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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준비하면서 함께 나눌 찬양이 생각이 났는데 가사 묵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제 이름은 곽이안입니다. 2001년 대만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50세였고, 어머니는 38세, 첫째 언니는 11살,  둘째 언니는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셨고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아기들과 같이 여러 번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타다가 벼랑에 떨어지거나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들이 쌓여서 자라났습니다.

    간증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제일 중요한 게  공부, 진로 정하는 거죠.  저는 진로를 계획하면서 대중 매체와 관련된 전공과 외국어 관련된 전공,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때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대충 매체 산업 시장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도 높아서 겸사겸사 한국 유학을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신청하려면 고등학교 성적,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 다른 필수 조건 자격 요건들이 필요한데요.  고 3때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대만의 첫 번째 수능 시험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만은 수능 시험을 두 번 봐요. 입학은 9월이에요. 그래서 9월부터 1학기이고  2월부터는 2학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첫 번째 수능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사인을 받으러 저희 아버지한테 갔어요. 근데 저의 잘못이 뭐냐면 아버지한테 시험 포기 하겠다는 걸 미리 말씀 안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엄청 반대하셨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18살까지 살면서 저희 부모님 싸우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많이 놀랐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한국대학교  떨어지면 책임을 제가 지는 것을 조건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하나님께 제발 대학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잘 져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때가 2020년이였어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대만에서는  수능시험 두 번 본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두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3년 동안 배웠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2020년 7월에 두 번째 수능 시험을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만의 타이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합격했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고, 성균관대 입학을 했습니다. 합격했던 대만 예대는 혹시 몰라서 2년 동안 휴학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자퇴를 신청했어요.

    한국에 와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온라인 수업만 듣고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바램과 내 자신도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작년에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학교와 교회에  다니면서 알바도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어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른거 별로 없어요. 수업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잘 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수업은 많이 어려웠고 좋은 성적은 못 받은 것 같지만 학교생활은 잘  마쳤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을 무척 좋아하시고  알바하는 친구들은 한국 대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사장님이랑  알바하는 친구들이 수다도 떨고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도쿄 교회로 갔는데 사실 도쿄 교회는 도쿄 안에 없어요. 도쿄를 서울시로 비유하자면 도쿄 교회는 약간 외곽인 경기도 쪽이라고 보면 돼요.  제가 살던 곳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쿄 교회는 엄청 크지는 않아요. 성도님들 70프로는 대만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고 나머지 30프로는 일본 사람입니다. 안식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있고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은 매주 있지만 대학부 사청부 분반은 격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맡은 사역은 없었지만 아기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총회가 다른 지역에도 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목표가 있어요. 한가지 예로 들면  도쿄 교회 출석 성도들 중에서 오오야마라는 지역 근처에서 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꽤 많아요. 그 근처 성도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 같은 데에서  집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서 오오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물을 이미 확보하고 헌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느낀점은 일본에서  전도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신토라는 고여 중 종교가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신사들은 다 그들의 종교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나 참예수교의 전파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참예수교회의 원활한 전도와 새 교회 헌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도님들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생활은 제가 과거에도 여행한 적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건들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작년 7월 대만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 뉴스는 어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떨어져서 어떤 여자가  맞아서 죽었다는 뉴스였어요. 그 여자는 제 고등학교 친구에요.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날 알바하던 날이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 친구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나요. 멀리 있다보니 장례식도 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슬픈 마음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8월 달에 여름방학 때 잠깐 대만에 갔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열이 나서 더위를 먹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며칠 전에 친구랑 일본에서 불꽃 축제 갔었어요. 7월 말  더운 날에  친구랑 거의 10시간 동안 유카타를 입고 밖에서 다녔어요. 그것 때문에 더위를 먹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만에 가서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고  작은 의원에서 받았던  해열제를 먹어도 안 떨어져서 어머니가 큰 병원 데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니까 간 수치가 이상하게 높았어요. 보통 간 수치는 원래 40~50 이하가 정상인데 제가 그때 약 500~600 나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이 났던 거에요. 응급실로 가서 수액을 맞았고 감염성 단핵구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날은 수액 맞고 열이 떨어져서 입원은 안 했어요. 근데 뒤에 며칠 동안 계속 열나고 해열제 먹고 또 열나고 해열제 먹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 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모처럼 대만 가서 그리웠던  음식들을 못 먹었어요. 하루 종일 경구 영양식 한 캔씩 먹었어요.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저희 타이페이 교회 주보에 제 이름이 올라갔어요. 교회 성도님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1주일 지나서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 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할렐루야!

    아기였을때 가족사진

    최근 가족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안 자매)

    청년부 암송대회에서 우수상 받는 모습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나기전 공항에서 목자님 내외분과 생활관 청년부와 함께

    일본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일본 도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일본 알바했던 카페에서 특별활동 

     

    일본 오카야마


    일본 도쿄 메구로천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 [성도간증] 비빔밥 맛집, 알고보니 진리의 맛집! (천안교회 장동혁 형제)

    [성도간증] 비빔밥 맛집, 알고보니 진리의 맛집! (천안교회 장동혁 형제)

    천안교회 장동혁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고향이 천안이고 3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초, 중, 고 시절을 천안에서 보낼만큼 천안 토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지내는 중에 고2때로 기억을 합니다. 이남찬 신학생과 같은 반이 되었고 당시 학생들이 즐기던 게임을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남찬 신학생(현재 전도자)이 갑자기 본인이 평소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자퇴를 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2년여 정도의 기간은 더 이상 이남찬 신학생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이남찬 신학생이 나타났고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21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이때 이남찬 신학생이 교회 이야기를 자주 한 바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남찬 신학생이 맛있는 비빔밥 맛집이 있으니 한번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좋다고 하며 따라 나셨는데요. 알고 보니 그 비빔밥 맛집은 바로 진주빌딩 4층에 있는 참예수교회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제가 참예수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정식으로 참석하게 된 날 저는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방언기도였던 것입니다. 사실 이남찬 신학생은 사전에 방언기도에 대해서 전혀 사전에 설명이 없었는데요. 나중에 이남찬 신학생은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체험해보라고 이야기를 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방언기도를 듣고 솔직히 정말 무섭고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러한 저를 위해 목자님께서는 친절하게 성경으로 성령의 역사와 방언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교회를 계속 다니다 보면 이 교회가 참교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출석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무렵 장로교회를 다니시는 이모님께서 제가 참예수교회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모님께서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시고 바로 이단이라며 저의 어머니에게 참예수교회를 나가면 큰일 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 말하지 않고 몰래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신 저의 어머님은 천안교회 홈페이지를 들어와 보시고 깜짝 놀랄만한 사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제 사진이 천안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결국 어머님의 완강한 반대로 더 이상 교회 출석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예수교회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이었는데 어머님의 반대로 갑자기 못 나가게 되어 너무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8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8년 기간 동안에 이남찬 신학생은 자주 연락을 해주었었고 때로는 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는 등 저에 대한 관심을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제 마음이 돌이키기를 기다려준 것이지요. 저는 비록 8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제가 독립해서 따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꼭 교회를 다시 출석할 생각은 있었습니다.

    드디어 2022년 8월에 L.H 행복주택에 당첨이 되어 꿈에 그리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러니까 2023년 5월에 천안교회 봄 영은전도대회 마지막 저녁예배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날 천안교회 봄 세례식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세례식 영상을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죄를 많이 짓고 살았는데 나도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세례 받으신 분들이 제 눈에는 정말 죄가 하나도 없이 깨끗해진 흰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에 저는 정말 죄가 너무 많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나도 저분들처럼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 깨끗한 흰옷을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남찬 신학생에게 말하자 이남찬 신학생은 깜짝 놀라면서 사실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기에 영적으로 흰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나도 빨리 세례를 받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날의 세례식 영상이 나에게는 정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인 것이지요.

    그래서 영은회가 끝나고 교회 출석을 열심히 했습니다. 교회 올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항상 나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감동이 느껴지고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한 나 자신을 보면서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제 자신을 발견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구도자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구도자 교육을 받는 동안에 하나님에 대해서 또 하나님의 구속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속 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인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5월 말쯤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남찬 신학생의 권유로 안식일 오전예배 시간에 안수기도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 전에 혼자 기도하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손떨림이 있는 것을 이남찬 신학생이 보고 안수기도를 권유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손떨림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목자님의 말씀으로도 처음 안수를 받으러 오는 순간부터 손떨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 세 번 안수기도를 받는 중에 점점 손떨림이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세번째 안수기도를 받는 날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는 동안에 내가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기도할 때는 회개의 기도를 주로 했었고 그로 인해서 눈물을 흘릴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날은 다른 날과 달리 마음이 너무 고요하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나를 지켜주는 정말 든든한 응원군이 생긴 기분도 들었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은 날, 전성도님들은 제가 성령을 받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청년반들은 심지어 케잌을 준비해서 축하 이벤트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 모든 성도님들과 청년반들이 축하를 열렬하게 해주셨음에도 제대로 기쁨과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끌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드디어 8월 27일에 제가 전성도님들의 축복 속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세례를 받게 된 날 너무 마음이 설레어 새벽에 일찍 눈을 떴습니다. 세례를 받게 된 기쁨도 컸지만 나이 들어서 늦게서야 세례를 받게 된 것이 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순간 신기하게도 찬양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몇 초간의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목자님께서 또렷한 소리로 이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내가 믿음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는 한 말씀이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살면서 이보다 더 큰 감동이 없을 정도로 정말 큰 감동을 그 순간 받았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실 제가 많이 힘든 중에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경쟁해야 하고 서로 흉보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해서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는 도리어 경쟁하듯이 서로에게 더 잘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반교회를 출석할 때는 듣지 못했던 참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된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고요. 특히 일반교회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모습이 부족했는데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은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모습도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앞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소망이 생기게 되었고 첫 번째는 제일 먼저 이 귀한 믿음을 어머님에게 전해서 어머님부터 전도하는 일입니다. 지난번에 십계명 설교를 들을 때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큰 공경이요 효도라는 것을 듣고 제일 먼저 어머님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전도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매일 말씀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나는 것임을 명심하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겠습니다. 요즘 특히 밤예배 때 사무엘상을 들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신앙생활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계속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믿음으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기 전 세상 뉴스, 또는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은 죄악으로 넘쳐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륜, 이혼, 가정 불화, 자식을 방치하여 죽이거나 보험금을 갖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의 약혼식과 결혼식 소식을 듣게 되고, 그게 너무 부러웠습니다. 목자님께서 구도자 교육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섯 가지 행복 중에 가정의 행복이란 단어도 생각이 나며, 믿음으로 결혼하기 위해서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준 이남찬 신학생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대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를 늘 깨우쳐주시는 목자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으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장동혁 형제 성령 축하파티>

  •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석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저는 단기신학을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이번 단기신학때 우리 같이 가볼까 라고 하는 겁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그러지? 어디 안 좋은가? 평소에 성경 좀 읽자, 새벽 기도 좀 가자고 해도 졸리다, 힘들다고 하던 사람이 도대체 왜?? 알고 보니 한 형제가 이번 기회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당면한 우리의 현실을 봤을 땐 여러 가지가 걱정이 되었지만 난생 처음 먼저 단기신학을 해보자고 말한 남편이 너무 신기하고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결정을 했습니다.

    대전교회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청주 교회를 출석하다가 잃은 양이 되었으나 최근에 다시 돌아온 자매였습니다. 오랜 만에 다시 보게 된 자매와 단기신학 하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매가 다시 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많은 교회 자매들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읽은 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는데 이 자매와 얘기를 나누며 ‘아! 그래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해야 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지금 루디아에서 잃은 양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는데 그 문고리 심방대상자와 이 자매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역사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기신학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단기신학의 일정은 새벽6시 찬양과 말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9시까지 성경 강의와 찬양과 기도가 있고 소등 시간은 11시반 입니다. 이 시간들이 몸은 너무 피곤한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세상에 그 어떤 고민 걱정 없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들이 감사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천국이 이와 같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편 103절 말씀처럼 정말 달고 달아서 그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에도 퍼즐의 조각 조각이 맞춰지듯이 성경의 내용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개론을 통해서 배운 부분 중 첫째 선악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정녕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이 명령이 에덴동산을 유지하는 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겁니다. 이 선악과 관련된 말씀을 들으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내 것이 아닌데 마치 주인인 것처럼 살아온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을 했습니다.

    두 번째 족장 시대에서는 4명의 인물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믿음과 순종과 용서와 인내 그리고 승리를 배웠습니다. 이 네 사람의 삶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내 삶이 확실하지 않아 불안하고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요셉을 배울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인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안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을 살았기에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 하나님 앞에 사는 삶” 이 말을 나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배울 때는 신앙 계승이 안되는 부분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정말 바로 섰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편과 함께 부모로써 자녀들을 위해 새벽 기도도 열심히 참석해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잘 지질 수 있을까요? 강의 시간에 어느 목자님이 한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건 졸리면 자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이렇게 내 맘대로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고 살아내야 하는 건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저도 앞으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침마다 싸울 겁니다. 누구와 싸울까요? 더 자고 싶어하는 제 자신과 싸울 생각입니다. 때론 질 때도 있겠지만 포기 하지 않으면 거룩한 습관이 길러질 거라 생각합니다.

     

    단기신학 하는 동안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자매와 한방을 쓰면서 삶을 나눌 때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강의 시간이 되면 그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은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대략 이런 부분이었는데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까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뭔가 시원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강의 시간에 죄 없으시고  전능하신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기에 예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죄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지금 받는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신앙 성장을 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진정한 성공은 이 땅에서 정해지지 않는 거라고 죽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거라고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저에게 고난이 왔을 때 수없이 묻곤 했었거든요. 왜 고난이 나에게 올까? 근데 고난이 오는 게 당연한 거고 때론 감사해야하는거란걸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수인 고난이 왔을 때 걱정, 근심,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를 한다면 그 고난에서도 걱정 근심이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신앙생활이 즐겁고 기쁠 수가 있을까? 그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은 반드시 많이 있을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2절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실 올해 새로운 직분을 맡게 되어 걱정이 많던 저에게 힘이 된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자신의 뜻과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고 고난이 올 때 깨어 기도하는 것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나 아직” 이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것 그래서 끝까지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번 단기신학은 정말 저에게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말씀들로 위로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해주신 것 같아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단기신학을 하는 동안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이파자 모친 간증)

    저는 올해 79세인 이파자입니다. 제 고향은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에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고, 저는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커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안 일만 하며 자랐어요. 20세가 되었을 때 동네에 4명의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는 고모였어요.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할머니가 낳은 딸이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모에게 “고모,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무슨 교회를 가!” “교회에 가면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동갑내기 4명이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간 교회는 장로교회였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바다를~”라는 찬송이 듣기에 너무 좋아서 제가 “한 번 더 부를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가 그날 그 찬송을 다 외워버렸어요. 4명중 저만 찬송을 다 외웠습니다.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 바다를 하나님 보좌 앞에 있고 싶어라. 유리 바다 건너편에 믿는 성도들 이것 또한 유리같이 맑고 맑도다.”

    교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대문 밖까지 들렸어요. “이놈의 계집애들! 오기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지! 그래야 이것들이 교회를 안가지.” 하고 막대기를 문 앞에 놓고 말씀하셨어요. ‘몰래 갔는데, 어떻게 아셨지? 다리 부러뜨리면 아무데도 못가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 하고 가만가만 들어갔더니, 막대기만 있고 작은 아버지가 안보였어요. ‘옳다 되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잠업(누에를 치는 일)시험장을 다녔어요. 우리 교회 권정자 자매 계시지요? 그분의 언니인 권정숙 언니가 같이 잠업시험장에 다녔는데, 저를 참 예뻐했어요. 하루는 “파자야, 너 교회 한 번 가볼래?” “네, 언니! 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그런데 언니가 다니는 곳은 참예수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교회 평이 안 좋았어요. ‘참예수교회는…날라리 교회라고 그러던데, 팔짝팔짝 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갔더니 교회가 조용했어요. 그 언니를 따라서 기도를 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교회라는 그 두 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25세에 시집을 갔어요. 도시 축에 드는 마을을 떠나, 시골 골짜기 삼계로……. 시집을 가서 생활하던 중에 머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어요. 머리에 수건을 묶고, 그래도 안 되면 벽에 머리를 꽉 대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아프면 이젠 배가 아프고,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팠어요. 아픈 것이 그치질 않아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가정 살림과 농삿일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남편이 세심이라는 마을로 민방위를 받으러 다녔어요. 남편은 제가 아픈 것을 안타깝게 보고 마음이 아팠던가 봐요. 제 남편은 교회라는 두 글자의 뜻도 모르고 지내다가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 “교회를 한 번 나가보면 머리가 안 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러 자식 다섯을 낳은 후에,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더니, 어느 교회를 가려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참예수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는 장로교회를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남동생이 찾아왔어요. 아침 시간에 잘 안 오는데 일찍 왔더라고요. 동생은 당시에 참예수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현재 전주교회 이정천 형제가 제 남동생이에요.

    “누나 어디 가려고?” “자꾸 아프니까 자형이 교회 나가 보라고 해서 지금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이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쩐지 누나 집엘 오고 싶더라니……. 참예수교회를 나가야지요.” 했어요. 남동생의 권유로 그날 장로교회를 가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토요일에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 남동생이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도 참 고마워요. 살다보면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나에게 교회 나가 보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참예수교회를 갔는데, 기도소리를 듣고 옆집 아줌마는 계속 키득키득 웃었고, 저도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웃음이 너무 나오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설교 말씀을 듣고 앉아 있었어요. 삼계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예배가 없었어요. 그 다음 주에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저 혼자만 갔어요. 동생도 볼 겸해서…… ‘남편이 교회를 그렇게나 권했는데, 내가 머리 아프다 죽으면 남편이 뭐가 되겠나.’ 하고 결심을 하고 다녔어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농사짓고 누에 치고 담배 농사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교회를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또 갔는데, 이번엔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기도할 때 안수 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을 받았답니다. 진동이 오고 몸이 떨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여기서 저기까지 갔어요. 그 때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눈물이 기뻐서 나오는 건지, 슬퍼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 살아나온 과정을 생각해볼 때 모든 뜻을 하나님 앞에 다 풀고 고백을 해야겠구나! 삼계교회가 떠나갈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어요. 성령 받는 광경을 남편이 다 봤어요. 울고 싶은 대로 다 울었어요. 누군가 자제를 안 시켰으면 하루 종일 가겠더라고요. 어찌나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던지……

    종을 친 지는 오래 되었고, 기도하다 생각하니 너무 이렇게 해서는 문란하겠구나 해서 겨우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도 그만 하라고 해.” 그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일단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전부 털어놓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웬만한 사람은 부끄러울 텐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냥 담대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개운하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독히도 저를 괴롭혔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성령을 받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눈이 떠지질 않고, 벽에 꽉 기대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 오늘날까지도 그 때 느낀 그 두통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신경 좀 쓰고 감기가 들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 때의 두통과는 완전 달라요. 믿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뜻을 알고, 이제 교회 안다니고는 제가 도저히 두통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옛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가방만 흔들거리고 교회만 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신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면 내 삶이 평탄한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우리 아이들한테는 엄마만 살짝 다닐 테니 너희는 나오지 마라. 제가 아직 믿음이 없었을 때다 보니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 다섯 명이 전부 교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애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교회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 개도 교회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예배 끝나면 일어나서 같이 교회차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아들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다보니 교회를 안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큰 아들도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저는 현재 자식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시험거리로는 농사철에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보리 농사하던 시절에 교회를 가려고 애들 다 학교 보내고 아침 8시쯤, 안식일이었는데 농사 기계가 들어온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교회 가야 하는데……. 그냥 가버리면 남편과 싸우게 생겼더라고요. 일단 내 임무는 힘껏 마치고 난 후 교회를 가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남편이 믿지 않을 때였거든요.

    농사할 때 땅에 거름을 뿌리지요? 우리집 거름은 유달리 무거워요. 비를 자꾸 맞아서…… 안식일 이른 아침에 그 거름을 손으로 들어올렸는데, 그 무거운 거름이 하나도 무겁질 않는 거에요. 내 정신이 아니고 누군가 꼭 지켜주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거름을 같이 들어주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무거운 거름이 그렇게 뿌려도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교회차가 마을을 다니면서 신도들을 실러 오는데, 교회 다니는 모친이 논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이구 오늘 안식일인데 일해요?” 하시기에  “아니요. 빨리 해놓고 가려고 해요.” 교회차가 멀리 세심을 돌아서 그 모친을 싣고 가는게 보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빨리 해놓고 교회 가야겠는데…….’

    그런데 교회를 꼭 가려고 마음 먹으면 절대 안 될 것이 없었어요. 그 일을 다 해놓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갔습니다. 세수를 대충 하고 신발 신고 2킬로미터 삼계까지 정신없이 내 정신이 없이 뛰어 갔더니 예배가 시작을 안했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아!  내가 꼭 교회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가야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꼭 교회를 가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하면 그 힘이 나도 모르게 다시 치솟더라고요. 하나님께선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힘을 주시는구나. 열심히 말씀을 듣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다음 안식일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벼를 훑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밤에 훑으면 안 되요? 탈곡기가 있잖아요. 호롱기 아시지요? 호롱기로 벼를 훑은데, 밤에 그걸 다 훑었어요. 안식일에 할 일을 전날 저녁에 다 끝냈어요. 끝내고 나니 이웃사람들이 무엇이 바빠서 밤에 벼를 훑냐고 하더라구요. 바빠서가 아니라 교회 가려고 밤에 일을 했다고 말하고 넘어갔어요. 일을 꼭 해놓고 가야겠다 맘을 먹으면 밤에라도 그 일을 마치게 해주시더라구요. 안식일에 모를 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꼭 시험거리가 닥쳐와요. 닥치면 그것을 이겨 나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모를 심는데, 그때는 교회에서 논이 가까웠어요. 남편과 같이 모를 심다가 “어머 어떡해. 나 교회 가야 하는데.” 남편은 “갔다 와. 나 혼자 심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면 쉬엄쉬엄해요. 나 바로 빨리 갔다 와서 심을게요.” 갔다 와서 바로 논으로 들어가서 심고 그랬어요.

    남편도 교회를 나가라고는 했어도 농사일로 바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교회를 괜히 나가라고 했다며 말도 했지만, 그때는 제가 말했어요. “머리가 안 아파서 건강해서 일을 잘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교회 가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니 앞으로 당신도 교회에 다녀야 해요.” 그러면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젠가 나도 간다.” 저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1997년 10월이었어요. 그 뒤로 13년이 지난 2010년에 성령을 받았어요. 요즘은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잘 못 나오는데,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그런가 봐요. 열심히 하나님께 구하면 낫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없을 텐데, 기도 열심히 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세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도 그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이왕 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갈 때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다 보면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열심히 믿고 삽시다. 저도 앞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믿고 살겠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나들이 가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모친은 남편이 교회나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시답니다. 

  •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천안에는 남편인 소만수형제님과 결혼하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건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였는데요. 형님부부로부터 교회에 볼일이 있다고 천안에 온 김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님부부의 부탁이라서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인사나 하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긴장을 많이 하고 갔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혹시 사이비교회가 아닌가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형님이 다니는 교회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김미영 자매님 집에도 몇 번 가서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정엄마에게 육아의 도움을 받고자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 전주에 있는 형님이 저에게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고 몇 번 권면하셨지만 저는 그때마다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도 말씀드리고 저희 친정집이 외할머니 때부터 성당을 다녔고 저도 어렸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닐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천안으로 이사를 온 후에 교회가 쌍용동으로 이사를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님부부께서 교회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천안에 오게 되었는데 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이번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교회가 큰 규모의 건물을 사서 이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봄 영은회 때 형님부부께서 천안에 방문한다고 교회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하셨지만 저는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남편과 막내딸 연서만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번에도 인사차 갔다 오는 거겠지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매주 교회에 가는걸 보고 앞으로 계속 교회에 다닐 거냐고 물어 봤는데 뜻밖에도 한번 다녀보고 싶다는 말에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남편이 교회에 다닌다고 할 때 많이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는 했지만 나는 싫으니 혼자 다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연서가 교회 가는 것도 싫었지만 연서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과 연서가 교회에 가는 게 너무 싫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싫다고 했는데도 저 몰래 연서를 청주교회 여름성경학교에 보낸 것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됐겠지 하고 이해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교회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지만 듣지 않고 계속 교회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연초부터 약속되었던 것이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부부를 만나는 게 너무나도 불편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너무나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걱정보다 즐거운 휴가를 보냈고 저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려서 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지옥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휴가를 다녀온 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저는 2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밤낮으로 울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완강했던 남편을 보니 교회를 못 가게 하면 나처럼 힘들겠다라는 생각에 교회에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저 또한 남편이 교회 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만 하다가 결국에는 차라리 내가 힘든게 낫겠다는 생각에 토요일에 교회 가면 그냥 인정해주자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인데도 남편이 일어나질 않고 계속 잠만 자고 있길래 아 교회에 안 가려나보다 하고 안심을 하였는데 힘없이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위로해주려고 말을 거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울기 시작한 겁니다. 전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시 교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마음에 선입견이 많이 남아 있어서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금요일 아침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방언기도에 대해서 물어보니 이미 7월 15일에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세상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집에 케익을 가져온 날이더라구요 남편이 방언기도 하는걸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그 이상한 걸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하게 될 줄이야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전에 왜 형님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아주버님이랑 형님이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면서 내가 왜 울고 있지? 교회 가는 게 이렇게 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집에서 힘든 것보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나도 토요일에 같이 교회를 가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했고 형님과 아주버님도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니 어차피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어서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성령을 받아 방언기도를 하는 것과 또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다는 걸 제가 교회 오기 전날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할까봐 얘기를 안 한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니까 모든 것들이 많이 서운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다음 주에 남편 세례식이 있으니 정신 차리라고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오게 되었지만 계속 다닐 생각이 없었던 저는 표정이 굳은 채로 교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특히 김미영 자매님은 정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풀리니 원래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배려로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연서가 앞에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는 것이 꼭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다음에는 연서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제 질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집에 와서 싸웠습니다. 정말 아마 이번 일이 저희 부부의 첫 부부싸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주에 있는 형님 부부에게 다음 날인 일요일에 만나자고 연락을 해서 형님부부랑 만나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도 하고 또 이야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도 풀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세례식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참석하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평생에 한번 뿐인 세례식인데 아이들이 축하해주면 남편이 기뻐할 것 같아서 아이들도 같이 가자고 설득하여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게 많아서인지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식을 쭉 보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저희 가족들끼리 단촐하게 다시 한 번 축하자리를 마련해서 남편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형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저도 교회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하였습니다. 형님은 너무도 기뻐하셨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다음 주 안식일부터는 온 가족이 교회를 출석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 달만이라도 출석을 해보자고 권면을 했고 아이들도 감사하게도 따라 주었습니다. 그 발걸음이 결국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마냥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교회 데리고 오면서도 항상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선생님들이 교회 오면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자주 연락도 하고 또 가끔씩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사주시고 해서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세례식 다음 주에도 형님 부부께서는 천안에 오셔서 제가 좀 더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셨고 형님의 권면으로 처음으로 안수기도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뒤부터 사실은 마음속에 한 가지 숙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남편처럼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걱정이 많다 보니 한 번은 안식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조용히 혼자 남아서 기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쉽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도자 교육 시간에 목자님께서는 남편은 정말 쉽게 성령을 받으신 경우에 해당이 되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였고 누구나 성령을 금방 받는 것은 아니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반드시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믿고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성도님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기뻤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세례를 받기로 하면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밤예배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요일, 금요일 저녁예배를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 마음에 더욱 확신이 왔습니다. 사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마음이 열려서 그런지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어지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하고 안수를 받으면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치채신 성도님도 계시고 목자님께서도 눈치를 채시고 남편에게 기도할 때 좀 어땠느냐고 묻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혼자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몇몇 분들과 광덕산 등산을 다녀온 후에 차를 마시면서 목자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목자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이런 감동의 과정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맡기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0월 10일 화요일 예배 후 합심기도회 시간에 김참운 자매님께서 안수기도를 권했습니다. 아마도 며칠 전에 제가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권면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토록 고대하고 받고 싶었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너무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시고 심지어 급히 케익을 준비하셔서 축하파티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축하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니 훨씬 더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남편도 성령을 받고 이렇게 기쁘고 행복했을 텐데 내가 힘들게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한편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습니다.

    드디어 10월 15일에 저와 서현이, 경완이, 연서 이렇게 4식구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큰딸 서현이는 같은 날 한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동년배가 되었다고 장난 섞인 말을 하더군요. 사실 전에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었습니다. 물론 행복했던 일도 많았지만 자꾸 과거의 잘못들이 생각나서 힘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식이 다가오면서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들 경완이가 세례는 받겠다고 했지만 마지못해서 엄마가 원하니까 세례를 받게 된 것이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세례식 날 경완이가 세례를 받고 마음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경완이가 세례를 받은 후에 소감을 말할 때 지금까지는 안식일에 교회 가기가 싫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고 했는데 물에서 올라오면서 그런 마음이 다 사라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제는 서현이와 경완이 그리고 연서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하루빨리 주셔서 아이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저와 남편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온가족을 믿음으로 이끌어주시기 위해서 애써주신 전주 형님과 아주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 마음이 닫혔던 저를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이끌어준 남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아이들도 낯선 교회환경에 잘 적응해주고 같이 세례를 받게 되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신 모든 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나라 가는 그날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임민경 자매 간증 유튜브 영상

  • [성도 간증]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_이원일 자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전에 간증했던 내용과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들을 추려내고, 추가적인 내용을 더하여, 제 삶을 통해서, 저를 부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큰 사랑으로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다만 북한에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남으로 오신 외할아버지와 기도를 많이 길게 하시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고는 지냈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동네 교회의 성경 학교도 가보고, 친구 따라서 성당도 몇 년 다녔습니다. 그 뒤에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일로 인하여 부모님께서 의견 차이를 보이시며 저의 성당 출석은 깔끔히 끝나게 되었지요.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던 저는 ‘최악만 아니면 되지 ’라는 신념으로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명확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보통의 학생들과 다름없는 상태로, 꾸준히 학교만 다녔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항상 돌보아 주시고 계셨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사람이 삶을 한탄하면서 저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저분한 물에서 사는데 당신은 1급수 아니 생수에서 살고 있다’ 라고 말이죠.

     

    대학 2학년 여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입니다. 알게 된 지 한 달 즈음이 지났을 때,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게 어떻겠냐 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하더라구요..^_^(과연 그 약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면서 그 순간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도서관의 종교서적 서가에서 여러 가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인터넷 보다는 책이 정보검색의 1순위였지요) 안식일 관련된 책들과 기독교의 역사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안식일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삼육대학교 근처에 살면서 들었던 제7일 안식일교라는 이름도 기억해 냈고, 주일 개념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적립하고 드디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눠 보려는데, 흔히들 말하는 안식교도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참예수교회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뭐지?? 하면서 다시 뒤져보았습니다. 성과는 없었습니다. 2002년 말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에 여러 가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엘리사 목자님의 설교 몇 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영상들이 저에게는 예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엉터리는 아니다’ 하는 마음으로 참예수교회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7월 어느 안식일 오전, 제일 가까웠던 동부교회로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젊은 아가씨가 알지도 못하는 곳을 제 발로 혼자 찾아 갔네요.

     

    통화하신 분이 예배당 앞에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보통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진형제는 저에게 방언기도에 대해 한 번도 언급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시작 전의 기도시간에 저는 어찌 해야할 지 모르고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나서 찬양 한 뒤에 다시 기도가 시작되자, 저는 예배당을 빠져나와서 건물 1층 문을 나서야만 출입 할 수 있는, 외부로 출입문이 나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신기한 일은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2층의 기도소리가 저에게는 악기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영롱한 핸드벨이나 큰 실로폰의 높은음을 쉬지 않고 울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이 내용을 간증하며 ‘천상의 음악’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부러움과 신기함으로 교회에 출석했고, 다음 해에는 양봉도 목자님의 세례관련 설교를 주의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출석이 거듭되면서 입술이 움직임을 느끼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례가 먼저라는 지식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주의 어느 날 수업 후 빈 강의실에서 교회에 전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세례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주 안식일 예배 후에 봉고차를 타고 밀리는 길을 다녀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2004년 4월 3일 16시 20분이라고 시간까지 쓰여 있었는데, 그날인 것 같습니다. 날짜와 시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뀐 저의 기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예수님께서 피 한방울의 일부라도 저를 위해 흘려 주셨습니까?’라는 물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세례 후 예배당 앞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저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생각과 ‘저를 위해 피 흘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라는 기도가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인공조명의 위치가 절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이마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환한 빛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자친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세례성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본적인 새신자 신앙교육이나 세례 전 교육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부족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꽉 차여있지 않아도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세례를 받고서 얼마 지났을 때인지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도 오래지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낮잠이었는지 밤잠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가 벽과 붙어 있는 옷장 윗부분의 구석진 곳에서 저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오싹하다기 보다는 그냥 무서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를 알지도 못했던 때였지요. 자세를 바꾸어 보아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뜨면 눈앞에서 엄청난 얼굴이 저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기에 눈도 감은채로 마음을 굳게 먹고 주기도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성당에서도 노래로 외웠고, 빈칸 채우기 시험을 봐가면서 외웠고요, 동네 교회 성경학교 다닐 때도 외웠고, 동부교회 출석하면서도 매번 읊었던 주기도문이었지요. 그런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저의 기도를 따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기도쯤은 나도 알고 있다’는 조롱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너무나 두려웠구요. 그래서 누운자세 그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선언하고, 방언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만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기도하다가 잠들고 말았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외워서 읊기만 했던 저에게,,, 진정성이 없는 기도문의 암송은 그 어떤 의미도 없음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셨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초, 저희는 약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출가 외인이라며,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이제 그집 식구이니 교회 따라 나갈 생각을 해라!! 마음 편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2006년 3월에 식을 올리고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었지만 저는 바다구경으로 두 번 가본 게 전부였던 지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옆 동네에도 성도님들이 계셨고, 가족처럼 살뜰히 돌봐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따라 신랑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사하면서 울어본 적은 두 번뿐인데요(한번은 초3가을부터 초5 6월까지 살던 수원을 떠날 때였고) 그중 한번이, 겨우 1년 출석한 부산교회를 떠나던 날이었지요.

     

    [전국 유람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산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가서)분당 3년, (충주에서 살면서)원주교회로 1년, 다시 (성남기지 안으로 이사가서) 분당 1년, (송파구에 살며)강남 2년, (일산초입에 살면서)대방 2년, (계룡으로 이사하여)대전교회 2년, 그리고 다시 대방 1년, 이렇게 돌고 돌면서 가사와 육아에 매인 삶을 살아가며 2019년도에 도착한 곳이 안양교회였습니다. 신도회 시간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참여 해본 첫 해였습니다. 수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경쟁하듯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감사를 나누고 평안을 구하며 같이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속상함도 나누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행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하며 살았었죠. ‘기도를 통해 고통이 줄어들고 기도하는 와중에 고난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져버렸답니다.) 그런데 2019년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찬송을 드리다말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을 감추지 않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왜 우냐’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판단하기 전에, 주님께서 저를 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해보았습니다. ‘감사해서요.’ …..불행하지 않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도], 코로나로 온 나라가 힘들기 시작했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요동하지 않으며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6월 9일, 그 불안의 상황이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녁에 신랑이 확진을 받고난 뒤에, 저는 집안에서 몇 걸음 걷다가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세 식구가 집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효원형제를 데리고 가야할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저희 세 명의 검사 결과는 아주 빠르게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음성이고 저만 양성이 나왔기에 새로운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이들만 남겨야 하는데 어찌 하면 좋으냐’ 보건소에 물어보았는데요, 아침마다 도시락을 문 앞에 갖다 놓을테니 데워 먹게 하라고 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이 어찌나 야속하게만 들리던지요. 음성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올 수 없으며, 입고 간 옷도 다 폐기 할 것이고 들고 간 것도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제외하고는 들고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장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에 입을 옷은 병원에서 택배로 받으라는 이야기와, 돌아올 때는 택시를 비롯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 데리러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해주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로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죠. 계속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함께 퇴원 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그게 쉽겠느냐며 절망이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이모가 바로 와줄 수 있다고 했고 저희 부부는 아이들 이모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저희가 나선 뒤에 방역팀이 집 구석구석에 소독액을 뿌리고 갔고, 3학년과 1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용감히 이모를 기다렸습니다.

     

    안양에서 파주병원까지 저와 효원형제는 같은 구급차에 실려서 이송되었습니다. 병실이 남은 곳은 거기뿐이고, 구급차는 많이 남지 않으니 한번에 이동시키려는 그들의 계산덕분에 저희는 꽁꽁 싸여서 실려다니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들은 단순히 위로만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고 나올 옷을 싸놓으면 가지고 가겠다, 택배로 보내주겠다, 차몰고 데리러 갈꺼니 걱정마라. 거기 자주 가는 동네라서 다 안다 등등,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체적이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를 안정시킨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키울 테니 어서 낫고 퇴원해라’ 여기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들 걱정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었구나 하고 말이죠.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손을 통해 자녀들을 보살피시는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었죠. 안양에서 살던 두 번째 집은 창문 밖으로 임시검사소에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사람마다 일정 개수 씩 구매할 수 있게 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뛰어 놀기에 적합한 넓직한 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고,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하여 산길에 걸어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보이는 장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감사하면서 무너지지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애써 붙들어 매던 제 마음은, 확진과 동시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쉴 새 없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굳게 붙들어주셨습니다.

     

    [병원 이야기 해드릴께요] 입원실은 3인실로 개조한 5인 입원실이었습니다. 링거하나 없이 두 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요. 음식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겨 묶인 봉지채로 각 자리에 놓아졌고, 2일에 한 번 씩 보호장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소독액을 눈앞에서 뿌리며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음압기계의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두통이 생길 정도였고, 창문의 모든 틈은 테이프로 막아져 있어서 산소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남성 입원실로, 저는 여성 입원실로. 구급차에서 내려서 줄을 따라 걸어가며 저희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해야 했습니다. 동선에 대한 확인과 보고를 반복하며 보건소 직원들과 통화하느라 하루 이상 꼬박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으면 병실 전화기나 핸드폰의 카톡을 통해 간호사실에 알릴 수 있었고 며칠 간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사가 들어와서 문진을 하고 상태(?상황?)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저는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어 길어져버린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름의 계획을 짜야 했습니다. 3회의 식사 전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적고 사진 찍어서 간호사에게 알려주기, 식사 후 양치 꼭하기, 땀나게 맨손체조, 이어폰으로 소리 최고로 해놓고 말씀듣기, 성경읽기, 음압기 소리에 묻혀서 기도하기, 중간중간 마다 아이들이랑 통화하기 등등,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밀려있던 통독은 욥기를 읽을 차례였고 시편까지 읽고 퇴원했습니다. 저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배웠습니다. 아무 방해 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할 수 있게 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계시록도 처음부터 하나씩 듣기 시작했고,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드디어 저는 참예수교회가 늦은 비 성령으로 세워진 참교회임을, 말씀으로 온전히 집중하여 배울 수 있는 첫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찬양합니다. 입원한지 며칠 지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밤중에 침대 위에서 창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위에 커다란 검은 물체가 저를 노려보며 저를 향해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준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적으로 요동하거나 하는 전단계가 없었기에 맥락없이 갑자기 보이는 형상이었지요. 시커멓고 뿔이 두 개 달린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무릎꿇고 성령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지요. 잠시 후에 보니 그 형상은 사라지고 그냥 물탱크만 보이더라구요…

     

    당시, 전국의 교회가 모두 함께 저희 가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청주도 함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6월 23일, 아이들은 격리해제를 위한 검사를 받았고 초조한 하루가 지난 뒤,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24일), 정부는 입퇴원에 관련해서 지침을 변경했습니다. 큰 증상이 없으면, 양성판정후 재검사 없이 14일 이후에는 퇴원 조치하는 내용이 생긴거죠. 저희는 그 병원에서 첫 대상자가 되어 26일 오전에 퇴원 통보를 받았습니다. 감염력이 없는 정도이니 일상생활은 해도 되지만 사람 많은 곳은 당분간 가지 말라는 이해가 안되는 보건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원을 시켜주는 의사도 두 달은 자가격리 상태로 살라고 하더라구요. 의사간호사들의 우려를 뒷통수로 느끼며 병원을 나선 저희는 같은 택시를 타고 같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입원 날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지요. 게다가 양성판정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둘 다 음성판정을 받았지요. 그래서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저희 아이들도 돌보아 주셨습니다. 반찬과 반찬 재료는 물론 간식과 놀 거리와 손편지까지,,,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받으면 꼭 갚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저는, 이런 사랑들을 어찌 갚을까 고민하며 몇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퇴원하면 떡 내면 된다’ ‘우리한테 갚지말아라 하늘에 보물 좀 쌓아보자’ ‘앞으로 잘 살면 되는거다’ ‘교회에 봉사하면 되는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또 사랑을 적립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봐주시는 이유를 모르던 저는,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직전 날이 되어서야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시고 택하신 사람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봐 주시고 계셨던 것이었지요.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냈었습니다. ‘제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의 주권자이심을,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이때의 제 고백은 시작에 불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으로 보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 입퇴원을 마무리 하고는 [다시 전국유람 시작합니다] 몇 달 후 원주로 이동했습니다. 예배출석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안양교회 소속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신도회 모임도 줌으로 유지 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침들이 바뀌었죠… 2021년 가을영은회 즈음해서부터 원주교회에 출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뵙던 김세한 목자님을 직접 뵈니 참으로 반가웠지요) 그해 연말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계룡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약 2달, 출석 예배에 목말라 있던 저희는 예배가 아니어도 종종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정~말 많이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 기억도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구요. 천사였을까요? 다른 성도님 이셨을까요? 누구였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이잖아요.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귀중한 두 달여의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도 12월 부터는 대전교회를 출석했습니다. (대전으로 나간 초기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지요. ‘내 양을 먹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양이요?’라고 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교회가 건축 중이었기에 총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알지 못하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자금의 투명한 흐름과 목회자의 발령시스템을 꼭 이야기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총회 조직이 있음을 자랑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전을 언급했었지만, 사실 저는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총회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총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저는 신학원의 존재를 볼 수 있었고 여러 목자님들과 외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열심으로 교육하심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님들도 연수를 받으시고 (목자장로)회의를 통해 굵직한 이야기도 오가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음…… 목자 연수회 때는 화요일 예배에서 목자님들의 특별찬송이 있곤 했는데요. ‘행복’이라는 곡을 다 같이 부르실 때는 그 수고와 감동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구요 ‘십자가 군병되어서’를 부르실 때는 마블 어벤저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휴~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또 여러 종류의 영은회와 세미나를 통해 일반 성도들도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임원들도 모여서 함께 배우고 익혀서 하나의 모습으로 각 지교회가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많은 봉사와 노력과 기도가 있음 또한 보았습니다. 여러 헌신을 통해 한 세대 한 세대 전해져 내려가는 우리의 신앙을 보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서 많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며 그 귀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12월 27일, 새로 지은 대전교회에서는 대학 영은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마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도 여기 계실텐데요, 그날은 화요일 이었고, 저는 연합예배의 찬양인도를 해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요. 기존에는 검정색 찬송가에서만 찬양을 골랐었는데 그 날은 새찬양에서 ‘기대’라는 곡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전교회 성도님들의 절반이상이 모르시는 곡일 수도 있었으나, 저는 대학부의 절반이 그 곡을 알고 있기를 바랬지요. 모르더라도 함께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리’ 하며 찬양을 하는 상황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동!!!이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수님 한분만 바란다고 고백을 하는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의 지교회들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 2023년도 2월 말, 저희는 이곳 청주로 이사 왔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경북지역으로 가게 되면 약 40분을 달려서 안동교회로 가야했습니다. 계룡에서 대전교회를 오가는 길보다는 편하지 않아 보였기에 저녁예배 참석이 가능한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지요. 만약 서해안 쪽으로 가게 되면 100km를 달려서 장항서부로 가야 했는데, 진형제는 이정도 거리의 교회에 휴가를 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고 저 역시도 혼자 그 길을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디로 보내 주실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곳에 순종하며 가기로 하고 쓰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교회와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주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야 할 주님의 일이 있기에 보내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로운 간증 내용이 추가되어 또 다른 교회에 가면, 지금 보다 더욱 풍성한 간증시간을 갖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셨음을 확신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고 명령하신 것을 각 위치에서 전심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할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효원형제는 성경을 무척 열심히 읽었고 그 전과 비교했을 때 기도를 아주 많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심하고 체중조절을 하여 성공했고, 교회가야 하니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진형제는 각 교회별로 올라와있는 예배동영상을 통하여 말씀듣기를 지속했고 어느 순간이 지나고 보니 저희 두 사람은 성경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런 모습은 지속되었고 목자님들께 질문하기도 하면서 하나님께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추석 명절에 남원 할머니를 뵈면서 남쪽의 교회들의 일부를 방문 했었습니다. 남원 서도 삼계 전주… 각 교회를 방문하고 몇 가정과 계획 없던 만남을 갖게 되니 마음이 또 어찌나 꽉 차던지요..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성장하는 남편의 모습과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저를 가르치시고 기르시는 중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0대 동안에 교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20대에 교회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부 영은회 조차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배움이 짧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성장기 동안에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과 사랑과 선행으로 교제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면서 지내온, 지내고 있는, 지내게 될 성도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저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지요. 그곳에서 제가 듣고 보며 배울 일이 있을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어디로 보내시든지 절대 외롭게 지내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없이 이사 다니면서도 가까운 교회에서 하나 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매번 감사드립니다. 영적으로 의지할 분이 계심과 동시에 이 나라 어딜 가든, 친정식구들보다도 빨리 닿을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어디에 간다 해도, 신랑보다 교회식구들을 더 의지할 것 같습니다. 성도 중 누군가가,, 혹여나,, 우주인이 되어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면 좀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죠?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공간에도 세계 성도들 중의 한 명을 주님께서 꼭 보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진리를 더욱 연구하고 굳건히 유지하며 전승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에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하기 때문임을 고백하며 저의 긴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저희 가족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원일 자매

  • [성도 간증] 주님만을 찬양하리_이예지 자매

    [성도 간증] 주님만을 찬양하리_이예지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2023년도 하계 학생부 영은회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영은회를 온전히 참석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영은회를 마치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간 저의 모습은 영은회 때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잊어버린 채 다시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더 바빠진 학업을 핑계로 교회 사역에 소홀해지며 또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이 약해진 채로 영은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라는 주제로 기본 신앙 1부터 5까지 배우게 되었는데 모태신앙이지만 아직도 기본이 잘 갖추어지지 않다고 느껴서 이번에 꼭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점들이 많아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더욱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관에 대해서 배울 때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며 ‘부르심을 받아 나온 회중’이라는 뜻입니다. 모태신앙이라서 그런지, 교회라는 곳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교회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음부의 권세로부터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교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에서는 같은 또래 친구들과 신앙에 대해 서로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공감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갈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닌 같이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음에 든든하며 저에게 믿음의 동역자를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전주교회 성도님들과 연합 예배를 드릴 때 학생부들이 특별 찬양을 했는데 많은 성도님들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것이 정말 많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찬양 발표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며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저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앞으로 나가서 찬양을 불렀는데 떨리는 감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영은회 때 받은 감동을 찬양으로 전주교회 성도님들께 전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면서 찬양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뵙는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면서 정말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영은회 기간 동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길은 좁고 험하지만 세상과는 다른 그 길을 걷겠다고 고백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실 평소에 기도를 할 때 항상 ‘~해주세요’ 라고만 부탁을 드렸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지난 저의 삶은 감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바빴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신앙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을 애써 외면했는데 하나님은 어찌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붙잡으시나요?” 라고 하나님께 여쭈어보며 지난 저의 모습을 회상하며 후회와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정말 무슨 일이든지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또한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저를 사용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 때 ‘예수의 길’ 이라는 찬양을 찬양 기도회 때 처음 듣게 되었는데, 가사를 묵상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준 찬양을 청주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사를 조금 가져와 봤습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곳에서 손 내미셔서 나를 붙드네, 길 잃고 쓰러져가던 그곳에서 주 말씀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나 그 길을 보네 주 예비하신 곳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으리” 이런 찬양입니다. 저는 이 찬양을 듣고 세상의 유혹 가운데 넘어졌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저를 일으켜 세워주셨고 저에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번 영은회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저는 또 세상의 유혹 가운데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넘어지는 순간, 금방 다시 일어나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해두신 길을 걸어 나가고 싶습니다. 세상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두는 자가 되겠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이예지 자매

  • [성도간증] 나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 (천안교회 김병일 형제)

    [성도간증] 나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 (천안교회 김병일 형제)

    천안교회 김병일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21년 연말에 장모님이신 이순복 모친께서 천안으로 이사를 오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장모님이 천안에 오시기 전부터 저와 제 가정을 위해서 늘 기도한다는 사실은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 부분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지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천안으로 장모님께서 이사를 오신 뒤에는 늘 교회출석을 권면하셨지만 사업상 바쁘기도 하고 사실은 신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별 관심없이 그렇게 한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12월 31일 토요일에 천안교회 송년식사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서 가족들에게 계속 권면을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뿌리칠 수가 없어서 그날은 식사하고 인사라도 드리고 오자고 하면서 아내와 같이 식사모임을 참석을 했습니다.

     식사모임에 가서 받은 첫 느낌은 신도들이 처음 만난 저를 모두 한 가족처럼 대해주었고 모든 신도들이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교회 가서 차 한 잔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쑥쓰러움을 타는 성격이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따라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동안에 목자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이 얼마나 좋고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 해 주실 때 아내인 최귀미 자매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최귀미 자매는 당시 손주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많이 힘들고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최귀미 자매가 교회를 나오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대화를 나누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자녀들이 너무나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목자님께서 계속 아내인 최귀미 자매를 설득해달라고 상 밑으로 목자님에게 손짓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그날 대화를 나누면서 손주들과 함께 교회를 출석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바로 아들 김지현과 손주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할머님의 뜻을 받들어서 신앙생활을 시작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인 최귀미 자매가 이 뜻을 장모님이신 이순복 모친님께 전화를 드리자 장모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감격해했습니다. 심지어 장모님께서는 유언으로 딸에게 써놓으셨던 편지를 읽어주시면서까지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2023년 첫주부터 저의 부부와 그리고 보아, 건우 이렇게 4가족과 평소 손주처럼 돌보던 서현이까지 교회 출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참예수교회 출석은 처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교회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 예배와 기도 모든 것들이 그저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를 출석한 이래로 항상 말씀을 드렸지만 참예수교회는 가족처럼 너무 좋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모든 성도님들이 다 천사처럼 보여서 너무 좋았습니다.

     교회 출석을 시작한 지 얼마 후에 목자님께서 구도자 교육을 해야한다고 해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것도 신앙생활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참석을 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생소한 저를 위해서 목자님께서는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구도자 교육을 받는 동안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도 받았고 나도 예수님을 잘 믿어서 천국을 가야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출석하고부터 집에서 드리던 제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원래 아내가 힘들어하기도 했고 또 교회를 다니면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 출석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에 안식일 오전예배 시간에 장모님께서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셨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안수기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 3번 정도 안수기도를 받을 때쯤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날이 4월 1일이었는데요. 안식일 오전예배 시간에 안수기도를 받을 때 온 몸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땀과 눈물이 갑자기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에서도 미미하지만 이상한 소리도 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도 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화평반 신도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모든 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사실은 원래 그날은 오전예배만 드리고 월요일에 있을 공사의 자재를 준비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혼자만 안식일에 먼저 빠져나간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오후에도 남게 되었습니다. 화평반들과 분반예배를 드리고 담소를 나누는 중에 화평반실에 목자님이 들어오셔서 지금부터는 자비반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다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목자님이 김병일 형제님도 성경공부 참석하시죠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참석하는 자비반 성경공부시간이었지만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목자님께서 안수기도를 특별히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중국에서 오신 교포신도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전에 제가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고 들으시고 특별히 안수기도를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입에서 저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부터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충만하게 기도를 했고 온 몸이 열기로 뜨거웠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채 충만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에 목자님께서는 제가 성령을 받으셨다고 선언을 해주셨고 그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열을 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저는 원래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고 참 강한 사람이다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뿐 아니라 사실은 그 뒤로 계속 교회올 때마다 눈물이 계속 납니다. 아마도 성령을 받은 감동도 컸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주시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날 교회에서는 성령 받은 것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이미 집에 가 계시던 장모님을 비롯해서 온 가족을 교회로 다시 불렀고 케잌을 준비해서 온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장모님은 너무 기분이 좋으셨는지 춤까지 추실 정도셨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성령을 받고 제가 40여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은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담배를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건강 때문에 몇번이나 끊으려고 했어도 의지대로 잘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령을 받고 나서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제 의지로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담배를 끊도록 도와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드디어 5월 14일에 전 성도님들이 축하해주시는 가운데 세례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남들이 세례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정작 제가 세례를 받고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 자체가 저에게는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참예수교회를 출석하면서 성도님들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의 큰 낙이 되었고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큰 기쁨을 교회에 올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천국가는 그날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성도님들은 저에게는 모두가 천사이십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지금까지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가족들과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으로 간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김병일 형제와 손녀 김보아 자매>

    김병일 형제 간증 유튜브영상

  •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백남리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부터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은혜의 간증을 하겠습니다.

    ▶ 첫 번째 간증 : 낚시배 이야기

    제 아들인 재웅이가 낚시를 좋아해서 재웅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면 가끔 속초 동명항을 갑니다. 그 날도 낚시를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우리 가족 셋만 타고 출발하는 낚시배를 예약하였습니다.

    저는 출발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잠시 화장실좀 갔다 올께요” 하고 공중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장소가 적당하지 않았지만  진심을 다하여 짧은 기도를 드렸고 든든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출발 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배가 갑자기 멈추었고 선장님이 배 아래로 왔다 갔다 하시더니 조타실(엔진이 있는 곳)에 물이 차서 배가 가라앉게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주중에는 고기를 잡는 고깃배이고 주말에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30년을 배를 탔는데 이런 일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셨고 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해양경찰에 급히 신고하였고 바로 해양경찰이 와서 사고조사를 하면서 조타실에서 물을 퍼내는데 대형 고무 물통 2개에 물이 가득 찼고 결국 고깃배는 인양하여 엔진을 완전히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장님은 미안해 하시면서 전액 환불을 해주셨고 우리 가족은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다른  배를 타고 다시 낚시를 하러 출발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방금전에 화장실에 가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 셋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지켜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후 저는 눈을 뜨고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 드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그 마음을 크게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 간증 : 브레이크 라인 이야기

    지난 가을 금요일 아침 일찍 일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일하기 위해 이동하려고 출차를 하는데 마침 반대쪽에서도 주차를 하려고 올라오는 차가 있어 저는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리막길로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평지로 내려와 바로 앞에 방지턱이 있어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쑥~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어 이건 뭐지? 난생처음 경험한 일인지라 느낌이 이상했고 평지에서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자 확실히 내 차에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사이에 차는 왕복 6차선으로 합류했고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신호등은 완전히 무시하고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바로 보이는 사거리에서 무조건 좌회전을 해서 한적한 언덕길로 올라갔습니다. 놀랜가슴을 부여잡고 보험사를 부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주정차 딱지 구역이라서 안될것같아 다시 놀랜가슴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리막길로 다시 차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0미터 앞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 두분이 느릿느릿하게 건너고 계셨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의 인생이 너무나도 억울하게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순간 이상황을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고 “내리막과 미끄러운 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려가라는 재웅이 아빠의 말을 생각나게 해주셨고” 그렇게 했더니 다행히 조금은 천천히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할머니 두 분은 아직도 겨우겨우 횡단보도 끝을 향해 이동중이였고 저의 차는 간신히 할머니들을 피해 우회전을 해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보험사에 신고를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습니다 하고 신고했더니 20분 뒤에 견인차가 왔습니다. 아~ 내 차를 끌고 가기 위해서 왔고 차에 큰 문제가 있구나 확신을 했습니다.

    견인차 아저씨가 저의 차를 살펴 보시더니 왼쪽 타이어에 기름이 새네요 하셨고 브레이크 라인이 끊어진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처음 견인차를 타게 되었고 조금전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반대쪽에 올라오는 차가 있었는데 다행히 부딪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고 평지에 내려와 방지턱을 넘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을때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카센터에 가서 브레이크 라인을 교체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저에게 경험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주야로 살피시고 계심을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한순간의 사고는 예측 불허지만 하나님 의지하고 섬기는 것은 나의 마음이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님과사모님을 따라서 심방을 하다 보면 대상자 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다 있더군요. 남편이 반대를 해서, 부인이 반대를 해서, 아들이, 딸이 반대를 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이방 결혼하여 아직도 그런 가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확고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수없이 인내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성도간증]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학교에서는 다른 세상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입에 욕을 달고 살았고, 두려움 때문에 식사 전에 기도를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또한 예배시간에 항상 지각을 했으며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학교를 빠지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만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미지근한 신앙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대학을 진학하고 과를 정해야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고3이 되기까지 나는 하고 싶은게 없었다. 그러던 중 고은쌤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내 성적에서 가능한 교사 직업이었고 나 역시도 이 진로가 마음에 들었다.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한 이유에는 형의 영향이 있었다. 형은 기타를 전공하며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고 포기했다. 물론 그런 모습은 믿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 아니면 교사를 하자는 마음가짐을 먹었고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입시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체육교육과는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수능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게 되었다. 수능 전까지는 일주일에 3번씩 학원에 가서 운동을 했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학교에 남아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이 당시에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서 생긴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3들을 위해 밤마다 모여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었지만, 가끔씩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능 당일이 되었고, 나는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가채점을 한 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학원 선생님께 큰일이 났다고 전화 드렸다. 학원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가장 먼저 권한 것은 재수하는 것이었다. 실기 점수로 부족한 수능점수를 만회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재수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무산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강원도에 있는 사범대를 가는 것이었다. 타 지역의 사범대에 비해 성적 커트라인이 낮았기 때문에 나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께서 신앙생활을 이유로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냥 더 열심히 해서 실기 성적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 측에 사정을 말해 학교 대신 체육학원을 가는 시즌이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학원에 가서 밤 9시까지 운동을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때만큼 힘들고 이때만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중간에 나는 손목 골절을 당했지만, 깁스를 하고 학원에 가서 운동을 할 만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수능을 망치게 된 것은 내가 기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밤에 학원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가서 기도에 참여했다. 정말로 기도를 많이 했다. 실기 성적을 올리기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실기 당일이 되었다. 나는 아침부터 실기 시험을 보는 중간까지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토록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없었을 만큼 나는 간절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기 성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불합격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공무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버스 안에서는 학원 친구들이 자신들의 실기 성적을 얘기하며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공무원 시험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대학을 가지 않고 공무원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화를 많이 내셨다.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이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어진 나는 결국 현실을 도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나와서 나는 친구들을 불러 피시방에 갔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가출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찜질방에서 자고 낮에는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내가 가출한 동안에 나에게 많이 연락했지만, 그 내용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 때는 학생부 영은회를 가는 주였고, 엄마는 나에게 빨리 와서 영은회를 참석하라고 계속 연락하셨다. 나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제는 돈도 없고 너무 추워서 결국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집에 들어가겠지만, 영은회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영은회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안식일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영은회 출발하는 안식일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영은회를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들어온 집에는 초은이와 경석이가 있었다. 영은회를 참석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엄마가 부른 것이었다. 초은이는 입시 때문에 영은회 중간부터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때 나도 같이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초은이가 영은회에 가는 날 아침에, 엄마는 나에게 영은회를 가라고 소리 지르며 내 짐을 대신 싸주셨다. 그리고 집사님께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했고 경석이도 간다면서 나를 설득했다. 나는 정말로 억지로 차에 타게 되었다. 그런데 차에는 경석이가 없었고 엄마에게 속았다는 마음에 매우 화가 났다.

     이미 차는 전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이런 마음으로 영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이미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주에 도착한 이후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도망을 쳤다. 도망은 쳤지만,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그냥 나는 어떤 산 위에 올라가 벤치에 한 시간 정도 앉아있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나는 일단 천안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을 간 후에 천안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사이 집사님께 소식을 들은 엄마는 영은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으니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천안에 도착한 후에 집에 가는 버스인 12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12번 버스가 없었다. 알고 보니 타는 곳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일부 버스 정류장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냥 아무 버스나 타고 가기 시작했다. 아는 곳이 나오면 내리기로 생각했지만 점점 이상한 데로 가게 되었다. 결국 버스가 모여서 쉬는 곳까지 도착한 나는 그 곳에서 혼자 내리게 되었다. 그 날은 눈이 엄청 오는 날이었고 주위에는 온통 도로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걸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걷다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래서 거기로 가서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왔기에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고 주위를 살피던 중 하천에 돌다리를 건너가는 길을 발견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아파트를 가고자 언덕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눈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손으로는 가시나무를 짚고 말았다. 손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수 없었다. 내가 넘어질 때 마귀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웃음소리를 듣고 나는 뒤를 돌아봤지만 사람은커녕 새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갈 마음이 없었지만, 나는 무서운 마음에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 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교회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전화가 엄청나게 와 있었다. 이를 모두 무시했고, 신기한 체험은 했지만 여전히 내 신앙은 밑바닥이었다.

     아직 내 마음이 강퍅한 가운데, 총회 행사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바로 고3수련회였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나를 더욱 강하게 설득했다. 나는 친구들의 전화를 모두 무시했다는 것과 강퍅한 마음 때문에 가기 싫었지만, 결국 억지로 참석하게 되었다. 고3수련회에 가서 들은 첫 강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어떤 형제가 공무원이 되었는데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려고 다시 시험을 보았고 붙은 것을 자랑했다고 했다. 그런데 목자님께서는 그것이 불쌍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인데 그것이 불쌍하다는 목자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됐다. 경쟁하지 말라는 강의를 시작으로 나는 요셉의 삶이 어떠했는지 고3수련회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경쟁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3수련회는 그동안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조금은 똑바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대학입시의 「다」 군에 썼던 일반 4년제 컴퓨터공학에 합격하게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진학할 대학교와 전공할 과를 선택한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다」 군에는 체육교육과를 쓸 수가 없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넣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너무 자퇴가 하고 싶었다. 오고 싶지 않은 학교였던 것도 있지만, 수업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루는 무슨 프로그램을 짜라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친구들 것을 베끼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퇴하는 것은 부모님이 반대하실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무원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공무원 교재를 펴서 공부했고 수업도 가기 싫으면 그냥 안 갔다. 여전히 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 채 내 계획만을 세우기에 바빴다.

     대학에 들어가면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술 문제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신앙에 다시 적신호가 들어온 것은 바로 술 때문이었다. 신앙 안에서 술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 항상 처음이 중요하다고, 처음에 인식을 확실히 박아둬야 한다고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첫 개강파티에서 거부하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그 후에도 나는 술자리에 많이 갔고, 나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가 있어 항상 옆에 나를 앉히고 술을 마시게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뿐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삶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학기가 끝이 나고 나는 내 기도제목을 내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으로 정했다.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술을 마시지 않고 기도할 때도 당당한 모습이 되는 것이 내 소망이었다. 방학동안 이 기도제목을 놓고 계속 기도했고,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개강파티 날이 잡혔다. 개강파티 전 날, 날 좋아하는 선배에게 개강 파티 날에 자기 옆에 앉으라고 카톡이 왔다. 나는 두려웠다. 기도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소심하고 연약했고 또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 같았다.

     개강파티 당일이 되었고 선배들이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내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선배들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많은 술자리에서 술을 먹었던 나였기에 이 말을 하자, 나는 많은 욕을 먹었다. 그러나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고 밥 먹을 때도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겁 많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용기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인도해주시는 분이신지 내 안에 증거를 쌓아갔다. 그래서 원하지 않던 대학, 원하지 않던 과였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당시에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역을 주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격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세우시고 사용하려 하실까? 나에게 있어 큰 의문이었다. 자기 신앙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감사보다는 원망만 했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감사하는 찬양인도를 할 수 있는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셨기에 부족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나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교사훈련학교와 단기신학을 통해서 교사는 어떤 직분이며 찬양은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되었다. 마귀의 음성을 들었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모태신앙으로 듣기만 한 하나님은 그저 머리로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거치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육신적으로 보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수능을 망쳤을 때, 실기를 못 봤을 때, 대학에서 불합격 통지가 왔을 때, 부모님이 내 의견에 반대 했을 때 나는 언제나 실패한 사람이었고 내 모든 노력은 헛수고였다. 그래서 내 기도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그 걸음을 걸으셨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나사로를 치유하셨다. 내 계획은 실패한 것이 맞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지 못한, 나의 계획을 훨씬 초월하여 나를 만들어가고 계셨다. 내가 영은회에 가지 않고 도망쳤을 때, 버스 정류장이 바뀌어 있던 것, 내가 모르는 곳에 내리고 넘어져서 마귀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일반 4년제 컴퓨터공학에 입학한 모든 게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나를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너무 끈질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배워온 나이지만, 나는 그것을 잊고 그 사랑을 거부했다. 안식일을 범하였고 영은회에서 도망쳤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 예배를 소홀히 여겼고 세상 사람과 같이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아오라고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고3을 위한 기도를 만들어주신 것도, 엄마가 영은회에 참석하라고 하신 것도, 교회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나한테 전화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짖음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다. 변화하고 성장한 내 모습이 그것의 결실이며 증거이다. 그래서 또한 하나님은 나에게, 끈질긴 사랑의 하나님이다.

     고등학교 때의 일을 쓰는 것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의 일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지만, 여전히 내 삶에 역사해주심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