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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 소개] 바른 신앙 전승을 소망하는 갈렙 신도회

    [기관 소개] 바른 신앙 전승을 소망하는 갈렙 신도회

    할렐루야~

    인생의 참된 인도자 되시는 주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의 은혜를 입고 젊은 날을 뒤로하고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청주교회 장년 남신도 갈렙신도회를 소개합니다.

    구성

    우리 신도회는 1970년 이전 세대이며, 평균연령 약 70세로 50대 4명, 60대 2명, 70대 4명, 80대 2명, 90대 1명으로 총 13명 출석 신도와 70대 1명의 관리신도(요양병원-매월 심방관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일과

    평균 안식일 출석 11명(격주 출석 3명)으로 오전 안식일 예배 후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하고 신도회실로 이동, 차 한잔과 더불어 한주의 삶을 나누고 격주로 1시부터 30분간 자체 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후 1시 30분부터 안식일 오후 예배(신도회 예배)를 드립니다.

    교제

    우리 갈렙신도회는 주안에서 나누는 형제의 교제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젊은 날은 세상의 교제권에 있었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나누는 신앙교제가 가장 소중한 교제임을 깨닫고 열심히 다양한 형태의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연 2회 형제교회와 인근을 여행하는 신앙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여행을 통해 성도의 하나됨과 신앙 안에서 교제의 소중함을 체험하며 형제교회의 넘치는 영접으로 주님 안에서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뜻깊은 교제입니다.

    분기별로 하는 식사교제 또한 매우 중요한 교제이지요.

    가끔씩 등산 교제를 나누기도 합니다.

    전승

    앞서 언급한 대로 격주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는데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성경통독에 힘쓰고 있고, 몇몇 분은 통독을 완료한 후 성경 필사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의 모든 일에 가능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배 참석, 기도, 전도 등에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우리 갈렙신도회의 행보는 믿음의 후배들에게 본이 되어 전승되어야 함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격려하며 노년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글작성 : 박성호 집사

     

     

  •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교회에서 간증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선뜻 순종하지 못하고 며칠 간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도회에서 저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분들은 알 수 없다’ 였습니다. 잃은 양이었던 제가 어떻게 교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크고 작은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처음 하나님과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5살 무렵이었습니다. 이미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던 외할머니가 참예수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며 다른 교회에 다니시던 엄마에게 참예수교회에 나오기를 여러차례 권면하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는 분이셨구요. 당시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아빠는 여러 곳을 전근 다니시다가 청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그 때 처음으로 집을 짓게 되셨습니다. 당시 대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인데 저희 집은 교회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걸어서 교회에 갈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엄마가 그 전에 다니셨던 (교회를 A교회라 한다면) A교회에 건축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갑자기 이사오게 되는 바람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모르셨는데 건축 헌금을 받아내려고  A교회 분들이 (이사 간 집 주소를 모르니) 아빠의 직장으로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청 당황하셨고 화도 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이지 나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지킨다. 참예수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하셨고 참예수교회를 받아들이시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부부간의 엄청난 불화가 될 수 있는 사건을 통해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아빠를 제외한 엄마, 오빠, 언니(지금은 잃은 양), 저 이렇게 네 식구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잃은 양인 언니가 저처럼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식구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부끄럼이 있었지만 찬양도 하고 율동하는게 좋아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교회보다는 학교생활이 재밌어졌고 특히 컴퓨터 담당 선생님이던 담임선생님이 토요일 오후에 컴퓨터실을 온전히 개방해 주셨기 때문에 점점 방과 후 시간이 재밌어졌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멀리하려는 마음이 더 생겼고 제 안에는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도 나름 잘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도 형제 자매님들이 찾아오셔서 기도도 해 주셨지만 ‘조금 더 이따가 지금 아니야.’ 하는 등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더 미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약 10년간 살게 되었고, 강남교회에 있는 오빠가 교회에 오기를 권면해서 3~4번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요. 지금처럼 전도 초청 예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강남교회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반 이상 되는 거리였고 오빠가 매번 데리러 오기에도 꽤 먼 거리였습니다. 더 가까운 거리의 참예수교회도 있었지만 혼자서 가 볼 생각은 못 했던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멀어져 있던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문을 나서기만 해도 크고 작은 교회가 아주 많이 있었는데요.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면 가까이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그냥 가까운 교회에 가도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설교를 하시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들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 있는 저를 염려해서 엄마가 가끔 저희 집에 오셨는데요. 그 때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전했고 외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참예수교회에 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우리 교회의 교리, 10대 신앙 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목자님께서 구원이 교리에 담겨있기 때문에 교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설교를 하셨는데요. 그 말씀을 들으며 참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심을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그렇게 또 한 걸음 교회로부터 멀어졌지만 내가 교회에 간다면 참예수교회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에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도 청주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청주에서 살기로 했고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두 집 중 남편이 저에게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었고 두 집을 차례로 가 보았는데요. 두 집 중에서 사이즈가 더 작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제가 고른 집은 다시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습니다. 그 때는 이전 교회에서 지금 교회로 이전하려고 건축 중일 때였지만 청주로 와서 엄마의 권면으로 안식일 오전 예배 정도만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건축 중인 교회 소식에 깜깜이었습니다. 

    그 날도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려는데 아는 분을 보았습느다. 저희가 신혼집을 얻을 때 도와주신 공인중개사 분이셨습니다. 복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교차로에서 집을 구했고 그 때 중개사님은 친구의 집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친밀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분은 전도되어서 교회생활을 하고 계신 문자매님이셨습니다. 문자매님을 만나고 돌아서 나오는데 또 마주친 분은 저희 집 1층에서 떡집을 하시는 떡집 사장님이셨습니다. 이미 전부터 우리 교회에 떡을 납품하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교회에서 집으로 가시며 주셨던 떡이 1층집 떡이었습니다. 그 떡을 보면서 ‘하나님께 바로 돌아올 수 있는데 나도 이 떡처럼 돌아 돌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의 위치며 나와 관련이 있는 두 분을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구나 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니님께 무조건 항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온전히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토요일은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고 가족 간에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시댁 어른들은 감사하게도 가족 모임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꿔주셔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임신하고 큰 아이를 낳고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도 낳았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기도할 때면 성령을 간구했습니다. 2011년 5월에 봄 영은회가 있었고 이번 영은회는 새벽 예배까지 꼭 참석해보자 하는 마음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 기도 때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목자님이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 같다며 더 기도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부산교회에서 소감사 집사님이 영은회 참석하시려고 와 계셨는데 집사님께서도 성령기도 소리를 들었다며 저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에 기도하는데 마음이 뜨거워졌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가 돌아온 것을 정말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교회로 돌아온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고, 복 중에는 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두 배로 축복 받은 것 같았습니다. 큰 아이가 6살 무렵 엄마는 언제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궁금해 했었는데 “하나님께 저도 성령받고 싶어요~하고 기도 드렸더니 성령을 선물로 주셨어. 그리고 의윤이가 뱃속에 있을 때 성령을 받아서 더 기뻤어.”했더니 “그럼 엄마는 성령을 상품권으로 받았어?” 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장 38절)

     

    어릴 때 자녀를 낳는다면 2명 큰 아이는 딸, 작은 아이는 아들을 낳고 싶어라고 얘기했는데 철 없이 한 얘기도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남편도 같이 신앙 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아이들이 어릴 때 영은회에 초청해서 교회에 오기도 했지만 아직 제 태신자로 남아있습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둘째만 집에서 보고 있을 때 자매들은 그 이전부터 플룻 배우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저한테도 같이 해보자고 했고 계이름은 읽을 수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권면 끝에 배우기로 했고 작은 아이를 엄마가 봐주기로 하셔서 편한 마음으로 점심까지 먹고 올 수 있었습니다. 연주를 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노래나 찬양을 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에 곡을 배우면서 찬양도 많이 들었고, 찬양을 들으면서 노랫말에 집중하니 찬양이 주는 은혜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플룻을 배우기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다과도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매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고 자녀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플룻을 배우는 시간보다 교제하고 점심 먹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의 내 모습과 일상 생활에서의 내 모습 간에 간극이 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는데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일을 해봐도 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하게 되었고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눈치보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에게 남편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하자고 하는 것은 아직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신앙 양심이 찔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번 돈이니 떳떳하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1년 정도가 지났고 사정이 생겨서 일하던 곳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년이 되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고 급여가 나온 뒤 얼마간 있다가 퇴직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연스레 급여에서 십일조를 했지만 뒤이어 나온 퇴직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있다가 십일조를 해야지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급여를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십일조 하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부끄럽지만 한 달 이상을 미루다가 퇴직금에 대한 십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토요일마다 교회 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가기 전에 집에 들러서 가져가라고 메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그 날도 교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집에 들르라고 하셨고 어머님이 애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큰 아이에겐 더 많이 주시고 작은 아이에겐 좀 더 적은 금액을 주셨는데 그 금액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 낸 십일조는 몇 천원 단위로 끝나는 금액이었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시곤 정리하실 때 그 몇 천원까지 같이 흘러나와서 “이것도 가질랴?” 하시면서 작은 아이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참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부끄러운 가운데 하나님은 제가 깨달아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로부터 간간이 제 오빠의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오빠도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엄마를 위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각하고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신장이었는데요. 2017년 말 경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애진 자매가 병문안 때 오빠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곧 신장투석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투석을 하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투석은 되도록 늦게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염려, 생활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을 언니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가족 중에 이식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뒷바라지가 필요한 중학생 자녀를 둔 언니보다는 아이들이 어린 제가 해 주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조카는 이미 국악으로 진로를 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엄마에게 내가 이식을 해주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안타까워하셨지만 마음먹은 대로 진행했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기도를 하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도 시댁 어른들에게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결혼 초에는 시댁도 낯설고 아이들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씩 어떨 때는 1주에 한 번씩 가는 것이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이번 허락으로 그 동안의 수고가 보상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시댁에 갑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고 만일 누구라도 안 된다 했으면 마음이 상했을텐데 승낙을 받고 하나님께는 물론 허락해주신 시댁어른들께도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오르며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본적인 건강 검진, 신장에 대한 정밀한 체크, 지능에 대한 검사도 있었습니다. 걱정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로해 주셨는데요.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병원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리(사 41장 10절)

     

    다행히 수술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게 되었고 수술 후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저희 아이들은 언니가 맡아주었고 제 간호는 엄마가 맡아주셨습니다. 마침 수술 날짜가 둘째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이모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랜드도 가고 재밌는 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고, 4일 째 되던 날 자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청주에서 병문안을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빠는 수술 후 무균실로 들어갔기에 병원에 오셔도 만나실 수가 없었고 저는 아파서 수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회복중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시기로 한 날에 하필 비가 장마처럼 내렸고 오시기도 힘드셨을텐데 송집사님 허집사님을 포함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애진자매를 위로하러 마침 강남교회에서도 자매님들이 오셨습니다. 이 자매님들은 저와 잘 알지 못했지만 목자님을 비롯해 청주교회의 자매들과는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천국에 가면 알지 못하는 우리 성도들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교회를 일찍 떠나서 학생이나 청년때 영은회를 참석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다른 지역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만난 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준비할 때부터 중환자실에 있을 때, 퇴원할 때까지 오빠를 위해 기도 해주시고 혈소판 헌혈까지 마다하지 않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함께 기도해주신 성도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록 오빠의 수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 때 깨달은 것이 있는데요. 이 순간에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 결과가 좋게 해주세요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뜻대로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중에도 기도해야 하고 또 같이 하는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지 않는 저희 남편과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도 있는데요. 제가 목요일에 전도심방팀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회의에 참석하고 엄마도 뵙는 날로 정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니, 저만 시간에 늦지 않도록 준비하면 되는 날인데 갑자기 남편이 제 차 키를 찾으면서 본인 차는 회사에 두고 왔으니 제 차를 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남편의 직장이 천안이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전날 미리 얘기를 해주던지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선택도 할 수 없게 한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엄마께 전화를 드려서 상황을 설명드리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용담동에 있는 구옥을 가끔 살피러 가시곤 했는데, “네가 오지 않으면 난 용담동 가서 있다 올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4시경, 오랫만에 아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괜찮으시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안부를 묻는 것인 줄 알고 건강히 잘 계시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엄마가 계신 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 언니는 엄마가 사시는 건물 맨 뒷 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엄마께 전화를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엄마는 아직 용담동에 계셨습니다. 건물의 구조가 1층은 필로티이고 주차장으로 사용했는데 거기에 주차 해 놓았던 차에서 화재가 시작되었고 차량 2대가 전소될 만큼 많이 위험했습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화재는 왼 편에서 났고 엄마의 집은 오른편이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만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보니 집안에도 검은 그을음이 있었고 공기가 탁해서 숨쉬기가 불편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장 집에 들어 가셔서 생활하기에 불편하셨는데 상황이 더 안 좋았던 분들은 주민센터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엄마는 용담동 집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한동안 생활하셨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으셨습니다. 그날 위험이 있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눌 수 있는 간증이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처음엔 좋게 대화를 시작했다가 결국 기분이 안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대화하게 되었는데요. 남편은 애들을 위해 트리도 해주고 싶어하고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싶어했습니다. 성경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라고 되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예수님은 그 날 태어나지도 않으셨다고 했더니 성경에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해서 싸움하던 중에 성경을 펴고 둘이서 읽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저는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남편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새 밥을 지어 놓고 나오는데 그 날은 밥이 너무 잘 됐다고 얘기하니까 할렐루야! 라면서 남편이 농담을 했습니다. 남편은 할렐루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녁 식사 당번 때 저희 조 단골 메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인데 너무 맛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싸다 주곤 했는데 그 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남편에게 김치찌개가 생겼고 “어제 내가 당번이었는데 우리도 김치찌개를 하잖아. 어제는 싸오지 못했는데 너무 잘 됐다.”하니 “그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냐?”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편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조금씩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말을 듣는 제 마음도 달라지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를 세워주고 계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찬양 중에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이라는 찬양을 할 때마다 우리집은 아니야에서 우리집은 아직 아니야로 아직 아니야에서 우리집도 그렇게 이끌어 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저희 가족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눈높이에 맞는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제 옆에 동역자를 주셔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준비하는 이가 더 은혜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글작성 : 김정민 자매

  • [복음 메세지] 심령이 가능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5:1-12)

    [복음 메세지] 심령이 가능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5:1-12)

    [말씀 제목]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5:1-1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11월 2일

    19세기 말 지식인들은 앞으로 다가올 20세기를 일컬어 인류의 황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장밋빛 미래 예측의 근거는 인간의 과학 기술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20세기에 이르렀을 때 그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통해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산업 혁명을 통해서 물질적 풍요는 이루었지만 빈부의 격차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고 또 오늘날에 와서 환경오염, 기후 변화 등의 문제가 인간의 목을 조르고 있다. 인류는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이 아니라 개악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 물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영혼의 문제를 물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와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있고자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지만 오늘날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물질과 육체의 욕망에 집중하며 살면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과거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잘못된 전제에 빠져 자기 인생을 허비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그런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을 발견한다. 바로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했던 롯이다. 롯은 눈에 끌리는 대로 풍요로워 보이는 소돔 땅을 선택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땅은 유황불에 멸망하고 그 멸망과 함께 롯도 모든 것을 잃는다. 욕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모두 잃는 모순된 결과를 맞이한다. 이것이 똑똑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인간의 실상이다.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은 또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멀리 있는 유익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유익에 집착한다. 자신에게 해가되는 것도 모르고 목숨을 바쳐 쟁취하려고 달려든다. 가장 소중한 것을 옆에 두고 가장 먼 곳에서 그것을 헤매기도 한다. 또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았는데 변덕이 생겨서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기도 한다.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은 면이 많고 헤매는 존재임을 성경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사 59: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어떻게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의 백성으로서 평강을 누리고, 가치를 누리고, 하나님께 드릴 아름다운 보석으로 내 인생을 장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먼저 어떤 존재가 되어야할까? 오늘은 산상보훈의 팔복 설교의 첫 구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이 말씀의 뜻을 되새기고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오늘 구절에 대해서 문법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문장 순서가 원문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원문을 직역하면 “복이 있으리라,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순서로 기록되었다. 복이 있다는 기원의 말이 문장의 맨 앞에 등장하고 복이 주어진 이유를 맨 나중에 기록하고 있다. 주목되는 단어가 있는데 첫째는 심령이란 명사이고 둘째는 가난하다라는 동사이다. 심령이란 명사는 ‘프뉴마’(pneu’ma) 즉 ‘영’(靈)이란 뜻이다. 가난하다란 동사는 ‘프토코스’(ptwcov”)로 ‘가난하다, 불쌍하다, 연약하다, 빈궁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문자대로 옮기면 ‘심령이 가난하다’라는 것은 곧 영이 빈궁하다.’ ‘영이 결핍되어 있다.’ ‘영이 불쌍하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영이란 단어를 안다. 그리고 가난하다라는 단어도 안다. 그런데 ‘영이 가난하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개념인가? 또 영이 가난한 자는 왜 천국이 보장됨을 선언하고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영이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첫째,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이다.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사실 심령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예수님이 처음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영이 가난하다는 뜻은 곧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망의 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며, 그분을 경외하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영이 가난한 상태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물질은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니 물질적 가난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심령의 가난하다는 개념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고자 하고, 그분의 손길을 소망하기에 가지게 되는 영혼의 결핍 상태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는 것이다.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온 자가 있었다. 바로 니고데모이다. 그는 육신적으로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요, 바리새인이요 예수님 장례에 몰약을 백근 쯤 봉헌한 인물이다. 소위 명예와 신분과 재력을 모두 갖춘 자이다. 그런데 그가 뭐가 아쉬워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는가?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내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거듭 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구원의 핵심을 말씀하셨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다 가졌는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자, 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또 마태가 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로마 정부에 일정액만 잘 상납하면 나머지는 자신이 몫이 되었다. 그러니 욕심대로 부를 축적하고 물질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세관에서 일하는 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마태는 놀랍게도 이 한 마디에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쫓는다. 가족과 의논하지도 않고 시간을 지체하지도 않았다. 그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분명한 사실은 그는 그 풍요의 자리에 미련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응답이 즉각적인 것을 보면 그는 세리의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태 같은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그 마음을 세상 것으로 채우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에 대한 욕망보다 세상 물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치 쇼핑 중독에 걸린 사람이 물건을 사면 살수록 더 사고 싶고 사서 집에다 쌓아놓으면서 다시 사는 것처럼 물질에 집중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이웃과 나누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가? 아니면 세상의 것을 끊임없이 욕망하면서 헛된 노력에 매달리고 있는가? 부디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혀 물을 보관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갈급하고 하나님 주신 것으로 채우고 만족할 수 있는 영혼이 되시길 바란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둘째,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않는 마음이다.

    (왕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심령이 가난한 자의 두 번째 특징은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한결같다. 자기 물질, 신분, 권세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얻으면 자랑한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런 것으로 자랑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하나님 앞에 겸손하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둘도 없는 화려한 성전을 지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성전을 완성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다. 하나님은 세상을 초월해서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지은 건물은 그 분을 모실만한 거처가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낙성식 기도에서 그는 이 생각을 고백한다. 초기의 솔로몬은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였다.

    솔로몬은 육적 성전을 지었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영적인 성전을 지은 인물이 있다. 바울이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율법사였다. 오늘날 표현을 빌리면 개인적 스펙이 화려한 사람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것들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고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머리 속의 지식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에 핍박과 위험을 감내하며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그렇게 헌신의 삶을 살고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렀을 때 그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오히려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심령이 가난한 자의 특징은 자기를 낮춘다. 우리는 때로 세상 것을 포기했다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 세상 것을 추구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마치 베드로와 제자들이 배와 그물은 버리고 예수를 쫓았는데 예수님이 유대인의 임금이 되면 좌편과 우편에 앉아서 벼슬 좀 하사 받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의 것을 세상 것 자랑하듯 자랑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자기의 하찮음을 돌아볼 줄 알고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잘 알기 때문이다. 부디 하나님이 너무 크심을 알고 자기의 작음을 고백하는 자가 되자.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셋째, 오로지 하나님만을 소망하는 마음이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물질이든, 환경이든, 사람이든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그런데 시편의 기자는 물질도, 환경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찾기에 갈급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갈급해 한다’고 기록하지 않고 ‘주님을 찾기에 갈급함’을 노래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가 장보고 돌아오기 전까지 집에서 잘 놀고 있거라! 돌아와서 맛있는 과자를 사줄테니 잘 놀고 있거라.” 그런데 아이는 싫다고 울면서 떼를 쓴다. 과자도 싫고 사탕도 싫고 장난감도 싫으니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단다. 마치 어머니에게 함께 있기를 애원하는 이 어린 아기처럼 주님을 찾기에 갈급한 마음은 그런 마음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과자와 사탕과 장남감을 좋아하지만 과자도 사탕도 장난감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2년 동안 청계천 판자촌에서 산 경험이 있다. 그 때의 추억은 한마디로 가난이다. 판자촌은 합판을 덧대서 망치질한 방에 벽면은 도배지 대신 신문지로 발랐고 그렇게 만들어진 방과 방들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요즘은 한 집에 화장실이 둘도 있지만 그 때는 화장실이 한 집에 하나도 없었다. 화장실은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쓰는 공중 화장실이었다. 마을 앞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어머님은 직장에 다니시면서 매일 동생과 저에게 10원짜리 동전을 쥐어 주셨다. 형제는 행여나 주머니에 넣으면 빠져서 잃어버릴까봐 그냥 손에 꼭 쥐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그 돈으로 동네 만화방에 갔다. 왜냐하면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재미있는 만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만화가 끝날 때 쯤 퇴근하신 어머님은 저희 형제를 데리러 만화방으로 오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주시는 붕어빵을 맛있게 먹으며 판자촌 집으로 귀가했다. 이상한 것은 그 가난했던 시절이 지금은 행복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하는 어머님과 함께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합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성도님들 오늘 나는 어떤 영혼의 사람인가? 나의 영혼은 세상의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오로지 그분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있다. 세상의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을 갈망하며 겸허하게 그분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자. 이것이 가난한 심령의 사람이다. 부디 이런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교제하시고 동행하시고 하늘의 속한 신령한 것으로 배부르고 만족해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 [복음메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 (눅24:13~35)

    [복음메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 (눅24:13~35)

    동행하시는 예수님

    제목 : 동행하시는 예수님

    성경 : 눅24:13~35

     

     믿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은 믿음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와 함께 걸어가셨고,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24:16)

    성경에선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앞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눈이 가리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13:13)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예수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이 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한 것일까요?

     

    1. 미련하여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라사대 미렪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5)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도 나와 있고,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부활하신 이후엔,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그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 보였던 것입니다.

     

    2. 더디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1:19)

    하나님의 말씀은 속히 듣고, 속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디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뵙기 위해선,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올바른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것에서 시작합니다.

     

    2) 예수님을 강권하여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을 강권하여 모셔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할 때엔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와 함께 거하시길 강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마치 많은 무리들 속에서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소리 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3) 예수님께서 축사의 떡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는 것은, 우리의 능력만으론 안 됩니다.

    예수님의 축복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겐 실로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성찬을 할 때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라”

    (눅24:31)

     

    예수님인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예수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했던 제자들은 그 즉시 다른 제자들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도착했을 땐,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님은 직접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는 참예수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전하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 [성도간증] 안산교회 김민준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2023년 3월 14일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날씨가 아직 풀리지 않았던 때라 감기에 걸린 인원이 엄청 많았었고 코로나의 영향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점이라 마스크를 하루종일 착용하고 씻지도 못하는등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냈었습니다. 감기와 훈련들로 훈련소 중반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마지막 각개전투와 행군을 진행하는 주에는 감기기운이 심해져서 제대로 훈련을 못 받을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각개전투는 실시하지 않았고 행군은 약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훈련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자대에 가서는 취사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대단위로 생활하여서 많은 양을 하지 않았고 훈련은 훈련대로 다 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한 군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취사를 하는 1년 2개월 동안 큰 부상 없이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만난 선후임들도 불량하거나 삐뚫어진 사람 없이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군대에 입대하면서 가장 크게 걱정했던 부분이 선후임과의 관계였는데 하나님께서 제 걱정을 하시고 그런 걱정 할 필요 없게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군생활 기간동안 보통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할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다가 근무를 가야할 때 잠깐 안온다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포상휴가를 받는 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짧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기간동안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전역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군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고 앞으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 [복음메세지] 살인치 말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1-26)

    [복음메세지] 살인치 말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1-26)

    경북 예천에 “말 무덤(言塚)”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생긴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 500년 전 그 마을 문중 간에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은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낸 해결책이 미움, 원망, 비방의 말들을 사발에 담아 묻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후로 평화로워졌다고 합니다. 무덤 때문이 아니라 이후로 마을 사람들이 말조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미움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교훈입니다. 오늘 가르침을 통해 미움과 미움에서 나오는 말을 다스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미움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군가 미워하면 마음에서 그 사람을 밀쳐 냅니다. 반대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끌어옵니다. 그래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 형제를 마음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건 그럴 수도 있는 문제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원인이고 그 결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지금 형제를 사랑하고 상태는 그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즉, 생명 안에 있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죠.

    왜 세례 받은 사람은 형제 사랑할까요? 16절에서 보듯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사랑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목숨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죽으심을 알기 때문에 그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도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형제를 미워한다고 그 형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밀쳐내면 영적으로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를 일시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속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사망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늘 말씀으로 경고하십니다.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세 사람이 나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 뒤로 갈수록 이들이 받는 벌이 갈수록 중해집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표현이야 어떻든 미워하는 마음을 그대로 두면 그에 대한 벌도 커집니다. 미움은 내가 알면서도 잘 멈춰지지 않습니다. 미움이라는 감정에 붙잡힌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책임에 붙잡힙니다.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미워하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무서운 또 하나의 미움이 교회를 분열시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게 와서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을 이간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귀에 필터가 잘 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말들은 교회 공동체에 틈이 생기게 합니다.

     

    (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일로 인해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했습니다. ”비방“했다는 것은 건설적이고 건전한 책망이 아니라 미움이 담긴 말입니다. 이 말을 누구에게 했을까요? 2절 보면, 모세가 아닙니다. 전체 백성 또는 지도자들 앞에서 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독점적 권위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마침 트집을 잡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미움을 대중 앞에 드러냈습니다. 모세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7일간 진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미움은 문둥병과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 둘 수 없어 격리해야 합니다. 공동체에 틈이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움이 교회 안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나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서 기도 중에 누군가 나를 원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이 오해하거나 맘이 상해서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예배보다 우리의 화목이 더 중요합니다. 나로 인해 그 형제가 죄를 지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는 많은 사람이 서로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갈수록 미워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미움이란 감정에 붙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만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숙해져야 합니다. 먼저 생각난 사람이 화해와 손을 내미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복음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 22:47-53)

    [복음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 22:47-53)

    20241026() 오전예배

    설교제목 : 이것까지 참으라

    본문말씀 : 22:47-53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 그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핍박자였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에게까지 호의를 베풀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마땅한 형벌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교훈을 주시고 계신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4)

    (44-45) 먼저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기도하셨다. 십자가 고난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피할 수 있길,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길 기도하셨다. (42)

    (47-48) 기도를 하자마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다.

    그는 예수님이 처음 부르신 12제자로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자였다. 그러나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려고 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심해야 한다.

    (고전 10:2) 마귀에게 틈을 주는 순간 넘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47) 체포하러 온 사람들을 본 제자들은 검으로 무장하였다.

    검으로 치다 = 파라소(헬)

    매우 살벌한 단어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호해야겠다는 충성심에 칼을 무장한 것이다. 그 중에 성격이 가장 급한 자는 베드로였다. (요 18;10)

    말고는 왜 오른편 귀가 떨어졌을까? 말고는 검을 피하다가 귀가 떨어진 것이다. 만약 반대로 피했으면 목이 잘렸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요 18:11) 예수님은 검을 가진 자는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서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하나만 알아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하시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어떻게 대처할지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늘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5:44)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었다.

    베드로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훼방꾼이 될 뻔 했다.

    사실 칼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한다.

    베드로의 충동적인 행동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눅 22:51)

    (51) 이것까지 참으라

    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전 13장)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예수님께서 참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전도하는 과정에서 조롱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아야 한다.

    만약 참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참는 것에 영혼구원이 달려있다.

    예수님께서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신 것은 사랑으로 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업이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허망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참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참으셨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참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도 조심히 해야 한다. 참지 못하고 한 말이 누군가의 목을 베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참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튜브 설교링크

  • [성도간증] 부산교회 이재근형제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안녕하세요. 저는 참예수교회 부산교회에 다니고 있는 37살 이재근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불교 집안이시고 어릴 때부터 절도 자주 따라 다녔고 아침마다 모닝 콜로 관세음보살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교회를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고, 항상 저에게 가면 안된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이든 교회를 다닐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처음교회를 오게된 계기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닌 것은 고등학교때였습니다.  고등학교때 동아리 활동으로 악대부를 활동했었고 플룻을 불게되었습니다.
    너무 재밌었고 꿈이 생겨 계속 하고 싶었던 마음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반대를 강력하게 하셨고 매일 밤까지 연습하다보니 학교 매점에서 저녁을 사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매점 아줌마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매점 아줌마는 대한장로회 교회의 장로직은 맡고 계셨었고, 교회에 대구 교향악단의 플룻 선생님이 계시다고 저를 너무 안타까워 하셔서 말씀드려놓을테니 주말에 배우러 와라 라고 하셔서 주말마다 나가서 레슨을 받으면서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없어졌고, 졸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장항교회에 다니던 나소연 자매와 연이 닿으면서 만나게 되었고, 나소연 자매는 장항교회의 교무라는 직책을 맡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있었고 장항에 거주하고 있다보니 주말에만 만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고, 그마저도 주말에 교회 행사가 많으면 길게 1달정도도 얼굴을 못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항교회에서 거제교회로 사청부 MT를 온다고 놀러오라고 놀러가게 되었는데 다들 많이 챙겨주시고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이때 아마 마음이 열리게 된 계기였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장항을 가는 날이면 안식일에 나소연 자매랑 교회를 조금씩 가게되었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을 많이 놀라긴 했지만 성령을 받으면 알게 될거라고 주위에서 얘기를 많이했지만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니다보니 전부 비슷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이 신기했고, 호기심이 생겼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나소연 자매와 결혼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어쨌든 같이 다니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구도자 교육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 라고 하셔서 한번 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임성열 목자님께 구도자 교육을 받았고, 죄를 씻는 세례 부분도 듣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

     구도자 교육을 받다보니 하나님이 계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교육을 받았고 여러 간증들을 들으면서 아, 나도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어봐야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거리도 멀었고, 생업도 바빠서 주말에도 일하게 되는 날도 생기면서 구도자 교육을 중간에 못받았고, 결혼식 날짜는 점점 다가와서 세례교육부터 하고 믿음안에서 결혼을 해야된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세례 교육부터 시작했고, 12/3일 결혼식이었는데 급하게 세례 교육을 하고 11/25일 세례를 받자 하셔서 날짜를 잡았습니다.
    세례교육 기간중 교통사고가 나서 2주동안 입원도 하고 여러가지 악재기 겹쳐지면서 세례교육도 매주 못받게 되면서 급하게 교육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교육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세례 받은 후 소감

     11월 중 계속 따뜻한 날이어서 걱정 안했는데 세례 당일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한번에 끝내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침수를 하고 난 후에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죄사함을 얻고 새 인생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나서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난 언제 성령을 받고 방언 기도를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성령을 주실까? 였습니다.
    장항교회에서 부산교회로 출석하며 이요셉 목자님의 말씀을 매주 안식일에는 안수 기도도 나가서 받으면서 성령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저에게 성령을 주세요 라고 기도드렸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뭐가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간절하게 기도도 해 보았지만 안 주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인생을 돌아보면서 세례 받으면서 죄사함은 얻었지만 인생의 조금이라도 잘못한 부분을 회개드리기 시작하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봄 영은회가 시작되기전 이요셉 목자님이 안식일 때 성령을 간절히 구해보자 라고 해주셨고, 안식일때 정말 열심히 기도드렸습니다.
    기도 드리는 와중에 갑자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안수 기도를 받던 중 저도 모르게 방언 기도를 하게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정말 계시는구나’ 라고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령받은 이후 변화,다짐

     출근길이든 무슨 일이 있든 없든지 마음 속으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저와 우리 가정을 잘 지켜달라는 마음 속으로도 늘 기도를 드립니다. 저희를 지켜주시는 여러가지 일도 많았고 일하는 중에 크게 다칠 수도 있을만한 일에도 다 피해가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경쟁으로만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성령을 받고는 하나님의 가정안에서 평안히 살 수 있게 해주신거에 대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게되니 마음의 안정감이 생겼고 기도의 힘도 요즘은 많이 느끼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된 부분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끝으로 세례와 성령을 받으면 끝인 줄 알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공부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올바른 자녀가 되어야겠다고 많이 느낍니다.
    많은 배움 속에서 올바르게 성장하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 [성도소개] 군대에서 전역한 전주교회 김건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군대에서 전역한 전주교회 김건형제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올해 전역한 김건형제님과 인터뷰를 진행해봤습니다.

    김건형제의 믿음이 성장하고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2살 전주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김건입니다.

     

    Q. 군 복무 기간 중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었나요?

    군 복무 중 교회 생각이 안났을 때가 있었습니다. 매일이 위기였는데 휴가를 나올 때마다 교회 사람들이 연락을 주셔서 친구들이랑 밖에서 노는 것 대신 교회에 이끌려 올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휴가 중 교회에 있는 시간이 조금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 인도해주신 것으로 군대에 복귀해서 1주일 정도는 신앙인으로서 군대에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신앙 목표 및 계획이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습관적으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를 다녀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을 겪어보며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이후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Q.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첫번째는 결정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이고 두번째는 교회에 대한 믿음과 앞으로의 삶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 [복음메시지] 만선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 (눅 5:1-11)

    [복음메시지] 만선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 (눅 5:1-11)

    [말씀제목] 만선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 (눅 5:1-11)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17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1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삶이 풍요롭기 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어떻게 만선의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명령에 믿음을 가지고 순종해야됩니다. (4-5절)

    • 내가 살았던 방식이 아닌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아야합니다.

    –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 1. 밤새 물고기를 잡고 온 상태 2. 물고기를 잡아봤던 경험과 지식이 있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지식과 경험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6-7절)

    • 열심히 노력해도 가능하지 않는 일이 말씀에 의지했을 때 일어납니다.

    –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믿음의 수고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축복

    -예수님을 경험한 축복: 베드로는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이 보이고(5절 선생이여 -> 8절 주여) 자신이 보이고(“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꼈습니다.

    • 물고기를 좇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게 해주신 예수님을 좇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고 세상을 보는 믿음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