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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성도 간증]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할렐루야!

    저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09년 5월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특별한 체험이나 이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에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하고 가장 귀한 일이다 라고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를 나오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눌 간증은 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하셨는지와 성령 받는 것 그리고 이후에 저희 어머니와 가족의 전도됨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 이전의 모습 >

    16년 전인 2009년, 제가 성령 받기 이전의 나이는 딱 40세였습니다. 신앙생활 이전의 삶의 중심, 마음의 중심은 회사일이었습니다. 제가 기계설계 쪽의 일을 하였는데 업무가 항상 늦게 끝났습니다. 그 당시 일이 끝나는 시간이 대부분 10시 정도가 보통이였고, 나를 진단하면 약간의 일 중독 상태였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 끝나고도 술을 좋아해 동료들과 함께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내는 것이 낙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 집을 사고, 언제 결혼하고 이런 내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들을 하며 사는 생활이었는데, 어찌보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고민과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많은 것에 욕심을 두고 어두움에 길을 잃고 헤매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종교에 대한 저의 생각은 신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바보같은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는 더 믿을 수 없고 교회 다니는 사람의 성품이 제가 느끼기에 특별히 더 나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한다” 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 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한심해 보였습니다. 나에게 교회 이야기는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고, 종교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이야기도 하지마! 딱 잘라 말했습니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과 세상의 많은 것에 욕심을 두고 살아가는 어리석고도 어두움 속에 헤매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르고 어두움 속에서 속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 헤매는 저를 빛 가운데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 어린시절 >

    제가 태어난 곳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입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저수지 솔밭 언덕에 위치했고, 내부는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었고, 안동교회에 있는 풍금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부여 참예수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희 가족 부모님, 형, 누나들과 외가댁 식구들이 제가 학교 입학할 때까지 다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양손을 잡고 고스롬타면서 그리고 하얀 눈길을 걸으며 다녔던 기억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찬송이 ‘내게 강같은 평화’, ‘금과 은 나없어도’… 가 기억이 납니다.

    < 믿음을 잃어버림 >

    그러나 부여 참예수교회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없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 없어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와 우리 가정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부여 시골에서 정미소를 하였는데 교회가 없어지고 나서 몇 년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망하였습니다. 빚쟁이들이 계속 찾아왔고 결국 정미소를 팔고 1979년 10살 때 큰아버지가 계시는 서울로 이사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은 정말 힘든 생활을 하였습니다. 79년에 서울에 올라와서 오랜기간을 시장에서 닭장사를 2007년까지 28년간 계속 하셨습니다. 시장에서 닭장사 새벽에 시작하여 저녁이 아주 늦어야 끝이 났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또한 뜨문뜨문 할머니와 사촌들을 따라서 대방교회에 다니다가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차가 있지만 가족 모두 신앙을 잃게 되었고, 막내누나만 더 다니다 결국 모두 떠나게 되었습니다.

    < 청년생활 >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없으니 잊는 것은 너무 쉬웠습니다. 오히려 커가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더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하게 될 수많은 이유가 생겼는데 그중에 살아가면서 만난 기독교인 대한 경험입니다. 대학교 때에 첫 아르바이트를 강남 버스터미널 앞 기독교 백화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사장님이 교회를 다니시며 장사를 하시는데 그곳에 직원들에게 심하게 화를 잘 내고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첫 직장 사장님이 기독교인이였는데 정말 거짓말을 잘하였습니다. 또 기독교를 싫어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얇은 성경 지식도 그 하나였습니다. 욥의 시험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시험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음으로 하나님을 정말 많이 비난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에게 행하고 시험할 수 있는가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많이 비난하였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교회의 목사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한 잘못을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교회를 더 많이 비난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하고는 담을 쌓고 정말 완전히 잊었고 제가 교회 다녔던 기억조차도 잊었습니다.

    < 사회생활 >

    대학졸업 후 군대를 갔다 제대한 후 사회생활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직장생활을 하였고, 주 6일 동안 일하고 저녁은 술 마시고, 간혹 시간 나면 주말에 낚시도 가고, 또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집을 살까? 서울과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9년 직장 때문에 천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천안에 와서 더 일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천안에 큰누나가 살았는데 같은 곳에 살았음에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일속에 또 세상 욕심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지냈지만 지금에서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타인에게 사랑을 혹은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또 받는 것도 싫어하는 아주 메마르고 건조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35:1) 광야과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

    < 은혜의 시작 >

    어머니(이순복 모매님)가 오랫동안 닭장사를 하셨는데 장사가 점점 더 계속 안 돼서 너무 힘들어하셨습니다. 생닭과 치킨을 팔았는데 한집 걸러 한집이 치킨집이 생기고 또 슈퍼나 마트에서 생닭을 파니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 몇 년 간 계속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채소가게는 정말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채소가게가 너무 잘되니 채소가게에서 확장을 하려고 권리금을 주고 팔으라고 하여 그렇지 않아도 유지가 안돼 그만두려해도 시장에 보증금이 거의 없이 월세를 내고 있어 이것 저것 정산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권리금을 준다니 바로 넘기고 26년간 하시던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이것 저것 정산하고 반지하라도 방도 얻고 생활을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청소 일을 시작하셨는데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유는 닭 장사는 하루종일 자정까지 매여 있어야 하는데 병원일은 새벽에 나가지만 일찍 끝나 본인의 시간이 최소한이라도 있고 또 장사할 때는 본전도 안되었는데 병원 일은 월급도 최저임금이지만 월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병원에 가니 매 아픈 사람 뿐인데 본인은 건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격주로 토요일에 쉬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장사를 그만두고 나서 수십 년간 못 나갔던 하나님께 나가야겠다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마침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때마침 대방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자님(오희도 목자님)이 교적부를 보고 잃은 양들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려는 딱 그때 연락이 와서 다음주부터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도 믿음생활을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님이 약 30년만인 2007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때는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뭐하시러 그런 곳에 다니실까? 시간 아깝게—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일이 은혜와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인도자와 만남 >

    2008년 봄에 이종사촌 결혼식에 참석하여 친척을 만났는데 이종동생과 그 신랑을 만나 인사 했습니다. <김하늘(김참운) 집사, 김지용>. 천안에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종동생이 천안에 사는 것을 몰랐습니다. 천안에서 식사 한번 하기로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도로과 공무원이니 좋은 회사 땅도 알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얼마 뒤 사촌 동생인 참운 자매로부터 밥 한번 먹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장소가 이학돌솥밥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부 내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러 사람이 앉아 있어 엄청 당황했습니다. (홍영석 목자님, 김한길 목자님 내외… 등)

    그리고 조금 뒤 아 예수쟁이들이구나! 을 알고 나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다음에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중 영은회였던것 같은데 참운 자매 어머님이(이모님) 천안에 왔는데 와봐라 하셔서 할 수 없이

    나가 교회 다니라는 권면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래서 나갈 마음이 있었냐? 절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음도 없었지만 당시 전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두에 밝힌 것과 같이 하루를 일로 보냈습니다. 갈비탕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해 8월에 청주 천안 연합 래프팅을 가게 되었는데 왜 거기를 간다고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바쁘고 내가 낄자리가 아닌데 래프팅을 함께 갔다 오고 나서 저의 마음은 “이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회에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쁜 사람이고 교회에 다니려면 제가 그것에 매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래프팅 후 참운 자매의 강권도 있고, 래프팅 간 것도 있고 해서 몇 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의 참석하여 김한길 목자님 설교가 말씀이 때마침 저에게 맞는 말씀이었는지. 제 마음을 열어 주신 것인지.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내용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신앙생활, 교회, 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아주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생각해도 올무이고 저처럼 바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 신앙을 할 수 있는 결정적 변화 >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미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부동산 모기지에 투자한 은행들이 파산한 사건인데 그 사건이 있은 후 두달 만에 거짓말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국의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여 저희 회사에 모든 일이 끊겼습니다. 직원들은 휴직을 하고 저도 오전에 잠깐 나갔다가 오는 정도였습니다. 정말 바쁜 사람이었었는데 몇 개월을 직원들과 함께 놀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맞추어 참운 자매가 교회에 출석하라고 전화가 왔고, 예전에는 교회오라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일 때문에 못간다고 했는데 그 일후로는 핑계 거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배와 교회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11월에 대둔산도 다녀오고 저녁예배 안식일도 나와서 말씀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친밀감이 생겼고 그즈음 저와 같은 구도자인 서민선 형제님도 같이 활동하고 예배 참석도 하였습니다. 다음해 목자님이 바뀌어서 윤득도 목자님이 부임하셨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제가 계속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새로 부임하신 윤득도 목자님을 약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계속 다닌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것에 매인다고 족쇄가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윤득도 목자님이 부임하신 후 얼마 뒤에 서민선 형제님이 성령을 받으셨는데 저는 그때까지 성령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성령에 대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다만 성령 기도는 어렸을때부터 들었던 것이기에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때에는 “나는 왜 저런 기도가 안되지?” 하는 정도였습니다.

    < 성령을 받음 >

    그해 2009년 5월 30일 영은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2~3주 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마음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흘렀고, 기도하면 또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청주 영은회가 천안보다 1주일 전에 있었는데 거기서도 엄청 울었습니다. 이상하게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울게 되니 창피해서 기도할 때 휴지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청주 영은회에 가서도 많이 울었고, 천안 영은회가 시작되어서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안식일날에 어머님이 오셨는데

    청주 이모님과 지금은 돌아가신 부산 감사 집사님이 오셔서 서로 반가워하며 기도하시는데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얼마나 슬프던지 ….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신 것인지 나를 위한 기도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슬펐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때가 처음 어머니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어머니랑 예배를 드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안식일날 제천으로 돌아가시고 안식일 마지막날 마음이 평온한데 너무 속이 울렁울렁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금식하게 되고 오후 예배 후 기도시간에 엄청 울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큰 기쁨과 눈물과 회개 등등 너무 감사하고 희한한 느낌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저를 바라보면 악하게 해꼬지는 안하지만 굉장히 메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 메마른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녀삼아 주시려 성령을 통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비를 내리어 촉촉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나서 굴곡은 있었지만 믿음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어머니의 이야기 >

    그리고 저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2007년 대방교회에 다니시다가 아버지가 제천 조그만 여관을 사면서 제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여관은 허름했기에 주로 일하시는분들이 한달에 얼마주고 사용하는 달방으로 사용하는 숙소였습니다. 그곳에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해서 청주로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오전 예배드리고 오후에 오시곤 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제가 교회 나가고 나서 1년 정도 후부터 교회에 나가셨지만 잘 다니시지는 못하고 간간히 다니셨습니다. 10년 정도 그렇게 생활하셨는데 이제 힘이 많이 부치시고 해서 그곳을 팔려고 어머니와 생각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출이 크지 않아 여관을 내어놓아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장사도 점점 안되었습니다. 2년 정도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못 걸으신다는 연락을 받고 급한 마음에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못 걸으시니 큰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청소 빨래 아버지 돌보는 것 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한두달 후 아버지는 걸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정말 부모님이 여관일을 그만두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나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장사가 잘된다. 방이 다 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매매가 되어 천안으로 이사 오게 되어 천안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안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게 하셨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 와중에 천안에 살고 있는 큰누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 형제는 2남 3녀 중 제가 막내이고, 천안에는 제 큰누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큰누나는 많은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뼈에서 고름이 나오는 골수염을 앓아 다리를 절단하기 전까지 갔었고, 이후에도 나았던 다리가 또 재발 그리고 암으로 병원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마다 참운 자매와 제가 병문안 가서 위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였지만 그때마다 하는 말이 내 꼴을 봐라 내가 지금 교회 갈 때니? 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안와사가 와서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또 병문안을 가서 권면했습니다. “이제 교회 나와” 라고 했는데 또 말합니다. “야, 내꼴 봐라.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러면 제천여관 팔고 엄마가 내려오시면 그때나 다닐께!” 라고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내놓아 팔리지 않았기에 천안에 오신다는 생각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 팔렸을까요? 그 말을 한 다음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부모님이 제천을 정리하시고 천안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안에 오신 어머니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천안에 와서 잠깐 쉬다가 하신 일은 노인 일자리를 다니시게 되었는데요 일하신 후 얼마 뒤 거기서 함께 일하시는 어르신 3명을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조에 같이 일하는 2분이 있었는데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장로교, 한 분은 침례교에 다녔고,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였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교회 이야기를 하였고, 같이 일하시는 분에게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 받은 증거가 방언이라 이야기 하자 그렇게 말하니 한분이 “그럼 날날라 하는 교회여유?” 하며 질문하고 “그렇다” 하니 가보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한분은 가만히 있길래 “자네는 안가남” 하니 “저는 다녀유” 하니 어머님이 그럼 “구경도 못가남?” 하니 “구경이야 가쥬” 하면서 두 분이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 그 옆에 조에 있던 한 분도 호박죽 먹으러 오라 하는 말로 시작하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그 남편분까지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누나의 전도를 위해 기도를 하며 애를 썼습니다. 편지도 유언처럼 써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2년도에 교회 송년식사가 있었고 누나와 매형을 부르게 되었고 그 계기를 통해 매형과 큰누나 그리고 큰누나의 손자, 손녀들가 다음해 1월부터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고, 매형과 손자, 손녀들도 성령을 받고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전에 있는 이모님까지 전도되고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너무나 크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크신 은혜를 또다시 우리에게 주심을 알기에 어머니는 나머지 자녀들의 구원과 믿음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정에 주신 은혜와 주실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감사주!

    <최병덕 형제 가족사진>

    (뒷줄 우측에서 2번째가 최병덕 형제, 앞줄 가운데 계신 분이 이순복 모매(어머니), 그 오른쪽이 최귀미 자매(누나)입니다.)

    유튜브에서 간증을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성도간증] 대만방문 후기

    [성도간증] 대만방문 후기

    <대학부 강민준 형제>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리가 되길 소망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대만방문을 다녀와서 느꼈던 점에 대해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크게 4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부족한 신앙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
    2.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
    3. 표현할 수 없는 감사
    4.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한 행복

    1. 부족한 신앙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

    첫 번째 ‘부족한 신앙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대만방문단의 운영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세계 참예수교회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교회를 귀하게 여긴다.
    2) 또래인 신앙의 동역자들과 주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다.
    3) 대만 교회의 모범을 보며 주님의 뜻 안에서 세계 선교의 사명감을 가진다.

    이 3가지 중 그 어떤 것도 빠짐 없이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마치 누군가가 교육과정이라도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 날 그 날 경험한 것이 모두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들을 하루하루 풀어보겠습니다.

    1일차에는 사역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사전 모임 때 대만에 가서 교류할 찬양을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저는 찬양팀 사역을 맡아 악보 제작, 그리고 피아노 반주와 플룻 연주를 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준비하는 동안 지치고 피곤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2일차에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날 방문했던 까오숑 교회에는 5층에 역사관이 있었는데요.  이 역사관에 걸려있는 사진을  확대해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 당시의 까오숑 교회에는 약 천 명 정도의 신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인원이죠? 저는 그 얘기를 듣고나서 ‘한국 교회도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언젠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참예수교회에는 참 진리가 있고 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렇게 크게 성장한 교회를 통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제 신앙에 자신감이 붙게 되었습니다.

    3일차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만 교회 성도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떠우 교회를 떠날 때  교회 성도님들이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자그마치 약 2분이라는 시간동안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또 각각의 교회에서 준비해주신 식사와 간식들 사진을 모두 모아봤는데요.  모두 양이 엄청 많죠. 맛도 가게에서 먹은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맛이 없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아 취두부는 빼구요.  취두부는 제 입맛에 안 맞더라구요ㅎㅎ 가는 곳마다 성도님들이 저희를 기쁜 마음으로 대접하여 주시는 것을 보고, ‘교회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한국 교회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이 된다면, 과연 저렇게까지 열심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들더라구요. 그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아마 굉장히 어색해하면서 인사도 할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을 거다….” 그런 답변이 나오고 나니까 대만 교회 성도님들의 열정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구요, 그래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4일차에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느꼈습니다. 이 이야기는 좀 얘기가 길어서 나중에 따로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5일차에는 두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요. 첫 번째로 헌금의 중요성입니다.  이 날 방문했던 위엔린 교회는 성도님들의 사역과 헌금을 통해 크게 성장한 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서서 양팔을 벌리면 벽이 닿는 거리의 작은 크기인 건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성도의 수가 점점 늘어나서 더 큰 건물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팔천만 대만달러, 한화로 약 33억 정도의 큰 금액이 건축 비용으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님들의 건축헌금으로 무사히 건축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 헌금의 의미와 중요성을 어디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교회 같았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의미이다’. 위엔린 교회에서 들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반성을 하게 되더라구요. 십일조는 자꾸 잊어먹고, 헌금도 자주 하지 않는 동부 교회에서의 저의 모습들이 떠올라서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헌금에 담긴 헌신의 의미를 생각하며 빼먹지 말고 잘 내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섬기는 자의 영향력입니다.   “사람이 많은 교회일수록 섬기려는 자들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자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는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섬기려는 자가 다른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사역을 할 때 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드릴 때도, 찬양을 할 때도..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활동에서 그 영향력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 자신은 교회 안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에 대한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진정한 예배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목자님께 많이 들었는데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깨닿게 되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인 6일차에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느꼈습니다.  이 날 방문한 타오위엔 교회에는 약 70명 정도의 성도님들이 계셨는데, 그 중에 40명 이상이 구도자분들이셨다고 합니다. 대만도 저희와 같은 고령화 사회이고, 그 속에서 타오위엔 교회에서는 한 분이라도 더 늦지 않고 주님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믿고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 진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진리를 전하기 보다는 그저 다가올 핍박이 무서워서 제 신앙을 꽁꽁 싸매고 숨겨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핍박이 두렵고, 제 신앙을 밝혀야 하는 자리는 몸이 먼저 피하려고 반응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신앙을 마치 부끄러운 일인 것처럼 숨기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복음을 직접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숨기지는 말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작은 용기들을 내면서 바꾸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 하루하루 달랐던 제 경험들을 이야기 해봤습니다. 

    2.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

    두 번째는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번 일정 중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작은 기적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는데요.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학업적인 부분에서의 기적입니다. 저희 학교는 개강주에 강의OT와 작곡과 OT를 진행해서 모든 중요한 사항이 그 때 결정되고, 만약 거기에 참여를 하지 않으면 과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대만 방문 날짜가 이 개강주와… 요렇게! 완벽하게 겹쳐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몇몇 분들은 제가 이것 때문에 굉장히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을 옆에서 봤을 거에요. 하지만 대만 방문을 가기 직전과 또 대만에 있는 도중에 그것이 일정 부분 해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내에서 받을 뻔 했던 불이익들은 대만에 가기 바로 전 날에 해결 방법이 생겨서 모두 구제를 받을 수 있었고, 출결 부분에 있어서도 몇몇 강의들은 출석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부분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의 걱정이 없어지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던 중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들이 생각보다 딜레이가 많이 되어서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약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희가 원래 도착해야 했던 터미널이 아닌, 다른 여객 터미널로 잘못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버스 안에서 기도를 드렸는데요. 그러자 놀랍게도 가봤더니 줄에 사람이 한 명도 없고, 탑승 수속 중 그 어떤 것도 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진행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론 탑승까지 오히려 시간이 50분 정도 여유가 생겨서 면세점도 다녀오고,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하면서 탑승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또래 친구들에게서 나타난 기적입니다.  한 친구가 2일차에 방문한 백화점에서 휴대폰을 분실하였습니다. 해외에서, 그것도 단체 활동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굉장히 찾기 어렵다는 것은 여기 계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텐데요. 모두의 기도와 대만 교회 성도님들의 수고 덕분에 감사하게도 5일차 저녁에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러예 교회에서의 저녁 기도 시간 때 대만에 오기 전에 기간이 연기된 줄 알았던 대회 일정이 갑자기 다시 당겨졌다는 소식 때문에 내일 혼자서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할 수도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대만 시간으로 오전 12시 30분에 그 대회 일정이 어떻게 될지 확정이 된다는 말도 함께 덭붙혔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 시점은 저녁 기도를 끝마치고 난 뒤 대략 오후 11시 40분 쯤이었기 때문에 일정이 결정되기까지 1시간도 체 남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기도 시간 전에 개인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친구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래.. 가게 되더라도 거기에 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하면서 체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놀랍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정이 다시 연기가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뒤 너무나도 행복해서 그 친구와 숙소 복도에서 부둥켜안고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건 알지만,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세상을 움직여서 이런 기적을 일으키셨을까?’  이 질문은 다음 날 아침 기도 시간에 목자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해서 답해지게 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인지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3. 표현할 수 없는 감사

    세 번째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입니다.목자님께서 아침 기도 시간에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 3:3-4 ‬  이 구절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순종하고 니느웨로 가서 원래라면 다 돌아보는 데 3일이나 걸리는 성을 불과 하루만에 다 돌면서 하나님의 예언을 전파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목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이라고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하신다”.  이 말씀이 어제 그 친구의 일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렸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기도하는 내내 계속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나무와 산이 보였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감정이 벅차올라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아름답고 주님의 크신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방금 말한 그 창밖의 풍경입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사진이라서 제가 가장 아끼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4.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한 행복

    마지막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한 행복’입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실용음악 작곡 전공입니다. 따라서 음악을 들을 때 화성진행이나 멜로디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분석을 하게 되는데요, 이는 찬양을 부를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음과 악보 상의 음이 맞지 않거나, 박자가 다르거나 할 때 그것이 거슬려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만 방문단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6일차 아침 기도 시간에 한 찬양을 부르고 나서, 찬양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찬양은 바로 ‘감사 위에 감사’라는 찬양이었는데요. 앞에서 느꼈던 모든 은혜 덕분에 이 때 제 신앙이 굉장히 제가 생각해도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부분의 가사가 제 마음에 확 와닿더라구요.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기도들은 대부분 모두 간구였습니다. 그것이 회개든, 신앙적인 일이든, 세상적인 일이든 말이죠. 아마 감사가 중요한 것인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구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과 또 그것에 대한 정말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알게 되고 나서인지, 저 가사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저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계속 울먹이면서 찬양을 하다가 기도 때 감사를 최대한 표현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냈던 그런 기억이 있네요. 그 뒤로 찬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던 찬양들을 모두 검색해서 하나하나 가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나 좋은 가사들이 많은데도 나는 지금까지 그걸 알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어떤 허탈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찬양 제목을 들으면 그 찬양에 대한 화성진행 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찬양이 담고 있는 뜻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마음으로 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Thanks 感谢主 네, 깐셰주. 한국어로 감사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뜻이죠. 대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몸에 베어있고 또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이 시간 이후로 저를 포함한 모든 동부 교회 성도님들도 주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 간증을 열심히 준비하고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또 여기까지 잘 인도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만방문 일정 소개와 간증 마치겠습니다.

  • [성도 간증]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요_변려원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3박4일 동안 무사히 영은회를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깨닫고 느낀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은회를 통해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하나님께서 이끄신 믿음의 길을 간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배울 때, 저는 아브라함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만 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지으며 점점더 믿음이 견고해졌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연약한 모습에서 후에는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저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며 종종 엇나가지만 교회 안에서 더 열심히 배우고 깨달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로 이삭과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항상 순종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이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삭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좋은 완전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이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에 대해서 배울 때,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자로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믿지 못하고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가고 있진 않을까 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번 영은회에서 들은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 깨달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이번 영은회에서 배운 것들을 다짐하며 쓴 기도문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영은회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길을 걸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과 유혹이 있었지만 점점 더 견고해지는 믿음을 보며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저 이지만 항상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고 저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살아갈게요. 세상에서 구별되는 빛과 소금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게요.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담담히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칠 믿음과 이삭의 조건 없는 순종, 야곱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깨달음, 요셉처럼 유혹을 뿌리치는 힘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을 본받아 믿음의 길을 걷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의 끝에서 모두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되길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변려원 자매

  • [성도간증] 2025 동계학생부 영은회 소감문(천안교회 학생부)

    [성도간증] 2025 동계학생부 영은회 소감문(천안교회 학생부)

    할렐루야~ 지난 2025년 동계 학생부 영은회에서 작성한 학생부 친구들의 소감문입니다. 3박 4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듯 앞으로도 학생부 친구들이 세상 속에서도 늘 하나님만 의지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2025년 동계 학생부 영은회 간증

    2 김명현

    할렐루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영은회의 주제는 ‘믿음으로 걸어간 길’이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배운다고 해서 너무 기대되었다. 기대되는 마음을 가지고 대전교회에 오는데 시간이라는 11시간이라는 긴 걸렸으나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간 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은회 동안 배운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간 길을 나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4명의 믿음의 선조들 중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은 이삭이었다. 왜냐면 생명보다 순종을 더 우선으로 여겼던 것, 20년간 변함없이 기다리며 결혼하였고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양보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생명보다. 순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20년간 자신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계속 기도한 것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양보를 한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을 우선으로 한 이삭을 가장 본받고 싶었다. 특강 때는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이걸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진화론이 잘못된 이유는 질서가 무질서로 변해야 하는데 진화론에 따르면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멘델의 유전법칙에도 진화론이 잘못되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3 김보아

    이번 영은회는 사실 참석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제 신앙이 저의 게으름 때문에 교회를 잠시 잘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저도 제가 게으른 것을 알면서도 기도, 말씀 드리는 것을 점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은회를 오면 너무 외롭다 라는 생각 때문에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천안교회 친구들의 권유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참석을 하고나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친하고 각자 무리가 있는데 내가 너무 초라하구나 내가 생각한 영은회와는 다르네?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저는 주님께서 제게 주신 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게을러서 교회에 잘 나가지 못해 다른 아이들과 더 친해질 기회를 놓친 것 그것을 제 자신이 더 잘 알면서 자꾸 누구의 탓을 하며 안 좋은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더 미워졌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배운 강의 중에 나왔던 인물 중 아브라함이 제가 본받고 싶은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자 순종의 신앙 이삭의 아버지입니다. ‘순종’이라는게 제겐 너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닌거 같고 저는 교회를 다닌지 2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버겁다? 교회에서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안되는게 천지네? 하면 안된다는 것을 난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건데 모태신앙이 이렇게 또래에 많은데 내가 잘 적응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하지만 강의에서 듣던 아브라함은 그런 좋은 혜택이 낳은 갈대아우르를 하나님의 명령인 ‘떠나라’ 이 3글자 때문에 저 좋은걸 다 포기할 수 있나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뿐이였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그런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제가 세상에 노출이 되어있었지만 저 또한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강의를 들으면서 해결책도 얻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실패를 하였습니다. 그랄에서도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저도 또한 제 신앙이 무너지긴 했지만 주의 말씀과 이번 영은회에서 배웠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제 신앙을 좀 더 키워나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과정이니까 강의에서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배워가는 과정이기에 저도 좀더 발전하는 제가 되길 바라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소감문 작성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3 김세은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감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중3으로 하는 마지막 영은회였습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많은 은혜를 받아 고등학교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 배웠습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들이죠. 1강 아브라함 말씀에선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이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문명과 사람을 의지해야 하는 곳에서 떠나게 하셔서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게 하신 것인데요.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하나님만을 순종해 믿음으로 따라갔다는 것이 너무 본받고 싶습니다. 저도 아브라함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해 계획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3강 이삭에 대해 배웠는데 이삭은 제물로 바쳐질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믿음보단 저는 이삭이 믿음의 가정을 꾸려 하나님 안에 결혼한 것이 더 기억에 많이 남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상 숭배하던 곳에서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친족에서 아내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께서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 다른 이방 민족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교회 언니오빠들, 어른 성도님들을 보면 신앙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더욱 믿음의 가정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 또한 기도제목으로 겉으로 보이는 외모, 스펙이 아닌 조금 생활이 힘들고 돈이 없어도 하나님 안에서 믿음이 튼튼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제 기도제목으로 정했습니다. 4강의 야곱을 배웠는데, 여기에서는 극한의 배고프다는 순간 때문에 죽 한 그릇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장자권을 바로 팔았습니다. 그렇기에 전 지금 이 시대 때 장자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그 은혜를 물컵 한잔 만큼의 가치로만 여기면 ‘아, 나는 에서처럼 될 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매일이 아니더라도 기도하며 제게 주신 은혜를 값지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6강에서 요셉에 대해 배웠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에 알아보기 힘드니 꿈으로 보여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라 끌림 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이제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을 이야기 해보자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감당할 것만 주신다’인데 그렇기에 내가 가진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란트 비유로 5달란트 받은 자는 5개를 남기고 2개로 2개를 남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정해진 선까지만 하면 된다. 그 선을 넘어가지 않아도 적당히 그만큼만 하면 된다. 절대 남의 시선에 쫓기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만 신경쓰며 살아가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찬양을 이야기 해보자면 하늘에 펼쳐진 약속이라는 찬양이 있는데 가사를 보면 ‘주님 앞에 모두 드러나네 마음의 소원들이 나의 뜻과 다르네 주님의 생각들이’ 라는 가사에 묵상을 해봤는데 내가 생각하는 모든 고민과 욕심, 미움들이 하나님 앞에는 모두 드러나기에 내 생각과는 다르고 내가 가고 싶은 곳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나라 갈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영은회를 잘 끝내주시고 제가 많은 은혜 받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멘.

    3 김연아

    이번 영은회는 오기 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보아와 지유가 영은회를 안 오려고 해서인데요. 2시간, 3시간씩 설득을 해보아도 듣지 않았고, 영은회 전날까지 안 오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영은회에 대한 설렘도 넘쳤지만 걱정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셨고 지유와 보아 둘 다 영은회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시작부터 저에게 너무 감사한 영은회였습니다. 또 감사했던 것은 이번 말씀들이 정말 저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기 때문인데요. 방학 이후로 저는 하루 하루 저를 위한 삶을 살기 바빴습니다. 하루는 고등학교를 위한 공부로, 하루는 나의 재미를 위한 하루로. 그런 나날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영은회에서 본 4명의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삶의 목적이 ‘나’인 저와 다른 모습을 배우며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됐던 것 같습니다. 또 이삭을 배울 때 순종’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신앙생활 중에서 저는 항상 선택적인 순종을 하는 편인 것 같은데 이삭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순종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를 생각해 보면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삶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고민, 결혼 모두 하나님께 맡기었습니다. 저는 작은 재미, 또 크게는 목숨 그 어느 것도 하나님 앞에 버리지 못 할 때가 많은 것 같은데 이삭은 삶의 중대사를 모두 하나님께 맡긴 것이 너무나도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나도 하나님 앞에 아쉬움 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이 제 삶에 꼭 적용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야곱과 요셉인데요. 자신에게 힘든 상황이 와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불만 보다는 그 주어진 상황에 성실히 임하였습니다. 저 또한 요셉과 아곱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길 바랍니다. 이번 말씀들을 모두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는 제가 되길 소망하여 소감을 마칩니다.

    1 소서현

    또래 친구들과 모여 잘 몰랐던 내용을 배우고, 같이 기도하고 찬양하며 신앙심을 키웠던 것이 좋았다. 생각보다 내가 잘못 알고 있고 정말 하나도 모르던 것들도 많아서 그 내용을 하나하나 배우며 익히는 게 즐거웠다. 영은회에 오기 전까진 3박 4일로 낯선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내 생각보다 잘 적응해서 지낸 것 같다. 영은회에 오기 전에 하나님께 영은회에 잘 적응하여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게, 또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아 영은회 내내 하나님께 매우 감사했다. 강의 시간과 특강 시간 때 말씀을 들으며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많았고, 중간중간 졸기도 했지만, 새로 배우는 내용이 있어서 그런지 매우 유익했다. 다음에도 참석해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싶다.

     

  • [성도간증]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천안교회 김미영 자매)

    [성도간증]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천안교회 김미영 자매)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

    천안교회 김미영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돌을 깎아 불상이나 석탑을 만드는 석공 일을 하셨기에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의 종교는 불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고 기독교는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후 전주에서 살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참예수교인에게 전도를 받았고 1987년 3월 25일 구역예배에 참석했다가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죄인을 불쌍히 보시고 참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또 감사를 드린다.

    어느 날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에 우리 가족들 모두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가족 전도를 시작했고 그 말씀대로 가족들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는 축복의 은혜를 받았다.

    제일 먼저 남동생 둘을 전주로 불러서 전도했는데 둘째 남동생이 진리를 받아들여 1989년 5월 14일 전주 영은회에서 세례와 성령을 받았다. 그러나 천안에는 아직 교회에 없었기에 동생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1993년쯤 내가 천안에 다시 와서 가족들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참예수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산교회(현재 평택교회)로 다녔고 둘째 남동생은 처음에는 수원교회를 다니다가 나중에는 나와 같이 오산교회로 출석하였다. 우리 둘이는 가족들에게 계속 전도를 했다. 그러다가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1995년 10월 안에 3명이 구원을 받았다. 남편과 막내 여동생, 그리고 큰 남동생이 세례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일 년 후 1996년 4월에 친정어머니께서도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안식일과 밤 예배를 한 번도 빠짐없이 오산교회로 출석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평일에는 저녁마다 우리집에서 성경공부도 했다. 그리고 1998년 10월 17일 오산교회에서 완전히 분가하여 가정집회를 시작했고 2001년 9월 18일에 드디어 천안에도 참예수교회 예배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 김미영 자매 가족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지만 그때까지 아버지만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

    다른 가족과 다르게 완고하신 아버지를 전도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능력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신 분이셨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아버지도 구원을 받아 우리 가족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완고하신 아버지가 구원받기까지 약 1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 가족이 한 사람씩 전도될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아버지에게 보여 주신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자 한다.

    당시 아버지는 가족들이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고 이제 우리 집안은 망했다고 말씀하시면서 한탄하셨다. 어느 날 여동생이 방안에서 방언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밖에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너무 화가 나서 문을 발로 차고 뛰어 들어가려다가 참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기에 연세가 들면서 많은 병이 계속 찾아와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셨다. 담배를 인해 손발이 썩어가는 버거시 병에 걸려서 일 년에 몇 번씩 병원에 가서 링거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폐기종으로 숨 쉬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셨고 또한 늑막암에 걸려서 고통스러워하셨다. 이 외에도 입안이 늘 헤어져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둘째 동생이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병원 복도에서 쉬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동생에게 차라리 나를 여기서 밀어서 떨어져 죽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병이 중해 괴로울수록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삶을 끝내기를 원했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웠고 하나님이 아버지를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실 것을 전심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모두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갑자기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나의 자살을 3번이나 막으셨다. 그분께서 나를 살려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한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처음에 그분이 누구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그분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3번이나 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에 놀랐고 그것을 하나님이 다 막으셨다는 것에 또 놀랬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알려 주셨다.

    첫 번째는 아버지께서 이 고통스러운 삶을 당신 손으로 끝내려고 가족들 몰래 큰 며느리가 생신 선물로 사다 준 붉은색 새 넥타이를 가지고 집 앞에 공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나무에 그 넥타이를 매고 목을 매어 죽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넥타이가 뚝 끊어져 아버지는 땅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새 넥타이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끊어질 수 있지? 너무 놀라셨고 순간 정신이 바짝 들면서 누가 볼까 부끄러워 얼른 집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두 번째는 다시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고 지금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딸인 내가 전화를 해서 받았더니 말하기를 “아버지 아무리 힘들어도 딴마음 먹으면 절대로 안 돼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라고 말해서 마치 자살하려는 내 생각을 다 알고 전화한 것 같아 깜짝 놀라 그 마음을 바로 접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줄 전혀 몰랐고 아버지가 걱정되어 안부 전화를 한 것뿐인데 하나님은 나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다잡아 주신 것이다.

    세 번째는 친정집 가족들 모두 임직자 강습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에 갔고 집에는 아버지만 계셨다. 가족들은 나에게 아버지를 부탁했다. 나는 혼자 계신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낮에 친정집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현관문 번호를 모르기에 초인종을 누르려다 그냥 문을 열어보니 신기하게도 문이 바로 열렸다. 나는 “아버지 저 왔어요” 라고 말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당시 친정집이 아파트 11층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의자를 이용해 작은방 창문에 올라가 창틀 위에 앉아 있었고 몸을 창밖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그 순간 마침 내가 들어간 것이다. 내 눈에는 아버지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아버지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난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마음을 다잡고 아버지를 달래면서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절대로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않도록 꼭 붙잡아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얼마나 힘드시면 그렇게 하셨을까? 너무 애처롭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면서 다가가 아버지를 붙잡고 이제 그만 창문에서 내려오시라고 설득했다. 결국 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결심하신 듯 창문에서 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쓴 유서를 보여 주면서 어머니께서 보게 되면 놀라니까 나에게 그냥 없애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으셨고 아버지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몸으로 체험하셨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하나님이야말로 참신이심을 인정하셨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할렐루야!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능력의 하나님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기로 마음먹은 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목자님이 심방 오시는 날이면 기쁨으로 기다리며 맞이했다. 비록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하셨지만 믿고 세례를 받겠냐는 물음에 순종하셔서 2006년 4월 29일 드디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으셨다. 그 후에 병이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하여 계시다가 2007년 2월 23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 아버지는 평안한 얼굴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낙원에서 평안히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처럼 나와 내 가족을 모두 구원해 주셨고 또한 우리 가족들을 통해 천안에 참예수교회를 세우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할렐루야! 우리 가족을 모두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김미영 자매 가족사진>

  •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2024. 4. 30. 화요일 밤 간증회(이명철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도님들께 안부인사

    할렐루야 동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제가 오늘 교회를 오며 헤아려보니, 오늘이 저희 부부가 동부교회로 전입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더라구요. 먼저 그간 저희가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많은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동부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간, 제가 드리는 간증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면_ 좋겠습니다.

    제가 동부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몇 가지 첫 인상이 있습니다. 우선 목자님 사모님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하시다는 것 외에, 젊은 청년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하는 순간에 있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목회자의 식구로 교회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세밀하게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꼬마 시절 동부교회에도 있었지만 그 이후 전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는데요, 그 때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 교회 전체적인 차원의 기도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주교회 2층 예배당 입구 옆 게시판에 아주 큼지막한 표_ 희망자에 한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하여도 표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요, 그 큰 기도표 맨 위에 ‘주님, 저 왔어요’ 라는 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이름 칸에 동그라미를 꾸준히 표시해야겠다는 동기 외에도, 다른 친구들은 다 성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살고 평일 예배까지 출석하는 제가 성령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겨울 영은회가 끝나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다시 사택으로 내려와 씻고 밥 먹고 학교를 가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등부 영은회가 보통 며칠이니까, 그것의 스무 배,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겠지.. 그런데 쉽게 안 주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두 달, 세 달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전주교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예배당이 매우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아침에 예배당에 올라가면 한 쪽 창에서 햇살이 빗금치듯이 들어오구요. 그 햇살에 비쳐 흩날리는 입자들이 반짝입니다. 바로 옆 산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오고.. 그 곳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팻말처럼, 주님 저 왔어요. 하면, 그래 왔니, 내 아들아. 비록 지금 당장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하며 그 고요한 햇살 속에서 저를 품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사랑를 느끼며 기도를 하다보니, 새벽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심 기대까지 되었고,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저의 매일을 깊이 동행해주신다는 느낌을 난생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초부터 시작한 기도는, 수개월 더 드린 끝에 그 해 가을,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진로를 인도해주시다

    기다리던 끝에 성령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제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현재 내가 학생이니, 주어진 현재의 활동,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주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던 학교 중 하나라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 안에 공부를 잘하시는 형들이 있어서 그 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우리 청년들처럼, 그 형들도 평일 예배, 안식일 예배를 온전히 다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갔나보다 하고 근처 독서실에 가보니, 벌써 거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입시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서울도 아닌 전주 일반인문고교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 그리고 공부를 하며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손해는 보게 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대방교회로 부임하시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학간 학교가 OO포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가 공부를 잘 못해서 똥포 고등학교로 불렸는데요, 심지어 첫 해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학을 권유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제게 무언가 가져다 주실 것이 있어서 제게 방해가 될까봐,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학교에 살짝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실 뒷 문에서 저 말고 다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도 있었는데, 참여한 학생이 저를 포함해 고등학교 1~3학년까지 전교에서 2명이었고, 끝까지 매일 꾸준히 참여한 학생은 저 1명이었습니다. 분명 저 말고도 각 가정이나 학원에서 성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거든요.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불안할 때, 힘이 들 때, 언제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고 찬양했습니다. 평일 예배도 참석하였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일독하는 게 먼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성경통독도 고3때 처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게 해주신 은혜에, 저 또한 전주에서 보았던 그 형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를 성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에 저를 지탱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주변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적성과 형편에 부합하는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학과도 정하잖아요. 당시 주변에서 세상적으로 유망한 이런 저런 학과들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도 가운데, 직업을 위해 학과를 택하기보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전공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두에 저희가 읽었던 잠언 말씀구절에 뒤이어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8:19)

    오늘날을,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그간 공부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정과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장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고 싶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처럼, 이 땅의 정금이나 천은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상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 싶었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나님 은혜, 불합격이면 무조건 내 부족함이라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며 현실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과정- 돌아보면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군(軍) 복무로 인도해주시다

    그런데 남자는 대학교를 진학해도, 또 군대라는 관문이 있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군대에서 여러 안전 사고 등 들리는 뉴스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무언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어떤 분이 군대를 가신다고 교회에서 환송회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또, 그리고 그 다음달에 또, 생각보다 자주 오시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대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받고 이후 임관하는, 학군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구요. 아, 이거라면 내가 군복무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보다 제가 그 때 더 체격이 왜소했고 체력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취업난에 더불어 학군장교 경쟁률도 상당하여 제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년시절,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던 제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신앙적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혼자 공원에 뛰어가 시험 종목들을 연습하는 준비를 1년여 정도 한 끝에 학군장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나 교통이 불편한 산지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과 달리, 오직 저만 인천교회에 대중교통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해주셨습니다. 장교도 밤을 새우는 평일 근무, 종일 근무하는 주말 근무를 서야하는데요, 군 간부들이 제일 기피하는 근무 요일 중 하나가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근무하고 이튿날 일요일을 쉬면 주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막 들어온 막내 초임 장교임에도, 일요일, 공휴일에 근무를 더 서는 대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전역할 때까지 토요일 근무를 제외시켜주시는 상관을 만나게 해주셔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안식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에 있어서 제가 가장 바라던,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인도해주시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이라도 공부하고자 했던 동기도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 생활을 더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군 전역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단기 신학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많은 목자님들, 신앙의 선배님들, 청년들을 통해 제 신앙이 더 발전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조금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앙과 제 전공에 힘을 써서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원이 휴직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휴직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비교적 완화되었고, 그것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제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젊은 남자 선생님을 보내는 것을 잘 추천하지 않지만, 그간 학교에서 근무한 태도와 실적을 고려하였을 때 한 해라도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믿고 먼저 추천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종 면접 심사 때도 면접관분들 중, 과거 교육청 주관 행사 때 저를 눈여겨 보셨던 장학사님이 계셨습니다. 인사 규정이 바뀐 후 제가 최초 지원자였음에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를 보내주시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적 인도하심 가운데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이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가는 길에 교회 형제, 성도님들께서 차를 함께 태워주셨는데, 참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교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저로 하여금 먼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과 가까워진 이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다 해도, 그리고 인접 뉴욕 교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을 해서 그간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하여도, 출석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과 임원들이 직접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제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저를 지켜보고 직접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교회 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와, 교회 생활관에 들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이미 한 명의 형제가 있지만, 교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여 제가 들어와 같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충분히 덕을 끼치며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학교 기숙사에 그대로 남아 지내는 것이 어떨까_ 하셨지만 저는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교회 임원분들께서 저를 인터뷰하시고, 그 간의 제 신앙생활의 태도와 왜 들어오려 하는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지 등의 대답 내용을 가지고 다시 직무임원회의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사랑과 신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각 나라와 교회 실정을 고려하여, 본교 목자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현재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처럼,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업에 힘쓰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기간을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분들을 통해 신앙의 여러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제가 홀몸에,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었고, 그것도 교회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전 총회와 같이 많은 교회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었고 현재는 미국 총회의 교육센터로 다시금 거듭나는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미국 청년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전반적인 미국 생활과 학업을 인도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덤 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하나님께 가장 바라고 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을 함께 구할 수 있도록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다

    그렇게 교회에 머물며 집중적인 신앙의 수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제 자신의 밑바닥이 더욱 적나라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세를 향해 가는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너무도 연약했고, 제 신앙을 홀로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간 목자님들께 배운대로, 제가 배우자에 관해 기도한 두어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와 함께 어디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신앙적 도전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에 비교해보았을 때 훌륭하신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예의상의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꼭 비교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무얼 바라기 전에, 제 자신부터가 제 기도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 성숙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 자매에게도 저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 현재 현실적 상태에 대해 기대게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한 명의 피조물이자 인간이었기에, 누가 되었든 결혼 전 제가 어떠한 약속을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상황적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제 부족한 신앙적·인품적 됨됨이 때문에, 배우자 기도로 정확히 10년이 채워지는 시점에 지금의 자매를 아내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그냥 평상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갈수록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저희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점점 더 체험하고 있음에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변함없이 인도해주시는 은혜

    앞서 저희가 불렀던 찬양 499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처럼, 미국의 예배당 새벽 아침에도 전주교회와 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햇살이 빗금치듯 들어옵니다. 흩날리는 입자들이 햇살에 빛나고, 바로 옆 창문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들어옵니다. 예배당 밖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안에서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20년 전 전주의 예배당에서 한 소년을 안아주시던 당신은, 먼 타국에서도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제 소망과 기도들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구할 때에, 제 앞의 현실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교회 앞 잔디밭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제 사비로 한 그루- 향기나는 작은 묘목을 심어드릴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심어드린 그 작은 나무는 올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 회기동 교회로 돌아와_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당신께서 간절히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었던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도님 여러분,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저희에게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금처럼 함께 화목하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겸손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멘.

    3월에 전입한 이명철 형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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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저는 동부교회 김동녀라고 합니다. (1936년생) 어릴때 경북 안동 풍산읍에 살았습니다. 문경새재 넘어오면 자그마한 풍북국민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였어요.

    어릴 적 학업에 대한 열망이 크다

     8살 입학식날 큰 외삼촌이 “동녀야, 학교 가서 나이와 성을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야 한다. 나이는 핫사이데스, 이름은 가네야마도우조라고 대답해라.”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가네야마도우조, 핫사이데스를 속으로 계속 되내었어요. 학교에 가서 외운대로 큰 소리로 대답을 잘 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종이도 없고 연필도 딱 한자루 있던걸 아껴 썼고 다 쓰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도 쓰고 1,2,3,4도 써보았어요. 그러던 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서 풍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종대왕 한글 1회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우리글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8살, 15살, 20살도 1학년이에요. 장가 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어요. 저는 1년을 공부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가 쉬웠어요. 선생님은 “얘는 수학을 잘하네.” 하시며 나중에 2학년은 건너뛰고 3학년으로 올려 주었어요.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1반, 중간은 2반, 공부 못하는 사람이 3반이었어요. 저에게 수학은 좀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너무 가난하고 먹을 거리가 없어서 한때는 굶고 한때는 나물밥 먹는 형편이라서 또다시 학교를 못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다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물가에 가서 모래에 쓰고 당시 종이 색깔이 신문보다 까맸어요. 종이에 가갸거겨고교를 쓰며…… 종이가 너널너덜 할때까지 썼어요. 점으로만 표시하는 아래아라는 글자도 있었어요. 공부를 중단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제 시대 1년, 세종대왕 한글 나오고 1년! 이렇게 2년은 완전히 다녔어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다

    아버지는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며 21살에 30리 되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보냈어요. 저희 외가쪽으로 연관이 되는 집안이었어요. 시집 식구가 16명이에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맏동서 가정, 시누이 2명, 시동생 3명, 저희 부부까지 7남매에요. 매일 분주히 일하고 베를 짜고 가족이 많다 보니 보리쌀을 가마솥에 거의 차게 넣어도 다 소비가 되었어요. 부자라 해도 쌀은 어른들만 좀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먹었지요. 일을 해야 하니 분가를 못한 채 10년을 살았어요. 어느날 가까운 곳에 빈 집이 나서 남편이 저와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분가를 했어요.  처음 분가하고 살림이 조금 어려워서 낮에는 시댁에 가서 일 해주고 쌀을 받아왔어요. 하루는 시댁가서 밤 10시쯤 설거지 끝내고 오니 남편이 없어요. 동네에 아는 집들을 찾아가 보았어요. 동네가 다 윤씨 일가에요. 점방 뒷집에 가보니 그 집에 사는 분이 남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돈을 대줄테니 나락을 사서 차에 실어서 정미소에 가서 찧어서 쌀로 팔면 괜찮을거 같다. 다 일가이니 잘 될거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은 나락 장사를 시작했고 1년을 하니까 너무 잘 되어 그 돈으로 땅을 3마지기를 샀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윤씨 일가다 보니 나락을 높게 달아도 몇 바가지씩 더 넣어주면서 “아지매하고 아재하고는 살아야 된다. 마당에 가마니를 쟁여두면 쥐도 먹고 닭도 먹으니까 축 나는거 보충해야 된다 ” 하며 나락을 많이 퍼넣어 줬어요. 나락이 많아서 길에 길게 쟁여뒀는데도 아무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은 8톤짜리 큰 차를 불러서 수십가마니를 실어 나르며 일을 하였어요. 나중에는 논 8마지기 네모 반듯한 걸 샀어요.

    서울에 올라오게 되다.

    시동생이 캐나다에 이민가려고 보유하고 있던 기름집을 처분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남편은 급하게 집안 어른에게 전화해서 논 8마지기를 팔고 시동생의 가게를 인수 받아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군대를 갔어요. 군대 간 뒤에 보니 찬송가랑 성경을 많이 사놓고 갔더라고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이제는 신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아들이 사놓은 찬송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그냥 읽었어요. 찬송가를 읽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나는 속으로 아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엄마가 안믿으면 아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할까 그런 마음도 들었어요. 얼른 하나님을 찾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가 싫었어요. 장사하면서 아무리 선한 사람도 물건을 팔 때 좋은거 좋다 나쁜거 나쁘다 그렇게 못하잖아요. 좋지 않아도 손님이 물건 좋아요? 하면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야 하고….거짓말하는 것이 싫더라고요. 장사 그만두면 얼른 하나님 집부터 찾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부교회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어디 있나 찾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장사하기 싫어요. 장사 좀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몇 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장을 뜯는다 하더라고요. 아주 신기했어요. “아 잘 되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장사 치울 생각하니, 속으로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한집 두집 시장 뜯는다고 가게를 나가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그런데 남편이 말을 안해요. 며칠 후  “누구는 나갔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기름가게 고추가게를 고물상에 주면 너무 쌀 것이고 어디 누가 새로 차리는 사람을 찾아보고 주면 돈을 더 받을 건데 한번 찾아보죠!” 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해요.

    시간이 흘러 다 나가고 3집 정도 남았어요. 마음이 타들어 갔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가야 겠네요.” 그때서야 남편은 입을 열었어요. 애들 용돈도 줘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가게를 그만 둘순 없고 남편의 복덕방으로 옮긴다는 거에요. 그리고 남편의 복덕방은 차고에다 우선 하겠다는 거에요. 저는 남편에게 복덕방은 상봉터미널 앞이고, 38-2 버스 종점인데 고추가게, 기름가게가 잘 되겠냐며 먼지가 많아 물건도 내놓지도 못할텐데 그만 이번 기회에 치우자고 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들은 신학을 마친 후 안동 참예수교회에 발령이 났어요.

    가게를 옮기다

    가게를 옮겨놓고 보니 고추 가마니가 한가득이에요. 38-2 종점이니 사람이 버스에서 꾸역꾸역 내려요. 그 당시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고추가게&기름가게가 생겼네? 여기 무슨 장사가 되나?” 하며 다들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나가요. 저는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서 문을 닫아 놓고(문은 유리에요) 돌아앉아서 고추 꽁다리만 땄어요.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내가 이럴때가 아니고 하나님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아, 여기 고추가게 잘 들어왔네! 기름가게 잘 들어왔네 하시며 “아줌마! 고추를 사고 싶은데 아주 좋은 것도 말고 아주 나쁜 것도 말고 좀 섞어서 20근씩 달아주세요.” 하며 큰 가게를 운영하는데 하루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도 많이 쓰니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은 대병으로 2개씩 쓴대요. 그 옆가게도 우리 물건을 써서 두 집이 단골이 되었어요. 조금 작게 하는 가게 4집도 단골이 되어 시장에서 장사할때보다 마진이 나아요. 아주 좋은 물건도 아니고 아주 나쁜 물건도 아니니, 장사하는 제 맘이 편하더라고요. 고추는 꽁다리만 따주면 가져갔어요.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다

    그러던중 시골 큰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골을 가야하니 단골집에 물건을 많이 갖다주고 내려 갔어요. 3일장을 치르고 친인척들 모두 다 돌아가고 저도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그냥 올라가면 내가 언제나 세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 윤목자가 안동교회 있으니 세례를 받고 가야겠다.’ 남편과 같이 가면 세례를 못 받게 할거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저는 오늘 서울 올라 가야해요.” 했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간다는 저의 말에 삼우제나 지내고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올라가야 돼요. 애들 밥도 해줘야 되고 장사도 해야 되고 올라가야 돼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밖에 안다니는데 밤 10시여서 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가방을 싸들고 지금까지 부모 말을 거역해 본적도 없고 거짓말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어머니 말이 귀에 안 들어 오고 가방 들고 달아나듯 나갔어요. 신작로로 차 타려고 나오니 금방 차가 왔고, 안동 삼거리에서 내려서 안동 참예수교회를 찾으려고 올라갔어요. 예전부터 안동교회는 꼭대기에 있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간판이 안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참예수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잖아요!” 하더라고요. 교회 간판이 아주 작아서 눈에 안보였어요. 마침 교회는 영은회를 하고 있었고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아들 윤목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반가워 놀라며 물었어요. 큰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내려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면 세례도 못받고 서울 올라갈거 같아서 혼자 교회로 왔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세례받고 가셔요.” 했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손자랑 같이 받았는데 그 손자가 윤석원 목자에요. 윤석원 목자 아기때 제가 같이 낙동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찌나 기쁜지 몰라요. 기차 창문 내다보니 산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웃는거 같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거 같아요.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차를 타고 오는데 왜 그렇게 좋은지 몰라요. 차를 타면 차멀미를 해서 차도 잘 못타는데 그날은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고 차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지나가며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거 같고 세상이 너무 달라보이고 이제는 서울 올라가서 하나님 집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가게일을 하면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기도도 할 줄도 모르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례를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밤에도 기도하고 찬송가도 매일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고 좋았더라 하신거구나!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넓은 땅에 사는 동물이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이 동물은 참 사납고 저 동물은 무섭게도 만드셨네!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까운 교회를 찾다

    안식일이 되었어요. 아침을 일찍 해먹고 단골집에 배달을 해주고 교회를 찾아나섰어요. 전농동 어디에 있다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17번을 타면 전농동 사거리에 간대요. 운전수 뒷자리에 탄후 어렵게 내렸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참예수교회 간판이 안 보여요.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었어요. 전농동 사거리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간 거지요. 간판이 크질 않았어요. 도착하니 아침 9시였는데 그 당시 허수진 목자님 가정이 시무할때였는데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시며 아침을 같이 드시자고 하셨는데 저는 먹고 왔다고 했어요. 교회를 처음 찾는거라서 일찍 나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교회오니 하나님 집을 찾은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다

    저는 가게일을 하면서 고추자루 뒤에서도 기도하고 기름솥 뒤에서도 기도했어요. 항상 기도했어요. 하루는 가게에서 고추 꽁다리 자르다가 기름솥 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며칠후에 교회에서 기도할때 안수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안수를 받았는데 성령을 받았어요. 세례받고 두 달만에 성령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안식일에 문닫고 교회 다니다

    가게 하면서 단골집에만 팔아도 시장에 있을때보다 마진이 나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거 같아요. 단골집에는 안식일 전날 물건을 대주고 안식일엔 문을 닫고 교회 예배하러 갔어요. 월 화 수 목 금은 계속 장사하고 토요일은 가게문 닫고 오전예배 드리고 칼국수 점심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어요. 성경을 몰랐을때는 찬송가를 많이 읽고 성경은 시편 1편 정도만 마음에 와 닿았었는데 지금은 성경 암송도 많이 하고 성경이 참 좋아요. 작년에 눈도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그때 잠깐 성경책을 못 읽어봤고 너무 부끄러워서 올해는 작정하고 읽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예레미야 51장 15절, 창세기 2장 3절, 요한복음 17장 11절, 빌립보서 2장 6절~8절, 요한복음 14장 26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요한복음 3장 17절, 히브리서 7장 3절, 갈라디아 4장 6절, 사도행전 4장 12절, 로마서 8장 16절 등 성경구절 다 좋아요. 찬송도 492장, 544장, 28장, 253장, 455장, 338장, 405장, 363장, 204장, 460장, 363장, 168장 등 모두 다 좋아요.

    소망이 생기다

    제가 이제는 이렇게 다 늙었는데 꿈이 있다면 육신이 죽어서 낙원에가고, 예수님 재림할때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의 안 믿는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내가 살았을 때 믿는 걸 봤으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라도 꼭 믿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날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은 믿지만 옛날에 믿지 않을 때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릴 때 학교다니며 숫자와 글씨를 알게 해주셔서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을수 있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집에 오면 늘 사랑이 있고 교회오면 너무나 좋아요. 요한일서 5장 20절 말씀처럼 지각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를 붙들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장 20절. 

    아래 사진은 김동녀 모친께서  찬양도 하시고 부군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 (천안교회 김해이즐 자매)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 (천안교회 김해이즐 자매)

    하나님의 인도하심

    천안교회 김해이즐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필리핀의 남부지역에 있는 다바오라는 지역 출신입니다. 그 지역 인구의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저는 3남매 중의 첫째였고 그래서 저희 가족은 부모님 포함하여 모두 5명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저희를 성당에 데려가셨고, 모든 미사 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9살 때 갑자기 어머니께서 새벽에 하혈을 많이 하셔서 급히 병원에 실려 가셨습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3일 만에 어머니께서는 안타깝게도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어린 우리들을 두고 엄마를 데려가셨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곁에 없어서 아직은 어린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저희 셋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일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곁에 없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저희는 매사에 올바르고, 신앙적으로는 경건하게 그리고 저희가 가진 것에 항상 감사하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2013년 8월에 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29살 무렵에 저는 병원의 원무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는 사람의 여동생의 남편이 한국인이고 제 남편과는 직장 동료였습니다. 저희는 몇 달 동안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제가 있는 필리핀 마닐라로 와서 저와 결혼할 때까지 머물렀고, 결혼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달 후 저의 비자가 발급되어, 저도 한국에 들어와 남편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땐 겨울이었습니다. 한국의 날씨, 장소, 언어, 사람들, 음식, 문화, 종교까지 모든 것이 저에게는 낯설었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당진시에 살았습니다. 당진에는 필리핀에서 시집온 아는 사람도 같이 살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아는 사람이 교회를 가자고 해서 한두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이단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이 사실을 남편이 알고 걱정이 되어 몇 달 후에 이곳 천안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천안에 이사를 온 후에 남편은 저에게 천안교회의 이동구 집사님과 김미영 자매님을 소개시켜 주셨고, 두 분께서는 저희를 점심 식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남편이 기독교인인 것은 알았지만 참예수교회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처음 왔을 때 성도분들께서 마치 저를 가족처럼 반겨주시고 환영해 주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획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첫해에 저는 첫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임신 기간 동안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공부했습니다. 한글을 알아듣고, 말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안식일에 참예수교회에 가는 것은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제 믿음을 다시 시험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안식일에 예배에 참석했을 때 성도분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서 그런지 너무 낯설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다니는 교회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이 교회 가는 날이면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큰 아이 지은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이 하는 말이 이번에 나도 지은이와 같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필리핀의 성당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또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을 했지만 세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은 봄철이라 춥지도 않고 날씨도 좋았습니다. 교회는 천막을 몇 개 세우고 세례식 진행 중 앉을 수 있는 돗자리를 펼쳤습니다. 저희가 세례 받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성도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고 너무 떨렸습니다. 그날 물이 너무 차가울 줄 알았는데 물에 들어갈 때 저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 제가 드디어 참 세례를 받았고, 죄사함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았다는 생각에 감동과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지속적으로 성경공부와 분반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배웠습니다. 참예수교회 성도분들은 안식일을 준수하고, 세례와 성령, 세족례를 받으며, 일 년에 두 차례 성찬례를 통해 누룩 없는 떡과 순수한 포도즙을 나눴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해서 간증하겠습니다. 목자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후 안수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 분들의 기도 소리도 함께 들렸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갑자기 저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머리 위로 안수하는 목자님의 손이 느껴지고 제 몸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저의 기도하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목자님은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이었습니다. 안식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제 믿음을 온전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는 문제와 도전에 마주치지만, 기도를 통해 불가능한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과 함께라면 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도 저는 참예수교회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성경공부와 교육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참예수교회의 성도가 된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딸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믿음 안에서 잘 자라고 있는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지은이와 지아가 믿음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모든 선생님들과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믿음의 힘은 강력합니다. 앞으로 저와 우리 가족들을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해이즐 자매 가족 사진>

    김해이즐 자매 간증 유튜브 영상

  •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얼마 전 제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음이 뜨거워져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리고 전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영은전도대회에도 초대하고 설교 말씀도 보내드리고 만날 때마다 권면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부모님들은 더욱더 거리를 두셨습니다.

    저희들의 권면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한동안 얼굴도 뵙지 못하고서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전략을 바꿔(?) 아예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질문도 하시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너희 교회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가족 전도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화면으로 너희들 잘 지내는 것 보고 있다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청주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설교며 특별 찬양 발표며 간증이며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싫으면 그림자도 꼴보기 싫다는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신다니 저에겐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대만 참예수교회 방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에 가는데, 부모님도 언젠가 꼭 같이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다녀오고 나서도 대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의 성도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 굉장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금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장항서부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 드리면 안 될까요?”하고 말이죠~ 저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시다가 “그러지 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주!!

    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고 뒤늦게 무슨 일이냐며 어머님이 오셨지만 이미 아버지가 약속하셨으니 무르시면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어머님도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셨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장항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군산인 아버지 댁에서 장항서부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또 마침 그 때 윤석원 목자님께서 장항으로 이사를 오신 날이었고 첫 설교를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이었고 이미 ‘복’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 자체가 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믿는 성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새해 복이 되십시오”라고 인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해에도 복이 되렴.” 하고 인사해 주셨고 저도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젊은 목자님께서 말씀을 명료하게 잘 하신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린 기념사진을 깜박했어요, 기념으로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돌아가서 찍든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 이거 너희 교회 월말 발자취 영상에 올릴 거지? 하셨고요. 진정 구독자가 맞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당장 참예수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 때에도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리고 저처럼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언젠가 이뤄질 기도 응답의 소망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감사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성도간증] 대학부 단기신학 간증

    [성도간증] 대학부 단기신학 간증

     

     

    윤*원 형제

     군대에 있었던 작년 1월쯤이었습니다. 상병 중반 넘어가면서 저에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크게 할 일이 없어지자 일상생활의 패턴은 무너졌습니다. 안식일에 온라인 예배조차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삶을 살았고 그런 상황은 전역을 하고 대학부 영은회에 가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영은회 말씀은 생소했고 전처럼 이해되지 않아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때 무너진 신앙을 깨달았습니다. 영은회 주제 말씀부터 이해하려고 집중했습니다. 단기신학에서는 더 나아가 신앙 성장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기신학을 마친 후 교회 사역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으로 부담을 느끼고 꺼려했던 교회 사역에 부족한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서부교회 아동부 영은회에 처음으로 집행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다음의 말은 영은회 발표 시간에 했던 다짐입니다. ‘나 윤양원은 다시 세움 받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올해 대부분을 군대에 있었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열심히 주님을 따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주께 다시 세움 받아 나아가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장*헌 형제

     대학부 영은회, 단기신학, 아동부 영은회 등의 교회 행사 일정을 함께하며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신앙생활을 편하게 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교회 행사를 참여하게 되었고 근 약 5주간의 연이은 행사 준비와 참여, 뒤이은 모든 개인, 일요일 교회 일정까지 쉼 없이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천국의 상급을 소망하며 기쁨과 묵묵함으로 모든 일정을 소화하려고 했습니다. 누적된 피로는 곧 처음 겪어보는 통증과 구토를 겪게 했고 구내염으로 밥을 넘기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면까지 부족해지며 회복이 더뎌졌습니다. ‘거절할까? 쉬고 싶다..’ 약해진 건강 상태는 ‘나’에게 집중된 생각들로 마음을 방해하기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선 이내 말씀을 통해 답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은혜이며 내가 아닌 주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고난에도 감사하는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장*은 자매

     단기신학을 통해 말씀의 갈급함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2주라는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는 힘들었지만 1년차 과정으로 구약성경 각 권의 내용과 전체적인 흐름을 배운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복된 삶으로 이끄시는 귀한 것임을 매 순간 온전히 깨달으며 순종으로 받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로 요셉의 삶을 묵상하며 특히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한 사람이었고 그 또한 하나님을 항상 바라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의 삶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삶의 기준이 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 삶 앞에 놓여진 고난과 역경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시간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희 자매

    2년차 과정에 참여하며 기억에 남는 말씀을 나눕니다.

    사무엘상의 ‘에벤에셀’의 의미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무엘상의 에벤에셀은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패배와 수치의 장소이고 다른 한 곳은 승리와 구원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 대성회를 통해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패배했던 이스라엘을 승리와 회복으로 이끄셨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의미를 기억하며 진정한 회개로 회복되는 신앙을 다짐했습니다.

    ‘부득이함’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사울왕이 점차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 첫번째 이유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울은 한 전쟁에 앞서서 제사장 사무엘이 오지 않자 조급함에 스스로 번제를 드리고 ‘어쩔 수 없다’며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행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느헤미야/에스라 과목을 공부할 때입니다.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며 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었는데 이에 16년동안이나 재건이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끝없는 막막함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었고, 결국 성전은 완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틀림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강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 고난이 곧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자신이 불완전하여도 온전케 해주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저를 완전하게 하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씀에 고난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기신학을 하기 전, 스스로의 힘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의무적이고 버겁게만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단기신학을 통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뤄지며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과 예배를 귀중히 여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끝나고 한 강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확실한 것은 주 안에 있는 기쁨은 초월적이라는 거야.’ 나의 깊은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내 삶의 고난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더 큰 것이거든’ 많은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윤*희 자매

     올바른 신앙과 전도를 위한 깊이 있는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기신학 1년차 과정을 참여하며 받은 은혜의 말씀을 나눕니다.

     창세기의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확인할 때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졌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은 더욱 곁에 계심을 느꼈습니다. 출애굽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구출하심의 은혜를 뒤로하고 만나를 보고 감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얼마못가 불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기분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못느끼는 것은 자신이 달라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늘 변함없으셨습니다.

     민수기를 배우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이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민수기의 나실인은 거룩하게 살기를 자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기를 자원해야 하며 지금의 세대야말로 정결과 거룩이 필요한 때라고 더욱 강조해주셨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는 사람들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두 시선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말씀에 확신을 가진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도서를 배웠을 때입니다. 전도서의 중심 주제는 ‘허무함’이었습니다. 평소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공허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삶은 모든 것이 헛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인되신 삶은 그 어떤 삶보다 값지며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신약개론에서 배운 내용을 나눕니다.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선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절대 스스로 무엇을 이룰 수 없는 존재라고 얘기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말씀안의 자유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라는 말씀대로 자유를 얻은 삶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히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삶에 대한 마땅한 기쁨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른 원망과 불평,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은 불신앙이었습니다.

     사복음서를 배우면서 마가의 ‘제자도’(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자세)도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부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 둘째. 고난이 올 때 기도하는 사람. 셋째. 어떤 불리한 상황에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 ‘말씀’은 ‘로고스’와 ‘레마’로 나뉜다고 해주신 내용입니다. 로고스는 평소 읽는 말씀이고, 레마는 실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말씀 그 자체인 로고스로 머물러 있지만 실천 할 때에야 비로소 그 말씀은 레마로 머물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운 말씀들을 지식의 나열로 끝내지 않고 행함으로 이룰 것을 다짐했습니다.

     대학교로 인해 서부교회와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은혜 아래 저를 돌보아주실 하나님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담대한 마음으로 온전히 삶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