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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뒤돌아 보니 모두 주님의 “은혜” (대방교회 유니게회 정*선자매)

    (성도간증)뒤돌아 보니 모두 주님의 “은혜” (대방교회 유니게회 정*선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말하랴”

    저는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지난날이 스치며 그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아 주고 계셨던 것이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유년 시절 저는 숫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탓에 지방에서 서울 도심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다가서기가 어려웠고 늘 외로움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고 저는 미션스쿨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토요일 1교시는 항상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찬양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 배웠던 찬양들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등)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때 그 찬양들은 숫기 없던 저의 외로움을 늘 위로 해 주었습니다. 찬양을 좋아하고 그에 위로를 얻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방학 때는 고향인 시골에 가서 그 곳의 교회를 다녔지만 방학중 잠시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잘 몰랐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앙에는 무관심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참예수교회를 접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언니가(정*정 자매)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형부(김*주 집사)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참예수교회(대방)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의 인생에 참신앙을 만나게 된 사건이었지만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교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 또한 결혼의 시기가 다가왔고 청첩장의 문구를 고르던 중 이유는 모르겠지만 “믿음으로 만나”라는 문구가 너무 좋아 보여 청첩장의 문구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례 선생님께서 저에게 교회에 다니냐고 물으셨지만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여전히 몰랐었습니다. 그동안에 언니는 저에게 계속해서 함께 교회 나가기를 수없이 권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흔히들 얘기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토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과 그 교회를 권면하는 언니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참 곤고 하였습니다. 마치 벼랑 끝을 걷는 듯 위태롭고, 버거움에  지쳐있었습니다.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여유가 전혀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맏며느리로 맞벌이 하며 두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모두 힘든 시기이겠지만 저 또한 그 시간이 너무 고되고 힘이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10년 만에 또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늦둥이 막내를 낳고서도 맞벌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여전히 여유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토요일도 출근을 했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덕에 큰애들은 주말마다 육아를 도왔습니다. 큰애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가 토요일이면 막내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돌봐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와 큰애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잠시 평화로운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교회로 향하는 저의 발걸음이라고는 토요일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얼마 후,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암에 걸려 투병하고 계실 때 언니와 형부는 매일 저녁 퇴근길에 아버지께 들려 기도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께 찾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 너희 다니는 교회 갈란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믿기로 하셨지만, 그때에도 저는 여전히 감흥이 없었습니다. 점차 병세가 깊어져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고 입원(2015.5.6) 날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연휴를(5.1/근로자의날) 이용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고향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모두가 안타까움으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언니가 “아버지 세례를 받으셔야 하겠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언니의 말을 듣고서 아버지가 너무 걱정되며 언니에게 화가 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4월이라도 계곡물은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세례식 일정은 잡혔고(4.26) 저의 염려와 화나는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척척 진행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몹시 불편하였고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세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식 당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감격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세례받으시던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던 복숭아나무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아버지께 꽃비가 펄펄 내렸습니다. 광경을 지켜보던 저는 마음에 걱정이 있었나 싶도록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세례를 받았고 거듭났으니 더욱이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실 때만 해도 아버지는 기력이 많이 쇄약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도 매번 예배에 출석하셨습니다. 때마다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하셨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는 아버지를 눈물 나게 하였고, 눈물 흘리게 하였지요. 눈가가 헐어 진물이 나기까지 참회하셨고 어머니께도 그동안의 고생을 감사하시며 화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갓집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이제 제사 지내지 마라! 모두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저희에게 매우 어려운 숙제가 될 큰일을 순조롭게 잘 정리 해 주셨지요. 아버지는 그렇게 1년 쯤 잘 보내셨고 이듬해 (2016.6.6)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힘겹게 사는 저를 보시며 아버지는 “뭐가 걱정이냐!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계시다는 것을요.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남은 시간이 고작 3개월이라고 선고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선고와는 달리 1년 동안을 더 지내셨습니다. 아버지가 더 지내신 1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두 달 후(8월) 아버지가 보여주신 믿음대로 저와 막내아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함이 한없이 부끄러우나 얼마 후 제게 뜨거운 성령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것이 매우 기쁘고 자꾸 감사가 넘쳐 눈물이 흘렀습니다. 보잘것 없는 저를 나의 존재를 하나님의 영을 통해 귀하게 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나의 자녀! 너는 귀하다.” 하시며 뜨겁게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3년 후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며 구원파의 분파로 알려진 새생명 말씀선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저는 “엄마가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권면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목자님 말씀을 들어보고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하며 순순히 응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참예수교회 진리를 공부하게 된 둘째 아들은 마침내(10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성령도 받았습니다. 두 아들들과 성도님들 앞에 나와 찬양하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 해 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현재는 안타깝지만 둘째 아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막내아들이 아동부로는 마지막 초등부 영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영은회 기간 3일 중에 이틀만이라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중학생 되면 교회 못 간다”며 남편은 아주 단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에 불만이 많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영은회 이틀째 되는 날 감사하게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더욱더 하나님께 의지할 순간이 많아지게 될거라 생각했지만 믿음이 없는 아빠는 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빠의 반대에 의해 아이는 지금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미처 모르는 것 들을 다 예비해 두셨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가족들은 어려움 앞에 하나님께 매달려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남동생이(43살) 혈액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시 하나 되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기도의 능력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매달렸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성도님이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 동생은 현재까지(만 4년째) 잘 이겨냈고 병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부터 인도해 오신 것처럼 남동생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해야 할 순간에 기도로 매달리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능력과 은혜는 진행중 입니다. 저는 직장 때문에 안식일 오전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언니는 고민의 여지가 없는 권면을 했습니다. “기도해. 오전예배 드릴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해 주시라고”라고 했지요. 저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저의 형편에 따라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 직장에서 주 5일 근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저 보다 더 열심을 다해 기도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지만 잘 된 것 인지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순간을 이끌어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뒤늦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삶은 힘들고 고단한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힘들고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희 신도회(유니게회)를 통해 저를 위한 기도를 허락하셨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숫기가 없어 친구도 사귀기 어려워했던 저에게 교회 공동체 안에 진정 귀한 저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에 기억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9~20절)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어버지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제 소견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해 주신 경험들이 있습니다. 평소 저는 남편과 데면데면하여 얘기도 잘 못하곤 합니다. 어떤 상황에 남편이 제게 뭐라 이야기했을 때, 제가 남편의 어깨를 지그시 만지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제 말과 행동에 저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또 한번은 시어머니께서 일하시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해 허리에 병이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 스스로가 느껴졌습니다. 쉽지 않은 이 과정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이끌어 주심을요. 이어서 시어머님은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을 지갑에 넣어두셨는데 시장에서 잃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그 큰돈을 왜 한 번에 들고 나가셨을까 잠시 원망이 되었습니다. 사실 일이 바빠서 어찌할지 걱정할 틈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이미 포기하시고 병이 나 계셨습니다. 그런데 퇴근 무렵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허락하셨지요. 퇴근길에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분실신고를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분실 접수된 시어머님의 지갑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방문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산재 신청에 이어 하루 만에 지갑까지 찾아준 제게 고맙다며 “네 덕분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께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어머니 형편을 아시고 찾아주신 거에요. 하나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지 않았다면 저는 전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입니다. 오랜 시간 가족으로 살아 왔으니, 저 스스로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겠지요.

    믿음이 없는 남편과 시어머니께도 하나님을 통한 은혜를 전할 수 있게 해주심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제가 힘없이 낙망하던 모든 순간이 돌아보니, 은혜였습니다. 모든 순간순간 지켜보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성도간증]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천안교회 유정아 자매)

    [성도간증]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천안교회 유정아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희 가족 구성원은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까지 3명입니다. 잦은 업무로 인해 바쁘셨던 아버지였기에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할머니는 저의 엄마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이모할머니(대방교회 서정임)께서는 할머니를 전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주말에도 일을 나가시거나, 일이 없는 날에는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셨고, 남은 저는 할머니와 시장 구경을 가거나 할머니들의 수다 모임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친구였던 할머니가 없자 토요일은 제게 너무나도 심심했습니다. 하루는 심심한 나머지 ‘그냥 한 번만 따라갔다 와볼까?’라는 생각에 할머니께 나도 데려가라, 따라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모할머니를 만나 셋이 함께 천안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천안교회에 대한 첫인상은 엄청난 환영이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한 뒤부터 집으로 갈 때까지 엄청난 환대와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주 안식일이 찾아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빈둥거리며 누워있는 저에게 “정아, 교회 갈 준비 안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그냥 딱 한 번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당연하단 듯 준비하라는 할머니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왜 그랬는지 저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교회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교회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사실 저의 성격은 줏대 없이 누군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그냥 흘러가듯 사는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심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8년 8월 2일 할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께로 가셨고, 남겨진 아버지는 절망을 표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저에게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끼셨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눈물이 많으면서 왜 할머니의 장례식엔 울지 않냐며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가장이 아님에도 가장처럼 늘 가족을 챙겨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례식장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던 몇 명의 가족들과, 어려서부터 저를 키우시고 보살펴주셨던 할머니인데 그에 비해 울지 않는 저에게 많은 서운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물론 저도 당시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긴 하였지만,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안전히 잘 데려가셨으리라는 생각으로, 안도와 평안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슬픔보단 평안의 마음이 클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에 할머니에 비해 기도 생활이 좋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또 매일 밤 자기전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시는 할머니와 달리, 저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마치 ‘나는 이렇게 기도 안 하니까 안심하세요’라는 둥 아버지 앞에서는 기도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당시엔 저까지 성령으로 기도해버리면 늦둥이에 외동인 저를 망쳤다며 안 그래도 심했던 핍박이 더 심해질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실지 모르는 일인데, 하나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또, 그래서인지 기도 습관이 들지 않았고, 까먹는 날도 종종 있었습니다. 무튼, 할머니께서 편찮으신 뒤로 일어날 힘과 기도할 힘조차 없으셔서 이전보다는 기도를 많이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또, 날로 악화되어서 나중엔 거의 못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조급함과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워 계신 할머니 앞에서 성령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할머니와 같은 방, 하나의 침대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왜인지 잠도 잘 들지 않았고 새벽 2시쯤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할머니께서 숨을 쉬시는지 확인하였습니다. 원래 같으면 한 번 깰수록 더 깊이, 더 오래 잠이 들었을 텐데 그날은 잤다 깨었다를 반복하였고 할머니의 상황을 연신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할머니께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제가 평소처럼 깊이 잠이 들었다면 저는 아침에 해가 밝아서야 할머니의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평안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안전히 잘 데려가셨으리라는 믿음이 들었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허나 아버지는 믿음이 없으셨기에 이게 다 교회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에 다니는 저의 모습을 극도로 싫어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영은회의 시작을 알리는 영은회 엽서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적도 있고, 그 밖에도 직접적으로 싫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원래도 교회, 특히 방언 소리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리에 민감하고, 잠귀도 밝고, 업무로 인해 지쳐서 피곤한 아버지의 귀에 할머니께서는 매일 저녁 성령으로 기도하시고 주무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는 갔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핍박이 심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년도 코로나로 인해 아버지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이제는 더 이상 핍박이 아니라, 교회에 가지 말라는 통보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가 뉴스로 보도된 날 이후로 저는 교회에 가지 못하였고,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건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을 보러 교회에 갔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멀어지고 저는 저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이전에 목자님께서 아버지의 교회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유해지기 위해선 교회 생활에도 열심을 다 해야 하지만, 지금 내가 세상에서 맡겨진 일(학생)에 대해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처음엔 열심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학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성적이 점점 좋아질수록 나의 욕심은 커져만 갔고, 이젠 더 이상 아버지를 위함보단 나를 위함이 되어버렸습니다. 공부의 습관도 처음엔 문제집을 풀기 전과 후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능력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이후엔 점점 귀찮아하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10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만 기도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처음엔 교회와 가깝다며 좋아했지만, 나중엔 교회 언니 오빠들을 만날까 조마조마한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언니 오빠들과 선생님이 언제나, 저를 포기하지 않고 시간 내서 만나러 학교 앞까지 와주고 계속해서 심방과 편지를 써주었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안부를 묻고, 가끔은 따끔한 권면도 그 당시에와 지금 모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써주신 편지들을 꺼내서 읽어보면 당시의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와 학교가 가까웠던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죄에 대한 생각도 커져만 갔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며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동아리인 공채반에 들어가면서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와 강의를 듣고 자습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퇴출이었습니다. 매주 안식일에 교회가 아닌 학교를 선택하는 제 모습을 보며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의 발걸음은 학교로 향했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저는 피부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치 여드름의 개수가 내 죄의 개수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주기도문을 할 때에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와 같이 죄에 관한 내용에서는 더 온 마음을 다해 기도드렸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율법주의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죄책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마음인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죄책감으로 인해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모두 지키며 살아간다는 바리새인이라 해도 사랑은 실천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다 지킬 수 없음을 이제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외식하는 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부족함을 계속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께 메달린다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이전보다 나은 거룩함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참 감사한 것은, 제가 그렇게 방황하던 와중에도 매일 성경읽기와 기도하기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사랑과 권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기도는 기도라 칭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매우 짧고 형식적인 기도였습니다. 가끔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 읽기도 묵상은커녕 그냥 읽는 것 조차도 힘들어했고, 자기 전에 누워서 혹은 소위 랩을 하듯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 읽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형식적인 기도와 말씀 읽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형식적으로 말씀을 읽는데, 그냥 또 아무생각 없이 읽었음에도 말씀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처녀의 비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미련한 5명의 처녀들을 보며 ‘이건 나다.‘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교회로 가야지, 이제는 돌아가야지, 이제는 그만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렸듯 세상을 향한 욕심과 부모님의 기대, 그리고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부담감이 쌓여 계속해서 저를 망설여지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귀가 심어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선 저의 그동안의 이런 생각들이 무색할 정도로 말씀 하나만으로 저를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하고 힘 있는지를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식적이더라도 말씀 읽기와 기도가 습관화 되어야 함을,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들과 눈물이 있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바쁜 와중에도 매일같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며 기도해준 친구, 피곤한 와중에도 멀리 사는 저를 위해, 영은회에 더 오래 참석하게 하기 위해 차량 운행 해주시는 선생님과 성도님 등등..!! 정말 많은 성도님들을 보며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젠, 그 받은 사랑을 나도 전하고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제가 슬픔보단 평안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아버지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존심이나 세상적인 것들을 선망하는 모습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을 상상할 땐, 저에겐 영화같은 이야기,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요리 솜씨가 있으신 아버지가 주방에서 봉사하는 모습도 상상해봅니다. 이렇게 소망하며, 계속해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다가도 중간에 한 번씩 소홀해지거나 지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이를 위해 ’분명 하나님의 때가 있을 것인데, 그보다 더 빨리 허락하여 주시고 싶을 만큼 간절히 기도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더 간절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구한다면 곧 이루시리라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여 주세요.

     

     

    지금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오실 때까지 깨닫고, 사모하며 살기를

    내가 죽고 그가 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 [성도간증] 성령 받은 6명의 성도를 소개합니다.

    [성도간증] 성령 받은 6명의 성도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2023년 1월 28일~2월 1일에 열렸던 학생부 영은회에서 서지후(중1), 고은결(중1), 오재율(중3) 학생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2023년 2월 4일~6일에 열렸던 아동부 영은회에서도 이지연(초4), 박하이(초4), 김진우(초6) 아동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서 느낀 점이나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고은결                                                                                                          서지후

    서지후: 교회에 있는 게 너무 좋아졌어요. 신앙적으로 발전된 것 같진 않지만 기도 제목이 성령받기에서 성령충만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크게 달라졌어요.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영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기뻐요.

    고은결: 이번 영은회 때 말씀을 잘 들었고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영은회 끝나고 그 다음 주에 학생부활동에서 영은회 주제로 성경골든벨을 했었는데 다 맞췄어요. 영은회 때 크록스 신발을 신고 같 것이 마음에 걸렸고 성찬례 기도시간에 회개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오재율: 학생부 영은회 하기 몇 주 전부터 가족들과 기도하고 새벽 기도를 나갔었어요. 이번 영은회 때 기필코 성령을 받아야 겠다고 다짐했었어요. 저는 목자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면 모두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별학습 시간에 지은 죄를 공유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말하지 못한 비밀얘기까지 하나님과 나누었어요. 앞으로 성령을 구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려고요.

     

                                                          이지연                                                           박하이

    이지연: 저는 회개기도를 하면서 성령을 받았어요.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지금 다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기도했었어요. 성령 받기 전에는 가요를 들었었는데 이제 세상의 것들을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요. 성령을 받으니깐 하나님 말씀에 더 귀기울여지는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것은 제게 천국을 갈 수 있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예요. 

    박하이: 하나님께서는 저의 미래를 아시잖아요. 아동부 영은회 때 미래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겠다고 기도했는데 성령을 주셨어요. 성령 받기 전엔 부모님을 공경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이런 말씀을 어겨왔었는데 이제는 다른 길로 안가요. 성경 공부 시간에 선생님께서 성령이 충만하면 다른 길로 안 간다고 하셨어요. 이제 성령 충만을 구하니깐 하나님께서 다른 길로 안가게 해주실 것 같아서 제일 좋아요. 

     

                                                                                                                              김진우

    김진우: 아동부 영은회 때 목자님께서 하나님께 요구하듯이 성령을 구하지 않고 죄송한 마음으로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원래 ‘성령 받게 해주세요’ 라고 계속 기도했었는데 말씀을 듣고 기도 제목을 확 바꿨어요. 그리고 요구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반성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어요. 엄청 열심히 기도했었는데 기도가 끝나고 옆에 있는 동생들이 땀을 보고 놀랐었어요. 기도 제목을 바꾸게 해주신 목자님께도 감사하고 바뀐 기도 제목을 들어주신 하나님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친구들도 목자님 말씀대로 생각을 바꿔서 기도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성령을 받고 나서 평일에 옳게 행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성령을 받기 전과는 다른 모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7-8절)

  • [성도 간증]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구원

    [성도 간증]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구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27:1)”

    ◊ 안양 참예수교회로 전도

    저의 엄마는 30년 동안 잃은 양이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장로교회를 다니며 엄마는 교회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으시냐고 했을 때 엄마는 교회를 다니게 된다면 어릴 적 다니던 참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주변에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아무데나 가면 되지 왜 꼭 참예수교회를 고집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제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암에 걸리시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으셨습니다. 마침 외삼촌댁이 안양에 정착하시고 안양에 교회가 세워 지면서 엄마는 서울에서 2시간여를 전철을 타시고 안양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엄마는 믿음을 회복해 가시며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제가 곁에서 보기에도 신기하고 참예수교회에는 뭔가 있나 보다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경기도 시흥에 살며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가 다니고 계신 교회에 가보자고 계속 저를 권면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교회를 다니기는 하였으나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그저 일요일에만 문화생활처럼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으나 성경적 지식도 없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막연히 계시겠거니 생각만 했지 신앙생활이나 믿음에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과 어머니는 이왕 교회 다니려면 참 진리가 있는 곳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며 참예수교회에 나가자고 권면 하시고 안식일 마다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저는 그때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남편은 주말에 쉬는 직장이 아니어서 첫째 아이와 함께 몇 번 안양 참예수 교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 전 저는 참예수교회에만 진리가 있다는 말씀에 교회가 다 똑같지 무슨 여기에만 진리가 있겠는가 하며 속으로 반문하였고, 방언 기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기도시간에 기도하시는 성도 분들이 몹시도 낯설고 이상했습니다. 이야기 나눌 때는 모두 친절하시고 평범하신데 기도하는 모습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모르던 그때 저는 기도시간마다 무척 적응하기 어려웠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한동안 토요일에는 안양교회를 나가고, 일요일에는 일반교회에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교회를 두 군데에 걸쳐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참예수교회가 진리가 있는 교회라고 하는데 그럼 하나님께서 제가 참예수교회에 다니도록 인도해 보세요 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둘째딸을 출산하였습니다.

    뜻하지 않은 시련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는 딸이어서 너무 기뻤고 임신기간 동안 정상이라는 소견을 듣고 무사히 출산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얼굴이 어딘가 달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변의 반응도 그렇고 남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태어난 아기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원하였습니다. 그렇게 20여일이 지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남편에게 주변 반응과 아기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마음 단단히 먹고 지금부터 내 얘기를 잘 들으라 하면서 우리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기의 지능이 낮고 발달장애와 신체 합병증도 여러 가지 생길 수 있으며 오래 살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도 믿고 싶지 않아 큰 병원에 검사의뢰는 해놓았고 같이 가서 검사를 해보자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아픔이고 절망감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울 용기도 자신도 없었고 지금의 상황이 너무 무서워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며칠 후 유 바나바 목자님께서 저희 집에 심방을 오셨고 목자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으실 거라는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계획을 세우셨을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아기가 다운증후군이 아닌 그보다 증상이 덜한 모자이크증후군만이라도 되게 해 주세요” 라며 기도하였습니다. 아기를 볼 때 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가 자책하게 되고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온갖 안 좋은 내용들만 있어서 수십 번 마음이 무너지곤 하였습니다. 검사 결과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고 그해 가을은 정말 저와 남편에게는 너무나 아픈 계절이었습니다.

    광주에서의 신앙생활

    너무나 힘들어하는 저에게 남편은 환경도 바꾸고 아기가 자라면서 재활도 하고 병원 가야할 일도 종종 생길 수 있으니 광주로 이사를 가서 친구가 소개해 주는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직장을 다니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둘째를 낳고 3개월 후에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세례도 받지 않고 저희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안타까워하시며 광주에도 참예수교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고 당시 김한길 목자님께 저희 가정을 잘 부탁드린다고 통화도 하신 것으로 압니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힘든 상황에 원치 않는 지방으로의 이사는 마음의 부담이 컸고 저는 광주로 내려가는 내내 울며 이사를 했습니다.

    그날은 1월이라 눈도 많이 내렸고 날도 무척 추웠습니다. 그런데 광주교회에서 저희가 이사를 온다고 교회에 저녁준비를 해놓을 테니 와서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아기의 장애가 구경거리가 될까 굳어진 마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나 어머니는 그래도 감사하지 않냐 하시며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광주교회 목자님, 성도 분들과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낯선 지방에서 제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식일마다 남편 부재시 성도님들이 돌아가면서 저와 아이들을 데리러 와주셨고, 교회에 가면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 주셔서 교회에 가면 유일하게 제가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찬양의 가사들은 너무나 제게 위로가 되었고 말씀이 다 이해는 안 되지만 조금씩 조금씩 들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례와 성령을 받지 않은 제게 기도시간은 난처하기만 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으나 열심을 내지 못하는 신앙

    그러던 중 세례교육을 받고 성경대로 세례를 받아야 함을 알게 되었고 온 가족이 그해 10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간절하게 성령을 구해야 한다고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배웠으나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저는 간절히 성령을 구하지 않고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저는 셋째 딸을 임신하고 두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믿음은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예배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안식일에만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 하루 교회 가는 날도 남편과 갈 때마다 싸우게 되고 상한 마음으로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저는 셋째한비를 낳고 혼자 아이 셋을 돌보며 마음의 여유를 잃고 늘 바쁜 남편에게 자주 화를 내곤 하였습니다. 급기야 안식일 예배도 빠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니 삶이 휘청거리고 사단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민이를 잃은 슬픔과 절망

    한비가 11월에 태어나고 다음해 3월 어느 날 아민이가 열이 나고 감기 증상이 있어 급히 동네 소아과를 갔습니다. 아이를 안고 병원을 뛰어 가는데 제 품에서 밝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잘 웃는 아이를 보며 심하게 아픈 건 아닌가 보다 안심을 하였고 의사 선생님도 단순 열감기라고 하셨기에 3일 동안 해열제와 약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부터는 아이가 밥도 잘 안 먹고 밤에 잠도 못자고 귀 아래로 부은 모습도 보여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선 남편에게 좀 더 큰 소아과로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 병원에선 검사결과 염증수치가 높으니 우선 주사를 놓고 좀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하고 귀 아래 부은 것은 왜 그러냐고 묻자 의사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대학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목자님께 연락을 드리고 병원에 같이 가주시기를 부탁 드렸습니다. 소식을 듣고 성도 분들은 다함께 기도해 주셨고 저희 가정을 많이 챙겨 주시던 자매님도 병원에 함께 동행 해 주셨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불안하고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만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각종 검사를 하였고 아이는 지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검사를 하던 중 갑자기 아이가 호흡이 없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의사선생님께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에겐 급하게 산소호흡기가 씌워 졌고 저는 너무 흥분한 상태여서 병실 밖에 나가 있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아이 옆에서 계속 기도해 주셨고 저는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울면서 “하나님 아이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라며 기도하였습니다. 몇 분 후 목자님께서 중환자실에서 나오셨고 “진아 자매님, 아민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으니 들어가서 아민이에게 인사를 하셔야겠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자님 손을 잡고 “목자님 이건 아니잖아요, 저는 못 들어가겠어요!” 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않아 목 놓아 울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아이를 떠나보낼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도저히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인한 기쁨과 위로, 그리고 성장

    아이를 보내고 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친정인 안양으로 올라왔고 예배에 참석하여 기도시간에 간절한 마음으로 저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만져주시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제 입에서 방언 기도가 나왔고 마음이 평안해 지면서 성령이 내게도 임하셨구나 하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서는 “진아 자매님,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가장 낮은 마음일 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보고 싶어 울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커튼 틈 사이로 한줄기 강하고 밝은 빛이 방을 비추고 들어와 누워있는 저를 향하여 비춰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도 그 빛이 너무 강하여 눈이 부셨고 그대로 깊은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푹 자고 일어났고 전날 밤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여 주심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하늘을 향해 기도드렸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해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부교회에 영은회는 다 찾아다니며 말씀을 들었고 안수를 받을 때마다 물같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는 기쁨이 넘쳐 기도 중 일어나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교회가 바로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민이를 보내고 장례식장을 한해에 다섯 번이나 가게 되면서 죽음과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 구원의 기쁨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까?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해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라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친구초청 예배 때 지인들을 초대하고 그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의 도우심으로 저는 변화되어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 중 뼛속까지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것이 신비로웠습니다. 다시는 웃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저는 말씀과 기도생활을 통해 웃음을 되찾아 가면서 하나님의 일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요? 고난이 없이 평탄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겨 보세요. 하나님은 하나를 드리면 전부를 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저희 가정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꼭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다정한 모녀, 엄마와 함께 >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열린 예배에 간증하고 계신 김진* 자매님>

  • [성도간증]육군3사관학교 생활과 할머니의 임종

    [성도간증]육군3사관학교 생활과 할머니의 임종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동부교회 박지훈 형제입니다. 지난 2021년 1월 17일에 푸른 장교의 꿈을 안고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하여 2023년 2월 27일에 장교로 임관하였습니다. 사관학교 생활하면서 있었던 저의 이야기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육군3사관학교는 북한 무장 게릴라의 청와대 습격사건, 프에블로호 납북 사건 등에 영향을 받아 북한군보다 더 강한 정예 장교를 양성하라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명에 의해 북한군 출신인 귀순장교를 초대 학교장으로 임명하여 창설되었습니다. 육군3사관학교는 일반대학에서 2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편입하여 2년을 더 공부한 후 졸업합니다. 육군3사관학교 교육 과정은 다른 장교 양성과정들보다 빡빡하고 힘든 과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제가 입학한 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 외박이 통제된 삶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기에 매우 열악한 상황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통해 예배에 참여하였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2년간 휴가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훈련을 통한 기쁨과 성취감도 물론 있지만 육체적, 정신적, 신앙적으로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2022.3.17일 저는 큰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제가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할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외출, 외박 통제로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2년 동안 할머니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왜 하나님은 나의 여건과 상황을 아시면서 할머니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게 하셨을까?” 라며 원망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할머니는 제가 입교하고 난 뒤부터 뇌경색으로 병원에서 생활하셨습니다. 의사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상태셨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하나님이 할머니를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습니다. 제 기억 속의 할머니는 항상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고통 속에 돌아가신 것이 원망스럽지만 기쁨이 가득한 천국에 가신 것을 믿으며 슬픔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소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의 손자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2년 동안 무사히 훈련과 학업을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세상의 수고를 다 마치시고 낙원에서 기쁨을 누리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만날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험한 훈련 가운데서 지켜주셔서 지난 2년간 좋은 성적으로 육군참모 총장상을 2번 수상하고, 육군 항공 장교에 선발되어 공격형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제 삶도 지켜주실 것을 믿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 [성도 간증]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수원교회 유*춘 집사)

    [성도 간증]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수원교회 유*춘 집사)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나의 첫 신앙 지인 남원교회는 성 춘향과 이 도령의 이야기가 있는 광한루 옆을 흐르는 요천을 가로지른 다리 건너 동부 노암동이었다.

    요천 옆 산에는 일제 강점기의 신사를 원불교에서 교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건물 앞 넓은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가끔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는 장로교회에 다니다 중3 때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남원교회에 발을 들였다.

    당시 허야곱 목자님이 계셨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학생들을 보듬어 주시고 신앙인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시려고 애쓰셨는데-

    영은 전도대회를 앞두고 새벽에 인근 산에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기도했던 일, 여름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일박하며 기도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특별한 놀 거리가 없는 우리 들은 학교에서 오면 교회로 모여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아동반 주보, 전도지 등을 등사기로 밀어 만들면서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순수한 마음이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다면 아마도 그때 형성되었기 때문이리라.

    몇 년 후 야곱 목자님 후임으로 오신 이 빌립 목자님은 청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가까이하는 분이셨다.

    70년대 말,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신앙모임 ‘밑거름’ 회가 조직되고 활동 중 하나로 교회당 이전이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현재의 남원교회는 성도 한 분이 부지를 헌납하고 모든 성도의 건축헌금과 기도와 땀으로 세워졌다.

    직장이나 학업으로 외지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휴일에 내려오면 인근 요천 냇가에서 교회 건축자재로 쓰일 돌들을 리어카로 실어 나르곤 했다.

    모래는 신기하게도 교회 건축 터에서 나와 충당되었다.

    1981년에 교회당에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랫동안 기다렸던 발령 소식을 받아 춘천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허*숙 자매와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꾸렸다.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예배에 참석할 수 없으니 안식일에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동부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춘천을 떠나 수원으로 올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은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목자님들, 성도님들이 심방을 오셨다.

    당시에는 교회에 차가 없어 청량리에서 기차를 이용해 오셨으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지금은 소천하신 오충도 목자님은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해 주셨고, 소천하신 한마리아 집사님은 항상 동행하는 수고를 하셨다.

    우리 가정은 춘천에도 집회소가 세워지기를 소원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수원으로 오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진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함께 해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셨다.

    되돌아보면 나의 발이 미끄러져 수렁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붙잡아 주셨다.

    하나님의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린다.

  • [성도간증] 안산교회 하경은 집사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아신다는 말씀을 체험 하였음을 간증하려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약 20년 가까이 이명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명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에 비싼 돈을 주고 뜸을 구입해서 치료해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명 때문인지 점점 시간이 갈수록 작은 소리나 주파수가 높은 소리는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압력 밥솥의 칙칙거리는 추의 음을 듣지 못해 다른 가족에게 소리를 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했고.

    현관문 버튼 소리를 듣지 못해 같은 번호를 여러번 눌러 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 였고.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해 방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증상이 점점 심해 지면서 가장 불편 했던점은 상대방과의 대화가 어려워 지는 것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계속해서 되묻게 되고 이런 경우가 반복되면서 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치 알아 들은것 처럼 연기를 하고 혼자 이야기의 내용을 추측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상대방을 오해 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저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가지 생활의 불편함으로 인해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검진을 받아 보았지만 뽀족한 방법이 없다고만 하더군요.
    보청기를 사용할 정도는 아니니 그냥 지내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런 저의 문제를 어쩔 수 없는 노화의 일종이라고 받아들였지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적은 없었습니다.
    이미 차고 넘치도록 받은 은혜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새벽 기도를 교회에서 하지 않았는데 올해 부터 새벽 기도를 교회에서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아침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1월 20일. 그날도 아침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 오는 길이었습니다.
    1월 이였기 때문에 날씨는 추웠고 차 문은 창문까지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오기 위해 5분쯤 운전을 하고 오는데
    갑자기 왼쪽 귀 안으로 강한 바람이 휘~익 불어 들어 왔습니다.
    마치 바람이 왼쪽 귀로 들어 오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여지는 기분 이였어요.

    바람이 왼쪽 귀 속으로 들어 오자 마자 꽉 막혀 답답했던 머리 속이 시원해 지면서 잡자기 세상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고산 지대에 올라가면 기압 때문에 귀가 멍멍 하다가 침 한번 삼키면 뻥 뚤릴때 느낌처럼 귀 안, 그리고 머리가 시원해지고 맑아 졌습니다.

    차 안이라 이런 강한 바람이 갑자기 들어 올 곳이 없는데 너무 신기하고 놀랍고 이상 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전 하나님의 입김이 그순간 저의 귀를 치유해 주신거라 확신 합니다.

    이 일이 있은지 일년이 가까워 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명의 증상은 거의 없고 듣는 부분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 진거 같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 마가복음 5장 34절

    저는 이 여인만한 믿음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고 필요에 따라 다 주신다는 믿음은 조금 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장 26절

     

    성령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제게도 임하셨음을 많은 성도님들께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 [성도간증] 새 교회가 아닌  참 교회였습니다.

    [성도간증] 새 교회가 아닌 참 교회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지난 2022년 9월 17일 수령 확인을 받고 9월 18일 중생의 세례를 경험한 새내기 성도 박재한 입니다. 참교회 문화가 익숙지 않습니다. 옛날교회 다니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널리 양해 바랍니다. 찬송하나 부르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종교적인 가정에서 출생하다

    저희 가정은 매우 종교적인 가정입니다. 특히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들이 그랬습니다. 조부모님은 왜정 때부터 믿은 천리교 신자입니다. 식민지 시대를 지나 한국의 천리교를 재건하신 분들입니다. 저희 조부모님들은 천리교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들입니다. 외조부모님들과 외가는 천주교 성당을 대구, 경북지역에 6개 정도를 자비로 지어서 헌납하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어릴적 천주교 신앙생활을 하다

    저를 포함하여 천주교 신앙이 4대째입니다. 저희 조카들에게는 5대째지요. 이런 종교적 배경속에서 자란 저는 어릴 때부터 종교에 대한 반감이나 거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종교적 문화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되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믿음 생활을 한다거나 종교 생활을 한다는 것이 거북하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연히 뭔가를 믿어야 되고 빌어야 되고, 저희 할머니는 맨날 새벽에 물 떠놓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것만 보고 살아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빌어야 된다, 사람은 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 아버님은 조부모님의 신앙이 아닌 처가의 신앙을 받아들이셔서 열심있는 천주교인이었어요. 지금은 명목상의 신자이지만요. 그 덕분에 저도 유년시절을 천주교 유아 영세를 받아서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개신교에 발을 디디다 

    그러던중 중학교때 ㅇㅇ교회가 장로회 통합측인데요. 노방전도단에 전도가 되어 처음으로 개신교에 발걸음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2의 평양이라 불리우던 ㅇㅇ교회의 분위기상 열심있는 기도생활을 하였고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일반교회의 방언을 경험해 봤고, 병고침의 은사가 나타났었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1992년도 휴거된다고 하던 다미선교회 아시죠? 휴거된다는 계시를 받은 소년중의 한명이 바로 저였습니다. 92년도에 휴거된다는 계시가 왔었거든요. 그래서 그걸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켰지요. 각종 은사들이 나타나고 목이 터져라 통성기도도 하고 간구하고 부르짖는 기도생활을 하였지만 늘 마음이 갈급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갈급함

    성경을 보면 볼수록 궁금증은 많아져만 갔고, 목사님의 설교나 교사님들의 답변은 저의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는 것이 덕목이고 미덕이란 답변뿐이었습니다. 그저 믿어라, 믿어야 된다! 믿어라, 그저 믿어….

    그랬는데 성경을 보니 마태복음 7장21~23절에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내 아버지의 뜻이 뭡니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어요. 그런데 목사님들이나 교사님들에게 물어보면 아무도 답변을 안해줬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찾아보기 시작하고 신령하다는 제단들을 다 다녀봤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가 80년도, 90년도 였는데 다미선교회, 김천의 용문산 기도원, 용문산 기도원에서도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금식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금식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밥먹듯이 철야하고 지금처럼 맑은 목 가져본 것이 얼마 안됩니다. 맨날 걸걸한 쇳소리였지요. 구원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통일교, 천부교 전도관,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승리제단, JMS, 증산도, 대순진리회, 불교, 천도교, 몰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신령하다! 하는 곳은 다 다녀봤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증은 계속 되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180독 했습니다, 지식으로 알고 싶어서 한게 아니라 봐도 모르니까요. 봐도 또 봐야하고 봐도 또 봐야하고 이것 뒤져봐야 하고 저것 뒤져봐야하고 성경을 난도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순복음교회는 계속 출석을 했습니다. 왜? 뜨겁게 기도는 해야 되니까요. 하나님께 빌어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말씀을 난도질하고 이것이 맞으면 저것이 틀리고 저것이 해결되면 이것이 다시 막히는 수도 없는 시행착오 가운데서, 한때는 예수님을 부정하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을 안믿었어요. 답도 없는 성경~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아직도 답이 없는 성경~ 목사님들이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는데 내가 믿어서 뭐하나, 이 생각이 들더라구요.

    침례교에 발을 디디다

    그러다가 칼빈주의 장로교회에서 개혁파 신앙을 따르는 침례교가 있어요. 침례교인데 칼빈주의를 따르는 침례교도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신학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조나단 에드워즈 이런 신학이 있어요. ㅇㅇ동에 ㅇㅇ ㅇㅇ침례교회에 다시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한구절은 맞고 한구절은 또 틀려요.

    안식교에 발을 디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헤매고 헤매고 또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계시록, 다니엘 잘 풀이한다고 해서 안식교 설교를 2년 동안 듣다보니, 아! 이 말씀이 맞는거 같구나~ 어릴 때 안식일교회 다니던 생각이 나서 그 교회로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지키고 계시록, 다니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가 가장 성경적이다! 가장 옳은 말씀이다! 마지막에 남은 교회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안식일 교회에 있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교회 입교전에(코로나 전) 본교회도 몇 번 온 적이 있었습니다.

    새 교회를 찾기 위한 여정

    이러한 신앙생활은 새 교회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새 교회는 세상의 속된 교회와는 다른 오묘하고 성경적으로 참으로 정확한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족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해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는데 새 것이 있겠습니까? 이게 맞으면 저게 틀리고 저게 맞으면 이게 틀리고, 다 끼워 맞추기 해놓은 것들이다 보니 맞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식교에서도 이건 맞지만 이건 또 아니고, 하! 그냥 눈감고 넘겨야 하나, 이젠 갈 때도 없는데……. 다 다녀봤고 전국에 있는 오만개 교회를 다 다닐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혼자 해결하고자 신학서적을 구해 가지고는… 제가 제 책장에 꽂힌 정독한 신학 서적이 890권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성경을 난도질을 하는 겁니다. 그 덕분에 20독을 더 했지요. 구절구절 찾아가며 관주를 찾아가며 옛날 제가 가진 성경이 관주 성경입니다. 아시지요? 빨간 색칠 되어 있고 세로로 된 성경! 그 관주 구절을 다 일일이 찾아가면서 이게 그 말씀인가? 저게 그 말씀인가 그렇게 찾았습니다. 근데 안 되더라구요.

    새 교회가 아닌 참 교회에 발을 디디다

    그러던 중에 올 봄 영은회가 있게 되고 김성동 총무님이 저한테 문자를 보내 주셨어요. 그 영은회를 시작으로 본 교회에서 구도자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배워왔던 여러 교리나 신학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세례를 결심하고 교회와 하나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오희도 목자님과의 대화중에 있었습니다. 시간상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겠지만 참예수교회는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참교회이며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주창 되어진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해석하는 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본인의 증거! 곧 당신께서 우리 미약한 인간에게 보여주신 그 증거와 말씀을 믿고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할때 만나주신 하나님

    이 깨달음이 온 계기는 바로 그 때 제가 읽기 시작한 창세기의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 21:8~20에 가죽부대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 하갈이 가죽부대에 물이 있을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어요. 내 안에 내 지식이 가득 할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가죽부대! 내 지식의 가죽부대에 물이 다 떨어졌을 때, 그것을 초개같이 버렸을 때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늦은 비 성령의 교회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결심케 되었고 그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주께서 선물로 성령을 부어주셔서 방언 말하게 되었음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앞으로의 포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아직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감히 여러분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 주님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분이시고 약속을 변개치 않는 분이십니다. 내 형편을 보지 말고 내 상황을 보지 말고 오직 주님의 약속 곧 성경 말씀만을 믿고 나아간다면 약속하신 모든 유업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 감히 확신하는 바입니다. 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직장생활이나 다른 여러 일정들… 안식일에 부득이 나오지 못한다, 바빠서 못온다, 토요일날 일이 많아서 못 온다고 하는데 다 거짓말입니다. 사실, 오고 싶으면 새벽기도라도 왔다 가지요! 왜 못 옵니까? 제가 앞으로는 잘하겠습니다.(웃음) 그거 얘기하려고 실토하는 겁니다.(웃음) 사실 그렇잖습니까? 뭐가 바빠서? 직장이 어때서? 내가 뭐가 어때서? 라고 얘기하는데 정 안되면 새벽기도라도 왔다 갈수 있어요. 정 안되면 금요일 저녁 예배라도 왔다갈수 있죠. 근데 다들 핑계 대기가 좋거든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목자님도  월급 줄거 아닌데 오라고도 못하고 속은 터지지요. (웃음) 하여튼 우리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참 교회 안에서 함께 교제하며 걸어가며 승리하여 주의 나라에서 함께 찬송하기를 기도합니다. 간증 들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전주교회 양준세형제님 간증

    [성도간증] 전주교회 양준세형제님 간증

    제목: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주님의 은혜를 되새겨 보고자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결혼을 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전주로 이사를 했는데,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 사이 아이 둘이 태어났고 어느덧 자라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학교에 들어간다고 할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직장을 옮기기도 했고 아내도 일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이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주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많은 도움과 기도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중에 최근에 있었던 두 가지 이야기를 성도님들과 나주고자 합니다.

     

     먼저 지난 9월 있었던 아동부 소풍이야기입니다. 아동부 소풍날, 유치부 2년차인 첫째 여섯 살 수영이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가 같은 유치부인 완이와 아동부 선생님과 함께 김제 시민공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어색하지 않게 끝말잇기도 하고 퀴즈를 맞추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동했습니다. 공원에 도착하니 아침엔 날씨가 흐린듯했지만 완연한 가을 날씨에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맑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동부 소풍을 위해 모든 준비를 해놓으신 것만 같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몇 년 만에 소풍을 나와서 그런지 아동부들은 목자님의 기도로 시작해서 아동부 선생님을 따라 여러 활동을 하며 더욱 신나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줄넘기, 도둑잡기, 물총놀이, 달리기, 보물찾기.. 아동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나무 그늘 아래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점심으로 맛있는 김밥과 닭강정으로 배를 채우고 오후에도 아이들은 신나게 소풍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즐거움 가운데 소풍을 마치고 교회에 돌아왔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수영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동부 친구들, 선생님들과 어찌나 친해졌는지 더 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한 시간 더 있다가 가기로 약속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눈물을 보이며 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한참을 달래고 설득해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도 교회에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교회에 더 있고 싶어하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 일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난감하지만 너무나 감사한 변화가 아이에게 생긴 것입니다.

     수영이는 5살 때인 작년부터 유치부에 소속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으로 아동부 예배에 참여하다가, 올해는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예배가 정상화되었고 대면으로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치부는 꿈나무 교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시간이 되면 수영이 손을 잡고 같이 참석을 했습니다. 유치부 자리는 맨 앞쪽이지만 맨 뒤쪽에서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유치부 친구들과 선생님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아빠가 있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동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수영이가 아동부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도 했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꿈나무 교육관에 미리 내려가서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찬양시간에 아는 찬양이 있었는지 항상 물어보고 같이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차츰 아동부에 적응을 해가며 아동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선생님을 잘 따르게 되었습니다. 수영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교회에서 어울려 놀거나 할 때면 주춤하는 것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아직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동부 소풍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아동부 예배시간이 되면 선생님을 따라 유치부 친구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선생님들의 사랑의 수고 가운데 아동부들과 어울려 한걸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같아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기본 신앙을 외워요’ 찬양을 부르면서 몇 번이나 가사를 물어보더니 방에 있는 작은 칠판에 가사를 적고 있습니다. 아직 맞춤법도 틀리고 서툴지만 주님께서 그 마음에 믿음이 싹이 나고 자라나도록 먹이시고 품어주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께서 주신 위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달, 예전에 2년정도 함께 신앙 생활하며 같이 교사사역을 했던 동생의 결혼이 있었습니다. 결혼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고 결혼식에 참석해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또 오랜만에 그리웠던 인천교회 성도님들을 만나 뵐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안부도 물으며 교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석하던 성도님들의 이동이 있기도 하고 잠간 교회에서 멀어져 있는 청년들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누나와 아이들도 코로나와 대학입시로 교회 출석을 잘 하지 못하고 있음을 들었습니다. 전부터 전해듣기는 했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 한편이 무거웠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내려와 집에 도착을 하니 슬픈 마음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해지고 함께 할 때에 힘이 나고 또 힘을 낼 수 있을텐데.. 그와 반대인 상황에서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할까.. 멀어져간 믿음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지금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이 밀려왔습니다.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마음의 빚을 품고 항상 잊지 않고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생각이 날 때마다 기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간절함은 줄어들었고 다짐도 잊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회개하며 기도했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믿음의 환경이 다를 수가 있을까.. 한 주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사49:8~21)을 통해 나의 걱정과 불편함이 믿음 적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가 잊었다고 주님께서도 잊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은혜의 때에 응답하시고 구원의 날에 구원하시며 그 백성을 위로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을 통해 주시는 위로에 감사드리며, 자식을 잊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즐거이 노래 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학생, 청년 시절을 돌아보면, 나 또한 주님께서 잊지 않으셨기에 외롭다고 느끼던 순간들마다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신앙의 자리를 지키게 하셨을까… 저 또한 주께서 맡기신 영혼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더욱 신앙에 힘을 내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성령을 받았어요!

    저는 부모님과 여동생, 저 이렇게 네 식구입니다. 저의 이름은 황아인인데 아빠가 지어 주셨습니다. (예쁠아, 어질인) 

    저희 가족은 안식일이 되면 교회에 나옵니다.  제가 얼마전 성령을 받은 간증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 11월26일 아동부 예배시간에 목자님께서 안수해 주실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기도할때 마음속에서는  근심 걱정에 대하여, 그리고 죄에 대한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할렐루야를 입으로 외치며 기도했습니다. 처음으로 목자님께서 아동부로 내려오셔서 설교해 주시고 안수기도를 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도가 끝난후 화장실에 가려고 할때 목자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은 줄도 몰랐고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안식일 대예배 기도시간에 늘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평상시 예배때 성령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5학년 아동부 영은회때 유바나바 목자님으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 

    내가 성령을 받았나? 라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고 우리 교회에서 매일 한장씩 읽는 스토리 성경읽기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그때 기도했던 날은 힘든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면서 간절히 기도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몸이 많이 떨렸습니다. 갑자기 떨림이 느껴지니까 놀랐지만 내가 성령을 정말 받았구나라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틀 정도 제 혀에서 방언이 나왔습니다. 정말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놀랍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후로 방언기도가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왠지 좌절이 되었고 기도를 잘 하지 않아서 성령이 약해진 것일까? 혹시 성령이 사라질까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열심히 기도하라는 뜻으로 믿고  성령이 더욱 강하게 임할수 있도록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아동부에 동생들 현서와 제인이도 하루 빨리 주님의 은혜를 받고 , 성령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