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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분노 (마5:21-26)

    [말씀제목] 분노 (마5:21-26)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받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살인하면 그 결과는 사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살인하면 그 사람이 자기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엄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제자들과 청중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 하실 때, 그들은 이것이 엄중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는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하나님 앞에 살인한 일이 없으니, 하나님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의롭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의 참 뜻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주신 당사자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계명의 참 뜻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 마음은 무엇인가요? 이 계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어떤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시는가요?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이란, 사람을 죽인 자가 받는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노하면 살인자가 받는 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욕설하는 자는 공회의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모독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즉 살인자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분노’에는 ‘뒤모스(θυμός​​​)’와 ‘오르게(ὀργή​​​)’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뒤모스’란, 금방 붙었다 사그라드는 불입니다. 즉,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분노입니다. 욱하다가도 금방 사그라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분노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분노는 ‘오르게’입니다.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닙니다.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분과 죄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품는 것입니다. ‘오르게’는 ‘뒤모스’와는 달리,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지속적인 분노를 가지고 악의를 가지고 남을 해치려 하는 미움을 품는 것이 ‘오르게’입니다. 분노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까지입니다. 새로운 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분노를 품고 버리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즉, 분을 내어도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뒤모스와 같은 분노를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분노를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가인이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죄의 소원은 그에게 있으나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죄가 되도록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악의적인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까닭은, 살인이 노하고 미워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에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 중 분노의 창고가 있습니다. 그 창고에 두고두고 분노를 쌓아갑니다. 이 분노를 쌓아 증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것이 증오로 바뀐 후에는 말이 변합니다. 험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눈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말이 좋게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죄입니다. 분노의 창고에 분노가 쌓이면, 상대가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폭발하게 됩니다. 남편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작은 일에도, 분노를 쌓아 증오를 품게 된 아내는 폭발하게 되는 것입이다. 이러한 분노의 마음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근거가 됩니다.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미련한 놈’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똥멍청이’, ‘바보같은 놈’, ‘골빈 놈’, ‘머리 빈 깡통’ 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쌓여 증오를 품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입니다. 분노를 쌓는 사람을 살인자로 규정하시는 말씀 앞에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우리가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러한 분노를 품은 사람이 살인자입니다.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80%의 부부가 마음 속의 분노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툰다면, 마음 속에 가만히 숨겨놓은 분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80%가 적중합니다. 문제의 뿌리가 그 분노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말씀과 같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면, 우리는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을 몇 번씩 죽이고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 분노는 남뿐 아니라 자기도 죽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분노하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서로 분노를 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예배 전에 그 감정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그 감정을 먼저 처리하고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노를 놔둬서는 안됩니다.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 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스스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해석을 듣기 전에는, 우리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비추어보니, 살인자는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자기는 남보다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의로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담긴 계명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뻔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영적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계명을 바르게 이해하면, 계명은 살고 우리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분노가 가득 찼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노 창고 안에 있는 상처 분노, 시기 분노, 실망 분노, 좌절 분노, 자존심 상처 분노, 애정결핍 분노 등을 확인하여 창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분노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많이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이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야 합니다.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께서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덧입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뒤에 숨어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옷입고 그 옷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죄로 얼룩진 옷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앞에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회개하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날 때는 화도 내고, 용서 받기도 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능력이 없으니, 이런 삶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예수님만 믿자, 예수님의 능력만 믿자, 그리고 하루에 열 두 번이라도 형제를 미워해도 어쩔 수 없으니 개의치 말자,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면 된다’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요구가 있으십니다. 주 안에서 살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주 앞에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작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를 잃으면, 우리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가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반드시 이루려 하는 목표를 놓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품을 때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해주셨는데, 왜 나는 분노 가운데서 살아가는지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넷째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몰랐던 구약 시대 사람들은, 형제에 대한 분노를 느껴도 처리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도우미입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는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내 곁에서 내 연약한 것을 돕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까닭은, 내 속의 연약한 점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즉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시고, 과거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작은 예수로 살 수 있다고,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하여 분노를 가질지라도 그 분노가 쌓이지 않도록,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이 있으므로 성령에 의지해야만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지하여 매일 기도하면,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용서하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잘 관리해서 죄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분노가 창고에 쌓이게 되면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천국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내 믿음이 깨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분노의 창고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고 성령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트브 예배링크 

    글쓴이  이혜림

  • [복음 메시지] 창세기(5) 에덴동산 (창2:8-17)

    [말씀제목]창세기(5) 에덴동산(창2:8-17)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2022년 6월14일 (화)저녁예배

     

    에덴동산’ 일까, ‘에덴의 동산’일까?

    정확히는 에덴지역에 있는 동산으로  하나님이 특별히 만드신 ‘에덴의 동산’이다

     

    1.왜 에덴 동산을 만드셨을까?

    1. 1)에덴의 뜻

     첫 번째로 에덴의 뜻을 살펴보면 기쁨이라는 히브리 원어의 뜻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동산은 특별히 울타리가 쳐진 구분된  곳이었다. 

     

    1. 2)하나님이 인간과 교제를 나누실 목적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1. 3)온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축복)이 흘러가기 위함

    창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4대 강이라 알고 있는 비손,기혼,힛데겔, 유브라데강이  세상으로 흘러 하나님의 기쁨이 땅 끝까지 넘쳐나길 바랐던 하나님의 계획으로

    즉 에덴동산은 지성소,에덴은 성소,온 땅은 세상을 말한다

     

    1. 4)인간에게 다스리며 지키게 하심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두었다: 라는 뜻은 ‘사람을 지위에 임명하다’ 이고  다스리며: 뜻은 ‘섬기다’, ‘경작하다’ 이다 

     

    1. 5)성막과 성전의 원형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의 제사장으로 만드시고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임명을 주셨다

     

    1. 6)교회를 세우신 목적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교회의 회복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 불러주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고

    이 성전에 두신 뜻, 즉 

    우리가 제사장되어

    거룩한 교회에 세속적인 죄가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을 만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김정남 

  •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말씀제목]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설교자] 전*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사야에 있는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앞서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복음을 경험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이사야 6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점령당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된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소원도 빨리 전쟁이 끝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함을 얻게 되는 때가 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상태에 처해져 있던 것처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서 속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도록합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서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형벌받을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로 죄인의 죄 값을 치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부터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마3:15~17,행2:38)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후에 잠시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마침내 사단이 성도의 발아래 놓이게 되어 죄악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롬16:20) 주님의 주신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2.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됨이 복음입니다.(18)

    앞을 볼 수 없는 자를 소경이라고 합니다. 소경이 앞을 본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며 실제로 여러 명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었습니다.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죄 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영적인 소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소경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보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자신 창조한 자와 자신을 구원할 자를 알게 하시고 자신이 가게 될 곳도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두려움없이 살아가게 하십니다.

     

    3. 눌린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눌려있다는 말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만합니다. 육신적으로든 심령적으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에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와 능력의 한계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얽매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때에 가난에 처한 자신을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끌렸지만 하찮은 목수의 신분과 빈곤한 외적인 상황을 보고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었지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처럼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고 순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복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음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남*숙

  • [복음 메시지] 장성한 사람(고전14장)

    [말씀제목] 장성한 사람(고전14)

    [설교자]  박누가 목자님

    [설교일]  2022, 6, 2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까닭은 마귀와 대적하기 위함이며, 우리를 장성시키는 것이 곧 성령의 역할이다

    1. 우리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자가 되자

    나로 인해 교회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2. 악한 일을 멀리하자

    사악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미련할 정도로 일체의 사악함을 버려야 한다

    3. 은사를 선하게 사용하자

    각종 은사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글쓴이 강경혜

     

  • [복음 메시지] 절망속에서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라 (시 62:1~12)

    [복음 메시지] 절망속에서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라 (시 62:1~12)

    [말씀제목] 절망속에서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라(시62:1~12)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4일(토) 화요일 저녁 예배

     

    다윗은 수많은 믿음의 갈등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합니다.

    엄청난  갈등 속에서, 하나님 앞에 따지고 대들고 싶은 상황이지만

    다윗은 역경과 절망의 나락속에서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 바라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1.나의 구원이 하나님을 통해서 나기 때문입니다. (1)

    이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믿음…

    아픔, 역경,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짐을 내려놓는 신앙이 됩시다.

    구원이 주님에게 있기에..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엄청난 고통속에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 앞에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5절)

    이렇게  자기 영혼을 향해 결단을 선언합니다.

    다윗이 또다시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2.나의 참된 소망이 하나님으로 좇아 나기 때문입니다. (5절)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흔들리는 신앙속에서 결단코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진실로 천한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다고 고백합니다.

    의지할만한 자가 없습니다. 인간의 연약함, 인간의 죄악성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힘을 빌려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주권,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다윗은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사랑해 주세요.

    인자함도 하나님께 속했잖아요. 나에게 사랑으로 갚아주세요.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있기에  어떤 세상의 절망과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랍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아픔, 절망, 좌절, 어려움 삶의 현장속에서

    사람을 바라보면 화나고 원망되고, 미움이 생기고 어쩔줄 몰라합니다.

    그럴때 하나님만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링크 바로가기)

  • 낮도 밤도 아름다운 우리교회로 오세요

    낮도 밤도 아름다운 우리교회로 오세요

    살다보면 큰 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나 버린거 같은

    절망의 순간도 온단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약점 때문에 

    잠 못 드는 시간도 있단다.

    나의 가는길

    혼자 가기엔…. 벅찬……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들때~

    때론 부끄러워 숨고 싶을때

    힘겨운  삶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28)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같이

    견고한 소망을 갖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자~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히브리서 6:17)

     

    예배의 시간

    화 / 금  저녁  19:40

    안식일 (토)   10:40

    안식일 아동 14:00

    안식일 청년 14:00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23가길12

    02-966-4294

    담임목자 오희도

  • 거제교회 루디아회 야유회

    거제교회 루디아회 야유회

      할렐루야! 거제교회 루디아회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거제 매미성과 옥포대첩 기념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 처음으로 다녀온 야유회였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서인지 다들 들뜬 얼굴이었습니다.

    맛있는 것도 잔뜩 싸가서 즐거운 야유회를 보내고 오셨습니다 🙂

    즐거운 야유회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도 소개] 청주교회 세례 3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청주교회 세례 3형제를 소개합니다!

    2022년 5월 1일.
    청주교회에 새로운 세 명의 새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김성용, 김진범,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세 형제님 모두 한 가정의 멋지고 듬직한 가장이신데요, 정말 신기한 건 이 세 분 모두 배우자 분들과 자녀들이 먼저 세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거에요. 먼저 거듭난 가족들과 청주교회 성도님들의 사랑과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 세 분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세례를 받겠다 다짐하게 되었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과 동시에 청주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쁜 시간이지만, 이제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 형제님들이 걸어가는 신앙의 길에 분명 시험과 고난이 있겠지만, 이제 세 형제님들과 함께 해주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세 분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성령을 받고 더욱 믿음 안에서 굳건해져서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을 섬기길 소망합니다.

     

    글쓴이 : 박은우 형제

  •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5~6)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민들레지역아동센터(이하 민들레센터)가 개소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국에 계신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로 민들레센터는 장항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돌보아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2019년, 지역사회 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민들레센터의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센터와 교회는 장항 지역 내 센터 아동들과 접촉하고자 힘썼습니다. 2~3개월에 한번 센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동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매월 2회씩 자원봉사를 통하여 아동들과 접촉 하는 횟수와 시간을 좁혀갔습니다. 교회에 초청도 하며 작년 9월부터는 안식일마다 아동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올해 초에는 1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월 말에 코로나19로 인하여 만남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마비되었고 일상생활 및 종교생활 중단으로 복음전파 사역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민들레센터 내 아동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지금부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민들레센터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있는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자원봉사활동으로 쓰고 변화라 읽는다. 

    • 현재 민들레센터에는 36명의 아동이 있습니다. 센터의 아동들은 가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결핍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평소 아동들의 언행이 거칠고 공격적이어 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의 연속일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 센터는 긴급 돌봄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아동들만 수용하여 돌봄이 진행되었습니다. 내부, 외부 활동이 모두 금지되어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오던 것을 다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최소한의 인원만 배정하여 상황을 보고 월 1~2회 자원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교회 교사가 아동들과 함께 요리, 만들기, 놀이 활동 등을 하며 아동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2명의 교사가 15명 또는 20명의 아동들을 접촉하고 활동하다보니 아동들과 대화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8~9명의 아동과 함께 하다 보니 아동들의 말을 좀 더 깊이 있게 듣게 되고 아동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동들도 교회 교사에 대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아동들의 난폭한 언행이 감소되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노력해도 안 되던 것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교사와 아동들의 짧은 시간의 만남 가운데 말과 행동의 변화를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사들을 통하여 아동들의 마음에 사랑을 느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안식일센터특별활동은 코로나19도 막지 못한다. 

    – 자원봉사를 통한 아동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안식일 센터특별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의 만남은 지속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조율을 하고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주 1회 안식일 오후 3시 30분에서 5시에 아동들을 만나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매주 안식일 활동 담당자를 정하여 아동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만들기, 체육활동, 과학놀이, 요리활동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아동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구도자교육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차 확산이 되면서 교회에서 아동들과의 만남이 잠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주 1회 안식일 활동 담당자들이 아동들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집에서만 있을 아동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여 전달하였습니다. 만들기 재료와 함께 때로는 간식을, 때로는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편지를 담은 선물과 다양한 방법으로 아동들에게 줄 것을 준비하여 아동들의 집으로 찾아가 전달하였습니다. 안식일 활동 담당 교사들은 아동들에게 전달할 것을 준비하면서 아동들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품는 기회가 되었고,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동들을 기다리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시는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아동들 또한 교사들이 찾아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전달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며 교회에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추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오늘도 우리는 때가 이르면 거둘 것임을 믿는다. 

    • 이런 상황 속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어 짧지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축구관람도 하고 1박2일 여름캠프도 다녀오고 뮤지컬관람, 운동회, 문화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들었지만 올해는 딱 두 번의 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교회 마당에 수영장을 대여하였습니다. 대형풀장과 슬라이드를 설치하여 아동들과 하루 종일 교회 마당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1월에 잠시 코로나가 주춤하는 상황을 틈타 아동들과 가을을 느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함께 숲속체험과 원예치료활동을 하며 아동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그동안 억압 되었던 감정들을 해소하며 교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활동은 보호자분들에게도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역사회 내 민들레센터가 하나님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을 기대하며 아동들과의 연결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가장 염려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사회의 시선이 교회로 향했던 때였습니다. 그 시선이 긍정적인게 아니라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그 영향은 우리 교회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도 활동을 결코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한 주라도 아동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철저히 방역을 지키며 아동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분들 또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관련 없이 만남을 허락하여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지만 민들레센터는 가랑비 옷 젖듯이 아동들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민들레센터를 통하여 역사하실 일들이 기대가 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전도의 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민들레센터의 전도사역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또한 곳곳에서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전국의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코로나 시대, 전주교회 학생부

    코로나 시대, 전주교회 학생부

    2020년 2월 마지막 주부터 급격한 코로나 확산으로 갑작스럽게 예배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기에는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예배가 이루어져야한다는 마음으로 온라인 예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밴드 라이브를 통해 말씀예배를 진행하고 줌을 통해 분반예배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밴드로 이루어지는 말씀시간에 아이들과 소통이 안되고 아이들이 잘 듣고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여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되었고 말씀예배 또한 줌으로 진행하여 그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하시는 분들이 아이들에게 질문할 수도 있고 함께 성경을 읽을 수도 있었습니다. 찬양예배도 함께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아이들을 볼 수 있고, 아이들도 서로를 볼 수 있었기에 좀 더 태도와 자세를 바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집합금지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또한, 금요일 예배 후 이루어지던 교사회의를 줌을 통해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맞게 된 코로나로 인해 아무런 대책이 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집합금지로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교사회의도 못하게 되고 단톡방 공지로만 소통했었습니다. 그러한 채로 몇 달이 지나자 학생들의 변화를 교사들이 느끼기 시작했고 이렇게 손 놓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이루어지던 것들을 코로나 때문에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제 이 상황에 맞추어 변화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먼저 교사회의를 줌으로 시작하였고 그 전에 이루어지던 심방을 어떻게 대체할지 고민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학생부 사역에 활력이 붙었고 지금은 여러 가지 안전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아이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대면예배를 함께 하면 할수록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적응해가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 어려움과 문제점들도 존재했습니다. 학생 관리가 어렵고 연락이 안되면 예배참석을 독려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 아이들과 교사들 사이가 어색해지고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줌으로 이루어지는 분반은 활동방법이 제한적이었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혼자 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여 깊은 묵상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나태해지고 편하게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에 길들어감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못하니 안식일이 안식일 같지 않다며 교회가면 안되냐고 묻는 아이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예전에는 당연해서 잘 몰랐던 안식일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 친구들과의 교제와 나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이 문제를 두고 함께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지금 전주교회는 5월 15일 이후로 대면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모두 착용하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예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소모임이 금지라 대예배당에서 반끼리 흩어져서 분반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에 나올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좋아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까지 어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면예배가 회복되었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함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저희 학생부와 교사들을 돌아보시고 지켜주시며 이렇게 다시 안식일에 모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