하지 말자,

    안 하는 것이 편하지 않냐고 생각도 했지만 도우심을 느끼며 그 생각을 뿌리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친구들에게 인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친구들이 천안교회에도 몇 번 방문도 하였습니다.

     

     

    1. 결론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고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혹은, 환경을 통해, 능력을 주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릴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심을 느끼게 하시기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근데 저는 이것을 쉽게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갔는데 간증을 준비하면서 조력자에 대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해주는

    저와 수원교회 성도님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립니다.

  •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말씀제목]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9월 6일 안식일 오전 예배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혼인 건수가 10년간 크게 줄었고,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논점들을 다뤄보겠습니다. 

    • 결혼의 성경적 기초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좋았으나, 아담 하나만 지었을 때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면 후일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이것은 ‘믿음에서 떠난 말’이자 ‘미혹케 하는 영의 가르침’이라고 단호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거룩함은 결혼을 안 하거나 특정 음식을 피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성경적 이유

    1.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말2:15) : 아담에게 배필을 만들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만드실 수 있지만 딱 한 명의 하와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일부일처제 결혼으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 안에서 맺어진 부부를 통해 경건한 자손을 잇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기 위함(벧전3:7) : 부부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동반자입니다. 한 겹 줄보다 두 겹 줄이 강하듯이 믿음의 가정은 천국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강력한 두 겹 줄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의 결혼을 통해 이 유업을 함께 받고, 부부가 함께하며 믿음의 자녀를 낳아 생명의 은혜를 이어갑니다.
    3.  음행에 빠지지 않기 위함(고전7:1-2) : 바울 사도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금욕으로만 거룩해진다는 주장과 여러 이성을 가까이 해도 된다는 의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을 통해 정욕을 다스리고 음행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기 위함(엡5:31-32) :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많이 비유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혼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가정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참된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함(시128:1-4) : 수고한 대로 먹고,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일시적 쾌락이 아닌 참된 사랑의 기쁨을 가정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5-6절처럼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예루살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원칙과 교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하나님의 주례사와 같은 이 말씀을 보면 결혼에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를 떠나(경제적·심리적 독립의 준비가 됨), 둘째 연합하여(사랑의 결합), 셋째 한 몸을 이룹니다(육체적 결합).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먼저 한 몸부터 이루고, 맞으면 연합하고, 나중에 결혼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7-9) 

    바울은 주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이었습니다. 독신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굳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못하고, 절제하지 못할 것 같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셨습니다. 태생적 고자나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자(바울처럼)만 독신이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마19:10-12)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중한 제도입니다. 만약 인간의 욕망 때문에 침소를 더럽히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제도를 통해서 서로를 위하는 돕는 배필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을 누리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교회 행사] 동부교회 온가족 초청 집회

    [교회 행사] 동부교회 온가족 초청 집회

    할렐루야! 12월 동부 소금처럼 교회 행사 소식지는 9월 27일에 있었던 온 가족 초청 집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전엔 오희도 목자님의 설교가 있었으며 이후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엔 이원일 자매님과 김정옥 자매님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님이 전도 대상자들과 지인을 초대해 주셔서 평소보다 더욱 풍성한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참예수 동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신앙의 향기] 동부 김장 행사

    [신앙의 향기] 동부 김장 행사

    할렐루야! 이번 신앙의 향기는 12월 6일 동부 지하에서 이루어진 김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동부 교회의 (준) 연례행사인 김장철이 다가왔는데요. 겨울의 찬 바람과 돌아온 김장을 준비하며 모든 성도님이 만반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위생과 청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게 보일 만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꼭꼭 감추신 모습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사랑을 듬뿍 넣어 내년 동부 교회의 식사를 책임질 맛있는 김장김치가 익어갈 모습 또한 기대됩니다! 이날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여해 주신 형제님 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