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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저는 동부교회 김동녀라고 합니다. (1936년생) 어릴때 경북 안동 풍산읍에 살았습니다. 문경새재 넘어오면 자그마한 풍북국민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였어요.

    어릴 적 학업에 대한 열망이 크다

     8살 입학식날 큰 외삼촌이 “동녀야, 학교 가서 나이와 성을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야 한다. 나이는 핫사이데스, 이름은 가네야마도우조라고 대답해라.”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가네야마도우조, 핫사이데스를 속으로 계속 되내었어요. 학교에 가서 외운대로 큰 소리로 대답을 잘 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종이도 없고 연필도 딱 한자루 있던걸 아껴 썼고 다 쓰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도 쓰고 1,2,3,4도 써보았어요. 그러던 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서 풍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종대왕 한글 1회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우리글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8살, 15살, 20살도 1학년이에요. 장가 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어요. 저는 1년을 공부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가 쉬웠어요. 선생님은 “얘는 수학을 잘하네.” 하시며 나중에 2학년은 건너뛰고 3학년으로 올려 주었어요.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1반, 중간은 2반, 공부 못하는 사람이 3반이었어요. 저에게 수학은 좀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너무 가난하고 먹을 거리가 없어서 한때는 굶고 한때는 나물밥 먹는 형편이라서 또다시 학교를 못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다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물가에 가서 모래에 쓰고 당시 종이 색깔이 신문보다 까맸어요. 종이에 가갸거겨고교를 쓰며…… 종이가 너널너덜 할때까지 썼어요. 점으로만 표시하는 아래아라는 글자도 있었어요. 공부를 중단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제 시대 1년, 세종대왕 한글 나오고 1년! 이렇게 2년은 완전히 다녔어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다

    아버지는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며 21살에 30리 되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보냈어요. 저희 외가쪽으로 연관이 되는 집안이었어요. 시집 식구가 16명이에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맏동서 가정, 시누이 2명, 시동생 3명, 저희 부부까지 7남매에요. 매일 분주히 일하고 베를 짜고 가족이 많다 보니 보리쌀을 가마솥에 거의 차게 넣어도 다 소비가 되었어요. 부자라 해도 쌀은 어른들만 좀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먹었지요. 일을 해야 하니 분가를 못한 채 10년을 살았어요. 어느날 가까운 곳에 빈 집이 나서 남편이 저와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분가를 했어요.  처음 분가하고 살림이 조금 어려워서 낮에는 시댁에 가서 일 해주고 쌀을 받아왔어요. 하루는 시댁가서 밤 10시쯤 설거지 끝내고 오니 남편이 없어요. 동네에 아는 집들을 찾아가 보았어요. 동네가 다 윤씨 일가에요. 점방 뒷집에 가보니 그 집에 사는 분이 남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돈을 대줄테니 나락을 사서 차에 실어서 정미소에 가서 찧어서 쌀로 팔면 괜찮을거 같다. 다 일가이니 잘 될거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은 나락 장사를 시작했고 1년을 하니까 너무 잘 되어 그 돈으로 땅을 3마지기를 샀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윤씨 일가다 보니 나락을 높게 달아도 몇 바가지씩 더 넣어주면서 “아지매하고 아재하고는 살아야 된다. 마당에 가마니를 쟁여두면 쥐도 먹고 닭도 먹으니까 축 나는거 보충해야 된다 ” 하며 나락을 많이 퍼넣어 줬어요. 나락이 많아서 길에 길게 쟁여뒀는데도 아무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은 8톤짜리 큰 차를 불러서 수십가마니를 실어 나르며 일을 하였어요. 나중에는 논 8마지기 네모 반듯한 걸 샀어요.

    서울에 올라오게 되다.

    시동생이 캐나다에 이민가려고 보유하고 있던 기름집을 처분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남편은 급하게 집안 어른에게 전화해서 논 8마지기를 팔고 시동생의 가게를 인수 받아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군대를 갔어요. 군대 간 뒤에 보니 찬송가랑 성경을 많이 사놓고 갔더라고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이제는 신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아들이 사놓은 찬송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그냥 읽었어요. 찬송가를 읽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나는 속으로 아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엄마가 안믿으면 아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할까 그런 마음도 들었어요. 얼른 하나님을 찾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가 싫었어요. 장사하면서 아무리 선한 사람도 물건을 팔 때 좋은거 좋다 나쁜거 나쁘다 그렇게 못하잖아요. 좋지 않아도 손님이 물건 좋아요? 하면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야 하고….거짓말하는 것이 싫더라고요. 장사 그만두면 얼른 하나님 집부터 찾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부교회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어디 있나 찾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장사하기 싫어요. 장사 좀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몇 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장을 뜯는다 하더라고요. 아주 신기했어요. “아 잘 되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장사 치울 생각하니, 속으로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한집 두집 시장 뜯는다고 가게를 나가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그런데 남편이 말을 안해요. 며칠 후  “누구는 나갔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기름가게 고추가게를 고물상에 주면 너무 쌀 것이고 어디 누가 새로 차리는 사람을 찾아보고 주면 돈을 더 받을 건데 한번 찾아보죠!” 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해요.

    시간이 흘러 다 나가고 3집 정도 남았어요. 마음이 타들어 갔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가야 겠네요.” 그때서야 남편은 입을 열었어요. 애들 용돈도 줘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가게를 그만 둘순 없고 남편의 복덕방으로 옮긴다는 거에요. 그리고 남편의 복덕방은 차고에다 우선 하겠다는 거에요. 저는 남편에게 복덕방은 상봉터미널 앞이고, 38-2 버스 종점인데 고추가게, 기름가게가 잘 되겠냐며 먼지가 많아 물건도 내놓지도 못할텐데 그만 이번 기회에 치우자고 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들은 신학을 마친 후 안동 참예수교회에 발령이 났어요.

    가게를 옮기다

    가게를 옮겨놓고 보니 고추 가마니가 한가득이에요. 38-2 종점이니 사람이 버스에서 꾸역꾸역 내려요. 그 당시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고추가게&기름가게가 생겼네? 여기 무슨 장사가 되나?” 하며 다들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나가요. 저는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서 문을 닫아 놓고(문은 유리에요) 돌아앉아서 고추 꽁다리만 땄어요.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내가 이럴때가 아니고 하나님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아, 여기 고추가게 잘 들어왔네! 기름가게 잘 들어왔네 하시며 “아줌마! 고추를 사고 싶은데 아주 좋은 것도 말고 아주 나쁜 것도 말고 좀 섞어서 20근씩 달아주세요.” 하며 큰 가게를 운영하는데 하루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도 많이 쓰니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은 대병으로 2개씩 쓴대요. 그 옆가게도 우리 물건을 써서 두 집이 단골이 되었어요. 조금 작게 하는 가게 4집도 단골이 되어 시장에서 장사할때보다 마진이 나아요. 아주 좋은 물건도 아니고 아주 나쁜 물건도 아니니, 장사하는 제 맘이 편하더라고요. 고추는 꽁다리만 따주면 가져갔어요.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다

    그러던중 시골 큰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골을 가야하니 단골집에 물건을 많이 갖다주고 내려 갔어요. 3일장을 치르고 친인척들 모두 다 돌아가고 저도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그냥 올라가면 내가 언제나 세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 윤목자가 안동교회 있으니 세례를 받고 가야겠다.’ 남편과 같이 가면 세례를 못 받게 할거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저는 오늘 서울 올라 가야해요.” 했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간다는 저의 말에 삼우제나 지내고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올라가야 돼요. 애들 밥도 해줘야 되고 장사도 해야 되고 올라가야 돼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밖에 안다니는데 밤 10시여서 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가방을 싸들고 지금까지 부모 말을 거역해 본적도 없고 거짓말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어머니 말이 귀에 안 들어 오고 가방 들고 달아나듯 나갔어요. 신작로로 차 타려고 나오니 금방 차가 왔고, 안동 삼거리에서 내려서 안동 참예수교회를 찾으려고 올라갔어요. 예전부터 안동교회는 꼭대기에 있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간판이 안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참예수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잖아요!” 하더라고요. 교회 간판이 아주 작아서 눈에 안보였어요. 마침 교회는 영은회를 하고 있었고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아들 윤목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반가워 놀라며 물었어요. 큰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내려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면 세례도 못받고 서울 올라갈거 같아서 혼자 교회로 왔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세례받고 가셔요.” 했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손자랑 같이 받았는데 그 손자가 윤석원 목자에요. 윤석원 목자 아기때 제가 같이 낙동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찌나 기쁜지 몰라요. 기차 창문 내다보니 산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웃는거 같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거 같아요.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차를 타고 오는데 왜 그렇게 좋은지 몰라요. 차를 타면 차멀미를 해서 차도 잘 못타는데 그날은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고 차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지나가며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거 같고 세상이 너무 달라보이고 이제는 서울 올라가서 하나님 집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가게일을 하면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기도도 할 줄도 모르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례를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밤에도 기도하고 찬송가도 매일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고 좋았더라 하신거구나!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넓은 땅에 사는 동물이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이 동물은 참 사납고 저 동물은 무섭게도 만드셨네!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까운 교회를 찾다

    안식일이 되었어요. 아침을 일찍 해먹고 단골집에 배달을 해주고 교회를 찾아나섰어요. 전농동 어디에 있다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17번을 타면 전농동 사거리에 간대요. 운전수 뒷자리에 탄후 어렵게 내렸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참예수교회 간판이 안 보여요.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었어요. 전농동 사거리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간 거지요. 간판이 크질 않았어요. 도착하니 아침 9시였는데 그 당시 허수진 목자님 가정이 시무할때였는데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시며 아침을 같이 드시자고 하셨는데 저는 먹고 왔다고 했어요. 교회를 처음 찾는거라서 일찍 나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교회오니 하나님 집을 찾은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다

    저는 가게일을 하면서 고추자루 뒤에서도 기도하고 기름솥 뒤에서도 기도했어요. 항상 기도했어요. 하루는 가게에서 고추 꽁다리 자르다가 기름솥 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며칠후에 교회에서 기도할때 안수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안수를 받았는데 성령을 받았어요. 세례받고 두 달만에 성령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안식일에 문닫고 교회 다니다

    가게 하면서 단골집에만 팔아도 시장에 있을때보다 마진이 나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거 같아요. 단골집에는 안식일 전날 물건을 대주고 안식일엔 문을 닫고 교회 예배하러 갔어요. 월 화 수 목 금은 계속 장사하고 토요일은 가게문 닫고 오전예배 드리고 칼국수 점심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어요. 성경을 몰랐을때는 찬송가를 많이 읽고 성경은 시편 1편 정도만 마음에 와 닿았었는데 지금은 성경 암송도 많이 하고 성경이 참 좋아요. 작년에 눈도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그때 잠깐 성경책을 못 읽어봤고 너무 부끄러워서 올해는 작정하고 읽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예레미야 51장 15절, 창세기 2장 3절, 요한복음 17장 11절, 빌립보서 2장 6절~8절, 요한복음 14장 26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요한복음 3장 17절, 히브리서 7장 3절, 갈라디아 4장 6절, 사도행전 4장 12절, 로마서 8장 16절 등 성경구절 다 좋아요. 찬송도 492장, 544장, 28장, 253장, 455장, 338장, 405장, 363장, 204장, 460장, 363장, 168장 등 모두 다 좋아요.

    소망이 생기다

    제가 이제는 이렇게 다 늙었는데 꿈이 있다면 육신이 죽어서 낙원에가고, 예수님 재림할때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의 안 믿는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내가 살았을 때 믿는 걸 봤으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라도 꼭 믿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날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은 믿지만 옛날에 믿지 않을 때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릴 때 학교다니며 숫자와 글씨를 알게 해주셔서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을수 있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집에 오면 늘 사랑이 있고 교회오면 너무나 좋아요. 요한일서 5장 20절 말씀처럼 지각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를 붙들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장 20절. 

    아래 사진은 김동녀 모친께서  찬양도 하시고 부군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교회행사] 동부교회 청년부 바베큐 파티

    [교회행사] 동부교회 청년부 바베큐 파티

    할렐루야!

    지난 3월30일 동부교회 청년부의 올해 첫 5주 행사였던 바베큐파티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옥상에서 맛있는 고기와 각종 해산물을 구워 먹으며 청년들간에 화합하고 친목하는 행복한 활동이었습니다. 거룩한 안식일 날 아동부, 학생부, 대학부, 그리고 사청부 모두가 모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그릴 앞에 서서 맛있는 바베큐를 구워주신 형제님들과 총무님께도 감사함을 잊지 않으며 활동이 끝난 후에도 모두가 단합해 깨끗이 옥상을 정리한후 귀가 할 수 있었습니다.

    동부 교회에 잔잔한 햇살 같은 행복이 자주 찾아오길 기도합니다^^

  •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준비하면서 함께 나눌 찬양이 생각이 났는데 가사 묵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제 이름은 곽이안입니다. 2001년 대만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50세였고, 어머니는 38세, 첫째 언니는 11살,  둘째 언니는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셨고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아기들과 같이 여러 번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타다가 벼랑에 떨어지거나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들이 쌓여서 자라났습니다.

    간증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제일 중요한 게  공부, 진로 정하는 거죠.  저는 진로를 계획하면서 대중 매체와 관련된 전공과 외국어 관련된 전공,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때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대충 매체 산업 시장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도 높아서 겸사겸사 한국 유학을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신청하려면 고등학교 성적,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 다른 필수 조건 자격 요건들이 필요한데요.  고 3때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대만의 첫 번째 수능 시험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만은 수능 시험을 두 번 봐요. 입학은 9월이에요. 그래서 9월부터 1학기이고  2월부터는 2학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첫 번째 수능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사인을 받으러 저희 아버지한테 갔어요. 근데 저의 잘못이 뭐냐면 아버지한테 시험 포기 하겠다는 걸 미리 말씀 안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엄청 반대하셨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18살까지 살면서 저희 부모님 싸우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많이 놀랐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한국대학교  떨어지면 책임을 제가 지는 것을 조건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하나님께 제발 대학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잘 져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때가 2020년이였어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대만에서는  수능시험 두 번 본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두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3년 동안 배웠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2020년 7월에 두 번째 수능 시험을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만의 타이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합격했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고, 성균관대 입학을 했습니다. 합격했던 대만 예대는 혹시 몰라서 2년 동안 휴학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자퇴를 신청했어요.

    한국에 와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온라인 수업만 듣고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바램과 내 자신도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작년에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학교와 교회에  다니면서 알바도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어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른거 별로 없어요. 수업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잘 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수업은 많이 어려웠고 좋은 성적은 못 받은 것 같지만 학교생활은 잘  마쳤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을 무척 좋아하시고  알바하는 친구들은 한국 대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사장님이랑  알바하는 친구들이 수다도 떨고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도쿄 교회로 갔는데 사실 도쿄 교회는 도쿄 안에 없어요. 도쿄를 서울시로 비유하자면 도쿄 교회는 약간 외곽인 경기도 쪽이라고 보면 돼요.  제가 살던 곳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쿄 교회는 엄청 크지는 않아요. 성도님들 70프로는 대만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고 나머지 30프로는 일본 사람입니다. 안식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있고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은 매주 있지만 대학부 사청부 분반은 격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맡은 사역은 없었지만 아기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총회가 다른 지역에도 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목표가 있어요. 한가지 예로 들면  도쿄 교회 출석 성도들 중에서 오오야마라는 지역 근처에서 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꽤 많아요. 그 근처 성도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 같은 데에서  집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서 오오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물을 이미 확보하고 헌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느낀점은 일본에서  전도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신토라는 고여 중 종교가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신사들은 다 그들의 종교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나 참예수교의 전파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참예수교회의 원활한 전도와 새 교회 헌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도님들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생활은 제가 과거에도 여행한 적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건들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작년 7월 대만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 뉴스는 어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떨어져서 어떤 여자가  맞아서 죽었다는 뉴스였어요. 그 여자는 제 고등학교 친구에요.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날 알바하던 날이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 친구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나요. 멀리 있다보니 장례식도 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슬픈 마음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8월 달에 여름방학 때 잠깐 대만에 갔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열이 나서 더위를 먹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며칠 전에 친구랑 일본에서 불꽃 축제 갔었어요. 7월 말  더운 날에  친구랑 거의 10시간 동안 유카타를 입고 밖에서 다녔어요. 그것 때문에 더위를 먹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만에 가서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고  작은 의원에서 받았던  해열제를 먹어도 안 떨어져서 어머니가 큰 병원 데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니까 간 수치가 이상하게 높았어요. 보통 간 수치는 원래 40~50 이하가 정상인데 제가 그때 약 500~600 나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이 났던 거에요. 응급실로 가서 수액을 맞았고 감염성 단핵구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날은 수액 맞고 열이 떨어져서 입원은 안 했어요. 근데 뒤에 며칠 동안 계속 열나고 해열제 먹고 또 열나고 해열제 먹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 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모처럼 대만 가서 그리웠던  음식들을 못 먹었어요. 하루 종일 경구 영양식 한 캔씩 먹었어요.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저희 타이페이 교회 주보에 제 이름이 올라갔어요. 교회 성도님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1주일 지나서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 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할렐루야!

    아기였을때 가족사진

    최근 가족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안 자매)

    청년부 암송대회에서 우수상 받는 모습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나기전 공항에서 목자님 내외분과 생활관 청년부와 함께

    일본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일본 도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일본 알바했던 카페에서 특별활동 

     

    일본 오카야마


    일본 도쿄 메구로천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 [성도소개]한인덕 집사님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한인덕 집사님을 소개합니다.

    Q.나의 학창 시절 : 중3 때까지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 같습니다.

    Q.처음 신앙생활 하게 된 때 :  친언니인 한마리아 집사님이 부모님 전도를 했고 그 후부터 따라다녔습니다.

    Q.나의 사춘기 시절 : 고1때 정은진 목자님(미국교회)으로부터 서울 중랑천에 가서 세례를 받고 새벽에 교회로 와서 성령 받았습니다. (그 당시 중량천 물이 수영을 할 정도로 깊었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 고등 학교때 처음으로 서천교회 영은회 갔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Q.배우고 싶거나 경험하고 싶은 것 : 고3 졸업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것이 평생 후회가 되네요.

    Q.첫 사회 생활의 경험 : 고3 졸업하고 사회생활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Q.나의 성격&장단점 : 어렸을 때 가정 교육 탓인지 매사에 뭐든지 철두 철미 하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습니다.

    Q.좋아하는 음식 :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편식을 하고 먹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Q.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게 된 때 : 결혼하고 부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Q.교회 가기 싫거나 귀찮았던 적 : 그 당시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는 나갔습니다.

    Q.평소 하루 일과 : 기도, 묵상, 성경책 읽기.

    Q.평소 영성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 항상 부족하다고 자책합니다.

    **관리자 답변:하루 일과가 모두 영성 관리이신걸요? ^^

    Q.전도하기 위한 특별한 전략 : 기도입니다.

    Q.나의 가장 믿음이 좋았을 때 : 내 자신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Q.현재 맡으신 사역 : 소그룹 교사

    Q.요즘 기도 제목 : 우리 가족 10명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주님께 충성하는 가족이 되기를 원합니다. 임마누엘

           21년10월 한나회&다니엘회 제주집회소 방문(선그라스&체크무늬 남방 입은 분)

     24년2월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부군인 김일도 집사님과 함께.

    24년 2월 가족과 함께.

  • [기관소개] 동부교회 베드로회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동부교회 베드로회를 소개합니다

     

    사진, 글제공-베드로회 교사 김동명 형제

  • [복음메시지]우리를 광야의 쓴물로 인도하시는 은혜 (출15:22~27)

    [복음메시지]우리를 광야의 쓴물로 인도하시는 은혜 (출15:22~27)

    ♣ 2024. 01. 20.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홍해를 건넌 것은 애굽의 손에서 구원받은 의미도 있고 세례를 통해 구원 받았음을 예표합니다. 홍해를 건너고  감사의 노래를 한후(15:1~21)광야길을 3일 행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물을 얻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물인데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시지를 못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받고 교회에서 축하해 주고, 찬양하고 기뻐하다가 3일이 됐는데  좋게 변한 게 없어요. 오히려 더 나빠지는 길로 가는 거죠. 삶이 더 팍팍하고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 거지요.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애굽 후 원망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이 이곳입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서 백성이 원망한 것이 한 달 후도 아니고 3일!  말하자면 세례받고 3일 만에도 원망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해 가신 결과입니다.  왜 이렇게 인도하셨을까요?  세상에서 살던 우리의 태도를 고치시고 치유하기 위해서 마라로 인도하십니다. 또다른 이유는 마라의 고통의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내면에 절망이 생길 때 심리학적으로 원망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민14:2~4)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악한 모습이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조용히 이스라엘 백성을 꽃길이 아닌, 쓴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가신것은  깊은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세례받고 거듭난 백성이 됐을 때 알아야 될 깊은 인생의 가치는 광야의 가치입니다.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고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왕이었어요. 내가 제일 잘 나갔어요.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멋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낮추시고 겸손한 사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기 위해서 나를 비우게 하기 위해서 쓴물로 조용히 인도해 가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누구며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체험하기 위해서 마라로 인도하십니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마라로 인도하지 않았으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을까요?  우리가 세례받고 구원받았으면서도  고통과 아픔이 없으면 기도할 줄 모릅니다. 아픔이 있는 성도들은 기도의 모습이 달라요. 눈물을 흘리고 간절해집니다.  우리를 기도하게 만든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직접 물을 주시지 아니하고  한 나무를 지시하셨어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뭔가를 지시할 거예요.  이 나무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보여요.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이 안 보여요.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훈련을 위해 마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한 나무는  성경 전체적으로 보면 십자가입니다.(벧전 2:24)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거예요.  우리가 고난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가 드디어 나의 십자가가  됩니다. 그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될 때 물은 단물로 변해질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고난 속에서 발견하십시오. 마라로 간 것은 고통, 고난이 아니고 영적으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했다고 돼 있어요.  하나님이 지시한 곳을 바라보는지를 시험하시겠다는 거예요.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지(들을청,  따를종)를 보는 것이  첫 번째 시험이에요.   두번째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 땅에서 의를 행하라는 거에요. 세번째는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내 모든 규례를 지키는지 본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을 순종 하는지를 보시는 것이  첫 번째 시험이자 최종의 시험이기도 해요.

    그렇게 순종하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 신기해요. 물이 써서 원망했는데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표현했어요.  하나님 나라의 질병은 바로 원망입니다.  원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하는 마음을 치유해 주시겠다는 말이 들어있는 거예요. 원망이 나올때에  치료받을 수 있는 비결이 하나님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여호와 라파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시험의 장소이자 치유하는 장소입니다.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그들이 치유가 되고 그들이 회복이 됐을 때 하나님의 보상은, 그들을 엘림에 이르게 합니다. 엘림에 이른 후 마라로 인도한 게 아니라 마라로 인도하시고 , 치유하신후  엘림으로 보내셨어요. 엘림에 먼저 갔으면 그들은 치유되지 않았을 거예요. 엘림에 이르니 거기 하나님께서  물샘 12와 종려 70주를 주셨어요. 광야에서 제일 또 필요한 게 물과 그늘이에요. 거기서 그들이 물 곁에 장막을 칩니다.

    오늘 본문 짧은 구절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2024년 우리가 삶의 꽃길은 아니더라도 나의 이러한 마라같이 쓴 인생 속에 하나님의 시험을 깨닫고 다 통과해서 엘림의 보상이 열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자리가 되는 2024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 (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교회행사]가을영은회

    할렐루야!  지난 10월27일부터 3일간  “건강한 신앙” 이라는 주제로  장종규 목자님(안양교회)을 모시고 가을 영은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도 어김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듣고 행하라➀  요나의 회개➁  나그네 같은 성도의 삶➂  귀한 향유를 부은 마리아➃  가룟유다의 배반➄  마지막 시대의 경고의 말씀➅  건강한 교회➆  세족례 & 성찬례➇  등 은혜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신앙을  바로 세우고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진유진&진리영 자매님이 세례 증서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 중 언니인 진유진 자매님이 성령을 안 받았었는데 이번 영은회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구도자 6명과 교회 출석이 잘 안 되었던 성도 7명이 참석하셨고, 타 교회 소속이시지만 잃은 양이셨던 자매님 한 분도 참석을 하셔서 귀한 영의 단비를 흠뻑 맞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많이 참석해 주셔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도 되었습니다.  청년들의 받은 바 은혜를 간증하는 간증회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영은회 설교 링크 바로가기) 

     

  • [성도소개]대만교회 방문해서 성령을 받다!

    ■이성자 모친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1940년도 출생하였고 고향은 서울입니다.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게 된 때는 위중했던 남편을 작년에 하나님이 잠시 완쾌시켜 주셔서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을 때입니다. 저도 이듬해인, 바로 올해 봄  2023년 5월 14일 동부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대만교회 방문 했을때인  2023년 11월 4일 남감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일주일간의 여행 중 남감 교회는 잊지못할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때가 안식일 오후였습니다. 예배 후 마지막 기도 시간에 목자님께서 안수해 주셨는데, 성령을 간구하며 흐느끼면서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기도후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으셨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셔서 정말로 기뻤습니다. 제가 세례받고 성령받은 일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동부교회 주관으로 딸들과 손녀 현경이와 함께 대만 방문한 것이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한나회와 다니엘회에서 전라도 서도 여행 갔을 때도  많은 분들이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대만이라는 나라에 가서 같은 형제자매라는 생각으로 환영해주시는 모습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는 현재,  매일 기도 30분 드리고, 성경 읽기 20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간증집을 읽으며 영성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소원은 온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같이 믿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짧게나마 제 소개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사진은 대만 남감교회에서 안식일 기도시간에 성령을 받은 후  목자님과 성도들이 함께 기뻐해 주시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입니다. 이로 인해 남감교회와 동부교회의 성도들은 뜨거운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안에서 모두 한 가족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친을 믿음의 길로 이끌어준 큰 따님과 아직은 믿음안에 들어오지 않은 막내따님과  손주 현경이도 함께 대만교회 방문하여,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올려드립니다.  영적으로 진정한 한가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이파자 모친 간증)

    저는 올해 79세인 이파자입니다. 제 고향은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에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고, 저는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커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안 일만 하며 자랐어요. 20세가 되었을 때 동네에 4명의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는 고모였어요.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할머니가 낳은 딸이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모에게 “고모,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무슨 교회를 가!” “교회에 가면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동갑내기 4명이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간 교회는 장로교회였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바다를~”라는 찬송이 듣기에 너무 좋아서 제가 “한 번 더 부를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가 그날 그 찬송을 다 외워버렸어요. 4명중 저만 찬송을 다 외웠습니다.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 바다를 하나님 보좌 앞에 있고 싶어라. 유리 바다 건너편에 믿는 성도들 이것 또한 유리같이 맑고 맑도다.”

    교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대문 밖까지 들렸어요. “이놈의 계집애들! 오기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지! 그래야 이것들이 교회를 안가지.” 하고 막대기를 문 앞에 놓고 말씀하셨어요. ‘몰래 갔는데, 어떻게 아셨지? 다리 부러뜨리면 아무데도 못가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 하고 가만가만 들어갔더니, 막대기만 있고 작은 아버지가 안보였어요. ‘옳다 되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잠업(누에를 치는 일)시험장을 다녔어요. 우리 교회 권정자 자매 계시지요? 그분의 언니인 권정숙 언니가 같이 잠업시험장에 다녔는데, 저를 참 예뻐했어요. 하루는 “파자야, 너 교회 한 번 가볼래?” “네, 언니! 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그런데 언니가 다니는 곳은 참예수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교회 평이 안 좋았어요. ‘참예수교회는…날라리 교회라고 그러던데, 팔짝팔짝 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갔더니 교회가 조용했어요. 그 언니를 따라서 기도를 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교회라는 그 두 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25세에 시집을 갔어요. 도시 축에 드는 마을을 떠나, 시골 골짜기 삼계로……. 시집을 가서 생활하던 중에 머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어요. 머리에 수건을 묶고, 그래도 안 되면 벽에 머리를 꽉 대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아프면 이젠 배가 아프고,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팠어요. 아픈 것이 그치질 않아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가정 살림과 농삿일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남편이 세심이라는 마을로 민방위를 받으러 다녔어요. 남편은 제가 아픈 것을 안타깝게 보고 마음이 아팠던가 봐요. 제 남편은 교회라는 두 글자의 뜻도 모르고 지내다가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 “교회를 한 번 나가보면 머리가 안 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러 자식 다섯을 낳은 후에,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더니, 어느 교회를 가려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참예수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는 장로교회를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남동생이 찾아왔어요. 아침 시간에 잘 안 오는데 일찍 왔더라고요. 동생은 당시에 참예수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현재 전주교회 이정천 형제가 제 남동생이에요.

    “누나 어디 가려고?” “자꾸 아프니까 자형이 교회 나가 보라고 해서 지금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이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쩐지 누나 집엘 오고 싶더라니……. 참예수교회를 나가야지요.” 했어요. 남동생의 권유로 그날 장로교회를 가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토요일에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 남동생이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도 참 고마워요. 살다보면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나에게 교회 나가 보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참예수교회를 갔는데, 기도소리를 듣고 옆집 아줌마는 계속 키득키득 웃었고, 저도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웃음이 너무 나오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설교 말씀을 듣고 앉아 있었어요. 삼계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예배가 없었어요. 그 다음 주에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저 혼자만 갔어요. 동생도 볼 겸해서…… ‘남편이 교회를 그렇게나 권했는데, 내가 머리 아프다 죽으면 남편이 뭐가 되겠나.’ 하고 결심을 하고 다녔어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농사짓고 누에 치고 담배 농사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교회를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또 갔는데, 이번엔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기도할 때 안수 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을 받았답니다. 진동이 오고 몸이 떨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여기서 저기까지 갔어요. 그 때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눈물이 기뻐서 나오는 건지, 슬퍼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 살아나온 과정을 생각해볼 때 모든 뜻을 하나님 앞에 다 풀고 고백을 해야겠구나! 삼계교회가 떠나갈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어요. 성령 받는 광경을 남편이 다 봤어요. 울고 싶은 대로 다 울었어요. 누군가 자제를 안 시켰으면 하루 종일 가겠더라고요. 어찌나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던지……

    종을 친 지는 오래 되었고, 기도하다 생각하니 너무 이렇게 해서는 문란하겠구나 해서 겨우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도 그만 하라고 해.” 그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일단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전부 털어놓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웬만한 사람은 부끄러울 텐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냥 담대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개운하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독히도 저를 괴롭혔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성령을 받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눈이 떠지질 않고, 벽에 꽉 기대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 오늘날까지도 그 때 느낀 그 두통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신경 좀 쓰고 감기가 들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 때의 두통과는 완전 달라요. 믿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뜻을 알고, 이제 교회 안다니고는 제가 도저히 두통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옛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가방만 흔들거리고 교회만 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신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면 내 삶이 평탄한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우리 아이들한테는 엄마만 살짝 다닐 테니 너희는 나오지 마라. 제가 아직 믿음이 없었을 때다 보니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 다섯 명이 전부 교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애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교회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 개도 교회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예배 끝나면 일어나서 같이 교회차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아들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다보니 교회를 안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큰 아들도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저는 현재 자식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시험거리로는 농사철에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보리 농사하던 시절에 교회를 가려고 애들 다 학교 보내고 아침 8시쯤, 안식일이었는데 농사 기계가 들어온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교회 가야 하는데……. 그냥 가버리면 남편과 싸우게 생겼더라고요. 일단 내 임무는 힘껏 마치고 난 후 교회를 가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남편이 믿지 않을 때였거든요.

    농사할 때 땅에 거름을 뿌리지요? 우리집 거름은 유달리 무거워요. 비를 자꾸 맞아서…… 안식일 이른 아침에 그 거름을 손으로 들어올렸는데, 그 무거운 거름이 하나도 무겁질 않는 거에요. 내 정신이 아니고 누군가 꼭 지켜주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거름을 같이 들어주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무거운 거름이 그렇게 뿌려도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교회차가 마을을 다니면서 신도들을 실러 오는데, 교회 다니는 모친이 논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이구 오늘 안식일인데 일해요?” 하시기에  “아니요. 빨리 해놓고 가려고 해요.” 교회차가 멀리 세심을 돌아서 그 모친을 싣고 가는게 보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빨리 해놓고 교회 가야겠는데…….’

    그런데 교회를 꼭 가려고 마음 먹으면 절대 안 될 것이 없었어요. 그 일을 다 해놓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갔습니다. 세수를 대충 하고 신발 신고 2킬로미터 삼계까지 정신없이 내 정신이 없이 뛰어 갔더니 예배가 시작을 안했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아!  내가 꼭 교회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가야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꼭 교회를 가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하면 그 힘이 나도 모르게 다시 치솟더라고요. 하나님께선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힘을 주시는구나. 열심히 말씀을 듣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다음 안식일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벼를 훑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밤에 훑으면 안 되요? 탈곡기가 있잖아요. 호롱기 아시지요? 호롱기로 벼를 훑은데, 밤에 그걸 다 훑었어요. 안식일에 할 일을 전날 저녁에 다 끝냈어요. 끝내고 나니 이웃사람들이 무엇이 바빠서 밤에 벼를 훑냐고 하더라구요. 바빠서가 아니라 교회 가려고 밤에 일을 했다고 말하고 넘어갔어요. 일을 꼭 해놓고 가야겠다 맘을 먹으면 밤에라도 그 일을 마치게 해주시더라구요. 안식일에 모를 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꼭 시험거리가 닥쳐와요. 닥치면 그것을 이겨 나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모를 심는데, 그때는 교회에서 논이 가까웠어요. 남편과 같이 모를 심다가 “어머 어떡해. 나 교회 가야 하는데.” 남편은 “갔다 와. 나 혼자 심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면 쉬엄쉬엄해요. 나 바로 빨리 갔다 와서 심을게요.” 갔다 와서 바로 논으로 들어가서 심고 그랬어요.

    남편도 교회를 나가라고는 했어도 농사일로 바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교회를 괜히 나가라고 했다며 말도 했지만, 그때는 제가 말했어요. “머리가 안 아파서 건강해서 일을 잘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교회 가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니 앞으로 당신도 교회에 다녀야 해요.” 그러면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젠가 나도 간다.” 저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1997년 10월이었어요. 그 뒤로 13년이 지난 2010년에 성령을 받았어요. 요즘은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잘 못 나오는데,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그런가 봐요. 열심히 하나님께 구하면 낫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없을 텐데, 기도 열심히 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세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도 그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이왕 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갈 때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다 보면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열심히 믿고 삽시다. 저도 앞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믿고 살겠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나들이 가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모친은 남편이 교회나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시답니다. 

  • [복음메시지]그리스도의 심판대 (고후5:1-10)

    [복음메시지]그리스도의 심판대 (고후5:1-10)

    ♣ 2023. 11. 25.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 5:1)

    1절 말씀을 보면 두 개의 집이 나온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장막집은 임시 거하는 처소이다.(고후4:18) 내가 살았던 집도 나의 몸도 결국 무너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다.(요14:2) 하나님의 백성이 내집 마련의 꿈을 어떻게 이룰수 있는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다.  사람의 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짓는 것은 실수가 많고, 엉망으로 짓기도 한다. 그러나 영원하고 완전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 이 땅에 집이 없어도 소망을 가질수 있고  살아가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인생의 중요한 결론이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고후 5:2)

    우리는 땅에 있으면서 탄식한다.  부정적인 탄식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탄식이다. 또한  삶의 고단함과 정욕과 욕심으로 인해 나약한 자기의 모습을 보며 탄식한다.  하늘의 처소는  이 땅의 장막집이 무너져야 들어간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하늘의 영원한 처소를 이 땅에 살아갈때 덧입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덧입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은 두 구조가 있다. 하늘나라에 가서 거하는 처소도 있지만  이 땅에 살아갈 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영적으로 덧입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3)

    벗은 자들로 발견되는 시점은 죽었을 때이다. 하나님 믿지 않고 죽으면 마치 벗은자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영원한 처소를 사모하고 믿었던 자들은 영원한 처소가  덧입혀져 있다.

    우리는 이 장막에 살면서 무거운 인생의 짐에 눌려 지게를 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헬라적인 사고는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이원론적인 사고이다. 극단적으로는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기 때문에 육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육신을 갖고 있을때 무슨 일을 했는지에 따라 그것을 근거로 구원이 결정된다. 육과 영이 분리되어 있는것이 아니다.  육신의 행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것이다.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자 된자들은 영원한 처소를 덧입는 자가 된다. 세례받으면 주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었고 물에서 올라오는 순간 새생명 가운데 살게 된다.(롬6:4) 이 일을 하나님이 이루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5절) 성령을 받은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롬8:18~23) 성령은 영원한 삶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 수 있다.(6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본질임을 깨달을 때 담대해진다. 세례받고 올라올때 이미 내집 마련이 되었다.  우리는 주님과 살기 위해 빨리 떠나기를 바라지만(8절) 이 땅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9절)  고린도 성도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에 바빴다.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9~10)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이다.(10절) 벗어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의 수많은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심판대가 있음을 생각지 못해서이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서야 할 곳이 심판대이다. 그때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날마다 주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고 담대히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주안에서 날마다 행복한 신앙 생활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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