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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이제야 고백하는 나의 하나님 (대방교회 최*혜자매)

    [성도간증] 이제야 고백하는 나의 하나님 (대방교회 최*혜자매)

    할렐루야!  이렇게 뒤늦게나마 하나님을 고백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리며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거제에서 태어났고 모태신앙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제가 교회에 다닌 것은 모태신앙에 따른 의무감뿐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저는 건강의 문제로 교회에서 많은 은혜를 입었기에 이 부분도 교회를 다니는 또 하나의 의무감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거나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 가면 그저 친구들이 있어 재미있어 가거나, 혹은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교회는 저에게 있어 매우 단순한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신앙에 대한 고민 한번 없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대전으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로 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매우 들뜨고 즐거웠습니다. 당연스럽게 교회는 마음에서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교회와는 멀어진 채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생활과 학업에 집중하는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석사과정 입학을 준비하였고 입학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연고가 없던 저는 대방교회에서 운영하는 (자매)생활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 입소하면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와 밀착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 다시 꾸준한 출석을 하게 되면서 그 당시에는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은 고등학교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미온적인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석사과정을 마치게 되었고, 학생 신분을 벗고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저는 또다시 박사과정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참고로 저는 심리치료학을 전공하였고, 직업 또한 인간의 마음을 돌보는 직업이었기에 항상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분야의 공부를 하다 보니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 갈등과 부딪힘이 있었고 늘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그에 영향은 컸고 충돌되는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려 애쓰기보다는 한쪽에 덮어 둔 채 학업에 더욱 비중을 싣고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박사과정을 하다 보니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교회를 다니는 모든 것들이 더더욱 뒷전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오더라도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늘 세상의 것에 저도 모르게 매몰되어 내가 지금 뭘 쫓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상에 쫓겨 지내던 와중에 학기가 지나고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 왔고, 이제 마지막으로 논문에 집중해 보자고 마음먹고 준비하던 찰나에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부터 정확하게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신체적 증상들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식욕도 사라지고 잠도 잘 잘 수가 없었습니다. 체중은 점점 줄어들었고 걷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며칠을 쉬어봐도, 병원 치료를 받아봐도, 약을 먹어봐도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애를 쓸수록 더욱 괴롭고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달팠습니다. 이처럼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알아차린 후 저는 모든 일과 공부를 중단하였습니다. 이때 정말 저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정말이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님 찾는 일 밖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생활이 정지되고 바닥을 치고서야, 그제야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쯤일 계기로 제가 지금껏 추구해 왔던 가치관, 신념, 그리고 지금의 이 고통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이 고통은 분명 하나님께서 제 몸을 통해 보내 주신 신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중요한 무언가를 알아차리라는 신호 말입니다. 저는 이 중요한 신호를 깨닫기 위해 힘써 기도하며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저의 신앙관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그동안  “몸은 교회와 하나님 앞에 간신히 나와 있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참 많이 멀어져 있었구나. 이제는 더 멀어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속을 등한시해 왔고 세상에서 자유분방함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구속하신 당신의 자녀를 끝끝내 이끌어 오시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며 진정으로 나아 오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고백하기 참 부끄럽지만. 저는 인제야 제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과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고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움은 중요치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 끝까지 나아가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기도로써 하나님을 부르짖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제 삶의 관계를 맺어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고 부족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하나님이 제 옆에 계심을 알게 되었고 늘 내 안에 계셨다는 것을 이제는 확신합니다. 제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이고 또한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지, 과거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갈지 다시금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게 서보겠습니다.

     

    시들어 가던 제 영혼에 사랑과 기회를 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 139: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성도 간증]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 간증]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 이 간증은 2019년 8월 안양교회 열린 예배 시, 신정* 형제님이 하신 간증을 편집하여 올린 글입니다.

    믿음이 많이 부족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부족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간증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저희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어 이를 간증함으로 하나님께 회개의 기회를 삼고 앞으로 저의 신앙생활의 지표를 삼고자 간증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대전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짐>

    먼저 저의 신앙 과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저는 59살로 대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저희 집안은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조상님께 열심히 제사 드렸고, 어머니는 아침마다 부엌에 물그릇을 떠다 놓고 누군가에게 열심히 비는 것을 항상 보았습니다. 저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밖에서 노는 것 밖에 몰랐습니다. 야구를 좋아해서 맨날 친구들과 까맣게 그을려가며 놀러만 다녔어요. 미래에 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공부한 기억은 없고 매일 학교 갈 때 가방에 도시락만 바꿔 갔어요. 어린 나이도 아닌 열여섯 살까지 저는 하나님도 모르고 인생에 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는 영육 간에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중3 졸업할 때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공부도 안 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면 체격도 적고 힘도 없는 내 삶이 참 고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었습니다. 40년 전 인터넷도 없고 정보도 거의 얻을 수 없었던 시절에 저는 대전에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 학교별로 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대구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벌써 고교 평준화가 정착되어 일정 시험을 마치고 추첨으로 고등학교가 배정 되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은 되지만 그 당시 어린 저에게 미래에 잘 살려면 시험을 쳐서 대전고등학교를 가야 내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생각일 뿐 대전은 대구하고 거리도 멀고 일가친척도 없는 전혀 낯선 곳이었습니다. 가정 형편도 대전에서 학습시킬 형편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대전고등학교 갈 실력은 전혀 없는 상태였죠. 공부를 안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간다고 하니까 아버지도 반대요, 담임 선생님도 반대요,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통 때는 제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는데 그때 대전 유학에 대해서는 고집을 안 꺾었어요. 계속 보내달라고 졸랐고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전고등학교 입시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어요. 불 보듯 뻔하게 제 실력대로 불합격했습니다. 대전고등학교 1차 시험, 또 후기 고등학교도 시험도 봤는데 모두 떨어졌어요. 그 열 여섯살 어린 나이에 대구 친구들은 다 고등학교를 갔는데 저는 학교도 못가고 집에서 그냥 놀았습니다.

    <참예수교회를 가게 됨>

    그때 시험에 떨어지고 대전에서 대구에 있는 집에 가야되는데 차비가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입시철이라 추운 겨울이었어요. 대구는 가야 되고 대전은 이방도시고 대전역 광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걸인처럼 차비를 빌리려고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 쫓아가면서 집에 가야 되는데 차비 좀 도와주라 하니까 아무도 안주더라고요. 시험 치려고 차고 온 손목시계가 생각이 나서 대전역 근방에 전당포를 찾아가 차비와 바꾸려 했지만 또 거절당했어요. 추운 날 참 힘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대전에 시험 치러 와서 공부는 안하고 시내버스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참예수교회를 본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대학 다닐 때 방학에 대구에 있는 참예수교회에 데리고 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낯선 대전에서 참예수교회를 보니 굉장히 반가웠었거든요. 그 기억이 나면서 참예수교회에 가서 돈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때도 믿음이 생각나고 하나님 말씀이 생각 난 것이 아니라 그냥 돈을 빌리려고 갔습니다. 제가 길눈이 좋아 버스길 더듬어서 걸어갔어요. 그때 참예수교회는 보문산 밑에 있었어요. 차비를 얻으러 참예수교회를 찾아간 그때가 제 의지로 참예수교회를 간 첫 발걸음 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간 것도 아니고 단지 돈을 얻으러 간 거였지요. 그때 배영도 장로님이 담임목자로 계셨습니다. 새까맣고 여드름 투성이인 전혀 모르는 어린 청년이 돈이 없어 차비 얻으러 왔다고 하니까 사택 작은 방에 들어오라고 하시며 밥도 차려주시고 차비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대구에 도착했고 아버지께서 참 대책 없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무척 꾸중을 하셨습니다. 3, 4월까지 그냥 그렇게 집에서 놀아라 하시더니 자식이 그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지 대전에서 재수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대전고등학교에 입학 그리고 참예수교회에서의 신앙생활>

    말씀드렸지만 저는 집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제가 바뀌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공부가 재미있었고 참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대전 충남지역에서 중학생이면 가장 가고자 했던 대전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험과목이 되게 많았어요. 대전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마침 학교가 대전교회하고 무척 가까웠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하숙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돈 얻으러 갔던 학생이 이제 예배드리려 안식일에 학생 예배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그때 저는 인생의 많은 죄가 생각이 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구원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전에서 세례를 받고 바로 목자님 안수할 때 성령도 받았습니다. 그 후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과 동시에 대구에 있는 약학대학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약사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철없고 무모한 고집이 당시에는 고등학교 다 떨어지고 대전역 광장에서 집에 갈 차비를 얻으려고 구걸하는 참담한 모습이었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참된 참예수교회를 찾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만일 대구에 그냥 있었으면 저는 아직도 신앙생활을 안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으나 신앙에 소홀한 삶>

    저는 사실 어떻게 해서 저의 삶이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몰랐었을 사람이 대전이라는 곳에 오게 하셨고 또 세례, 성령을 받게 하셨고 죽은 영을 살려주셨습니다. 또 저 같이 세상을 헤쳐 갈 지혜와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고 육신적으로는 편안히 살았는데도 저는 교회를 위해서 영적인 형제자매님을 위해 충성된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제가 30대 초반까지는 약국을 운영했고, 50대 초반까지는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제 삶을 살기에 급급하여 교회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처리할 일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또 교회의 어려운 일이나 행사에도 마음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자녀들의 어린 시절 종교 교육도 소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부인을 주셨습니다. 착한 아들과 딸을 주셨고요. 그리고 착한 아들과 딸에게 분에 넘치는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이런 복을 받을 당시에는 얼마 동안 하나님께 감사하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세상일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건강했었는데 신경성 소화불량으로 한 2주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저에게 하나님 말씀이 전과 다르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또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교회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이라는 말씀과 영원한 ‘천국’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멀리 느껴지고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느끼며 하나님 은혜를 모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보통의 가정처럼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제 마음속은 기쁨이 없이 항상 공허했습니다.

    <아내의 암 진단, 그리고 신앙의 회복>

    이렇게 하나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세상일에만 집중하던 어리석은 저에게 2년 전 2017년 7월에 제 인생에 최대의 아픈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믿음이 없는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늘 간구하고, 어리석은 남편을 늘 이해하면서 어머니같이 사랑하며,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육한 저희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에게 아픔과 두려움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먼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누가 기도를 하지. 어리석은 이 자가 세상을 사는데 누가 위로하고 도와주고 지혜를 주지. 자녀들은 누구에게 안식을 얻지. 나는 누구하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받지.’

    참으로 제 인생에 처음으로 이처럼 아픔과 고통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이때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한 말과 행동이 아직도 제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눈물 한 방울 딱 흘리더니 소매에 눈물 닦고 그 이후에는 눈물을 흘린 흔적을 본 적이 아직까지 없습니다. 아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부모님에게나 가족에게나 친구들에게는 진짜 선한 진심을 대했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후회가 없으나,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과 하나님과 교회에 봉사하는 것에 소홀한 것이 후회된다며 시간이 주어지는 데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싶고, 아들, 딸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인생을 살아가도록 교육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 시간이 주어지는 데까지 아들, 딸의 구원을 위해 권면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갈 수 있는 곳은 주님의 몸 된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게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진짜 저는 많이 변했습니다. 제 마음 속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주 나쁜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와 목자님, 성도님들이 그냥 불편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교회에서 선포된 하나님 말씀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제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교회에 대한 불만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목자님들과 성도님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달아졌습니다. 또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이날이 축복임을 깨달으며 지금 살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제가 가지려고 해서 생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2년간 참 많은 변화가 저에게 있었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다짐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셔야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암 진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자 엄중한 꾸중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에 순종하여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크신 은혜의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벼이 여긴 저에게 주시는 엄중한 꾸중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가정은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말한 것 같이 아내는 하나님 말씀 듣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교회를 참으로 섬기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딸도 하나님 말씀과 안양교회 성도님들의 선한 본으로 믿음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안양교회 성도님들의 선한 믿음이 딸에게도 믿음의 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도 아직은 안식일 예배드리는 수준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로 성장할 것을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어린 청년 시절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던 저를 아무 연고 없는 대전으로 오게 하시고 고등학교 모두 떨어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저를 하나님의 참교회로 불러주는 계기가 되었고 참으로 부족한 저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주신 인생의 복과 자유함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오직 저의 교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삶을 살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아내의 아픔을 통해서 다시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의 개인과 가정에 주시는 어려움이 단순히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선한 구원의 말씀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양교회 여호수아 회원님들이 세상 살기 힘든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안양교회 아동부와 학생과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칠까 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 간증]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찾자.(수원교회 김*수 집사)

    [성도 간증]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찾자.(수원교회 김*수 집사)

    할렐루야!

    부족한 저에게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 은혜 감사드리며, 예수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시3:3)

    하나님은 나의 주관자시며 나의 삶에 동반자이기도 하시고 나를 지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오늘은 2014년 봄에 경험했던 일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고자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날도 평소처럼 8시 조금 이른 출근을 했습니다. 이 학교에 교장으로 온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입니다.

    교장실에 도착하여 잠시 묵상기도하고 앉아서 오늘은 무슨 행사들이 있나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원이 나가버렸지요.

    그리고는 화재경보기가 심하게 울렸어요. ‘학교 건물이 크고 많으니 또 어디서 뭐가 잘못 되었겠지’라 생각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사분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고 이상이 없다면서 화재경보기 관리기를 조작하여 경보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아서 전기 관리 업체에 연락하라 말하고 다시 교장실에 들어와서 업무를 보려는데, 일찍 출근한 영양사가 오더니 지하에서 이상한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을 했지요.

    그때 마음이 탁 내려 앉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지요. 지하로 달려갔습니다. 건물 지하에게 크게 두가지 설비가 되어있습니다.

    하나는 학교 전체 건물에 전원을 공급하는 거대한 전기실과 온수와 상수를 공급하는 관이 복잡하게 있는 곳인데, 크기가 각각 50평쯤 되지요. 내려가 보니 전기실에서 까아만 연기가 철문 사이로 마구 새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건물을 책임자가 나이기에 멍해졌습니다.

    맘속으로 ‘오! 하나님! 할렐루야’를 외치며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출근한 주무관에게 119에 연락하라 말하고 전기실 열쇠를 찾았지요.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못 찾게 하셨지요. 전기실에 강한 전류가 흐르고 불이 났다면 무엇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 하나님이 저를 막아 두신 거지요.

    소방대원들이 오기까지 그랬습니다. 강하고 급한 불자동차 싸이렌 소리가 들렸고 곧 화제 진압 대원들이 도착하여 상황 설명하고 대원들이 전기실 문을 열었습니다. 매케한 냄새가 꽉 차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나를 빨리 나가라 말했고, 입과 코를 막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하는 시간인데 소방차가 10대가 넘게 도착하고 싸이렌 소리가 나니 아이들이 어리둥절하여 선생님께 부탁해서 교실 출입을 막고 운동장에 대기 시켰습니다.

    전기실에 들어갔던 대원중 책임자가 나오더니 다행히 전기실 전체가 아닌 하나의 변압기에서 불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독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교장실에 들어와서 기도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기도했는데!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잠시 형식적으로 ‘두 손 잡고 묵상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화재 사건이 있은 뒤로는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출근하고 점심에 퇴근 전에 하루 3번씩 꼭 기도하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퇴직하기까지 약 7년간 아무 일없이 학교를 경영하고 마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경고가 없었다면 기도할 줄 몰랐을 것이고 더 큰 일이 나를 힘들게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출근하여 기도하고 나면 하루가 평안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생각하며 지나는 나날이 되었습니다.

    성도님들! 나의 직장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 생각은 교회에서만 해야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계시니 그분을 항상 찾아 나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속에 하나님이 계시니 언제나 찾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 [성도간증] 전주교회 이수규자매 간증

    [성도간증] 전주교회 이수규자매 간증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심으로 주께서 제게 일하신 날들을 돌아보며 주를 찬양하고 주의 행하심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교회에서는 간증의 자리가 많습니다. 전에는 간증을 하라고 하면 걱정이 앞섰습니다. 간증은 거창한 것을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함에도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막연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라고 생각했지 제 일상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간증을 하라고 말씀하시면 뭐부터 얘기해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주께서 이루심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행14:17)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제가 간증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나 그 이후나 주님은 변함없이 일하셨습니다. 이를 알게 하심이, 주님의 손길을 선명히 느낄 수 있게 하심이 저의 간증입니다.

     

    저는 5년간 수험생활을 하고 올해 간호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결국 합격했기 때문에 간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형통한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형통을 success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라는 말이겠지요. 그런 요셉의 삶에서 success란 단어가 기록된 부분은 딱 두 군데 있습니다. 노예였을 때, 그리고 감옥에 있었을 때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주님과 함께하는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노예와 죄수일 때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기록한 건 성공이란 직업이나 직책에 있지 않고 삶은 살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끄시는 과정임을 말씀해주시고자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3)

    성공이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어떻게 합격했는지가 아닌 5년간 주께서 저와 함께하신 발자취를 나누고자 합니다.

     

    직업으로 간호직 공무원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단순합니다. 병원은 대개 3교대를 하는데 공무원을 하면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2년 정도만 공부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수험기간은 점점 길어졌고 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병원에 다니면서도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생각보다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을 하게 되면 학점이 필요하지 않아 학점 관리를 하지 않았었고 경력 단절인 상태로 병원을 지원하게 되면 제가 만족할 만한 곳에 취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였습니다. 사실상 저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겉모습으로는 예배를 드리고자 함이었지만 속마음은 제 욕심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렇게 수험기간은 더욱 길어지고 4년 차가 되었을 때 필기에 합격하고 면접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1배수 합격이지만 동점자가 발생하였고 제가 그 동점자였던 것입니다. 면접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동점자인 다른 사람을 안타깝게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렇게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 이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 싶지 않던 제 속마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입니다. 공부를 계속 해야하는 지 병원에 가야할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정말 내게 원하시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기도 끝에 병원이 아닌 계속 학업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욕심으로 시작했던 공부가 끝이나고 주님이 이끄시는 길대로 가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5년차 수험이 시작되었고 그 해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병원과 공부에 관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내려놓음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중에 주님을 선택하느냐를 물어보신 거였습니다. 애써 외면했지만 병원 스펙을 따졌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써왔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치를 두었던 것을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년간 공부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같은 공부를 하였지만 늘 새로운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다 적지 못할 만큼 주님의 도우심과 채우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5년의 세월을 통해 얻은 것은 합격이 아니라 세상 문화에 젖어 있지만 물들어 있는지조차 몰랐던 저를 일깨워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5년간의 시절이 헛되이 흘러가게 두시지 않으시고 값진 시간으로 만들어 주심이 참 놀랍고 감사합니다. 제가 합격을 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같은 고백을 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합격을 하게 된 것은 그동안 공부해 놓은 것이 있으니 합격할 때가 돼서 합격한 것도 아니고 사역을 열심히 해서도 아닙니다. 주께서 정하신 때가 이 때였음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합격을 주실 수도 있으시고 불합격을 주실 수도 있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모든 전쟁의 승리와 패함이 그들의 능력이나 칼과 창에 있지 않았듯 수험에 있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격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 중 일부임을 보게 됩니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제게 하나님 나라에서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것은 영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리스도인에게 성공의 정의가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공부를 하면서 사역에 힘쓰는 동역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공부가 사역을 하지 않는 핑계가 되지 않고, 사역이 공부를 하지 않는 핑계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동역자로 있어 주심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부족했고 여전히 부족한 저를 앞으로도 이끄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신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 가치 있고 빛날 수 있길 노력하며 기도합니다. 고난 중에 있을때에도 평안할 때에도 언제나 선하신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게 주신 기쁨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여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7-18)

  • [성도 간증]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

    [성도 간증]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간증 나눌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학생부 영은회부터 지금까지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길 소망합니다.

    <학생부 영은회에서 받은 은혜>

    저는 학생부 영은회를 가기 전까지 하나님을 부인하고 많은 죄를 지어가며 살아갔었습니다. 찬양보단 가요를 즐겨 듣고 교회에 가기보다 친구들과 놀러 가고 세상 친구와 이성 교제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생부 영은회도 그냥 얼른 끝내고 와버리자는 생각으로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강의 시간이 오고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저는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울 때는 따뜻하게 누구보다 편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죄를 지어가며 살아가는 제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기도회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너무도 많은 제 죄를 고백하며 이렇게 부족한 제 모습도 사랑으로 보듬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제 믿음이 이번 영은회를 통해 더 굳세져서 신앙심도 회복하고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도구로 써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주시고 지금 이 마음과 생각이 변치 않아서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 안양교회로 돌아와서 성도님들께 영은회에서 느낀 점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느낀 것이 많아서 간증을 준비해 나가서 하나님 앞에서 저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괜찮다고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나서 너무 신기하고 울컥해서 간증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고 이렇게 부족한 저도 사랑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꼭 교회도 자주 나오고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뒤로 이성 교제도 끊고 기도회도 나와 보고 저녁 예배도 참석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도 점차 해결되고 방언도 점점 달라져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양교회 청년부와 아동부에도 성령이 계속 내리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심을 또 한번 느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도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기도도 더 열심히 하고 교회 내에서 봉사에도 더 힘을 쓸 수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 탐방에서 받은 은혜>

    그리고 얼마 뒤 교회 역사 탐방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가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제 모습이 제가 생각해도 신기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서도교회에 가서 한국 참예수교회의 역사도 듣고 박필선 목자님과 배영도 목자님 등등 수많은 신앙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참예수교회가 정말 성령이 역사하시고 평범한 교회가 아닌 정말 특별한 교회임을 깨닫고 참 진리를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전하다가 순교 당하신 박필선 목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하나님의 증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굳세게 자리 잡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요즘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고 체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많은 일들을 통하여 다시는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항상 저를 사랑해주시고 보듬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저와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이 빌립보서 3장의 말씀처럼 제게 유익한 것보다 그리스도를 바라며 예수님과 바울사도처럼 또 우리의 신앙 선배님들처럼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7-9)

    <안양교회 김*솔 학생>

  • [성도 간증] 아토피 치유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성도 간증] 아토피 치유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먼저 이렇게 주의 은혜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중1 가을부터 지금까지 약 2년 정도 아토피를 앓았습니다. 아토피는 식탐을 이기지 못해 먹은 많은 음식으로 인해 누적된 독소, 마음 관리를 잘 하지 못해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혼란 등 여러 원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려움과 진물 등과 같은 증상이 있었습니다. 약 2년 간 미흡한 대처로 인해 작았던 아토피는 계속 커져가 몸 전체로 번지게 되었고, 원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만큼 악화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게 되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없으며 밤에 잠에 들기가 힘에 겨웠으며 일상에서 제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모든 것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온 게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며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록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함께 계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잘 수 없어 힘들어했던 밤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증상 중 하나였던 가려움은 특히나 밤에 더욱 심해졌는데, 이미 상처 부분에는 곪을 대로 곪아 진물이 나왔으며, 손을 가까이 대면 세균 감염이 있어 더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히 손을 댈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긁지도 못하고 가려움만 느끼는 채로 누워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잠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을 감고 긁지 못하게 천으로 감싸둔 손을 배게 뒤에 두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잘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면 새벽 즈음에 긁지 않으려고 감싸둔 손이 무색하게 무의식 속에서 감싸둔 손을 풀고 상처를 긁는 제 자신을 보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잠이 확 깨게 되는 나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한 번 깨고 나면 더더욱 잠은 오지 않았고 그럴 때면 저는 기도를 하고, 가만히 누워 시편을 읽어주는 영상을 들었습니다. 특히 시편 121편을 들을 때면 이 밤에도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깊이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121편)

    다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예민하여 작은 것에도 불안해하고 근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토피와 싸우던 중 힘든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힘든 일 그 자체에 대해서도, 그리고 계속 신경을 쓰면 악화될 것이 분명한 아토피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닥쳐온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고, 자연스레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나에게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나의 모든 상황을 얼마든지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며 기도할 때 마음에 평안이 있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감사하게도 힘들었던 상황 또한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후 크고 작은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돈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니느라 (고전 10:13)

    또한 이 병을 가지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중보기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가족끼리만 제 병을 나누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으로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상처 부위를 가리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교회 성도분들도 제가 가지고 있는 아토피를 아시고 기도해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확실한 소망은 가지진 못했습니다. 가족끼리 기도했을 때에는 확연한 변화가 없었기도 했으며 중보기도에 대한 체험도 없었기에 믿음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새벽 기도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지교회의 월, 목 기도회에 참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성도님들과 같이 기도하면서 치료 속도는 확연히 빨라졌습니다. 흐르던 진물을 말라갔고 곳곳에 나온 두드러기는 잠잠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당시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던 때였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저 너무 감사했고 성도님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어 주의 손길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7)”

    또한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으로 아토피가 크게 번지게 되며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학생으로서 꼭 필요한 수업조차 참여할 수 없게 되자 기도와 함께 시작한 치료는 해독으로 몸의 독소를 배출하고자 어떠한 음식도 먹지 않고 효소만 먹는 치료였습니다. 그러나 이 치료는 큰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며, 본래 제가 아토피를 앓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저의 식탐이었던 만큼 이 치료는 모두가 걱정하는 방식이었고 저 또한 아토피를 가지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식탐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기에 제가 이 치료를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해독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시작하였는데, 역시나 해독치료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지럼증이 계속 찾아왔으며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효소조차 입맛에 맞지 않아 계속 헛구역질이 나왔습니다. 이에 처음에는 그저 너무 힘들었고, 이럴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치료가 끝나고 일반식으로 먹을 때 치료 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채소나 과일 등 자연식이 맛있다고 느껴지게 되며, 본래 좋아하던 가공식품에 대한 갈망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 ‘해독’이라는 치료 방법을 알게 되며, 그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과 큰 부작용 없이 회복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고 난 지금, 거의 모든 상처가 가라앉게 되고 흉터와 작은 상처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도 잘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식탐을 가지고도 위와 같이 석 달 동안 가공식품만 끊을 뿐 아니라 어떨 때는 아예 음식을 먹지 않았던 기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더하여 겪고 있는 고통이 원망스러워질 때는 (벧전4:12~13), (고전10:13), (빌4:6~7)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여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모든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오직 주만 의지하여 참 평안을 누리며 주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기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치료 과정 중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제게 허락하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2-13)”

    <안양교회 오다* 자매>

  • [성도소개]전주교회 진명자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전주교회 진명자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2022년 7월 16일에 성령 받으신 진명자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진명자 자매님
    진명자 자매님의 자매들

     

    Q. 어떻게 교회에 나오셔서 신앙 생활 하시게 되셨나요?

    A. 영은회가 열릴 때 한 번씩 동생들을 따라 나오면서 세례를 오래 전에 받았습니다. 전부터 먼저 교회에 다니던 동생들이 많이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어서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다시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Q. 최근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일이 있으셨나요?

    A. 동생들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기도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기도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도 성령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Q. 성령을 받았을 때 느낌이 기억나시나요?

    A. 성령 받는 기도 방법을 물어보았더니 “할렐루야” 로 열심히 말하며 기도하라고 조언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오전 예배 때마다 안수기도를 받으러 나가서 하나님께 성령을 꼭 주시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기도를 드리는 중에 혀가 꼬이고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서 안수를 해주시는데 몸이 찌릿찌릿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집에 와서 동생들에게 기도했을 때 느껴던 것을 이야기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9시가 넘어서 목자님께 전화가 와서 “자매님, 오늘 기도하셨을 때 몸에 이상한 느낌 없으셨어요?”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가 느꼈던 느낌을 목자님이 알고 계셔서 신기하고 놀랐습니다.

     

    Q. 가족분들은 진명자 자매님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주셨나요?

    A. 언니가 교회에 나오지 않아서 교회에 나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사람이 많은 공간을 어려워했는데, 교회에 다녀올 때는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마음이 참 좋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교회를 나가보자고 자주 권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언니가 성령을 받은 후엔 교회를 출석하는 것을 더욱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에게 성령을 빨리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성령 받는 것이 오래 걸렸는데 언니는 순수한 사람이라 그런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빨리 주신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자매들이 모두 교회에 다니게 되어서 즐겁고 행복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한복음 14장 16절

    하나님의 귀한 자녀이신 진명자 자매님을 축복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과 손잡고 동행하는 자매님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성도간증] 형제라 부르심을 받은 은혜 _최경자 자매님

     나의 어릴 적 시절이 문득 떠오를 때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내가 국민(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순박한 얼굴을 하고 감히 선생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도,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이 부끄러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혹여 시비가 붙으면 순박한 얼굴은 어디로 가고 사나운 표정과 험악한 말로 자기 본성을 나타내었다. 그 누구도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 더 험악하고 더 센 욕을 찾아 날리며 급기야는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번은 우리 동네 친구들과 다른 동네 친구들이 서로 집단 싸움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 생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싸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자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싸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뒹굴며 자라 몸집이 커지고 중학생이 되니 자연스럽게 더 이상 몸싸움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집에서 4km쯤 떨어져 있는 삼계면 소재지에 있는 곳이었다. 삼계에는 우리 동네엔 없는 점빵(소매점)도 두 개나 있고, 우체국도, 농협도, 교회도 두 개나 있는 곳이었다. 학교도 국민(초등)학교보다 크고 선생님도, 학생도 많은 곳이라 조그만 동네에서 올라온 나로서는 주눅이 들만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주눅이 들기는 커녕 ‘누군가 시비를 걸기만 걸어봐라 가만 안 놔둘테다’라는 마음으로 다녔던 것 같다. ‘무식이 용감하다’라는 말이 그 당시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당차고 무식한 나에게 친구들은 오락부장을 시켜주고 학교에서는 규율부장을 시켜주어 거침없는 학교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얼굴이 저절로 붉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쯤 되었을 때 체육시간에 운동장 귀퉁이에서 풀을 뽑던 친구들이 패가 갈리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무슨 다툼을 하는지 궁굼해 슬쩍 옆으로 다가가 엿들어 보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야말로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삼계에는 교회가 딱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삼계에 들어서는 초입에 참예수교회가, 하나는 삼계가 끝나는 지점에 장로교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패와 장로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패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하나님을 가지고 교회가 갈리어 다투는 것이 마치 내가 초등학생 때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려 보겠다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날 어느 교회가 옳은지 각 교회를 한번씩 가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싸움을 말렸던 기억이 난다. 

     약속대로 친구들을 따라 참예수교회에 먼저 가게 되었는데 그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처음부터 ‘참예수교회’라는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고 좋았다. 지금도 이 이름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자랑스럽지만 말이다. 그러나 교회이름이 좋은 것과 반대로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예배시간 내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고, 모두 깨끗하고, 순수하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나만 더럽고, 추하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방언기도를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라 슬그머니 도망가야할지, 나도 따라서 흉내 내야할지 기도 시간 내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방언기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상한 의심이 바로 사라졌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후로 학교에서 맨날 만나던 교회 친구들이 이제는 달리 보였다. 같이 자란 동네 친구들보다 오히려 교회 친구들 앞에서의 행동이 왠지 더 조심스러웠다. 물론 참예수교회를 한번 발걸음 한 뒤로 ‘여기가 맞다’라는 뭔지 모를 막연한 느낌에 장로교회는 가볼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에 장로교회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삼계교회를 뭣도 모르고 다니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나는 참예수교회는 삼계에만 있다는 생각에 교회를 찾아서 다닐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오빠가 “삼계에서 네가 다니던 참예수교회가 여기 전주에도 있더라” 라고 얘기해주었다.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믿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빠가 집에서 가까우니 걸어가서 확인해 보라고 얘기했다. 오빠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정말 참예수교회가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당장에 교회에 들어가 보았다. 그 후로 전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어느 샌가 교회와 나와의 이질감이 사라지고, 나의 객기도 사라지면서 고등학교는 정말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다녔던 것 같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2:11-12)’

     교회에 들어오니 교회에서는 남자를 형제라, 여자를 자매라 칭하며 불러 주었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형제/자매라는 호칭이 어색 했던지 그냥 이름을 불러주거나 누나/언니/동생으로 불러 주는 것이 친근감 있고 좋았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부터는 형제라 칭함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맨 처음 참예수교회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나의 더럽고 누추한 느낌에 한없이 부끄러워 주눅 들어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추하기 그지없던 내가, 무식하기 그지없던 내가 어찌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는 그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을 형제라 불러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그러한 주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나 자신을 살피며 말씀에 비추어 살도록 힘써 싸울 것이다.  

  • [성도간증]박한훈 형제님의 군 생활 간증

     

    할렐루야!

    동부교회에 다시 출석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인사말을 하기까지 무사히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1년 10개월 군 생활을 끝으로, 무사히 전역하여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다시 뵈니 마음속 깊은 곳부터 익숙함과 포근함이 가득 차 올랐습니다. 이 행복함을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건 19년 10월이었습니다. 지원 후 언제 입소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한 신청에 받은 입소 날짜가 덥지 않은 선선한 날씨라서 쾌적한 상태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감사드렸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책 두 권입니다. 훈련소 첫날 보급 받은 물품들을 정리하던 차, 답답하게도 입소할 때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압수 당해, 심심해하던 손에 들어온 것은 제 선임 기수가 관물대 속에 몰래 남겨두고 간 두 권의 책이었습니다. 속옷 보관함 구석에 숨겨져 있던 덕분에 훈련소 관리병의 눈에 띄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고 마음속으로 이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기도를 드린 후 바로 책 제목을 확인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차마 신이 없다 말하기 전에’라는 제목이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훈련소 교회에서 훈련 3주차에 나눠 주는 책이었습니다. 이후 훈련소를 수료한 후 만난 선임들의 말로는 분대 별로 1~2 권이 숨겨져서 남아있는데 마침 제자리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됐다 싶어서 펼쳐보니 왜 기독교가 종교 중에 가장 정답에 가까운가를 설명해 놓은 만화책이었습니다. 만화로 그려 놓은지라 짧은 시간 내에 읽고 내려놓자, 주변에 있는 동기들도 심심했던 모양인지 자신들도 봐도 괜찮겠냐고 해서 돌려보게 되었습니다. 취침 시간이 되자 각자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오후에 읽은 책 때문인지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동기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다른 종교는 몰라도 교회 만큼은 가기 싫다‘는 이유였습니다. 가장 다수를 차지했던 이유는 주말 아침에 돌아다니시는 흔히 말하는 ‘좋은말씀 전하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동기들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일주일 동안 쌓였던 피로도 풀 겸 푹 자고 있는데, 주말 아침마다 방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상황은 요즘은 보기 힘든 포교 방식이지만 현재도 기독교인이 타인 앞에서 혹은 타인에게 하는 행위들이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매일의 행실에 대해서도 더 꼼꼼히 반추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첫 종교행사 시간 놀랍게도 훈련소 교회에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성경을 나눠주었는데 마침 시편, 잠언, 전도서를 하나로 묶은 책이었습니다. 훈련 중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틈틈이 읽던 중, 지금까지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특이한 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잠언에 정확히 똑같은 두 문장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21:2)

    이 순간 이전에 동기들과 밤에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오르며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평소 하는 행실들도 정말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 확실한가?’  ‘그저 하나님 앞에서 공치사 받기 위해서 내 노력 만을 보이기 위한 행위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올랐기에 순간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이에 일상의 매 행동에 있어 진실 되게 살기 위해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 가지기를 구하자는 결심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몸이 교회에서 멀어져 해이해 질 수 있는 상황에 경각심과 더 거룩하고 새로워 질 수 있게 계기를 주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연찮게도 두 번째 책 또한 기독교 서적이었는데,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창세기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해본 책이었습니다. 이미 입대 전부터 ‘창조 과학’이라는 학파의 주장을 접해보았으나 편향적 사고와 과학계에 대한 맹목적 비난으로 실망하였기에, 일부 주장을 제외하곤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게 된 상태에서 접한 지라 크게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불쾌한 감정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살펴 주셔서 책을 주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왜 하필 이런 주제일까?‘라는 불경한 생각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며 느낀 점은 ’창조 과학‘을 강연하고 가르치는 사람 중에 이렇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편협함과 교만함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편견을 접고 책에 빠져들자 ‘창조 과학’에 무관심했던 사이 학계 내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고, 자정 작용도 있었으며, 새로운 발견과 주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세간의 역사서와 여러 천문학적 기교들이 접목되어 더욱 설득력 있고 일관되는 주장의 근거들을 제시하게 되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훈련소를 마친 후 복무 기간 내내 정리한 내용들을 사회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전할 수 있었기에 이 책을 접하게 해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훈련소 생활일 수 있지만, 작은 상황 하나하나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두신 안배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훈련소 내에 돌았던 수두와 수인성 전염병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육체적 훈련을 받는 내내 부상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상황에서 각각의 성도를 기억하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각 가정에 사랑과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소원(삶의 작은 일에도)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길!
    그 좁은길로 가기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 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 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 절이라도 그 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길 원하네    한웅재 작사작곡 

    위의 찬양은 박한훈 형제님이 군대 입대전 송별회때  청년부에서 부른 찬양입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군생활하며 삶에서 하나님을 느끼며 기억하는 삶이 되었던것 같고 ,  군생활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립니다.  

  • [성도 간증] 구원의 참 진리로 인도해 주신 주님의 은혜(김*옥 자매)

    [성도 간증] 구원의 참 진리로 인도해 주신 주님의 은혜(김*옥 자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저는 수원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김 *옥 자매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전도 받은 과정과  교회에서의 생활을 간증하려 합니다.

     

    1.  전도된 과정

    저는 약 10년 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정  집사님( 수원 교회 )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참 예수 교회 신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장로 교회를   약 40년  동안  다니고   있었고,  안산 제일 교회에서   4학년  교사도  하면서  학생  수를  6개월  만에   20명  늘릴  정도로  열심히  봉사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고  심령 가운데  기쁨이  없어  뭔가  나의  믿음 생활이 잘못된 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출근 시간에  항상  기쁨으로  찬송을  하고  있던  김 학정  집사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사님께  신앙 생활이  기쁘냐고  묻게  되었고,  성경 말씀  공부를  같이  해보자는  집사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집사님과  같이 사도 행전을 중심으로  성경 말씀을 공부하던  중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름  성경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구원을  받기 위한  세례와  성령에  관한  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습니다.

     

    저는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신약을  다  읽은  후,  의문점을  일일이  메모하여  집사님께  물었고  저의  의문은  너무나  명쾌하게  풀렸습니다.

     

    집사님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저는  우리나라에  성경대로  하는 그런  교회는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참 예수 교회를  소개하셨고,  저는  성경대로  하는  교회,   성령  받은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무척  궁금해져서  갑작스럽게(후에  김학정 집사님  말씀하시기를  예배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부분을  저에게 설명하지  못하여  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많이  놀라셨다고  함)  어느  토요일  아침  참 예수 교회  수원 교회로 출발하였고,  처음으로 참 예수 교회 문을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첫 예배 시  방언 하는 성도 들을 보면서 나쁜  방향으로  놀라거나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도  빨리 성령을  받아서  방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성령  받은  성도들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빨리  주시지  않았고,  목자님께서는  세례를  받아  죄를  씻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마음이  급해  아직도  춥게  느껴지는  4월  꽃잎으로  수 놓은  물에서  세례를  받고  나  같은  죄인을  기다리셔서  죄를  사해 주신 주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예수 교회에  들어온  이후  예배 때마다  흘린  회개와  감사의  눈물의  양은  제  생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   성령을  받은  과정

    세례를  받은 후,  저는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쉽사리  성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워낙  성령을  간절히  사모 하다 보니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저를  위해  자신들이  받은  성령 체험  간증을  해 주시고  기도도  많이  해주셨지만  저는  2년  반  동안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깨끗하시기  때문에  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만  성령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당시  직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과감하게  술부터  끊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술을  끊겠다는  결심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정말  놀랍도록  술을  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  폭탄주를  돌렸는데  제  차례에  주변  여러  직원들이  제가  마셔야만  하는  술을 서로  마셔주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기관장부터  아예  술을  끊은  분을  보내주는  등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를  받은  후,  1년  동안  성령을  받지  못하여  안식일 마다  안수 기도를  받는  등  간절히  사모하던  중, 어느  안식일  날  목자님  설교  말씀  중에  먼저  철저한  회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매일  직장에서  퇴근  후,  회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춘천 지방 검찰청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  관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기도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회개 기도를  하자  어렸을  때 부터의  저의  죄가  모두  생각났고  저는  정말  구원 받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죄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밤  휴지  한통을  다  쓸  정도로  눈물을  쏟는  기도를  하였고,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하기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춘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시지  않았고  인사  때가  되어  춘천 지방 검찰청을  떠나 저는  중앙 공무원 교육원에서   1년간 교육을  받는  과정으로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육원  과정  6개월 쯤  되었을  무렵  중국으로  체험 학습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  안식일  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비행기를  타게  되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젠  정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어서  제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안수 기도를  받는데  목자님이  제  머리에  손을  얹자마자  갑자기  바람이  위에서  제 머리로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름이어서  선풍기를  틀었지만  바람이  옆에서  불어야 하는데  머리  위에서  일직선으로  부는  느낌이어서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몇  만  볼트  정도는  될  법한  전기가  제  몸  한가운데로  흐르는  것을  느꼈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던  제  혀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성령을  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순간  너무나  감사하여  대성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 할렐루야)

    제가  우느라고  쓰러져서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확인하기  위하여  예배가  끝난  후,  다시  기도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목자님과  같이  기도를  하자,  목자님께서는  성령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하셨고  저는  그때부터  운전할  때나  혼자  있을  때는  계속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방언은  점점  변화되었고,  완성되어  갔습니다.

     

    1.  성령 받은  후

    저는  성령을  받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부단히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  때문인지  가족들이나  주변  직원들은  너무나  많이  변한  저의  모습에  모두들  놀라와  하였습니다.

    저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참고  인내하지  못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성내고  분 냈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불쌍하게  보였고,  그  사람들  뒤에  있는  영에  대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좀  다혈질 이고  활기찬  모습이었는데  성령 받은  후,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까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령  받은  후,  가장  뚜렷한  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임하고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정말  꿀 송이  같이  달았고,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말씀들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민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학습지로  다섯  과목을  시키기로  마음 먹고  한  곳을  알아본  후,  선생님과  계약을  하려 던  참에  또래를  키우고  있는  저의  올케가  다섯  과목이면  할인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한 과목만  본사와  계약을  하고  네  과목은  선생님과  따로  계약을  하면  선생님이  본사에  납입할  돈을  납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여  이런  취지로  설명을  하였고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이런  방법을  써 보지  않았다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서  제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얼른  선생님께  전화를  하여  제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5 과목을  정상적인  가격으로  계약하자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꿈이나  이런  저런  모양으로  말씀하시고  저를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정말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저에게  가장  좋은  길이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  연말에  퇴직을  하였는데  제가  생각하는  퇴직  시점은  올해  6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퇴직하기  약 2개월  전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퇴직하는  방향으로  모든  상황을  몰아가셨고,  결과적으로  저의  작년  연말 퇴직은  가장  좋은 시기의 퇴직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경제적으로도  많은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등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알았고,  말씀대로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마음으로  저들에게  조금을  나누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30배,  100배의  축복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참 예수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많은  축복을  받았음에도  정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시시 때때로  사람으로  인한  시험이  찾아 왔고,  안식일이   세상적으로  가장  행사가  많은  요일이다  보니 

    안식일을  지키지  못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참 예수 교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강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저를  일깨우시고  교회에  묶어 놓습니다.

     

     

    1.  참 예수 교회에서의  생활 ( 전도의  삶 )

     구원에  관한  참 예수 교회의 진리는  정말  놀랍고  확실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수록  참 예수 교회의  진리는  확실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나니  저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진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진리를  모른  채  헛된 것에  집착하고  있는  일반  교회  성도들이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쉽지  않았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전도가  어렵지  않았고  상처  받을  만큼  공격을  받지도  않았는데   참 예수 교회는  달랐습니다.

    세례,   성령,   안식일  등에  대해서  전하고  나면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런   눈을  의식하다 보니  어느새  저는  이제 참 예수 교회에서는  전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도를  하면  ‘너  혼자로도  충분하다,  우선  너부터  굳건히  서거라’ 하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저의  마음은  전도의  상처로부터  치유되었고,  평온해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최근에  목자님으로부터  전도 해야  된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또한  주변  몇몇  친구들이  신앙 상담을  해오면서  제  마음에는  전도의  불꽃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  중에  신천지  출석  교인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 현재는  관계를  정리함 )  저는  다시  참 예수 교회로의   전도는 무척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참 예수 교회는  좁은 문이고   진리이다  보니  사탄이  발악을  하고  막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천지 친구에  대한  상처 입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100명  아니 1000명 중에  한 명  너  같은  사람이  있다.

    너처럼  진리를  찾고  있고,  구원  받을만한  사람이  한 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한 명을 찾아라. ”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하기로  하고  다시  제  남은  생애 동안  최선을  다해  전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전도는  정말  주님  앞에  엎드러져  겸손히  기도하며  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존심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신  물질도  사용해가면서  한  영혼을  놓고  기도할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특히,  참 예수 교회에서는…)

    우선,  남편과  딸,  그리고  형제  자매부터  전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온  가족이  전도되는  축복이  임하리라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