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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하나님과 함께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모든 성도님께 인사드리며, 저는 영국에서 온 바네사 자매입니다. 제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 앞서, 목자님이 저에게 간증하면 어떻겠냐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올해 동부로 돌아온 지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의 많은 성도님들이 간증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하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8월까지 휴가를 온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휴가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님들을 통해 사랑과 헌신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늘 있으며 이번 간증을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정한 성경 구절은 시편 96장 8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시편 96장 8절)”

    지난 온라인 교사 세미나에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제가 신앙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경험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23살이고 작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라인으로 법을 가르치며 영국 대학교 입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참예수교회에서 왔으며 참예수 뉴캐슬 교회는 1976년도에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생긴 첫 참예수교회이며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총 9개의 참예수교회가 있고 이 사진은 40주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사실 모태신앙이 아닌데요, 이것은 저의 간증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목자님이 제게 주신 간증의 주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통해 제가 나눌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 학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은혜를 주셨는지 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사실 이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조부모님과 어머니 쪽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참예수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성도님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제 아버지도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저희는 아버지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더블린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참예수교회가 아닌 이방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고 어렸을 때 저는 교회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찬양하고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매주 교회에 다녔습니다.

    2004년 8월 저희 가족은 뉴캐슬 영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친인척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당시 중국식 포장 전문 식당에서 일하시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님 세대에겐 매우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땐 일요일마다 중국 구세군 교회를 다녔는데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회는 제가 18살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제 어머니의 여동생분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저를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이방교회에 나갔습니다.

    2005년 5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닥에 넘어지시게 됩니다. 이 낙상사고는 매우 심각했고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몇 달간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의 병원 방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의 혼수상태 기간동안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에게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가족분이 홍콩에서 영국으로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러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참예수교회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던 엄마와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많은 친척분의 도움으로 아빠의 상태를 교회에 알렸고 뉴캐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진실로 기적적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많은 기도 덕분에, 매우 기적적이게도, 아빠는 깨어나셨습니다.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 병원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빠가 혼수상태였던 때와 깨어나셨을 때 둘 다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오늘까지도 살아계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시길,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어났더라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아빠 같은 환자는 금방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점진적으로 호전되었고,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호사도 말하길 아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생활하십니다.

    이후 교회는 아빠를 전도했고 목자님이 성경의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는 믿게 되었고 저와 제 남동생과 함께 2009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참예수교회로 데려와 주신 것과 오늘날에도 저를 교회에 마련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나님은 저희가 있어야 할 곳에 두시며 이는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 교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믿음은 저의 것이 되었고 진리에 대해 배웠으며 그 진리를 통해 왜 18살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녀봤던 저는 우리교회가 얼마나성경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우리 교회의 진리가 얼마나  올바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간증의 두 번째 부분은 제 학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삶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09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 결심은 제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셨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저희가 안식일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공하기 위해 안식일 날 일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또한 케임브리지 기도소 성도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소는 작지만, 그들의 마음은 큽니다. 영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의 학업 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절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지 생각하면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돌봐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여름, 저의 첫 번째 법과 대학교 시험 기간 때, 손에 어떤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따끔거림, 마비, 그리고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증상을 무시했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제 손의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2월이 끝날 무렵 저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고 하루 종일 고통을 느꼈습니다. 접시를 들거나, 문을 열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제 손은 약해졌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작은 일들을 이행하기 어렵게 느껴졌고 저는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매우 바빴고 저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겐 희망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과 제 정신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로우시고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1월 많은 기도를 통해 제 마음엔 안식이 찾아왔고 의사의 조언을 통해 1년간 학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또는 건강을 다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기도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과 같고, 저는 이를 몹시 어려운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통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1년간의 휴식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2021년, 저는 제가 필요한지 몰랐던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손의 상태가 육체와 정신이 결합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두 개의 문제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2022년 1월 저는 대학교로 돌아갔고 손의 문제는 장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로 복귀하기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전처럼 공부할 수 없고 제 뇌가 손보다 빨리 움직였고 타자를 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2023년 저는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기대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것이라는 간증입니다. 그날은 정말 기쁜 날이었고 제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졸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저는 더 이상 매일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시편 96장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왼쪽 파란 옷 입은 분이 바네사 자매이고, 옆에서  최하은 자매님이 통역하는 모습이며,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 [성도간증]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성도간증]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유진 자매님은 미국 LA Glendale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인천교회 우정 자매님 친정 어머니이십니다. 우정 자매님의 아이들인 율이와 민이의 육아를 도와 주시기 위해 한국에 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우정 자매님 가족과 함께 인천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다. 미국 가시기 전에 인천교회와도 인연이 깊으셔서 많은 애정과 사랑을 주고 계십니다.  오실 때 마다 교회 이곳 저곳, 구석 구석  쓸고 닦고 하십니다. 교회 봉사에 거룩한 시샘을 내실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깊으심에 감동이 됩니다. 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듣고 싶어 간증을 요청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응해주셔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은혜 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TJC LA Glendale교회 이유진입니다. 처음으로 간증을 부탁 받고 기쁘면서도 부담이 되는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라는 모세의 고백처럼 제 나이도 신속히 날아 칠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수고는 상급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는 행운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27세가 되던 해 주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9:1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있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1)
    위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글자가 크게 확대되며 ′이 성경이 내가 찾던 진리다′ 라는 확신과 함께 예수님이 제 마음에 훅 들어오셨습니다. 10대 부터 풀리지 않던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있지 않고 제 마음에서 살아 움직이셨습니다. 제 마음과 의식에 쌓여 있던 모든 죄와 죄 의식, 열등 의식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로 제 마음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허물과 죄의 그 많던 옥쇄가 풀어지는 자유함,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모든 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열쇠까지 쥐는 행운을 가진 예수님의 신부, 친구, 종이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께서 함께 해주시는 행운 중의 행운을 얻는 기운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무언가 굴레가 벗어진 느낌, 화가 난 마귀가 저를 탁 치고 나감을 생활 곳곳에서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는 말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많던 죽음의 공포, 저의 죄와 허물을 해결해주시고,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는 시편50편15절 말씀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던 기억, 말씀 모두가 저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려움이 진행 중이지만 삶의 숙제를 해나가는 인생의 과정이지 결코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또한 움직이지도 않으시고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거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느낍니다. 다양한 자연을 바라볼 때 저도 그 중의 하나로 하모니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어느 풍진 세상의 귀퉁이에서 밝은 햇살 아래 하늘거리는 이름 없는 들풀처럼 하나님을 찬미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지음 받아 가는 존재 중의 하나로 택하여 주신 은혜에 무한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다같이 함께 손잡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함께 웃으며 기쁨의 교제를 나누는, 그 가운데 말씀이 이루어지는 천국의 삶을 소망합니다.  또한 작게는 제 마음에서 부터 출발하여 교회에서 교회로 이어져 세상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영원까지 생명의 보물이신 예수님을 꼭 껴안은 하나님의 전 참예수교회 일원으로 사명을 다하기를 다짐해봅니다. 예수님의 얘기를 다 기록하려면 바닷물이 다하고 종이가 다해도 부족하다는 말씀처럼 저에게도 지면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훨훨 날아 쓰고 또 쓰고 마르지 않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말씀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저희와 함께 하시기를 (고후13:13) 간구하며 감사로 간증의 제사를 올려드립니다.

  • [성도 간증] 새 집 증후군 아토피를 낫게 하신 하나님 -부산교회 김원경자매-

    [성도 간증] 새 집 증후군 아토피를 낫게 하신 하나님 -부산교회 김원경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오늘 나눌 간증은 둘째 아들 태영이를 돌보시고 치료하신 주님의 사랑을 성도님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이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고 성도님들께 은혜가 되시길 간구합니다.

    <이사 및발병>
    2005년, 남편은 싸게 나온 집을 사서 리모델링하며 첫째와 새로 태어날 둘째와 함께 할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몇 달간의 수고가 마무리 되며 2005년 4월 5일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정일은 4.16일 이였으나 이사를 하고 정리하는 게 몸에 무리가 갔는지 4.9일에 주님의 은혜로 건강한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3일 정도 병원에서 보내고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눈이 따가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10일 정도 후부터 작은 아이 태영이 눈 주변이 빨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역시나 새집증후군으로 생긴 아토피라고 하였습니다. 처방해 준 약들이 큰 효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교회 출석과 예배의 자리에 나가 기도하였지만 기도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기 보다 주변에서 민간요법을 얘기 해 주면 솔깃해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목초액을 보내주셔서 사용해 보기도 하고 친정 엄마가 보내주신 황토로 목욕을 시켜 보기도 하고 시중에서 나온 아토피용 로션을 사서 발라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으나 큰 효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잘 웃지 않고 가려울 때마다 보챘습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팠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습니다.

    어느날, 친정 오빠가 방송에서 아토피에 미역귀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태영이가 생각이 났다며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그날 부산 교회 혜영 자매님께서도 예린이가 방송을 봤는데 미역귀 목욕을 태영이가 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영이에게 맞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남편과 함께 시장에 가서 미역귀를 구입하여 목욕 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마음 덕분에 태영이가 미역귀 목욕을 아주 좋아하며 효과가 있어 보였습니다. 1년 정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찾아 오심 >
    남편은 학교 일과 교회 일로 늘 분주했습니다.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에덴 장학회 회의가 있어서 대전으로 가고 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 날따라 태영이가 심하게 보채고 힘들어했습니다. 미역귀 목욕을 시키고 재우려고 하는데 자지도 않고 계속 울어 댔습니다. 저도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아이를 안고 저랑 둘째가 울고 있는데 3살 된 큰 아이가 눈물을 닦아주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절 말씀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입술로만 주님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세요! 회개 기도가 나오면서 태영이를 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 기도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로 몇 시간을 하고 나니 두 아이가 자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마음이 너무도 기뻐서 날아 갈 것 같았습니다. 또한 너무도 편안하게 자고 있는 태영이를 보니 더욱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영이 얼굴에서 빨간색이 아닌 환한 빛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태영이 아토피는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혹시 또 발병이 나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라고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주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세요! 의심하지 않고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아토피를 치료해 주신 전능한 사랑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 (계1:8) 아멘

    원고 : 부산교회 김원경 

    작성 : 부산교회 김은광 

  •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얼마 전 제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음이 뜨거워져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리고 전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영은전도대회에도 초대하고 설교 말씀도 보내드리고 만날 때마다 권면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부모님들은 더욱더 거리를 두셨습니다.

    저희들의 권면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한동안 얼굴도 뵙지 못하고서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전략을 바꿔(?) 아예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질문도 하시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너희 교회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가족 전도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화면으로 너희들 잘 지내는 것 보고 있다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청주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설교며 특별 찬양 발표며 간증이며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싫으면 그림자도 꼴보기 싫다는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신다니 저에겐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대만 참예수교회 방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에 가는데, 부모님도 언젠가 꼭 같이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다녀오고 나서도 대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의 성도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 굉장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금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장항서부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 드리면 안 될까요?”하고 말이죠~ 저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시다가 “그러지 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주!!

    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고 뒤늦게 무슨 일이냐며 어머님이 오셨지만 이미 아버지가 약속하셨으니 무르시면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어머님도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셨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장항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군산인 아버지 댁에서 장항서부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또 마침 그 때 윤석원 목자님께서 장항으로 이사를 오신 날이었고 첫 설교를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이었고 이미 ‘복’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 자체가 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믿는 성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새해 복이 되십시오”라고 인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해에도 복이 되렴.” 하고 인사해 주셨고 저도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젊은 목자님께서 말씀을 명료하게 잘 하신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린 기념사진을 깜박했어요, 기념으로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돌아가서 찍든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 이거 너희 교회 월말 발자취 영상에 올릴 거지? 하셨고요. 진정 구독자가 맞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당장 참예수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 때에도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리고 저처럼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언젠가 이뤄질 기도 응답의 소망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감사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석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저는 단기신학을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이번 단기신학때 우리 같이 가볼까 라고 하는 겁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그러지? 어디 안 좋은가? 평소에 성경 좀 읽자, 새벽 기도 좀 가자고 해도 졸리다, 힘들다고 하던 사람이 도대체 왜?? 알고 보니 한 형제가 이번 기회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당면한 우리의 현실을 봤을 땐 여러 가지가 걱정이 되었지만 난생 처음 먼저 단기신학을 해보자고 말한 남편이 너무 신기하고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결정을 했습니다.

    대전교회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청주 교회를 출석하다가 잃은 양이 되었으나 최근에 다시 돌아온 자매였습니다. 오랜 만에 다시 보게 된 자매와 단기신학 하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매가 다시 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많은 교회 자매들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읽은 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는데 이 자매와 얘기를 나누며 ‘아! 그래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해야 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지금 루디아에서 잃은 양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는데 그 문고리 심방대상자와 이 자매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역사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기신학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단기신학의 일정은 새벽6시 찬양과 말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9시까지 성경 강의와 찬양과 기도가 있고 소등 시간은 11시반 입니다. 이 시간들이 몸은 너무 피곤한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세상에 그 어떤 고민 걱정 없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들이 감사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천국이 이와 같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편 103절 말씀처럼 정말 달고 달아서 그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에도 퍼즐의 조각 조각이 맞춰지듯이 성경의 내용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개론을 통해서 배운 부분 중 첫째 선악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정녕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이 명령이 에덴동산을 유지하는 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겁니다. 이 선악과 관련된 말씀을 들으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내 것이 아닌데 마치 주인인 것처럼 살아온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을 했습니다.

    두 번째 족장 시대에서는 4명의 인물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믿음과 순종과 용서와 인내 그리고 승리를 배웠습니다. 이 네 사람의 삶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내 삶이 확실하지 않아 불안하고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요셉을 배울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인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안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을 살았기에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 하나님 앞에 사는 삶” 이 말을 나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배울 때는 신앙 계승이 안되는 부분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정말 바로 섰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편과 함께 부모로써 자녀들을 위해 새벽 기도도 열심히 참석해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잘 지질 수 있을까요? 강의 시간에 어느 목자님이 한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건 졸리면 자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이렇게 내 맘대로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고 살아내야 하는 건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저도 앞으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침마다 싸울 겁니다. 누구와 싸울까요? 더 자고 싶어하는 제 자신과 싸울 생각입니다. 때론 질 때도 있겠지만 포기 하지 않으면 거룩한 습관이 길러질 거라 생각합니다.

     

    단기신학 하는 동안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자매와 한방을 쓰면서 삶을 나눌 때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강의 시간이 되면 그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은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대략 이런 부분이었는데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까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뭔가 시원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강의 시간에 죄 없으시고  전능하신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기에 예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죄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지금 받는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신앙 성장을 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진정한 성공은 이 땅에서 정해지지 않는 거라고 죽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거라고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저에게 고난이 왔을 때 수없이 묻곤 했었거든요. 왜 고난이 나에게 올까? 근데 고난이 오는 게 당연한 거고 때론 감사해야하는거란걸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수인 고난이 왔을 때 걱정, 근심,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를 한다면 그 고난에서도 걱정 근심이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신앙생활이 즐겁고 기쁠 수가 있을까? 그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은 반드시 많이 있을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2절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실 올해 새로운 직분을 맡게 되어 걱정이 많던 저에게 힘이 된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자신의 뜻과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고 고난이 올 때 깨어 기도하는 것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나 아직” 이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것 그래서 끝까지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번 단기신학은 정말 저에게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말씀들로 위로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해주신 것 같아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단기신학을 하는 동안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성도간증]정우준 형제 두 번째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성도간증]정우준 형제 두 번째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정우준 형제님의 두 번째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 더욱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깨닫습니다.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정우준 형제님의 간증문도 읽어보시고 영상도 시청해보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정우준 형제 간증(2023.09.28.)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안산교회 성도님들 앞에서 간증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인천교회 성도님들의 도우심과 관심으로 제가 힘과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서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추석 다음날 입니다. 주님 아래 행복한 추석 보내시고 계시죠?

    물론 며느리들은 힘든 하루 하루였을 것 같습니다. 저의 아내인 한은애 자매도 힘든 이틀 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휴 중 안식일이 있어 쉬어감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정우준 형제입니다.

    제가 간증을 7월 29일에 하였고 이어서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을 갖는 날입니다.

    사실  두 번째 간증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목자님께서 9월 초 일요일 저녁에 전화하셔서 간증을 부탁하셨습니다. 사실 추석 연휴라 순간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자님께서 이렇게 저녁에 전화하시는 것은 이유가 있다’ 고 생각하여 순종하기로 하고 “바로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무엇을 준비하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뱅뱅 맴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삶 자체가 간증거리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이렇게 존재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몇 번의 기회를 주신 이 세상을 더 이상 구원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셨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 없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가 있고 이렇게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간증을 좀 정리하고 저의 두 번째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번 시간에 총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1(첫번째). 하나님의 선택에서는 하나님의 인도로 저의 아내인 한은애 자매의 도움을 받아 제가 참예수교회에 들어온 과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2(두번째). “성령이 나와 함께함” 에서는 참예수교회를 다닌지 5년만에 성령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 하였으며

    3(세번째). “어머니 전도 과정”과

    4(네번째). “신앙을 선택한 준혁이”에서는 대학은 가지는 못하였지만 안식일 지키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본인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아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 5(다섯번째).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소주제로 한자매의 직장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1. 오늘의 첫 주제는 십일조입니다.

    저는 2001년에 2월에 한은애 자매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30살 한은애 자매의 나이는 27살입니다. 지금 시대로 생각하면 빨리 결혼을 한 것 같지만 그때는 제 나이에 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서울 성북구 종암동이라는 곳에 신혼집을 마련해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과 집에서 보태준 돈을 합해 3천만원이 있었고 한자매가 500만원 보태 3.500만원 짜리 반지하에 살았습니다. 그때 당시 방 두칸짜리 지상의 전세는 5,000만원 정도였습니다. 반지하에 사니 비가 오면 변기로 물이 역류를 하였고 집주인이 하수구 주변에 낙엽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였습니다. 집 없는 서러움이라고 할까요~~~그래도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결혼하기 전에는 서울 송파구 소재의 직장을 다녔고 결혼한 지 2개월 만에 제가 부천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병원에 합격하여 직장을 부천으로 다녔습니다. 5개월 후에 직장 근처인 부천으로 이사를 하려 하였으나 방 2칸 입실 부엌이 있고 거실은 없는 다세대 주택 전세가 5천만원을 하는 거였습니다. 이에 돈에 맞추어서 부평역과 인천지하철 동수역 사이에 있는 빌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에서 집을 사도 되고 전세로 살아도 되지만 전세와 집을 사는 차이가 300만원 밖에 되지 않아 사라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또한 집담보로 융자가 되어 있어 자금이 부족하면 융자를 승계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전 집에서 집 없는 서러움이 있었기에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집을 계약하고 그 후 부모님들과 친인척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미쳤다는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행복하였습니다. 저희들 만의 보금자리를 가졌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시고자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었거나 부천에 있었으면 아마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기도 시간에 잃은 양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잃은 양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인도해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빌라가 얼마냐고요? 궁금하시죠? 4,500만원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000만원을 집담보로 융자를 한 것입니다. 그때 당시 1,000만원은 우리에게 큰 돈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순천향에 입사를 하면서 첫 1년은 월급을 1/12, 2/12 3/12 씩 월급을 받는 시기라 연으로 따지면 1,000만원이 안 되는 연봉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매달 45만원씩 고정 생활비를 드리고, 각종 집안 대소사 비용, 그리고 저희 생활비, 융자 이자 등 고정 비용이 많아 항상 돈의 노예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 생활비가 없어 한자매의 예물을 팔아 생활비로 사용을 했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자매에게 못난 사람과 결혼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러다 보니 온전한 십일조 헌금을 하지 못하고 안식일 헌금을 내는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십일조에 의미도 모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육신의 삶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화요일 예배는 가지는 않았지만 안식일에 근무를 안 할 경우 한자매의 성화때문에 교회에 간 것 같습니다. 이런 초신자의 삶이 이어지면서 그 후 준혁이가 태어났고 또 준혁이가 4살 정도 되었을 때 한자매가 십일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은 남에게 뺏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기에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였던 것 같습니다. 만물의 소산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소산으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십일조 헌금을 한 것 같습니다.

    준혁이가 자라면서 좀 더 좋은 환경속에서 자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천으로 이사 가려고 계획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라 구매를 하였기에 손해를 보고 팔수는 없었습니다. 팔고 이사를 가자? 생각하고 시세를 알아보니 6,500만원 이였습니다. 그래도 빌라를 사서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팔려고 하였으나, 한자매가 좀 더 지켜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난 후에 부동산에 시세를 알아보니 주변에 재개발 소식이 있다면서 주변 시세가 오르면서 9,00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저희는 9,500만원으로 집을 내놓았고 서울에 한 투자자가 그 집을 인수하면서 9,500만원에 팔린겁니다. 우리에게는 씨드머니 즉 종잣돈이 생긴 겁니다. 그 돈으로 부천에서 신규 오피스텔형 아파트 30평대 전세로 이사를 올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시편 24절 1편 말씀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소산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더후서 9장 8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저희가 드린 것 보다 넘치게 주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있으며 지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와도 십일조를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1. 형통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형통한 삶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지만 형통한 삶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저희에게 믿음을 굳건하게 가지라고 고난과 시련을 주십니다. 그 형통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유혹,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잘 극복해야 함을 깨달음 바가 있어 두 번째 주제를 형통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정하였습니다.

    저희가 인천교회 둘 다 평신도였다가 교회임원을 맡아 봉사하였습니다. 임기가 끝 날 무렵에 직장일도 하면서 교회 임원일까지 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지쳐 있었기에 둘 다 이구동성으로 임원을 하지 말자고 하였고, 그때 당시 한은애 자매가 서울 공릉동에 있는 원자력병원을 다녔고 부천에서 출근과 원자력병원에서 퇴근 총 4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준혁이 교육문제도 있었고 해서 서울로 이사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중간 지점인 용산이나 흑석동으로 집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때 당시 흑석동이 개발붐이 있었고 저희는 신축 아파트인 흑석 한강 센트레빌아파트를 부동산에서 소개를 받았습니다. 멀리 보이지만 한강이 보이는 뷰라고 부동산 사장님이 물건을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아마 2012년 1월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궁금하시죠? 매매가 5억5천이였고 시스템에어컨이 설치된 30평대 아파트였습니다. 바로 결정을 할 수 없었기에 고민을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가 교회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야반도주하듯 이렇게 빠져나가는 것이 옳은 행위인가? 우리가 없는 인천교회는? 성도님들은? 이렇게 이사라는 포장으로 인천교회에서 나가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여러 가지로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다 아시죠? 인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흑석한강 센트레빌아파트가 얼마인지 궁금하시죠? 16~17억 정도 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교회 임원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였기에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어여쁘게 봐 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전세를 살고 있었기에 부천에서 아파트 전세로 2년을 더 살았으며, 그 후 지금 살고있는 약대동 현대아이파트 아파트가 미분양이 되면서 시세보다 30% 저렴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현재 가격은 분양 당시 가격보다 100% 상승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아내인 한자매의 경우 여전히 직장이 서울 그것도 강동지역이라 출퇴근하면서 힘들어 했었고 원자력병원을 다니고 저녁에는 건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석사는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박사의 경우 졸업논문과 더불어 SCI급 논문 즉 국제학술지에 제 1저자로 제출하고 심사에서 통과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좋은 연구가 선행되고, 이것을 영어로 옮겨 심사를 받고 통과하면 되는데 문제는 원자력병원에서 좋은 연구가 선행되었지만, 그것을 윗선에서 박사학위에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한자매가 이런 조직에서 계속일을 해야 되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원자력병원이 의료계에서는 그래도 좋은 환경의 직장에 속해 있었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당장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자매의 경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이 하루하루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이 들어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판단하에 아무 계획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 하였기에 조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부천순천향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출퇴근 10분거리 직장에서 일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직장이 멀어 안식일에만 교회를 나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도로가 안 막히면 20분 거리다 보니 안식일뿐만 아니라 화요일 저녁 예배도 온전히 드릴 수 있게 되어 이것 또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저희를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자매가 박사학위를 취득 했는지 궁금하시죠?

    순천향대학교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로 오고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님과 함께 연구한 결과물이 SCI급 논문에 올라가 생물공학 박사학위를 2018년도에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2020년도에 정규직으로 T/O가 변경되었으나, 직장 규정에 의해 경력을 3년만 인정을 해 주어 다른 동년생 보다는 월급이 많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대학교 겸임교수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를 해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런 복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진단검사의학과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검사를 합니다. 여러가지 검사 중 인체에서 유래되는 검체 즉 혈액, 객담, 소변, 대변등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우리 인체에 질병유무를 판독해 줍니다. 혈액검사의 경우 1000개가 넘는 검사가 있을 정도로 많은 검사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하는 일은 세포유전이라는 검사영역을 하고 있었고 이는 사람의 세포 속 핵내 물질인 염색체와 DNA 즉 유전자의 이상유무를 판독하여 질병을 진단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한자매가 순천향대학교병원에 오게 된 이유는 이 일과 더불어 NGS라고 차세대 염기서열분석이라고하는 검사와 방사선피폭선량 염색체 검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2018년에 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장의 경우 인사고가와 더불어 윤리적인 부분도 보기 때문에 저보다 선배들이 6명 정도 있었고 심지어 10년 이상 차이가 났지만 하나님의 인도로 팀장이 되었습니다. 팀장을 달기 전에는 온전한 안식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병원 특성상 365일 검사를 해야 돼서 토요일 안식일에 교회를 오지 못하는 경우가 한달에 절반 정도였습니다. 팀장의 경우 토요일 오후와 공휴일 당직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안식일을 지키게 해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안산교회와 인천교회의 경우 수도권에 입지해 있습니다. 수도권에 있으면서 서울 시민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정부에서는 인구 분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구가 941만 명으로 인구는 이전보다는 감소하였지만 인구 감소에 의한 감소이지 오히려 인구가 유입되면서 유입 인구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중 대형일반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대형교회를 다니냐고 이야기를 하면 교회에가서 예배만 드리고 오면 되고 교회에서 알아서 해 주니 편하다, 할게 없다는 거였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상업화가 되면서 일반 교회에서도 소형교회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안산교회와 인천교회도 소형교회로 이러한 새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천교회의 경우 몇 년전 부터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안식일 출석 성도가 60~70명 이었지만 지금은 30~40명 정도의 수준입니다. 점점 교회가 고령화가 되면서 젊은 층들이 많은 대형교회로 가려고 하고 남아있는 신도들은 교회 나이에 맞게 고령인 신도님들만 남고 있습니다.

    안산교회와 인천교회의 경우 신도님 한분 한분이 소중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입니다. 그 몸을 이루시는 분들은 성도님들입니다. 성도님들이 안산교회, 인천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는 병들고 맙니다. 교회가 병이 들면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실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가 튼튼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전도여행을 하면서 힘이 없는 교회에는 사람을 보내어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지도하였습니다. 소형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기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기회도 많음을 압니다. 비록 삶이 힘들어도 하나님께 경외와 순종의 마음으로 임할 때 형통한 삶을 주심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3:44~46 읽고 마치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믿음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듯이 달려갈 길을 다 달려 끝까지 완주하여 나중에 주님 만날때에 잘 하였다고 칭찬받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튜브 간증링크]

     

  •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이파자 모친 간증)

    저는 올해 79세인 이파자입니다. 제 고향은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에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고, 저는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커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안 일만 하며 자랐어요. 20세가 되었을 때 동네에 4명의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는 고모였어요.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할머니가 낳은 딸이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모에게 “고모,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무슨 교회를 가!” “교회에 가면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동갑내기 4명이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간 교회는 장로교회였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바다를~”라는 찬송이 듣기에 너무 좋아서 제가 “한 번 더 부를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가 그날 그 찬송을 다 외워버렸어요. 4명중 저만 찬송을 다 외웠습니다.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 바다를 하나님 보좌 앞에 있고 싶어라. 유리 바다 건너편에 믿는 성도들 이것 또한 유리같이 맑고 맑도다.”

    교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대문 밖까지 들렸어요. “이놈의 계집애들! 오기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지! 그래야 이것들이 교회를 안가지.” 하고 막대기를 문 앞에 놓고 말씀하셨어요. ‘몰래 갔는데, 어떻게 아셨지? 다리 부러뜨리면 아무데도 못가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 하고 가만가만 들어갔더니, 막대기만 있고 작은 아버지가 안보였어요. ‘옳다 되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잠업(누에를 치는 일)시험장을 다녔어요. 우리 교회 권정자 자매 계시지요? 그분의 언니인 권정숙 언니가 같이 잠업시험장에 다녔는데, 저를 참 예뻐했어요. 하루는 “파자야, 너 교회 한 번 가볼래?” “네, 언니! 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그런데 언니가 다니는 곳은 참예수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교회 평이 안 좋았어요. ‘참예수교회는…날라리 교회라고 그러던데, 팔짝팔짝 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갔더니 교회가 조용했어요. 그 언니를 따라서 기도를 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교회라는 그 두 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25세에 시집을 갔어요. 도시 축에 드는 마을을 떠나, 시골 골짜기 삼계로……. 시집을 가서 생활하던 중에 머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어요. 머리에 수건을 묶고, 그래도 안 되면 벽에 머리를 꽉 대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아프면 이젠 배가 아프고,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팠어요. 아픈 것이 그치질 않아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가정 살림과 농삿일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남편이 세심이라는 마을로 민방위를 받으러 다녔어요. 남편은 제가 아픈 것을 안타깝게 보고 마음이 아팠던가 봐요. 제 남편은 교회라는 두 글자의 뜻도 모르고 지내다가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 “교회를 한 번 나가보면 머리가 안 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러 자식 다섯을 낳은 후에,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더니, 어느 교회를 가려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참예수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는 장로교회를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남동생이 찾아왔어요. 아침 시간에 잘 안 오는데 일찍 왔더라고요. 동생은 당시에 참예수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현재 전주교회 이정천 형제가 제 남동생이에요.

    “누나 어디 가려고?” “자꾸 아프니까 자형이 교회 나가 보라고 해서 지금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이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쩐지 누나 집엘 오고 싶더라니……. 참예수교회를 나가야지요.” 했어요. 남동생의 권유로 그날 장로교회를 가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토요일에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 남동생이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도 참 고마워요. 살다보면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나에게 교회 나가 보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참예수교회를 갔는데, 기도소리를 듣고 옆집 아줌마는 계속 키득키득 웃었고, 저도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웃음이 너무 나오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설교 말씀을 듣고 앉아 있었어요. 삼계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예배가 없었어요. 그 다음 주에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저 혼자만 갔어요. 동생도 볼 겸해서…… ‘남편이 교회를 그렇게나 권했는데, 내가 머리 아프다 죽으면 남편이 뭐가 되겠나.’ 하고 결심을 하고 다녔어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농사짓고 누에 치고 담배 농사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교회를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또 갔는데, 이번엔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기도할 때 안수 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을 받았답니다. 진동이 오고 몸이 떨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여기서 저기까지 갔어요. 그 때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눈물이 기뻐서 나오는 건지, 슬퍼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 살아나온 과정을 생각해볼 때 모든 뜻을 하나님 앞에 다 풀고 고백을 해야겠구나! 삼계교회가 떠나갈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어요. 성령 받는 광경을 남편이 다 봤어요. 울고 싶은 대로 다 울었어요. 누군가 자제를 안 시켰으면 하루 종일 가겠더라고요. 어찌나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던지……

    종을 친 지는 오래 되었고, 기도하다 생각하니 너무 이렇게 해서는 문란하겠구나 해서 겨우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도 그만 하라고 해.” 그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일단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전부 털어놓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웬만한 사람은 부끄러울 텐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냥 담대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개운하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독히도 저를 괴롭혔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성령을 받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눈이 떠지질 않고, 벽에 꽉 기대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 오늘날까지도 그 때 느낀 그 두통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신경 좀 쓰고 감기가 들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 때의 두통과는 완전 달라요. 믿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뜻을 알고, 이제 교회 안다니고는 제가 도저히 두통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옛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가방만 흔들거리고 교회만 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신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면 내 삶이 평탄한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우리 아이들한테는 엄마만 살짝 다닐 테니 너희는 나오지 마라. 제가 아직 믿음이 없었을 때다 보니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 다섯 명이 전부 교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애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교회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 개도 교회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예배 끝나면 일어나서 같이 교회차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아들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다보니 교회를 안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큰 아들도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저는 현재 자식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시험거리로는 농사철에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보리 농사하던 시절에 교회를 가려고 애들 다 학교 보내고 아침 8시쯤, 안식일이었는데 농사 기계가 들어온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교회 가야 하는데……. 그냥 가버리면 남편과 싸우게 생겼더라고요. 일단 내 임무는 힘껏 마치고 난 후 교회를 가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남편이 믿지 않을 때였거든요.

    농사할 때 땅에 거름을 뿌리지요? 우리집 거름은 유달리 무거워요. 비를 자꾸 맞아서…… 안식일 이른 아침에 그 거름을 손으로 들어올렸는데, 그 무거운 거름이 하나도 무겁질 않는 거에요. 내 정신이 아니고 누군가 꼭 지켜주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거름을 같이 들어주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무거운 거름이 그렇게 뿌려도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교회차가 마을을 다니면서 신도들을 실러 오는데, 교회 다니는 모친이 논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이구 오늘 안식일인데 일해요?” 하시기에  “아니요. 빨리 해놓고 가려고 해요.” 교회차가 멀리 세심을 돌아서 그 모친을 싣고 가는게 보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빨리 해놓고 교회 가야겠는데…….’

    그런데 교회를 꼭 가려고 마음 먹으면 절대 안 될 것이 없었어요. 그 일을 다 해놓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갔습니다. 세수를 대충 하고 신발 신고 2킬로미터 삼계까지 정신없이 내 정신이 없이 뛰어 갔더니 예배가 시작을 안했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아!  내가 꼭 교회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가야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꼭 교회를 가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하면 그 힘이 나도 모르게 다시 치솟더라고요. 하나님께선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힘을 주시는구나. 열심히 말씀을 듣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다음 안식일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벼를 훑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밤에 훑으면 안 되요? 탈곡기가 있잖아요. 호롱기 아시지요? 호롱기로 벼를 훑은데, 밤에 그걸 다 훑었어요. 안식일에 할 일을 전날 저녁에 다 끝냈어요. 끝내고 나니 이웃사람들이 무엇이 바빠서 밤에 벼를 훑냐고 하더라구요. 바빠서가 아니라 교회 가려고 밤에 일을 했다고 말하고 넘어갔어요. 일을 꼭 해놓고 가야겠다 맘을 먹으면 밤에라도 그 일을 마치게 해주시더라구요. 안식일에 모를 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꼭 시험거리가 닥쳐와요. 닥치면 그것을 이겨 나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모를 심는데, 그때는 교회에서 논이 가까웠어요. 남편과 같이 모를 심다가 “어머 어떡해. 나 교회 가야 하는데.” 남편은 “갔다 와. 나 혼자 심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면 쉬엄쉬엄해요. 나 바로 빨리 갔다 와서 심을게요.” 갔다 와서 바로 논으로 들어가서 심고 그랬어요.

    남편도 교회를 나가라고는 했어도 농사일로 바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교회를 괜히 나가라고 했다며 말도 했지만, 그때는 제가 말했어요. “머리가 안 아파서 건강해서 일을 잘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교회 가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니 앞으로 당신도 교회에 다녀야 해요.” 그러면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젠가 나도 간다.” 저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1997년 10월이었어요. 그 뒤로 13년이 지난 2010년에 성령을 받았어요. 요즘은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잘 못 나오는데,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그런가 봐요. 열심히 하나님께 구하면 낫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없을 텐데, 기도 열심히 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세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도 그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이왕 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갈 때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다 보면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열심히 믿고 삽시다. 저도 앞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믿고 살겠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나들이 가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모친은 남편이 교회나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시답니다. 

  • [성도 간증]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_이원일 자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전에 간증했던 내용과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들을 추려내고, 추가적인 내용을 더하여, 제 삶을 통해서, 저를 부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큰 사랑으로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다만 북한에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남으로 오신 외할아버지와 기도를 많이 길게 하시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고는 지냈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동네 교회의 성경 학교도 가보고, 친구 따라서 성당도 몇 년 다녔습니다. 그 뒤에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일로 인하여 부모님께서 의견 차이를 보이시며 저의 성당 출석은 깔끔히 끝나게 되었지요.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던 저는 ‘최악만 아니면 되지 ’라는 신념으로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명확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보통의 학생들과 다름없는 상태로, 꾸준히 학교만 다녔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항상 돌보아 주시고 계셨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사람이 삶을 한탄하면서 저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저분한 물에서 사는데 당신은 1급수 아니 생수에서 살고 있다’ 라고 말이죠.

     

    대학 2학년 여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입니다. 알게 된 지 한 달 즈음이 지났을 때,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게 어떻겠냐 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하더라구요..^_^(과연 그 약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면서 그 순간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도서관의 종교서적 서가에서 여러 가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인터넷 보다는 책이 정보검색의 1순위였지요) 안식일 관련된 책들과 기독교의 역사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안식일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삼육대학교 근처에 살면서 들었던 제7일 안식일교라는 이름도 기억해 냈고, 주일 개념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적립하고 드디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눠 보려는데, 흔히들 말하는 안식교도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참예수교회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뭐지?? 하면서 다시 뒤져보았습니다. 성과는 없었습니다. 2002년 말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에 여러 가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엘리사 목자님의 설교 몇 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영상들이 저에게는 예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엉터리는 아니다’ 하는 마음으로 참예수교회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7월 어느 안식일 오전, 제일 가까웠던 동부교회로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젊은 아가씨가 알지도 못하는 곳을 제 발로 혼자 찾아 갔네요.

     

    통화하신 분이 예배당 앞에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보통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진형제는 저에게 방언기도에 대해 한 번도 언급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시작 전의 기도시간에 저는 어찌 해야할 지 모르고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나서 찬양 한 뒤에 다시 기도가 시작되자, 저는 예배당을 빠져나와서 건물 1층 문을 나서야만 출입 할 수 있는, 외부로 출입문이 나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신기한 일은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2층의 기도소리가 저에게는 악기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영롱한 핸드벨이나 큰 실로폰의 높은음을 쉬지 않고 울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이 내용을 간증하며 ‘천상의 음악’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부러움과 신기함으로 교회에 출석했고, 다음 해에는 양봉도 목자님의 세례관련 설교를 주의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출석이 거듭되면서 입술이 움직임을 느끼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례가 먼저라는 지식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주의 어느 날 수업 후 빈 강의실에서 교회에 전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세례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주 안식일 예배 후에 봉고차를 타고 밀리는 길을 다녀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2004년 4월 3일 16시 20분이라고 시간까지 쓰여 있었는데, 그날인 것 같습니다. 날짜와 시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뀐 저의 기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예수님께서 피 한방울의 일부라도 저를 위해 흘려 주셨습니까?’라는 물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세례 후 예배당 앞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저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생각과 ‘저를 위해 피 흘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라는 기도가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인공조명의 위치가 절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이마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환한 빛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자친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세례성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본적인 새신자 신앙교육이나 세례 전 교육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부족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꽉 차여있지 않아도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세례를 받고서 얼마 지났을 때인지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도 오래지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낮잠이었는지 밤잠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가 벽과 붙어 있는 옷장 윗부분의 구석진 곳에서 저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오싹하다기 보다는 그냥 무서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를 알지도 못했던 때였지요. 자세를 바꾸어 보아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뜨면 눈앞에서 엄청난 얼굴이 저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기에 눈도 감은채로 마음을 굳게 먹고 주기도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성당에서도 노래로 외웠고, 빈칸 채우기 시험을 봐가면서 외웠고요, 동네 교회 성경학교 다닐 때도 외웠고, 동부교회 출석하면서도 매번 읊었던 주기도문이었지요. 그런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저의 기도를 따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기도쯤은 나도 알고 있다’는 조롱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너무나 두려웠구요. 그래서 누운자세 그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선언하고, 방언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만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기도하다가 잠들고 말았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외워서 읊기만 했던 저에게,,, 진정성이 없는 기도문의 암송은 그 어떤 의미도 없음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셨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초, 저희는 약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출가 외인이라며,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이제 그집 식구이니 교회 따라 나갈 생각을 해라!! 마음 편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2006년 3월에 식을 올리고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었지만 저는 바다구경으로 두 번 가본 게 전부였던 지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옆 동네에도 성도님들이 계셨고, 가족처럼 살뜰히 돌봐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따라 신랑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사하면서 울어본 적은 두 번뿐인데요(한번은 초3가을부터 초5 6월까지 살던 수원을 떠날 때였고) 그중 한번이, 겨우 1년 출석한 부산교회를 떠나던 날이었지요.

     

    [전국 유람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산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가서)분당 3년, (충주에서 살면서)원주교회로 1년, 다시 (성남기지 안으로 이사가서) 분당 1년, (송파구에 살며)강남 2년, (일산초입에 살면서)대방 2년, (계룡으로 이사하여)대전교회 2년, 그리고 다시 대방 1년, 이렇게 돌고 돌면서 가사와 육아에 매인 삶을 살아가며 2019년도에 도착한 곳이 안양교회였습니다. 신도회 시간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참여 해본 첫 해였습니다. 수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경쟁하듯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감사를 나누고 평안을 구하며 같이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속상함도 나누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행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하며 살았었죠. ‘기도를 통해 고통이 줄어들고 기도하는 와중에 고난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져버렸답니다.) 그런데 2019년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찬송을 드리다말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을 감추지 않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왜 우냐’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판단하기 전에, 주님께서 저를 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해보았습니다. ‘감사해서요.’ …..불행하지 않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도], 코로나로 온 나라가 힘들기 시작했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요동하지 않으며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6월 9일, 그 불안의 상황이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녁에 신랑이 확진을 받고난 뒤에, 저는 집안에서 몇 걸음 걷다가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세 식구가 집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효원형제를 데리고 가야할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저희 세 명의 검사 결과는 아주 빠르게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음성이고 저만 양성이 나왔기에 새로운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이들만 남겨야 하는데 어찌 하면 좋으냐’ 보건소에 물어보았는데요, 아침마다 도시락을 문 앞에 갖다 놓을테니 데워 먹게 하라고 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이 어찌나 야속하게만 들리던지요. 음성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올 수 없으며, 입고 간 옷도 다 폐기 할 것이고 들고 간 것도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제외하고는 들고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장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에 입을 옷은 병원에서 택배로 받으라는 이야기와, 돌아올 때는 택시를 비롯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 데리러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해주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로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죠. 계속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함께 퇴원 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그게 쉽겠느냐며 절망이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이모가 바로 와줄 수 있다고 했고 저희 부부는 아이들 이모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저희가 나선 뒤에 방역팀이 집 구석구석에 소독액을 뿌리고 갔고, 3학년과 1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용감히 이모를 기다렸습니다.

     

    안양에서 파주병원까지 저와 효원형제는 같은 구급차에 실려서 이송되었습니다. 병실이 남은 곳은 거기뿐이고, 구급차는 많이 남지 않으니 한번에 이동시키려는 그들의 계산덕분에 저희는 꽁꽁 싸여서 실려다니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들은 단순히 위로만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고 나올 옷을 싸놓으면 가지고 가겠다, 택배로 보내주겠다, 차몰고 데리러 갈꺼니 걱정마라. 거기 자주 가는 동네라서 다 안다 등등,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체적이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를 안정시킨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키울 테니 어서 낫고 퇴원해라’ 여기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들 걱정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었구나 하고 말이죠.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손을 통해 자녀들을 보살피시는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었죠. 안양에서 살던 두 번째 집은 창문 밖으로 임시검사소에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사람마다 일정 개수 씩 구매할 수 있게 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뛰어 놀기에 적합한 넓직한 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고,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하여 산길에 걸어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보이는 장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감사하면서 무너지지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애써 붙들어 매던 제 마음은, 확진과 동시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쉴 새 없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굳게 붙들어주셨습니다.

     

    [병원 이야기 해드릴께요] 입원실은 3인실로 개조한 5인 입원실이었습니다. 링거하나 없이 두 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요. 음식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겨 묶인 봉지채로 각 자리에 놓아졌고, 2일에 한 번 씩 보호장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소독액을 눈앞에서 뿌리며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음압기계의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두통이 생길 정도였고, 창문의 모든 틈은 테이프로 막아져 있어서 산소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남성 입원실로, 저는 여성 입원실로. 구급차에서 내려서 줄을 따라 걸어가며 저희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해야 했습니다. 동선에 대한 확인과 보고를 반복하며 보건소 직원들과 통화하느라 하루 이상 꼬박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으면 병실 전화기나 핸드폰의 카톡을 통해 간호사실에 알릴 수 있었고 며칠 간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사가 들어와서 문진을 하고 상태(?상황?)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저는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어 길어져버린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름의 계획을 짜야 했습니다. 3회의 식사 전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적고 사진 찍어서 간호사에게 알려주기, 식사 후 양치 꼭하기, 땀나게 맨손체조, 이어폰으로 소리 최고로 해놓고 말씀듣기, 성경읽기, 음압기 소리에 묻혀서 기도하기, 중간중간 마다 아이들이랑 통화하기 등등,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밀려있던 통독은 욥기를 읽을 차례였고 시편까지 읽고 퇴원했습니다. 저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배웠습니다. 아무 방해 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할 수 있게 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계시록도 처음부터 하나씩 듣기 시작했고,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드디어 저는 참예수교회가 늦은 비 성령으로 세워진 참교회임을, 말씀으로 온전히 집중하여 배울 수 있는 첫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찬양합니다. 입원한지 며칠 지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밤중에 침대 위에서 창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위에 커다란 검은 물체가 저를 노려보며 저를 향해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준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적으로 요동하거나 하는 전단계가 없었기에 맥락없이 갑자기 보이는 형상이었지요. 시커멓고 뿔이 두 개 달린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무릎꿇고 성령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지요. 잠시 후에 보니 그 형상은 사라지고 그냥 물탱크만 보이더라구요…

     

    당시, 전국의 교회가 모두 함께 저희 가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청주도 함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6월 23일, 아이들은 격리해제를 위한 검사를 받았고 초조한 하루가 지난 뒤,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24일), 정부는 입퇴원에 관련해서 지침을 변경했습니다. 큰 증상이 없으면, 양성판정후 재검사 없이 14일 이후에는 퇴원 조치하는 내용이 생긴거죠. 저희는 그 병원에서 첫 대상자가 되어 26일 오전에 퇴원 통보를 받았습니다. 감염력이 없는 정도이니 일상생활은 해도 되지만 사람 많은 곳은 당분간 가지 말라는 이해가 안되는 보건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원을 시켜주는 의사도 두 달은 자가격리 상태로 살라고 하더라구요. 의사간호사들의 우려를 뒷통수로 느끼며 병원을 나선 저희는 같은 택시를 타고 같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입원 날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지요. 게다가 양성판정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둘 다 음성판정을 받았지요. 그래서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저희 아이들도 돌보아 주셨습니다. 반찬과 반찬 재료는 물론 간식과 놀 거리와 손편지까지,,,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받으면 꼭 갚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저는, 이런 사랑들을 어찌 갚을까 고민하며 몇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퇴원하면 떡 내면 된다’ ‘우리한테 갚지말아라 하늘에 보물 좀 쌓아보자’ ‘앞으로 잘 살면 되는거다’ ‘교회에 봉사하면 되는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또 사랑을 적립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봐주시는 이유를 모르던 저는,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직전 날이 되어서야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시고 택하신 사람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봐 주시고 계셨던 것이었지요.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냈었습니다. ‘제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의 주권자이심을,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이때의 제 고백은 시작에 불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으로 보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 입퇴원을 마무리 하고는 [다시 전국유람 시작합니다] 몇 달 후 원주로 이동했습니다. 예배출석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안양교회 소속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신도회 모임도 줌으로 유지 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침들이 바뀌었죠… 2021년 가을영은회 즈음해서부터 원주교회에 출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뵙던 김세한 목자님을 직접 뵈니 참으로 반가웠지요) 그해 연말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계룡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약 2달, 출석 예배에 목말라 있던 저희는 예배가 아니어도 종종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정~말 많이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 기억도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구요. 천사였을까요? 다른 성도님 이셨을까요? 누구였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이잖아요.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귀중한 두 달여의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도 12월 부터는 대전교회를 출석했습니다. (대전으로 나간 초기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지요. ‘내 양을 먹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양이요?’라고 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교회가 건축 중이었기에 총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알지 못하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자금의 투명한 흐름과 목회자의 발령시스템을 꼭 이야기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총회 조직이 있음을 자랑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전을 언급했었지만, 사실 저는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총회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총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저는 신학원의 존재를 볼 수 있었고 여러 목자님들과 외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열심으로 교육하심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님들도 연수를 받으시고 (목자장로)회의를 통해 굵직한 이야기도 오가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음…… 목자 연수회 때는 화요일 예배에서 목자님들의 특별찬송이 있곤 했는데요. ‘행복’이라는 곡을 다 같이 부르실 때는 그 수고와 감동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구요 ‘십자가 군병되어서’를 부르실 때는 마블 어벤저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휴~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또 여러 종류의 영은회와 세미나를 통해 일반 성도들도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임원들도 모여서 함께 배우고 익혀서 하나의 모습으로 각 지교회가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많은 봉사와 노력과 기도가 있음 또한 보았습니다. 여러 헌신을 통해 한 세대 한 세대 전해져 내려가는 우리의 신앙을 보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서 많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며 그 귀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12월 27일, 새로 지은 대전교회에서는 대학 영은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마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도 여기 계실텐데요, 그날은 화요일 이었고, 저는 연합예배의 찬양인도를 해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요. 기존에는 검정색 찬송가에서만 찬양을 골랐었는데 그 날은 새찬양에서 ‘기대’라는 곡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전교회 성도님들의 절반이상이 모르시는 곡일 수도 있었으나, 저는 대학부의 절반이 그 곡을 알고 있기를 바랬지요. 모르더라도 함께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리’ 하며 찬양을 하는 상황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동!!!이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수님 한분만 바란다고 고백을 하는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의 지교회들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 2023년도 2월 말, 저희는 이곳 청주로 이사 왔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경북지역으로 가게 되면 약 40분을 달려서 안동교회로 가야했습니다. 계룡에서 대전교회를 오가는 길보다는 편하지 않아 보였기에 저녁예배 참석이 가능한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지요. 만약 서해안 쪽으로 가게 되면 100km를 달려서 장항서부로 가야 했는데, 진형제는 이정도 거리의 교회에 휴가를 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고 저 역시도 혼자 그 길을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디로 보내 주실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곳에 순종하며 가기로 하고 쓰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교회와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주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야 할 주님의 일이 있기에 보내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로운 간증 내용이 추가되어 또 다른 교회에 가면, 지금 보다 더욱 풍성한 간증시간을 갖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셨음을 확신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고 명령하신 것을 각 위치에서 전심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할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효원형제는 성경을 무척 열심히 읽었고 그 전과 비교했을 때 기도를 아주 많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심하고 체중조절을 하여 성공했고, 교회가야 하니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진형제는 각 교회별로 올라와있는 예배동영상을 통하여 말씀듣기를 지속했고 어느 순간이 지나고 보니 저희 두 사람은 성경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런 모습은 지속되었고 목자님들께 질문하기도 하면서 하나님께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추석 명절에 남원 할머니를 뵈면서 남쪽의 교회들의 일부를 방문 했었습니다. 남원 서도 삼계 전주… 각 교회를 방문하고 몇 가정과 계획 없던 만남을 갖게 되니 마음이 또 어찌나 꽉 차던지요..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성장하는 남편의 모습과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저를 가르치시고 기르시는 중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0대 동안에 교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20대에 교회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부 영은회 조차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배움이 짧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성장기 동안에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과 사랑과 선행으로 교제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면서 지내온, 지내고 있는, 지내게 될 성도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저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지요. 그곳에서 제가 듣고 보며 배울 일이 있을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어디로 보내시든지 절대 외롭게 지내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없이 이사 다니면서도 가까운 교회에서 하나 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매번 감사드립니다. 영적으로 의지할 분이 계심과 동시에 이 나라 어딜 가든, 친정식구들보다도 빨리 닿을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어디에 간다 해도, 신랑보다 교회식구들을 더 의지할 것 같습니다. 성도 중 누군가가,, 혹여나,, 우주인이 되어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면 좀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죠?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공간에도 세계 성도들 중의 한 명을 주님께서 꼭 보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진리를 더욱 연구하고 굳건히 유지하며 전승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에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하기 때문임을 고백하며 저의 긴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저희 가족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원일 자매

  • [성도간증]인천교회 정우준 형제님의 간증입니다.

    [성도간증]인천교회 정우준 형제님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정우준 형제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결혼을 통해 참예수 교회를 소개 받고 꾸준히 신앙 생활 하고 계시고, 인천교회 임원, 교회학교 교사로 오랜 기간 봉사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도 믿음 안으로 인도하시고 배우자이신 한은애 자매님과 아들 정준혁 형제와 함께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계십니다. 정우준 형제님의 간증을 통해 형제님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간증 공유합니다. 동영상도 들어봐 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보잘것 없는 저에게 성도님들에게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도가 되었고 그 사랑 안에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저는 인천교회 정우준 형제입니다. 간증 순서는 참예수 교회 전도 받은 과정, 가족 소개, 저와 가족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참예수 교회 인천교회 첫 방문은 2000년 봄이었습니다. 벌써 23년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예수님), 성경, 교회, 세례, 성령, 세족례, 성찬례, 안식일, 구원, 재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선택

    저의 아내는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입니다. 한은애 자매 부모님은 삼계교회 한상욱 집사님과 권정임 사모님이십니다. 현재 장인 어른은 저희 곁에 없지만 낙원에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은애 자매는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배우자 선택도 중요했습니다.

    1999년 낙엽이 지는 쓸쓸한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때 한자매와 저는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연인이 그렇듯이 헤어지기 싫어서 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하고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통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 한 말이었습니다. 20대였던 저이기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고 화가 나면서도 아팠습니다.

    이에 이유를 물으니 그냥 본인은 결혼을 못한다고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답답했습니다. 내가 싫은 것도 아닌데 이유를 물으면 그냥 결혼을 못한다고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럴거면 사귀지나 말지 사람 마음 다 흔들어 놓고 도대체 왜? 왜? 또 몇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조심스럽게 한자매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종교 때문에 그런거냐고! 그러면 그건 나하고 결혼을 못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자매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0년 봄에 간석동 자리에 있는 인천교회에 갔고 양봉도 목자님을 만나 뵙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의 주 내용은 신앙적인 면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렇게 전도가 되어 참예수 교회 인천교회에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23년이 되었습니다. 23년이 지난 지금 한자매가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이해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간절함이었고 그 간절함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시고 구원의 역사에 동참시켜 주신 것입니다.

    1. 성령이 나와 함께함

    초기 교회 생활은 형편 없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간절하지도 않았기에 교회 성도님들과도 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한자매 눈치만 보면서 교회를 나가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또 다른 세상에 저 혼자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나오지만 신앙은 성장하지 않고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출퇴근 하듯 교회를 나가고는 있었지만 성령을 받아야 한다기에 성령은 어떻게 받는거지 생각하면서 왜 불의 혀같이 갈라지지도 말리지도 않고 방언이 안 나오고 내가 기도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저에게는 성령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으며, 예수님에 대한 저의 사랑이 부족하였으며, 항상 평범한 삶을 추구하였기에 고난과 시련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생활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매일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서 낮은 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 그것 또한 많이 부족한 저였기에 성령이 저를 찾아와 주지를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점점 교회에 관심을 갖고 있을 무렵 꿈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인천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성령이 충만한 저의 자신이 보였습니다. 꿈속에서 얼마나 울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꿈속에서 성령이 충만한 저는 공중에 떠 있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으며, 나도 모르는 방언이 나와 주위 성도님들이 놀랄 정도였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을 꿈속에서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느낀 저는 신기하기도 하였고 나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방언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회개하는 삶, 자기를 낮추는 삶, 하나님을 찾는 삶으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제는 주제를 바꿔서 저희 가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어머니 전도

    저희 가족 구성원은 어머니이신 김경주 모친, 21살이 된 아들 정준혁 형제, 그리고 제 단짝이며, 영원한 믿음의 선배이고 동역자인 한은애 자매 이렇게 4가족이 부천에 거주하며 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함께한 건 아니고 준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함께하였으니 14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당을 열심히 나가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에 교회에 나갔는데 어머니가 자기도 교회를 가시겠다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교회를 가셔야 된다고 주입식으로 강요를 한 것도 아닌데 마음에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랑 함께 안식일 오전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에 역사하셨고 어머니 마음에 들어와 주셨기에 가능한 거였습니다. 이에 여름에 세례를 받으시고 바로 성령을 받아 방언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큰 선물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가족 공동체가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여주시고 신앙의 길을 순탄하게 인도하여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만일 어머니가 저희와 함께 살지 않으셨으면 전도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한자매와 저는 직장을 다녀야 해서 어린 준혁이를 돌봐줄 분이 필요하여 어머니에게 합치자고 이야기 하였으며, 한자매의 경우도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1-3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복과 장수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1. 신앙을 선택한 준혁이

    저희 아들은 21살 청년입니다. 청소년기에 아이들 중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 %가 될까요? 준혁이의 경우 본인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그 대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삶을 강조하고 훈육을 하였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입시학원을 다닙니다. 입시학원을 다니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가 발생하고 그것이 반복되어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공부를 한다고 하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고 반복 학습을 하게 됩니다.

    부모 마음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기를 바라고 `대학가서 교회가면 되`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자녀를 천국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지옥의 길로 인도하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까? 자녀들이 꼭 교회에서 안식일을 지켜 신앙의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님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준혁이의 경우 공부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때까지 그래도 상위 10%안에는 들어 본인이 원하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 멀티미디어과를 입학하여 졸업을 하였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부모 마음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였지만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였기에 준혁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학점은행제도를 선택하였고 올해 학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입니다. 또한 친구와 함께 멀티미디어 디자인쪽 스타트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경기도 교육감 당선인(임태희)의 디자인쪽 홍보물 및 영상 제작을 하였고, 현재는 신규어픈하는 병원의 홍보 제작, 강서구청 주최 중학생 대상 멀티미디어 교육, 선린고등학교 외부 강사로 나갈 예정입니다.

    비록 대학은 가지는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안식일을 지키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도 하고 교회에서는 아동부 선생님과 총회일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가르침과 성경의 말씀으로 훈계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1.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한자매의 경우 부천으로 직장을 옮긴지 7년이 되었습니다.

    모든 직장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일은 힘들어도 직장을 다니지만 사람이 힘들게 하면 다니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한자매의 경우도 직장에서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 직장 상사의 시기 질투, 직원들 간 자리에 대한 욕심에 의한 모함 등에 휘말려서 더 이상은 직장가는 것이 두렵고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계획 없이 일단 그만두게 되었고 직장인들은 한 달만 일을 안 해도 생활에 어려움이 처하게 됩니다. 제일 직접적인 것은 생활비입니다. 고정으로 나가는 돈, 각종 세금, 대출이자 등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고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일단은 중소업체를 다녔지만 여전히 생활비가 부족하였습니다. 계속 버티기는 하였지만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저희가 생각하지도 못 한 것으로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한자매가 아는 지인이 재택근무를 제안한 것입니다.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 갔고 직원을 뽑아야 되는데 이 일이 특수직이라 직원을 뽑기도 힘들고 해서 재택근무를 제안한 겁니다. 그 일은 염색체를 분석하여 결과를 판독해 주는 일입니다. 주로 혈액암 환자의 몸 안의 혈액세포의 유전자 이상이 생기면 세포의 염색체도 변이가 발생되고 실험을 통해 염색체를 1000배 현미경으로 볼 수 있게 제작을 합니다. 원래는 현미경으로 직접 보아야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여 현미경상의 염색체를 이미지화하여 전송을 해 주면 컴퓨터 모니터로 판독이 가능한 것 이었습니다. 그 일은 저도 할 수 가 있어서 둘이서 평일 새벽, 주말 없이 집에서 1년 동안 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에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많은 것을 채워주셔서 형통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엡 3:20)을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6:31-32)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필요를 아시고 전적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가면 반드시 주님은 큰 도움이 되시고, 풍성한 은혜로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바울사도의 관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 지고 나도 모르게 코가 시큰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로마서에 보면 바울사도가 환난을 즐거워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환난, 인내, 연단 과정을 거쳐 소망 즉 부활의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5장1-4절을 읽고 간증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묵도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유트브 간증링크]

  • [성도간증]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성도간증]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동부교회 이성자 모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1. 친정 어머니가 유언하시다.

    벌써 30여년 전 일입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남양주 경찰서 근처에 사셨을 때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저에게 유언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멈도 숙이가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녀라!”   그 말씀을 듣고 그때 당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숙이가 외할머니에게 그렇게 말씀해 달라고 부탁해서, 어머니가 저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숙이는 저의 큰 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막내동생을 매우  늦은 나이에 낳은 탓인지, 늘 애달파 하셨습니다. 현재는 늦둥이 막내동생은 물론이고,   저도  참예수교회에서 봄에 세례를 받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곳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도 나중에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저의 어머니와 같은 유언을 하고 싶습니다.

    “참예수교회에 다니라고…(열심히!!)”

    그리고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모두 모두!!)”
     

    2. 오랜 기간 불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다.

    20년 전 일입니다.  하루는 손녀딸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할머니, 딸이 할머니 전도하려고 저렇게 금식을 하고 있는데  부모가 돼서 교회에 좀 가 주시면 안돼요? 좀 가시지!”

    손녀(김솔)가 하는  말을 듣고,   딸이 다니는 교회를  몇 번 따라 나갔습니다. 그때는 수원에 있을때 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두 딸들이  가족들과 함께  직장 관계로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몇 차례 나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절에도 못 가겠고, 딸들이 없으니  교회도 갈수도 없구나!’

    그래서 몇 년동안 그냥 지내다가  ‘그래도 나는 종교를 가져야  되겠다!’ 생각하고  남편과 아들에게 “절에  좀 데려다 줄래?” 하였습니다. 그 뒤로 다시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큰 딸이 중국에서 돌아와서  목자님을 모시고 꾸준히 심방을 왔습니다.

    심방 오지 말라고 딸을 야단 쳤는데도 계속 모시고 왔습니다.  “어휴~쟤가 왜 저러지? 내가 쟤를 잘못 가르쳤나?  나는 나대로 열심히 믿게 하고, 내 종교(불교)에  열심하도록 그냥 두지,  왜  저러나!” 하고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불교 서적을  읽고 있노라면 딸은 죽자 살자  “엄마, 절에 좀 안가면 안돼요?”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너 엄마한테 자꾸 그러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야단 친 후 딸이 집으로 되돌아가면 저는 새벽까지 불교 서적을 읽곤 했습니다.

    외손주 병호, 병일이가  할아버지 팔순 때  성경책을 선물로 사서 가족들에게 한권씩 주면서 같이 교회 다니시자고 일일이 편지까지 써서 주었습니다.  그 때는 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작년에 남편이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나는 평소 남편과 부처님을 믿은후 죽으면 극락에 함께 있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 사모님,  교회분들이 자주 심방을 오시니 마음이 어지럽던 차였습니다. 하루는  같이 심방 오신 한 자매님이 가족에 대한 간증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고  ‘내가 이렇게 고집만 부릴 일은  아닌데…….마음을 좀 바꿔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니 누나가 계속 아버지한테 교회 얘기를 하니까 아버지 맘이 교회로 좀 끌리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겠니?” 그 말에 아들은 “어머니!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신다면 좋은 일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누나 말대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어머니 종교는 어머니 마음가는 대로 하시고요!”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고 나머지 딸들도 아들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제 남편은  큰 사위의 권유와 많은 교회 분들의 수고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기적적으로 세례(2022.8.15)를 받고 일주일 뒤에  낙원으로 갔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저도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의 옷 정리를 하는데 눈물이 너무 쏟아져서 자녀들이 대신 정리를 해주는 동안 큰 딸 집인 수원에 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위는 믿음에 관한 얘기들을 계속 해주었고  병호는 지극 정성으로 배려하고 저를 위로해 주었고 병일이는 차로 동부교회 예배에 참석하도록 데려다 주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조문에 대한  답례인사를 하고 난 후, 속으로  ‘나도 애들 아버지를 따라 가야지!’ 이런 마음으로 그동안 심취해서 보던 불교 서적들을 모두 정리해서 다 절에 가져다주고 와서 마음을 굳게 먹고 애들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안식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둘째 딸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찬송가 가사가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아서 이제 더욱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집에서는 간증집을 읽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3. 세례 받기전  2주간 전혀 음식을 못 먹다가 세례(5.14)받고 다시 먹게 되다.

    올 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세례식을 2주 앞두고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전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녀들이 저의 건강이 걱정되었는지 저를 큰 병원에 데려 가서 모든 검사를 다 마쳤는데도 건강상 문제는 없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식사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들 아버지는 9일간 곡기를 못먹고  위중한 상황이 되었었는데,  저는 세례를 앞두고 10일 이상 식사를 못 하니까 교회는 비상이 걸려서 저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세례받기 전에 제가  두 번 꿈을 꾸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애들 아버지가 꿈에서 나타나  “당신 때문에 내가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문득 내가 불교와 관련된 것들을 다 정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정리한다고는 했는데 혹시나 남아 있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불경책 1권과 염주1개, 절에 다닐 때 입었던 바지 1개, 불교 달력 등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샅샅이 찾아서 모두 다 갖다 버렸습니다.

    세례 받기 하루 전에 또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2주간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서 너무 너무 배가 고파 있던 나에게  아름답고 파아란 바다에서 어떤 두 사람이 밥을 주어서 너무 너무 맛있게 먹는 꿈을 꾼 것입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힘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 꿈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쁩니다. 

    저는 꿈을 꾼 다음 날인 2023년 5월 14일에 애들 아버지가 세례받은 그 장소에서 둘째 딸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식후  교회에서 예약해준  식당에 갔는데 그동안 먹지 못한 식사를 세례받은 그날  점심 식사부터 아주 맛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4. 대만교회 방문에 막내 딸과 손녀 현경이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다.

    저는 자녀가 4명인데 큰 딸 숙이와 둘째 딸은 믿고, 아들과 막내 딸이 아직 믿지 않는데,  이번 가을에 교회에서 새신자와 구도자들을 위한 대만 여행(2023.10.30.~11.5)에 믿지않는 딸과 손녀 딸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목자님 이하 여러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인도해 주실지 기대 반 설레임 반입니다. 감사주!

     

    5. 명절이나 남편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온 가족이 온전한 예배를 드리다. 

    큰 사위 인도하에,  믿지 않는 자녀들까지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믿음의 가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과거에  제가 하나님을 몰랐던 시간에도,  많은 목자님과 성도님들의 한없는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을 사랑으로 인도해 주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남은 여생 그 은혜에 보답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1 이성자모친과 둘째 따님의 세례식날

    사진2 자녀, 남동생, 사위, 손주와 함께

    사진3 성찬을 받는 모습

    사진4 모친의 전도대상 손주가 교회 온 날,   남동생 이수영 형제님, 큰 딸 남궁숙 자매님과 함께

    사진5  모친 어머니의 살아 생전 모습.  세례 받고 큰사위(박성구형제님)가 남양주까지 가서 수원교회 영은회 참석시키기 위해 차로 모시고와서  영은회 내내 업어서 예배당으로 가는 모습(30여년전 사진)

    사진6 모친의 손녀 솔이자매&가이자매가  이모 남궁숙자매님의 인도로 세례받고 수원교회 돌아와서 감사 찬양하는 모습(2003.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