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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부] 2022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개최

    [교육부] 2022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개최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렘2:2)

    2022년 하계 대학청년부 영은회가 7.2(토)-5(화)까지 대전총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라는 주제로 장종규 목자님이 강의해주셨고,  결혼관에 대해서 특강을 듣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처럼 총회에 모여 대면으로 진행된 영은회라서 더욱 소중하고 은혜로왔습니다. 총  9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수령자도 1명있었습니다. 대학청년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할수있도록 기도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복음 메시지]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복음 메시지]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말씀제목]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설교자] 장흥진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유대인들은 관례적으로 아이들이 1살 정도가 되었을 때, 복을 받기 위해 랍비에게 데려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이들을 제자들이 책망하자, 예수님께서는 몹시 분히 여기시고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이’ 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떤 존재인가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

    15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

     

    과연 어린이가 어떤 존재이길래 이처럼 말씀하셨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먼저, 어린이는 마땅히 환영받고 영접해야할 대상입니다. [마19:14],[막10:14]

    • 어린이는 천국을 얻을 자로서 축복의 대상입니다.
    • 주님께서는 어린이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 주님께서는 어린이를 존귀한 존재로서 소중히 다루십니다.
      – 어린이를 대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눅9:48]
      – 어린이는 천사들을 통해 섬김을 받고 있는 구원 받을 후사입니다. [히1:14]

    두 번째로, 어린이는 마땅히 보호와 배려(곧 보살핌)를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각별한 사랑과 배려를 통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해야 합니다. [민32:16-17]

    세 번째로, 어린이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끌어야 할 대상입니다. [마19:15]

    • 어린이가 주님의 축복 안에 거하도록 주님의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줘야 합니다. [딤후1:5]
      – 부모는 아이들을 주님 앞에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대하20:13]

    마지막으로, 어린이는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기회의 시간 안에 있는 대상입니다. [눅18:17]

    • 어린이 시기에는 의심이 적고 그대로 믿는 순수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므로 이 때 믿음을 잘 심어줘야 합니다. [눅10:21]

     

    2.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첫 번째로,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의 자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어른들은 어린이가 하나님 안에 끝까지 거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 어린이는 우리가 섬기고 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 특히 부모가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에게는 우리 모두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에게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품이 내가 머물러야 할 곳’임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가 끝까지 믿음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믿음의 후계가 끊기지 않도록 사랑을 듬뿍 담아 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을 분담하여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 예배 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고 큰 마음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봐야 합니다.
    • 부모가 아이를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모든 성도들이 사랑으로 함께 돌봐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가 성경의 교훈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성숙한 사랑 가운데서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길 원합니다.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유튜브로 시청하기

     

  • [복음 메시지] 생명의 길 (마7:13-14)

    [말씀제목]  생명의 길 (마7:13-14)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8일(토) 안식일 예배

    ♥ 영원한 생명으 인도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4)”

    첫째로 문이 좁습니다. 그래서 찾기도 힘들고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라는 말씀처럼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라고 하심처럼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교회는 진리로 세워지고(딤전3:15), 성령이 함께 해야 합니다(요일5:7). 그래서 사도들의 진리 위에 성령이 내리는 참교회의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둘째로 길이 협착합니다.

    기독교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다른 종교에 비해 어렵습니다. 더욱이 안식일 등 교리적인 부분은 물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지키려 하는 참된 신앙의 길은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초기 사도교회도 유대인에게는 이단으로, 이방인들에게는 미움과 거리낌을 받았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길은 문도 좁고 길도 협착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3)”

    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통치하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은 성도 이전의 삶이며 사단을 좇는 삶입니다(엡2:2-3). 본성대로가 아닌 말씀을 따라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둘째로 세상 사람들처럼 부를 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자 되기를 힘쓰나 성경은 그 길이 멸망의 길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관심을 갖고 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가진 바를 만족해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지나치고 불필요한 욕심의 짐을 버리고 가장 귀하고 귀한 생명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3:5)”

    https://youtu.be/ofPDbS2r6Xc

    글 |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분노 (마5:21-26)

    [말씀제목] 분노 (마5:21-26)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받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살인하면 그 결과는 사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살인하면 그 사람이 자기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엄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제자들과 청중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 하실 때, 그들은 이것이 엄중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는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하나님 앞에 살인한 일이 없으니, 하나님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의롭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의 참 뜻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주신 당사자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계명의 참 뜻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 마음은 무엇인가요? 이 계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어떤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시는가요?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이란, 사람을 죽인 자가 받는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노하면 살인자가 받는 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욕설하는 자는 공회의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모독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즉 살인자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분노’에는 ‘뒤모스(θυμός​​​)’와 ‘오르게(ὀργή​​​)’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뒤모스’란, 금방 붙었다 사그라드는 불입니다. 즉,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분노입니다. 욱하다가도 금방 사그라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분노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분노는 ‘오르게’입니다.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닙니다.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분과 죄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품는 것입니다. ‘오르게’는 ‘뒤모스’와는 달리,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지속적인 분노를 가지고 악의를 가지고 남을 해치려 하는 미움을 품는 것이 ‘오르게’입니다. 분노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까지입니다. 새로운 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분노를 품고 버리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즉, 분을 내어도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뒤모스와 같은 분노를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분노를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가인이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죄의 소원은 그에게 있으나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죄가 되도록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악의적인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까닭은, 살인이 노하고 미워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에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 중 분노의 창고가 있습니다. 그 창고에 두고두고 분노를 쌓아갑니다. 이 분노를 쌓아 증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것이 증오로 바뀐 후에는 말이 변합니다. 험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눈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말이 좋게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죄입니다. 분노의 창고에 분노가 쌓이면, 상대가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폭발하게 됩니다. 남편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작은 일에도, 분노를 쌓아 증오를 품게 된 아내는 폭발하게 되는 것입이다. 이러한 분노의 마음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근거가 됩니다.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미련한 놈’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똥멍청이’, ‘바보같은 놈’, ‘골빈 놈’, ‘머리 빈 깡통’ 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쌓여 증오를 품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입니다. 분노를 쌓는 사람을 살인자로 규정하시는 말씀 앞에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우리가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러한 분노를 품은 사람이 살인자입니다.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80%의 부부가 마음 속의 분노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툰다면, 마음 속에 가만히 숨겨놓은 분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80%가 적중합니다. 문제의 뿌리가 그 분노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말씀과 같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면, 우리는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을 몇 번씩 죽이고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 분노는 남뿐 아니라 자기도 죽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분노하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서로 분노를 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예배 전에 그 감정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그 감정을 먼저 처리하고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노를 놔둬서는 안됩니다.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 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스스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해석을 듣기 전에는, 우리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비추어보니, 살인자는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자기는 남보다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의로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담긴 계명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뻔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영적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계명을 바르게 이해하면, 계명은 살고 우리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분노가 가득 찼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노 창고 안에 있는 상처 분노, 시기 분노, 실망 분노, 좌절 분노, 자존심 상처 분노, 애정결핍 분노 등을 확인하여 창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분노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많이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이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야 합니다.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께서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덧입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뒤에 숨어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옷입고 그 옷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죄로 얼룩진 옷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앞에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회개하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날 때는 화도 내고, 용서 받기도 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능력이 없으니, 이런 삶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예수님만 믿자, 예수님의 능력만 믿자, 그리고 하루에 열 두 번이라도 형제를 미워해도 어쩔 수 없으니 개의치 말자,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면 된다’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요구가 있으십니다. 주 안에서 살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주 앞에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작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를 잃으면, 우리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가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반드시 이루려 하는 목표를 놓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품을 때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해주셨는데, 왜 나는 분노 가운데서 살아가는지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넷째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몰랐던 구약 시대 사람들은, 형제에 대한 분노를 느껴도 처리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도우미입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는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내 곁에서 내 연약한 것을 돕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까닭은, 내 속의 연약한 점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즉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시고, 과거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작은 예수로 살 수 있다고,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하여 분노를 가질지라도 그 분노가 쌓이지 않도록,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이 있으므로 성령에 의지해야만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지하여 매일 기도하면,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용서하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잘 관리해서 죄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분노가 창고에 쌓이게 되면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천국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내 믿음이 깨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분노의 창고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고 성령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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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혜림

  • [복음 메시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살전 5:1~3)

    [복음 메시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살전 5:1~3)

    [말씀제목] 때와 시기에 관하여

    [설교자] 박은진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 (토요일) 안식일 예배

    어떤 청년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고민하는 신앙이 있는 가 반면에 이 세상 청년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고민하고 있다.

    그럼 우리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 당장 올 것처럼 삶을 다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살전 5:1~2)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여기 본문중에 때와 시기, 주의 날은 바로 재림의 날, 종말의 날, 심판의 날이다.

    똑같은 심판의 날이지만 그날에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형제들과 저희들 그리고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 양과 염소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저희는 영벌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때와 시기에 관해서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종말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영원하지가 않고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그 끝 날이 바로 심판의 날이 된다는 것이다.

    (히 9:27)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데살로니가 성도는 하루를 살아도 심판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았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끝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그 날은 바로 심판의 날이 되고 그 심판의 날을 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도적같이 온다

    (살전 5:2)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열처녀 비유처럼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했지만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

    성경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고 말씀하셨고 

    멸망의 날이 해산의 고통과 같이 홀연히 온다고 이르고 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에 관심이 많고 투자나 재테크, 보험등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영원하지가 않고  평안과 안전을 얻기 위해서  저희들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롯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소유가 많아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소돔땅을 선택했지만 이 땅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 그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우리도 내 생활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

    소돔땅이 불과 유황으로 타버린것처럼 하나님은 이세상도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세상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세상의 가장 가치있는 것은 평안과 안전이 아니고, 바로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잉태된 여자처럼 홀연히 도적같이 오기 때문이다.

    종말의 날만 홀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죽음도 홀연히 찾아온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 예수님도 반드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광중에 예수님을 맞이해야 한다.

     

    글쓴이 : 김참운

  • [복음메시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말씀제목]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설교자] 정호민 전도자

    [설교일] 2022년 4월 1일 (금) 안식일 저녁 예배

     

    [본문말씀 : 롬 1 :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지만, 처음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자라신 나사렛은 갈릴리 중에서도 정말 별 볼 일 없는, 작고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예수’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고, 아버지는 평범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된 구세주로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우리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인 구원자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고, 주의 제자들과 교회까지 핍박합니다. 이때 사도 바울도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만나 회심했고,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변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 한 사람이 변한다고 해서 사회의 관념까지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 사회의 관념은 어땠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멸시하고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은 비천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했다고 표현합니다(고전4:10-13).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요? 혹시 복음을,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진 않았나요? 하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담대히 나아갔을까요?

     

    (롬1:16)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은 어떤 의미의 구원일까요?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바로 죄로부터 건져주시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왜 죄에 속하게 되었을까요?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의 자손인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인 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육신의 사망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의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별에 들어갑니다(마 25:4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생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저 착하게 살기만 하면 의인으로 인정받고 구원 얻을 수 있는 걸까요?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지만 이미 죄인인 사람은 어떤 노력으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실까요?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우리가 부끄러워할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는 기쁜 소식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심으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까지, 즉 모든 믿는 사람이 복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라옵기는 우리에게 복음이 부끄러운 소식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이 되길 원합니다. 이 복음에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으로 전하는 우리 되길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쓴이  :  황채연

  • [복음 메시지] 창세기(5) 에덴동산 (창2:8-17)

    [말씀제목]창세기(5) 에덴동산(창2:8-17)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2022년 6월14일 (화)저녁예배

     

    에덴동산’ 일까, ‘에덴의 동산’일까?

    정확히는 에덴지역에 있는 동산으로  하나님이 특별히 만드신 ‘에덴의 동산’이다

     

    1.왜 에덴 동산을 만드셨을까?

    1. 1)에덴의 뜻

     첫 번째로 에덴의 뜻을 살펴보면 기쁨이라는 히브리 원어의 뜻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동산은 특별히 울타리가 쳐진 구분된  곳이었다. 

     

    1. 2)하나님이 인간과 교제를 나누실 목적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1. 3)온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축복)이 흘러가기 위함

    창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4대 강이라 알고 있는 비손,기혼,힛데겔, 유브라데강이  세상으로 흘러 하나님의 기쁨이 땅 끝까지 넘쳐나길 바랐던 하나님의 계획으로

    즉 에덴동산은 지성소,에덴은 성소,온 땅은 세상을 말한다

     

    1. 4)인간에게 다스리며 지키게 하심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두었다: 라는 뜻은 ‘사람을 지위에 임명하다’ 이고  다스리며: 뜻은 ‘섬기다’, ‘경작하다’ 이다 

     

    1. 5)성막과 성전의 원형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의 제사장으로 만드시고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임명을 주셨다

     

    1. 6)교회를 세우신 목적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교회의 회복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 불러주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고

    이 성전에 두신 뜻, 즉 

    우리가 제사장되어

    거룩한 교회에 세속적인 죄가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을 만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김정남 

  •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말씀제목]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시편 90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 영성이 높은 사람에게 주어졌던 칭호입니다. 모세가 그중 한 사람이며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 사람입니다.

    오늘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그가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시90:3-11)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것에서 부터 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생에 대해 바르게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올바른 데서 벗어나 제각각이 됩니다.

    시편 90편 1절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는 모세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유를 매우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훗날 창업해 사장이 되는 걸 꿈꾸고 자녀들은 장성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려 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걸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확장되면 신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자(信者)가 되면 자유를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면 자기 일생이 그의 속박 아래 놓여 마음껏 죄를 지으면서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에 말이나 행사에 모두 능했습니다.(행7:22)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자기 삶에서 성취한 이력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40세까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40년은 양을 쳤고 그의 마지막 생애 40년은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실로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해 내린 최후 결론이 있는데 사람에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셔서 우리를 주관하며 관리하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 ‘하나님은 나의 주(主)이십니다.’

    “주는 대대에”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짧게 끝난 게 아니라 대대로 계속 이어져 온 것입니다.’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핵심 근거가 되시는 분입니다.’

    “주는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는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은 완전히 나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인생이야말로 가장 의의가 있고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後)

    영원 전에도, 영원 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비하면 사람의 삶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매우 짧고 지극히 미세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말입니다.(약4:14)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시90:2前)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창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① 무소불능(無所不能)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② 무소부지(無所不知)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③ 무소부재(無所不在) –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주재(主宰)로 삼는 것은 은혜이며 복입니다.

    시편 90편 3-11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우리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매일의 생활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主, Lord)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의 모든 단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목(眼目)으로 본

    인생의 실상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90:3)

    하나님은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의 가치가 티끌과 같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느 날엔가 티끌로 돌아갑니다. 사람마다 육신을 갖고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리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핀다 할지라도 그 몸은 끝내 티끌로 돌아가고 맙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지난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생은 그렇게 짧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시90:5前)

    폭포수의 물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쏟아져 내린 물, 한번 지나가 버린 물은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 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사실상 두 번째 기회란 없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때 그때 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다 갈 뿐입니다. 세상 삶의 종착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남아있는 삶의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 갑니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시90:5後)

    잠은 자는 것은 밤에 꿈을 꾸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때 우리가 잠을 자면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그게 단지 꿈이었다는 걸 알고 허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은 청소년 시절엔 나름 높은 이상(理想)을 갖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을 돌아 보면 그게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대단히 큰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잠깐 자는 것과 같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5後)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시90:6)

    꽃이 왕성하게 피어난 때에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전성기에 있을 때가 실은 쇠락기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 풀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귀한 것을 성취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떨어져갑니다.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누구든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시편 90편 7-9절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걸 대다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90:8)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데,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란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지은 죄이기에 그걸 다른 사람이 알아채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어떤 죄라도 밝은 빛 가운데 모두 드러내십니다.

    사람의 죄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시90:7)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시90:9)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최고로 두려운 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이며, 하나님의 분노를 대면하는 날입니다.(고후5:10, 계6:15-17)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90:10前)

    인생의 년수가 70, 80에 불과하다면 자랑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는 수고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체가 매우 고생합니다.

    둘째는 슬픔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에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서 70, 80년이 지나면 최후엔 무엇을 얻을까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後)

    이게 바로 우리 인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누구도 그걸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6가지 사항

    이렇게 인생의 실상을 똑바로 깨닫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시편 90편 12-17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6가지를 알려줍니다.

    1.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 날 계수함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거리는 보통 km, 마일(mile) 등으로 나타냅니다. 그에 비해 인생의 거리는 년수로 계산합니다. 50년, 70년, 100년 등으로 사람의 일생 여정을 표시합니다. 공통점은 그 여정마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인생의 종착지,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바로 천국입니다. 중요한 건 그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처,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천국(天國)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과 ‘성령 기도’입니다.

    이 지혜는 GPS처럼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참 지혜가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수시로 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끝까지 가다 보면 하나님의 거처, 우리 목적지 천국(天國)에 들어갑니다.

    1.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시90:13)

    둘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면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1.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사람마다 일평생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에 대한 방향을 잘못 잡습니다. 물질적 조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족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주의 인자(仁慈),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 평생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1.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

    이는 우리 인생이 직면하는 현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곤고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 120년의 세월 중에 80년 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에는 죄로 인해 겪는 것이 있고 의로 인해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벧전2:20)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왕궁을 떠났을까요?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무슨 이유로 광야 길을 걸었을까요? 당대에 그가 사명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히11:24-26) 이것이 그가 80년 동안 고난의 삶을 산 이유입니다.

    시편 90편 15절에서 모세가 기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곤고케 한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면 고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삶의 기쁨은 이렇듯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면 고난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고난도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인생은 모세의 인생과 같습니다. 훗날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에게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눅9:30-31)

    모세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게 아닙니다. 기쁨을 주셔서 어떤 고난이든 잘 대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1.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본 절에서 대상자는 둘입니다.

    첫째는 “주의 종들에게”입니다. 현세대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저의 자손에게”입니다.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말합니다.

    그럼 모세의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주의 행사를 현세대에게 나타내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의 신앙에 귀한 체험이 됩니다. 그 체험을 현세대가 분명하게 갖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삶에 최고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직업으로 버는 돈은 사실 살아가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곳은 돈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신앙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진정 가치 있는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최고로 보배로운 것을 그들에게 남겨주는 것입니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이는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체험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재능이 많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원합니다. 이것도 물론 영광입니다. 다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의 성취나 성공으로 영광을 얻는다는 게 분토(糞土)와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최대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우리 자손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은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이것을 신앙의 전승(傳承)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시길 희망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그걸 향해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건강, 학업, 직업만을 위해 구할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세상에서 잠시 잠깐만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영혼의 눈이 떠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길 위해 구해야 합니다. 뜻을 세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된 우리가 꼭 해야 할 중요한 기도입니다.

    1.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90:17)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자기의 총명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에 많은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맺는 말

    모세는 인생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그 깨달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여섯 가지의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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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말씀제목]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설교자] 전*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사야에 있는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앞서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복음을 경험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이사야 6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점령당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된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소원도 빨리 전쟁이 끝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함을 얻게 되는 때가 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상태에 처해져 있던 것처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서 속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도록합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서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형벌받을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로 죄인의 죄 값을 치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부터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마3:15~17,행2:38)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후에 잠시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마침내 사단이 성도의 발아래 놓이게 되어 죄악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롬16:20) 주님의 주신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2.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됨이 복음입니다.(18)

    앞을 볼 수 없는 자를 소경이라고 합니다. 소경이 앞을 본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며 실제로 여러 명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었습니다.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죄 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영적인 소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소경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보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자신 창조한 자와 자신을 구원할 자를 알게 하시고 자신이 가게 될 곳도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두려움없이 살아가게 하십니다.

     

    3. 눌린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눌려있다는 말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만합니다. 육신적으로든 심령적으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에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와 능력의 한계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얽매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때에 가난에 처한 자신을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끌렸지만 하찮은 목수의 신분과 빈곤한 외적인 상황을 보고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었지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처럼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고 순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복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음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남*숙

  • [복음 메시지] 장성한 사람(고전14장)

    [말씀제목] 장성한 사람(고전14)

    [설교자]  박누가 목자님

    [설교일]  2022, 6, 2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까닭은 마귀와 대적하기 위함이며, 우리를 장성시키는 것이 곧 성령의 역할이다

    1. 우리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자가 되자

    나로 인해 교회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2. 악한 일을 멀리하자

    사악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미련할 정도로 일체의 사악함을 버려야 한다

    3. 은사를 선하게 사용하자

    각종 은사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글쓴이 강경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