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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1:12-17)

    [복음메시지]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1:12-17)

    [말씀제목]  성업의 틈을 보수하라!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3년 10월 7일

     

    (딤전 1:12-17)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교회를 세우는 데 진리만큼 중요한 일이 일꾼을 바로세우는 것입니다. 직분 자들이 바로서지 못해 성업에 틈이 생기면, 교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일군들이 성업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자기에게 이런 직분을 맡겨주셨는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들은 바울과 같은 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후에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을 삼으려고 이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본이 되어야 하고 본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직분을 맡은 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큰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맡겨주십니다. 사람들은 달란트의 양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가 그 맡은 것으로 얼마나 충성했는지, 순종했는지에 있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또한, 맡은 자들에게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맡은 자라는 인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맡기실까요?

     

     첫째로, 물질을 맡기십니다. 

    (시 50 : 1-23절) [1] [아삽의 시]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것을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것 인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물질은 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다가 때가 되면 놓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018년에 주윤발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 했습니다. 그 액수가 8,100억이었습니다. 기부하면서 주윤발은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분은 한 달 용돈을 11만원 썼다고 합니다. 자가용을 가지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습녔습니다.  ‘내가 물질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물질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께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달란트는 금전의 명칭입니다. 금전 중 가장 상위의 용어가 달란트입니다. 또, 이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달란트는 각 사람의 재능대로 주십니다. 기억할 것은,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가장 많은 달란트를 받아 가장 많은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주인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칭찬의 내용이 똑같습니다. 즉, 다섯 달란트이든 두 달란트이든 주인에게는 ‘작은 일’인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가 차이있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 25:24-25)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자기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시고 그것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용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재능이 얼마이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은사를 맡겨주셨습니다.

    ​(고전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 이 은사들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왜 주셨을까요?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를 주신 이유는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는 교회를 위해서 잘 사용할 때 빛이 납니다.

     

     넷째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직분은 맡겨진 것입니다. 구약에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직분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직분, 성가대 직분, 회막에서 봉사를 하는 직분 등입니다.

    (민 8:9-22) [9]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10]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 [11]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 [12]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를 안수케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13]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14]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15]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16]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20]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레위인에게 대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레위인에게 행하였으되 곧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21] 레위인이 이에 죄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그 옷을 빨매 아론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그가 또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정결케 한 [22] 후에 레위인이 회막에 들어가서 아론과 그 아들들의 앞에서 봉사하니라 여호와께서 레위인의 일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좇아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아론의 직분을 위해 주셨습니다. 회막 일은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일인데,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많은 봉사자들을 세워 맡겨주신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엡 4:11-12)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습니다. 이 ‘목사’는 사실 ‘목자’라는 단어입니다. ‘포이멘’은 신약 성경에 10차례 나오는데, 다른 모든 곳에서는 전부 ‘목자’로 번역됩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구절만 ‘목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여러 직분을 맡겨주셨고, 초대교회에도 여러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늦은 비 성령으로 세우신 참예수교회에도 그런 직분이 있습니다. 목자, 장로, 집사, 임원 등이 해당 됩니다. 이 직분은 모두 맡겨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맡겨진 직분에 순종하여 유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목자, 장로, 집사 직분을 받을 자들의 자격에 대해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목자의 자격입니다.

    (딤전 3:1-7)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이 ‘감독’은 ‘돌아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이것은 양떼를 돌보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목자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양떼를 돌보는 사람에게 쓰이는 용어가 감독입니다. 돌본다는 것은, 양떼를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양떼를 돌아보는 책임이 맡겨진 사람이 감독입니다. 목자, 장로가 이에 해당됩니다.

    (딛 1:5-9)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 감독에게 강조되는 것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방받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고집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폭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민 12:1-3)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모세는 성질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감독에게는 이런 면이 있어야 합니다. 또,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파로이노스’인데, ‘포도주를 곁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장로, 감독은 술을 곁에 둬서는 안 됩니다.

    (레 10:9)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 더러운 이를 탐해서도 안 됩니다. 왜 이것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이 생기면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나 하나 새길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직분자는 세상 명예나 권세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 맡겨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가 올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직분자가 성업을 감당할 때, 틈이 생기면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이 없어야 합니다. 기도 시간에 좀 더 간절히 기도하고, 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툼이 있을 때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딤전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

     ‘이와 같이’란, 장로, 목자, 집사, 직분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단정하다(셈노스)는 것은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뒤에서 말을 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이런 틈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한, 절제해야 한다. 교회를 위해 절제하며 맡은 바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직분은 성도를 세우고, 수고와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완전하게 세워가도록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자신이 온전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온전케 되도록 봉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인가요?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가요? 교회를 부끄럽게 하거나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교회를 연약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직분자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줄 아는 충성된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께서도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셨습니다. 직분자는 핍박과 환난이 있어도, 인생에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때마다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본받아 묵묵히 참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딤전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이것은 직분을 감당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충성하다보면, 자신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은 아버지 앞에 설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 자, 믿음에 담력을 얻은 자가 되어 예수 안에 있는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여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가?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날 참교회가 사도 시대의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늦은 비 성령의 함께 하심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교회 내의 성직자가 마땅히 이 일에 솔선수범하여, 전체 신도가 모두 열심히 주님을 섬기길 원할 때, 이로써 교회도 성장할 힘을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된 나(우리 교회)의 성업의 틈을 되새겨 보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를 의지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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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누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인가?ㅣ계 14:3

    [복음메세지] 누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인가?ㅣ계 14:3

     

    이번 영은회에선 말세에 나타날 하나님의 구속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의 구원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을 알고 내가 그 구속에 참여할 자인지 아닌지 알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다음 5개의 질문을 통해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을 이해할 수 있다.

    •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인가?
    • 누가 하나님의 인 맞은 자인가?
    • 누가 자기 옷을 지키는 자인가?
    • 누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인가?
    • 누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  J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
    • 성령을 받은 자.
    • “히마티온(세례), 스톨레(환난을 극복), 비쉬노스(옳은 행실)”를 지키는 자.
    • “어린양과 함께 서 있음(흔들리지 않는 신앙), 어린양을 항상 따라가는 신앙”을 가진 자.
    • 이기는 자, 세례를 받은 자, 비쉬노스가 준비된 자.

    질문과 답을 하나로 정리해보면

    •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인가? – J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

    • 누가 하나님의 인 맞은 자인가? – 성령을 받은 자

    • 누가 자기 옷을 지키는 자인가? -” 히마티온 : (세례, 더러워지면 안됨) / 스톨레 : (환난의 시기를 극복한, J의 보혈로 빨아야 함) / 비쉬노스 : (성도의 옳은 행실, 혼인 잔치의 예복)”을 지키는 자.

    • 누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인가? – “어린양과 함께 서 있음(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 /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항상 따라가는 신앙”을 가진 자

    • 누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인가? – 이기는 자(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 세례를 받은 자, 비쉬노스(옳은 행실)가 준비된 자

     

    5가지 질문을 통해 말세에 나타날 하나님의 구속에 대해 알아봤다. 이따금 성도님들께서 “목자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신다. 

    ….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준 비전은 무엇입니까? 여타 성도님들은 “우리 교회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물론 그것도 우리의 비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준 비전이 있다. 비전은 미래에 될 일은 눈으로 보는 것이다.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은 비전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이다.

    성경이 보여준 비전은 성도들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다. 분당교회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이다. 성도님들 마지막 날에 거룩한 성에 넉넉히 걸어서 들어가시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복음메세지] 존귀한 자의 기도

    [복음메세지] 존귀한 자의 기도

    2023.9.16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ㄴ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설교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존귀하다: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하다.

    세상에서의 존귀함은 자존감, 학벌, 직업, 명예 등으로 귀하다는 것을 나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존귀한 자.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고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기 때문.

     

    존귀함“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게에서 비롯되어 나에게 덧입혀지는 것.

    존귀함 무겁게 여기다. 영광.

     

    (삼상 2:30) “존중히” = 무겁게 여기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무겁게 여기신다는 것.

    => 즉, 존귀함은 세상물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 시인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영광이 됨.

     

    ***

     

    없으면 더 불편한, 덜 불편한 손가락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더 존귀함을 받는 사람이 있다. (ex.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모세, 요셉, 바울…)

     

    ?특별히 존귀함을 받는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상 4:10)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심. -> 하나님께서 야베를 더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

    야베스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바로 들어주심.

     

    ?야베스는 어떻게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쌓았고, 야베스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을까?

    (대상 4:9) 야베스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야베스를 낳음 -> 그 고통과 결핍 속에 야베스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함.

    우리의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도 좋지만, 이 고통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면 그 고통도 복이 됨.

    (대상 4:10) 야베스는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

     -“복에 복” -> 히브리어의 문법. 필연적 강조.

     -“지경을 넓히다” -> 자신의 물질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확장.

     -“환난” -> 악한 일.

     -“근심” -> 수고 (대상 4:9) = 고통이 없게 해달라. or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게 해달라.

    => 이 기도들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즉시 허락된 기도.

  • [복음메세지]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 (수7:1-15)

    [복음메세지]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 (수7:1-15)

    [말씀제목]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 (수7:1-15)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3년 8월 12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1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나이다…

    12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여새를 몰아 여리고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5절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실망감과 자괴감에 빠져 아무 기력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승리 후에 패배하게 만드는 유혹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1. 교만과 자만심

    •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수6:27)
    • 자신들을 보며 두렵게 떨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보는 마음에 교만의 싹이 났습니다.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수7:2-3)

    -여리고성과 달리 하나님께 방법을 묻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 = 경험이 하나님보다 먼저가 된 모습

    -거룩과 순종에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2. 착각과 망상

    •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의 승패가 숫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수7:3)

    •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이길 것이라는 착각을 했고, 이긴 다음의 모습을 그리는 망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함으로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그 순종으로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3. 집착과 탐심

    • 집착과 탐심으로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에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수6:18-19)

    -하나님께서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전리품이 개인의 소유가 되었더라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가나안 정복에 대한 마음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 한 사람의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수7:1)

    -탐심과 탐욕은 나를 잠깐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더 큰 것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겨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을 잃어버리진 않았습니까? 우리가 돈과 명예를 작은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영원한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공 뒤에 오는 실패의 유혹을 경계하고 무너뜨려봅시다!

  • [복음메시지]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복음메시지]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말씀 제목]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 8.5 (토) 안식일 예배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많은 미혹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의 미혹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요, 재림주요, 보혜사라 주장하는 자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미혹을 받으면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고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혹들은 신앙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도 일어납니다.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의 목적과 의도대로 흘러갑니다. 사단은 세상 풍조와 문화 등을 통해 미혹함으로 궁극적으로 신앙에 타격을 줍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연 미디어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은연중에 이끌어 감을 알아야겠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또한 환상과 계시나 말을 통해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도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난리와 소문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면 믿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풍랑 중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 그리고 온역 같은 자연재해가 많이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으나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로 이런 것들을 감당케 하신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3-4)”

    사단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떠나도록 합니다. 그 미혹의 방법으로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단도 예수, 복음, 영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슷하지만 참이 아닌 것으로 간교하게 속입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11:3-4)”

    사단이 천사로 가장하여 미혹하는 것들이 큰 일이 아니라 흔한 일이라 했습니다. 계시록 9장에 보면 마지막 때 무저갱이 잠깐 열리면서 황충이 연기 가운데 나옵니다. 연기는 제대로 볼 수 없게 혼미케 함을 의미합니다. 이 황충들이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금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13장에는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이적을 행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적을 행하니 이것이 미혹인지 아닌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666이라는 사람의 숫자가 완전한 하나님 말씀인 7과 가장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듯이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정확히, 그리고 깊이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알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총회에서 온라인 단기신학을 운영하는데 수강자 중 83세 되신 성도님도 참여하고 계십니다. 나이가 많아서 혹은 바빠서 라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다 방법이 있습니다. 영적인 투자에 힘을 쓰시는 성도님들 되셔야 합니다.

     

    둘째는 마지막 때에 많은 환난이 있다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24:9)”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믿음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난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이고 세상적인 것들과 맞물려 일어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의 말씀처럼 마지막 때는 사람들의 생각과 심령이 점점 악해져 갑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주어 점점 악하게 만듭니다. 요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묻지마 범죄’ 또한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의 조류 속에서 악한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게 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니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3:1-3)”

    이러한 상황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은 왜 성도들에게 이러한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3)”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하심처럼 믿음생활의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인내를 갖춰야 이룰 수 있습니다. 인내를 통해 성도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약1:4). 그리고 이 인내는 환난의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세상의 종말도 있지만 각 개인의 죽음이라는 종말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에 반드시 환난을 허락하심으로 인내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심을 알아야겠습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10:36)”

    인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환난을 감당케 하십니다. 피할 길을 주시고 마음의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환난을 속히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힘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게 되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클릭!)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1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2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3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4편)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회개하라 (눅13:1~9)

    [복음메시지] 회개하라 (눅13:1~9)

    2023. 08. 05 안식일 오전 (전홍희 목자)

     

    제목 : 회개하라 눅13:1~9

     

    예수님께서는 망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지만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 바른 길을 향해야합니다.

    우리 성도들 또한 회개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결국을 살펴봅시다.

    눅13:1~3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 불행한 일들은 회개를 촉구합니다.

    로마 왕의 대리인이었던 빌라도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로마 황제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에 항일정신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하고자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대에 대항하는데 있어,

    제대로된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 안에서의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망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인 즉슨, 그리스도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시대를 잘 구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지혜로우며,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나의 죄를 고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늦은비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여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야겠습니다.

    이런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우리를 먼저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임을 믿어야겠습니다.

    눅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 세상의 재해는 회개를 촉구합니다.

    명이 다하기 전에 죽는 것, 불치의 병이나 과부가 되는 것,

    기타 세상의 불행을 당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임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불행한 이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이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 역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불행한 일들이 언제든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의한 사고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을 보고, 한 청년이 깨달아 울부짖으며 성령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것처럼 각종 재난과 사고를 목격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회개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눅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3. 예수님은 지금도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선 과원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성한 나뭇잎만 있고, 과실이 없는 상태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빠져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리스도 시대의,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대접하여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지함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도록 먼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함께한다는 것에 그쳐,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감 없이,

    이스라엘백성과 같이 선민의식에 빠져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지금의 잘못된 나의 모습이 있다면,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말씀링크

  •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 2023. 7. 22.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절)”  

    성경은 이상한  말을 하지요?  이해가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문맥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안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서 6:12의 답변으로, 죽음 이후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 6:12)

    신후의 일을 깨닫게 되면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훨씬 좋은 날임을 알게 됩니다.

    *신후(身後) : 죽음 이후.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또다른 시작입니다. 신후사를 알게 되면 태어난 날보다 죽는날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신후사(身後事) : 죽음 이후의 일.

    사람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신후사를 향해 갑니다. 죽음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 이후를 알면 출생한 날보다 하늘나라 가는 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압니다. 1절은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보배로운 기름)보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녹명된 아름다운 내 이름이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7:1)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2절) 장례식장에 가면 인생의 실존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은 한줌의 재로 변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신후사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도 결국 죽습니다. 산자는 이것에 유심해야 합니다.

    *유심(留心) : 마음에 담는것.

    성경은 죽음 자체를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무주의도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일(신후사)을 정확히 알아서, 신후사가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자가 지혜롭게 살게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죽음에 대해 유심한다면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이 귀해지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날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슬픔(3절)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천국을 생각한다면 슬픔속에서도 마음이 좋게 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3)

    성도의 죽음은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천국 환송식입니다. 육신의 이별이 슬프지만,  알고 보면 천국 보내드리는 환송예배입니다. 나중에 그 자리에 나도 누워있게 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마음을 둡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집에 있고, 그들의 목표도 잘먹고 잘사는 것에 있습니다.(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4)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습니다.(6절) 박자를 잘 맞게 탑니다. 전세계 문화의 코드는 웃음입니다. 재미주의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화되고 신후사의 일에 대해 유심하기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변해갑니다. 웃음이 나쁜 것은 아니나 신후사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왕년은 지나간 것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10절) 앞으로의 일이 훨신 더 좋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믿는 성도들에게는 신후사의 일이 훨씬 더 인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위에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링크 바로가기)

  •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2023.4.22.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나는 죽으나] 창 50:24-26

     

    https://youtube.com/live/LIbgx5QpR5M?feature=share

     

    종교인은 사후세계도 준비하지만, 막상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서 하늘에 있는 금고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창 5) 하나님께서 데려가 하늘로 승천한 에녹을 제외하곤 사람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죽음은 비통하고 애통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기쁜 일이기도 하다.

     

    (창 5:1-2) 이 구절은 의미 없이 쓴 구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을 한 번 더 작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아들을 낳음)

    =>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간다는 생명의 족보인 것이다.

     

    *이 생명의 족보에서의 죽음: 모든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돌아간 것.

    하지만, 창6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이 육체가 되어버려 낳는 걸로 하나님의 형상을 계승할 수 없게 됐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한 사람”을 선택해 하나님의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게 하심.

    그 첫 번째 사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래서, 아브라함이 후처를 두고 많은 자식을 낳아도 ‘아브라함의 자식’은 이삭 1명

     

    (창 25:8) 열조: 백성, 국가. /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이어받은 조상에게로 돌아감.

    (창 35:9) 이삭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감.

    => 하나님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고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감.

     

    (창 50:25)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

    요셉의 이런 죽음에 대한 평온함과 소망은, 야곱에게서 전승된 것. (창 40:21)

    (수 23:14) “온 세상이 가는 길”: ‘나는 죽으나’의 일꾼 ver.

    (왕상 2:1-2) “온 세상이 가는 길” -> 하나님이 모든 일을 완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

     

    여호수아: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정복해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있도록 한 사람.

    다윗: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완성한 사람. (나일강 ~ 유프라테스강)

     

    이 여호수아와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 뜻을 완수한 사람들.

  • [복음 메시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마21:18-22)

    [복음 메시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마21:18-22)

    [말씀 제목]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년 6월 3일 (토) 안식일 오전예배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21:18-19)”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신 것은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책망하시며 교훈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열매는 하나님 백성으로 나타나는 삶의 행실, 곧 순종입니다. ‘의의 나무’인 하나님 백성이 의를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라십니다(사61:3). 그러나 무화과나무가 잎사귀 밖에 없었던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사1:2~15).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2)”

    두 번째, 열매가 없으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하심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세심히 가꾸어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였으나 들포도를 맺힘을 보시고 한탄하심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의 열매 없음에 진노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열매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고 하시며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7:17)”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없는 자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마21:43).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5:7)”

    세 번째, 예수님은 열매 맺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훼파되고 멸망당한 것은 이러한 경고 후 40년 뒤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 3년 동안 열매가 없어 베어 버릴 처지에 놓인 무화과나무를 과원지기는 금년에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말합니다(눅13:8-9). 그러나 그 기회가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신다 말씀하시며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하심은 심판이 임박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뜻밖의 재앙으로 망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5)”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열매 맺도록 도우십니다. 말씀을 통해, 상황을 통해, 사람을 통해 깨닫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밭에 심겨졌을 때 얻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밭처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열매를 얻게 됩니다. 또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는 결국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로서 시험이 와도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평소에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시험과 환난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는 환난이 오면 받는 해가 크게 됩니다.

    열매라는 것은 신앙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분명하고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는 말씀처럼 열매를 맺는 과정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첫째는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둘째는 마음을 다하지 않을 때입니다. 신앙의 모습 속에는 반드시 힘이 드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하지 않는 믿음과 인내로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 가는 안양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튜브 설교영상 (클릭!)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세지]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33:29)

    [복음메세지]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33:29)

    [말씀제목]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3년 5월 6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가장 축복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집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날입니다.

    세상에 머물러 있는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귀한 날이 바로 세례를 받는 날입니다.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왜 행복자일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자라고 말해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나 같이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다는 것

    • 애굽은 나일강을 끼고 있는 나라여서 풍족한 양식이 나오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왕의 말에 복종하며 살아갔습니다. (육적–>풍족 / 영적–>황폐)

     

    •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됐습니다.

     

     

         2.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방패시오 나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 세례를 받음으로 얻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사 43:1-2)

     

    • 세례를 받고 나선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끝은 결국 우리가 승리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실 때가 옵니다. 그 때 똑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다른 결말을 맞이합니다.

    ex) <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2-23)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니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우리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주워졌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