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동부교회에서 군대 입대한 대학부 청년 중 올해 가장 먼저 입대한 최재웅형제님이 휴가를 얻어 건강한 모습으로 동부교회를 찾아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형제님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보니 많은 동부 교회 성도님들이 그간 입대한 청년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역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건강하게 복무를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의 향기] 휴가나온 군입대자를 환영합니다!](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8/21CBE46F-40F6-46FF-9113-D2B8DC748E61.jpeg)
할렐루야!
동부교회에서 군대 입대한 대학부 청년 중 올해 가장 먼저 입대한 최재웅형제님이 휴가를 얻어 건강한 모습으로 동부교회를 찾아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형제님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보니 많은 동부 교회 성도님들이 그간 입대한 청년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역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건강하게 복무를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교회행사]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8/302C9653-CFB4-4457-B953-83D72B42749E.jpeg)
할렐루야!
이번 동부교회 소식으로 7월 20일과 21일 대방 교회와 동부 교회가 연합한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대방 교회 아동부와 동부 교회 아동부가 함께 화합하여 즐겁고 행복한 여름 성경학교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의 주제는 “하나님이 노아를 부르셨어요” 였습니다. 창세기 6장을 통해 노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아동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아동부를 위해 교사로 사역해 주신 형제자매님들 덕분에 많은 아동부가 성령 충만한 여름 성경 학교가 되었습니다.
다음 아동부 여름 성경 학교엔 더 많은 아동부가 참여할 수 있기를 또 수많은 우리 아동부가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믿음과 함께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8/KakaoTalk_20240826_054130596_02.jpg)
하나님과 함께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모든 성도님께 인사드리며, 저는 영국에서 온 바네사 자매입니다. 제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 앞서, 목자님이 저에게 간증하면 어떻겠냐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올해 동부로 돌아온 지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의 많은 성도님들이 간증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하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8월까지 휴가를 온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휴가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님들을 통해 사랑과 헌신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늘 있으며 이번 간증을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정한 성경 구절은 시편 96장 8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시편 96장 8절)”
지난 온라인 교사 세미나에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제가 신앙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경험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23살이고 작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라인으로 법을 가르치며 영국 대학교 입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참예수교회에서 왔으며 참예수 뉴캐슬 교회는 1976년도에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생긴 첫 참예수교회이며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총 9개의 참예수교회가 있고 이 사진은 40주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사실 모태신앙이 아닌데요, 이것은 저의 간증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목자님이 제게 주신 간증의 주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통해 제가 나눌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 학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은혜를 주셨는지 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사실 이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조부모님과 어머니 쪽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참예수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성도님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제 아버지도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저희는 아버지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더블린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참예수교회가 아닌 이방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고 어렸을 때 저는 교회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찬양하고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매주 교회에 다녔습니다.
2004년 8월 저희 가족은 뉴캐슬 영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친인척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당시 중국식 포장 전문 식당에서 일하시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님 세대에겐 매우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땐 일요일마다 중국 구세군 교회를 다녔는데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회는 제가 18살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제 어머니의 여동생분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저를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이방교회에 나갔습니다.
2005년 5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닥에 넘어지시게 됩니다. 이 낙상사고는 매우 심각했고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몇 달간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의 병원 방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의 혼수상태 기간동안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에게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가족분이 홍콩에서 영국으로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러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참예수교회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던 엄마와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많은 친척분의 도움으로 아빠의 상태를 교회에 알렸고 뉴캐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진실로 기적적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많은 기도 덕분에, 매우 기적적이게도, 아빠는 깨어나셨습니다.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 병원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빠가 혼수상태였던 때와 깨어나셨을 때 둘 다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오늘까지도 살아계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시길,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어났더라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아빠 같은 환자는 금방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점진적으로 호전되었고,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호사도 말하길 아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생활하십니다.
이후 교회는 아빠를 전도했고 목자님이 성경의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는 믿게 되었고 저와 제 남동생과 함께 2009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참예수교회로 데려와 주신 것과 오늘날에도 저를 교회에 마련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나님은 저희가 있어야 할 곳에 두시며 이는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 교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믿음은 저의 것이 되었고 진리에 대해 배웠으며 그 진리를 통해 왜 18살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녀봤던 저는 우리교회가 얼마나성경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우리 교회의 진리가 얼마나 올바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간증의 두 번째 부분은 제 학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삶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09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 결심은 제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셨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저희가 안식일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공하기 위해 안식일 날 일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또한 케임브리지 기도소 성도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소는 작지만, 그들의 마음은 큽니다. 영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의 학업 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절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지 생각하면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돌봐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여름, 저의 첫 번째 법과 대학교 시험 기간 때, 손에 어떤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따끔거림, 마비, 그리고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증상을 무시했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제 손의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2월이 끝날 무렵 저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고 하루 종일 고통을 느꼈습니다. 접시를 들거나, 문을 열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제 손은 약해졌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작은 일들을 이행하기 어렵게 느껴졌고 저는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매우 바빴고 저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겐 희망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과 제 정신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로우시고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1월 많은 기도를 통해 제 마음엔 안식이 찾아왔고 의사의 조언을 통해 1년간 학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또는 건강을 다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기도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과 같고, 저는 이를 몹시 어려운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통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1년간의 휴식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2021년, 저는 제가 필요한지 몰랐던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손의 상태가 육체와 정신이 결합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두 개의 문제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2022년 1월 저는 대학교로 돌아갔고 손의 문제는 장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로 복귀하기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전처럼 공부할 수 없고 제 뇌가 손보다 빨리 움직였고 타자를 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2023년 저는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기대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것이라는 간증입니다. 그날은 정말 기쁜 날이었고 제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졸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저는 더 이상 매일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시편 96장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왼쪽 파란 옷 입은 분이 바네사 자매이고, 옆에서 최하은 자매님이 통역하는 모습이며,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성도소개] 지수빈 자매를 소개합니다.](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Polish_20240722_162603213.jpg)
지난 3월 4일 거제교회에서 전입하신 지수빈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Q :좋아하는 음식/운동/취미
A :좋아하는 음식은 과일 계열이고 취미는 비즈 만들기나 그림그리기입니다.
Q :나의 성격/장점/단점
A :성격은 좋게 넘기려는 편이고, 장점은 잘 참고 오래 기다려 주는 점. 단점은 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하루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A :하루를 마무리 하기 전 저녁 시간대를 가장 좋아합니다!
Q :배우고 싶거나 경험하고 싶은 것
A :심리학이나 공예에 관심이 많아서 더 배워보고 싶어요.
Q :나의 유년기 시절(추억, 기억)
A :교회에서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산으로 놀러 다닌게 기억에 남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여행지
A :어린 시절 갔던 제주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예쁜 바다를 본 것과 말을 타본 기억이 좋았습니다.
Q :처음 신앙 생활하게 된 계기
A :모태신앙인지라 어머니를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나왔습니다!
Q :성령 받은 간증
A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중등부 영은회를 처음 간 겨울 영은회에서 받았습니다.
Q :기쁘고 감사한일
A :할수 있는 적성을 살려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최근 중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타지에서도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Q :요즘 기도 제목은?
A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 것과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Q :좋아하는 성경구절/찬양
A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좋아하는 찬양은 “같이 걸어가기” 입니다!
같이 걸어가기
혼자 뛰어가지 않기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주를 따라 걸어가기
같이 걸어가기
내 맘대로 가지 않기
주의 뜻이 무언지 살피며
주와 함께 걸어가기
같이 걸어가기
한 눈 팔지 않고 가기
주의 뜻이 어디든 따르기
주와 함께 걸어가기
날 돌아보기 회개하기
주의 뜻 무언지 구하기
사랑하기 의를 행하기
정결한 맘으로 예배하기
주와 함께 주의 뜻대로
주 가신 그 길로
나 겸손히 걸어가네
주와 함께 주의 뜻대로

![[복음메시지]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KakaoTalk_20240704_025100842-e1720035395457.jpg)
[말씀제목]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4년 4월 20일(토) 안식일 오전 예배
온 가족 초청전도 집회를 맞이하여 성경에 나온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의 초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은 한 여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인간의 삶 가운데 많은 힘듦이 있지요. 경제적인 가난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기도 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마음과 정신까지 무너뜨리는 것은 몸의 병입니다. 몸의 병이 깊이 들었을 때 사람은 점점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경에 이 여인은 혈루증(만성자궁출혈)을 12년 동안 앓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당시에도 전염병이 많아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유출병을 앓으면 부정하다고 레위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염 때문에 유출병을 앓는 자는 공동체와 마을에서 떨어져서 살아야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여인은 치료를 위해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고칠 수 없어서 점점 병으로 시들어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겠지만, 이 여인에게는 ‘정말 만나야겠다.’라는 결단을 내리게 하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12년간의 만성유출병으로 부정하게 여겨져 온 여인이 공동체에 나타나게 된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 사이에 몰래 섞여서 온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여인으로서는 예수님을 만나거나 대화할 방법이 없으니,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겠다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것 또한 죽을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 고의로 남을 만지면 똑같은 병에 걸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목숨을 두 번 건 것이지요. 무리에 섞일 때 한 번, 예수님의 옷을 잡을 때에 또 한 번.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초청받으신 분들에게도 예수님을 붙잡겠다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다 잘 사는 것 같아도 저마다 아픔이 있습니다. 좌절이 있습니다. 절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 향하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혈루병이 나은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깨달았다는 것은 즉각 나았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즉각 깨달을 정도로 몸이 나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붙잡으시고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목숨을 걸고 내민 믿음의 손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고 하시고 건강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결심을 하고 예수님 뒤에 가서 옷을 붙잡은 것밖에 없지만, 12년 동안 고통의 병 속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건강한 몸으로, 구원받은 예수님의 딸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손을 내미는 작은 동작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놀랍게 변하는, 인생 가운데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는 귀한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관소개] 동부교회 에스더회를 소개합니다!](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KakaoTalk_20240620_134527537_02.jpg)
할렐루야! 동부교회 에스더회를 소개합니다.
에스더회는 장년부 여신도회 3개 반 중에서 중간층 연령에 속합니다.
1951년~1965년생 자매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점심식사 후 1시 30분에 소그룹공부가 시작됩니다. 주보에 있는 소그룹 교재를 통해 성경말씀을 읽고 느끼고 깨달은 점들을 나누며 서로의 신앙을 붙잡아 주면서 공동체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성도가 주방봉사, 청소봉사 등의 사역을 하고 있고, 교회를 대표하는 여수룬 찬양대와 악기부에도 대다수의 인원들이 가입하여 교회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 전파 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에스더회 주요활동
교회 활동과 봉사를 하면서도 한 사람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도록 믿음을 북돋아 주며 교회 안의 작은 교회라는 중요한 사명감을 가지고 신도회를 운영해 가고 있습니다.


♥ 에스더회 봄나들이
2024년 5월 26일 에스더회에서 창덕궁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나들이 동안에는 좋은 날씨를 주셔서 창덕궁 곳곳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행사] 바베큐 파티 및 군입대자 송별회](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IMG_2504.jpeg)
할렐루야!
동부교회의 크고 작은 행사 중 이번 소금처럼에서 소개해 드릴 활동은 하계 바베큐 파티 및 군입대자의 송별회입니다.
안식일 전날 미리 바베큐 파티에 필요한 고기와 장을 봐주신 사청부 형제자매님들 덕분에 바베큐를 바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기온이 높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걱정되었으나 정말 감사하게도 흐린 날씨와 구름 덕분에 쾌적한 저녁 식사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군입대를 앞둔 대학부 김도윤 형제님의 건강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군 생활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또 한 주 사랑하는 교회 성도님들과 교제하며 즐거운 안식일을 보내는 동부교회였습니다!

![[신앙의 향기] 세례식](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0C9EC50A-F6A5-4AC7-9960-6B898A2FA2EE-scaled-1.jpeg)
할렐루야!
이번 참예수 동부 교회 소금처럼 8월호에선 지난 6월 23일 세례식을 소개합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기에 앞서 날씨가 좋지 못해 세례식이 한번 연기되었는데요,
높아진 기온에 계곡물이 메마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달리 세례식 전날 비가 와
계곡물이 아주 적당히 차올랐습니다.
세례식에 앞서 화창한 날씨와 계곡물을 채워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수세자님을 도운 동부 형제님들과 세례식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 성도님 덕분에
더욱 충만한 세례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영혼이 구원 받길 소망합니다!




![[성도소개] 김도윤 형제를 소개합니다.](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KakaoTalk_20240703_195826129.jpg)
Q :자기소개
A : 6월 24일 군대 가게 된 김도윤입니다.
Q :나의 학창시절
A :중학교 시절에 공부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때 미대에 가겠다는 목표가 생겨 열심히 미술도 하고 공부도 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고, 스스로 다닌 것은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다녔고 삶이 힘들 때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였습니다.
Q :나의 성격/장점,단점
A :느긋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침착함을 잘 유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고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Q :좋아하는 음식/운동/취미
A :편식하지 않습니다. (초,중,고)학교급식을 거의 남겨 본적이 없습니다. 미대 다니기 때문에 미술도 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보컬 학원도 다녀보고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 운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Q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게 된 때는?
A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경이 남아있고 널리 퍼진 것을 보면 성경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Q :처음 신앙 생활하게 된 계기
A :4살 때부터 할머니와 고모부가 데리러 오셔서 교회를 다녔고 본격적으로 다니게 된 때는 아마 중3 이후 부터일 것입니다. 중학교 때 공부가 저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는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가 일단 교회를 잘 다녀보자 생각했고 교회 다니며 영은회도 많이 가고 단기신학도 가면서 믿음이 더 생겨서 저녁 예배까지 계속 드릴수 있었습니다. 교회 선생님들과 목자님과 대화를 계속 했고 영은회와 단기신학을 다니며 더욱 제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성령 받은 간증
A :6학년 여름성경학교 둘째날 마지막 기도 시간에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 때 했던 기도가 어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한 기도였기 때문에 하나님! 저에게 성령을 주셔서 저희 가정을 살려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Q :전도하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 있나요?
A :친구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자주 해 줍니다. 시시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역사 이야기와 관련지어 전하면 조금은 관심있어 했습니다.
Q :나의 가장 믿음이 좋았을때
A :이건 진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영은회랑 단기 신학 겹쳐있는 그 한 달 동안은 정말 신앙심이 가장 높았었습니다. 제대후 다시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합니다.
Q :요즘 기도 제목은?
A :제가 이번에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건강하게 잘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Q :은혜받은 성경구절
A :(사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성경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로 인해 용기를 주셔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Q :좋아하는 찬양
A :너는 내 아들이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뭔가 안심이 되고 다시 한번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Q :닮고 싶은 성경 인물
A :바울을 닮고 싶지만 성격상 닮기 힘들 것 같아서 바나바 같은 사람이 되어서 신도분들의 기분을 잘 살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기억나는 교회 친구, 선배, 선생님, 추억
A :또래 중 가장 친한 친구는 대방교회 유일상 이라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사촌 백종한 형이 있는데 제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도와줬습니다. 동부교회 목자님, 선생님, 성도님들이 저를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진짜 제 신앙의 뿌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고3 수련회 진짜 재밌었습니다.
Q :신앙생활중 믿음이 흔들린 적은? 반대로 큰 기쁨이나 행복을 느낀 적은?
A :신앙이 흔들렸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시간 나면 교회에 계속 왔습니다. 큰 행복을 느꼈을 때는 정말 무기력 할 때가 있었는데 항상 하나님은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서 치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Q :살면서 믿음의 시험이 들거나, 하나님이 안 믿어질때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A :많은 유혹과 시험을 당합니다. 그럴 때마다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는데 하나님이 안 믿겨진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위대하셔서 감히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믿기지 않을 상황이 온다면 내가 잘 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느낄것입니다.
Q :기쁘고 감사한 일
A : 저는 20대이고 또래 친구들은 세상에 녹아들어 살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들과 제가 건강 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 일이 잘 풀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나의 믿음 결혼에 대한 생각
A :아직 어려서 결혼에 대한 실감은 안나지만 당연히 믿음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장래희망/나의 소원/ 삶의 목표
A :디자이너가 꿈이고,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좋은 직장 동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고 하나님께 더욱 많은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Q :십년(10년) 뒤의 나의 모습
A : 평범하지만 전도에 힘쓰고 좋은 가정을 꾸려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도 잘 드릴 수 있게 금요일과 토요일은 시간이 비는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목자님 내외분 & 청년부와 함께…
5월의 어느날에….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https://dev.tjc.or.kr/wp-content/uploads/2024/07/KakaoTalk_20240703_175241892_01.jpg)
2024. 4. 30. 화요일 밤 간증회(이명철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도님들께 안부인사
할렐루야 동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제가 오늘 교회를 오며 헤아려보니, 오늘이 저희 부부가 동부교회로 전입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더라구요. 먼저 그간 저희가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많은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동부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간, 제가 드리는 간증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면_ 좋겠습니다.
제가 동부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몇 가지 첫 인상이 있습니다. 우선 목자님 사모님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하시다는 것 외에, 젊은 청년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하는 순간에 있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목회자의 식구로 교회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세밀하게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꼬마 시절 동부교회에도 있었지만 그 이후 전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는데요, 그 때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 교회 전체적인 차원의 기도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주교회 2층 예배당 입구 옆 게시판에 아주 큼지막한 표_ 희망자에 한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하여도 표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요, 그 큰 기도표 맨 위에 ‘주님, 저 왔어요’ 라는 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이름 칸에 동그라미를 꾸준히 표시해야겠다는 동기 외에도, 다른 친구들은 다 성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살고 평일 예배까지 출석하는 제가 성령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겨울 영은회가 끝나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다시 사택으로 내려와 씻고 밥 먹고 학교를 가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등부 영은회가 보통 며칠이니까, 그것의 스무 배,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겠지.. 그런데 쉽게 안 주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두 달, 세 달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전주교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예배당이 매우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아침에 예배당에 올라가면 한 쪽 창에서 햇살이 빗금치듯이 들어오구요. 그 햇살에 비쳐 흩날리는 입자들이 반짝입니다. 바로 옆 산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오고.. 그 곳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팻말처럼, 주님 저 왔어요. 하면, 그래 왔니, 내 아들아. 비록 지금 당장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하며 그 고요한 햇살 속에서 저를 품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사랑를 느끼며 기도를 하다보니, 새벽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심 기대까지 되었고,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저의 매일을 깊이 동행해주신다는 느낌을 난생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초부터 시작한 기도는, 수개월 더 드린 끝에 그 해 가을,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진로를 인도해주시다
기다리던 끝에 성령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제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현재 내가 학생이니, 주어진 현재의 활동,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주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던 학교 중 하나라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 안에 공부를 잘하시는 형들이 있어서 그 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우리 청년들처럼, 그 형들도 평일 예배, 안식일 예배를 온전히 다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갔나보다 하고 근처 독서실에 가보니, 벌써 거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입시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서울도 아닌 전주 일반인문고교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 그리고 공부를 하며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손해는 보게 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대방교회로 부임하시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학간 학교가 OO포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가 공부를 잘 못해서 똥포 고등학교로 불렸는데요, 심지어 첫 해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학을 권유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제게 무언가 가져다 주실 것이 있어서 제게 방해가 될까봐,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학교에 살짝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실 뒷 문에서 저 말고 다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도 있었는데, 참여한 학생이 저를 포함해 고등학교 1~3학년까지 전교에서 2명이었고, 끝까지 매일 꾸준히 참여한 학생은 저 1명이었습니다. 분명 저 말고도 각 가정이나 학원에서 성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거든요.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불안할 때, 힘이 들 때, 언제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고 찬양했습니다. 평일 예배도 참석하였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일독하는 게 먼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성경통독도 고3때 처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게 해주신 은혜에, 저 또한 전주에서 보았던 그 형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를 성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에 저를 지탱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주변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적성과 형편에 부합하는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학과도 정하잖아요. 당시 주변에서 세상적으로 유망한 이런 저런 학과들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도 가운데, 직업을 위해 학과를 택하기보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전공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두에 저희가 읽었던 잠언 말씀구절에 뒤이어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잠 8:19)
오늘날을,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그간 공부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정과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장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고 싶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처럼, 이 땅의 정금이나 천은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상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 싶었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나님 은혜, 불합격이면 무조건 내 부족함이라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며 현실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과정- 돌아보면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군(軍) 복무로 인도해주시다
그런데 남자는 대학교를 진학해도, 또 군대라는 관문이 있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군대에서 여러 안전 사고 등 들리는 뉴스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무언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어떤 분이 군대를 가신다고 교회에서 환송회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또, 그리고 그 다음달에 또, 생각보다 자주 오시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대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받고 이후 임관하는, 학군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구요. 아, 이거라면 내가 군복무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보다 제가 그 때 더 체격이 왜소했고 체력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취업난에 더불어 학군장교 경쟁률도 상당하여 제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년시절,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던 제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신앙적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혼자 공원에 뛰어가 시험 종목들을 연습하는 준비를 1년여 정도 한 끝에 학군장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나 교통이 불편한 산지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과 달리, 오직 저만 인천교회에 대중교통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해주셨습니다. 장교도 밤을 새우는 평일 근무, 종일 근무하는 주말 근무를 서야하는데요, 군 간부들이 제일 기피하는 근무 요일 중 하나가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근무하고 이튿날 일요일을 쉬면 주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막 들어온 막내 초임 장교임에도, 일요일, 공휴일에 근무를 더 서는 대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전역할 때까지 토요일 근무를 제외시켜주시는 상관을 만나게 해주셔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안식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에 있어서 제가 가장 바라던,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인도해주시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이라도 공부하고자 했던 동기도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 생활을 더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군 전역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단기 신학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많은 목자님들, 신앙의 선배님들, 청년들을 통해 제 신앙이 더 발전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조금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앙과 제 전공에 힘을 써서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원이 휴직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휴직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비교적 완화되었고, 그것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제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젊은 남자 선생님을 보내는 것을 잘 추천하지 않지만, 그간 학교에서 근무한 태도와 실적을 고려하였을 때 한 해라도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믿고 먼저 추천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종 면접 심사 때도 면접관분들 중, 과거 교육청 주관 행사 때 저를 눈여겨 보셨던 장학사님이 계셨습니다. 인사 규정이 바뀐 후 제가 최초 지원자였음에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를 보내주시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적 인도하심 가운데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이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가는 길에 교회 형제, 성도님들께서 차를 함께 태워주셨는데, 참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교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저로 하여금 먼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과 가까워진 이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다 해도, 그리고 인접 뉴욕 교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을 해서 그간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하여도, 출석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과 임원들이 직접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제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저를 지켜보고 직접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교회 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와, 교회 생활관에 들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이미 한 명의 형제가 있지만, 교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여 제가 들어와 같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충분히 덕을 끼치며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학교 기숙사에 그대로 남아 지내는 것이 어떨까_ 하셨지만 저는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교회 임원분들께서 저를 인터뷰하시고, 그 간의 제 신앙생활의 태도와 왜 들어오려 하는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지 등의 대답 내용을 가지고 다시 직무임원회의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사랑과 신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각 나라와 교회 실정을 고려하여, 본교 목자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현재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처럼,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업에 힘쓰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기간을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분들을 통해 신앙의 여러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제가 홀몸에,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었고, 그것도 교회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전 총회와 같이 많은 교회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었고 현재는 미국 총회의 교육센터로 다시금 거듭나는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미국 청년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전반적인 미국 생활과 학업을 인도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덤 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하나님께 가장 바라고 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을 함께 구할 수 있도록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다
그렇게 교회에 머물며 집중적인 신앙의 수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제 자신의 밑바닥이 더욱 적나라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세를 향해 가는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너무도 연약했고, 제 신앙을 홀로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간 목자님들께 배운대로, 제가 배우자에 관해 기도한 두어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와 함께 어디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신앙적 도전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에 비교해보았을 때 훌륭하신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예의상의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꼭 비교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무얼 바라기 전에, 제 자신부터가 제 기도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 성숙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 자매에게도 저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 현재 현실적 상태에 대해 기대게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한 명의 피조물이자 인간이었기에, 누가 되었든 결혼 전 제가 어떠한 약속을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상황적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제 부족한 신앙적·인품적 됨됨이 때문에, 배우자 기도로 정확히 10년이 채워지는 시점에 지금의 자매를 아내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그냥 평상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갈수록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저희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점점 더 체험하고 있음에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변함없이 인도해주시는 은혜
앞서 저희가 불렀던 찬양 499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처럼, 미국의 예배당 새벽 아침에도 전주교회와 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햇살이 빗금치듯 들어옵니다. 흩날리는 입자들이 햇살에 빛나고, 바로 옆 창문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들어옵니다. 예배당 밖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안에서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20년 전 전주의 예배당에서 한 소년을 안아주시던 당신은, 먼 타국에서도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제 소망과 기도들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구할 때에, 제 앞의 현실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교회 앞 잔디밭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제 사비로 한 그루- 향기나는 작은 묘목을 심어드릴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심어드린 그 작은 나무는 올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 회기동 교회로 돌아와_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당신께서 간절히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었던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도님 여러분,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저희에게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금처럼 함께 화목하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겸손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멘.
3월에 전입한 이명철 형제 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