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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할렐루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형제자매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교회에서 온 Mercedes Lai, 세디스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2개 학기 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올해 6월, 저는 뉴캐슬 교회의 자매 4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대만에서 열리는 IYF에 참석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금요일 밤 예배는 강남교회에서, 안식일은 동부교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처음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성도님들을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도 계속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부터 매주 RE(종교교육) 수업을 들었고, 매년 열리는 전국 학생 영은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16년, 처음 참석했던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에든버러 교회였고, 뉴캐슬 학생들이 모두 금식을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뉴캐슬 형제자매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저와 두 형제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을 때, 저는 너무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들이 함께 울며 기뻐해주던 따뜻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신앙 여정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때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그때가 제 신앙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환경 속에서 제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였던 저는 세상도 교회도 잘 알지 못한 순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때, 집중도 안 되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으로 느껴지면서 제 믿음은 약해져 갔습니다. 2022년에는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단부터 임종까지, 저는 제 자신과도 멀어졌고 정작 하나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시기 이후, 저는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마음속엔 설명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구름’처럼 남아 믿음을 막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교회 성도들과도 멀어졌고, 여러 감정이 겹쳐져 신앙은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힘들어졌고, 의무감 때문에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제 부족한 믿음을 보고 혹시 누가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도 저는 ‘가야 하니까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온 이후에는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찾고, 흐려진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전처럼 불안함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요. 그래도 동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교회가 제 신앙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지내다가, 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교회에 오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과 통역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도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고, 뉴캐슬 교회와 달리 동부교회에 또래 청년이 적다 보니 처음엔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성도님들의 친절과 사랑을 감사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어렵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또 기도 가운데서도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들리는 방언기도의 익숙한 소리는 제 마음에 큰 평안을 줍니다.

    동부교회에서 가장 감사한 기억 중 하나는 성도님들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매주 직접 준비해 주시는 따뜻한 한국 가정식을 먹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기회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봄 학기에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봄 학기가 되면 다시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 간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려진 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길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세디스 드림

    세디스 자매가 6월에 친구들과 동부교회 방문하여 청년부와 찍은 사진.  앞줄 맨 오른쪽에서 네번째 자매가 세디스 자매입니다. 

  • [성도 간증]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성도 간증]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

    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장생활 한 지역이 안산, 광주, 정읍, 천안이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참예수교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안산지역으로 취업했을 때부터 참예수교회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산에 계시던 고모님, 지금은 돌아가신 소감사 집사님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교회에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답만 하고 직장생활에 충실하면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른 지역 정읍으로 회사를 이직하면서 위의 형님인 전주교회의 소남기 형제(집사)님과 고모님의 권유로 제일 먼저 전주에 있는 참예수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형님은 저에게도 같이 신앙생활을 권면하셨고 또 부산의 고모님께서도 저에게 신앙생활을 계속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제가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은 계속 포기하지 않고 권면을 하셨고 제가 직장 관계로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마다 그 지역에 있는 참예수교회를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안산에 있을 때와 전라도에 있는 광주에 있을 때도 교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광주에 있을 때 마지못해 교회를 1번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천안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도 계속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 1번, 쌍용동 진주빌딩에 교회가 있을 때 2번 정도 흉내를 내듯이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권면을 하시니 인사차 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교회와는 많이 멀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3년 봄에 형님인 소남기 집사님이 천안에 영은전도대회가 있으니 한 번 같이 가보자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동안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형님이 하도 가자고 하니 인사차 한번 가보자고 해서 출석을 하였고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현 6학년) 막내딸 연서와 함께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왔을 때 좀 신기한 것은 연서가 너무 적응도 잘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에 머무는 동안에 스마트폰도 만지지 않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다음 주에도 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주에 출석했는데 여전히 연서는 너무 적응을 잘했고 저 또한 성도님들이 너무 마음을 평안하게 대해주시고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3번째 교회에 출석하면서 제 입으로 이번에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화평반분들과 대화하면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출석한 그 기간에 목자님께서는 안식일에 십계명을 설교해 주셨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둘째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왜 형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 안식일 예배 후에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아마도 목자님께서는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때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는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형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 때문에 형님을 많이 미워했었거든요. 그런데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후 분반 예배 시간에 그동안 형님을 미워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며 많이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번째 교회에 출석하는 날 안식일 오전 예배 때 갑자기 김반석 장로님과 김미영 자매님이 안수기도를 권하셨고 당황한 저는 제 마음이 좀 정리되면 그때 안수를 받겠다고 사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반석 장로님은 계속 안수를 권하셨고 할 수 없이 따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사실 성령이 무엇인지 왜 받아야 하는지 또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안수를 받은 것입니다. 그다음 주 안식일에 여전히 김반석 장로님은 안수를 권하셨고 이제는 저도 당연히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순히 따라 나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안수를 받은 지 3번째 되는 안식일에 안수기도를 받을 때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뜨거워지는 느낌과 더불어 몸에 진동이 오고 입에서는 제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이때 성령의 감동이 오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실을 목자님이 아시고 그날부터 구도자 교육을 하기로 했었는데 구도자 교육이 끝나고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몸에 진동이 오고 방언이 터졌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목자님께서는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2층 화평반실로 내려가니 모든 신도들이 기뻐하며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분반 예배가 끝난 후에는 성령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케이크를 준비해서 많은 신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자며 회당으로 내려가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온몸이 더욱 뜨거워졌고 성령의 감동으로 눈물도 나고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는 목자님께서 성령 받은 소감을 한마디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 제가 제대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받은 성령이 성령인지도 모르고 소감을 말할 때와 밴드 글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너무나도 일찍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렇게 성령을 받기 전부터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 아내는 본인뿐만 아니라 제가 교회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한 두 번 출석할 때는 그러려니 하며 자신처럼 이제 더 이상 교회를 안가겠지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가더니 이제는 매주 토요일이면 교회를 가는 저를 보고 매우 실망스러워했고 섭섭해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교회에 출석하는 문제로 갈등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한 달 이상 지속되었고 결국은 아내가 교회를 가지 말라고 완강하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서 2주간 교회를 못 가게 되었습니다.

    2023년 8월 12일 안식일에 예배 참석은 못하고 마음이 속상해서 아이들 방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아내가 이야기 좀 하자며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너무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지만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단단해진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나가자며 가까운 저수지로 이동해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회를 못 나가는 기간 동안에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아내는 마음이 변했는지 연서는 데리고 가지 말고 당신 혼자만 나가라고 말을 했습니다. 연서를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이 아쉬웠지만 다시 교회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식일 전날 저녁에 아내가 갑자기 자기도 교회를 따라오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를 다니겠다는 것은 아니고 도대체 우리 남편이 그토록 교회에 빠진 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남편 없이 집에 있느니 차라리 남편과 함께 교회에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대신에 자신이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니 너무 자신을 환대할 필요도 없고 예배는 드릴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알라고도 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온다는 것을 교회에 미리 귀띔을 했었고 아내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도 신도들에게 설명을 했기 때문에 아내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모든 분들이 차분하면서도 반갑게 아내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내는 그동안에 몇 번의 교회 출석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열렸는지 놀랍게도 아내는 교회에 와서 순순히 예배에 참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예배에 참석하게 되자 곤란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연서가 안수기도를 받으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안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안수기도를 받게 했다며 매우 화가 나서 이제부터는 연서는 절대로 교회 데리고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교회를 따라올 때 오전만 있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오전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8월 27일 세례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사실은 아내와의 갈등으로 저는 세례식 이야기도 못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세례식 날짜는 다가오고 형님 내외분께서 천안에 온다고 하여 아내에게 세례식 날짜를 어렵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세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세례식 날이 되니 아내는 세례식도 따라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의 한 번밖에 없는 세례식 날이니만큼 가서 아빠를 축하해주자고 하면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세례받는 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기쁨도 컸지만 또 아내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와서 축하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고 그날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전주에서 형님 내외분께서 전날부터 오셔서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서 세례와 성령을 받고 천국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형님과 형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왜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그토록 빨리 성령을 주셨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갈등으로 교회 출석이 어려워졌을 때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어쩌면 교회 출석을 중단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성령의 선물을 일찍 허락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식이 끝나고 여전히 아내는 교회를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이 점점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제 아내에게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에 제 아내도 점점 마음이 열리게 된 것 같습니다. 더욱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전주 형수님께서는 제 아내의 마음을 다독여 주면서 믿음의 길로 잘 인도를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3자녀 모두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두 딸은 하나님께서 귀한 성령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내와 두 딸은 교회에 잘 출석하고 있고 신앙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희 아들 경완이만 아직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들 경완이에게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올해 저희 가정은 저희 자녀들의 믿음과 신앙 성장을 위해 교회 옆으로 이사까지 결심하게 되어 현재 대우타워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까워서 저희 가정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신 천안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만수 형제님 가정 & 소남기 집사님 가정>

    <소만수 형제님 가정>

    유튜브로 간증을 시청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

    천안교회 김명현 형제가 중3수련회를 갔다 오고 나서 작성한 소감문입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중3)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025 중3 수련회 소감하겠습니다. 나는 중3 수련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설렘보다 걱정이 더 컸다. 왜냐면 중3 수련회를 하는 기간과 방학식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업보다 교회 행사를 우선으로 하기로 다짐했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 후,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중3 수련회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도를 먼저 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수 있었던 것 같다.(감사주😄) 중3 수련회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기 전에 기도를 깜빡하고 갔는데, 모자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항상 기도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3수련회때 각자 맡을 역할을 제비뽑기 하고있을때, 우리조 조장님이 내가 안마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안마핑이 되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작은 것에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중3 수련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3번째 강의 시간 중 들은 말씀이다. (사실 레프팅을 하고 나서 듣는 강의라 많이 졸렸지만 말씀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뒤로 나가서 들었었다.) 어떤 말씀이었냐면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였다. 박필선 목자님은 그 당시 김천세무서의 계장으로 일하시다가 부산으로 과장 승진발령을 받았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원해서 희생과 헌신의 길을 택하셨고, 빨치산들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하시던 그 순간에도 전도하셨다. 그리고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순교를 택하셨다. 그래서 순례의 길을 걸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잘 다져진 등산로도 가기 힘든데, 이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빨치산들에게 끌려가시며 어떤 생각으로 올라가시고,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의 순교 덕분에 지금 참예수교회가 이렇게 흥왕하고, 발전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말씀은 홍여호수아라는 분이 7년(?)만에 어느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가 다른 교회로 바뀌어 있었고, “왜 진리를 버렸냐?”라고 물어보셨는데, 대답은 “우리가 버린게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버린거다”라고 했다고, 일꾼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일꾼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전도하기, 교회에 처음 오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혼자 있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등 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중3 수련회는 ‘성령과 함께 떠나는 TJC 역사 여행’ 이라는 주제로 참예수교회 역사를 알아가는 수련회였는데 사실 TJC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를 통해 왜 알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역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서 학업을 포기한게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나님을 우선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더더욱 타락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주고, 믿음의 동역자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수련회의 마지막 날에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앞에 나가서 소감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져서 당황했고, 정말 내가 맞나? 잘못 읽으신거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말했던 것 같다. 뭐라고 말했냐면 “또래중 1/3이 떨어져 나간다고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 또래는 떨어져 나가는 사람 없이 모두 진리 안에서 자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말씀 중에서 장바나바가 교만해지고, 자신이 참예수교회 창립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타락하여서 중화 참예수교회를 설립했다는 말씀, 박창환씨를 예를 들면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고, 믿음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과 또래 중 통계적으로 1/3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씀이 그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회 영상을 보는데 영상 마지막에 참예수교회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런 믿음의 선조의 모습을 닮아가며 믿음을 이어갈 증인이 되어 거룩한 주의 나라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정을 소화하는데 계속 ‘같이 걸어가기’라는 찬양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우리 10또래들이 계속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주 가신 그길로 다같이 함께 가는 모습이보이고 ‘주와 함께, 주의 뜻대로’라는 가사처럼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이 알려주신 그 길로 다니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일정에 언제나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우리 모두 이 참예수교회 안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가고, 지어져가는 10또래가 되자!!! 아멘.

  •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참예수교회로 개종하다

    서도교회 고 장달순(영명: 장안나) 집사님이 저희 친정 작은 어머니에요. 저를 임신했을때까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제가 태어나서 몇 살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예수교회로 개종을 하셨어요. 제가 살던 곳이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라는 곳인데 작은 어머니 계실때 교회가 세워졌어요. 돌아가신 허야곱 장로님이  시댁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어머니랑 교회에서 심방 다니셨던 것이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제가 7세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도 아마 교회를 다니셨을 거에요.

    저의 친언니는 고 권묘남씨인데 어릴 때 저랑 같이 믿었어요. 교회 다니다 보니 제사라든지 그런 걸 몰랐어요. 항상 어머니가 교회 가시니까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녔고 엄마 옆에 앉아서 예배 드렸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

    그때는 영은회를 1년에 한 번씩 한게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전체 영은회였어요. 14살 영은회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 받고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았어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일찍 성령을 받아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그날 한꺼번에 다 받았어요. 세례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늦게 받았어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간 언니집에서 많이 지냈거든요. 형부가 군대 가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은회 참석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제 친구 황남옥 자매라고 지금 강남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그날 같이 세례를 받았어요. 성령도 같이 받고요.  세례를 주신 목자님은 누군지 생각이 안나요.

    교회 앞에 물이 있는데 세례받기가 좋았어요.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고 방언이 나오더라고요. 그당시 우리 또래들이 상당히 많았었어요. 지금 서도교회 이정을 장로님이 나보다 한 살 어려요. 같이 컸어요. 근데 저보다 성령을 미리 받았어요. 세례식 끝나고 교회로 와서 다 함께 또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그치지를 않았어요.  방언이 나오면서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구요.

    성령 받은 후 황남옥이라는 친구집이 노봉 교회에서 오리쯤 되는데 밤에 그 친구랑 산길을 둘이 손잡고 찬송 부르면서 가고 새벽에 또 기도하러 노봉 교회까지 오고 그랬어요. 어떤 찬송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랑 그렇게 찬송부르며 새벽기도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나요. 교회 다니면 성경도 순서대로 노래로 배우잖아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그걸 외워놓으니까 성경 찾기가 좀 쉬웠어요

    ♣작은어머니에 대한 추억

    제 기억으로는 노봉교회(서도교회 전신)에는 저희 작은어머니가 유필순 집사님과 사택에서 살고 우리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우리 집에 가마솥이 있으니까 교인들 밥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어요.

    저희 작은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우리 강아지 강아지!” 그랬어요. 제가 성령 받았을 때도 “아이고 내 강아지 성령 받았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자주 함께 잤어요. 교회 와서 자면 새벽에 작은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다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시며 “내 새끼 일어나! 일어나! 기도하자. 엄마랑 기도하자.” 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난 저는 작은 어머니처럼 기도를 오래 하진 못했어요. 작은어머니는 하루 2시간씩 아침에 일어나시면 성령으로 기도하셔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면 오늘 금요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토요일 오전 예배 끝날 때까지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때는 오전 예배만 드렸잖아요.

    금식 기도도 작은어머니 따라서 하게 되는 거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 오래 하시고 기도 시작하기 전에 “너는 조금만 하고 가서 자라.” 그러면 저는 “그래 나 조금만 하고 잘게!” 작은엄마는 보통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셔서 저를 깨워요. 교회에 괘종시계가 딩딩 치잖아요. 작은 어머니는 6시 될 때까지 기도하셔요. 그러고 기도 끝나면 “성경 읽자! 몇구절만 성경 읽자.” 그러면 또 같이 성경 읽고…

    저는 작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했어요. 작은 어머니가 자손이 없어요. 그래서 조카딸들한테 엄청 잘했어요. 저는 오빠 하나에 딸 다섯으로 6남매에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다 그렇게 예뻐했어요. 어딜 다녀 오시면 신발도 사다 주시고 옷도 사다 주시고 ….

    작은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작은엄마는 34세쯤 혼자 되셨대요. 과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신 분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쌍하지요. 시집 와서 남편 여의고 자식도 하나 없고 그렇게 혼자 사셨잖아요. 나중에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희오빠집에 와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영석이와 영근이가 오빠의 자녀들이에요. 제 조카들도 지금 교회를 안나오고 있어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하다

    15살 되던 11월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장동으로 이사했어요. 고 고정희 모친이 저희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에요. 옛날에는 차편도 불편하니까 마장동에서 철둑가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죠. 제가 저희 어머니 손잡고 모시고 다녔어요. 어머니가 앞을 잘 못보셨어요. 살다가 중간에 눈이 어두워지셨어요. 그런데 안식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못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마다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무렵 큰언니가 퇴계원으로 이사를 왔어요. 저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10년이에요. 저는 조카들을 돌봐주면서 언니 집에서 지냈어요. 조카들이 어리니까 언니도 저도 교회를 자주 못갔어요. 회기동 교회 정은진 목자님이 가끔 심방을 오셨어요. 그리고 교회를 한 번씩 갈때는 조카를 업고 다녔어요. 이강분 자매 동생 이명숙 조카를 포대기로 업고 갔어요. 어떨때는 오빠네 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토요일 날 명숙이를 업고 교회를 갔어요.

    믿음결혼을 하다

    시골에 형부가 계시는데 저에게 시골 가서 뭐 좀 배우라고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산지 얼마 안되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가서 작은집에 가서 지냈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총각때 객지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고 제대후 집으로 좀 와 있어서 전주교회를 다녔나봐요. 그때 작은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대구를 갔는데 대구 기차 역전에서 우리 집 아저씨를 알아 봤대요. 어려서 봤으니까 얼굴이 남아있으니 알아본 거예요. 그때 인연이 되어 저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믿음 결혼을 하게 된 거지요. 결혼식은 서도교회에서 했어요. 김디모데 목자님이 주례를 보셨어요. 그 당시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 생각 없었던거 같아요. 신혼 살림은 전주에서 시작했어요.

    시댁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마음 내려놓기

    남편의 어머니는 계모였고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었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 싸우는걸 보면 저는 자리를 피했어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동안 소화를 못시켰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 왔어요. 오빠네 집으로 와서 3개월 살았을 거예요. 방을 얻어서 나갈 때까지 교회를 못나갔어요. 항상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은 있었지만 결혼후 현실적인 생활이 신앙생활을 가로막았어요.

    저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고 늘 생활신조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교회를 다닐때도 ‘이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못 나가.’ 그런 마음이 전혀 없고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잘해야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해도 내가 안 들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되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하고 말다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배려를 해서 그런지,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왜 그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우리 집 아저씨와도 싸울 일이 있으면 말을 안했어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하고 그걸 속으로 다 삭히느라 그런지 소화가 어느 날부터 안 되고 밥을 먹으면 체해서 구토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속이 편해졌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신경 쓸일이 적어지니 괜찮아진거 같아요. 교회는 결혼하고 3년 정도 못나간거 같아요.

    자녀를 낳다

    제가 딸을 22살에 낳았는데 딸 낳기 전쯤 다시 교회를 나갔어요. 두 달된 딸을 세례를 바쳤어요. 제가 교회를 어려서 다녔던 믿음이 있어서인지 교회를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살았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딸을 정월 초에 낳았는데 낳은지 20일쯤 되어서 세례를 바쳤어요. 굉장히 작은 갓난아기 핏덩어리를 세례를 바쳤어요. 세례바치고 아기를 안고 물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둘째 용환이는 조금 커서 3살쯤 돼서 세례 받았어요. 셋째 정환이가 못 받았어요. 정환이를 29세에 낳았는데 그때 살기는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무슨일 때문인지 교회를 좀 못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으면 세례 바쳤을 거에요.

    큰딸 은순이가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워낙 불교가 심하니까 신앙생활을 못했어요.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 다녔을 거에요. 혜영 사모님이랑 잘 알아요. 같이 교회 다녔어요. 제가 집에서 조금씩 부업을 했는데 셋이 학교 다니니까, 직장을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못나간거 같아요.

    신앙을 회복하다

    몸은 못가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있었어요. 부천에 살았는데 양봉도 목자님이 거기까지 심방을 와주셨어요. 두내외분이 오셨어요. 그날 직장 쉬는 날 오셨더라고요. 심방 예배때 405장을 부르는데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이 찬양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되었어요. 교회를 갈 수가 없었는데 제 쉬는 날 심방 오시고 전화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 신앙이 점차 회복되어 간 거 같아요.

    목자님이 전화도 자주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작은어머니 밑에서 커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항상 ‘내가 교회를 가야지, 나 교회 안 나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살기 어렵고 입는것도 여의치 않아서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니가 교회를 더 잘 다니면서 교회 소식을 저한테 많이 전해줬어요. 언니는 저보다 열심히 더 다니셨어요.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

    저의 성격은 친정어머니 닮은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삭히고 참고 인내했던거 같아요. 어머니랑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는 옛날 얘기 같은 걸 잘해 주셨어요. 누가 집에 뭐 팔러 오면 어머니는우리 올케한테 “그 아지매~ 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여서 보내라. 내 집에 온 사람 그냥 보내는 거 아니다.” 하셨어요. 밥 꼭 챙겨주라 하고 시골에 살 때도 장사하러 오는 사람 있으면 우리 집에 다 재워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다 자고 갈 줄 알았어요.

    서도교회 나들이

    한 3년 전쯤에 동부교회에서 목자님과  한나반, 다니엘반이 서도교회, 남원교회, 전주교회로 나들이 간적 있었는데 한가지 후회되는게 있더라고요. 옛날 서도교회를 뜯었더라고요. (우리 작은어머니 당시 지은 노봉교회) 옛날에는 흙집이었잖아요. 그게 흙집인데 그걸 다 뜯었더라고요. 건물 지을때 상량 올린다고 그러잖아요. 가운데 나무에 교회 지은 년도가 아마 써 있었을텐데 나무 뜯은 걸 쌓아놨는데 상량을 보고 왔더라면 몇 년도에 지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더라고요. 그때는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후회되더라고요.

    나의 신앙생활

    예전에는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안 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교회 안가서 어떡하나? 다음에 교회가면 기도를 뭐라고 하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요즘은 몸이 아프니까 안수기도를 좀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안수기도 받으면 눈물이 너무 나와서 받을 수가 없어요.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나와요. 눈물 나오면 좀 힘드니까, 마음이 울컥하고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러는 거겠지! 믿음이 강하면 그러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제가 어릴 때 외운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구절이 항상 머릿속에 담아있어요. 어렸을 때는 한 4~5번만 외우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올해 내가 81살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그냥 많이 안 아프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아프면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저녁에 잘 때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제가 7개월을 교회를 못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유튜브로 예배는 드렸어요. 아들이 아이패드를 사주어서 저녁에는 유튜브로 예배하고 있답니다.

    큰딸 은순이

    제가 요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음이 제대로 안 걸어 지거든요. 예전에는 계단 80개는 손도 안 잡고 올라갔는데 지금 1개도 못 올라가요. 제가 딸과 함께 걷다가 딸에게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 이렇게 니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 그랬더니 딸이  “엄마 희망사항이지 뭐.” 하길래 “그렇게 말하지마! 그렇게 될른지 몰라. 그렇게 얘기해야지.” 했어요. 우리 딸도 참예수교회에서 학생때까지 신앙생활 했기때문에 항상 마음은 있더라고요. 참예수교회가 참 좋았는데…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큰아들 용환이

    가끔 용환이한테 “어떻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해야 교회로 올 건가?” 그렇게 얘길하면 “엄마는 참~ 내가 가게 되면 가는데 뭐 그렇게 말을 해.” 영은회가 돌아오는데 용환이가 이달 말일까지 엄청 바빠서 엄마집도 못온다고 하네요. 건강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교회 동욱형제와 같은 나이면서 생일도 똑같은데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가끔 애가 타서 아들에게 “나 살아있을 때 교회 가는것을 좀 볼 수 있을라나, 없을라나.” 하며 말을 붙이곤 하지요.

    작은아들 정환이

    작은 아들은 내 성격을 좀 닮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는 좀 뭐든지 다독이고 누르는 성격이거든요. 정환이한테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 “너는 내 말 듣냐? 내 말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러면 아들은 “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누구 말 듣고 컸어요? 엄마 말 듣고 여태 크고 장가 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했지. 엄마 말 잘 들었지. 어디다 써놓질 않아서 보여주질 못하겠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딸에게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형제를 잘 챙기고 형제 의좋게 살아라.” 라고 해서 그런지 의좋은 모습 보면 감사해요. 아이들 어릴때 맘대로 못 먹이고 항상 안쓰럽기도 했지만 야단치지 않고 기를 정도로 착했어요. 자녀들이 착하게 커줘서 사춘기라는 걸 모르고 컸어요. 부모 속을 안썩이고 말 잘 듣고 순순하게 잘 커준 자식들이 고마워요.  지금도  3남매가 의좋게 사는 모습이 감사해요.

    지금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 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부군 살아생전 함께 찍은 사진*아드님이 사 주신 아이패드로 성경도 보시고 유튜브 설교도 들으신다고 하심 *교회 활동 모습 / 해마다 성경 통독 하시고 사진 찍으신 모습 

  • [성도 간증] 순종의 예스맨_배태준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단기신학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단기신학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은 총 3년차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이번에 1년차 과정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제가 1년차를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보니 5년 전 202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때는 단기 신학에서 제일 막내였는데, 어느덧 단기신학에서 나이가 많은 OB쪽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단기신학을 통해서 받는 은혜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서 받은 은혜와 기쁨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교제의 기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단기신학은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2주 동안 함께 단기신학을 하는 단기신학생님들 모두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면서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2주 동안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기쁨과 위로와 은혜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단기신학생님들께서 하나님 말씀 배우기에 열심을 내고, 온몸과 마음으로 찬양드리고, 힘을 내어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단기신학에 모인 신학생님들의 모습에서 제자도를 정말 충실히 걷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제 스스로가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 가는 목적은 결국에 무엇이지요? 물론 다른 신학생님들과 교제하는 시간도 좋고 빼놓을 수 없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말씀의 은혜와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간증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을 통한 기쁨과 은혜입니다. 1년 차 때 배우는 과목들은, 3년차도 물론 정규와 비교한다고 하면 개론서의 개론의 개론도 안되겠지만, 특히나 1년차는 더욱 개론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핑계를 대자면 5년 전에 들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평소에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제가 하나님 말씀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제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말 무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학생부 영은회 교사를 준비하다보니 자연스레 족장시대 인물들에 대한 말씀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족장 시대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모두 미숙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고, 히브리서를 살펴보면 미숙한 모습이 아니라 이런 성숙한 모습을 기억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제 부족함과 미성숙함에 자꾸만 눈길이 가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많은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개성 넘치는 족장시대 인물들의 신앙의 길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아가는 행복의 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너무나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신약개론, 구약개론, 사복음서, 민수기, 여호수아, 레위기, 창세기 등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단기신학 중에 목자님께서 “단기 신학생들이 올해는 예스맨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제가 단기신학을 마치고 본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동교회에 가니까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태준아, 오늘 기도회다.” 그래서 저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냥 오늘 어떤 예배를 드리는지 말씀해주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래서 오늘 네가 기도회를 인도해야 한다.” 제가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기신학 때 배웠던 말씀들을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비록 재탕이지만 단기신학 때 했던 기도회 인도 내용을 가지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회가 끝나자 어머니가 또 말씀하시더군요. “태준아, 내일 찬양 인도할 사람이 없다. 오전과 오후 둘 다 준비해 놓아라” 제가 또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종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을 통해서 정말 많은 기쁨과 은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부족함 많은 이런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돌리며 이상으로 간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배태준 형제

  • [성도 소개] “아빠도 성령 받았다!!!”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아빠도 성령 받았다!!!”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청주 참예수교회 장치성 형제님은 22년 5월 세례를 받은 지 3년만인 이번 봄 영은회 마지막 날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생생함을 담은 장치성 형제님의 간증을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저의 가정은 아내(김연숙자매)와 큰 딸(장아영), 둘째 딸(장아윤), 저 순으로 세례를 받고 참예수교회에서 함께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말씀을 배울수록 가족이 한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첫째 딸은 올해 아동부 영은회때 먼저 성령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너무 감사했으며 열심히 간구했을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저에게 아주 살짝 자극이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저에게도 성령을 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더욱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드디어 이번 봄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단 몇 분이라도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기도를 하면서 가끔 몸이 떨리고 혀가 꼬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이건 아닐꺼야~~아니야~~기도를 장난식으로하면 안되지~!! ” 부정을 하면서, 더욱더 분명하고 천천히~ “할! 렐! 루! 야!”를 외치고 기도를 멈췄습니다. 저는 제가 아직 성령을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그냥 저의 생각으로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저의 기도 소리를 아내인 연숙자매가 계속 듣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면서 기도 소리가 이상했는지, 이번 영은회 때 목자님께 안수 기도를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오후 예배 후 안수를 받고, 김세한 목자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이 있으니 조금 더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은회 기간내내 몸살로 몸이 안 좋았고, 마지막 날은 앉아있는것 조차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시고, 열도 나서 빨리 저녁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녁 예배를 마쳤을 때, 원래는 계획에 없었던 것 같은데 안수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를 위해 기도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오후에 목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조금 더 노력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안수를 받으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몸이었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 하는데 평안함이 느껴졌습니다. 평안함을 느끼면서 평소에는 몇분만 기도를 해도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제 입에서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예전 집에서 기도할 때처럼 기도를 멈출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맡기면서 기도를 마쳤습니다.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포해주셨습니다. 기쁜 감정도 있었으나, 좀 얼떨떨하고 정말 내가 성령을 받은 건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숙자매한테 얘기를 했더니 목자님 두 분이 맞다고 하면 틀림없는 거니깐 의심하지 말고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모든 성도님들이 자기 일들처럼 기뻐해 주시고 환호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의심하기 보다는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에 더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집에 와서 기도 시간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의 일상도 조금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저의 일정에 시간을 조금 내서 기도를 했다면, 이제는 기도 시간에 저의 일정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도 이런 축복과 은혜와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성령 받은 장치성 형제님을 축하하는 여호수아 신도회 형제님들)

     

    글작성 : 장치성 형제

  •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제 삶에 피난처 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험과 고난 속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어떻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는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서울 집에서 멀어서 회사 버스로 출퇴근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 13년 차였고, 누구나 그렇듯 저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회사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6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하루 시작이 6시에 집에서 나와 일을 하고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9시가 넘었고 야근도 종종 했는데 그럴 때는 자정을 넘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12시 넘어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일터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주변의 동료들도 주중에는 삶의 중심이 직장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사는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주하고 쉼 없는 삶에 지칠 때면 ‘남들도 이렇게 사는데….’ 이런 마음으로 근근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바쁜 삶이 당연한 직장 분위기에 휩싸여 잘못된 열심에 대해 스스로 채근하며 더 힘쓰고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면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예배드리고 맡은 사역을 했고, 성경 공부까지 참석하고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요일은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시간을 주로 썼고, 아주 가끔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니는 대방교회 저는 동부교회 아버지는 천주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족이 3명뿐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점점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삶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안식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주어진 교회 일도 하고 성경도 읽고 있으니 부족하지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습니다.

    회사는 점점 제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자 고민하고 달성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가진 역량이나 리더십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버텨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삶이 반복되는데 뭔가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믿는 자가 감당해야 할 사회생활이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삶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한동안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삶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더 힘들고 어려운 삶도 많고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불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삶에 대해 답답하고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길을 보여달라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때로는 원망이 되어 ‘하나님 이것이 당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가요?’ 하고 질문도 했지만, 그래도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생각나 낙심된 마음을 삭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파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거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고,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약 100미터 전, 건널목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빛이 비쳤고 저는 쓰러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운전자는 어두운 길, 저를 보지 못하고, 건널목에서 정지하지 않고 가다가 저는 차량에 치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차에 치여 의식을 잃었고 119구급차에 실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드문드문 기억이 있긴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오후 6시 30분이 넘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제 몸은 일부는 붕대로 싸여 있었고, 눈마저도 붕대에 감겨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 치여서 모든 갈비뼈가 골절되었고, 바닥에 쓰러질 때 몸의 왼쪽 부분으로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는 골절되었고, 왼쪽 광대뼈는 함몰됐고 얼굴의 찢어진 부분은 이미 응급 봉합 수술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병원에 누워있다니….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몸을 크게 다쳤음에도 정신은 온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뜻밖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교회는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소속 교회를 떠나 저를 알고 있는 성도님들은 제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성경 말씀을 적은 손 편지를 어머니 편에 전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심 어린 기도와 위로는 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친척에게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병문안을 와 주시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며 사람들과 멀어진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완고해진 마음과 메마른 정서를 하나님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사고로 인해 육체의 아픔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사고 전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 뜻밖의 사고는 저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안했고, 오히려 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를 허락하셨지만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생각과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고,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병실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어 주변이 많이 놀랐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평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골절된 어깨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던 저는 의연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소요되는 수술이었습니다. 저녁 10시에 회복실로 옮겨졌는데 전신마취에서 회복하는 것은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마취 가스를 호흡으로 빼야 하는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가 숨을 쉴 때마다 통증과 갈증이 심했지만, 물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십자가에 달려 홀로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생각났는데 이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겪는 육체의 아픔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몸이 아픈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깨 수술을 받고 2주에 후에는 함몰된 왼쪽 광대뼈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마취 후 깨어났을 때 고통이 커서 무서웠고, 체력도 떨어진 상태고 수술 위치가 시신경 옆이라, 잘못 신경을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를 친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약해진 것 같아서 수술을 앞두고 불안함에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께 잡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전신마취 회복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습니다.

    3주 동안 수술이 끝났지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병가와 휴직의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특별한 사유 없이 휴가를 줄 수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6개월의 병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피로했던 일과에서 사고를 통해 저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2차 병원으로 옮겨서 회복에 전념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하루에 수면 시간을 절제하며 살았는데 병원에서 충분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저는 성경도 읽고, 설교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고의 고통을 뛰어넘는 제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제 몸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깨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에 핑계를 대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을 알게 하시며 이 기간에 제 육체를 돌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육체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을 관리할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 저의 바쁜 직장 일과 주말에도 각자의 시간으로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간호를 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던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픈 딸을 돌봐 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를 챙기는 여유가 없는 시류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대화도 잘 못했는데, 이번 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위하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 주셨습니다. 사고를 통해 이렇게 저의 잘못된 삶의 흐름을 멈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넉넉해져서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 주어진 휴식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출애굽 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 시간이 흐르면 원하지 않지만, 다시 바쁜 일상에 매몰되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복직하는 것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아도 경쟁하며 빠르게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직장 분위기에 이전 생활이 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그동안 익숙했던 업무나 관계를 내려놓고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타 부서로 옮기는 것도 내가 해 온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내 능력을 알아봐 줘서 허용하는 그 부서의 승인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기에 그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몇 달 있는 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코로나 때 모두 느끼셨겠지만, 안식일 예배에 하나님 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사역의 기회가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지 내 상황을 고려해 보고 결정했으나, 하나님과 성도님께 사랑의 빚을 진 것을 저에게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회복하신 주님이 부족하면 채워주실 것이고, 도와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과 생각과 처지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어려움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교통사고를 겪는 것을 불행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셨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6개월을 쉬는 것까지 누렸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장 10절)

    제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간증]성령 받았어요_허예안 어린이

    2025년 3월, 아동반 허예안 어린이의 수령이 있었습니다. 여아들에 비해 남아들이 많은 아동반에서 맏언니로써 톡톡히 제 몫을 다하는 허예안 어린이의 수령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성장할 신앙을 위해 같이 기도 해주세요.

    1. 자기소개 해주세요.

    제 이름은 허예안입니다. 제 나이는 열한살이고 만 나이는 아홉살입니다.
    저희 가족은 네 명입니다. 가족 구성은 아빠, 엄마, 유겸이, 예안이 네 명입니다. 제 꿈은 제빵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 싫어하는 음식은 야채 볶음밥입니다.

    2. 성령 받기 전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성령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성령을 받아야만 천국에 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알았기 때문이에요.

    3. 성령 받은 이후의 마음은 어떤 가요?

    성령을 받아서 너무 좋아요.
    그냥 좋아요. 왜냐하면 죽더라도 하나님과 매일매일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4. 성령 받은 후의 다짐도 알려주세요.

    동생이랑 최대한 친하게 지내겠다고 다짐했어요. 아빠 말은 빼고 엄마 말에 순종 하기로 결심했어요. 왜 아빠 말을 안 듣겠냐는 다짐을 했냐면 그건 재밌어서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7절)

  • [성도간증]일본 신앙 여행을 마치고

    2025년 4월, 갈렙.바나바와 아비가일 연합은 목자님 포함 21명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7박8일의 일본 신앙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도 식지 않은 열정과 또 자라나야 할 신앙을 위해 계획된 이번 여행에 하나같이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라고 말씀하신 성도들을 대표하여 함께 다녀오신 이종숙 자매님께서 간증해 주셨습니다.

    일본 신앙여행을 마치고
    이종숙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일본 신앙여행에 아무런 일 없이 잘 다녀왔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일본 신앙여행 계획이 알려진 이후 시간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참예수교회라는 교회 안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성도들과 처음으로 신앙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반적인 여행보다 훨씬 설레고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와 아주 다를 것으로 생각한 일본의 참예수교회는 어떤지도 궁금했으며 처음으로 떠나는 신앙여행이어서 더욱 설렜는지도 모릅니다.

    일본 신앙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이 공항에 도착하여 밝은 웃음으로 인사 나누고 수화물을 위탁하고 나서 출국심사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일본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교적 작은 비행기라서 조금은 놀라긴 했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무사히 일본까지 데려다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일본에 도착하여 공항 로비로 나오자 곧 우리를 반기는 오사카 교회 성도님들이 나오셨습니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조이 아버님과 조이 형제님의 헌신은 가족보다 더 세심한 배려 속에서 일본 신앙여행 일행을 안내하고 도움 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 신앙여행의 첫 방문지인 오사카 교회에 도착하자 많은 성도님께서 줄지어 서서 꽃송이를 건네주시고 찬양을 부르면서 우리 일행을 열렬히 반겨주시는 모습도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신 모든 성도님이 바로 살아 있는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오사카 교회를 비롯하여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도 역시 우리 일행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맞이하여 주시어 큰 감동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우리나라보다 전도가 덜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교회도 작을 것으로 생각하고, 성도 수도 적을 것으로 생각한 일본의 참예수교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성도 수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오사카 교회,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 세 군데를 다녔지만 하나같이 교회도 크고 시설도 깔끔하니 훌륭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말이라 생각하면서 신앙여행에 함께한 것을 큰 축복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강남교회가 일본 교회보다 작아 보이고, 시설도 낙후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우리 강남교회도 일본의 교회보다 더 크고 시설이 좋은 교회로 발전되길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녀온 일본의 모든 교회에서 서로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참예수교회의 성도로써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따뜻한 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서로 찬양을 나누는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아래 참예수교회 안에서 서로가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이고 한 가족이라는 찬양이 왜 나왔는지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사카 교회에서는 숙식을 제공하여 주어 이틀 밤을 묵었는데 꼭 집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했습니다.
    음식 또한 너무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어서 신앙여행으로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을 잊었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까요?
    멀리에서 교회로 오시어 아침을 준비해 주신 오사카 교회 자매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본 신앙여행에서 체험한 오사카 교회,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는 하나같이 우리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환대해 주었고,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심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막바지 여행을 안내하고 신앙여행 일행을 살뜰히 챙겨주신 여행사 대표 겸 집사님께서도 우리가 불편한 점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면서 배려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아무 사고 없이 신앙여행을 마치게 됨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신앙여행에 함께 하며 통역과 진행에 헌신해 주신 목자님을 비롯하여 서로 배려하고, 도움이 되고자 했던 모든 형제자매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