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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백남리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부터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은혜의 간증을 하겠습니다.

    ▶ 첫 번째 간증 : 낚시배 이야기

    제 아들인 재웅이가 낚시를 좋아해서 재웅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면 가끔 속초 동명항을 갑니다. 그 날도 낚시를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우리 가족 셋만 타고 출발하는 낚시배를 예약하였습니다.

    저는 출발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잠시 화장실좀 갔다 올께요” 하고 공중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장소가 적당하지 않았지만  진심을 다하여 짧은 기도를 드렸고 든든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출발 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배가 갑자기 멈추었고 선장님이 배 아래로 왔다 갔다 하시더니 조타실(엔진이 있는 곳)에 물이 차서 배가 가라앉게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주중에는 고기를 잡는 고깃배이고 주말에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30년을 배를 탔는데 이런 일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셨고 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해양경찰에 급히 신고하였고 바로 해양경찰이 와서 사고조사를 하면서 조타실에서 물을 퍼내는데 대형 고무 물통 2개에 물이 가득 찼고 결국 고깃배는 인양하여 엔진을 완전히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장님은 미안해 하시면서 전액 환불을 해주셨고 우리 가족은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다른  배를 타고 다시 낚시를 하러 출발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방금전에 화장실에 가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 셋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지켜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후 저는 눈을 뜨고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 드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그 마음을 크게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 간증 : 브레이크 라인 이야기

    지난 가을 금요일 아침 일찍 일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일하기 위해 이동하려고 출차를 하는데 마침 반대쪽에서도 주차를 하려고 올라오는 차가 있어 저는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리막길로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평지로 내려와 바로 앞에 방지턱이 있어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쑥~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어 이건 뭐지? 난생처음 경험한 일인지라 느낌이 이상했고 평지에서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자 확실히 내 차에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사이에 차는 왕복 6차선으로 합류했고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신호등은 완전히 무시하고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바로 보이는 사거리에서 무조건 좌회전을 해서 한적한 언덕길로 올라갔습니다. 놀랜가슴을 부여잡고 보험사를 부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주정차 딱지 구역이라서 안될것같아 다시 놀랜가슴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리막길로 다시 차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0미터 앞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 두분이 느릿느릿하게 건너고 계셨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의 인생이 너무나도 억울하게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순간 이상황을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고 “내리막과 미끄러운 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려가라는 재웅이 아빠의 말을 생각나게 해주셨고” 그렇게 했더니 다행히 조금은 천천히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할머니 두 분은 아직도 겨우겨우 횡단보도 끝을 향해 이동중이였고 저의 차는 간신히 할머니들을 피해 우회전을 해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보험사에 신고를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습니다 하고 신고했더니 20분 뒤에 견인차가 왔습니다. 아~ 내 차를 끌고 가기 위해서 왔고 차에 큰 문제가 있구나 확신을 했습니다.

    견인차 아저씨가 저의 차를 살펴 보시더니 왼쪽 타이어에 기름이 새네요 하셨고 브레이크 라인이 끊어진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처음 견인차를 타게 되었고 조금전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반대쪽에 올라오는 차가 있었는데 다행히 부딪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고 평지에 내려와 방지턱을 넘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을때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카센터에 가서 브레이크 라인을 교체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저에게 경험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주야로 살피시고 계심을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한순간의 사고는 예측 불허지만 하나님 의지하고 섬기는 것은 나의 마음이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님과사모님을 따라서 심방을 하다 보면 대상자 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다 있더군요. 남편이 반대를 해서, 부인이 반대를 해서, 아들이, 딸이 반대를 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이방 결혼하여 아직도 그런 가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확고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수없이 인내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태풍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강남교회 허민욱 형제)

    태풍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강남교회 허민욱

     

    지난 5월 우리 가족(4명)은 괌으로 여행 중, 한국 뉴스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던 태풍(마와르)을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연약함과 일상의 감사함에 나누고자 합니다.

     

    아내가 모아두었던 항공 마일리지가 올해 6월말에 일부 소멸된다는 소식에 우리 가족은 6월이 가기 전 5.20(토)저녁부터 24(수)까지 4박5일 일정의 괌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한 4박5일 일정은 ‘태풍’이라는 변수를 만나 9박 10일의 일정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남달랐습니다. 여행전날 아내는 자전거 낙상사고로 턱을 다쳐 턱을 꿰매는 수술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상처소독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물에 절대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물놀이를 위해 괌에 가는데 아내가 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담담했습니다. 소독 후 빨리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기 위해 집에 왔더니 집에서 기다리던 첫째 예안이는 아프다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픈 적이 별로 없던 예안이었기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내는 턱과 손, 팔이 다치고 예안이는 열이 나고…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의 경고는 아니었을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 지불한 경비와 일정을 고려했을 때 이미 계획한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아이의 해열제를 넉넉하게 챙기고 괜찮겠거니 하며 여행을 떠났습니다. 물론, 태풍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부랴부랴 공항으로 출발하여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괌에 도착했습니다. 첫째 날은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보기 위한 투어를, 다음날부터는 바닷가 앞에 위치한 호텔에 투숙하며 마음껏 수영하는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하나하나 어그러져 갔습니다. 여행 둘째 날, 둘째 유겸이도 고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고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여행 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계획했던 투어는 예상치 못한 지역행사로 차가 엄청 막혀 계획한 곳 중 1군데만 겨우 구경을 했습니다. 다음 날 계획한 돌고래 투어는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의 고장으로 시간을 지체했고, 90프로이상의 확률로 볼 수 있다는 돌고래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행 중에 예상치 못한 ‘불행’이 계속 생겼습니다.

     

    돌고래투어를 마치고 22일(월) 바닷가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할 무렵 수요일로 예정된 항공편이 결항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간신히 귀국일정을 앞당겨 23일(화) 오후 5시 귀국편으로 예약변경에 성공했지만, 24일(수) 상륙할 태풍으로 인해 23일(화) 아침부터 괌은 외출자제 명령이 발효됐고, 23일 귀국편 모두 결항처리 됐습니다. 괌에서 25일, 26일, 27일, 28일, 29일 등 수없이 귀국편 예약변경을 시도했으나 우리는 태풍으로 인해 결국 6일 더 체류하며 30일(화) 자정에 입국하게 됩니다.

     

    괌에 상륙하게 된 태풍은 현지에서도 60여년만의 태풍이었다고 합니다. 태풍 당일의 공포도 상당했지만 태풍의 영향은 그 이후에도 막대했습니다. 태풍으로 숙소의 물과 전기 공급이 끊어졌고 공항의 활주로 및 기계장치의 파손으로 1주일간 공항은 폐쇄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3천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괌에 발이 묶였습니다.

     

    괌에서 경험한 태풍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꿨습니다. 태풍은 단 하루 지나갔을 뿐인데 자연은 비참하게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물과 전기를 찾아 떠도는 유랑민(?)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이 끊어지자 당장 씻을 수 없고 화장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발생했습니다. 에어컨이 가동 안 되니 더운 날씨로 인한 습함, 찝찝함으로 씻고 싶어도 참아야 했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는 물이 나오는 건물을 수소문하여 돌아다녔습니다.

     

    또한, 전기가 끊어지자 15층에 투숙하던 우리 가족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1층까지 오가는 과정에서 계단을 이용하여 왕복해야 했고, 핸드폰 충전을 위해 전기가 공급되는 호텔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또한, 전기를 통한 빛의 공급이 차단되자 야맹증이 있던 저는 아내를 의지하여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을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서 단지 태풍이 하루 지나갔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문명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고 그 속에서 익숙해진 편리함을 찾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유랑하는 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공포로 다가왔던 태풍을 통해 하나님의 크심을 생각해보는 한편 편리함이라는 울타리 속에 익숙해진 채 편리한 문명을 좇는 저의 모습을 보았다고 할까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일상의 삶 속에서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물, 전기 그리고 인터넷이 제한된 채 6일을 괌에서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또한 편리한 생활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던 제 모습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그러한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원망의 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 나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행 시작 전, 후로 계속된, 소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원망과 짜증보다는 이보다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며 농담을 던지는 가운데 태풍을 만난 후 일상의 편리함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적응했습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고열에 시달렸던 아이들은 짧은 시간 내 컨디션을 회복하여 태풍 후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가서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영장에서 물을 수시로 길어 나르고 빨래 등 힘쓰는 일에 애쓰고, 아내는 계속하여 최신 상황과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제공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첫째가 여행 떠나는 날 아팠기 때문에 충분히 한국에서 챙겨간 약으로 여행 중 아이들이 아파도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습한 날씨로 인해 고열 발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약이 부족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여행 초기에 이틀 정도의 열감기만 있었고, 면역력이 생겼는지 체류하는 가운데 습한 날씨에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가 머무르는 숙소는 시설이 썩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태풍으로 인한 전기, 물이 차단되는 상황에 최적화된 곳이었습니다. 일부 호텔은 연장이 안 된다고 투숙객을 내좇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가 묵은 곳은 귀국까지 연장을 해줬습니다. 태풍으로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호텔에서 기본 쌀밥을 메인으로 하루 3끼 도시락을 귀국까지 제공해줘서 다른 관광객처럼 식당을 찾아 헤매거나 아이 밥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방 안에는 기본적으로 정수기가 있어서 생수를 구하러 애쓸 필요도 없었고, 각 층마다 제빙기, 전자레인지가 있고 공동 시설에 세탁기, 건조기가 있어서 전기가 한시적으로 들어올 때면 밀린 빨래를 하고 도시락이 질릴 때면 취향에 맞는 음식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다고 생각합니다.

     

    60년 만에 찾아온 태풍을 괌에서 만났지만, 그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크심과 물질의 익숙함 속에 살아가는 나를 보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주셔서 이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성도간증]인천교회 이안드레 집사님 간증입니다!

    [성도간증]인천교회 이안드레 집사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이 안드레 집사님이 계십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든든한 기둥이십니다. 언제나 성도들에게  칭찬의 말, 축복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바느질 솜씨는 아마 국내 제일이실거라 확신합니다.

    묵묵히 주님과 동행하며 사모님과 신앙생활 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주님께서 집사님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가정과 하시는 일에 더 많은 축복으로 함께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안드레 집사님의 간증이 시작됩니다. 잘 읽어주세요.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면서 간증하겠습니다.

    어린시절에 서도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너도나도 참으로 힘들게 살았어요.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가정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려고 시험도 보고했는데 우리 집 형편을 생각하니 도무지 공부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하게 되었어요.

    서울로 상경해서 지인의 도움으로 공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얼마 못 가서 부도가 나는바람에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공장 사장님의 추천으로 천호동에 있는 동진공업주식회사를 다니게 되었는데 자금 부족으로 폐업을 하게 되어 그 회사도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직업이 없을까 생각하고서 도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제 눈에 양복점이 보였어요. 가게를 들어가서 “혹시 양복을 배우고 싶은데 배울 수 있나요?” 물어보니 내일부터 나오라고 사장님께서 말씀해서 그때부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재봉틀부터 배워야 하는데 저는 재단부터 연구를 많이 했어요. 주님의 은혜로 부산초량에서 양복점을 하신 양복계의 원로이자 최고의 기술자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명장이셨던 정태준 장로님의 제자가 되어 기술을 배웠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카누`라는 양복점을 개업하고 약 30년 동안 양복을 만들었습니다. 손님들한테 좋은 기술을 가졌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 생활하면서 양복점을 운영해야 하는데, 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교만해졌습니다. 벌었던 돈과 쌓은 재산을  사기로 다 탕진하고, 마지막으로 인천에서 집 한 채 살 정도의 돈이 남아서 다 정리하고 인천으로 내려왔습니다. 모든  것을 회개하면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하고, 열심히 믿음 생활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위로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님들도 이 안드레 집사님과 가정에 형통함을 주시길 기도해주세요! 임미누엘♥

     

     

     

  • [성도간증]육군3사관학교 생활과 할머니의 임종

    [성도간증]육군3사관학교 생활과 할머니의 임종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동부교회 박지훈 형제입니다. 지난 2021년 1월 17일에 푸른 장교의 꿈을 안고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하여 2023년 2월 27일에 장교로 임관하였습니다. 사관학교 생활하면서 있었던 저의 이야기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육군3사관학교는 북한 무장 게릴라의 청와대 습격사건, 프에블로호 납북 사건 등에 영향을 받아 북한군보다 더 강한 정예 장교를 양성하라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명에 의해 북한군 출신인 귀순장교를 초대 학교장으로 임명하여 창설되었습니다. 육군3사관학교는 일반대학에서 2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편입하여 2년을 더 공부한 후 졸업합니다. 육군3사관학교 교육 과정은 다른 장교 양성과정들보다 빡빡하고 힘든 과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제가 입학한 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 외박이 통제된 삶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기에 매우 열악한 상황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통해 예배에 참여하였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2년간 휴가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훈련을 통한 기쁨과 성취감도 물론 있지만 육체적, 정신적, 신앙적으로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2022.3.17일 저는 큰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제가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할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외출, 외박 통제로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2년 동안 할머니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왜 하나님은 나의 여건과 상황을 아시면서 할머니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게 하셨을까?” 라며 원망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할머니는 제가 입교하고 난 뒤부터 뇌경색으로 병원에서 생활하셨습니다. 의사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상태셨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하나님이 할머니를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습니다. 제 기억 속의 할머니는 항상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고통 속에 돌아가신 것이 원망스럽지만 기쁨이 가득한 천국에 가신 것을 믿으며 슬픔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소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의 손자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2년 동안 무사히 훈련과 학업을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세상의 수고를 다 마치시고 낙원에서 기쁨을 누리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만날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험한 훈련 가운데서 지켜주셔서 지난 2년간 좋은 성적으로 육군참모 총장상을 2번 수상하고, 육군 항공 장교에 선발되어 공격형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제 삶도 지켜주실 것을 믿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김경라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이 글은 2022년 성령을 받으신 김경라 자매님의 회고록 입니다. 김경라 자매님이 직접 써주신  글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2022년 11월 5일 안식일 소모임 아비가일 방에서 기도 시간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60년 10월 9일생. 63세입니다.(2022년 기준) 14세 중 1때 처음 교회에 들어갔었고 49년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뒤에서 애쓰시고 기도해 주신 에스더(제주)자매님, 문자(전주)자매님, 허진숙(천안교회 사모님), 정미식(서부교회), 이영숙언니(동부교회)자매님, 오점수언니(강남교회)자매님. 감사합니다.

    첫 교회 경험은 어린 시절 그때는 국민학교 시절에 교회를 따라갔어요. 국민학교 학생들이 참 많이 모였었고 특히 선생님들이 참 좋았던 하루의 경험이 교회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싫어하실걸 알기에 다신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전북 전주로 전학을 갔어요. 엄마는 늘 환자였습니다. 심장병으로 중1 여름방학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이셨고 어린 남동생 2명이 있구요. 어느 날 새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답니다.

    조건은 새 엄마 다니시는 교회에 함께 나가는 것!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꿈에 그리던 일이잖아요 .온 가족이 손에 손잡고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 명칭은 참 예수 교회. 교회에 들어섰는데 일반 교회와 달랐습니다. 기도 시간에 전 너무 놀랬어요. 무서웠어요.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아니 그 많은 멋진 교회들도 많구만 하필 이상한 교회라니! 기가 막히고 두렵고 신기하고. 밖에 나가면 교회 얘기는 하기 싫었어요. 정말 창피 했어요. 이상한 교회니깐요.

    못 다니겠다고 반항도 못하겠고 그냥 놀러 다녔어요.  늘 가면 언니들 많고 오빠들 많고 친구들 많고 친구들이 좋아해주고 그런 기분으로 놀러 다니면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하라 하니깐 받았죠. 7년 정도 교복 시절을 전주 참 예수 교회에서 지냈어요. 그 시절 교복 학생 중에는 저만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손가락질 받는 것이  싫어서 참 예수 교회 다닌다는 말을 안하고 살고 교회 안에서는 저만 성령을 못 받고..

    그때 기분은 부끄러웠고 두려웠습니다. 왜 난 성령을 못 받을까? 성령 받은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아마도 하나님 보시기에 난 앞으로 악을 저지를 사람인가보다. 난 죄가 참 많은 인간인가 하고 낙담하며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1, 2년 정도는 괴로움이 있더라구요.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 생활 안 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세상은 즐거움과 짜릿함이 많았구요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하고 교회 생각 안하고 사니 편했어요. 

    29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1남 1녀를 두었고 버젓한 남편 직장에 아주 그냥 남 부러울 게 없더라구요. 

    주부로써 친구들 좋아하고 자식들 사랑스럽게 키우면서 실컷 놀면서 살았습니다. 수영, 등산.. 한 이십년 정도 등산을 했나 봐요.

    산에 가면 가는 산 마다 절이 꼭 있어요. 같이 다니는 친구들 중에 절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그 친구들은 절에 들어가서 절을 하고 기도를 드려요. 그 기도하는 모습이 뭔가 부럽더라구요. 신앙 생활 한다는게 부러웠어요. 일반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들도 부러웠어요. 신앙이 갖고 싶었어요.그래서 열심히 찾았어요. 참 예수 교회만 아니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타인들 시선에 벗어난 이상한 신앙은 절대로 안 할 거라고 다짐,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이단이니 날라리 교회이니 그런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평범하고 소박한 신앙 하나 갖고 싶었어요.

    20년 전인지 25년 전인지 에스더 자매와 문자 자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거부할 수 없는 친절함. 그래도 그건 제 마음속에 아니였답니다. 그때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고 연락도 안 남기고 도망치듯 이사하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분들을 피해 이사한 것이.

    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천주교에서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때 참 고맙고 거룩했고 경건했고 좋았어요. 그래서 성당에 나갔어요. 근데 그 경건함이 우상숭배로 보여지잖아요.

    또 친한 친구들을 따라 여러 군데 장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어머나, 근데 가르침이 들어 오질 않아요. 도덕 시간 같기도 하고 그냥 메아리로 그치는 설교 말씀. 아! 난 왜 이리고 못 됐을까? 친구들처럼 그냥 믿으면 안되나? 왜 자꾸 안 믿어질까?

    10년 전부터 바꾸었어요. 그래 절에 다니자. 절 신도가 되어보자. 내 성격과는 절이 잘 맞는 것 같아 이왕이면 명성 있는 절의 신도가 되면 좋겠다 해서 조계사에 나갔어요.

    언제 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마음 내키면 갔어요. 법당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따라하면서 누군가 나에게 말 걸어 오기 만을 기대하면서 .

    그런데 아무도 저에게 말 걸어 오질 않았어요. 그래 다른 절에 가보자. 봉은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누군가 말을 걸면 바로 대답하리라.

    신도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려고 기다렸지만 거기서도 저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집 앞 소망 교회에 나가보자. 번듯한 교회이니 뭔가 다르겠지. 그러니 신도가  저리 많지. 참 무척 낯설었지만 웅장하고 세련된 건축물과 상류 사회 느낌이 물씬 풍기더라구요.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여긴 연회장인가?  사교장인가? 과연 하나님은 계실까? 사람만 많네. 그런 느낌!

    난 정말 이방인 같았어요. 

    7년 전 용인 산골에 정말 소박한 너무도 소박한 아주 작은 집을 지어서 이사했답니다. 결혼해서 살면서 전부 다 내 멋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나이 들어 딱 하나 남편에게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전원생활! 남편이 그리도 원하니 산골에서 살아주자. 나이도 들었고 한번 살아보자.

    전원생활 하면서 전 다(多) 종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갈 일이 있으면 오케이. 절에 갈 일이 있으면 오케이. 우상숭배도 오케이.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좋구만! 정하지 말고 이렇게 살자, 착하게만 살자! 빌고 싶으면 하나님이든 천주님이든 부처님이든 다 빌면 되지!

    압구정에 있었던 작은 사찰의 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용인으로 이사할 때 즈음 그 절도 아산으로 터를 옮겼습니다. 딸을 데리고 그 곳까지 찾아가서 부적을 받아왔습니다. 아들 딸 지갑에 부적을 넣어서 갖고 다니고, 남편 컴퓨터 책상에 붙여 놓고, 딸 집에 부적을 붙여 놓고 뿐만 아니라 절에 있는 커다란 종에 우리 집 식구들 이름까지 전부 올리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남편 모르게 돈을 내가면서.

    소리 없는 악행을 계속 저지르고 살았습니다.그렇게 사는 것이 복 받는 일이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렇게 마구잡이식 종교를 이쪽저쪽에 두 발 담고 살았습니다.

    2년 전 쯤 허진숙(천안교회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어요.친구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고. 오케이! 우리 집으로 와. 정미식 친구와 둘이 왔어요. 중학교 때 처음 갔던 전주 참 예수 교회 교복 친구들! 참 반갑고 좋았지만 얘들아, 나한테 교회 얘기전도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라 내 남편도 기독교인들 안 좋아하고 나도 교회 얘기 할 거면 너희들 안 만날 거야.

    그래서 교회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셋이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우리 과거 여행 하러 가자. 전주 가볼까?” “그래.”

    전주에 갔는데 다비다 집사님과 채길석 장로님과 문자 자매와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 그림 전시회 보러 가자.  영숙 언니 알지? 그 언니가 전시회 한다는데 가보자.””오케이!” 그래서 영숙 언니를 만났구요.

    근  40년 만에 만난 영숙 언니는 뭔가 귀한 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교회 분들을 만나니 점수 언니가 궁금했어요. 영숙 언니가 저희 집에 놀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점수 언니랑 같이 오겠다고.

    너무 반갑고 기다렸죠. 오는 날 연락이 왔어요. 점수 언니 부부, 영숙 언니 부부 네 분이서 출발 하셨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언니 우리 집은 산골에 작은 오두막이야. 우리 두 사람 움직이는 공간밖에 없어요” 했더니 “응, 알겠어 경라야! 우리 2인분 만큼만 움직이다가 올게!”

    어쩜 좋아.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남편에게 어디서 아는 사이라고 말해야 하지? 정말 막막했지요. 여섯 명이서 작은 집에 옹기종기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고 전 심히 불편했습니다.

    그 날 가시면서 영숙 언니 남편 분께서 “가평에 초대하겠습니다.꼭 와주세요”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날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왜 자꾸만 참 예수 교인들이 내 삶을 침범하는가?

    그날 밤부터 저는 코로나에 걸려 한 일주일 아팠어요. 이틀 뒤부터 남편도 코로나로 일주일 함께 아팠습니다. 그런데 네 분은 전혀 코로나로 아프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성경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다락방으로 올라갔어요.

    “수지 아빠! 나 오늘부터 성경 책을 읽을거야. 이 성경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신앙을 결정해야겠어.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난 불교 신자가 될 거야!”. “잘해봐”

    그날 저녁부터 성경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편부터 시작! 한 이틀 간은 재미 없었어요.

    참말로 성경 책처럼 재미없는 책이 있을까요? 어려운 수학,과학책 보다 어렵고 허구투성이 같고 믿어지지도 않는 이 책에 사람들은 왜 감명을 받을까?  의아하지만 참고 억지로 읽었습니다.

    며칠을 읽다 보니 신기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머나! 세상에! 믿어지는 거에요. 심장이 두근두근 계속 읽고만 싶은 거에요. 말씀이 소중하고  믿어지고 기도하게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성경책을 읽으면서 내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잘 못 하나하나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죄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죄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많았어요. 생각나는 대로 다 고백했어요.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살면서 이런 느낌 처음이었어요.

    영숙언니 연락이 왔습니다. 가평으로 초대한다고! 제 남편은 저 따라가는 모임 싫어해요. 안 갈 것 같았어요. “갈 거야?”하고 물어봤지요. “가지 뭐! “

    그래서 함께 또 가평에 갔어요. 영숙언니 부부, 점수언니 부부, 저희 부부. 허인숙언니, 허진숙, 정미숙 모두 모였어요.

    사도행전 6장 15절말씀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날 모인 7분의 모습에서 스데반을 보는 것 같이 천사처럼 빛나 보이더라구요. 정말 잘 살아 온 아름다움이 영향력이 있고 빛나 보이는 겁니다. 제 스스로 제가 보잘 것 없고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주 하나님 안에서 특히 참 예수 교회 안에서 긴 여정을 성령의 사랑으로 살아오신 그 분들과 나와 내 주위 분들의 너무 다른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부러웠습니다.

    그분들의 아름다움에 제가 반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점수 언니의 간곡한 메세지가 왔습니다, 영은회 하는데 꼭 한번만 와 봐. 초대할게. 참 다정하게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강력하게 거부할 수 없는 초대였습니다.

    남편에게는 서울에서 점수 언니가 한번 만나자고 하네 한번 다녀올게 하고 다녀왔습니다.

    교회 다녀온 후로 여러 생각이 많았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식구들에게,친구들에게 참 예수 교회 나간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구요.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이단이라고 나오더라구요! 거기에서 기가 또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난 이단을 나가면 절대 안돼. 그러나 인간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하지 말자 피하지 말고 만나서 사실을 얘기하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만 난 참 예수 교인은 되고 싶지 않다고 얘기 하고 나오자.

    그렇게 양지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줄이 길었는데 그 날은 두 대의 버스가 한, 두 사람만 태우고 가버렸어요. 그곳에 있던 20여명의 사람들이 화가 나서 난리가 났습니다.

    하늘의 뜻이구나! 집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검은색 차량이 남자 한 분을 태우고 출발하다가 문을 열더니 남부터미날 가실 분 세 분만 타세요 하는 거에요. 그 순간 제가 손을 번쩍 들고 차 안에 일착 했어요. 그 뒤에 저 따라서 두 명이 더 탔답니다. 염치고 체면이고 불안이고 생각이 하나도 안 나고 그냥 타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감사해서요.

    전 참 소심하고 겁이 무척 많은 사람이에요. 모르는 차를 탄다는 것은 제 성격 상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남부터미날 도착, 지하철 6 정거장을 지나서 소모임 예배에 출석 했습니다.

    이제 예배 끝나면 점수 언니에게 다 얘기하고 저는 집에서 혼자 고요히 성경책 읽으면서 제 신앙 생활을 할 거라고 얘기만 하면 되었어요. 예배 시작하면서 점수 언니가 인도를  하시더라구요.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여기 나온  김경라 자매님 성령 받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깜짝 놀랬지요. 49년 동안 그냥 살아왔고 또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남기려고 성령 받기 위해 기도 하자니 왜 이러시나! 큰일이네! 에고 모르겠다. 무릎 꿇고 않아서 두 손 모으고 가만히나 있자 하고 눈 감고 있었어요. 입 꾹 다물고 숨만 쉬고 있었어요.

    저는 분명히 눈을 꼭 감고 있는데 분명 눈을 감았고 안 뜨고 있는데 가슴에 황금 빛 큰 십자가가 있는 하얀 가운을 입고 어떤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제 왼쪽으로 걸어서 오시는 거에요.

    그때 순간 저는 ‘어머 내가 왜 이런 공상을 하고 있지? 이게 뭐지? 아니 근데 왜 뜨겁지? 아니 왜 자꾸 입술이 입안에서 움직이지? 입을 벌려야 하나?’

    그러면서 입을 벌리자 방언이 터지는 거에요. 그때 강력하게 느꼈습니다. 나 지금 성령 받고 있구나!

    그러면서 기쁨과 안도와 평안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양지로 돌아와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수지 아빠, 나 교회에 가서 성령을 받았어. 이건 기적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마당을 지키는 풍산개 백구에게 “백구야!엄마 성령 받았어.” 방안에 있는 푸들 강아지 두 마리에게 “대박아! 또복아! 엄마 성령 받았어.”

    그렇게 두 번 교회에 다녀 온 이야기를 남편에게 알리면서 새로운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축복은 제 남편과 함께 안식일 예배에 두 번 참석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성령의 체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또 때가 되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 하나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고 평생 감사드리며 살겠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멘! 김경라 자매님의 신앙생활에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성도간증]이정홍 형제님의 신앙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성도간증]이정홍 형제님의 신앙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에 이정홍 형제님의 신앙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형제님과 아내되시는 심갑순 자매님은 인천교회에 웃는 얼굴로 성도님들에게 에너지를 주시는 부부이십니다. 또한 변함없이 두 분의 자리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형제님의 변함없는 모습은 안식일 마다 빗자루를 드시고 교회 계단을 쓰시는 보습입니다. 형제님은  70이 넘으셨는데 언제나 유쾌하고 웃음이 넘치셔서 그런지 50대로 보이십니다. 제가 인천교회에서 신앙생활 한지 20년이 넘었는데 한번도 표정이 안 좋으시거나 언성을 높이신 것을 뵌 적이 없습니다. 아내 되신 심갑순 자매님과 인천교회 원조 잉꼬부부 이십니다.                           

    간증을 들으면 형제님의 인생이 그려집니다. 형제님을 교회 안에 있게 하신 어머님의 믿음부터 결혼, 생활전선, 암투병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심갑순 자매님의 간증을 통해 자매님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알게 되실겁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택하셨기에 이정홍 형제님을 만나게 하셨고, 결혼을 통해 참 진리 안에 들어오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모습,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없으신게 걸리신다고 하셨지만,  평생 주님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시는 형제님과 자매님께 하나님께서 빛나는 면류관을 씌워 주실거라 믿습니다.                                                                                                                                                         

    지금처럼 항상 웃음이 가득하시도록 하나님께서 건강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성도님들도 함께 기도해 주세요~!

    유트브 신앙이야기

  • [성도간증]성령을 받았어요!

    저는 부모님과 여동생, 저 이렇게 네 식구입니다. 저의 이름은 황아인인데 아빠가 지어 주셨습니다. (예쁠아, 어질인) 

    저희 가족은 안식일이 되면 교회에 나옵니다.  제가 얼마전 성령을 받은 간증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 11월26일 아동부 예배시간에 목자님께서 안수해 주실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기도할때 마음속에서는  근심 걱정에 대하여, 그리고 죄에 대한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할렐루야를 입으로 외치며 기도했습니다. 처음으로 목자님께서 아동부로 내려오셔서 설교해 주시고 안수기도를 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도가 끝난후 화장실에 가려고 할때 목자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은 줄도 몰랐고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안식일 대예배 기도시간에 늘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평상시 예배때 성령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5학년 아동부 영은회때 유바나바 목자님으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 

    내가 성령을 받았나? 라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고 우리 교회에서 매일 한장씩 읽는 스토리 성경읽기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그때 기도했던 날은 힘든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면서 간절히 기도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몸이 많이 떨렸습니다. 갑자기 떨림이 느껴지니까 놀랐지만 내가 성령을 정말 받았구나라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틀 정도 제 혀에서 방언이 나왔습니다. 정말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놀랍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후로 방언기도가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왠지 좌절이 되었고 기도를 잘 하지 않아서 성령이 약해진 것일까? 혹시 성령이 사라질까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열심히 기도하라는 뜻으로 믿고  성령이 더욱 강하게 임할수 있도록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아동부에 동생들 현서와 제인이도 하루 빨리 주님의 은혜를 받고 , 성령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성도간증]성령을 받다_구종우형제

    *이 글은 강남교회 구종우 형제의 간증입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또래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모두 성령을 받은 것을 봐오면서, 저도 이번 학생부 영은회 때는 꼭 성령을 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영은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영은회를 참석하기 전에 저는 새학년을 맞아, 학교에 적응하느라 신앙생활보다 학업과 학교 친구관계에 대해서 더욱 신경을 썼고, 교회예배를 시험공부 때문에 참석하지 않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늦잠을 자고 교회에 늦게 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영은회에 참석하고, 하나님말씀을 배우면서 그동안의 저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것을 고하고, 죄송하다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같은 철없는 죄인도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시는 따뜻한 하나님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어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성령을 주셔서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한 후 폐회식 때, 제가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얼떨떨했지만 저를 용서해주시고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바쁜 세상에서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겠습니다.

     

     

     

    구종우 형제의 간증을 들으며 ‘주만 바라 볼지라’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나 또한 주님만 바라는 마음으로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작성자| 참예수교회 강남교회 김정남

  • [성도간증]이순길♡장순화 부부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성도간증]이순길♡장순화 부부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신 이순길♡장순화 부부의 간증입니다.  장순화 자매님은 꽃다운 나이 스무살에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 입교하셔서 예수님의 신부된 삶을 사시고  이순길 형제님과 결혼하셔서 형제님을 진리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인천교회에 1990년에 오셔서 32년째 신앙생활 해오고 계십니다.

    두 부부가 신앙생활 해오신 과정을 생생한 간증을 통해 들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두 부부를 선택하셨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시고자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두 부부를 축복하시고 함께하실 것을 믿으며 또한 두 부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임마누엘♡

    유트브간증링크

  • [성도 간증]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_이경추 집사님

    [성도 간증]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_이경추 집사님

    할렐루야∼
    우리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의 권능 앞에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지 어제로 벌써 한 달이 되었는데요,
    장례를 마치고 이 일을 겪으며 정말 예수 안에서의 죽음이 얼마나 복 되고 기쁜 것 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을 탕감받은 자보다 그 은혜가 더 크죠.
    아마도 저희 아버지께서 그렇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를 포함한 3형제 저희 가족들이 아버지께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1주일이면 2∼3일 정도를 술에 취하셔서 동네방네 시끄럽게 떠들어 대시고, 집에서도 조용할 날이 없었죠. 이것이 가족들에겐 늘 스트레스였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으면, “오늘 아버지 술 드셨어?”라는 말이 가족들의 일상적 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아버지께서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실 저로서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일이었죠.
    그래서 제 스스로가 먼저 이런 아버지를 제쳐 두고, 아무래도 좀 더 애착이 가는 어머니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했었고,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마음이 착하신 편이어서 아들이 부탁하면 1년에 몇 차례씩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를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2019년 4월 2일쯤에 저희 어머니께서 갑작스러운 뇌출혈 수술을 받으셨는데요, 이에 대한 가족들의 상심이 아주 컸으며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암담할 뿐이었죠. 그런데 4일 후인 4월 6일 안식일에 저희 아버지께서 교회 나오셔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로 인한 충격에 아직 그 암담함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께 성령을 주신 것이죠. 저 뿐만 아니라, 당시 성도님들께서도 많이 놀라셨습니다.

    그 전주 안식일에 저희 아버지, 어머니께서 교회에 나오셔서 목양실에서 20분 정도 당시 이요셉 목자님과 신앙에 대한 기초적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습니다. 여러 신앙적 말씀을 하시고 목자님께서 저희 아버지께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라고 물으셨죠.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은 계십니다. 믿는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목자님께서 어머니께도 동일하게 물으셨는데, 저희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셨죠. 아버지보다도 교회를 먼저, 몇 번이나 더 나오신 어머니이셨지만,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대답이 없으시자, 저희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왜 믿지 못하느냐’라고 하시며, 오히려 핀잔을 주시더라고요.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정상인 것처럼 보이죠. 교회에 몇 번 나온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모습이 제겐 의아했었죠.
    어떻게 이리도 쉽게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하고 수긍하실 수 있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 앞에 순수한 마음이 있으셨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미리 아시고 성령을 주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매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 일을 접고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차를 타고 왔는데 역시나였죠. 하루아침에 전혀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너무나 기막힌 일이라서 그런지 처음엔 눈물조차 나오지 않더라고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럽지만 장례절차가 진행되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안정이 되어갔으며,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 이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버지께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으셨구나’ 이 생각이 장례 일정 내내 제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죠.

    사고를 당하신 안타까움에 대한 슬픔이 컸지만, 제겐 슬픔보다 이 감사와 기쁨이 더, 훨씬 컸기 때문에, 내내 평안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버지께서 마지막 안식일에 교회에서 몇몇 성도님들에게 축복까지 해주시고, 성도님들과 함께 최고의 기쁨으로 안식일을 보내셨더라고요. 공교롭게도 그날 제가 당직이어서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전날 금요일에 뜻하지 않게 아버지께서 혼자 교회에 오셔서 저는 저대로 마지막으로 뵐 수 있었죠.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한 달 정도를 누워 계셨었는데요, 마지막에 이렇게 회복하시고 또, 기쁨의 안식일을 보내시고 돌아가셨다는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가게 되지만, 영혼은 어디로 갑니까? 낙원으로 가게 되죠.
    예수 안에서 이미 죽은 성도이든, 지금 살아있는 성도이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구름 타고 오실 때에,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우리가 홀연히 변화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아십니까? 장례 일정 내내 이것이 제겐 크나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이 부활의 소망, 천국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원합니다.
    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글쓴이 : 이경추 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