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청주교회

  • [복음 메세지]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복음 메세지]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말씀 제목]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7월 20일

    어떤 퇴임 목자님의 간증이다. 스무 살이 되어 직장을 구하고 생각했다. ‘이제 월급을 받고 집안도 안정될 테니 담배도 좀 피우고 술도 좀 배우고 노래도 좀 배워야겠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에 친근하신 할머니가 “아무개야! 이제는 교회 나가야지?” 권유하시더란다. 그래서 “예”라고 대답하고 그분을 좇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담배도 술도 유행가도 모두 끊고 교회 생활에 빠져든 것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어찌나 즐겁던지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총회로부터 권유 받아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의 일꾼으로 섬기다가 정년 퇴임하셨다. 과거를 돌아볼 때 동네 할머니의 한 마디. “아무개야! 이제는 교회 나가야지?” 그 한 마디의 말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간증을 듣노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은 말과 행동이었겠지만 그것이 세월이 흘러 먼 미래에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선한 길에도 악한 길에도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인생은 어쩌면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같다. 하나님이 울타리 쳐주신 정원에 씨를 뿌리고 물주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씨를 뿌리고 어떤 관리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꽃밭이 되기도 하고 쑥밭이 되기도 하고 텃밭이 되기도 한다. 성도는 내가 현재 내 말과 행동의 씨앗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그런 경성함에 대해서 교훈한다.

    (잠 14:1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우리는 인생의 정원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그리고 장래에 그것이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이 드고아 여인의 비유를 통해 압살롬의 귀환이 허락된 사건에서 그 관련된 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교훈을 받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압살롬은 맏형 암논을 살해하고 그술 땅으로 도망했다. 그런데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이 비록 범죄자였지만 다윗 왕은 압살롬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자식이 악하고 못나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 않는가? 또 다윗은 아마도 압살롬 모습 속에서 과거 범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향한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더 애틋했을 것이다. 그런데 군대 장관 요압이 그런 다윗의 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압살롬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할 계략을 꾸미게 된다. 요압은 드고아 출신의 한 여인의 입안에 비유를 넣어주고 다윗 왕 앞에 나가 말하게 한다. 드고아 여인은 마치 자신의 가정 문제를 왕께 호소하는 것처럼 가장해서 이런 비유를 베푼다. “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서로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율법대로라면 살인한 아들은 사형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저희 집안에 대가 끊기니 한 아들만이라도 살 수 있게 임금님이 특별 조치를 해주십시오”라는 간청이었다. 다윗 왕이 그 청을 들어주겠노라고 대답하니까 비로소 드고아 여인은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 “왕께서 사실은 그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지혜로운 다윗왕은 단번에 이 여인이 요압 장군의 사주로 나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에 다윗 왕은 압살롬 왕자를 귀환시키라고 수락하게 된다. 요압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그가 한 일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또 다윗왕은 여인의 비유 한 마디에 아무런 훈육의 과정 없이 압살롬을 귀환시킨 것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압살롬은 과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아무런 가책이나 반성 없이 그냥 지나친 것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성경에는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명확하게 이것이다 저것이다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독자가 성경 안에서 판단하도록 맡겨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말씀 안에서 자연스러운 답을 얻게 되고 ‘아 그 때 뿌려진 것이 좋은 씨였구나! 악한 씨였구나!’ 를 판단하게 된다. 과연 요압과 다윗과 압살롬이 자기 인생에서 뿌린 씨앗은 어떤 씨앗이었고 그로 인해 미래에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 인물을 통해 발견하는 교훈은 이렇다.

    첫째, 요압은 야망의 씨앗을 뿌려 상실의 열매를 맺었다.

    (삼하 14:1-2)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줄 알고 [2] 드고아에 보내어 거기서 슬기있는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이르되 청컨대 너는 상제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요압 장군은 드고아라는 곳에 있는 한 여인을 통해 압살롬의 귀환을 도모한다. 요압은 왜 압살롬 왕자가 귀환하는 일을 추진하고자 했는가? 왕을 향한 충성심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가? 요압과 관련된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요압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요압은 전쟁에서 아우 아사헬이 전사한 것을 이유로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죽였다(삼하 3:28-29). 다윗 왕의 입장과 명령보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앞섰다. 요압은 행동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로 인해 백성들은 혹시 다윗 왕이 사주해서 죽인 것 아닌가 하는 오해의 상황이 발생했다.

    또 요압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모반을 피해 도망갔다가 복직되었을 때 다윗은 압살롬을 생포하고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어명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주저 없이 압살롬을 죽였다.

    (삼하 18:14)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만약 요압이 다윗 왕을 생각하는 순수한 뜻만 있었다면 어명을 어기고 왜 압살롬을 죽이겠는가? 요압은 압살롬을 아끼는 마음도 없었고 왕명을 준수할 충성심에도 결함이 있었다.

    또 요압은 다윗의 사후 솔로몬을 세우고자 하는 다윗 왕의 뜻과 다르게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면 요압은 장차 왕이 바뀌더라도 군장이라는 자기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려는 욕망에 있었기 압살롬의 귀환을 추진한 것도 그 이유임을 추정하게 한다. 그 의도는 드고아 여인의 비유 안에서도 발견된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에서 죽은 아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산 아들이 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요점이다. 여기서 죽은 아들은 암논을 상징하고 살아야 할 아들은 압살롬을 상징한다. 요압이 이 비유를 통해 다윗 왕에게 전달하는 뜻은 하나님의 산업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즉 다윗의 왕통을 이어가려면 압살롬을 귀환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즉 요압은 압살롬을 왕통 계승자로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요압은 장래 왕 후보자의 은인이 되어 자기 입지를 굳게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심에 의해 행동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삼하 17:25)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미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압살롬은 나중에 모반의 과정에서 요압이 아닌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았다. 소위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이렇게 요압은 압살롬의 귀환에 직접적인 공로자였지만 그의 야망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솔로몬 왕 즉위 후 최후를 맞이한다.

    (왕상 2: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그래서 잠언 5:22에 말하기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인다’했다. 이처럼 요압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상실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오늘날 성도님들은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 인생의 정원에 삐뚤어진 욕망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중에 가시가 되어서 나를 찌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울타리 쳐주신 우리 인생의 정원을 가시밭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밭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 공의, 감사, 희락,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씨앗들로만 뿌리길 바란다. 머지않은 미래에 천국의 향기가 가득한 정원을 가꾸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둘째, 다윗은 방관의 씨앗을 뿌려 해악의 열매를 맺었다.

    (삼하 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나단 선지자의 비유와 비교할 수 있다. 나단 선지자의 비유는 다윗을 책망해서 그 양심과 신앙을 바로 잡았지만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판단을 혼미케 해서 공의를 보지 못하게 했다. 즉, 다윗의 부성애와 왕통 계승의 대의명분을 앞세워 압살롬을 귀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살인에 대한 책임과 처벌의 과정을 아주 조치 없이 덮어버리게 만들었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에는 현실과 다른 맹점이 숨어 있다. 비유 속 살인한 아들은 우발범이지만 현실의 압살롬은 치밀하게 계획 살인한 자였다. 또 그 아들마저 죽으면 집안의 대가 끊긴다고 했는데 현실의 압살롬은 독자는 아니었다. 압살롬 외에도 다른 왕자가 많다. 아도니야도 있고 솔로몬도 있다. 만약 압살롬이 왕위 계승자로 마땅치 않으면 다른 합당한 아들을 세우면 된다. 즉 압살롬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었다. 이처럼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다윗은 범죄한 압살롬을 아무런 조치 없이 귀환하게 명령한 행동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왕으로서 매우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잠 16: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왕통 계승이라는 대의 명분에 하나님의 공의를 등지는 선택을 한 다윗은 결국 제 발등을 찍게 된다. 귀환한 압살롬이 오래지 않아 왕이 되겠다고 모반을 일으킨다. 어제 형제를 죽이더니 오늘은 아버지를 죽이겠단다.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하는 패륜의 길을 걷는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주변에는 나단이 주는 비유가 있고 드고아 여인의 비유도 들려질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나를 아프게 할지라도 양심과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음성인가 아니면 꿀같이 달고 명분도 세워주는, 그러나 공의와 정의는 무너뜨리는 악한 음성인가? 부디 선한 것에 기울이고 악한 것은 귀를 막고 거절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겠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정원에 가시와 독초가 자리지 않고 향기롭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게 하는 비결임을 깨닫는 저와 성도가 되자.

    (욥 34:3-4) 『[3]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셋째, 압살롬은 분노의 씨앗을 뿌려 파멸의 열매를 맺었다.

    압살롬은 사람이 범죄 했을 때 적절한 징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은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했다.

    (삼하 14:25)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외모가 이렇게 출중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압살롬은 처음에는 그의 영혼의 정원에 ‘분노’의 씨앗이 심겼다.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이 뿌려졌다. 왕위에 대한 ‘욕망’이란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혐오’의 씨앗도 뿌려졌다. 이런저런 씨앗이 뿌려졌더니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까 영혼의 정원 안에 독초와 가시가 가득했다. 이처럼 형제를 죽인 그 행동이 잘 처리되지 않은 결과 이제는 아버지까지 죽이고 왕이 되려는 패륜아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암논을 죽인 책임을 지우고 잘 처리했다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압살롬은 외모는 훌륭했으나 그의 영혼은 분노와 욕망과 혐오의 감정으로 일그러진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괴물은 다윗 왕 측근의 모반 진압 작전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분노와 욕망과 혐오의 씨앗이 심겨진 그의 인생의 정원은 결국 독초와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 타인의 손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갈 6:8)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오늘날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또 나중에 언제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내다보는가? 인생의 정원에 뿌려지는 말의 씨앗, 행동의 씨앗, 생각의 씨앗을 잘 관리해야겠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사람의 음성은 걸러내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반대로 내가 뿌리는 말과 행동의 씨앗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롱펠로우 시인의 ‘화살과 노래’라는 시.

    내가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한순간에 저 너머로 사라진 그 화살을

    바라본들 볼 수 있을까?

    /내가 부른 노래는 어디로 울려 퍼졌을까?

    한순간에 저 머너로 울려 퍼진 그 노래를

    귀 기울인들 들을 수 있을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흘러 흐른 뒤에야

    나는 다시 보았네, 떡갈나무 밑동에

    그대로 박혀 있는 옛 모습 그 화살을

    /먼 뒷날 시간이 가고 가고 간 뒤에야

    나는 다시 들었네, 친구의 가슴에서

    그대로 울리고 있는 그 시절 그 노래를

     

    오늘 내가 쏜 화살이 타인의 가슴에 박힌다. 오늘 내가 부른 노래가 타인의 가슴에 남는다. 주님이 공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항상 지혜롭게 분별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신중히 선택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 [성도 소개]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_이은율 자매

    [성도 소개]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_이은율 자매

    Q.청주교회에 와서 느낀 점이 있다면?

    A.청주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인사에 감동을 받아 우리 모두가 정말 주 안에서 한 가족인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청주교회는 아동과 학생부들의 예배 참석이 꾸준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또 성도님들께서 전도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신 것 같아서 본받고 싶습니다. 최근에 제가 교회에서 교사 사역을 맡기 시작했는데 기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 청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Q.대학 생활 중 어려운 점이 있다면?

    A.크게 어려운 점은 없는 것 같아요.

     

    Q.이루고 싶은 목표와 앞으로 신앙생활의 목표가 있다면?

    A.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중에 외국으로 나가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마지막 날에 영생을 얻는 것이 제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Q.다른 사람들에게 참예수교회를 소개한다면?

    A.참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교회, 참 진리가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라고 소개할 것 같아요.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이 살고 있던 정든 고향을 떠나 타 지역으로 가는 많은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고향을 떠나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간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자신의 집을 떠나 타 지역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모든 참예수교회 청년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향한 신앙에서 떠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세워지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얼마 전 제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음이 뜨거워져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리고 전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영은전도대회에도 초대하고 설교 말씀도 보내드리고 만날 때마다 권면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부모님들은 더욱더 거리를 두셨습니다.

    저희들의 권면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한동안 얼굴도 뵙지 못하고서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전략을 바꿔(?) 아예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질문도 하시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너희 교회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가족 전도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화면으로 너희들 잘 지내는 것 보고 있다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청주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설교며 특별 찬양 발표며 간증이며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싫으면 그림자도 꼴보기 싫다는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신다니 저에겐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대만 참예수교회 방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에 가는데, 부모님도 언젠가 꼭 같이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다녀오고 나서도 대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의 성도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 굉장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금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장항서부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 드리면 안 될까요?”하고 말이죠~ 저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시다가 “그러지 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주!!

    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고 뒤늦게 무슨 일이냐며 어머님이 오셨지만 이미 아버지가 약속하셨으니 무르시면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어머님도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셨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장항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군산인 아버지 댁에서 장항서부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또 마침 그 때 윤석원 목자님께서 장항으로 이사를 오신 날이었고 첫 설교를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이었고 이미 ‘복’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 자체가 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믿는 성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새해 복이 되십시오”라고 인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해에도 복이 되렴.” 하고 인사해 주셨고 저도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젊은 목자님께서 말씀을 명료하게 잘 하신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린 기념사진을 깜박했어요, 기념으로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돌아가서 찍든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 이거 너희 교회 월말 발자취 영상에 올릴 거지? 하셨고요. 진정 구독자가 맞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당장 참예수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 때에도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리고 저처럼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언젠가 이뤄질 기도 응답의 소망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감사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신앙의 향기] 하늘소리 오카리나

    [신앙의 향기] 하늘소리 오카리나

    오카리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모여 ‘하늘소리’라는 기악팀이 되었습니다.

    봄 영은회에 울려퍼지던 아름다운 오카리나 찬송으로 함께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왼쪽부터 김경희, 김연숙, 김영미, 박에스더, 최현숙, 박순희, 김예영 자매님들 )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교회 행사] 봄 영은전도대회 – 충만한 성령으로 강건한 교회

    [교회 행사] 봄 영은전도대회 – 충만한 성령으로 강건한 교회

    2024년, 청주교회에서는 봄을 맞이하여 영은전도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전홍희 목자님께서(現 수원 참예수교회 시무) [충만한 성령으로 강건한 교회]라는 주제로 3일간 설교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번 영은회 기간에는 귀한 영혼들이 방문해 주셔서 더 뜻깊었는데요, 그동안 청주교회에서 인근 아파트 경로당에 때마다 믹스커피를 보내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해 왔었습니다. 9년간 이어진 그 기도에 응답해주시듯 이번 영은회에 경로당의 어르신들이 무려 아홉 분이나 방문해 주셨고 함께 예배를 드리며 보낸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점점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예수교회는 인근 주민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길 원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데 더욱 앞장설 것입니다. 참예수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확장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영은회가 마무리되었지만, 우리의 사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모두가 하나님의 큰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결실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024 청주교회 봄 영은전도대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성장하며, 우리의 믿음이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기관 소개 – 루디아 신도회] 주님의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신도회

    [기관 소개 – 루디아 신도회] 주님의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신도회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 속에서  평안이 넘치는 루디아 신도회를 소개합니다~ ^^

    청주교회 루디아 신도회는 45~55세 사이의 여성 신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원은 총 8명입니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직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특별히 교회 내 여러 사역의 자리에서 성실히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예배 후 오후에 진행되는 신도회에서는 서로 한 주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신도회 예배를 드리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나의 형편을 정말 잘 아시는 하나님~ !!” 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난 풍성한 생활의 간증을 나누며 기쁨의 웃음이 넘치기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루디아 신도회에서는 특히 기도에 힘쓰고 있는데 신도회 기도 제목을 두고 매주 목요일 정시 기도를 하고 있고 전도는 은사가 아닌 사명이라는 인식으로 매일 태신자와 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잃은 양을 위해서 2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을 생각하며 쓴 엽서에 교회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말씀을 적기도 하고, 엽서를 읽으면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와 함께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옵니다. 하나님처럼 그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하나님 안에서 같이 동행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신도회 소식에서는 잃은 양들이 회복되어 함께 신도회 예배를 드리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그 밖에도 여러 신도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벚꽃놀이도 가고, 찬양기도회로 다른 신도회와 연합 신도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신앙의 교제를 나누는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는 광주교회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안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루디아 신도회 소개였습니다. 평안, 할렐루야~!!

     

    <2024.6월  루디아 신도회의 광주 참예수교회로 신앙여행 사진>

                

    글작성 : 최영미 자매

  • [복음 메세지]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1-14)

    [복음 메세지]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1-14)

    [말씀 제목]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1-14)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5월 18일

    제국주의 시대를 논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가 있다. 바로 현재의 영국이다. 현재는 유럽 서쪽의 섬나라이지만 소위 대영제국이라 일컫던 황금시대가 있었다. 1607년,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주 제임스 타운을 시작으로 전 세계 약소국을 대상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아갔다. 그래서 1815년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이 기간이 무려 백년이나 지속되었다. 1920년에 이르러 대영제국은 지구상의 모든 식민지를 합하면 면적이 무려 3,550만 제곱미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355배 되는 면적이고 현재 러시아 땅보다 2배 이상 큰 면적이다. 그래서 가장 잘나가던 때에 세계 육지 면적의 4분의 1이 바로 영국의 것이었다. 그래서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이다. 그런 대영제국도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빚을 지는 바람에 국력이 쇠퇴해지고 미국에 그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대영제국주의의 잔재는 완전히 정리가 되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모습은 작게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인간관계 속에도 있고, 기업과 기업 사이에도 있고, 단체와 단체 사이에도 갑을 관계가 있다. 이런 일면을 보면 소위 양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강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이 세상의 원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나라는 그런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도, 사회도, 개인도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 절대 공의와 사랑을 품으신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그런 나라였다.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셨고 그를 말씀으로 지도하셨다.

    (시 119:101-102)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세움 받은 성도들은 오늘날 어떤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성도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시고,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고, 땀 흘린 대가로 단 열매를 수확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발견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뜨고 가려진 본질을 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다는 승리 기사를 통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다윗이 왕이 되어 처음 하고자 한 일은 언약궤를 자신의 성으로 모셔 오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웃사가 죽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곧 다윗의 겸손한 영성과 신앙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언약궤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낮아져 춤을 추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소위 ‘다윗 언약’이라고 하는 중요한 언약을 주신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집을 짓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다윗에게 내가 너의 집을 지어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주셨던 것이 바로 다윗 언약이었던 것이다. 그 다윗 언약은 단순히 육적인 면에서 다윗의 혈통에서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후손 가운데 오실 것이라는 축복의 언약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언약을 받은 다윗은 그 언약에 대한 믿음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출정한다. 그리고 블레셋의 도시를 쳐서 항복을 받아낸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모압과 소바, 아람과 아말렉, 하맛과 에돔 족속까지 굴복시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명실공히 팔레스틴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다윗의 이러한 전과에 대해 성경은 6절과 14절에서 두 번씩이나 동일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시니라” 또 다른 반복구가 있는데 “조공을 드리니라.”(2) “조공을 바치니라.”(6)이다. 이것은 다윗의 이스라엘이 대영제국처럼 다른 나라를 정복해서 착취하고 압제하는 제국주의의 길을 갔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이 이룬 육적 승리를 통해 성도와 교회가 경험해야 할 영적 승리를 표상하고 있다. 다윗을 통해 성도가 신앙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이런 복을 주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그런 복을 받는 자의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

    첫째, 약속을 믿으면 부끄러운 과거를 만회케 하신다.

    (삼하 8:1) 『(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메덱 암마’는 블레셋의 수도였던 가드와 그에 종속되었던 네 성읍, 곧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대상 18:1에서는 그래서 메덱 암마를 ‘가드와 그 동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으로 보아 다윗은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했다. 비유하자면 과거에는 블레셋을 다운시켰는데 이제는 블레셋을 아예 K.O시켜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블레셋이 점유하던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승리가 값진 이유는 다윗이 블레셋 가드에서 경험한 뼈아픈 과거 때문이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자 생활할 때 그는 블레셋의 도시 가드 땅에서 아기스 왕을 만나게 된다. 그때 침을 흘리며 미친 척하면서 위기 상황을 넘겼던 치욕의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가드에 항복을 받아냈다. 쉽지 않은 결과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과거의 상처는 현재 극복 못하는 핸디캡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나갔을 때 그 치욕의 역사를 만회한 것이다.

    이처럼 다윗이 블레셋의 도시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바로 그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삼하 7:27-28)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 약속의 말씀이 주어진 직후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 그래서 8장 1절에 ‘그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곧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가니까 블레셋의 도시들이 줄줄이 정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가드 땅에서의 부끄러운 과거를 씻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성도님들 삶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영적인 전쟁을 수행한 결과 나의 ‘메덱 암마’를 정복케 하시고 부끄러운 과거를 씻는 은혜를 주신다. 이런 복이 저와 성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란다.

    둘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승리의 열매를 주신다.

    (삼하 8:4) 『(4) 그 마병 일천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윗은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탈취한 말 가운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발의 힘줄을 끊었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한 다른 성경을 보자. 역대상 18:3-4을 보면 그때 노획한 병거와 군사와 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대상 18:3-4) 『(3)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가에서 자기 권세를 펴고자 하매 다윗이 저를 쳐서 하막까지 이르고 (4) 그 병거 일천 승과 기병 칠천과 보병 이만을 빼앗고 그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윗은 병거 일천 승, 기병 칠천, 보병 이만을 빼앗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다윗은 빼앗은 병거 일천 승 가운데 일백 승의 말, 즉 10%만 남기고는 다 발의 힘줄을 끊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왜냐하면 모세오경 가운데 한 권인 신명기에 이러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신 17:16)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모세의 율법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지 자기 육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윗은 신명기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실천하고자 말 발목의 힘줄을 끊었던 것이다. 이런 다윗의 행동은 과거 사울왕의 행동과 비교하면 그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뚜렷해진다. 사울 왕은 어떠했는가?

    (삼상 15:18-19) 『[18]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이처럼 사울왕의 마음은 탈취하는 일에 모아져 있고 말씀을 순종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반면 다윗은 말의 발목 힘줄을 끊는 행위로 순종의 모습을 보였기에 하나님은 ‘다윗 언약’에 충실하셨던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다윗만큼 형통한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여호수아 선지자이다. 그런데 형통만 같은 것이 아니라 형통의 이유도 똑같다. 그가 항상 승리한 비결이 어디에 있었는가?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1:15)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대로 모든 것을 행했을 때 항상 승리하고 이길 수 있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항상 승리의 열매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2007년 3월 18일 서울국제마라톤 남자부 42.195㎞ 레이스에서 막판 1500여m를 남기고 대역전극을 펼치며 1위로 골인한 마라토너가 있다. 바로 이봉주 선수이다. 생애 35번째 풀코스를 완주이고 한국 역대 4위 기록이었다. 그런데 더 의미가 깊은 것은 그가 최근 3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던 터였고 38세의 나이는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에 해당하던 때였다. 그런데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우승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봉주 선수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코치의 엄격한 지도를 순종했기 때문이다. 코치는 선수에게 시합이 가까워 오면 탄수화물을 피하고 고기만 먹인다. 한동안 고기만 먹이다가 시합 3,4일 전에 탄수화물을 같이 섭취시킨다. 그러면 몸에 축적되는 탄수화물의 양이 많아져서 레이스의 막판 스퍼트까지 끄떡 없이 달리게 된다고 한다. 이봉주 선수는 그 식사가 훈련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인내하고 코치의 지도를 따랐기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운동 선수가 코치의 엄격한 지도를 따라야 승리가 보장되듯이 신앙인은 인생의 코치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영적인 승리가 보장된다. 사울 왕처럼 세상의 것들을 취하려는 욕망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는데 마음을 모으시는 성도가 되자. 거기에 축복의 열쇠가 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셋째,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신다.

    (삼하 8:11-12)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은 정복한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그것은 금 은 놋과 같은 귀금속들이었다. 다윗은 그것을 자기 사욕을 채우고자 받았는가? 그렇지 않다. 사울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탈취물로 자기의 기념비를 세우고 자랑거리로 삼는데 활용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 물질을 여호와께 봉헌했다. 그래서 이렇게 드려진 금과 은과 놋이 나중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재원으로 소용되었던 것이다.

    (대상 22:14-16) 『[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15] 또 공장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16]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다윗은 이처럼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하나님께 봉헌했다. 그는 자기의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봉헌은 바로 그러한 믿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그런 믿음에 대해 큰 복으로 다윗에게 내려주셨다. 곧 그 복의 후광이 아들 솔로몬에게까지 계승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흔들리지 않는 복이 있다. 바로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보다 값진 유산은 없다. 부디 이러한 복이 저와 성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란다.

    다윗 왕처럼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언약을 믿고 나가서 과거의 부끄러움을 씻으시고, 말씀에 순종해서 승리의 열매를 수확하고, 감사함으로 복이 계승되게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 사랑과 공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는 기적의 목격자가 되시는 저와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 [성도 소개]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길_장승환 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길_장승환 형제를 소개합니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저는 청주교회에 다니고 있는 장승환 형제입니다.

    2. 청주 참예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계기는?
    저는 모태 신앙으로 동부교회에서 23살까지 신앙생활을 하다가 직장 때문에 충남 공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공주에 있을 때는 천안 교회를 다니다가 공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18년도 5월 군대를 전역한 후, 세종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변상헌 형제님 가정이 세종에 거주 하시는데, 청주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청주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이번에 새롭게 교사로 섬기게 되셨는데 각오 한 말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아동부, 학생반 친구들의 신앙 성장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4. 요즘 기도 제목은?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5. 다른 사람에게 참예수교회를 소개한다면?
    오직 하나님 말씀,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글작성 : 장승환 형제

  • [교회 행사] 신영길 전도자님 환송예배

    [교회 행사] 신영길 전도자님 환송예배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고, 여러 사역의 자리로 세움을 입습니다. 그러나 그 사역의 자리에 서기까지 쉬운 과정이 아님을 알기에 선뜻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길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걸어가시는 신영길 전도자님의 환송예배가 있었습니다. 눈물과 웃음과 축복의 박수가 함께 했던 그날을 소개합니다.

     

    2008년, 한 영혼이 청주교회에 찾아왔었습니다. 그 분은 종교에 관심이 많으시고 그 모습이 매우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세례를 결심하고 받으시던 날, 펑펑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성령을 받으시던 날도 우리는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앙의 깊이와 믿음의 깊이는 신앙생활의 기간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싶은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신앙생활 속의 행복과 즐거움은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신영길 전도자님을 통해 배웠고 느꼈습니다.

     

    그런 신영길 전도자님이 신학의 길을 걸어가신다고 하셨을 때 청주교회는 정말 크게 기뻐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더 크게 기뻐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5500여 일의 시간. 긴 시간이었지만 짧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이별’. 이제 곁에서 함께 있을 수 없지만, 저희는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큽니다. 신영길 전도자님이 걸어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기에, 몸으로는 떨어져 있게 되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고 영으로 하나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 청주교회는 기쁜 마음으로 신영길 전도자님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리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입니다. 신영길 전도자님 혼자 걸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역자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성도님들께서도 신영길 전도자님의 걸어가시는 길에 기도로 함께 동행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글작성 : 박은우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