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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이 한 문장은 이 간증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입니다.

    이 글은 믿음 안에서의 결혼을 소망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렸던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기도와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결국 한 가정이 믿음 위에 세워지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변화는 빠르지 않았고, 고난은 반복되었지만 간증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함께하고 계셨다고.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여셨고, 결국 기도의 제목이었던 남편은 믿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무너짐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음을 돌아보며, 이 간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늦지 않으시며,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길 위에서

    끝까지 동행하시는 분이시라고.

     

    이 짧지만 깊은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삶에도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바라며, 간증을 소개합니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할수 있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증을 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간증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는 데 어느날 간증동영상을 보게 되고 그 간증을 보면서 아 그래 옛날에 우리 남편도 교회 가는것 보 다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때가 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생각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경추집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때 간증을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하든 제가 하든 상의해서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간증을 보게 하시고 그 간증을 통해 우리 남편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건 아닐까? 란 생각이 들면서 집사님께 간증을 해보겠다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준비하려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함께 나눠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남편을 전도하게 된 일은 예전에 청주교회 50주년 기념호에 있는데 또 얘기를 하는게 맞나? 고민도 되었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오랜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남편을 처음 알게 된 건 고3때입니다 당시 같은 학교였고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하루는 전교생이 강당에서 조회를 하는데 그날 저와 친구 한명이 당번이어서 교실을 지키고 있었고 한참을 교실에 있다가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강당에서 우르르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 수많은 사람중에 딱 한 사람 지금의 남편만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는데 자기랑 친하다며 이름과 몇 반인지 성격이 어떤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듣기만 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가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어떻게 그 사람만 보였을까? 그것도 무슨 아우라가 비췬것 처럼 그렇게 그 사람만 왜 보였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게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반의 대표로 제가 나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남편이 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저에게 친구하고 싶다며 편지를 보내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과인 남편과 문과인 제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저에게 사귀자고 했고 그 당시에 저는 신앙인이 누군가를 사귄다는 건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큰 죄라고 생각을 해서 거절을 했는데 그 일이 상처가 되었는지 그날 이후로 저와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잃었단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앙이 우선이었던 제게 그 일은 후회되지 않았고 대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라신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하실 거죠? 강당에서 나올 때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히 길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시 보게 될까?

    이 사람을 전도하라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시켰습니다. 이방 결혼은 절대 안 된다, 믿음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은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처음 만나는 날 반대를 하려고 맘먹고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렸는데 식당 문을 열고 둘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너무 닮아서 왠지 반대를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지…

    저희 엄마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나와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고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저에게는 이방 결혼은 정말 믿음 지키기 힘들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이사람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방 결혼을 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함께 갈 때 걱정도 많았습니다. 아직 결혼 전이어서 다른 성도님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거부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몰려올 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교회에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들 때문에 자꾸만 망설여지는데 어떡하죠?” 기도를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란 생각이 더 우선이 되었고 남편에게도 교회에 대한 방언에 대한얘기를 미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교회와 다르다. 우리 교회는 성경에 나온 그대로 행하는 교회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 방언 소리가 처음 듣는 사람은 놀랄 수도 있지만 이건 결코 이상한 게 아님을 얘기를 했고 또한 나는 교회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처음 교회 가게 된 남편은 많이 어색해하긴 했지만, 다행히 놀라거나 거부하지는 않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이 되면 자꾸만 친구들 만나러 가려하고 여행을 가는 등 핑계를 대며 때론 저도 교회를 갈 수 없는 상황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제 머릿속에 ‘신앙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을 해선 안 된다는“ 어느 목자님의 설교 말씀이 기억이 났고 나는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교회를 가야 한다. 라고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랑은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 후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는 서울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신앙이 연약했고 세상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신랑은 안식 일이 되면 교회를 가야 하는데 자꾸 핑계되며 안 가려 하고 세상 친구들 직장동료들과의 모임 등을 중시했고 이런 문제들로 자꾸만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인맥도 중요하고 그러려면 술자리만큼 친해지기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신랑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최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형제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오히려 더 사회에서 인정받는 다는 것을 어떡하면 알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주신 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남편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닌데 천국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아직 모르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신랑과 신앙의 문제로 부딪힐 때마다 이방 결혼은 이래서 힘들구나 뼈저리게 느꼈고 나중에 우리 자녀는 꼭 믿음의 가정과 결혼시켜야지 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또한, 아직 신앙이 연약한 남편을 위해 때론 금식기도도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가는 것부터 가 먼저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로 달래듯 저는 남편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안식일 예배 빠지지 않고 가면 사줄께~ 라고 달래서 교회를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교회 갔다 오는 길엔 꼭 이 말들을 했습니다. “ 당신이랑 이렇게 교회 갔다 오니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그리고 평소 집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장 17절 말씀에 의지하여 억지로라도 말씀을, 찬양을 듣게 하려고 청소할 때나 설거지할 때 말씀을 틀어놓거나 찬양을 틀어놓곤 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언젠가는 남편도 서서히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의 바람은 내 믿음이 흔들릴 때 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였습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에 살때 신랑은 세상에 더 많이 속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혼자 울기도 많이 하고 그때 하나님만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정말 그때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우울증이 심하게 오지 않았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은 흘러 둘째가 태어날 때쯤 제가 청주로 내려가자고 신랑을 졸랐습니다. 서울에서 저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남편은 매일 야근에 회식에 늦게 들어오고 혼자 만삭에 큰아이까지 보는게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남편은 세상에 더 빠져버리고 신앙은 멀어지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신앙도 흔들릴 것 같았습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청주에 직장도 없이 무작정 내려와 시댁 어른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을 지키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이때 또다시 왜 이방 결혼은 안 되는건지 왜 그렇게 믿음 안에서 결혼을 하라고 했는지 친정 부모님의 말이 많이 떠올라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내 십자가란 생각으로 정말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이라 저녁때면 일 마치고 오신 시댁 어른들과 신랑은 술자리를 즐겼는데 그 모습을 어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게 저는 참으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수 있는건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 어른들과 술을 마시던 신랑이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고 그날 이후로 ”앞으로 너는 술 마시지 마라“ 라고 하셨고 다시는 술자리를 갖더라고 신랑에겐 술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역시 멋진 우리 하나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아뢸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결혼하고도 십일조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신랑은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굳이 십일조를 해야하느냐, 이런 부분으로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일을 할 수 있었겠어? 당신이 벌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벌 수 있는거야. 그 전부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고 이렇게 감사하며 십 일조를 할 때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주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신랑은 탐탁치 않아 했지만, 청주에서 십일조의 기적을 여러 번 체험하면서 신랑의 마음은 바뀌게 됩니다. 청주로 이사 오고 신랑이 직장을 구하고 첫 월급은 수습이라서 너무나도 금액이 적었습니다. 너무 적은 금액을 십일조 내기 창피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많은 금액을 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 달 십일조 낸 금액만큼 월급이 올랐습니다. 창피하게 생각해서 더 내긴 했지만 이렇게 축복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두 번째 달은 감사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냈는데 신기하게 더 낸 만큼의 월급이 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신랑에게 얘기하면서 신랑도 신기해했고 그 후로는 십일조 하는 것에 더 이상 반감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삶에서 직접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청주로 이사하고 교회를 가는 데 그때 당시 교회는 용정동에 있었습니다. 신랑과 애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데 지금은 안 그래 보이지만 그때 당시 신랑은 낯을 많이 가렸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자마자 한 형제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 신랑이 낯을 많이 가리는데 옆에서 꼭 붙어서 좀 챙겨줄 수 있겠냐고,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형제님은 알겠다며 흔쾌히 대답을 하고 그때부터 밀착케어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하든 같이하자고 하고 어딜 가든 같이 가자고 하고 절대 혼자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절친?이 되었지만, 그 당시 그렇게 매사에 챙긴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힘든 일이겠지요.

    그리고 교회에서도 무슨 행사를 할때면 신랑이 좋아하는 요리경연대회라든가 탁구 등 모든 초점을 신랑에게 맞춰주는 배려와 성도님들의 사랑에 신랑도 서서히 세상 친구들 모임보다 교회 안에서의 활동들, 성도 간의 교제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청주로 내려와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신랑이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고 청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신랑도 성령을 받아서 더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된건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성장시키기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하셨구나 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때때로 제가 믿음 없는 말을 할 때면 신랑은 오히려 저를 깨우쳐 주는 동역자가 되어있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길 바랐던 저의 바람을 하나님께선 기억하시고 이뤄주셨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가게를 운영하다가 폐업하게 된 일, 우유 판촉 일을 하면서 비바람을 맞았던 일, 사기를 당해서 돈을 날렸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려합니다.

    신랑과 함께 죽 가게를 했었는데 병원 검진 손님들을 상대로 운영을 하다 보니 안식일 오전 예배 참석을 할 수 없었고 안식일을 못 지키는 것에 계속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꿈에서 우리 가게 앞 도로에 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모든 가게들이 무너지고 우리 가게도 무너지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너진 잔해 속에 작은 빛이 보이고 그 빛이 보호막처럼 신랑과 제가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꿈이 대체 무슨 꿈일까?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계속 그 꿈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않아 저희 가게는 병원 검진 손님들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병원에서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식당까지 운영을 하게 되고 더 이상 검진 손님을 우리 가게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함께 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어버리니 저희 가게는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게 권리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많은 피해를 입으며 정리를하게 되는데 그 당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담임 목자님께 기도 부탁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에 꾸었던 그 꿈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다 무너졌지만, 우리를 보호하던 그 빛이 생각 이 나면서 빛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거란 확신이 들면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참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안식일을 우리가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켜야겠단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직장을 구할 땐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지가 제일 일 순위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며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오거나 할때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고 내가 생각지 못하는 방법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완벽한 때에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을 하는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수많은 날들 속에 평안한 삶만 있었다면 과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고난을 통해 남편은 옛사람의 모습들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관들을 버릴 수 있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이 제일이란 생각을 갖게 했으므로 지금은 그 고난이 감사하단 생각이듭니다.

    내가 걸어온 길 길고도 짧은 길

    내 힘으로 걸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주님 나와 동행하심이라며

    때론 험한 길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때론 가시밭길에서 고난을 당하나

    주님 동행하시니 나는 두려움 없네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동행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 삶에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남편이 구원을 받았고 신앙이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자녀 또한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온전한 신앙의 집을 잘 세우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님들과 간증을 나눌 수 있어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은 80년 전 1946년 6월 4일(음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고 저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태어난 함경북도 온성군은 백두산 물줄기가 두만강으로 흐르는 북한과 중국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와 중국이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저는 엄마 등에 업혀 중국 연변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45년 정도를 살다가 1995년 7월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고 과연 내가 굶어 죽지 않고 80살까지 살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감격스럽고 오직 감사할 분입니다.

    강산이 8번 변한 80년 동안의 이 세상에서 삶의 길은 험하고 고난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자녀로 택하셔서 세례와 성령을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저를 이끌어 주셔서 여러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이렇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살 때는 살면서 겪는 여러 우여곡절과 고난이 내 운명이고 팔자라는 비신앙적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은 후 부터는 북한, 중국, 한국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이 인도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고 싶어 가고, 오고 싶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행복한 가정과 교회를 주신 것이 무척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들어와서 참 하나님을 믿은 16년의 시간 동안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그동안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무척 행복하고 이 또한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감사하게 느끼며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 버렸기에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저 나쁜 짓을 안 하고 토요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에 정성껏 참여하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이 이 땅의 장막은 이제 곧 무너질 때가 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집인 하나님의 집에 갈 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는 노력을 하면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숨이 더 찼는데 나이 들어 세월이 가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20년 동안 다닌 병원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니 그러면 검사를 해 보자고 하셨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니 심장에 흰색 선이 보인다고 말을 하며 잘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큰 긴장이 되면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큰 문제없이 살아오다가 갑자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고 하면 딸이 얼마나 놀라겠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또 되었지만 어차피 혼자는 병원에 갈 수 없으니 고민 끝에 딸인 연*자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원에 함께 가자며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식욕도 사라지고 그저 걱정만 앞섰습니다. 대학 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라는 열흘의 시간 동안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고 잠도 안 오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가지 검사를 제안함과 동시에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큰 금액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하니 80이 넘은 늙은 나이에 수술을 하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에 대한 염려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자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딸은 경제적인 것을 고려하지 말고 제일 마음이 편한 대로 결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딸은 수술에 대해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뒤로 몇 번 병원을 간 끝에 결국 의사선생님에게 수술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을 거면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 검사를 갈 때마다 특별한 징후가 없어서 석 달에 병원에 가던 것도 두 차례 정도 갔다가 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크게 아픈 것 없이 멀쩡합니다. 그 사이에 저와 제 딸은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은 때로는 기도 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그것이 곧 잘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를 만나서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지 않아도 나랑 한 식구들이 내면 된 거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딸이 십일조는 꼭 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좋은 것만 달라고 하지 말고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내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주셔서 깨닫게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특히 제 건강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제게 준 생명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삶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지키며, 장막이 무너지고 주님과 함께하는 새 집을 얻을 때까지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은혜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저를 끝까지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장정*자매 가족 사진(왼쪽에서 두 번째 장정*자매)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성도간증] 대학부 영은회 다녀와서

    [성도간증] 대학부 영은회 다녀와서

    *영은회 소감발표 

    [김현영 자매님]

    할렐루야!  3박 4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화요일 예배도 드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 주제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였고 거룩이라는 키워드로 제사와 성막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그동안의 예배 자세를 되돌아보았습니다.  평소 저는 예배와 하나님의 일이 세상 그 어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예배 시간을 귀히 사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 많고 실수 투성이인 저의 모습들이 더 드러나는것 같아서 회개의 기도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레위기를 그냥 읽기만 했을 때는 제사와 절기가 복잡하고 되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라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들으니까 절기와 제사들이 모두 하나님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거였더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항상 계실 수 있도록,  삶 속에서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민준 형제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학부 영은회 소감 발표하겠습니다. 교재를 이렇게 들고 나왔는데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라는 주제로 영은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이 레위기 20장 26절인데 레위기하면 항상 가지고 있던 인식은 성경 공부를 할 때마다 제일 기피하고 싶었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복잡하게 많은 구절들이 있고 한 법을 읽는 것 같은 어려움이 들어서 기피하게 됐던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느낀 것은  참 많지만  짧게  3가지로 간추려 보았습니다.

    첫 번째, 예배는 하나님이 사람한테 주신 너무나도 귀한 은혜다라는 것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잖아요. 만약 이 제사가 없었다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도 모른 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됐을 거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배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고 아찔하더라구요. 그래서 예배라는 방식을 주신것이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졌고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속성을 받아서 비로소 거룩해질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거룩함을 가지고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람은 거룩이라는 걸 원래 가질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오늘 저녁예배 주제와 겹치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라는 것입니다. 영은회를 갔을 때 이제부터 다시 영성 관리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 읽기를 다시 시작을 했는데 그때 읽은 말씀이 시편 144편 이었거든요.  1절에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이런 구절이 있는데, 확실히 하나님께서 저의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라는 것을 공감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잖아요. 많은 악들과 싸워야 되는데 계속 싸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고 두려움에 떨게 되는데 영은회를 통해 하나님과 계속 가까이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치유시켜 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돼서 감사했습니다.

    세 번째, 우리 모두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라는 한 가지의 목적만 생각하고 임해서 그런지, 어떤 날은 달갑지 않게 다가올 때도 있었는데, 예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은혜라는 걸 깨닫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써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또 말세에는 성전 밖마당에 있는 자들은 모두 세상에게 짓밟히게 된다라는 말씀도 기억나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신 은혜라는것!  제사장이라는 이 직분을 성막과 제사를 완성을 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완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리해보면 영은회나 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메시지는 네 주변에 하나님을 같이 섬기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라는 것,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여러 직간접적인 기적들을 통해서 보여주셨는데 이번 영은회때 주신 가르침은 사뭇 다르더라구요. 네가 앞으로 이런 일들을 해야 된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점점 나아가야 된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받기만 할 게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일을 해야 되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고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하은 자매님]

    할렐루야! 사실 저는 올해 2월에 대학교를 졸업을 해서 대학부 영은회 가는 게 조금 부끄러웠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그런 마음으로 갔는데 제가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저의 담당 아이들을 그날 일을 못하게 되면 다른 선생님이 대신 제 담당 아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써줘야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가 영은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원장님이 다른 선생님께 주시지 않고 바로 학원에 오지 않게 해서 제가 따로 신경을 써야 되지 않고 온전히 영은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것도 하나님께 참 감사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우리 민준이랑 현영이가 강의 내용을 너무 잘 발표해 주어서 저는 좀 더 짧게 말씀드리자면 레위기는 항상 창세기나  민수기처럼 앞에 있기 때문에 성경통독을 매 해 새해 시작하면 쉽게 읽히는데 그만큼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양질의 강의를 통해서 이건 이런 뜻이다. 이건 이런 상징을 갖고 있다라는 걸 배우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육체적으론 피로할지라도 정신은 말똥말똥하게 열심히 노트를 받아 적었던 것 같아요. 옆에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도 너무 열심히 강의에 타자를 치고 펜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더 자극도 됐던 것 같고, 또 영적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잃지 않아야 된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사실 성인이 된 이후 제 신앙은 저의 몫인데 이전까지 부모님 땜에 손에 밀려 교회를 왔다지만은 이제는 제 몫으로 제가 스스로 내 신앙을 갈고 닦아서 꼭 그 천국에 가야 되는구나.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게 중요하구나를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성령이나 세례는 중요하게 많이 언급이 되는데 예배는 좀 소홀하게 제가 생각했던 부분도 있던 것 같아요. 특히 예배때 항상 제가 늦죠.  어떻게 보면 예배는 목자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설교를 하시니까…… 그런데 예배는 내가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정말 잘못 생각했었네 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하다”라는 말은 구별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제가 살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거룩하고 구별된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참예수교회 대학부로서 사람들에게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양원 형제님]

    최하은 자매님처럼 저도 나이 때문에 마지막 대학부 영은회가 될 것 같은데, 이번 주제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라는 주제를 보고 과연 내가 다른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번제는 가장 흠이 없고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저에게 가장 귀한 것! 시간, 공간 그리고 질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활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참예수교회로 개종하다

    서도교회 고 장달순(영명: 장안나) 집사님이 저희 친정 작은 어머니에요. 저를 임신했을때까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제가 태어나서 몇 살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예수교회로 개종을 하셨어요. 제가 살던 곳이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라는 곳인데 작은 어머니 계실때 교회가 세워졌어요. 돌아가신 허야곱 장로님이  시댁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어머니랑 교회에서 심방 다니셨던 것이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제가 7세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도 아마 교회를 다니셨을 거에요.

    저의 친언니는 고 권묘남씨인데 어릴 때 저랑 같이 믿었어요. 교회 다니다 보니 제사라든지 그런 걸 몰랐어요. 항상 어머니가 교회 가시니까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녔고 엄마 옆에 앉아서 예배 드렸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

    그때는 영은회를 1년에 한 번씩 한게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전체 영은회였어요. 14살 영은회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 받고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았어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일찍 성령을 받아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그날 한꺼번에 다 받았어요. 세례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늦게 받았어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간 언니집에서 많이 지냈거든요. 형부가 군대 가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은회 참석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제 친구 황남옥 자매라고 지금 강남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그날 같이 세례를 받았어요. 성령도 같이 받고요.  세례를 주신 목자님은 누군지 생각이 안나요.

    교회 앞에 물이 있는데 세례받기가 좋았어요.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고 방언이 나오더라고요. 그당시 우리 또래들이 상당히 많았었어요. 지금 서도교회 이정을 장로님이 나보다 한 살 어려요. 같이 컸어요. 근데 저보다 성령을 미리 받았어요. 세례식 끝나고 교회로 와서 다 함께 또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그치지를 않았어요.  방언이 나오면서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구요.

    성령 받은 후 황남옥이라는 친구집이 노봉 교회에서 오리쯤 되는데 밤에 그 친구랑 산길을 둘이 손잡고 찬송 부르면서 가고 새벽에 또 기도하러 노봉 교회까지 오고 그랬어요. 어떤 찬송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랑 그렇게 찬송부르며 새벽기도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나요. 교회 다니면 성경도 순서대로 노래로 배우잖아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그걸 외워놓으니까 성경 찾기가 좀 쉬웠어요

    ♣작은어머니에 대한 추억

    제 기억으로는 노봉교회(서도교회 전신)에는 저희 작은어머니가 유필순 집사님과 사택에서 살고 우리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우리 집에 가마솥이 있으니까 교인들 밥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어요.

    저희 작은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우리 강아지 강아지!” 그랬어요. 제가 성령 받았을 때도 “아이고 내 강아지 성령 받았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자주 함께 잤어요. 교회 와서 자면 새벽에 작은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다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시며 “내 새끼 일어나! 일어나! 기도하자. 엄마랑 기도하자.” 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난 저는 작은 어머니처럼 기도를 오래 하진 못했어요. 작은어머니는 하루 2시간씩 아침에 일어나시면 성령으로 기도하셔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면 오늘 금요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토요일 오전 예배 끝날 때까지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때는 오전 예배만 드렸잖아요.

    금식 기도도 작은어머니 따라서 하게 되는 거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 오래 하시고 기도 시작하기 전에 “너는 조금만 하고 가서 자라.” 그러면 저는 “그래 나 조금만 하고 잘게!” 작은엄마는 보통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셔서 저를 깨워요. 교회에 괘종시계가 딩딩 치잖아요. 작은 어머니는 6시 될 때까지 기도하셔요. 그러고 기도 끝나면 “성경 읽자! 몇구절만 성경 읽자.” 그러면 또 같이 성경 읽고…

    저는 작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했어요. 작은 어머니가 자손이 없어요. 그래서 조카딸들한테 엄청 잘했어요. 저는 오빠 하나에 딸 다섯으로 6남매에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다 그렇게 예뻐했어요. 어딜 다녀 오시면 신발도 사다 주시고 옷도 사다 주시고 ….

    작은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작은엄마는 34세쯤 혼자 되셨대요. 과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신 분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쌍하지요. 시집 와서 남편 여의고 자식도 하나 없고 그렇게 혼자 사셨잖아요. 나중에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희오빠집에 와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영석이와 영근이가 오빠의 자녀들이에요. 제 조카들도 지금 교회를 안나오고 있어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하다

    15살 되던 11월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장동으로 이사했어요. 고 고정희 모친이 저희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에요. 옛날에는 차편도 불편하니까 마장동에서 철둑가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죠. 제가 저희 어머니 손잡고 모시고 다녔어요. 어머니가 앞을 잘 못보셨어요. 살다가 중간에 눈이 어두워지셨어요. 그런데 안식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못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마다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무렵 큰언니가 퇴계원으로 이사를 왔어요. 저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10년이에요. 저는 조카들을 돌봐주면서 언니 집에서 지냈어요. 조카들이 어리니까 언니도 저도 교회를 자주 못갔어요. 회기동 교회 정은진 목자님이 가끔 심방을 오셨어요. 그리고 교회를 한 번씩 갈때는 조카를 업고 다녔어요. 이강분 자매 동생 이명숙 조카를 포대기로 업고 갔어요. 어떨때는 오빠네 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토요일 날 명숙이를 업고 교회를 갔어요.

    믿음결혼을 하다

    시골에 형부가 계시는데 저에게 시골 가서 뭐 좀 배우라고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산지 얼마 안되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가서 작은집에 가서 지냈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총각때 객지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고 제대후 집으로 좀 와 있어서 전주교회를 다녔나봐요. 그때 작은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대구를 갔는데 대구 기차 역전에서 우리 집 아저씨를 알아 봤대요. 어려서 봤으니까 얼굴이 남아있으니 알아본 거예요. 그때 인연이 되어 저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믿음 결혼을 하게 된 거지요. 결혼식은 서도교회에서 했어요. 김디모데 목자님이 주례를 보셨어요. 그 당시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 생각 없었던거 같아요. 신혼 살림은 전주에서 시작했어요.

    시댁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마음 내려놓기

    남편의 어머니는 계모였고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었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 싸우는걸 보면 저는 자리를 피했어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동안 소화를 못시켰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 왔어요. 오빠네 집으로 와서 3개월 살았을 거예요. 방을 얻어서 나갈 때까지 교회를 못나갔어요. 항상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은 있었지만 결혼후 현실적인 생활이 신앙생활을 가로막았어요.

    저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고 늘 생활신조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교회를 다닐때도 ‘이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못 나가.’ 그런 마음이 전혀 없고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잘해야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해도 내가 안 들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되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하고 말다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배려를 해서 그런지,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왜 그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우리 집 아저씨와도 싸울 일이 있으면 말을 안했어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하고 그걸 속으로 다 삭히느라 그런지 소화가 어느 날부터 안 되고 밥을 먹으면 체해서 구토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속이 편해졌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신경 쓸일이 적어지니 괜찮아진거 같아요. 교회는 결혼하고 3년 정도 못나간거 같아요.

    자녀를 낳다

    제가 딸을 22살에 낳았는데 딸 낳기 전쯤 다시 교회를 나갔어요. 두 달된 딸을 세례를 바쳤어요. 제가 교회를 어려서 다녔던 믿음이 있어서인지 교회를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살았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딸을 정월 초에 낳았는데 낳은지 20일쯤 되어서 세례를 바쳤어요. 굉장히 작은 갓난아기 핏덩어리를 세례를 바쳤어요. 세례바치고 아기를 안고 물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둘째 용환이는 조금 커서 3살쯤 돼서 세례 받았어요. 셋째 정환이가 못 받았어요. 정환이를 29세에 낳았는데 그때 살기는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무슨일 때문인지 교회를 좀 못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으면 세례 바쳤을 거에요.

    큰딸 은순이가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워낙 불교가 심하니까 신앙생활을 못했어요.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 다녔을 거에요. 혜영 사모님이랑 잘 알아요. 같이 교회 다녔어요. 제가 집에서 조금씩 부업을 했는데 셋이 학교 다니니까, 직장을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못나간거 같아요.

    신앙을 회복하다

    몸은 못가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있었어요. 부천에 살았는데 양봉도 목자님이 거기까지 심방을 와주셨어요. 두내외분이 오셨어요. 그날 직장 쉬는 날 오셨더라고요. 심방 예배때 405장을 부르는데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이 찬양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되었어요. 교회를 갈 수가 없었는데 제 쉬는 날 심방 오시고 전화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 신앙이 점차 회복되어 간 거 같아요.

    목자님이 전화도 자주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작은어머니 밑에서 커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항상 ‘내가 교회를 가야지, 나 교회 안 나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살기 어렵고 입는것도 여의치 않아서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니가 교회를 더 잘 다니면서 교회 소식을 저한테 많이 전해줬어요. 언니는 저보다 열심히 더 다니셨어요.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

    저의 성격은 친정어머니 닮은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삭히고 참고 인내했던거 같아요. 어머니랑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는 옛날 얘기 같은 걸 잘해 주셨어요. 누가 집에 뭐 팔러 오면 어머니는우리 올케한테 “그 아지매~ 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여서 보내라. 내 집에 온 사람 그냥 보내는 거 아니다.” 하셨어요. 밥 꼭 챙겨주라 하고 시골에 살 때도 장사하러 오는 사람 있으면 우리 집에 다 재워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다 자고 갈 줄 알았어요.

    서도교회 나들이

    한 3년 전쯤에 동부교회에서 목자님과  한나반, 다니엘반이 서도교회, 남원교회, 전주교회로 나들이 간적 있었는데 한가지 후회되는게 있더라고요. 옛날 서도교회를 뜯었더라고요. (우리 작은어머니 당시 지은 노봉교회) 옛날에는 흙집이었잖아요. 그게 흙집인데 그걸 다 뜯었더라고요. 건물 지을때 상량 올린다고 그러잖아요. 가운데 나무에 교회 지은 년도가 아마 써 있었을텐데 나무 뜯은 걸 쌓아놨는데 상량을 보고 왔더라면 몇 년도에 지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더라고요. 그때는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후회되더라고요.

    나의 신앙생활

    예전에는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안 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교회 안가서 어떡하나? 다음에 교회가면 기도를 뭐라고 하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요즘은 몸이 아프니까 안수기도를 좀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안수기도 받으면 눈물이 너무 나와서 받을 수가 없어요.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나와요. 눈물 나오면 좀 힘드니까, 마음이 울컥하고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러는 거겠지! 믿음이 강하면 그러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제가 어릴 때 외운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구절이 항상 머릿속에 담아있어요. 어렸을 때는 한 4~5번만 외우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올해 내가 81살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그냥 많이 안 아프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아프면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저녁에 잘 때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제가 7개월을 교회를 못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유튜브로 예배는 드렸어요. 아들이 아이패드를 사주어서 저녁에는 유튜브로 예배하고 있답니다.

    큰딸 은순이

    제가 요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음이 제대로 안 걸어 지거든요. 예전에는 계단 80개는 손도 안 잡고 올라갔는데 지금 1개도 못 올라가요. 제가 딸과 함께 걷다가 딸에게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 이렇게 니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 그랬더니 딸이  “엄마 희망사항이지 뭐.” 하길래 “그렇게 말하지마! 그렇게 될른지 몰라. 그렇게 얘기해야지.” 했어요. 우리 딸도 참예수교회에서 학생때까지 신앙생활 했기때문에 항상 마음은 있더라고요. 참예수교회가 참 좋았는데…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큰아들 용환이

    가끔 용환이한테 “어떻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해야 교회로 올 건가?” 그렇게 얘길하면 “엄마는 참~ 내가 가게 되면 가는데 뭐 그렇게 말을 해.” 영은회가 돌아오는데 용환이가 이달 말일까지 엄청 바빠서 엄마집도 못온다고 하네요. 건강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교회 동욱형제와 같은 나이면서 생일도 똑같은데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가끔 애가 타서 아들에게 “나 살아있을 때 교회 가는것을 좀 볼 수 있을라나, 없을라나.” 하며 말을 붙이곤 하지요.

    작은아들 정환이

    작은 아들은 내 성격을 좀 닮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는 좀 뭐든지 다독이고 누르는 성격이거든요. 정환이한테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 “너는 내 말 듣냐? 내 말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러면 아들은 “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누구 말 듣고 컸어요? 엄마 말 듣고 여태 크고 장가 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했지. 엄마 말 잘 들었지. 어디다 써놓질 않아서 보여주질 못하겠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딸에게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형제를 잘 챙기고 형제 의좋게 살아라.” 라고 해서 그런지 의좋은 모습 보면 감사해요. 아이들 어릴때 맘대로 못 먹이고 항상 안쓰럽기도 했지만 야단치지 않고 기를 정도로 착했어요. 자녀들이 착하게 커줘서 사춘기라는 걸 모르고 컸어요. 부모 속을 안썩이고 말 잘 듣고 순순하게 잘 커준 자식들이 고마워요.  지금도  3남매가 의좋게 사는 모습이 감사해요.

    지금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 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부군 살아생전 함께 찍은 사진*아드님이 사 주신 아이패드로 성경도 보시고 유튜브 설교도 들으신다고 하심 *교회 활동 모습 / 해마다 성경 통독 하시고 사진 찍으신 모습 

  • [성도 간증] 순종의 예스맨_배태준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단기신학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단기신학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은 총 3년차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이번에 1년차 과정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제가 1년차를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보니 5년 전 202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때는 단기 신학에서 제일 막내였는데, 어느덧 단기신학에서 나이가 많은 OB쪽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단기신학을 통해서 받는 은혜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서 받은 은혜와 기쁨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교제의 기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단기신학은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2주 동안 함께 단기신학을 하는 단기신학생님들 모두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면서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2주 동안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기쁨과 위로와 은혜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단기신학생님들께서 하나님 말씀 배우기에 열심을 내고, 온몸과 마음으로 찬양드리고, 힘을 내어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단기신학에 모인 신학생님들의 모습에서 제자도를 정말 충실히 걷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제 스스로가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 가는 목적은 결국에 무엇이지요? 물론 다른 신학생님들과 교제하는 시간도 좋고 빼놓을 수 없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말씀의 은혜와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간증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을 통한 기쁨과 은혜입니다. 1년 차 때 배우는 과목들은, 3년차도 물론 정규와 비교한다고 하면 개론서의 개론의 개론도 안되겠지만, 특히나 1년차는 더욱 개론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핑계를 대자면 5년 전에 들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평소에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제가 하나님 말씀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제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말 무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학생부 영은회 교사를 준비하다보니 자연스레 족장시대 인물들에 대한 말씀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족장 시대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모두 미숙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고, 히브리서를 살펴보면 미숙한 모습이 아니라 이런 성숙한 모습을 기억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제 부족함과 미성숙함에 자꾸만 눈길이 가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많은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개성 넘치는 족장시대 인물들의 신앙의 길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아가는 행복의 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너무나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신약개론, 구약개론, 사복음서, 민수기, 여호수아, 레위기, 창세기 등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단기신학 중에 목자님께서 “단기 신학생들이 올해는 예스맨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제가 단기신학을 마치고 본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동교회에 가니까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태준아, 오늘 기도회다.” 그래서 저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냥 오늘 어떤 예배를 드리는지 말씀해주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래서 오늘 네가 기도회를 인도해야 한다.” 제가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기신학 때 배웠던 말씀들을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비록 재탕이지만 단기신학 때 했던 기도회 인도 내용을 가지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회가 끝나자 어머니가 또 말씀하시더군요. “태준아, 내일 찬양 인도할 사람이 없다. 오전과 오후 둘 다 준비해 놓아라” 제가 또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종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을 통해서 정말 많은 기쁨과 은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부족함 많은 이런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돌리며 이상으로 간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배태준 형제

  • [성도 간증]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요_변려원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3박4일 동안 무사히 영은회를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깨닫고 느낀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은회를 통해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하나님께서 이끄신 믿음의 길을 간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배울 때, 저는 아브라함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만 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지으며 점점더 믿음이 견고해졌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연약한 모습에서 후에는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저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며 종종 엇나가지만 교회 안에서 더 열심히 배우고 깨달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로 이삭과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항상 순종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이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삭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좋은 완전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이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에 대해서 배울 때,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자로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믿지 못하고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가고 있진 않을까 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번 영은회에서 들은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 깨달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이번 영은회에서 배운 것들을 다짐하며 쓴 기도문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영은회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길을 걸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과 유혹이 있었지만 점점 더 견고해지는 믿음을 보며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저 이지만 항상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고 저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살아갈게요. 세상에서 구별되는 빛과 소금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게요.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담담히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칠 믿음과 이삭의 조건 없는 순종, 야곱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깨달음, 요셉처럼 유혹을 뿌리치는 힘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을 본받아 믿음의 길을 걷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의 끝에서 모두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되길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변려원 자매

  •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교회에서 간증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선뜻 순종하지 못하고 며칠 간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도회에서 저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분들은 알 수 없다’ 였습니다. 잃은 양이었던 제가 어떻게 교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크고 작은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처음 하나님과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5살 무렵이었습니다. 이미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던 외할머니가 참예수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며 다른 교회에 다니시던 엄마에게 참예수교회에 나오기를 여러차례 권면하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는 분이셨구요. 당시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아빠는 여러 곳을 전근 다니시다가 청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그 때 처음으로 집을 짓게 되셨습니다. 당시 대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인데 저희 집은 교회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걸어서 교회에 갈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엄마가 그 전에 다니셨던 (교회를 A교회라 한다면) A교회에 건축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갑자기 이사오게 되는 바람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모르셨는데 건축 헌금을 받아내려고  A교회 분들이 (이사 간 집 주소를 모르니) 아빠의 직장으로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청 당황하셨고 화도 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이지 나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지킨다. 참예수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하셨고 참예수교회를 받아들이시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부부간의 엄청난 불화가 될 수 있는 사건을 통해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아빠를 제외한 엄마, 오빠, 언니(지금은 잃은 양), 저 이렇게 네 식구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잃은 양인 언니가 저처럼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식구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부끄럼이 있었지만 찬양도 하고 율동하는게 좋아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교회보다는 학교생활이 재밌어졌고 특히 컴퓨터 담당 선생님이던 담임선생님이 토요일 오후에 컴퓨터실을 온전히 개방해 주셨기 때문에 점점 방과 후 시간이 재밌어졌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멀리하려는 마음이 더 생겼고 제 안에는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도 나름 잘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도 형제 자매님들이 찾아오셔서 기도도 해 주셨지만 ‘조금 더 이따가 지금 아니야.’ 하는 등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더 미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약 10년간 살게 되었고, 강남교회에 있는 오빠가 교회에 오기를 권면해서 3~4번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요. 지금처럼 전도 초청 예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강남교회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반 이상 되는 거리였고 오빠가 매번 데리러 오기에도 꽤 먼 거리였습니다. 더 가까운 거리의 참예수교회도 있었지만 혼자서 가 볼 생각은 못 했던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멀어져 있던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문을 나서기만 해도 크고 작은 교회가 아주 많이 있었는데요.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면 가까이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그냥 가까운 교회에 가도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설교를 하시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들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 있는 저를 염려해서 엄마가 가끔 저희 집에 오셨는데요. 그 때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전했고 외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참예수교회에 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우리 교회의 교리, 10대 신앙 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목자님께서 구원이 교리에 담겨있기 때문에 교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설교를 하셨는데요. 그 말씀을 들으며 참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심을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그렇게 또 한 걸음 교회로부터 멀어졌지만 내가 교회에 간다면 참예수교회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에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도 청주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청주에서 살기로 했고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두 집 중 남편이 저에게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었고 두 집을 차례로 가 보았는데요. 두 집 중에서 사이즈가 더 작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제가 고른 집은 다시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습니다. 그 때는 이전 교회에서 지금 교회로 이전하려고 건축 중일 때였지만 청주로 와서 엄마의 권면으로 안식일 오전 예배 정도만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건축 중인 교회 소식에 깜깜이었습니다. 

    그 날도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려는데 아는 분을 보았습느다. 저희가 신혼집을 얻을 때 도와주신 공인중개사 분이셨습니다. 복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교차로에서 집을 구했고 그 때 중개사님은 친구의 집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친밀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분은 전도되어서 교회생활을 하고 계신 문자매님이셨습니다. 문자매님을 만나고 돌아서 나오는데 또 마주친 분은 저희 집 1층에서 떡집을 하시는 떡집 사장님이셨습니다. 이미 전부터 우리 교회에 떡을 납품하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교회에서 집으로 가시며 주셨던 떡이 1층집 떡이었습니다. 그 떡을 보면서 ‘하나님께 바로 돌아올 수 있는데 나도 이 떡처럼 돌아 돌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의 위치며 나와 관련이 있는 두 분을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구나 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니님께 무조건 항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온전히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토요일은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고 가족 간에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시댁 어른들은 감사하게도 가족 모임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꿔주셔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임신하고 큰 아이를 낳고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도 낳았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기도할 때면 성령을 간구했습니다. 2011년 5월에 봄 영은회가 있었고 이번 영은회는 새벽 예배까지 꼭 참석해보자 하는 마음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 기도 때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목자님이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 같다며 더 기도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부산교회에서 소감사 집사님이 영은회 참석하시려고 와 계셨는데 집사님께서도 성령기도 소리를 들었다며 저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에 기도하는데 마음이 뜨거워졌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가 돌아온 것을 정말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교회로 돌아온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고, 복 중에는 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두 배로 축복 받은 것 같았습니다. 큰 아이가 6살 무렵 엄마는 언제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궁금해 했었는데 “하나님께 저도 성령받고 싶어요~하고 기도 드렸더니 성령을 선물로 주셨어. 그리고 의윤이가 뱃속에 있을 때 성령을 받아서 더 기뻤어.”했더니 “그럼 엄마는 성령을 상품권으로 받았어?” 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장 38절)

     

    어릴 때 자녀를 낳는다면 2명 큰 아이는 딸, 작은 아이는 아들을 낳고 싶어라고 얘기했는데 철 없이 한 얘기도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남편도 같이 신앙 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아이들이 어릴 때 영은회에 초청해서 교회에 오기도 했지만 아직 제 태신자로 남아있습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둘째만 집에서 보고 있을 때 자매들은 그 이전부터 플룻 배우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저한테도 같이 해보자고 했고 계이름은 읽을 수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권면 끝에 배우기로 했고 작은 아이를 엄마가 봐주기로 하셔서 편한 마음으로 점심까지 먹고 올 수 있었습니다. 연주를 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노래나 찬양을 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에 곡을 배우면서 찬양도 많이 들었고, 찬양을 들으면서 노랫말에 집중하니 찬양이 주는 은혜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플룻을 배우기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다과도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매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고 자녀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플룻을 배우는 시간보다 교제하고 점심 먹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의 내 모습과 일상 생활에서의 내 모습 간에 간극이 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는데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일을 해봐도 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하게 되었고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눈치보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에게 남편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하자고 하는 것은 아직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신앙 양심이 찔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번 돈이니 떳떳하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1년 정도가 지났고 사정이 생겨서 일하던 곳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년이 되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고 급여가 나온 뒤 얼마간 있다가 퇴직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연스레 급여에서 십일조를 했지만 뒤이어 나온 퇴직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있다가 십일조를 해야지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급여를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십일조 하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부끄럽지만 한 달 이상을 미루다가 퇴직금에 대한 십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토요일마다 교회 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가기 전에 집에 들러서 가져가라고 메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그 날도 교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집에 들르라고 하셨고 어머님이 애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큰 아이에겐 더 많이 주시고 작은 아이에겐 좀 더 적은 금액을 주셨는데 그 금액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 낸 십일조는 몇 천원 단위로 끝나는 금액이었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시곤 정리하실 때 그 몇 천원까지 같이 흘러나와서 “이것도 가질랴?” 하시면서 작은 아이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참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부끄러운 가운데 하나님은 제가 깨달아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로부터 간간이 제 오빠의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오빠도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엄마를 위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각하고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신장이었는데요. 2017년 말 경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애진 자매가 병문안 때 오빠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곧 신장투석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투석을 하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투석은 되도록 늦게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염려, 생활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을 언니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가족 중에 이식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뒷바라지가 필요한 중학생 자녀를 둔 언니보다는 아이들이 어린 제가 해 주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조카는 이미 국악으로 진로를 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엄마에게 내가 이식을 해주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안타까워하셨지만 마음먹은 대로 진행했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기도를 하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도 시댁 어른들에게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결혼 초에는 시댁도 낯설고 아이들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씩 어떨 때는 1주에 한 번씩 가는 것이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이번 허락으로 그 동안의 수고가 보상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시댁에 갑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고 만일 누구라도 안 된다 했으면 마음이 상했을텐데 승낙을 받고 하나님께는 물론 허락해주신 시댁어른들께도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오르며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본적인 건강 검진, 신장에 대한 정밀한 체크, 지능에 대한 검사도 있었습니다. 걱정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로해 주셨는데요.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병원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리(사 41장 10절)

     

    다행히 수술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게 되었고 수술 후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저희 아이들은 언니가 맡아주었고 제 간호는 엄마가 맡아주셨습니다. 마침 수술 날짜가 둘째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이모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랜드도 가고 재밌는 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고, 4일 째 되던 날 자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청주에서 병문안을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빠는 수술 후 무균실로 들어갔기에 병원에 오셔도 만나실 수가 없었고 저는 아파서 수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회복중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시기로 한 날에 하필 비가 장마처럼 내렸고 오시기도 힘드셨을텐데 송집사님 허집사님을 포함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애진자매를 위로하러 마침 강남교회에서도 자매님들이 오셨습니다. 이 자매님들은 저와 잘 알지 못했지만 목자님을 비롯해 청주교회의 자매들과는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천국에 가면 알지 못하는 우리 성도들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교회를 일찍 떠나서 학생이나 청년때 영은회를 참석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다른 지역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만난 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준비할 때부터 중환자실에 있을 때, 퇴원할 때까지 오빠를 위해 기도 해주시고 혈소판 헌혈까지 마다하지 않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함께 기도해주신 성도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록 오빠의 수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 때 깨달은 것이 있는데요. 이 순간에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 결과가 좋게 해주세요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뜻대로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중에도 기도해야 하고 또 같이 하는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지 않는 저희 남편과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도 있는데요. 제가 목요일에 전도심방팀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회의에 참석하고 엄마도 뵙는 날로 정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니, 저만 시간에 늦지 않도록 준비하면 되는 날인데 갑자기 남편이 제 차 키를 찾으면서 본인 차는 회사에 두고 왔으니 제 차를 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남편의 직장이 천안이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전날 미리 얘기를 해주던지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선택도 할 수 없게 한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엄마께 전화를 드려서 상황을 설명드리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용담동에 있는 구옥을 가끔 살피러 가시곤 했는데, “네가 오지 않으면 난 용담동 가서 있다 올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4시경, 오랫만에 아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괜찮으시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안부를 묻는 것인 줄 알고 건강히 잘 계시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엄마가 계신 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 언니는 엄마가 사시는 건물 맨 뒷 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엄마께 전화를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엄마는 아직 용담동에 계셨습니다. 건물의 구조가 1층은 필로티이고 주차장으로 사용했는데 거기에 주차 해 놓았던 차에서 화재가 시작되었고 차량 2대가 전소될 만큼 많이 위험했습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화재는 왼 편에서 났고 엄마의 집은 오른편이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만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보니 집안에도 검은 그을음이 있었고 공기가 탁해서 숨쉬기가 불편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장 집에 들어 가셔서 생활하기에 불편하셨는데 상황이 더 안 좋았던 분들은 주민센터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엄마는 용담동 집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한동안 생활하셨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으셨습니다. 그날 위험이 있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눌 수 있는 간증이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처음엔 좋게 대화를 시작했다가 결국 기분이 안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대화하게 되었는데요. 남편은 애들을 위해 트리도 해주고 싶어하고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싶어했습니다. 성경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라고 되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예수님은 그 날 태어나지도 않으셨다고 했더니 성경에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해서 싸움하던 중에 성경을 펴고 둘이서 읽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저는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남편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새 밥을 지어 놓고 나오는데 그 날은 밥이 너무 잘 됐다고 얘기하니까 할렐루야! 라면서 남편이 농담을 했습니다. 남편은 할렐루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녁 식사 당번 때 저희 조 단골 메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인데 너무 맛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싸다 주곤 했는데 그 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남편에게 김치찌개가 생겼고 “어제 내가 당번이었는데 우리도 김치찌개를 하잖아. 어제는 싸오지 못했는데 너무 잘 됐다.”하니 “그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냐?”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편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조금씩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말을 듣는 제 마음도 달라지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를 세워주고 계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찬양 중에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이라는 찬양을 할 때마다 우리집은 아니야에서 우리집은 아직 아니야로 아직 아니야에서 우리집도 그렇게 이끌어 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저희 가족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눈높이에 맞는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제 옆에 동역자를 주셔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준비하는 이가 더 은혜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글작성 : 김정민 자매

  • [성도간증]여기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요!

    [성도간증]여기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요!

    할렐루야!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함께 은혜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저를 선택하시고 참 진리 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저는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입니다. 참예수교회 모태신앙입니다. 아버지는 소천하신 삼계교회 한상욱 집사님이시고, 어머니는 현재 삼계교회에서 믿음을 이어 가고 계신 권정임 모친이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주 5일제가 아니었습니다. 토요일에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라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저는 차로 15분 정도 소요되는 삼계교회에 부모님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영은회 때 일요일 예배를 드려보는 정도로 참예수교회를 갔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의 믿음은 농사를 지어 1남 7녀의 줄줄이 이어지는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느라 삶에 찌들어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에 전념하시지 못해 자식들에게도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 주일교회가 생겨 일요일마다 그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도 가지 말라고 하시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인천에서 직장취업 후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저는 일요일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법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단원으로 봉사하면서 열심인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던 친언니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에게 같이 예배를 한번 드려보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언니를 신뢰하고 있던 터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심도 있게 성경을 공부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들려주는 세계 역사와 다니엘서 비교해석, 잘못된 주일성수, 성탄절의 진실 등 놀라운 성경의 비밀들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교리 안에서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출석하고 있던 인천의 한 장로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등록하여 한 달 남짓 다니며 교리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언니도 회기동에 있던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안상홍 하나님이 인간으로 다시 와야만 했던 이유와 성경에 기록된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의심이 생겼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발길을 우선 끊었는데 그렇다고 잘못된 주일교회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무렵 제가 장로교회에 다닐 때는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던 친정 아버지도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잠도 못 주무시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다  그 당시 인천교회 담임 목자님이셨던 양봉도 목자님께 전화를 하셔서 저를 좀 구해 달라고 부탁하셨었나 봅니다. 그 당시 인천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계셨고 지금은 대방교회에 계시는 유영무 형제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양봉도 목자님을 한번 만나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옳은 교리가 무엇인지, 성경대로 가르치고 지키는 교회가 어디인지 찾고 싶었던 저는 유영무 형제님의 제안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양봉도 목자님을 만나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다양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들을 양봉도 목자님께 들었습니다. 세례, 성령과 방언에 대한 진리, 성부성자성령의 세 하나님의 이름들이 아닌 예수그리스도 하나이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안식일의 중요성 등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삼계교회와 그 당시 방문했던 인천 간석동의 교회에서 저는  화려하지도 고급지지도 않은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옷차림도 한없이 소박하고 허름함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너무나도 빛나고 값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았던 참 진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과 외할머니께 들었던 새벽기도 소리와 들려 주신 말씀들 속에 녹아 있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셋 민족이 살고 있는 짧은 길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지 않으시고 40년 긴 광야 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진리의 거룩한 곳에 모태신앙으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쉽게 들어오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를 이곳 저곳 일반교회, 하나님의 교회를 떠돌고 돌아 돌아 어렵게 찾게 하셨고 어렵게 찾은 그것이 참 진리였음을 깨닫게 하시고 비로소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저를 향한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참 진리를 절대 떠나지도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 믿지 않던 남편을 만나 참 진리 안에 있으며 시어머님과 22살인 아들과 함께 인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서울에 있는 언니도 하나님의 교회를 나와 현재 강남교회에서 믿음 생활하고 있습니다. 소천하신 친정 아버지도 제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을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현재 삼계교회에 다니시는 친정 어머니도 저희 남편과 저를 매우 기쁘게 바라보십니다. 남편은 올 해 집사 안립을 받아서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안식일 봉사로 시골 친정 어머니를 거의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하시고 주님 일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인천교회에서 믿음 생활한 지도 이제 25년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너무나도 믿음이 연약했던 제가 그 동안 교회 임원,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어 하고, 최근 인천교회 성도수가 많이 감소해서 하나님 앞에 죄스럽고 낙심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열심히 진리를 찾았던 25살의 저 자신을 소환합니다. 어떻게 만난 귀한 곳인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저에서 살 소망을 준 이 곳, 그리고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그 감격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평생 멸망의 길에서 헛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던 저를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로 인도해 주심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참예수교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친정 아버지, 양봉도 목자님, 유영무 형제님, 김명애 자매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 있지만 저와 제 남편의 믿음이 연약할 때 우리 세 식구를 안식일 마다 차 태워 교회로 인도해 주셨던 김기환 형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꼭 돌아오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 [성도간증]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성도간증]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청주교회의 모태인 운암교회가 있었던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종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이 무조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은 자녀의 신앙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로 바쁘셨고 피곤한 육체를 이끌고 힘들게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집안의 형편도 어렵고, 청주교회의 상황도 너무 힘들다 보니 학생부 영은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성령을 못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먼저 성령을 받는 모습을 보고 샘도 나기도 하고, ‘나는 왜 성령을 못 받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 교회도 안식일교회나 여호와 증인처럼 혹시 이단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 가족들이 다 이단에 빠진 것일 수도 있어’라는 의문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화요일 예배시간에 허야곱 목자님이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예배가 다 끝나고 나서 갑자기 목자님이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앞에 나와서 같이 성령받기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5명 정도의 학생이 강대상 앞에 나와서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을 못 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그날 드디어 저는 뜨겁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부러워서 보기만 했던 성령을 막상 받으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날은 구름위에 떠 있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고, 집에 오자마자 방언기도 소리가 진짜로 나오는지 이불속에서 수시로 기도하던 적이 생각이 납니다. 성령을 받고 나자 우리 교회는 정말 성령이 역사하는 유일한 참 교회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처럼 성령은 저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또 성령은 내가 위험한 순간에서도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제가 20대 중반 때의 일입니다. 저희 집은 방이 두 칸에다 자그마한 거실이 있는 18평짜리 2층 빌라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큰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작은 방 하나는 자연스럽게 제가 사용을 했습니다. 딸 하나라는 이유로 침대까지 들여 주셨습니다. 남동생 2명은 사람 한명도 자지 못할 정도의 작은 거실이 있었는데 그 좁은 거실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참운아” 하고 저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깊은 잠에 빠져서 듣긴 들었는데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한 번 “참운아” 하고 큰소리로 나를 깨웠습니다. 저는 그때도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참운아”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급하게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더니 내 눈앞에 커다란 남자가 자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안이 캄캄했는데 생생하게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내 비명소리에 주무시고 계셨던 부모님이 놀라서 잠에서 깼습니다. 하지만 그 도둑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안에서 문을 잠궜기 때문에 부모님은 방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만 쾅쾅 두드렸습니다. 문이 안 열리자 갑자기 아버지가 베란다에 가서 도끼를 가져 오셨습니다. 도끼로 잠긴 문을 부수려고 하는 찰나에 나는 순간 용기를 내서 내 스스로 문을 열고 뛰쳐나왔습니다. 도둑은 내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창문을 통해 급히 도망쳐 갔습니다. 정말 큰일 날 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육적인 아버지가 ‘참운아’ 하고 나를 깨웠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아버지의 음성을 통해서 나를 깨워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서 하나님은 나를 건져 주시기도 했지만 나의 몸까지도 하나님은 치료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임신이 잘 되지 않았던 나에게 하나님은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 끝에 하나님은 첫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임신을 하고 산부인과로 갔더니 의사는 내 얼굴과 몸을 보더니 여기로 올게 아니라 빨리 내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내과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갑상선 수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조금만 일을 해도 피곤해서 서너 시간씩 꼭 누워 있어야만 했는데 그 원인이 갑상선 수치가 높아서 그런 현상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병에 대해 무지한 나는 그저 내가 몸이 약해서 그런가 하고 무심하게 지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임신기간이긴 하지만 약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하고, 어쩌면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 가장 간절하게 기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태아에게는 영향을 안 미친다고 하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약을 먹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하루치를 먹고 그 다음날부터 약봉지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몇 달 후 다시 검사하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신을 믿고 있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했더니 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정말 신기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해 주시고 나의 약한 부분까지도 치료해 주신 하나님은 나의 삶 곳곳에 살아 역사하시고 계셨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시아버님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드시는 일을 하셨는데 결국은 시부모님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셨고, 사십 몇 년 동안 교회를 등지고 살면서 저희 친정엄마를 무던히도 핍박했던 저희 친정아버지도 기적적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자녀 문제로 인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 큰 축복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나님은 물질의 만족까지 얻게 해주시고 매일의 삶을 기쁨과 축복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은 감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순간조차도 하나님은 내 안에 들어와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삶의 이유입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을 드리고자 오늘도 난 기쁘게 찬송하며 기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김하늘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