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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구보*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11”

     

    1.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해주신 하나님

    저는 초등학교 3학년 학기 초,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공부방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 맞은편에서

    공부방 차에서 하차를 했습니다. 횡단보도로 건너 자니 돌아가야 했기에 저는 겁 없이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도로는 차들이 빠르게 다니는 큰 도로였습니다. 도로 옆에 주차 되어있는 화물차 사이에서

    저는 겁 없이 도로로 뛰었습니다. 결국 빠르게 지나가던 트럭과 부딪혀 몸이 날아갔습니다.

    순간의 충격으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단 몇 초 만에 정신이 들었고, 약간의 골절 외에는 무사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주셨을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저를 사용하시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수원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더욱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대학 생활의 방황으로부터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저는 부끄럽게도 대학교 1학년 시절 방황을 하였습니다. 대학교 친구들은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자연스레 저에게도 여러번 권유하였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거절했지만, 신앙의 찔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갈등이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 늦게 까지 있게 된 날이 있었습니다.

    이 날도 술자리에 참석하게 됐고, 계속된 권유에 1잔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잔이 여러 잔이 됐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방황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2학기에 신앙의 찔림으로 다시 한 번 제 신앙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날 부로 회개하여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 친구들은 계속해서 술을 권했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친구들과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술만 먹지 않을뿐 전혀 교우관계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불의한 일에 있어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학생시절을 무사히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도간증] 기도 중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 글은 2024년 6월 4일 화요일 강남교회 간증 집회 송인성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송인성 자매님이 작성해 주신 글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

    정확하게 오후12시8분, 이송요원이 8층 5병동에 있는 나의 병실로 들어왔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이송 침대로 옮겨 누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 순간까지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이라도 이 침대에서 뛰어내려야만 한다는 생각과 모든 것을 그저 주어지는 대로 맡겨보자는 마음이 뒤엉켜서 어떻게 수술실까지 도착했는지 모른다.

    수술실은 춥고 밝았다. 이송 침대에서 수술 침대로 옮겨졌고 또 다시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고는 기억이 없다. 정확하게 8시간 후 눈을 떴을 때 주변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자기들의 할 일을 하는 중  자꾸만 잠이 와서 눈을 감는 나에게 누군가가 내 뺨을 때리며 외쳤다. “환자 분 눈 뜨세요!심호흡 하세요! 심호흡 안 하시고 주무시면 중환자실 갑니다! 눈 뜨세요!! “

    그리고 이틀 후의 기억이 달아났다.

    어디가 아픈 건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무거운 바위 밑에 온 몸이 깔린 것 처럼. 그 고통은 이 세상에 없는 고통 같았다. 마약 진통제를 연신 눌러 댔지만 너무 아파서 수액으로 된 진통제를 하나 더 달고 살았다. 그제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6개의 링겔이 내 몸에 주렁 거렸고, 숨을 쉴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그리고 3일 후에 물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간호 통합 병동을 선택해서 들어갔기 때문에 보호자 없는 병실에 온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였다. 왜나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2.

    내가 한 수술은 췌장원외부절제술이다. 췌장 일부와 십이지장, 담낭 그리고 간의 일부를 제거하는 큰 수술이다. 이 병을 안 것은 2013년도 건강 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다행이 암으로 갈 확률이 10%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1년에 한번 MRI나 CT를 번갈아 찍으며 경과를 보면 되는 상황.

    그런데 불행하게도 3년에 한번씩 느닷없이 급성췌장염이 와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니 췌장이 주는 불안감은 더욱 증폭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1년째 되던 2023년1월11일, 정기 검사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모니터를 보는 의사의 표정이 굳어 있는게 느껴졌고 췌장에 있는 혹이 갑자기 1. 4cm나 커져서 불안해 하지 말고 수술을 고려해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정확히 암은 아니란다.

    가슴이 덜컹 했다. 외과 의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수술이 이 췌장절제수술인 것을 나는 지난 10년 동안 어찌나 공부를 했는지 아는 만큼 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확실히 암은 아니라는 말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달까. 그렇게 내과에서 외과로 전원 되었다. 외과의사도 나의 상태를 모니터로 보고는 쉽게 수술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왜? 암은 아닌데..수술 후에 잃을 게 너무 많은 수술 인 것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때 내가 말했다. “교수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교수님이 결정 해 주세요”  “….그럼 합시다. 나쁜놈이 숨어 있을까봐..” 그렇게 2023년 4월 수술 결정이 났고 수술 날짜는 5개월 후인 9월로 잡혔다.

     

    3.

    나는 보통 오전 5시30분 쯤 잠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새벽 기도를 가고 오전 7시30분 쯤 아침을 먹고 공원으로 운동을 간다. 집에 돌아오면 대충 11시30분이 되고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왔으니 집안일을 하고 볼일도 보고 심방도 가고 그리고 취미인 꽃 수업도 일주일에 한번 씩 다니며 쉴 새 없이 바쁘다보면 저녁시간. 저녁을 먹고 또 다시 공원으로 한 시간 운동을 하고 오면 밤 9시 30분이 되어 바로 잠자리에 드니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0시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지내는 동안 하나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한시도 말씀이 내 곁에 떠난 적이 없다. 귀에는 늘 이어폰을 끼고 전국에서 올라오는 우리 교회 설교를 거의 섭렵했다. 

    그러니 수술 날짜를 잡아 놓고는 얼마나 더 기도에 매달렸겠는가. ‘하나님 수술 안 하면 안될까요? 수술 안 하게 해주세요. 수술 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잃는 것이 너무 많대요. 예전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한답니다. 수술 중에 중요 혈관을 잘못 건들어서 사망하는 사례도 있대요. 수술 후에 후유증이 40%나 되고요.’ 기도 하다가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응답도 없는 날이 6개월이나 계속 되었다. 평소에는 기도하면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오전 금식만 하기로 작정하면 그 기간이 가기도 전에 얼른 들어주시기도 해서 하나님은 성질 급한 나보다 더 급한 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주님이 매일매일 울며불며 속시원히 대답 좀 해 달라는 나의 기도에 묵묵부답이셨다. 그렇게 수술 날짜는 다가왔다.

    4.

    수술 후 퇴원 날짜가 잡혔다. 추석 연휴인 관계로 조직검사결과가 늦어졌고, 병원과 집이 가까우니 차라리 결과는 퇴원 후 외래 진료 와서 들으라는 말에 예상보다 일찍 퇴원을 했다. 조직 검사 결과 보던 날 진료실에 들어간 우리 부부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듣게 되었다.

    상피내암

    제자리암이란다. 털썩 주저앉았다. “교수님, 수술 후에도 암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암이라니요?” 개복 수술로 육안으로도 확인 할 수 없었던 것이 현미경으로 봤을 때 발견 되었단다. 만약 수술하지 않았다거나 시간이 조금만 더 늦춰졌어도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토록 오래 침묵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나는 수술하지 않았다면 살 수 없었던 목숨 이었던 것이다. 췌장의 암도 시간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발견 후에 9일 만에 사망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개복을 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도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의 암을 하나님은 미리 아셨고 내가 그토록 하기 싫어했지만 수술을 받을 수 밖에 만드신 것이다. 그 은혜를 어찌 몇 마디 말과 몇 글자의 간증으로 대신 하겠는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감사가..몰려온다.

    주님 감사합니다. 0기암은 항암이 없고 몇 개월에 한번씩 추적 검사만 하면 되었다.

    5.

    여러분 중에 혹시 나처럼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께서 응답이 없다고 낙담하는 분이 계신가? 나는 분명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린다. 나에게 은혜로 오셨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역사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확신에 찬 체험으로 아직 믿음 안에 들어오지 않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도 할 수 있는 굳음 믿음이 생겼다. 

    이 일을 통해서 기도에 힘을 모아 주었던 목자님을 비롯 여러 성도님들이 계신다. 가족들의 기도와 성도님들의 기도가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몸이 아픈 성도님들과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로 조그만 힘을 보탠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 [성도간증] 구체적인 성취를 통해 진리와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수원교회 이성덕 형제)

    [성도간증] 구체적인 성취를 통해 진리와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수원교회 이성덕 형제)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8:32)

     

    첫 번째 성취, 하나님께서 교회로 인도하심.

    배우자인 김명희 자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다고 믿습니다.

    또한 믿음의 두 아들이 모태신앙으로 먼저 신앙생활 하면서, 저에게 큰 귀감이 됐습니다.

    저는 김명희 자매와 결혼하면서 나중에 꼭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약 50세 정도 되면 교회에 나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건강의 문제가 생기면서 예상 했던 것 보다는 빨리 교회로 나오게 됐습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13년이 됐는데,

    제가 속한 가정의 믿음의 선배인 아내와 두 아들을 보며 제 신앙생활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성취, 건강에서의 성취

    저는 태어날 때부터,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부터 감염이 진행 됐습니다. 당시에 교회를 다니진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다행히 약이 개발되면서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먹고 있는 약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이지만, 건강을 위해서 꾸준히 먹어왔습니다.

    이전에 간의 섬유화가 진행되어 우려가 됐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인 의사의 권유로 간 검사를 했는데, 아주 건강한 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건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약을 먹을만큼 아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몸을 주심으로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노력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성취, 직장에서의 성취

    2020년 9월 한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저는 생각도 없었고, 건강치도 않아 교장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제가 속해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장학사님의 말씀에 의하여,

    한 학교의 교장 모집공고를 알게 됐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여 지원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교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었습니다.

    학교는 하나 이지만, 세 개의 기관이 속해있어서 특별히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학생들이 많아 힘들었습니다.

    또한,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택에서 지내며 가족과 떨어져 근무했습니다.

    개인적인 건강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여 병원에 가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도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더 성실히 내가 해야될 일들을 더 열심히 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자’ 였습니다.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학교 발전을 위한 법률 제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취 됐습니다.

    결국 이 법령이 제정되어 학교가 나라의 지원을 받게 되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 됐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성취를 통해 진리와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 [성도간증]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부산교회 송경희 집사님)

    [성도간증]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부산교회 송경희 집사님)

     

     부산교회 송경희 집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우리가 지키고 있는 안식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 (출 31:13)

     2023년 3월 3일에 일어난 일 입니다.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있는데 검은 한복을 입은 여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아침 식사 후 운동을 하기 위해 수영천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 5분 뒤쯤 큰 도로가를 지나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미는 것 같이 팍 넘어졌습니다. 그 길은 평지였고 저는 무엇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이고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 지나가는 학생이 일으켜 주려고 하는걸 사양하고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른팔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어깨가 골절 되었다고 했습니다. 2주 동안 치료 했지만 골절 부위는 점점 더 벌어졌고 의사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소견서를 받아 봉생병원에 갔더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튿날은 3월 17일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서울에 사는 막내 여동생 아들이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갔다 와서 월요일에 입원을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당장 입원 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후에 의사 선생님은 당장 수술하기 보다는 치료를 해 보고 잘 낫지 않으면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이후에 목자님께 기도 부탁을 드리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고 2주간 입원 치료 후 퇴원해서 통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의 기도로 수술을 하지 않고 나을 수 있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제가 뒤에서 미는 것처럼 넘어졌다고 하니까 혹시 무슨 잘못된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3월 17일 안식일은 동생 아들 결혼식이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안식일 예배는 지 교회에서 드리라는 총회 공문이 왔습니다. 마음속으로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어찌지?’ 하는 생각이 가득찼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미리가서 축하해주는 분들도 있다고 했지만 저는 꼭 가야 된다고 생각했더니 사단이 틈을 탄 것 같습니다. 결국 결혼식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2주 동안 고생만 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저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결혼식에 가려고 했지만,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거룩히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 (대방교회 김*성 모친)

     

     김*자 내 동생은 적잖이 15년은 나를 아주 귀찮게 굴었을 거랍니다. 끈질기게 자신이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니자고, 세례를 받으라고 쫒아다니더란 말입니다. 그런 동생에게 지지 않고 나는 약을 올렸습니다. 참예수교회에 가겠다 했다, 안 가겠다 했다. 생선 굽듯 마음을 숱하게 뒤 짚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늙은이가 얼마나 얄밉고 약이 올랐을까 싶은데. 실상은 나이 많은 언니가 세례도 (죄사함) 받지 못하고 떠날까 싶어 어지간히 애간장이 탔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마음 바꾸기 끝에 참예수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 때였습니다. 2023년 봄. 미국에 사는 조카가(동생의 딸. 김*냥 자매)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내용은 끈질긴 내 동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참예수교회에서 같이 믿음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했습니다. 조카의 권유에는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골수분자인 또 다른 동생마저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큰언니가 *자언니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나가시면 되겠네요!” 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권면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선언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참예수교회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 내가 그 참예수교회에 다니려면 너희 동네로 이사부터 가야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85세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무려 3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턱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카는 미국에서 나올 때 부터 가족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더랍니다.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했다 합니다. 조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니, 내 마음이 그리 보드랍게 녹아 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강력한 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른 세례를 받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기 무섭게 어느날 동생은 교회 목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자님이 오셔서 세례에 관하여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찬송도 부르고, 안수 기도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모두 가고 나서 목자님이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통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적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찾아 주셨던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 거니?” 동생은 여기저기 말씀 구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는 권사 노릇을 수십 년을 하고서도 그 말씀 하나도 못 찾아요?” 네.. 사실 나는 분당의 큰 장로교회를 30년이나 다닌 권사였습니다. 네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동생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니, 읽을수록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불렀던 찬송가가 뭐였니? 자녀들과 여행 중이었던 동생은 자녀들을 시켜서 그 찬송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목자님이 안수를 하고 가신 그날 밤부터 내가 아주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지금까지도 평안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2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서 매일 밤 시커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찾아왔습니다. 매일 밤 그렇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 했지요. 그 고통을 듣고서 전에 다니던 큰 교회의 부목사들이 와서 조언을 해주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날 목자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부터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거예요! 2년간 매일 밤이 무서웠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도통 신기한 이 교회를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를 이기는 교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는 마귀의 권세와 이적을 주신 하나님

     이사 날짜를 잡고서는 하루하루 이사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꾸 방해가 생겼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 세례를 먼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받는 날 급작스럽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세례받는 것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랬다간 내 동생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교회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면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지 뭐에요. 동생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또 바꾸지는 않을까 걱정 하면서 말이죠. 동생이 나를 보고서는 방긋 했습니다. 세례 터로 출발하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교회 안에 들어가 얼마나 신이 나게 깔깔거렸는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경험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평생 수족냉증이 너무도 심해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고 살아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에 세례를 받고 나서 수족냉증이 그렇게 좋아졌지 뭐에요. 수면양말 벗어 버렸습니다. 발가락에만 시림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는 수면양말 없이도 살겠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신어야겠지만요. 아주 신기해요 아주!

     사실 저는 파킨슨병을 15년 앓아 왔습니다. 2년 전 돌아가신 남편도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은 통증이 아주 극심한 병이랍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엉덩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마구 베는 것 같은 말도 못할 통증이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통증 주사는 총 7대를 맞는데 그 통증 주사도 아주 고역스러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를 정도에요. 세례를 받고서 얼마 후 병원에 통증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례 병원으로 갔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앞에 가서 번쩍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나 엉덩이가 안 아파요! 어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요!” 오랫동안 내 병과를 지켜보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아 그러면 주사를 맞으실 필요가 없지요!” 했습니다. 

     그날 병원까지 가서는 주사를 안 맞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 신기해지는 거지 뭐에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도 다 겪어 본다며 이 신기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직 제 말을 못 믿는 눈치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있을 텐데. 믿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족냉증이 아니라 굽은 허리를 펴주셨다면 우리 애들이 단번에 믿었을 건데 아쉽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고 얼마 후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세족례, 성찬례에도 참예 했습니다. 예식이 참 길었습니다. 자꾸 일어서고 앉고 늙은이라 힘이 들었지만,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성령도 빨리 통과(수령)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직 통과(수령)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라서 영은회를 마치고 동생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또다시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아주 힘이 세진 나는 동생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 뿐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동생의 목에 상처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우리교회 김권사가 그러는데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래!” 정말이지 마귀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목자님이 또 오셔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렁찬 고함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평안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 세족례)

    무슨 근심 있을까

     이사 날짜를 잡고 이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니, 교회 가는 날까지 이 잠깐은 왜 이렇게 길고 시간이 안 가는지요. 시간은 느렸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정된 날짜에(23년 11월)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교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첫 안식일 출석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급히 와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안식일 교회로 오는 길에 또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나가야 하는데 도통 교회 가는 길이 이렇게도 열리지를 않으니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폐가 많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휴 폐렴이면 어떻고, 더 안 좋으면 어떻겠어요. 늙은 나이에 나를 불러 주셨는데 무엇이 근심입니까. 일단 퇴원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서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지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쁩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말씀 듣는 것도 기쁨이요, 안수기도도 기쁨이에요. 그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큰 병원에서 결과를 들었지요. 결과는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분명 많이 좋지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평안키만 합니다. 할렐루야!

     

    늙은 종의 마지막 사명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거동도 힘들고, 병도 든 늙은이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의 식구들을 여기 참예수교회 참 진리 안으로 이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이 늙은 종을 불러주신 이유는 남은 가족을 인도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셨을 것 아닙니까? 내가 우리 8남매의 첫째에요. 남매 중에 5번째로 참예수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이제 남은 3명은 내가 끌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천주교 골수분자라서요.

     우리 아들은 세례식 그날이 무슨 영화에(아바타) 나오는 종족 의식 같았다고, 신비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다른 동생은 내가 세례를 받고 올라오는 순간에 아주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침은 “할렐루야!”였어요.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실 섭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세가 늦은 나이 80세에 민족의 수장이 되었다는데, 나도 늦은 나이 85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수장으로써 형제들과 자녀들을 이곳 참예수교회 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성령 충만함과 사명을 다할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늙은 종으로서 남은 생에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갈렵니다.

    (출애굽기 3장 11-12절)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간증의 당사자인 김*성 모친과 동생 김*자 모친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 [성도간증] 저도 받았어요!(최주* 어린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7~8)

    성령을 간구하는 많은 강남교회 성도님들 중 어린 아동 수령자가 탄생했습니다. 2022년 대방교회에서 강남교회로 전입된 윤유*자매의 차녀 최주* 어린이입니다. 어리게만 보이는 8살이지만 성령을 간구 하는 마음 만큼은 누구보다 간절했기에 하나님께서 주셨을거라 믿습니다. 최주* 어린이와 나눈 대화 속에서 성령을 구하는 혹은 성령충만을 원하는 성도님들께 큰 울림이 있기를 원합니다. 

    Q 1.어린 나이임에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 성령을 받고 천국을 간다는 마음이 너무 좋아요.

    Q 2.어떤 마음으로 성령을 간구 했나요?

    -성령을 꼭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최주* 어린이가 쓴 동시. 성령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Q 3.앞으로 어떤 성도가(어른이) 되고 싶나요?

    -성령충만하여 아빠를 전도하고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어요.

    <엄마의 코멘트>
    오빠와 함께 매주 화요일, 금요일 저녁 예배 전과 안식일 시작 전,후 총 4번의 성령 간구 안수기도를 해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기도 시간에 잘 적응하고 점점 10분 기도도 길지 않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스러웠고 오빠가 먼저 (23.10.23) 성령을 받은 사실에 마음의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주영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힘내는 모습에 엄마로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주시는 주님의 계획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신앙 생활 하는 제 모습이 안쓰러워 함께 수레를 밀고 갈 동역자들을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령 이후 교회에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신앙의 대화가 많이 뿌듯하고 마음이 따뜻합니다.
    저희 가정에 큰 사랑의 계획을 품으신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저와 우*이, 주*이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작고 연약하지만 허락하신 성령을 의지하면 어떤 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성령충만 된 삶으로 주께 받은 사명을 다 이룰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성도간증] 대학부 단기신학 간증

    [성도간증] 대학부 단기신학 간증

     

     

    윤*원 형제

     군대에 있었던 작년 1월쯤이었습니다. 상병 중반 넘어가면서 저에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크게 할 일이 없어지자 일상생활의 패턴은 무너졌습니다. 안식일에 온라인 예배조차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삶을 살았고 그런 상황은 전역을 하고 대학부 영은회에 가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영은회 말씀은 생소했고 전처럼 이해되지 않아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때 무너진 신앙을 깨달았습니다. 영은회 주제 말씀부터 이해하려고 집중했습니다. 단기신학에서는 더 나아가 신앙 성장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기신학을 마친 후 교회 사역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으로 부담을 느끼고 꺼려했던 교회 사역에 부족한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서부교회 아동부 영은회에 처음으로 집행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다음의 말은 영은회 발표 시간에 했던 다짐입니다. ‘나 윤양원은 다시 세움 받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올해 대부분을 군대에 있었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열심히 주님을 따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주께 다시 세움 받아 나아가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장*헌 형제

     대학부 영은회, 단기신학, 아동부 영은회 등의 교회 행사 일정을 함께하며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신앙생활을 편하게 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교회 행사를 참여하게 되었고 근 약 5주간의 연이은 행사 준비와 참여, 뒤이은 모든 개인, 일요일 교회 일정까지 쉼 없이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천국의 상급을 소망하며 기쁨과 묵묵함으로 모든 일정을 소화하려고 했습니다. 누적된 피로는 곧 처음 겪어보는 통증과 구토를 겪게 했고 구내염으로 밥을 넘기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면까지 부족해지며 회복이 더뎌졌습니다. ‘거절할까? 쉬고 싶다..’ 약해진 건강 상태는 ‘나’에게 집중된 생각들로 마음을 방해하기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선 이내 말씀을 통해 답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은혜이며 내가 아닌 주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고난에도 감사하는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장*은 자매

     단기신학을 통해 말씀의 갈급함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2주라는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는 힘들었지만 1년차 과정으로 구약성경 각 권의 내용과 전체적인 흐름을 배운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복된 삶으로 이끄시는 귀한 것임을 매 순간 온전히 깨달으며 순종으로 받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로 요셉의 삶을 묵상하며 특히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한 사람이었고 그 또한 하나님을 항상 바라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의 삶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삶의 기준이 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 삶 앞에 놓여진 고난과 역경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시간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희 자매

    2년차 과정에 참여하며 기억에 남는 말씀을 나눕니다.

    사무엘상의 ‘에벤에셀’의 의미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무엘상의 에벤에셀은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패배와 수치의 장소이고 다른 한 곳은 승리와 구원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 대성회를 통해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패배했던 이스라엘을 승리와 회복으로 이끄셨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의미를 기억하며 진정한 회개로 회복되는 신앙을 다짐했습니다.

    ‘부득이함’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사울왕이 점차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 첫번째 이유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울은 한 전쟁에 앞서서 제사장 사무엘이 오지 않자 조급함에 스스로 번제를 드리고 ‘어쩔 수 없다’며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행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느헤미야/에스라 과목을 공부할 때입니다.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며 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었는데 이에 16년동안이나 재건이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끝없는 막막함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었고, 결국 성전은 완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틀림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강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 고난이 곧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자신이 불완전하여도 온전케 해주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저를 완전하게 하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씀에 고난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기신학을 하기 전, 스스로의 힘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의무적이고 버겁게만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단기신학을 통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뤄지며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과 예배를 귀중히 여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끝나고 한 강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확실한 것은 주 안에 있는 기쁨은 초월적이라는 거야.’ 나의 깊은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내 삶의 고난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더 큰 것이거든’ 많은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윤*희 자매

     올바른 신앙과 전도를 위한 깊이 있는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기신학 1년차 과정을 참여하며 받은 은혜의 말씀을 나눕니다.

     창세기의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확인할 때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졌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은 더욱 곁에 계심을 느꼈습니다. 출애굽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구출하심의 은혜를 뒤로하고 만나를 보고 감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얼마못가 불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기분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못느끼는 것은 자신이 달라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늘 변함없으셨습니다.

     민수기를 배우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이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민수기의 나실인은 거룩하게 살기를 자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기를 자원해야 하며 지금의 세대야말로 정결과 거룩이 필요한 때라고 더욱 강조해주셨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는 사람들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두 시선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말씀에 확신을 가진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도서를 배웠을 때입니다. 전도서의 중심 주제는 ‘허무함’이었습니다. 평소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공허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삶은 모든 것이 헛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인되신 삶은 그 어떤 삶보다 값지며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신약개론에서 배운 내용을 나눕니다.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선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절대 스스로 무엇을 이룰 수 없는 존재라고 얘기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말씀안의 자유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라는 말씀대로 자유를 얻은 삶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히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삶에 대한 마땅한 기쁨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른 원망과 불평,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은 불신앙이었습니다.

     사복음서를 배우면서 마가의 ‘제자도’(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자세)도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부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 둘째. 고난이 올 때 기도하는 사람. 셋째. 어떤 불리한 상황에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 ‘말씀’은 ‘로고스’와 ‘레마’로 나뉜다고 해주신 내용입니다. 로고스는 평소 읽는 말씀이고, 레마는 실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말씀 그 자체인 로고스로 머물러 있지만 실천 할 때에야 비로소 그 말씀은 레마로 머물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운 말씀들을 지식의 나열로 끝내지 않고 행함으로 이룰 것을 다짐했습니다.

     대학교로 인해 서부교회와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은혜 아래 저를 돌보아주실 하나님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담대한 마음으로 온전히 삶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

  •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준비하면서 함께 나눌 찬양이 생각이 났는데 가사 묵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제 이름은 곽이안입니다. 2001년 대만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50세였고, 어머니는 38세, 첫째 언니는 11살,  둘째 언니는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셨고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아기들과 같이 여러 번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타다가 벼랑에 떨어지거나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들이 쌓여서 자라났습니다.

    간증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제일 중요한 게  공부, 진로 정하는 거죠.  저는 진로를 계획하면서 대중 매체와 관련된 전공과 외국어 관련된 전공,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때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대충 매체 산업 시장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도 높아서 겸사겸사 한국 유학을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신청하려면 고등학교 성적,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 다른 필수 조건 자격 요건들이 필요한데요.  고 3때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대만의 첫 번째 수능 시험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만은 수능 시험을 두 번 봐요. 입학은 9월이에요. 그래서 9월부터 1학기이고  2월부터는 2학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첫 번째 수능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사인을 받으러 저희 아버지한테 갔어요. 근데 저의 잘못이 뭐냐면 아버지한테 시험 포기 하겠다는 걸 미리 말씀 안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엄청 반대하셨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18살까지 살면서 저희 부모님 싸우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많이 놀랐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한국대학교  떨어지면 책임을 제가 지는 것을 조건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하나님께 제발 대학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잘 져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때가 2020년이였어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대만에서는  수능시험 두 번 본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두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3년 동안 배웠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2020년 7월에 두 번째 수능 시험을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만의 타이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합격했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고, 성균관대 입학을 했습니다. 합격했던 대만 예대는 혹시 몰라서 2년 동안 휴학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자퇴를 신청했어요.

    한국에 와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온라인 수업만 듣고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바램과 내 자신도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작년에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학교와 교회에  다니면서 알바도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어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른거 별로 없어요. 수업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잘 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수업은 많이 어려웠고 좋은 성적은 못 받은 것 같지만 학교생활은 잘  마쳤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을 무척 좋아하시고  알바하는 친구들은 한국 대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사장님이랑  알바하는 친구들이 수다도 떨고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도쿄 교회로 갔는데 사실 도쿄 교회는 도쿄 안에 없어요. 도쿄를 서울시로 비유하자면 도쿄 교회는 약간 외곽인 경기도 쪽이라고 보면 돼요.  제가 살던 곳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쿄 교회는 엄청 크지는 않아요. 성도님들 70프로는 대만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고 나머지 30프로는 일본 사람입니다. 안식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있고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은 매주 있지만 대학부 사청부 분반은 격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맡은 사역은 없었지만 아기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총회가 다른 지역에도 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목표가 있어요. 한가지 예로 들면  도쿄 교회 출석 성도들 중에서 오오야마라는 지역 근처에서 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꽤 많아요. 그 근처 성도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 같은 데에서  집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서 오오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물을 이미 확보하고 헌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느낀점은 일본에서  전도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신토라는 고여 중 종교가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신사들은 다 그들의 종교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나 참예수교의 전파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참예수교회의 원활한 전도와 새 교회 헌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도님들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생활은 제가 과거에도 여행한 적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건들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작년 7월 대만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 뉴스는 어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떨어져서 어떤 여자가  맞아서 죽었다는 뉴스였어요. 그 여자는 제 고등학교 친구에요.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날 알바하던 날이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 친구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나요. 멀리 있다보니 장례식도 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슬픈 마음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8월 달에 여름방학 때 잠깐 대만에 갔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열이 나서 더위를 먹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며칠 전에 친구랑 일본에서 불꽃 축제 갔었어요. 7월 말  더운 날에  친구랑 거의 10시간 동안 유카타를 입고 밖에서 다녔어요. 그것 때문에 더위를 먹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만에 가서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고  작은 의원에서 받았던  해열제를 먹어도 안 떨어져서 어머니가 큰 병원 데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니까 간 수치가 이상하게 높았어요. 보통 간 수치는 원래 40~50 이하가 정상인데 제가 그때 약 500~600 나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이 났던 거에요. 응급실로 가서 수액을 맞았고 감염성 단핵구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날은 수액 맞고 열이 떨어져서 입원은 안 했어요. 근데 뒤에 며칠 동안 계속 열나고 해열제 먹고 또 열나고 해열제 먹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 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모처럼 대만 가서 그리웠던  음식들을 못 먹었어요. 하루 종일 경구 영양식 한 캔씩 먹었어요.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저희 타이페이 교회 주보에 제 이름이 올라갔어요. 교회 성도님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1주일 지나서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 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할렐루야!

    아기였을때 가족사진

    최근 가족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안 자매)

    청년부 암송대회에서 우수상 받는 모습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나기전 공항에서 목자님 내외분과 생활관 청년부와 함께

    일본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일본 도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일본 알바했던 카페에서 특별활동 

     

    일본 오카야마


    일본 도쿄 메구로천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이파자 모친 간증)

    저는 올해 79세인 이파자입니다. 제 고향은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에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고, 저는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커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안 일만 하며 자랐어요. 20세가 되었을 때 동네에 4명의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는 고모였어요.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할머니가 낳은 딸이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모에게 “고모,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무슨 교회를 가!” “교회에 가면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동갑내기 4명이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간 교회는 장로교회였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바다를~”라는 찬송이 듣기에 너무 좋아서 제가 “한 번 더 부를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가 그날 그 찬송을 다 외워버렸어요. 4명중 저만 찬송을 다 외웠습니다.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 바다를 하나님 보좌 앞에 있고 싶어라. 유리 바다 건너편에 믿는 성도들 이것 또한 유리같이 맑고 맑도다.”

    교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대문 밖까지 들렸어요. “이놈의 계집애들! 오기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지! 그래야 이것들이 교회를 안가지.” 하고 막대기를 문 앞에 놓고 말씀하셨어요. ‘몰래 갔는데, 어떻게 아셨지? 다리 부러뜨리면 아무데도 못가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 하고 가만가만 들어갔더니, 막대기만 있고 작은 아버지가 안보였어요. ‘옳다 되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잠업(누에를 치는 일)시험장을 다녔어요. 우리 교회 권정자 자매 계시지요? 그분의 언니인 권정숙 언니가 같이 잠업시험장에 다녔는데, 저를 참 예뻐했어요. 하루는 “파자야, 너 교회 한 번 가볼래?” “네, 언니! 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그런데 언니가 다니는 곳은 참예수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교회 평이 안 좋았어요. ‘참예수교회는…날라리 교회라고 그러던데, 팔짝팔짝 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갔더니 교회가 조용했어요. 그 언니를 따라서 기도를 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교회라는 그 두 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25세에 시집을 갔어요. 도시 축에 드는 마을을 떠나, 시골 골짜기 삼계로……. 시집을 가서 생활하던 중에 머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어요. 머리에 수건을 묶고, 그래도 안 되면 벽에 머리를 꽉 대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아프면 이젠 배가 아프고,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팠어요. 아픈 것이 그치질 않아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가정 살림과 농삿일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남편이 세심이라는 마을로 민방위를 받으러 다녔어요. 남편은 제가 아픈 것을 안타깝게 보고 마음이 아팠던가 봐요. 제 남편은 교회라는 두 글자의 뜻도 모르고 지내다가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 “교회를 한 번 나가보면 머리가 안 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러 자식 다섯을 낳은 후에,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더니, 어느 교회를 가려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참예수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는 장로교회를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남동생이 찾아왔어요. 아침 시간에 잘 안 오는데 일찍 왔더라고요. 동생은 당시에 참예수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현재 전주교회 이정천 형제가 제 남동생이에요.

    “누나 어디 가려고?” “자꾸 아프니까 자형이 교회 나가 보라고 해서 지금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이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쩐지 누나 집엘 오고 싶더라니……. 참예수교회를 나가야지요.” 했어요. 남동생의 권유로 그날 장로교회를 가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토요일에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 남동생이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도 참 고마워요. 살다보면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나에게 교회 나가 보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참예수교회를 갔는데, 기도소리를 듣고 옆집 아줌마는 계속 키득키득 웃었고, 저도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웃음이 너무 나오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설교 말씀을 듣고 앉아 있었어요. 삼계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예배가 없었어요. 그 다음 주에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저 혼자만 갔어요. 동생도 볼 겸해서…… ‘남편이 교회를 그렇게나 권했는데, 내가 머리 아프다 죽으면 남편이 뭐가 되겠나.’ 하고 결심을 하고 다녔어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농사짓고 누에 치고 담배 농사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교회를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또 갔는데, 이번엔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기도할 때 안수 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을 받았답니다. 진동이 오고 몸이 떨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여기서 저기까지 갔어요. 그 때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눈물이 기뻐서 나오는 건지, 슬퍼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 살아나온 과정을 생각해볼 때 모든 뜻을 하나님 앞에 다 풀고 고백을 해야겠구나! 삼계교회가 떠나갈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어요. 성령 받는 광경을 남편이 다 봤어요. 울고 싶은 대로 다 울었어요. 누군가 자제를 안 시켰으면 하루 종일 가겠더라고요. 어찌나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던지……

    종을 친 지는 오래 되었고, 기도하다 생각하니 너무 이렇게 해서는 문란하겠구나 해서 겨우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도 그만 하라고 해.” 그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일단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전부 털어놓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웬만한 사람은 부끄러울 텐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냥 담대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개운하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독히도 저를 괴롭혔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성령을 받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눈이 떠지질 않고, 벽에 꽉 기대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 오늘날까지도 그 때 느낀 그 두통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신경 좀 쓰고 감기가 들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 때의 두통과는 완전 달라요. 믿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뜻을 알고, 이제 교회 안다니고는 제가 도저히 두통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옛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가방만 흔들거리고 교회만 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신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면 내 삶이 평탄한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우리 아이들한테는 엄마만 살짝 다닐 테니 너희는 나오지 마라. 제가 아직 믿음이 없었을 때다 보니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 다섯 명이 전부 교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애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교회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 개도 교회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예배 끝나면 일어나서 같이 교회차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아들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다보니 교회를 안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큰 아들도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저는 현재 자식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시험거리로는 농사철에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보리 농사하던 시절에 교회를 가려고 애들 다 학교 보내고 아침 8시쯤, 안식일이었는데 농사 기계가 들어온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교회 가야 하는데……. 그냥 가버리면 남편과 싸우게 생겼더라고요. 일단 내 임무는 힘껏 마치고 난 후 교회를 가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남편이 믿지 않을 때였거든요.

    농사할 때 땅에 거름을 뿌리지요? 우리집 거름은 유달리 무거워요. 비를 자꾸 맞아서…… 안식일 이른 아침에 그 거름을 손으로 들어올렸는데, 그 무거운 거름이 하나도 무겁질 않는 거에요. 내 정신이 아니고 누군가 꼭 지켜주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거름을 같이 들어주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무거운 거름이 그렇게 뿌려도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교회차가 마을을 다니면서 신도들을 실러 오는데, 교회 다니는 모친이 논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이구 오늘 안식일인데 일해요?” 하시기에  “아니요. 빨리 해놓고 가려고 해요.” 교회차가 멀리 세심을 돌아서 그 모친을 싣고 가는게 보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빨리 해놓고 교회 가야겠는데…….’

    그런데 교회를 꼭 가려고 마음 먹으면 절대 안 될 것이 없었어요. 그 일을 다 해놓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갔습니다. 세수를 대충 하고 신발 신고 2킬로미터 삼계까지 정신없이 내 정신이 없이 뛰어 갔더니 예배가 시작을 안했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아!  내가 꼭 교회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가야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꼭 교회를 가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하면 그 힘이 나도 모르게 다시 치솟더라고요. 하나님께선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힘을 주시는구나. 열심히 말씀을 듣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다음 안식일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벼를 훑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밤에 훑으면 안 되요? 탈곡기가 있잖아요. 호롱기 아시지요? 호롱기로 벼를 훑은데, 밤에 그걸 다 훑었어요. 안식일에 할 일을 전날 저녁에 다 끝냈어요. 끝내고 나니 이웃사람들이 무엇이 바빠서 밤에 벼를 훑냐고 하더라구요. 바빠서가 아니라 교회 가려고 밤에 일을 했다고 말하고 넘어갔어요. 일을 꼭 해놓고 가야겠다 맘을 먹으면 밤에라도 그 일을 마치게 해주시더라구요. 안식일에 모를 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꼭 시험거리가 닥쳐와요. 닥치면 그것을 이겨 나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모를 심는데, 그때는 교회에서 논이 가까웠어요. 남편과 같이 모를 심다가 “어머 어떡해. 나 교회 가야 하는데.” 남편은 “갔다 와. 나 혼자 심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면 쉬엄쉬엄해요. 나 바로 빨리 갔다 와서 심을게요.” 갔다 와서 바로 논으로 들어가서 심고 그랬어요.

    남편도 교회를 나가라고는 했어도 농사일로 바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교회를 괜히 나가라고 했다며 말도 했지만, 그때는 제가 말했어요. “머리가 안 아파서 건강해서 일을 잘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교회 가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니 앞으로 당신도 교회에 다녀야 해요.” 그러면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젠가 나도 간다.” 저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1997년 10월이었어요. 그 뒤로 13년이 지난 2010년에 성령을 받았어요. 요즘은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잘 못 나오는데,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그런가 봐요. 열심히 하나님께 구하면 낫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없을 텐데, 기도 열심히 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세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도 그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이왕 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갈 때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다 보면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열심히 믿고 삽시다. 저도 앞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믿고 살겠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나들이 가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모친은 남편이 교회나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시답니다. 

  • [성도간증] 믿음의 가정을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김*현 자매)

    [성도간증] 믿음의 가정을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김*현 자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 112:1~3)

     

    저는 김*정 집사님과 하*순 자매님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가정을 꾸리실 당시에 어머니는 비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세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참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 속한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큰 자비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교회 출석에 대한 기억이 참 많습니다.

    당시 주 6일제여서 토요일에도 등교하고 출근을 하셨지만 저녁 예배, 안식일 예배를 꼭 참석했습니다.

    1) 성균관대역 근처 4층 건물에 교회가 세워졌던 것

    2) 저희 아버지 첫 차가 르망이었는데 미선이네 가정 혹은 세* 집사님 가정을 카풀해서 교회 다녔던 것

    3) 어린 나이이지만 저녁 예배 꼭 참석하고 떠들면 혼났던 것

    4) 당시 북부 찬양 한마당 비슷한 행사가 있었는데 드레스 입고 나가서 상을 탔던 것

    5) 송년의 밤 때 앞에 나와서 암송 성구들 외웠던 것

    6) 옥상에 아동부를 위해 가건물을 지어주셔서 실컷 놀았던 것

    7) 예배 끝나고 교회 앞 슈퍼에서 게임하거나 한나 언니네 집 놀러가서 같이 놀았던 것

    8) 사촌 동생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안식일 점심에 항상 추가로 차량 운행을 맡아 하셨던 것 등이 있는데요.

    이런 어린 시절 교회 출석에 대한 많은 기억들은 저로 하여금 예배 참석은 참 소중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교회 출석이 형식적이고 맹목적인 스케줄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린 시절 예배 참석에 대한 이러한 부모님의 노력들 덕분에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시간이 되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신앙을 갖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는 바입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삶의 터전은 교회와 가까워야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고 기존의 집이 너무 좁아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인데

    당시 저희는 세상적으로 살기 아주 좋은 인계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사 장소를 고민하던 중 부모님께서는 교회가 오목천동임을 고려하여

    다른 후보지보다 교회에서 더 가까웠던 호매실동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지금은 호매실동 역시 많이 발전하였지만, 당시에는 정말 논과 밭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 때 이런 촌동네로 갑자기 이사온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인계동에 계속 거주하는 것, 혹은 집값 상승 기대지, 학군지로 이사하는 것이 더 좋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교회를 가까이 두고 살겠다는 부모님의 결단으로 인해

    저는 신앙을 지키면서도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더욱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음악에 대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 반주 봉사에 대한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를 반주 봉사자로 육성하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매일 2~3장씩 통합찬송가 1장에서 끝장까지 악보 그대로 치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만약에 178장 찬송가가 4절까지 있으면 악보 그대로 4번을 쳐야 인정입니다. 이 연습을 몇 바퀴를 돌리셨습니다.

    뭐든 연습은 생각보다 지루합니다. 하기 싫어서 피아노를 쾅쾅 내리친 적도 있고, 피아노 뚜껑을 세게 닫아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키시니까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렸음에도,

    실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교회에서 반주 봉사를 권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방법이 너무 싫었는데, 돌이켜보면 적어도 저에게는 그것이 정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다른 악기도 운지법만 배우면 바로 원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교회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제가 따로 음악 전공을 하지 않았는데도

    음악적 소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작용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이렇다 할 대회 한번 나간 적 없고 체르니,

    소나타 이런거 친거 기억 하나도 안 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음악적 재능을 칭찬하고 어떻게 해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하나님 뜻에 맞는 부모님의 소망 덕분에 귀한 달란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학업 성적에 대한 욕심이 남 못지 않게 많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공부량도 많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많은 시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제가 원하는 진로는 법대에 입학하여 사법고시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권하셨습니다.

    교사 중에서도 초등교사가 되기를 권하셨고 고 2 직전까지 의견에 분분하다가 결국 교대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당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기가 많아, 교대에 입학하기 위해선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만 했습니다.

    상위 1%의 성적을 낼만큼 열심히 했지만, 결국 수능에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로 고배를 마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청주교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대학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제가 2학년 2학기 때 학점을 최고점으로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나라에서 지방대 인문계열 인재를 육성한다며 새로운 장학제도를 신설하였습니다.

    지방교대 문과 계열도 이에 해당하였고 학교당 1명만 해당했기에 1등만 주는 제도였습니다.

    사실 제가 그동안에는 그렇게까지 성적이 좋진 않았는데

    학생처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그 장학제도의 수혜자가 되어 저는 남은 2년의 대학 학비 전액을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는 정기가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교대 학비가 타 대학에 비해 크게 비싸진 않지만

    이런 모든게 맞아 떨어지는 과정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축복을 주신다고 느끼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정은 어려울 때 함께 기도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엄마 아빠의 기도 소리가 저의 모닝콜이었습니다.

    임용 준비 시절에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20분씩 매일 1시간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구성원간의 대화도 많고 더욱 소통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공무원 외벌이로 자녀 셋을 키우시면서 많이 어려우셨겠지만 저는 커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오히려 조금 부족할 수 있으나 각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갚아주시고 인도해주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믿음을 원하시고, 그 속에서 개개인에게 역사하신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리신 이런 축복들은 비단 저 혼자의 기도와 노력이 아니라

    믿음 하나로 살아가려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구성원간의 믿음과 소망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주고 성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분명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제가 올해 결혼 5년차인데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도 매일 저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입니다.

    제 평생의 큰 기도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면서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두려움도 많지만

    매일 맞닥드리는 사소한 성장에 감사하기도, 부족한 실수에 회개도 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 가정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며 오늘 저의 간증이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께 은혜로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편집 : 안*수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