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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세지]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복음 메세지]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말씀 제목]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년4월 5일

    스티븐슨이란 작가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한 마을에 천사 같은 마음의 지킬 박사와 난폭한 성품의 하이드씨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그 마을에 무서운 범죄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살인, 방화, 절도, 유괴와 같은 강력 범죄 사건들이었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고 노리는 가운데 어느 날 다시 칼경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지팡이에 맞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범행 도구인 지팡이를 단서로 용의자를 추적한 결과 그 지팡이 임자가 바로 지킬 박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박사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지킬 박사의 옷을 입은 하이드씨가 자살해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천사같은 지킬 박사와 악마 같은 하이드씨는 다른 인물이 아닌 동일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소설 이야기가 명작으로 세인들에게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 인간의 내면에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잘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지적했듯이 모든 사람은 누구나 그 영혼 안에 지킬 박사같은 선한 모습도 그리고 하이드씨 같은 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자건 불신자건 마찬가지이다. 다만 불신자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 자신의 악한 모습은 감추고 선한 모습만 부각시켜서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오히려 자기 연약함을 성찰하고 부족함을 발견해서 하나님 앞에 점점 변화해 가는 존재라는 차이점이 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신앙인의 내적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롬 7:25-8:2)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으로 발견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찬 자기 모습이 발견되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뉘우치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영혼이 변화되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을 치장하며 꽤 괜찮은 사람으로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은 산상보훈 가운데 구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나타내야 하는 참 경건의 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산상보훈에서 5장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해석에 대한 내용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6장부터는 주제가 조금 달라진다. 5장까지의 주제는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세우는 것이었다면 6장부터는 그 바른 율법에 따른 경건 생활과 실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즉 5장은 이론에 관한 내용이고 6장부터 7장까지는 실천에 관한 내용이다. 그 실천의 내용 가운데 마태는 가장 먼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건생활의 세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구제, 기도, 금식이다. 오늘은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구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자.

    구제란 무엇인가? 넉넉한 자가 불우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 구제에 대해서 이렇게 행해야지 저렇게 행하면 안된다고 교훈하시고 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회는 율법에 대한 이해도 문제점이 있었지만 경건생활의 실천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으시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가? 특별히 구제에 대해서 예수님이 제시하신 바른 실천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첫째,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하략>』

    구제는 내가 땀 흘려 모은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땀 흘려 모으려면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시간을 소모하는만큼 내 생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구제란 내 생명을 타인에게 나눠주는 행위이다. 내 생명의 촛불을 태워 남에게 빛을 비춰주는 행위라는 뜻이다. 따라서 구제 자체는 매우 선한 일이요 고귀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고귀한 행동도 잘못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오늘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구제 행위를 지적하시면서 외식하는 자를 언급한다. 외식하는 자란 어떤 자인가? 여기서 ‘외식’ 또는 ‘위선’(hypocrite)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가면을 쓴 배우”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무대에 선 어떤 배우가 왕의 복장을 하고 거닐면서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 같은 상황을 바로 외식한다 또는 위선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칭찬 받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타인을 칭찬할 수 있고 내가 타인에게 칭찬 받을 수도 있다. 칭찬하고 칭찬 받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착한 사람 바나바가 등장하는데 그는 백성들에게 칭찬받았다. 또 사도행전 6장에 식탁 봉사 직분자는 백성들로부터 칭찬 듣는 자라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 조건대로 안립된 스데반 집사는 교회 성도들로부터 칭찬받는 자였다. 어떤 성도는 칭찬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의 결벽증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분을 칭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사람을 칭찬한다”고 분노를 나타낼 정도이다. 그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성도가 칭찬하거나 칭찬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 경계하신 것은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구제를 행하지 말라는 것 뿐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의 말씀을 보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 경건이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구제 행위가 경건생활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제 행위가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에는 사람이 드러날 일이 없다. 구제의 대상은 사람이지만 구제의 정신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4장 하반부와 5장 전반부를 보면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같으나 동기는 상반된 두 부류의 신앙인이 등장한다. 하나는 착한 사람 바나바이고 다른 하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다. 두 부류는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는 행위까지는 똑같았다. 그러나 바나바는 가난한 성도들을 사랑하는 착한 뜻으로 행동한 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도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는 지도자적 위치를 얻으려는 목적에서 행동했다. 만약 이런 부부가 바나바처럼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초대교회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속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순수한 정기도 사라지고 성령의 역사도 멈추고 교회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위기 상황을 방관치 않으시고 그 거짓과 위선이 교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심판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구제할 때 나는 무슨 동기로 그를 돕고자 하는가 하고 자신의 동기를 물을 필요가 있다. 또 내 안에 예배의 정신이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남을 돕는 구제를 실천할 때 항상 선한 동기를 점검하고 그런 선행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저와 성도가 되길 바란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둘째, 자기의 공로에 대해 잊어야 한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후견인 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후견인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피후견인이 된다. 만약 후견인이 피후견인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돌봐주면 그대신 가난한 그 사람은 자기를 돌봐준 부자를 남들 앞에서 칭찬하고 명예를 높여주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풍습이 일반화된 사회 속에서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교훈은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give and take의 세상 이치 속에서는 매우 어리석게 들렸을 것이다.

    예수님이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선행을 할 때 이를 보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사람의 악한 본성 중 하나다. 그러니 타인에게 상처되는 말을 듣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너 자신이 상처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뜻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시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기와 취지가 변질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또 처음에는 아무런 보상과 보답을 생각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내게 주어질 유익에 관심이 돌아가 구제가 구제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구제를 은밀히 할 수 있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 개인의 명의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헌납해서 교회의 이름으로 구제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의 바나바는 물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다. 이것은 ‘교회에 헌납했다’는 뜻이다. 교회에 헌납해서 교회의 명의로 구제하는 것이 사도교회의 모습이었다. 교회의 이름으로 하면 자기 이름을 사라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신의 공로를 잊고 하나님을 높이는 지혜로운 처신이다. 그런데 교회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하면 시험에 들고 구제가 구제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부디 구제할 때 자신의 이름을 가리고 교회를 통해 구제를 실천해서 구제의 동기도 보호되고 하나님의 이름도 높여지는 지혜로운 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란다.

    (빌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셋째, 하나님이 주실 상급만 소망해야 한다.

    (마 6:2) 『<상략>–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을 얻게 되어 있다.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은 건강을, 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돈을,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명예를 얻는다. 구제의 목적이 사람의 칭찬과 영광에 있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사람으로부터 받으려는 것을 받았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무엇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미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이 밥을 찾지 않듯이 사람의 칭찬과 명예에 배부르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상급은 기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칭찬,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에 대해서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 사람은 때로 자신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어두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내 동기가 순수한지 아니면 저 깊은 곳에 다른 뜻이 깔려 있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자신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만약 선을 행할 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바른 마음으로 구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가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만으로 충분하다면 나는 바른 마음으로 구제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 부디 사람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가장 큰 상이라는 믿음으로 구제를 실천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눅 14:14)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진실 ‘씬서러’(sincere)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이 영어 단어는 ‘시네 세라’(sine cer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 라틴어의 본래 뜻은 “밀칠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이다. 영어로 직역하면 ‘sun tested’이다. 즉 “햇빛에 시험해 보다”라는 뜻이 라틴어 ‘시네 세라’ ‘밀칠 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는 바로 고대 도자기 산업과 관계된다. 도자기(옹기)는 두꺼운 것보다 얇은 것으로 만들기 어렵고 까다로웠다. 도자기를 두껍게 만들면 불에 구워낼 때 금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얇게 만들면 불에 굽다가 금이 잘 가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얇은 도자기가 가볍기 때문에 두꺼운 도자기보다 더 비쌌다. 그런데 만약 도자기 제조 중에 흠이 발견되면 그것은 깨버리는 것이 정상인데 일부 부정직한 도공들은 약한 흠있는 곳에 색소와 밀초를 섞어 틈을 메꾼다. 그리고 다시 유약을 발라 시장에 불량품을 내다 팔았다. 그러나 이런 불량 도자기는 햇빛에 비추어 보면 금방 탄로가 난다. 햇볕에 시험한다는 뜻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정품 고급도자기에는 밑에 ‘sine cera’라는 글을 새겨 넣어서 품질을 보증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씬서러 ‘sincere’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구제할 때 어떤 정신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정신으로, 변하지 않는 순수한 동기로, 개인의 명의가 아니라 교회의 명의로 실천해야겠다. 이렇게 구제할 때 하나님은 그 구제를 거룩한 산 제사로 흠향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행을 천국 책에 기록하시고 영원히 기억해 주실 것이다. 부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그릇에 ‘시네 세라’ 씬서러 sincere 라고 새겨 넣으시는, 그런 축복된 주님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교회 행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

    [교회 행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

    할렐루야~
    지난 일요일 청주교회 봄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좋은 날씨와 모든 상황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날짜 : 2025년 05월 11일(일)
    ▶ 장소 : 충남 공주시 정안면(무두리 펜션)
    ▶ 수세자 : 장한옥

     

    장한옥 자매님께서는 5년전쯤 집 인근 산책로를 오가며 운동하던 중, 송세연 자매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송세연자매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도심방팀원으로서의 교육과 사역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전할 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던 터에, 장한옥 자매님을 길에서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건강이 안 좋아 보였고 운동을 같이 하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했더니, 장한옥 자매님께서 기꺼이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전도 대상자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오랜 만남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하나님의 때가 되어 값진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번 세례식에 두 따님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에 가는 줄 알고(세례식을 하는 줄 모르고) 따라와서 처음 모습은 당황스러워 보이기도 하였으나, 세례식이 끝나고 또래 여신도회와 게임도 하고 차도 한잔하며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또 한 번의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장한옥자매님께서는 안수를 받으며 펑펑 우셨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가난해 보였습니다. 이제 막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의 신앙과 평안을 위해(또한 다시 볼 날일 있을 두 따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교회 행사] 신입생 환영회!? 신입생들 환영해~~~

    [교회 행사] 신입생 환영회!? 신입생들 환영해~~~

    청주 참예수교회에는 올해 대학생 새내기가 되는 세 청년들이 있습니다. 

    대학부와 사회 청년부에서는 이 세 사람을 위한 조촐한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모태신앙인 세 사람은 어릴 때부터 쭉 청주 참예수교회에서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꼬꼬마 시절을 지나 성년의 자리까지 함께 할 수 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불피우기 경력이 어마어마 하다는 신학생님의 불쇼를 시작으로 호시 탐탐 고기 한점을 노리는 아동 학생부들의 눈을 피해 교회 옥상에서 벌어진 바베큐 파티~

    신고식으로 찬양 율동도 선보이고 목자님의 선물 증정식도 있었습니다.

    사진만 봐도 부쩍 부쩍 하죠? 이 청년들 모두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며 일꾼으로서 우리 참예수교회의 미래입니다.  우리 청년들을 위해 꾸준히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작성: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요_변려원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3박4일 동안 무사히 영은회를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깨닫고 느낀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은회를 통해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하나님께서 이끄신 믿음의 길을 간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배울 때, 저는 아브라함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만 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지으며 점점더 믿음이 견고해졌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연약한 모습에서 후에는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저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며 종종 엇나가지만 교회 안에서 더 열심히 배우고 깨달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로 이삭과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항상 순종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이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삭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좋은 완전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이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에 대해서 배울 때,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자로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믿지 못하고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가고 있진 않을까 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번 영은회에서 들은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 깨달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이번 영은회에서 배운 것들을 다짐하며 쓴 기도문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영은회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길을 걸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과 유혹이 있었지만 점점 더 견고해지는 믿음을 보며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저 이지만 항상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고 저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살아갈게요. 세상에서 구별되는 빛과 소금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게요.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담담히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칠 믿음과 이삭의 조건 없는 순종, 야곱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깨달음, 요셉처럼 유혹을 뿌리치는 힘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을 본받아 믿음의 길을 걷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의 끝에서 모두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되길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변려원 자매

  • [신앙의 향기] 청주TJC 커피 방앗간의 비밀~

    [신앙의 향기] 청주TJC 커피 방앗간의 비밀~

    청주 교회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고소한 커피내음이 교회에 퍼집니다
    식후 따뜻한 (혹은 겨울에도 차가운) 커피 한잔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지나치지 못할 커피 방앗간이 돌아가거든요~
    (아이들에게는 젤리 방앗간이기도 한) 목자님 방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김세한 목자님께서는 22년도에 청주교회로 부임하여 오신 후로 한결 같이 식후 커피를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각 신도회에 골고루 배분하여 오후 예배인 신도회 시간에 성도들이 티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섬겨주셨습니다.  겨울에도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는 일부 성도들을 위해선 꾸준히 얼음도 얼려 주시고 계시죠~ 

    또한 목자님 방은 아동부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한 줄 서기를 하며 두 손을 내밀고  “젤리 주세요~~”를 외칩니다. 가끔 안 받은 척 한번 더 받으려는 개구쟁이들도 골라내시며 사랑 가득한 젤리를 나누어 주시죠~

    일상처럼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신앙의 향기에 커피 방앗간에 대해 올립니다. 

    섬김의 손으로 성도들을 위해 내려주시는 고소하고 달큰한 커피향이야 말로 신앙의 향기가 아닐까요?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성도 소개] 하나님께 귀한 선물을 받은 장아영 자매를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하나님께 귀한 선물을 받은 장아영 자매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청주교회 장아영 어린이가 아동부 영은회에서 하나님께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엄마의 믿음을 따라 참예수교회를 다니던 때부터 고사리 손을 모으고 성령받기를 기도해 왔던 아영이의 짧은 간증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참예수교회 12살 장아영입니다.

    교회는 4살때부터 엄마를 따라 다녔고 세례는 7살때 엄마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성령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교회에 오시고 세례를 받으시면서 아빠보다 빨리 성령을 받고 싶어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고 아동부 영은회에 참석하여 간절히 성령을 구하며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때 내 몸이 내가 떨고 싶지 않아도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방언 소리와 내 몸이 저절로 떨리는 것이 무서워서 할렐루야를 더 크게 외쳤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20분 정도 하고 마쳤을 때 목자님께서 나와 친구 한 명을 부르셨고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기도 시간 부터는 방언이 나오고 몸이 저절로 떨려도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영은회 마지막 날 성령을 받았다고 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아영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빠도 성령을 받을 수 있게 기도하겠습니다. 

    아영이와 아영이 가족을 기억하시며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기관 소개] 아름다운 마리아 신도회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아름다운 마리아 신도회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주교회의 아름다운 마리아 신도회를 소개하겠습니다.


    마리아신도회는 70~80대(평균연령 75세)의 자매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체적 신앙 활동에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교회 지원으로 일년에 한 두 차례 ‘효 여행’과 ‘식사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운전을 할 수가 없어 활동에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및 도보로 전도와 심방 활동에 어느 신도회 보다도 열심을 내고 계십니다.

    오랜 시간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따스한 햇살을 받아, 이제 막 따기 직전의 농부가 매우 아끼고 있는 사과나무의 무르익은 열매처럼, 인생의 모진 풍파를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시고, 그 무르익은 신앙의 모습이 많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16:31)

    신도회 예배 시간이면 오랜 인생의 깊이에서 묻어나오는 신앙적 삶의 이야기가 많은 은혜가 됩니다. 이것은 여느 신도회에서 느끼는 바와는 조금 다른, 오랜 신앙적 경륜의 마리아신도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어른이 많습니다. 청년과 젊은 신도회가 신앙의 힘으로 우리 청주교회를 이끌어 오셨던 교회 어른을 공경하며 그 바른 신앙을 계승하고자 합니다.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복음 메세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마5:13-16)

    [복음 메세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마5:13-16)

    [말씀 제목]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마5:13-16)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년 2월 1일

    2020년은 인류사에서 잊지 못할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그로 인해 팬데믹이라는 생소한 용어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인지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비록 해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건은 오늘 날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은 21세기를 코로나 이전 시대와 코로나 이후 시대로 양분한다. 이 사건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결과의 원인이 매우 놀랍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매우 단순한 구조의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익이 있다. 첫째는 미래를 예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또 순식간에 멸망에 이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우리는 경성해야 한다. 둘째 유익은 우리 교회의 가치와 영향력에 대한 낙관이다.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군소 교단인 우리 교회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래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현재 다수냐 소수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미래에는 소수가 다수도 될 수 있고 다수가 소수로 전락할 수 있다. 설사 소수의 규모에 머문다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규모 때문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또 이런 말씀도 있기 때문이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 설교를 살펴보았다. ‘복이 있나니’라는 주님의 선언의 내용이 여덟 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팔복이라고 했다. 이 여덟 개의 주제는 천국 백성의 속성에 대해 말한다. “천국 백성은 이러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품을 가진 자에게 이런 복이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거기에 이어서 오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품의 천국 백성은 결국 “세상에 이런 영향력을 미칩니다.” “천국 백성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실 때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시고 있다. 바로 소금과 빛이다.

    먼저 발견되는 점은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 라고 표현되지 않고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의’라는 수식이 붙는 것은 성도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면서 살면 안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타인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전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그러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그런 존재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뜻인가? 그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소금과 빛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소금과 빛의 공통점을 주목하면 그 의미와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다. 둘의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소금과 빛은 부패와 오염을 방지한다.

    (엡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소금은 살균력이 있어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음식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바로 소금에 절여 놓는 것이다. 안동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에 간고등어가 있다. 바닷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북 안동 지방 사람들이 생선을 먹으려면 운송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하지 않게 하려고 고등어를 소금으로 절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명물이 되었다.

    애굽에서는 죽은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 때 소금물에 넣어두었었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가 하면 집안 살림 용품 중에 찌든 때를 제거하고 소독 청소하는 ‘락스’라는 제품이 있다. 이 ‘락스’는 화학상의 원료가 바로 소금이다. 이처럼 소금에는 부패와 오염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빛도 마찬가지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지하실 같은 어두운 장소에는 세균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그곳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그곳의 물건들을 햇볕에 내놓으면 태양광 자외선에 의해서 깨끗이 살균된다.

    병원에서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에 사용하는 장비가 있다. 방사선을 사용하는 장비이다. 이런 장비는 빛을 고 에너지로 농축시킨다. 그래서 암환자의 환부에 쪼이면 암세포가 사멸하게 된다. 이처럼 빛에는 병을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가하면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방범등이 있다. 방범등은 청색이 많은데 이는 흰색등보다 더 멀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색등을 방범용으로 활용하면 범죄율이 감소한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빛과 소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부패와 오염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성도를 일컬어 “너희가 바로 그런 존재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소금이 그런 속성을 가지도록 만드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빛 안에 그런 속성을 넣어두신 것처럼 천국 백성 안에 그런 성향을 가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라는 뜻이다. 그 정체성에 충실하면 세상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세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들려오는 말에는 냄새나 향기가 있다. 비방의 말, 원망의 말, 남을 깍아내리는 말, 자기 신분에 걸맞지 않은 말은 마치 부패하는 음식 냄새와 같다. 역겨워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반면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를 끼치는 말, 자기 신분에 합당한 말은 방향제를 뿌린 것처럼 향기롭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곁에는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이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에 맞는 언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의 무리 속에 경건한 성도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긴장한다. 그래서 함부로 상스런 말도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부디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은혜로운 언어를 통해 부패를 막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란다.

    둘째, 소량이지만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바다에서 염분의 양은 3.4%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비율의 염분 때문에 바다물은 썩지 않는다. 염분은 바다를 썩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필수적인 광물이다. 염분은 사람의 혈관 벽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혈관이 딱딱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 장내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장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서 장내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처럼 아주 작은 양이지만 소금이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빛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밤중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들은 항구를 찾아오기 위해서 수많은 조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몇 십 개 몇 백 개의 등대가 필요하지 않다. 불이 켜진 한 개의 등대만 있어도 배들이 악천후에도 안전하게 항구로 되돌아오기에 충분하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서 행인이 보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빛을 필요할까? 작은 손전등 하나만 있어도 밤길을 가기에는 충분하다. 그것으로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다.

    작은 빛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소금이 아무리 그 분량이 적을지라도, 또 빛이 광도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는 그 영향력은 충분하다. 주님은 바로 천국 백성인 성도를 그런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부디 그런 사실을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자.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셋째, 자기 희생을 통해 유익을 준다.

    팔레스틴의 소금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소금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 그 사람들은 바다에서 소금을 취한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 소금을 취했다. 이것을 암염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돌과 소금이 섞여 있는 것이다. 사해 주변에는 암염이 많이 있다. 이 암염으로부터 소금을 체취하는 과정은 이렇다. 암염을 물에 넣으면 염분 성분은 녹고 돌 성분만 남는다. 그렇게 물로 녹여낸 염분을 다시 증발시키면 소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물로 염분을 녹이는 일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염분이 다 빠지고 돌 성분만 남게 된다. 이렇게 염분이 다 빠졌으니 이제 소금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암염은 길바닥에 내다버렸던 것이다. 그러면 그 맛잃은 암염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던 것이다. 본문 말씀에 맛 잃은 소금이 발에 밟힌다는 뜻은 이런 배경아래 나온 표현이다. 이처럼 암염이 맛을 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에 자기를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로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이다.

    빛도 유사한 특징이 있다.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단순했다. 오늘날처럼 채광이 잘되는 구조가 아니다. 출입문이 하나요 창문은 작았다. 그래서 대낮에도 실내는 매우 어두웠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주간에도 항상 등잔불을 켜고 생활해야만 했다. 따라서 전기도 없던 그 시절에 등잔은 모든 가정이 구비하는 필수품이었다. 그 등잔에 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필요했는데 그 기름의 원료는 바로 감람유, 올리브유였다. 올리브유는 정제해서 가장 먼저 추출되는 것을 엑스트라 버진이라고 해서 식료품으로 사용한다. 보통 네 차례정도 추출하는데 가장 나중에 추출되는 질이 낮은 올리브 오일을 등불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실내에 빛을 비추려면 등불을 밝혀야 했고 등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태워져야 했다. 즉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렇듯 소금을 보아도 등잔불을 보아도 녹아지고 태워져야 한다. 녹아지고 태워지는 희생의 과정이 없으면 존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성도가 천국 백성이라는 존재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자기 사명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자기희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런데 그 희생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첫째는 내가 세상 속에서 신앙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소위 커밍 아웃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말과 행동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참 성도의 모습이다. 만약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마치 염분이 다 빠진 암염과 같다. 그것은 마치 등잔불에 소쿠리를 덮어 놓은 것과 같다. 부디 자기 정체와 자기 신앙을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밝히고 드러내는 성도가 되자.

    예)참예수교회의 초기의 발전에 자기희생의 목자님들이 있었다. 세무서 공무원의 안정적인 신분도 마다하고 나아가 순교도 불사하고 목회의 길을 나선 박필선 목자님 같은 분들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분 한 분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에 사회로 나가지 않고 한 달에 쌀 한 포대 정도의 노임만 받고 희생한 원로 목자님들이 있었다. 이렇게 자기를 내어주는 목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참예수교회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희생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고 대물림 되었다. 어떤 목자님은 사회 속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위해서 목회의 길을 선택했다.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정신은 앞으로도 그 전통이 되어 이어질 것이다.

    그런 현실을 볼 때 저는 비록 우리 교회가 소수지만 미래가 매우 밝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금과 빛의 역할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살아있으면 우리 교회는 미래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님들은 어떻게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모두 목회자가 되어야할까? 박필선 목자님처럼 다른 원로 목자님들처럼 그렇게 목회자의 길을 가라는 것인가? 순교라도 하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도님들은 최전선에서 세상과 접촉하며 영적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소속한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소금과 빛의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그 자기 정체에 일치하는 삶을 살자. 세상으로부터 저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찬을 듣자. 여기까지 가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세상의 사람들은 소유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소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 내어주기 위해서 왔다. 주님이 먼저 십자가에서 그 모범을 보여주셨다. 부디 주님이 남기신 모범대로 빛과 소금의 본분을 다하는 성도가 되자. 나를 통해 세상이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그 사명을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천국의 기업을 상속하시는 저와 성도가 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한다.

  • [성도 소개] 김복순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김복순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이번 청주교회 성도 소개로 김복순 자매님을 소개하려 합니다. 2019년 10월에 세례를 받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고, 올해 2월에 성령을 받으신 김복순 자매님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김복순 자매님은 청주교회 박성호 집사님의 장모님이자, 저(박은우 형제)의 외할머님 되십니다. 저희 어머님은 가정에서 혼자 참예수교회를 나오셔서 신앙생활을 한 순간부터 가정을 전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시고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을 가지시기 전까지 김복순 자매님은 세상의 미신이나 세상의 말을 믿으셨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저희 어머님과 저희 가정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교회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시다가 마침내 2019년 10월 6일에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이후에도 신앙의 어려움이 있으셨지만, 마리아 성도분들과 교회 성도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점점 그 마음을 여셨고 스스로 성경도 읽으시고 기도도 하시고 주기도문을 외우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받기를 간절히 원하셨고, 기도 2024년 2월 3일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날 저희 가족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으신 이 날의 기쁨은 더욱 배가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 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분들이 기뻐해주셨고 함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응답하시는 때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응답해주십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성도분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멘.

     

     

  • [교회 행사] 가을 전도 초청 집회를 준비하며..

    [교회 행사] 가을 전도 초청 집회를 준비하며..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제자들에게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성령을 받고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고 오늘날 그 사명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교회인 참예수교회로 이어지며 성도된 우리가 증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주교회에서는 이번 가을 전도초청집회를 위해 한 달간 모든 성도가 함께 기도로 준비했는데, 그 과정 가운데 있었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엡 6:18)”

     

    청주교회에서는 9월 21일, 가을 전도 초청 집회의 선포식을 시작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두고 전 성도가 함께 정해진 시간에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월, 수, 목, 일요일은 줌으로 30분씩 기도하였고 화, 금, 토는 예배 말미에 시간을 정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 것이지요. 또 뜻을 모은 성도들은 금식으로 릴레이 기도에 참여했습니다. 혹 정시기도에 참여하지 못할 때는 성도들 각자 하나님 앞에 기도 하며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청주교회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준비 했습니다. 또한, 매주 안식일 예배 후에 전도에 대한 현황을 나누고 전도의 의지를 함께 높였고, 신도회 별로 노방전도를 포함한 전도 활동을 진행하며 거리로 나가 참예수교회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를 잘 나오지 못한 관리 신도들을 심방하며 전도 초청 집회에 대해 알리고 초대하기 위해 힘을 썼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4:31)”

     

    그렇게 전도 초청 집회의 날이 다가왔고,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영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무려 12명의 전도 대상자 분들이 방문해 주셨는데, 방문한 분들 중에서는 지난 봄 영은 전도 대회에도 오셨던 교회 옆 뉴타운아파트의 경로당 어르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전도 초청 집회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함과 은혜가 넘치는 시간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행사가 끝난 것이지 전도가 멈춘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방문해 주신 전도 대상자 분들과 각자 품은 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는 인류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꿈을 성취하는 곳이자 통로이며, 성도는 그 꿈을 전하는 증인입니다. 참예수교회의 진리가 더욱 널리 퍼져 길을 잃은 영혼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함께 주님을 예배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멘.

     

    글작성 : 박은우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