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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성도간증]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대방교회 다니엘회. 김*준 형제)

     

    안수를 받기 위해 걸어 나가는 길. 저의 발걸음마다 눈물이 터졌습니다.  뜨겁고 묵직한 것이 복받쳐 오르며 모든 성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흐느껴 울게 했습니다. 고작 몇 걸음이지만 거북이 엉금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오는 제 모습에 많은 자매들이 “얼마나 아프면..” 했습니다. 너무나 쉬웠던 이 예배의 자리에 간절함으로 다시 서게 해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사건 

    지난 3월이었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 평소와 같이 일요일에 출근하였습니다. 저는 일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바쁜 일상 중에 운동도 챙겨야 하기에 일요일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일과 운동까지 해결하곤 했습니다. 안양천을 따라 구로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가 아주 갑작스럽게 저의 자전거 앞에 가로질러 끼어들었습니다. 힘을 다해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저의 자전거는 앞으로 쏠려 엎어지고 말았고, 제 머리는 바로 땅에 받아 버렸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날 쓰고 나갔던 고글에는 피가 맺혔었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무사하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급히 응급차를 불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함은 다시 막연함으로 

    일요일의 응급실은 혼잡하고 대기 시간도 길었습니다. 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맞고 호흡은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걷기가 힘이 들었지만, CT 촬영 후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퇴원 조치를 하였습니다.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근육이 놀라서 그럴 것이라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란 생각과 달리 새벽에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침만을 기다리다 인근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전문의는 엑스레이에서 등뼈에 뼈가 뭉개져 있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여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심각했다면 곧장 하반신 마비가 되었을 텐데. 아주 다행인 줄알라고 했습니다. 큰 대학병원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 작은 병원에서 발견해 준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함과는 달리 의사 선생님과 대화는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인 대화 유형이었고, 저의 질문과 의견 등에 냉담하셨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3개월간 침대에 누워서 통나무와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생활이라 실감 되지 않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뭐든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MRI 촬영 후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수술의 필요가 있지만, 수술하기에는 위험하고 본인은 할 수도 없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고민 끝에 전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약 없이 긴 시간

    수술과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가까운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이동했지만, 응급실 대기만 12시간 이상 되어 입원이 불가했습니다. 다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또 이동했습니다. 응급실에서 MRI를 확인한 전문의는 환자분은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는 수술할 전문의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막연함 속에서 그토록 듣고 싶던 똑 부러지는 표현이었습니다. 명확한 의견만으로도 저희 부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천 받은 한 척추 수술 전문병원으로 또다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동한 병원에서도 MRI 상태를 보고서 의사들끼리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 줬습니다. 아침에 나섰던 길인데 시간은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엠블런스(구급차)를 타고 이동한 지라 어지럽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행히 이 병원에서는 입원 수속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병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운동복 차림의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서둘러 수술을 해야겠다고 하셨고, 간호사 선생님께 곧장 스케줄을 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응급수술로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휘파람 불며 할 수 있는 수술은 아니지만 못할 수술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 졸여온 저에게 의사 선생님의 표현은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

    수술은 아주 이른 아침에 잡혔습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수술 후에 대한 설렘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히 주님께서 잘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저는 비닐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잠시 후 우주복을 입은 간호사가 와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리셨어요!”  황당하게도 나 홀로 코로나 전용 병실에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환자분 코로나 걸렸던 거 아세요? 우리 병원이 피해가 막심합니다.”  코로나 신속 항원 결과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수술 들어간 후 아내에게 맡겨 둔 휴대전화로 코로나 정밀검사 결과 문자가 왔습니다. 김희준 양성. 수술 후 병원은 난리가 났습니다. 병원 장비들도 못 쓰게 되었답니다. 법적으로 코로나 환자는 수술할 수 없으니 만약 수술을 조금이라도 늦췄거나 양성 문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다면, 이날 수술은 못 하게 되었을 테고 골든타임(적기)을 놓쳤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천운을 타고났다며 말씀하셨습니다. 천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에 설레는 하루하루 였습니다. 고통 중에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은 정말 빨랐습니다. 수술한 지 불과 2주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

    퇴원 후 안식일이 되어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느낄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는 다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순간에 벅찬 감정과 하염없이 흐느껴졌던 마음은 아직도 무어라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흐느낌 속에는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성도들의 그 온기와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하염없이 이곳, 저곳 병원을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수술실에 있던 시간에도, 모든 성도님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의 위로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냈던 주님 안의 형제·자매의 사랑을 아주 충만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벅차게 제 온 마음으로 가득가득 안겨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사랑이 가득한 성도님들이 모인 거룩한 성전이라는 마음 또한 생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렇게 흐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아닌 섭리 

    병원 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 가운데 지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 고난을 잘 이겨내고 나면 결국 우리가 깨달을 것을 깨닫게 되며, 바로 세울 것은 바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안일하였습니다. 보기에 평범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켰고 봉사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지 않았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다른 마음을 찬찬히 보게 되었습니다. 일 욕심이 많은 저에게 신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안식일을 지킬 때도 많았습니다. 안식일 예배 때도 머릿속으로는 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고, 안식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안식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고 당일도 호렙산 연습이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하루였습니다. 일이 중심이었던 삶. 저에게는 일이라는 우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라며 합리화하며, 정당화 시키며 일이 중심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선순위라는 작은 그 것에 제 신앙을 갉아먹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바로 외식하는 자구나” 함을 뼈가 저리게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깨우칠 기회가 없었겠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가 빠져 들고 있었구나! 하나님은 이 것을 깨우치기 위해 기회의 시련을 주셨구나. 그 안에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주셨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 하신다는 것을 정말 등뼈가 아프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의 소중함, 안식일의 소중함, 신앙생활의 소중함, 교회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망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와 걱정 많으셨던 부모님 앞에 죄송스럽지만 “이 사고가 나길 잘됐다”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에 경건히 임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번 사고는 워낙 크게 맞은 지라 깨달음과 변화됨이 오래 갈 것이라 기대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 흐트러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술 후 등에 박힌 핀은 이제 평생 박힌 채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평생 간직할 이 등에 꽂힌 핀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증표라 생각합니다. 소망이 흐트러지는 매 순간 그때의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등에 박힌 핀을 증거 삼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고는 나에게 재앙이 아닌 참 평안을 얻게 하였고, 참된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기회를 주시고 참 소망 안에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서 29장 11절)

  • [성도간증]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성도간증]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동부교회 이성자 모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1. 친정 어머니가 유언하시다.

    벌써 30여년 전 일입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남양주 경찰서 근처에 사셨을 때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저에게 유언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멈도 숙이가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녀라!”   그 말씀을 듣고 그때 당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숙이가 외할머니에게 그렇게 말씀해 달라고 부탁해서, 어머니가 저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숙이는 저의 큰 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막내동생을 매우  늦은 나이에 낳은 탓인지, 늘 애달파 하셨습니다. 현재는 늦둥이 막내동생은 물론이고,   저도  참예수교회에서 봄에 세례를 받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곳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도 나중에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저의 어머니와 같은 유언을 하고 싶습니다.

    “참예수교회에 다니라고…(열심히!!)”

    그리고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모두 모두!!)”
     

    2. 오랜 기간 불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다.

    20년 전 일입니다.  하루는 손녀딸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할머니, 딸이 할머니 전도하려고 저렇게 금식을 하고 있는데  부모가 돼서 교회에 좀 가 주시면 안돼요? 좀 가시지!”

    손녀(김솔)가 하는  말을 듣고,   딸이 다니는 교회를  몇 번 따라 나갔습니다. 그때는 수원에 있을때 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두 딸들이  가족들과 함께  직장 관계로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몇 차례 나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절에도 못 가겠고, 딸들이 없으니  교회도 갈수도 없구나!’

    그래서 몇 년동안 그냥 지내다가  ‘그래도 나는 종교를 가져야  되겠다!’ 생각하고  남편과 아들에게 “절에  좀 데려다 줄래?” 하였습니다. 그 뒤로 다시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큰 딸이 중국에서 돌아와서  목자님을 모시고 꾸준히 심방을 왔습니다.

    심방 오지 말라고 딸을 야단 쳤는데도 계속 모시고 왔습니다.  “어휴~쟤가 왜 저러지? 내가 쟤를 잘못 가르쳤나?  나는 나대로 열심히 믿게 하고, 내 종교(불교)에  열심하도록 그냥 두지,  왜  저러나!” 하고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불교 서적을  읽고 있노라면 딸은 죽자 살자  “엄마, 절에 좀 안가면 안돼요?”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너 엄마한테 자꾸 그러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야단 친 후 딸이 집으로 되돌아가면 저는 새벽까지 불교 서적을 읽곤 했습니다.

    외손주 병호, 병일이가  할아버지 팔순 때  성경책을 선물로 사서 가족들에게 한권씩 주면서 같이 교회 다니시자고 일일이 편지까지 써서 주었습니다.  그 때는 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작년에 남편이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나는 평소 남편과 부처님을 믿은후 죽으면 극락에 함께 있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 사모님,  교회분들이 자주 심방을 오시니 마음이 어지럽던 차였습니다. 하루는  같이 심방 오신 한 자매님이 가족에 대한 간증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고  ‘내가 이렇게 고집만 부릴 일은  아닌데…….마음을 좀 바꿔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니 누나가 계속 아버지한테 교회 얘기를 하니까 아버지 맘이 교회로 좀 끌리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겠니?” 그 말에 아들은 “어머니!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신다면 좋은 일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누나 말대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어머니 종교는 어머니 마음가는 대로 하시고요!”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고 나머지 딸들도 아들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제 남편은  큰 사위의 권유와 많은 교회 분들의 수고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기적적으로 세례(2022.8.15)를 받고 일주일 뒤에  낙원으로 갔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저도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의 옷 정리를 하는데 눈물이 너무 쏟아져서 자녀들이 대신 정리를 해주는 동안 큰 딸 집인 수원에 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위는 믿음에 관한 얘기들을 계속 해주었고  병호는 지극 정성으로 배려하고 저를 위로해 주었고 병일이는 차로 동부교회 예배에 참석하도록 데려다 주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조문에 대한  답례인사를 하고 난 후, 속으로  ‘나도 애들 아버지를 따라 가야지!’ 이런 마음으로 그동안 심취해서 보던 불교 서적들을 모두 정리해서 다 절에 가져다주고 와서 마음을 굳게 먹고 애들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안식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둘째 딸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찬송가 가사가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아서 이제 더욱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집에서는 간증집을 읽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3. 세례 받기전  2주간 전혀 음식을 못 먹다가 세례(5.14)받고 다시 먹게 되다.

    올 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세례식을 2주 앞두고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전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녀들이 저의 건강이 걱정되었는지 저를 큰 병원에 데려 가서 모든 검사를 다 마쳤는데도 건강상 문제는 없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식사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들 아버지는 9일간 곡기를 못먹고  위중한 상황이 되었었는데,  저는 세례를 앞두고 10일 이상 식사를 못 하니까 교회는 비상이 걸려서 저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세례받기 전에 제가  두 번 꿈을 꾸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애들 아버지가 꿈에서 나타나  “당신 때문에 내가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문득 내가 불교와 관련된 것들을 다 정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정리한다고는 했는데 혹시나 남아 있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불경책 1권과 염주1개, 절에 다닐 때 입었던 바지 1개, 불교 달력 등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샅샅이 찾아서 모두 다 갖다 버렸습니다.

    세례 받기 하루 전에 또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2주간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서 너무 너무 배가 고파 있던 나에게  아름답고 파아란 바다에서 어떤 두 사람이 밥을 주어서 너무 너무 맛있게 먹는 꿈을 꾼 것입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힘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 꿈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쁩니다. 

    저는 꿈을 꾼 다음 날인 2023년 5월 14일에 애들 아버지가 세례받은 그 장소에서 둘째 딸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식후  교회에서 예약해준  식당에 갔는데 그동안 먹지 못한 식사를 세례받은 그날  점심 식사부터 아주 맛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4. 대만교회 방문에 막내 딸과 손녀 현경이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다.

    저는 자녀가 4명인데 큰 딸 숙이와 둘째 딸은 믿고, 아들과 막내 딸이 아직 믿지 않는데,  이번 가을에 교회에서 새신자와 구도자들을 위한 대만 여행(2023.10.30.~11.5)에 믿지않는 딸과 손녀 딸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목자님 이하 여러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인도해 주실지 기대 반 설레임 반입니다. 감사주!

     

    5. 명절이나 남편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온 가족이 온전한 예배를 드리다. 

    큰 사위 인도하에,  믿지 않는 자녀들까지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믿음의 가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과거에  제가 하나님을 몰랐던 시간에도,  많은 목자님과 성도님들의 한없는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을 사랑으로 인도해 주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남은 여생 그 은혜에 보답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1 이성자모친과 둘째 따님의 세례식날

    사진2 자녀, 남동생, 사위, 손주와 함께

    사진3 성찬을 받는 모습

    사진4 모친의 전도대상 손주가 교회 온 날,   남동생 이수영 형제님, 큰 딸 남궁숙 자매님과 함께

    사진5  모친 어머니의 살아 생전 모습.  세례 받고 큰사위(박성구형제님)가 남양주까지 가서 수원교회 영은회 참석시키기 위해 차로 모시고와서  영은회 내내 업어서 예배당으로 가는 모습(30여년전 사진)

    사진6 모친의 손녀 솔이자매&가이자매가  이모 남궁숙자매님의 인도로 세례받고 수원교회 돌아와서 감사 찬양하는 모습(2003.10.3)

  • [성도간증] 전주교회 이상규형제의 간증 – 출산

    [성도간증] 전주교회 이상규형제의 간증 – 출산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고 상급입니다. 아직도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 마음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성경 구절의 한 단어 한 단어가 뚜렷하게 보이고 이 짧은 구절을 또 읽고 더 마음에 새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배 속에서 학윤이가 점점 커가고 예정일이 지나는데 진통이 없어서 날짜를 정하고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3년 5월 2일 밤 9시, 예약한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습니다. 몇 가지 검사 후에 시내 자매는 진통실에 눕고 제가 그 옆 의자에 앉아 함께했습니다. 새벽 3시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5시에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딱 낳는 순간만 아픈 것이 아니라 배 속에서 아이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자궁이 수축하면서 진통을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8시에는 진통이 극대화 되었습니다. 출산의 고통이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옆에서 쉬지 않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서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무사히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믿음 생활을 해왔지만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지, 어떻게 기도하는 것인지, 나의 믿음에 대해서도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고통을 주실까’ 생각했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상황, 이 고통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참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통은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사람을 만드신, 이 고통을 주신 절대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고난은 아프지만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프다고 하신 것은 진짜 아프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후 1시 정도에 분만실에 들어갔습니다. 계속 기도하고 할렐루야를 계속 외치면서 모든 상황에서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신 것을 마음속에 되뇌었습니다. 오후 2시 46분에 학윤이가 태어났습니다. 주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3)

    자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사람이 자식을 낳지만 배 속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모릅니다. 초음파를 통해 볼 뿐입니다. 배 속에서 사람의 몸, 손, 눈 발가락, 몸 속 장기들 하나하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고 기능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을 들어보면 신기한 것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업으로, 상급으로 주셨다는 성경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성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했는데, 아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 감동이 되고 그 은혜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난지 60일정도 되어서 교회에 갔습니다. 학윤이가 빨리 이 소중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통해 생명의 길을 걷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성경책에서 믿음의 족보를 읽었는데 나도 이 믿음의 통로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학윤이가 이 축복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참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사랑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성도님들이 아기를 참 예뻐해 주십니다. 교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들을 봅니다. 교회는 정말 사랑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8-19)

    학윤이 이름은 한자로 ‘배울 학’ ‘물 깊고 넓을 윤’으로 에베소서 말씀처럼 깊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라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하나님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정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윤이가 건강하게 믿음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성도간증]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안*수 형제)

    [성도간증]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안*수 형제)

    안희수 형제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잠언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먼저 이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간증하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2020년 6월 수원교회로 전입하고, 그해 9월 온라인으로 성도님들께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제 고등학생 시절부터 군생활 전역하기까지의 삶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증거했었습니다.

    대학시절, 군생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앞길을 인도하시고 훈련시킨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은혜로 무사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직업군인의 삶을 살았으나,

    그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신앙을 위해 전역을 결심하도록 인도하셨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 저와 저희 가정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미리 감사드린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였습니다.

     

    1.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심

    그 간증 이후로 저는 본격적인 취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일을 하게 되든 잘 해낼 자신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것이,

    이 사회에 나와 첫걸음을 내딛는 저에게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전역 직전 부대에서 늘 했던 생각 그리고 말이 있습니다.

    ‘내가 전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더 다가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막상 전역하게된 이후 실천에 옮겨져야 했으나, 겉만 그랬습니다.

    수십 장의 이력서를 넣으면서, 저는 무늬만 기도했고 제 뜻을 관철했으며 제힘을 믿고 있었습니다.

    군 생활 내내 왜 전역하냐, 잘한다 등등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저 스스로 정말 나는 잘한다고 착각했던 것이죠.

    면접의 기회조차 없이 정~말 허무하게 많은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모아놓은 퇴직금은 점점 줄어가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하루는 심야에 잠이 오지 않아, 효*자매랑 집 앞을 산책하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린 앞으로 어딜 가게 될까?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릴 인도하실 거란 믿음이 있지만,

    행동은 그렇게 안 됨을 보고 개탄스러웠습니다. 저희 가정엔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20년 12월 한 공공기관의 논술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오는 차에서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금을 믿고 있었고,

    제 능력을 믿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효주자매에게 우리 가정과 취업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재임용을 알아봤습니다. 이때까지도 믿음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죠,

    하지만 며칠 후 면접제안이 왔습니다.

    제 군경력을 다 인정해주고 지금까지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것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면접을 준비하여 회사에 갔습니다.

    추운 겨울 수원 광교까지 *주자매가 친히 차로 데려다줬습니다.

    웃으며 면접 잘 보고 오라고 하지만, 아 이번에 면접 잘 못 보면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배수진을 치고 죽기 살기로 해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2시간의 면접을 본 이후 저는 그 자리에서 채용이 됐습니다.

    저는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우리 사업부는 폐지 순서를 밟게 됐고 모두 정리해고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표님이 저를 따로 부르더니, 저만큼은 본사에서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 회사 대표님의 양아들 대우를 받으며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회사냐면, 군 생활 6년 동안은 매일 아침 출근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3년 차가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사에 나가기 싫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아,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었구나.’

    광야에서 하나님이 늘 함께하셨지만, 혼자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내가 너와 함께한다.

    라는 확신이 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 함께하심을 알게 하심

    그렇게 저는 사회에서 첫 직장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겐 직장 외에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집이었습니다.

    전역 직후에 임시로 병점에 전셋집을 구했는데, 집값이 요동치며 한창 부동산 이슈들이 터질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청약에 관심을 두게 됐고, 밑도 끝도 없이 청약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찍 효*자매가 와 됐다! 여보 일어나봐! 하더니 핸드폰을 저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청약이 당첨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큰둥했습니다.

    왜냐면 그 경쟁률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뉴스에나 나오는 로또 청약이었습니다. 시세차익 15억 이상이 나는 그야말로 로또 청약이었습니다.

    이야 됐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일으켜 세우시는구나! 뭐 제멋대로 아주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의 ‘부’는 저에게 오히려 독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교회와 신앙생활이 뒷전인 채 오롯이 그 집만 바라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단순히 큰 재산을 가지게 됐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단 3일 만에 부적격 통보를 받았고, 남들이 다 당첨 서류를 제출하러 분양사무소에 갈 때,

    저희는 부적격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잔인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담당자가 말하길, 저희 청약통장은 1순위가 아닌 2순위로밖에 지원을 못 하게 되며,

    그 말인즉슨 20~30년 후에나 당첨을 노려볼 만 하단 절망적인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저는 이 절망적인 순간을 왜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족에게 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의 큰 뜻이 있으리라. 세상의 것에 눈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자’

    절망 속에서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당첨 경험을 주신 분이 나의 하나님인데, 나를 굶게는 안 하시겠구나.

    이 이후에 앞서 말씀드렸던 취업을 하게 됐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후 얼마 안 돼, 또 놀라운 경쟁률을 자랑하는 민간임대아파트에 당첨됐습니다.

    전국에서 핫하다는 신축아파트에 월 20~30만 원의 월세만 내고 살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알게 하신 은혜가 큰데,

    고난뿐만 아니라 저와 제 가족에게 필요한 것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취업과 집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짧은 기간 동안 물밀 듯 오다 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두려웠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말만 감사가 아니라 행동해야 살아갈 수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1. 확인하심

    직장과 집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집으로 이사한 후, 퇴근하며 *주자매에게 전화하며 이런 이야길 나눴습니다.

    우리가 작년만 해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려움과 불안감에 살았는데 지금의 삶을 살다 보니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든 시키면 감사함으로 해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뜬금없이 이엘리사 목자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2022년 재무임원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제가 얘기했던 걸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목자님 순종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재무임원을 맡게 된 것입니다.

    제 삶 한순간도 하나님께서 놓치지 않고 보고 듣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21년 12월,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분양사무소 직원이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저희 청약통장은 이제 당첨될 일이 없다고 한 것.

    그러나 갑자기 저희에게 유리한 법이 생겼고,

    법적 신혼부부를 2~3주 남기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에 당첨이 됐습니다.

    이곳 분양사무소 계약을 하러 가서 담당 직원이 말하길, 운이 너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서 40~50분 걸려 교회를 오고 있는데, 내년 2월이면 15분 거리로 이사 옵니다.

     

    성도님들 제가 좋은 직장 그리고 집을 갖게 된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늘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마귀가 언제든 집어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이 세상에서,

    제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훈련시키시고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연약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감사함으로 나아와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글 : 안*수 형제

  • [성도간증] 전주교회 김상수형제님의 전도생활

    [성도간증] 전주교회 김상수형제님의 전도생활

    할렐루야~ 전주교회 김상수형제입니다. 먼저 저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갔었습니다. 유년시절엔 교회를 다니다가 먹고 살기가 어려워 세상에 잠시 나가 사회생활을 했었습니다. 30대까지 제 멋대로 살아가다가 마음이 허전함을 느끼고 시골로 오게 됐는데 그 때 집사님들 장로님, 교회 형제 자매들을 만나게 돼서 그 계기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 제 성격은 어딜가나 숨기를 좋아하는, 전도를 할만한 성격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 이후로 성격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이 좋아지니 말도 많아졌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수 믿으세요!” 라는 말이 막 나오게 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또 사람들하고 더 가까워지려고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로 들어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이웃집 앞에 눈이 가득 쌓여있으면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가서 눈을 쓸어주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이웃이 알고 서로 좋은 관계가 되면 전도까지 이어졌습니다.

    예전에 직장에서 회사 동료들과 같이 밥 먹을 때 기도하기가 민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등 뒤에 ‘예수 믿으세요!’ 써서 붙이고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주 중앙시장에 가면 버스 타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라고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 사람들 전부 우리 교회에 왔으면 좋겠다.’,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보인다.’, ‘이 사람들이 금방 우리 교회에 올 것만 같은데…’, 이런 마음으로 직장에서 써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당시 직장에 2000명 정도 직원이 있었는데 제가 정신이 돌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실장도 뭐라고 하고 모든 사람들이 수근거리니 어디가서 숨고 싶고 교회에 나오기 싫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우울하게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장로님 부부가 찾아오셔서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이후에 장로님들 집사님들이 매일 집에 오셔서 차랑 음식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집으로 초대해서 고기를 먹고 피아노 치며 찬양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모여서 떡을 떼고 말씀을 나누고 찬양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위안을 받고 다시 전도하고 싶은 마음의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모르는 사람을 보고 얼굴을 철판 깔로 인사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를 쪄서 갖다 주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길 소망하며 계속 쫓아다녔습니다. 사람간의 관계를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탁을 받으면 무조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 소중한 전도의 부탁을 받았다는 사명감으로 달려갔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시간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심을 믿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고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전도했던 분들이 세례를 받는 장면을 볼 때의 그 마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순수한 믿음을 느낄때 오히려 그 분들이 더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 5월에 세례 받았던 이금순 모친이 생각납니다. 원래는 이금순 모친의 아들을 전도하려고 했지만 복음의 싹이 어머니께 먼저 나게 됐습니다. 현재 세례를 받고 성령까지 받으셨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한 번도 빠지지않고 나오시는데 그 분을 뵐 때마다 정말 행복함을 느낍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어디든지 전도 부탁을 받으면 멀어서 못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휴가를 내고 시간을 써서 전도하러 가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전도하는 수단일 뿐이니지 교회에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89세신데 지금도 성경을 혼자 읽으실 정도로 흔들림 없이 한결같은 신앙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머니의 기도제목은 며느리, 자식, 손주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제 가족들이 불교를 믿고 있지만 접촉을 자주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오랜시간 기다림에 지쳐 제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교회로 발걸음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위해 힘쓰고 계신 동역자들을 위해서도 같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백남리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부터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은혜의 간증을 하겠습니다.

    ▶ 첫 번째 간증 : 낚시배 이야기

    제 아들인 재웅이가 낚시를 좋아해서 재웅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면 가끔 속초 동명항을 갑니다. 그 날도 낚시를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우리 가족 셋만 타고 출발하는 낚시배를 예약하였습니다.

    저는 출발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잠시 화장실좀 갔다 올께요” 하고 공중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장소가 적당하지 않았지만  진심을 다하여 짧은 기도를 드렸고 든든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출발 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배가 갑자기 멈추었고 선장님이 배 아래로 왔다 갔다 하시더니 조타실(엔진이 있는 곳)에 물이 차서 배가 가라앉게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주중에는 고기를 잡는 고깃배이고 주말에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30년을 배를 탔는데 이런 일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셨고 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해양경찰에 급히 신고하였고 바로 해양경찰이 와서 사고조사를 하면서 조타실에서 물을 퍼내는데 대형 고무 물통 2개에 물이 가득 찼고 결국 고깃배는 인양하여 엔진을 완전히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장님은 미안해 하시면서 전액 환불을 해주셨고 우리 가족은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다른  배를 타고 다시 낚시를 하러 출발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방금전에 화장실에 가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 셋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지켜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후 저는 눈을 뜨고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 드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그 마음을 크게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 간증 : 브레이크 라인 이야기

    지난 가을 금요일 아침 일찍 일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일하기 위해 이동하려고 출차를 하는데 마침 반대쪽에서도 주차를 하려고 올라오는 차가 있어 저는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리막길로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평지로 내려와 바로 앞에 방지턱이 있어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쑥~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어 이건 뭐지? 난생처음 경험한 일인지라 느낌이 이상했고 평지에서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자 확실히 내 차에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사이에 차는 왕복 6차선으로 합류했고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신호등은 완전히 무시하고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바로 보이는 사거리에서 무조건 좌회전을 해서 한적한 언덕길로 올라갔습니다. 놀랜가슴을 부여잡고 보험사를 부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주정차 딱지 구역이라서 안될것같아 다시 놀랜가슴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리막길로 다시 차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0미터 앞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 두분이 느릿느릿하게 건너고 계셨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의 인생이 너무나도 억울하게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순간 이상황을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고 “내리막과 미끄러운 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려가라는 재웅이 아빠의 말을 생각나게 해주셨고” 그렇게 했더니 다행히 조금은 천천히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할머니 두 분은 아직도 겨우겨우 횡단보도 끝을 향해 이동중이였고 저의 차는 간신히 할머니들을 피해 우회전을 해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보험사에 신고를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습니다 하고 신고했더니 20분 뒤에 견인차가 왔습니다. 아~ 내 차를 끌고 가기 위해서 왔고 차에 큰 문제가 있구나 확신을 했습니다.

    견인차 아저씨가 저의 차를 살펴 보시더니 왼쪽 타이어에 기름이 새네요 하셨고 브레이크 라인이 끊어진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처음 견인차를 타게 되었고 조금전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반대쪽에 올라오는 차가 있었는데 다행히 부딪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고 평지에 내려와 방지턱을 넘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을때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카센터에 가서 브레이크 라인을 교체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저에게 경험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주야로 살피시고 계심을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한순간의 사고는 예측 불허지만 하나님 의지하고 섬기는 것은 나의 마음이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님과사모님을 따라서 심방을 하다 보면 대상자 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다 있더군요. 남편이 반대를 해서, 부인이 반대를 해서, 아들이, 딸이 반대를 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이방 결혼하여 아직도 그런 가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확고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수없이 인내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성도간증]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학교에서는 다른 세상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입에 욕을 달고 살았고, 두려움 때문에 식사 전에 기도를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또한 예배시간에 항상 지각을 했으며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학교를 빠지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만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미지근한 신앙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대학을 진학하고 과를 정해야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고3이 되기까지 나는 하고 싶은게 없었다. 그러던 중 고은쌤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내 성적에서 가능한 교사 직업이었고 나 역시도 이 진로가 마음에 들었다.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한 이유에는 형의 영향이 있었다. 형은 기타를 전공하며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고 포기했다. 물론 그런 모습은 믿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 아니면 교사를 하자는 마음가짐을 먹었고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입시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체육교육과는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수능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게 되었다. 수능 전까지는 일주일에 3번씩 학원에 가서 운동을 했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학교에 남아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이 당시에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서 생긴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3들을 위해 밤마다 모여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었지만, 가끔씩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능 당일이 되었고, 나는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가채점을 한 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학원 선생님께 큰일이 났다고 전화 드렸다. 학원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가장 먼저 권한 것은 재수하는 것이었다. 실기 점수로 부족한 수능점수를 만회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재수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무산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강원도에 있는 사범대를 가는 것이었다. 타 지역의 사범대에 비해 성적 커트라인이 낮았기 때문에 나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께서 신앙생활을 이유로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냥 더 열심히 해서 실기 성적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 측에 사정을 말해 학교 대신 체육학원을 가는 시즌이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학원에 가서 밤 9시까지 운동을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때만큼 힘들고 이때만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중간에 나는 손목 골절을 당했지만, 깁스를 하고 학원에 가서 운동을 할 만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수능을 망치게 된 것은 내가 기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밤에 학원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가서 기도에 참여했다. 정말로 기도를 많이 했다. 실기 성적을 올리기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실기 당일이 되었다. 나는 아침부터 실기 시험을 보는 중간까지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토록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없었을 만큼 나는 간절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기 성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불합격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공무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버스 안에서는 학원 친구들이 자신들의 실기 성적을 얘기하며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공무원 시험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대학을 가지 않고 공무원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화를 많이 내셨다.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이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어진 나는 결국 현실을 도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나와서 나는 친구들을 불러 피시방에 갔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가출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찜질방에서 자고 낮에는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내가 가출한 동안에 나에게 많이 연락했지만, 그 내용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 때는 학생부 영은회를 가는 주였고, 엄마는 나에게 빨리 와서 영은회를 참석하라고 계속 연락하셨다. 나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제는 돈도 없고 너무 추워서 결국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집에 들어가겠지만, 영은회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영은회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안식일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영은회 출발하는 안식일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영은회를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들어온 집에는 초은이와 경석이가 있었다. 영은회를 참석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엄마가 부른 것이었다. 초은이는 입시 때문에 영은회 중간부터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때 나도 같이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초은이가 영은회에 가는 날 아침에, 엄마는 나에게 영은회를 가라고 소리 지르며 내 짐을 대신 싸주셨다. 그리고 집사님께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했고 경석이도 간다면서 나를 설득했다. 나는 정말로 억지로 차에 타게 되었다. 그런데 차에는 경석이가 없었고 엄마에게 속았다는 마음에 매우 화가 났다.

     이미 차는 전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이런 마음으로 영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이미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주에 도착한 이후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도망을 쳤다. 도망은 쳤지만,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그냥 나는 어떤 산 위에 올라가 벤치에 한 시간 정도 앉아있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나는 일단 천안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을 간 후에 천안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사이 집사님께 소식을 들은 엄마는 영은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으니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천안에 도착한 후에 집에 가는 버스인 12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12번 버스가 없었다. 알고 보니 타는 곳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일부 버스 정류장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냥 아무 버스나 타고 가기 시작했다. 아는 곳이 나오면 내리기로 생각했지만 점점 이상한 데로 가게 되었다. 결국 버스가 모여서 쉬는 곳까지 도착한 나는 그 곳에서 혼자 내리게 되었다. 그 날은 눈이 엄청 오는 날이었고 주위에는 온통 도로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걸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걷다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래서 거기로 가서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왔기에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고 주위를 살피던 중 하천에 돌다리를 건너가는 길을 발견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아파트를 가고자 언덕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눈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손으로는 가시나무를 짚고 말았다. 손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수 없었다. 내가 넘어질 때 마귀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웃음소리를 듣고 나는 뒤를 돌아봤지만 사람은커녕 새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갈 마음이 없었지만, 나는 무서운 마음에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 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교회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전화가 엄청나게 와 있었다. 이를 모두 무시했고, 신기한 체험은 했지만 여전히 내 신앙은 밑바닥이었다.

     아직 내 마음이 강퍅한 가운데, 총회 행사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바로 고3수련회였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나를 더욱 강하게 설득했다. 나는 친구들의 전화를 모두 무시했다는 것과 강퍅한 마음 때문에 가기 싫었지만, 결국 억지로 참석하게 되었다. 고3수련회에 가서 들은 첫 강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어떤 형제가 공무원이 되었는데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려고 다시 시험을 보았고 붙은 것을 자랑했다고 했다. 그런데 목자님께서는 그것이 불쌍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인데 그것이 불쌍하다는 목자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됐다. 경쟁하지 말라는 강의를 시작으로 나는 요셉의 삶이 어떠했는지 고3수련회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경쟁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3수련회는 그동안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조금은 똑바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대학입시의 「다」 군에 썼던 일반 4년제 컴퓨터공학에 합격하게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진학할 대학교와 전공할 과를 선택한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다」 군에는 체육교육과를 쓸 수가 없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넣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너무 자퇴가 하고 싶었다. 오고 싶지 않은 학교였던 것도 있지만, 수업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루는 무슨 프로그램을 짜라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친구들 것을 베끼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퇴하는 것은 부모님이 반대하실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무원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공무원 교재를 펴서 공부했고 수업도 가기 싫으면 그냥 안 갔다. 여전히 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 채 내 계획만을 세우기에 바빴다.

     대학에 들어가면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술 문제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신앙에 다시 적신호가 들어온 것은 바로 술 때문이었다. 신앙 안에서 술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 항상 처음이 중요하다고, 처음에 인식을 확실히 박아둬야 한다고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첫 개강파티에서 거부하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그 후에도 나는 술자리에 많이 갔고, 나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가 있어 항상 옆에 나를 앉히고 술을 마시게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뿐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삶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학기가 끝이 나고 나는 내 기도제목을 내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으로 정했다.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술을 마시지 않고 기도할 때도 당당한 모습이 되는 것이 내 소망이었다. 방학동안 이 기도제목을 놓고 계속 기도했고,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개강파티 날이 잡혔다. 개강파티 전 날, 날 좋아하는 선배에게 개강 파티 날에 자기 옆에 앉으라고 카톡이 왔다. 나는 두려웠다. 기도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소심하고 연약했고 또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 같았다.

     개강파티 당일이 되었고 선배들이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내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선배들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많은 술자리에서 술을 먹었던 나였기에 이 말을 하자, 나는 많은 욕을 먹었다. 그러나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고 밥 먹을 때도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겁 많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용기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인도해주시는 분이신지 내 안에 증거를 쌓아갔다. 그래서 원하지 않던 대학, 원하지 않던 과였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당시에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역을 주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격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세우시고 사용하려 하실까? 나에게 있어 큰 의문이었다. 자기 신앙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감사보다는 원망만 했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감사하는 찬양인도를 할 수 있는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셨기에 부족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나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교사훈련학교와 단기신학을 통해서 교사는 어떤 직분이며 찬양은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되었다. 마귀의 음성을 들었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모태신앙으로 듣기만 한 하나님은 그저 머리로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거치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육신적으로 보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수능을 망쳤을 때, 실기를 못 봤을 때, 대학에서 불합격 통지가 왔을 때, 부모님이 내 의견에 반대 했을 때 나는 언제나 실패한 사람이었고 내 모든 노력은 헛수고였다. 그래서 내 기도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그 걸음을 걸으셨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나사로를 치유하셨다. 내 계획은 실패한 것이 맞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지 못한, 나의 계획을 훨씬 초월하여 나를 만들어가고 계셨다. 내가 영은회에 가지 않고 도망쳤을 때, 버스 정류장이 바뀌어 있던 것, 내가 모르는 곳에 내리고 넘어져서 마귀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일반 4년제 컴퓨터공학에 입학한 모든 게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나를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너무 끈질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배워온 나이지만, 나는 그것을 잊고 그 사랑을 거부했다. 안식일을 범하였고 영은회에서 도망쳤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 예배를 소홀히 여겼고 세상 사람과 같이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아오라고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고3을 위한 기도를 만들어주신 것도, 엄마가 영은회에 참석하라고 하신 것도, 교회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나한테 전화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짖음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다. 변화하고 성장한 내 모습이 그것의 결실이며 증거이다. 그래서 또한 하나님은 나에게, 끈질긴 사랑의 하나님이다.

     고등학교 때의 일을 쓰는 것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의 일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지만, 여전히 내 삶에 역사해주심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멘.

  • [성도간증] 태풍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강남교회 허민욱 형제)

    태풍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강남교회 허민욱

     

    지난 5월 우리 가족(4명)은 괌으로 여행 중, 한국 뉴스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던 태풍(마와르)을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연약함과 일상의 감사함에 나누고자 합니다.

     

    아내가 모아두었던 항공 마일리지가 올해 6월말에 일부 소멸된다는 소식에 우리 가족은 6월이 가기 전 5.20(토)저녁부터 24(수)까지 4박5일 일정의 괌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한 4박5일 일정은 ‘태풍’이라는 변수를 만나 9박 10일의 일정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남달랐습니다. 여행전날 아내는 자전거 낙상사고로 턱을 다쳐 턱을 꿰매는 수술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상처소독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물에 절대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물놀이를 위해 괌에 가는데 아내가 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담담했습니다. 소독 후 빨리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기 위해 집에 왔더니 집에서 기다리던 첫째 예안이는 아프다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픈 적이 별로 없던 예안이었기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내는 턱과 손, 팔이 다치고 예안이는 열이 나고…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의 경고는 아니었을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 지불한 경비와 일정을 고려했을 때 이미 계획한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아이의 해열제를 넉넉하게 챙기고 괜찮겠거니 하며 여행을 떠났습니다. 물론, 태풍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부랴부랴 공항으로 출발하여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괌에 도착했습니다. 첫째 날은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보기 위한 투어를, 다음날부터는 바닷가 앞에 위치한 호텔에 투숙하며 마음껏 수영하는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하나하나 어그러져 갔습니다. 여행 둘째 날, 둘째 유겸이도 고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고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여행 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계획했던 투어는 예상치 못한 지역행사로 차가 엄청 막혀 계획한 곳 중 1군데만 겨우 구경을 했습니다. 다음 날 계획한 돌고래 투어는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의 고장으로 시간을 지체했고, 90프로이상의 확률로 볼 수 있다는 돌고래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행 중에 예상치 못한 ‘불행’이 계속 생겼습니다.

     

    돌고래투어를 마치고 22일(월) 바닷가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할 무렵 수요일로 예정된 항공편이 결항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간신히 귀국일정을 앞당겨 23일(화) 오후 5시 귀국편으로 예약변경에 성공했지만, 24일(수) 상륙할 태풍으로 인해 23일(화) 아침부터 괌은 외출자제 명령이 발효됐고, 23일 귀국편 모두 결항처리 됐습니다. 괌에서 25일, 26일, 27일, 28일, 29일 등 수없이 귀국편 예약변경을 시도했으나 우리는 태풍으로 인해 결국 6일 더 체류하며 30일(화) 자정에 입국하게 됩니다.

     

    괌에 상륙하게 된 태풍은 현지에서도 60여년만의 태풍이었다고 합니다. 태풍 당일의 공포도 상당했지만 태풍의 영향은 그 이후에도 막대했습니다. 태풍으로 숙소의 물과 전기 공급이 끊어졌고 공항의 활주로 및 기계장치의 파손으로 1주일간 공항은 폐쇄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3천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괌에 발이 묶였습니다.

     

    괌에서 경험한 태풍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꿨습니다. 태풍은 단 하루 지나갔을 뿐인데 자연은 비참하게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물과 전기를 찾아 떠도는 유랑민(?)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이 끊어지자 당장 씻을 수 없고 화장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발생했습니다. 에어컨이 가동 안 되니 더운 날씨로 인한 습함, 찝찝함으로 씻고 싶어도 참아야 했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는 물이 나오는 건물을 수소문하여 돌아다녔습니다.

     

    또한, 전기가 끊어지자 15층에 투숙하던 우리 가족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1층까지 오가는 과정에서 계단을 이용하여 왕복해야 했고, 핸드폰 충전을 위해 전기가 공급되는 호텔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또한, 전기를 통한 빛의 공급이 차단되자 야맹증이 있던 저는 아내를 의지하여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을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서 단지 태풍이 하루 지나갔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문명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고 그 속에서 익숙해진 편리함을 찾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유랑하는 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공포로 다가왔던 태풍을 통해 하나님의 크심을 생각해보는 한편 편리함이라는 울타리 속에 익숙해진 채 편리한 문명을 좇는 저의 모습을 보았다고 할까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일상의 삶 속에서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물, 전기 그리고 인터넷이 제한된 채 6일을 괌에서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또한 편리한 생활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던 제 모습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그러한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원망의 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 나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행 시작 전, 후로 계속된, 소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원망과 짜증보다는 이보다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며 농담을 던지는 가운데 태풍을 만난 후 일상의 편리함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적응했습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고열에 시달렸던 아이들은 짧은 시간 내 컨디션을 회복하여 태풍 후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가서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영장에서 물을 수시로 길어 나르고 빨래 등 힘쓰는 일에 애쓰고, 아내는 계속하여 최신 상황과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제공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첫째가 여행 떠나는 날 아팠기 때문에 충분히 한국에서 챙겨간 약으로 여행 중 아이들이 아파도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습한 날씨로 인해 고열 발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약이 부족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여행 초기에 이틀 정도의 열감기만 있었고, 면역력이 생겼는지 체류하는 가운데 습한 날씨에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가 머무르는 숙소는 시설이 썩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태풍으로 인한 전기, 물이 차단되는 상황에 최적화된 곳이었습니다. 일부 호텔은 연장이 안 된다고 투숙객을 내좇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가 묵은 곳은 귀국까지 연장을 해줬습니다. 태풍으로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호텔에서 기본 쌀밥을 메인으로 하루 3끼 도시락을 귀국까지 제공해줘서 다른 관광객처럼 식당을 찾아 헤매거나 아이 밥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방 안에는 기본적으로 정수기가 있어서 생수를 구하러 애쓸 필요도 없었고, 각 층마다 제빙기, 전자레인지가 있고 공동 시설에 세탁기, 건조기가 있어서 전기가 한시적으로 들어올 때면 밀린 빨래를 하고 도시락이 질릴 때면 취향에 맞는 음식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다고 생각합니다.

     

    60년 만에 찾아온 태풍을 괌에서 만났지만, 그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크심과 물질의 익숙함 속에 살아가는 나를 보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주셔서 이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성도 간증]인천교회 한신민 집사님 간증으로 은혜 받으세요!

    [성도 간증]인천교회 한신민 집사님 간증으로 은혜 받으세요!

    할렐루야!

    큰 아드님과 설교 듣는 모습

    인천 교회 올해 84세 되신 한신민 집사님의 간증을 전해드립니다.  `집사님의 육성으로 간증을 직접 들으시면 더 풍성한 내용이 전달 될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집사님은 삼계 교회 근처 봉현리가 고향이십니다. 20세 때 참예수 교회를 알게 되어 진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청,장년 시절 교회를 위해 헌신하셨고, 여러 교회의 벽돌을 직접 쌓으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재물과 시간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몇 해 전 사모님이 혈액암으로 소천하셨는데, 갑작스레 둘째 아드님이 심장마비로 소천하시는 슬픔을 경험하셨습니다. 집사님의 헌신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이야기를 통해 은혜가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60세 이후에 첫 직장을 퇴직하고, 학교 관리직으로 재입사를 하셨습니다. 그 때 어느 교직원 분이 연금 상품을 소개해 주면서 집사님의 전 직장에서 받으신 퇴직금 2천만원을 연금 상품에 가입하라고 안내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 연금 상품이 내년 2차 퇴직을 하시는 집사님에게 10배 이상의 수익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개해 주신 그 분은  연금 상품 가입 후 곧 바로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셨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그 교직원이 너무 고마워서 찾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 교직원은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보내주신 천사인 것 같다고 하십니다. 집사님은 여든이 넘을 때까지 성실하게 일하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더 이상 노후 걱정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갑작스럽게 심장 마비로 소천하신  둘째 아드님은 교회에 예배 참석을 안 하신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 장례 후 간혹 교회에 오셨고, 소천하시기 두 달여 전부터는 안식일마다 예배에 잘 참석하셨습니다. 성령기도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낙원에 계실거라 믿습니다. 최근에는 잃은 양인 큰 아드님이 아버지 한신민 집사님과 함께 안식일 예배에 출석하십니다. 집사님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교회로 한 분 한 분 인도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각 사람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알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묵묵히 청지기로서의 삶을 잘 살면 하나님께서 재물도 쏟아부어 주시고, 자녀들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신민 집사님께서 하늘나라 갈 때까지 영육 간에 강건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다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길 빕니다.

    성도님들도 한신민 집사님과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미누엘♥

  • [성도 간증]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수원교회 김*민 형제)

    [성도 간증]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수원교회 김*민 형제)

    김찬민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안함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저는 양가 친척 참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환경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어렵다거나, 신앙의 고난을 겪는 것이 없었습니다.

    늘 교회 안에서 생활하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자 노력하면 오히려 칭찬을 듣는 아주 편안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환경에서 신앙생활 하는 저의 모습이 ‘진짜 제 신앙심’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안식일이 좋았습니다. 이유는 저를 예뻐하는 친한 형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은 늦게까지 축구공을 가지고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에 대한 말씀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저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겼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년반 예배에 아동부 전원이 참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반강제로 어른 예배에 참석하다 보니 조금씩 말씀이 제 마음에 쌓여갔습니다.

    이 덕분에 성령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저는 성령을 받기 위해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같이 놀던 형들이 성령을 받기 시작했고, 저는 아직이었습니다. 이때까지는 조급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저보다 동생인 친구들이 성령을 받기 시작하자 조급해졌습니다. 그러자 조급함에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 성령을 이미 받았다고 ‘착각’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실망했습니다.

     

    실망의 정점을 찍은 것은, 새로 교회에 나온 가정이 바로 성령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충격이었고 하나님께 서운함과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게으르게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선생님께 이런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론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24살 성인이 되어서야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가장 완벽한 때에 주실 거야. 그러니 포기하지 마’

    그 말을 듣고 저는 성령 간구를 멈추지 않았고, 중학생 때 마침내 성령을 받게 됐습니다.

    너무나 간절했기에 성령 받은 감동이 매우 컸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후 저는 ‘신앙의 사춘기’를 겪게 됐었습니다.

    성경 말씀이 맞는 것인가?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가? 등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고민을 통해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 안에서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구해도 내리지 않았던 성령이, 제가 필요한 때에 주신 그 성령을 통해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딱 맞는 시기에 성령을 주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제 삶 속에서 성령을 통해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글 – 안*수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